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대화의 시작, 편견 없는 공정성

 

[욥기 32장 11절~22절]

11절 -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12절 -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13절 -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14절 -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15절 -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었더라

16절 - 당신들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하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17절 -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18절 - 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내 영이 나를 압박함이니라

19절 - 보라 내 배는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구나

20절 -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21절 -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22절 -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엘리후는 욥의 친구 중 어느 누구도 욥의 말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욥의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나서는 이유가 자기 속에 말이 가득하고 자신의 영이 자신을 압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거나 아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 한계에 다다른 엘리후의 인내 (11~16절)

엘리후의 등장은 대화의 새로운 국면을 기대하게 합니다. 엘리후는 지금까지 욥의 친구들이 슬기로운 말로 욥의 말을 논박하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의 말은 실망스러웠고, 욥은 여전히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제대로 대등하지 못한 채 할 말을 잃은 친구들을 향해 "그(욥)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13절)라는 말로 일침을 가합니다. 그러면서 욥이 아직 자신에게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그들과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발언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습니다.

* 엘리후는 욥 친구들의 어떤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나요? 상대방의 논지가 옳지 않다고 느껴질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2. 공정한 말을 다짐하는 엘리후 (17~22절)

엘리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분명히 말하겠다고 밝힙니다. '나도'(17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프 아니'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강조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포도주가 발효되어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인 가죽 부대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참을 만큼 참아서 할 말이 많이 쌓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사람의 낯'을 보지 않으며 '사람의 영광'을 위해 말하지 않겠다고 하는데(21절), 이는 아첨하지 않고 공정하게 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만약 자신이 약속한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속히 자신을 데려가실 것이라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치우친 주장은 모래로 쌓아 올린 성과 같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때 중요한 것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입니다.

* 엘리후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다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사람의 낯을 보지 않고 공정히 다룰 사안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사소한 조언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이길 원합니다. 모든 삶을 판단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구하게 하소서. 진실하게 귀 기울이고, 묵묵히 들어 주며, 가식 없는 사랑으로 말씀을 나누는 하루를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지혜와 용기의 근원, 전능자의 영

 

[욥기 32장 1절~10절]
1절 -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2절 -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절 -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4절 - 엘리후는 그들의 나이가 자기보다 여러 해 위이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5절 -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화를 내니라
6절 -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7절 -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8절 -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9절 -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10절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자 세 친구 모두 말을 그치고 엘리후가 나섭니다. 엘리후는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욥에게도, 또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 욥을 정죄하는 세 친구에게도 화를 냅니다. 엘리후는 그들보다 어리기에 감히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며, 이제 자신도 의견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1. 엘리후의 등장 (1~5절)

욥기 32~37장은 엘리후의 발언입니다. 엘리후('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는 람 족속 부스 출신 사람으로, 욥의 세 친구와 달리 아버지의 이름(바라겔, '하나님이 축복하셨다')이 함께 소개됩니다. 그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가 마무리된 이후에 등장한 인물로, 이들 중 가장 젊습니다. 본문에서 엘리후가 '화'를 냈다는 표현이 네 번 나옵니다(2~3, 5절). 이는 욥이 자신이 무고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세 친구 모두 그러한 욥을 상대로 제대로 된 논박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엘리후의 발언은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욥의 탄식과 질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답변을 예비하고, 또 그것을 이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 엘리후가 화를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로 인해 화가 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2. 엘리후의 발언 근거 (6~10절)

지혜 전통에서는 사람들이 연장자의 경륜과 지혜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연소자는 연장자 앞에서 말을 조심합니다. 그런데 연장자인 욥 친구들의 발언은 엘리후를 실망시켰습니다. 더는 침묵할 수 없었던 엘리후는 자신이 연소자임에도 발언을 시작하는 경위를 밝힙니다. 그는 발언의 근거를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의 숨결'에서 찾습니다(8절). 이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불어 넣으신 것으로(창 2:7), 연장자와 연소자의 경계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경계를 뛰어넘게 합니다. 사람이 지혜롭게 되고 정의를 깨닫는 것은 세월이나 경험, 학식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참된 지혜와 담대함을 얻습니다. 이를 근거로 엘리후는 자신의 긴 발언을 시작합니다.

* 연장자들 앞에서 자신 있게 발언하도록 엘리후를 이끈 것은 무엇인가요? 침묵하지 않고 말해야 할 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고난이 상처로 남아 신음하는 형제자매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무심히 지나쳤던 제 악함을 회개합니다. 제 얕은 지혜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지혜로 마음을 충만히 채우게 하소서. 입술에는 절제함을, 마음에는 겸손함을 담아 하나님의 숨결로 이웃에게 다가가도록 이끄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 없이 고난받는 자의 소망, 전능자의 '무죄 선언'

 

[욥기 31장 24절~40절]

24절 -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25절 -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26절 -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27절 -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28절 -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29절 -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30절 - 실상은 나는 그가 죽기를 구하는 말로 그의 생명을 저주하여 내 입이 범죄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31절 -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32절 -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33절 -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34절 -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35절 -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절 -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절 -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절 -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절 -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절 -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욥은 재물을 기뻐하지도, 해와 달의 빛남에 유혹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수의 생명을 저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은 모두 배부르고 나그네 조차 대접을 받았습니다. 욥은 이런 자신을 누가 고발하겠다면 고소장을 써 보라고 합니다.

 

1. 재판에 회부될 만한 죄악이 없다 (24~34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확실하면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섬기지 않습니다. 욥은 금이나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 않았고, 풍부한 재물이나 하늘의 해와 달도 믿고 의지할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는 힘과 지혜를 공급하시는 유일한 주권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의 불행을 기뻐하지 않았고, 자신의 적들을 저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성경의 윤리인 '이웃 사랑'(원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않았고, 공중 앞에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욥은 자신이 재판에 회부될 만한 죄악이 없음을 피력합니다.

* 욥이 실천한 '이웃 사랑'(원수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내 삶에서 실천할 이웃 사랑은 무엇인가요?

 

2. 명예 선언이 될 고소장 (35~40절)

욥은 법정 소송을 연상시키는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 '들어 줄 사람'을 요구합니다. 이는 법정 소송에서 재판장을 의미합니다. 둘째, 전능자(하나님)로부터 응답이 오기를 바랍니다. 셋째, '고소장'을 원합니다. 고소장은 소송 상대자가 욥의 범죄 사실에 대해 기록한 '소송장'입니다. 욥은 법정 싸움에서 '무죄 선고'를 확신합니다(13:22~23). 그는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도록 고소장으로 자신을 장식하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욥은 '땅'과 관련해 어떤 불의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38~40절). 이러한 욥의 '무죄 맹세'는 하나님이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행위입니다. 이러한 욥의 확고한 신앙은 결국 고난을 이겨 내게 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38~42장).

* 욥이 강력한 '맹세 발언'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나의 결백함을 아시는 주님께 담대히 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부자여도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며, 은밀하게 죄를 품지 않으려 한 욥을 보면서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웁니다. 죄와 유혹이 넘실대는 세상 속에서 말씀의 울타리를 넘지 않게 하소서. 탐나고 빛나는 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욥기 31장 1절~23절]

1절 -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절 -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절 -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절 -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절 -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절 -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7절 -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8절 -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9절 -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10절 -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11절 -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12절 -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13절 -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절 -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절 -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16절 -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절 -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절 -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19절 -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20절 -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21절 -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22절 -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23절 -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26~31장은 욥의 마무리 발언으로, 재판장에서 무죄와 결백을 주장하는 형태를 띱니다. 현재 욥은 정죄와 고소 가운데 있습니다. 세 친구의 인과 관계 법칙에 따른 신랄한 정죄에 반박해야 하며,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탄원도 주장해야 합니다. 그의 발언 중 29~31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욥은 과거의 영화(29장)와 현재의 처지(30장)를 대조한 후, 31장에서 맹세를 사용한 가정법으로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주장합니다. 무죄를 맹세할 때는 ‘부정의 고백’(negative confession)이라는 고대 사법 관습을 통해 친구들이 지적한 죄의 목록을 논박합니다. 이러한 수사법은 고대 문헌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종교 문헌 ‘사자(死者)의 서’에는 죽은 자가 지하 세계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무죄를 고백한 후 저울에 심장의 무게를 달아보는데, 이때 깃털보다 가벼워야 통과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대 히타이트 군사 서약에는 도덕법에 위반된 사실이 있을 경우 자신의 머리 위로 저주를 부르는 맹세가 나옵니다. 31장에 나타나는 소출의 멸망(8절), 맷돌 돌리기(10절), 뼈가 부러짐(22절), 가시나무와 독보리(40절) 등의 저주는 고대 맹세의 언약에 등장하는 표현과 유사합니다. 욥은 이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일을 행한 적이 없다는 강한 확신과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관찰과 묵상]
1. 욥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했나요? 또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했나요?(4, 6절)
욥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인생의 길을 살피시고 걸음을 다 세시는 하나님으로(4절),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인생을 공평한 저울에 달아 보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6절).
31장은 욥이 하나님의 속성을 감찰자, 심판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길을 걸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욥에게 세 친구의 판단과 정죄는 결코 타당한 주장이 아닙니다. 욥은 이미 그들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지키는 온전함 또한 죽기 전까지 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27:5). 이제 욥은 세 친구의 정죄가 틀렸다는 것을 논박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변호합니다. 31장의 발언은 비단 세 친구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엄중한 인생의 사건과 실존을 가지고 감찰자이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재판정 앞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31장에 열거된 부도덕한 행태에 대한 그의 무죄 주장은 단지 욥이 의롭고 깨끗하게 살았음을 조목조목 논증하는 표현이 아니라, 끔찍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 앞에 서려는 욥의 중심과 마치 그를 적대시하는 것처럼 욥을 몰아가시며 줄곧 침묵하시는 하나님 사이에 극적인 긴장감이 표출되는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그는 행위로 의로움을 주장하는 차원이 아닌, 실존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크심 앞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 하나님이 욥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신 것(욥 42:7)은 그의 행위가 완전했음을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앞에 진실하게 반응하며 창조주, 주관자, 심판자에 관한 올바른 지혜를 성취해 가는 데 대한 승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감찰자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있나요? 하나님을 의식할 때 내가 하지 않을 일은 무엇인가요?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늘 신경 쓰면서 노력하라는 것, 둘째, 죄인인 인간의 실존이 결코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율법적인 의를, 후자는 은혜의 의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욥은 인과 관계의 전통적인 교리나 율법적인 의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욥이 점차 깨달아 가고 있는 것은 그럼에도 내 앞에 존재하시는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감찰자, 심판자 앞에서 자신의 의로 설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하나님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발견되는데, 바로 삶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그 자체로 인생에 엄청난 은혜라는 것입니다. 감찰자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한다면, 성도의 삶은 율법이 얽매는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삶과 하나님 임재의 은혜를 직시하는 축복 속에 있을 것입니다.

2. 욥은 가난한 자, 고아, 과부를 못 본 체하지 않고 그들을 돌보았습니다(16~22절). 그는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나요?(23절)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연약한 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욥은 당시 사람들이 공공연히 저지르던 가난한 이웃들을 멸시하던 죄,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 사회적 의무를 저버리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는 먹을 것을 고아에게 주었고, 데려다가 아버지처럼 고아들을 길렀으며, 과부에게도 자비를 베풀었습니다(17~18절). 의복이 없는 자에게 자신의 양털 옷을 벗어 덮어 주었고, 성문에 있는 사람들을 믿고 고아들을 압제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19~21절). 이 같은 모든 의로운 행동은 하나님에 대한 큰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23절). 그러나 이 두려움은 공포가 아닌 경외심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의 영광스러운 과거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고통스러운 현재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경외심은 35~37절에서 심판자 앞에 서고자 하는 담대한 소망으로 연결됩니다. 욥은 하나님 뵙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는 하나님이 그에게 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러한 경외심 때문에 그의 삶에 자비와 긍휼이 거침없이 실천되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경외심과 의로운 행위만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상황에 있을 뿐입니다.
적용과 나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고 있나요? 그들을 섬기는 동기는 무엇이며,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섬기는지 나누어 보세요.
욥기는 행위적으로 흠이 없고 완전한 자 욥을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욥에게 고난의 상황을 들이밀고 그의 행위와 의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1장에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1)로 평가되는 욥의 의로운 행위들은 31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욥의 선한 행실을 외형적으로 살피기보다, 그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31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23절에 표현된 욥의 경외심은 자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어떤 내적 동기를 바탕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려는 교만, 행위를 자기 삶의 의로 삼으려는 착각을 제거하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는 경외심과 그분에 대한 헌신과 사랑, 십자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나아갈 때 성도는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욥은 마지막 고백을 통해 마침내 창조주 하나님 앞에 홀로 섭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호할 최후의 수단인 맹세를 통해 무고함을 호소하고 탄원합니다. 그는 감찰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며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 인생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가 곧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과 관계 법칙이나 율법적 의로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섭리는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그분은 한 인생을 파고드셔서 그분을 향한 온전한 지식에 이르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각 사람의 삶을 살피시고 행동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고 경외하며,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예배자의 삶이 동반된 진실한 맹세

 

[욥기 31장 1절~23절]

1절 -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절 -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절 -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절 -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절 -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절 -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7절 -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8절 -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9절 -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10절 -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11절 -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12절 -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13절 -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절 -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절 -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16절 -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절 -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절 -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19절 -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20절 -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21절 -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22절 -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23절 -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욥은 자신이 처녀를 주목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전능자가 주실 기업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살펴보시면 자신의 온전함을 아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해 가난한 자, 고아, 과부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1. 속임과 탐욕에 대한 무죄 맹세 (1~12절)

욥은 자신의 무죄를 '맹세' 형태로 주장합니다. 맹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것이기에 욥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발언 형식입니다. 31장에 나오는 욥의 무죄 맹세 주제는 대략 열 가지입니다. 1~12절에서는 그중 호색, 속임, 탐욕, 간음 등 네 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특히 욥은 호색의 주제를 다루면서 자신이 눈과 '언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욥의 무죄 맹세는 예배하는 자가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성전 입장 예식문'(시 15편)을 연상시킵니다. 욥이 고백하는 구체적 일상생활에서 그의 영성과 거룩함이 묻어납니다. 예배하는 자는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삶의 제사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상의 거룩한 삶을 '영적 예배'로 기쁘게 받으십니다(롬 12:1).

*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맹세의 형식을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당하게 맹세할 정도로 내가 지켜야 할 거룩함은 무엇인가요?

 

2. 부끄럽지 않은 선행의 삶 (13~23절)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은 바른 삶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욥의 무죄 맹세를 통해 확인됩니다. 욥은 종들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그들의 권리를 무시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행동의 근거는 종을 지으신 분도, 종이 아닌 이를 지으신 분도 '한 분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잠 22:2).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에 근거한 욥의 인간관이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게 하고, 천부적 인권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욥은 가난한 자와 도움이 필요한 자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그는 약자의 권익을 위해서도 힘썼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 유일신 신앙과 창조주 하나님 신앙이 욥의 인간관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내가 공평하게 대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주님을 경외하는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제 삶의 걸음이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음란함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과 눈을 지키게 하소서. 배고픈 이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삶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응답되지 않는 탄식, 통곡과 애곡이 되다

 

[욥기 30장 16절~31절]
16절 -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17절 -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18절 -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19절 -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20절 -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21절 -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22절 - 나를 바람 위에 들어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23절 -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24절 -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25절 -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절 -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절 -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절 -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절 -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절 -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31절 -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욥은 환난에 사로잡혀 끝없는 아픔을 느낍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던져 버리시고 티끌과 재같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르짖지만 주님은 대답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으십니다. 그는 빈궁한 자들과 마음을 같이했던 일을 추억합니다. 그는 환난으로 인해 통곡과 애곡을 멈추지 않습니다.

 

1.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 (16~23절)

계속되는 육체의 고통을 겪을 때는 믿음의 고백보다 절망을 토로하기 쉽습니다. 현재 욥의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밤이면 뼈가 쑤시니 고통이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고난의 날이 그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는 티끌이나 재같이 되었습니다. 이에 욥은 하나님께 직접 말합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20절). 그는 자신의 간구에 무응답으로 대응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을 잔혹하게 다루시고 원수처럼 대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을 모든 사람이 가게 되는 죽음의 길로 몰아가신다고 탄식합니다. 욥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힘겨워할 때는 탄식의 말을 쏟아 놓으며 마음의 고통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욥은 자신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그분은 그에게 어떻게 대응하신다고 하나요?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2. 애가로 변한 욥의 노래 (24~31절)

욥이 보기에 하나님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넘어질 때 돕지 않으십니다. 이는 지난날 욥이 고난당한 자를 위해 울고, 빈궁한 자를 위해 슬퍼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욥은 자신의 기대와 달리 복을 바랐으나 화가 왔고, 빛을 바랐으나 어둠이 임했다고 탄식합니다. 그는 마음(내장)이 끓어오르는 고통을 느낍니다. 육체적 고통을 안고 회중 가운데서 도움을 얻고자 부르짖지만 그는 철저한 소외를 경험합니다. 이제 그의 형제와 친구는 광야와 황무지에서 사는 이리와 타조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모두 슬픔으로 변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악기의 곡조는 슬픔과 통곡인 '애가'입니다.

* 욥은 회중 가운데서 경험한 소외감을 어떻게 표현했나요?(29절) 철저한 소외를 경험한 적이 있나요? 그때 얻은 교훈은 무엇이었나요?

 

오늘의 기도

생명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환난 날에 제가 누구에게 부르짖겠습니까! 통곡을 그치게 하시고 끝없는 기쁨의 찬양을 부르게 하실 주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잔혹하게 내쳐진 것 같은 시련의 광야가 저를 주님께로 가까이 이끄는 축복의 현장임을 알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권자로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소외와 적대

 

[욥기 30장 1절~15절]

1절 -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그들의 아비들은 내가 보기에 내 양떼를 지키는 개 중에도 둘 만하지 못한 자들이니라

2절 - 그들의 기력이 쇠잔하였으니 그들의 손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3절 -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인하여 파리하며 캄캄하고 메마른 땅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4절 -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짠 나물을 꺾으며 대싸리 뿌리로 먹을 거리를 삼느니라

5절 - 무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지름으로 도둑 같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쫓겨나서

6절 - 침침한 골짜기와 흙 구덩이와 바위 굴에서 살며

7절 -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부르짖으며 가시나무 아래에 모여 있느니라

8절 -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들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들이니라

9절 -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10절 -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11절 - 이는 하나님이 내 활시위를 늘어지게 하시고 나를 곤고하게 하심으로 무리가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음이니라

12절 - 그들이 내 오른쪽에서 일어나 내 발에 덫을 놓으며 나를 대적하여 길을 에워싸며

13절 -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14절 - 그들은 성을 파괴하고 그 파괴한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 같이 내게로 달려드니

15절 - 순식간에 공포가 나를 에워싸고 그들이 내 품위를 바람 같이 날려 버리니 나의 구원은 구름 같이 지나가 버렸구나

 

욥은 상황이 바뀌어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들은 비천하고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이름 없는 자의 자식입니다. 그런 사람들조차 욥을 조롱하고 놀리며 미워해 침을 뱉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곤고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욥은 공포에 사로잡히고 그의 품위는 날아가 버립니다.

 

1. 과거와 반대되는 욥의 상황 (1~8절)

예기치 않은 재난은 때로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욥은 과거에 누린 행복과 상반되는 현재의 불행을 묘사합니다. 과거에 그는 '으뜸' 된 자리에 있었지만(29:25), 이제는 하층민 가운데 있습니다. 존경심 넘치는 행동으로 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그때는 욥이 불행한 자들에게 격려의 '웃음'(29:24)을 주었지만,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1절)을 당합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사람은 그보다 젊은 자들이며, 그의 '양 떼를 지키던 개' 중에도 들지 못할 비천한 이들입니다. 질병이나 소유의 상실보다 사람을 더 힘들고 비참하게 하는 것은 사회 속에서 당하는 소외와 멸시입니다. 고난당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게 품어 주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 고난당하는 욥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요? 뜻밖의 재난으로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이에게 나는 어떤 이웃이 되어 줄 수 있나요?

 

2. 사람들의 적대적 행동 (9~15절)

욥은 계층적 하락과 사회적 소외로 깊이 탄식합니다. 이는 그를 향해 침 뱉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17:6). 그러한 상황이 된 이유는 '하나님'이 욥의 활시위(줄)를 느슨하게 하셔서 그로 하여금 고통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1절). 즉 사람들의 적대적 행동이 하나님의 적대적 행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문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인식합니다. 욥을 향한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한 도시를 점령하는 군대와도 같이 공격적입니다. 욥은 공포가 엄습하고, 품위(존엄)와 구원이 사라지는 절망적 상황에 처했습니다(15절). 욥은 악인에게나 임할 두려운 운명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 탄원합니다.

* 욥은 사람들의 적대적 행동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았나요? 내게 발생한 모든 문제는 결국 누구와의 관계에서 풀어 가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본이 되는 삶을 살다가 놀림거리가 된 사람의 울분 섞인 하소연을 들으시는 하나님! 저를 곤고하게 만든 장본인이 하나님 아니시냐고 따져 묻고 싶습니다. 무기력하게 축 늘어져 있는 저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진정성 있는 삶에 존경이 따릅니다

 

[욥기 29장 18절~25절]

18절 -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19절 -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20절 -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21절 -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22절 -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23절 -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24절 -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25절 -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지난날 욥은 자신의 보금자리에 숨을 거두고, 자신의 날은 모래알같이 많을 것이며, 자신의 영광이 날로 새로워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희망을 걸었고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군대를 거느린 왕처럼,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처럼 욥은 으뜸 되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1. 장구한 삶을 소망하는 욥 (18~20절)

유한한 인간은 장구한 삶을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분 말씀대로 사는 이에게 장수를 약속하셨습니다(잠 3:1~2). 욥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렸기에, 마땅히 장수할 것을 소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날을 모래같이 많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하며, 그러한 확신을 다양한 비유로 묘사합니다(19~20절). 그는 자신을 충분한 물이 공급되어 안정되고 풍성한 결실을 내는 식물에 비유합니다. 그의 영광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능력을 나타내는 화살은 그의 손에서 끊이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이렇듯 욥이 누린 영광과 생명력과 강인함은 자신의 날이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는 확신과 소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 욥이 장구한 삶을 확신하고 소망했던 근거는 무엇인가요? 현재 상황만으로 나의 미래를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욥 (21~25절)

삶으로 보여 주는 신앙에는 감동과 존경이 따릅니다. 지난날 욥은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말을 모두가 기대했고, 그가 말할 때는 모두가 잠잠했습니다. 그의 말은 사람들의 마지막 말이 되었고, 이슬과 비처럼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었으며,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신뢰할 대상이 없고 믿음 없는 자들에게 웃음으로 희망을 주었고, 사람들은 그로부터 새로운 용기를 얻었습니다. 욥은 사람들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했고, 많은 사람의 슬픔과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참된 지도자요 권위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삶으로 나타내는 신앙에는 모두가 감동합니다.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최고 권위와 명예를 누리는 삶을 살 것입니다.

* 존경받는 욥의 모습에서 배우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욥의 모습 중에서 내가 본받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많은 이에게 존경과 주목을 받으며 큰 영향을 끼쳤던 욥의 의로운 삶에 제 삶을 비추어 봅니다. 고난이 닥쳐 인생의 영광스러운 날이 끝난 것 같은 순간에도, 택하신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변함없이 선을 행하며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이끌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의와 자비의 삶에 따른 부요함과 명예의 복

 

[욥기 29장 1절~17절]
1절 - 욥이 풍자하여 이르되
2절 -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3절 - 그 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을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다녔느니라
4절 -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5절 - 그 때에는 전능자가 아직도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6절 -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냈으며
7절 -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8절 -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9절 -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10절 -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11절 -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12절 -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13절 -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14절 -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15절 -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16절 -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17절 -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욥은 지난날 하나님이 보호하시던 때를 회상합니다. 그때는 머리에 비치는 하나님의 빛에 힘입어 암흑에서도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부유했고, 젊은이와 노인이 욥에게 존경과 축복을 건넸습니다. 그때는 의를 옷 삼아 입고, 맹인의 눈도 되어 주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어 주었습니다.

 

● 욥이 이전에 누린 번영과 행복 

29~31장은 욥의 마지막 발언입니다. 욥은 이전에 누렸던 번영과 행복을 묘사함으로 마지막 발언을 시작합니다. 29장은 과거의 행복, 30장은 현재의 불행, 31장은 무죄의 맹세에 관해 다룹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시던 때'(2절)가 다시 오기를 바랍니다. 욥은 '그때'는 하나님의 등불이 자신의 머리 위에 비쳤다고 합니다. '등불'(빛, 3절)은 복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그때는 전능자가 그와 함께 계셨고, 그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최고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가 약자에게 베푼 의롭고 자비로운 행동들 때문입니다. 고난당하기 이전에 욥은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습니다(1:3). 그는 하나님이 부요함의 원천이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이 보여 준 의와 자비의 삶은 이 땅에서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비결이 무엇인지 깨우쳐 줍니다.

 

* 지난날 성공과 번영을 누리던 때에 욥의 삶은 어떠했나요? 의와 자비의 실천에 따른 하나님의 복이 내 삶에 어떻게 드러나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전능자께 속한 지혜와 명철

 

[욥기 28장 12절~28절]

12절 -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13절 - 그 길을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사람 사는 땅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14절 -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15절 -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16절 - 오빌의 금이나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17절 -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18절 -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19절 -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

20절 -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고

21절 -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려졌으며

22절 -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 하느니라

23절 -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24절 -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25절 -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26절 -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27절 -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28절 -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땅속 보물과 달리, 지혜와 명철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깊은 물과 바닷속에도 있지 않습니다. 지혜는 순금이나 어떤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이토록 소중한 지혜와 명철이 있는 곳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이고 악을 떠남이 명철입니다.

 

1. 발견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지혜 (12~19절)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귀금속을 찾을 수는 있지만, 지혜와 명철은 찾을 수 없습니다. 28장은 제1연(1~11절)에서 '지혜의 발견'에 대해, 제2연(12~19절)에서 '지혜의 가치'에 대해 다룹니다. 지혜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큽니다. 그것은 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은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이는 향료나 보석의 산지인 '오빌'(16절), 황옥의 산지인 애굽 남부 지역의 '구스'(19절) 등 먼나라들에 대한 언급으로 더욱 강조됩니다. 지혜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어떤 보물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 너머에 있으며 모든 것을 능가하는 지혜의 출처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 욥이 지혜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보물들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지혜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요?

 

2. 하나님만이 지혜를 아신다 (20~28절)

지혜에 관해 욥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지혜와 명철의 근원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지혜와 명철이 이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소유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경험할 뿐입니다. 지혜의 길과 장소를 하나님만 아신다(23절)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삶 자체가 지혜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이는 1장 1절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나 욥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혜의 삶을 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욥의 위대함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지혜로운 삶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지혜와 명철은 결국 어떤 것인가요?(28절) 내가 일평생 지혜의 삶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끝없는 지혜로 천하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어떤 보화로도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지혜가 오직 창조주께 속해 있으며,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악을 떠나는 삶을 살아감으로 세상을 이길 참된 지혜를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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