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알 수 없는 창조 세계의 거대함

 

[욥기 38장 1절~21절]
1절 -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절 -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절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절 -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절 -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절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8절 -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절 -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절 -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절 -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12절 -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13절 - 그것으로 땅 끝을 붙잡고 악한 자들을 그 땅에서 떨쳐 버린 일이 있었느냐
14절 -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 그들은 옷 같이 나타나되
15절 -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절 -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절 -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절 -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절 -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절 - 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절 -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말을 하는 욥에게 질문에 대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그가 어디 있었는지, 바다의 한계를 정한 자가 누군지, 사망의 문을 보았는지, 땅의 너비를 측량할 수 있는지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답하라고 하십니다.

 

1. 하나님의 질문 (1~3절)

하나님은 인간의 탄식과 질문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에서'(신의 현현, 1절)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심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나서는 용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첫 발언은 질문입니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2절). '생각'(히, 에차)은 '계획'을 뜻합니다.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질문에서 하나님은 '무지한 말'(지식 없는 말)로 그분의 계획을 어둡게 하는 사람의 '능력'을 문제 삼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무지가 대립됩니다. 욥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질문하는 자가 아니라 질문당하는 자로 섭니다.

* 하나님이 친히 현현해 말씀하신 것은 욥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고통 가운데서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내게 어떻게 다가오셨나요?

 

2. 창조 세계의 정교함과 거대함 (4~21절)

하나님은 세계 창조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과 진술을 쏟아 놓으십니다. 이 단락에서는 '땅의 기초 놓기와 바다의 경계 정하기'(4~11절), '아침과 아침노을'(12~15절), '창조 세계의 거대함'(16~21절)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의 발언은 3장에서 욥이 탄식하며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4절)라는 질문과 "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21절)라는 반어법적 진술은 욥에게 창조 세계에 관한 지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알게 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수사적인 질문들로 욥의 무능과 무지를 깨우치시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위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 세계 창조와 관련한 하나님의 질문은 욥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을까요? 하나님 말씀 앞에 설때마다 내 지식과 능력의 한계를 고백하나요?

 

오늘의 기도

우주 만물의 생성과 운행에 관한 기초도 온전히 모르면서, 제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무지한 말로 항변한 저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말씀과 만물 속에서 주님의 위대하심을 깊이 묵상하고 깨닫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함께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전능자의 두려운 위엄만 부각하는 반쪽 신앙

 

[욥기 37장 14절~24절]
14절 -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절 -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절 -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절 -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절 -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절 -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절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21절 -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22절 -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절 -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절 -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명령으로 움직이는 번개와 구름의 경이로움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전능자를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의 권능은 크시며, 그분은 공의를 굽히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깨달으라 (14~20절)

인간은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극히 일부만 알 뿐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요청합니다(14절). 그는 '아느냐'와 '할 수 있느냐'라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집니다(15~18절). 이는 욥이 답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엘리후의 진술은 하나님의 발언(38~41장), 곧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무능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내용과 유사하기에 이를 예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엘리후는 무능하고 무지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어떤 말로도 대항할 수 없으며, 섣불리 말하다가 삼킴을 당한다고 경고합니다. 엘리후는 사람이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속성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을 찾아오시고, 만나 주십니다.

* 하나님의 '엄위하심'만을 강조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내게 하나님은 언제든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인가요, 섣불리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인가요?

 

2. 하나님을 경외하라 (21~24절)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 인간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밝은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21절), 북쪽의 빛과 두려운 위엄은 빛의 현현과 함께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엄을(22절) 말해 줍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 앞에서 사람이 취할 태도는 '하나님 경외'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께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경외'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말씀해 주십니다(38:1). 엘리후의 발언은 "하나님의 권능이 크고 정의로우신데,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욥과 같이 고난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답변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엘리후가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랑으로 경외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의 기도

저 높고 넓은 하늘에 구름을 겹겹이 쌓으시는 창조주의 손길이 얼마나 오묘한지요! 구름이 물러나 햇빛이 찬란히 드러나게 하시듯, 주님이 제 삶의 먹구름도 걷어 주실 줄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살아 계신 주님의 존재를 느끼며, 완전한 지식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날씨와 기후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욥기 37장 1절~13절]
1절 -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2절 -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3절 - 그 소리를 천하에 펼치시며 번갯불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고
4절 -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5절 - 하나님은 놀라운 음성을 내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큰 일을 행하시느니라
6절 - 눈을 명하여 땅에 내리라 하시며 적은 비와 큰 비도 내리게 명하시느니라
7절 - 그가 모든 사람의 손에 표를 주시어 모든 사람이 그가 지으신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8절 - 그러나 짐승들은 땅 속에 들어가 그 처소에 머무느니라
9절 -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10절 - 하나님의 입김이 얼음을 얼게 하고 물의 너비를 줄어들게 하느니라
11절 - 또한 그는 구름에 습기를 실으시고 그의 번개로 구름을 흩어지게 하시느니라
12절 - 그는 감싸고 도시며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그는 땅과 육지 표면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명령하시느니라
13절 -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그가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시느니라

 

엘리후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를 보내 위엄 찬 소리를 울리게 하시고, 눈과 비를 명해 땅에 내리게 하십니다. 폭풍우와 북풍을 일게 하시고, 땅에 있는 모든 자에게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위해, 땅을 위해, 긍휼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십니다.

 

● 자연 현상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자연 현상은 하나님의 능력과 뜻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 앞에서 마음이 떨린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음성을 천둥으로 묘사하며, 욥에게 천지를 뒤흔드는 하나님 음성을 잘 들으라고 합니다(2절). 엘리후는 눈과 비가 하나님 명령을 따라 내린다고 합니다(6절). 사람들은 기후와 날씨로 인해 자신이 하는 일에 제한받고, 자신을 다스리시는 더 높은 분이 계심을 깨닫습니다. 엘리후는 기후와 날씨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조종'을 강조합니다(9~13절). 하나님은 때로 징벌을 내리시기 위해, 때로 긍휼하심을 보이시기 위해 이런 일들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유지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심판을 행하시는 권능의 주님입니다. 엘리후는 이러한 하나님 행동을 찬양하지만,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으로 고통당하는 욥의 입장은 다릅니다.

 

* 하나님이 자연 현상을 통해 사람에게 알게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7절) 기후와 날씨가 일상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떠한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교육적 깨달음에 그친 창조주의 위대하심

 

[욥기 36장 16절~33절]

16절 -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17절 -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18절 -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19절 -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20절 -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21절 -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22절 -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23절 -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24절 -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절 -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절 -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절 -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절 -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절 -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절 -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절 -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절 -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절 -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엘리후는 욥이 회개하지 않아 악인의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또한 욥에게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며, 하나님의 권능이 크시기에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안개.구름.우렛소리.번갯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이 높으신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1. 밤을 사모하지 말라 (16~21절)

고난을 죄의 결과로만 본다면, 하나님의 큰 섭리를 볼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훈육을 받아들일 때 회복될 미래에 대해 진술합니다(16절). 그러면서 현재는 욥이 악인에게 임할 심판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뇌물'(18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페르'(대속물)는 '회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33:24).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분노하지 말고 '회개'의 대속물을 통해 회복과 구원을 경험하라고 충고합니다. 또한 '밤'을 사모하지 말라고 합니다(20절). '밤'은 욥이 갈망했던 '죽음'으로, 안식이 아닌 심판이 될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악에 치우치지 말라고 합니다(21절). 엘리후의 발언은 친구들의 발언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욥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엘리후가 생각하는 욥의 현재 모습과 미래 모습은 어떻게 대조되나요? 내가 처한 상황과는 다른 교훈적 충고를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2. 창조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 (22~33절)

엘리후는 창조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묘사합니다. 그는 '놀라움 유발'과 '교육적 깨달음'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22절). 그에게 하나님과 같은 교육자는 없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고 합니다(24절).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함을 강조합니다(27~29절). 그가 보기에 다양한 기후와 날씨는 하나님의 감정과 심판을 표현하는 도구들입니다(30~33절). 이러한 엘리후의 진술은 전통적 견해입니다. 그러나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단비를 내려 주시기도 합니다. 교훈적 의도로 전달하는 엘리후의 진술은 한계가 있습니다.

* 엘리후는 창조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떻게 묘사하나요? 교육적 의도로만 전하는 말에는 어떤 한계가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우연히 일어난 듯한 자연 현상까지도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제 삶 또한 주관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불의가 조금도 없으시며, 하시는 모든 일이 언제나 옳으십니다! 답을 알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맞닥뜨릴 때도 전능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불완전하게 전한 하나님의 통치 방식

 

[욥기 36장 1절~15절]

1절 -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절 -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절 -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절 -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절 -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절 -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절 -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절 -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절 -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절 -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절 -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절 -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절 -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절 -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절 -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엘리후는 욥에게 하는 충고가 모두 하나님을 대신해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고 고난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의인에게는 교훈을 주셔서 죄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따라서 욥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형통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지식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1. 엘리후의 마지막 발언 (1~4절)

36~37장은 엘리후의 마지막 발언입니다. 이전 발언과 달리 여기서는 욥의 말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엘리후가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바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먼 데서 지식을 얻는다고 하는데(3절), 이는 인간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하나님이 계신 곳을 암시합니다. 그는 자신을 지으신 분께 자신의 말로 그분 '의'를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을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로 소개합니다(4절). 이는 엘리후가 자신의 말에 얼마나 큰 확신이 있는지,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지 보여 줍니다. 성도는 확신 있는 말이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살펴야 합니다.

* 엘리후가 자신을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에 오류는 없는지 거듭 살필 부분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통치 방식 (5~15절)

엘리후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자하심과 지혜를 언급한 후, 악인과 의인에 대한 그분의 통치 방식을 말합니다. 그의 논리는 행위 화복 관계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이 악인은 심판하시나 '고난받는 자'(의인)에게는 공의를 베푸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그들을 왕들과 함께 높여 주시며, 고난을 통해 교만을 깨닫게 하시고,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심으로 죄에서 돌이키게 하신다고 합니다. 만일 의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기쁘게 살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칼에 망하고 지식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른말처럼 들리는 이 말들은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탄식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 하나님은 '고난받는 의인'에게 어떻게 행하시나요? 의인인지 악인인지 구별하기보다는 그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며 보듬을 지체는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경건한 사람이라 해도 환난의 줄에 얽히는 고통을 겪을 수 있음을 봅니다. 아프지만, 고난으로 제 영의 귀가 뚫려 하나님의 귀중한 교훈을 듣게 되는 것이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곤고한 날에 겸손과 순종을 배우고 하나님의 건지심을 경험하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높으신 창조주가 긍휼의 구원자심을 잊은 충고

 

[욥기 35장 1절~16절]

1절 -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절 - 그대는 이것을 합당하게 여기느냐 그대는 그대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말이냐

3절 -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4절 - 내가 그대와 및 그대와 함께 있는 그대의 친구들에게 대답하리라

5절 -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

6절 -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7절 -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절 -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9절 -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절 -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절 -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절 -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절 -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절 -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보냐

15절 -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절 -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엘리후는 하나님이 사람의 의로움이나 악행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욥의 악행과 공의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그는 욥이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헛된 것을 듣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지 않으셔서, 욥이 헛되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1. 인간 행동이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 (1~8절)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균형 잡힌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후는 세 번째 발언에서도 욥의 말을 검증합니다. 그가 문제 삼는 욥의 발언은 '자신의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한 것입니다(2절). 엘리후가 언급하는 '하늘'과 '높이 뜬 구름'은 하나님의 높으심과 차별성을 보여 주는 은유입니다(5절). 엘리후는 인간의 범죄나 의로움 모두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죄악이나 의는 인간에게나 영향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8절). 이러한 엘리후의 진술은 인간 삶의 현주소를 깨닫게 하지만, 하나님의 초월성만을 강조하기에 인간 삶을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시지만, 동시에 이 세상 가운데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높으신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에 대한 엘리후의 논리는 어떠한가요? 높으신 하나님은 피조물에 불과한 나를 어떻게 대해 주시나요?

 

2.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 (9~16절)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엘리후는 인간의 부르짖음을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단순히 고통 가운데 울부짖는 것(9절)과 창조주 하나님께 외치는 것(10~11절)입니다. 전자는 자연인의 부르짖음이고 후자는 신앙인의 부르짖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헛된' 부르짖음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는 욥의 탄식을 자연인의 부르짖음으로 보고, 악인의 교만을 보여 준다고 인식합니다. 또 욥이 헛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참아 주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진술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앙 언어가 아니라도 고통으로 울부짖는 외침을 들어 주십니다.

* 엘리후는 욥의 부르짖음을 어떻게 평가했나요? 고통으로 부르짖는 이의 외침을 들을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 의와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지체를 비난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길 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소서.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지체에 대한 정죄의 시선을 거두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함께 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욥기 34장 1절~20절]

1절 -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절 -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절 -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절 -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절 -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절 -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절 -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절 -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절 -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절 -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절 -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절 -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절 -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14절 -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15절 -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16절 -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절 -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18절 -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절 -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20절 -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본문은 엘리후의 4차 변론(32~37장) 가운데 두 번째 변론입니다. 34장 서두에 나오는 ‘말하여 이르되’(1절)의 히브리어 ‘아나’(hn"['')는 어떤 질문이나 말에 ‘대답하다, 응답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욥이 엘리후에게 직접 질문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욥은 엘리후의 말에 어떠한 반론이나 질문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욥이 예기치 못한 극심한 재앙으로 당혹해하며 그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한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인용하며, 마치 욥이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물 마시듯 한다’(7절)면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자처럼 매도합니다. 그러나 욥은 극한의 고난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탄식했을 뿐 하나님을 비방하거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소망을 저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엘리후의 변론이 객관성을 잃은 것은 자기 의에 대한 욥의 주장을 하나님의 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님의 의를 옹호하려 했던 열심히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관찰과 묵상]
1.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라는 말에서 엘리후의 어떤 마음을 엿볼 수 있나요?(4절)
엘리후의 말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기들끼리 욥을 정죄하고 심판하려 하는 교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4절은 엘리후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진위를 구별해야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자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정의’에 해당하는 ‘미쉬파트’(jP''v.mi)의 원형은 ‘샤파트’(jp;v'')로, ‘심판하다, 판결하다’란 뜻입니다. 이는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옳다고 판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법정 용어입니다. 4절의 ‘우리’에 해당하는 무리는 지혜 있는 자들과 지식 있는 자들(2절)을 포함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 자기들끼리 알아보고 판결하려는 교만이 숨겨져 있습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변론이 지혜와 공의에 기초해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정의와 선악에 대한 판결을 온전히 내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했습니다. 결국 엘리후는 자기 관점과 생각에 근거해 욥의 세 친구처럼 욥을 악한 자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비록 친구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자기 의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과오를 범하긴 했지만, 사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의로운 사람입니다(1:8). 정의와 선의 판단 기준은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적용과 나눔
고난 당하는 지체를 내 기준대로 판단하진 않았나요? 지금 내가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울어 주며 기도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요?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선악을 구별합니다. 그리고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장려하고,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는 개념은 인간에게도 선악을 판단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은 선악의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사회의 환경과 문화 등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간의 마음은 부패해 선악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선악을 판단할 진정한 기준은 바로 절대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선악을 함부로 판단하면 욥의 친구들이나 엘리후처럼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을 쉽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판단은 접어 두고 그 사람의 고난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중보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행위를 따라 갚으신다는 엘리후의 주장 이면에는 욥에 대한 어떤 전제가 내포되어 있을까요?(10~12절)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행위를 따라 갚으신다는 엘리후의 주장 이면에는 욥이 악인이기에 고난 받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1~9절이 배심원 역할을 하는 지혜자들에게 욥의 잘못을 확정하는 판결을 요구한다면, 10~20절은 그러한 판결이 불가피함을 논증합니다. 그중에서 10~12절은 선과 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공의의 시행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11절에서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는 사람의 일에 따라 보응하시는 하나님이 각각의 행위대로 얻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량없는 사랑으로 죄인을 용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엘리후의 주장은 하나님의 공의를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해석했다는 문제점을 지닙니다. 12절에서 엘리후는 부정문을 사용해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강조합니다. 원문에는 ‘진실로’ 앞에 의미를 강조하는 ‘실로’가 있습니다. 이중적인 확신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아프 오므남’은 엘리후의 절대적인 확신을 나타냅니다. 또한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에 해당하는 ‘로 야르쉬아’는 강한 부정어 ‘로’(al{)와 미완료 동사가 결합해 영원한 부정을 나타냅니다. 즉, 하나님은 과거에도 악을 행치 아니하셨으며, 미래에도 악을 행치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엘리후가 선과 악에 대해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반복해 말하는 것은 욥이 죄인임을 전제한 것이며, 그의 고난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라는 신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변론은 인과 관계론에만 집착된 잘못된 판단으로 욥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습니다.
적용과 나눔
나의 잘못된 신념을 기준으로 친구를 위로하거나 권면한 적은 없나요? 그때 그 친구에게는 어떤 말이 필요했을까요?
엘리후는 하나님의 절대 공의와 선하심을 변론하며 욥을 위로합니다. 욥의 고난은 그가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받은 고난이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공의의 하나님만 강조하는 엘리후는 욥의 고난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정죄하는 분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 성품의 양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죽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른 것입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도 만족시키고 사랑도 만족시키기 위해 성자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내 인간들을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상징이 됩니다. 엘리후의 변론에는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참된 위로자로 서길 소망합니다.

 

* ‘엘리후’라는 이름에는 ‘그는 나의 하나님’이란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엘리후는 친구 욥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며 변론했지만, 결국 욥을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엘리후의 변론을 통해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지만 정작 친구 욥의 심적 고통은 더 가중되기만 했습니다. 엘리후는 그 이름대로 ‘나의 하나님’에 갇혀 ‘욥의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난 당하는 이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바르게 위로하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율법적 공의가 아닌 사랑에 기초한 공의를 베풀도록 훈련해 이웃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의 정의, 창조주의 절대 주권

 

[욥기 34장 1절~20절]

1절 -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절 -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절 -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절 -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절 -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절 -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절 -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절 -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절 -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절 -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절 -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절 -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절 -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14절 -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15절 -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16절 -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절 -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18절 -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절 -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20절 -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엘리후는 함께 정의와 선을 가려내자고 합니다. '나는 허물이 없지만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는 욥의 말에, 엘리후가 욥을 악인과 한패로 봅니다. 그는 의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시며, 왕이나 고관이라도 지위나 외모로 대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1. 누구 말이 옳은지 검증하자 (1~9절)

당위성에만 매이면 다양한 현실을 바르게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발언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변호합니다. 먼저 그는 욥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욥의 사례를 검증하자고 요청합니다(3~4절; 12:11). 청각과 미각으로 어떤 것을 분별하듯 옳고 그름을 검증해 보자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 자신이 의로움에도 하나님이 그의 의를 부인하셨고, 자신은 허물이 없으나 하나님의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5~6절; 9:15; 27:2 등). 이에 엘리후는 반박하며 욥이 악인과 한패가 되었다고 몰아붙입니다(7~9절). 그러나 이는 현재 결과만으로 추론한 것에 불과합니다. 각 사람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다'는 당위성에만 매여서는 안 됩니다.

* 엘리후가 검증해 가려내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그 사람을 평가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은 정의로 다스리신다 (10~20절)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에 관해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분'이라는 점(11절), 다른 하나는 '창조주'라는 점(13~15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영'과 '목숨'(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모든 육체는 죽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또한 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차별 없이 의로운 판결을 내리십니다(17~19절). 하나님이 그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것은 그들 모두 그분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세상을 완전한 정의로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를 변론하기 위해 어떤 근거를 제시하나요? 창조주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시라는 사실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오늘의 기도

때론 제 인생에 닥친 고난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어떤 고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모든 것을 언제나 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고, 고난의 폭풍 속에서도 기뻐하며 순종하는 저와 가정, 교회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환상과 질병을 통한 경고,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사랑

 

[욥기 33장 14절~33절]

14절 -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절 -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절 -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절 -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절 -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19절 -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절 -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21절 -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절 -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23절 -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24절 -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절 -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26절 -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절 -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28절 -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절 -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절 -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31절 -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절 -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33절 -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엘리후는 하나님이 꿈이나 환상으로 교만을 막으시고, 질병으로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그는 일천 천사 중 하나가 중보자로 나서서 대속물을 얻게 하면,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반복하심은 사람들 영혼을 구덩이에서 건져 생명의 빛을 비추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계시 방식들 (14~22절)

하나님은 그분 뜻을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시지만, 문제는 인간이 관심도 없고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데 있습니다. 꿈을 통해 경고하시는 것도 사람이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15~18절). 극심한 고통과 질병을 허락하심도 회개를 통해 우리를 죽음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방편입니다(19~22절). 환상과 질병 등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구원과 회복을 위한 그분의 사랑입니다. 비록 악인일지라도 그가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 엘리후가 소개한 하나님의 계시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내가 자주 경험하는 하나님의 계시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고난을 통한 회복 (23~33절)

엘리후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도 회복될 수 있는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정직함을 대변해 줄 중보자가 있을 때입니다(23절). 엘리후는 천사 중 하나가 나서서 '대속물'을 얻게 하면 그가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24절). '대속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페르'는 생명을 되찾는 속전, 즉 배상금을 가리킵니다. 이를 '회개'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젊음을 되찾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은혜와 기쁨을 누리고 공의를 회복할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발언은, 고난의 '원인'에 집중하면서 욥의 죄악을 지적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친구들의 발언과 다릅니다. 고난의 '목적'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의 의도(목적)에 강조점을 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하나님이 사람에게 '고난과 회개와 회복'의 과정을 겪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내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모든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고난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더 몸부림치게 하소서. 결국 생명으로 회복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기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평안할 때와 고난당할 때 다르게 만나는 하나님

 

[욥기 33장 1절~13절]

1절 -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절 -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3절 -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4절 -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절 -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절 -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7절 -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절 -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9절 -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절 -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절 -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절 -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절 -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엘리후는 자신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말한다고 합니다. 또한 공히 흙으로 지음받은 자신과 욥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고 합니다. '나는 불의가 없으며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여겨 나를 감시하신다'는 욥의 말에 엘리후는 이의를 제기하며, 사람이 어찌 크신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 욥의 말에 대한 인용과 평가 

이름에는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엘리후는 욥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남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존재로 인정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마음이 정직하며,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영'과 전능자의 '기운'에 비롯되었다고 합니다(3~4절). 하나님의 영은 그에게 지혜의 원천이기도 합니다(32:8). 더 나아가 자신과 욥이 똑같이 '흙'으로 지음받았기에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논쟁할 수 있다고 합니다(6~7절). 엘리후는 무죄를 주장하는 욥의 말을 요약하며 하나님이 인간보다 크시기에 그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9~12절). 하나님의 '비교 불가능성'에 대한 그의 논거는 욥의 친구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안할 때와 극심하게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엘리후는 욥이 의롭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나요? 애매하게 고난당하는 이의 관점에서는 크신 하나님이 어떻게 느껴질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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