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사무엘상 6장 1절~18절]
1절 -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절 -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절 -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절 -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절 -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절 -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절 -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절 -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절 -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절 -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절 -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절 -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절 -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절 -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절 -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절 -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절 -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절 -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인정하라

[사무엘상 5장 1절~12절]
1절 -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절 -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절 -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절 -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절 -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절 -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절 -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절 -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절 -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절 -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절 -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절 -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신앙인의 불신앙

[사무엘상 4장 1절~22절]
1절 -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절 -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절 -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절 -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절 -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절 -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절 -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절 -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절 -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절 -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절 -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12절 -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절 -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절 -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절 -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절 -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절 -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절 -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절 -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절 -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절 -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절 -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올바로 순종하는 방법

[사무엘상 15장 17절~23절]
17절 -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절 -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절 -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절 -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절 -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절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절 -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이스라엘 초대 임금에 사울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키가 크고 인물이 잘나고 또 겸손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왕으로 삼았지만 왕이 된 다음에는 그 마음이 완악해지고 교만해져서 불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아말렉과 더불어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아말렉을 쳐서 멸했을 때에 사람과 짐승과 모든 생명있는 것은 짐멸해 없애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의 근원을 근절시켜야 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말렉을 쳐들어가서는 아말렉의 왕 아각이 살려달라고 비니까 마음이 넓은척 하면서 그대로 살려 데려 왔습니다. 또 양과 소 중에 살찌고 좋은 놈은 다 살려가지고 끌고 왔습니다. 분명히 살려두지 말라고 했는데 살려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이제 와서는 당신의 고집만 부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니 웬일입니까? 탈취하기에만 급급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았습니까?" 하였더니 사울 왕이 간사하게 "아닙니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삼상 15:17-21)하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간사하고 자기의 잘못을 합리화하는 변명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욕심이 나서 살려 오고서도 제일 좋은 것으로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사무엘이 말씀하기를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삼상 15:22,23)고 했습니다.
순종하는 것 같으면서도 불순종하는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 하나님의 뜻에 맞는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다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줄 알았다가는 큰 오산입니다. 우리 눈에는 좋아 보여도 하나님의 뜻에는 어긋나는 일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순종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모릅니다. 사울 왕처럼 자기 고집대로 행하고 순종치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올바로 순종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일반적으로 나타나 있지만 그러나 또 한편 쉽게 판정할 수 없는 미묘한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먼저 분명히 가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본위(自己本位)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 본위로 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본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맑은 양심과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살펴보면, 불쌍했던 조카 롯을 데리고 다니다가 그 조카가 점점 우양(牛羊)이 많아지고 재산이 많아지자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들이 번번히 싸움을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상호 충돌을 막기 위하여 롯에게 이르기를 '네가 우(右)하면 좌(左)하고 네가 좌로 하면 나는 우할터이니 마음대로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카 롯은 조금도 양보함이 없이 가장 기름진 땅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아브라함은 큰 축복을 받아서 번창했지만 롯이 자기 본위로 선택한 그 소돔 고모라성은 타락해서 불로 몽땅 타버리고 재산이 다 없어지고 아내까지 소금기둥이 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본위로 생각할 때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둘째, 이기심(利己心)을 버려야 합니다.
이기심과 욕심은 영안(靈眼)을 어둡게 합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어집니다. 사울 왕처럼 불순종하면서도 합리화시켜가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억지를 써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기심대로 움직이며 불순종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사울 왕처럼 억지를 씁니다. 이것은 벌써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욕심과 이기심을 버려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가 있지 불합리한 이기심과 욕심을 가질 때는 마귀한테 속기가 쉬운 것입니다.
셋째,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명히 알 수 없을 때에는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성급하고 급격한 모든 일의 동기는 다 사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분이십니다. 반쯤 열린 문을 억지로 부수고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철통같이 닫힌 문도 하나님의 뜻일 수가 있습니다.
'나는 꼭 이리로 나가고 싶은데 왜 이 길이 안 열릴까?' 이렇게 생각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열어 주실 때가 옵니다.
계 3:8절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나의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본문 삼상 15:17절을 보면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기 권위를 포기하고 스스로 작게 여기면서 겸손할 때에는 머리가 되게 높여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해지고 자기 고집이 세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버리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교만하여 고집이 생기고 자기 권한을 주장할 때 그만 불순종했습니다. 불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아져서 자기 권한을 하나님 앞에 포기할 때 참된 순종이 따르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생각, 재 주장, 내 권한이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야 합니다. 나 자신도, 가족도, 재산도, 사업도, 시간도, 주님께 속해야 주님이 온전히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 양도하고 맡기면 죽을 것 같고 안될 것 같지만 그 때에 비로소 가장 지혜롭고 좋은 길로 우리 주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존재와 소유가 모두 주님의 처리를 받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식도 내 것이 아닙니다. 물질도 내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내 것이 아닙니다. 사업도 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갈 때에, 그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고 순종하는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3.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내가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에는 실패합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따르려고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종이 한 장은 대단히 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약한 종이라도 철판이나 나무판대기 위에 붙여 놓으면 아무리 쳐도 그것은 찢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고, 보잘 것 없어도 주님께 의지하면서 순종해 나갈 때에 우리는 강한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시험이나 유혹이 올 때 '나는 못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하고 의지할 때 이기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일이 끝나야 하나님의 일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요 15:5절에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스스로 꽃을 피우려고 속태울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를 맺으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오로지 포도나무에 의지하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주님께 굳세게 의지하면서 따라만 가면 자동적으로 꽃피고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잠 30:5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를 의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에게 방패가 되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4. 하나님께 모든 결과를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믿기만 하고 맡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할 때는 '믿습니다. 믿습니다'하고 일어날 때는 다시 몽땅 그 짐을 안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습니다' 했으면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맡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아서 처리할 수가 없고 우리가 하니님께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려야 되는데 아직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근심 걱정의 보따리를 내가 부둥켜 안고 애를 스며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립니다'하고 맡기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맡아주시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왜 죽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물에 몸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영하는 법을 가르칠 때 보면 처음에 손을 무릎에 대고 꼼짝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처음엔 물속으로 쑥 들어가지만 가만히 물에 몸을 맡기면 다시 떠오릅니다. 그렇게 된 후에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면 앞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발버둥치고 불안해 할 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안 나타납니다. 그러나 맡겨버릴 때에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벧전 5: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선교사님이 계셨는데 그 부인이 폐병으로 다 죽게 되었답니다. 부인은 그만 불안해서 잠을 못자며 안달거렸답니다. '내가 죽으면 남편은 어떡하나, 이 많은 자식은 어떡하나' 하나님을 원망도 해보고 불평도 해보고 애를 태웠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잠은 오지 않고 밥도 입에 들어가지 않더랍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방바닥에 굴러다는 자기들이 쓰던 전도지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시 55:22). 그리하면 저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는 말씀을 읽고 크게 뉘우치며 은혜를 받았답니다.
그 후에 '주님께 내 질병을 맡기겠습니다. 내 가정도 맡기겠습니다. 내가 죽어도 내 남편 내 자식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이지 내가 염려한다고 되겠습니까? 주여! 다 맡아 주옵소서'라고 했더니 그 순간부터 마음이 편안해 지더랍니다.
맡겨버리는 순간부터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맡겨버리는 신앙이 있을 때에 우리는 올바른 순종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순종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나의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순종합시다. 이런 순종이 우리 신앙 생활에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아 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16장 6절~7절]
6절 -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절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키가 크고 인물이 잘났던 사울 왕이 교만하고 고집이 세서 범죄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버리시고 후계자가 될 왕을 골라서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을 받고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장자 엘리압이 나오자 장자인데다가 인물이 좋고 키가 커서 사무엘이 마음에 들어하며 기름을 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둘째 아비나답을 지나게 해도 아니라고 하고, 셋째 삼마를 지나게 해도 아니라고 하고, 일곱이 다 지나가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외에 아들이 더 없느냐?'고 묻자 이새는 신통지 않게 생각하면서 '막내가 하나 남았는데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당장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고 들에서 양을 치던 막내 아들 다윗을 보였더니 그를 보고 당장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택함을 받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윗은 후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중심이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중심이 아름다우니까 사람들이 깔보고 부모님까지도 알아주지 않던 목동 다윗이었지만 역대 열왕 중에 가장 훌륭한 왕이 되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겉모양 보다 속마음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하나님은 겉모양보다 속마음을 더 귀중히 보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육신의 겉모양을 보고 그 외모에 의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은 겉모양보다 속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첫인상이 좋고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은 많은 덕을 봅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을 때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낼 때도, 취직을 할 때도 첫인상과 외모의 작용이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하나님께서는 외모나 겉모양은 흉하게 못생겼어도 속마음이 아름다우면 하나님께서는 귀히 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외모보다 마음의 상태, 심령의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겉을 보지 않고 속을 보신다는 것은 또한 형식보다 내용을 중히 보신다는 뜻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설교하는 모습을 보니까 굉장한 까운에다 찬란한 후드를 한 것까지는 좋은데 교활들처럼 가슴에는 커다란 금십자가를 달교 설교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외모를 잘 꾸몄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어떤 심령 상태로 어떤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고(요 4:24) 하셨습니다.
요엘 선지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고 타락하여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는데도 겉으로만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체하고 중심으로 회개하지 않는고로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화와께로 돌아오라"(요엘 1:23)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겉모양만 거룩하고 깨끗하게 꾸미고 속에는 썩은 송장같이 죄악이 가득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보고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 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제일 가중히 여기시고 저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겉모양보다 속마음을 보시고 형식보다 내용을 더 중히 보십니다.

2. 결과보다 동기를 보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동기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인정해 줍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행위의 결과보다는 그 동기를 더 살펴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많은 양의 헌금을 드리는 부자보다 그날 생활비 전부를 털어 바친 과부의 엽전 두푼을 더 많이 바쳤다고 칭찬하신 것은 그 바치는 동기와 정성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구제를 할 때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서 영광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 앞에 나팔을 불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금식을 해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일부러 얼굴을 흉하게 하고 머리도 빗지 않기 때문에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모든 선행의 결과보다 그 동기를 중요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같은 액수의 헌금을 해도 마땅히 바쳐야 할 때 순수하게 바치지 않고 자기 영광을 나타내는데만 쓴다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3. 진실함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즉 마음의 진실함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 마음이 진실한가를 보십니다. 겉과 속이 같고 말과 행실이 같아야 합니다. 겉으로만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심이 착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학 박사라도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요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진실한 사람은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의 소유자는 거짓말 같은 진리의 말씀이 확실히 믿어지고 위선자나 거짓된 사람은 진리의 성경 말씀이 거짓말처럼 안믿어집니다. 대체로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에 미혹케 하는 영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늘 진실해야 하고 예리한 양심으로 늘 반성해야 됩니다. 설교도 진실한 심령에서 하면 말 재주가 없어도 사람들의 심령을 움직이지만 진실치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말 재주가 좋고 웅변술이 좋아도 사람들의 심령에 와 닿는 것이 없고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다니엘은 그 중심이 진실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그 마음 먹은대로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사사 입다는 승전하면 가장 귀한 것이라도 먼저 만나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말한대로 외동딸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갚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중심이 진실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신 23: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기로 서원한 것, 즉 약속한 것이나, 마음에 제어하기로 약속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도 중심에 진실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했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4. 충성심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충성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忠자는 가운데 中, 마음 心자요. 誠자는 말씀 言, 이룰 成자 즉 말한대로 이루어 나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충성이란 조석으로 그 사람 감정과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변하지 않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계 2: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엡 6: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사도 바울은 축원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심을 귀중히 보십니다. 때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중상모략을 받을 때도 있으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기만 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정오의 빛과 같이 빛나게 해 주시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송도, 기도도, 설교도, 헌금도 중심을 기울여 할 때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기울여 생활함으로써 축복된 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세 가지 인생길

[사무엘상 26장 6절~25절]
6절 -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절 -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절 -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절 -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절 -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절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절 -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13절 -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
14절 -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절 -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절 -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17절 -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18절 -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9절 -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20절 -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21절 -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22절 - 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23절 -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절 -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절 -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오늘은 '세 가지 인생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선을 악으로 갚으며 사는 사람인데 이것은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선을 선으로 갚고 악은 악으로 갚는 사람인데 이것은 보통사람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1.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죽인 후에 여인들이 칭찬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하고 자기보다 다윗을 더 높이며 칭찬하는 말을 듣고 사울의 마음이 시기 질투로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튿날에는 사울에게 악신이 힘있게 내렸다고 했고 그 결과 다윗이 왕위를 빼앗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마귀가 그에게 역사하니까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에게 하나님의 신이 역사할 때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았는데 악신이 내려 역사하니까 선한 사람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해 구국 공신이요 자기를 위기에서 구원한 생명의 은인이요, 그래서 자기 딸까지 준 자기 사위인데도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즉, 선을 악으로 갚으려는 사람입니다. 마귀에게 잡히니까 선을 악으로 갚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을 악으로 갚으려는 사람은 두 말할 것 없이 그 속에 악령이 역사하는 사람입니다. 마귀의 도(道)를 걷는 사람입니다.
왜 악령이 역사했습니까? 왕이 되기 전과는 달리 교만하고 완악해졌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자기보다 남이 더 칭찬듣고 높임을 받으니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에도 말했듯이 내가 칭찬과 존경을 받을 때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남이 칭찬과 존경을 받을 때 질투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나보다 못했던 사람이 나보다 더 커지고 존귀해져도 질투하지 않아야 마귀의 역사가 침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하지 못하는 영혼을 다른 사람이라도 많이 구원하면 하나님 편에서 유익한 일이니 질투하지 말고 함께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따르던 무리가 다 예수님께로 가는데도 질투하지 않고 '저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겠노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나는 흥하지 못하고 쇠해도 주님의 사업이 흥하면 질투하지 말고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각각 은사와 달란트가 다른 것입니다. 나는 내 그릇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하면 똑같은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너무 남과 비교해서 교만해지거나 질투하고 불안해하면 마귀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만했던 사울 왕에게 악신이 임하니까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되었고 그 결과 전쟁에 패하고 자기 칼로 자기 배를 찔러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의 길을 걸어가면 결국 패배와 비극적 종말을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선생이요 은인이신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다가 이익의 소망이 끊어질 듯 하니까 은 30냥에 팔아 먹었습니다.
유다에게도 악마가 틈탔기 때문입니다. 요 13:2절에 보면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으며 요 6:70절에는 "12제자 중 하나는 마귀니라"라고 했습니다.
악으로 선을 갚는 사람은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정에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살림 잘하는 아내를 공연히 미워하고 다른 여자를 보고 다니는 사람은 그 속에 마귀가 들어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를 구박하고 때리다 못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데 이런 사람은 다 악마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직장에서 수고하고 가정을 위해 충실한 남편을 공연히 구박하고 불평하고 남편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여자도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또 자기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을 박대하고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도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요 마귀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또한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종이라고 복수할 수 있어도 복수를 하지 않았는데 오늘날 교회에는 기름 부은 종을 두려운 줄 모르고 해롭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은 사람이요 악마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행복, 가정의 행복, 교회의 부흥을 짓밟는 사람들이요 결국 그 자신도 가룟 유다나 사울처럼 비극적 종말을 고할 사람들입니다.

2.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사람
보통 사람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본문의 아비새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밤에 다윗이 장군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영에 들어갔더니 마침 지키던 군인들과 사울 왕이 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아비새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오늘밤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의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비새의 말은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신의 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문안하는 자에게 문안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 사람도 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도리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맏아들은 아버지가 송아지 잡고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자식을 위해서는 살찐 소를 잡고 나를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느냐?'고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선으로 선을 갚고 악으로 악을 갚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못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선과 악을 바르게 판단할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선을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는 행위도 제대로 바르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악을 선으로 갚은 사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악령을 좇아사는 사람이 선을 악으로 갚는다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입니다.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 아비새 장군이 죽이자고 명령만 내리라고 할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라고 하면서 사울 왕의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왔습니다. 건너편 산으로 와서는 사울 왕을 지키던 아브넬 장군과 부하들을 도리어 책망하여 숯불을 그 머리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간곡히 말하기를 '이 종을 어찌하여 쫓으시나이까? 죽을 죄가 있다면 제물이 되어도 좋습니다. 왕이 나 같은 자를 좇아다는 것은 메추라기나 벼룩을 따라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할 때 사울 왕도 일시나마 울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왕으로 기름 부은 받은 사람이요 사울을 죽이기만 한다면 피난 생활을 끝내고 왕위에 오를 수도 있지만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이요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원수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본문 26:9, 10절에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혹 전장에 들어가서 망하리라"고 원수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원수를 사랑했습니다.
다윗의 말대로 사울 왕은 전쟁에 패해서 아들은 전사하고 자기는 자살했습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롬 12: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원수를 만들지도 말아야 하고 원수갚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수를 꼭 갚아야 할 것처럼 생각되는 때가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고 그대로 두면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내가 갚은 것보다 더 잘 갚아 주십니다. 내가 갚으려고 하면 내 심령에 상처만 받고 갚아지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내 속에 복수심 같은 나쁜 마음이 사라진 다음에야 하나님이 무섭게 갚아 주시는 것을 많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악마의 길을 걸어가던 사울의 집은 점점 쇠하여 가다가 망했고 다윗의 집은 점점 흥하다가 승리를 거두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피지(Pizy)라는 섬나라에 선교사로 갔던 미국 목사님의 강연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섬나라에 군인 장교로 있던 분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분이 장교로 제대했기 때문에 긴 칼을 벽에다 걸어놓았습니다.
이 사람이 한번은 전도를 하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매를 맞고 질그릇으로 얻어 맞았습니다(그 나라에서는 질그릇으로 맞는 것이 가장 큰 수치라고 합니다).
얻어맞고 머리고 아프고 분해서 집으로 돌아와 큰 칼을 집어들고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는데 큰 칼을 걸어놓은 밑에 성경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펼쳐보니까 마 5:43-45절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는 것을 읽을 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라 그랬는데'하며 생각하다가 질그릇을 하나 사가지고 그 분한테 갔습니다. 문을 두드리니까 혹시나 복수하러 온 줄로 알고 맘을 졸이면서 나왔는데 오히려 이 장교분이 웃으면서 '아까 나 때문에 질그릇이 하나 깨졌는데 이 질그릇을 하나 사왔다'고 하니까 그 분이 어리둥절해 하면서 잠깐 방으로 들어오시라고 하더니 '예수 믿으면 다 그렇게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축복을 많이 받은 요셉도 악을 선으로 갚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의 길에는 세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길을 걷는, 악을 선으로 갚는 생활을 하여 승리하시는 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사무엘상 16장 3절, 7절]
3절 -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7절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의 본능 중에서 남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심리의 욕구는 강한 본능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물질이나 시간이나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사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일이 가장 복된 일이며 가장 중요한 일인데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심히 적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만 되면 그 이상의 큰 축복은 없으며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이 세상 대통령이나, 장관에게만 인정을 받아도 수지가 맞는데 만복의 근원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신 영원하신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그보다 더 큰 축복과 안전한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풀과 같이 시들고 쉽고 변하기 쉬운 인간들 앞에서는 잘 보이고 노력하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는 전혀 노력하질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만 잘 보이고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만 되면 언젠가는 사람들한테도 인정받고 칭찬받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결코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고 그 다음 왕 될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보낸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하나님께서 처음 사울 왕을 세우실 때에 사울이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는 더 크고 인물이 준수한데다가 어찌나 겸손한지 왕을 삼고자 할 때 피하여 숨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는 점점 마음이 교만해지고 완악해지면서 자꾸 불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사울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 이새의 집에 있다고 기름을 부으라고 보낸 사무엘이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얼마나 키가 크고 잘 생겼는지 그 마음은 알아보지 않고 대번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얼른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 둘째 아들 아비나답이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시고, 셋째 삼마가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고, 일곱째까지 다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아들들이 이뿐이냐?'고 묻자 '예, 막내아들이 하나 있는데 들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이새는 이 막내아들 다윗을 신통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고는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이 되어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평생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장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해 보는 가운데 성도 여러분께서 한층 더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진실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사람의 마음 중심이 진실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시 51: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거짓의 아비라면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진실해야 됩니다.
시 84:11절에 "여호와께서 …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가 잘났든 못났든, 학식이 많든 적든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과거에 알지 못하고 지은 죄가 많이 있을지라도 진실하고 솔직하게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은 다 받아주시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강도나 창녀나 도적놈이나 누가와도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며 무섭게 책망하시고 저주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요, 표리가 부동한 사람들이요, 겉은 거룩한 체하는데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와 더러운 죄가 가득찬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렘 17:9,10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진실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이 많은 국민으로 망하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으며, 거짓이 많은데 부흥된 국민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으며 '꿈에라도 진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나라 동화 가운데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나무꾼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어느 날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그만 도끼를 물 속에 빠뜨렸습니다. 나무꾼이 도끼를 잃어버려서 울고 있을 때 물 속에서 산신령이 번쩍번쩍 하는 금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이것이 네가 잃어버린 것이냐 하고 물으니까 나무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은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이것이 네 것이냐?'하고 물으니까 또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진짜 무쇠 도끼를 가지고 나와서 물으니까 '예, 그것이 제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때 산신령이 말하기를 '너같이 진실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하면서 '금도끼, 은도끼 모두 상으로 너에게 주마'라고 한 동화입니다.
여러분, 거짓말을 하면 그 당시에는 인정을 받은 것 같지만 오래 못 갑니다. 혹 오해를 받는 일이 있어도 진실하기만 하면 인정받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2. 겸손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중히 보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 되면 늘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야 됩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부귀 영화를 누리면서도 늘 자기는 보잘 것 없는 가문의 막내아들이며 양치는 목동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무엇이관대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며 높여 주시나이까?'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했으나 나중엔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며 제멋대로 했습니다.
삼상 15:17-23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말하기를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벧전 5: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 왕은 교만해져서 버림을 받았으나 다윗은 늘 자기의 비천함과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십니까? 버림받기를 원하십니까? 겸손해야 인정받습니다. 사 57:15절에 "지존무상이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회개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다윗도 사람인지라 실수하고 범죄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통하며 눈물 흘리며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와 함께하시고 통회하는 자의 영을 소성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 51: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음에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듣고 얼마나 회개했는지 베개가 눈물에 젖어 썩도록 울며 회개했습니다. 시편 51편이나 32편은 유명한 다윗의 회개시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 했으면서도 이리핑계 저리핑계 대면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완악하게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버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던 것입니다.
시 34:18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읊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고 8복 가운데에 말씀하셨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옛날의 지은 죄가 다시 생각나면 팔뚝을 물어뜯어 피가 나도록까지 회개했다고 하며, 마틴 루터(Martin Luther)도 자기의 지은 죄가 생각나면 회개하다 졸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4. 순종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싸울 때 승리하거든 사람이나 짐승이나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그 말씀을 무시하여 아각 왕을 살려주고 또 살찌고 좋은 우양이 탐이 나서 다 끌고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책망했더니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좋은 것들을 가져왔고 다른 것은 다 진멸했다고 핑계대며 변명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 23)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참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십시오. 변명하거나 핑계댈 생각은 아예 버리십시오.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십니까? 순종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아무리 큰 손해가 오고 핍박이 와도 순종해야 합니다.

5. 책임을 완수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었을 때 들에 나가 양을 잘 돌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는 비록 물멧돌밖에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명을 다할 때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여러분 오직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 책망받을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들'입니다. 성가대면 성가대, 교사면 교사의 책임을 다하고, 집사면 집사, 권사면 권사의 책임을 다해야 인정받습니다. 여선교회, 구역, 무엇을 맡았는지 적은 것이라도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여러분, 죤 와나메이커(John Wanamaker)를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는 우체국장이요 백화점 경영자이면서도 주일학교 교사의 직분을 잘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당신은 시간이 부족할텐데 어떻게 그렇게 주일학교를 위하여 힘씁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주일학교 교사는 나의 본임이고 직장은 나의 부업입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일하는 것이 본업이고 세상일이 부업이 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진정 인정받으려면 진실하십시오. 항상 겸손하십시오. 잘못을 발견하면 회개하십시오. 또한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맡겨진 책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 아 멘 -

제목 : 에벤에셀 (피종진 목사님)

[사무엘상 7장 8절~12절]
8절 -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절 -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절 -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절 -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절 -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라는 단어를 쓰고 성경에는 ‘서로 연합’이라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는 땅을 의지하고 새들은 하늘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지으셨고 도우심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찾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평안할 때는 자의로 사는 줄 알지만 그것은 교만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막상 어려움이 다가오면 하나님을 안 믿고, 교회에 안 나가더라도 “oh my God(나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하나님만 섬기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1,2)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무엘 선지자 시대에 블레셋이라는 이방 민족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어려움이 찾아와 위기일발의 아주 촉박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때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우심을 간구한 기도의 응답으로 화답하신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치시고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내용과 사무엘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을 세워서 “에벤에셀 하나님!”(도움의 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이라고 고백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로 도와주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역사해 주시고 도와주시며 지켜주시고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도움의 축복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왔습니까? 말씀을 통해 상고하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합당치 못한 것들을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삼상 7:3,4) 아멘.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기억력, 체력 등의 한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그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이방 민족의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의 영향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전심을 다하여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길 때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사는 사람은 남을 욕하고 탓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모든 사람 앞에 감사함이 넘치는 삶이 바로 참으로 진실 된 삶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런 자에게 도우심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형통하고 무엇이든지 승리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만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그 위에 함께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우물쭈물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서 보실 때 ‘내가 지금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생각이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생각하실까?’라고 우리의 자신을 살펴봐야 하며 우리가 말하는 지극히 적은 언행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뜻인지 구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가로막힘이 없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어느 곳에 있든지 임하시고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칼 로저스는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네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① 이기심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② 신앙으로 목표를 뚜렷하게 세우는 사람입니다.
③ 말과 행실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④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둘째, 여호와께 기도하고 부르짖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삼상 7:5)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의 무기로 주신 것 중 하나가 기도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통해 여호와께 범죄함을 고백하며 이방 민족인 블레셋의 적군이 밀려오는 상황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미스바로 모여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게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베푸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블레셋의 대군들이 밀려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군사력과 전술과 전략을 구축하는 것 등 인간의 방법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고 손이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만 음성을 발하시면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하나님 이상의 어떤 주권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경배 대상이 되고 우리를 구원할 자이시며 치료자이시기 때문에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해서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삼상 7:6) 하나님 앞에 기도 단을 쌓고 금식하며 부르짖게 했습니다.
CCC 고(故) 김준곤 목사님은 ‘금식기도는 원자탄보다도 더 위력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절대 능력과 그분의 역사는 기도 속에 응답으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삼상 7:7,8) 아멘.
사무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단결하여 거국적인 회개기도 집회의 상황에서 블레셋의 공격 소식을 듣고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어 사무엘에게 호소를 합니다. 기댈 곳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이며 구원자이시고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삼상 7:9)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온전한 헌신의 제물을 드리며 예배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관계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승리와 구원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위기의 상황일수록 더욱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온전한 예배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의지하며 강하게 부르짖고 간구할 때 모든 문제에서 해결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상달되는 번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삼상 7:10) 아멘.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번제를 드림으로 헌신의 예배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미스바성회를 통해 회개의 기도와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구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사무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방백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이스라엘 앞에 패하게 만드셨습니다.
번제는 태워서 연기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몸을 불사르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가 승리하면 모든 것에 승리하고,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다 회복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삼상 7:12~14)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기가 다가왔을 때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벤에셀의 축복을 허락하셨고 평화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깨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하여 온 정성을 다해서 기름을 짜서 불을 피우듯이 하나님 앞에 참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방백들을 물리치고 사무엘이 사는 동안 블레셋 사람들이 손을 대지 못하고 평안을 주신 것처럼 우리의 삶이 평안해지고 행복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벤에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합당치 못한 것들을 버리고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상달되는 번제를 드릴 때 모든 위험과 환난가운데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며 평안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

[사무엘상 16장 6절~13절]
6절 -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절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절 -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절 -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절 -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절 -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절 -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절 -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오늘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의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물질이나 시간이나 심지어 자기의 목숨까지 희생해 가면서 애를 쓰고 노력하면서도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애쓰지도 않고 관심조차 없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의 마음에만 들면, 장관이나 대통령한테 인정받는 것에 비교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고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풀과 같이 시들기 쉽고 변하기 쉬운 인간들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고 하면서도, 만복의 근원이 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사람들한테도 칭찬듣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울 왕에게 실망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게 하시려고 사무엘 선지를 이새의 집에 보내셨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단번에 기름을 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얼른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둘째 아들 아비나답이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시고, 셋째 삼마가 지나가도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묻기를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하니까, 이새가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라고 신통치 않다는 뜻으로 대답했습니다. 당장 데려오라고 해서, 다윗이 먼지가 묻은 몸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데, 이 목동 다윗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면서 기름을 부으라고 해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기로 했습니다.
결국, 남들이 신통치 않게 여기고 부모까지 변변치 않게 보던 이새의 말째 아들 목동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평생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나라를 잘 다스리던 위대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보잘 것 없는 목동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그와 같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까?

1. 무슨 일에나 중심을 기울이는 사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형식적으로 눈가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중심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진실해야 하며 무엇에나 위선이나 거짓됨이 없이 중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윗 자신이 쓴 시 51: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실하여 무슨 일이나 중심으로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마귀가 거짓의 아비인 반면에,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외모가 좀 못났어도, 실수가 좀 있어도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시 84:11절에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외모가 잘났든 못났든, 말이야 잘하든 못하든, 학식이 많든 적든 먼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비록 실수와 잘못이 있더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그래서 요엘서에 보면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건성으로 옷만 찢으면서 말로만 회개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찬송도 중심으로 불러야 합니다. 목청만 곱게 한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속 중심으로 진실하게 불러야 합니다. 기도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미사여구만 늘어놓으며 가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중심을 보는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뜨겁게 드리는 기도라야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말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설교도 중심을 기울여서해야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헌금도 중심을 기울여 정성껏 하는 것이라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빈부의 차이에 따라, 생활수준에 따라 액수는 차이가 있어도 하나님은 중심을 저울질하시기 때문에 정성을 기울여 중심으로 해야 인정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외식과 형식, 위선과 거짓, 체면치레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비록 목동이요, 이새의 말째 아들이요, 부모도 형제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중심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 보면, 베들레헴이 블레셋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다윗은 너무너무 고향을 사모한 나머지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올 자가 있겠느냐고 명령했습니다. 이 때에 용감한 장수 세 사람이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왔습니다. 이 생명과 같고 피와 같은 물을 받아 차마 마실 수가 없어서 이 귀중한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또 한번 다윗이 사단의 시험에 들어서 교만하여 군대수를 헤아리기 위하여 인구 조사를 했을 때, 하나님이 괘씸히 보시고 온역으로 온 민족을 쳐서 3일 동안에 장정 7만 명이 죽는 것을 보고(삼하 24장) 옷을 찢으면 눈물을 흘려 회개하면서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번제를 드리려고 할 때, 아라우나는 제물이 될 소도 드리고 나무로는 제구와 소의 멍에까지 다 왕께 드리겠다고 할 때 다윗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귀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데 그렇게 값없이 공짜로 정성없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 50세겔이란 비싼 값을 주고 그 소와 마당까지 사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그치게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범사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했습니다.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됩니다. 외식이나 형식, 가식과 위선은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2. 겸손한 사람
하나님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교만하면 가중히 보십니다. 인정하시기는커녕 얼굴을 돌이키십니다. 심지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 되려면 겸비해야 됩니다. 항상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다윗은 대왕이 되고 온 국민의 추앙을 받으려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늘 자신을 살펴서, 자기는 보잘 것 없는 가문에 말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양떼나 몰고 다니던 목동이었음을 잊지 않고 '내가 무엇이기에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며 높여 주시나이까' 하면서 늘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낮추는 만큼 우리를 높여주시고, 자신을 높이는만큼 낮추시는 분임을 명심해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높여주셔도 항상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했으나 왕이 되고 나서부터는 점점 교만해져서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순종했습니다. 제 고집대로 제 멋대로 했습니다.
삼상 15:17절에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면서 지금은 교만하여 하나님께서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벧전 5: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했고, 약 4: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겸손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는 것입니다(삼상 2:8).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먼저 다윗같이 자기를 낮추며 겸손해야 합니다.

3. 죄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
다윗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하고 범죄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깨달았을 때 애통하며 눈물을 흘리며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자를 영접하십니다.
시 51:17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말씀했습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음 나단 선지자의 날카로운 책망을 듣고 얼마나 회개했는지 베개가 눈물에 젖어 썩도록 울며 회개했습니다(시 32:3-5). 그러므로 실수와 범죄가 있었으나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불순종하고 범죄한 뒤에도 핑계만 대고 완악하고 고집만 부리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시 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다 진심으로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4. 순종하는 사람
사울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아말렉과 싸울 때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진멸해 버리라고 했는데 왕 사각을 살려주고 탐심으로 살찐 소와 양을 많이 살려 왔습니다. 사무엘 선지를 통하여 책망했더니 회개는 하지않고 핑계만 대고 변명만 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 23)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순종하는 사람이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께도 순종하고 하나님의 종, 선지자에게도 순종하고 하나님께도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5. 맡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
다윗은 양 떼를 맡기면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양 떼를 잘 돌보고, 골리앗과 싸울 때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잘 싸워 승리했고, 온 나라를 맡겼을 때 충성하여 맡은 책임을 잘 감당했습니다,
'맡은 이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맡겨진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원합니까? 맡은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약하고 게으른 종은 쫓겨났습니다. 교사면 교사로, 성가대면 성가대원으로, 집사면 집사로, 권사면 권사로, 장로면 장로로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살펴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의 승전비결

[사무엘상 17장 31절~49절]
31절 -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절 -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절 -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절 -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절 -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절 -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절 -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절 -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절 -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절 -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41절 -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절 -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절 -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절 -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절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절 -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절 -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절 -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절 -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오늘은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의 승전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임금인 사울 왕 때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에 블레셋 나라에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힘센 거인 장수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에도 많은 장수가 있었지마는 아무도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기양양한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산이 쩌렁쩌렁 울리게 '나와서 싸워볼 자가 있으면 어서 나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군대는 모두 사시나무 떨 듯이 벌벌 떨기만 했지 아무도 용감하게 나가 싸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 지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 블레셋의 종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은 더 큰소리로 하나님을 욕하며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때에 이새의 막내아들인 다윗이 형들의 점심을 가지고 왔다가 그 꼴을 가만 보니까 분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 이방 민족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욕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다니…". 견딜 수가 없어서 사울 왕에게 자기가 싸워 보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자꾸 졸라 댔더니 사울 왕이 하는 말이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게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하며 간청하니까 그러면 나가 싸워보라고 하면서 너무 기특하여서 자기가 입던 군복을 입혀주고 투구를 씌워주고 칼을 주었습니다. 다윗이 군복과 투구를 다 쓰고 칼을 들어보니까 군복도 크고 투구도 맞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내게 익숙지 않으니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그리고 군복과 투구를 다 벗어버리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골리앗이 이 꼴을 보고 "내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짐승들에게 주리라"하고 말했습니다.
이때에 다윗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리고 골리앗에게 달려갔습니다. 골리앗도 화가 나서 마주 달려 왔습니다. 그때 다윗은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졌습니다. 물맷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들어맞았는데 어찌나 세게 던졌던지 이마에 들어가 박혔습니다. 제 아무리 힘센 골리앗 장수라도 이마에 돌이 박히니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때 다윗은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어서 골리앗을 죽이고 그 머리를 베었습니다. 그랬더니 의기양양했던 블레셋 군대는 다 도망쳐 버리고 그제서야 이스라엘 군대는 만세를 부르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앞에 골리앗과 같은 무서운 시험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칩니다. 마귀의 시험이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곤란과 역경 속에서 근심과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 때가 있지마는 다윗이 승리한 이 비결을 배우게 되면 우리도 승리하는 삶을 살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 막강한 거인 장수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1.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다윗이 그 무서운 거인 적장 앞에서도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두려움 없이 대항해 싸우러 나간 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도, 자기의 명예나 영광을 위해서도 아니요 더 나아가서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삼상 17:26절에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하고 의분을 내는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싸우러 나갔기 때문에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임하여 승리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라면,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신자라고 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싸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하신 다음에 그 사모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내 남편은 애국자로 죽은 자가 아니요 민족을 위해 죽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동기에서 해야지 자기 체면이나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자기 이기심을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욕하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다 쓸어 없애버리고 오직 마음에 맞는 모세 한 사람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자기를 돌로 쳐 죽이려 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그것 참 잘되었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했을 법도 한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만일에 당신의 백성을 이 광야에서 다 진멸해 버린다면 이방 민족들이 볼 때에 하나님은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 그 백성을 광야에서 다 엎드러지게 했다고 하나님께 욕이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내 이름을 하늘 생명록에서 지워줄지언정 이 백성을 멸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마음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지 아니하고 구원한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말로 '내 얼굴에 먹칠을 하고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하겠나이다'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진행해 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끝나도록 해야만 될 것입니다.
내 이름이나 내 영광을 위해서 할 때는 실패요 때로는 성공 같아도 결국은 실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면 실패 같아도 성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우리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 5:44절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냐"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 때에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일상생활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목동으로 양떼를 지킬 때에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것이 아니라 양 새끼 한 마리라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생명을 걸고 나가서 싸워 이긴 승리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그 큰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승리하는 것을 보셔야 큰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보셔야 큰일도 맡기시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적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헌신하는 생활을 한 다음에야 큰일을 맡기시는 법입니다.
다윗은 일상생활에서 승리하는 평소에 생활의 준비가 있었던 것입니다. 생활의 준비가 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쓰시거나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일생생활의 적은 문제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일상생활에서 적은 일에서부터 진실하고 정직하고 헌신적인 생활을 할 때 큰일도 맡기시고 축복도 해주십니다.
120문도들도 10일간 준비하며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간의 훈련과 준비가 있었습니다.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작고 사소한 일에 먼저 승리하여 실력을 갖추어야 큰일에도 축복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큰일을 구하기 이전에 먼저 지금 하는 일과 일상생활에 충성하며 승리해야겠습니다.

3. 갑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다윗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 보니 너무 크고 무거워 자기에게 맞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갑옷을 도로 벗어놓고 놋투구와 칼과 창도 다 갖추지 않고 나갔습니다. 남의 것으로 빌려 입은 옷, 빌려 든 무기 그것은 힘을 못씁니다.
다윗은 싸우려고 마음먹을 때부터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나간 것이지 무기의 힘이나 인간의 힘을 의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삼상 17:47절에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하고 말했습니다.
시 33:16절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는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그랬습니다.
다윗은 세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데도 전혀 믿음으로 성령을 의지할 생각은 않고 서클이나, 학교, 간판, 지식, 명예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학벌이나 사람의 빽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4. 홀로 나갔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아무도 데리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홀로 나갔습니다. 거인 골리앗은 도리어 방패든 자를 데리고 왔으나 다윗은 홀로 유유히 나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싸워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기를 원하는 자는 홀로 설 줄 알아야 합니다. 천군 가는 길은 혼자가는 길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1대 1의 관계이지 중간에 아무 사람도 개재하여 같이 가거나 내 대신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찍이 위대한 성도들은 모두 외롭게 홀로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엘리야도 그릿 시냇가에 홀로 숨은 생활을 거친 후에 갈멜산의 대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외로울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야곱도 부모 형제를 떠나 홀로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갈 때 하늘 문이 열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야도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1대 850으로 싸웠고 예레미야도 거짓 선지자들과 맞서 고독하게 바른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외치며 울었습니다.
사 63:3절에 "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라고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구속 사업을 할 때 어느 하나도 기도로 도와주지 못했고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을 도와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위기는 홀로 있을 때 외로울 때가 아니라 반대로 세상의 환심을 많이 살 때요, 인기가 올라갈 때입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인기가 있어도, 축복을 많이 받아 의지할 것이 많아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홀로 설 줄 알아야 합니다.
요 2:24절에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외롭고 고독할 때,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나 대상이 없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 너무 바쁘고 만날 사람이 많아지고 인기가 있고 스케줄이 많을 때가 오히려 더 신앙에는 위기입니다.

5.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이런 축복 저런 축복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제일입니다. 고대광실 좋은 집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불행입니다. 초막에 거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진정한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존·웨슬리는 최후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윗은 적장 거인 골리앗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이 싸움에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놓고 나머지 10명은 그 땅의 아낙 자손들은 신장이 장대한데 자기들은 메뚜기 같고 성읍이 견고해서 못 들어간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낙 자손들 앞에서 메뚜기 같은 것만 생각했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메뚜기보다 못한 존재임을 믿지 않았고 그들의 성곽이 아무리 튼튼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잇장 하나만도 못한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비록 약해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삼하 5:10절에 보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풍채(風采)가 좋고 준수하고 키가 크고 위엄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니 점점 악하여 가다가 악신이 그 속에 들어가 자살해 버리고 말았고, 다윗은 이새의 말째 아들이요 노릿내 나는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매 사자나 곰도 이겼고 골리앗도 이겼고 통일 왕국의 대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종살이도 하고 감옥살이도 했으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매 형통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국가는 승리합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마 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다윗이 승리한 믿음으로 여러분도 승리하는 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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