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삶,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삶

[고린도전서 11장 17절~26절]
17절 -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절 -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절 -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절 -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절 -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절 -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절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절 -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절 -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절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울은 교회에서 주의 만찬을 먹을 때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책망합니다. 성만찬은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정하신 것입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잔은 새 언약을 세우신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이를 먹고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전해야 합니다.

1. 모임이 유익하지 않은 이유 (17~22절)

성만찬의 원리는 사랑의 나눔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저녁에 모여 '주의 만찬'을 먹으며 교제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부자나 상전들은 일찍 모일 수 있었지만, 가난한 자들은 일을 하느라 일찍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유한 자들은 자기 음식을 가져와 먼저 먹고 취했고, 늦게 온 가난한 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팠습니다. 교회 안에도 가난한 자는 있습니다(신 15:11). '파당이 있어야...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19절) 된다는 것은, 빈부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누가 하나님 뜻대로 사랑을 실천해 하나님께 인정받을 사람인지'가 밝혀질 것이란 뜻입니다.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교회를 업신 여기는 행위입니다.

* 고린도 교회에서는 '주의 만찬'의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었나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없는 모임 혹은 예배를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요?


2. 성만찬의 의미 (23~26절)

믿음은 사랑과 연결되어야 온전해집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는 궁극적 목적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떡을 떼어 주시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24절) 하셨고, 잔을 나눠 주시며 같은 명령을 반복하셨습니다. 성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이것은 마음만의 기억이 아닌, 성도의 삶이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음을 실제로 보고 느끼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선포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즉, 성만찬은 주님이 죽으시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신 사랑을 온 교회가 함께 선포하는 의식입니다. 생명의 떡과 참된 음료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처럼, 서로를 용납하고 배려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 주님이 성만찬을 제정하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성만찬을 예식으로만 끝내지 않고 어떻게 일상에서 배려와 사랑으로 이어 갈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성찬을 통해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모든 성도가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눈 한 형제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분쟁과 파당으로 혼란스러운 교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새로워져, 사랑과 화평의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교회에 덕이 되는 관습을 존중하는 태도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2절 -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절 -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절 -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절 -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절 -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절 -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절 -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절 -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절 -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절 -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절 -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절 -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절 -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절 -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절 -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예배 중에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되고, 여자는 써야 한다고 바울이 말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났고 남자를 위해 지음받았기에 여자는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녀가 동등합니다. 여자의 긴 머리는 자기에게 영광이 되며 가리는 것을 대신합니다.

1. 머리를 가리는 문제 (2~7절)
내 생각과 달라도 덕을 세우는 선택을 하는 것이 성숙함입니다. 바울은 당시 정숙한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고 외출하듯, 교회에서는 여자들에게 머리에 무엇을 쓰도록 권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시 문화적 상황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가리지 않는 여자는 남녀 구별에 개의치 않는다는 느낌을 주었고, 창녀로 오해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머리 가리는 문제를 '영광'(7절)과 연결합니다. 당시 기준으로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됩니다. 그러나 남자의 갈빗대로 지음받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기에 머리를 가림으로써 남자의 권세 아래 있음을 나타냅니다(10절 참조).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교회의 덕이 되는 관습은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요? 오늘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어떤 관습을 지키면 좋을까요?

2. 스스로 판단하라 (8~16절)
창조 기사에 따르면, 시간 순서로나 창조 목적으로나 남자가 우선됩니다(8~9절; 창 2장 참조). 그러나 '주 안'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남녀가 동등합니다. 여자가 남자로부터 지어졌지만, 남자 또한 여자에게서 나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는 누가 우선될 것이 없습니다. 남녀의 존재 이유가 한 분 하나님께로 모아질 뿐입니다. 남자의 긴 머리는 부끄럽고 여자의 긴 머리는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본성적으로 자연스럽기에, 바울은 이를 교회에서 존중하라고 권면합니다. 당시에 여자의 긴 머리는 자기 영광이요, 가리는 것을 대신했습니다. 성도는 스스로 잘 판단해 하나님이 주신 본성을 무시하지 말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편을 선택해야 합니다.
* '주 안'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나요?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존중할 점과 차이를 인정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각자에게 합당한 역할을 주신 하나님!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남녀 사이에 차등이나 우열을 두지 않으신 하나님 뜻을 기억하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불평 없이 각자의 본분에 충실해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신앙의 양심을 따르십시오

[고린도전서 10장 23절~33절]
23절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절 -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절 -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절 -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절 -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절 -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절 -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절 -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절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절 -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절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린도전서 11장 1절]
1절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배경 이해하기]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서, 상업도시로 번영했던 고린도에는 다양한 이방 종교 의식이 유입되었고 성적으로 문란한 우상 숭배 행위가 도시 곳곳에서 행해졌습니다. 바울 일행은 1년 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우상 숭배와 성적인 방종에 젖었습니다. 말씀보다 세상의 문화와 관습에 더 익숙했던 이들에게 거룩한 삶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교회 안의 성도들 간에 자랑과 시기뿐 아니라 음행과 송사의 문제도 있었고 이로 인한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 역시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고린도전서 8장부터 10장에 걸쳐 다룹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가진 자유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역사는 주어진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지만 제대로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해야 하며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신앙의 중요한 원칙을 무엇이라 제시하나요? (23~24절)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거나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성도는 어떤 일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가 있으며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가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닙니다. 믿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복음으로 인해 오늘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죄의 대가를 내가 아닌 주님이 대신 치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모든 사람의 죗값을 치러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며, 예전에 없던 새로운 길입니다. 하지만 대속의 은혜는 믿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된 자에게만 해당합니다. 십자가 사건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지은 죗값을 스스로 치러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도 책임이 따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를 다른 사람의 유익과 덕을 세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사람을 얻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어 살아가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적용과 나눔]
*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 내가 절제하기로 결단해야 할 자유는 무엇인가요?

바울은 스스로 종이 되어 사는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은 구원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내가 잘되는 것보다 사람을 얻고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자유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도 중요합니다. 나의 권리만을 주장할 때 경쟁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연함과 절제가 필요하며,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유연함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절제 역시 원하는 것을 억제하며 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리 위에 견고히 서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태도가 유연함이며, 마음이 나뉘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성도는 자기를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에게 유익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을 향한 길이 되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바울은 시장의 음식을 먹거나 초청받아 식사할 때 어떻게 하라고 하나요? 음식을 대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요?(25~28, 31절)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 또 불신자가 초청한 경우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하면서도, 혹 누가 제물인 것을 알게 하면 그것을 알게 한 자와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합니다.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음식을 예로 들어 자유와 유익이란 원칙을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당시 시장에서 파는 먹거리들은 우상에게 제물로 드렸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음식을 먹는 것이 괜찮은가에 대한 논쟁이 교회 안에 생겼습니다.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말고 먹어도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에 자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시장에 파는 것 가운데 우상에 바쳐진 제물이란 사실이 명백한 것들까지 먹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묻지 말라는 이유가 양심에 거리낌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양심에 거리낌이 생길 수 있는 것은 먹지 않고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 교제를 나누는 것을 금했습니다. 부지중에 율법에서 금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교제와 달리 믿지 않는 자의 초대를 받은 경우 이와 유사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역시 개인의 자유와 양심을 따르면 됩니다. 하지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란 것을 알게 된 경우는 다릅니다. 비록 음식을 취할 자유도 있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해도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음식으로 인해 형제가 실족하게 될 경우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고전 8:13).  
[적용과 나눔]
* 음식을 먹는 문제 이외에도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 애매한 경우는 어떤 것이 있나요?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나누어 보세요.

시대적인 변화와 문화의 다양성으로 인해 성도는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많은 상황 속에 놓이게 됩니다.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서 비롯된 교회 논쟁과 이에 대한 바울의 답변은 이런 다양한 상황을 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지를 잘 보여 줍니다. 먹는 것과 관련해 바울은 음식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거나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죄인이 먹으면 죄를 짓는 데 쓰이고 거룩한 자가 먹으면 거룩하게 쓰입니다. 그래서 음식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이 음식은 거룩한가?’가 아니라 ‘나는 이 음식을 거룩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인가?’입니다. 음식뿐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엇을 먹든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먹어도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누구)을 위해 이 음식을 먹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 형제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지를 생각할 때 우리의 삶은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습니다.


*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되 그 자유를 바르게 행사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 문화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먼저 신앙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자신의 신앙적 양심에 비춰 거리낌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믿음이 약한 지체나 불신자에게 주게 될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지만 형제가 실족하거나 불신자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바울처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절제하고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는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어디에서든 먹고 마시는 일에 덕을 세우게 하시고, 제 삶이 영혼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무엇을 하든지 저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남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절~33절]
23절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절 -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절 -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절 -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절 -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절 -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절 -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절 -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절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절 -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절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린도전서 11장 1절]
1절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모든 것이 가하나 모두 덕을 세우는 일은 아니니 누구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땅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이기에 어떤 음식이든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지만, 우상의 제물임을 알게 되면 남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 영광과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1. 모든 것이 가하나 (10:23~30절)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가능함'보다 '남에게 유익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8장부터 이어진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와 관련된 논쟁'에 바울이 종지부를 찍습니다. 만물이 주님의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까지 포함해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용되고 가능하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유익하고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남의 양심에 거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25~29절). 무슨 음식이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먹는 것은 비난받을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먹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의 자유를, 남을 위해 제한하는 '절제'야말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3 참조).
*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성도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요? 나 중심에서 다른 사람 중심으로 바꾸어야 할 생각 혹은 일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10:31~11:1절)
'남을 위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과 연결됩니다. 바울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한 것은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했고, 그중 가장 큰 것은 영혼 구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만 기쁘게 하려는 것은 아첨이요 간사함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그들의 유익을 구하며 그들을 기쁘게 함은, 궁극적으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 오늘 무엇을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가? 다른 사람의 유익과 구원을 위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저에게 괜찮은 것이라 해도 남에게 유익하지 못하고 공동체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소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지 먼저 점검하며, 작은 일에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고자 애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과의 하나 됨을 지키는 길

[고린도전서 10장 14절~22절]
14절 -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절 -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절 -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절 -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절 -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절 -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절 -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절 -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절 -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믿는 자들이 잔과 떡을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것이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결국 귀신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거나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4~18절)
성경은 우리에게 살 길을 깨우쳐 줍니다. 앞서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우상 숭배는 죽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14절). 여기서 '피하라'는 것은 '도망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우상 숭배하는 일', 특히 우상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성찬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어 그분의 죽음에 동참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화목제를 드린 후 그 제물을 함께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기쁨을 나누며 교제했듯이, 성찬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과 교제'를 뜻합니다. 성도는 주님과 관계를 깨뜨리는 일을 피하고, 그런 자리에서 즉시 도망쳐 나와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성찬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존재로서 내가 마땅히 피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2. 겸할 수 없는 일 (19~22절)
우상 자체는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적 실체가 아닙니다. 우상의 제물도 주술적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헛된 우상을 숭배하고 의지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이방인이 우상에게 제사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리에 참여하는 것은 결국 그 배후에 있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요 악한 영들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리 권유할지라도, 주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자리에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마 6:24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왜 합당하지 않나요? 주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과 기도가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와 연합해 한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문화와 가치에 마음이 빼앗겨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깨닫고, 주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경 속 본보기에서 교훈을 받으십시오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1절 -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절 -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절 -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절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절 -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절 -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절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절 -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절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절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절 -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절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절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조상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도 멸망받은 일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나 음행, 주를 시험하거나 원망한 일로 멸망한 것은 우리를 깨우치는 본보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당할 때 피할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1. 본보기가 되어 (1~6절)
성경 속 이스라엘 역사는 오늘 우리의 본보기입니다. 바울은 신약 백성에게 익숙한 세례와 성찬의 용어로 구약 백성 이스라엘의 신령한 체험들을 설명하면서, 다른 시대 백성이 동일하게 그리스도를 경험한 것을 알려 줍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연결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일이 고린도 성도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부터 신령한 물을 마신 것처럼, 고린도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하게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셔서 이스라엘 백성 중 다수가 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은 고린도 성도들도 악을 즐기면 그들처럼 된다는 경고입니다.
* 바울이 구약 백성 이스라엘의 체험들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경에 좋은 본보기보다 나쁜 본보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7~11절)
광야 이스라엘 백성은 따르지 말아야 할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우상 숭배, 음행, 시험, 원망에 빠진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말세를 만난 성도들을 깨우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의 본보기를 주목하지 않고 홀로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우리는 온전히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 가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소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허락하시고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던 광야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나는 물, 놋 뱀 등으로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시험이 올 때 낙심해 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할 길을 구합니다.
*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후손에게 좋은 본이 되려면 신앙과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시험 앞에서 하나님을 배반했던 자들의 실패를 거울삼기 원합니다. 언제라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저이기에, 오직 신령한 반석이신 주님만을 생명 줄로 여기고 붙들겠습니다. 피할 길을 내시는 주님을 신뢰함으로 홍해 같은 세상에 두려움 없이 발을 내딛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복음을 위해 종 된 자유인, 영원한 상을 받는 승리자

[고린도전서 9장 19절~27절]
19절 -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절 -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절 -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절 -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절 -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절 -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절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절 -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절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유인인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때로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율법 없는 자처럼, 약한 자처럼 된 것은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썩지 않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경주자처럼 달리며,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킵니다.

1.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 (19~23절)
복음 사역자는 사람의 몸을 입고 종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빌 2:5~8 참조).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고 영적 자유를 얻은 바울이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기로 결정한 것은 '영혼 구원'을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과 약한 자 앞에서 각각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행한 것은,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아무 주관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며 상대방과 같은 입장이 되어 겸손히 복음을 전하는 자신을 통해, 누구라도 거부감 없이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든 종이 되는 것을 굴욕으로 여기지 않고, 신분과 지위와 인종 등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 바울은 어떤 방식과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나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나의 목적은 무엇이며, 바울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2.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24~27절)
성도는 삶의 방향과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달리기 선수가 상을 받으려고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듯, 바울도 하나님께 받을 상과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24~25절; 빌 3:14 참조) 복음 사역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또한 헛주먹질을 하는 권투 선수처럼 되지 않고 목표를 이루도록 제대로 싸우고자 했습니다. 모든 것을 절제하며 열심히 싸우고 달려온 복음 사역자라도 방향과 목적을 잃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27절 참조).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상을 받을 때까지, 푯대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몸을 복종시키며 복음 사역의 경주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 바울이 운동선수의 비유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복음 사역을 위해 내 육체를 복종시켜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성령께 도움을 구하세요.

오늘의 기도
복음이 필요한 누구에게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학식이나 재물이 없는 이도 거부감 없이 주님께 나아올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히 주님을 소개하게 하소서. 썩지 않을 영원한 것을 위해 오늘도 후회 없이 달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값없이 받은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헌신의 삶

[고린도전서 9장 13절~18절]
13절 -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절 -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절 -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절 -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절 -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절 -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성전 일을 하는 이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라고 주님도 명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이 받은 사명이요 부득불 할 일이기에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 자신의 상이라고 고백합니다.

● 부득불 할 일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섬기고 위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위하십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의 생계 문제에 관해 구약과 신약 모두 동일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들이 섬기는 일을 통해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방식은 주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에게 사도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 것은 그런 권리를 행사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복음을 위해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결의를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요, '거부할 수 없는 사명'입니다. 물질적 보상이 없어도 복음을 자랑으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전하는 순수한 마음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모두 버리고 주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삶 자체가 '상'입니다.

*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상으로 여긴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권리 포기는 참된 헌신의 증거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절~12절]
1절 -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절 -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절 -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절 -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절 -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절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절 -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절 -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절 -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절 -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절 -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절 -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존재는 바울이 주 안에서 사역한 결과로, 그가 사도임을 확증해 줍니다. 바울이 다른 사도들처럼 결혼하거나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나 그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1. 바울의 사도 권한 (1~7절)
복음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아는 성도는 이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한 이들을 귀히 여기며 지지하고 후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하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그가 사도로서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듯합니다. 바울은 직접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주님께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행 9장 참조). 특히 고린도 성도들의 영적 거듭남과 성장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수고로 세워진 고린도 교회에서 재정 지원을 받을 만한 사도로서 자격과 권리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복음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한 이들이 생계 걱정 없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 바울은 사도로서 어떤 권리가 있었나요? 우리 공동체와 나는 복음 사역자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요?

2. 복음을 위한 권리 포기 (8~12절)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천국 복음을 전하고 땅의 것으로 보상받음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닙니다. 일꾼이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교회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며 필요를 채웠습니다(4:11~12 참조). 누군가에게 후원을 받으면 그것에 매여 복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하게 되거나, 자신이 재정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복음까지 부정적으로 여기고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된다면 자신의 정당한 권리마저 기꺼이 포기하는 사역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거침없이 확장될 것입니다.
* 바울이 사도의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가 내려놓아야 할 권리와 참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물질적.정서적.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고, 위로와 은혜를 부어 주소서. 제 안위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우선순위에 놓고,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제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지식보다 중요한 사랑

[고린도전서 8장 1절~13절]
1절 -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절 -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절 -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절 -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절 -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절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절 -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절 -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절 -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절 -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절 -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절 -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절 -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우상 제물을 먹는 일에 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만물이 존재하며,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지식이 모든 이에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상 제물을 먹는 자유가 믿음 약한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1. 교만을 낳는 지식, 덕을 세우는 사랑 (1~8절)
사랑 없는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닙니다. 우상 숭배가 만연한 고린도에서는 신전 제사에 사용된 제물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어떤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그 제물을 자유롭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영적 교만과 우월감에서 나온 행동이라면 옳지 않습니다. 한편 과거에 우상을 신으로 섬겼던 때처럼 제물을 음식으로만 여기지 못하는 성도도 있었습니다. 올바른 신앙적 지식이 없는 이들은 우상의 제물에 주술적 힘이 있어 그 제물을 먹는 자신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음식 자체가 우리를 영적으로 깨끗하게 하거나 더럽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비본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지식에 '사랑'을 더함으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 바울은 지식과 사랑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나요? 내가 신앙적 지식이 있다는 우월감에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형제를 실족시키지 말라 (9~13절)
모든 성도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알면, 믿음이 강한 자든 약한 자든 한 사람도 넘어져 멸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게 됩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신전 제사 후 연회에 사람들을 초청해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구원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지만, 이로 인해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에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가 우상의 신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물을 먹는 성도를 따라 하다가 양심이 상하고 죄에 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자신의 신앙적 자유가 믿음이 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사랑입니다.
* 성도가 우상의 신전에서 거리낌 없이 제물을 먹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나요? 믿음이 약한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내가 주의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교만하게 행동하며 이것이 자유라고 생각한 어리석음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실족하거나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이들을 정죄하는 대신 사랑으로 품고 배려하며, 덕을 세우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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