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쁨이 되도록 합당한 삶을 설계하십시오

[고린도전서 7장 25절~40절]
25절 -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절 -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절 -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절 -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절 -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절 -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절 -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절 -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절 -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절 -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절 -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절 -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절 -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절 -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절 -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절-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바울은 임박한 환난을 고려해 처녀에게 독신을 권합니다. 결혼은 죄짓는 것이 아니지만 육신에 고난이 따릅니다. 이 세상 것은 지나가기에, 성도는 그것에 매이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겨야 합니다. 바울은 과부가 뜻대로 결혼할 수 있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복되다 합니다.

1. 임박한 환난과 결혼에 관해 (25~35절)
영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환난의 때가 곧 올 것을 내다보고 결혼에 대해 권면합니다. 세상의 외형을 따라 결혼하고, 돈 벌고, 소비하는 것에만 정신을 파는 것은 영원한 가치를 아는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삶이 아닙니다. 이 세상 외형은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다'(32~34절)라는 말의 원어에는 '마음이 나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세상 일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갈라지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독신자든 기혼자든 이치에 합하게 살 기위해서는 주님을 섬기는 것을 우선시하고, 영원한 것과 사라질 것을 분별해 일상을 정돈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 시대에 승리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 환난이 임박한 때에 바울이 권면하는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세상 일에 대한 염려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약혼자와 과부에 대한 권면 (36~40절)
결혼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혼 자체가 아닌 결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결혼과 관련해 사람이 '더 잘하는' 선택과 '더욱 복이 있는' 선택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그는 처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며(38절), 과부가 재혼하지 않는 것이 더 복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40절). 이는 당시 임박한 환난을 고려해 고린도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전한 영적 아버지의 조언입니다. 결혼은 죄짓는 것이 아니며, 독신에는 은사가 따라야 합니다. 각자에게 어떤 부르심이 있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일에 열정을 쏟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 됩니다.
* 바울이 '더 잘하는 것'과 '더 복이 있는 것'을 말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결혼과 삶의 궁극적 목적을 생각할 때, 내 일상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사랑하고 섬기기를 소원한 사도 바울의 열정을 닮기 원합니다. 종말의 때에 육이 아닌 영으로 살게 하시고, 모든 선택의 문제에서 '더 잘하는 것'과 '더 복이 있는 일'을 택하도록 저를 주님의 말씀으로 늘 인도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르신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장 17절~24절]
17절 -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절 -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절 -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절 -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절 -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절 -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절 -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절 -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바울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명합니다. 할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신분이 어떠하든 성도는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그리스도의 종이니,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해야 합니다.

1. 부르신 그 자리에서 (17~20절)
하나님은 다양한 신분과 배경에 속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종이나 자유인,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하나님이 나눠 주신 분량대로 각기 부르심을 받습니다. 신분이나 배경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현재 처한 상황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모습으로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을 바꾸시기 위함이 아니라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즉, 신앙은 인생의 도약이 아니라 인격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야 합니다. 현재 처한 상황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의 장소입니다.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각자의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것일까요?

2. 주님과 함께 거하라 (21~24절)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신분으로 종인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고 그날로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종일지라도 자신을 그리스도께 속한 자유인으로 여깁니다. 반대로 자유인으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아도 주님의 눈으로 보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를 염려하고 탓하면 안 됩니다. 더 나은 형편으로 바꿀 기회를 얻는다면 이용하되 우선은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로 부르셨기에 그 현실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책임을 수행하는 그 자리에 함께 거하십니다.
* 종이든 자유인이든 주 안에서 비교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제게 허락하신 자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명의 자리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더 나아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부르심대로 사명에 충실하게 하소서.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 된 자로서의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결혼의 목적은 거룩함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16절]
1절 -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절 -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절 -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절 -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절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절 -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절 -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절 -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절 -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절 -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절 -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절 -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절 -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절 -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절 -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배경 이해하기]
바울은 7장에서 결혼 문제에 대해 언급합니다. 고린도는 그리스인, 로마인을 비롯해 잡다한 민족이 거주해 혼합주의 경향이 짙었고, 풍요로웠지만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인 같다’라는 말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함을 의미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이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을 용납했습니다(5:1). 또 고린도 교회는 헬라 철학과 이원론의 영향으로 쾌락주의자들은 음행까지 허용하는 반면, 금욕주의자들은 결혼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우리 몸이 음란을 위해 있지 않고, 주님이 값 주고 사신 성령의 전임을 강조합니다(6:13, 19~20). 7장에서는 결혼, 독신, 이혼, 불신자와의 결혼, 과부의 재혼 등에 관한 성도들의 고민에 답변합니다.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 신앙 문제로 갈등할 때 이혼을 해도 괜찮은가? 재혼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등 결혼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에는 영적인 삶을 위해 육적인 삶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독신의 유익과 함께 결혼의 유익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선택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결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결혼보다 독신을 권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7:26), ‘그때가 단축하여진 고로’(7:29)라는 표현을 볼 때 바울은 당시 상황을 고려해 종말론적 관점에서 결혼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바울이 독신의 영적 유익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1~2, 7~9절)

결혼이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좇는 자들에게 음행을 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결혼은 사람의 불완전함을 보신 하나님이 이를 보완하기 만드신 제도입니다. 남편과 아내 된 자들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채워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갈등은 나를 주장하고 나의 필요만을 고집할 때 생깁니다. 서로의 필요를 볼 수 있을 때 결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결혼을 권면한 표면적인 이유는 육신의 필요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권면은 근본적으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영적인 거룩함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부부가 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 가야 할 목표입니다. 영적인 삶은 육신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몸의 거룩함을 통해 영적인 거룩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바울은 결혼을 통해 몸을 사용하는 목적과 몸의 주인이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몸의 거룩함이 순종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하며 순종할 때 육신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인 거룩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행복과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함을 통해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결혼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부부로서 서로의 의무에 충실할 때 하나님이 결혼을 통해 허락하신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 결혼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축복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러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결혼은 현실이다」(두란노)란 책에서 저자 마크 드리스콜 목사는 많은 사람이 결혼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갈등과 상처로 힘들어한다고 지적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많은 부부가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합니다. 결혼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마크 드리스콜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처럼 아내를 사랑하는 성경적 남편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존경심과 순종의 미덕을 갖춘 아내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합니다. 존경과 사랑은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가 되어 가는 시간을 통해 결혼의 현실이 고통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만난 배우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허락된 축복과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결혼한 사람, 믿지 않는 배우자를 둔 사람,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의 이혼 요구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대처하라고 권면하나요?(10~15절)
바울은 결혼한 자들에게 갈라서지 말라고 명합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를 둔 자들도 이혼하지 말고 배우자를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라고 합니다. 혹 믿지 않는 자가 갈라서기를 원하면 구애받을 필요가 없으나 화평 중에 부르셨음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혼에 대해 질문한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음행을 제외한 어떤 이유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없으며, 이혼은 곧 불순종입니다. 사람들은 이혼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결국 자신의 완악함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이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혼해야 할 이유보다 결혼의 약속을 힘써 지킬 이유가 더 많음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혼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것보다 결혼을 통해 누려야 할 것이 더 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이혼 문제는 신앙 때문에 갈등하는 성도들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도 신앙과 종교 문제로 갈등을 겪는 부부가 많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믿음이 아니라 결혼이 먼저였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먼저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된 것과 믿지 않는 가운데 결혼에 이르게 된 것 모두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믿게 된 자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필요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갈등을 대하는 성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적용과 나눔]
* 부부간의 갈등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이에게 어떻게 권면해야 할까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갈등과 극복의 과정을 나누어 보세요.

많은 가정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 문제를 성경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이혼을 고려하지만 이혼이 초래할 결과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것만큼 이혼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은 이혼이 현재의 갈등과 다툼에서 완전한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혼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자녀에게까지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책임 있게 판단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성경이 유일한 이혼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배우자의 부정입니다. 이는 결혼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전제한 것입니다. 서로 간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배려할 때 가정은 축복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 성도는 육신의 욕망이 아닌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결혼이 거룩함을 실천하는 현장이 될 수 있도록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위해 헌신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서로에게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갈등과 다툼은 자기 의를 주장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부부는 자신의 필요와 유익을 주장하기보다 서로의 믿음을 깨뜨리지 않도록 자신의 정결과 책임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가정이든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고 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은 갈등과 위기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먼저 생각할 때, 가정은 구원과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저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를 주소서.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거룩한 가정을 이루어 가기에 힘쓰게 하소서. 갈등과 다툼이 화목으로 바뀌어 참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가정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결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연합

[고린도전서 7장 1절~16절]
1절 -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절 -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절 -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절 -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절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절 -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절 -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절 -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절 -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절 -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절 -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절 -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절 -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절 -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절 -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바울은 음행의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결혼하되,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의무를 다하라고 합니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대로 결혼할 수도, 혼자 지낼 수도 있으나 결혼한 자들은 갈라서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 배우자라 할지라도 그의 구원과 자녀를 위해, 할 수 있거든 갈라서지 말아야 합니다.

1. 결혼과 부부 관계 (1~7절)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고린도 사회는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정신은 완전하지만, 물질은 불완전하다는 이원론이 지배했습니다. 금욕주의자들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데 반해, 쾌락주의자들은 음행까지 허용했습니다. 바울은 당시 이런 분위기를 고려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지만, 독신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주시는 은사이기에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라고 권합니다. 음행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죄입니다(6:9~10). 서로에게 자기 몸을 맡기고, 배우자의 몸을 존중하는 것이 부부의 의무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정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엡 5:22~25 참조).
* 결혼과 독신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정욕을 채우는 결혼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알아 가는 결혼은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요?

2. 결혼에 대한 권면 (8~16절)
세상은 남녀의 사랑을 결혼의 전부로 여기지만, 성경은 남녀의 거룩한 연합을 중시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인 부부가 갈라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 '주의 명령'이라고 못 박습니다(마 19:3~6 참조). 부부가 모두 불신자였다가 한쪽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에는 '거룩함'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한쪽이 믿고, 복음 전도로 다른 한쪽도 믿어 부부가 거룩한 연합을 이루면 자녀까지 믿음으로 하나 됩니다. 결혼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만일 믿지 않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할 때는 구애될 것 없이 응할 수도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화평의 소명을 맡기신 줄 알고 이혼보다 배우자의 구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거룩한 연합입니다.

* 믿음의 문제와 관련해 이혼이 허락되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요? 배우자 등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화평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의 가치가 아닌 교회의 비밀인 성경의 가치로 결혼을 이해하게 하소서. 거룩한 연합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제가 그리스도 사랑의 반사체가 되어 불신 가족을(배우자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며 주님 영광의 통로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20절]
12절 -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절 -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절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절 -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절 -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절 -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절 -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절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절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우리 몸이 음란을 위해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해 계신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에 창녀와 합하면 안 됩니다.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값으로 산 성령의 전이므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혜 (12~17절)
불의한 세상과 하나님 나라는 생활 양식이 다릅니다. 불의한 세상은 몸이 중심이고, 몸에 모든 가치를 둡니다. 몸에 쾌락을 준다면 음행도 피하지 않고 즐깁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중심에 계십니다. 땅에서 가장 실제적인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령의 전으로 삼고 통치하십니다. 주님과 우리는 연합된 '한 몸'이고,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로서 주님과 우리는 한 인격체를 이룹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가해도 우리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다 해서 음행하면 음란한 세력에 얽매이는 인생이 됩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자기 몸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자유로운 길입니다.
* 창녀와 합하는 음행이 몸에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세상 사람들은 다 하는 일이지만, 주님을 위해서 내가 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8~20절)
우리 몸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값 주고 사셨기에 '하나님의 소유'며, 하나님은 그런 우리 몸 안에 성령으로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의 꿈과 목표가 아닌 주님의 뜻과 교회의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다른 죄들과 달리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음행하는 자는 주님과의 연합체가 아니라 창녀와의 연합체가 됩니다. 두 주인(머리)을 섬길 수 없기에 성도는 음행과 우상 숭배(10:14)를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것인 우리 몸은 단지 썩어 없어질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처소요, 부활의 때에 다시 살아나 영원히 주님과 함께할 몸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자기 몸에 대해 알아야 할 근본 지식은 무엇인가요? 내 몸이 주님을 위한 것임을 인정한다면 삶의 목적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제 몸이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 됨의 비밀을 알아 가게 하소서. 제 몸이 거룩한 성전임을 순간순간 기억하며, 절제와 선행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내가 손해를 감수하면 모두가 화평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절~11절]
1절 -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절 -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절 -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절 -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절 -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절 -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절 -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절 -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절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절 -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절 -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성도 간 다툼을 세상 법정에 고발한 일을 책망합니다. 세상을 판단할 성도가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서로 고발한 것은 잘못이며,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편이 낫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불의한 자였다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분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한 형제자매입니다. 성경은 형제간 일을 불의한 세상 재판에 맡기는 것을 엄히 경계합니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편이 낫다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불거진 불의가 세상의 불의한 자들의 판단에 맡겨지는 것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형제간에 피차 고발하는 것은 재판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다 같이 패하는 길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들추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사람이 빼앗는 것입니다. 이런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전에 불의를 저질렀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성도라면 마땅히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형제를 위해 속아 주고 불의를 당해도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을 닮아 가는 길입니다.

* 성도 간 분쟁으로 세상 법정에 선 교회를 세상은 어떻게 볼까요? 불의와 속임을 당하는 편을 선택하기 위해 내가 포기할 것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교회의 생명력은 순전함과 진실함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1절~13절]
1절 -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절 -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절 -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절 -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절 -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절 -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절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절 -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절 -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절 -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절 -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절 -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절 -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의 음행과 그것을 용납한 것에 대해 책망합니다. 음행하는 자를 내쫓아야 하는 것은 그의 영이 주의 날에 구원받게 하려 함이고, 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음행, 탐욕, 우상 숭배 등의 죄를 짓는 사람들은 교회가 판단하고 내쫓아야 합니다.

1. 누룩을 내버리라 (1~8절)
교회의 생명력은 순전함과 진실함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인륜을 저버린 음행이 행해졌음에도 음행한 자를 내쫓지 않고 오히려 관대히 대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반죽 덩어리가 작은 누룩을 용납하면 그 누룩이 온 덩어리를 통제합니다. 교회가 교만해지면 악을 내부적으로 용납하고도 교회를 순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의 조치는 단호합니다. 사탄에게 속한 음란한 육신을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새 덩어리가 되려면 반드시 누룩을 내버려야 합니다. 음행한 자를 교회에 놔두면 음행을 하고도 구원받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는 것이 완전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교회 밖에서 그의 영을 깨워 완전한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 음행한 사람을 고린도 교회가 내쫓지 않은 것을 자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백한 죄인데도 공동체에서 용납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교회 안의 형제는 너희가 판단하라 (9~13절)

교회는 세상에 대해 제사장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교회가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의 '판단'은 앞서 4장의 판단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여기서는 교만하게 세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4:3~5)이 아니라 말씀에 비추어 드러나는 악한 행위를 판단하는 것으로, 특히 교회 사람들에게 한정됩니다. 세상은 성도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대상입니다. 성도가 교회 안에서 악한 영향을 끼치는 묵은 누룩을 판단해 교회 밖으로 내버리지 않으면, 교회가 묵은 누룩에 영향을 받아 부푼 세상과 똑같이 됩니다. 성도의 의무는 교회 안의 악행을 판단하는 것이고, 그 악으로부터 교회를 순결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 바울 사도는 교회 형제의 부정행위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명하나요? 세상을 판단하면서 스스로의 거룩함을 지키는 일에는 소홀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의 기도

교회 안에 음란한 세상 문화를 용납하고, 육체를 따라 행하는 죄악을 가볍게 여겨 묵인했던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영적 민감함과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의 교회를 순결하게 지켜 내도록 모두 마음을 합하게 하소서. 누룩처럼 작은 악도 용납하지 않고 내치는 용기를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닌 능력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9절~21절]
9절 -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절 -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절 -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절 -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절 -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14절 -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절 -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절 -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절 -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절 -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절 -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절 -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바울은 사도인 자신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겪고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복음으로써 자녀를 낳은 아버지가 되었기에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합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며, 능력은 없고 말뿐인 고린도 성도들의 교만을 책망합니다.

1. 복음으로 이끈 영적 아버지 (9~16절)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 참스승의 모습입니다. 성경의 스승은 영적 아버지로서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고, 복음으로써 사람을 낳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삶의 본을 보이는 것이 자녀 양육의 핵심이듯, 영적 아버지는 제자가 본받아야 할 삶을 앞서 삽니다. 한 사람의 영적 아버지는 일만 스승보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적 아버지의 삶은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게 되어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육체에 온갖 고통을 받아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는 삶의 본입니다. 모욕을 축복으로 바꾸고, 박해와 비방에도 선한 마음으로 인내하는 삶의 본입니다. 이는 제자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참된 본을 보이고 권하는 것이 영적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 바울이 겪은 고난과 영적 아버지로서의 본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나요? 내가 복음으로 낳고 양육하는 지체는 누구이며, 나는 어떠한 본을 보이고 있나요?

2. 능력으로 알려지는 하나님 나라 (17~21절)
영적 아버지의 역할은 교만과 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교만해진 고린도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어 자기가 현재 각처 각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일깨웁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면서, 이 복음을 접한 사람은 자기와 같이 삶이 바뀐다는 것을 몸소 본을 보여 가르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갈 기회가 생기면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한 것은 복음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닌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한 아름다운 삶의 변화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 고린도 교회의 교만한 자들에게 바울은 무엇이라 경고하나요? 교만한 말이 아닌 능력 있는 삶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따르면서 받는 핍박과 비난을 기쁘게 감당하기 원합니다. 고난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갖게 하시고, 스승보다 아버지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게 하소서. 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가운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삶의 현장이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비밀을 맡은 주의 일꾼

[고린도전서 4장 1절~8절]
1절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절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절 -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절 -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절 -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절 -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절 -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배경 이해하기]
고린도전서는 주후 55년경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 약 3년간 머무는 동안,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으로 고린도시에 1년 반 정도 머무를 때 세운 교회입니다. 당시 고린도는 지중해의 해상 교통 요지로서 로마 제국 시대에 상업이 번창했고 많은 외부인이 출입하면서 이방의 음란한 종교 문화가 성행했습니다. 이런 음행 문화에 익숙해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문화 윤리적 갈등이 커져 교회가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전에 고린도교회에 음행하는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음행에 이어 이번에는 계파 간의 갈등까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로 분열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고린도 교회에 드리워진 음행과 분열의 심각한 문제를 바로잡고자 고린도전서를 보내 해결 방법을 제시합니다. 1~4장까지의 내용은 계파 갈등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3장에서는 여러 가지 부족함이 없는 은사를 받고도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탄식하며, 4장에서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의 일꾼’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은 자’로 표현합니다. ‘일꾼’과 ‘맡은 자’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관찰과 묵상]
1.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나요?(1절)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인가요?(2절)

바울은 마땅히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스며든 음행과 분열의 문제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 문제는 매우 심각했고, 그는 고린도 교회에 한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서신을 통해 바울은 문제의 원인이 성도들의 정체성이 정립되지 못한 데 있음을 말합니다. 그는 사역자들의 정체성을 ‘일꾼’과 ‘맡은 자’라는 동의어로 반복하며 강조합니다. 그만큼 사역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의 자세로 사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이 그분의 일꾼들에게 미리 알려 주신 구원 계획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이 그를 신뢰해 비밀을 맡기셨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고 맡은 소임을 따라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양심은 좋은 것이지만 양심마저도 절대적인 판단 기준은 되지 못합니다. 이 모든 일을 판단하실 이는 주인 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하여 부름 받은 일꾼은 자기 생각이나 판단이 아닌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 하나님이 올해 내게 맡기신 사역은 무엇인가요? 각자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어떤 열매를 기대하며 섬길지 나누어 보세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가 기억해야 할 정체성과 관련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성도는 하나님께 부름 받고 사명을 받은 일꾼입니다. 여기서 일꾼이란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된 신령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위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일이 아닌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비밀은 측근에게,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믿어 주시고 신뢰하는 하나님의 측근입니다. 하나님은 비밀, 즉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신령하고 귀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가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매 맺는 사역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소통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말씀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2. 바울이 고린도 교회 문제들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하는 성도들의 그릇된 모습은 무엇인가요?(6~7절)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들어 본을 보인 대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가르침과는 다르게 고린도 성도들이 그릇되게 행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즉 그들의 모습이 거룩한 말씀을 넘어서는 인간의 교만과 자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일꾼은 성실하게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조심해야 할 큰 적은 ‘교만’입니다. 교만이란 일반적으로 잘난 체하며 방자하게 뽐내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우선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이런 교만한 마음이 고린도 교회 분열의 중심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몸부림치는 사탄으로부터 온 마음입니다. 따라서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영적 교만과 자기 우월감이 성도들 간에 분열을 조장하는 주요 원인임을 상기시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있었던 영적 교만은 자신이 추종하는 지도자가 최고임을 스스럼없이 주장하게 했습니다. 교만의 결과 고린도 교회는 네 개의 분파로 분열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본받아 영적 교만에서 벗어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일꾼에게 사역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사역할 때 교만과 허영심의 유혹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성실한 섬김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 주님의 일을 할 때, 특히 겸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항상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나누어 보세요.

바울은 7절에서 세 번 질문합니다. “누가 너희를 구별하였는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어찌하여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는가?” 이는 당시 바울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고린도 교회 문제들의 중심에는 교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라고 말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게 합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 정도인 13권을 집필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데, 그는 말년에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또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라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은 날마다 죽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경외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겸손함으로 섬겼던 자신을 본받으라고 합니다(고전 4:16).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며, 주의 말씀 안에서 겸손히 행할 때 교회 안에 참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런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합니다.


*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은 충성되고 겸손해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 반면에 일꾼의 가장 큰 적은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자기를 비워 종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자는 오직 말씀 안에서 겸손히 생각하고 주의 깊게 판단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그 안에서 사역할 때 교만과 허영심의 유혹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충성되게 섬기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바울처럼 겸손히 오직 주의 말씀 안에서, 말씀을 의지해,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일꾼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전하는 사명을 소중히 여기고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말씀 안에서 행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의 일꾼

[고린도전서 4장 1절~8절]
1절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절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절 -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절 -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절 -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절 -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절 -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 것은 주님만이 심판자이시며 그때 각 사람에게 칭찬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교만하게 말씀 밖으로 넘어가 스스로 왕 노릇 하는 것을 책망합니다.

1. 그리스도 일꾼의 자세 (1~5절)
사람 중심의 교회가 되면 서로를 판단하는 일이 넘쳐 납니다. 판단받을 때는 오해가 동반되거나 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 있기에 감정이 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꾼 된 자로서 감정으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사정을 알아줄 이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자기중심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결국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고 그 마음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내 생각대로 대응하면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실 때까지 남의 판단에 반응하거나 자책하는 일을 접어 두고 오직 주님의 판단을 기다리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습니다.
* 바울은 사람들에게 판단받을 때 어떻게 반응했나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말로 판단받을 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6~8절)
기록된 말씀 밖에서는 하나님 뜻이 아닌 교만이 인생 통치 원리가 됩니다. 말씀을 벗어나면 하나님이 남달리 구별해 주신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잊고 세상이 부여한 위상으로 자기를 자랑합니다. 또한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지 않은 것처럼 자기 소유를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임에도 하나님 뜻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교만해져서 다른 성도를 대적합니다. 교회와 무관하게 혼자 배부르고 혼자 풍성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왕국의 왕이 되고 맙니다. 기록된 말씀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인 되신 삶을 사는 동시에, 은혜로 주신 것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비난과 편견의 물결이 밀려올 때 자책의 파도에 휩쓸리는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제 모든 정황을 아시는 주님께 판단을 맡기고,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게 하소서. 하나님 없이 교만하게 왕 노릇 하지 않도록 항상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즐거이 묵상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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