사도행전 ①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고 성장하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속하셨던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성령은 제자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결국 성령은 예루살렘의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도록 역사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예수님께 받은 것이지만, 이를 이루는 것은 사명자를 세우고 도우시는 성령을 통해서다.

사도행전 한눈에 보기

본문

1:1~7:60

8:1~12:25

13:1~21:16

21:17~28:31

요점

성령 강림과 교회의 성립

박해와 교회의 확장

흩어지는 교회

복음의 확산

중심 인물

베드로, 스데반

빌립, 바울, 베드로

바울과 동역자들

장소

예루살렘

유대와 사마리아

로마제국(땅끝)

저자

의사인 누가가 복음서(누가복음)와 함께 기록한 역사서다. 누가는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행했다(전반부에서는 '그들'을 주로 사용하다가 16장부터 '우리'가 등장한다).

연대

64~65년경으로 추정된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구금된 직후, 바울의 재판 결과가 언급되기 전까지의 일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배경

누가복음이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것이라면, 사도행전은 교회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당시는 격동기였다. 유대인과 로마 당국 간에 갈등이 있었고, 교회의 모습을 두고 기독교 안에서도 갈등이 벌어졌다. 교회의 고민과 갈등의 중심에는 기독교를 통해 인생이 바뀐 위대한 복음 전도자 바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새로운 사도 (1:1~26)
누가복음과 함께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에게 헌정된 서신이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에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기록이고, 사도행전은 그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도행전은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시고는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신다. 예루살렘 다락방에는 예수님의 가족을 포함해 120명의 제자가 모여 있었다. 이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새 사도를 선택하기 위해 제비를 뽑는다. 제비뽑기는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던 이스라엘 전통(출 28:30)에서는 익숙한 원리였다.

성령 강림과 초대교회 (2:1~47)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로 칠칠절이라고도 한다. 첫 곡식의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 유대인 남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는 세 번의 절기 중 하나다. 이날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난 후였다. 성령의 모습은 세찬 바람 소리를 동반한 불의 모양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120명 위에 하나씩 머물렀다고 한다. 성령의 충만함이 각기 다른 언어로 표출된 것은 당시 예루살렘에 와 있던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한꺼번에 복음이 선포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는 구약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음을 입증하는 방식이었고, 그 자리에서 3,000명 넘는 사람이 회개하고 믿었다. 성령 강림 후 제자들은 친밀한 영적, 육적 교제를 나누었으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거주한 곳 (2:9~11)


교회의 성장과 박해(3:1~5:42)
성령의 표적이 나타나 믿는 자의 수가 늘자 종교적인 박해가 뒤따라온다. 베드로와 요한은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는 기적을 베푼다. 베드로는 이 기적에 대해 군중 앞에서 담대하고도 논리 정연하게 설교했고, 그의 설교(3:12~26) 때문에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과 갈등이 생겼다. 전직 어부였던 베드로와 요한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머지 제자들도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다(4:31). 무지하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높은 자리를 두고 다투던 과거의 제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로마 당국이 주시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5:33~42).

스데반의 순교와 박해 (6:1~8:3)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행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설교, 말씀 전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회의 행정적인 분야를 감독하는 사람들이 선임되었다. 당시에는 아람어를 말하는 지도자들과 헬라어를 말하는 성도 간에 의사소통 문제도 있었다. 선임된 7명이 모두 헬라식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직무가 의사소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사들 가운데 스데반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기 시작한다. 스데반을 반대한 자들은 과거 노예였다가 자유민이 된,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이다. 주로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아시아 출신이다(6:9). 이들은 성전과 율법을 신봉하고 있었기에 스데반의 가르침에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스데반은 긴 역사적 교훈을 담은 변호를 시작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배척한 유대인들이 '의인'을 죽였다는 설교와 하나님 우편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을 본다는 그의 말에 고발자들은 극도로 흥분해 폭력을 행사하고 만다. 결국 스데반은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다. 그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사울이라는 젊은이가 증인들이 벗은 옷을 맡는다(7:58). 스데반의 죽음을 기점으로 박해가 확산된다. 박해의 주동자는 사울이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았지만 많은 제자가 각지로 흩어졌다(8:1). 역설적이게도 기독교를 더 큰 확산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박해였다.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복음이 마침내 경계를 넘었다.

빌립의 전도 (8:4~40)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한다. 이어서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를 방문해 점검한다. 복음이 전파될 때 올바른 진리가 전해지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 복음을 오해하고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는 시몬 같은 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8:9~24). 빌립은 성령의 지시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다가 에디오피아의 고위 관료를 만난다. 그는 여왕(간다게)의 국고를 주관하는 자였다. 요즘 식으로 하면 재무 장관에 해당한다. 그런 사람이 빌립의 말을 듣고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한 한 사람을 통해 멀리 에디오피아 땅에도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사울의 회심 (9:1~18)

사울의 회심은 사도행전에서 세 번에 걸쳐 언급된다.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가 한 번 언급하고(9:1~18), 다른 두 번은 바울 자신이 언급한다(22:2~21; 26:9~18), 바울의 자전적 고백은 갈라디아서에 한 번 더 등장하지만 예수님의 환상 자체는 우회적으로 다룬다(갈 1:13~17). 사울이 본 환상은 극단적인 영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을 만나는 경험은 시각을 잃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사울이 사흘간 앞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사흘간 무덤에 계셨던 사건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베드로의 사역 (9:32~43)

교회에 평화가 찾아왔다(9:31). 박해의 선두주자였던 사울이 전향한 탓일 것이다. 이때에 베드로는 순회 사역을 시작한다. 룻다에서는 애니아라는 중풍병자을 고쳐 주고(32~34절), 욥바에서는 선행을 많이 한 도르가라는 여인을 다시 살리기도 했다(36~40절). 당시 베드로는 이미 율법의 경계들이 복음 안에서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은 듯하다. 욥바에서 시몬이라는 무두장이 집에 묵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죽은 짐승의 가죽을 만지는 일은 부정하게 여겨졌는데, 베드로가 이를 개의치 않고 그 집에 머문 것이다(43절).


빌립과 베드로의 복음 전도


심판의 날

[사도행전 17장 30절~31절]
30절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절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

11절 -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절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절 -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절 -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절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성경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날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던 날도 위대한 날이며, 처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여 에덴 동산에 있게 한 날도 위대한 날이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쫓겨나던 날이나, 홍수로 한 가족만 남기고 심판하여 멸망시키던 날도 가장 슬프고 큰 날입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던 날도 위대한 날이며,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도 위대한 날입니다. 또한 사망 권세를 벗어버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시던 날도 위대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던 날도 더욱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위대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더욱 크고 위대한 날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날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판의 날에 가서야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결정되는 줄로 믿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의 영원한 운명은 우리 생애 속에서 결정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심판에서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그 업적에 따라 상급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한 정도에 따라 상급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백 보좌의 심판은 잃어버린 영혼들만을 위한 심판입니다. 그때에도 그들이 행위에 따라 영원한 형벌이 결정됩니다. 그리고나서 그리스도를 거절한 이유 때문에 영원한 고통을 받기 위해 지옥으로 던지워집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심판의 날이 가장 기쁘고 놀라운 날이 될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이 가장 두렵고 떨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나 영원히 고통받는 일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심판 날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심판
우리는 확실히 정죄를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지만 그러나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정죄를 결코 받지 않는 것입니다.
정죄는 그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그 날에 지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함이라"(롬 8:1-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날에 정죄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10년형을 받고 감옥에서 매일 중노동을 하며 열심히 봉사의 생활을 하여 그 형량인 10년을 다 채웠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나라는 더 이상 그를 붙들어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죄의 값을 다 치루었기 때문입니다. 옳습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정죄의 법이 더 이상 우리를 붙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진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고, 죽을 때에도 그를 신뢰할 것이고, 심판의 날에도 그를 신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죄에서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 3:18절에 말씀하시기를, "저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교도소에 비교해 본다면 교도소 안에는 사형집행 당하는 사람도 볼 수 있고, 사형선고가 내려져서 집행 날짜만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인은 정죄 아래있는 사람으로서 이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선고가 집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면 그 정죄로부터 피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미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심판의 날은 상급을 받는 날입니다.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것 때문에 세계가 떠들썩하고 온 국민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을 받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올림픽의 금메달에 비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충분한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이나, 물질이나 봉사의 제일 좋은 것을 드려야 할 때, 과연 그렇게 했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핑계가 있겠지만 그런 핑계들은 그때 가서는 아무 소용도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판의 날에 상급을 기대하신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으로 예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운동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은 심판의 날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고전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여러 가지를 봅니다. 또 귀로는 아름다운 음악소리, 신기한 목소리도 듣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가 결코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달콤한 꿈을 가져본다고 해도 장차 예수님을 만나 그가 주시는 상급을 받을 때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2.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심판
그날은 하나님을 불신한 자들이 크고 흰 보좌 앞에 끌려나와 와서, 그가 평생에 행한 악한 행실에 대해서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그리고나서 형벌의 정도가 정해진 다음에 영원한 지옥으로 깊이 깊이 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그 지옥의 공포와 영원의 길이를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아틀란타(Atlanta)시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거대한 동산에 올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반마일 높이가 되고, 밑의 둘레가 8마일 정도 됩니다. 그 산은 세상에서 신비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돌산입니다. 이 산으로 영원의 길이를 설명한다면, 가령 새 한 마리가 100년에 한번씩 날아와서 그 산 꼭대기를 부리로 쪼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세기에 한번씩 입으로 쪼아서 그 돌산이 밑에까지 달아지도록 쫏는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영원은 이것 가지고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사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살다가 종말에 가서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간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 사람입니까?
여러분!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그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영원의 달력에 표시해 놓고 계시며, 하나님의 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무서운 시간을 행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대 앞에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상태로 살던 사람들 즉 젊은이나 늙은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다 모여들게 됩니다. 무덤들이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바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놓고, 사막도 모래 속에 묻힌 자들을 내어놓게 됩니다. 세상에서 왕노릇 하던 자나, 한 세대에 권세를 누렸던 사람들도 다 그 앞에 서게 됩니다. 세상의 갈채를 다 받았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으면 반드시 그곳에 서게 됩니다.
거듭 강조하자면 어떤 사람이었든지 상관없이 당신의 생애 속에 예수님을 몰아낸 삶을 살았다면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 서서 자신에게 내려질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판을 피해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계 6:15-17절에 기록한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해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하신 말씀대로 피하고자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피할 수가 없습니다. 바위나 산들도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시는 이의 눈으로부터 죄인들을 숨겨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 정해져 있듯이 그 심판주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성경은 그 심판주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예수님이 부드럽고 사랑이 많으신 구세주가 되시지만, 그날에는 그의 위대한 사랑이 주님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큰 진노로 변하여 나타나시게 됩니다.
한 예로 어떤 여자가 목사님을 찾아와 상담한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그 여자는 남편을 너무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남편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별별 것을 다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그 남자가 아내에게서 등을 돌리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답니다. 상담을 하면서도 그 여자는 증오심이 복받쳐 올라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하기를 "그 남자가 지금 여기 있다면 이 두 주먹으로 때려 죽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녀의 진한 사랑이 강한 진노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자가 남편을 사랑한 것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대신 죽어 주셨고, 새 생명을 주셨고, 구원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구세주를 거절한다면 그날에 그의 사랑이 무서운 진노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일생이 죄악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심판대 앞에 서겠습니까? 오직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을 때에만, 그분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의 진노에서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3. 심판 후에 일어날 일들
하나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다 받은 후에 크리스챤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끝없는 기쁨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단과 죄는 더 이상 우리 성도들을 괴롭히지 못합니다. 천국에서 예수님과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지워집니다.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주님의 손가락이 지옥을 가리키게 됩니다. 내게로 와서 구원받으라고 하던 주님의 목소리는 '나를 떠나가라, 내가 결코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게 됩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쏟아 부었던 사랑은 무서운 진노로 바뀌어 그에게 쏟아 부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보는 여러분은 한 분도 지옥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구라도 멸망 받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팔은 당신을 구원하시려고 넓고 펴고 계십니다.
한 소년이 집을 나가 어느 도시로 갔습니다. 그 소년은 금세 죄악에 빠졌습니다. 어머니한테 연락도 끊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아들이 궁금하여 아들을 찾으려고 그 도시로 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아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헤매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게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실려가서 죽기 몇 분 전에 간호원을 불러 귀에 대고 아주 작은 말로 '당신이 내 아들을 만나거든, 너를 포기하지 않는 두분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하나님과 엄마는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의 부모도 나를 포기하지 않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당신을 버리지 않고 사랑하시며 구원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부르심에 지금 응답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 아멘 -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려면

[사도행전 6장 7절]
7절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사도행전 12장 24절]

24절 -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사도행전 19장 20절]

20절 -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본문 말씀은 이곳 저곳에서 복음이 더 넓고 힘있게 확산되어 갔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갔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성장은 오늘 우리 성도들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까?
그러면 이러한 성장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에는 이렇게 말씀이 흥왕하여 간 사실이 네 차례나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사실들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간 첫 번째 기사는 사도행전 2장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약속하셨던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자들에게 성령충만함이 임했고, 이렇게 성령충만함을 입은 자들이 그 성령을 힘입어 말씀을 전함으로써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친히 역사를 이루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요 15:26 ; 행 1:8)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한 모습으로 바르게 흥왕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먼저 기도에 힘씀으로써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행 10:44-46)

2.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한 것은 사도행전 19:20절의 경우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마술사 조차도 복음아래 굴복했을 때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갖다가 올려놓아도 병자가 벌떡 일어나는 능력을 말합니다.(행 19:11, 12)
하지만 성도 여러분, 과연 이런 것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수많은 은사와 권능을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은사와 직분을 나열한 후에 고전 12:31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면서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을 제일 좋은 은사로 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 줄 아십니까? 사랑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들의 영혼을 사망의 길에서 돌이키게 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해 갈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간 역사는 사도행전 12장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즉 복음전파의 훼방자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중간에서 도적질한 헤롯이 죽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교회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안에 만일 교만하여 자신의 자랑만 늘어놓은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교회가 말씀으로 견고히 설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 상황에서 교인들이 일치 단결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자신을 돌아봅시다. 혹 자신이 헤롯과 같이 응당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중간에서 도적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행로는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복음 전파의 훼방자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반드시 치셔서 꺾으시며, 그러한 사람이 사라질 때 진정 교회는 성장할 것입니다.

4.교회 안의 문제를 자체 내에서 슬기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흥왕하여 간 또 하나의 기사는 사도행전 6:1-7절에 나타납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구제의 문제로 인해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서로 대립할 상황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교회가 오히려 일치단결하게되어 교회 성장의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론 사단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교회를 와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것은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의 내분을 주님 안에서 슬기롭게 해결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여 주님의 뜻을 따라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합시다. 성도들 중에는 지극히 작은 문제도 감정 대립으로 몰고 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평화의 사도로 부름 받은 자로서(마 5:9 ; 롬 12:18),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결코 합당치 않은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 4: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노력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와 능력으로 흥왕해 갑니다. 다만 우리는 이 말씀이 더욱 흥왕해 가도록 옆에서 조력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조력할 수 있습니까? 첫째,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 그 가운데서도 사랑의 능력을 이 세상에 나타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모든 불신앙의 행위와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가로막지 않도록 교회 안의 분열을 슬기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귀한 역사에 동참하는 영광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늘 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아멘 -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것

[사도행전 5장 33절~42절]
33절 -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절 -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절 -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절 -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절 -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절 -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절 -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절 -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절 -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절 -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으로부터 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부터 나는 사상은 일시적으로는 힘이 있고 따르는 자가 많은 것 같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순간적으로 그 힘이 미비해 보일지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유대인의 교법사 가말리엘이 한 말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1. 성도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롬 8:35절을 보십시오. 바울 사도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는 말로 시작해서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고 그 능력도 대단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시험하고 끝내는 십자가에 매달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사단이라 할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에서 성도를 끊어내는 일입니다. 세상의 어떤 절단기, 쇠톱, 전자톱을 가져와도 이 끈만은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단의 유혹에 빠져 어떤 죄를 범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변함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끝내 우리가 돌이켜 의의 자리에 이르기를 기다리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기쁨 가운데, 평안 가운데 신앙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극진한 사랑 가운데 살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故) 박윤선 목사님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줄 어떻게 아는가?'라고 물으면 '성경 자체가 그렇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라 하셨습니다.
성경은 약 40여명의 기자들이 1500여년에 걸쳐 기록한 말씀으로 앞뒤에 모순이 없고 또한 그 모든 말씀대로 성취되어 왔고, 성취되고 있고, 또한 성취될 것입니다. 이 정확 무오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었습니다. 즉 요 5:24절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대로 믿음으로 수많은 자들이 영생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악한 사단은 성경을 없애고 그 진리의 말씀을 가리우기 위해 발버둥을 쳐왔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디오클레시안 황제를 동원해 모든 성경을 압수하여 교회와 함께 불태우고 <기독교 박멸 성공 기념비>까지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결국 로마는 기독교화 되었고, 현재 온 세상은 복음의 물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한 진리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벧전 1:24, 25절의 말씀과 같이 인간의 육체는 들의 풀과 같이 마르고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 무궁토록 영원합니다.

3. 교회입니다.
행 5:11절에 보면 최초로 '교회'란 말이 등장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그때 이래로 계속해서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단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음부의 권세가 결코 교회를 이긴 적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마 16:18절에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요 2:16). 누가 영원하신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거처를 파괴하고 그의 자녀들을 멸절시키겠습니까?
또 교회는 제2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골 1:24).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의 몸인 이 교회를 누가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며 끝까지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세상의 위협이나 내적인 시련으로 흔들릴지라도 결코 무너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항상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시고 온전히 섬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습니다. 인생도 유한하고 세상 권력도 유한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나는 것은 모두 유한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은 결코 유한하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교회 이것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힘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영원한 힘과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의지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


[사도행전 10장 18절]

18절 -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사도행전 10장 44절~48절]

44절 -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절 -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절 -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절 -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절 -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친히 조직과 제도를 만드셨는데 그 중에는 교회와 가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이 그토록 귀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단 마귀는 이 가운데 침입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파괴와 멸망을 획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사단이 침입하여 하와를 넘어뜨리고 그 가정을 파괴하고야 말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귀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모범되고 복된 가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요, 군인 장교로서 신앙 생활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택한 자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한 신앙인이었고 인간 앞에서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남을 많이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늘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하던 중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음성을 들려주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늘에 상달했으니 하나님의 기록하신 바가 되었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욥바로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모셔다가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부를 듣자 고넬료는 종들 중에 경건한 사람을 택하여 베드로가 있는 욥바로 보냈습니다.
마침 그때에 베드로도 기도 시간이 되어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환상이 보였습니다. 큰 보자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히 쌓였는데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명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는데 지금까지 그는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을 개나 돼지처럼 부정하게 생각해 왔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된 사상을 깨뜨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뜻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고넬료가 보낸 하인 두사람이 도착하여 베드로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인들은 고넬료가 시키는 대로 말하여 베드로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베드로에게 이야기를 한 후에 베드로 앞에 엎드려 절까지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일들을 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심을 믿고 고넬료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순간 온 가족이 성령 받고 방언도 하고 은사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가정이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도 틀림없이 고넬료의 가정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란 어떤 가정인가를 몇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입니다.
행 10: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은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인 것입니다. 남편은 믿음의 생활을 잘 하는데 아내가 안 믿는다든지, 반대로 아내는 잘 믿는데 남편이 안 믿는다든지, 부모는 믿는데 자녀들은 안 믿는다든지, 자녀는 믿는데 부모가 안 믿는다든지 하면 그것은 영적으로 반신불수와 같은 가정입니다.
또 종교를 가져도 남편은 기독교를 부인은 불교를, 또 부모는 개신교를 자녀들은 천주교를 믿는다면 그것도 불행인 것입니다. 온 가족이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주님을 그 집의 호주로 모시는 가정은 반석 위에 세운 가정이 되고 복된 가정이 됨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식구들 중에서 먼저 믿은 여러분들이 똑바로 믿고 바른 행실로 본을 보이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 가정은 언젠가는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도저히 믿을 것 같지 않아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였으니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도 그 온 가정이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방주에 들어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 앞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맹세를 했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이 찾아갔을 때 그와 온 집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옥에 갇혀 있던 바울을 지키던 간수도 자살하려다 바울을 통해 예수를 믿고 온 식구가 구원을 받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가정에서 어느 몇 사람만 구원받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저희 가정도 원래는 어머님이 혼자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많은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신 덕분에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아들 4형제는 다 목사까지 되는 축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으신 것을 믿고 낙심치 말고 기도하며 모범된 생활을 하여 온 가정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때에 재산이나 인물이나 외적인 조건만을 보려 하지말고 상대방의 속에 믿음이 있는가를 바로 보고 결혼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생활을 해도 출발부터 교회에서 시작하고 아기를 낳아도 제일 먼저 하나님 성전에 나와 주의 종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도록 하고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지도해야 됩니다.
겔 11:19, 20절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내가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하면서 베드로를 모셔다 놓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또 얼마나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리고 말씀을 잘 들었던지 말씀을 듣는 순간에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말씀을 잘 깨달아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많은 은혜와 축복이 있게 되고 성령의 체험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제단 예배를 통하여 복을 받기 때문에 예배 생활을 게을리하면 모든 것에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고넬료의 가정도 제단을 잘 쌓아서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도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먼저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 4:23절이하에 보면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제사를 무시하다가 목이 부러져 죽었고 그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도 제사를 경홀히 여기고 제사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건만 성전 안에서 음란한 행위만 하다가 전쟁터에 나가 죽었고 하나님의 법궤마저도 빼앗겼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 드리는 일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신자들을 보면 자녀들이 학교에 안가거나 과외수업 한번 빠지면 큰 일이 나는 줄 알고 있지만 예배에 한두 번 빠지는 것 쯤은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에 저희 어머님은 그 날에 가정예배를 못드리면 금식을 하시는 것을 여러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은 안하셨어도 예수 잘 믿으라는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있는 고넬료의 가정은 예배를 중시함과 동시에 주의 종도 존경하고 귀중히 여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 장교로서 지위와 권세도 있는 사람이었으나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어부였던 베드로를 그는 매우 존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33절에 보면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주의 종을 환영했고 주의 종에게 순종했고 주의 종 앞에 있는 것을 마치 하나님 앞에 있는 것 같이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며 주의 종을 존경하고 잘 섬겨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이 충만한 가정입니다.
본문에 보면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경건한 종들과 상의하여 일을 한 것을 보면 그 가정은 사랑이 넘친 가정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이 있는 가정이어야 진정 하나님이 만든 가정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경제적으로 복받을 수 있도록 신앙생활을 잘 해서 남을 구제도 할 수 있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가정에 충실하고 남에게 본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있는 가정이 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도록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가지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이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가정임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복된 가정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인도 아래서 시작도 하고 진행도 하고 끝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니님을 바로 믿고 두려워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데서 참 경건도 나오고 죄도 안짓게 되고 따라서 순종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려면 제일 첫자리는 하나님에게 드리고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는데 있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은 저절로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가정임을 깨닫고 고넬료의 가정과 같이 되기 위하여 힘써 노력하시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제목 : 오순절의 성령 (피종진 목사님)

[사도행전 2장 1절~4절]
1절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절 -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절 -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절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할렐루야!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한 해 한 해 거듭될수록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해지고 기근, 지진, 전쟁 또는 여러 가지 어두움의 권세와 사탄의 악령들이 최후로 발악하는 상황들이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의 신앙에 강한 무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특별히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대로 말세에는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욜 2:28~32)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할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신약시대의 마가다락방에서 오순절에 불같은 성령이 임하여 오늘 이 땅에 신약교회가 세워졌고, 우리 또한 복음의 반열에 세워진 것입니다.
오순절이란 유월절 지난 후 50일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이 날은 유대교의 농번기의 가장 절정적인 축제일인 동시에 또 모세가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은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날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과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원수, 마귀, 환난 풍파도 이길 수 있게 되고, 거칠고 험악한 광야의 길은 에덴동산처럼, 고센 땅, 가나안 땅처럼 산림으로 우거진 땅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는 평화, 축복, 소망, 영광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오순절의 성령이 어떻게 임하였는지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첫째,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4)고 말씀합니다. 이는 감람원으로부터 마가다락방으로 모여 열 둘 제자 뿐만 아니라 백이십명의 성도가 함께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이 강하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고, 이적과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자세만 취해도 영이 새롭게 됨을 누구든지 체험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최우선 순이고, 기도는 최선의 방법이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채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아멘.
세계 유명한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락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전 민족보다 더 강하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는 한 민족을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마틴 루터는 “단 하루라도 기도를 소홀히 하는 날은 신앙의 정열을 잃게 되는 날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앞에 놓고 하루 4시간씩 기도를 했습니다. 그의 친구 멜랑히톤이 루터의 얼굴을 보고 천사같다고 감탄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생활은 응답받는 큰 축복입니다. 승리한 사람들의 간증을 보면 그들의 생활 속에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서 해결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신령한 능력까지 부어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이 세상의 만남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누구든지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한 장로교 창시자 존 칼빈은 “나는 하루 3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는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기도는 어두움의 권세 마귀를 물리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기도의 역사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아멘.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듯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의지가 약하고 환경이 열악하고, 힘들 때 “주여 나를 잡아주소서”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면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새롭게 지음을 받아 크게 쓰임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셨습니다.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라고 베드로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즉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보다 똑똑하고, 의롭고, 선하고, 언변이나 순발력이 뛰어나서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정결함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축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생명 떠난 송장”과 같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시므로 그리스도인으로써 생기를 발할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죽은 나무는 싹이 나지 않고 꽃이 피지 못하므로 열매가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 아멘.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생명의 성령이 거하시므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동안 종살이를 하며 불신앙의 마귀와 우상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불신앙의 세계에서 신앙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마라의 쓴 물(출15장), 르비딤 반석의 생수(출17장), 아말렉과 전쟁(출17장),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출32장), 하나님을 향한 끝없는 불평과 원망으로 만든 불뱀사건(민21장)등 결코 쉽지 않는 여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끝없는 은혜였습니다. 마지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수 3:5)고 성결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날마다 회개를 통하여 거룩하고 깨끗함을 입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회개는 성령을 받는 관문입니다.
‘회개’란 메타노이아(헬)로 ‘돌아선다, 회복한다’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태로부터 죄중에 태어났으므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고 말씀하시면서 이방인 누구든지 회개를 통하여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사로잡힘 받아서 귀하게 쓰임 받길 축원합니다.

셋째, 생명과 능력으로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에스겔 37장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환상 가운데 깊은 골짜기의 지면에 마른 뼈가 가득 차 있는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생명의 성령이 없음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묻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그러자 에스겔은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겔 37:3) 이에 하나님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방법으로 살릴 길이 없지만, 하나님의 영과 생기가 들어가니 마른 뼈들이 소생되고, 이 뼈, 저 뼈가 맞아 서로 연결되어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여 살아 일어나 마침내 큰 군대가 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해골 뼈와 같습니다. 소망과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면 쓸모없는 사람도, 송장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십자가 군병이 되어 크게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해야 합니다.
디엘 무디는 ‘성령의 불이 임했을 때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이 가슴 속에 임했다’고 간증을 했고, 찰스피니는 ‘천둥이 치는 것같이 천지가 움직이는 체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가슴이 숯불에 데인 것 같이 뜨거워지고, 가슴에 구원의 확신과 평강이 넘친 이 기쁨을 어느 곳에서 체험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와 체험을 경험하셨습니까? 간증이 있습니까? 우리도 체험하고, 간증하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체험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귀한 것인 줄 알게 되고 근심이나 걱정, 불안과 공포, 교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기쁨과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고 소망이 보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시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꿔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기도에 힘쓰며, 회개를 통하여 깨끗함을 입고, 하나님의 생기가 가득 찬 생명과 능력으로 쓰임 받으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순종과 성령충만

[사도행전 5장 32절]
32절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모든 크리스찬들이 예수님의 최후의 분부대로 다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네가지 비결이 있는데 첫째가 순종하는 것이고(행 5:32), 둘째가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하고(눅 11:13), 셋째는 갈급히 사모해야 하고(사 44:3), 넷째는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야 한다고(행 2:38) 말씀했습니다.
성령론의 권위자인 토레이(K. A. Torrey) 박사는 성령충만함에 대한 일곱가지 과정을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할 것, 회개하고 죄를 버릴 것,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를 버렸다는 것을 공중 앞에서 고백하고 세례를 받을 것, 순종할 것 즉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항복하며 무엇이나 명령에 따를 것, 거룩한 욕망으로 갈급히 사모할 것, 명확하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것, 성령께서 한 약속을 믿고 또 이루어 주실 것을 확고히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순종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뜻과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것일까요?

1. 영혼 구원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첫째가는 순종은 하나님의 영혼 구원 계획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행 5:32절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전도하지 않고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은 어쩌다 성령충만을 받는다 해도 얼마 안가 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전도)은 크리스찬의 확실한 최고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마 28:19, 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지상명령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찬들에게 동일하게 주신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눅 24:47, 48절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행 1:8절에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겠다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만족만을 얻기 위함이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오직 하나,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도 지옥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들이 춤을 추며 기뻐하는 것도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부름받은 목적도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혼구원에 무관심하고 기존 크리스찬들에게만 설교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목적도 멸망할 영혼 구원을 위해 세운 것이지, 정치 운동이나 구제 사업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고전 12:28절에 보면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다 영혼 구원과 관계된 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을 위해 마음의 부담도 없고, 눈물도, 희생도 없다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도 없고 받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의미한 것입니다.
순종하는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명령, 즉 영혼 구원을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앞에 두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하는 사람이 되기 원하면서도 이를 위해 희생도 헌신도 하지 않고, 그것을 생활의 첫 자리에 두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같은 사람은 약 1:8절 말씀과 같이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영혼 구원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병원을 세우거나 학교를 세우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예배당만 잘 짓고 장식하기 위해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요 6:38-40절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간구하는 것도 영혼 구원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2.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영혼 구원에 힘쓰므로 순종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고 의로운 생활에 힘쓰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영혼 구원에 힘쓰는 사람도 매일의 생활에서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의로운 생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고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순종이란 율법의 의문이 아닙니다. 술, 담배하지 않고 남보기에 착하게 산다고 다 성령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영혼 구원보다 정치 참여나 사회 개혁 등의 활동을 더 중요시 하는 크리스찬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마치 의로운 생활이나 선행을 가르치는 것인 줄로 아는 사람이 많고, 교회 헌금은 자선 사업이나 사회 개량을 위해 써야 되는 줄 아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어느 등대지기가 등대의 불빛을 밝혀서 지나가는 선박들의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써 선박의 파선을 막아주고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느날 밤 공부하다가 석유가 떨어졌다고 애원하는 학생에게 석유를 퍼주고 날씨가 추워서 얼어 죽게 되었다고 사정하는 사람에게 퍼주고 해서, 석유가 떨어져 등대의 빛을 비추지 못하여 여러 척의 선박이 암초에 부딪쳐 가라앉으면서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고 합시다.
정부에서 그 사람을 체포해다가 심문할 때 착한 일을 위해서 석유를 사용했다고 그 사람을 용서해 줄까요? 결코 용서 못합니다.
우리 교회의 사명도 지옥갈 영혼 구원하는 데 최선을 다 해야지, 그 힘을 다른 데 허비하면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영혼 구원과 관계된 일에 우선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영혼 구원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의 최고 본질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모든 교회와 크리스찬들은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위해 성령의 능력으로 불타 올라야 합니다.
복음을 빨리빨리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떡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공급하려는 마음은 없이 자기들만 말씀을 깊이 연구한다고 기뻐하고 자만한다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위선적인 크리스찬이 되기 쉽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영혼 구원하라는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생활의 깊은 변화를 가르치면서도 영혼 구원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불순종입니다.
아무리 성별된 생활을 하고 헌신적인 생활을 해도, 영혼 구원에 무관심하거나 힘쓰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 경건이나 성경 지식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뜻은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능력있는 증인이 되기 위하여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 구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키 위하여 성령충만을 간절히 구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능력있는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하여 성령충만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뜨겁게 부르짖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대한 성도의 바른태도

[사도행전 4장 17절~21절]
17절 -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절 -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절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절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절 -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요한일서 2장 15절~17절]
15절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절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절 -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세상' 안에서 살고 있고, 또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사랑이 감도는 가정과 다정한 이웃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매우 감사하며 기쁘게 삽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 우리 생활은 악하고 각박한 세상에 대한 염증과 두려움과 짜증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힘들다고들 합니다.
더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악한 세상이 성도들을 위협하고 위축시키기에 성도들의 세상에서의 삶은 더욱 힘겹습니다. 또한 본문의 말씀은 악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까지 합니다.                                                                                                                         
따라서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현실적인 경험과 이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성경 구절로 인하여 될 수 있는대로 이 세상의 일들과 멀리 하는 것만이 좋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이 세상에 대한 성도들의 참으로 바른 성경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이제부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도의 바른 태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에서 도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이 죄로 찌들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인류 가운데 범죄치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로마서 3:10절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인들이 만든 타락한 문화가 오늘 우리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폭력, 횡령, 사기, 살인, 성적인 타락 등의 온갖 죄악이 이 사회를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공중 권세자가 사단이니 오죽하겠습니까(엡 2:2)?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 성도들은 이러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공생에 마지막 한 주간, 즉 고난 주간 중에 남기셨던 기도를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7:15절과 17:18절에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하셨습니다.
실로 우리들의 주변 환경이 많은 죄악으로 가득차서 때때로 그것에 유혹을 받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죄에 물들지 않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수도원이나 깊은 산속에서 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고 그곳에서 당신의 의로우신 뜻을 수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의로운 사명을 실현해야 할 장소는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이 세상이며, 죄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악한 도시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을 결코 해서는 안되며 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2. 세상에 동화되어서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짝하여 살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칩니다(고전 1:2). 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 6:14절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과 결코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비록 우리의 몸이 이 세상에 속하여 있고 또 우리의 사역의 현장이 이 세상이라 할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결코 이 세상에 동화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동화될 때 세상의 죄악에 물들게 되고 결국은 불신자들과 동일한 멸망의 자리에 떨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천국 본향을 향해 잠시 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이에 베드로전서 1:17절에서는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요한일서 2:16절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지 말라는 것도 발은 이 땅에 딛고 섰으나 그것에 안주하거나 그 속에 빠져 살지 말고 오직 눈을 위를 향해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교훈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골 3:1). 

3. 세상을 변화시키는 개혁자가 됩시다.
하나님이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온 세상의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빌 2:10-11). 사도행전 1:8절에 보면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에도 그의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지상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않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지 않고 더욱 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끝까지 주의 복음이 전파되고 또 우리의 삶의 각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의로운 개혁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들만을 추구하며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으로 변화시켜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백성들이 날로 증가하게 되며 이에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주의 복음과 사랑으로 변화시키라고 주님의 파송을 받은 주의 사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매일의 삶이 그러한 개혁의 사명을 수행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우리가 마냥 피하여야 할 대상도, 동화되어 함께 어울려야 할 대상도,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어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비록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대한  위대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당신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는 자들이 더 많아지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세상에 동화될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주의 뜻을 받들어 이 세상 구석 구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실현되도록 힘쓰는 개혁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아 멘 -

제목 : 은혜받은 초대교회 (피종진 목사님)

[사도행전 2장 42절~47절]
42절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절 -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절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절 -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절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에 임하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무거운 멍에가 벗겨지고, 마음에 괴로움과 고통이 사라지고 강건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세상적인 것, 죄악된 것, 어두운 것, 악한 것 등은 마귀가 기뻐하는 것이므로 육에 관한 것은 생각할수록 점점 고통과 불안이 엄습해 오고, 슬픔과 괴로움이 찾아와 마침내 자포자기 상태로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가면 마음에 기쁨이 가득 채워져서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은혜 받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기 이전까지 많은 성도와 제자들은 절망과 좌절 속에 뿔뿔이 흩어졌고, 베드로는 버렸던 그물을 다시 수선해서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과 제자들은 참으로 처참하고 비참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십 일 동안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고, 또한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고 말씀하셨으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오순절 날이 이르러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승리자가 되었고,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구원의 역사를 일으켰으며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상고하면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된 모습이 바로 여러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지길 축원합니다.

첫째, 전혀 기도하기를 힘쓰며 성령 충만으로 무장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2) 여기에 ‘오로지’는 ‘전혀’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신앙의 방법이나 신앙생활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의식이 있지만 기도 이상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영적 생활에도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게 되고 신앙이 견고히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항상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과 교통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응답받게도 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대상으로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영적인 축복으로 여러분의 삶에 길이 열리고 생활에 아름다움이 있어 행복하게 됩니다.
이에 삶의 생활의 원칙이 있습니다. ①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고 쉽게 살아가라. ② 안 되는 일을 생각하지 말고 되는 일부터 즐겁게 하라. ③ 사건보다 해석을 더 중요시하라. ④ 행복도 습관이다 부지런히 연습하라 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을 활용할 줄 알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 42:5) 아멘.
이처럼 다윗도 낙심하고 어려운 시험이 많아 좌절 속에 있을 때, 자신에게 책망하며 권고를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모두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성령이 없으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다음 뿔뿔이 흩어짐을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게 하고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령을 받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가 첫 번째 세워지게 된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영원히 변치않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성령 충만할 때 바로 교회가 살아나고 개인의 신앙이 거성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 곧 지도자로 쓰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 아멘.
성도들과 제자들은 기도하기 위해 감람산으로부터 내려와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가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다 오순절을 맞이하여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들은 성령 받을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 기도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확장되어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어졌지만 너희들이 기도할 때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 1:5) 그리고 오직 이 성령이 임할 때 능력을 받는다 (행 1:8)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아무리 지력이나 체력, 권력등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귀신이 쫓겨나가는 일도 없고, 신유의 기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할 때는 눈빛만 봐도 마귀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는 생각이 달라지고, 가슴에 와 닿는 비전이 달라집니다. 어떤 좋은 명언이나 문학을 통해서는 사람의 영혼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할 때는 변화가 일어나 눈물을 흘리게 되고, 회개가 일어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사람의 악한 것을 선하게 만들어주고, 또 불안 심리를 평안하게 만들어주고, 강퍅한 마음도 부드럽게 해주고, 미움과 시기, 질투도 인자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기도하기를 힘쓰며 성령으로 충만하길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은 험악해지고 강퍅해져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우리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므로 절대로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신 성령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둘째, 전도하기를 힘쓰며 교회를 세워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초대교회 은혜받은 성도의 가장 큰 일은 바로 전도하면서 교회를 세워 부흥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은혜받은 자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움이 듭니다. 시대를 탓하며 전도를 안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행 6:3,4) 아멘.
제자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을 세우고 나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쓰므로 초대교회가 살아났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행 11:24) 아멘.
바나바처럼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 연결이 되고,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되고, 착한 행실로 구제하게 되고, 선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온 교회가 한 가족이었고,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와같이 교회를 중심으로 삶을 살게 되면 교회는 생명력이 넘치며 부흥의 길로 전진하게 됩니다.

셋째,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열되면 안됩니다. 함께 모여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서로 당을 짓는 것입니다. 제일 기뻐하는 것은 연합하여 더불어 사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함께 공동체로서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서 서로 비교하여 판단하는 기준이 없어지고 열등감이나 우월의식이 없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구제하기를 힘써서 나눔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요한, 바울과 디모데가 동반사역을 하였을 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에 각각 기능을 주어 연합하게 하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각자 부어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를 가지고 서로 돕고 함께 사역하므로 성전의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점점 빈곤해져 가는 마음을 해결할 방법은 나눔으로 이웃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6.47) 아멘.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가 은혜받은 이후에 저들은 전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의 생활을 지속하였고 열심히 전도하며 교회를 세우며 부흥시켰고 한 마음으로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면서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귀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이어지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선교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 1절~7절]
1절 -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절 -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절 -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4절 -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절 -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절 -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7절 -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본문은 바나바와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선교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고니온에서도 많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유대인들의 강력한 박해와 핍박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도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까지 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와 바울은 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선교 사역에 힘을 쏟아 더욱 많은 결실을 얻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선교 사역에 헌신하는 바나바와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 선교 사역에 헌신코자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하여 이제 우리가 어떻게 선교 사역에 임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1. 협력하여 선교해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름다운 합창이란 어떤 합창입니까? 각 파트의 화음이 잘 어우러진 합창 아닙니까? 이러한 합창에는 연합된 음성들의 조화미와 일치미가 있습니다. 듣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즐거움을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합창을 하기까지는 직접 노래하는 자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정확한 음정을 내면서도 소리가 너무 작거나 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너무 커도, 너무 적어도 화음에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선교 역시 이와 같은 자세가 요구됩니다. 선교 사역도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절제의 미덕을 함께 갖추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각 성가대원에게 서로 다른 음성을 주신 것처럼, 선교를 위한 복음 전도자들에게도 서로 다른 재질과 은사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전 12:4절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고로 그러한 여러가지 서로 다른 은사와 재질을 받은 복음 사역자들이 서로 모여 선교하면 더욱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과 바나바를 보면 바울은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은사를, 바나바는 회심한 신자들을 잘 양육시키는 은사를 갖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들은 서로 협력하여 각기 은사대로 사역함으로 더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본받아, 우리 역시 선교하는 일에 있어 자기 은사만을 자랑하고 교만하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돕고 화합하는 자들이 됩시다.

2. 인내로써 선교해야 합니다.
'인내는 성공자와 승리자의 표상(表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순간의 고통을 오래 참고 인내하는 자만이 좋은 결실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눅 8:15절에서 인내가 있어야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히 12:2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친히 쓰디 쓴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하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고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자연의 이치도 그렇습니다. 논밭의 많은 농산물도 세찬 비바람을 겪은 후에야 열매를 맺게 됩니다. 특히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 사역에 있어서 쓰디쓴 고통과 아픔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감내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본문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선교할 때,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그들에게 악한 감정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험악하고 위협적인 상황에서까지도 그들은 인내하며 오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선교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갈 6:9절에 보면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3. 주를 힘입어 선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주를 힘입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연약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인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복음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협력할 수 있습니까? 능치 못함이 없게 도우시는 주를 의지함으로써 입니다. 협력도 잘 하고 꿋꿋히 인내할지라도 일을 이루시는 분인 주를 힘입지 못하면 그 사역은 실패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3:6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모두 거두어 들입시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능력만을 기대하고 겸손히 주께 엎드립시다. 스펄젼도 무디도 요한 웨슬레도 휫필드도 오직 주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 몸부림 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도 오직 주를 힘입어 선교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반드시 풍성한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주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나바와 바울은 이고니온 선교 사역에서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서로 협력했습니다. 둘째, 악감정을 가진 유대인들의 핍박을 인내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직 주의 능력을 힘입어 선교했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 모두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고, 고난을 인내하며, 주님의 능력을 힘입는 복음 전도자들이 됩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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