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

[사무엘상 16장 6절~7절]
6절 -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절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무엇을 귀중히 보시고 어떤 점을 중요하게 보시는지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롬 12: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 말씀했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는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봄으로써 진정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 되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기름 부어 왕으로 삼았지만 그가 점점 교만해지고 제 고집만 내세우고 제 욕심만 부리자 사울을 버리고 사무엘 선지에게 명하여 이새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 중에서 기름을 부어 다시 왕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가 이새의 집을 찾아가 그의 아들들을 보자고 했습니다. 먼저 장자 엘리압이 나오는데 키가 크고 인물이 잘 생겼습니다. 사무엘은 순간적으로 '과연 임금님 감이로구나' 생각하고 기름을 부르려고 했더니 천만 뜻밖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오는데 '너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비나답을 불러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도 아니라 하고 셋째 삼마로 지나가게 해도 아니라 하고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가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 이새로서는 마음에 두지 않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막내 아들 다윗, 지금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동이 사무엘 앞으로 불려 왔습니다. 온통 먼지투성이에 작고 어린 목동으로서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왕이 될 만한 모습이 아닌 소년 다윗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의 신앙을 보시사 그를 다음 왕으로 택하여 주셨고, 그 뜻을 받은 사무엘 선지가 기름뿔을 취하여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을 삼았습니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외모가 잘 생기고 첫 인상이 좋으면 취직하는 데도 출세하는 데도 큰 덕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늙어서 쪼글쪼글해지고 죽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의 겉모습을 보지 않고 속 중심을 살펴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심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첫째, 그 진실성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가운데 중자와 마음 심자가 의미하듯이 그 마음의 진실성을 의미합니다. 겉으로는 착해 보이지만 속은 거짓된 사람이 있고 겉으로 별로 착해 보이지도 않는데 지나볼수록 진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부모가 지켜보나 안보나 진실하게 양떼를 지키고 형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말거나 어려서부터 양새끼 하나라도 곰이나 사자에게 물려 갈새라 진실하게 돌보는 목동이었습니다.

실로 그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으로 믿어지고 거짓된 사람, 위선자는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이 갑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진실된 사람만이 참되고 굳건한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충성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충성심이란 가운데 중자 밑에 마음 심 자가 충자인 것처럼 무슨 일에나 눈가림만 하지 않고 마음 한 가운데를 바쳐서 충성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껍데기로만 믿고 건성으로만 믿는 사람은 시험과 핍박이 올 때, 목사나 교인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타락하거나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 중심이 충성스러운 자는 그러한 것들에 관계없이 신실한 믿음을 보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도 나타납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약속을 어찌하든지 잘 지키도록 노력하는 사람이고 충성된 사람은 변덕을 잘 부리지 않고 눈가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민 30:2; 신 23:21~23; 엡 6:24; 계 2:10).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진실함과 충성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2. 사람은 행위의 결과만 보지만, 하나님은 숨은 동기를 살펴보십니다.

사람은 눈앞에 나타난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전에 그 마음과 생각 속에 숨은 동기를 살펴보십니다. 사람들은 동기가 불순해도 결과적으로 나타난 행위만을 중요하게 보지만 하나님은 모든 행위의 숨은 동기를 살피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은 외면적이요, 형식적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내면적이요, 영적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마음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속으로만 욕을 하고 저주를 했어도 숨은 동기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살인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는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은 숨은 동기를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실로 간음죄, 살인죄를 범치 않으려면 항상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생각에 죄악의 동기를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벌써 마음속에 악한 마음을 품으면 죄의 결과는 시간 문제이지 언젠가는 나타나고야 맙니다. 그러므로 '새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틀지는 못하게 하라'는 청교도의 속담대로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마귀의 생각, 악한 생각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시 139:23, 24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중심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했습니다. 시 51:6절에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중심의 동기를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깨끗한 마음을 품도록 해야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해서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하여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목하에 살인, 파괴, 어떤 잔인한 행동도 서슴치 않고 자행합니다만 그 동기의 의로움과 과정의 선함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요, 그것은 결국 마귀의 사상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많은 사람이 헌금 궤에 돈을 넣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셨습니다. 아무래도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는 것이므로 주님께서도 헌금하는 것을 유심히 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씀하시기를 한 과부가 동전 몇 푼을 넣는 것을 보시고 제일 많이 바친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겉에 보이는 결과, 즉 액수는 많지 않아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생활의 전부를 바치는 과부의 정성어린 헌금의 숨은 동기를 무엇보다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3. 사람은 육신을 귀히 보지만 하나님은 영혼을 귀중히 보십니다.

세상에 있는 금, 은 보석을 다 모아다가 여의도 광장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 많은 물질보다 그 옆에 서 있는 한 거지의 영혼이나 어린아이의 영혼이 더 귀중합니다. 예수께서도 '한 영혼이 온 천하 물질 세계보다 더 귀중하다'고 하셨습니다.

계란의 껍질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흰자위가 더 중요하고, 흰자위보다 노른자위가 더 중요하듯이 사람의 육신보다 그의 영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육신은 100년 살다 죽지만 영은 영원한 것입니다. 고로 육신보다 영혼은 억만배 더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도 육신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다고 봅니다. 가령 '믿습니다' 한 마디 해도, 입으로만 '믿습니다'하는 것이 있고, 정말 영혼 깊은데서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서 '믿습니다'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믿음이라야 참 믿음으로 보십니다. 찬송가를 불러도 아무 생각없이 육신의 목소리만 내는 사람이 있고, 영적으로 진실하게 부르는 찬송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배라고 하나님이 다 받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영적인 예배이고 이러한 영혼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영혼을 귀중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영적인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영적인 믿음은 보이는 것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태산과 같은 어려운 문제가 가로 놓였어도 보이는 산을 보지 않고, 안보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영적인 참된 믿음입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눈에 보이는 철옹성벽 같은 여리고 성을 보고 실망, 낙담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보이지 않지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그까짓 것 두려워 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좋은 다윗 앞에는 양떼를 지킬 때에 맹수가 나타나는 것이나, 무적장수 골리앗이나 다 똑같이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맹수가 나타나든지, 어린아이가 나타나든지, 무시무시한 골리앗이 나타나든지 그것이 결코 두려움과 요동함을 주는 것이 못됩니다. 참된 영적인 믿음은 보이는 것에 지배를 받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7절에 보면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 11: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은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감정이나 느낌이나 기분에 의해 좌우되면 아직 온전한 영적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전에 성령의 불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설교를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꼭 뜨끈화끈한 느낌이 와야만 '아하, 하나님이 임재하셨구나!'하는 믿음이 생기고,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불이 와야만 낫는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성숙해 가면서 깨닫는 바는 아무런 감정적인 느낌이 없는데도 믿고 기도할 때 불치의 병도 잘 고쳐 주시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느낌(feeling)에 의존하는 것도 영적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뜨끈화끈 안해도, 환상이 안 보여도 말씀에 의지하고 전폭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던지고 믿는 믿음이 영적인 믿음이요 하나님이 귀중히 보시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병 낫기 위해 기도했을 때, 느낌에는 변화가 없고 여전히 쑤시고 아파도 흔들리지 말고 믿고 나가야 낫습니다.


셋째, 영적인 믿음은 인간적인 이해 타산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이해나 계산과 타산은 육에 속한 것이지 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영적인 믿음으로 옥합을 깨뜨려 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으나, 제자 중에 예수님을 은 30량에 팔아 먹은 가룟 유다는 얼른 그것을 계산해서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것을 핑계로 비싼 나드 향유를 허비했다고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를 책망하고 마리아를 칭찬했습니다.

아낌없는 십일조와 헌금을 바쳐서 하나님의 기적이나 축복을 체험한 사람은 모두 인간적인 이해 타산과 계산을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고 손해인 것 같으나 아낌없이 하나님께 먼저 바쳐보니 사실은 손해가 아니라 축복이 됨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고후 10:5), 참된 영적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의 지배를 받지 않고,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인간적인 이해 타산을 초월한 영적 믿음을 귀중히 보십니다.


성도 여러분! 부디 사람 앞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보여지는 것에 더 신경을 쓰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출처 : 그레이스말씀동산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사십시오

[사무엘상 31장 1절~13절]
1절 -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절 -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절 -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절 -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절 -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절 -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절 -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8절 -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절 -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절 -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절 -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절 -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절 -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블레셋이 도망하는 사울의 아들들을 죽입니다. 사울은 패전하고 중상을 입자 스스로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집니다. 블레셋이 사울의 갑옷을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으니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 장사합니다.

1. 사울과 세 아들의 죽음 (1~6절)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분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에게는 불행한 최후가 있을 뿐입니다.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 패하고 흩어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세 아들을 추격해서 모두 죽입니다. 쫓기다가 중상을 입은 사울은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칼에 모욕을 당할까 두렵다며 무기 든 자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무기 든 자는 사울 죽이기를 두려워합니다. 결국 사울 스스로 목숨을 끊고, 무기 든 자도 따라 죽습니다. 이스라엘 왕과 세 왕자들이 한날에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끝은 허무하게 사울의 삶이 막을 내립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인생에는 이렇듯 영광이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사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사울의 비참한 말로를 보며 어떤 경각심을 갖게 되나요?

2. 사울과 세 아들을 장사함 (7~13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합니다. 사울과 세 아들의 시체가 길보아 산에서 발견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겨 블레셋 땅 사방에 보냅니다. 승리의 소식을 전하고 원수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울의 갑옷은 아스다롯 신전에 놓이고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사울의 죽음을 슬퍼한 이들이 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내려 아베스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에셀 나무 아래 장사한 뒤 7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이 왕이 되기 직전에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기억한 것입니다(11:1~11).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거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누구며,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울을 보며, 저의 마지막이 어때야 할지 생각합니다.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저를 붙잡아 주소서. 주님의 은혜와 사람들의 도움을 기억하며 늘 감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나눌수록 든든히 서 가는 하나님 나라

[사무엘상 30장 21절~31절]
21절 -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22절 -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23절 -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24절 -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25절 -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6절 -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27절 -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28절 - 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
29절 - 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30절 -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31절 -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브솔 시내에 머물렀던 200명에게 전리품을 주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시고 아말렉을 넘겨주셨으니 모두의 분깃이 동일하다며 같이 분배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전리품의 일부를 유다 장로들에게도 보냅니다.

1. 약자 편에 선 다윗 (21~25절)
참된 지도자는 약자를 품는 아량이 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과의 전쟁에 함께 가지 못했던 사람들을 돌아봅니다. 그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행군하다가 지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무리 중에서 악한 자들은 약자들을 돌보고 전리품을 함께 나누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했고 모든 전리품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강조하며, 전쟁에 나갔던 사람이나 후방에서 소유물을 지킨 사람 모두에게 공평히 전리품을 나누어 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자신과 함께한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는 한 몸임을 생각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무리 중 일부가 불만을 품은 이유는 무엇이며, 다윗은 왜 모두에게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임을 기억할 때, 약한 지체들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2. 다윗의 나눔 (26~31절)
다윗은 유다의 장로들과 여러 지역 사람들에게도 전리품을 보내며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이라고 전합니다. 자신이 비록 블레셋 땅에 피신해 있으나 동족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 일로 유다 사람들은 다윗의 존재를 상기하고, 훗날 정식으로 왕위에 오를 그의 지지 기반이 구축됩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왕래하던 지역의 사람들에게도 전리품을 보냅니다. 어려웠던 시절에 자신을 도와준 그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은 것입니다. 나눔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려한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사람에게는 풍성한 미래가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다윗이 유다의 장로들과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리품을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것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웃과 나눌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세상은 강하고 유능한 사람들을 우대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도 귀히 여기며 존중함을 기억합니다. 다윗처럼 연약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원리를 실천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시글락의 비극과 회복

[사무엘상 30장 1절~20절]
1절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절 -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절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절 -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절 -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절 -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7절 -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8절 -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9절 -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10절 -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11절 -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12절 -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13절 -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14절 -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15절 -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16절 -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17절 -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18절 -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절 -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20절 -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1. 잠시 시글락을 비웠다가 돌아온 다윗 일행에게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나요?(1~6절)
아말렉이 시글락에 쳐들어와 성읍을 불사르고 거기에 있던 다윗 일행의 가족들을 다 사로잡아 끌고 갔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은 소리 높여 울었으며, 이 사태로 낙심한 백성은 분개하여 다윗을 돌로 치려 합니다. 다윗은 크게 다급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습니다.
다윗과 그의 일행 600여 명은 사울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신했습니다. 아기스 왕에게 성읍 시글락을 받아 그곳에서 지내던(27장) 다윗 일행은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아기스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려 했으나 블레셋 방백의 반대로 참전하지 못하고 3일 후에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처자들은 아말렉에게 사로잡혀 간 뒤였습니다. 다윗은 일전에 약탈을 일삼는 아말렉을 공격한 적이 있습니다(27:8). 이 때문에 아말렉이 시글락을 침략해 보복을 감행한 것입니다. 특히 다윗이 시글락을 비워 두고 있던 때였으니 아말렉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마을이 불타고 처자들이 사로잡혀 간 것을 알게 된 백성은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고, 이로 인해 분위기는 험악해졌습니다. 다윗은 도피 생활에서 겪는 굴욕과 긴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동고동락해 온 동료들로부터도 배척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이 극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해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 사람들에게 비난받거나 배척당해 낙심할 만한 상황에서 어떻게 용기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나누어 보세요.
시글락 성읍이 아말렉에게 노략당하고 모든 가족이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다윗 일행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재난의 모든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해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른 사람들과 대조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계속되는 도피 생활, 가족들이 납치당한 비극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절망하고 분노했지만 다윗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도리어 용기를 내어 백성을 안정시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말렉이 시글락에 남아 있던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데려간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이전에 다윗이 아말렉을 쳐서 남녀를 살려 두지 않았던 것을 생각한다면(27:9, 11) 하나님은 아말렉의 마음을 친히 주장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2절)라는 구절이 그런 상황을 강조합니다. 우리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할 때, 그래도 희망을 갖게 하는 실마리를 찾으려 할 때 위기 상황에서도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2. 다윗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요?(7~8절) 이후 아말렉을 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9~20절)
먼저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을 쫓아가라고 말씀하시자 군사를 데리고 아말렉을 추격합니다. 추격하던 중 애굽 소년을 만나고 그의 인도로 아말렉의 소재를 파악해 공격함으로써 노략당한 물건과 가족을 모두 되찾습니다.
다윗은 아말렉을 공격하러 떠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다윗은 한시라도 빨리 아말렉을 뒤쫓아야 했지만 그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묻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한 다윗은 6백 명과 함께 아말렉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아말렉을 추격하다가 시글락 남쪽 약 25킬로미터 지점 브솔 시내에 당도합니다. 그곳에서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2백 명을 남겨 두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그때 기진맥진한 애굽 소년을 만나게 되었고 굶주리고 지친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보살펴 줍니다. 애굽 소년은 아말렉 군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의 인도로 다윗은 아말렉을 쉽게 찾아냅니다. 아말렉은 그들의 승리를 자축하며 술에 취해 있었고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다윗 일행은 아말렉을 진멸하고 처자들과 모든 소유를 온전하게 되찾습니다. 지치고 낙심했던 이들에게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큰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행동해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다윗은 온 백성이 절망으로 분노해 그를 돌로 치려 할 때 비난과 낙망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아말렉을 추격하기에 앞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이나, 브솔 시내에서 지친 자들을 남겨 둔 것, 사흘 밤낮을 굶주린 애굽 소년을 만나 그를 선대한 행동은 긴박한 순간에도 다윗이 신앙을 지키고 긍휼의 마음을 가졌음을 알게 합니다. 결국 애굽 소년이 다윗 일행을 아말렉이 있는 곳까지 인도해 줍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분만을 의지하는 다윗을 위해 필요한 순간마다 간섭하신 결과입니다. 다윗 일행은 아말렉과 싸워 그들을 진멸합니다. 잃었던 가족과 그들의 소유를 되찾고 더 나아가 아말렉 족속의 전리품까지 얻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한 다윗의 믿음,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빚어낸 감동의 드라마였습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다윗 일행이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로 인해(29:3~5)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고 다시 시글락에 돌아옵니다. 그때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1절),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이전에 다윗이 행한 공격(27:8~9)에 대한 보복이며 재산을 약탈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시글락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을 지키던 다윗이 북쪽 아벡(29:1)에 있어서 시글락은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이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2절) 간 것은 이들이 무장하지 않은 연약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며 이들을 노예로 팔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피폐해진 시글락을 본 다윗은 크게 다급했습니다(6절). 여기서 ‘다급하였다’는 것은 ‘답답하다’, ‘곤란하다’란 의미로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는 감정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마음을 진정시킨 다윗은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하는데(7절), 이는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 뜻을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망명지의 고달픈 삶에 비극적 상황까지 겹쳐 다윗은 낙심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일어납니다. 용기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족들이 ‘죽지 않고’ 포로로 끌려간 사실을 새롭게 봅니다. 백성의 적개심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께 시선을 둡니다. 애굽 소년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습니다. 절망한 부하들을 다시 준비시켜 아말렉을 향해 행군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뜻을 묻고, 브솔 시내에서 지친 자들을 머물게 하고, 애굽 소년에게 긍휼을 베푼 다윗은 참된 지도자의 본이 됩니다. 다윗이 가진 긍정의 눈, 불굴의 믿음, 긍휼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함께 기도하기
- 어렵고 답답한 한계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새 힘을 얻으며, 하나님을 의지해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 삶의 여정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게 하시고, 예비하신 만남을 통해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29장 1절~11절]
1절 -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절 -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절 -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절 -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절 -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6절 -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절 -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8절 -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9절 -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절 -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11절 -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나아가자 블레셋 방백들이 트집을 잡습니다. 망명 이후 허물이 없었다며 아기스가 다윗을 변호하지만,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이 자신들을 죽여 사울과 화합할지 모르니 그를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다음 날 새벽에 다윗은 블레셋으로 돌아갑니다.

●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다급한 마음에 도피처로 삼은 블레셋에서도 어려움을 만납니다. 이스라엘과 전쟁하러 나아가던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발견하고 분노한 것입니다. 한때 그는 이스라엘 최고의 용사로서 블레셋의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을 신뢰하지만,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을 믿지 못합니다. 결국 다윗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옵니다. 이로써 뜻하지 않게 동족과 싸울 뻔한 난감한 상황을 넘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잘못된 선택으로 어려움에 빠진 자녀에게조차 피할 길을 주시며 보호의 손을 내미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입니다.

* 묵상 질문
다윗이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데 참여했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까요?
* 적용 질문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을 언제 경험했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만 참된 도움이요 위로자 되십니다

[사무엘상 28장 15절~25절]
15절 -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16절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절 -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절 -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20절 -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21절 -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가 심히 고통 당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순종하였사오니
22절 - 그런즉 청하건대 이제 당신도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내가 왕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하니
23절 - 사울이 거절하여 이르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의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24절 -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가져다가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25절 - 사울 앞에와 그의 신하들 앞에 내놓으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셨으며 사울의 나라를 떼어 다윗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또 그가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손에 넘기신다고 합니다. 사울이 두려움과 고통으로 기진해 땅에 엎드러지자 여인이 강권해 음식을 먹게 합니다.

1. 심판 선언 (15~19절)
우리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 그분을 찾고, 불러야 합니다(사 55:6). 사울은 하나님이 곁에 계실 때 그분을 전심으로 찾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해 다급해지자, 신접한 여인을 찾아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합니다. 자신이 과거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았고 많은 조언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들은 것은 반복된 파멸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떠나셨고, 그의 나라를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사울도, 그 아들들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피해 죽을 것입니다. 사울이 버림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사울은 왜 심판 선언을 받게 되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아직 기회 주실 때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기력이 다한 사울 (20~25절)
사울은 하루 종일 음식도 먹지 못한 채 계시를 고대했지만, 자신과 아들들의 비참한 최후만 듣고 절망하며 탈진해 쓰러집니다. 신접한 여인이 고통스러워하는 사울을 보고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겠다고 합니다. 사울은 여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신하들과 여인의 강권으로 마지못해 침상에 앉습니다. 여인은 집에 있던 송아지를 잡고 무교병을 구워 사울과 신하들에게 제공합니다. 신접한 여인이 사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의 동정일 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시요 위로자시며, 삶의 이유와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최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사울이 땅에 엎드러질 정도로 기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세상적인 위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오늘의 기도
사울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비참한 말로를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지 않도록,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소서. 주님이 제 삶의 모든 것 되심을 기억하며, 늘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을 붙들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상 28장 1절~14절]
1절 -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2절 -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3절 -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절 -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절 -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절 -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절 -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절 -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9절 -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10절 -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절 -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12절 -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절 -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절 -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싸우려고 진을 칩니다.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진 사울은 여호와께 물었으나 답을 얻지 못하자 신접한 여인을 찾아 엔돌에 갑니다. 변장한 사울은 그 여인에게 사무엘을 불러올리게 합니다. 여인은 사무엘의 영을 보고서 사울을 알아봅니다.

1. 아기스 왕의 요구 (1~2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모집합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과 그 일행도 블레셋 편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한 아기스 왕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입니다. 이에 다윗은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라며 애매하게 답합니다. 아기스 왕은 이 모흐한 반응을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하고, 다윗을 자신의 경호 대장으로 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윗은 아기스 왕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고, 동족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집니다. 사울의 추격을 피해 임의로 간 블레셋에서 다윗은 이처럼 더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현실이 괴롭다고 성급하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피하려고 하면 결국 또 다른 괴로움을 만나게 됩니다.
* 묵상 질문
다윗은 동족과 전쟁을 하라는 아기스 왕의 요구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 적용 질문
잘못된 선택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경험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2. 사울의 영적 범죄 (3~14절)
사울은 왕이 되고 나서 신접한 자와 박수를 쫓아냈던 사람입니다(3절). 하나님의 계시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은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서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아무런 계시도 주시지 않자, 신접한 여인을 찾기로 마음먹습니다. 신하들이 엔돌에 사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내자, 사울은 변장하고 그 여인에게 가서 이미 죽은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청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사울은 불안 속에 영적으로 혼미해져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초혼술이나 점술에 해답이 있을 리 없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지 않으면 세상 것을 붙잡게 됩니다.
* 묵상 질문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대신 세상 풍속을 따르려는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면 언제며, 어떻게 반응했나요?

오늘의 기도
어제는 믿음의 사람이었을지라도 오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면 혼란과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왕의 자녀 된 신분을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온전한 믿음을 추구하십시오

[사무엘상 27장 1절~12절]
1절 -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2절 -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3절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4절 -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5절 -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6절 -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7절 -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8절 -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9절 -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
10절 -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11절 - 다윗이 그 남녀를 살려서 가드로 데려가지 아니한 것은 그의 생각에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다윗이 행한 일이 이러하니라 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거주하는 동안에 이같이 행하는 습관이 있었다 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12절 - 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피하니 사울이 수색을 멈춥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청해 시글락을 받아 그곳에서 1년 4개월간 삽니다. 다윗은 그술과 기르스와 아말렉 땅을 쳐서 모두 죽이고 마치 유다 땅을 침노한 것처럼 말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영원히 자기 부하가 될 줄 압니다.

1. 블레셋으로 피신함 (1~7절)
다윗은 블렛 땅으로 피신하기로 결정합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러 강대국 블레셋까지 찾아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600명과 그들의 가족을 모두 이끌고 블레셋 주요 도시 중 하나인 가드의 왕 아기스에게 가기로 합니다. 다윗이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하나님께 물어보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블레셋에 가기로 한 것은 믿음에 근거한 결정이라기보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상황에 따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그에 따른 문제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잘못된 선택과 결정 속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나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바르고 복된 길입니다.
* 묵상 질문
다윗이 블레셋의 아기스 왕에게 피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적용 질문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 아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정직하지 못한 다윗 (8~12절)
아기스 왕의 도움으로 작은 성읍 시글락에 머물게 된 다윗은 남방에 거주하는 그술 사람,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을 공격해 약탈합니다. 이들은 옛날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힌 족속들이기에 다윗의 공격 대상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누구를 침노했느냐고 질문하는 아기스에게 남쪽 변방의 유다와 여라무엘과 겐 족속을 쳐서 약탈했다고 둘러댑니다. 자기 동족인 유다와 그 동맹 족속을 공격했다고 위장함으로써 아기스의 신임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예상대로 아기스는 이 일로 다윗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기스를 속인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죄는 그 어떤 것이든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아기스 왕에게 거짓말한 다윗의 영적 상태는 어떠할까요?
* 적용 질문
모두 하는 처세술이라며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두려움 때문에 주님께 묻지 않고 성급하게 결정하며 제 생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요? 가장 불안하고 힘겨울 때 십자가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서 참평안을 누리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무력 대신 신앙의 힘으로

[사무엘상 26장 13절~25절]
13절 - 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
14절 - 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절 -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절 - 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
17절 -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18절 - 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9절 -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20절 - 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
21절 -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22절 - 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23절 -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절 -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절 -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건너편 산꼭대기에 서서 아브넬에게 왕을 보호하지 않았다고 책망하며, 왕의 창과 물병을 찾아보게 합니다. 또 사울에게 이스라엘 왕이 왜 벼룩 같은 자기를 수색하느냐고 묻습니다. 사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자 다윗은 사울의 창을 보내고, 각자 갈 길을 갑니다.

1. 다윗의 호소 (13~20절)
산꼭대기에 올라가 안전거리를 확보한 다윗은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을 책망합니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어째서 제대로 경호하지 못하고, 왕의 창과 물병이 없어진 것도 모르느냐며 꾸짖습니다. 다윗이 아브넬의 직무 유기를 지적한 것은 왕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던 상황을 알리며, 자신에게는 왕을 해할 의도가 없음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또한 다윗은 사울에게 결백을 호소하며, 왕을 충동질해 자신을 해하려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 뜻에 따라 죽음을 달게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선악을 판단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다윗은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을 책망하면서 무엇을 알리고자 했을까요?
* 적용 질문
무력을 쓰지 않고 대화와 호소로 문제를 풀려는 다윗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2. 다윗의 의로움 (21~25절)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자신이 죄를 범했다고 인정하며 사과합니다. 하지만 사울의 사과에는 언제나 진정성이 부족합니다. 그가 곧 마음을 바꾸어 다시금 다윗을 해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공의와 신실함을 따라 갚아 주실 것이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울 왕을 내주셨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사울 왕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 것처럼, 하나님도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모든 환난에서 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의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는 이는 다른 사람 모두가 불의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의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 묵상 질문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면서 특히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의지하나요?

* 적용 질문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내 삶의 현장에서 보여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사람에게 애써 억울함을 변명하고 호소하기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먼저 부르짖기를 원합니다. 공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이 제 진심을 들으셨음을 믿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울을 또다시 살려 준 다윗

[사무엘상 26장 1절~12절]
1절 -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절 -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절 -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절 -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절 -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절 -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절 -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절 -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절 -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절 -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절 -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절 -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1. 다윗의 행방을 알게 된 사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1~3절) 반면, 사울의 행적을 알게 된 다윗은 어떻게 했나요?(3~5절)
사울은 십 사람에게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듣고 3천 명의 군사를 택해서 하길라 산 길가에 진 칩니다. 사울이 자기를 찾아 광야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된 다윗은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확인한 후 직접 가서 사울과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살핍니다.
십 사람이 사울에게 다윗이 하길라 산에 숨어 있다고 알립니다. 그러자 사울은 군사 3천 명을 뽑아 다윗을 잡으러 갑니다. 엔게디 굴에서 자신을 선대했던 다윗(24장)을 죽이려고 다시 나선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악신의 영향을 받고 있는(16:14; 18:10) 그의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십 사람들이 화를 당하게 될 것을 염려했는지, 아니면 상급을 얻으려고 그랬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다윗의 소재를 사울에게 알립니다. 이를 들은 사울은 다윗을 향한 추격을 재개합니다. 분명히 다윗이 그를 선대했음을 알고(24:18)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24:20) 다시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악 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사울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에 비해 다윗은 정탐을 통해 사울이 매우 가까운 곳에 이른 것을 알아내고 자기의 눈으로 직접 사울의 진영을 확인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기까지는 사울이 야비한 행동을 하려 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 잘못인 줄 알면서도 주변의 작은 유혹과 충동을 못 이겨 계속 되풀이하는 죄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사울은 십 사람의 말을 듣자마자 군사 3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숨어 있는 곳으로 갑니다(2절). 이처럼 성결하지 못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이미 결심했던 좋은 생각을 쉽게 버리고, 개처럼 그 토한 것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사울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죄악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유혹의 손길을 멀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십 황무지의 하길라 산은 전에도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에게 알려 준 적이 있는 바로 그 장소입니다(23:19). 이들은 사울이 다윗을 해할 방법을 찾고 있으리라 추측하고 은근히 사울을 선동한 것으로 보입니다(1절). 슬며시 다가오는 유혹의 발걸음과 그런 유혹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마음이 합쳐질 때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이것을 끊는 방법은 성령의 역사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겸손히 행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2. 무방비 상태의 사울을 본 아비새의 요청은 무엇이었으며(6~8절), 그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어떠했나요?(9~12절)
다윗과 아비새가 진영에 들어가 보니, 사울과 백성이 모두 자고 있었습니다. 이에 아비새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습니다”라며 사울을 죽이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며 여호와께서 친히 그를 치실 것이라고 합니다.
날이 어두워진 후에 아비새와 함께 사울 진영으로 들어간 다윗은 뜻밖의 장면을 목격합니다. 군사들은 경계를 서지 않고 있었으며, 사울은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워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비새는 하나님이 다윗의 원수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신 것이니 그를 죽이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울을 죽이도록 여호와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전에 엔게디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를 치는 것은 분명한 범죄이며,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이니 그에게 죽을 날이 이르거나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의 생사는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고 믿었습니다.

* 내 뜻대로 일을 처리하고 싶은 충동과 하나님 손에 맡기고 기다리라는 말씀이 마음속에서 충돌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하나요?
사울이 아무리 악을 행한다 해도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이므로 그를 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고 다윗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누군가가 그를 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명백한 죄악이라고 믿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셔서 그에게 죽을 날이 이르게 하거나 전장에서 죽게 하실 것이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잠든 사울의 머리맡에 꽂혀 있는 창을 보는 순간 다윗은 과거에 자신을 창으로 죽이고자 했던 사울의 분노와 그로 인한 자기 마음의 상처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하 아비새가 자신의 손으로 단번에 사울을 죽일 수 있으며 이 기회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의 마음은 적지 않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으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확고했고 그의 신앙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사울의 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토록 깊이 잠든 것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라고 밝힙니다(12절). 다윗이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게 사울의 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가장 합당한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일하시리라는 것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따라온 줄 알고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쫓겨 다니기에만 급급했던 상황과 달리 이제 다윗이 사울의 생명에 대해 주도권을 갖기 시작했음을 보여 줍니다. 사울은 진 가운데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진’은 ‘방책’(barricade)을 의미합니다. 당시 ‘방책’은 병거 및 마차 등으로 이뤄졌을 것입니다. 사울은 적이 침입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고 여겼겠지만 하나님은 그와 군사들을 모두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깊은 잠’에 해당하는 ‘타르데마’란 단어는 하와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아담의 몸에서 갈비뼈를 빼내시며 그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는 장면에서 사용되었습니다(창 2:21). 그런 사울을 보고 아비새는 하나님이 그를 다윗의 손에 ‘넘기셨다’고 말합니다. ‘넘기셨다’의 원어 ‘시가르’는 ‘에워싸다’, ‘양도하다’란 뜻으로, 꼼짝 못하게 붙들어 놓고 완전히 넘겨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사울은 십 사람들의 밀고로 다시금 다윗을 죽이러 쫓아갑니다. 동일한 죄악을 되풀이하며 멸망의 길로 치닫는 사울의 모습은 다윗의 태도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며 이스라엘 첫 왕의 쇠망과 새 왕의 흥왕을 예고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울의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추격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그 기회를 포기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의 처분권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힘써야 할 일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함께 기도하기
- 유혹이나 충동이 마음을 뒤흔들 때, 예수님의 대속이 저를 죄에서 해방시켰다는 진리를 굳게 붙잡고 반복된 죄의 습관을 뿌리치게 하소서.
-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되새기며 제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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