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17절)
임박한 여호와의 날 - 전장의 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과 연관시켜 교훈을 주고 있는 부분이다. 즉 요엘은 여기서 메뚜기 재앙을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시켜 보다 상세히 설명한 뒤에(1~11절), 간곡하고 결연한 어조로 백성들에게 옷이 아닌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12~17절). 그런데 요엘은 여기서 이제라도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13절) 그분께선 그들에게 보다 큰 은총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메시지를 아울러 주고 있는데 이는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과 큰 기쁨의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분명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점, 이 세상의 매우 하찮은 것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지금은 종말, 즉 주의 심판의 날이 매우 가까이 이른 때라는 점 등의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11절)
이방 민족의 침입 - 1차적으로는 메뚜기떼가 엄습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 민족에 의해 이스라엘 땅이 유린당할 것, 더 나아가 여호와의 심판 날의 상황에 대해 복합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부분이다.
[1절]
전통적으로 나팔은 전쟁 때(민 10:9; 수 6:4; 삼상 13:3)나 예배 때(민 10:10), 그리고 절기 때(레 25:9)에 불었는데 여기서는 여호와의 심판 날이 가까웠음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 심판 날을 예비하도록 하기 위해서 불라고 한다. 성산. '시온'을 가리키는 동의어이다(삼하 5:7; 시 9:11). 시온 산은 다윗 시대 때 법궤를 안치한 장소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다. 또한 본절은 주의 심판 날이 확실히 임한다는 사실과 그 때와 시(時)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막 13:32).
[2절]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많은 메뚜기떼가 온 지면을 덮음으로 말미암아 햇빛이 차단된 상태를 가리키는 동시에(출 10:15) 악인들에게는 마지막 심판 날에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희락은 빛으로(시 112:4; 사 58:8; 마 4:16), 재난은 어둠으로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습 1:15; 눅 22:53).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 구절 역시 메뚜기떼가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 날개가 태양에 반사되어 생긴 빛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새벽의 여명이 온 세상을 덮은 것처럼 메뚜기떼가 온 산 위를 덮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동이 틀 때 순식간에 산꼭대기에 빛이 퍼지듯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고도 신속하게 임할 것을 의미한다.
[3절]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시온 땅에서 자라나던 식물이 마치 불에 타버리듯이 순식간에 황폐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구절이다.
[4~6절]
메뚜기떼의 모양과 그것들의 출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끼친 두려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메뚜기는 실제로 그 머리가 말(馬)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고, 그 뛰는 모습은 말 탄 기병과 유사하다(욥 39:19, 20; 계 9:7). 그렇지만 요엘이 굳이 이 같은 점을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메뚜기떼의 엄습이 마치 잘 훈련된 군대의 침략과 같아서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방어할 수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7~9절).
[7~9절]
메뚜기떼를 잘 훈련된 가공할 군대의 모습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 메뚜기떼는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보내실 이방 군대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1:6).
[10절]
이러한 지진과 천체의 이상 현상(31절; 사 13:9, 10; 사 34:34:4; 겔 32:7) 등은 종말론적 현상으로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긴 하나(눅 21:25, 26) 여기서 우선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메뚜기 재앙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삼라 만상이 공포에 떨 정도였다는 것이다.
[11절]
여기서의 소리는 여호와께서 군대(7~9절)의 선두에 서서 심판하러 오시는 장엄한 모습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그 군대의 수와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군대의 능력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심판의 날이 심히 두려운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16; 사 30:30).
(12~17절)
회개의 권고 - 1:1~2:17절의 결론부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애통해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권고를 더 강조하기 위하여 요엘 선지자는 성전에서 기도를 위한 모임을 갖도록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호소하고, 제사장들이 간구해야 될 기도문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말을 맺고 있다.
[12절]
요엘 선지자의 외침은 이 심판이 자기 백성을 회개시키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며, 만약 돌이킨다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속에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욥 2:7, 고난에 대하여>.
[13절]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옷을 찢는 행위는 내면적인 큰 슬픔의 외적인 표현 방법이었다(창 37:29~35; 대하 34:27). 그러나 단순한 외적인 표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에 마음을 찢으라고 경고한다(시 51:17). 이어서 이러한 요구의 근거로서 출 34:6, 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제시한다.
[14절]
누가 알겠느냐. 이 의문형은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로 인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의 크심을 빙자해 그들이 행여나 회개하는 일에 소홀하거나 부주의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17절]
낭실은 성전의 동쪽 출입구를, 단은 성전의 뜰에 위치한 번제단을 가리킨다. 이 낭실과 제단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주로 제사장들의 기도 처소로 이용되어 왔다(대하 8:12; 겔 8:16). 요엘 선지자는 여기서 백성들을 위한 대도(代濤)를 드리도록 제사장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2:18~3:21절)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진 구원 - 1:1~2:17절의 심판의 경고에 이어 이제 그중 회개하는 자들을 향한 구원을 선포하는 부분이다. 선지서들은 이처럼 심판을 예언하되 동시에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며, 구원의 희망을 말하되 부정적, 특권적, 맹목적 구원이 아니라 회개한 자들을 위한 구원을 말한다. 즉 이것은 율법의 저주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넘쳐흐르는 복음의 위로를 상징한다<마 5:17, 18,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 한편 요엘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약하고(2:18~27), 나아가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2:28~32). 그 다음엔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3:1~17)을 예언한 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들과는 대조적으로 가장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3:18~21)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참된 회개만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행위이며, 우리가 전심으로 회개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으며, 신령한 은혜는 믿음과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에게 당면한 환난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멸망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 등이다. 끝으로 본서를 비롯한 선지서의 모든 내용은 1차적으로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적용되지만 보다 넓게는 전역사의 과정, 즉 세상의 종말론적 과정에 적용된다<겔 서론, 성경 예언과 일반 예언의 차이>.
(18~27절)
회개에 대한 응답 -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거두시고 반드시 풍족한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19절]
곡식, 새 포도주, 기름에 해당하는 원어를 보면 각기 그 앞에 정관사(the)가 붙어 있는데 이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생산될 소산물임을 강조해 준다.
[20절]
북편 군대. 북쪽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날아온 메뚜기떼를 가리키는 것이나 상징적으로는 이스라엘 북쪽에 거하는 이방 민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1:6). 메마르고 적막한 땅. 에돔 광야이거나 아라비아 사막일 것이다. 동해는 사해이고(겔 47:18), 서해는 지중해이다(신 11:24).
(21~23절)
이스라엘의 회복 - 본문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절정으로서 땅과 짐승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여기서 메뚜기떼의 재앙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뭄마저 해결되어 기쁨이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되 이전의 축복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욥 42:12~17).
[23절]
시온의 자녀들. 이는 시온이 유다를 대표하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이른 비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파종기인 10, 11월경에 오는 비로서 파종기에 뿌려진 씨앗을 움트게 하고 자라게 한다. 늦은 비는 3, 4월경에 내리는 비로서 이는 추수 전 짧은 봄철에 내려 곡식을 성숙시키는 아주 긴요한 비이다(신 11:14). 한편 벌게이트역이나 갈대아역에는 '비'가 '교사'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전후 문맥상 적당치 못하다.
(24~27절)
회복된 땅의 풍요함 -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축복의 비가 풍성히 내려진 결과가 나타나 있다. 24절은 1:10~12절의 내용과 비교하여 그 풍성함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에 대한 언약(19절)이 시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25절]
햇수. 이것은 1장에 서술된 메뚜기떼의 재앙이 해마다 있었던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메뚜기떼 재앙의 결과가 몇 해 동안 심각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을 의미하고 메뚜기떼로 인한 피해 회복이 오랜 시일이 지나야 가능할 것을 의미한다.
[26절]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이 약속은 부정적인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즉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27절]
여기에는 여호와 이외는 다른 신이 없다는 유일신 사상이 나타나 있다(사 45:5, 6, 18). 이것은 17절에 나온 이방 민족들의 조롱에 대한 매우 적절한 응답이다.
(28~32절)
성령의 강림 - 본문에서 요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으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 강림을 확약(28, 29절)한다. 그리고 이 세상 종말 때 성도들의 구원과 최후 승리가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32절).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축복과 은사는 연령이나 성별, 그리고 계급과 신분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진다는 것과 성령으로써만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다는 사실과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만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갈 서론, 이신 득의 이해>.
[28절]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이다(행 2:1~4). 구약 시대에는 특정한 사명을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만 성령이 부분적이고도 조건적으로 임했으나(출 28:3; 출 31:3; 민 11:17, 25; 신 34:9; 삿 3:10)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이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선물로 성령이 임할 것임을 선포하는 말씀이다<행 서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의>.
[29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계급이나 신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전 1:26, 31; 갈 3:28, 29; 골 3: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하기만 하면 구원받게 된다.
[30~31절]
마지막 심판 날이 임할 때 생기는 전조(前兆)들에 대한 언급이다. 피는 애굽의 강물이 피로 변한 이적을 상기시키고(출 7:17), 불은 애굽에 내렸던 우박 섞인 불을 생각나게 한다(출 9:24). 그리고 연기 기둥은 전쟁 때 불타는 마을에서 솟아나는 검은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사 9:18). 또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 현상은 애굽에서의 흑암의 재앙(출 10:21)을 생각나게 한다.
[32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이는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또한 그분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롬 10:9, 13)를 말한다. 이러한 자들은 종말론적 환난(30, 31절) 중에서도 성령 안에서 배도(背道)치 않고 끝까지 인내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스 9:8, 남은 자 사상>.
# 해설
임박한 여호와의 날 (1~11절)
본문에서 요엘은 메뚜기떼의 위용과 호전적인 모습을 임박한 침입군의 그것과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는바, 그 위용(2b~5절), 조직적 행동(6~8절), 그들로 인해 초래될 엄청난 결과(9~11절) 등을 이중 묘사법을 통해 서술하였다. 이는 1차적으로는 메뚜기떼가 이스라엘 국토를 황폐케 함을 표현하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날을 묘사하는 복합적인 예언이다.
회개의 요청 (12~17절)
하나님은 예배에 있어 외적 형식보다는 마음 상태를 더 귀히 여기시며(사 1:11~17; 암 5:21~24) 은혜와 긍휼이 풍부한 분이다. 이러한 확신으로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금식의 날을 준수할 것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는 미스바의 성회를 연상시킨다(삼상 7:5~14). 진실한 회개만이 이 죄악을 이기며, 하나님의 징계를 은총으로 바꿀 수 있는 열쇠이다(14절; 겔 18:30).
회개에 대한 응답 (18~27절)
본 단락은 이스라엘의 전민족적인 회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즉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시고(18절), 재앙의 요인들을 제거하시며(19, 20절), 죄악으로 황폐해진 땅을 복구하시고(21~25절), 풍요로움 속에서 언약의 관계를 새롭게 하실 것을 보여 준다(23~27절; 신 28:1~14).
성령 충만 (28~32절)
본문은 회개에 대한 응답(18~27절)과 3:1절부터 시작되는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에 대한 예언의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1:15절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이 종말론적 의미를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하겠다. 본문의 예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행 2:1~4).
# 핵심
1~17절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타나는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고,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여호와의 날 (1절)
'멸망의 날'(1:15), '캄캄한 날', '심히 두려운 날',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거두는 마지막 날'(3:15)로 표현되며, 본서에 기록된 메뚜기의 침입(1:4)과 같이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개입하사 심판하시는 날을 의미한다(사 13:6).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사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때를 가리킨다(마 11:24). 그 날은 하나님의 승리와 심판의 날이요, 택함받은 백성들이 구원과 축복을 받는 날이다.
# 묵상
메뚜기 재앙 (1~3절, 11절)
메뚜기 재앙은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의 심판에 대한 징조를 의미합니다. 즉 이것은 유다 백성이 직접 체험한 메뚜기 재앙을 기억나게 하여, 장차 임할 무섭고 끔찍스러운 재앙에 대해 이해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재앙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고, 오직 한 가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의 자세 (12~17절)
본문은 엄청난 심판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것을 권면하고, 그들이 행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금식 기도는 절박할 때에 구원을 요청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회개는 눈물에 있지 않고 모든 부정과 모든 분열을 떨쳐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굳게 설때 가능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근본적인에 문제에 대한 해결책 (18~19절)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비롯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과 복이 주어지고, 피폐된 농작물의 회복으로 육적 구원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약속이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올 때 큰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땅을 향해 외치는 하나님 (21~23절)
하나님께서는 땅을 향해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무생물인 땅을 향해 외치신 이유는, 하나님의 복이 무생물이라도 기뻐하고 놀랄 만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시 126:2).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면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도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 (27~28절)
요엘이 제시한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은 범죄에 대한 비판, 후회, 진정한 마음을 돌이킴, 깊은 참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신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께서는 특정한 때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이 예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성취됩니다(행 2:17~21).
구원을 얻을 자 (32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즉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며 그분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를 말합니다(롬 10:9, 13). 이는 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됩니다. 또한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자로 이는 창세 전에 이미 구원할 자로 예정된 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