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행음한 첩을 둔 어떤 레위인 19:1-15
이 레위인은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었다(1절). 그는 유다 베들레헴의 한여자를 첩으로 삼았다. 그가 달리 또 어떤 아내를 두었던것 같지는 않다. 어떤 역본에는 '아내 곧 첩'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1) 이 레위인의 첩은 행음을 하고 남편에게서 도망을 갔다(2절). 그런데 갈대아역은 그 구절을 단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그녀가 '그 레위인에게 무례하게 굴므로,' 혹은 '그를 멸시하므로,' 그가 그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자 '그녀가 그에게서 떠났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받아들이고 환대하였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기위해 남편을 배반하고 떠났을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죄를 묵인하지 말아야 했다. 거의 전적으로 부모의 무조건적인 관용때문에 자녀들이 망하는 수가 흔히 있다.
(2) 그 레위인은 직접 그녀를 데리러갔다. 그녀와 화해하기위해 먼길을 떠나온 그 레위인은 그녀에게서 상처를 받고도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해주었다(3절). 이와같이 온화하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것은 위로부터 나온 지혜로운 성격의 일면이다. 그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혹은 '편안하게' 말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로 보아, 그녀는 이전에 잘못한 일을 뉘우치며 슬픔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3) 그녀의 아버지는 그 레위인을 매우 환영하였다.
1)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보고 환영'하며(3절) 삼일동안 후하게 대접하였다(4절). 그 레위인은 자기가 완전히 그녀와 화해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장인의 친절을 받아들였으며, 그녀가 잘못한 일로인하여 그나 그의 딸을 책망하지도 않았다. 그들가운데 있었던 모든 일은 앞으로 그들이 다시 화합해서 즐겁게 살것이라는 희망찬 기대를 갖게하였다.
2)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표시로 더 머물다가도록 간청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그에게 애정을 품고 즐거운 교제를 가졌다.
①그를 자신의 사위로서 그리고 그의 집안에 한 식구로 들어온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대했다. 우리는 우리의 골육지친에게와 마찬가지로 결혼으로 한 집안식구가 된 사람들에게도 마땅히 사랑과 본분을 행해야 한다.
②그를 하나님의 집의 종인 레위인으로서 존대했다.
첫째, 그녀의 아버지는 할수 있는한 오랫동안 머물다가도록 그를 붙들었다. 그 레위인은 비록 융숭한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속히 돌아가야 했다. 선한 사람은 자기가 해야할 일에 마음이 쏠리기 마련이다. 사람이 집에서나가 할일이 전혀없는 곳에서도 오랫동안 즐겁게 머물러 있을수 있다는 것은 집에 할일이 별로 없다거나, 해야할 일이 있어도 할 마음이 별로 없다는 표시이다.
둘째, 그녀의 아버지는 그에게 억지로 다섯째날 오후까지 머물게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후에 증명되었듯이 옳지못한 일이었다(8,9절). 만일 그 레위인 일행이 아침일찍 떠났더라면 그들은 부득이 유숙하지 않을수 없게된 그집보다 더나은 곳에 이를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실로에 도착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4) 그 레위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베냐민 지파의 성읍인 기브아에 부득이 머물지 않을수 없었다. 그 성읍은 후에 '사울의 기브아'라고 불린 곳으로서 실로와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도중에 위치하고 있었다. 밤이되자 그들은 여행을 계속할수가 없었다.
1)이때 그의 종이, 후에는 예루살렘이 되었으나 그 당시에는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여부스 성읍에 들어가서 머물자고 제안하였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했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베냐민의 기브아에서 당했던 것보다는 훨씬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타락하고 방탕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보다도 더 악하고 훨씬더 위험했다.
2)그들은 여부스를 지나서 기브아에 머물렀다(13-15절). 그곳에서 그들이 성읍거리에 앉아있었으나 이 여행자는 비록 레위인이었지만,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 지파 사람들에게는 항시 친절을 베풀라고 특별히 명령하셨지만 기브아에서 매우 쌀쌀한 대접을 받았다.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하는 자가 없었더라(15절).

Ⅱ. 한 노인의 영접 19:16-21
레위인 일행이 이제 꼼짝없이 길에서 꼬박 밤을 새우게 되었다고 걱정하기 시작했을때, 마침내 한 노인이 집으로 초대하였다.
(1) 그들을 초대한 그 친절한 사람은 누구였는가?
1)그는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단지 기브아에 우거하고 있던 사람이었다(16절).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어떤 지파 사람들보다도 사정이 딱한 여행자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할 이유가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인 베냐민은 그의 어머니가 여행하는 도중 이곳 가까이에 있는 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창 35:16,1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곤경에 처해있는 여행자를 몰인정하게 대했다. 그러나 성실한 에브라임 사람은 그를 동정하였고 또 그가 자기와 똑같은 에브라임 산지 사람인 것을 알았을때 더욱더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을 것이다.
2)그는 노인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사라져가고있는 미덕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새로 일어나고 있는 세대들은 모두다 타락하였으므로 그들가운데 어느정도 남아있는 미덕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늙어가는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3)그 노인은 저녁무렵에 들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나태와 쾌락에 빠져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소돔에서와 같이 게으름이 가득하였으므로(겔 16:49) 역시 소돔에서와 같이 그들에게 많은 죄악이 가득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2) 그 노인은 얼마나 자발적이며 관대하게 그들을 초대하였는가? 그 노인은 그들이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간청할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이와같이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기도전에 응답하신다. 참으로 자비를 행하는 사람은 끈질기게 요청할때까지 기회만을 기다리는 자이며 부탁을 받지않았을지라도 기회만 있으면 가서 도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Ⅲ.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 19:22-30
(1) 기브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악행을 저질렀다(22-25절). 그 성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22절) 악행을 저지른 죄인들을 '비류들'(흠정역에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되어있다-역주)이라고 하였다. 즉 그들은 무엇에도 속박되기를 싫어하여 제멋대로 하는 자들로서 마귀를 닮아 그와 연합하여 하나님과 그의 통치에 관여하는 마귀의 자식 곧 벨리알 들이다.
1)기브아 사람들은 그 성읍중에서 조용하게 살고있을뿐만 아니라 훌륭한 가문을 보존하고 있어서 그들의 성읍에 축복과 명예가 되는 이 성실한 사람의 집을 밤중에 거칠고 무례하게 습격하였다.
2)기브아 사람들이 그들의 성읍에 들어와 단지 하룻밤만 묵어가기를 바란 이 나그네에게 특이한 악의를 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예의바른 민족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나그네 집대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 집주인도 그 점을 이유로 내세워 그들을 만류하였다(23절).
3)기브아 사람들은 가장 추악하고 혐오스러운(생각만해도 두렵고 혐오스러운) 방법으로 레위인을 욕보이려고 계획하였다. 그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22절).
①이것은 소돔 사람들이 범했던 죄였기때문에 '소돔의 죄'(Sadomy : 남색)라고 불리우는 죄였다. 그들의 거리에는 소돔의 악이 가득했으니 실로에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그들의 마음속에는 마귀를 품고있으니 옷술에 하나님의 율법을 달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②이것은 기브아 사람들이 다른 어떤 죄에 대해서보다도 가장 깊이 빠져있었던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형벌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 더러운 정욕에 버려두시므로, 그들이 전에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수치로 바꾸었듯이, 이제는 그들 자신을 욕되게 하고있는 것이다(롬 1:24,28).
4)롯과 소돔 사람들의 사건을 잘알고 있었으므로 롯을 닮고자하였던 그 집의 선한 주인인 노인의 책망과 설득에도 그들은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23,24절 ; 참조. 창 19:6-8). 그러나 그 노인이 자기 딸을 욕보이도록 그들에게 내어주려고 한 점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롯의 모범을 따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기 딸을 매음시킬 권리도 없었을뿐더러 선한 결과를 위해 이러한 악을 행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제의조차도 듣지아니하였다(25절). 완고한 정욕은 마치 귀머거리 독사와 같아서 양심을 마비시켜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린다.
5)기브아 사람들은 그 레위인의 아내를 그들가운데로 끌어내어 죽기까지 욕을 보였다(25절).
(2) 이 죄악이 온이스라엘에 알려졌다(26-30절). 욕을 당한 이 가엾은 여인은 동이 트기 시작하여 이 비류들이 가도록 내버려두자(이러한 어두움의 일들은 빛을 미워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곧 남편이 묵고있는 집을 향해갔다(25절). 그녀는 그 문앞에 엎드려졌으며 문지방에 손을 얹고 마치 회개하는듯한 모습으로 얼굴을 땅에 댄채 숨을 거두었다. 그 레위인은 문앞에 있는 그녀를 발견했으나 곧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26,27,28절) 실로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녀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이스라엘에는 그러한 사실을 호소하거나 재판해줄수 있는 왕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백성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길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즉 사회공동체로 하여금 심판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 레위인은 분개할만한 모든 상황가운데서 그가 당했던 악에 대한 진정서와 함께, 자기 아내가 당한 야만적인 취급을 보여주기위해 아내의 시체조각을 특별 사절들을 통해 이스라엘 각지파에게 보냈다(29절). 그 시체조각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그 일의 발생경위를 듣고나서 그 사건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동일하게 말하였다.
1)기브아 사람들은 이제까지 이스라엘에서는 결코 행해진 적이 없는 가증스러운 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30절).
2)이 사악한 일을 처벌하기위해 어떤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할 것인가를 논의하기위해 이스라엘 총회가 소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악한 악을 처벌함으로써 방탕의 물결이 쇄도해 들어오는 것을 막을수 있고, 사악한 범죄로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온이스라엘 위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회의에 참석하는 자들이 모든 어려운 문제를 논의할때 지켜야하는 세가지 중요한 규칙을 생각해 보자.
①회의에 참석하는 각사람은 의견을 발표하기전에 먼저 문제를 자기 나름대로 냉정하고 충분히 숙고해 보아야 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그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해보아야 한다.
②모든 사람이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동료의 조언을 구하여 그의 의견과 이유를 들은 다음에 그것을 숙고해보아야 한다.
③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후 각자의 양심에 따라 투표를 하도록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안전하다.

# 핵심
19:1-30
한 레위 사람과 그의 첩에 관한 일화를 통해 사사시대의 소돔과 고모라같은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첩(19:4)
성경시대에는 첩을 두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앗수르에서는 첩이 본처에게 복종하게 되어있었지만, 그 자식들은 똑같이 아버지의 상속을 받았다. 아브라함과 솔로몬도 첩을 두었다(창 16:2 이하; 왕상 11:3). 첩이라고 하더라도 그 여인의 집안과는 보통의 결혼관계에서와 같은 사돈관계가 이루어졌다. 더욱이 첩의 신분도 율법의 보호를 받았다(출 21:7-11; 신 21:10-17). 하지만 성경은 원칙적으로 축첩제도를 용납하고 있지않으며, 후대의 선지자들과 예수님도 일부일처제를 강조했다.

# 묵상
행음한 자의 결과 ( 19:2 )
만약 율법이 엄격히 시행되고 있던 때였다면 행음한 자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신22:22). 더군다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이나 그것이 묵인되고 있다는 것은 그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아내된 성도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영적간음을 범할때가 자주 있습니다.
쾌락에 대한 성도의 자세 ( 19:4-9 )
단번에 제거함으로 그것이 연속되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쾌락에는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고자하는 가장 큰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온 세상적인 유혹들을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치심으로써(마4:4)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한편 레위인은 장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머물다가 닷새째 되는 날 저녁에 무리해서 출발함으로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 비류들에게 행패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 ( 19:10-15 )
본문의 레위 사람처럼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겉으로만 경건한 체하는 가증스런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레위인으로서 첩을 거느렸고, 또 행음까지 한 그 첩을 다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외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서지않고 인간을 의식하고 바라볼때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를 하십니다(마23:1-39).
나그네에 대한 바른자세 ( 19:16-21 )
이스라엘에서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서는 나그네가 왔을때 먼저 영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손님대접을 해서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한 사람도 있습니다(히13:2).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공동체는 서로의 것을 나누며 돕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는 초대교회 시대의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행2:43-47).
타락한 백성의 모습 ( 19:22-25 )
이렇게 타락한 자들은 육체적인 일에만 몰두합니다. 타락은 영적인면이 어두워진 것으로, 빛보다는 어두움을 더좋아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런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과 자유의 빛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요8:12).
나그네를 살리려는 노인 ( 19:23, 24 )
이 노인은 차라리 자기 딸을 주더라도 나그네를 살리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봉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합니다(빌2:5).
위기속에서의 레위인의 태도 ( 19:24-30 )
그는 자기 첩을 대신 희생시키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람이 죄로인해 우둔해지면 큰위기가 닥쳤을때 하나님을 의뢰하는 대신 남을 희생시키고, 또 온민족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며, 결과적으로 한지파를 몰살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를수도 있다는 것을 이 레위인의 경우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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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단지파의 정탐 18:1-6
(1) 단지파 사람들 전체가 아닌 단지파 중의 한가족은 가나안땅을 배분할때 라이스 지방을 그들의 기업으로 눈여겨 두었었다. 지금까지 이 가족은 이미 유다 지파와 블레셋 족속 사이에 있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한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이제 그 형제들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1절)때문에 자기의 성읍으로 돌아가고 싶지않아 마침내 스스로 분발하여 그들이 거할 땅을 찾기 시작하였다.
(2) 단자손은 정탐을 보냈다. 다섯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하며(2절). 그들이 보낸 사람들은 모두가 용감한 자들이어서 만일 적과 만나게 될경우에도 그 위험을 정면으로 맞설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3) 이 정탐꾼들은 미가의 제사장을 전부터 알고있었다. 이 레위인이 이전에 때때로 그들의 땅을 돌아다녔기때문에 그들은 이 레위인을 알고있었던 것같다. 그들도 레위인의 음성을 듣자 그를 알아보았다(3절). 이 레위인이 신당에서 신탁을 맡고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그들은 레위인에게 지금 하려는 일이 순조로울지 어떨지를 말해달라고 부탁하였다(5절).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는 우림보다도 미가의 드라빔을 더 신뢰했던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로를 지나오면서도 거기에 있는 하나님의 대제사장에게 묻지않았는데 이곳에서는 미가의 집에 있는 보잘것없는 레위인에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 레위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갈길을 격려하시고 성공을 약속하시는 답변을 해주셨다고 말해줌으로써 그들을 믿게했다(6절).

Ⅱ. 단지파 사람들의 출정 18:7-13
(1) 정탐꾼들이 라이스 성을 관찰하였다(7절). 그곳은 통치와 방비가 매우 허술하여 침략자들에게 정복되기가 아주 쉬워보였다.
1)그곳은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악한 짓을 할수 있었으며 권세를 잡은자 즉 통치권을 부여받은 자도 없었기때문에 거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주 뻔뻔스러운 부도덕한 행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갖가지의 공동의 재난을 당함으로 서로를 약화시키고 파멸시키게 되었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생각해 보자.
①권세잡은 자의 직무는 무엇인가? 그들은 제재권을 부여받은 자로서 악한 일을 억제해야 한다. 그들은 악한 모든 것을 제지하고 억제하면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두려운 대상이 되게 하기위해 권세를 위탁받은 제재권의 소유자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킬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그러나 치리자의 권세는 사람들의 나쁜 행실을 제지하고 그들의 손을 묶어둘수 있으며, 그렇게해서 악한 자들의 사악함을 제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을 경우와 같이 그렇게 유해하거나 전염되지는 않게할수 있다.
②악을 제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사용되어야 하는가? 죄인들은 수치를 당해야 한다. 하나님과 자신의 양심앞에서는 죄에 대한 수치를 느끼지않아 제지를 안받는 자들도, 사람들앞에서 당하는 형벌은 수치스럽게 여겨 제지를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덕행을 칭찬함으로써 사람들로하여금 죄를 몰아내고 그것을 경멸하며 게으름과 술취함, 사기, 거짓말 그리고 그밖의 죄들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기위해서는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되어야 한다.
③권세잡은 자도 없고 어떤 목적을 위해 검을 가진 자도 없는 그런 곳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파멸직전에 놓여있는가를 보라.
2)그곳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라이스 백성들은 태평하고 조용하며 걱정이 없었고 그들의 문은 열려있고 성벽은 무너진채로 있었다. 이는 그들이 어떠한 위험도 전혀 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는 그들의 게으름과 겁많음때문에, 그들이 처음에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만큼 가나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지못했다는 증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성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당되었다는 것을 알고있었을 것이다.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7절). 이 사실은 라이스 백성들이 게을렀거나 아니면 그들끼리만 지내기를 좋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의 어떤 이웃에게 복종하거나 그들과 동맹을 맺는 것을 경멸하였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라이스 백성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2) 따라서 그 정탐꾼들은 그들을 보냈던 고향 사람들에게 이 라이스 성읍을 치려는 계획을 실행하자고 격려하였다(8-10절).
1)그 정탐꾼들은 그 라이스 땅이 그들이 지금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몰려서 살고있는 이 산지보다 훨씬 좋다고 말하였다(9절).
2)그 정탐꾼들은 그들이 그땅을 얻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들이 그땅을 속히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라이스 백성은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10절).
(3) 단지파 자손들이 라이스를 치러갔다. 단지파의 이 가족은 그 성읍을 그들의 기업으로 차지하기위해 마침내 그곳을 향해 출발하였다(11-13절). 군사의 수효는 모두 합쳐서 6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 지파의 다른 가족들가운데서 아무도 그들을 도우러 오지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지 오랜후의 일이었고 아직까지는 그들가운데 공적인 연대감이 조성되지 않았던 때였다. 21절을 보면 이 600명은 그곳에 정착하기위해 떠난 사람들의 전체 수효였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재산 곧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가축'이 딸려있었기 때문이다(21절). 그들은 행진을 시작한후 이튿날에 미가의 집 가까이에 있는 에브라임 산지에 도착하였으며(13절) 거기에서 잠시 머물렀다.

Ⅲ. 단자손들이 미가의 신상을 탈취함 18:14-26
단지파 자손들은 정탐꾼들을 보내어서 그들의 거할 땅을 찾게 했었다. 이제 그 정탐꾼들은 전에 정탐하러 왔었던 곳에 이르게되자 동행한 사람들에게 전에 발견했던 한가지 사실 즉 신상이 있는 곳을 알고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여기 이 집에는 우리에게는 없는 에봇과 드라빔이 있고 예배의식에 필요한 좋은 것들이 아주 많이 있다.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14절). 우리는 그 신상들에게 우리의 행사를 물었고 그에 대하여 좋은 답변을 들었다. 그 신상들은 가질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 신상들을 차지한다면 우리는 더욱 번영할수 있고 또 라이스의 성의 주인이 될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그들의 태도는 옳다고 볼수 있다. 그들가운데 하나님을 모시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쌍하게도 그들은 이 신상들을(예배의식에 사용되기보다는 꼭두각시놀음에 사용되기에나 적합한) 하나님의 임재의 표증들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정착하려고 가는 그곳은 실로에서 아주 멀기때문에, 실로에 아주 가까이 살고있는 미가보다는 자기들에게 '신상'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 신상들을 가져가기로 결정한 그들이 어떻게해서 그 신상들을 훔치게 되었고 제사장을 구워삶았으며 미가를 겁주어 그것들을 도로 찾아가지 못하도록 했는가를 살펴보자.
(1) 미가의 집과 그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며 특별히 신상이 있는 곳을 알고있는 다섯명의 정탐꾼들은, 단자손들 600명이 문에서 제사장을 붙들고 얘기하고 있는동안 신당에 들어가서 에봇과 드라빔과 그에 따른 모든 부속물과 함께 신상을 가지고 나왔다(16-18절). 이 딱한 제사장이 자신의 신들을 얼마나 소홀히 관리했는가를 보라. 또한 도난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수 없는 이 딱한 신들의 무력함을 보라. 이 어리석은 단자손들이여! 단자손들은 실상 그 신상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으나 만든 것만큼이나 나쁜짓인 도둑질을 해서 그들의 신으로 세운 것이다. 오페라가 서곡부터 시작하듯이 그들의 우상숭배도 도둑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둘째 계명을 범하기위해 여덟째 계명부터 범하기 시작했으며 이웃의 물건을 훔쳐 그것으로 자기들의 신을 삼았다.
(2) 그들은 레위인 제사장을 부추기고 신상들을 가져갈뿐만 아니라 그도 함께 데려가겠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의 기분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레위인 제사장이 없이는 이 신상들을 잘 사용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 점을 살펴보자.
1)단자손들은 어떻게 그 레위인을 꾀었는가(19절)? 그들은 그 레위인이 자기들에게로 올 경우에는 지금 그가 받고있는 것보다 더낫게 대우해 주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였다.
2)단자손들은 어떻게 그 레위인을 설득하였는가? 그들은 단지 몇마디 말로 그를 설득할수 있었다. 그의 마음이 기뻐하였다(20절). 그 레위인은 신상들을 가지고 가서 온 성읍에 우상숭배를 퍼뜨렸다. 홀 주교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10세겔을 주고 레위인을 자기편으로 만들수 있었다면, 11세겔을 주는 자가 있게될 경우엔 그를 잃게되리라는 것이다. 선한 양심을 버린 자를 무엇으로 붙들수 있겠는가? '삯군이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이라'(요 10:13).
(3) 단지파 자손들은 미가가 자기의 신상들을 찾기위해 쫓아왔을때 그를 겁주어 돌려보냈다. 미가의 이웃사람들도 함께 단지파 자손들을 쫓아갔다. 그 도적들은 그들의 어린아이들과 가축들을 앞에 두고 나아갔기때문에(21절) 급히 서둘러 갈수가 없었다. 그 추적자들은 그들에게 말을 걸기위해 등뒤에서 그들을 불렀다. 그러자 맨뒤에서 따라가던 사람들이 몸을 돌이켜 미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23절). 미가는 그들과 논쟁하였고 마땅히 그들을 설득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신상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을 내세웠다. 그러나 단자손들은 자기들의 강함을 내세우며 맞섰으므로 결국 단자손들이 이기게 되었다.
1)미가는 분명히 단자손들이 자기에게 잘못을 한것이라고 주장했다(24절). "너희는 나의 지은 신들 곧 하나님의 형상들을 취하여 갔다. 그것은 내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지으신 분만을 하나님으로 경배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미가가 자신이 만든 것들을 자신의 '신들'로 불렀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2)단자손들은 만일 미가가 계속해서 그 신상들을 되돌려달라고 고집한다면, 그에게 해를 끼치고 말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않았으며 그가 이 신상들을 만든 값을 지불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에게 좋게 말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만일 미가가 즉시 그의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를 죽임으로써 그들의 강도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였다(25절). 무릅쓸만한 용기가 없었으며 또 그의 신들이 자기를 보호해주거나 책임져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순순히 신상들을 포기하였다(26절). 우리의 우상을 잃어 버림으로인하여 그 우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되고 '우리가 더이상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고 말하게 된다면 그 손실은 우리에게 말할수 없이 큰 이득이 될 것이다(참조. 사 2:20;30:22)

Ⅳ. 라이스의 정복 18:27-31
(1) 단지파 자손들이 라이스를 점령하였다. 그들은 행진을 계속하였고 도중에서 아무런 재난도 당하지 않았기때문에, 그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미가의 신상을 도적질한 일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번영하고 있다는것 때문에 자기들의 불경건한 행동을 스스로를 옳다고 여긴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1)라이스 백성들은 평온하고 방심한 상태에 있었기때문에 그들에게 다가온 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쉽게 정복당하고 말았다(27절).
2)단지파 자손들은 라이스 백성들을 정복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라이스 백성들을 모두 칼날로 쳤고 성읍을 다시 건축하겠다고 결심했기때문에 라이스 성읍을 불살랐다(27,28절).
3)그땅을 정복한 그들은 그땅에 아주 정착하였다(28,29절). 그들은 성읍을 혹은 성읍가운데 많은 부분을 다시 짓고 그 성읍을 '단'이라고 이름지음으로써 그들이 비록 형제들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살고있으나 태생은 단지파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2) 우상숭배가 그곳에서 즉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기업으로 할당된 땅을 차지하게 함으로써 그 약속을 이행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땅에 정착한 후에 첫번째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었다. 그들은 정착하자마자 '그 새긴 신상을 세우므로'(30절) 사악하게도 승리의 공로를 그 우상에게 돌렸다. 그들의 제사장의 직무를 맡은 그 레위인의 이름이 마침내 여기에서 나오는데 그는 '므낫세(한글개역은 '모세' -역주)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원본에는 '므낫세' (Manasseh)라는 단어앞에 @이 붙어있는데 어떤 유대인 율법학자들은 그것은 그 문자를 빼내는 표시라고 말한다. 그렇게하면 '므낫세'는 '모세'가 될 것이며 따라서 이 레위인은 유명한 모세의 손자였다고 말한다. 라틴어역 성경도 그것을 '모세'가 될 것이며 따라서 이 레위인은 실제로 게르솜이란 이름의 아들을 두었던 그 유명한 모세의 손자였다고 말한다. 라틴어역 성경도 그것을 '모세'라고 읽는다. 그리고 설령 실제로 모세에게 방탕하고, 우상숭배를 퍼뜨리는 일에 이용되기에 적당한 도구였던 손자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위대하고 선한 사람들의 후손이 불행하게 타락한 유일한 예는 아니다. 자손들의 자손이 언제나 선조들의 면류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식한 패트릭 주교는 요나단에 대한 유대학자들의 견해를 근거없는 독단이라고 말하여 이 요나단은 레위 지파중의 다른 어떤 가족의 자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리는 이 장 마지막부분에서 이 타락상이 언제까지 계속되었는가를 보게 된다. 이 요나단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라이스에 정착한 단지파 가족의 제사장으로 일하였다. 이 신상들은 사무엘시대까지 계속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렇게 오랫동안 '실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무엘시대에는 아무도 이 우상숭배를 억압하고 폐지하기위해 실제적인 조치가 취해졌던것 같다. 영적인 병은 걸리기는 쉽지만 일단 걸리고나면 치료받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병에 감염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잘 알수 있다.

# 묵상
사사시대의 신앙풍토 ( 18:1-20 )
이 시대는 한마디로 신앙의 타락과 사회전반의 혼돈상태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당시는 개인주의와(삿17:1-13) 잡신숭배(삿17:3-5), 현실기복(삿17:2, 13), 그리고 상업주의와(삿18:14-20) 형식주의(삿18:27-31)가 팽배해 있었습니다.
라이스 성 사람들의 삶 ( 18:7 )
이들은 아무런 염려없이 한가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않고 살았습니다. 즉 라이스 성 사람들은 자기들만 행복하게 살면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중에도 이웃을 위해 싸울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 소경인 자들 ( 18:14 )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외에 다른 것에서 뜻을 찾고자 합니다. 영이 깨어있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영의 눈이 뜨인 사람들에게 열려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시를 먼저 보이시고 행하십니다(암3:7).
욕심많은 자의 특징 ( 18:19, 20 )
더나은 조건들이 올때 서슴지않고 그것을 따라갑니다. 욕심은 죄를 낳는 원천입니다(약1:15). 그리고 그것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에 만족하며 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부의 잘못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 ( 18:27-31 )
아무리 작은 죄도 그것을 방치해둘 경우는 점점 커져서 그 영향력이 확대됩니다. 죄는 마치 누룩과도 같아서 처음에는 작게 보이다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서는 극명하게 단절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라이스 사람들의 영적상태 ( 18:27 )
이들은 한가하고 평안하며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이렇게 성도가 방심하여 경계하고 있지않을때 그 순간을 이용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경계하고 깨어있어야만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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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미가의 신상 17:1-6
(1) 미가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일로인해서 불화가 있었다.
1)아들 미가가 어머니의 돈을 훔쳤다. 이 노파는 오랫동안 푼푼이 긁어모아서 은 일천일백이라는 아주 많은 액수를 저축하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죽게되면 그 돈을 아들 미가에게 물려주려고 마음먹었던것 같다.
2)그 어머니는 그녀의 돈을 훔쳐간 아들을 저주했다. 돈을 사랑함이 어떤 재앙을 초래하게 되며 모든 혈연관계의 의무와 평안을 어떻게 파괴시키는가를 보라. 선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손실을 당하게되면 기도를 하지만 악한 사람들은 저주를 한다.
(2) 미가가 그의 어머니와 화해하였다.
1)미가는 그의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 무서워서 돈을 돌려주었다.
2)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뉘우치는 것을 보고 기뻐서 자신의 저주를 철회하고 아들이 복받기를 원하였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2절).
(3) 미가와 그의 어머니는 그 은으로 한 신상을 만들어 그들의 집안에 우상을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이 일은 단지 하나의 형상을 가지고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으로서 둘째 계명을 범하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이것은 바알이나 목상과 같은 다른 신들을 예배하도록 길을 터주게됨으로써 '크고 첫째되는' 계명을 어기는 일이 되었다.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1)미가의 어머니가 이 일을 궁리해냈다. 은을 도로 찾게 되었을때 그녀는 그 은을 도둑맞기 전에 이미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3절) 하고 꾸며댔다.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내 것인데 네가 그 돈에 마음을 두고있으니 우리 둘다 그것을 갖지말고 함께 우리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쓰자" 이 노파는 애굽에서 나왔던 사람들중의 한 사람일 것이며 그녀는 그곳에서 보았던 그런 형상을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처럼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 그녀의 옛경험과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고 아들에게 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2)미가는 그의 어머니의 계획에 응했다. 미가는 그의 어머니가 그 계획을 제안했을때 둘째 계명의 내용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저했던것 같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설득에 못이겨 우상을 만들었을때 미가는 그 우상들을 매우 흡족히 여겼을뿐만 아니라 크게 기뻐하였다. 이 노파의 탐욕이 미신에 대한 집착보다 얼마나 더 강했는가를 보라. 그녀는 새긴 신상을 만들기위해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은을 다 바치려고 했으나(3절) 그것이 완성되었을때는 그 전체의 오분의 일도 채 못되는 은 이백세겔만 내놓았다(4절).
①이 일로인해 어떤 타락이 발생하였는가(5절)? 미가는 '신당' 혹은 70인역에 의하면 '하나님의 집'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그 신당이 실로에 있는 것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오히려 미가는 마음대로 다룰수 있는 종교를 원했던 백성들이 원하는대로 자기의 신당을 이용할수 있었기때문에 자기의 신당이 실로에 있는 것보다 더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 집은 진리의 길에서 이탈하여 모든 속임수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갈대아역에 의하면 '오류의 집'이었다. 미가는 신전안에서 드라빔이라는 작은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부터 때때로 조언을 구하거나 정보와 지식, 예언을 얻고자 했다. 이렇게해서 여호와의 명예가 존중되는 것처럼 꾸며졌지만(3절) 실상 하나님의 제도는 무시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할길 없는 노골적인 우상숭배와 귀신숭배에 빠져들어갔다. 미가의 집에 있는 약간의 공간 혹은 방이, 신전 혹은 하나님의 집으로 지정되었다. 또 미가는 직무를 수행 그의 제사장을 위해 하나님의 성막에서 쓰였던 옷들을 모방하여 에봇 곧 거룩한 의복을 만들고 아마도 장남일 것으로 생각되는 아들 하나를 따로 세워 그의 제사장이 되게하였다. 여기서부터 우상숭배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살을 파는 썩어들어가는 문둥병처럼 퍼졌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은 1,100개가 블레셋 방백들이 삼손을 잡기위해 쓰여졌던 것같이 여기서는 특별히 같은 액수의 은이 단지파의 신앙을 타락시키는 우상을 만드는데에 바쳐졌다는 점을 주목하게 한다.
②이렇게 타락하게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6절). 즉 이같은 우상을 세우는 일을 저지할 사사나 군주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6절). 그리고 급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 우리에게 정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며, 또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와 도고를' 해야할뿐만 아니라 '감사를' 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 일인가(딤전 2:1,2). 이 두가지 큰제도 곧 관직과 성직이 합당하게 실행되어 나가는 것만큼, 세상에서 하나님의 보호아래 신앙을 보존하는데 이바지하는 것도 없다.

Ⅱ. 미가의 제사장이 된 레위인 17:7-13
여기에는 미가가 레위인 한사람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삼는 이야기가 나온다.
(1) 레위인의 한소년이 외가쪽으로는 유다 가문에 속했고 베들레헴에 살고있었다. 그 소년은 '거할 곳을 찾고자' 그곳을 떠나 여행하다가 에브라엘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8절). 어떤 학자들은 그가 베들레헴에서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아 굶어 죽게 되어서 불가피하게 그곳을 떠나게 되었던 것은 그의 불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을 버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목회자들이 천대받고 생계가 곤란하여 쩔쩔매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쇠퇴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2) 미가는 그 소년과 어떤 흥정을 하였는가?
미가는 그를 자기 가족으로 끌어들이며 다음과 같이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10절).
1)높은 지위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미가는 그에게 신임장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레위인은 '보통 백성'으로 세워진 여로보암의 제사장처럼 (왕상 12:31) 손으로 만든 우상의 제사장이 되는데 아주 적격이었다. 아무것으로나 신을 만들수 있는 사람들은 또한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울수 있다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근근이 살아갈만한 생활비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미가는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의복과' 그리고 약 25실링정도 되는 은 열세겔을 일년간 용돈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어떤 역본에는 두벌 옷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는 좋고 하나는 나쁜 것으로서 평상시와 거룩한 날에 각각 입을 것이었다. 아무튼 이것은 하나님께서 업무를 잘 수행하는 레위인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것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보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버리는 자들은 결코 더나은 직무를 얻지도 못할 것이며, 보다나은 주인을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성직은 가장 훌륭한 직업이지만 세상에서의 보수는 형편없다.
(3) 레위인이 그와 함께 거하였다.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11절). 그 레위 소년의 할 일은 미신적인 일이었고 그 대가는 형편없는 것이었는데도 그는 만족히 여겼다. 미가는 감히 그 자신이 이웃들중 어느 누구보다도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여 이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12절).
(4) 미가는 이 일을 만족히 여겼다(13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을 주실줄을 아노라.
1)미가는 하나님께서 아주 시기적절하게 한 레위인을 그의 집에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우상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증거라고 생각하였다.
2)미가는 여전히 그의 집에 새긴 우상을 두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제대로 세움으로써 잘못되었던 점이 수정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부분만 시정하고서도 자신들의 상태가 올바르게 되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그들은 어떤 한가지 일이 이전처럼 나쁘지 않기때문에 이제는 자기들이 선할만큼 선해졌다고 착각한다.
3)미가는 자기가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매우 칭찬할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주제넘은 월권 행위였다.
4)미가는 레위인을 자기 집에 두었기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았을지라도, 그들이 선하게 되지않고 그 제사장을 신앙에 유익이 되게 활용하지 않는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삼았다는 사실로인하여 하나님께서 선을 베풀어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 핵심
17:1-18:31
17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사사기의 부록과 같은 부분이다. 사사 시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도덕적인 타락상을 단지파의 우상숭배(17,18장), 레위인의 첩에 얽힌 끔찍한 일(19장), 이스라엘의 내전(內戰)(20장)과 같은 사건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증거한다.

# 묵상
신상을 만든 미가의 어머니 ( 17:1-5 )
이는 개인의 종교생활을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심해지면 새로운 신비주의를 낳을수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여러번에 걸쳐 하나님을 언급하지만, 그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않는 우상숭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계시된 뜻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소견에 옳아보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21:25).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른 목회관 ( 17:10 )
목회자는 물질이나 세상의 이익에서 떠나야합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할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의 삶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막8:34).
참된 거룩함 ( 17:12 )
거룩함이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도란 신분적으로 세상사람들과 분리되었다는 뜻과 함께 더나아가 인격적으로도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통치를 받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의 기준 ( 17:13 )
미가는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고서, 제사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오해 했습니다. 복은 겉모양을 기준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진실한 내면을 보시고 복을 주시기때문에 자기를 자랑하는 바리새인보다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세리같은 사람들에게 더 큰복을 주십니다(눅18:11-13). 성도가 복을 받을수 있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사는 것입니다(시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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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성문을 옮긴 삼손 16:1-3
(1) 삼손은 죄를 범하였다(1절). 그가 처음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다는 것은 어느정도 용서받을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블레셋 사람들가운데서 우연히 보게된 기생과 연합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인으로서 그리고 나실인으로서의 영예를 더럽히는 일이었다. "그 일을 가드에 알리지 말라."
(2) 삼손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가사의 방백들에게 삼손이 그 성읍에 있다는 소식이 들어갔는데 이는 아마도 배반 잘하는 그 기생이 직접 알렸을 것이다(2절). 그러자 그들은 즉시 성문을 닫아걸고 보초를 세웠으며 삼손이 위험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지켰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삼손을 잡아가두었다고 생각하여 다음날 아침에는 그를 죽일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술취함과 부정과 육욕과 같은 세속적인 욕망에 빠진 자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대적들에게 포위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3) 삼손은 가사에서 탈출하였다(3절). 그는 한밤중에 깨어 일어났다. 아마도 그는 양심의 가책에 못견뎌서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사랑이기도 하지만 그는 아마도 당시 그가 범하고있던 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죄를 짓고있는 자신에 대해서 증오하며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한 죄악에 빠지지않으리라는 경건한 결심을 하면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누워있었다면 그것은 옳지못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누워있었다면 그것은 더욱 나쁜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즉시 성문으로 갔다. 그는 성문을 부수지않고 성 문짝들과 문설주와 빗장을 빼어가지고 산꼭대기로 올라감으로써 자기를 성문과 빗장으로 가두어두려는 그들을 비웃었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위대한 힘을 입증했으며, 죽음과 무덤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표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 입구의 돌을 굴리시고 거기서 스스로 나오셨을뿐 아니라, 무덤의 문과 빗장을 치워버리심으로써 이후로는 무덤을 그의 백성 모두에게 열린 감옥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Ⅱ. 들릴라의 유혹 16:4-17
불에 덴 아이는 불을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삼손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큰힘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지혜에 있어서 어린아이만 못하였다. 즉 그는 여인을 사랑하고 정욕을 품음으로써 큰위험과 재난에 빠졌었지만 그래도 주의하지 않고 똑같은 함정에 또다시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이 세번째 경우에서 그는 그에 대한 대가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지불하게 된다. 삼손을 망쳐버린 이 사악한 여인은 여기서 '들릴라'라고 불리우는데, 이 불명예스러운 이름은 사람들에게 친절한 체하면서 아첨과 거짓으로 그들에게 멸망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표현할때에 잘 사용된다.
(1)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다(4절). 그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블레셋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녀가 이스라엘 사람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일 그녀가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마음가짐은 블레셋 사람이나 다른바 없었다.
(2) 블레셋 방백들은 그녀로하여금 삼손을 배신하게 만들었다(5절).
1)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에게 자기들이 삼손의 교만을 꺾고 그를 괴롭힐 생각이라고 말했다. 즉 그들은 삼손이 자기들을 해할수 없게 만들려는 것뿐이지 그외에는 삼손에게 어떤해도 입히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2)그들은 삼손의 큰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법을 써야 그를 결박할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들은 들릴라에게 삼손에게서 그것을 알아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것이 그들에게는 매우 이로운 것이라고 말했으며, 아마도 삼손이나 그녀에게는 어떤 피해도 입히지않으리라는 것을 약속해 주었을 것이다.
3)그들은 이 일을 위해 그녀에게 많은 대가를 지불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여 그들 각각이 은 1,100씩 도합 5,500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녀는 이 돈으로인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척하고 있는 사람을 배신하는 일에 고용되었다.
(3) 삼손은 꾀를 부려 그녀의 요구를 여러번 회피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이 아니고서는 그를 결박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척하면서 '그의 큰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으며 '어떻게 하면 그를 결박하여 곤고케 할수 있을지를 삼손에게 물었다(6절).
1)삼손은 그녀가 매우 조르자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①그는 '푸른 칡 일곱'가닥이라면 자기를 결박할수 있다고 말했다(7절). 그 말대로 시험해 보았으나(8절). 그는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쉽게 끊었다(9절).
②그녀가 계속해서 끈덕지게 조르자(10절) 삼손은 그녀에게 쓰지아니한 새줄이라면 그를 묶어 꼼짝 못하게하여 다른 일반사람처럼 쉽게 다를수 있다고 말하였다(11절). 이것도 실행해 보았으나 실패하였다. '새줄이' 그의 팔에서 '실같이' 끊어졌다(12절).
③그다음에 삼손은 그녀에게 그의 머리털 일곱가닥을 위선에 섞어짜면 그를 결박할수 있다고 말하였다(13절). 이 말은 그가 이제까지 말해주었던 그 어느것보다도 사실에 가장 가까웠다. 이 말대로 그를 시험해 보았을때 그가 순전히 머리털의 힘만으로도 '직조들의 바디와 위선'을 다 빼어낸 것을 보면 그의 힘은 거의가 그의 머리털에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2)이 모든 실험을 다 실행해 보는가운데 삼손의 약함이나 들릴라의 사악함이 더욱 드러났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렵다.
①그 비밀이 밝혀지게 되면 삼손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캐내기위해 그녀가 끈질기고 부당하게 그를 조른것보다 더 사악한 일이 있을수 있겠는가? 마치 그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의 무릎위에 그의 머리를 올려놓고 동시에 속으로는 그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려고 궁리하는 그녀만큼 야비하고 부정직하며 그릇되고 배신적인 자가 어디 또 있겠는가?
②자기에게 해를 끼치려고 모의하고 있다는 것을 그처럼 분명히 알고있으면서도 그녀와의 교제를 계속하고 있는 삼손만큼 어리석은 자기 어디 또 있겠는가?
(4) 삼손은 마침내 자신의 중대한 비밀을 밝혔다. 따라서 만일 이 누설로인해서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다가온다면, 그는 자신의 파멸을 노린자에게 비밀을 지키지 못했던 자기의 잘못을 탓해야만 하는 것이다. 들릴라는 '소멸하는 자'란 뜻인데 그녀는 삼손에게 대해서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1)그녀는 삼손을 얼마나 괴롭혔는가? 그녀는 만일 그가 이 문제에 있어서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가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노라고 말한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15절). 그녀는 여러날동안 끈덕지게 그를 성가시게 굴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때문에 세상 살맛이 없어질 지경이었다(16절).
2)그녀가 어떻게 삼손을 정복하였는가?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17절).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정욕에 빠진 그를 형벌하시기위해 그로하여금 이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셨다.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말라'(13:5). 그를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린 것이 그의 힘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성별의 표지가 곧 그의 힘의 표지였다. 그는 성별의 표지를 상실하면 후자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만일 내가 머리를 깎으면 나는 더이상 나실인이 아니기때문에 내힘도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힘이, 그것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수 없는 머리털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들을 찬미하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은혜로운 방편들로 정해주신 말씀과 성례와 기도안에서만 그 은혜를 계속해서 받을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도록 우리를 가르친다.

Ⅲ. 삼손의 비극 16:18-21
삼손은 자신의 힘의 비밀을 누설한 어리석음으로인해 치명적인 결과를 당하였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1) 들릴라는 돈을 확실히 자신의 수중에 넣기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한 사람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사고팔리는 것을 보았을때 그것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했을 것이다.
(2) 그녀는 흥정대로 그를 블레셋 방백들에게 넘겨주기위해 어떠한 조처를 취했는가? 그녀는 매우 배신적인 방법을 썼다.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19절). 방심의 치명적인 결과를 보라. 사단은 사람들을 토닥거려 재움으로써 그들을 파멸시킨다. 즉 그들을 치켜세워 자신들의 안전을 과신하게하여 아무것도 주의하지도 않고 염려하지 않게 만든다음, 그들의 힘과 명예를 빼앗고 자기 포로로 삼아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다. 삼손이 잠들자 그녀는 준비시킨 사람에게 그의 머리를 깎게하였다. 그는 삼손이 깨지않게 아주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그의 머리털을 깎았다.
(3) 삼손은 그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20절). 그는 깨어나자마자 곧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린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전과 같이 말했다.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20절). 그는 즉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줄은 깨닫지 못하였더라. 그는 머리가 잘린것 때문에 자기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지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가 자기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들은 하나님을 노엽게하여 떠나가시도록 해놓고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4)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사로잡은 즉시 그에게 어떻게 했는가(21절)?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에게서 떠나셨으므로 그를 사로잡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정욕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면 틀림없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깨어나게될 것이다. 그들은 들릴라에게 약속했던대로 삼손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무력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을 썼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사로잡고서 그를 마음대로 부릴수 있다는 것을 알고난 다음에 첫번째 행한 일은 아랍 역본대로 말하자면 '불로 지져 그 눈을 빼낸'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시력이 그의 머리카락의 힘처럼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아무리 강한 그의 팔이라도 그것을 안내해줄 눈이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므로 만일 그의 눈을 멀게하면 그는 영원히 장님이 될것으로 믿었다. 그의 눈은 죄를 끌어들인 창이었다. 그는 가사에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었다(1절). 따라서 형벌도 그 눈에서 시작된 것이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21절). 이는 바로 얼마전까지만해도 삼손이 힘을 과시했던 바로 그곳에서(3절) 이제는 그가 무력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죄악의 줄로 묶여있는 삼손을 다시 놋줄로 매어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다. 불쌍한 삼손이여, 네가 참으로 패망하였도다! 참으로 네 명예가 사라졌도다!

Ⅳ. 삼손의 최후 16:22-31
비록 삼손의 생애의 마지막 단계는 불명예스러웠지만 그의 죽음은 영광스러웠다. 삼손은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한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다음의 사실들에서 하나님께서 그와 화해하셨다는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삼손에게는 나실인의 표시가 다시 회복되었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즉 그의 머리털이 깎이기 전처럼 길고 빽빽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삼손의 머리털이 그렇게 자랐다는 것은 특별한 일로 여겨지며 이것은 삼손이 회개했으므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특별한 표시였던것 같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원수들을 파멸하시는 일에 삼손을 사용하셨다. 이는 그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즉시 구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명예를 보존하시기 위해서였다.
(1) 그들은 얼마나 무례하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했는가?
1)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적인 다곤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들은 이 다곤을 그들의 '신'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들이 직접 만든 신으로서 몸 윗부분은 사람의 모양이고 아랫부분은 물고기 모양으로 순전히 상상의 생물의 형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에 이 다곤을 이용하였다. 오직 다곤과 같이 누추한 신만이 그런 죄악의 후원자가 된다.
2)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용사인 삼손을 희롱함으로써 하나님을 모욕하였다. 그들은 장님이된 삼손이 비틀거리고 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그들은 "네 하나님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말하였다. 삼손은 회개하는 자로서 경건한 슬픔으로 인내하며 그 모욕을 자신의 죄악에 대한 형벌로 받아들였다.
(2)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정당하게 삼손의 손을 빌어서 갑작스럽게 그들을 파멸시키셨다.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이 날을 즐기며 이 희극을 보기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이들이 다 죽게되었다.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누가 죽었는가? 삼손을 자기들에게 팔아넘기도록 뇌물로 들릴라를 매수했던 '블레셋 모든 방백'(27절) 들이었다. 블레셋 여자들로인해 죄에 빠졌었던 삼손은 이제는 그 여자들을 허다하게 죽이게 된 것이다.
2)언제 그들이 죽었는가?
①그들이 매우 즐거워하고 안심하며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못하고 있을때였다.
②그들이 그들의 신 다곤을 찬미하고 있을때였다.
③그들이 나실인인 한 이스라엘 사람을 희롱하며 모욕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징벌하신 자를 박해하고 있을때였다. 사람들은 선한 사람을 희롱하는 일이 참으로 어떤 일이라는 것과 누구를 조롱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3)그들은 어떻게 죽었는가? 삼손은 집을 그들 위에 무너뜨렸다.
①삼손은 기도를 함으로써 그 일을 할수 있는 힘을 얻었다(28절). 삼손은 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힘을, 참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 기도함으로써 다시 회복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시고 이번 한번만 더 그에게 다시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렇게함으로써 삼손은 자기가 과거에 블레셋 사람을 칠때 발휘했던 힘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한번더 그들에게 큰타격을 입힐수 있도록 자기에게 힘을 주시기를 간구했다. 삼손은 우리의 거룩한 구주께서 십자가 상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기도하면서 죽어갔다. 그러나 삼손은 복수를 위해 기도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다.
②삼손은 그 건물의 중심이 되는 두기둥에 몸을 의지함으로써 그 일을 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붕위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들때문에 그 지붕은 더욱 쉽게 무너졌다. 이들은 질식해서 죽거나 아니면 깔려 죽어 그들중 거의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이 사실에서 다음 몇가지 점을 살펴보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 일로인해서 커다란 치욕을 받았다. 그들의 모든 방백과 고관들이 다 죽었다. 다곤 신전(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나오는 이 집은 그 신전이었다고 생각한다)이 무너졌고 그때 다곤도 그속에 함께 묻혔다.
㉡삼손의 행위는 충분히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수 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목숨이나 블레셋 사람들을 악하게 살인했다고 정죄받지 않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는 자살자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노린 것이 자신의 목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삼손의 큰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영화롭게 되셨으며 이 사건이 바로 그것에 대한 하나의 증거였다.
㉣이 사건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삼손이 다곤 신전을 무너뜨렸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왕국을 무너뜨리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인해서 어둠의 권세를 정복하신 가장 영광스런 승리를 얻으셨다. 삼손의 팔이 두기둥에 뻗쳐졌듯이, 그리스도의 팔이 십자가 위에서 벌려졌을때 그리스도는 지옥의 문에 치명적인 충격을 가하셨고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셨다'(히 2:14,15). 삼손은 단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어버렸을 뿐이며 그들을 정복하기위해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다는 이 점에서 삼손을 능가하셨다.
4)삼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끝이 난다. 즉 삼손의 장례에 대한 설명과 앞에서 보았던대로 그의 통치기간을 되새기는 말로 끝이난다.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을 지내었더라(31절).

# 핵심
16:1-22
여인에 대한 삼손의 욕정은 나실인에게는 어울리지않는 모습이었다. 나실인 서약을 지키지않은 삼손은 결국 블레셋 사람에 의해 눈을 뽑히고 노예처럼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긍휼과 심판(16장)
삼손은 나실인이었지만(13:5), 자신의 생애를 살면서 나실인의 금지조항들을 깨뜨려갔다. 죽은 것을 만졌고(14:8), 필시 혼인잔치를 하는동안 포도주도 입에 대었을 것이다(14:10-12). 또한 창녀와 잠자리도 같이했다. 마침내는 머리를 깎아서는 안된다는 조항도 어기게 된다(19절). 하나님은 마지막 금지조항을 어길때까지 참고 긍휼을 베푸셨지만 그것마저 어겼을때는 가차없이 심판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들을 참고 기다리시지만, 마지막때는 엄중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 묵상
삼손의 약점 ( 16:1 )
그는 쉽게 이성(異性)의 유혹에 넘어가는 약점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성도를 죄에 빠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견딜수 없는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혹을 이길 힘을 충분히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돈이 미치는 영향 ( 16:5 )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 될수 있습니다(딤전6:10). 물질은 성도를 가장 괴롭히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마6:33). 그런데도 성도들이 돈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하나님께 헌금할때와 이웃을 구제할때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는 조금도 손해를 보려하지 않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이웃을 위해 조금씩 손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살면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유혹에 대한 삼손의 대답 ( 16:6-22 )
들릴라의 유혹에 대한 삼손의 첫번째 대답은,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으로 묶으라는 것이었으며 두번째 대답은 쓰지않은 새줄로 묶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대답은 머리털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어 짜라는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네번째 대답은 머리털을 밀면 자신에게서 힘이 떠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은 대답들의 특징은 그가 유혹에 못이겨 점점 함정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잠7:22, 23). 이처럼 유혹은 계속적으로 강도를 높여서 성도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유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음부터 끊어버리는 절제와 용기, 그리고 결단이 필요합니다.
정욕의 극복 방법 ( 16:16 )
성경은 우리에게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유혹이라고 말합니다(요일2:16). 성도는 늘 육과 영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를 제어하고 영의 생각을 넓히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갈5:22).
사명자의 올바른 태도 ( 16:17 )
사명을 받은 사람은 끝까지 생명을 바쳐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를 위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죄와 타락의 유혹에서 승리해야 합니다(시13:3-6).
유혹에 넘어간 자의 종말 ( 16:20, 21 )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비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은 내마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주인의 자리에서 내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죄가 우리 마음속에서 왕노릇하게 되는 결과를 낳습니다(롬6:12).
하나님의 백성 사용 방법 ( 16:23-27 )
삼손은 잡혀갔으나 얼마후에 다곤 축제에 끌려나옴으로 신전을 무너뜨리고 원수를 갚을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기회를 주십니다. 때문에 혹 성도중 죄로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를 정죄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며, 그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는 그 사람을 끝까지 보호하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그 은혜를 간구하고 끝가지 낙망치말아야 하는 것입니다(눅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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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삼손의 복수 15:1-8
(1) 삼손은 그가 불쾌하여 남겨두고 떠났었던 아내에게로 돌아갔다. 분노가 약간 식자 그는 그녀에게 돌아왔다. 염소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1절). 그 염소새끼는 화해의 표시로 쓰려고 했는데, 아마도 그 당시에는 염소를 그렇게 사용했던것 같다. 가까운 친척과 불화가 생겼을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용서하고 마음의 상처를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이다.
(2) 삼손은 거절당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가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사실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다른 사람과 혼인시켰기 때문이었다(2절).
1)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부당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줄로 내가 생각한고로(2절).
2)그는 삼손에게 자기의 작은딸을 줌으로써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삼손은 그의 제의를 비난했다. 그는 '아내의 여형제를 취하지 말라'는 율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레18:18).
(3) 삼손은 모욕당한 것에 대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였다. 그는 자신을 공적인 인물로 생각했으므로 그들이 자기를 모욕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삼손은 그들의 곡식밭에 불을 놓는방법으로 복수하였다. 그럼으로써 블레셋은 매우 무력하고 메마르게 되었을 것이다(4,5절).
1)삼손이 복수한 방법은 매우 기묘했다. 그는 여우 150쌍을 잡아서 각쌍의 꼬리를 묶은다음 그사이에 불붙인 홰를 끼우고는 곡식밭으로 들여보냈다. 혼비백산한 여우들이 피신처를 찾기위해 곡식밭으로 뛰어들자 곳곳에 불이 붙었다. 이렇게해서 곡식밭들은 삽시간에 불에 타버렸다. 삼손은 무슨 공로를 세울때에든지 결코 하인이나 병사 등 그 누구도 함께한 적이 없었다. 그는 보잘것없고 약한 동물들을 사용함으로써, 그와 싸우던 대적들을 경멸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교회의 적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약화시키고 특히 교회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저주스러운 일을 하기위해 종종 그들끼리 횃불로 연합하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2)여기서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준 피해는 매우 컸다. 그때는 밀을 거둘때였으므로(1절), 마른 짚에 불이 붙었다. 곡식단과 아직 베지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5절).
(4)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배반한 아내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격분하였다. 그의 아내와 장인이 삼손을 노하게 했기때문에 자기 나라가 이러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안 폭도들은 그들을 잡아다 불살라버렸다. 아마도 그들의 집까지도 불살라버렸을 것이다(6절). 블레셋 사람들은 전에 그녀에게 만일 삼손에게서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내지 않으면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했었다(14:15).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자기 나라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위해 자기 남편을 배반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두려워한 나머지 죄를 범하고서라도 모면하려던 바로 그 재앙이 그녀에게 내려졌다. 즉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의 집은 불살라져 버렸던 것이다. 불법을 사용해서 재앙을 모면해보려는 자는 도리어 화를 입게 마련이다.
(5) 이 일로인해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도륙함으로써 그들에게 더 큰재앙을 입혔다(7,8절). "나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로서 이스라엘을 위해 변론할 자격이 있다. 너희가 이스라엘에게 잘못을 저질렀으니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으리라." 삼손은 그 일을 끝낸후 에담 바위 정상에 있는 천연적인 요새로 물러나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징치한 결과로인해 그들이 풀이 죽었는지의 여부를 살피고 있었다.

Ⅱ. 나귀의 턱뼈로 적을 물리침 15:9-17
(1)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맹렬히 추격받았다. 그가 유다에 숨어있다는 소문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곳에 진을 치고는 그를 찾아내기위해 그 지방을 샅샅이 뒤졌다(9절). 이와같이 한사람을 잡기위해 군대가 보내졌는데 이는 그야말로 삼손 자신이 하나의 군대였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복된 삼손과 같은 분이신 우리 주 예수를 잡으려고 할때도 많은 무리들이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때는 주께서 잡히시기로 예정된 때가 되었기때문에 그 십분의 일에 해당되는 인원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며, 만일 주께서 굴복하지 않으셨다면 열배의 인원을 갖고도 아무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2) 유다 사람들은 야비하게도 삼손을 배반하고 그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11절). 그러한 자들도 유다 출신이었더란 말인가? 그 용감한 지파가운데 타락한 자들이 있었다니! 아마도 그들은 삼손이 그들과 같은 지파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우월성을 상실한 그들은 어리석게도 단지파 사람에게 구원받기보다는 차라리 블레셋 사람의 압제아래 있으려고 했던 것이다. 교회는 때때로 명예에 대한 시기와 탐욕때문에 그 구원하는 일에 방해를 받아왔다. 죄는 사람을 낙심시키고 얼빠지게 만들어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삼손은 모세처럼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여'(행 7:25) 그 경계를 넘어 레히지방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유다 사람들은 삼손에게 와서 그를 결박해서 블레셋 사람에게 넘길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유다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비겁하고 배은망덕한가!
(3) 삼손은 자기 백성들에게 순순히 결박당하였고 격분하고 있는 적의 수중에 넘겨졌다(12,13절). 그는 꾹 참고 순복하였던 것이다.
1)이 사실은 삼손이 강한 힘과 용기와 함께 지극한 온화함을 지닌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잘 통제하였으므로, 정복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순복하는 방법도 알고있었던 것이다.
2)블레셋 사람들은 살육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와같이 가장 악한 원수들에게 굴복하여 가장 좋은 친구를 배신한 자들에게는 비참한 신세가 더 오래 연장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의 복된 구세주를 이런식으로 다룬 자들보다 정신나간 자들은 없다.
(4) 삼손은 새줄 둘로 단단히 결박되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넘겨졌던때에도 그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넘겨 받게되자 승리로 기뻐하고 그를 모욕하였다.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질렀다(14절). 그들은 삼손이 힘을 잃었다고 여기고 이제 모든 승리가 자기들의 것이 되었다고 자신만만하여 소리를 질렀을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14절).
1)이렇게하여 힘을 얻게된 삼손은 즉시 묶인줄을 풀어버렸다. 그가 한번 힘을 쓰자 그 새줄 둘은 끊어지고 그의 팔에서 떨어져나가 '녹아버렸다'(원어의 의미대로). 그에게 소리지르던 블레셋의 무리들은 몹시 놀라고 겁을 먹어, 그들의 고함소리는 비명으로 바뀌고 말았다. 여호와의 신이 임하는 곳에 자유가 있으며, 이러한 자유를 얻은 자야말로 참된 자유를 누리게됨을 주목하자. 이 사건은 성령의 권능에 의해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예표가 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동여매었던 것과 그 끈과 수의를 벗어버리셨는데, 전능하신 구세주를 묶어둘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동여맨 것을 손으로 풀어야했던 나사로의 경우와는 달리 그것들은 풀기도 전에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사로잡기라도 한것처럼 소리지르던 어둠의 권세들을 주님께서는 정복하셨다.
2)삼손은 그를 조롱하러 모여들었던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살육하였다(15절). 얼마나 보잘것없는 무기를 갖고있었는지 보라. 그에게는 무기라고는 나귀의 턱뼈밖에 없었지만 그가 그것으로 해낸 일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가! 삼손은 그 자리에서 그 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천명을 쳐죽이기까지 손에서 그것을 놓지않았다. 만일 그것이 삼손이 전에 죽였었던 사자의 턱뼈였더라면 훨씬 그의 마음에 들어 더 놀라운 위력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큰권능이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되도록, 세상의 어리석은 것으로 놀라운 일을 해하기위해 이 보잘것없은 짐승의 뼈를 취하였다.
(5) 유다 사람들은 삼손에게 축하마저 해주려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혼자서 승리를 자축했다. 그는 짧은 노래를 짓고 스스로 그 노래를 불렀다.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귀의 턱뼈로 한더미 두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명을 죽였도다(16절). 히브리어 '하몰'은 '나귀'와 '더미'라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따라서 이 노래는 훌륭한 기교를 부린 것으로서 블레셋 사람들이 나귀처럼 맥없이 쓰러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끝없이 치욕을 주기위해 그곳을 '턱뼈를 집어들었다'는 뜻을 지닌 '라맛레히'라고 이름지었다(17절).

Ⅲ. 삼손을 갈증에서 구하심 15:18-20
(1) 삼손은 이 큰일을 마친후 곤경에 빠졌다(8절). 그는 갈증으로 죽을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삼손의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삼손은 승리를 거둔후 승리케 해주신 하나님과 그 도우심에 대해 한마디도 영광돌리지 않고 모든 공로를 자기 자신에게 돌렸기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징벌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일천명을 죽였도다.
(2) 그는 고통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것을 잊어버린 자들은 어쩔수 없는 상황가운데서야 그에게 기도드리게 될 것이다. 환난은 종종 하나님께 감사할줄 모르는 자들에게 밀어닥친다. 삼손은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을 탄원하고 있다.
1)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해왔음을 인정하여 자신의 승리를 구원 곧 '큰구원'이라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블레셋 사람들을 정복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체험들을 더 큰자비를 구하기위해 기도할때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삼손은 이제 자기가 적의 수중에 떨어질 위험에 처했음을 탄원한다.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그렇게 되면 블레셋 사람들은 의기양양해서 이 일을 가드와 아스글론 거리에 알릴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구원이 때맞춰서 그에게 임하였다. 삼손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물을 주셨다.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19절). 그가 턱뼈를 가지고 싸웠기때문에 그 장소를 '레히'라고 불렀는데, 그 싸움이 있기전부터 그곳을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9,14절에서 알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풍부한 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이곳에서 나온 맑은 물을 마신후 그의 기력은 회복되었다. 우리가 물을 얼마나 아끼지않고 있나를 생각해볼때, 우리는 그렇게 충분히 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해야 한다.
(4)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삼손은 갑자기 솟은 이 샘물에 '엔학고레' 즉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손은 이렇게함으로써 자신이 고통당했던 일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베푸셨던 일을 길이 기억케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 알맞는 위로의 샘을 많이 열어놓으셨다. 삼손은 이전에는 자신의 힘과 승리를 나타내기위해 그곳에 '라맛레히' 즉 '턱뼈를 집어들었다'라는 이름을 붙였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곤경에 처하여 하나님을 의지했던 일을 나타내는 또다른 이름을 그곳에 붙인 것이다.
(5) 이러한 일들이 있은후 삼손은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다(2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배반했던 그에게 드디어 복종하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이방의 대적에게 압제를 당하기는했어도, 그들을 다스리고 멸망으로부터 구원한 사사가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은총이었다. 삼손은 이십년간 다스렸는데, 본장에 있는 삼손의 통치의 시작과 다음 장에 나오는 통치의 끝에 대한 기록을 제외하고는 그의 통치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다.

# 핵심
15:1-13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삼손은 다시 아내와 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장인이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넘긴 뒤였다. 그후에 블레셋 사람들과 삼손의 상호보복 행위가 뒤따른다.

# 묵상
원수에 대한 복수 ( 15:3 )
구약에서는 정당한 복수는 인정되었습니다(출21:24).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윤리가 선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마5:43,44). 사랑은 분노와 악을 풀어주고 삭혀줄수 있지만, 복수는 계속적인 악만을 만들 뿐입니다.
약한 자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 ( 15:9-13 )
위험에 처했을때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는 흔히 그 위험을 두려워한 나머지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롬5:4). 그래서 이 시련을 이기는 자는 마치 용광로에서 정제되어 나오는 금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욥23:10). 때문에 신앙인은 약한 자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이기적인 마음과 생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오직 서로를 돕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으로 사랑을 보여주셨듯이 성도도 헌신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능력받은 자의 행동결과 ( 15:14-17 )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큰일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것도 들어 사용하셔서 그 어느 것보다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하십니다(요6:9).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시기 ( 15:18-20 )
기도는 항상 해야하는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특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처형을 앞두시고 간절하게 세번씩 기도하셨고, 사탄의 시험을 받기전에는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속에서 시시각각 드려지는 기도를 기뻐하시며 그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살전5:17).
노략 ( 15:19 )
대적자들의 야비한 행동에 분노한 삼손은 아스글론에 가서, 30명을 쳐죽이고 옷을 탈취해 옵니다. 그의 행동은 순전히 개인적인 복수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징계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14:4절에서 언급했던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이후의 사건은 모두 이 사건과 연관되어서 진행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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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사자를 죽이고 꿀을 취함 14:1-9
(1) 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인도아래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과 인척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들과 싸울 기회를 노린다. 사실 수수께끼 같고 역설적인 인물이었던 삼손은, 외관상 약하고 사악한 일로 진정 위대하고 훌륭한 일을 해냈던 것이다.
1)삼손처럼 혼인을 맺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①삼손이 블레셋 사람의 딸을 사랑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일뿐 아니라 더욱이 여호와께 바쳐진 나실인이 다곤의 숭배자와 어떻게 하나가 될수 있겠는가? 자기 나라를 구하기로 예정된 자가 그 나라의 불구대천의 원수들과 어떻게 어울릴수 있겠는가? 그의 부모들은 그가 불신자들과 이렇게 불균등한 인연을 맺지말도록 충분히 설득하였다. 네 형제들의 딸중에나 내 백성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3절). 즉 "우리 지파나 이스라엘가운데 너를 기쁘게 하거나 네 사랑을 받을만한 여자가 하나도 없다하더라도 네가 어찌 블레셋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
②만일 거기에 어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면 삼손이 그러한 선택을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온당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부모에게 결혼승낙을 받았다. 부모의 동의를 구해 허락받기까지 일을 진행하지 않고 순종한 이 나실인의 태도는 모든 자녀들에게 귀감이 된다.
2)그러나 삼손의 이 혼인은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임이 명시되어 있다(4절). 하나님께서는 후에 블레셋 사람을 치려는 자신의 계획을 위해 그 결혼을 하게 하셨을뿐만 아니라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는 생각을 삼손의 마음속에 넣어주셨던 것이다. 아마도 블레셋 사람들은 많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그들의 장대한 용사들을 은밀히 침입시키거나 소규모의 약탈 집단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압제했던것 같다. 그러므로 삼손도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다루어야 했다. 이 결혼을 통해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가운데 거하게 됨으로써 그는 그들에게 가시가 될 것이었다.
(2)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섭리를 통해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할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건을 통해 그를 준비시키셨다.
1)하나님께서는 삼손이 딤나로 가는 도중에 그에게 사자를 죽일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5,6절).
①사자와 맞닥뜨린 삼손은 몹시 위태로왔다. 그 사자는 몹시 사나운 젊은 사자였으며 그를 잡아먹으려고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그는 포도원에 혼자 있었는데 아마 포도를 따먹으려고 부모곁을 떠나 그곳을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삼손이 길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호젓한 포도원에서 보다는 길에서 사자를 만났었더라면, 그는 하나님과 사람의 도움을 더욱 기대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된 그 이면에는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②그러므로 이렇게 더욱더 위험스런 상황에 처하게 됨으로써 삼손의 승리는 더욱더 빛나게 되었다. 삼손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사자를 잡을수 있었다. 그는 사자의 목을 조르고는 염소를 죽이는 것처럼 쉽게 찢어죽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공생애 초기에 울부짖는 사자와 싸워 이기셨다(마 4:1 이하). 그리스도께서는 그후에도 홀로 모든 정사와 권세를 멸하사 그것들을 이기셨다. 삼손은 자신의 힘을 발휘하였다. 그는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같으면 즉시 방방곡곡에 알렸을만한 일을 부모에게조차 고하지 않았다.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는 위대한 업적을 더욱 빛내준다.
2)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두번째 여행에서 그에게 이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얻게 해주셨다(8,9절). 그가 두번째로 내려갔을때, 그는 사자의 주검을 발견하였다. 아마 그 사자의 살은 새나 짐승들이 먹어버렸을 것이다. 그 뼈속에는 벌떼가 들어가 그것을 집으로 삼았으며, 그 벌들은 부지런히 가나안의 특산품중의 하나로 꼽히는 질좋은 꿀을 모아두었다. 삼손은 그 벌집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큰권리를 갖고있었으므로 손으로 그 꿀을 취하였다. 그렇게하다가 벌에게 쏘였을 것으로 상상되나, 사자의 발톱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벌의 침을 두려워할리가 없었다. 벌떼를 몰아내면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의 수효가 많고 비록 그들이 자기 주위에 벌떼처럼 편만하다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깨닫게 되었다.
① 삼손은 여기서 발견한 꿀을 아무 거리낌없이 먹었다. 신약 시대의 나실인인 세례 요한은 석청을 먹고 살았다.
②삼손은 그 꿀을 부모에게 갖다드렸다. 그는 그 꿀을 자기 혼자 다 먹지않고 부모와 나누어 먹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기쁨을 발견하게된 사람들은 솔선하여 그들의 친구와 친척들에게도 자기들의 경험을 전하고 그들을 불러다 그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는 자기 부모가 그 꿀을 망설이지 않고 먹을수 있도록 그 꿀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비록 사자의 주검가운데서 나왔다하더라도 꿀은 어디까지나 꿀인 것이다.

Ⅱ. 삼손의 잔치와 수수께끼 14:10-20
본문은 삼손의 혼인잔치로 말미암아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과 충돌한 기사이다.
(1) 삼손은 그 나라의 풍습을 따라 칠일동안 결혼 예식을 위한 잔치를 베풀었다(10절). 우리 신앙의 어느부분도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의 순수한 관습을 거스르는 것은 없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탐욕스럽고 비열하고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바로 그때에 기독교는 비난받게되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좋은 평판을 듣는 좋은 이웃이 되기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2) 삼손의 아내의 친척들은 그들 지방의 풍습대로 그에게 행하였으며, 삼십명의 젊은이를 데려다가 예식기간 중에 그의 동무를 삼고 그의 들러리로서 시중들게 하였다.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명을 데려다가 동무를 삼아 그와 함께하게 한지라(11절). 이들을 데려온 것은 겉보기에는 그의 친구들로 삼으려 함이었지만, 실제로는 그의 감시자 혹은 그를 살피기위한 정탐꾼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3) 삼손은 그 동무들을 즐겁게하려고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는 그들이 칠일내에 그것을 풀지못할 경우에 대해 내기를 걸었다(12-14절). 이런 행사에 수수께끼를 내는 것은 아주 오래된 관습이었던것 같다. 삼손의 수수께끼는 그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혼자 생각해낸 것이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14절). " 내 수수께끼를 풀어보라. 이것이 무엇이겠느냐?" 이 수수께끼는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에 대한 다양한 방법들을 나타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섭리로써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게 악으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어주실때, 즉 그들을 멸망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변할때, 그들의 적들이 그들에게 쓸모있게 되며 사람들의 격노가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변할때, 바로 이때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 경우이다(참조. 빌 1:12).
(4) 그들은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수 없게되자, 그 답을 삼손에게서 알아내라고 삼손의 아내를 위협하였다(15절). 만일 그녀가 그 남편에게서 그 답을 알아내어 그들에게 주지않는다면, 그들은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불사른'다고 위협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야비한 짓이 어디 있겠는가?
(5) 삼손의 아내는 어처구니없게도 끈질기게 그를 졸라서 그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얻어냈다. 그들이 그녀에게 부탁했으며(15절) 그녀가 그 일을 해냈던때는 '제칠일' 즉 라이트푸트 박사의 추측대로 한주일의 일곱째 날이었는데, 이는 잔치가 벌어진지 나흘째되는 날이었다. 그녀는 대단한 기교와 술책으로(6절) 그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녀의 끈덕진 요구에 완전히 지쳐버린 삼손은 마침내 그녀에게 그 수수께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었다. 그녀는 그 비밀을 지킬 것을 삼손에게 약속했을 것으로 상상되며 그리고 삼손은 그녀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말했을 것으로 상상되지만, 그녀는 그것을 즉시 '자기 민족에게' 고하였다. 이처럼 그는 이 블레셋 여인에게서 다른 블레셋사람들보다 더나은 것을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수수께끼를 풀었다(18절).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꿀보다 좋은 음식이 어디 있겠느냐(잠 24:13).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사자보다 더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삼손은 관대하게 그들이 내기에 이겼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라면 즉 "너희가 내 아내를 너희 이해관계에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만일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더라도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라는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한다면 우리에게 해를 끼칠수는 없을 것이다.
(6) 삼손은 다른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노략한 것으로 이들에게 내기로 약속한 것을 지불하였다(19절).
(7) 이 일은 삼손과 그의 블레셋 친척들과의 관계를 끊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블레셋 무리들이 어떤 식으로 그를 능멸하였으며 그의 아내가 그를 배신했는지를 알고는 '심히 노하였다'(19절). 그들에게서 이처럼 불친절한 대우를 받은 삼손은 '아비집으로 올라갔다.' 만일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불행한 일을 당하거나 그로인하여 낙심되어서 어쩔수 없이 믿음과 기도로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 안식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다.

# 핵심
14:1-20
삼손은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을 받아 괴력을 지닌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는 불경건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 묵상
사사 삼손의 결혼 ( 14:1-10 )
이방인과의 결혼은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을 하게되면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 잘못을 범하기 쉬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고후6:14).
삼손의 영과 육 ( 14:1-4 )
육적으로는 나실인으로 구별되고(삿13:5, 7),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삿14:5, 6), 싸움에 능했고(삿15:14-17), 하나님께서 주신 큰힘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삿15:8).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방 여인과 기생을 사랑했으며(삿14:1-4), 판단력이 부족했고(삿16:20), 유혹에 약했으며(삿14:10-18), 최후에 가서야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삿16:28).
삼손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목적 ( 14:5-20 )
이는 이스라엘의 적인 블레셋을 쳐부수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령께서는 삼손에게 신체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주심으로 삼손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볼수 있듯이 삼손은 어리석고 쉽게 남에게 속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사로 세우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 ( 14:6 )
이러한 자는 성령의 능력으로인해 사자라도 염소처럼 죽일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창조때부터 역사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며 조절하십니다. 또한 그분은 교회시대에 성도에게 임하셔서 그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 감동된 성도는 그 열매를 맺으며(갈5:22-34), 또한 세상에서 쉽게 볼수 없는 큰능력과 기사와 이적을 행할수 있습니다.
삼손의 대적자들의 전술 ( 14:15 )
그들은 본문에서처럼 인간적으로 약한 사람을 이용하여 넘어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성도의 대적인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성도를 유혹에 빠뜨리려고 합니다(벧전5:8). 또한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다가오기때문에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됩니다. 특히 성도는 자기와 친한 사물이나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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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여호와의 사자의 첫번째 방문 13:1-7
1절에는 이스라엘이 큰곤경에 처했다는 기사가 간략하게 언급되었는데, 이 곤경은 구원자를 세우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전에도 그랬듯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그 이웃에 있는 대적인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기셨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비교해 볼때 보잘것없는 민족이었지만(그들에게는 단지 다소 주목할만한 다섯 성읍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손안의 회초리로 사용하시게 되자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매우 압제적이고 고통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다른때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언제나 똑같이 가혹하지는 않았지만 무려 사십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환난에 빠져있었을때 삼손이 태어났다. 여기서 한 천사를 통해 그의 출생이 예고되는 것을 볼수 있다.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자.
(1) 삼손은 단지파의 혈통에서 태어났다(2절). '단'은 사사 또는 심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창 30:6). 단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블레셋땅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그 지파의 어떤 지역은 그들의 속박을 당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삼손의 부모는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다. 이삭, 요셉, 사무엘 그리고 세례 요한 등과 같이 특출한 이들의 어머니들은 오랫동안 자녀의 축복이 결여되어 있었기때문에 그 축복이 내려질때 자녀를 주신 은총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였었다.
(2) 삼손의 어머니에게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알려준 자는 '여호와의 사자'였으나(3절), 선지자 또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갖춘 인간으로 나타났다. 이 놀라운 소식은 단지파에 속한 마노아와 그의 아내같이 이름없는 자들만 위함이 아니고 구원자를 필요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또한 이 경우처럼 천사들에 의해 탄생이 예고될 메시야의 예표가 되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1)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의 괴로움을 알았다.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3절). 즉 "지금 너는 잉태치 못하나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며 네가 염려하는 것처럼 그 상태가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2)여호와의 사자는 그녀에게 아들의 잉태를 확신시켜 주었다.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또한 5절에서도 그것을 거듭말하며 확신시켜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언약을 통해서 출생케하심으로써 말씀의 권능을 보여주셨다.
3)여호와의 사자는 그 아이가 태어날때부터 나실인이므로 그 어머니는(비록 그녀가 나실인의 서약을 한일이 없다하더라도) 나실인의 율법에 순종하여 이 아이가 태중에 있건 젖을 먹건 그녀의 몸에서 영양을 섭취하는 동안에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것을 지시하였다(4,5절). 다른 사사들은 하나님께 변절한 이스라엘을 바로잡았었다. 그러나 삼손은 그 어느 사사보다도 하나님께 더욱 성별된 사사로 나타났다. 삼손이 여러가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실인으로서의 의식을 행하여 실질적으로도 나실인이 해야 할바를 실천하였다(민 6:2). 그러므로 이 구원자의 어머니는 스스로를 자제하여 부정한 것을 먹지말아야 했다. 그녀는 평소에는 합당한 음식이었다해도 이제는 삼가야 했다. 아기를 가진 여자들은 자기 몸안의 자식의 건전한 성격과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 삼손이 나실인이 되어야 했기때문만이 아니라 그 어머니의 금주로인해 큰힘을 가진 인물이 되어야 했으므로, 그 어머니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금지시켜야 했을 것이다.
4)여호와의 사자는 이 아이가 자기 나라에 해야할 일을 예언하였다.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5절).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말은 블레셋 사람의 압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삼손은 단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의 곤경이 여전히 오래 끌게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제 삼손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사실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타난다.
①삼손은 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는 나실인은 아니셨지만, 죄가운데 잉태되지도 않고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전적으로 바쳐지신 분으로서 여러 나실인들에 의해 예표되셨다.
②삼손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 그리고 구주 예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삼손과 다르시다. 즉 삼손은 단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했을 뿐이었으나(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완전히 멸하였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삼손과 다윗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사 우리 믿음을 시작하시는 이요 끝맺는 이가 되셨다.
(3) 마노아의 아내는 뛸듯이 기뻐하며 이 놀랄만한 메시지를 남편에게 급히 전하였다(6,7절).
1)그녀는 이 소식을 전해준 이에 대하여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6절). 그녀가 묘사한 그의 용모는 몹시 무섭게 생기고 위엄있는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녀가 상상하고 있던 여호와의 사자의 모습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또한 이스라엘에서 그가 속한 지파나 성읍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로 충분히 만족하였다. 그녀는 그의 용모나 그의 메시지 자체가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더이상 묻지않았던 것이다.
2)그녀는 자기 남편역시 그 메시지의 약속을 믿을수 있도록, 사자가 전해준 메시지의 약속과 가르침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였다(7절). 이와같이 배우자들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체험을 서로 나눔으로써 '거룩하다 일컬음받는 길' 가운데서 서로 도울수 있어야 한다.

Ⅱ. 여호와의 사자의 두번째 방문 13:8-14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를 두번째 방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마노아는 이 일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드렸다(8절).
1)마노아는 이 약속된 아이는 때가 이르면 태어나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으므로 '그 낳을 아이'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말했던 것이다. 본문의 마노아처럼 '보지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
2)마노아의 모든 관심을 태어날 아이에게 '그들이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선한 사람은 어떤 사건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해야할 임무가 무엇인지를 더욱 간절히 알고 싶어한다는 점을 주목하자. 왜냐하면 사건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임무는 우리가 행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그러므로 마노아는 그의 아내가 그러한 약속을 받고 기쁜 나머지 가르침을 몇군데 잊어버리지 않았나 염려되어, 그 주의 사자를 또다시 보내주셔서 이 나실인을 키우는데 관해 더자세히 지시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그 가르침을 완전히 앎으로써 아무런 실수도 하지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합당한 말씀을 전해주고 가르쳐줄 하나님의 사자 곧 복음의 사역자를 원하고 있는가? 그러한 사역자들을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가르치도록 여호와께 간구하자(롬 15:30,32).
(2)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마노아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9절).
1)하나님의 사자는 두번째에도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다. 그때 그녀는 홀로 앉아있었는데 아마도 양떼를 돌보고 있었던것 같다. 홀로있는 시간은 때때로 하나님과 교통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들은 홀로 있을때에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결코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그녀는 남편을 부르러 급히 달려갔다. 틀림없이 그녀는 이 복된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기 남편과 함께 돌아올때까지 머물러 주시기를 겸손히 구했을 것이다(10,11절). 하나님의 사자는 기꺼이 그녀가 남편을 데려오게 하였다(요 4:16).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가 두번째에도 자기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않고 기꺼이 아내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사자에게 갔다. 아내가 남편을 인도하더라도 그일이 고결하고 칭찬할만한 일이라면, 아내를 따르는 것이 남편의 체면에 손상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3)하나님의 사자에게 나아온 마노아는 그가 자기 아내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사자라는 것에 만족하여 매우 겸손히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①마노아는 약속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였다(12절).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마노아의 이 말은 그의 소망을 나타낼뿐만 아니라, 또한 동정녀 마리아처럼(눅 1:38) 그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주여, 내가 당신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오니 그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②마노아는 자기 아내에게 지시했던 사항들을 다시 말해줄 것을 간구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12절).
그 지시가 이미 아내에게 내려졌었으나 마노아는 이 약속된 자식을 지시에 따라 잘 양육하기 위하여 자기가 아내를 도와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아무리 주의하고 끊임없이 힘을 합해 노력한다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여 하나님께 바칠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리라고 보장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은 부부중의 어느 한쪽에만 일임시키지 말고 둘이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자식들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일에 신중을 기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리석음을 몰아내고 어려서부터 마음과 행실을 바로잡아 올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이럴때 경건한 부모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것이다. "여호와여, 우리 자식들이 나실인이 되어 당신께 산제물이 될수 있기위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양육해야할지 가르쳐 주옵소서."
4)여호와의 사자는 전에 지시해 주었었던 사항들을 다시 말해주었다(13,14절). 우리 자신과 자녀들이 올바로 행하기위해서 우리는 매우 주의하고 살필 필요가 있다. 성결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죄에 접하거나 죄로 인도하는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 마노아의 아내는 나실인 아이를 잉태했을때 부정한 것을 아무것도 먹을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들을 깨끗게하며 그 새로워진 영혼에 해가 될일은 아무것도 행하지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Ⅲ. 여호와의 사자의 승천 13:15-23
(1) 이렇게 대면한 마노아와 사자는 이야기를 좀더 나누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는 친절하게도 마노아와 함께있는 동안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인 것을 숨기고 있었다. 가리워지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을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 즉 선지자와 목회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려 하시며 심지어 그의 사자나 아들을 보내실때조차도 그들을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사 그들이 단지 하나님의 사람으로만 여겨지도록 하셨다.
1)이제 사자는 마노아의 접대를 사양하고 그 대신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그에게 지시하였다. 마노아는 사자에게 자기와 함께 음식을 좀먹자고 요청하였다(15절). 그러나 사자는 기드온에게 했던 것처럼 마노아에게도 '너의 식물을 먹지 않겠노라'고 말하면서(16절) 그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고 지시하였다(6:20,21). 우리가 먹지않거나 마시지않고 살수는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셔야하며 따라서 일용할 양식조차도 제물이 되어야 한다.
2)사자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 밝히기를 거절하였다. 마노아는 그의 이름과 소속 지파를 알기 원했다(17절). 당신의 말씀이 이룰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중하리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의무를 이행하기위한 마노아의 요청에는 이미 대답해 주었지만(12,13절)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마노아의 요구에는 거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말씀으로 우리에게 충분히 지시해 주셨다. 그러나 그는 헛된 공상을 채우기위한 질문에는 절대로 응답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관해서 질문을 할때 절대로 헛된 호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해서는 안된다(골 2:18). 우리의 위대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 하지않는 것이라면 기꺼이 모르는채로 있는 것이 무지하지만 지혜로운 행동이다.
3)여호와의 사자는 그들의 제사를 거들었으며 받아들였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산제사로 드려야하며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맡겨야 한다.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를 향내나는 제물이 되게 하시는 이는 믿는 자의 마음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가 없는 우리의 제사는 역겨운 연기에 불과하나, 그리스도를 통한 제사는 열납되는 불꽃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에 적용될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사'(히 9:12) 자신을 드린 그 제물의 불꽃가운데서 승천하셨던 것이다.
(2) 이러한 광경을 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1)마노마는 큰두려움을 느꼈다(22절). 그는 자기들이 곧 아들을 낳게되어 기쁨이 넘치는 부모가 될것을 굳게 확신하여 말했었지만(8,12절) 그러나 이제는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나님이나 사자를 보게되면 즉시 죽는다는 것이 고대 유대인들의 일반적이고 통속적인 견해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념은 기드온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6:22) 즉시 마노아의 믿음을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2)마노아의 아내는 더 큰믿음을 가지게 되었다(23절). 여기서는 연약한 그릇인 여자가 더욱더 강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아마도 천사가 두번씩이나 그녀에게 나타났던 것도 그녀의 믿음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자들은 중요한 시기에 상대방의 믿음과 기쁨을 위해 경건하게 도와야 한다.
여기서 마노아의 아내의 주장보다 더나은 것은 있을수 없었다. '우리가 반드시 죽으리로다'라고 그녀의 남편이 말하자 그녀는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징표로 보아서 그가 우리를 죽이리라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하셨다면, 첫째 그는 우리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둘째 이 모든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거나 나실인과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아들을 주시겠다는 이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큰희생을 하나님께 열납하신 것은, 그가 죄인들을 죽지않게 하시려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 유의하자.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은혜롭게도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는 사실로인해서 암울한 시기에도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버려 종국에는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고자 하셨다면, 그가 내 영혼을 위해 행하신 그런 일을 하지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시는 일은 완전하시며, 또한 그의 은총을 입은 백성을 조롱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노아의 아내와 같은 분별력을 배우자.

Ⅳ. 삼손의 탄생 13:24-25
(1) 삼손이 태어났다. 오랫동안 잉태하지 못하던 그 여인은 약속에 따라 아들을 낳았다.
(2) 그의 이름인 '삼손'은 어떤 학자에 의하면 히브리어 '셰메스' 즉 '태양'에서 유래된 '작은 태양'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모세처럼 구원자로 태어났으므로 모세처럼 대단히 준수했으며 굉장한 힘으로인해 그의 얼굴이 마치 작은 태양처럼 빛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양은 흔히 장대한 사람에 비유된다(시 19:5). 삼손이 작은 태양인 까닭은 그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며 그들에게 빛이 되기 때문이다. 그 작은 태양은 공의로운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
(3) 삼손의 어린시절은 다음과 같다. 그는 자기 또래의 다른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성장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대하고 특별한 일을 위해 그의 몸과 마음에 복을 주셨으며 능력을 주셨음을 보여준다.
(4) 삼손의 청년시절은 다음과 같다. 그가 점차 자라자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셨다'(25절). 하나님의 신은 블레셋 사람들의 침략에 맞서기위해 단지파의 진영에 있던 삼손을 감동하셨다. 삼손은 어렸을때부터 단지파의 진영에 들어와 대담한 훈련과 강력한 힘으로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였으므로 매우 용감한 몇가지 행동을 통해 스스로 유명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자기 나라의 대적에게 맞서는 통상적인 열심이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였을 것이다.

# 핵심
13:1-25
이스라엘이 다시 죄를 범한 대가로 40년동안 블레셋의 혹독한 압제를 당하게 된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은총에 의해 태어났다.
사사 삼손(13-16장)
삼손은 죄악과 심판, 구원이라는 반복되는 사사기의 역사적인 테마를 매듭짓는 마지막 사사이다. 삼손은 하나님의 긍휼과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태어났으며, 나면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창녀와 자고, 죽은 것을 만짐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등 사사로서의 소명에 진지한 관심이 없었다. 때로 성령의 감동을 입어 괴력을 발휘했지만, 그의 육정적인 성품은 변하지 않았다. 실로 가장 큰은총을 지니고 태어나서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마친 사사였다.
‘기묘’라는 이름(13:18)
“기묘”(히, 필리)는 ‘비밀’, ‘신비’라는 뜻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것은 이름이 아니라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인간이 신의 이름을 알면 그 신을 자유자재로 부르며,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할수 있다는 신앙을 가졌는데 이것은 이교도적인 것이었고, 하나님께는 용납될수 없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이름이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 다 파악할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이시다.

# 묵상
나실인 ( 13:5 )
나실인이란 ‘구별된 자’란 뜻으로,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술을 멀리해야 하며, 머리를 평생 깎지않아야 하고, 죽은 시체를 만져 자기를 더럽혀서도 안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자발적 서원으로(민6:2), 부모의 서원으로(삼상1:11), 혹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나면서부터(5, 7절) 나실인이 되었습니다. 그 기간으로는 일정기간동안만 헌신하는 나실인과 평생 나실인이 있습니다.
한편 본문의 경우, 나실인으로 선택된 사람은 삼손이지만, 그뿐아니라 그를 잉태한 어머니까지도 나실인의 규례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거룩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기도의 바른자세와 그 응답 ( 13:8, 9 )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은 아들 삼손이 모든 행위에 바르게 살아가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올바른 기도의 자세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전해져 실현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도 버려두시지 않고 모두 응답하십니다. 다만 이러한 응답의 시기가 때에 따라서 다르기때문에 성도는 오직 인내하며 기다려야할 뿐입니다.
기묘 ( 13:18 )
이 말은 비밀스럽고 놀라운 것을 뜻합니다. 즉 기묘란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던 것으로, 이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표현입니다(사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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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에브라임 지파의 시기 12:1-7
(1) 에브라임 사람들은 암몬 자손과의 싸움에서 승리와 전리품을 나누어 가질수 있도록 입다가 자기들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왔다(1절). 자만심은 불평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교만한 사람들은 그들을 스쳐간 모든 영예들을 놓쳐버렸다고 생각하고는 누가 질투심을 참을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입다에 대한 에브라임 사람들의 분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그것은 경솔하고 부당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하지 아니하였느냐. 입다가 그렇게 한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입다를 우두머리로 삼은 것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아니라 길르앗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부를만한 권한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2)그것은 잔인하고 터무니없었다. 그들은 떠들썩하게 모여서 요단을 건너 입다가 살고있던 길르앗의 미스바까지 몰려갔다. 그들은 입다와 그의 집을 불사르지 않고는 자기들의 분노를 가라앉힐수 없었다. 거의 이유도 없는 원한으로 그들 모두는 크게 분노해 있었던 것이다. 야만적인 사람들은 고통받는 자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을 즐겨한다.
(2) 입다는 열심히 자신을 변호하였다. 그들이 진정하거나 말거나 입다는 다음과 같이 행했다.
1)입다는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다(2,3절). 그는 그들이 자기와 다툴이유가 전혀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입다가 이번 전쟁에서 싸운 것은 영예를 얻기위함이 아니었고 자기 나라를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②입다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함께와서 싸워줄 것을 요청했었지만 그들은 거절했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때에 그들은 그것을 저버렸기때문에 입다로서는 그들을 비난할만한 더 큰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비난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죄없는 사람을 가장 시끄럽게 비난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③이번 싸움의 계획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이 시기하고 있는 입다의 명예는 충분한 희생의 대가로 얻은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시기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들중에는 그러한 명예를 얻기위해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려는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④입다는 그 승리에 대한 영광을 자신이 취하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돌렸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3절).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나를 쓰시기를 원하셨는데도 너희가 그것을 불쾌하다고 생각하는가?"
2)입다의 이러한 정당한 답변이(비록 기드온의 답변만큼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도록 설복시키지 못하자 그는 그들의 격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스라엘 사사의 권한으로 그들의 오만을 칼로써 징계하고자 했다.
①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와 다투었을뿐만 아니라 그의 이웃과 동료들이 입다의 편을 드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도 욕을 했다. "너의 편을 드는 자들이 누구냐? 모든 너희 이웃들은 너희가 형제들로부터 떨어져나가 궁지에 몰린 도망자요 부랑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있다." 개인이나 나라나, 특히 외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한 자들에게 누명을 씌우며 비난을 퍼붓는 것은 사악한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본문에서 보듯이,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는 분쟁을 불러일으킨다.
②이러한 모욕에 길르앗 사람들은 격분했고 그들의 대장인 입다에게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까지 퍼부어진 그 모욕에 대해서 보복하려고 했다.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워서 그들을 패배시켰다(4절). 요단의 지리에 대해 에브라임 사람들보다 잘알고 있었던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나루턱에 감시병들을 세워서 요단강을 건너가려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점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길르앗 사람들의 잔인함이다. 도망가는 자들을 이처럼 가혹하게 모조리 죽일 필요는 없었다. 언제까지 싸움으로인해 피를 흘려야 하겠는가?
둘째,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색출하기위해 매우 교활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족속들과 동일한 히브리어@(쉰)을 @(싸멕)처럼 발음했었던 모양이다. 'sh' 발음대신에 's'발음을 처음 사용했던 자들은, 's'발음이 더 짧고 분명한 발음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했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자손들도 그렇게 익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에브라임 사람을 식별할수 있었다.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마 26:73). 만일 그들이 에브라임 사람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잡아서 그가 아니라고 부인하면 그에게'십볼렛'을 말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정확하게 발음할수 없거나, 발음하지 않거나 간에 '씹볼렛'이라고 발음할 경우 그를 에브라임 사람으로 보고 무조건 죽여버렸다. '십볼렛'은 강이나 시내를 의미한다. "십볼렛 즉 강을 건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하라."
3)이 교만하고 성 잘내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죄악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보복되었다.
①에브라임 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명예에 대해 자부심을 품고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들의 자부심은 자기들이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그들은 이제 에브라임 지파이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지파 사람이고 싶어했다.
②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의 집을 불사르려고 격분하여 요단강을 건너갔었다. 그들이 떠들썩하게 건넜던 바로 그 요단강을 이제는 살금살금 되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죽임을 당하여 영영 돌아갈수 없게 되었다.
③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에서 축출당하여 멀리 떨어져 살수밖에 없었던 불운을 들먹이며 비난하였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제 '십볼렛'을 발음할수 없다는 묘한 약점때문에 괴로워하게 되었다.
④에브라임 사람들은 터무니없게도 길르앗 사람들을 도망자라고 불렀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본격적인 도망자들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에게 부당하게 비난을 퍼붓는 자는 반드시 그 비난을 되돌려 받게될 것이다.
(3) 입다의 통치는 끝이 난다. 그는 이스라엘을 육년밖에 다스리지 못하고 죽었다(7절). 아마도 그는 딸의 죽음으로인하여 너무 상심한 나머지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상실할정도가 되고 수명까지 단축되어서 결국 애통해하며 죽어갔을 것이다.

Ⅱ. 입다의 뒤를 이은 사사들 12:8-15
본문은 이스라엘의 사사 세사람이 짧은 기간동안 다스렸다는 것에 대한 간단한 기사이다. 그들가운데 첫번째 사사는 단지 칠년을, 두번째 사사는 십년을, 그리고 세번째 사사는 팔년밖에 다스리지 못하였다.
(1) 입산는 베들레헴 사람인데, 이 베들레헴은 여호수아 19:15절에 단한번 언급된 스불론의 베들레헴이 아니라, 다윗성이 있는 유다의 베들레헴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는 칠년밖에 다스리지 못했으나 그의 자녀들의 수효와 그가 직접 자녀들 모두를 혼인시켰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오래 살았던것 같다. 그에 관해 주목할만한 점은 다음과 같다.
1)입산은 모두 육십명이나 되는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
2)입산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이라는 남녀 동수의 자녀를 두었다. 이런 일은 한가족 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나 전인류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 태초에 인간을 남성과 여성, 둘로 만드신 분께서는 지혜로운 섭리로써 세상에서 인간의 자손들이 존속하는데 필수적인 어느정도 균등한 남녀의 비율이 이어지도록 유지시키신다.
3)입산은 자녀 모두를 혼인시켰다.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주어야 할일이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즉 아버지는 아들이 율법을 읽을수 있게끔 가르쳐주며, 일거리를 마련해주며, 아내를 구해주어야 한다.
(2) 그다음에 가나안 북부의 스불론 사람 엘론이 사사가 되어 법을 다스리며 잘못을 시정하는 등 공적 업무를 관장하였다. 그는 10년간 이스라엘을 복되게 다스리고 죽었다(11,12절). 라이트 푸트 박사는 엘론이 다스리기 시작한 시기부터 블레셋 사람들의 40년간의 속박이 시작되었으며(참조. 13:1), 그때 즈음해서 삼손이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3) 압돈이 엘론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됨으로써, 그의 출신지파인 유명한 에브라임 지파도 명성을 다시 얻기 시작하였다. 이 압돈은 많은 후손들로 유명했다(14절). 그는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을 거느렸으며 그들이 다 장성할때까지 살았다. 이렇게 손자들까지 볼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만족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는 이스라엘의 평안을 보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시기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범해 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사들의 역사가운데 어떤 사사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되어 있으면서 비느하스(수 20:28)에서부터 엘리에 이르는, 무려 250년으로 추정되는 기간동안 어떤 공무에 따르는 집회나 활동에 있어서 대제사장이나 어느 다른 제사장, 또는 레위인에 관해서는 단한번의 언급조차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단지 그 기간의 대제사장들의 이름들만이 역대상 6:4-7절과 에스라 7:3-5절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제사장직의 초기에 모세의 율법에서 제사장직의 중요성과 그에 관한 규정이 확실히 명시되어 있음을 볼때, 그렇게 오랫동안 그에 관한 언급이 전혀없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겠는가? 그것은 틀림없이 그 제사장직이 주로 상징적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그 직책을 통해 약속된 큰은혜가 주로 그것의 원형인 우리 주 예수의 영원한 제사장직에서 기대되어야함을 암시한다. 주님의 영원한 제사장직의 뛰어난 영광에 비해 그들의 제사장직은 아무런 영광도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이다(고후 3:10).

# 핵심
12:1-7
에브라임 지파는 사사 기드온이 세운 업적을 시기하더니(8:1-3), 이번에는 암몬을 물리친 입다의 공로를 시기하여 불평한다. 이는 하나님이 에브라임 지파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기를 폐하시고(시 78:9-11,67) 대신에 유다 지파를 선택하신(시 78:68-72) 이유들중 하나에 해당한다.

# 묵상
진정한 형제애 ( 12:1 )
그것은 바로 형제의 잘한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칭찬해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애를 깨는 가장 큰적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찬 마음입니다.
사사 입다의 사역 ( 12:7 )
그는 길르앗 사람으로 길르앗과 기생 사이에서 난 서자로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암몬을 물리쳐 이겼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자신의 무남독녀를 번제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후 6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사한뒤 죽어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습니다.
사사 입산 ( 12:8-10 )
입다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입산은 베들레헴 사람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7년동안 사사로 봉사하다가 죽어 베들레헴에 장사되었습니다.
사사 엘론과 압돈 ( 12:11-15 )
사사 엘론은 스불론 사람으로서, 10년동안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사사 압돈은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로 자손의 축복을 받았고 높은 명예를 지녔던 자입니다. 그는 8년동안 사사로 봉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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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입다의 출신 11:1-3
11장에서는 구약성경에서 믿음으로 큰일을 행한 자들(히 11:32)중에 사사 입다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제 10장 마지막부분에서 길르앗 방백들과 백성들은 장군을 택하기위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즉 암몬 자손들을 치러나갈때 그들의 군사를 이끌고 나갈수 있는 자를 길르앗 주민의 우두머리로 앉히기로 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길르앗 사람 입다를 택하는데 동의하였다. 그는 큰용사였으므로 그일에 매우 적합하였으며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세가지의 불리한 점이 있었다.
(1)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다(1절). 그의 어머니는 '다른 여인'(2절), 즉 유대인들이 이스마엘 사람이라고 여기는 여인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기생이라는 사실이 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불명예였던 것이다. 인간은 그 출신 또는 혈통의 어떠한 불운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기생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그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면, 즉 중생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스런 자유를 누리게될 것이다.
(2) 입다는 그의 형제들로부터 그땅에서 쫓겨났었다. 그의 아버지의 본처 소생들은, 그가 가문을 강하게 하고 빛낼만한 천부적인 자질이 있음을 전혀 고려치않고 준엄한 율법을 내세워 자기들과는 어떠한 기업도 나누지 못하게 그를 쫓아냈다. 입다의 자질은 기업을 분배받을만한 것이었으며 그 집안을 강하게 하고 빛내줄만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가 높이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낮추시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다(마 21:42). 그와같이 이스라엘가운데 가장 뛰어난 세명의 지도자인 요셉과 모세와 다윗도 위대한 직책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전에는 모두 사람들에게 배척받았던 자들이다.
(3) 입다는 국외 생활중에 잡류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었다(3절). 자기 형제들로부터 쫓겨났다고해서 그의 위대한 기백이 그로하여금 땅을 파거나 빌어먹게 버려두지 않았으므로 그는 칼로써 살았음이 틀림없다. 비류들은 그러한 기백에 감명받아 스스로 그의 휘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본문에 '잡류들' 즉 가산을 탕진하여 생활고에 허덕이는 자들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은 강도질하거나 약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짐승들을 사냥하기위해서 입다와 함께 다녔다. 이러한 입다가 바로 이스라엘을 구원해야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Ⅱ. 입다를 장관으로 선택함 11:4-11
(1) 이스라엘 자손들은 암몬 사람들의 침입으로 인해서 곤궁에 빠졌다(4절).
(2) 이 결과 장로회의는 입다를 불러와서 자신들을 돕게하고자 결의했다. 그들은 입다에게 편지나 사자를 보내지않고 그들 자신이 직접 데리러 갔다. 그들은 그가 담대하며 칼에 익숙하여 이 일에 적임자라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사역을 위해 그들을 어떻게 준비시키시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고난을 그들을 위한 기회로 삼으시는지 보라. 만일 입다가 자기 형제들의 불친절로인하여 내쫓기지 않았었더라면 그는 자신의 군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보람있게 사용함으로써 유명해질수 있는 이와같은 기회를 얻지못했을 것이다. 장군이 없는 군대는 머리가 없는 몸과 같은 것이다. 어떠한 공동체라도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들을 다스리는 은혜를 공손히 간청해야 한다. 정부를 위해, 즉 좋은 정부를 위해 하나님의 은총을 빌자.
(3) 입다는 그들의 제의에 대해 반박한다.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7절). 입다는 매우 기꺼이 자기 나라에 봉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전에 자기에게 불친절했던 것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그들은 그를 냉대하였던 자기들의 죄를 뉘우칠 것이었다. 이처럼 요셉도 자기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히기전에 먼저 그들의 오만한 콧대를 꺾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선한 사람들을 멸시하지만 곤궁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자비와 선한 사람들의 기도를 갈망하곤 한다.
(4) 그들은 입다에게 그들이 제의한 통치권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한다(8절).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가르쳐 준다.
1)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해서 그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도 적으로 만들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 자신들도 언젠가는 환난에 빠져 그 사람을 친구로 삼으려고 몹시 애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유능한 사람들이 때로는 경멸과 냉대를 받게되더라도 용기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온유하고 즐겁게 그 멸시를 참자. 그리고 미천한 자리에서 이끌어내사 빛을 비취게 하시는 하나님께 그 멸시를 맡기자.
(5) 입다는 그들과 계약을 맺는다(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했던 무례를 용서하셨었다(10:16). 그러므로 입다도 용서하려는 것이다.
1)그는 그들에게 정당한 요구를 한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9절). 즉 "만일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를 구해낸다면, 내가 그분의 이름으로 너희를 바로잡아도 되겠느냐?" 이와 똑같은 질문이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구원하신다면, 너희는 기꺼이 그의 다스리심을 받겠느냐? 왜냐하면 다른 조건으로는 그분이 너희를 구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신다면 그가 너희를 성별케하시도록 하겠는가? 만일 그가 너희의 구원자가 되신다면 그가 너희의 머리가 되시도록 하겠느냐?"
2)그들은 즉시 입다에게 명확한 답변을 한다(10절)."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전시에 우리를 지휘하시면 평화로울때에도 당신이 우리를 지휘하시도록 하겠나이다." 이렇게해서 먼저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 사이에 계약이 체결되었는데, 그후에 온이스라엘이 이 계약에 동의했던것 같다. 왜냐하면 12:7절에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모두 모여 진치고 있었던 미스바(10;17)로 장로들과 함께 갔다(11절). 거기서 그 모든 사람들은 입다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으로 삼는 것에 찬성했다. 입다는 이 보잘것없는 영예를 얻고도 기꺼이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12:3).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승리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울때 어떠한 난관들을 만난다고해서 그로인해 싸울 용기를 잃어서야 되겠는가?
(6) 이 중대한 전쟁에 천하여 입다는 하나님께 경건히 아뢴다.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11절). 즉 그는 즉시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모든 일들을 다 말씀드렸다. 그는 하나님 앞에 이 일에 관한 그의 생각과 염려를 모두 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우리가 그분께 스스럼없이 말씀드릴수 있도록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입다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을 것이다.
1)"여호와여, 백성들이 나를 자기들의 우두머리로 삼았나이다. 주께서 그 결정을 승인하셔서 당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나를 당신의 백성들의 머리로 인정해 주시지 않겠나이까? 주여,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는 이 통치권을 받아들이지 않겠나이다."

Ⅲ. 전쟁전의 협상 11:12-28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입다와 암몬 자손의 왕사이에 협상이 있었다.
(1) 입다는 권위를 지닌 자로서, 이 전쟁을 일으킨 암몬의 왕에게 이스라엘 영토를 침범한 이유를 묻기위하여 사신을 보내었다. 입다가 이러한 정당한 질문을 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준다.
1)입다는 자신이 큰용사임에도 불구하고 싸우기를 싫어하였으며, 평화로운 협상을 통해 전쟁을 방지하려 했다.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다시말하면 불화를 일으킨 문제에 대하여 다른 모든 방법들을 시도해 보기전에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써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칙은 법을 운용하는데 있어서도 준수되어야 한다. 전쟁의 칼은 물론이지만 서로 다투는 당파들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며 불일치된 문제점들을 조정하려 하는 보다 온건한 방법을 시도해 보기전까지는 법의 칼에도 호소해서는 안된다(고전 6:1).
2)입다는 공평하게 처리하기를 원하였으며 무엇보다도 공의롭게 행하려고 했다.
(2) 이제 암몬 자손의 왕은 자신이 요구하는바를 말한다. 이것은 그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기전에 미리 공포했어야 했다(13절).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 오래전에 내땅을 빼앗았으니 이제 그땅을 돌려 달라."
(3) 입다는 이 요구에 대해 매우 충분하고 만족할만한 답변을 한다. 즉 이제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소유인 아르논과 얍복강 사이의 이땅에 대해 암몬 족속은 아무런 권리도 없다는 것을 입다는 알려준 것이다.
1)이스라엘은 모압 사람이나 암몬 사람에게서 어느 땅도 결코 탈취한 적이 없었다. 그는 모압과 암몬을 함께 묶어서 언급하는데, 이는 그들이 형제지간, 즉 롯의 자손들로서 서로 이웃해 있었으며, 그모스라는 같은 신을 섬겼고 때로는 형편에 따라 같은 왕을 섬길정도로 일치된 이익을 도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땅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추측하는 바이지만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령하기전에 만일 아모리 사람들이 모압이나 암몬 사람들에게서 이 땅들을 취했었다면(민 21:26;수13:25) 이스라엘은 그것에 대해 조사하거나 보상할 필요가 없었다.
2)이스라엘은 저주받은 가나안의 후손들(아모리 사람도 그가운데 하나이다. 창 10:16)외에 어느 다른 민족의 땅을 침공하기는커녕, 에서의 자손인 에돔 사람의 땅이나 롯의 자손인 모압 사람의 땅조차도 강제로 통과하려고 하지않았다.
3)이스라엘이 이 땅을 점령하게 된 아모리 왕 시혼과의 전쟁도 시혼이 먼저 전쟁을 도발한 것이지 이스라엘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19,20절). 이스라엘은 그들이 그 땅을 통과할때 선량하게 행진할 것을 약속하며, 시혼에게 그의 땅을 통과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공손히 간청했었다. 그러나 시혼은 그들의 정중한 제의를 거절했을뿐만 아니라 군대를 소집하여 이스라엘에게 대적하는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20절).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서 정당하고도 불가피하게 자신들을 방어할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시혼의 군대를 참패시킴으로써 그가 입힌 손해에 대한 그 이상의 보복으로 정당하게 그의 땅을 빼앗았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이스라엘이 이 땅을 소유하게 된것이므로, 암몬 자손이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않는 일이었다.
4)입다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분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다는 점을 내세우며 그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23,24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온세상에 대해 주장할수 있도록 명확하고도 특별한 말씀으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다. '내가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신 2;24). 입다는 이 주장을 확증하기 위해 암몬 왕을 개인적으로 지적하여 논지를 편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24절). 여기서 입다는 그모스를 신으로 여기지않고 단지 '네 신'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들의 숭배자들은 그 신들이 선악간에 아무일도 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소유하는 모든 것들이 그 신들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호 2:12). 입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너희가 주장하는것 못지않게 우리땅에 대해서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다."
5)입다는 시효에 의한 권리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①이스라엘이 처음 그 땅을 소유한 이래로 그들의 소유권에 대해 논쟁한 적이 없었다(25절).
②그들의 소유권이 침해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26절).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소유해 온지가 거의 삼백년이 되었으며 그동안 암몬 족속이 그것을 탈취하려고 공격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처음에 그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수많은 세대가 지나는동안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암몬 자손은 그 땅을 소유할 권한을 의심의 여지없이 영구히 잃게된 것이다.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던 권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으로 추정되어야 한다.
6)입다는 이러한 여러 논지를 통해서 자기의 주장이 정당함을 밝히며 암몬 자손을 비난한다.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27절). 즉 "너희는 그렇게해서 번영하기를 기대하는구나."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이 번성하고 막강하던 시절에도(즉 사사 시대의 막강했던 동안에도) 모든 이웃 나라들에게 해를 끼치지않도록 처신했었다. 암몬 자손의 왕은 이스라엘과 싸울 구실을 얻기위해 300년전의 사실을 끄집어냈던 것이다.
7)입다는 이 논쟁을 해결하기위해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그 심판에 맡기나 암몬 왕은 그의 의견에 대립한다(27,28절).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입다의 해명이나 호소는 암몬 자손의 왕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암몬 자손들은 그들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18년동안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으므로(10:8) 이제 또다시 종종 자기들을 부요하게 해주었던, 열매가 풍성한 나무의 주인이 되려는 욕심을 품고있는 것이다.

Ⅳ. 입다의 서원 11:29-40
본문에서는 입다의 승리와 그가 경솔한 맹세로 말미암아 번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
(1) 입다의 승리는 완전무결하였다.
1)하나님께서 탁월한 기백을 주셨으므로 입다는 매우 용감하였다(29절).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으므로 그에게 위로부터 능력이 임하였고 천부적인 재능은 더욱더 고양되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의 직무를 승인하셨으며 그의 사명이 성공할 것임을 확신하도록 하셨다. 이렇게 격려받은 그는 지체하지 않고 확고부동한 결의를 다지며 전장에 나아간다.
2)하나님께서 입다에게 큰 성공을 베푸셨으므로 그는 크게 승리하였다(32절). 전장에서 적 병력을 분쇄한 그는 적의 성읍들까지 그들을 추격했다. 그러나 본문에는 그가 그 백성들을 완전히 멸망시켰다거나 그 나라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해치려고 공격해올때 그로부터 우리의 권리를 방어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까지 정당한 것은 아니다.
(2) 입다의 서원은 어리석은 것이었으며 상당히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이 위험한 임무를 띠고 집을 나서면서 하나님께 동행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중에 은밀하고 엄숙한 서원 또는 신앙적 약속을 하였다. 즉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롭게도 자기로하여금 이기고 돌아오게 하신다면, 무엇이든지 혹은 누구이든지 자기 집에서 자신을 가장 먼저 맞이하러 나오는 것을 하나님께 바쳐 번제로 드리겠다는 서원을 하였던 것이다. 입다는 승전소식이 그가 돌아오기도전에 집에 전해졌으므로, 그가 돌아오자 그의 외동딸은 때맞춰 기쁨으로 영접하였다. 이 일로인하여 그는 몹시 당황했으나 아무런 구제책도 없었다. 입다의 외동딸은 자신의 불운에 대해 얼마간 애곡한후 그의 서원의 이행을 위하여 기꺼이 순종하였다.
1)이 사건에는 배워두어야할 여러가지 훌륭한 교훈이 담겨있다.
①진실하고 훌륭한 신자들의 마음속에도 불신과 의심의 잔재가 있을수 있다. 입다는 분별없게도 자신의 승리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께 무언가 중요한 것을 드리지않고는 승리를 확신할수 없었던 것이다.
②그러나 우리가 어떤 은총을 추구하거나 기대할때, 우리가 바라는 은총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에 대해 우리가 행해야할 의무를 깊이 느끼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께 열납될만한 어떤 봉사로 서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③우리가 그러한 서원을 할때에, 신앙적인 열심히나 즉흥적인 감정에 끌려 스스로의 양심에 걸림이 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며 분별력있게 해야 한다.
④우리가 하나님께 엄숙히 서원한 것은 비록 그 이행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가능하고 정당한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양심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⑤여호와안에서 부모에게 정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자녀의 도리이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여러세대에 걸쳐 경건히 준수한 레가 족속들처럼,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양심을 편케하고 하나님과 국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린 입다의 딸처럼, 부모의 경건한 결단이 비록 가혹하고 모질더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가족의 신앙을 유지하기위해 그 결단을 따르는 것이 자녀의 도리이다.
⑥친구의 슬픔에 대해 우리도 함께 슬퍼해야 한다. 입다의 딸이 처녀로 죽게된 신자의 기구한 운명을 슬퍼하기위해 산으로 갈때에 그녀의 친구들도 함께 슬퍼하며 동행했던 것이다(38절). 우리가 울때 함께 울지않으면서 우리가 기뻐할때만 함께 기뻐하는 자들은 친구라고 볼수가 없다.
⑦비록 결함과 경솔함이 있긴하지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한 영웅적인 열심은 영원히 기억속에 남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스라엘의 여자들이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않은 입다의 딸의 명예로운 일을 기념하기위해 해마다 의식을 갖게 되었다.
2)그렇지만 이 기사에 대해서는 몇가지 난해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①입다가 자신의 서원을 이행함에 있어서 그의 딸을 어떻게 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어떤이들은 그가 그녀를 모든 세상사로부터, 궁극적으로는 결혼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여생을 헌신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려는 단지 유폐시켰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이 견해는 그녀가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했으며'(37,38절) '남자를 알지 못했다'(39절)는 성구가 근거로 제시된다.
㉡보다 신빙성있는 견해로서는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 바쳐진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율법을, 마치 사람들의 서원에 의해 바쳐진 사람들에게 적용시켜야 하는 것으로(레 27:29,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오해한 입다는 자기가 서원한 그대로 그녀를 희생제물로 드렸다는 것이다. 입다는 자신이 그런 서원하였으므로 그 서원을 어기는 것보다는 자기 딸을 죽이는 것이 더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를 영접하기위해 그 딸을 나오게한 책임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렸다.
②그러나 입다가 그의 딸을 희생제물로 드린 것이 잘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어떤이들은 그가 서원을 이행했다는 점을 내세워 그를 정당하다고 보며 잘한 일이라고 간주한다. 그렇게 서원을 이행함으로써 입다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원하는 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이들은 입다를 비난한다. 즉 그가 분별없이 서원함으로써 악을 행했으며, 그 서원을 이행함으로써 더큰 악을 저절렀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제 육계명으로써 금하셨었던 것을 자신의 맹세로써 범하지말아야 했다는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인신제사를 금하셨다. 그렇게 하는 것은 라이트푸트 박사의 말에 의하면 사실상 몰록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 핵심
11:1-11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고, 형제들로부터 축출되어 한푼의 유산도 받지못했던 불우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요단 동편에 있던 돕이라는 한 성읍에 정착하여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입다의 인신제사(11:31)
본문에 관해 해석이 둘로 나뉜다. 하나는 입다가 인신제사를 금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을(레 18:21; 20:1-5) 알지못하고 당시 가나안인들이 우상에게 하던대로 딸을 불살라 제물로 드릴 것을 서원했다는 해석이다. 다른하나는 입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 율법을 잘 알고있었다는 점에 근거한 해석이다. 이 해석은 특별히 39절에 입각하여 입다의 딸은 실제로 번제로 드려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번 바쳐졌기때문에 평생 결혼하지 않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고 추정한다.

# 묵상
입다의 출신 ( 11:1-3 )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천한 신분의 사람이었으며, 그로인하여 이복 형제들에게 구박을 받아 돕 땅에서 잡류와 함께 거하던 불행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출생이 아무리 비천한자라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권능을 베푸시면 위대한 인물이 될수 있다는 것을 입다를 통해 알수 있습니다.
간사한 사람들의 특징 ( 11:6, 7 )
이들은 자기에게 유익할때만 찾고 필요없을때에는 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다른 사람을 대할때 그의 외모나 학력등 외적인 면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인간의 눈으로는 외적인 것만을 기준으로 삼았을때 올바른 판단을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 ( 11:15-22 )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거나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해석과 적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왜곡하거나 오용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지만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이들에게는 지혜와 영생이 있습니다.
은혜의 근거 ( 11:23 )
성도가 받는 은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총에 기인합니다. 즉 은혜는 사람의 의나 어떤 공로에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땅을 얻을수 있는 근거 ( 11:24 )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세상의 모든 소유물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삶과 주를 위해 책임을 지는 청지기적 정신을 가져야만 합니다.
서원자의 책임 ( 11:30-33 )
입다는 전쟁을 하기전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만약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이기게만 해주신다면 인신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합니다. 서원은 하나님과의 계약입니다. 그래서 만일 이것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큰벌을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서원은 감정에 따라서 순간적인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입다의 딸 ( 11:34, 36 )
입다의 딸은 입다가 승리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승리의 기쁨으로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드려야할 찬양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권세를 이기신 것을 축하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시150:1-6). 한편 입다의 딸은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실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중한 것입니다(막8:37). 그러기에 이와같이 목숨을 바치는 희생은 더욱더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번제물과 사람 ( 11:39 )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저히 금하신 사항이었습니다. 이것은 원래 이방인들의 풍속으로, 입다의 이 서원은 처음부터 잘못된 서원이었던 것입니다. 얼핏보기에는 사람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겠다던 입다의 처음 서원이 하나님께 대한 지극히 높은 충성심을 말해주는것 같으나 전쟁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믿지않고 그래도 뭔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의존하는 인간의 교만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 비록 자기 딸이 아니라 종이었더라도 그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가 함부로 맹세의 제물로 바칠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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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사사 돌라와 야일 10:1-5
돌라와 야일 이 두사사들이 다스린 동안은 평온하고 태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 사사기에서도 매우 조금 기록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둘 다 사사로서 나라에 봉사하도록 하나님의 세우심을 입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즉 그들은 아비멜렉이 했던 것처럼 왕의 위엄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자기들의 영예를 구하지도 않았으나 그 자리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1) 돌라는 이스라엘을 지키기위해 아비멜렉의 후에 일어난 자라고 기록되었다(1절). 하나님께서는 이 선한 사람에게 신을 부어주사 아비멜렉의 권력 강탈로인해 그 나라에 빚어진 악습을 교정하고 우상숭배를 제지하며 분쟁을 가라앉히고 상처를 치유하도록 일으켜 세우셨다.
(2) 야일은 그 다음 계승자인 입다와 같이 길르앗 사람이었는데 둘 다 요단강 저편에 위치한 므낫세 반지파에 속하였다. 이 야일에 있어서 특히 주목할만한 사실은 그의 가족의 번성과 영예로움이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4절).
1)그들은 훌륭한 지위에 있었다. 어린나귀 삼십을 탔고. 즉 그들은 순회 재판관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대리인들로서 재판을 하기위해 나귀를 타고 여러번 순회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다녔던 것이다.
2)그들은 많은 재산을 가졌었다. 즉 그들은 각기 성읍을 하나씩 갖고있었는데 그 성읍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이름과 같은 선조의 이름을 따서 '하봇야일'(야일의 동리)이라 불렸다. 그렇지만 그 동리들은 '성읍들'이라 불리운다. 아무리 작은 동리라 하더라도 그것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성읍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Ⅱ.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고통 10:6-9
돌라와 야일 두사사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동안에는 만사가 형통하였다.
(1) 그러나 그후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돌아섰다.
1)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신들을 섬겼다. 즉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낯익은 귀신들인 바알들과 아스다롯뿐만 아니라, 마치 그들의 우매함을 그들의 모든 이웃나라들에게 선포하려는듯이 아람과 시돈과 모압과 암몬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까지도 섬겼던 것이다. 마치 모든 나라들로부터 신들을 수입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주요 무역이었던 것처럼 보일정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사악한 술책으로써 자기의 우방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나라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해 이스라엘의 적이요 압제자가 되었다.
2)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을 그들이 섬기는 많은 신들중의 하나로 여기려고 조차도 하지않고 그분을 완전히 저버렸다. 하나님과 맘몬(Mammon) 즉 재물을 한꺼번에 섬기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곧 하나님을 완전히 저버리고 오직 맘몬만을 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마음을 차지하지 않게 되면, 얼마 안되어서는 하나님께서 계시지않는 마음이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들의 압제하에 있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또다시 심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가운데 어떤 성읍이라도 우상숭배로 하나님께 반역하면 그 나머지 성읍들은 그 성읍 거민들과 싸워 그들을 칼날로 진멸하는 이스라엘 인근의 나라들을 사용하사 그들의 배교를 징치하셨다. 롯의 자손인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다.
1)암몬 사람들의 압제는 매우 길었다. 그것은 십팔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2)암몬 사람들의 압제는 매우 가혹했다. 그들은 요단 저편의 그들 땅옆에 있는 이스라엘의 지파들부터 압제하기 시작했다. 그 지파들이 살던곳이 본문에서는 '아모리 사람의 땅'(8절)으로 기록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증스럽게 타락하여 이방인들과 같이 되었고 풍습에 있어서 완전히 아모리 사람과 같이 되었기 때문이었다(겔 16:3). 암몬 사람들은 점점 이스라엘로 침입해 들어와서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중 가장 유명한 세 지파인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을 침략하였다(9절).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저버린 연고로 이와같이 모욕을 당했으나 침략자를 저지할수 없었다.

Ⅲ. 이스라엘의 회개 10:10-18
(1) 환난에 빠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겸허한 마음으로 회개하였다(10절). 그들은 이제 자기들의 태만과 범죄를 고백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10절). 즉 "우리가 바알들을 섬김으로 어리석고 신실치 못한, 그리고 매우 사악한 짓을 저질렀나이다."
(2) 하나님께서는 즉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오만한 콧대를 꺾어놓은 메시지를 주셨다. 이 메시지가 천사를 통해서 전해졌는지(2:1) 아니면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졌는지는(6:8) 확실치 않다. 이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1)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극심한 배은망덕을 책망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베푸셨던 위대한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신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써 그들을 징계하셨으며 자비로써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두려움때문이건 사랑때문이건 하나님을 신뢰하고 섬기리라고 당연히 기대되었다.
2)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그들이 섬겨왔었던 신들에게 버려두심으로써 멸망하도록 버려두시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 일인가를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하여금 철저히 회개하고 회심하도록 일깨우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하신다.
①바알들을 섬긴 그들의 어리석음 :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14절). 즉 "이제 그 신들이 너희들에게 해줄수 있는 것을 하게 해보라." 참된 회개에는, 그러한 모든 우상들이 우리들을 도와주기에는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몹시 좋아하는 감각의 쾌락이나 우리가 몹시 갈망하는 세상의 부가 우리를 만족케 할수 없으며, 하나님안에서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행복과 안락을 누릴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②하나님을 버림으로써 빚어진 그들의 불행과 위험.
(3) 이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에 겸손히 순종하며 더불어 그의 자비를 겸손히 구했다. 그들은 참회를 반복했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15절).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음과 같이 했다.
1)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복종했다.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2)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했다.
(4)이어서 그들은 복받을만한 개혁에 착수하였다.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다. 자기 가운데서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16절). '이방신들'이란 말은 이방인들의 신들을 가리킨다. 여호와를 섬기매. 이것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일뿐만 아니라 죄로부터의 진정한 회개이다.
(5)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다시 은혜를 베푸셨다. 이 하나님의 은총이 본문에는 매우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16절).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신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기뻐하신 것만큼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자비로써 그의 선하심을 백성들에게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빛의 아버지이신 것과 같이 자비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6) 이제 이스라엘을 암몬 자손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기위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17,18절).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이스라엘에게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과거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었다.
1)암몬 자손들은 자신들의 파멸에 무감각하였다. 그들은 하나로 뭉쳤으므로 일격에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계 16:16).
2)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의 구원에 활기를 띠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모였다(17절). 이스라엘은 십팔 년간이나 이전과 같은 노예상태로 적들에게 짓밟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가 되려고 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각 집안, 성읍, 지파들은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을 결합시킬 공동의 이익을 위한 책임감의 결여로인해 그들 모두가 압제자들에게 쉽게 약탈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들이 뭉치기만 하면 잘해 나갈수 있었다. 그들은 여기서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공동의 유익을 증진하기위해 그리고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위해 하나가 될때, 그들앞에 어떤 난관이 있을수 있겠는가?

# 핵심
10:1-5
사사기에는 바락을 제외하고 모두 열두명의 사사들이 등장한다. 돌라와 야일은 입산, 엘론, 압돈과 함께(12:8-15) 상세한 업적이 기록되지 않은 ‘소사사들’(minor judges)에 속한다.

# 묵상
사사 돌라와 야일 ( 10:1-5 )
사사 돌라는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이자 부아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한뒤 23년간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사하였습니다. 또한 사사 돌라는 길르앗 사람으로, 22년간 사사로 봉사했는데 그는 본문에서 볼수 있듯이 높은 지위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 결과 ( 10:6-9 )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는 첫째, 이방의 여러신들을 섬긴 것이며 둘째, 여호와를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첫째,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고 둘째, 아모리 사람에게 18년동안 학대를 당했으며 셋째, 암몬 자손의 침략으로인한 가난과 기근으로 백성들이 심히 고생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은 황폐하게 되어 몸과 영혼이 모두 피폐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할일은 오직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 10:13 )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아버지로서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는 다시 구원을 허락하십니다(사1:18, 19).
하나님의 근심 ( 10:16 )
하나님은 성도가 당하는 고통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며 그로인해 근심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징계와 아울러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다(히12:3-11). 그분은 직접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셨기에 인간의 약함을 이해하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히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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