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 중심에 세워진 사람 (공재영 목사님)
[창세기 19장 29절]
29절 -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주역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자리는 무시당하는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이 받고 사는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복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리에 웃음을 멈추게 하고 무관심의 자리에서 삶이 외면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혼자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고 관심에서 멀어진 자리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리를 세워주는 기본적인 자리는 관심의 자리입니다. 이 관심의 자리가 열려지게 되는 것은 자신이 받고 사는 작은 은혜의 자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은혜의 자리를 무시하면 자기 인생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본문이 보여주면서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롯이라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입니다. 롯은 평생에 삼촌 아브라함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자기 인생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고 삼촌 아브라함은 삶의 현장에서 주역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아브라함을 일컬어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진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지는 성도의 자리를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세워주시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A).
믿음의 자리에 세워진 존재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자리에 세워진 성도의 자리에는 두 가지 큰 사실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돌아가는 자리를 성도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세워주시는 자리는 단순히 착하게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성도가 세상에서 주역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라(신28:13)」고 하셨습니다. 머리와 꼬리의 자리는 서열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열의 차이는 세상적 가치이며 인간적 계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세상에 세워주시는 가치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을 알게 하여 주역으로 살아가게 하려 하심입니다. 본문은 지금의 사해 바다가 되어버린 소돔과 고모라 성에 유황불을 내려 심판하신 자리에서 신앙인을 통해 열어주는 자리가 무엇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을 엎으실 때에 은밀히 행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신앙인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것을 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에 행하시는 것을 신앙인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성도가 세상에 존재할 가치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가치는 소금의 자리와 빛의 자리입니다. 소금의 자리는 살아가는 자리에 맛을 깨닫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의 자리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사는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시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은 신앙인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알게 하신 것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혼자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사명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명적 존재로 세움을 받았기에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열어가시고 있음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진 사람이라는 것이며 성도의 존재 가치인 것입니다.
2. 찾아야 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열려지는 사람입니다(B).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길18:23)」라고 했습니다. 그리고「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자리가 독생자 예수님을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7)」고 하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 앞을 떠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를 보는 눈이 열려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열어주시고 있는 것이 이 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이 성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세워진 성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명적 존재로 세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명적 존재로 자신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열려진 하나님의 자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보인 것입니다. 이 자리를 성경이 증거하기를「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벧후2:7)」라고 했습니다. 이 롯을 발견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여섯 번이나 간청을 하며 소돔 성 전체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실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 성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자리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디를 보고 있었는가를 설명하기를「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소돔 성을 용서할 수 없는데 그 성안에 롯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소돔 성을 찾았는데 그 성안에 아브라함의 가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잃어버린 자는 온 인류가 되지만 나에게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잃어버린 자는 내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내 가족을 위해 아브라함처럼 찾아야 하는 사람을 보면서 기도할 수 있는 자리에 자신을 세우는 성도가 될 때에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C).
본문에서 보여주는 중심의 자리는「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하신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시는 자리에서 아브라함에게 알리시고 그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성에 들어가셔서 심판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 성 안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의 가족인 롯이었습니다. 심판이 임박했는데도 롯은 그 곳을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롯은 심판이 두려워서 떠나고는 싶은데 자신이 모아놓은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소돔 성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눅17:28). 모든 것을 돈에서 찾으려고만 했던 도시에 롯이 부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도시 사람들 중에 어른으로 인정되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법관의 자리에 세워졌던 것입니다(창19:9).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롯을 향하여 하나님이 재촉하시며 롯의 가족 네 식구의 손을 잡아 끌어내었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를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심판하시려고 소돔 성으로 들어가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렀다(창19:21) 고 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향해 본문에서「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브라함을 떠나지를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은 롯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롯을 하나님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조카를 위해 하나님께 소돔 성의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을 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간청을 하고는 집에 가서 잠을 청했으나 잠을 이루지 못한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자리에 가서 소돔 성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진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이 자리를 성경이 가르쳐 주시기를「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이 자리가 예배하는 성도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리는 하나님 앞에 세워진 삶을 알고 기쁘게 열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삶을 열어가는 것을 성경은 믿음의 실체라고 했습니다(히11:6). 이 믿음의 사람의 소원을 하나님이 귀하게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는 이 자리를 열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지 않게 하는 사람 곧 하나님 앞에 세워진 예배하는 사람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찾아주시는 중심에 세워진 성도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인간의 자리가 세워지는 것은 중심이 견고하게 세워졌을 때에 가능한 일입니다. 성도의 축복은 하나님의 중심에 세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첫째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나의 자리에 찾아야 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세워지는 삶을 기쁘게 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성도를 생각하사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사명적 존재로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를 보고 귀하게 세웁시다 (창 37:1~11) (0) | 2015.01.21 |
---|---|
하나님을 첫자리에! (창 1:1, 출 30:3) (0) | 2015.01.05 |
요셉의 용서와 죽음 (창 50:15~26) (0) | 2014.04.26 |
야곱의 장례 (창 50:4~14) (0) | 2014.04.26 |
야곱의 죽음 (창 49:29~50:3) (0) | 2014.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