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인 보화를 드러내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

 

[욥기 28장 1절~11절]

1절 -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2절 -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3절 - 사람은 어둠을 뚫고 모든 것을 끝까지 탐지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광석도 탐지하되

4절 -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

5절 - 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였도다

6절 - 그 돌에는 청옥이 있고 사금도 있으며

7절 -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8절 - 용맹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9절 -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

10절 - 반석에 수로를 터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11절 - 누수를 막아 스며 나가지 않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느니라

 

사람은 은과 금과 철과 동 등을 얻는 방법을 터득해 이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그는 사람이 사는 데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갱도를 깊이 뚫습니다. 각종 보물을 캐내고자 매달려 흔들리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굳은 바위를 뚫고 산을 뒤엎어 보물을 발견하면 그것을 밝은 데로 끌어냅니다.

 

1. 보물을 채굴해 내는 사람들 (1~8절)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28장은 '지혜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지혜와 관련이 깊습니다. 제1연(1~11절)에서는 보물을 채굴하는 과정이 상세히 기술됩니다. 은.금.철.동은 인간 삶에 귀하게 쓰이는 재료들입니다. 사람은 땅속에 있는 광석을 채굴하려고 다양한 기술을 동원합니다. 땅을 파서 갱도를 만들고 절벽 같은 곳에 매달려 귀금속들을 찾아냅니다. 채굴 과정을 보면 얼마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는 '매달려 흔들리느니라'(4절)라는 말에 잘 나타납니다. 이러한 인간의 지혜는 결코 동물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입니다.

* 광석을 채굴하는 일에 나타나는 사람의 지혜와 능력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능력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해야 할까요?

 

2. 인간의 능력을 찬양함 (9~11절)

욥은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합니다. 여기에 묘사된 활동들은 하나님의 활동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9~11절은 히브리어로 주어가 3인칭 남성 단수이기에 활동의 주체가 사람인지 하나님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혼동된 서술은 인간의 활동이 하나님과 견줄 만큼 대단하고 위력적임을 보여 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9절)라는 표현은 욥이 '그가(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9:5)라고 한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산을 뒤엎는 인간의 지혜로운 활동은 하나님 능력에 견줄 만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바위산에 수로를 트거나 누수를 막기도 합니다. 욥은 당시 최고로 발달된 지식을 보여 주는 채굴 기술을 통해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말합니다.

* 욥은 하나님의 활동에 견줄 만한 인간의 큰 능력을 무엇으로 묘사했나요? 내게 주신 능력을 통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귀중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덧입게 하소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무시하지 않고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아직 실현되지 않은 공의의 심판

 

[욥기 27장 13절~23절]

13절 -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14절 -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15절 -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16절 -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17절 -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18절 -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19절 - 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20절 -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21절 - 동풍이 그를 들어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22절 -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23절 -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웃으리라

 

욥은 악인이 받을 대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 자손은 번성하고 많은 재물을 쌓아도 결코 심판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악인은 부자로 누울지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으며, 두려움이 닥치고 폭풍이 쓸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않고 던져 버리시니 사람들이 그를 보며 비웃을 것입니다.

 

1. 악인이 얻을 몫 (13절)

악인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욥은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13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소발의 마지막 언급과 거의 같습니다.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20:29). 히브리어로 두 문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소발은 "하나님으로부터'(from God) 받을 분깃"이라고 하고, 욥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있는 분깃"이라고 합니다. 욥도 악인이 받을 심판을 부인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악인이 받아야 할 분깃과 산업, 곧 심판이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심판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강력하게 질문하고 탄식합니다.

* 악인이 받을 분깃이 '아직'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님 심판 앞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2. 악인의 멸망을 기뻐할 것이다 (14~23절)

욥은 악인이 맞이할 운명을 다양하게 말합니다. 자손이 많은 것은 복 주심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경우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심판으로 모두 죽기에 복이 아닙니다. 악인은 부를 축적하지만 그것도 허사입니다. 그가 가진 부와 재산은 폭풍과 동풍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악인은 결국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이렇듯 악인은 숨겨진 채 있지 않고 사람들이 그의 결말을 보도록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악인의 운명에 대해 욥과 친구들의 입장은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악인의 운명이 '현실'이지만, 욥에게는 아직 '믿음의 내용'에 그친다는 사실입니다.

* 욥이 악인의 심판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공의의 하나님이 행하실 줄 믿기에 내가 믿음으로 선포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며 악한 꾀를 따르려 했던 제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이 땅에서 불의를 볼 때, 하나님이 악인에게 주실 심판의 분깃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악인이 끌어 모아 쌓아 놓은 재물을 결국 의인이 사용하게 하실 반전의 주님을 신뢰하며 기대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맹세로 증언하는 무죄함의 진정성

 

[욥기 27장 1절~12절]
1절 -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절 -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절 -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절 -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절 -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절 -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7절 -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8절 -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9절 -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10절 -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11절 - 하나님의 솜씨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요 전능자에게 있는 것을 내가 숨기지 아니하리라
12절 - 너희가 다 이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무익한 사람이 되었는고

 

욥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결코 불의나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또한 자신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공의를 굳게 잡겠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의 원수가 악인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이 지금은 무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않을 것이다 (1~6절)

결백한 사람은 자신의 진정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풍자'(1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샬'은 '격언' 혹은 '비유'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욥의 발언이 이전과는 다른 성격임을 암시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생명 있는 동안 진실을 말하며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맹세'(2절)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죄를 주장하는 친구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죽기까지 자신의 '온전함'과 '공의'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이제 욥은 친구들에게서 더는 옳은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가 기댈 대상은 하나님 뿐입니다. 욥에게 이러한 '맹세' 행위는 '교만'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진정성을 나타내고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겠다는 의지적 표현입니다.

* 욥이 '맹세'라는 적극적 방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결백함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나요?

 

2. 나의 원수는 악인같이 되고 (7~12절)
욥은 자신의 원수와 자신을 치는 자에 관해 말합니다(7절). 여기서 '원수'는 친구들 혹은 일반적 악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끊으실 때 불경건한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는 곤경 중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다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갑니다. 욥은 친구들을 향해 하나님의 손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과 그에 담긴 전능자의 뜻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보여 주겠다고 합니다(11절). 친구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 같이 보고서도 헛된 것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욥에게 닥친 고난을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보는 것은 일치하지만, 그에 대한 욥과 친구들의 해석은 전혀 다릅니다.

* 욥이 가리키는 '원수'는 누구일까요? 어떤 사안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나요?

 

오늘의 기도

사람의 인정이나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바르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제 영혼을 괴롭게 하시는 분처럼 생각되는 고통의 때에도 '하나님은 제 영혼을 살리시는 전능자'라고 선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

 

[욥기 26장 1절~14절]
1절 -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절 -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4절 -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절 -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절 -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7절 -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절 -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절 -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10절 -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11절 -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2절 -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13절 -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14절 -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배경 이해하기]
26장에는 빌닷의 세 번째 말(25장)에 대한 욥의 반박이 나옵니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각각 3회, 3회, 2회 의견을 펼치는데, 빌닷의 세 번째 말과 이에 대한 욥의 반박을 끝으로 그들의 대화는 종결됩니다. 빌닷은 지난 두 차례의 발언에서 다소 거칠고 공격적으로 욥과 그 자녀들을 정죄했습니다(8, 18장). 욥의 자기변호를 무시하고, 동정심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욥의 반박을 일축하며, 엄격한 인과 논리로 압박했습니다. 매우 교만하고 무정하며 완고한 그의 발언은 25장에서 다소 짧은 발언으로 축소되어 나타납니다. 빌닷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절대로 의로울 수 없다는 엘리바스의 발언(4:17; 15:14)을 반복합니다(25:4). 26장에서 욥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빌닷의 발언을 반박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이 논쟁의 소재가 됩니다. 5~14절의 욥의 발언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자에게서 나오기 어려운 고백이라는 점과 표현적인 유사성으로 인해 본문을 빌닷의 발언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와 섭리의 범위와 대상, 논지의 목적과 방향을 볼 때, 제한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한 빌닷과 달리 욥은 풍성하고 온전한 이해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관찰과 묵상]
1. 빌닷의 세 번째 발언(25장)을 들은 후, 욥은 어떤 말로 반론을 시작했나요?(1~ 4절)
욥은 빌닷에게 잘도 힘없는 자를 도와주고, 기력 없는 팔을 구원하며, 지혜 없는 자를 가르친다고 반어적으로 대답했습니다. 또한 큰 지식을 잘 자랑한다고 빈정거리며 반박했습니다.
1~4절에서 욥은 ‘네가’라는 2인칭 단수 표현을 사용해 빌닷의 마지막 발언을 겨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앞서 빌닷은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을 재강조하면서, 영광스러운 우주적 권능에 비하면 구더기나 벌레와 다름없는 무익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25장). 빌닷은 여전히 욥의 주장이 틀렸음을 지적하며 회개하라는 논지를 유지했지만 그 근거는 점점 더 빈약해지고, 결국 그의 마지막 발언은 엘리바스가 언급한 인과응보의 신학을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그쳤습니다. 26장에서 욥은 이 발언이 옳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그는 먼저 빌닷이 자신의 처지를 공감하지 않았고, 실제적인 도움도 전혀 되지 않았다고 반박합니다. 2절의 ‘도와주다’(히, 아자르)는 하나님이 대적들 앞에서 그분의 백성을 도우시는 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대하 14:11 등). 빌닷의 발언은 언뜻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욥에게 전혀 위로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참된 지혜로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욥은 빌닷의 발언이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 것이라며 빈정거립니다. 더 나아가 4절에서는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인지 물으면서 빌닷의 논지가 자신의 처지와 하나님을 향한 의문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적용과 나눔
말을 할 때 상황에 알맞게 표현하고,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이런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빌닷의 발언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인과 관계적 시각에만 집중한 것입니다. 지금 욥은 고난 앞에서 자신의 무죄와 순전함을 하나님께 증명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닷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할 수 없다고 말하며 욥을 간접적으로 정죄하는 논박을 계속합니다. 더 나아가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라고 표현하며 욥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25:6). 잠언 15장 23절은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말합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옳은 말이 참으로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6:25). 이를 통해 때와 상황에 적절한 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이 경건해 보이는 정죄의 말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고 좋았다고 말씀하신 귀한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이 보여 주신 최고의 계명입니다.

2. 욥은 하나님의 광대하신 섭리를 묘사하면서(7~13절)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식에 관해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14절)
인간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일부만 볼 뿐, 그분의 큰 능력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욥은 빌닷의 지식이 얕음을 지적합니다. 빌닷은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과 높은 곳에서 베푸시는 화평을 강조하고(25:2), 그분의 군대와 광명의 무한한 범위를 묘사하며 하나님의 높으신 지위를 논증했습니다(25:3). 이 지식으로부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의로울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며 욥을 정죄의 틀로 끌어들였습니다(4~6절). 그러나 욥은 한 차원 더 깊은 묘사를 통해 빌닷이 말한 하나님의 차원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욥은 죽은 자의 영과 물에서 사는 생물들과 스올과 멸망마저도 하나님 앞에서 밝히 드러난다고 합니다(5~6절). 그리고 북쪽에 펼쳐진 허공, 땅끝이 매달려 있는 것, 구름으로 물을 싸시는 것, 구름으로 달을 가리시는 것, 수면의 끝에서 빛과 어둠이 끝나는 것, 하나님의 진노에 하늘이 흔들리는 것, 바다가 능력으로 잔잔케 되는 것,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는 것, 하늘을 맑게 하시는 것, 날렵한 뱀도 무찌르시는 것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묘사합니다(7~13절). 욥의 묘사에는 피조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14절의 결론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전지전능하심과 깊은 섭리 앞에서 인간은 결코 인과 응보적인 공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한정 짓고 틀 안에 가두는 친구들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한계가 없음을 깨닫는 욥이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나요? 내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 경륜을 경험한 일을 나누어 보세요.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가르쳐 줍니다. 인과 관계는 하나님의 중요한 공의이기도 합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를 통해 주어진 복과 저주에는 순종 여부에 따라 주어지는 상과 벌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과 관계의 공의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는 분입니다(롬 3:21). 성도의 삶은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시고, 광대하시며, 깊은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만큼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계획이 일그러지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며,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올 때 더 커다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분이라는 점에서 거룩하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욥의 고백은 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정리되고 발전합니다. 고난을 통해 그가 경험하는 하나님은 이성과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주적 권능과 위엄을 보여 주시는 것은 곧 그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 은혜를 의미합니다. 빌닷처럼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나의 좁은 이해 폭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들에게 그분을 아는 빛을 비추시며 신비롭고 깊은 섭리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혼을 대할 때,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사랑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소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거룩하심을 더 알아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탄식의 근거가 된 창조주 하나님의 힘

 

[욥기 26장 1절~14절]
1절 -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 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
3절 -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4절 -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5절 -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6절 -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7절 -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8절 -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9절 -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10절 -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11절 -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12절 -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13절 -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14절 -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욥은 빌닷에게 힘없는 자를 잘도 도와준다고 하면서, 자신이 아는 하나님에 대해 열거합니다. 그분은 북쪽을 허공에 펴시고 땅을 매다시며 물에 싼 구름을 달 위에 펴십니다. 능력으로 하늘과 바다를 주관하시며 지혜로 라합과 뱀을 무찌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1. 네가 힘없는 자를 얼마나 도왔는가 (1~4절)

힘과 지혜가 부족한 이에게 줄 것은 비난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입니다. 욥은 빌닷을 향해 직접적으로 말합니다(2인칭 단수형).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했던 빌닷에게(25장) 욥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힘없는 자'와 '기력 없는 자'를 얼마나 도왔으며, 그러한 자를 얼마나 구원했는가? 그러한 자에게 지혜와 지식을 갖게 하려고 얼마나 힘썼는가? 너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는가?" 욥은 그토록 인간 실존을 잘 아는 빌닷이 연약함과 비천함에 싸여 있는 자를 돕기는커녕 더욱 괴롭게 했음을 깨우칩니다. 인간 실존을 아는 지혜자라면 마땅히 약자를 비난하지 말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 욥은 빌닷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나요? 인간 실존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기억하고 내가 적극적으로 호의를 베풀 대상은 누구인가요?

 

2. 이것들은 주님 일의 단편일 뿐이다 (5~14절)

피조물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부터 피할 수 없습니다.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힘'에 대해 말합니다. 지하 세계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힘(5~6절), 창조 세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힘(7~9절), 원시 시대에 수행된 하나님의 창조 활동(11~13절, 신화적 배경)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바다의) 깊이, (하늘의) 높이, (땅의) 넓이까지 세 차원에서 묘사되고, 혼돈과의 투쟁에서 승리함으로 입증됩니다. '창조자'와 '유지자'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는 '그의 행사의 단편'(14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욥은 은유적 표현인 '우렛소리'(14절)로 하나님 행동의 위협적 측면을 묘사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욥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욥에게 하나님의 힘이라는 주제는 찬양의 동기가 아니라 탄식의 근거입니다.

* 욥은 창조주 하나님의 힘을 어떤 측면에서 이해했나요? 하나님의 행동을 욥과 같이 이해하는 사람에게 어떤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창조주께서 행하신 일의 한 조각조차 다 헤아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하소서. 힘없는 사람을 적절하게 도울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남에게 가르친 훌륭한 내용이 곧 자신의 삶인 것처럼 기만하지 않고, 가르친 것을 실천하기에 힘쓰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높으신 하나님 앞에 한없이 비천한 인생

 

[욥기 25장 1절~6절]
1절 -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절 -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
4절 -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절 -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6절 -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빌닷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롭다 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여자에게서 난 자가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시고 화평을 베푸십니다. 그분이 보시기에는 달도, 별도 빛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1. 높으신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 (1~3절)

빌닷의 마지막 발언은 매우 짧습니다. 이에 반해 욥의 발언은 매우 깁니다(26~31장). 단순하고 짧지만 빌닷의 발언에는 분명한 강조점이 있습니다. 그는 연약하고 비천한 인간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함으로 욥의 주장을 반박하려 합니다. 하나님께는 주권과 위엄이 있으며, 그분은 높은 곳에서 화평을 이루십니다. 그분이 부리시는 군대는 셀 수 없고 그분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빌닷은 하나님이 '힘'과 '존재 방식' 면에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만이 필요할 뿐, 그분을 향한 탄식이나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 빌닷이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만 강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없다 (4~6절)

하나님의 주권과 높으심을 강조한 후 빌닷은 결론을 이끌어 냅니다. 주권과 위엄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나 정결함을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능함과 연약함에 휩싸여 있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보일 태도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눈에는 달빛이나 별빛도 청명하지 않기에 구더기 같은 인생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그 어떤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 빌닷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문제 삼으며 욥의 주장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미 엘리바스도 언급한 것입니다(14:17; 15:14). 친구들의 주장이 처음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이는 이제 친구들의 논거에 더는 새로운 것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 빌닷의 말에 따르면, 높으신 주님 앞에서 인간이 취할 행동은 무엇인가요? 주님 뜻에 순종하면서도 때로 탄식하고 질문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벌레 같은 제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저를 존귀한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위대하신 하나님이 제가 내뱉는 여린 탄식에도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으며 고난의 밤에도 힘을 얻게 하소서. 저 자신도, 다른 지체도 귀히 여기는 마음을 부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공의의 하나님께 묻는 부조리한 현실 

 

[욥기 24장 1절~25절]

1절 -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2절 -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3절 -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4절 -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5절 -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6절 - 밭에서 남의 꼴을 베며 악인이 남겨 둔 포도를 따며

7절 -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8절 -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9절 -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머니의 품에서 빼앗으며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
10절 -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11절 -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12절 -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13절 - 또 광명을 배반하는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그 도리를 알지 못하며 그 길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14절 -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밝을 때에 일어나서 학대 받는 자나 가난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둑 같이 되며
15절 - 간음하는 자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가리며
16절 - 어둠을 틈타 집을 뚫는 자는 낮에는 잠그고 있으므로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17절 -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 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18절 - 그들은 물 위에 빨리 흘러가고 그들의 소유는 세상에서 저주를 받나니 그들이 다시는 포도원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라
19절 - 가뭄과 더위가 눈 녹은 물을 곧 빼앗나니 스올이 범죄자에게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20절 - 모태가 그를 잊어버리고 구더기가 그를 달게 먹을 것이라 그는 다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니 불의가 나무처럼 꺾이리라
21절 -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박대하며 과부를 선대하지 아니하는도다
22절 -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23절 - 하나님은 그에게 평안을 주시며 지탱해 주시나 그들의 길을 살피시도다
24절 - 그들은 잠깐 동안 높아졌다가 천대를 받을 것이며 잘려 모아진 곡식 이삭처럼 되리라
25절 - 가령 그렇지 않을지라도 능히 내 말을 거짓되다고 지적하거나 내 말을 헛되게 만들 자 누구랴

 

욥은 전능자의 날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재산을 빼앗고 고아와 가난한 자를 학대합니다. 그로 인해 상한 자들이 죽어 가며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길을 살피시고 결국 강포한 자들을 능력으로 끌어내실 것입니다.

 

● 악인의 악행, 약자의 고통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다스리심에도 이 세상에는 악이 만연합니다. 욥은 악인이 강성하는 불의한 현실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1, 12절). 힘을 가진 자들의 악행 때문에 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이 삶의 토대를 빼앗깁니다. 약자들에게는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겉옷이 없고, 그들 삶을 지켜 줄 '피난처'가 없습니다. 욥은 불의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현실과 믿음 사이의 '간극'과 '불일치'입니다. 그는 이 '간극'과 '불일치'를 그대로 인식하며 그것이 해소되길 갈망합니다. 그는 악인의 강성함과 약자의 고통을 자신의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침묵에 항변함으로 구원의 때를 기다립니다.

 

* 욥이 말하는 부조리한 현실은 어떠한가요? 부조리한 현실 가운데서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고난 중에 확인되는 순금 같은 신앙과 인격

 

[욥기 23장 1절~17절]
1절 -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3절 -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4절 -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5절 -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6절 -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절 -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8절 -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절 -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절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1절 -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절 -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13절 -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절 -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15절 -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16절 -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17절 -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욥은 하나님 처소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 호소하고 그분이 이르시는 말씀을 깨달을 것이라 합니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단련하신 후에는 자신이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하시며,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1. 내가 그분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1~7절)

욥의 말은 친구들의 말과 같이 교리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발언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서 쏟아 내는 고통의 탄식입니다. 그래서 절제된 언어나 정화된 표현으로 할 수 없고, 그 탄식은 '반항적'입니다(2절; 6:3; 10:1). 욥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희망합니다. '그의 처소'(3절)는 정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보좌를 가리킵니다. 욥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사법적 판결을 받고자 합니다. 이런 바람은 처음이 아닙니다.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줄곧 밝힌 희망사항입니다(13:3; 16:18~21 등). 욥은 하나님과 만난다면 자신의 사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숨김없는 변론 후 무죄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욥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희망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만난다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답변은 무엇인가요?

 

2. 나는 순금처럼 나올 것이다 (8~17절)

무죄함에 대한 욥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길을 정확히 아십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10절)라고 고백합니다.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는,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와 욥 발언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아서 많이 오해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단련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제련하다, 점검하다, 시험하다'로 이해해야 합니다. 욥은 고난이라는 '제련 과정'을 통해 순수성(결백함)을 가늠하시는 하나님의 테스트에서 합격하리라는 확신을 표명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어기지 않았다는 언급을 통해 확인됩니다(11~12절).

* 하나님의 '제련 과정'에서 욥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확증되리라 확신하나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테스트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만이 의롭고 진실한 재판관이시니 다른 곳에서 헤매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하게 하소서. 매 순간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며 삶의 중심에 두고 고난의 파도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 온전히 알아 가길 원합니다. 고난의 여정 너머 영화롭게 해 주실 날들을 기대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진정한 위로가 결여된 교훈

 

[욥기 22장 21절~30절]

21절 -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22절 -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23절 -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면 네가 지음을 받을 것이며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하리라

24절 - 네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라

25절 -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 네게 고귀한 은이 되시리니

26절 -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27절 -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가 갚으리라

28절 -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29절 -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30절 -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고 충고합니다. 또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두며 불의를 멀리하라고 합니다. 욥이 보화를 티끌처럼 여기면 전능자가 보화가 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26절)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복된 삶은 성경이 말하는 일반적 교훈입니다. 엘리바스는 명령조로 욥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말합니다(21절). 그러면 평안과 복이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그분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말은 욥이 하나님의 교훈에서 멀리 떠나 있음을 전제합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주어질 변화와 회복을 열거합니다. 보화나 금을 티끌로 여기고 전능자를 찾으면, 전능자가 보배가 되어 전능자로 인해 기뻐할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이렇듯 엘리바스는 욥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말하지만, 욥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의 유일한 대속자(구속자)가 되심을 믿고 그분이 응답하시기만을 고대했습니다(19:25).

* "전능자가 네 보화가 되시며"(25절)라는 엘리바스의 말은 신앙인의 물질관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화는 무엇인가요?

 

2. 너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27~30절)

엘리바스는 욥을 죄인으로 전제하며 회개를 강조합니다. 욥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는 서원한 바를 갚을 것이라고 합니다. 욥의 회개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을 가능하게 하고, 하나님이 욥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과 용서는 인간의 행동이 아닌 하나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겸손을 권면하며 중보 기도자로서의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엘리바스의 교훈은 멋진 설교는 될 수 있지만, 애매하게 고난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위로와 감동을 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이해한 바에 대한 믿음을 가지되, 더 큰 하나님의 세계에  열려 있는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 엘리바스가 말하는 기도 응답의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요? 기도 응답과 용서가 하나님의 주권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인생의 방향을 돌이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제게 가장 큰 복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한 채 그럴듯한 충고를 앞세우지 않도록 겸손함을 더해 주소서. 무엇보다 고난을 통해 가장 귀한 보배이신 주님만으로 제 삶을 채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확증 편향성에 항상 주의하십시오

 

[욥기 22장 1절~20절]

1절 -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절 -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절 -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절 -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절 -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절 -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절 -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절 -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절 -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절 -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절 -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절 -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절 -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절 -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절 -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절 -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절 -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절 -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절 -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절 -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엘리바스는 스스로 의롭다 하는 욥의 죄악을 나열하며 비난합니다. 그는 욥이 권세를 남용하고 과부와 고아를 학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홍수가 욥을 덮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악인이 전능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형통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말합니다.

 

1. 네 악이 크지 않느냐 (1~11절)

맹신은 입증되지 않은 일을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말하게 합니다. 첫 번째 발언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경건과 신앙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발언에서는 욥의 죄악이 그를 현재 고난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단정합니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5절). 엘리바스는 욥이 저지른 악행을 확신 있게 열거합니다(6~9절). 공동체 안에서 마땅히 돌봐야 할 약자를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입니다(출 22:26~27). 그러나 엘리바스의 진술은 욥의 실제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욥의 현재 상황을 토대로 과거 삶을 멋대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입증되지 않은 추론이자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보고자 하는 '확증 편향'입니다.

* 엘리바스가 욥의 죄악이 끝이 없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것만 보는 경향을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이 높은 데 계시지 않느냐 (12~20절)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이 계신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욥의 말을 인용합니다(13~14절). 욥에 따르면, 하나님은 너무나 높은 곳에 계셔서 구름 아래에 있는 일을 알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왜곡해 악인들의 주장처럼 욥이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부정한 것으로 여깁니다(시 73:11; 사 29:15 등). 여기에는 욥이 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15절).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상대의 말을 왜곡해 인용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도 인정하실 만큼 욥이 '악에서 떠난 자'임을 알지 못합니다.

* 엘리바스가 인용한 욥의 말(13~14절)은 본래 어떤 의미였을까요? 내 편리대로 상대방의 말을 왜곡해서 인용하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오늘의 기도

고난에 처한 다른 사람을 보면서 쉽게 추측하고 정죄하며 수군거렸던 모습이 얼마나 악하고 잔인한지 깨닫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던 좁은 시선을 거두고,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게 하소서. 높이 계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저와 공동체로 변화시켜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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