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떤 일을 이루고나면 자칫 자만심에 빠져 해이해지기 쉽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런 생각에 앞서 이일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며 겸손할줄 알아야 한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포로귀환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자만에 빠지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에스라가 새로 등장하여 율법을 낭독하고 해석해 주었으며, 여호수아의 입성 이후 거의 지켜지지 않았던 초막절을 새로이 지키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는 언약의 갱신과 초막절 준수, 백성들의 회개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율법의 낭독과 해석(느8:1-18)
느헤미야는 가시적인 회복의 하나인 성벽을 재건하고 난 후에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영적 회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취한 행동은 무엇일까? 이 당시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이스라엘의 절기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그리고 이 절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율법과 낭독의 초막절
성벽이 중건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헌신하기 위해 수문앞 광장에 모였다. 이때 에스라가 등장하여 율법책을 낭독하였고, 레위인들은 그 곁에서 율법을 해석해 주었다(느8:4, 7). 에스라와 레위인들을 통해 율법이 선포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참의미를 깨달음과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죄악을 인식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는 초막절이 시작되는 때이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절제시키고 여호와의 성일을 기쁨으로 지키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와 율법을 배우던 중 초막절의 중요한 의미를 깨닫고, 온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공포하였다(느8:14, 15).
초막절이 주는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절기를 지킴으로 출애굽과 바벨론 귀환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감사하는데 있다.

2) 언약관계의 회복
제2의 출애굽이라 할수 있는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 율법 낭독을 통해 언약 관계를 회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느헤미야의 의도라고 할수 있다. 이런 언약 관계의 회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율법으로 각성시켜 순종케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부흥에 핵심이 된다. 그리고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케 되었다.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킴으로 출애굽과 바벨론 귀환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로 인하여 감격하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는 현재의 구원 역사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구원의 소망을 갖게하는 것이다(슥14:16-19).

3) 말씀에 근거한 신앙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에스라를 통해서 선포될때 일어서서(느8:5)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 깨달음을 얻고 동시에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참회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말씀을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기쁨을 가져야할 것이며, 또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말씀을 듣고 나의 잘못과 죄를 깨닫고 참회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율법이 낭독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키며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며 예배를 통하여 나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날마다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 언약 갱신(느9:1-10:39)
초막절의 절기를 지키고 난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모여 금식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상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의 회복을 강조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이 회개 운동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결단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왔다는 의미로 율법의 준수를 다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언약을 다짐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키고 난후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께 신앙을 고백하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헌신했다. 이 거국적인 회개 운동은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온 민족이 언약하고 백성의 대표자들이 인을 침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백성들은 문서에 서명하지 않고 구두로 맹세함으로써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안식일 준수, 성전세 납부, 십일조 등 일련의 성전 예배의 기능을 돕는 율법 준수를 다짐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결단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 문화와 이방 종교의 물결속에 동화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이런 언약의 갱신과 율법 준수의 다짐은 이스라엘의 순수성 고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또한 재정착(느11장)이라는 과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신앙적 결단이 필요했다.

2) 신앙적 결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의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고향으로 귀환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 앞에 무릎을 끓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결단은 그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오늘날 비기독교적 문화와 사회속에서 살고있는 성도들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순간마다 결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구약의 절기는 대개가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제정되어졌다. 따라서 각 절기들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절기가 처음 지정되었을 당시의 역사적 사건이 잊혀져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잘 지키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 나타나는 초막절의 회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에스라가 주도하는 율법의 낭독과 언약의 갱신은 타락하고 신앙적으로 해이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와 새로운 신앙적 결단을 가져오게 하였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해석될때만이 우리는 바른 신앙을 회복할 수 있고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고대 술관원의 임무와 대우

고대 근동의 왕궁에는 왕이 식사할때 주류를 시중드는 술맡은 관원이 있었다. 그런데 궁중 안에는 왕에 대한 음모와 책략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일쑤였기 때문에 왕의 술시중을 드는 술관원을 세우는데 매우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왕에 의해 간택된 술관원은 왕이 드는 잔에 독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했고, 때로는 술을 왕에게 드리기 전에 먼저 조금 마셔보아야 했다. 따라서 왕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고 또 상당한 권력도 부여받았다. 예를들어 창세기 40장에 나오는 애굽의 술맡은 관원장도 애굽의 상당한 고관이었다. 때문에 요셉은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기를 그에게 당부했던 것이다. 또한 앗수르왕 산헤립의 부하 랍사게(왕하18:17)도 사실상 술맡은 관원장이었다. 그것은 랍사게라는 이름이 앗수르어로 술맡은 관원장을 가리키는 직함인 사실에서 알수 있다. 고대의 술관원이란 오늘날 경호와 비서 업무를 총괄하는 고위직과 유사하다고 볼수 있다.

2. 포로귀환 시대의 대제사장의 사회적 역할

1) 사회적 역할
포로귀환이 시작될 무렵부터 대제사장의 사회적 역할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1차 포로귀환 당시(B. C. 537) 스룹바벨과 함께 대제사장 예수아가 백성들의 최고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스2:1; 느7:6). 또한 스룹바벨 성전 재건 당대의 역사를 기록한 학개서를 보면 B. C. 520년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역할이 얼마나 컸던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학1:1,12; 학2:2, 4). 그리고 2차 포로귀환 당시 (B.C. 458)의 지도자였던 에스라도 역시 대제사장이었다. 그는 당시 1차 포로귀환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의 이방인의 통혼 문제 등 기타 많은 문제의 개혁과 율법 교육을 통한 백성들의 신앙 교육, 즉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마음 자세 및 생활 교육으로 인하여 종교 부흥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데 3차 포로귀환 당시에는 (B. C. 444)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으로서 그의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역할은 다소 적어진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며, 대제사장의 사회적 지위 자체가 격하된 것은 아니다. 느헤미야 당시 대제사장은 엘리아십이었다(느3:1). 그는 성벽 재건 당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 선봉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느헤미야가 약 1년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있는 동안에 암몬 지방 총독 도비야와 친분을 맺고 그에게 성전 뜰의 한방을 내어주는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정적인 측면에서 그것도 결국은 암몬 지방 총독 도비야와 제휴함으로써 예루살렘 거주민의 안정을 도모코자 했던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느13:4). 이처럼 포로귀환 당시의 제사장은 사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그리고 백성들의 모범자로서 그 역할이 지대하였음을 알수 있다.

2) 제사장의 지위 격상 이유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는 '대제사장'이 종교 지도자로서뿐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측면에서 볼때 대제사장의 지위는 왕정 시대와 그 이전보다 포로귀환 시대 이후에 훨씬 더 격상되었다. 그 이유는 왕정 시대에는 왕이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였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상대적으로 왕의 자문 역할이나 성전과 관련된 국가 행상에만 그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왕정 시대에 있어서도 국가의 비상시에는 대제사장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예를들면 아도니야의 반란과 솔로몬 즉위 초기 제사장들의 세력 형성(왕상1:7; 왕상2:27-35) 그리고 분열왕국 시대 남왕국 요아스 즉위 직전에 악녀 아달랴를 몰아내고 요아스로 다윗 왕권을 계승케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활약 등을 들수 있다(왕하 11장).
반면에 포로귀환 시대 이후에는 왕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포로귀환 시대 이후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국가의 형태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대국의 속국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만을 중심으로 한 종교 생활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대제사장의 지위와 역할은 격상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3. 포로귀환의 영적 의미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느헤미야의 귀환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흐름이 원만한 방향으로 고정될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만약 그의 귀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백성들의 약탈로 인해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성전까지도 파괴될 수 있을지 모르는 심각한 영적 혼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방해자들과 너무 심하게 파괴된 성벽으로 인해 성벽 재건이 어려웠으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 하심을 믿음으로 성벽 재건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힘과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때로는 한명의 위대한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과 미래에 대한 바른 예견을 가진 사람에 의해 역사는 개혁되고 진보를 이루어 간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나 영국의 웨슬리(Wesley) 그리고 만유인력의 뉴튼(Newton)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느헤미야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의 술맡은 관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처참한 현실을 듣고 이스라엘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제3차 귀환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뒤이어 성벽재건 공사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제3차 귀환과 성벽 재건을 통해 그것의 의미와 구속사적 의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1.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과 성벽재건 준비(느1, 2장)
예루살렘 성이 파괴된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동생 하나니에게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어떤 태도를 취하였나? 당시 느헤미야는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성벽 재건의 허락을 누구에게 받았는가? 그리고 성벽 재건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였는가?

1) 느헤미야의 기도
당시 바사 제국의 술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이 파괴된후 약 131년간 그대로 방치된 것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고통을 염려하며 4개월동안 금식 기도하였다(느2:4) 이런 느헤미야의 기도는 에스라 9장의 기도와 다니엘의 기도 방식(단9:4-19)과 거의 일치한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철저한 언약 사상에 근거한 기도로써 자신에 대한 포기와 전적인 헌신이 내포된 기도였다. 이러한 헌식적인 기도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바사왕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하셨다. 아닥사스다 왕은 성벽 재건을 위한 물질적, 행정적, 군사적 도움까지 주어 느헤미야의 귀환을 도와주었다. 성벽을 비밀리에 탐사한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느2:10) 같은 방해자들과 성의 파괴 정도가 극심한 것에 대해 근심하고 염려하였으나 믿음으로 성벽 재건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소하여 성벽 재건을 시작하였다.

2) 민족을 위한 기도
느헤미야는 자신의 고국인 이스라엘이 위기를 당했을때 자신 혼자만의 부귀와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우리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나 어려움을 당했을때 내게 직접적인 피해나 어려움이 닥쳐오지 않더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대하7:14).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나 교회 봉사를 하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비난이나 핍박을 받을때도 있다. 그럴때 이방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을 시작했던 느헤미야처럼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행4:23).

2. 성벽 재건(느3-7장)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성벽 재건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방해 공작으로 인하여 잠시 주춤하였다. 그 당시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또한 방해 가운데 공사를 어떻게 추진했으며, 그런 가운데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고는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그리고 성벽 재건이 몇일만에 완공되었으며, 그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1) 성벽 재건이 계획대로 진행됨
성벽 재건은 온 백성들이 진심을 다해 동참하였다. 그러나 산발랏과 도비야가 사마리아 군대를 충동질하여 무력으로 방해 공작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담대히 공사를 추진해 나갔다. 공사가 어느정도 진척이 되자 방해자들은 다시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역군들을 나누어 노역과 파수를 번갈아시키며 성벽 공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대외적인 문제보다 식량난으로 인한 내부의 불평이 일어나고 부자들을 원망하게 되자 느헤미야는 총회를 소집하여 이자 취수를 금하였다. 아울러 느헤미야 스스로도 총독으로서 청렴결백한 삶을 살았음을 보여주었다. 느헤미야에 대한 암살 계획, 중상 모략(느6:5-9) 등의 계교에도 불구하고 성벽재건 공사를 시작한지 52일만에 성벽은 완공되었다.

2) 헌신을 통한 성벽 재건
성벽을 재건하는데 온 백성들은 힘을 모아 공사를 하였다. 하나님은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나타내신다(롬 16장).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할 것이다. 또한 복음 전파와 봉사를 위해 다른 형제 자매들이 헌신적으로 일할때 방관하지 말고 같이 힘을 모아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롬8:28). 성벽 재건 과정에서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자칫 오랜 기간의 방해 활동은 느헤미야를 쓰러지게 할 수도 있었으나 느헤미야는 끝까지 기도하며 믿음과 담대함 그리고 정확한 영적 분별력으로 마침내 승리하였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우리를 집요하게 방해한다. 그러나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철저한 확신과 믿음을 갖는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3) 성벽 재건이 갖는 의미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갖는 의미는 실로 크다. 성벽 재건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보호하심을 다시 한번 느낀 사건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징계하시고(왕하25:1-21) 다시 회복시켜주신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성벽 재건은 죄로 인하여 죽을수 밖에 없는 우리의 생명이(롬3:23) 예수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 은혜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예표해 준다.

지도자가 자신의 만족과 안일만 추구한다면 그 나라와 그 단체는 장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기 힘들다. 그러나 지도자가 자신의 행복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는 단체나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며 염려하고 앞날을 준비한다면 그 단체나 나라에서는 많은 가능성을 찾을수 있다. 느헤미야의 금식 기도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귀환을 이루었고, 더나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이루었다. 느헤미야의 탁월한 지도자적 능력과 이스라엘에 대한 영적 준비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출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역사에 대한 세속사적인 관점일 뿐이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구속과 은총과 죄로 인해 죽을수 밖에 없는 인간의 회복을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 제3차 귀환과 성벽 재건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느헤미야서의 특징

에스라가 역대기의 속편인 것처럼 느헤미야서도 에스라의 속편이다. 그 세권 모두는 아마도 같은 저자에 의해 쓰여졌던 것 같으며, 하나의 연속적인 연대사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역대기가 앞부분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책은 느헤미야에 대한 영웅적인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에스라의 인도로 제2진이 도착한지 13년 만인 B.C. 444년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돌아온 제3진의 귀환을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왕에 의하여 유다의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느헤미야와 그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바사의 수도인 수산에서 귀환한 반면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은 바벨론에 귀환하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때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는 그의 성서인 율법서를 가지고 신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느헤미야의 주요 임무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강한 도시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바사 왕으로부터 권위를 받아서 정부 비용으로 요새를 건립하고 전에 그 성벽의 건립을 연기하게 하였던 강한 이웃들의 적의와 음모에 저항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다.
원래의 히브리 성서는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가 한권의 책이었다. 그것들은 원래의 히브리 성서를 헬라어 번역자들이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도 한권의 책으로 되어있었고, A.D.390-405년에 번역된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역이 나왔을때까지도 역시 한권의 책이었다.

2. 저자에 대한 새로운 고찰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알려져있지 않다.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 3부작의 저자는 제사장이자 1서기관인 에스라였다고 하는데, 에스라는 모세 율법에 대한 뛰어난 작가이자 학자였으며, 자기 시대에 가장 특출한 교사이자 설교가였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 자신이 썼다고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느헤미야서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1인칭 화법은 주인공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 한다(느1:1-7:5; 느12:27-42; 느13:4-31). 뿐만 아니라 본서에 나타나는 생동감 있는 표현과 자세한 통계자료는 본 서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본 서를 썼을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는바 자료들을 참조하여 기록하였음이 확실하다(느7:5-73; 느12:1-26).

3. 역사적 배경

느헤미야가 '술 맡은 자'의 신분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던 아하수에로(Xerxes)의 아들이었다.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전인 B. C. 473년 3월 8일에 부림절이 제정되었다. B. C.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의 축복을 받으면서 유대인들의 한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 풍습을 백성들 사이에서 근절시켰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에스라가 주도한 부흥 운동의 한부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분노한 르흠과 심새는 아닥사스다에게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때까지 역사를 중지하도록 명했다. 이 조서를 손에쥔 르흠과 심새는 예루살렘으로 급히 올라가 성벽을 허물고 성문을 불태우면서 강제로 역사를 중지시켰다(스4:23; 느1:3). 느헤미야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이유도 이러한 비극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B.C. 445년 12월에서 B.C. 425년까지 최소 20년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B. C. 425년 무렵 느헤미야는 B.C. 433년이래 자신이 자리를 비운사이 예루살렘과 각지에 퍼지기 시작한 여러가지 악습을 척결하고자 다시 귀국하였다.

4. 느헤미야 성벽 재건의 신학적 의의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통해 성전을 회복시켰으며,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느헤미야는 성을 재건하고 유다 민족의 정치·사회적인 제반 여건을 충실히 재정리하였다.
폐허가 되었던 성벽이 재건됨과 동시에 그 성은 견고해져 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하여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불의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제거되었다. 그러나 이 회복은 엄밀한 의미에서 온전한 회복이 아니었지만, 이러한 잠정적인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된 삶에의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삶의 근원적 관계가 궁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느헤미야의 개혁적 회복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나타날 공의를 지칭하는 예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회복시킨 예루살렘 성벽은 장래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하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주제나 문체의 유사성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에스라서와 본 서의 저자를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문의 1인칭 화법 사용과 체험적인 내용과 목격에 대한 현장감 있는 묘사로 보아서 본 서의 주인공인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물론 느헤미야가 느12:26에서 '느헤미야의 때'를 회고하듯이 자신을 3인칭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다. 그러한 이것은 느헤미야가 동시대 인물들과 공직에서 은퇴한 후 과거의 행적을 회고하며 쓴 글인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2) 기록 연대
비평주의적인 학자들은 본 서를 에스라서의 저작 연대와 비슷한 주전300년경으로 본다. 그것은 느12:11,12에 나오는 얏두아를 요세푸스의책에 나오는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얏두아와 동일 인물로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에 나오는 사건들이 주전 444년의 제3차 포로귀환에서부터 느헤미야의 제2차 귀국(주전 432년)까지 약 10년 사이의 기록인 것으로 보아서 본 서는 느헤미야가 총독에서 은퇴한 후인 주전 420년경에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 기록 목적과 주제 및 특징

1) 기록 목적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와 같은 바벨론 포로 후기 생활과 포로귀환에 대해서 다룬 성경은 우리에게 비교적 생소한 편이다. 그 중에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 땅으로의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중건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착과 종교적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선택하신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이에 대한 순종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록하였다.

2) 주제 및 특징
본 서의 주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종교개혁을 통한 예루살렘의 실제적 회복과 영적 회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스라엘의 회개와 부흥 운동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본 서의 특징은 첫째로 회복의 책이라는데 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과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 언약의 갱신 등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성결에 큰 비중을 둔 책이다. 본 서나 에스라서는 한결같이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이방인과의 결혼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셋째로 언약 백성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드러내는 책이다. 이사야의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에 대한 예언(사10:21,22)이 하나님의 섭리하에 그대로 성취되는 사실이 본 서와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자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Diaspora)의 수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인데, 그들이 결국 유다 땅으로 돌아온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라 할수 있다.

3.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와 구성

1) 느헤미야의 구속사적 의의
본 서는 저자인 느헤미야가 바사 제국에서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온갖 고난과 수모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겪었다는것과 '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 언약 백성의 귀환과 재건이라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성벽 재건과 언약 갱신을 통해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이 선민을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놀라운 섭리가 드러난다.

2) 구성
이스라엘 백성의 부흥 운동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수 있는 본 서는 에스라서에 이어서 구약 역사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당시는 바사 제국의 융성기요, 그리스와 로마도 서서히 세계 무대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본 서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환과 상황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본 서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첫번째 부분인 1-7장은 예루살렘 귀환과 성벽 재건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으로 주전 444년경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과 성벽 재건 준비와 성벽 재건으로 나눌수 있다. 두번째 부분인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은(8-10장) 율법의 낭독과 해석 그리고 언약 갱신으로 나눌수 있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인 언약 민족의 개혁(11-13장)은 백성들은 재 정착과 성벽 낙성식 그리고 백성들의 부흥 운동으로 나눌수 있다.

4. 느헤미야가 주는 의미

3차에 걸친 바벨론 포로귀환 과정에서 마지막에 해당되는 3차 귀환을 주로 다룬 느헤미야서는 구약의 역사 중 맨마지막에 해당된다. 느헤미야서 이후 그리스도가 나타나기까지 약 400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다. 그러므로 본 서는 우리에게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본 서는 성벽 재건과 부흥 운동을 통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예루살렘의 현실적, 영적 회복을 통해 회복의 중재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를 볼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과 백성들의 부흥 운동은 우리에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을 보여주며, 안일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5. 내용 분해

Ⅰ.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의 재건(1-7장)
1.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함(1:1-2:20)
2. 성벽의 증축(3:1-7:4)
3. 돌아온 백성의 계보(7:5-73)

Ⅱ.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8-10장)
1. 율법의 낭독(8:1-8)
2. 백성들의 슬픔과 기쁨(8:9-18)
3. 백성들의 회개(9:1-38)
4. 언약서에 인침과 책임(10:1-39)

Ⅲ. 민족의 개혁(11-13장)
1. 지역과 인구의 재조정(11:1-12:26)
2. 새 성벽 봉헌식(12:27-47)
3. 백성의 부흥 운동(13:1-31)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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