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약속

[히브리서 6장 13절~20절]
13절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절 -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절 -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절 -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절 -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절 -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절 -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절 -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공동체를 위한 소명

[히브리서 3장 7절~19절]
7절 -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절 -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절 -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절 -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절 -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절 -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절 -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절 -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절 -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절 -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절 -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절 -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절 -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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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받을 때에

[히브리서 12장 3절~17절]
3절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절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절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절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절 -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절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절 -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절 -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절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절 -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절 -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14절 -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절 -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절 -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절 -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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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는 사랑

[히브리서 12장 3절~13절]
3절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절 -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절 -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절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절 -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절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절 -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절 -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절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12절 -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절 -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중보기도의 능력

[히브리서 13장 17절~25절]
17절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절 -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절 -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20절 -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절 -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22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23절 -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24절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5절 -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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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자

[히브리서 2장 1절~9절]
1절 -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절 -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절 -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절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5절 -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절 -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절 -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절 -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절 -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속죄

[히브리서 9장 11절~15절]
11절 -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절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절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절 -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절 -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히브리서 7장 25절]
25절 -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기사와 이적은 옛날에나 있었던 일이지, 오늘날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은 사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믿음의 여인 캐더린 쿨만(Kathryn Kuhlman)이며 기사와 이적을 행했는데 그녀는 늘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사와 이적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사야 36장 이하를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유다를 포위하고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써보내기를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신들을 믿는다고 하는 나라들을 다 파괴하였다. 이와 같이 너희 나라도 파괴하리라'고 하면서 갖은 모욕과 조롱을 다 퍼부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장군들을 불러 모으고 회의를 한 것도 아니고, 군사력을 증가 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항복하려고 결정하지도 않고 다만 그는 하나님의 집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놓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 편지를 보시옵소서. 이 유다 나라를 무서운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 하나를 보내어 앗수르의 군대 185,000명을 다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조롱하던 산헤립은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칼을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원자탄을 터뜨려도 그만큼은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므로 능히 앗수르 군대를 다 진멸하고,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할 때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시므로 그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어떤 자라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깊은 죄에 빠졌을지라도 하나님은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으니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또한 그의 옛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바울은 완고한 바리새인으로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큰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 사람을 사로잡아서 죄를 깨닫게 하고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가 성도의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깊은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온전히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 1:7절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익두 목사님 같은 분은 예수 믿기 전에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하는 깡패였던지 사람들이 길을 나설 때는 서낭당에 돌을 던지며 '오늘은 제발 김익두를 안만나게 해주세요'라고 빌 정도로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도 하나님은 구원하시어 능력있는 목사, 부흥사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셨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깡패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많은 재산을 가졌으나 마음에 참 평안과 기쁨을 갖지 못한 사람들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전에 갖지 못했던 참 평안과 기쁨을 찾은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죄인을 구원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 전보다 더 위대한 기적을 베풀고 계시는 증거입니다.

2.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서 구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은 뒤에는 전에 좋아하던 것이 미워지고, 전에 미워하던 것이 좋아지게 됩니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은 모든 것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집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서슴치 않고 하던 행동을 구원받은 뒤에는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몇 년 전에 여기서 간증하던 전도사님 한 분도 그전에는 깡패두목 노릇을 하고, 술과 담배로 방탕한 생활을 할 뿐 아니라 말 안듣는 아이를 세워놓고 살점을 베어 냈던 잔인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어 전도사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악하고 죄 많은 사람의 생활도 변화시켜 선하고 착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3.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유 1:24절에 하나님은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하신 자를 영원히 타락하지 않도록 보호하실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오늘 구원하셨다가 내일은 사단이 낚아채 갈 수 있게 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단이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요 10:28,29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도, 어떤 능력도, 그리스도인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면 그리스도와 그 사람을 떼어놓을 자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롬 8: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구원받았다가도 내일 멸망받을 수 있다면 그 종교는 아무런 기쁨이나 평안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사람을 결코 다시 잃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귀가 다시 하나님의 자녀를 빼앗아 갈 수 없게 철저히 보호하고 계십니다.

4. 우리를 기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벧전 1:8,9절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썼습니까? 이 말씀은 한때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슬퍼하며 밤새 울어본 적이 있는 베드로가 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면 마음에 기쁨이 오고 정신적으로 평안해져서 더 건강해집니다. 만일 신자가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아무 재능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기 때문에 필요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겠지만, 위대한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고전 1:27-29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꾸준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5. 우리를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은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가 약속하신 바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장차 너에게서 나온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세상의 메시아(Messiah) 구세주가 나타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100세나 되고 그의 아내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어떻게 아이를 가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적으로 이삭이 태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책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하나하나 이행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 6:39,40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나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생명은 무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역사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부분을 그때에 시작됩니다.
주님의 재림이 늦어진다면 성도들은 죽게 되는데 그러면 우리 몸은 묻히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주와 함께 거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랬다가 주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은 부활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그와 함께 데리고 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과 영혼이 재결합해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문에 오셔서 '내게 나아오는 자는 어떤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가 있고, 변화시킬 수가 있고 죄악에서 지켜줄 수가 있고, 기쁘게 할 수가 있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것은 다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시므로 능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님을 당신의 구주로 확실히 믿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히브리서

믿음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스도는 단번에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셨다. 이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에 의지했던 율법이나 성막이나 제사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믿음의 선진들처럼 오직 믿음으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며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

히브리서 한눈에 보기

본문

서문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믿음으로 살라

맺는말

1:1~3

1:4~2장

3장~4:13

4:14~5:10

5:11~7장

8장

9~10장

11장

12장~13:19

13:20~25

요점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

천사들보다 뛰어남

모세보다 위대함

아론보다

위대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

첫 언약보다 나은

새 언약

성전과

제사의 완성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바라보라

축복과

끝인사

저자

히브리서 저자는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다. 오랫동안 바울을 히브리서 저자로 여겨 왔지만 오늘날에는 히브리서가 바울 서신이 아니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무엇보다 히브리서의 문체는 바울의 편지들과 확연히 다르다. 또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2:3). 그리스도를 직접 대면했다는 사실은 바울에게 매우 중요한 사도직의 징표였으므로, 바울이 저자라면 히브리서 저자처럼 구원 소식을 듣게 된 경로를 애매하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나바나 아볼로를 저자로 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히브리서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기록시기

60년대 후반쯤으로 추정되며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전인 것만은 확실하다. 저자가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히브리서를 기록했다면, 성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사실을 빠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성전은 현재형으로 언급된다.

분류

서신서

목적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즉,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들은 일정 기간 그리스도인으로 지내며 고립되다 보니 유대교로 돌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유대교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 장엄한 성전, 화려한 제의(祭衣)를 입은 제사장이 있다. 그러나 신생 기독교에는 그런 것이 없다. 노예와 이방인, 과부와 고아들이 주요 계층이다. 너무나 볼품없어 보인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완성이다.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더 나은', '우월한' 진리다. 천사들, 선지자들, 아브라함, 멜기세덱, 아론, 모세, 여호수아 등은 자신들보다 우월하신 분,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예수님이 구약의 역사를 완성하신다.


왜 '히브리서'인가?
신약성경의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이 책의 제목은 '히브리 사람들에게'이다. 서신서로서 수신자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히브리 사람들'은 누구인가? 여러 견해가 있지만 로마에 있는 유대인 신자들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히브리 사람들이라고는 했지만 수신자 공동체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박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들 앞에는 기독교 신앙을 철회하고 살아남거나 기독교 신앙을 고수하다 죽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미 통과한 유대교의 법과 체계로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는 율법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그분이 하신 일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시며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인간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는 분이다. 이 예수님의 위로와 공감에 힘입어 박해받는 가운데서도 영적 평안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 (1:1~3)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분이시다.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매우 강력하다. 오래전에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선포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이 아들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다. 이 권세는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는 사실로 확증된다(3절).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110편에 등장하는 보좌 형상을 사용해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한다. 유대교 전승은 가나안 왕들을 평정하고 멜기세덱의 영접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같은 구절을 적용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아버지와 동일한 형상이다. 또 아버지께서 천사들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하신 왕이다.

천사들보다 뛰어남 (1:4~2장)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뛰어나다고 이야기하며 구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한다. 첫째, 천사들도 예수님을 경배한다. 유대인 중에는 천사를 경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저 영일 뿐 경배의 대상은 아니다. 헬라어로 천사는 '전달자'(메신저)를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은 천사를 바람으로, 사역자를 불꽃으로 삼으신다. 시편 원문에는 조금 표현이 다르다.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시 104:4). 히브리서 저자가 어순을 바꾼 데는 아람어 성경의 영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아람어 번역 성경 타르굼은 "천사를 바람처럼 빠르게, 사역자를 불꽃처럼 강하게 하신다"로 옮긴다. 셋째, 하나님은 천사들을 섬기는 영으로 보내셨고, 천사들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 점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생애를 보내실 때 입증되었다(마 4:11). 넷째, 천사도 말씀을 전했지만(2:2)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오심을 선포하는 데 쓰임받았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신 메시아다(시 45편). 놀랍게도 이토록 위대하신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와서 죽으셨다. 죽음의 지배 아래 있는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한 자리에 처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그분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혈과 육에 속한 사람과 같이 되셨기에 전적으로 사람을 이해하시며, 인류를 그의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모세보다 위대함 (3장~4:13)

모세는 유대인의 영웅이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서 약속의 땅까지 인도했다. 무엇보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해 주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충직한 종일 뿐이다. 주인의 상속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위대하신 분이다.

한편 모세를 따라 나와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백성은 많은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하나님을 배신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한 우리에게도 배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늘 조심해야 한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들이 얻게 된 안식이란 사실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진정한 안식, 하나님이 말씀하신 안식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수백 년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자고 초대했다(시 95편).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통해서다. 우리의 참안식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론보다 위대한 대제사장 (4:14~5:10)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죽었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인 지성소는 1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이 택하신 자로, 아론과 그의 집안은 이스라엘을 위해 대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 아론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론 자손이 아닌 유다 자손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시다. 예수님은 제사나 예물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완성하셨다.


멜기세덱의 반차 (5:11~7장)

멜기세덱이 누구며 그의 직분이 어디서 왔는지는 매우 난해한 문제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간곡히 당부한다. 어린아이들이 먹는 이유식처럼 초보적인 지식을 가진 이들은 더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있도록 더 심오한 가르침을 사모하라는 것이다. 땅이 비를 흡수해 채소를 내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면, 그에 합당한 신앙과 행실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성도는 믿음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떠내려갔다. 죄에 빠지지 말고 믿음에 붙어 있으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을 향해 달려 나아가는 것이 안전한 길이다. 이 약속은 예수님 안에 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보다 크신 분이며,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어 놓은 휘장이 둘로 찢어지게 하신 분이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 지성소로 나아가셨고, 이제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심이 강조된다.

멜기세덱에 관해 알려진 바는 별로 없다. 그는 아브라함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다. 사실 그 자리에는 살렘 왕 멜기세덱 외에도 소돔 왕이 나와 있었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에게만 주의를 기울인다(창 4:17~20).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제사장이었지만 레위 지파는 아니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족보도, 시작과 끝도 없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기원도 신적이다. 게다가 율법으로 완성할 수 없었던 대제사장직은 하나님이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첫 언약보다 나은 새 언약 (8장)

예수님은 하늘 성소를 섬기는 대제사장이다. 땅에는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다. 땅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다. 즉, 성전과 제사 제도는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이신 임시적인 '본'일 뿐이다. 예수님은 중보자가 되셔서 더 좋은 약속을 가져오셨다. 이 언약은 끊임없이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을 요구할 뿐이다. 구약시대에 예레미야도 백성의 마음과 정신에 새겨지는 새로운 언약의 도래를 고대했다(렘 31:31~34). 이 새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성전과 제사의 완성 (9~10장)

첫 언약에서 핵심은 성막과 제사다. 언약이 주어졌을 때는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이므로 성전 대신 성막이 세워졌다. 성막 안에는 언약궤, 등잔대, 분향단, 진설병 상 등이 놓였다. 이것들은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되었기에 차선으로 선택된 성령의 방법이었다. 인간은 오직 대제사장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죄를 행결하기 위해 희생 제물을 바쳐야 했다. 역설적으로 희생 제물은 언제나 인간의 죄를 상기시켰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벽한 대제사장으로서 언제나 자유롭게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완벽한 희생 제물이 되셨다.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완벽한 제사로 우리가 영원히 정결해졌다. 성막과 기구들, 제사와 의식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비추는 그림자다. 이제 그림자 대신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모든 죄와 불법이 시험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더 이상 죄를 위해 제사할 필요가 없다.

성도는 이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한다. 이 진리를 알고도 배교한다면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모세의 율법을 범하고도 두세 증인이 있으면 죽을 수 있었는데, 그보다 위대한 언약을 저버린다면 더 큰 형벌이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성도들은 이미 많은 난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고난은 장차 올 더 좋은 것을 위한 약속이다. 여기까지 오고도 돌아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자초하는 일이다. 인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야말로 영원한 구원의 상을 얻는 길이다.


옛 언약 (율법)

새 언약 (복음)

참고 구절

직무 수행자

육체적 혈통(레위 지파)을 따라 세워진 대제사장(아론과 그 자손)으로 자신도 죄인이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워진 대제사장으로 죄가 없는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7:11, 16, 26

장소

사람 손으로 만든 장막

참장막인 하늘 성소

8:2; 9:23~24

제물

짐승의 피(대리적 피)

그리스도 자신의 피

9:12~13

제사의 횟수

1년에 한 번씩, 반복적으로

단 한 번

9:25~26, 28

결과

불완전한 속죄

완전한 속죄

9:26; 10:1~4, 10~18

(두 가지 희생 제사의 비교)


믿음이 필요하다 (11장)

비교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긴 설명이 끝나고(1~10장),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천적인 행동 강령이 제시된다(11~13장).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나열된 구약의 많은 인물은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살다 죽었다. 구약의 모든 영웅은 이를 보여 주기 위한 모델이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같은 영웅들은 물론,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믿음으로 산 위인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했다. 매를 맞고 사슬에 묶여 채찍질을 당했다.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 이들이 위대한 것은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아껴 두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믿음의 영웅들과 하나가 될 것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라 (12장~13:19)

믿음의 영웅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경기장의 관중처럼 우리를 지켜보며, 선 채로 우리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준다. 그들의 응원으로 우리는 이 경주를 마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경주를 잘 마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 과거에 이 경주를 포기한 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친절히 대하고 배려하며, 배우자에 대해 정절을 지키고, 탐심을 버려야 한다. 히브리서 저자의 당부 끝에는 제단에 관한 가르침이 들어 있다(13:10~14). 어쩌면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리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제단에 바친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속죄일에 바친 희생 제물만은 먹을 수 없었다. 이날 바쳐지는 희생 동물은 진 밖에서 완전히 불살랐다. 영문 밖에서 완전히 불살라진 제물처럼 예수님은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셨다. 그 희생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다. 우리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그분이 당한 수치를 나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리스도인은 율법이라는 '영문'밖으로 나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축복과 끝인사 (13:20~25)

히브리서 저자는 이 편지를 간단히 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저자는 사설처럼 디모데가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말하는데, 이 디모데가 바울과 동행한 바로 그 디모데인지는 알 수 없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은 이 편지가 이달리야(이탈리아)로 부치는 것이거나 이달리야에서 부쳐진 것이라는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히브리서
복음의 위대함을 깨우치는 서신
초대교회 성도들은 재림의 지연, 박해와 핍박, 유대교와의 갈등으로 신앙의 위기 가운데 놓여 있었다. 특히 믿음이 어린 신자들은 배교할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새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성을 논증하고, 배교의 위험에 빠져 있던 성도들을 격려한다.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학은 성도들을 믿음 위에 굳건히 세운다.

히브리서 한눈에 보기

본문

1:1~3

1:4~2:18

3:1~5:10

5:11~10:39

11:1~12:13

12:14~13:25

요점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

천사보다

뛰어난 아들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믿음과 인내

거룩한 생활

주제

계시의 우월성과

최종성

예수님을 통한 구원 성취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

저자

알 수 없음 (오리겐 - "본서를 누가 기록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기록시기

AD 96년 이전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가 AD 96년에 이 서신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

  혹은 AD 70년 이전 (히브리서에 성전 파괴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

장르

권면과 경고의 설교문 (논문적 서신)

문체

신약 중 가장 뛰어난 헬라어로 된 변증적 서신


수신자들에 대한 이해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신앙의 회의와 무기력으로 인해 복음을 저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위험 가운데 있었다. 그들이 완고해진 이유는 재림이 지연되고(10:37~39), 예수님에게서 직접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통해 받았다는 데(2:3) 있다. 또한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잘 아는 유대인들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유대교의 압력이나 성전 제도 등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한편 핍박으로 재산을 잃었거나(10:34) 앞으로 받게 될 박해(12:4)에 대한 염려도 믿음을 약화시켰을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인 지 오래되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젖 먹는 어린아이 같았다(5:12~14). 그들은 모임에 참여하지 않고(10:24~25), 환난을 당해 뒤로 물러가기도 하며(10:38), 고난의 이유와 가르침을 잊고 방황했다(12:5~11).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이 믿음과 인내로 승리하도록 격려하고 권면하고자 했다(10:32~39).

하나님 아들의 우월성 (1장)
하나님은 옛 언약 아래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아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말씀을 주셨다. 히브리서 기자가 그리스도와 천사를 비교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우월성을 부각시킨 이유는 성도들 안에 있는 그릇된 가르침 때문이다(13:9). 유대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인간에게 율법을 전하셨다(행 7:53; 갈 3:19; 히 2:2). 이에 유대인들은 천사들에게 중재하는 능력과 구원하는 힘이 있다고 믿고 숭배했다(골 2:18).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에게 최종 계시의 대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와 인격을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 (2장)
하나님의 아들이 혈과 육을 지니시고 천사보다 못한 존재로 나고 죽으셨기 때문에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보다 천사들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낮아지심으로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고 인류를 위한 구원의 주가 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시편 8편을 인용해 증명한다.

모세보다 우월하신 예수님 (3장)
당시 유대교는 천사들뿐 아니라 모세도 구원의 중재자로서 위대한 인물로 여겼다.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그분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을 굳게 잡으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창조자이시며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과 제사를 다시 좇는 것은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불순종한 것과 같은 행위이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권면

권면

경고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3:1)

* 모세 때와 같이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라 (3:7~4:2)

* 피차 권면해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3:13)

*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4:11)

*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4:14)

*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4:16)

*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 (6:1~3)

* 인내하라 (6:9~12)

*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10:22)

* 담대함을 가지고 인내하라 (10:32~39)

*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 (12:1~3)

* 힘을 내고 고침을 받으라 (12:12~13)

*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흘러 떠내려갈 것이다 (2:1~4)

* 불신앙과 불순종은 안식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4:1)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되어 회개할 수 없다 (6:6)

*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은 버림을 당하고 불사르게 되리라 (6:8)

*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돌아서면 더 무겁고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10:26~31)

* 뒤로 물러가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10:38)

*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주를 보지 못하리라 (12:14)

*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12:25)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4장)
신명기와 여호수아에서는 안식에 대한 약속이 가나안 정복 이후에 성취된 것으로 나타난다(신 3:20; 12:9~10; 25:19; 수 21:44). 그러나 가나안 정착은 완전한 안식의 상징일 뿐이다. 다윗 시대 이스라엘 백성 역시 가나안에 정착했으나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다윗은 경고한다(5절; 시 95편). 안식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존재해 왔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확보되어(3절), 장차 올 도성(13:14)에서 완전하게 누리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면서,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라고 권면한다(11~16절). 히브리서에서의 '안식'은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와 요한복음의 '생명'과 같은 개념이다.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5장)
아론과의 비교를 통해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우월성이 증면된다. 예수님이 우월하신 이유는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들과 달리 죄가 없으시고(4:15; 5:3)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5절)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라는 이름 대신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인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 역시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우월성을 증명한다. 그리스도는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7:1)인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른 대제사장이시다(시 110:4), '살렘 왕'은 '평화의 왕'을 의미한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가리켜 '평강의 왕'(사 9:6)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왕이신 동시에 대제사장이시다(5~6절). 이러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은 그분의 순종과 고난을 통해 온전히 갖춰졌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8~9절).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유사점

멜기세덱

예수님

살렘 왕,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7:1)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왕의 왕이시며, 하나님이 맹세로

세우신 대제사장 (참조 5:5~6; 7:20~21)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음 (7:6)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으심 (7:1)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음 (7:3)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참조 계 1:4)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옴 (참조 창 14:18)

자기 몸과 피를 인류의

생명의 떡과 포도주로 주심 (참조 마 26:26~29)


처음처럼 부지런히 신앙생활하라 (6장)

복음을 듣고 믿음의 도를 배운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살전 5:11; 히 3:13; 10:24~25; 벧전 3:15). 그런데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었다(1~2절; 5:12). 당시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믿음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도 있었다(4~6절; 10:29). 이러한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 없으며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나태해진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 소망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끝까지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라고 권면한다(11절).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은 닻처럼 견고하다(19절). 이 소망을 굳건하게 붙잡고 부지런히 신앙생활을 할 때 영적 나태함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


더 좋은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 (7장)

히브리서 기자는 잠시 유보해 놓았던(5:11) 단단한 식물을 성도들에게 먹이기 시작한다.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에 관한 말씀이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110:4절을 인용해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른 대제사장이심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과 사역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과 사역보다 뛰어나며 완전하다. 더 좋은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케 하신다(20~28절).


새 언약에 의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8장)

기독교는 성소에서 정교한 의식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교 배경을 가진 자들은 기독교가 미흡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지상의 제사장과 천상의 제사장을 대조하고, 지상의 장막과 하늘에 있는 원형을 대조함으로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는다. 또한 '더 아름다운 직분',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이라는 점층적 표현을 통해 새 언약을 부각시키고, 예레미야 31:31~34절을 인용해 성경 자체가 율법의 변화를 예견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9장)

구약의 성소와 제사 의식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수단이었으나 섬기는 자의 양심을 온전케 할 수 없었고, 제사를 드린 후에도 여전히 죄의식이 남았다(9절; 10:2). 첫 언약에 의한 성소와 제사 제도는 새 언약을 위한 비유와 상징이며,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까지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과했다(10절).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오직 자기 피로 단번에 하늘 성소로 들어가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12절). 이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양심이 깨끗해져 확신과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 수 있게 되었다(14절; 10:22). 예수님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28절).


예수님의 피를 힘입는 자의 삶 (10장)

옛 언약에 근거한 제사는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효력이 없다. 그러나 새 언약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제사는 완전해 인류의 죄 문제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소망과 사랑으로 살 것을 권면하며, 믿음의 도를 저버리는 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이 지향할 삶의 태도 (10:22~25)

믿음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감

22절

소망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음

23절

사랑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힘씀

24~25절


믿음의 본이 되는 구약의 인물들 (11장)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 때부터 BC 2세기 마카베우스 반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개관하면서 믿음의 인물들에 대해 언급한다.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믿음으로'라는 표현이 일관되게 나오는데, 이는 이 장의 구조를 형성한다. 비록 삶에서 고난과 환난을 겪지만 인내하는 자가 참 믿음의 소유자다. 히브리서 기자의 이러한 믿음관(6절)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신앙관(롬 1:17)과 조금 긴장 관계를 이룬다. 믿음의 본으로 열거된 하나님의 백성은 이생에서 약속의 성취를 보기도 했지만(6:15; 11:11, 33) 그들 중 아무도 새 언약의 복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때, 곧 아들을 통해 말씀해 주신 때에 살고 있는 우리는 큰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성도들을 격려함 (12장)

신앙의 여정에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목표 지점까지 달려가게 하는 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에게서 나온다.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모델이 되지만, 최고의 롤모델은 예수님이시다.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자기 백성이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님의 인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 바라보고 따라야 할 모습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인 진동치 못할 나라를 얻었고, 언젠가 그 나라의 시민권을 충분히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소망이 있으면 낙심하지 않고 감사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다(28절).

12장에 나타난 옛 언약과 새 언약 대조

옛 언약

새 언약

시내 산

시온 산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산

18~19절

하늘의 예루살렘

22절

접근할 수 없는 곳, 무섭고 두려운 곳

20~21절

하나님과 의인들의 영이 있는 곳

23절

땅에서의 경고

25절

하늘로부터의 경고

25절

흔들리는 나라

26절

흔들리지 않는 나라

28절

중재자 모세

21절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24절


새 언약 아래에서의 예배와 삶 (13장)

예수님을 통한 새 언약의 성취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예배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10~14절) '영문 밖'(13절)으로 들어가는 결단이 요구된다. '영문 밖'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는 곳으로 영문 밖에 있다는 것은 이방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신 21:22~23; 갈 3:13).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과 하나 되며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또 장차 올 도성을 소망하며 찬미의 제사와 섬김을 베풀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다(15~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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