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에게 배우는 신앙인의 올바른 자각

[사도행전 9장 19절~43절]
19절 -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절 -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절 -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절 -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절 -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절 -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절 -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절 -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절 -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절 -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절 -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절 -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절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32절 -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절 -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절 -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절 -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절 -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절 -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절 -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절 -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절 -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절 -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절 -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절 -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에베소서 4장 1절~16절]
1절 -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절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절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절 -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절 -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절 -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절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절 -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절 -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절 -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절 -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절 -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절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절 -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절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절 -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사도행전 9장은 그리스도인들의 핍박에 앞장섰던 유대교의 패기만만한 젊은 지도자 사울의 회심과, 기독교의 핵심적인 지도자 베드로의 왕성한 활동을 대비하여 보여 줍니다. 아울러 그 모든 배후에 예수께서 계심을 부각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서는 자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강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 가운데서도 본문은 베드로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요 초대 교회의 수석 사도답게 베드로는 예루살렘 전도에 만족하지 않고 온 유대지역을 순회하며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고, 병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사역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 또한 성도로서 스스로의 위치와 사역을 어떻게 자각하고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어떤 자로 자각해야 할까요?


1. 우리는 복음의 전달자입니다.

본문 중 행 9:31,32절 말씀을 보십시오. 교회에 대한 박해가 잠시 주춤해지고 온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평안해지자 베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순회 전도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교회가 평안한 가운데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그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복음 전파의 영역을 확대해 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조금 성장하고 또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현실에 안주하는 목회자, 평신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성도에게 이러한 마음 자세는 절대 금물임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마 28:19,20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혹은 약간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시름인들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 성도들 모두 자신이 복음 전달자임을 새롭게 자각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이웃에게, 더 나아가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충성된 증인이 됩시다.


2. 우리는 능력의 도구입니다.

행 9:34절을 보면 베드로는 룻다에 사는 중풍병자 애니아에게 이렇게 명했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곧 베드로는 애니아를 일으키는데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자신은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의 도구로써 낮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비록 아무리 많은 신앙의 공적을 쌓고 전도를 하고 봉사를 했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자들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분열되어 가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울은 고전 3:5절에서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인데, 왜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갑니까? 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넘어집니까? 이제 본문의 베드로를 통해서 다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는 도구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하나님만을 높입시다.


3. 우리는 기도의 사명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행 9:40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욥바의 과부들이 선행과 구제가 많았던 다비다의 시신을 앞에 두고 자신을 초청했을 때, 급히 찾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죽은 다비다를 되살렸습니다. 이러한 다비다의 소생 이적은 온 욥바 사람들이 듣고 많이 주를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베드로는 욥바의 과부들이 자신을 초청했을 때, 매우 두렵고 곤욕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역사를 사람들이 기대하고 자신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자리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기도하고 다비다를 살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곤욕스런 경우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그 자리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요 15:7절에서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가 기도의 힘만을 믿고 무모한 일을 자청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을 걷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경우라면 주님을 믿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일 5:14절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의 사명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베드로는 복음의 전달자요,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요, 기도의 사명자로서 그 유감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모습을 통해 자신이 성도로서 갖춰야 할 올바른 모습을 깨닫고 항상 사명감에 불타는 살아 움직이는 복음 전도자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봉사와 사랑의 겸허한 도구로서, 또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잊지 않는 기도의 사명자로서 살아갑시다.

베드로는 신앙의 위인이라기 보다 우리로 하여금 그를 본받고 따라가도록 세움받은 신앙의 모범자입니다. 고로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의 모범을 따라 보다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아 멘 -

하나님의 마음을 합하게 했던 다윗

[사도행전 13장 13절~23절]
13절 -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절 -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절 -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절 -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절 -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절 -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절 -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절 -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절 -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절 -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절 -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윗의 외양이 잘 생겨서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16:7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로 다윗은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캐나다 토론토(toronto)에 있는 회중 교회 목사 오스왈드·스미스(Oswald J. Smith)는 30세 되던 해 생일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특별 기도를 드렸습니다. 즉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목사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는데,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스미스 목사가 구하지도 않은 유명한 목사도 되게 해 주시고, 유명한 부흥사도 되게 하시고, 한때 세계 최대의 교회를 맡게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의 눈에만 들어도 복된 일인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길래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는지 성경에서 찾아보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 먼저 구했습니다.
블렛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나라에는 엄청나게 크고 힘센 거인 골리앗 장군이 있어서 아무도 능히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이렇다 하는 용맹한 장수들도 모두 사시나무 떨 듯 하고만 있지 감히 그와 싸우려고 나서질 않았습니다.
이때 어린 소년 다윗이 형들을 찾아 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향하여 저주하고 욕했다는 소리를 듣고 그 어린 마음에 의분이 솟아 올랐습니다. '아니, 감히 하나님을 욕하다니' 하며 자청해서 나가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울 왕도 '그는 큰 용사요, 너는 어린 소년인데 어찌 싸울 수 있겠느냐'고 말렸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저 놈을 보고 그대로 있을 수 없노라고 싸우겠다고 강청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에도 사자와 곰이 나타나면 따라가서 그 물고가는 새끼를 빼앗고 쳐 죽였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라고 하며 나가 싸웠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지팡이 하나와 물맷돌 몇 개와 물매만 가지고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비웃고 조롱했으나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화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하면서 물매를 잡아 돌리다가 던질 때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혀서 꽝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온 블레세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 저리로 도망가고 소년 다윗은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 목을 잘라 왔습니다.
다윗의 마음의 중심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목숨까지 내걸고 골리앗과 싸운 것은 사울 왕의 사위가 되고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서 믿음으로 나가 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로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고 희생하고자 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도 우리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내 영광을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 왕이 자기가 신이라고 하며 영광과 경배를 받을 때 바로 그 즉시 충이 먹어 창자가 썩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 48:11절에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했고, 또 시 115:1절에는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전 10:31절에도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2. 겸손히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고 해서 한 번도 죄를 안지은 것은 아닙니다. 사울 왕 못지않게 큰 죄를 지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왕이 되고 나서 평안하게 궁궐에 거할 때, 자고 일어나 지붕 위를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짐승같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해서 데려다 범죄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필이면 그 여자가 임신을 해버렸습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그 여자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오게 해서 집에 들어가 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충성된 장군이라 '여호와의 법궤가 지금 들판에 있고 내 부하들과 상관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찌 편안히 집에 들어가 아내와 더불어 잠을 자겠습니까?'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므로, 결국 위험한 사지에 나가 싸우게하여 죽게 해 버렸습니다. 다윗은 간음죄, 살인죄, 권력남용죄 등을 다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명의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와서 죄를 깨우쳐 주고 책망할 때 그는 체면이나 위신같은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즉시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 지은 시가 그 유명한 회개의 시편 51편입니다. 그는 그 일로 말미암아 그후에 고통을 많이 당할 때에도 자기의 죄값이라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던 아들 압살놈이 반란을 일으켜서 허겁지겁 도망갈 때 사울의 집 족속 가운데 시므이란 사람이 돌을 던지며 저주하고 욕해서 아비새 장군이 즉시 머리를 쳐 죽이려고 할 때에도 못하게 말렸습니다. 그러면서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버려 두라"(삼하 16:5-12)고 했습니다.
다윗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후궁들이 욕을 본 것도,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고 욕하는 것도, 모두 자기가 범한 죄의 값으로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고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후에 그 밧새바의 몸에서 낳은 귀여운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하나님이나 어느 사람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깊이 회개하는 다윗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왕권도 위신도 다 회복시켜 주시고 그를 저주하던 시므이도 다시 와서 그에게 무릎 끓고 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유명한 사무엘 같은 선지자가 간곡히 말하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시면서 그를 폐위시키고 말았습니다.
대하 7: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회복시켜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다윗은 시 19:14절에서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고 기도했습니다. 이 말씀은 말만이 아니라 내 생각까지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기를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을 볼 때 다윗이 얼마나 진실되게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을 때 고집부리지 말고 겸손히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였습니다.
'사울의 집은 점점 쇠해 가고 다윗의 집은 점점 흥해 가니라'고 했는데 사울은 자기 잘못은 회개할 줄 모르고 복수심에 불타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음이 대해 같이 넓어서 넓게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다 지쳐서 군사들과 함께 엔게디의 굴 속에 들어가 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마침 그 굴 속에 다윗과 그 부하들이 숨어 있었는데 부하들은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당장 목을 쳐 죽이자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을 내가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사울의 옷자락만을 칼로 베어가지고 나가 멀리 서서 외쳤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당신은 내 생명을 해하려 하나 나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그때 사울 왕은 소리 높여 울며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또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한 번은 십 황무지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군사들이 빙 둘러 진을 친 가운데 사울은 안심하고 그 가운데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다윗은 그 가운데로 들어가 사울의 물병과 창만 가지고 나온 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사울과 달리 관용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압살롬의 구데타 반란으로 인해 피난갈 때 돌을 던지며 욕을 했던 시므이가 찾아와서 빌 때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마 6:15절에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탈영병 하나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찾아가 애원했더니 특사를 내려 살려줬습니다. 그때 링컨을 만나고 나오는 어머니가 뭐라고 중얼거리더랍니다. '그래, 내 그것이 꼭 거짓말인 줄 알았어'. 그 여자는 링컨이 못생기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란 소문을 듣고 갔는데, 자기 아들을 용서해 주고 살려 준 링컨의 얼굴을 보니 환하게 천사같이 잘생겼더라는 것입니다.
진정 관용하는 사람은 널리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4. 비천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겸비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 양떼를 치던 비천한 목동이었는데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시고 왕으로 삼고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지만 그는 늘 자기의 원래 신분은 비천한 자였음을 잊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이것이 또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까닭입니다.
삼하 7:18,19절에 보면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처음엔 겸손했으나, 왕이 된 뒤에는 교만하고 고집세고 완고해서 사람의 충고도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공자도 중용에 대해서 말하다가 '중용이란 나라에 정도가 행해져 입신하게 되어도 궁색했던 때의 마음 가짐을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 32:7절에도 보면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비천했던 과거를 잊지 않고 겸비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돌리며 또한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베푸시는 온갖 영예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금의 '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5. 제일 귀한 것을 하니님께 드렸습니다.
삼하 7:2절에서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한 것을 보면 다윗은 무엇이나 귀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서 못견디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하 23:13-17절에 보면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체는 베들레헴에 있었는데 그때 부하 장수들에게 분부하기를 "누가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떠다 나로 마시게 하려느냐"고 할 때 세 용사가 자원해서 나가 적진을 뚫고 들어가서 물을 떠 왔습니다. 이때 이 생명과 같은 귀한 물을 나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면서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다윗은 제일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자주 들리시던 집이 있었는데 바로 시몬의 집이었습니다. 그 집은 바로 마르다와 마리아가 늘 대접하기를 힘쓰던 집이요, 비싼 나드 향유도 아낌없이 깨드려 예수님께 부어 드린 집입니다.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물질을 드리기에 힘쓸 때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림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자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고후 9:7절에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삼상 2:30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가장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겸손히 회개하고, 남을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이전의 자신의 과거를 기억함으로 겸비하고, 제일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가 다 되시길 바랍니다.
- 아 멘 -

 

뛰어난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은

[사도행전 27장 9절~11절]
9절 -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절 -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절 -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사도행전 27장 21절~37절]
21절 -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절 -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절 -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절 -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절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절 -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절 -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절 -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절 -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절 -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절 -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절 -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절 -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절 -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절 -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절 -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절 -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한 일로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중 그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나고 파선하여 죽을뻔 했는데, 그는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로서 그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을 지도하여 구출해 냈습니다.
​그 배에는 276명이나 타고 있었으며 율리오라는 백부장도 있었고 선장도 있었으나 위급한 때에 이들을 지도하고 구출해 낸 사람은 바로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어 가던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바울은 그들에게 큰 폭풍을 만나고 위험한 일을 당할터이니 겨울을 지나고 행선하자고 하는데도 듣지 않고 항해하다가 이런 큰 일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바울의 말대로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캄캄한 가운데 큰 폭풍을 만나 모든 짐짝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다음에는 배의 기구까지 다 내어던져 버렸으나 살 소망이 다 끊어져서 14일간이나 먹지도 못하고 절망 가운데 이리저리 밀려 다녔습니다.

이때에 바울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어제 밤에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안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14일인즉 일어나 음식을 먹으라 그래야 건강도 되찾고 살아날 수가 있다...' 그리고는 바울이 떡을 가져다 축사하고 떼어주니 다 먹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하여 배는 파선했으나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렇듯 뛰어난 하나님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여 고난을 극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지도자가 가정도 지키고, 교회도 지키고, 나라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이런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이에 우리는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의 자격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배웠거나 적게 배웠거나 위태할 때 남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될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1.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바로 헤아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천기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가운데 항해를 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분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지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았고 무슨 일이나 급히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비범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뛰어난 지도자는 지식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언제나, 무슨 일에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폭풍과 파도라도 그와 하나님과의 영교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타인이 모르는 영적 비밀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하는 영적 지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하나님의 복된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렘 33:2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2. 순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폭풍이 심할 때 뱃사람들은 소망을 잃고 무서워하였으나 바울은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실 줄 믿노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는 자기의 제한적인 지혜나 총명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어 보일만큼 단순하게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순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의 영웅들도 보면 결코 약은 사람들이 아니라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고 바보스러운 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될만한 사람도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고 소박하며 순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노아도 어린아이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산위에 방주를 지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홍수 심판에서 온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길을 떠났고 독자라도 아낌없이 드리는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함으로써 믿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모세도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의 모든 부귀와 명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그런 순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적은 군사를 가지고도 승리하는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다니엘도 어리석어 보일만큼 우직하게 기도 생활을 하는 믿음을 가졌으므로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디도 부흥회를 인도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은혜주실 것을 믿고 '우리 다같이 머리 숙이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고 하며 은혜 주실 것에 대하여 먼저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언젠가 춘천지방 부흥 사경회를 인도할 때 또 한번 깨닫은 것이 있었습니다. 수요일 낮 집회 때인데 눈도 못뜨고 말도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의식을 잃은 스물서넛된 아가씨를 그의 어머님께서 업고 와서 기도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가씨가 단순히 연탄 가스를 마셨다고 해서 얼마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기고 안수 기도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녁 집회 때도 의식을 잃은 채로 또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이 구경하는데 기도했다가 낫지 않으면 부흥사 체면이 말이 안되고 해서 내일 아침 전체적으로 안수를 할테니 그때 나오라고 또 안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잠을 청하는데 그 사람이 다시는 교회에 안나오면 어떻게 하나, 낫든 안낫든 기도나 해줄걸 하는 후회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일 아침 안수집회 때 나는 힘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딸을 불쌍히 여겨서 고쳐 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준비 기도를 하면서 잤는데 그 다음날 안수할 때 그 여자가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춤을 추며 기뻐하면서 감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어린아이 같이 순전하게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3. 말씀을 의지함으로써 담대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난 파도가 삼킬 듯이 배를 때리는 위험에 직면한 때에 배 갑판 위에 서서 "안심하라 너희가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14일인즉 먹을 것을 먹으라 그래야 구원을 얻는데 유익하리라… 생명에는 아무 손상도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의지함으로써 얻게 된 낙관적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한다고 하는 말씀을 믿는 자는 긍정적이며 낙관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담대하고 적극적인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쉽게 낙심하고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낙관주의적 신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1918년 11월에 테디 루우즈벨트(Teedy Roosevelt) 대통령이 선거 마지막날 투표소에 나갔더니 어떤 사람이 '요사이 아프신 데가 좀 어떻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류마티즘으로 몹시 고통스러운데도 대답하기를 '내 발은 항상 아프지만 머리는 언제나 건강합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과연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그 무서운 경제공항을 잘 극복해 냈습니다.

전에 저의 모친께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만큼 가세가 기울어져 궁지에 몰리게 되면 아버님께 '염려 마십시오. 죽지 않고 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주며 몰래 저축했던 돈을 내놓기도 하고 손수 장사를 해서 돈을 벌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뛰어난 지도자는 매사에 항상 긍정적입니다.

몇년 전에 교회에서 나이 많은 안나 여선교회를 따라 충무에 가본 일이 있습니다. 해금강이 좋다고 해서 배를 타고 구경을 갔습니다. 육지 가까이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해안을 좀 벗어나니까 산더미 같은 파도가 심하게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선장과 뱃사람들도 공포에 질려서 바다에 떡을 뿌리며 고사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두 남녀는 서로 부둥켜 안고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우리 믿는 교인들은 괜찮겠지 했는데 우리 교인들도 금방 얼굴이 변해서 몹시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인 나까지 그래야 되겠습니까. 저도 속으로는 무섭고 떨리지만 일부러 웃으면서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며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 따라 부르는데 어떤 사람은 얼굴이 시퍼래 가지고 찬송을 못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웃으면서 찬송을 불렀는데 결국 무사히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역시 지도자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능력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심을 굳게 의지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비관주의자가 아닌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4. 하나님께 진정한 경외와 감사를 돌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 폭풍 가운데서도,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화가 나면 영어로 욕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 우리 한국 교인 가운데 '주여'를 아무 때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귀를 뀌고서도 '주여'하는 사람이 있고, '아멘'도 장난삼아 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경거망동한 행동인 것입니다. 참으로 뛰어난 지도자는 하나님께 경외심과 감사한 마음을 늘 가져야 합니다.

문학가들이 어느 날 런던 클럽 룸에 모여서 대화하는 중에 한 사람이 '만일 밀턴(Milton)이 우리 방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더니 '우리는 그가 일찍이 세상에서 받아 보지 못했던 열렬한 환영을 해야 되겠지요'라고 누군가 대답했습니다. 그때 또 한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만일 셰익스피어(Shakespear)가 이 방에 걸어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더니 누군가가 '모든 문학가들이 시의 왕관을 씌워 드려야 하겠지요'라고 했답니다. 그때 또 한 가지 질문이 나왔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방에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할 때 어떤 사람이 '우리는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될 줄 압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태도요, 하나님 안에 있는 뛰어난 지도자의 자세입니다.

 

5. 자기 절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제어할 줄 알았기 때문에 환경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마음을 제어하는 사람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 16:32)라고 했습니다.

한학에서 말하는 중용(中庸)은 절제를 의미하는 것인데 '임금님 벼슬도 사양할 수 있고 성을 빼앗는 용맹을 가질 수도 있고 칼날 위에 설 수도 있지만 중용은 실로 어렵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전쟁터는 사람의 가슴이요, 사람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절제로 이 전쟁에 승리해야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절제하는 만큼 남을 훌륭하게 지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6.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뛰어난 하나님의 지도자는 남에게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바울은 자기 자신을 돌보기보다 배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마음과 정신을 쏟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뛰어난 지도자가 됩니다.

은퇴하신 김창호 목사님이 계신데, 몇해 전에 일본 사람이 그분을 초청해서 관광을 하고 왔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만주에서 일본 패잔병이 도주하다가 죽게 된 것을 잘 돌봐주고 살려주어 보냈더니 수십년만에 이 김 목사님을 찾아와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관광을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는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선하고 축복된 길로 이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되려면 항상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경외심과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자기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그리고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뛰어난 지도자가 될 줄 믿습니다.

- 아 멘 -

 

제목 :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공재영 목사님)

[사도행전 16장 16절~34절]
16절 -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절 -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절 -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절 -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절 -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절 -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절 -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절 -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절 -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절 -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절 -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절 -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절 -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절 -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절 -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절 -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절 -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절 -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33년간 세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주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죽음의 자리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의 환경은 숨통을 막아버리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됨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①시대적인 불행을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는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은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해 배반자의 삶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②신앙적 혼란 속에 빠진 것입니다. 지나간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이 중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③인간적 존재감을 상실케 된 것입니다. 이때 제자 베드로가 일어나 두 가지 큰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하나는 가룟 유다가 빠진 자리에 제자를 세우자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결심의 자리에서 제자들을 중심하여 모인 성도들의 자리에 나타난 큰 변화는 염려하지 않고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에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리는 겉모양은 함께 있었지만 마음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제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 역할을 한 사람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였습니다. 이 결심의 자리가 온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비전을 품게 한 성령님이 임하시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그 성령님이 함께 하실 때 성도의 삶 속에 열려지는 복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악한 영이 다스리지 못하게 하십니다(18).
세상에 불법이 성행하고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보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악한 모습이 갈수록 심해지는 원인을 성경은 증거하기를 악한 영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통해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자리에서 무너져 버린 인간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로 세워주시려 함입니다. 그 자리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습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성도를 통해 선한 마음을 소유하게 하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자리가 열려지는 현장이 성경 속에는 그려져 있습니다. 그 현장을 본문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앙인 바울이 아시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유럽 지역으로 선교지를 옮기게 하므로 첫 번째 도착한 지역이 그리스 북쪽 마게도니아 지방의 빌립보 성이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못했기에 우상 숭배가 성행했고 인간적 방법으로 요행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많아지자 점쟁이가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그 점쟁이 중에 귀신이 들린 점쟁이가 있어 신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이 그 점치는 자리를 통과하게 되었는데 점쟁이가 한 마디도 묻지도 않았는데 바울과 그 일행을 향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친 것입니다. 하루에 있어진 이벤트가 아니라 여러 날 동안 똑같은 말을 반복하자 바울의 마음에 요동치는 힘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사람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세계와 악한 영 곧 마귀의 세계가 인간의 삶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악한 영인 귀신은 신통력은 있어도 사람을 노예로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악한 영이 사람을 노예로 다스리지 못하게 하셔서 새로운 삶으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신통력은 사라졌어도 인격적인 사람으로 세워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자리를 온전히 세워주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인격자로 세워주시려고 탄식하시며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2. 성도의 삶을 건강하게 세워주십니다(25).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갈등이 생기고 풀려지지 않는 문제 때문에 삶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신앙인 사도 바울에게 임한 성령님이 악한 귀신이 들려 신통력으로 점을 치는 여종을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가게 했다면 좋은 일이건만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는 불행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귀신들린 여자 아이를 종으로 부리면서 점을 치게 하여 큰 돈을 취하는 악한 사람이 돈 줄이 끊긴 것을 분개하여 없는 죄를 덮어 씌워서 감옥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세상에는 비인격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비호하며 세워주는 일이 많아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되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자신이 겪는 아픈 자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픈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게 열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 자신만 손해 보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 나오는 사건을 보면 선한 일을 했는데 그 선한 일 때문에 감옥에 간다면 누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선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세워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이며 그 예수님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어 부활하심으로 그것을 사실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로 하여금 기쁘게 감당하며 살아가도록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모셔 들이기만 하면 성령님이 연약한 마음을 붙들어 주셔서 건강한 성도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현장을 본문에서 증거하기를「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죄인의 모습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다른 죄인 곧 건강한 사람으로 보여졌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했는데도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는데 무엇이 있었길래 기도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자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하게 세워진 복된 자리인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 앞에 세워진 것을 확실히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진 자신을 보지 못하고 죄를 지은 죄수들 속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면 한심스럽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건강한 삶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4:9)」라고 바울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도를 건강하게 세워 주십니다.

3.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나타내게 하십니다(31).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세워놓은 분명한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증거하기를「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나니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라(행17:26,27)」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영역을 정하신 자리에는 그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지역별로, 기후별로 적절하게 분포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 자연환경을 보존하여 인간으로 잘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고 하셨습니다. 이런 축복으로 세워진 환경이 사람들의 불법적인 행동 곧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지 않고 인간적 욕심으로 살아가는 모습 때문에 황폐해졌을 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마저 위협 당하는 위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자리를 회복하여 복되게 세워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으시면서 일을 행하시고 계시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모든 값을 치르시는 자리에서 피를 흘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무너진 인간의 형상은 성형수술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악의 형상을 도려내어야만 했기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속에 임재하여 영원히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은 아무렇게나 임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값을 치르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여 내 마음에 모실 때에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하시는 큰 일은 그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알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하신 일을 바로 알아야 이 세상을 건강하게 회복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복되게 세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눅5:38)」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새 포도주를 가지게 하며 새 부대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된 세상이요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수가 전하는 예수님을 간수와 그 가족이 예수님을 믿어 회복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포도주를 담는 부대가 망가져서 좋은 것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세우시려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회복의 자리를 열어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여 내 마음 속에 모셔 들일 때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첫째 인간을 무너뜨리는 악한 영이 다스리지 못하게 하십니다. 둘째 성도의 삶을 건강하게 세워주십니다. 셋째 자신의 삶 속에 예수님을 나타내게 하여 회복된 자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위기에 강한 사람

[사도행전 27장 9절~10절, 21절, 24절~25절]
9절 -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절 -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21절 -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4절 -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절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아마도 일년 중에 인구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계절은 겨울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한끼 식사 해결도 어려운 가난한 이웃들에게 겨울은 단순한 추위 이상의 인생의 어려움과 위기를 느끼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여러번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전도하다가 많은 위기에 직면했던 사실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죄수의 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로마에 복음을 증거하려고 황제 앞에 서게 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석방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죄수의 몸으로 이탈리아의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쯤 항해하여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조용히 기도하고 명상하는 중에 항해를 계속하면 큰 위험이 닥쳐올 것을 영감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권고하기를 '이번 항해가 배와 우리의 생명에 큰 위험이 있을테니 과동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책임자인 율리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계속 항해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쯤 갔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여러 날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배에 있는 모든 짐짝들을 바다에 던지고 심지어 배의 기구까지 바다속에 내버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심한 풍랑으로 토하고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또 깊은 절망 가운데 빠져 이리 저리 밀려다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 때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않았던들 이런 재난과 손해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안심하고 용기를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섬기는 나의 하나님의 천사가 지난 밤에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무서워하지 말라. 너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설 것이다. 보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많은 사람을 다 네게 맡겨주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며 또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어떤 섬에 흘러 닿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오늘까지 열나흘 동안이나 마음을 조이며 아무것도 먹지 않고 굶어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당신들의 목숨이 붙어 있을 것이고 당신들 중에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 후에 떡을 들어 하나님께 축사하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용기를 내어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마침내 배는 파선되었고 짐짝하나 건지지 못했으나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죽은 사람이 없이 멜리데라는 섬에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이 배에 276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누가 참으로 위기에 강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선장도 아니요, 선주도 아니요, 백부장도 아니요, 경험 많은 뱃사람들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었습니다. 죽음이 닥쳐오고 어려운 시련이 몰아칠 때에는 돈이 많은 것도, 벼슬이 높은 것도, 지식이 많은 것도 필요 없습니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그 위기에 강하게 대처하여 취기를 극복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도 지키고 교회도 지키고 이 세계를 지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바로 이런 인물이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고로 이러한 사도바울을 통하여 위기에 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기도하며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미리 항해를 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행선하기 전에 기도하며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과 위험이 올 것을 영감으로 알았습니다. 또한 그 험난한 전도 사업을 시작할 때도 2년 동안이나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후에 전도 사업을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항상 기도하며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바다의 폭풍뿐만 아니라 갖은 핍박과 고난의 위기에 강하게 대처하고 능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위기에 강한 사람은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힘입고 그분의 뜻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타인이 모르는 비밀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하는 힘과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생각하는 중에 성령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초라하고 무식해 보일지라도 기도하며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도 알게 됩니다. 예레미야 33: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떤 위기에도 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단순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폭풍이 심할 때 뱃사람들도 소망을 잃고 공포에 싸여 있었으나 바울은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실 줄 믿노라'고 했습니다. 진정 위기에 강한 사람들은 자기의 제한적인 지혜나 재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해 단순하고 어린 아이같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노아도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햇빛이 내려쬐는 맑은 날 높은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어 홍수의 위기에서 가족을 살리고 자신도 구원받은 것입니다.

모세도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애굽의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위기 상황에 강하게 대처하여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 또한 이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고로 3만명이나 되는 많은 지원 용사들 중에 불과 300명의 용사를 뽑아 무수히 많은 적군을 무찔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도 이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사자굴 속의 위기 상황에 강하고 담대하게 대처해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디(D.L.Moody) 선생은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은혜주실 것을 믿고 우리 다 같이 머리 숙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실 일에 대하여 미리 감사합시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단순한 믿음의 소유자들입니까.

이렇듯 단순하고 어린 아이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할 때 어떤 위기 앞에서도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긍정적인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

바울은 성난 파도가 삼킬듯이 배를 때리고 죽음에 직면한 때에 배 갑판 위에 서서 '안심하십시오. 우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먹지 않은지 14일이나 되었으니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야 됩니다'하고 외쳤습니다. 바울은 실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소망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것 역시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시므로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소망을 가지고 강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긍정적인 소망을 갖는 대신에 깊은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믿지 못하는 자들로서, 작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이내 쓰러지고 맙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대경제공항으로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잘 극복하였던 인물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모든 기업이 망한다 생각하여 은행에 저금한 돈이나 기업과 혹은 공장에 투자한 돈을 찾아가려 했습니다. 때문에 공장들은 문을 닫고 사업체들은 붕괴되어 더욱더 큰 어려움이 닥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매일매일 방송을 통해 말하길 '우리는 이 경제 공황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복 받습니다. 잘 삽니다'하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소망을 가지고 전 국민에게 호소했더니 국민들 역시 다시 적극적인 자세로 은행에 저금을 하고 기업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여 불황을 타개했을 뿐 아니라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하다가 무수히 많은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어 절망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끝내 긍정적인 소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찬송을 부르자 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어진 사건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이렇게 긍정적인 소망을 가지고 찬송하며 나갈 때에 우리를 얽매었던 위기의 사슬이 끊어지고 닫혔던 축복의 문이 열릴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승리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서도 너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는 찬송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만 위기가 닥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깊은 절망감에 빠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참된 크리스찬이라면, 참된 주님의 자녀라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능력의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위기의 환경에서도 비판주의자(Pessimist)가 되지 말고 긍정적인 소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4. 감사한 마음이 있는 자입니다.

바울은 그 폭풍 가운데서, 더욱이 믿지도 않는 사람들 중에서 빵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 기도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헤와 축복을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자들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과 섭리를 깨닫고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을 믿고 의지하며 감사함으로써 위기를 능히 이깁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은 조금만 어려움이와도 이내 불평하고 하나님을 불신만 함으로써 그만 위기에 더 깊이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기를 잊지 않음으로써 위기를 통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단의 계교를 능히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5. 자기를 제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인간적인 두려운 감정 등 자기를 제어할 줄 알았기 때문에 위기의 환경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자기 마음을 제어하는 사람이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잠 16:32절에서 말했습니다. 공자는 말하길 벼슬을 사양할 수 있고 성을 빼앗는 용맹을 가질 수도 있고 칼날 위에 설 수도 있지만 중용은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중용이란 말의 뜻은 절제하고 자기를 제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큰 전쟁터는 사람의 마음이요, 사람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고로 그 어떤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외부적인 위기에 강하게 대처하여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기 자체보다 그 안에서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더욱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루 동안에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갑자기 닥쳐올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부디 그때마다 기도로, 순수한 믿음으로, 긍정적인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연약한 자기 자신을 철저히 제어하며 위기에 강하게 대처하여 승리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아 멘 -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

[사도행전 11장 19절~26절]
19절 -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절 -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절 -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절 -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절 -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절 -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절 -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절 -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요한일서 1장 8절]
8절 -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성경에 꼭 세번 나옵니다. 행 26:8절에서 아그립바왕이 바울에게 말하기를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했고 벧전 4:16절에서는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행 11:26절에는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토레이(R.A.Torrey) 박사는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이냐'라는 그의 저서에서 그리스도인을 정의하면 잃어버린 죄인으로 하나님께 나온 자,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자기 구주로 영접한 자, 주님께 모든 것을 항복하고 맡긴 자, 세상에서 그 신앙을 고백한 자, 매일매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을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이 비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보다 확실한 자기 인식을 갖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의 출생
그리스도인의 출생은 다른 비그리스도인의 출생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출생만을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훌륭한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지금도 하십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세상 나라의 아름다운 도시는 다 볼 수 있어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볼 수 없고, 세상 아름다운 나라는 다 가 볼 수 있어도 '햇빛보다 더 밝은 천국'은 가 볼 수 없으며, 돈만 있으면 세상의 가장 좋은 집은 살 수 있으나 하나님 아버지의 예비하신 영원하고 영광된 집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갈보리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죄씻음을 받아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교회 명부에 올라갈 때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세상을 보던 눈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으로 변화될 때 다시 태어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 1:12)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거듭나면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
첫째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입니다.
가족간에 친밀한 교통이 없는 가정은 참된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이 없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라도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성경을 펴 놓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언제나 무릎을 꿇으면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질때 문제가 생기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바쁜 중에라도 조용히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하는 기도의 시간을 반드시 가지곤 했습니다. 새벽 미명에나, 밤을 세워 가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매일 몇 차례씩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엄수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뜻을 받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이루는 것이 있는데, 고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항상 기도와 말씀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를 씻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때로는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요일 1:8절에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고 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용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로 이 말씀을 이미 알고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때마다 항상 주님 앞에서 회개를 통해 죄씻음 받는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섬기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오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주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 하셨으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이러한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아가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는, 증거와 전도의 삶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시던 중, 식사 초대를 받고 가서 식사를 잘 했습니다. 그 주인 남자는 교회의 중요한 임원이고 부인은 교회 학교 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 집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묻기를 '주인이 어느 교회에 나가며 착실한 그리스도인이냐"고 했더니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집에 온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다시 물어보니까 석달이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그렇게 교회 일을 많이 하고 활동적인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에게조차 석달이 지나도록 전도 한마디 안했다는 것을 알고 그 목사님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라와 남에게 자랑하지 않을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 은혜를 입도록 복음으로 인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빛되고 선하심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사랑의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비록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요 15:12절에서 예수님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 13:35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여러 해 동안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한 죄로 밧모섬에 귀양 갔다 온 후 몸이 심히 늙고 쇠약해서 두 사람이 부축해 줘야 강단에 올라가 섰다고 합니다. 부축한 사람이 '우리 모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우리에게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해 주십시오'하고 부탁했더니 사도 요한은 '아이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했더니 '그것이면 족해'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진정으로 사랑하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여섯째는, 자비를 베푸는 삶입니다.

옛날 어느 임금님은 늘 좋은 옷을 입고 각양 훈장과 악세사리를 달고 큰 거울 앞에서 바라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후는 그의 늙은 신하 한 사람이 그 큰 거울 대신 그 자리에 창문을 내고 바깥 세상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임금님은 처음에 깜짝 놀랐지만 그 창문을 통하여 굶주린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각양의 불쌍한 사람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임금님은 그들을 찾아가서 자비를 베풀고 돌아와 참으로 만족해 하고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찾기 원한다면 자신만 바라보지 말고 잃어버린 자, 고독한 자, 가난한 자를 바라보라. 하나님을 진정 섬기는 너희들이라면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다른 사람들도 섬기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생활을 하라'고 말입니다.

 

일곱째는, 용서하는 삶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우리를 해하려고 하는 사람, 미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더욱이 악한 세상은 주님의 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고통스럽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런 미운 감정이나 복수심을 그대로 안고 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마음은 무거운 짐이 되어서 우리를 내리 누르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아지기 원한다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위해서까지 기도하신 그분을 본받아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오크라호마에 있는 어느 인디안 교회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용서에 대한 글입니다. '우리는 여섯번이나 파괴를 당하고 이주를 했다. 우리 재산은 모두 약탈당했다. 우리는 미조리 강을 건너 거기에 집을 짓고 살면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좋은 농장과 편리한 집과 외양간을 짓고 살았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예배당을 짓고 거기서 백인들로부터 복음을 들었다. 그러나 몇해 안가 백인들이 다시 미조리에서부터 와서 우리 말과 소를 다 몰아갔다. 그들을 쫓아가던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그러나 백인들이 가져온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고난보다 더 큰 것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이것이 우리의 정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끝까지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죽음

그리스도인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서 영원한 죽음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그의 옛 몸은 무덤에 묻히지만 그 영혼, 진정한 자아는 영원히 삽니다. 옳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늦어진다면 육체의 죽음은 맛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셨지만 사흘만에 죽음의 사슬을 끊고, 무덤문을 박차고 부활했습니다.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요 14:1절에서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곧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서 다시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미래

그리스도인의 미래는 햇빛처럼 밝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을 위해 놀라운 것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영광스러운 천국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세상은 나그네와 같은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죄와 슬픔과 죽음이 다시 없는 축복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눅 10:19~31절에 소개되고 있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비록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초라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에게는 복되고 영원한 미래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이 땅에서 온갖 부요와 평안을 누렸던 부자는 끝내 비참한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의 결국이 이토록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영원한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순간에 불과한 현재와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영원하고 복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축복된 사람들입니다. 고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쁘고 소망에 찬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존 웨슬레(John Wesley)가 꿈꾼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꿈속에서 지옥에 내려가 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여기 우리 감리 교인도 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랍니다. '장로교인도, 침례교인도, 천주교인도, 루터 교인도 다 와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랍니다.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어 천국에 가 봤더니 거기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또 묻기를 '여기 감리교인도 와 있습니까'했더니 "아니요! 장로교인도, 침례교인도, 천주교인도, 루터 교인도 다 안 와 있다"고 하며 오직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만이 와 있다고 대답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참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만이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과 본질적으로 다른 삶의 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출생에서부터 영원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들 모두 이러한 삶의 여정을 끝까지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교회의 부흥을 위한 기도

[사도행전 1장 12절~14절]

12절 -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절 -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이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절 -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새해가 되면 교회마다 새롭게 목회 방향을 설정하고 표어를 만들어 보다 나은 교회의 모습, 보다 부흥하는 교회를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들의 교회는 올 한해에 교회의 부흥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부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해도 기도가 없으면 부흥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광고를 잘하고 천사같은 찬양을 하고 거액의 돈이 있어도 기도가 없으면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구름떼 같은 청중을 모을 수 있어도 제아무리 설교를 잘해도 그것으로 참된 부흥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부흥은 우리의 기도로써 하늘로부터 끌어내리는 것이지 땅에서부터 노력해 끌어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기도는 교회 부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요소가 되는데, 우리의 교회를 그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님께서도 항상 이러한 기도에 힘쓰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람으로부터 무덤까지 기도로 관철하셨습니다. 세례받고 나셔서 공생애로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광야로 나아가 40일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 놓인 영혼 구원의 사역을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할 능력을 간구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잠들었을 때에도 새벽 미명에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고, 때론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기도하셨고 무슨 일을 실행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가장 뜨겁고 간절한 기도는 십자가 죽음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기도였습니다. 고민이 너무 심하여 기도할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높이 달려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극도의 고통을 당하실 때도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는 고통을 알아 달라는 기도도 아니고, 자신을 못박아 죽이는 무리들에게 복수해 달라는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한 마디도 하시지 않고 도리어 핍박자들을 위해서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온전한 기도의 생애였던 것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렇듯 기도가 필요했다면 우리들이야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께서도 기도가 필요했다면 연약한 우리들이야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이에 우리는 오늘 이러한 기도의 문제를 교회의 부흥과 연관시켜 살펴봄으로써 올 한해 우리가 속한 교회가 기도로써 바르게 부흥해 가는 계기를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1. 교회의 부흥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
뜨거운 기도의 계절이 먼저 오지 않고는 교회의 큰 부흥이 오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의 능력을 내려 주시기를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한 후에야 성령의 능력이 임했고 하루에 3,000명이나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857년도에 전국에 휩쓰는 큰 부흥이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부흥의 절정에 그 부흥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알게되었습니다. 뉴욕에 있는 한 사람이 매일 점심시간 한 시간 중에 절반을 기도로 바치면서 전국적인 큰 부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의 불을 내려 주셨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교회들이 부흥되었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일어난 배후에는 누군가의 뜨거운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교회 부흥의 방법과 비결을 배우려고 하면서도 그 근본 요인이 되는 기도의 참된 가치를 배우지 못하고 있으며, 기도의 능력을 알아도 기도의 생활을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토마스 북스톤(Tomas Buxton)경은 '당신은 기도의 가치를 알고 있는가 그것은 모든 것보다 귀중하다. 결코 그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고 에드워 페이슨(Edward Payson) 목사는 '교역자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이다. 그렇다면 내 사랑하는 형제여!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페이슨 목사는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그가 항상 기도하던 자리에 움푹 패인 자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John Wesley) 목사는 '오직 죄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간구하는 전도인 100명만 나에게 달라. 그들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런 자만이 지옥의 문을 뒤흔들고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만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엠 바운즈(E.M. Bounds)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기도는 설교자의 가장 큰 무기이다. 그 안의 전능한 힘, 그것이 생명과 힘을 모든 이에게 준다...참된 설교는 골방에서 이루어진다. 그 사람 -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그의 생명과 그의 가장 깊은 확신들은 그와 하나님과의 숨은 교제에서 태어난다. 기도는 사람을 만든다. 기도는 설교를 만든다. 기도는 목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을 위한 강력한 결과를 가져오는 설교자는 사람을 설득하기 전에 하나님께 간구하는데에 승리하는 사람이다. 골방에서 하나님과 사귀는데에 가장 우수한 설교자는 강단에서 사람과 사귀는 데에 가장 우수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면하는 시간을 적게 보내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적게 하는 자이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또 '성급한 마음으로 기도실을 들락날락 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게으른 처사다... 하루의 생활 중에서 제일 좋은 고요한 시간을 골라 하나님을 위해 바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실로 기도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진정 기도야말로 영혼을 뒤흔드는 힘이 있고 교회의 부흥을 이루는 절대적인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2. 교회의 부흥을 위한 기도의 내용

첫째,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대하 7: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원한다면 먼저 우리 교역자 자신들과 성도 자신들이 모든 면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끗한 생활, 헌신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의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간절한 기도의 생활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종종 수술실에 들어가 기도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도 외과 의사를 따라 까운을 입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손을 잘 씻고 까운을 입고 고무 장갑을 끼고 수술대로 가려고 할 때 그 목사님이 물어볼 말이 있어서 손가락 하나로 의사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목사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더니 '손을 다시 씻어야겠군'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 의사는 손을 살균 비누로 다시 씻고 다른 까운을 입고 다른 장갑을 끼고 나서 수술을 시작하더랍니다. 왜 그랬을까요 손가락 하나로 까운을 조금 만졌을 뿐이지만 혹시나 균이 묻어서 환자에게 옮겨져 환자의 생명을 해칠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육체보다 절대적으로 귀중한 일, 조심스러운 일인 영혼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죄악된 것에 섞여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치겠습니까. 그러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우리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둘째,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슥 4:6절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성령)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예배나 전도나 헌신과 봉사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결코 교회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펄젼(Spurgeon)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전도자는 모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기도의 사람으로서 구별되어야 한다. 일반 신자들만큼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위선자가 될 것이며 나아가서 그가 일반 신자보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의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교역자로서 기도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당신은 비침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예배와 묵상의 시간을 갖는 데에 게을리 한다면 반드시 비참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예배와 묵상의 시간을 갖는데에 게을리 한다면 반드시 비침하게 될 뿐 아니라 또한 당신의 지도를 받는 성도는 말할 나위 없이 불쌍하게 되어버리며 결국은 당신이 수치를 당하며 허둥지둥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의 모든 신앙 서적과 그 연구는 기도하는 골방에 비하면 단순히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성서 안에서 이루어졌던 기도와 금식의 순간들이 우리의 많은 날 가운데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면 결코 천국의 영적 축복의 문이 더 넓게 열려지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로 점점 가까워질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가 교역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밝은 축복은 결코 말로 형언할 수 없고 글로 기록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서 이는 곧 성령의 기름부음이다. 만일 우리가 만군의 주로부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이고 있는 교역자다. 기름 부으심은 오직 기도를 통한 간구로써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열렬한 간구로써 기도해야 되겠다. 우리 모두 까운을 벗어 방석에 깔고 그것이 천국의 이슬로 흠뻑 젖을 때까지 기도하자'고 간곡히 부르짖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성령의 능력은 진실로 간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눅 11: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기도하지 않는 영혼에게는 깃들지 않는다'고 했고 '기도하지 않는 영혼에 의해서는 복음이 전파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 잃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가족, 친척이나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진정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하나님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도시에 죄악으로 타락한 소년이 마침내 큰 죄를 짓고 체포되었습니다. 그 소년의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함께 면회를 갔다오면서 그 어머니를 위로하는 말을 해주었더니, 어머니는 위로의 말을 받지 않고 계속 '그건 다 내 잘못입니다. 다 내 잘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 도시로 이사오기 전엔 매일 아침과 낮과 밤에 내 아들을 위해 기도했답니다. 그때에는 아무 탈이 없었는데, 이곳으로 이사온 다음에는 세상일에 너무 바빠서 아들을 위해 기도를 못하고 영적 생활을 태만했더니 내 아들이 저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은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기도를 못했더니 이런 비극이 왔습니다'하고 울면서 하소연하더랍니다.

저희 가정에서 저희 아버님이 한때 타락한 생활을 하시고 저희 형제 자매들 중에 속썩이고 신앙 생활하지 않는 식구가 있을 때, 저희 모친께서는 참 많은 눈물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 눈물의 기도가 밑거름이 되어서 결국 아버님도 교역 생활까지 하셨고, 저희 4형제들이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는 데에도 많은 열매를 거두며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지옥으로 떨어질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간구하고 기도하면 기쁨의 단을 거둘 때가 옵니다. 시 126:5, 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사 66:8절에서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해산의 고통과 같은 기도가 밑받침될 때 많은 영혼이 거듭나고 구원받게 됩니다. 마 18:19절에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우리 온 성도들은 이 나라의 잃어버린 영혼들 아시아의 수많은 멸망할 영혼들과, 나아가서 온 세계의 지옥 갈 영혼들을 가슴에 안고 애타게 기도해야 합니다. 당장은 그 결과가 눈에 안보일지라도 우리의 간절한 기도로 많은 영혼이 구원받은 것을 천국에 가서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고하는 일은 훨씬 더 위대하다.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고하는 방법을 잘 배우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강단 위에서나 강단을 떠나서나 기도없는 설교는 한낱 죽이는 말 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이 엠 바운즈(E.M. Bounds) 목사는 말했습니다. 또 그는 '생명을 주는 설교자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갈급하며, 그의 영혼은 열심히 하나님을 따르고, 그의 눈은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는 그의 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그의 육신과 세상적인 것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그의 사역은 생명의 강이 넘쳐흐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기도가 없는 설교는 아무리 아름답고 고상한 수식어가 나열되어도 영혼을 살리지 못하며 영혼을 죽이는 설교가 됩니다. 교역자나 평신도나 영혼 구원을 위해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교회의 큰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과연 교회의 부흥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계십니까.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고 열심이 있다 할지라도 그 안에 기도가 없이 인간적인 방법과 노력만이 있다면 결코 온전한 교회의 부흥을 이를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그 인도하심에 따를 때 실로 위대한 교회의 부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 멘-

 

 

출처 : 그레이스말씀동산
 

끝나지 않은 사역

[사도행전 28장 17절~31절]
17절 -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절 -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절 -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절 -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절 -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절 -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절 -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절 -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절 -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절 -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절 -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절 -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절 - (없음)
30절 -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절 -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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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전도 사역
23절 : 죄수의 신분이면서도 동족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를 증거하는 일에 전념함
24-28절 : 복음을 배척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이방 선교의 당위성을 천명함
30-31절 :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함

* 도움말
1. 이스라엘의 소망(20절) :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부터 대망해 온 메시야와 그에 대한 약속을 뜻한다.
2. 하나님 나라…예수의 일(23절) :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으며, 그분의 재림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강론했다.
3.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30절) :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감옥이 아닌 전셋집에서 일종의 가택 연금 생활을 하며 지냈던 것은 그가 아직 형을 확정받지 않은 미결수이자 로마 시민권을 지닌 자였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말씀묵상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사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미완성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은(1:8)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도처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과 성도들에 의해 이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로마에서의 전도 사역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제일 먼저 유대인들을 초청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했습니다(23절).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으므로, 이제 누구든 주 예수를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자 바울은 이사야 6:9-10절을 인용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거부했으므로 그 은혜가 이방인들에게로 넘겨졌다면서 이방 선교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24-27절). 이후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서 구류 생활을 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30-31절). 이 와중에 바울은 소위 ‘옥중 서신’이라고 하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그 외의 서신들을 기록했습니다.

 
2.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입니다. 유대인들이 고대한 하나님 나라는 로마를 정복하고 온 세계를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로마 관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속 사역을 완수하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누구든 주를 믿는 자는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총은 유대인과 이방인 간에 차별 없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의 백성이 된 교회가 바로 ‘새 이스라엘’이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인 것입니다.

[도움질문]
1.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힘쓴 일은 무엇입니까?(23절)
2.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서 이방인 전도에 전념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24-28절)
3. 바울이 미결수 신분으로 전도에 힘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입니다(30-31절). 당신도 지금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까?

 

제공:프리셉트

드디어 로마에

[사도행전 28장 1절~16절]
1절 -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절 -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절 -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절 -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절 -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절 -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절 -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절 -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절 -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절 -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11절 -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절 -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절 -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절 -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절 -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절 -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바울의 이적
3-6절 : 독사에게 물리고도 죽지 않음 / 이 일로 바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널리 증거됨
7-10절 : 원주민 지도자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안수 기도해 고쳐줌 / 이 일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게 됨
바울의 로마 여정
11절 :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난 후 알렉산드리아 배로 출항함
12-13절 : 수라구사, 레기온을 거쳐 보디올에 당도함
14절 : 보디올에서 한 주간 성도들과 지낸 후 로마로 향함
15-16절 :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나온 로마 성도들과 함께 로마에 입성함

* 도움말
1. 한 뭇(3절) : 장작이나 채소 따위를 한 덩이씩 만든 묶음을 말한다.
2. 압비오 저자와 삼관(15절) : ‘압비오 저자’는 로마 남동쪽 70km 지점에 위치한 압비오 노상에 형성된 시장터이다. ‘삼관’은 로마 남동쪽 48km 지점의 교통 요지에 위치한 일종의 숙박 시설이다.

* 말씀묵상
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이 상륙한 곳은 멜리데 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3개월간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겨울을 난 후 다시금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1-11절).

 
1. 나타난 이적과 행한 이적
바울 일행이 멜리데 섬에 머무는 동안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모닥불을 피우던 중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 있던 뱀이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한편 바울은 이 사건 외에도 또 한 가지 이적을 행했습니다. 열병과 이질에 걸려 고생하던 보블리오의 부친을 안수 기도하여 고쳐준 것입니다. 보블리오는 원주민들의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이 때문에 온 원주민들은 바울을 존경하며, 다른 병자들도 데리고 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바울 일행은 멜리데를 떠날 때까지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7-10절). 이는 분명 그 곳에도 복음이 증거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2. 로마에 도착한 바울
멜리데에서 겨울을 난 바울 일행은 항해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되자 그 곳을 떠나 다시금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 그리하여 수라구사와 레기온을 거쳐 일단 보디올 항에 도착해 그 곳 성도들의 영접을 받으며 일주일간 지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육로로 드디어 로마에 당도했습니다(11-16절). 바울은 그토록 열망하던 로마에 도착해 성도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전도하기 전, 어떻게 로마에도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로마 성도들이 압비오 저자와 삼관에까지 마중나와 바울을 영접한 것은 그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15절). 이로 인해 로마에서도 복음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움질문]
1. 멜리데 섬에 상륙한 바울 일행은 원주민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1-2절)
2. 바울이 로마 부근에 이르렀을 때 그를 마중 나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15절)
3. 바울은 독사에게 물리고서도 죽지 않는 이적과 다른 병자들을 고치는 이적을 원주민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울을 통해 복음이 증거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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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역사

[사도행전 27장 33절~44절]
33절 -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절 -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절 -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절 -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절 -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38절 -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절 -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절 -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절 -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절 -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절 -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절 -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하나님의 구원 역사
33-37절 : 바울을 통해 배 안의 모든 사람이 음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게 하심
42-44절 : 백부장을 통해 바울은 물론 배에 탄 모든 죄수들의 생명을 구하게 하심

* 도움말
1. 축사하고(35절) : ‘감사하다’는 말이다.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 드린 것을 뜻한다.
2. 배를 걸매(41절) : 원뜻은 ‘배를 정박시키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배 밑바닥이 땅에 닿은 것, 즉 배가 좌초된 것을 뜻한다. 공동번역은 ‘배가 모래톱에 얹히면서’로 번역하고 있다.
3. 움직일 수 없이 붙고(41절) : 배가 모래톱에 걸려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상태, 즉 배가 완전히 멈춰 버린 상태를 말한다.
4.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43절) :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이탈리아로 호송하는 책임을 맡은 백부장 율리오(1절)는 처음부터 바울에게 호의적이었다(3절). 그런 그는 죄수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모두 죽여 버리자는 부하들의 건의(42절)를 거부했다. 이는 분명 그를 통해 바울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 말씀묵상
주님은 비록 겨자씨만 하더라도 진실된 믿음을 보십니다.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눅 17:6).


1. 모든 사람을 격려한 바울
풍랑에 떠밀려 다닌 지 14일째가 되어 배에 탄 모든 사람이 탈진해 있을 때의 일입니다. 276명이나 되는 모든 사람을 갑판에 불러 모은 바울은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축사하고 그들에게 나눠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 상황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위로했습니다(33-37절). 아직도 바람은 드세고 파도는 사납게 뱃전을 때립니다. 따라서 언제 난파당할지 몰라 아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갑판에 사람들을 모으고 잔치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해 주실 줄 믿고 감사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만난 풍랑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며, 더욱더 하나님을 의뢰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풍랑을 만났다면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고만 있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주인이시며, 환난 중에 당신을 건져낼 구원자이십니다(시 50:15).

 
2. 하나님의 구원 역사
날이 밝아 섬을 발견한 선원들은 배를 항만에 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배가 모래톱에 걸려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군사들은 죄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이려 들었습니다. 이때 백부장이 군사들을 제지하는 의외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바울을 살리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39-43절). 백부장은 지금까지 겪은 일들로 인해 바울이 정녕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닫고 그를 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로마 전도를 수행해야 할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역사하신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배는 난파당했지만 배에 탄 모든 사람이 뭍에 상륙해 목숨을 구했으니(44절) 이 또한 하나님의 약속(22절)의 성취인 것입니다.

[도움질문]
1. 바울은 배 안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권하면서 무슨 말로 격려했습니까?(33-34절)
2. 선원들이 항만을 발견하고서 배를 대려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까?(39-41절)
3. 파선된 상황에서 배에 탄 사람들은 어떻게 생명을 건졌습니까?(42-44절) 이로써 하나님의 약속이 한치도 어김없이 성취된 사실은 당신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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