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본질은 무엇인가(습 2:1-15)?

죄로 인한 근심(고후7:10).
하나님을 찾음(습2:3).
하나님의 공의를 구함(습2:3).
죄를 자백하고 죄를 버림(잠28:13).
주님의 선물로 주의 사랑을 깨닫게 됨(호6:1).
삶의 변화로 나타나며 선한 열매를 맺음(행26:30).


죄가 장성하면 어떻게 되는가(습 2:1)?

수치를 모르고, 자신의 범죄에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해 만성이 되면 나중에는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죄의 불감증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파멸의 날이 더욱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습 2:3)?

모든 것이 숨김없이 밝히 드러남.
구원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롬3:24; 5:5).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우리들은 구원을 낙관한채 방종하지 말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심판의 차이점은(습 2:8-11)?

이방 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멸망 당함.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는 공의의 심판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다시 회복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의 신실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이 불신자에게는 멸망이요 성도들에게는 구원임을 예표해 줍니다.


앗수르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 원인은(습 2:15)?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최고의 교만 때문에.
군사력을 앞세워 약소국을 약탈하고(왕하15:11), 하나님께 대적하는 교만을 행했기 때문에(왕하18:19-37).
앗수르는 심판을 위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지만 교만함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처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됩니다(잠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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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의 내용은(습 1:1)?

하나님 앞에서 여러가지 죄악을 저지르고 우상 숭배를 하는 등 패역 무도한 행위를 일삼는 유다 백성들에게 멸망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며 이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회개할 것을 권고함.
또한 여호와의 날에 회개하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축복과 영광이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파괴된 것은(습 1:2, 3)?

모든 생태계.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
노아 홍수때 창조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지면에서 쓸어버리셨음.
이렇게 볼때 생태계는 인류와 공동체이며 지나친 과학화, 산업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유다에 대한 심판의 가장 큰 원인은(습 1:4-6)?

우상 숭배.
므낫세 왕의 우상 숭배는 유다의 종교적 타락으로 이어져 나라 전체가 죄악의 도성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이는 악인의 최후 심판 때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유다에 대한 심판의 대상자들은 누구인가(습 1:8-13)?

부정부패를 일삼아 자기의 사욕을 채우는 정치가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불신자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하나님에 대해서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두지않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선민 유다의 심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습 1:8-13)?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되 중심을 버리고 형식만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라는 점.
이러한 자들은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의 묵상을 통하여 말씀을 삶의 척도로 삼아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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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 민족의 죄와 심판(습3:5-8)

1) 하나님의 심판 경고와 회개 촉구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비되는 남유다의 완악함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매순간마다 공의를 나타내 보이심으로 유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셨다.

2) 이방 민족을 통한 심판
남유다의 죄악상이 더 이상 재고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극에 달하자 이제 남은 것은 열국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뿐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남유다의 비극적인 운명은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 심각한 도전을 준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최후의 심판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남유다가 택함 받은 민족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치 못했을 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택함 받은 성도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징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2. 남은 자들의 구원(습3:9-13)

1) 남은 자들의 회복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징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화시킴에 있음을 보여 준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후 회복하시는 축복을 주신다. 우상의 이름을 부르며 그것에 입맞추던 부정한 입술을 가진 이방인들 가운데 남은 자를 택하신 하나님은 그 입술을 정화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신다. 이제 그들은 정결한 입술로 오로지 여호와의 성호만 찬송하고 언제나 그분만 경배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만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그 때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물을 가지고 땅 끝의 모든 나라에서 돌아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2) 이스라엘의 구원선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포로됨을 다시 돌이키시고, 이스라엘의 눈물과 간구로 주께 다시 돌아올 때, 그들은 지난 시절에 행한 불법들로 인하여 더 이상 수치를 당치 않을 것이다.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은 제하여지고 이스라엘 중에는 오직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만 남게 된다. 이들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앙망하게 될 것이며, 여호와의 이름만 신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함으로써 그분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은 이제 불법을 저지르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기만도 행치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여호와의 양무리와 같이 이스라엘은 부족함이 없이 먹으며 누으며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약속을 받는 것이다.

3. 여호와의 날의 구원과 기쁨(습3:14-20)

1) 이스라엘 회복의 기쁨
이스라엘의 기뻐할 근거는 이스라엘의 불법 때문에 가해졌던 재난이 사라진데에 있다. 이것은 죄를 용서함 받았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 대적 원수를 쫓아내셨으므로 더 이상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중에 있으므로 강한 보호자 되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돌아오신 것이다. 그 여호와가 이스라엘 중에 계실 때 더 이상 재앙을 보거나 겪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해 있지 않다. 특히 습 3:17에 나타난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묘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의 말로 나타나 있다. 진실로 말할 수 없는 사랑, 즐거움을 지닌 하나님의 사랑은 믿을 수 없고, 말로 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이다.

2) 여호와 날의 완전한 구원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배지로 옮겨지고 이방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일어나실 때 결과적으로 압제자들에게 구원되고, 무거운 짐과 같이 그들을 짓누르던 노예의 형벌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한다. 특히 바벨론 포로된 자들 가운데 즐거운 성회를 참석치 못해 근심에 빠진 경건한 자들을 모으시고 연합케 하신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를 쏟으시고자 일어나실 때에 먼 나라로 흩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나라에서 유리하며 방황할지라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로잡힘을 돌이키실 그 날에는 그들을 다시 모으시게 된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이스라엘에게 치욕을 뒤집어쓰게 한 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로잡힘을 돌이키실 때에는 치욕이 씻기고, 이스라엘은 지상의 모든 백성들 가운데 한번 더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수치를 영광으로 전환시킬 것을 약속해 준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구속사의 주체이시다. 이런 하나님은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시공에 구애를 받지 않고 전역사에 임재하시고 이를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임재와 사역에 의하여 역사는 예수의 구속의 법을 중심으로 택한 성도의 구원을 위하여 한순간도 중단되지 않고 연속되는 구속사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예언과 이스라엘과 열방 가운데서 남은 자의 회복과 남은 자가 누릴 기쁨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1. 예루살렘의 죄악(습3:1-8)
스바냐는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습1:14-18에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또다시 예루살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이런 예루살렘 백성들의 죄악을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셨나?

1) 예루살렘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
이미 앞에서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예루살렘의 죄악을 언급하고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함으로써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회개케 하기 위함인 듯하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로써 예루살렘 거민들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죄악은 패역, 더러움, 포학이라는 삼중적 죄악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중적 죄악은 서로 연결되고 얼킨 하나의 죄악이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그 결과 서로 물고 찢고 죽이는 포학한 자들이 된 것이다. 더욱이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방백들,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이 더욱 타락했으니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처럼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범죄하여 타락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은 이방 민족의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으나 그들은 오히려 더 패역해져 갔다.

2) 성도로서의 책임과 의무
남유다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었다. 그러나 선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부름 받은 우리도 날마다 성도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서 하나님의 징계 대상이 되지 말아야 겠다.

2.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습3:9-13)
남유다와 열방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언급이 끝나고 이제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심판의 메시지와는 달리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즉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 이전에 이방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 언급이 먼저 나오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또한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다의 무엇을 원하시는가?

1) 영적인 정화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언급 이전에 이방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 언급이 먼저 나오는 것은 종말의 때에 육적 이스라엘보다 이방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에 기여할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롬11장). 또한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유다의 영적인 정화를 기대하신다.

2) 믿는 자의 도리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습3:13)고 하였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자로서 언제나 올바른 행실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겠다. 또한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실로 주님을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인품을 드러내야 하겠다.

3. 남은 자가 누릴 구원의 기쁨(습3:14-20)
본문은 본 서에 있어서 종결부에 해당된다. 여기서 여호와의 날에 이방과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가 누릴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런 본문의 예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습3:20에서 '그때에'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1) 예언의 이중적 의미
본문의 예언은 1차적으로는 유다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귀한(B. C. 537년)을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장차 주의 재림으로 인해 친히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날 그의 백성들이 세계 각 곳에서 모여들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때의 기쁨을 가리킨다. 그리고 습3:20에서 '그 때에'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쓴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구원과 축복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이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본문은 남은 자들이 누릴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하루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기쁨을 드릴 만한 것인가 반성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날마다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죄악에 치우치지 않아야겠다.

남유다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 사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비록 선민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이스라엘과 열방 가운데서의 '남은 자'의 사상은 우리에게 선민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구약성경에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유대 편협주의의 모습만 나타났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방 민족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구속사의 장으로 한걸음 더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세계 만민의 구원이 예언되었고,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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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인들을 향한 회개의 권면(습2:1-3)

염치를 모르는 나라들은 스스로 먼저 모여서 회개의 첫 길 되는 부끄러움을 알라는 것이다. 심판의 선고가 시행되기 전에, 진노의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구원의 기회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심판 전에 아직 구원의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재빨리 회개하라는 뜻인데, 습2:2에는 전(前)이란 말이 네 번이나 중복되었다.
스바냐 선지자는 본문을 통하여 선민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을 면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회개 촉구의 대상을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로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을 선민 이스라엘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만민으로 확대하고 있다. 회개를 역설체로 강력히 권면하는 이유는 겸손하여 하나님을 찾고 공의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은 심판 날에 숨겨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까닭이다. 이것이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이시다.

2.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습2:4-15)

1) 블레셋에 대한 심판 예언(습2:4-7)
블레셋 족속은 다섯 부족의 연합국이었는데, 그들의 땅이 지중해변에 위치했기 때문에 '해변의 거민들'이라고 불리웠다. 이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땅을 부당하게 소유하며, 유다의 외곽에서 역사적으로 유다를 괴롭게 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그 죄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습2:4에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내가 너를 멸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는 표현은 블레셋 족속이 아주 망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이같이 번영의 도시와 촌락들이 심판을 받아 없어지고 초장이 되어서 목자와 양 떼의 거처가 될 것이며, 심판 후 이 땅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때로는 아무런 물질이나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나 소유를 빼앗길 때에도 하나님은 결국 성도의 권리를 찾아 주시고 지켜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모압 암몬에 대한 심판(습2:8-11)
모압과 암몬은 사해 동편에 소재한 민족이다. 이 두 민족은 혈통적으로 유다와 관계가 있으니, 옛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두 딸들의 소생들이요, 다같은 셈의 후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압 왕 발람 때부터 사사시대에 이르기까지 기회가 있는대로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게 하였고, 자기들이 선하고 위대하다고 자랑하면서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고 무시하는 죄를 지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고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하셨고 그래서 모압과 암몬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황무하리라"하신 말씀 그대로 멸망 당했던 것이다.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비방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백성 됨의 참모습인 것이다.

3) 구스 앗수르에 대한 심판(습3:12-15)
구스는 지금의 이디오피아를 의미하는 듯하다. 구스는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마찰은 없었으나 애굽과 관련되어서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였다. 이 나라는 죄가 경미하여 아주 멸망 당하는 심판은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었다.
반면에 스바냐는 거만한 앗수르에게 완전한 파멸이 이를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 나라는 멸망할 것이요, 그 도성은 메마르고 적막한 폐허가 되어 사막의 짐승들이 그 가운데 살 것이며, 사원들과 궁은 부서지고 당아와 고슴도치가 몰락한 동성에 깃들 것이고, 남녀 가수들의 선율이 더 이상 궁 안에서 들리지 않게 되고 그 대신 바깥 벽 창문턱에 앉은 외로운 새의 울음 소리만이 울려 올 것이다. "문턱이 적막하리니"가 그것이고, 사막으로부터 불어올 모래 더미가 도시의 파편과 섞여 마침내 예전의 장엄한 흔적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파멸은 당연하다고 인정될 것이고, 지나가는 자들은 조롱을 던지고 멸시의 표시로 손을 흔들 것이라고 하였다.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습2:15)는 말씀이 가리키듯이 그들의 죄는 바로 교만이었다.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백성을 무시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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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많은 이방 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책하셨다. 블레셋이라든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그리고 남유다를 침입하여 멸망시킨 바벨론 등이 그런 이방 민족이다. 구약 시대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깨닫게 하시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 이방 민족까지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바냐는 만민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회개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또한 선민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방 민족을 사용하시지만 결국에는 이방 민족을 향해 보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 회개의 권고(습2:1-3)
본문은 남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 습1:4-18에 이어 세상 모든 만민을 향한 회개를 권고하고 있다. 이 본문은 남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언급(습1:4-18)과 열방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언급(습2:4-15) 사이에 일종의 삽입구이다. 스바냐가 이처럼 회개의 권고를 남유다에 대한 심판의 언급과 열방에 대한 심판의 선언 사이에서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회개를 해야 될 대상을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습2:3)로 언급한 것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는가?

1) 하나님께 돌아오라
스바냐가 회개의 권고를 남유다에 임할 심판과 열방에 임할 심판 사이에서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이나 이방 민족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회개해야 될 대상을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습2:3)로 언급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선민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만민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구약 시대부터 확대된 만민구원 사상(시76:9)과 구원이 혈통이나 민족의 차원이 아닌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합2:4)을 직시하게 해준다. 그래서 본문은 여호와의 날의 이중성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을 거스려 행악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다.

2) 죄에 대한 불감증
남유다 백성들은 죄로 인해 생기는 모든 불행과 멸망을 보고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려 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수치를 모르는 백성"(습2:1)이라는 책망을 하셨다. 우리는 이런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고서도 죄를 느끼고 깨닫지 못하는 죄에 대한 불감증에 걸리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겠다. 하나님 앞에서의 철저한 회개와 통회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된다.

2. 열방에 미치는 심판(습2:4-15)
스바냐는 본문에서 여호와의 날에 심판 받을 나라로 블레셋(습2:4-7), 모압과 암몬(습2:8-11), 구스(습2:21), 앗수르(습2:13-15) 등을 들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멸망 받을 나라는 다섯 나라밖에 없지만 이들은 남유다의 동서남북에 각기 위치하여 전세계 열방을 대표한다.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예언은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본문에 나오는 다섯 나라가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보응을 받게 되는가?

1) 불신앙과 죄로 인한 열방의 심판
스바냐는 남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 후 이방 민족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블레셋과 모압과 암몬, 구스와 앗수르의 다섯 나라를 언급하면서 이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예언은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고 교만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포이다. 이 선포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한 모든 악한 자들에 대한 최후 심판의 예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이방 다섯 나라의 죄악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과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적인 교만에 있는데, 이런 죄악으로 인해 이방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여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된다.

2)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불신앙적인 교만
하나님은 우상 숭배도 미워하시지만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적인 교만도 미워하신다. 그리고 이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백성뿐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들까지도 반드시 심판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오는 것은 바로 이런 불신앙과 불신앙적인 교만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만이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이방 다섯 나라가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항상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선민인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여부에 따라 그 존재 여부가 결정되어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사는 모든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에 대한 범죄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스바냐는 선민인 이스라엘과 모든 열방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해야 죄의 결과인 심판과 멸망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바냐는 선민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앙적인 교만에 사로잡힌 열방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이 구속사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보응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여호와의 날에는 악인에게는 영벌이, 의인에게는 영생이 주어지는 구원과 멸망의 양면성을 지닌 날이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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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상 숭배에 대한 벌

1) 일반적인 심판
본문에 남유다와 열방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는 전반부의 서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세상 끝날에 있을 여호와의 전우주적인 심판으로 선포하고 있다. 여호와의 심판은 인류로부터 어류, 금수에까지 이른다. 이는 노아 홍수 때를 연상케 하며, 여호와의 최후 대심판이 매우 엄중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전우주적인 심판의 선언은 대종말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예언한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전우주를 심판하실 수 있는 절대 권능을 소유한 분이시며,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2) 유다 민족에게 임할 심판
남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서 우상 숭배 죄를 지적하고 우상 숭배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그마림'은 우상의 제자요, '말감'은 암몬인의 우상 '몰록'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우상 숭배자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 종교 신봉자들은 물론 소극적으로 여호와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아니한 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심판의 대상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남유다 멸망의 원인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각가지 현대적 우상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다른 어떤 것들을 더 중히 여기며 사랑했던 모습은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 여호와의 희생의 날

1) 심판 받을 자들의 죄악상
하나님은 심판의 대상으로 왕가 상인들, 방탕자들과 폭도들을 열거하고 있다. 왕가의 죄악은 이방의 옷을 입는 것과 문턱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들은 애굽과 앗수르, 바벨론의 의복을 단순히 취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과 숭배를 신실하게 지키기보다 사치스럽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 나라를 동경하고 영적으로까지 의지하고 추종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다곤의 제사장들처럼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관습의 모방을 넘어서서 무고한 백성들의 집에 들어가 강포와 궤휼로 그들의 재산을 빼앗은 죄이다. 상인들의 죄는 탐욕과 고리대금이다. 그들은 궤휼과 고리 대금업과 같은 극악한 상투 수단을 통해 '은을 적재한 자'들이다. 그들의 사특한 처세술로 치부된 부는 저주가 되며, 그렇게 모은 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방탕한 자들과 폭도들에게도 두 종류의 죄가 있는데, 방종과 무신앙이다. '무릇 찌끼같이 가라 앉은' 그들은 자신들과 죄악된 욕망과 부패한 본성의 희열에 내맡긴 채 마음과 심정을 닫아 버리고, 뻔뻔스런 무신앙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2) 심판 받을 자들에 대한 징계 선포
왕가의 죄인들은 그들의 불법 때문에 소집될 것이며, 비록 하나님은 그들로부터 멀리 계실지라도 돌아오셔서 그들이 지은 악행을 심판하실 것이다. 상인들은 그들의 부당한 취득을 박탈 당할 것이며, 그들 스스로 파멸케 될 것이다. 또한 방탕한 자들과 폭도들은 그들의 가장 어두운 은신처에서 끌려 나와서 그들의 감각주의와 무신앙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3. 여호와의 심판의 날 

1) 심판의 임박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가깝고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라고 반복하여 말함으로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임박했음을 매우 강조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 재앙의 날은 분노와 환난의 날이요, 황폐와 패괴의 날이며, 캄캄하고 어두운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훨씬 더 적절히 적용될 날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다. 이때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나타나실 것이다.

2) 비참한 심판의 광경
하나님의 심판이 죄인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철저하고도 분명하게 진행될 것이며, 그 무엇으로도 변개시킬 수 없는 필연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찾지 않은 자들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소경이 혼자 길을 걸어가며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을 주겠다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질투의 불로써 삼키워 버리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세상의 재물이 결코 그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물질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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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선지서들은 대부분 구약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하는 구약 구속사의 전개 과정 중 이제 패역의 역사를 거듭하던 분열왕국 시대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의 시기를 배경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지서가 이스라엘의 죄악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본 서 스바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이방 민족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마는 비참한 역사를 맞이하게 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본 연구에서는 그런 유다의 죄악과 그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구속사적인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유다에 임하는 심판에 대한 경고(습1:1-13)
스바냐는 요시야 왕 초기에 예언하기 시작했다(대하34:3-7). 나라안에는 온갖 악습이 행해지고 사회적인 불의가 성행하고 도덕적인 부패가 날로 성해져 가던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스바냐는 유다와 열방들에 임하는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였다. 즉 온 인류에게 닥칠 심판과 구원을 예언했다. 본문에서 스바냐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자들의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말하고 있나? 또한 여기서 심판 날은 무엇을 가리키나? 그리고 심판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1)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날은 심판과 구원의 날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한 것이며 또한 예외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뿐만이 아니라 믿음을 버린 자들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포함된다. 여기서 심판 날은 요엘이 예언한 궁극적인 여호와의 날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욜1:15). 첫번째 심판은 이방의 관습과 습관을 좇아 행하던 방백들과 왕자들에게 선포되었고(습1:8), 두번째 심판은 백성을 약탈하고 늑탈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였으며(습1:9), 세번째는 정직하지 못한 상인들에게 임하였고(습1:10,11), 네번째는 사악하여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심판이 선포되었다(습1:12,13). 그러므로 본문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 이중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먼저 심판은 실제로 바벨론 침입(B. C. 586년)에 이루어졌으며, 예수의 재림을 통해 이 세상의 완전한 심판이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다.

2)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우리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심판날은 온 세상에 임하는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자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영적 우매자들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며(습1:12),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너무 강조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항상 우리 삶 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겠다.

2. 하나님의 진노(습1:14-18)
스바냐는 예루살렘이 멸망 당하는 날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약 40년 후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침입에 의해서 실제로 성취되었다. 스바냐는 습1:14에서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것은 그 이전의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는 선지자들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 심판에서 구출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은 무엇이라고 하였나?

1) 예루살렘 멸망의 임박성
스바냐가 '여호와의 날'을 말하면서 습1:14에서 "가깝도다"라고 언급한 것은 심판 날의 임박성을 말하는 것이다. 스바냐 이전 시대에 '여호와의 날'을 언급한 선지자들은 '어두움의 날' (암5:18,20)이란 표현을 사용했으나 그 날의 긴급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바냐 이후의 선지자들은 그 날의 긴급성을 계속해서 알려 주고 있다(겔7:7 ; 욜1:15). 이것은 갈대아인들의 침입의 때를 가리키는데, 예루살렘 성과 유대 국가가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마음에 상상할 수 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상황의 공포를 총동원해서 묘사하고 있다. 스바냐는 습1:15에서 여호와의 날을 분노의 날, 환난과 고통의 날, 황무와 패괴의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로 표현하면서 그 날의 처참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는 어떤 인간적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잘라서 말하고 있다.

2) 하나님 심판의 임박성을 의식하며 생활할 것
스바냐는 반드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있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섰을 때 우리의 가정 그리고 나는 어떤 판결을 받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가 반성하고 재고해 보아야겠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어떤 자에게도 예외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먼 훗날에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심판의 임박성을 의식하면서 주님의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야 할 것이며, 항상 주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그의 자녀들이 올바른 진리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지 않고 그릇된 길로 가거나 악한 유혹에 빠져 범죄하면 그 범죄를 처음에는 한두번 경고하시나 그래도 계속해서 그릇된 길로 가면 이방 민족이나 다른 것들을 들어서 그의 자녀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의 자녀들에게 채찍을 가하신다. 유다는 그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과 불의, 부정과 부패로 인하여 크고 두려운 날인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스바냐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 백성들에게 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않고 그릇된 길로 가거나 세상의 것들만 따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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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록 연대에 대한 세 가지 견해

1) 요시야 왕 18년 이전 시기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시야 왕의 선정과 관련하여 스바냐서의 연대를 추정한다. 요시야 왕은 전국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우상을 훼파하고 이교적 풍습을 타파하여 당대에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따라서 여전히 우상 숭배와 이교적 풍습이 만연해 있는 듯이 말하고 또한 왕족들끼리 그러한 관행에 동참하고 있다고 증거하는 스바냐서의 내용으로 볼 때 요시야가 개혁을 단행하기 이전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만약 요시야 왕이 개혁 조치를 이미 시작하였거나 진행 도중이었다면 스바냐가 그러한 선행에 대해 조금의 암시조차 하지 않았으리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 요시야 왕의 개혁 도중설
이 주장을 피력하는 사람들은 스바냐의 예언 사역 동안 이미 개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고 여긴다. 그 근거는 습1:4,5 ; 3,4,5에 여호와 숭배의식이 아직 존재하고 있었던 것과 바알 종교나 기타 우상 숭배가 같이 행하여지고 있었다는 내용에 둔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동시대에 사역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을 피력하는 사람들은 요시야 왕 13년에 사역을 시작했던 예레미야도 스바냐 만큼이나 강력한 어조로 당시의 종교적 형태들에 대해 비난하고 있는데 동시에 약간의 개혁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요시야 왕 18년 이전 시기설에 반박한다. 당시에도 우상숭배가 표면적으로는 제거되어 있었지만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요시야 왕의 개혁 이후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바냐의 예언이 보다 늦은 시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 주장의 주된 근거를 습1:4에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라는 표현에서 찾는다. 이는 바알 숭배와 같은 우상 숭배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있으나 그 남은 것까지 멸절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남아 있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제거하는 작업이 있었다는 말인데, 그 제거하는 작업을 요시야의 대대적인 개혁의 사역으로 보는 것이다.

2. 스바냐서의 성격

1) 적나라한 심판의 예고
스바냐는 책 서두에서부터 다른 설명이나 수식을 사용하지 않은채 직설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이는 구약 전체에 있어서 가장 과격한 심판의 예고라 할 수 있다. 습1:2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는 말씀으로 시작된 그의 예언은 시종일관 심판과 징계, 환난, 황폐함 등으로 나타나며 '여호와의 날' 사상으로까지 발전한다

2) 침울함과 어두움의 연속
스바냐는 가차 없이 인간의 죄악에 대한 그 심판을 증거하고 있으므로 매우 침울하고 어두운감을 준다. 따라서 스바냐의 예언에는 큰 신앙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단지 남은 자들은 겨우 목숨을 건지는 정도이다. 더욱이 부드러움이나 정서적인 측면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멸망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충실히 증거되고 있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하며 두려운 것인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3. 여호와의 날

성경에 '여호와의 날'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약 18회나 나온다. 그중에서도 7개 정도는 미래의 역사적, 우주적 사건을 기대하는 희망적인 사실과 관련하여 나타난다(사2:12-17 ; 사34:1-17 ; 사61:1-3 ; 사63:1-6 ; 암5:18-20 ; 슥14:1-21 ; 말3:13-4:6). 다른 6개의 본문은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다"는 선언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 절박함과 두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사13:1-22 ; 겔7:1-27 ; 겔30:1-9 ; 욜1장 ; 옵1장 ; 습1:1-2:3). 한편 다른 5개의 본문은 여호와의 날의 개념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기록해 주고 있다(사22:1-14 ; 렘46:2-12 ; 애1,2장 ; 겔13:1-9 ; 암5:18-20). 이 본문들은 예언자들이 표현한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여러 모로 조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개념들은 과거·현재·미래형으로 폭넓게 나타나지만 엄청난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으로 규정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호와의 날은 두려운 날이지만 한편으로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구원과 메시야의 나라가 온전히 들어서게 하는 문턱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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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바냐서의 서론

 

어느 시대나 악한 통치자 시대가 끝나면 선한 통치자가 등장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곤 한다. 스바냐서는 유다 왕 중의 가장 악한 왕 중의 한 명인 아몬드의 시대가 끝나고 요시야 왕이 등장하여 종교개혁을 이룬 초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스바냐서는 스바냐라는 상류 계층의 예언자의 예언을 기록한 책으로서 주로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2.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본 서에 나오는 내증(습1:1)으로 보나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승으로 보나 스바냐가 본 서의 저자인 것이 명백하다. 본 서의 저자의 족보가 4대까지 기록된 것과 큰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유다 왕 히스기야의 후손임(습1:1)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보아 스바냐는 상당한 상류 계층의 예언자로 추측된다. 또한 스바냐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죄악을 꾸짖은 사실(습1:7-9 ; 습3:3-5)과 그에 관한 긴 족보로 보아 왕가의 혈통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스바냐의 설교는 요시야 왕의 통치 기간 중에 행하여진 것으로서(B. C. 640-609년), 주전 621년의 종교개혁보다 앞서 선포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기록연대
본 서의 저자인 스바냐가 어느 시대에 예언을 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언의 시기를 결정할 만한 내적 증거가 습1:4-6에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여기에서는 므낫세 왕때 유행했던 이방신에 대한 제사와 발알 숭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운동은 주전 621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문제는 예언의 시기가 요시야의 종교개혁 시대 이전이냐 이후이냐가 초점이 된다. 우상 숭배에 대한 책망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B. C. 622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본 서의 기록연대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인 주전 640-622년경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기록 목적과 주제

1)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요엘이나 아모스와 같이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본 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을 상징한다. 일반 민중들은 여호와의 날을 선민으로서의 구원이라는 관념에서 생각하고 있으나 선지자들의 이날에 대한 관념은 두려움 심판의 날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본 서는 여호와의 날에 구원받을 남은 자(습3:13)들의 영광을 노래하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로 다가오나 그 처절한 심판 속에서 구원의 희망을 간직한 자들인 남은 자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2) 주제
본 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말하면 '여호와의 날'이다. 요엘이나 아모스와 같이 여호와의 날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여호와의 날은 정확히 표현하면 '심판과 축복의 날'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은 먼저 심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선지자들의 공통된 예언 형태이다. 그리고 본서에 나타나는 심판은 유다에서 시작되어 유다 땅은 황폐케 되고 결국 모든 열방에까지 번지며 그 엄위와 능력을 일깨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남은 자'들은 그 날을 인하여 오히려 기뻐하게 된다.

4. 특징과 내용 분해

1) 특징
본 서의 가장 큰 특징은 '여호와의 날' 사상이다. 여호와의 날은 본서의 주요 메시지를 이루고 있으며 희생의 날(습2:8)로서, 분노의 날, 고통의 날, 캄캄한 어두운 날, 구름과 흑암의 날(습2:14)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 서는 여호와의 날이 지니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적 성격을 자세히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거짓 예배에 있다. 즉 하나님을 무시하며, 더 나아가 그의 존재를 인정치 아니한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본 서의 특징으로는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들 수 있다. 수식어를 거의 사용하지 아니하고 운율성을 강조하지 않은 간결하고 사실적인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2) 내용 분해
본 서는 여호와의 날이 지니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크게 두 개로 나누어진다. 먼저, 서론(습1:1)이 있고 그 다음에 '여호와의 날'의 심판(습1:2-3:8)이 나온다. 그리고 '여호와의 날'의 축복(습3:9-20)이 나온다. '여호와의 날'의 심판(습1:2-3:8)에는 유다가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습1:2-13)와 진노(습1:14-18)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회개의 권고(습2:1-3)가 나온다. 그리고 난 후에 모든 열방에 미치는 심판(습2:4-15)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죄악(습3:1-8)이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의 축복(습3:9-20)의 부분에서는 먼저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습3:9-13)이 나오고 그 다음에 '남은 자'가 누릴 구원의 기쁨(습3:14-20)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5. 스바냐서가 주는 의미

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곳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받은 선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가 없다. 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날' 사상이 중심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지닌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스바냐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똑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은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만 강조하고 공의와 심판이라는 측면을 무시하고 강조하지 않는 교회의 현실 앞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생활 속에서 참으로 예배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도 심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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