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잊은 땅에는 수욕과 눈물만 남습니다

[요엘 1장 1절~12절]
1절 -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절 -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절 -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4절 -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절 -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절 -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절 -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절 -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9절 -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절 -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절 -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절 -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

요엘에게 임한 말씀입니다. 백성은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그 남긴 것을 느치가, 그 남긴 것을 황충이 먹은 일을 자녀와 후세에 말해야 합니다. 제사가 성전에서 끊어졌고,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말랐습니다. 밭의 소산과 과실이 없어져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습니다.

1. 귀를 닫은 백성에게 임한 재앙 (1~4절)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귀를 닫고 살면 하나님은 상황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요엘 시대에 메뚜기 떼가 몰려와 닥치는 대로 갉아 먹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율법의 경고대로 하나님을 잊은 백성에게 저주가 닥친 것입니다. 요엘은 나이 든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주민을 불러 모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특히 연장자들은 땅에서 일어난 일을 오래 목격했기 때문에 역사를 증언하는 데 적격자들이었습니다. 요엘은 그들에게 과거에 이 같은 재앙이 있었는지 확증해 자녀들에게 증언하고, 자녀들은 대대로 후손에게 전하라고 명령합니다. 성경에 담긴 역사의 증언들은 복이든 저주든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올바로 분별하려면 하나님 말씀에 늘 귀 기울여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백성이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주목하고 그것을 후손에게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말씀에 귀를 닫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말씀을 듣는 태도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2. 탐욕 뒤에 찾아온 피눈물 (5~12절)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취해 살면 땅을 치며 울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감사하기보다는 불의로 재산을 더 쌓고, 우상을 섬기고, 악을 행했습니다. 그들이 방패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자 삶의 방벽은 허물어졌고, 탐욕으로 물든 땅은 사나운 재앙으로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즐거움이 말라 버린 땅에서 백성에게 남은 것은 수욕과 눈물뿐입니다. 요엘은 그들에게 부끄러워하고 애곡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하는 삶이 끊어지면, 남은 것은 피눈물 밖에 없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 묵상 질문
세상에 취한 백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그들이 깨어나 할 일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받은 복과 감사를 잊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상황을 통해 교훈하시는 말씀을 듣고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완고한 저의 모습을 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녀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늘 순종하며 깨어 기도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Ⅰ. 이스라엘의 대적에 대한 경고 3:1-8

 

본문의 '그 날'이란 '구속의 날'과 '시온의 송사를 위한 신원의 해'를 의미한다. 그리고 본문은 그 날이 올때마다(이는 그 날이 종종 있기때문이며 마지막날에 가서야 한번에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언의 말씀이다.

(1) 그 날은 '구속의 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1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속박을 당하는 것은 슬픈일이며 또 그 기간이 길지 몰라도, 영원히 속박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실례로 애굽에서 받던 그들의 속박은 마침내 종식되었다. '내 아들을 놓아서 그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3). 마찬가지로 바벨론에서의 속박도 좋은결과를 맺고 해결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단의 지배를 받고 그 노예가 된 영혼들을 효과적으로 구속해주실 것이고 또 매인 자들을 풀어주는 희년을 선포하실 것이다.

(2) 그 날은 시온의 송사를 위한 신원의 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로잡은 자를 끌고' 오시며(시 68:18), 자기의 백성들을 포로로 '사로잡는 자'들을 사로잡으실 것이다(계 13:10). 모든 열방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한 가증스러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하게 한 나라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는 그가 하나님의 눈동자를 상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같은 주변국들은 특별히 더많은 징계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인접국이면서도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괴롭혔다(4절). 그들은 한데 모아져서 예루살렘 근방의 '여호사밧 골짜기'로 내려가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국문'하실 것이다(2절). 산헤립의 대군 혹은 그 일부도 이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한 천사에 의하여 멸망되었다(라이트푸트박사는 이와같이 주장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해진 일이었다. 이들 주변국들은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수없이 하나님을 모욕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기에서 그들과 재론하시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백성들과 성소에 있는 기물들에 대하여 그들이 모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난폭한 행동을 했을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열국중에 흩어'놓기까지 했다. 그들은 또한 이스라엘의 땅을 나누었고 제비뽑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팔아 넘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자 그들을 팔아 넘겼는데 그 이유는 몸값으로 축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쾌락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들은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을 술집이나 매음굴의 노예와 막벌이꾼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나의 죄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은 보통 또다른 죄로 말미암아 낭비된다. 두로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붙잡아 헬라인들에게 팔아 넘겼다. 이는 그들을 '본 지경'에서 멀리 떠나게 하기 위함이었다(6절). 또한 그들은 부당하게도 하나님의 '은과 금'을 취했다(5절). 혹자는 이것을 이스라엘의 부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통하여 '진기한 보물'로 부르고 계시는 성전의 기명들과 보물들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이긴 전리품으로 여기고 자기들의 '신궁으로 가져갔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까지 이겼을뿐 아니라 자기들의 우상이 하나님을 제압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와같이 해서 법궤가 다곤 신전에 놓이게 되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이나 그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와같은 이유를 들어 그들은 보복법에 의거하여 그들에게 이 재난을 입히는 것을 정당화시켰던 것이다. 하나님과 다투는 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할때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보복을 하실 것이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치려고 궁리했던 목적을 이루지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 지경에서 옮겨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못하게할 생각이었다(6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리니 그들은 너희가 의도했던대로 그 땅에서 산채로 묻히지 아니하리라"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곧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대로 '먼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릴'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원수를 누르고 승리를 얻은 마카비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을 마지막날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Ⅱ. 대적들에 대한 위협 3:9-17

 

하나님께서 열방들을 심판하시겠다는 통고의 내용은 산헤립과 느부갓네살과 안티오커스와 특별히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 교회를 대적하는 모든 교만한 자들을 멸망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금을 통해 가장 뛰어난 성경 주석가들 중에는 이 본문의 의도가 마지막 심판날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1) 하나님의 왕국에 대항하는 모든 대적들에게 결전장이 주어진다. 이것은 여기에서 반어적으로 쓰인것 같다.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선포할지어다. "열방의 모든 군대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일에 연합 전선을 펼칠수 있도록 한데 모이게 하라."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흑암의 권세들을 무시하신다. 결국 열방들은 심판을 받기위하여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가야 한다. 여호사밧이란 말은 본래 '여호와의 심판'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여호사밧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주요이유도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장소로 오도록하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전장은(9절) 결국 심판을 받기위한 소집으로(12절) 바뀌고 있다.

(2) 세상에서 이들 하나님의 왕국의 대적들에게 대항하는 하나님의 정의의 사자들에게 명령이 주어진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11절). 혹자는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라'(9절)는 말씀이 원수의 무리들에 대한 선전 포고라기보다 하나님의 천군천사들에 대한 명령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에게 명령이 주어졌다는 것이다(13절).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여기에서 곡식이 익었다는 것은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라고 한 말의 뜻과 같다. 결국 그들은 멸망을 당해야할 정도로 익었던 것이다.

(3) 그 엄숙한 심판의 날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14절).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여기에서 나타난 판결 골짜기는 전에 여호사밧 골짜기로 불리던 바로 그 골짜기다. 심판날은 판결의 날이 될 것이다. 갈대아 역본에는 이 골짜기가 "판결을 배포하는 골짜기"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육체로 행한 일에 따라 판결을 받게 된다. 그리고 어떤 역본에는 추수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 골짜기를 타작하는 골짜기로 묘사하고 있다(13절).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대적하는 교만한 원수들은 한 여름의 타작마당에 널린 티끌처럼 부서질 것이다.

(4) 그때 자연계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15절). 해와 달이 캄캄하며(이에 대하여는 2:31절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의 영광과 광채는 그때 나타날 심판자의 더큰 영광의 광채로 말미암아 가리워질 것이다.

(5) 그 날은 이 세상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에게 각각 상이한 인상을 줄 것이다.

1) 악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시온과 예루살렘 곧 그의 영광의 보좌에서 말씀하실 것이다. 그의 말은 사자의 포효와 같이 악한 자들에게 두려움을 줄 것이다.

2) 의로운 자들에게는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 즉 그들의 열망이 충족할 것이다.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산성이 되리로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한 항구자(피난처라는 말의 원의는 항구를 나타낸다)가 될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의 행복은 견고해지고 그들의 거룩함은 완성될 것이다(17절). "그때에 예루살렘이 거룩해져서 진정으로 거룩한 성이 되리라." 복음교회는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을때조차도 거룩한 모임으로 존재하지만 승리를 얻을때까지는 결코 거룩함 그 자체가 되지는 않는다. 더러운 것이나 악을 행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알 것이라. 이것은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지식이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러울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난처와 산성이 되신다는 것을 깨닫고 또 그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Ⅲ. 심판과 자비 3:18-21

 

이 예언의 종결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약속들은 은혜의 왕국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영광의 왕국에서야 이루어질 것이다.

(1) 교회의 대적들이 정복을 당하고 멸망을 당한다는 약속(19절) : 이스라엘의 오랜원수인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뿌리깊은 원한을 품고있는 에돔은 황폐해질 것이며 더이상 사람의 거주지가 되지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들 나라와 다투시는 이유는 그들이 유다자손들에게 강포한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다(참조. 겔 25:3,8,12,15; 욜 26:2).

(2) 교회가 영적인 특권을 누리며 매우 행복해진다는 약속 : 교회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을때에도 영적인 특권을 누리기때문에 그만큼 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만일 원수들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를 거두면 훨씬더 행복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가 받게될 약속은 세가지이다.

1) 순결 : 이것은 나머지 두약속에 대한 근거로 맨나중에 언급되고 있다(21절). 그러나 우리는 이 약속을 나머지 두약속에 대한 배경과 기초로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주리니. 의식법을 통해서는 깨끗해질 수 없었던 그 죄가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해질 것이다. 교회를 순화시키고 개혁하는 일이 서서히 진행되고 또 여전히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해도 언젠가는 그릇된 모든 것이 고쳐질 날이 올 것이다.

2) 풍족함(18절) : 이것은 포도원이 풍부한 결실을 맺고 초장에는 소떼가 가득한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경작기를 비옥같게 만들기 위하여 유다의 모든 '샘이 흘러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유다 온지경이 에덴동산과 같이될 것이다(시 65:9).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포도주와 젖'이 새 언약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와 위로로 비유되고(사 55:1) '생수의 강'의 성령으로 비유되기 때문이다(요 7:38). 이러한 은사들은 구약보다 신약속에서 훨씬더 풍성하게 주어질 것이다. 이러한 풍요의 원천은 에스겔서에 기록된바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성소의 물과 같이(겔 47:1) '여호와의 전'에 있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이 풍요의 원천이다. 왜냐하면 그의 공로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깨끗해지고 새롭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을 기준할때 요단강 건너편에 있던 '싯딤 골짜기'에 물을 주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싯딤 골짜기'는 황량한 불모의 골짜기였다. 따라서 이와같은 골짜기에다 물을 공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음의 은혜가 멀리 이방의 세계까지도 흘러가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3) 영속성 : 이 약속은 다른 모든 약속보다도 큰축복이 되는 약속이다(20절).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처럼 세상에서 마지막날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다.


Ⅰ. 심판의 위협 2:1-1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로인하여 그들과 다투시며 또 율법에 기록된대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신 28:42). "네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라."

(1) 전쟁이 선포된다(1절).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에게 심판이 임박했음을 통지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기도와 눈물로 자기들의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할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나팔을 부는 것은 제사장들의 직무였다(민 10:8). 그들은 환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거나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도록 해야할 경우에 나팔을 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의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야말로 목회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2) 여기에서는 아주 가까이 다가온 전쟁의 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 묘사되어 있다. 그날은 여호와의 날 곧 그의 심판의 날이며 '어둡고 캄캄한 날'(2절)이다. 이것을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메뚜기와 황충의 수가 너무 많아서 하늘을 어둡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출 10:15). 그리고 이 날의 어두움은 새벽빛처럼 갑작스럽고 불가항력적으로 임할 것이다.

(3) 군대가 정렬되어 있다(2절). 그들은 '많고 강한 백성'이다. 이 군대는 여기에서 매우 담대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의 모양은 말과 같다. 그리고 그들은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는 기병과 같다(4절). 고대의 교부중에는 메뚜기의 머리가 말의 머리모양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다. 또한 그들은 매우 큰소리를 낸다. 즉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가' 거친 땅을 맹렬하게 달릴때 나는 '병거소리'와 같이 요란하게 들린다(5절). 그 소리는 '불꽃이 초개를 사르는 소리와도' 같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때에는 큰소리가 동반된다. 그들은 매우 질서정연해서 '강한 군사가 항오를 벌이고 싸우는것' 같다(5절). 그 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히지 아니하며(7,8절).

(4) 이 강한 군대는 가공할만한 일을 수행한다.

1) 그들이 들판에서 행한 일(3절) : 그들이 훑고 지나간 들판을 보라. 그 들판들은 '황무한 들'같이 되었다.

2) 그들이 성에서 자행한 일 : 그들은 '성을 무사같이 오르며'(7절) '성 위에 달리며 도적같이 창으로 들어갈'것이다(9절).

(5) 그들이 백성들에게 준 인상은 불사신과 같아서 저항할수 없다는 것이다(8절). "어떤사람은 자기의 밭때문에, 또 어떤사람은 자기의 포도원때문에 고통을 당하리니 모든 무리의 낯빛이 하얘지리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노하시면 하늘의 빛도 그들에게 큰기쁨을 주지못할 것이라.

(6) 이 강한 군대의 사령관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11절). 이 점이 바로 여호와의 날을 두렵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Ⅱ. 회개의 권면 2:12-1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음으로써 우리를 회개시키고 그에게로 돌아오도록 하신다. 본문에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대가 언급되고 있다.

(1) 개인적인 회개가 촉구되고 있다. 이 회개는 영적인 회개를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악행을 고치고 그 죄를 슬퍼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 잘못은 완전하게 고쳐지게 되는 것이다.

1) 회개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항상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①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진실로 겸손해야 한다. 곧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욕되게 한것에 대하여 사죄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해친것에 대하여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슬픔과 수치심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현들 곧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슬픔을 나타내는 그 외적인 표현들은 내적인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외적인 표현뒤에 다음의 말씀이 수반되고 있다. 너희는 옷을 찢지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마음을 찢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실 것이다'(시 51:17).

②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께로 철저하게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죄와 다투게 될때 하나님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내게로 돌아오라(12절). 너희는...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13절).

2) 이처럼 이 백성들로하여금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설득하기위하여 사용된 여러가지 논지들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선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처벌함에 있어서 정당하고 의로우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회개를 받아주심에 있어서도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바꾼다는 것이 아니고 죄인의 마음이 변화될때 그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방법이 변화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판결은 번복되고 율법의 저주는 제거된다. 우리가 진실로 우리의 죄를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와 화해하시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의 갖가지 고난까지도 제거해주실지는 의심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 가능성만 가지고도 우리는 충분히 회개할만하지 않은가.

(2) 그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국가적인 운동으로서 범국민적으로 공식적인 회개를 하도록 촉구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그들의 주변국들로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긍휼을 다시 받기위하여 어떤 자격을 갖추었는지에 대해서 알도록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회도 함께 열도록 요구되었다(15,16절). 전에는 전쟁을 경보하기 위하여 나팔을 불었지만(1절) 이제는 평화조약을 맺기위하여 나팔을 불어야한다. 1:14절에서 언급된 내용이 여기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성회를 선고하고 백성을 모아 그 성회를 거룩케 하고. 곧 "미리 엄숙한 준비를 할수 있도록 시간을 정하고 그들로하여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하라. 아무리 큰 자라도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장로들과 재판장들과 관원들은 모두 모으라. 또 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간과하지 말고 소아와 젖먹는 자들을 모두 모으라." 재난과 죄로인하여 발생하는 공적인 슬픔을 사적인 기쁨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그 성회를 관장하고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입이 되며 하나님께는 백성의 입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또한 '낭실과 단' 사이에서 직무를 수행해야 했다. 백성들은 그곳에서 제사장들이 그들의 조상 야곱과 같이 울며 씨름하는 것을 보고 그와같이 경건한 마음을 얻어야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탄원을 해야 했다. "이방인들로하여금 저희를 조롱하거나 비방거리로 삼지않게 하소서. 결단코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가난하고 거지 같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소서."

 

Ⅲ. 회개로인한 자비의 약속 2:18-27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응답하셨는지를 보라.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믿음을 지닌 기도자들에게는 실제적인 응답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1) 약속하는 긍휼을 어디에서부터 베푸시는가(18절). 여호와께서 자기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그는 그들의 빼앗긴 위로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2) 그의 긍휼하심에 대한 몇가지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파괴적인 군대가 흩어지고 패주할 것이다(20절). 내가 북편 군대를(곧 북쪽에서부터 너희를 침입한 메뚜기와 황충의 군대들)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하여. 이 곤충들의 무리는 그들이 먹을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많은 성서해석자들은 이 북편 군대를 산헤립의 군대로 이해하고 있다. 산헤립의 군대는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셨을때'(사 10:12) 흩어지고 말았다. '들의 풀' 곧 황무할정도로 메뚜기가 먹어 없앴던 들의 풀이 다시 싹을 내고 나무들 특히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시 열매를 맺는다고 약속되어 있다(22절). 그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양을 때에 맞추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3,4월까지도 늦은 비를 주신다(23절). 그들은 손실되었던 것들을 모두 보상받을 것이다(25절). 내가...메뚜기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너희가 고난을 받았던 시간에 따라 위로를 받고 기근의 햇수를 보상받고도 남을 정도의 풍년의 햇수를 누리리라." 그들이 저장해 놓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그러나 그들이 환난을 당하던 날에는 새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으며 곳간이 무너졌었다(욜 1:10,17). 어떤 성서해석자는 이 약속을 비유적으로 이해하여 이 약속이 복음적인 은혜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약속을 주시고 그 배경이 되는 은혜를 주시며 이 모든 것의 장본인인 성령을 보내신 것은 이미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 곧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좋은 것을(이 19절의 약속에 따라) 주신 것이라는 주장이다.

(3) 하나님께서 다시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은 어떻게 이용되는가.

1)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로인하여 기뻐하며'(23절). 우상들을 찬양하지 않고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를 '연애하는 자들이 준 값'(호 2:12)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 긍휼로 말미암아 위로와 영적인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들의 평판도 다시 회복될 것이다(19절).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할 것이며. 열국의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재난을 당하자 의기양양하여 이스라엘을 모욕했었다. 이러한 내용은 26,27절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그들은 다시 기쁨을 누리게될 것이다(23절).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인하여 기뻐할 것이다.' 즉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선한일보다는 그들에게 베풀고있는 선한 손길로인하여 기쁨을 얻게될 것이다. 세상에서 얻는 모든 기쁨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기쁨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풍족하게 베풀어주시는 모든 은사를 통하여 그의 사랑을 느껴야 한다. 이는 그가 우리의 가장 큰 선일뿐만 아니라 모든 선의 근원이기때문에 그를 우리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길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확고해지며 증대될 것이다. 이것이 본문에 약속되어 있다(27절). 내가 이스라엘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이가 없는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또한 성경 다른부분에서는 하나님을 '네 가운데 거한 거룩한 자'(호 11:9)로 기록하고 있다. 여하튼 우리는 자비롭거나 고통스러운 것이거나 간에 모든 섭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진시켜 나가는데에 온갖 노력을 다 쏟아야 한다.

 

Ⅳ.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 2:28-32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에 대한 약속은 황폐한 나라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것들속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본문에는 더좋은 것들 곧 은혜의 왕국과 영광의 왕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은혜의 왕국은 성령이 풍부하게 부어지는 상태로 도래할 것이다(28,29절).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날(행 2:1이하)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했을때 그것이 바로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행 2:16,17)이라고 함으로써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종종 구약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기위하여 세우신 사사들과 선지자들에게만 주의 신이 강림하는 내용을 자주 대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그 성령은 약속된바와 같이(사 44:3) 차고 넘칠정도로 풍부하게 베풀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위하여 정해진 때는 '그 후'이다. 즉 먼저 주어진 약속들이 이행되고나서 이 약속이 이행될 것이다. 성령은 또한 모든 육체에게 베풀어질 것이다. 곧 성령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안에서는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없기 때문이다(롬 10:11,12). 유대인들은 이 말을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육체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 자신도 이방인이었던(행 10:44,45)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에게 성령이 강림하는 것을 볼때까지는 그것이 이방인들의 육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성령은 오순절날 임했던 성령의 용사와 같은 것이었다. "원기를 잃고 정신력이 감퇴되기 시작하는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아직 거룩한 일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보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꿈과 이상을 통하여 젊은이와 늙은이 모두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들은 또한 '장래 일을 말할 것이다.' 그들은 거룩한 일들을 새로 알게되어 그들 자신뿐 아니라 교회에도 유익을 줄 것이다. 그들은 성서를 해석하고 먼곳의 일이나 미래의 일에 대해 예언할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지고 성서가 기록되며 말씀사역이 이루어진 것은 이와같은 성령의 특별은사 때문이다.

(2) 영광의 왕국은 자연계의 변화로 시작될 것이다(30,31절). 의인은 성령을 부음받아 큰 위로를 누리지만 불의한 자는 이것을 듣고 떨게될 것이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세상이 끝날때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그리스도가 죽을때 땅이 흔들리고 해가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이세상에 대한 심판으로 불리고 있다)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특히 예루살렘의 멸망은 일반적인 심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죄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악한 왕국들이 종종 불과 칼로 멸망을 당하는 것은 마지막날에 있을 세상의 심판에 대한 전조가 된다.

(3)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때에 모든 참신도들은 안전과 평안을 누리게될 것이다(32절). 참신도는 특별히 개개의 신도들을 언급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신약은 구약보다 개개의 신도들에 대해 더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왕국과 열방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려울지라도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그날의 두려움으로부터 구원을 받게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구세주"이실뿐 아니라 "구원"그 자체이시다. 그는 세상이 끝날때까지 그와 같은 신분으로 존재할 것이다. 은혜의 언약중에 우리를 위하여 마련된 이 구원은 믿음의 선조들과 맺어진 약속에 대한 실행인 것이다(참조. 눅 1:72). 이 구원에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으며 또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역사는 계속 이루어진다. 그 구원은 곧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골 1:27).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그를 알고 그를 믿으며 그를 바라고 그에게 의지하며 양심적으로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한 전제가 없으면 우리가 아무리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어도 아무런 도움을 얻지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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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심판의 위협 1:1-7

 

요엘은 이 본문을 통하여 유다가 그 죄로 말미암아 받고있는 가혹한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심판은 지나간 시대에도 찾아볼수 없었을정도로 가혹했다(2절). 자기들의 선조들보다 더많은 죄를 범하는 자들이 바랄수 있는 것이란 선조들보다 더큰 심판을 받게된다는 사실밖에 없다. 그 심판은 다가올 시대에서도 잊혀지지 않을정도로 가혹했다(3절).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라. 이는 그들로하여금 너희가 고난을 당했던 일들을 통하여 경고를 받고 순종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그 자녀들도 후세대에게 고하도록 하라. 그들로하여금 그 후손들에게도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그앞에서 떨도록 가르치게 하라."

(2) 유다가 큰 군대의 침략을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때문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서해석자들은 이것을 인간의 군대 곧 앗수르의 군대로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산헤립 휘하의 앗수르 군대는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고'(사 36:1) 그 나라를 처참할정도로 황폐케 했다. 어떤사람들은 여기서 지명되고 있는(4절) 네종류의 동물들이 차례로 유대인들을 압제했던 네 왕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실제로 한 나라의 침략을 당하고나면 다시 다른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의 위기를 수없이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군대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자그대로 유대땅에 몰려와서 그땅의 소산을 먹어치운 곤충들의 군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것 같다. 과거 애굽에 임했던 메뚜기재앙은 몇일동안 계속되는 것에 불과했지만 유대땅에 임한 이 메뚜기재앙은 4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여기에서 네종류의 곤충들이 언급되고 있기때문이다(4절). 그러나 그들이 모두 1년이란 기간내에 몰려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는 이 곤충들로인한 재앙을 통하여 유대땅이 황폐해졌다는 사실을 주로 나타내고자 했지만 이것은 외국의 군대에 의해 유대나라가 파괴된 것도 나타낼수 있도록 표현되었다. 만일 이 벌레의 무리들이 그들을 정복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무리가 와서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이 동물들은 '메뚜기'와 '황충'과 '팟종이'와 '늣'이다(4절). 그들은 작은 곤충에 지나지않지만 떼를 지어 몰려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그들앞에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가 약하면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크게 드러난다. 그들은 공통된 목적을 갖고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때문에 약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크게 드러난다. 그들은 공통된 목적을 갖고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때문에 이 본문에서 '한 민족'으로 불리고 있다(6절). 메뚜기들은 '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간다(잠 30:27). 그들은 매우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하기때문에 '사자의 이'를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메뚜기들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움직일때에는 사자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들은 풀과 곡식뿐 아니라 나무까지도 멸망시킨다(7절).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이 해충들은 열매가 익어갈때 그 열매를 보호해주는 잎을 먹어버림으로써 나무를 죽게 만든다. 그들은 무화과나무의 껍질까지 먹어치움으로써 그 나무를 말라죽게 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게' 된다(합 3:17).

(3) 술취한 자들에게 이 심판을 슬퍼하라는 요구가 주어진다(5절).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이 말은 술취하는 자들에게는 아주 아픈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던 '단 포도주'를 그들의 '입에서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감각적인 만족을 통하여 더많은 행복을 얻고자하면 할수록 현세적인 고통은 더 커진다. 물을 마시는 자들은 포도나무가 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만 먹고 살아왔으므로 포도주없이도 잘 살수 있기 때문이다.

 

Ⅱ. 심판의 대상 1:8-13

 

그들은 한처녀가 그녀의 남편이나 다름없는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애통해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혹은 갓결혼한 여자가 그녀의 젊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인하여 슬퍼하는 것처럼 애통해하도록 요구된다.

(1) 농부들과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슬퍼해야 한다(11절). 그들은 눈앞에서 자기들의 수고로 맺어진 열매가 먹히는 것을 어쩔수 없이 바라보게 되며 그가운데 하나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밭이 황무하고(10절). 밭에서 생산되는 모든 열매가 소멸된다. 토지가 처량하니. 땅은 우울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밀과 보리'가 상실되고 결핍되는것 때문에 슬퍼하게 된다. 그리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뿐 아니라(7절)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까지도 멸망을 당한다. 곧 과수원의 나무와 밭의 나무 혹은 과일나무와 목재용나무가 모두 멸망을 당한다. 우리는 우리가 왜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끊임없이 의지하며 살아야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는 우리를 구원하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2) 여호와의 사역자들인 제사장들은 슬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재난에 깊이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굵은베로 동이고 슬피울지어다(13절). '단에 수종드는 자'들도 곡을 해야 한다. "그는 특별한 의미에서는 바로 너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그의 성소를 수종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어떤 국가적인 환난으로인하여 신앙적인 행위가 장애를 받는다면 특별히 여호와의 사역자들인 제사장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슬퍼해야 한다.

 

Ⅲ. 금식 선포 1:14-20

 

메뚜기들이 땅의 소산을 다 먹어버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손실로인하여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이제 그들의 눈물은 올바른 방향으로, 즉 하나님앞에서 회개와 겸손의 눈물로 나타날수 있어야 한다.

(1) 전국적인 금식이 제안되었다. 제사장들은 금식일을 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국가적인 심판을 받을때에는 온국민의 겸손함이 수반되어야 한다.

1)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한날이 정해져야 한다. 이 날에 백성들은 일상 업무를 하지 말아야 한다.

2) 이 날은 음식과 주류는 물론 꼭 필요한 음식조차도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는 금식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필수적인 음식을 먹을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3) 엄숙한 성회가 열려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국가적인 죄를 범했고 국가적인 재난에 동참했으므로 참회의 고백을 하는 일에도 동참해야 한다.

4)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집인 성전으로 모두 모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전은 곧 기도하는 자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나기를 기대할수 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기위하여 선택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5) 그들은 이 금식일을 성별하여 진실로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2) 그들로하여금 이 금식을 선포하고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기위하여 몇몇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논쟁을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이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15절). "그의 심판의 날이 매우 가까이 다가왔도다. 그날은 졸지않을 것이므로 너희도 깨어있으라." 그날은 또한 매우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그에게로 도망치는 것외에는 달리 도망갈 곳도 전혀 없게 된다.

2) 그들은 자기들이 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지금은 금식하며 기도해야할 때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통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16절).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그 심판의 의도를 깨달아야 했다.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이 하나님의 전에서 끊어졌기' 때문이다.

3) 요엘 선지자는 몇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면서 재난의 비참한 모습을 다시 묘사하고 있다. 곡식과 가축은 농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농부는 두가지를 모두 빼앗기고 만다.

① 황충이 곡식을 다 먹어버렸다(17절).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이것은 비가 너무 많이 왔거나 아니면 너무 적게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않다면 어떤 곤충들이 그 씨를 먹어버렸을 것이다.

② 가축들도 또한 풀이 너무 부족하여 죽었다(18절). 생축이 탄식하고...양떼도 피곤하도다. 곧 아주 작은 풀을 먹고 사는 양들조차도 피곤해질정도로 메뚜기들이 모든 풀을 먹어버릴 것이다.

(3) 선지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그들을 고무하고 있다.

1) 선지자 자신의 솔선수범(19절)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그로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만든 것은 어떤 개인적인 고난이라기보다는 국가적인 재난이었다.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이 불은 모든 풀을 태워버리는 태양의 열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 사람보다 열등한 짐승들이 보여주는 모범 :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20절). 여기에서 야수들이 하소연하는 것은 물과 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짐승도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사람이야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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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열국에 대한 심판 - 비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이방 민족을 들어 쓰시긴 하지만 마지막 심판 때에는 대적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 내용에 있어선 먼저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두로, 시돈, 블레셋에 대한 심판이 선언된 뒤에(1~8절),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원수들에 대한 도전장이 주어지고 있다(9~17절). 이러한 본문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대적하는 자들의 종국은 파멸뿐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개인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대적의 손길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날이 악한 자들에게는 두려움과 종말의 날이 될 것이지만 의로운 자들에게는 소망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말 4:1~3).
(1~3절)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시는 이유 - 열방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근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모욕하며, 수치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절]
그 날.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 회복의 때를 가리키나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한편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마 24:36).
[2절]
여호사밧 골짜기. 이곳은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을 받아 적은 수의 군사로 모압과 암몬, 그리고 에돔의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이다(대하 20:26). 그런데 요엘이 하나님의 심판 장소로 이곳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3절]
이 같은 일은 예루살렘 멸망 후에 실제로 이루어졌는데 이방인들이 포로 된 유대인들을 제비뽑아 나누어 갖고 또한 술을 마시고 정욕을 채우기 위해 포로 된 어린이들까지 접대부로 사용한 행위는 실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도 남음이 있는 죄악이었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의 생명, 인격의 고귀함을 한낱 물건의 가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락시킨 행위이며, 정당한 방법을 통하여 성적 욕구를 해소치 아니하고 변태적인 방법으로 음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4~8절)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1~3절).
[4절]

여기 언급된 도시들은 베니게의 여러 도시들, 즉 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의 아스돗, 가사, 가드, 아스글론, 에그론(삼상 6:17, 18) 등을 말하는데 이 도시의 사람들은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학대하였으며 미워해 온 자들이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당신의 고통과 동일시하시면서 그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을 선포한다(사 59:18).
[5절]
여호람(B.C. 848~841) 왕 때에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약탈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대하 21:16, 17). 내 은과 금, 나의 진기한 보물은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모든 보물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눅 3:11).
[6절]
유대인들을 노예로 판 이방 민족은 두로인들인데 그들은 원래 솔로몬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사고 팔지 않기로 약조를 맺었으나(왕상 5:1~12) 후에 그 약조를 어기고 헬라 족속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 만행을 저질렀다(암 1:6).
[7~8절]
이 예언은 시돈 사람들이 B.C. 345년 바벨론의 아닥사스다 3세에 의해, 두로 사람들이 B.C. 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각각 포로 되어 잡혀감으로써 성취되었다.
[9~10절]
보습을...낫을...창을. 이 말은 이방 민족들에게 주는 것으로서 그들의 생업인 농삿일을 그만두고서라도 전쟁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준비하더라도 결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인간은 연약하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세상이 능히 감당치 못할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히 11:38).
[11절]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여기서 주의 용사들은 열국과 대적할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지만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사탄의 세력을 소멸하시기 위해 천군 천사를 대동하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것(살후 1:7)을 상징한다.
[14절]
판결(判決) 골짜기. '여호사밧 골짜기'를 가리키는데 이를 이같이 일컫는 까닭에 대하여선 2절 주해를 참조하라.
[16~17절]
여기 언급된 시온이나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하늘 나라를 상징한다(사 35:8~10; 사 60:21). 거기서 주께서는 그의 구속하시고 성결케하시고 거룩게 하신 교회와 영원히 함께하시게 된다<막 1:15, 하나님 나라의 개념>.
(18~21절)

유다 회복의 의미 - 본문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되는 반면 애굽과 에돔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세상 마지막 때에 아무리 악의 권세가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쇠하지 않고 계속 존속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마 16:18) 비록 성도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마지막 날에 그 모든 것을 갚아 주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8절]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실 풍성하신 축복이 시적 문체로 승화되어 나타나 있다.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성경에는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시 104:15; 전 10:19)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맛보게 될 영적 희락을 상징한다.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영적 양식이 풍부할 것을 의미한다(벧전 2:2).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겔 47:1, 2; 슥 14:8; 계 22:1, 2절 등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내려 강을 이루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강물은 주변의 메마른 땅을 비옥하게 하여 많은 결실을 얻게 하는 것인 만큼.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이 소생하고 부흥하며 원기를 회복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싯딤 골짜기. 아카시아나무 외에는 자랄 수 없는 사해 부근의 메마른 골짜기인데 이곳까지 하나님의 집에서 흘러 나온 샘물로 말미암아 비옥한 땅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은 장차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복음이 메마른 땅과 같은 뭇사람들의 심령을 적셔 그들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게 될 것을 시사한다(요 7:37~39).

(19~21절)

유다 부흥의 영적 의미 - 본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영화와 애굽과 에돔의 영원한 황폐를 예언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는 영화보다는 고난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에돔은 현재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애굽(이집트)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영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유다와 예루살렘은 천국의 모형으로, 애굽과 에돔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 세력의 모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해설

열국에 대한 심판 (1~15절)

3:1~21절까지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예언한 것인데 먼저 그 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압박했던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지며(1~8절), 이어서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 거행됨(9~15절)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를 대적할 거대한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세력(단 8:23~27; 살후 2:3, 4; 계 13:14)을 진멸하기 위해 치러질 마지막 대전쟁(계 16:14~16; 계 19:17~19)에 관한 예언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심으로써 이 심판은 그 절정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마 24:27~31; 계 19:11~21).

유다의 회복 (16~21절)

여호와의 날에 택함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영원히 회복될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3:1~21절에 나타난 대로, 여호와의 날은 불신 세력을 향한 심판(사 13:6; 습 1:14~18; 계 20:7~15)과 성도들을 위한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날에는 세상의 모든 악이 근본적으로 소멸되고 사막에서 샘이 솟아오르듯 성도들은 새 생명 가운데서 기뻐 뛸 것이다(사 30:25, 26; 겔 34:13, 14).

 

# 핵심

1~21절

여호와의 날의 도래와 그 날에 이루어질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

보습 (10절)

가축으로 하여금 끌게 하여 밭을 가는 농기구이다(왕하 19:19). 애굽이나 메소보다미아의 비석에 새겨져 있는 것과 같이 원래 목재로 만들어졌으나, 후에 '보습끝'은 철제로 제작되어(삼상 13:20) 농업의 진보를 가져왔고, 증산(增産)에 크게 기여했다. 본절의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라는 표현은 전쟁의 날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 묵상

종말적 사건 (4~5절)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는 하나의 표적입니다. 여기에는 우주의 변화도 따릅니다. 이것은 핵전쟁을 통해, 또는 우주의 파국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살고 머물러 있던 자들, 즉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아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열국에 대한 최후 심판 예언 (9~15절)

요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한 열국들과 싸워 그들을 패배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사실은, 종말론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모욕한 자들을 진멸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영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철저하게 파멸시킴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백성을 위한 커다란 복 (17, 21절)

백성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아는 것이요, 예루살렘이 거룩함을 아는 것이요, 여호와께서 백성의 피난처가 되시고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심을 아는 것입니다.

심판 후에 주실 하나님의 풍요함 (18절)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고,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고,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 싯딤 골짜기를 채울 것입니다. 이 풍요로움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아니라 영적인 풍요로움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이고 영적인 복을 항상 준비하시고 계십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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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7절)
임박한 여호와의 날 - 전장의 메뚜기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의 날과 연관시켜 교훈을 주고 있는 부분이다. 즉 요엘은 여기서 메뚜기 재앙을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시켜 보다 상세히 설명한 뒤에(1~11절), 간곡하고 결연한 어조로 백성들에게 옷이 아닌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12~17절). 그런데 요엘은 여기서 이제라도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13절) 그분께선 그들에게 보다 큰 은총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메시지를 아울러 주고 있는데 이는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과 큰 기쁨의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분명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점, 이 세상의 매우 하찮은 것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지금은 종말, 즉 주의 심판의 날이 매우 가까이 이른 때라는 점 등의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11절)
이방 민족의 침입 - 1차적으로는 메뚜기떼가 엄습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 민족에 의해 이스라엘 땅이 유린당할 것, 더 나아가 여호와의 심판 날의 상황에 대해 복합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부분이다.
[1절]
전통적으로 나팔은 전쟁 때(민 10:9; 수 6:4; 삼상 13:3)나 예배 때(민 10:10), 그리고 절기 때(레 25:9)에 불었는데 여기서는 여호와의 심판 날이 가까웠음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 심판 날을 예비하도록 하기 위해서 불라고 한다. 성산. '시온'을 가리키는 동의어이다(삼하 5:7; 시 9:11). 시온 산은 다윗 시대 때 법궤를 안치한 장소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다. 또한 본절은 주의 심판 날이 확실히 임한다는 사실과 그 때와 시(時)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막 13:32).
[2절]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많은 메뚜기떼가 온 지면을 덮음으로 말미암아 햇빛이 차단된 상태를 가리키는 동시에(출 10:15) 악인들에게는 마지막 심판 날에 구원의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희락은 빛으로(시 112:4; 사 58:8; 마 4:16), 재난은 어둠으로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습 1:15; 눅 22:53).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 구절 역시 메뚜기떼가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 날개가 태양에 반사되어 생긴 빛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새벽의 여명이 온 세상을 덮은 것처럼 메뚜기떼가 온 산 위를 덮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동이 틀 때 순식간에 산꼭대기에 빛이 퍼지듯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고도 신속하게 임할 것을 의미한다.
[3절]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시온 땅에서 자라나던 식물이 마치 불에 타버리듯이 순식간에 황폐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구절이다.
[4~6절]
메뚜기떼의 모양과 그것들의 출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끼친 두려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메뚜기는 실제로 그 머리가 말(馬)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고, 그 뛰는 모습은 말 탄 기병과 유사하다(욥 39:19, 20; 계 9:7). 그렇지만 요엘이 굳이 이 같은 점을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메뚜기떼의 엄습이 마치 잘 훈련된 군대의 침략과 같아서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방어할 수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7~9절).
[7~9절]
메뚜기떼를 잘 훈련된 가공할 군대의 모습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 메뚜기떼는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보내실 이방 군대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1:6).
[10절]
이러한 지진과 천체의 이상 현상(31절; 사 13:9, 10; 사 34:34:4; 겔 32:7) 등은 종말론적 현상으로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긴 하나(눅 21:25, 26) 여기서 우선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메뚜기 재앙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삼라 만상이 공포에 떨 정도였다는 것이다.
[11절]
여기서의 소리는 여호와께서 군대(7~9절)의 선두에 서서 심판하러 오시는 장엄한 모습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그 군대의 수와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군대의 능력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심판의 날이 심히 두려운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3:16; 사 30:30).
(12~17절)
회개의 권고 - 1:1~2:17절의 결론부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애통해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권고를 더 강조하기 위하여 요엘 선지자는 성전에서 기도를 위한 모임을 갖도록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호소하고, 제사장들이 간구해야 될 기도문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말을 맺고 있다.
[12절]
요엘 선지자의 외침은 이 심판이 자기 백성을 회개시키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며, 만약 돌이킨다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속에 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욥 2:7, 고난에 대하여>.

[13절]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옷을 찢는 행위는 내면적인 큰 슬픔의 외적인 표현 방법이었다(창 37:29~35; 대하 34:27). 그러나 단순한 외적인 표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기에 마음을 찢으라고 경고한다(시 51:17). 이어서 이러한 요구의 근거로서 출 34:6, 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제시한다.

[14절]

누가 알겠느냐. 이 의문형은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로 인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자비의 크심을 빙자해 그들이 행여나 회개하는 일에 소홀하거나 부주의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17절]

낭실은 성전의 동쪽 출입구를, 단은 성전의 뜰에 위치한 번제단을 가리킨다. 이 낭실과 제단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주로 제사장들의 기도 처소로 이용되어 왔다(대하 8:12; 겔 8:16). 요엘 선지자는 여기서 백성들을 위한 대도(代濤)를 드리도록 제사장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2:18~3:21절)

회개하는 자에게 주어진 구원 - 1:1~2:17절의 심판의 경고에 이어 이제 그중 회개하는 자들을 향한 구원을 선포하는 부분이다. 선지서들은 이처럼 심판을 예언하되 동시에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며, 구원의 희망을 말하되 부정적, 특권적, 맹목적 구원이 아니라 회개한 자들을 위한 구원을 말한다. 즉 이것은 율법의 저주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넘쳐흐르는 복음의 위로를 상징한다<마 5:17, 18,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복음>. 한편 요엘 선지자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약하고(2:18~27), 나아가 하나님의 영적 축복을 약속하고 있다(2:28~32). 그 다음엔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3:1~17)을 예언한 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들과는 대조적으로 가장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3:18~21)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참된 회개만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행위이며, 우리가 전심으로 회개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으며, 신령한 은혜는 믿음과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우리에게 당면한 환난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멸망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 등이다. 끝으로 본서를 비롯한 선지서의 모든 내용은 1차적으로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적용되지만 보다 넓게는 전역사의 과정, 즉 세상의 종말론적 과정에 적용된다<겔 서론, 성경 예언과 일반 예언의 차이>.

(18~27절)

회개에 대한 응답 -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거두시고 반드시 풍족한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19절]

곡식, 새 포도주, 기름에 해당하는 원어를 보면 각기 그 앞에 정관사(the)가 붙어 있는데 이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생산될 소산물임을 강조해 준다.

[20절]

북편 군대. 북쪽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날아온 메뚜기떼를 가리키는 것이나 상징적으로는 이스라엘 북쪽에 거하는 이방 민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1:6). 메마르고 적막한 땅. 에돔 광야이거나 아라비아 사막일 것이다. 동해는 사해이고(겔 47:18), 서해는 지중해이다(신 11:24).

(21~23절)

이스라엘의 회복 - 본문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절정으로서 땅과 짐승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여기서 메뚜기떼의 재앙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뭄마저 해결되어 기쁨이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되 이전의 축복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욥 42:12~17).

[23절]

시온의 자녀들. 이는 시온이 유다를 대표하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이른 비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파종기인 10, 11월경에 오는 비로서 파종기에 뿌려진 씨앗을 움트게 하고 자라게 한다. 늦은 비는 3, 4월경에 내리는 비로서 이는 추수 전 짧은 봄철에 내려 곡식을 성숙시키는 아주 긴요한 비이다(신 11:14). 한편 벌게이트역이나 갈대아역에는 '비'가 '교사'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전후 문맥상 적당치 못하다.

(24~27절)

회복된 땅의 풍요함 -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축복의 비가 풍성히 내려진 결과가 나타나 있다. 24절은 1:10~12절의 내용과 비교하여 그 풍성함을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에 대한 언약(19절)이 시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25절]

햇수. 이것은 1장에 서술된 메뚜기떼의 재앙이 해마다 있었던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메뚜기떼 재앙의 결과가 몇 해 동안 심각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을 의미하고 메뚜기떼로 인한 피해 회복이 오랜 시일이 지나야 가능할 것을 의미한다.

[26절]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이 약속은 부정적인 형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즉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이다.

[27절]

여기에는 여호와 이외는 다른 신이 없다는 유일신 사상이 나타나 있다(사 45:5, 6, 18). 이것은 17절에 나온 이방 민족들의 조롱에 대한 매우 적절한 응답이다.

(28~32절)

성령의 강림 - 본문에서 요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으로 끝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 강림을 확약(28, 29절)한다. 그리고 이 세상 종말 때 성도들의 구원과 최후 승리가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32절).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축복과 은사는 연령이나 성별, 그리고 계급과 신분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진다는 것과 성령으로써만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다는 사실과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만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갈 서론, 이신 득의 이해>.

[28절]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이다(행 2:1~4). 구약 시대에는 특정한 사명을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만 성령이 부분적이고도 조건적으로 임했으나(출 28:3; 출 31:3; 민 11:17, 25; 신 34:9; 삿 3:10)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이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선물로 성령이 임할 것임을 선포하는 말씀이다<행 서론,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의>.

[29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계급이나 신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전 1:26, 31; 갈 3:28, 29; 골 3: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하기만 하면 구원받게 된다.

[30~31절]

마지막 심판 날이 임할 때 생기는 전조(前兆)들에 대한 언급이다. 피는 애굽의 강물이 피로 변한 이적을 상기시키고(출 7:17), 불은 애굽에 내렸던 우박 섞인 불을 생각나게 한다(출 9:24). 그리고 연기 기둥은 전쟁 때 불타는 마을에서 솟아나는 검은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사 9:18). 또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 현상은 애굽에서의 흑암의 재앙(출 10:21)을 생각나게 한다.

[32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이는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고 또한 그분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롬 10:9, 13)를 말한다. 이러한 자들은 종말론적 환난(30, 31절) 중에서도 성령 안에서 배도(背道)치 않고 끝까지 인내함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다<스 9:8, 남은 자 사상>.

 

# 해설

임박한 여호와의 날 (1~11절)

본문에서 요엘은 메뚜기떼의 위용과 호전적인 모습을 임박한 침입군의 그것과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는바, 그 위용(2b~5절), 조직적 행동(6~8절), 그들로 인해 초래될 엄청난 결과(9~11절) 등을 이중 묘사법을 통해 서술하였다. 이는 1차적으로는 메뚜기떼가 이스라엘 국토를 황폐케 함을 표현하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멸망,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날을 묘사하는 복합적인 예언이다.

회개의 요청 (12~17절)

하나님은 예배에 있어 외적 형식보다는 마음 상태를 더 귀히 여기시며(사 1:11~17; 암 5:21~24) 은혜와 긍휼이 풍부한 분이다. 이러한 확신으로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금식의 날을 준수할 것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는 미스바의 성회를 연상시킨다(삼상 7:5~14). 진실한 회개만이 이 죄악을 이기며, 하나님의 징계를 은총으로 바꿀 수 있는 열쇠이다(14절; 겔 18:30).

회개에 대한 응답 (18~27절)

본 단락은 이스라엘의 전민족적인 회개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즉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시고(18절), 재앙의 요인들을 제거하시며(19, 20절), 죄악으로 황폐해진 땅을 복구하시고(21~25절), 풍요로움 속에서 언약의 관계를 새롭게 하실 것을 보여 준다(23~27절; 신 28:1~14).

성령 충만 (28~32절)

본문은 회개에 대한 응답(18~27절)과 3:1절부터 시작되는 종말론적 심판과 회복에 대한 예언의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1:15절에서 이미 언급된 바 있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이 종말론적 의미를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에 유의해야 하겠다. 본문의 예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다(행 2:1~4).

 

# 핵심

1~17절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타나는 여호와의 날을 선포하고,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여호와의 날 (1절)

'멸망의 날'(1:15), '캄캄한 날', '심히 두려운 날', '해와 달과 별들이 그 빛을 거두는 마지막 날'(3:15)로 표현되며, 본서에 기록된 메뚜기의 침입(1:4)과 같이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개입하사 심판하시는 날을 의미한다(사 13:6). 종말론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사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때를 가리킨다(마 11:24). 그 날은 하나님의 승리와 심판의 날이요, 택함받은 백성들이 구원과 축복을 받는 날이다.

 

# 묵상

메뚜기 재앙 (1~3절, 11절)

메뚜기 재앙은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의 심판에 대한 징조를 의미합니다. 즉 이것은 유다 백성이 직접 체험한 메뚜기 재앙을 기억나게 하여, 장차 임할 무섭고 끔찍스러운 재앙에 대해 이해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재앙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고, 오직 한 가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의 자세 (12~17절)

본문은 엄청난 심판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것을 권면하고, 그들이 행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금식 기도는 절박할 때에 구원을 요청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회개는 눈물에 있지 않고 모든 부정과 모든 분열을 떨쳐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굳게 설때 가능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근본적인에 문제에 대한 해결책 (18~19절)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비롯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과 복이 주어지고, 피폐된 농작물의 회복으로 육적 구원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약속이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올 때 큰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땅을 향해 외치는 하나님 (21~23절)

하나님께서는 땅을 향해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무생물인 땅을 향해 외치신 이유는, 하나님의 복이 무생물이라도 기뻐하고 놀랄 만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시 126:2). 하나님께서는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면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도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 (27~28절)

요엘이 제시한 구원의 마지막 가능성은 범죄에 대한 비판, 후회, 진정한 마음을 돌이킴, 깊은 참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신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께서는 특정한 때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이 예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성취됩니다(행 2:17~21).

구원을 얻을 자 (32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즉 하나님을 올바로 인식하며 그분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를 말합니다(롬 10:9, 13). 이는 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됩니다. 또한 여호와의 부름을 받은 자로 이는 창세 전에 이미 구원할 자로 예정된 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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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0절)
환난에 대한 성도의 태도 - 이스라엘 땅에 갑자기 닥친 메뚜기 재앙의 비참함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요엘은 이 재앙이 단순히 천재(天災)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임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종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또한 책망과 경고를 받을 때 회개하고, 바른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하며, 영적으로 우둔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해야 한다(살전 5:17). 또한 환난과 역경에 처하게 될 때 그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말고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아야 한다(히 12:11).
[1절]
여호와께서. 개역성경과는 달리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주어로 되어 있는데 이는 본 예언의 출처와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해준다(딤후 3:16, 17).
[2절]
늙은 자들아...들을찌어다. 이처럼 요엘이 노인들을 향해 먼저 경고하고 있는 까닭은, 이스라엘 땅에 임한 메뚜기 재앙이, 젊은이들에 비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한 노인들조차도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무서운 재앙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기서 들을찌어다 또는 귀를 기울일찌어다라는 말은 이같은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4절]
본절에 나오는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은 메뚜기를 가리키는 각기 다른 네 개의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한 종류의 곤충인 메뚜기를 이처럼 네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까닭은 이 메뚜기 재앙이 아주 혹독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적으로 임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한편 이러한 메뚜기 재앙에 대해선 선지자 아모스도 증거하고 있으며(암 4:9), 또한 일찍이 애굽 땅에도 내린 적이 있다(출 10:1~20).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성도들이 범죄하고서 미처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할 때엔 하나님께서 여러 번 채찍질해서라도 죄악을 깨우쳐 주신다는 사실(벧후 3:9)을 알 수 있다.
[6절]
한 이족(異族)이...올라왔음이로다. 메뚜기가 큰 떼를 이루어 집단적으로 이스라엘 땅에 엄습하였음을 뜻하고 있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장차 이방 민족이 이스라엘 땅을 유린하게 되리라는 예언적 의미도 지니고 있는바 1차적으로는 B.C. 722년 앗수르 제국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2차적으로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으로 성취되었다. 사자의 이. 메뚜기떼의 파괴력이 엄청나게 큼을 상징하는 말이다.
[8절]
이스라엘 땅에 임한 재앙으로 말미암은 백성들의 슬픔이 얼마나 처절하고 심각한 것인지를 증거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히브리 사회에서 남자는 약혼과 더불어 남편으로서의 대접을 받는다<아 서론, 히브리인의 혼인 절차 및 풍습>. 따라서 약혼한 남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는다는 것은 약혼녀에게 있어서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데 요엘은 이스라엘 땅의 황폐로 인한 백성들의 슬픔을 바로 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9절]
제사장들이 슬퍼한 근본 이유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던 소제와 전제를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민 18:1~32, 제사장과 레위인의 분깃>.
[10절]
본절의 이면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올바른 판단력을 결여하고 있음을 꾸짖는 책망이 담겨 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배고픔 때문에 애곡했을 뿐 그 근본 원인이 바로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 때문이었다는 점을 깨닫지는 못하였던 것이다(2:13).
[11~12절]
요엘이 동일한 주제를 다루면서 계속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 까닭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욱 더 분명히 강조하기 위함이다.
(13~14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일에는 누구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종들이 앞장서야 했으니 이에 요엘은 본절에서 제사장들의 회개를 최우선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13절]
굵은 베로 동이고. 이는 마음에 슬픔이 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인바 곧 제사장들이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크게 슬퍼하며 회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14절]
금식일...선포하여. 금식은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표시로서 음식을 먹지 않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데 그 의미가 있다<에 4:1~17, 금식에 대하여>. 그런데 금식일을 성회로 모이라 한 것은 곧 이스라엘 민족이 거족적으로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회개토록 하라는 의미이다.
(15~20절)

재앙에 대한 경고 - 여기서 요엘 선지자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체험한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곧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즉 그들에게 임한 재앙은 아직 일부분에 불과하므로 만약 제때에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을 경우 더 무서운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점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15절]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이 날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로서 온 세상에 종말이 임하는 날이다<서론, 여호와의 날>. 멸망같이...이르리로다. 문자적으로는 '전능자에게서 온 멸망같이', '불가항력의 존재자에게서 오는 불가항력적인 힘같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세상 종말이 임하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탄적이고도 인간적인 모든 세력은 허사가 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만이 참된 영광을 덧입게 될 것이다(계 20:11~21:9).

(16~18절)

여기서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전능자로부터 멸망같이 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16절]

우리 목전에.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임한 재난을 목도할지라도 스스로는 어떠한 식으로도 대처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기쁨과 즐거움.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의 곡식조차 얻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감사 예물을 조달할 수 없어 하나님의 전에서 드리는 예배와 절기를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얻게 되는 희락도 자연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17절]

이는 메뚜기 재앙에다가 극심한 기근까지 겁쳐 그들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희망마저 상실되고만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18절]

목초지의 황폐화로 인해 짐승들이 죽어 가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짐승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히브리 사상을 반영한 것인데, 인간들의 범죄가 온갖 피조물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지니고 있던 사상이기도 하다(롬 8:19~22).

[19절]

불, 불꽃 혹심한 태양열과 가뭄을 상진한다(암 7:4).

[20절]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들짐승도 본능을 따라 하나님께 긍휼과 연민을 호소한다는 말이다. 즉 그들은 비록 이성적인 능력이 없고 또 이성을 바탕으로 계시된 종교를 이해할 수도 없지만 자연적 본능에 의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의미이다(욥 38:41; 시 104:21; 렘 14:5, 6). 이는 곧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피조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 해설

선지자의 소명 (1절)

본절은 요엘이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명시하여 그 메시지의 신적 기원을 밝힌다. 요엘의 사명은 이스라엘에 닥친 메뚜기 재앙과 가뭄이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이었음을 밝히고 회개를 촉구하며 다가올 여호와의 날을 선포함에 있었다.

전체 소집 (2~4절)

예언을 선포하기 전에 요엘은 예언을 들어야 할 자들(장로들, 백성들)을 소집하고(2절), 메뚜기 재앙의 전무후무한 파괴력을 진술한다(2~4절). 2절의 소집 촉구 표현('들을지어다,'기울어지다')은 율법서(심 6:4; 신 32:1)와 지혜서(잠 8:32; 잠 23:12)의 표현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죄의 자각과 고백을 일깨우기 위한 형태로 쓰였다. 한편 요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는 황폐의 정도를 강조하기 위해 메뚜기의 서로 다른 네 가지(렘 15:3; 겔 14:21) 이름을 열거하며 수사학적으로 표현하였다.

쾌락 추구자들에게 주는 경고 (5~12절)

20절까지는 당면한 위기에 입각하여 사회 각계 각층(일반 대중 : 5~10절; 농부들 : 11~12절; 제사장들 : 13절)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함과 아울러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있어 B.C. 8세기 전반은 가장 큰 번영을 누렸던 시기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영적, 도덕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비참하게 타락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본문은 영적 감수성을 상실한 채 나태와 향락에 젖은 타락 상태를 포도주에 만취한 모습에 결부시키고 있다(호 4:11~19; 암 6:6). 더구나 하나님과 신령한 관계를 유지, 진작시키기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었던 제사 의식이 요엘의 시대에 이르러 틀에 박힌 형식적 의식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심지어 백성들은 제사 시간에 만취되거나 또는 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기까지 했다. 따라서 요엘은 결혼 직전에 약혼한 남편과 사별하고만 처녀의 슬픔에 비겨 완악한 유다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를 촉구함 (13~20절)

계속해서 요엘은 제사장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통해 통회 자복 기도를 위한 성회를 열 것을 촉구한다(14절). 요엘은 유다의 영적 상황이 가히 절망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메뚜기 재앙에 뒤따라 덮친 가뭄의 심판을 선포한다(15~18절). 그러나 그 심판 선포 뒤에는 유다에 대한 선지자의 애끓는 사랑이 감춰져 있었으며 이는 19, 20절의 애절한 탄식 속에서 잘 표출되고 있다.

 

# 핵심

1~20절

요엘은 쾌락에 빠진 백성들을 향해 두렵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메뚜기 재앙의 비참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재앙은 단순한 천재(天災)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로 내려진 것이었다.

요엘 (1절)

요아스 왕의 재위 기간인 B.C. 835-796년경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홀동한 유다의 선지자이다.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예언하면서, 더 큰 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백성들에게 권고하였다. 수려하고 회화적이며 정확한 표현을 구사했음을 볼 때, 우리는 그가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특별히 기록의 은사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엘리사, 요나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동하였다.

 

# 묵상

메뚜기에 대한 해석 (2~7절)

풍유적 해석으로는 실제로 있었던 곤충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적군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문자적 해석은 실제로 있었던 메뚜기 재앙으로 보고, 계시적인 해석은 실제 사건으로서 미래에 있을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계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회개 방법과 그 이유 (13~14절)

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회개 방법과 그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회개 방법은 제사장은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고, 단에 수종드는 자는 고하며,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는 굵은 베를 입고 밤이 새도록 누워야 합니다. 회개의 이유는 소제와 전제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은 금식일을 정하여 성회를 선포하고, 거민들을 하나님의 전에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 (15절)

이날은 이스라엘이 멸망할 날과 주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 날이 가까웠으니 각성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요엘서에서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임하는 날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날은 범죄한 자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심판의 날이지만, 회개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희망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위와 같이 양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출처 : 바이블25

여호와의 날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

[요엘 3장 14절~21절]
14절 -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절 -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절 -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17절 -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18절 -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절 -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절 -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절 -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이스라엘의 최후 승리와 축복
16절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라
17절 : 다시는 이방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통행하지 못하리라
18절 : 양식의 축복
20절 :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21절 : 피흘림 당함을 갚아 주리라

* 도움말
1. 심판의 골짜기(14절) : 유다 왕 여호사밧이 모압, 암몬, 에돔 연합군을 물리친 골짜기. 종말에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를 심판하실 장소를 상징한다.
2. 싯딤 골짜기(18절) : ‘싯딤’은 팔레스틴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로 싯딤 골짜기는 아카시아 나무밖에 자랄 수 없는 메마르고 생명력 없는 땅을 상징한다.

* 말씀묵상
1. Message(메시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약속된 최후 승리와 영원한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2. 피난처, 산성되신 하나님
엄숙한 심판의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판결을 받게 되고 자연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14-15절). 이날은 악한 자들에게는 두려운 날이 될 것이며 의로운 자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피난처이시며 산성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16절). 하나님의 거룩한 성인 시온의 거룩함이 회복되면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힘겨운 현실과 계속되어 온 곤고한 날의 아픔을 돌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증거를 통해 알게 될 것입니다(17절).

3.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축복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보이시는 궁극적인 구원의 모습은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나와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것입니다(18절). 모든 것이 본래의 자리에 있도록 회복된 시온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가 이루어집니다(19-20절).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시온 성에 계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그분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성전에서 솟아나는 생수로 우리의 영혼을 채워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21절). 이처럼 회개하고 나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축복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거룩함의 회복 그리고 풍요로운 물질적, 영적 축복을 포함합니다. 에스겔서에 기록된 바 이 모든 풍요의 원천은 ‘여호와의 전’, 즉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들로 하나님 앞에 영원히 존속될 뿐만 아니라 모든 고통을 갚아 주시리라는 약속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이스라엘의 최후 승리와 축복에 대한 언급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16-18, 20-21절).
2. 여호와의 날에 무엇을 알게 됩니까?(17절)
* 깊은 묵상
1. 사랑하는 자녀들을 향해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습니까?
2. 반드시 오게 될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 적용 기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아닌 소망의 약속을 주시는 주님, 성전에서 솟아나는 생수로 오늘도 제 영혼을 채워주소서.


제공:프리셉트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

[요엘 3장 1절~13절]
1절 -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2절 -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절 -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4절 -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절 -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6절 -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니라
7절 - 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절 -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절 -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절 -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절 - 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절 -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절 -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 주제별 목록 작성
대적에 대한 심판
2절 : 심판의 선언
3-6절 : 심판의 이유
7-8절 : 심판의 내용
12절 : 여호사밧 골짜기에서의 최후 심판

* 도움말
1. 심문하리니(2절) : 하나님께서 열방들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밝혀내실 것을 가리킨다.
2.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4절) : ‘내가 당장 너희 보복을 갚아 주겠다’(현대인의 성경).

* 말씀묵상
1. Message(메시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열국들을 심판하사 그들이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2.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하나님께서는 비록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징계하기 위한 심판의 도구로 열국을 사용하셨지만 마지막 때에는 그들의 악한 행실을 징벌하십니다(1-2절). 이들 주변국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그 땅을 나누고 백성은 포로로 잡아다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우상에게 바치기 위해 성소에 있는 기물들까지 약탈했습니다(3-5절).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상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갑작스러운 보복을 받음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결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7-8절).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3. 심판 날의 소집 명령
참된 회개와 함께 그 백성이 돌아오면 하나님의 신원하심도 함께 진행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대적자들에게 대항할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9-10절). 뿐만 아니라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흑암의 권세들을 향해서도 소집을 명하십니다(11-12절). 여호사밧이란 말은 본래 여호와의 심판을 뜻하는 말로 여호사밧 골짜기로의 소집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사면의 열국을 심판하는 권세를 지니신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또한 곡식이 익었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독이 넘친다(13절)는 것은 열국의 악이 멸망을 당해야 할 정도로 절정에 이르렀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시험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히 2:18). 그러므로 끝까지 견고하게 주님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역경은 당신의 믿음을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대적을 심판하시는 내용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2-8, 12절).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열국을 심문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3-6절)
* 깊은 묵상
1.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든다 해도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힘과 능력이심을 믿습니까?
2.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 낙심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합니까?
* 적용 기도
고난을 당할 때 당황하여 세상 것을 붙잡기보다, 고난을 통해 제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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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

[요엘 2장 21절~32절]
21절 -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절 -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절 -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절 -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절 -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절 -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절 -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8절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절 -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절 -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절 -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절 -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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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대한 응답
21절 : 땅이여 기뻐할지어다
22절 : 들짐승아 두려워 말지어다
23절 : 시온의 자녀들아 즐거워할지어다
24-25절 : 해를 당한 대로 갚아 주심
26절 :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임
28절 : 여호와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실 것임

* 도움말
1. 햇수대로(25절) : ‘극심한 황폐의 정도만큼’ 혹은 ‘남 유다 백성이 당한 고통만큼’의 의미다.
2. 영(28절) : 히브리어로는 ‘루아흐’로 ‘성령’을 지칭한다.
3. 부어 주리니(28절) : 히브리어로는 ‘솨파크’로 폭우나 폭포수 같이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부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성령 강림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부어질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낸다.

* 말씀묵상
1. Message(메시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온 백성들을 향해 축복과 회복의 메시지를 주시고 여호와의 영이 만민에게 부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2. 큰 일을 행하신 여호와
본문에는 ‘땅’, ‘들짐승’, ‘시온의 자녀들’이 호명되는데 이는 소집 명령을 듣고 예루살렘 성전 뜰에 함께 모였던 이스라엘 회중을 향한 선언으로, 하나님은 이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필요를 만족시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십니다(21-23절). 메뚜기의 파괴적인 힘은 큰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권능 앞에 힘 없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치유로 메마른 땅에 새싹이 돋아날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23절). 이와 같은 기대는 요엘서 1장 7절, 12절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무화과와 포도 추수를 즐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다 준비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하나님은 회개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무너진 모든 피조물의 세계에 생기와 회복을 주시며 상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25-27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28-29절).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시며 성난 폭풍 속에서도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마지막 심판의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회개에 대한 응답 내용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21-26절, 28절).
2.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32절)
* 깊은 묵상
1. 회개는 반드시 변화를 불러옵니다. 당신은 회개를 통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당신은 성령님의 임재함으로 어떤 회복이 일어나길 기대합니까?
* 적용 기도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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