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난국에 처한 길르앗 야베스 11:1-4
암몬 사람들은 롯의 자손이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중히 대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나쁜 이웃이었다(참조. 신 2:19). 길르앗 야베스는 몇해전에 기브아의 악함에 대항하러 나오지 않음으로해서 이스라엘의 정의의 칼에 맞아 멸망했었다(삿 21:10). 그런데 지금은 그당시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 번성해졌는데 암몬 사람들에게 멸망할 위기에 청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불운만이 따르는것 같았다. 암몬왕 나하스가 그곳을 포위하였다(대상 19:1).
(1) 포위당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친선하자고 제의했다(1절).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항복하고 너희를 섬기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인으로서의 덕을 잃어버렸다. 그렇지않았다면 그처럼 이스라엘인의 용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며 암몬 사람들을 섬기겠다고 순순히 항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 길르앗 야베스를 포위한 자들은 그들에게 아주 잔인한 제안을 하였다. 그들은 '오른쪽 눈을 다빼어야' 목숨을 살려주고 노예로 삼겠다고 제안했다(2절). 길르앗 사람들은 재산과 자유를 포기하는데 만족했다. 그러나 그들이 굴욕적으로 양보하자 암몬 사람들은 더오만한 요구를 하였다.
1) 암몬 사람들은 길르앗 사람들을 매우 가혹하게 괴롭히려고 했다. 즉 눈하나를 빼어서 고통스럽게 하려고 했다.
2) 암몬 사람들은 길르앗 사람들이 전쟁할수 없게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당시에는 왼손에 방패를 들고 싸웠으므로 왼눈은 실상은 장님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3) 포위당한 길르앗 사람들은 이 제안에 대해서 칠일동안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하였다(3절). 나하스는 그같은 짧은 시간에 길르앗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기편의 우세가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여 칠일간의 유예를 주는 허세를 부렸다. 그래서 그들을 구출하지 못했다면 이스라엘의 수치는 더심했을 것이며 암몬의 승리는 더빛났을 것이다.
(4) 기브아에 이런소식이 전해졌다. 길르앗 사람들은 '이스라엘 온지경에 사자를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하스는 더욱 안심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자들은 자기들의 생각에서였는지 아니면 상관의 명령을 받아서였는지 기브아로 곧장 갔다. 그리고는 거기서 사울을 찾지않고 백성들에게 그소식을 전했다. 그소식을 듣고 백성들은 소리높여 울었다(4절).

Ⅱ. 사울이 길르앗 야베스를 구함 11:5-11
여기서 전개된 사건을 통해 사울의 명예가 높아졌으며 사울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 좋은 결실을 맺게된다.
(1) 사울의 겸손을 볼수 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백성들도 그를 왕으로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떼를 돌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몸소 짐승떼를 돌보러 나갔다가 저녁에 사환들과 함께 '밭에서 소를 몰고왔다'(5절). 바울처럼 그는 자기손으로 일을 했다. 그가 가사를 등한히 한다면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겠는가?
(2) 이웃에 대한 관심을 엿볼수 있다. 사람들이 울고있는 것을 보자 그는 "백성이 무슨일로 우느냐"(5절). 해결할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그들을 도울 것이요 그렇지 못한 일이라면 나도 함께 울리라"고 하였다.
(3) 이스라엘의 안전과 이스라엘의 명예에 대한 열정을 볼수 있다. 암몬 사람들의 오만불손함과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길르앗 야베스가 재난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위대한 생각이 떠올랐으며 '노가 크게 일어났다'(6절). 그는 암몬 사람들의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났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비열하게 굽신거리는데에도 화가 났고 그소식을 듣고는 싸울준비는 안하고 울고있는 백성들을 보고도 화가 났다.
(4) 사울은 이같이 중요한 시기에 자기의 권위와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곧 자기가 나라일을 염려하고 있으며 들에서 소떼를 모는것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을 싸움터로 나가게 하는 방법을 알고있음을 이스라엘이 알게했다(5,7절). 그는 이스라엘 온지경에 출동명령을 내려서 모든용사들은 무장을 하고 베섹에 있는 집합장소로 모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수 있다.
1) 사무엘과 함께 직무를 수행하는 사울의 겸손함을 볼수 있다. 그는 왕의 직분을 수행하면서도 선지자의 직분을 무시하지 않았다.
2) 자기명령에 복종하지 않는자들에게는 형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는 속에서 사울의 유순함이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다. 그는 소의 각을 떠서 이스라엘 성읍에 두루 보내었다. 그리고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자에 대해서는 "그들도 이와같이 하리라"고 한것이 아니라 '그소들도 이와같이 하리라'고 위협하였다. 출동명령의 결과 나라의 의용군이나 훈련받은 군사들이 모두 '한사람같이 나왔다.' 그이유는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모두 사람들에 대한 의무 특히 통치자에 대한 의무를 의식한다.
(5) 이 중요한 일을 사울은 매우 사려깊게 처리한다(8절). 그는 자기에게 나온자들의 수를 세었다. 그것은 자기편의 군사력을 파악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생각하려는 것이었다. 이 소집명령에서 유다는 비록 혼자의 숫자이긴 하지만 참으로 미약했던것 같다. 집결지가 유다지파내에 있는 베섹이었는데도 전체 숫자의 십일분의 일밖에 안되는 3만명에 불과했다.
(6) 이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사울의 믿음과 확신 그리고 용기와 결심을 볼수 있다. 사울은 이러한 확신을 길르앗 사람들에게도 심어주었다(사무엘이 사울을 격려했던것 같다). 즉 "내일 원수들이 칠일간의 유예가 다끝났다고 말하기전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9절). 너희 맡은일만 잘 준비하라. 그러면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포위하는동안 너희는 암몬 군사들을 공격하라." 사울은 자기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으며 분명한 부르심이 있고 하나님이 자기편임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성공할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이는 포위당한 길르앗 사람들에게는 기쁜소식이었다. 그들은 이소식을 듣자 기뻐하며 자기들에게 전해진 승리의 확신을 믿었다. 그들은 원수의 진영에 사람을 보내서(10절) 다음날 그들을 만날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암몬 사람들은 그말을 그들이 구원받을 길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는 안심했다.
(7) 이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사울의 부지런함과 열심을 볼수 있다.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면 경험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일을 훌륭하게 처리하게 된다. 이제 사울은 많은 군사(특히 당시의 형편과 비교할때)를 거느리고 요단을 지나 약60마일을 행군하였다. 그의 군대에는 마병은 없고 보병뿐이었다. 그는 이들을 삼대로 나누었다(11절). 믿을수 없을정도로 재빠르게 적진으로 쳐들어갔다. 사울은 '내일 해가 더울때에'(9절) 돕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한 이상으로 잘지켰다. 즉 새벽에 적진에 쳐들어 간것이다(11절). 믿을수 없을정도로 용감하게 그는 원수에게 쳐들어갔다. 아침일찍 그는 군사들가운데 있었으며 군사들은 삼대로 나뉘어 그들을 공격하여 사방에서 에워쌌다. 암몬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을 공격해볼 겨를이 전혀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울의 명예를 공고히 하시려고 사울의 이러한 미덕을 성공으로 장식해 주셨다. 길르앗 야베스는 구출되었으며 암몬 사람들은 완전히 패주하였다.

Ⅲ. 승전기념 화목제 11:12-15
여기서 우리는 사울이 쟁취한 위대한 승리의 개선을 볼수 있다.
(1) 이번사건을 통해서 백성들은 사울의 명예에 대해 열의를 보였으며 사울을 업신여겼던데 대해서 분개했다. 사울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을 반대하던 비류들은 앞으로 끌려나와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12절). 사울이 보잘것없이 보였을때는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그들을 처단하자는 말을 못하던 백성들이 이제 사울이 승리해서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게되자 그들을 죽여야한다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2) 이번사건을 통해서 사울은 자신의 너그러움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즉 사울은 사무엘의 대답을 들어볼것도 없이 그러한 제안을 묵살하였다(13절). 이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1) 왜냐하면 이날은 기쁨과 승리의 날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13절). "하나님은 우리모두에게 선을 베푸셨은즉 우리도 서로 해하지 말자."
2) 왜냐하면 사울은 오늘일로 말미암아 그들의 생각이 바뀌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사람이 자기들을 구원할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전에는 멸시하던 자기를 존경하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사람들만 돌이켜 놓으면 다시는 그들이 사울을 방해하지 않을것이며 사울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원수를 친구로 만들수 있다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이로울 것이다.
(3) 이번사건을 기회로 사무엘은 모든백성을 '길갈에서 여호와앞에' 모았다(14,15절).
1) 그것은 하나님께서 최근에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승리를 공개적으로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2) 그것은 사울의 왕위를 전과는 달리 공고히하여 사울이 자기마을로 은거하지 않게하려는 것이었다.

# 핵심
11:1-15
사울은 왕이 되어 암몬족에 대해 첫승리를 거둔다. 이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이 입증되고 그의 왕권이 확고해진다.
사울(11:13)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라는 인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자신에게 유리하고 우호적일 경우에는 상당히 관대하고 겸손한 성품을 나타내 보이지만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가지 않을때는 마음씀씀이가 좁고 때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기까지 했다. 아말렉왕 아각을 살려준것(15:9), 다윗에 대한 그의 질투(18:7-9), 놉의 제사장을 학살한 행위(22:18), 미신적인 종교행위(28:8-19) 등이 이러한점을 증거한다. 그의 생애는 위대한 약속으로 시작하여 수치와 파멸로 끝났다.

# 묵상
용감한자 사울 ( 11:1-11 )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히기는 했으나 왕으로서의 실제적인 권한을 얻은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암몬족속이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사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암몬족속을 진멸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사울에게 왕으로서의 위치를 굳게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암몬과의 전쟁 ( 11:6-11 )
사울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족의 침입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접한후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어 군사를 이끌고나아가 암몬족을 진멸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감동과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타락이전의 사울의 생활상 ( 11:12, 13 )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귀를 찾으러 다녔고(9:1-4), 사환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으며, 그충고를 받아들였고(9:5-10), 사무엘에게 자신의 혈통과 가문을 겸손히 소개했으며(9:21),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심으로인해 예언을 했고(10:9-13), 왕이 되기까지 자신이 기름부음 받았음을 내세우지 않았으며(10:16, 22),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의분을 냈고(6절),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보복하지 않았습니다(13절). 사울이 모든일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했을때에는 하나님께서도 형통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울이 타락한 이후의 생활상
제사장직을 침범하여 스스로 망령된 제사를 드렸고(13:8-14), 전쟁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고자 경솔한 맹세를 했으며(14:24, 29),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고(15: 18,19), 왕위에 대한 집착으로 다윗을 시기했으며(18:7-9), 일곱번이나 다윗을 죽이려 시도했고(18:11; 20:31), 망명중인 다윗을 죽이려고 네번이나 추격했으며(23:13), 극도의 영적타락으로인해 엔돌의 무당을 찾아갔습니다(28:8).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대한 지속적인 경건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울왕의 권위를 확인해준 아말렉전쟁 ( 11:14, 15 )
아말렉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사울에게 왕이 될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이기회를 잘선용하여 사울은 왕권을 확실히 할수 있었습니다.

# 해설
암몬족에 승리하는 사울 ( 11 )
본문은 사울이 왕이 된후 최초의 전쟁을 수행하는 장면이 언급됩니다. 이를통해 사울은 이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임금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됩니다. 우리는 암몬왕 나하스가 요단동편의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였다가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퇴당하는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보게됩니다.
1. 전쟁의 원인
1) 암몬이 침공함
암몬은 요단동편 이스라엘땅 동쪽에 위치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암몬은 수시로 요단동편 땅을 침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암몬이 이스라엘을 침공한 원인은 이웃나라를 공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전쟁포로들을 노예로 삼아 경제성장의 수단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란 탐욕과 헛된 욕심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a.암몬과의 전쟁(삿11:5)
b.탐욕을 버리라(딤전6:6-9)
2) 평화조약을 거부함
암몬의 침공에 놀란 이스라엘는 곧 화친조약을 맺고 암몬과 평화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암몬은 자신들의 군사적 힘을 믿고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을 거부하였습니다. 끝까지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이 암몬의 목적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죄와 더불어 사는 인생가운데는 평화보다는 전쟁을, 화합보다는 분쟁을 더즐기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a.평강의 전파자가 되라(마10:12)
b.전쟁을 즐기는 타락한 세상(마24:7)
3) 사울이 전쟁소식을 들음
암몬의 전쟁위협에 임박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요단서편 기브아에 있던 사울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미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야베스 사람들은 사울이 그들을 도와줄 줄로 알았습니다. 이때 사울은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으로 임명된 자였지만, 특별한 위기상황이 없던 평상시에는 자신이 하던 일상생업에 게으르지 않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종사하였습니다. 참으로 통치자의 바람직한 모습을 잘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a.모범적인 통치자(롬13:4)
b.근면하고 성실하라(시126:5-6)
2. 전쟁의 경과
1) 성령의 능력을 받음
사울은 야베스 사람들의 도움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순간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 놀라운 힘과 능력을 받고 그힘으로 암몬족속들을 능히 격퇴하는 전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창과 칼을 준비할지라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실감케 됩니다.
a.하나님의 신으로 전쟁을 이김(삿3:10)
b.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잠21:31)
2) 의분을 느끼는 사울
야베스 사람들의 도움요청을 받은 사울은 크게 노하였습니다. 즉 의로운 분노를 느낀 것입니다. 동족들의 고통과 고난을 바로 자신의 고통으로 아는 사울이었기에 그는 야베스 사람의 위기를 듣고는 크게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는 동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일꾼을 하나님은 높이들어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a.애국자(롬9:3)
b.애국자를 들어 일꾼으로 사용하심(출3:10)
3) 전백성이 소집에 응함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하자, 모든백성들이 야베스 사람들을 돕기위한 소집에 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사람 도합 33만명이 군사로 모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동족을 향한 이런 사랑과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성도들에게는 원수조차도 사랑해야할 의무가 있는데, 하물며 우리의 사랑스런 이웃과 동족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성도의 올바른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a.이웃사랑(마22:39)
b.어려운 자를 돌아봄(딤전5:10)
3. 전쟁의 결과
1) 암몬을 전멸시킴
사울은 백성들을 이끌고 한밤중에 암몬족속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두사람이 함께한 자가 없을정도로 암몬족속을 전멸시켰습니다. 참으로 교만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평화보다는 전쟁을 더즐기던 암몬족속은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악을 일삼고, 화평보다는 전쟁과 분쟁을 즐기는 자들의 최후는 이렇게 비참한 종말일 뿐입니다.
a.악인의 종말(시1:5-6)
b.최후의 대심판(계21:8)
2) 주에 영광을 돌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사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여'라고 고백하며 찬양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찬양을 돌리며 감사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주께 영광돌릴줄 아는자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참으로 은혜를 알지못하고 은혜를 갚지못하는 자는 어찌보면 은혜를 아는 짐승보다 더못한 자입니다.
a.감사하라(시136:1)
b.찬양하라(시150:1-2)
3) 왕위대관식을 가짐
야베스 사람들을 도와 암몬족속을 물리치고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사울은 전쟁이 끝난후 왕위대관식을 가졌습니다. 물론 이전에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울은 모든 백성들로부터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왕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통치자란 백성들을 어려움에서 구하고, 또한 백성들을 돌보아 통치자로서 그능력을 인정받는 자라야 합니다. 그저 권세를 이용하여 백성을 괴롭히며, 사욕을 추구하는 자는 결코 왕으로서 적합지 못한 것입니다.
a.백성들을 선한길로 인도하는 왕(롬13:4)
b.백성들로부터 인정받는 왕(삼하5:3)
결론
백성들을 뜨겁게 사랑하던 사울은 야베스 사람들의 고통을 곧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며, 그들을 암몬족속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이렇게 통치자란 명실공히 그백성을 자신의 몸의 일부로 여기며,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자신의 고난으로 여길줄 아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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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사울의 기름부음 10:1-8
사무엘은 여기서 선지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사울에게 왕이 되리라는 확신을 준다.
(1)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입맞추었다(1절). 이는 엄숙한 모임에서 베풀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베풀어진 것이었으므로 외형상으로는 아무리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완벽한 것이었다.
1)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2) 사무엘은 사울에게 입맞춤으로써 사울이 왕이 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력이 축소되며 자기와 자기가족의 명예가 실추된다 하더라도 그선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사울에게 확신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충성을 다짐하는 입맞춤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함으로써 사무엘은 사울이 왕이란 사실을 인정할뿐만 아니라 자기의 왕이란 사실도 인정한 것이다. 이런의미에서 우리에게 '아들에게 입맞추라'(시 2:12)고 하신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유념하게 하였다.

① 사울에게 맡겨진 통치의 성격을 유념하게 하였다. 사울을 지도자이자 전쟁의 지휘관으로 기름부으신 것이므로 매사에 조심하며 수고하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② 사울에게 맡겨진 통치의 기원을 유념하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셨다." 여호와께서 통치하게 하셨으므로 사울은 여호와를 위해서 다스리며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다스리고 그의 영광을 바라며 다스려야 한다.

③ 사울에게 통치를 맡기신 목적을 유념하게 하였다. 그것은 부자가 자기의 재산을 관리하게 하려고 임명한 청지기같이 사울을 지도자로 삼아 기업을 보살피고 잘지키며 기업에 관한 제반문제를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2) 사울이 더욱 확신할수 있도록 그날 당장 일어날 징조들을 알려주었다.
1) 그는 곧 집에서 자기를 염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될 것이다(2절). 그는 이사람들을 라헬의 묘실곁에서 만나게될 것이다. 거기서 두사람은 사울을 만나 암나귀를 찾았다고 말해줄 것이다.
2) 다음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산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벧엘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만나게될 것이다. 그런데 이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가는 중이었다(3,4절). 그 세사람이 가지고 있던 염소새끼와 떡과 포도주는 제사하는데 쓸 제물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들이 사울에게 떡 두덩이를 줄것이며 그는 그것들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것은 왕에게 합당한 예물로 해석될수 있다. 사울은 그것을 자기에게 바치는 최초의 선물로 받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알지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사울에게 아주 적합한 징조가 되게하신 것이다.
3) 무엇보다도 가장 현저한 징조는 사울이 선지자 무리를 만나 그들과 합세하며 그때에 예언의 영이 임해서 사울도 예언을 하게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안에 역사하셔서 섭리로 역사하실때보다 훨씬더 우리의 믿음을 공고히 하신다. 사무엘은 여기서 사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말해준다(5,6절).

① 그사건이 일어날 장조를 말해주었다. 그곳은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는 하나님의 산이다. 사무엘시대 초기에 쫓겨났던 블레셋 사람들은 또다시 그땅을 침략하여 그영문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을 혼내줄 사람을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르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선지학교의 하나가 그곳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블레셋 군사들의 영문도 선지학교가 평화스럽게 유지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② 어떤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해주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예언을 하면서 내려오는 선지자 무리를 만날 것이며 그들과 합세할 것이다. 이 선지자들은 율법을 연구하며 이웃을 가르치고 종교활동을 하며 특히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종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지학교들을 설립한 사무엘같은 사람의 통치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싫어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 선지자들은 산당에 있었는데 제사를 드리고 지금 찬송을 부르며 돌아가는 중이었던것 같다. 사울은 자신이 크게 감동하여 선지자들과 합세하고 있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로인해 전과는 다른 새사람이 된다.
(3)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인도하시는대로 그리고 사무엘이 권고하는대로 나라를 다스려 나가라고 지시한다.
1) 일반적인 경우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7절). 기회를 따라 행하라. "자신의 분별에 따라 처신하라."
2)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즉 이후에 길갈에서 일어나는 일같이 특별히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만할 중대한 시기에는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며 칠일을 기다려야 한다(8절). 이점에서 실패함으로써 그의 타락이 드러나는 것을 후에 보게된다(13:11).

Ⅱ. 선지자들과 어울린 사울 10:9-16
사울은 이제 매우 놀란채 사무엘에게서 떠났다.
(1) 도중에 사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9). 사무엘이 사울에게 일러준 징조들이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울이 만족한 것은 그가 곧 하나님이 새마음을 주신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사울의 가슴에 새로운 불꽃이 타올랐다. 암나귀를 찾는것은 이제 관심밖이었다. 사울은 오직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며 이스라엘의 슬픔을 제거하고 법률을 정하여 바르게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만을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울에게는 더이상 낮고 천하며 협소하고 곡식이나 가축들만 염려하는 농부의 마음이 없었다. 이제 사울의 마음은 정치가의 마음이요 장군의 마음이며 왕의 마음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면 그사람을 그일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드신다.
(2) 집가까이 이르렀을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10,11). 그들은 산에 이르렀다(10절). 즉 기브아나 산이라는 뜻을 가진 게바에 이르렀다. 사울은 사무엘이 말하던 선지자들을 만났으며 하나님의 신이 강력하고 갑작스레 그에게 임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재해 계시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시에는 하나님의 신이 사울을 크게 지배했다. 그래서 사울은 선지자들과 합류하여 '그들중에서 예언을 했다.'
1) 사람들은 사울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11,12절). 그때 사울은 그를 잘아는 사람들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선지자들중에서 사울을 보더니 신기한 광경을 와서 보라고 수군거렸다. 이사건은 그들로하여금 사울을 왕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게했다.

① 그들은 사울이 선지자들가운데 있는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11절). 이 선지학교가 아버지의 집가까이에 있었지만 사울은 그선지자들과 어울린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선지자들 중에서 사울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는 다들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후 오랜세월이 지난후 신약시대에서도 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기가 핍박하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 생긴다(행 9:21). 하나님이 새마음을 주시면 곧 드러나게 된다.

② 그들중에서 다른사람들보다 현명한 한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그들의 아비가 누구며 그들의 스승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니시냐? 하나님께서 모두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에게 한계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울도 선지자로 만들수 있지 않겠느냐?"

③ 그말은 곧 이스라엘에게서 널리 사용되는 속담이 되었다. 악한사람이 선한사람이 되거나 적어도 악한사람이 선한사람들 사이에 낀것을 보고 놀랄때 '사울도 선지자중에 있느냐'는 속담으로 표현한다.
2) 사울이 기름부음 받은것은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① 사울은 예언을 마치자 곧바로 산당으로 가서(13절)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데 감사하며 계속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했다.

② 사울은 있었던 일을 친척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울의 숙부는 산당에서 만나자 혹은 사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울에게 물었다(14절). 사울은 사환이 알고있었던 일에 대한것 즉 자기들이 사무엘과 함께있었던 사실과 사무엘이 암나귀를 찾았다고 말해준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않았다(14,15절). 이는 사울이 겸손하고 신중하다는 표시였다. 만약 사울이 숙부에게 모든사실을 털어놓았다면 사울을 시기했을 것이며 어떤어려움이 닥쳤을지 모른다.

Ⅲ. 왕의 선출 10:17-27
사울은 이스라엘 각지파의 대표자인 장로들이 미스바에 모인 총회에서 정식으로 왕에 지명되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재하신(그래서 여호와앞에 모았다고 한것이다;17절) 엄숙한 총회에 모이자 사무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가운데서 활동하였다.
(1) 사무엘은 그들이 선지자가 통치하는 것을 저버리고 왕을 원하는 것을 꾸짖었다.
1) 사무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었던것이 얼마나 복된 일이었는가를 보여주었다(18절). 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실때 하나님은 '그들을 압제하는 모든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더이상 바랄것이 무엇인가?
2) 또한 사무엘은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모욕하였는가를 보여주었다(19절). "너희는 오늘날 너희 하나님을 버렸도다. 너희는 사실상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 너희가 그렇게 행했으므로 하나님도 마땅히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
(2) 사무엘은 그들에게 제비를 뽑아서 왕을 선출하게 하였다. 모든지파 가운데서 베냐민지파가 뽑혔으며(20절) 베냐민지파 가운데서도 기스의 아들인 사울이 뽑혔다(21절). 이러한 방법으로 사무엘에게 이미 알려준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임명하셨음을 백성들에게 알리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비뽑기는 여호와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3) 사울을 왕으로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수고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다. 제비가 사울에게 떨어졌을때 사람들은 누구나 이름을 부르자마자 사울이 선뜻 대답하고 나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람들이 사울을 찾을수가 없었다(21절). 그가 행구사이에 숨었느니라(22절).
1) 사울은 자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이 다시 다른사람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때에는 진실로 사울이 통치자가 되고싶지 않았던 것으로 볼수 있다.

① 왜냐하면 사울은 자기가 그렇게 중요한 직책에 합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② 왜냐하면 사울은 이웃의 시기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③ 왜냐하면 사울은 사무엘이 한말을 듣고 백성들이 왕을 구함으로써 범죄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④ 왜냐하면 당시의 이스라엘의 형편이 아주 나빴기 때문이다. 블레셋은 강력했고 암몬 역시 위협적인 존재였다. 폭풍우속에서 항해하는 것같이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 하지만 백성들은 그선택을 하나님이 직접하신 것이라고 믿었기때문에 제비뽑기에서 당첨된 사울을 찾지않고 그냥 내버려 둘수가 없었다.
(4) 사무엘은 사울을 백성들에게 소개했으며 백성들은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다른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자나 발판에 올라설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다른사람들보다 어깨이상이 컸기 때문이다(23절). 사무엘은 이렇게 말했다. "보라. 너희를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왕을 선택하셨나 보라. 너희가 바라던 그런사람이 아니냐. 모든 백성중에서 짝할이가 없느니라(24절). 그의 용모에는 위엄이 있고 그의 태도에는 장중함이 있도다. 그는 마치 군계일학과 같도다." 그때에 백성들은 그선출의 결과에 동의했으며 그를 왕으로 맞아들였다. 모든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즉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번영하셔서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고 외쳤다.
(5) 사무엘은 그들사이의 기본적인 약속을 정하고 이를 책에 기록해 두었다(25절). 사무엘은 그들사이의 경계표를 정해주고 아무도 이것을 침해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 그들을 서로 바르게 이해시키고 그협정을 기록에 남기게 함으로써 이후로부터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잘이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6) 의식이 끝나자 총회는 해산하였다. 사무엘이…모든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집으로 갔으며' 자기에게 맡겨진 왕국으로인해서 의기양양해 있지 않았다. 기브아에는 궁전도 보좌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으로 갔다. 그가 자기 의지기반을 염두에 두는 왕이 분명하다면 자기고향을 왕도로 삼을 것이며 자기의 미천한 친척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너무나 많은사람들이 출세하고나면 자기의 친척들을 부끄러워한다).
1) 백성들은 새로 선출된 왕에 대해서 어떤마음을 품고 있었는가? 대부분의 백성은 별로 관심이 없었던것 같이 보인다. 그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① 그러나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몇있어서 그를 따라갔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었다'(26절). 소수의 무리가 호위병으로 사울과 함께 기브아로 갔다. 그들은 이경우에 책임을 다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킨 자들이었다.

② 사울을 멸시하며 모욕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멍에를 감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불량자들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존귀하신 구속주께 대해서도 사람들의 태도가 가지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룩한 시온산에 왕으로 세우셨다.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이 감동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권세를 쥐는날 그를 섬기게할 사람들이다. 또한 그를 멸시하며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2) 사울은 자기의 통치를 불평하는 사람들의 악한행위에 어떻게 처했는가? 그는 잠잠하였더라 (27절). 난외주에는 '그가 마치 귀머거리처럼 못들은체 하였다'고 되어있다.

# 핵심
10:1-27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움을 받는 초기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징조(10:7)
하나님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위해 사람들에게 보이시는 증거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말해서, 보이지않는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감각(sense)으로 인식할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출 4:8; 눅 2:12). 영적인 일들은 인간감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필요한 경우에 인간이 경험할수 있는 방법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알리신다(창 9:12,13; 롬 15:18). 장차 예수님의 재림도 하늘의 징조들을 통해 계시될 것이다(마 24:30).

# 묵상
사울의 즉위과정 ( 10:1-24 )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1절), 미스바에서 공식적으로 선출되었으며(17-24절), 길갈에서 왕위에 오르고 화목제를 드렸습니다(11:14, 15).
기름부음의 의미 ( 10:1 )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의도를 알려주기위하여 기름병을 취하여 그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존재하게될 왕직이 이미 존재하는 제사장직 또는 선지자직과 동등한 신적제도로서 권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울을 확신시킨 세가지 징표 ( 10:2-6 )
사울이 왕이 될것이라는 징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라헬의 묘실곁에서 만난 두사람으로부터 암나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음 - 이는 인간의 모든걸음을 하나님께서 친히 지도하신다는 것입니다. ②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만난 세명의 벧엘순례자로부터 떡 두덩이를 받음 - 이는 인간사이의 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고 제사의 중요함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③ 블레셋 영문에서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날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예언함 - 왕의 직분을 받은자는 성령에 의해 새로워져야 하며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예언 ( 10:6 )
사무엘이 사울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용기가 사울에게 임할 것이라는 의미로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될 것을 확증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맡기실때 그일을 감당할 능력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사울의 침묵 ( 10:14-16 )
집에 돌아온 사울은 그동안의 행적을 숙부로부터 질문을 받았으나 사무엘의 지시대로 기름부음 받은것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약1:19)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 10:17-27 )
사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미리 택정함을 입었고, 사무엘에의해 기름부음을 받은후 제비뽑기를 통해 공개적인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모든역사를 친히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과 이스라엘 왕정체제 또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결과였음을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삶까지도 간섭하시고 계심을 알아야합니다.
공식적으로 왕이된 사울 ( 10:17-27 )
사무엘은 모든지파를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당시 미스바는 종교, 정치, 군사의 중심지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한 뜻깊은 장소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사울을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하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 해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 10 )
본문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장면이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왕을 요구하자,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왕정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제도는 행복이 아닌, 고통과 압박의 시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1.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음
1)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사울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부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사명을 부여하심을 상징합니다. 즉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리라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예정하고 작정하신 일들을 반드시 이루고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a.예정하시는 하나님(사11:1-2)
b.성취하시는 하나님(갈4:4)
2) 가정으로 돌아감
사무엘은 사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면서 귀가길에 일어날 세가지 일들을 예언하였습니다. 첫째, 라헬 묘실곁에서 두사람을 만나 암나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다볼 상수리나무곁에서 세사람으로부터 떡 두덩이를 받게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산에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 하나님의 영을 받고 예언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다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사울이 왕이 된것이나 사울주변에서 일어난 모든일들이 허구가 아니라 분명하고 명확한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줍니다. 성경의 말씀은 어느것 하나도 결코 허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은 역사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임을 확신케 됩니다.
a.역사하시는 하나님(행17:26)
b.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딤후3:16-17)
2. 사울이 성령의 충만을 받음
1) 성령의 충만을 받음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후 귀가하던 사울은 선지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때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하셔서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왕이된 사울에게 당신의 거룩한 영을 허락하사 귀중한 직분을 잘감당케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는 반드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a.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b.예언의 은사(고전12:10)
2) 변하여 새사람이 됨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성령의 충만을 받은자는 먼저 그심령에 큰변화가 임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타락하고 부패한 심령으로 악한일을 계획하고 생각했는데,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항상 자기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충만을 받은자의 특징이요, 또한 결과입니다.
a.변하여 새사람이 됨(고후5:17)
b.타락하고 패역한 심령(롬3:11-12)
3) 일상생활이 완전히 바뀜
사울은 그심령이 변화를 받았을뿐만 아니라 그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을 보고 그가 선지자가운데 한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자는 단지 마음만이 아니라 그삶과 행실마저도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행실이 따르지않는 변화는 변화가 될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a.성령의 열매(갈5:22-23)
b.행함이 있는 믿음(약2:26)
3. 사울이 왕이 됨
1) 작은지파 출신이 왕이 됨
사울은 베냐민지파의 가장 작은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사실 베냐민지파도 당시로서는 그리 큰세력을 과시하지 못했는데, 사울집안은 그중에서도 더작은 집안이었습니다. 이렇게 작고보잘것 없는 출신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된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낮고 미천한 자를 높이들어 크게 사용하시는 분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좋은배경을 중요시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배경보다는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통하여 선택한 자를 사용하시어 구원역사를 진행시키십니다.
a.낮은자를 크게 사용하심(고전1:27)
b.겸손한 자를 존귀케 하심(삼상15:17)
2) 사울이 무시당함
사울이 왕이되자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며 환호하였습니다. 하지만 모두다 그런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중에 어떤비류들은 사울과 같이 보잘것없는 지파출신이 어찌 이스라엘의 왕이되어 백성들을 다스릴수 있겠느냐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에 무지한 나머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업신여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무지한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비난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아주 어설프게 여기는 불경스런 죄를 서슴없이 범합니다. 이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과는 달리 인간을 외모로 보고 판단함으로써 하나님앞에서 범죄에 빠지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눈을 열어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발견하고 그뜻을 잘받들어 섬겨야할 것입니다.
a.미류들의 악행(신13:13)
b.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시119:18,37)
3) 주앞에서 잠잠하게 침묵함
사울은 비류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하였지만, 그들에게 어떤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명색이 일국의 통치자요, 주권자였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엄하게 다스릴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들을 엄하게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잠잠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참으로 힘을 가진 자가 이렇게 관대히 자비를 베푸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우리의 훼방자들을 관대하게 대할수 있어야 합니다. 원수를 갚는것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일임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a.원수사랑(마5:44)
b.원수갚는 일은 하나님께 속함(롬12:19)
결론
우리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통치방법 사이에는 많은차이가 있음을 실감케 됩니다. 하나님은 작고 미천한 자를 높이들어 존귀케 하시고 고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반면 세상사랑들은 미천한 자를 짓누르고 가진자를 존대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주의 백성은 세상통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본받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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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사울의 가문과 인품 9:1,2
(1) 사울은 매우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다(1절). 그는 베냐민지파 사람이었다. 바울이라고도 부르는 신약의 사울도 베냐민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베냐민지파에 속한 것을 명예로 생각했다(롬 11:1;빌 3:5). 베냐민지파는 숫자는 가장 적었지만 가장 존귀한 족속이었다.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 즉 유력한 사람이었다. 난외주에서 보는것같이 실제로 용감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와 상당한 재산을 가진 유력자였다.
(2) 사울은 용모가 준수한 사람이었다(2절). 여기서는 사울의 지혜나 덕성, 그의 학문이나 경건함 또는 그의 정신적인 소양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준수하고 품위있으며 균형잡힌 키크고 잘생긴 미남자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중에 그보다 더준수한 자가 없고(2절). 사울은 그키가 다른사람들보다 머리와 어깨만큼이나 더컸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는 왕을 선택하셨을때에는 체격의 준수함이나 용모를 보신것이 아니고 그용모에 나타난 순진함과 상냥함을 보신 것이다(16:7,12). 그러나 하나님께서 위풍당당한 체격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왕을 선택하셨을때에는 달리 선한자질은 없어도 위대한 인물로 보이는 이 키큰 사람을 선정한 것이다.

Ⅱ.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는 사울 9:3-10
(1) 위대한 인물은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탄생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어서야 비로소 출세를 하고 존귀한 자리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2) 커다란 사건도 사소한 사건에서 야기된다. 그역사는 얼마나 미미하게 시작되었는가! 사울이 왕관을 쓰기까지의 자취를 더듬어보면 높은자리에 앉게된 사람들이 다 그런것처럼 처음에는 하찮은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1) 사울의 아버지는 사환 한명만 함께 사울을 보내서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한다. 사울과 사환은 암나귀를 찾아 먼곳까지 여행을 했다(아마도 걸어서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였으며 그들은 암나귀를 찾지못했다. 사울은 찾던 것은 찾지못했으나 꿈도 꾸지못했던 왕국을 만난 것이다.
2) 사울은 암나귀를 찾지못하자 아버지가 염려할 것을 생각하여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결정했다(5절).
3) 사환은 그때 그들이 라마에 있으니만큼 사무엘을 찾아가서 이 중요한 일에 대해서 충고를 받아보자고 하였다. 그들은 사무엘이 살고있는 성읍가까이에 있었다. 그들은 사무엘의 의견을 듣자는 생각을 하였다(6절).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무엘의 명예였다. 사울과 사환은 사무엘이 '그들의 갈길을 가르칠까' 하여 그에게 가서 의논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의무에 대해서는 묻지않고 운수에 대해서만 물으며 구원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않고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만 묻는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보다도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길을 가르쳐달라는 의논을 더해야 한다.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슨선물을 가지고 갈까하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떡과 과자를 선물로 드릴수는 없었다(왕상 14:3). 식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환은 주머니에 사분의 일 세겔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사울은 '네말이 옳으니 가자'고 하였다(10절). 사울은 선지자라기보다는 점장이인 사무엘에게로 간것이므로 사분의 일 세겔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개 돈이 적게드는 신앙을 원하며 신앙의 대가를 다른사람이 대신 지불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이책을 기록한 사람은 당시 사용되던 선지자의 명칭에 대해 주목한다. 즉 당시에는 선지자를 선견자라고 했는데(9절), 선지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선견자라는 명칭을 더많이 사용했다. 선지자들은 우선은 틀림없이 선견자들이며 다른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그러한 일들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Ⅲ. 사무엘을 찾게된 사울 9:11-17
(1) 평범하게 물어서 사울은 사무엘을 찾아가게 된다(11-14절). 사울이 살고있던 기브아는 사무엘이 살고있는 라마에서 20마일밖에 되지않았으며 사무엘이 종종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미스바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1) 그들은 물긷는 곳에서 라마의 소녀들을 만난다. 그소녀들이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사무엘에 관해서 알려준다.
① 그날은 산당에서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사무엘은 전에 라마에 제단을 쌓았는데(7:17) 지금 그제단을 사용하고 있는것을 보게된다.
② 사무엘은 그날 성에 들어왔다.
③ 그때야말로 제사를 드리면서 여호와앞에서 가지는 잔치에 참석할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였다.
④ 사무엘이 와야지만 비로소 백성들은 먹게된다. 왜냐하면 사무엘이 첫째, 일상적인 식사로서 둘째, 종교집회로서 제물을 축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물을 드릴때는 기독교의 성만찬에서와 같이 특별한 축사가 있어야 하는것이 필수적이다.
2) 사울과 사환은 그들이 가르쳐준대로 했다. 그래서 그성읍의 회당인 산당으로 올라가는 사무엘을 우연히 만난다(14절).
(2) 비상한 계시를 받아서 사무엘은 사울에 관해 알게된다. 사무엘은 선견자였다. 그래서 특수한 방법으로 이를 아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그전날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맘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왕이 되어 그들을 위해 일하게될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의 귀에 말씀하셨다. 즉 은밀하게 사무엘의 마음속에 속삭이셨으며 아주 작은목소리로 속삭이셨을 것이다. 그말은 히브리어로 여호와께서 사무엘의 귀를 열어주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자 할때는 귀를 여시며 "에바다" 즉 열리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마음의 수건을 벗겨주시는 것이다(고후 3:16). 하나님은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지만 수락하셨으며 여기서는 그들에게 매우 자상하게 말씀하신다.
① 하나님은 그들을 거듭거듭 내백성이라고 부르신다. 아무리 못되고 성가신 백성이지만 여전히 주의 백성인 것이다.
②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을 다스릴 사람을 보내주신다.
③ 하나님은 자비하신 심정으로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셨다. 내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16절).
2) 거리에서 사울이 사무엘에게 다가가자 하나님은 다시한번 사무엘의 귀에 속삭이셨다(17절).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백성을 통할하리라. 이렇게 하나님이 강조해서 말씀하시자 사무엘은 충분히 납득할수 있었다.

Ⅳ. 사무엘의 환대를 받은 사울 9:18-27
하나님의 섭리는 드디어 사무엘과 사울을 한자리에 만나게 하셨다. 여기서는 성문에서, 잔치에서, 객실에서 둘사이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1) 성문에서 즉 성문을 지나치면서 사울은 사무엘을 발견하고(18절) 사무엘의 집으로 가는길을 가르쳐달라고 물었다. 사무엘은 "내가 바로 네가 찾고있는 선견자니라"고 대답하였다(19절). 사울이 사무엘을 알아보기전에 사무엘은 사울을 알고있었다.
1) 사무엘은 사울을 다음날까지 자기와 함께 머물게 했다. 사울의 마음속에는 암나귀를 찾으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런 염려에서 벗어나 경건의 연습을 쌓을 마음을 갖게 했다. 그래서 사울에게 '산당으로 올라가라'고 한것이다.
2) 사무엘은 사울이 암나귀에 대해서 안심하게 만들어 주었다(20절).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더이상 걱정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이말을 듣고 사울은 그가 선지자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3) 사무엘은 사울앞에 놓인 출세를 암시함으로써 사울을 놀라게 했다. 온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20절). "그들이 세우고자 하는것이 왕이 아니냐. 너만큼 그들의 뜻에 알맞는 사람은 이스라엘에 없다."
4) 이같은 이상한 말을 듣고 사울은 아주 겸손히 대답했다(21절). 사울은 사무엘이 자기를 놀리는줄로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키는 컸지만 왕이 될만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베냐민지파 사람이며 나의 가족은 가장 미약합니다."
(2) 공식적인 잔치에까지 사무엘은 사울과 그의 사환을 데리고 갔다. 사무엘은 사울을 보통사람으로 대하지않고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그렇게함으로써 사울이나 백성들에게 다음에 일어날 일을 준비시켰다. 사무엘은 두가지를 통해서 사울의 영예를 표시하였다.
1) 사무엘은 사울을 '수석에 앉게 하였다.'
2) 사무엘은 사울에게 가장 좋은음식을 대접하였다. 왕의 선출을 위해 준비한 이 귀중한 음식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양의 어깻죽지부분의 고기 뿐이었다(23,24절). 화목제물로 오른쪽 어깻죽지부분은 하나님을 대신해 제물을 받는 제사장의 몫이며(레 7:23) 그다음 높은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왼편 어깻죽지를 주게 되어있다. 보통 그것은 잔치에서 상석에 앉는자에게 주어졌으며 다른때에는 사무엘의 몫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사무엘이 그것을 사울에게 준것은 자기의 위치를 사울에게로 넘겨준다는 명백한 표시였던 것이다.
(3) 두사람은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밤 그리고 그다음날 아침일찍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를 나누었다(25,26절). 사무엘은 이때 사울에게 백성들이 왕을 원한다는 것과 백성들이 왕을 원하는 이유 그리고 이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에 대해서 말해주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일찍 사무엘은 사울을 집으로 보낸다. 사무엘은 한참동안 사울과 함께 동행했다. 그리고는 사울의 사환을 먼저 보내게 했는데 이는 두사람만이 있기 위해서였다(27절). 그리고 10장의 처음부분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알려주었다.

# 핵심
9:1-27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는 배경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미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다.

# 묵상
사울의 내력 ( 9:1-4 )
사울은 베냐민지파의 유족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체격이 월등했으며, 준수한 용모의 소유자였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여 에브라임땅을 다닐정도로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습니다.
선견자 ( 9:9 )
B.C. 10세기경 사무엘시대에 선지자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선지자의 옛칭호로서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를 전하는 자를 뜻했습니다.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 ( 9:14 )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은 온전히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우연이 있을수 없으며, 어떠한 사건속에서도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우신 이유 ( 9:16, 17 )
사울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해서가 아니라 블레셋 지배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진노중에서라도 긍휼을 잊지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백성들에게 평안과 생명을 주시는 이유가 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기름부음의 의식 ( 9:16 )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선지자 또는 왕을 세울때 행했던 의식으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여 세우시고 신적사명과 권위와 능력을 덧입혀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으로 위의 3직을 다 수행하십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서 행한일 ( 9:18-27 )
이스라엘의 왕으로 백성들의 존경받는 자가 될것임을 알렸고(18-21절), 유력한자 30여명이 모인자리의 상좌에 그를 앉힘으로써 사울이 왕될 자임을 암시했고(22-24절), 사울을 산당의 지붕으로 불러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구체적으로 전달했습니다(25-27절).

# 해설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 ( 9 )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삶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방법이 소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시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위한 세심한 배려와 섭리가 섬세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즉 사울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나귀를 찾아나서는 사울
1) 부모에게 순종함
사울은 아버지 기스의 명령을 받들어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당부를 받은 사울은 그저 형식적으로 이일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땅, 그리고 베냐민 전지역을 두루다니며 한마리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헤맸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되, 아주 철저하게 순종하는 신실한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자를 들어 이스라엘의 왕이요, 훌륭한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a.네부모를 공경하라(엡6:1)
b.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축복(출20:12)
2) 선견자를 찾아나섬
사울은 나귀를 아무리 찾아도 도무지 찾을방도가 없자, 결국 사환의 말에 따라 선견자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즉 사울은 인간적 노력과 수단을 다 동원한후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할줄 아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노력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세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성도가 지녀야할 삶의 자세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a.최선을 다해 열심으로 노력함(살후3:10)
b.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함(잠16:3)
3) 사무엘과 마주침
사울은 사무엘을 찾아가던 도중 산당에서 나오던 사무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울이 사무엘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발걸음을 사무엘에게로 인도하사, 사무엘로하여금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기름을 붓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울 작정을 하시고 사울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사무엘앞으로 이끌어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a.발걸음을 인도하는 하나님(잠16:9)
b.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자(롬13:1-2)
2. 사무엘을 만나는 사울
1) 사울 만날것을 고지하심
하나님은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오기전에 이미 사무엘에게 사울이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해야할 일들을 소상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세상 모든만물의 운행과 질서를 주관하시고, 또한 인류역사의 흥망성쇠를 결정하시는 절대주권자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할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믿음을 가질수 있게 됩니다.
a.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심(롬11:36)
b.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심(행17:26)
2) 기름부음을 명령하심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자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곧 세상 모든권세는 참권세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교훈해 줍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지도자 된 자들은 참된 권세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통치권을 사용함이 마땅합니다.
a.하나님이 세우신 통치자(롬13:4)
b.하나님의 뜻에 맞게 통치함(벧전2:13-14)
3)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심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고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간구와 기도를 들으시며, 그고통을 돌아보아 응답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능력이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열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지의 여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문제를 주께 내어 놓고 진실되게 간구할줄 알아야 합니다.
a.하나님께 부르짖음(출2:23)
b.열심으로 간구하라(마7:7)
3. 사무엘과 대화하는 사울
1) 온이스라엘이 사모하는자 사울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 온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곧 백성의 지도자로서 백성을 다스릴 자격을 가진자는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신실한 인격을 갖춘자라야 함을 교훈해 줍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백성들이 존경할만한 아름답고 온유한 인품을 갖춤이 마땅합니다. 백성의 생명을 경멸하고 속이기 잘하며, 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참된 지도자가 될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a.착하고 온유한 성품(갈5:23)
b.그리스도의 형상을 사모하라(빌2:5)
2) 지극히 작은자로 자처하는 사울
사울은 자신을 일컬어 베냐민 지파중 가장 작은자로 자처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스스로를 미천한 자로 여길정도로 겸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온유하고 겸손한 자를 높이들어 존귀한 자로 세우십니다. 참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지만, 스스로 겸손한 자로 자처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크게 높이 들어 쓰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a.겸손(빌2:7-8)
b.낮은자를 존귀케 하심(삼상15:17)
3)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무엘
사무엘은 사울을 불러 세우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는 자신의 인간적 지혜나 지식을 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만을 널리 선포함이 마땅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일을 순종하며 행함으로써 자신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a.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함(출5:1)
b.생명력있는 하나님의 말씀(히4:12)
결론
사울이 왕이 된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만물과 인간역사는 어느것 하나도 하나님의 경륜이나 섭리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섭리자요, 경륜자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절대주권을 찬양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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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사무엘의 쇠약과 아들들의 타락 8:1-3
두가지 서글픈 사실을 여기서 보게된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1)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일에 적합하지 못하게 된다(1절). 사무엘은 늙었으며 전처럼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때 사무엘의 나이가 60을 넘은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사무엘은 조숙한 사람이었으며 어릴때부터 생각이 많고 근심이 많던 사람이었다. 처음익은 열매일수록 좋지 못하다. 그는 나라일을 돌보는데 힘과 기력을 다바쳤다. 그런데 지금 그가 전과 같이 힘을 낼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오해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였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창 일할수 있는 나이에 분주히 보람있는 일을 하도록 해야한다.
(2) 훌륭한 사람의 자녀도 곁길로 나가며 부모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 사무엘이 아들들을 사사로 삼은것은 그들이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매우 믿을만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 '그아들들은 그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3절). 그들의 성품은 아버지와는 정반대였다. 아버지를 닮았더라면 그렇게 훌륭한 사람과 부자간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큰명예가 되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큰수치가 되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사가 되어 사무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게되자 자신을 발견하게 된것이다. 보잘것없는 자리에 있을때에는 잘하던 사람들이 권력과 지위가 생길때에는 타락하는 경우가 많다. 명예는 사람의 마음을 변하게 만드는데 잘못된데로 변할때가 많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엘리의 아들들같이 악독했던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그들은 사사의 직분을 더럽혔으며 시리아역에서처럼 "탐욕을 따라서 불의한 재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그들은 판결을 내릴때 법에 의하지 않고 뇌물에 좌우되었으며 누가 옳은가를 보지않고 누가 많이 바쳤는가를 보았다.

Ⅱ. 왕을 원하는 백성들 8:4-22
여기서부터 전혀 새롭고 충격적인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1) 이문제에 대해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말한다(4,5절). 그들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의 집으로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1) 그들의 불만에 대해서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① 사무엘이 늙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는 사무엘로하여금 더현명하고 경험이 풍부하게 만들어서 사무엘은 백성을 다스리는데 더욱 적합했다.
② 그의 아들들이 사무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무엘은 누구보다 더욱 괴로웠다. 하지만 그것이 사무엘의 잘못이라고 말할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엘리처럼 자식들의 악행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으며 자식들에 대한 불만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2) 이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백성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달라고 간청하였다.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5절). 그들이 사무엘에게 반역하여 스스로 왕을 세우지 않은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어쨌든 그것은 악한 제안이었으며 하나님을 노엽게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열방과 같이 화려한 외모와 권세를 가지고 자기들을 다스릴 왕이 있어야만 했다. 망토를 걸친 가난한 선지자가 아무리 전능자의 환상을 보고있더라도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없이 보였다. 자색옷을 입고 호위병과 신하를 거느린 왕만이 위대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런 왕을 그들은 갖고 싶어했다.
(2) 이러한 말을 듣고 사무엘은 분개했다(6절).
1) 이러한 말을 듣자 사무엘은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아마도 사무엘은 몹시 놀랐던것 같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의 명예를 헐뜯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2) 이말을 듣자 사무엘은 무릎을 꿇었다. 사무엘은 즉석에서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이 제안한 것을 곰곰히 생각했으며 어떻게 해야할지 지시를 받기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3) 이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지시하셨다.
1) 사무엘의 불쾌함을 씻어주셨다. 이제안을 받고 사무엘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문제를 조금도 언짫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신다.
① 그들이 사무엘을 무시했다고해서 괴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함으로써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모욕을 당하신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모욕을 참을성있게 감당할만하다. 사무엘은 그들이 자기가 다스리는 것을 싫어한다고해서 불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싫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사사는 직접 하나님이 부르시고 임명하셨다. 그들의 국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를 받고 있었다.
② 사무엘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늘 그런 백성이기 때문이다. 모세와 아론이 증거하듯이 그들은 늘 통치자들을 모욕했었다.
2) 그들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사무엘은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신 대답을 확실하게 들려주었다.
①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왕을 갖게될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들으라(7절,9절). 하나님은 이문제에 있어서 백성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라고 사무엘에게 명하셨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채찍으로 매맞게될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왕의 통치의 차이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야 알게될 것이다.
둘째, 그것은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만일 그들의 요구가 수락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무엘에게 반역을 일으키거나 신앙에 반역하여 열방의 신들을 섬기고 그들처럼 왕을 세울 것이다.
② 그것말고도 사무엘은 백성들이 왕을 가지게 되면 얼마 안가서 싫증을 내게될 것이며 후회할 날이 올것이나 그때는 이미 늦으리라는 것을 말해주어야 했다.
(4) 사무엘은 충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했다(10절). 사무엘이…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사무엘은 하나님이 얼마나 분개하셨으며 그것을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해석하시며 다른신을 섬기는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일반적인 왕의 권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에 대해서 열방의 제도에 의거하여 자세히 일러주었다(11절).
1)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처럼 왕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① 왕은 틀림없이 많은 신하를 거느릴 것이다. 왕은 어디서 이런 신하들을 구할 것인가?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자기를 섬기는 자로 삼을 것이다(11절). 그들은 왕을 섬겨야 하며 왕의 밭을 갈고 왕의 추수를 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출세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16절).
② 왕은 틀림없이 풍성한 식탁을 차지할 것이다.
③ 왕에게는 경호하고 수비할 상비군이 필요하다.
④ "너희는 왕에게 많은 신하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왕이 권세와 지위를 준 그들로하여금 너희재산을 취하게하여 부자로 만들 것이다(14절). 너희가 어떻게 그것을 좋아하겠느냐?"
⑤ "왕에게는 체통과 권세를 유지하기위해 막대한 수입이 필요하다. 왕은 너희땅의 소출의 십일조와(15절) 양떼의 십일조를(17절) 취할 것이다."
2) 이로인해 그들은 근심하게 될것이다. 그때 그들이 하나님께 불평하여도 그들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실 것이다(18절).
(5) 백성들은 그들의 요구를 계속 고집하였다(19,20절). "사무엘이나 하나님이 아무리 말려도 우리는 우리를 다스릴 왕을 가지겠다.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에게나 우리자손에게 아무리 불편한 일이 생긴다하더라도 우리는 왕을 가지겠다." 그들의 이성은 어두웠으며 자신의 이해문제에 있어서도 분별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수가 없었다. 때가되면 이스라엘도 왕을 갖게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율법에서 암시하셨다(신 17:14,15). 그들이 만약 10년이나 12년만 더기다렸다면 사울을 왕으로 세움으로써 당했던 모든재난을 막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세워주신 왕을 가졌을 것이다.
(6) 요구가 곧 관철되리라는 통고를 받고 백성들은 돌아갔다.
1) 사무엘이 백성의 모든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매 (21절).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백성들에게 거룩한 친밀함을 허락해 주셨다. 즉 백성들은 친구들끼리 속삭이는 것같이 여호와의 귀에 대고 말한다.
2) 백성들이 지나치게 왕을 원하는지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라고 지시하셨다(22절).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라. 그리고 왕에게 충성하게 하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셨다.' 사무엘은 곧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사람의 선정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더이상 할일이 없었다.

# 핵심
8:1-22
이스라엘 백성은 늙은 사무엘과 그아들들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왕정제도를 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사실 사사들을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우상숭배와 죄악때문에 주변 민족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된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제도탓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왕정의 폐단을 말씀하셨지만(10-18절), 이스라엘 백성은 완강하게 왕을 세울것을 고집했다(19,20절). 결국 하나님은 왕정을 허락하셨다(21,22절).
자유의지와 섭리(8:2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가 잘못되었음을 알고도 그것을 용납하신 이유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허용하시기 때문이다. 아담부부가 범죄했을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막지 않으셨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오용하여 악을 선택한 이후에도 은혜로우신 섭리안에서 그악을 극복할수 있는방법을 제공하신다. 왕정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백성의 왕정요구가 악하긴 했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왕들을 통해 참된 왕권의 본보기를 제공하셨다.

# 묵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치제도 ( 8:4-22 )
하나님은 형식적인 체제보다도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는 내적인 사고방식 또는 통치원리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체제는 신정통치원리에 입각한 신정왕국입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정제도를 요구한 이유 ( 8:5 )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무엘이 늙었고, 그아들들은 사무엘의 행실을 따르지않아 믿을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므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시며 부강케 해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데 있습니다.
왕정제도를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점 ( 8:10-22 )
순간적인 이익과 현상만을 보고 내면적 폐단을 경히 여기며, 하나님의 통치속에서 누리는 자유보다 오히려 세상에 얽매이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근시안적인 노예근성이 문제였습니다.
왕정제도에 대한 사무엘의 경고 ( 8:10-18 )
왕을 세울경우 모든백성이 왕의 노예가 될수 있다는 것과, 백성들이 그러한 왕의 폭정으로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지라도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을것이라는 이유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자신들의 죄악에 있음을 깨닫지않고 인본주의적, 불신앙적인 어리석음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면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받을 것입니다.

# 해설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 8 )
본문은 사무엘 통치말기의 이스라엘 정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을 이어 사사가 된 사무엘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통치자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회로하여 백성들은 본격적으로 열방들과 같이 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왕정제도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마다하고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1. 왕을 요구함
1) 그릇된 사무엘의 아들들
사무엘은 나이많아 더이상 사사로서의 수임을 완수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의 두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버지 사무엘과는 달리 불량스런 자들이었습니다. 부정한 재물을 요구하고, 뇌물을 받으며 그릇된 재판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에서 둘도없는 지도자였던 사무엘이었지만,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신실한 믿음을 본받지않고 불량스레 자라났습니다. 부모의 신실한 신앙교육과는 달리 이렇게 자녀들가운데는 끝까지 부모의 교육에서 벗어나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불량스런 자들이 있습니다.
a.불량스런 자녀(삼상2:12)
b.자녀교육(엡6:4)
2) 열방의 왕정제도를 그리워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방에 유행하던 왕정제도를 요구하였습니다. 아마 눈에 보이는 왕이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백성들을 직접 다스리면 왕의 뜻을 더욱 분명히 알수 있고, 그래서 지금보다 더 잘살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열방의 제도가 몹시도 좋아 보였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이방 풍습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가운데는 이렇게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풍습을 몹시도 좋아하며, 이런 풍습을 흉내내려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 관습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세상을 좇지말라(요일2:15)
b.하나님과 세상은 일치할수 없음(고후6:15)
3)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함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은 진실로 참되고 완전한 왕이신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권을 부인하는 행위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적대행위라해도 과언이 아니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우리성도들이 재물을 섬기고, 세상지식을 최고로 여기며, 부모나 자녀를 하나님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외의 다른왕을 섬기는 행위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벗어나 이런 부정스런 행실에 빠지지않도록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a.왕이신 하나님(삼상8:7)
b.하나님의 다스림을 싫어하는 인생(삼상10:19)
2. 왕정제도의 특징
1) 강제징집
사무엘은 왕정제도가 이스라엘에 얼마나 큰 불이익을 가져다주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첫째는 왕으로 말미암아 모든인원과 권리가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왕이 필요에 따라 남자들을 군사로 소집하고 또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위해 노동력을 착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왕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선하게 백성들을 다스리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려는 악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나려는 자는 이렇게 결국은 또다른 세상지배자들의 속박아래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림아래 있는 것보다 더행복한 것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a.세상죄의 종이 됨(롬6:12)
b.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의 행복(계21:5-6)
2) 과중한 조세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왕정제도가 시행되면 이스라엘은 왕으로인해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조세제도로인해 자신들의 재물도 빼앗겨 모든 이권조차도 손실을 얻게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왕이나 통치자들은 우리인생들에게 겉으로는 유익을 주는듯하지만, 실상 결과적으로는 큰손실과 불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의 고귀한 생명조차도 빼앗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고 충성해야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뿐이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주께 충성하라(계2:10)
b.재물을 섬기는 자의 어리석음(눅12:21)
3. 왕을 허락하심
1) 사무엘의 말듣기를 거절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정제도의 폐해를 가르치는 사무엘의 가르침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지배를 거부하고 인간통치자의 지배를 받기 원하였습니다. 그결과 이스라엘은 이후 역사속에서 왕으로인해 큰고통을 수없이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자신들이 뿌린대로 그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a.뿌린대로 거둠(갈6:8)
b.선한 가르침에 청종하라(잠3:1)
2) 왕세우기를 허락하심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옳았기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끝까지 왕을 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할수없이 이스라엘이 그죄악에 빠져 그죄악대로 행하도록 방치해두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백성들이 선한삶을 살고 구원얻기를 원하시지만, 끝까지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자는 그대로 방치하사 그 죄악으로인해 영원한 사망에 빠지게 하십니다.
a.모든백성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벧후3:9)
결론
이상에서 보듯이 끝까지 인간왕을 요구하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소원대로 왕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불행과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인간의 지배를 받기원했던 이스라엘은 마침내 인간통치자의 압제로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자의 최후는 이렇게 비참하고 불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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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진 궤 7:1,2
여기서 기럇여아림에 하나님의 궤가 옮겨진데 주목하자. 14:18절에서 단한번 말고는 약 40년후 다윗이 궤를 옮겨갈때까지 궤에 대한 기사를 볼수 없다(대상 13:6).
(1) 벧세메스 사람들은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축복이 될수 있었던 것을 짐으로 만들고 말았다.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기뻐하며 궤를 자기들에게로 가져갔다(1절). 그들의 이웃인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받아들일때만큼 그것을 떠나보낼때는 기쁘지 않았다. 그들은 궤로인해 벧세메스에서 일어난 살육은 독단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땅히 응보였음을 잘알고 있었다. 또한 그로인해 고통을 당한 자들은 궤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망해야 한다는 것도 잘알고 있었다.
2) 그들은 진정한 호의와 경외심을 갖고 세심하게 하나님의 궤를 정중하게 모실준비를 했다.
① 그들은 궤를 모실만한 합당한 장소를 준비했다. 그들은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모셨는데 그집은 가장 높은곳에 있었으며 성읍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궤를 들판에 있는 돌위에 그대로 방치해두었으나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그것을 집안으로 모셨다. 하나님께서는 궤를 둘 장소를 찾으신다. 그것을 몰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모시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궤가 개인의 집에 들어간 것은 결코 처음일이 아니다.
② 그들은 궤를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준비하였다. 그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1절). 그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나이가 많고 허약했기 때문이었다. 엘리아살의 임무는 못된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빼앗아가거나 호기심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궤를 만지거나 들어다보지 못하게 궤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궤가 있는 방을 깨끗이 치우고 잘꾸며서 궤를 하찮은 물건처럼 보이지않게 해야했다. 이 엘리아살은 레위족속 더욱이 아론의 후손이었다고 나와있지 않다.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와서 궤앞에서 기도했을 것이며 엘리아살은 거기서 그사람들의 시중을 들었을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그를 온성읍 사람들의 이름으로 구별하여 세운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정규적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당시의 어려운 점으로 용서받을수 있는 처사였다.
(2) 그러나 하나님의 궤를 여기에 그대로 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다시금 실로에서 잘모시고 싶었으나 실로는 황폐해 있었다(렘 7:14). 궤를 적합한 장소로 모셔갈 애국자가 없어서 궤는 그곳에 있어야 했다.
1) 하나님의 궤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40년이상이나 하나님의 궤는 멀고도 초라하며 사사로운 장소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무관심한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2절). 사무엘이 다스리고 있던 동안에도 내내 궤가 지성소로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거룩한 열심히 사라졌다는 증거였다. 하나님은 그렇게 된것을 참으시면서 제자리에 있을때 궤를 소홀히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셨다.
2)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은 궤의 부재를 깨닫게 되었다. 70인역에서 이사실을 좀더 분명히 알수 있다. '이십년이 지났으며 이스라엘 온족속이 다시금 여호와를 사모하였다'. 궤가 하나님의 장막을 떠나있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한 표시도 없었으며 아무도 격식대로 속죄의 날을 지킬수가 없었다. 그들은 궤가 없는 제단에 만족하고 있었다. 의례적인 신앙고백자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나 하나님이 열납하신다는 표시가 없는데도 외적인 행위에 쉽사리 만족할수 있다. 그러나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를 생각하며 여호와를 찾아 애통하기 시작했으며 그로인해 뜨거워졌다. 이는 성령이 특별히 역사하신 사무엘의 설교를 들었기 때문인것 같다. 온이스라엘에 회개와 회심의 물결이 일어났다. 진정한 회개와 회심은 여호와를 찾아 탄식하는데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궤를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자랑하던 때보다 하나님의 궤를 바라며 그것을 사모해서 탄식하는 때가 더낫다.

Ⅱ. 미스바로 모임 7:3-6
그동안 사무엘이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아해 하는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행한 수고가 결실을 맺게되자 비로소 그의 수고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사무엘은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을때 그들을 위해 두가지 일을 하려고 힘썼다.
(1) 사무엘은 우상을 제하는 일에 힘썼다. 왜냐하면 거기서 개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족속에게 일러 가로되(3절). 그리고 순회전도자처럼 이리저리 다니면서(왜냐하면 5절에서야 비로소 그들이 한곳에 모였다는 것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곳마다 이렇게 권면했다.
1)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우상을 제하여 버려야한다는 것을 알라. 이방신 바알을 제하고 이방여신 아스다롯을 제하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러한 우상들을 갖고있었던 것이다. 아스다롯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그것을 백성들이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는 가장 매혹적인 죄를 포기하는 것이며 특별한 열심과 각오로 쉽사리 달라붙는 죄를 떨쳐버리는 것이다.
2)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하나님께 엄숙히 돌아오고 신중히 생각하고 단단히 결심해서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라. 그렇게 하려면 마음을 준비하고 여호와께 마음을 향하며 여호와께 마음을 두고 여호와께 마음을 정해야 한다.
3)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전적으로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라. 그렇지않으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할수 없다. 이길을 따라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3절). 이것이 바로 사무엘이 설교한 요지였다. 그리고 이설교는 매우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4절).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일만 그만둔것이 아니라 우상들을 부수고 제단을 훼파하고 완전히 제하여 버렸다.
(2) 사무엘은 백성들이 영원히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려고 애썼다.
1) 사무엘은 온이스라엘을 한데 모았다. 적어도 대표자인 장로들은 모두 미스바에 모아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주겠다고 약속했다(5절). 신앙집회에 참석할때 설교를 듣는것만큼 공중기도에 함께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2) 그들은 사무엘의 소집에 응했다. 단지 참석하기만 할뿐아니라 열심과 호의도 보였다(6절).
① 그들이…물을 길어 여호와앞에 붓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을수 없는것같이 자신들이 땅에 쏟아진 물과 같음을 고백하는 겸손함과 죄에 대한 뉘우침을 의미한다. 시리아역에는 "그들이 여호와앞에 회개하여 마음을 쏟아놓았다"고 되어있다.
둘째,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며 간구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해서 그들은 모든죄와 결별하며 그릇에서 물이 쏟아져 버린것같이 다시는 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셋째, 사무엘이 그들에게 확신하게 한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기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② 그날에 금식하고. 그들은 음식을 멀리하고 영혼을 괴롭게 함으로써 회개하는 표시를 하였다.
③ 그들은 공개적으로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그렇게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들을 부끄러워했다.
3) 사무엘은 그때 미스바에서 백성들을 다스렸다. 즉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죄사함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화해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말해주었다. 그것은 용서의 다스림이었다. 사무엘이 전에는 선지자로만 활동했지만 지금은 군주로 행동하기 시작하여 백성들이 버린것같이 보이는 죄악에 다시 빠져드는 일이 없게 하였다.

Ⅲ. 블레셋의 침공과 이스라엘의 승전 7:7-12
(1)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침공하였다(7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모인것을 보고는 그것이 전쟁하기 위해서 집결한 것인줄 알고 불쾌하게 여겼다.
1) 때로는 선에서 악이 나오는 것같이 보인다. 미스바에서 열린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집회로인해 블레셋과의 마찰이 생긴 것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개심하기 시작하면 사단은 전력을 다하여 그를 공격하며 수단방법을 다하여 그의 기를 꺾어놓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예상해야만 한다.
2) 그러나 마침내 선은 악과 구별된다. 이스라엘은 어느때보다도 가장 적합한때에 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여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때만큼 적을 맞을 준비를 잘한때는 없다.
(2) 이같은 재난을 당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 다음으로 가장 좋은친구인 사무엘에게 달라붙었다. 사무엘은 군사도 아니고 용맹으로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말고 부르짖으시오'하고 사무엘의 기도를 부탁하였다(8절). 그들은 무장을 하지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하기 위해서 모인것이 아니라 금식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도와 눈물이 그들이 가진 무기의 전부였으므로 그들은 기도와 눈물로 무장하고 거기에 의존했던 것이다.
(3) 사무엘은 번제를 드림으로써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9절). 사무엘이 기도하지 않고 제사만 드렸다면 그것은 헛된 그림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무엘이 제물을 드리지않고 기도만 했다면 그기도는 별로 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두가지를 함께 병행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으며 기도할때 그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할수 있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제사는 번제였으며 순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린 것이다. 사무엘이 드린것은 단지 한마리의 젖먹는 어린양이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제물의 크기나 수량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다. 사무엘은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는 레위인이며 선지자였다. 이경우는 특수한 경우였으며 사무엘은 특별한 지시를 받고 이렇게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무엘의 제사를 열납하셨다.
(4) 사무엘의 기도에 하나님은 은혜롭게 응답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9절). 그는 바로 사무엘(하나님께 구한다는 뜻)이었다. 많은 간구에 대하여 하나님은 자비로 응답해 주셨다. 사무엘의 기도를 영화롭게 하셨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며 기도하고 있었을때 전쟁은 시작되었다. 즉시 블레셋 사람들과 대항하여 싸우게 되었다. 지난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는 불의한 두제사장이 메고나온 궤를 믿고서 건방지던 이스라엘을 혼내주셨던 것같이 이번에는 경건한 선지자의 마음과 입에서 나오는 믿음의 기도를 겸손히 의지하는 그들을 은혜롭게 받아주셨다.
(5) 사무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 승전의 기념비를 세웠다(12절). 사무엘은 도움의 돌 에벤에셀을 세웠다. 이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20년전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크게 살육을 당했던 바로 그장소이다. 즉 당시의 전투는 에벤에셀곁에서 있었다(4:1).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12절)는 뜻에서 그 기념비를 에벤에셀이라 하였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는 지난일들에 감사하며 다가올 장래의 일에 대해서는 불확실하게 말한다. "지금까지는 모든것이 순조로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하나님께 맡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증거한다'(행 26:22)고 바울은 말한다.

Ⅳ. 사무엘의 선정 7:13-17
선지자 사무엘의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궤는 먼곳에 있고 실로는 황폐했지만 유월절을 매우 정성스럽게 지켰다고 한다(대하 35:18). 여기서는 단지 사무엘이 여러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1)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평화를 수호하였다. 블레셋 사람이…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13절).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수호자요 구원자였다. 그러나 그는 기드온과 같은 칼의 힘이나 삼손과 같이 팔의 힘으로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백성들을 개혁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을 지키고 구원한 것이다. 신앙과 경건은 나라를 지키는 최선의 무기이다.
(2)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권리를 회복시켰다(14절). 사무엘을 믿고 이스라엘은 용기를 얻어서 전에 블레셋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성읍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뿐만아니라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즉 가나안 원주민사이에 평화가 있었다.'
(3) 이스라엘의 재판을 주관하였다(15,16절).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사울이 왕이 된후에도 사무엘은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치기를 쉬지 않겠다'(12:23)고 약속하였다. 사무엘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 그리고 베냐민 모든족속들 사이에 재판정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상의 성읍인 라마에 상주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4) 백성의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사무엘은 자기가 살던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 그것은 놉이나 기브온에 있는 제단을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족장들이 그랬던 것같이 자기가족과 그지방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사는곳에 단을 쌓은 것이다.

# 핵심
7:1-17
사무엘의 지도아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 묵상
여호와께 돌아올수 있는 방법과 그결과 ( 7:3 )
이스라엘가운데 가나안의 농경여신인 아스다롯을 비롯한 이방신들을 제거한후 온전히 마음을 여호와께로만 향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이렇게 할때 이스라엘은 압제받던 블레셋으로부터 구원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미스바성회의 특징 ( 7:3-6 )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사무엘은 백성들이 비교적 모이기 용이한 이스라엘의 중앙부로 백성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이렇게 소집된 미스바성회는 범민족적 회개운동을 위한 최초의 성회로서, 사무엘의 주도하에 백성들이 금식과 회개로 동참한 민족의 성회였습니다. 미스바성회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함으로 도래케되는 평화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축복을 교훈합니다.
미스바성회의 의의 ( 7:3-6 )
하나님과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사이의 어그러진 언약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종교개혁 운동이고, 사무엘의 신본주의적 통치기반을 세우기위한 민족적 단일화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에벤에셀 전투 ( 7:7-11 )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자 할때일수록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닥쳐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과 악의 세력들이 우리를 대적한다해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면 그것을 넉넉히 이긴다는 것이 이전투의 교훈입니다.
종교개혁의 대강령 ( 7:7-14 )
사무엘이 강력하게 단행했던 종교개혁은 우상을 제거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합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의 은혜안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세상의 욕심과 죄악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실천적인 태도를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고전9:27).
블레셋과의 전투 ( 7:12-17 )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한후 미스바와 센사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칭한후 옛땅을 수복하고 아모리 족속과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사무엘은 지도자로서 순회하며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강건케 하였습니다.

# 해설
회개하는 이스라엘 ( 7 )
본문에는 두가지 내용이 언급됩니다. 첫째는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돌아와 이스라엘땅에 정착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선지자 사무엘이 온전한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이에 본문에 언급된 선지자 사무엘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생활을 살펴볼수 있습니다.
1. 돌아온 언약궤
1) 언약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짐
블레셋 군사들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과 섭리에 의해 마침내 이스라엘땅 기럇여아림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곳은 원래 언약궤가 있던 실로 근방의 성읍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언약궤까지 빼앗기는 불경죄를 저질렀지만, 이런 인간의 행실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은 다시금 언약궤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으로 회복시키셨던 것입니다.
a.전능하신 하나님(창17:1)
b.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시는 하나님(시115:3)
2) 여호와의 궤를 거룩히 구별함
아비나답은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지키고 모시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거룩하게 구별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마땅한 도리요, 자세였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주의 백성들은 항상 거룩하고 성결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a.너희는 거룩하라(레19:2)
b.거룩하고 정결한 삶(엡4:24)
2. 전심으로 회개함
1) 우상을 버리도록 촉구함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언약궤를 빼앗기는 것과 같은 불경스런 죄악을 범하지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방법으로 우상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참된 회개란 말에 있는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는 행동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a.우상숭배를 삼가라(출20:4)
b.말이 아니라 행동(요일3:18)
2) 금식하며 회개함
죄에서 돌이키도록 촉구한 사무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금식하며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죄된 행위를 중지하고 선한삶을 사는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참된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이회개는 단순히 불평섞인 뉘우침이 아닙니다. 진심을 다해 잘못을 내어놓고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이런 진실된 회개와 함께 우리의 행동이 죄에서 돌이킬때, 바로 이것이 참된회개의 자세입니다.
a.금식함(에4:16)
b.죄에서 돌아옴(눅15:20)
3) 여호와만 섬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범죄하는 것은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때로는 세상을 섬기는 이중적인 삶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것으로, 성도는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세상에게로 눈을 돌리고,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리는 순간, 성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악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하나님만을 섬김(출20:3)
b.올바른 선택과 결정(왕상18:21)
3. 블레셋의 공격을 격퇴함
1) 닥치는 시련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회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곳에 모였을때 공격을 하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전승을 거두리라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죄악에서 돌이켜 새로이 믿음생활을 출발하려는 순간에, 또다시 뜻하지않은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단은 성도들이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교묘하고 간교한 습성이 있습니다.
a.악을 조장함(창3:4-5)
b.사단의 궤계를 대적하라(벧전5:8)
2) 기도를 통해 승리함
블레셋 군대의 공격에 직면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제를 준비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블레셋의 군대를 맞아 급히 이스라엘의 군대를 동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급히 사람들을 피신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자리에서 바로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결과 하나님의 이적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군사들을 모조리 물리칠수 있었습니다.
a.전쟁의 승리자 하나님(잠21:13)
b.문제해결의 최고수단인 기도(막9:29)
3) 감사의 번제를 드림
블레셋 군사들을 물리친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사이에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셨다는 뜻을 가진 이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 군사의 손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념하는 돌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결코 잊지않고 감사하였습니다.
a.감사할줄 아는 삶(살전5:18)
b.은혜에 감사하자(엡5:20)
결론
사무엘의 사역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이전의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앞에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한사람의 잘못된 지도자 엘리와 그집안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죄악에 빠지고 큰시련을 겪었는데, 이제 올바른 한사람의 지도자 사무엘 한사람으로 인해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 한사람의 비중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새삼 실감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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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궤를 돌려보내기로 작정함 6:1-9
여호와의 궤는 일곱달을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잡아두고 있는한 그궤가 그들에게 저주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야만 했다.
첫째, 일곱달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한 표징을 잃어서 형벌을 받았다. 그 일곱달은 무척이나 우울한 기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궤가 어디있더라도 여호와께서는 성전에 계시다는 사실로 위로를 삼았으며 믿음과 기도로 성전에 계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수 있었다. 궤가 멀리 있을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모실수 있다.
둘째, 일곱달동안 블레셋 사람들은 궤를 가지고 있어서 형벌을 받았다. 그들이 궤를 곧 본처로 돌려보내려고 하지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재앙을 받은 것이다. 죄인들은 고집스럽게 죄를 멀리하기를 거절하는 바람에 비참한 생활을 연장시킨다. 마침내 궤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1) 이에 대해서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에게 문의하였다(2절). 그들이 지혜의 법과 제사법과 속죄법에 대해서 가장 잘알고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에 그들에게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2절)하고 물은 것은 당연하다.
(2) 그들은 충분히 조언해 주었으며 만장일치로 그의견을 결정한것 같다.
1) 그들은 바로와 애굽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궤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6절).
2) 그들은 궤를 돌려보낼때 속건제를 드려야한다고 충고하였다(3절).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있었다. 또한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자들은 어떻게든 속건제를 드려야하며 달리는 치료받을 길이 없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를 궁리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생각은 빗나가게 되었다.
3) 그들은 이 속건제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임을 깨닫는 것이 되어야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독종의 형상 즉 그들이 고통을 당했던 종기와 화농의 형상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부끄러운 질병의 책망을 대대로 전하게 했다(시 78:6). 또한 그들은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함으로써 승리의 날에도 그처럼 보잘것없는 짐승을 가지고도 그들을 혼내주고 꺾어 버리실수 있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였다. 이 형상들을 가장 귀중한 금속인 금으로 만들어 어떻게해서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화해를 기꺼이 맞이했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금독종의 수는 방백의 수를 따라 다섯개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두 독종의 피해를 받았으며 그렇게 하는데 동의했다. 금쥐도 역시 다섯개를 만들라고 충고하였다.
4) 그들은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그렇게하면 재앙을 없앨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을 주었다. 병도 낫고(3절). "그러므로 궤를 돌려보내라. 그리하면 그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다시말해서 궤를 돌려보내면 너희가 이처럼 재앙을 받는것이 궤를 잡아두어서인지를 알게되리라. 만약 그렇다면 너희가 그궤를 돌려보내자마자 재앙이 그칠 것이다."
5)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재앙으로 그들을 친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손인가를 다시한번 시험해보고자 하였다. 그들은 궤를 위해서 새수레를 마련하고 날마다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던 두젖소로 하여금 이를 끌게하였다(7절). 그소들은 멍에를 메어본 적이 없으며 집안에 있고 싶어하던 소들이었다. 아무도 그소를 끌지않고 자기들 가고 싶은대로 가게했다. 이치상 그소들은 집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만약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른 모든이적을 행하신후에라도 이적을 하나더 행하셔서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으로 이소들의 본능을 거슬려 이스라엘땅 특히 벧세메스로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그들은 지금까지의 생각을 취소하며 그들을 친것은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일로 믿으려고 하였다(8,9절).

Ⅱ. 궤가 돌아옴 6:10-18
1.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보낸 방법(10,11)
블레셋 사람들은 궤를 빼앗았을때만큼이나 궤를 보낼때도 기뻐하였다.
(1)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상당한 보상을 받을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대가를 받지않았다.
(2) 그들은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것처럼 금보물을 주어서 보냈다.
2. 소가 궤를 이스라엘 땅으로 모시고 온 행적(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벧세메스는 제일 가까운 이스라엘의 성읍이었으며 제사장들이 사는 성읍이었다. 이것은 미물 짐승까지라도 다스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산 예증이었다. 한번도 멍에를 메지않았던 소들이 8-10마일이나 떨어진 벧세메스로 곧장 갔으며 길을 잃지도 않고 밭에 들어가 풀을 뜯어먹지도 않고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려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은 것이다.
3. 이스라엘땅에 궤가 들어가는 모습(13-18)
벧세메스 사람들이…밀을 베다가(13절). 그들은 세상일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은 때가오면 교회의 구원을 이룩하신다. 원수들이 대적하고 자기편이 게으름을 피운다할지라도 하나님은 때가되면 교회를 구원하실 것이다. 암소를 이스라엘땅으로 인도하신 보이지 아니하는 그손이 다시금 그소들을 여호수아의 밭으로 인도했다. 왜냐하면 그밭에는 궤를 올려놓기 좋은 큰돌이 있었기 때문이다(14,15,18절).
(1) 밀을 베던 자들은 '궤를 보고 기뻐하였다'(13절). 궤를 찾아오거나 값을 치르고라도 찾아오려는 열심이나 용기가 그들에게는 없었지만 궤가 돌아오자 진심으로 이를 기뻐했다.
(2) 그들은 소를 번제로 드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으며 수레의 나무는 패서 번제의 불을 피웠다(14절). 아마도 블레셋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냈을때는 그것들이 속건제물이 되어 속죄를 이루게 되기를 바랐던것 같다(3,7절).
(3) 그들은 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보낸 보물상자와 함께 들판에 있는 큰돌 위에 올려놓았다. 그곳은 여호와의 궤가 있기에는 너무 초라한 장소였다. 하지만 다곤신전이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들이 궤를 실어온 소와 수레를 불태운 것은 다시는 궤가 이스라엘땅 밖으로 실려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소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할수 있다. 그리고 궤를 큰돌 위에 놓은것은 궤를 또다시 굳건한 터위에 고정시켜 놓고자하는 소원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진다.
(4)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큰돌이란 아무래도 제사를 드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흙으로 쌓은 제단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15절). 우연히 이곳으로 궤가 돌아온 것은 시간이 흐르면 그곳에 궤를 두고자하는 의도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벧세메스는 유다의 몫에서 아론의 아들에게 할당된 성읍들중의 하나였다(수 21:16). 어떻게해서 궤가 제사장의 성읍으로 온것일까? 그곳 사람들이 궤를 내려놓고 제사를 드릴준비를 하는 성직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블레셋의 방백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열심을 보고 크게 감동해서 에그론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곤을 섬기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Ⅲ. 벧세메스 사람들의 범죄와 형벌 6:19-21
(1) 벧세메스 사람들의 범죄 :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로(19절). 금지된 지식을 알고싶은 야망때문에 우리모두 타락한 것이다. 이같이 궤를 들여다보는 것이 커다란 범죄가 되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가 궤를 가볍게 여기는데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궤가 이제막 풀려나와 정착하지 못하고있는 현재의 상태가 보잘것없어서 그렇게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가 비록 시시한 방법으로 실행된다고해서 그 규례자체를 시시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다. 그들이 만약 명철한 눈으로 궤를 바라보고 겉모양으로만 판단하지 않았다면 그궤가 어느때보다도 더한 위엄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 그로인해 받은 형벌 :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요세푸스는 단지 칠십인을 치신 것이라고 전한다.
(3) 벧세메스 사람들의 두려움 : 그들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20절)하고 말했다. 하나님앞에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렇게하도록 청함을 받으며 힘을 얻고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앞에 서서 하나님과 겨루어 보는것은 불가능하다.
(4) 그들은 궤를 다른곳으로 보내고 싶어했다.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까' 하고 그들은 물었다(20절). 그들은 벧세메스보다 훨씬 고지에 있는 강한 성읍 기럇여아림은 벧세메스에서 실로로 가는 도중에 있었다. 그래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가져가라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보냈을때는 실로의 장로들이 가져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궤를 이성읍에서 저성읍으로 보내며 정식으로 돌보지않았던 것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표시이다.

# 핵심
6:1-18
거듭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다못한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의 율법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언약궤를 되돌려 보냈다. 언약궤는 탈취된지 7개월이 지난뒤에 마침내 이스라엘의 땅 벧세메스에 도착했다.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소(6:7)
고대 헷(Hittite)족속의 종교적인 의식을 기록한 문서를 보면, 이구절에서 묘사하는 내용과 비슷한 절차가 발견된다. 헷족속의 경우, 적국의 신에 의한 재앙이라고 생각될때는 그신을 달랠 목적으로 숫양 한마리에 왕관을 씌워, 적국의 영토로 몰아내었다고 한다. 블레셋인들은 숫양대신에 길도 들인적이 없고 새끼를 낳은지 얼마 안되는 암소를 선택했다. 만일 이러한 암소가 곁길로 달아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향해간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향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 묵상
언약궤 귀환의 의미 ( 6:1-21 )
언약궤의 귀환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지키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앞에서는 어떠한 우상도 무력하다는 것입니다(5:3-5). 또한 하나님은 대적자를 심판하시며(5:6-12),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않으시고(21절), 선민에게는 항상 거룩을 요구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19-21절).
언약궤와 함께 나타난 이적들 ( 6:1-9 )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러이적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요단강물이 갈라졌고(수4:7, 11), 여리고성이 무너졌으며(수6:5-20), 우상의 신상이 무너져 깨지고(5:1-4), 블레셋인들에게 독종의 재앙이 내려 망하게 되었습니다(5:6-12). 뿐만아니라 언약궤를 들여다본 벧세메스인들이 죽었고(6:19, 20), 언약궤를 만진 웃사가 사망했습니다(삼하6:6, 7).
언약궤의 귀환과정이 주는 교훈 ( 6:10-18 )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의 영광이 실추되는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우리의 영광을 회복시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영원히 버리시지는 않습니다(롬8:31-39).
법궤의 이동경로 ( 6:12-19 )
에벤에셀(블레셋 전투에서 빼앗김) - 아스돗(다곤의 신상을 파괴) - 가드(블레셋 백성을 침) - 에그론(독종이 임함) - 벧세메스(법궤를 본 70인이 사망함) - 기럇여아림(20여년간 머무름) - 나곤의 타작마당(법궤를 만진 웃사가 죽음) - 오벧에돔의 집(법궤가 머무는동안 축복을 받음) - 다윗성. 이러한 법궤의 이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과 인간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해설
돌아온 법궤 ( 6 )
본문은 블레셋이 탈취한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다시 되돌려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여기고 다곤신전에 전시하였지만, 이후로 블레셋땅에는 계속하여 재앙이 그칠사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제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땅으로 돌려보낼 결심을 하였습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속건제를 드림
1) 속건제 드리기를 의논함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면서 속건제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이는 언약궤가 이방땅에 와서 부정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 신앙을 잘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언약궤를 불경스레 취급한 자신들의 잘못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인생은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정도는 하나님앞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죄악된 습성이 있음을 깨달을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a.언약궤를 불경스레 다룸(삼상5:2)
b.죄를 깨닫는 지식(롬1:20)
2) 우상을 만들어 속죄함
블레셋 사람들은 속건제를 드리기위해 금독종과 금쥐 각각 다섯개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재앙을 피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앞에서 회개하려 한 자세는 바람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방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앞에서 회개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방법 역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적 방법이어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행위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형식도 결코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a.회개하는 신앙(호6:1)
b.신앙의 내용과 형식의 중요성(마23:23)
3)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함
블레셋 사람들은 암소에 언약궤를 실어 보내면서 한가지 실험을 하였습니다. 만약 이소가 이스라엘땅 벧세메스로 가면 블레셋땅에 임한 재앙은 이스라엘 하나님이 보낸 것이고, 그렇지않고 좌로나 우로가면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기로 한것입니다.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은 재앙을 만나 하나님께 회개의 제사를 드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하는 사악한 습성이 있습니다.
a.하나님을 시험함(마4:7)
b.의심많은 인생(민14:22)
2.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냄
1) 암소의 발걸음을 벧세메스로 향하게 하심
암소는 수레에 언약궤를 실은채 이스라엘땅 벧세메스로 곧장 향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빼앗긴 언약궤는 마침내 7개월만에 이스라엘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 하나님의 선하고 전능하신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피조물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주관하는 분임을 실감케 됩니다.
a.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잠16:9)
b.피조물의 운행과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창1:1)
2)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
벧세메스 사람들은 수레에 언약궤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전 블레셋 군사에게 빼앗긴 언약궤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이를 본 벧세메스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레의 나무를 패고 암소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즉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고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는 그은혜에 감사할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고서도 그은혜에 감사할줄도, 하나님께 영광돌릴줄도 모르는 자는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배은망덕한 자들입니다.
a.은혜에 감사하자(엡2:8)
b.감사의 희생제사(레7:15)
3. 벧세메스 사람에게 임한 재앙
1)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함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가 이스라엘땅으로 돌아온 것을 크게 기뻐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너무 기쁜 나머지 이들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만 언약궤를 들여다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7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언약궤를 들여다봄으로써, 직접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결과가 되었던 것입니다.
a.하나님을 본 자는 죽음(삿6:22-23)
b.주의 영광을 위해 살 자(마6:33)
2) 무지한 벧세메스 사람들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를 들여다본 자들이 죽음을 당하자 큰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언약궤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가져다주는 불길한 물건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로 보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하는 자는 큰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지못하고 오히려 언약궤를 다른처소로 보내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벧세메스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무지하였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은 알지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거룩한 언약궤를 불길하게 여겨 축복을 저버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a.신앙지식이 없는 자는 망함(호4:6)
결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빼앗긴 언약궤는 우여곡절끝에 벧세메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주의 백성이 범죄하고 그릇행할때,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이 훼손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편 인생은 이렇게 연약하고 실수와 허물이 많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초자연적 능력과 섭리를 통해 당신의 거룩하신 뜻과 계획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영광을 가리지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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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다곤이 부서짐 5:1-5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굴복시켰다. 전쟁을 치르기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굉장히 두려워했기때문에 이제 그궤를 소유하게되자 더욱더 기뻤다(4:7).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가자 하나님은 그들이 그궤를 난폭하게 다루지못하게 하고 안전한 장소로 조심스럽게 모셔가게 하셨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으로 모셔갔다. 아스돗은 블레셋의 5대 성읍중 하나이며 다곤의 신전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의 곁에 두었다(2절).
1)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곁에 두고 성스러운 물건으로 숭배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이방의 신들은 다른신을 결코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라들은 신을 바꾸려고는 하지않았으나 계속해서 신의 숫자를 늘렸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다곤의 신상곁에 둠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숭배하려고 한것은 큰실수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홀로 예배를 받지않으시는한 절대로 예배를 받지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신인 다곤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나님의 궤를 승리의 노획물로 그곁에 두었다.
① 하나님은 언약이 파괴되고 무시되는한 언약궤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셨다. 아무리 거룩한 상징일지라도 하나님을 구속하거나 우리가 믿을수 있는 것은 아니다.
② 잠시동안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를 모욕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심으로써 더더욱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로 하나님을 높이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궤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심으로써 이를 가볍게 여긴 이스라엘을 벌하신 다음 하나님께서는 이를 노획한 자들을 벌하시며 그들의 손에서 다시 돌려받고자 하셨다.
(2) 하나님의 궤가 다곤을 굴복시켰다. 몇번이나 다곤이 하나님의 궤앞에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다곤을 섬기는 자들이 예배하려고 신당에 와서는 자기들의 승리가 잠시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욥 20:5).
1) 다곤이 여호와의 궤앞에서 엎드러져 그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3절). 이방의 우상들은 흔들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단단히 세워졌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주목한다.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사 41:7, 46:7). 아무리 단단히 세웠다하더라도 다곤의 신상은 쓰러지고 말았다. 사단의 왕국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왕국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거짓은 진리앞에, 불경은 경건앞에, 타락은 신실한 자의 마음속에 있는 은혜앞에 엎드러질 것이다. 신앙이 쓰러지며 파멸되는것 같아 보여도 승리의 날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할수 있다.
2) 다곤의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우상이 마루에 쓰러져 있는것을 보고는 다른사람들에게 알려지기전에 도로 제자리에 세워놓으려고 급히 서둘렀다. 도와주어야만 다시 일어설수 있는 것을 신으로 섬긴다는 것은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들의 도움을 청해야할 우상들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다곤은 하나님의 궤앞에서 자기자리도 하나 지키지 못하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들의 승리한 것이 다곤의 능력덕분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다곤을 자기들의 신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다곤을 제자리에 세워놓았다.
3) 다음날밤 다곤은 다시한번 엎드러졌다(4절). 머리와 두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었으며 몸뚱이만 남아있었다. 또한 난외주에 의하면 다곤의 물고기 토막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추측하건대) 다곤신상은 인어와 같이 윗부분은 사람모양을 하고있고 아랫부분은 물고기모양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엎드러지자 보기흉한 괴물의 본색이 드러났다.
① 다곤신이란 아주 우스운 것이며 경멸할만한 것임이 드러났다. 엎드러짐으로해서 다곤신상이 분해되자 다곤신상의 인체부분과 물고기부분이 어떻게해서 인공적으로 결합되었는가를 알게되었다.
② 다곤신이 아주 무능하며 믿고 기도할만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졌다는 것은 다곤에게 지혜와 능력이 전혀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뿐만아니라 다곤을 섬기는 자들에게 충고를 해주지도 못하며 그들을 위해서 무엇하나 해줄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4) 다곤신전의 문지방을 신성시하여 아무도 그것을 밟지 않았다(5절). 스바냐 1:9절에서 이와같은 다곤숭배들의 미신적인 관습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본받아 문턱을 뛰어넘는 자를 벌하시겠다고 하셨다. 문지방때문에 다곤의 목이 잘린것을 보고는 다곤을 멸시하는 대신 도리어 그문지방을 다곤의 목을 자른 단두대라하여 그문지방을 섬기기에 이른 것이다.

Ⅱ. 블레셋 사람들의 근심거리 5:6-12
다곤이 쓰러진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사건을 잘이용해서 자기들의 우상숭배를 회개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의 얼굴을 찾았다면) 하나님의 궤에 행한 모욕으로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복수를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망하게 하셨다. 가드에서는 그것을 '큰환난'(9절). '사망의 환난'(11절)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렇게도 표현하고 있다. 죽지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12절). 그독종은 아마도 페스트였던것 같다. 죽지아니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독종의 재앙으로 치자(6절) 슬퍼서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12절). 다시말해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아주 먼곳까지 들렸던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너무나 괴롭고 비참해서 다곤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것 같다. 그독종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질병이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멸시했던 것같이 그들의 교만을 꺾으시며 그들을 멸시하였다. 그질병은 일종의 전염병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병이었던것 같다. 아스돗과 그지경을 쳐서. 아스돗 사람들은 곧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손임을 알게되었다(7절). 이렇게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속에 있다는 것을 고백할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곤을 버리고 여호와께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이 살과 뼈를 치시는데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저주하려고 하며 하나님과 화해하고 궤가 머물도록 공손히 청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궤를 치우고 싶어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혼나게 될때 가능하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교제할 생각을 않고 멀리 쫓아버린다. 이렇게해서 아스돗 사람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가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하리라'고 작정을 한다. 그래서 궤를 가둬둘 장소를 변경하기로 결정한다. 가드로 궤를 옮기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8절). 그들은 장소에 잘못이 있다는 미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궤를 다곤신전에서 먼곳에 두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궤를 원래의 위치로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않고 다른장소로 보낼 생각을 했던 것이다. 가드는 거인족으로 유명한 마을이었으므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커다란 몸집과 센힘도 페스트와 독종을 막을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성읍 사람의 작은자와 큰자를 다 치셨다(9절). 난쟁이나 거인이나 하나님의 심판앞에서는 다 똑같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궤를 없애고 싶었다. 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보냈다. 총회에서 명한 것이므로 에그론 사람들은 이를 거절할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치명적인 선물을 보낸 높은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들이…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백성을 죽이려 한다(10절). 즉시 총회가 소집되어 궤를 본처로 돌려보내는 일을 의논하였다(11절). 그들이 그문제로 의논하는동안 하나님의 손은 위력을 발휘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해보려는 그들의 계략은 더큰 심판을 초래할 뿐이었다. 더많은 사람들이 독종에 걸려 신음하였다(12절).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 핵심
5:1-12
언약궤를 가져간 블레셋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생기고, 그들의 우상 다곤의 신상이 부서지는 일이 일어났다. 우상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밝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다곤(5:2)
블레셋과 메소보다미아, 수리아, 베니게 등지에서 B.C. 2500년경부터 숭배되어 왔던 우상이다. 이 우상의 이름은 곡물을 뜻하는 히브리어 ‘다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다곤은 농경과 다산(多産)을 주관하는 것으로 여겨진 우상이다. 여신 아스다롯(31:8-10)을 비롯하여 바알세불(‘군주이신 바알’이란 뜻)과 함께 숭배되었다(참조, 삿 16:23-30; 대상 10:10).

# 묵상
블레셋 족속에게 일어난 사건 ( 5:2-12 )
하나님의 언약궤를 단순한 축복의 도구로 생각했던 블레셋인들은 우상을 섬기는 가증한 신당에 하나님의 궤를 모셔 놓음으로써 그들의 우상이 파괴되며 법궤를 가까이하는 사람마다 큰재앙이 닥치는 기이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계속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의 궤가 가증한 이방인의 손에서 유린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몸은 주님의 성전(고전3:16; 6:19)이기 때문에 날마다 경건과 의로움으로 덧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의 능력과 평화를 담아두어야 합니다.
블레셋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 ( 5:6-12 )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빼앗았던 블레셋인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심판하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조롱거리나 포로가 될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우주를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셨으며, 이방민족에게서도 스스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궤가 있어야할 곳 ( 5:11 )
하나님의 궤가 있어야할 곳은 타락한 이스라엘도, 불의한 블레셋 진영도 아닌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거룩한 장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거룩지못한 가증한 장소나 혹은 불신앙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궤, 곧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가 나타날수 없습니다.

# 해설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 ( 5 )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이 이 언약궤로 말미암아 얼마나 큰고초를 겪게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언약궤는 하나님의 지상임재 처소로서 주의 백성들에게는 무엇보다 복된 성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신 블레셋 백성에게 있어 언약궤는 오히려 진노와 재앙만을 불러왔습니다.
1. 다곤신에게 재앙이 임함
1)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전쟁을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방법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언약궤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매우 불경스런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을준비를 갖추지 못한자는 아무리 거룩하게 여겨지는 성물로도 결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받지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a.외식적인 신앙(마23:3)
b.은혜받을 준비가 된 심령(렘29:12-13)
2) 다곤신이 엎드러짐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에서 큰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언약궤까지 빼앗아서 그들은 승리의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언약궤를 자기의 신전에 전시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곤신이 언약궤앞에 엎드러지는 기이한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군사에게 패배하였지만, 하나님은 결코 블레셋의 신인 다곤에게 굴복당하실수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은 연약하여 넘어질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어떤경우에도 결코 불신세상이나 세상의 악한 세력들에게 굴복당하거나 싸움에서 지는 연약한 신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a.천하만물을 능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시33:8)
3) 다곤신상이 부숴짐
다곤신전에 언약궤가 전시된 후로 다곤신상에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다곤신상이 엎드러져 머리와 목, 팔과 다리가 온통 부숴진채 발견된 것입니다. 이는 곧 우상의 허망함을 분명하게 교훈해 줍니다.
a.허망한 우상(롬1:22-23)
2. 아스돗 사람에게 재앙이 임함
1) 다곤신전 문지방을 밟지않음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신전의 문지방을 밟지않는 관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곤신이 언약궤앞에서 엎드러져 그머리가 문지방에 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문지방이 다곤신의 머리에 의해 신성해졌기에, 밟지않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a.타락하고 부패한 인생(시51:5)
b.허망한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인생에게 경고함(행17:29)
2) 아스돗에 독종재앙이 임함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신상이 파괴되는 재앙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무섭고 기이한 현상을 보고서도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재앙은 블레셋 백성들에게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아스돗에 있는 블레셋 백성들에게 독종재앙이 임한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결코 회개치않을때 하나님은 더크고 무서운 재앙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a.독종재앙(삼상6:4)
b.회개를 촉구함(마3:2)
3) 하나님을 두려워함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으로인해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운 신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앞에서 자신들의 우상숭배 행위를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만을 알았지, 회개하는 자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긍휼많으신 하나님으로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형벌만을 내리는 공포의 신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구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하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a.두렵고 엄위하신 하나님(신32:22)
b.자비하신 하나님(롬8:38-39)
3. 가드와 에그론에 재앙이 임함
1) 독종재앙이 발생함
블레셋 사람들은 재앙을 피하기위해 언약궤를 가드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다시 에그론으로 언약궤를 보냈습니다. 이제는 에그론 사람들이 큰소동을 벌였습니다. 에그론에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이 임할것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에서든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재앙을 피하고, 숨는다고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두렵고 엄위하신 심판은 오직 회개함으로써만 능히 피할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a.하나님의 심판(계2:5)
b.회개하라(계2:6)
2)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냄
블레셋은 결국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스라엘에 돌려보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블레셋지경에 언약궤가 들어온이후 언약궤가 가는곳마다 블레셋 사람들은 질병으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보아 알수 있듯이, 하나님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분명하게 발견할수 있습니다. 친히 인간을 지으신 분이기에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능히 주관하는 주권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a.인간의 창조자 하나님(창1:27)
b.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눅20:38)
결론
언약궤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친교하며, 예배하는 거룩한 매개체가 됩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재앙을 가져다주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가 성도들에게는 구원과 은혜의 기회가 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곧 심판과 재앙의 전조가 됩니다. 세상 마지막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면서 참으로 주님의 재림이 구원과 영생복락의 신호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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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블레셋과의 싸움 4:1-9
(1)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1절). 이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압제의 멍에를 벗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이 먼저 회개하고 개심한후에 선한의도에서 그전쟁을 시작했었더라면 그들은 승리했을 것이다.
(2) 이싸움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하였다(2절). 공격하던 이스라엘이 패했으며 그전쟁에서 사천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진영에는 가증할만한 죄악이 있었으며 그로인해 이스라엘이 바라던 승리가 적에게로 돌아갔다.
(3) 그들은 다른방법을 모색하였다.
1)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나타나신데 대해 불평하였다(9절).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패하게 하셨는고. 그들은 대담하게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훈계하며 하나님께서 하신일을 못마땅해 하고 그일로 하나님과 논쟁을 벌였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진영으로 가져오면 다음번에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유리하게 만드시도록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실로에 사람을 보냈다. 엘리에게는 그것을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못된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궤에 딸려 보냈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이 가도록 허락했다.
① 백성들은 하나님의 궤를 매우 귀중히 여겼다. "가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게 하라. 그러면 우리에게 기적을 일으켜 줄것이다." 하나님의 궤란 제도상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상징이었다. 그들은 이 신성한 궤를 귀중하게 여김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임을 증명할수 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게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종교의 본질을 떠난자들이 종교의 의식을 준수하는 일에는 매우 관심을 보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우상시했으며 이방인들이 섬기던 우상이 그들의 신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② 그들은 하나님의 궤에 대해서 엄청나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진영에 가져오기만 하면 그궤가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줄' 것이며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맹이는 없고 껍질뿐인 궤가 그들에게 무슨유익을 줄수 있겠는가?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 하나님의 궤에 대한 기대가 효과가 있었다할지라도 홉니와 비느하스가 궤를 가져오는데 축복을 가져오리라고 어떻게 기대할수가 있었을까?
(4) 하나님의 궤가 진에 도착하자 이스라엘 진에는 큰기쁨이 있었다(5절). 온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이제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다.
(5) 이스라엘 진에 여호와의 궤가 들어오자 블레셋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사들은 매우 가까운곳에 진을 치고 있었기때문에 이스라엘이 지르는 함성을 다들었다. 블레셋은 곧이어 이스라엘이 어찌해서 의기가 양양해졌는지 알게 되었다(6절). 또한 그들은 그로인한 결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전에는 그런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우리에게 화로다(7절). 우리에게 화로다(8절).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블레셋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보자. 그들은 마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궤가 그곳에 도착하기전에는 이스라엘 진에 계시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바른생각을 가지지 못했던만큼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예전에 이런일이 일어났을때에는 큰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8절).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던것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었다. 애굽인들에게 재앙이 내린것은 하나님의 궤가 만들어지기 이전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로 나오기 이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이 능한 신들'이라고 말하면서도 그사실을 전혀 믿지않았으며 농담으로 말했던것 같다. 그들은 오히려 더큰 함성을 지르며 싸울것을 서로서로 격려했다.

Ⅱ. 이스라엘의 패전 4:10,11
여기에는 그전쟁의 결과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1) 이스라엘은 전쟁에 졌다. 군대는 흩어지고 완전히 참패했다.
1)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좋은 조건이 있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반석이 그들을 배반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다하더라도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이 악할때에는 도리어 해로울때가 있다.
2) 그들은 승리를 굳게 믿으며 용기백배했는데도 패하고 말았다. 진에 궤가 있다고하더라도 그안에 아간같은 사람이 있는한 전혀 힘이 되지 못한다.
(2) 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가져갔으며 홉니와 비스하스는 둘다 죽임을 당하였다(11절).
1)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한성품을 생각하면 이들 제사장이 죽임을 당한 것이 이스라엘에게는 그다지 큰손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엘리의 집에 내린 무서운 심판이었다. 하나님이 하신말씀이 여기서 실현되었다(2:34).
2) 하지만 궤를 빼앗긴 것은 이스라엘위에 내린 크나큰 심판이었으며 이로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사악함때문에 특권을 상실했는데도 불구하고 껍질뿐인 그특권을 굳게 믿으며, 하나님이 이미 자기들을 떠나셨는데도 그궤가 자기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Ⅲ. 엘리의 죽음 4:12-18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했다는 소식이 실로에 전해진다. 나쁜소식일수록 빨리 전해지는 법이다. 실로에 급히 전갈을 보냈다. 전갈을 가져온 이는 바로 베냐민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그가 사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옷을 찢고 그머리에 티끌을 무릅썼다. 이렇게함으로써 슬픈소식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그소식을 가지고 곧장 실로로 갔다.
1. 그소식을 들은 실로의 반응(12,13)
엘리는 성문에 앉아있었다(13,18절). 그러나 소식을 가지고 오던 사람은 엘리를 그냥 지나쳐 성에 들어가서 그소식을 상세히 전했다. 그러자 이미 예언한바대로 '그것을 듣는자마다 두귀가 울렸다'(3:11). 가슴은 떨리고 얼굴은 모두 흙빛이 되었다. 온성이 부르짖는지라(13절).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실로의 멸망과 쇠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곧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궤를 되찾게 되기는 하지만 다시는 실로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실로를 버리신 일을, 한참후에는 예레미야에게 생각나게 하시며 그것을 보고 주의하라는 경고로 삼으신다(렘 7:12). '너희는 실로에 가서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2. 엘리의 비참한 운명(14-18)
(1) 엘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비록 나이가 많고 눈이 어두웠으며 몸은 둔했지만 이스라엘의 영광이 위태한 지경에 있는 것을 알고는 그대로 자기방에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길가에 나와 소식을 제일먼저 듣고자 하였다. 그마음이 여호와의 궤로인하여 떨릴즈음이라(13절). 그는 또한 절박한 위기를 깨달았다. 이스라엘(특히 그의 두아들)은 여호와의 궤를 빼앗겼다. 지금 엘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처소의 환난을 보게될 것이 두려웠다(2:32). 아마도 엘리는 자기의 권위를 가지고 궤를 진영에 끌고가지 못하게 막지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선한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자신의 세상적인 이익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의 이익에 더깊은 관심을 가진다. 하나님의 궤가 안전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안심할수 있을까?
(2) 그소식을 듣고 엘리는 매우 슬퍼했다. 그는 잘 볼수는 없었지만 온성이 부르짖고 훤화하는 소리는 들을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소리가 애곡하는 소리인줄을 알았다. 엘리는 진중에서 급한 전갈을 가진 사람이 왔음을 듣게된다. 그사람은 모든사건을 자세히 보고한다(16,17절). 군대가 패배하고 많은 군사들이 살육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사인 그는 너무 슬펐다. 또한 두아들이 회개하지 못한채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아버지된 그의 마음은 매우 아팠다. 그는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이 그랬던 것같이 아들들이 죽은데 대해 애곡하느라고 전령의 이야기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야기가 끝나도록 기다렸다. 그전령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묻지않아도 하나님의 궤에 대해서 말을 할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전령이 만약 "그러나 하나님의 궤는 안전합니다. 궤를 지금 도로 모셔오는 중입니다."라고 말할수만 있었다면 엘리는 기뻐서 다른 모든재난의 슬픔을 이겨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전령이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는 말로 보고를 끝내자 그는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 그는 졸도했다가는 곧 숨이 끊어진것 같다. 심장이 먼저 터지고 다음에는 목이 부러졌다. 이렇게해서 아들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어리석고 악하게 키운 것으로인해 마침내는 자신이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가 죽은것이 아들들의 죽음때문이 아니라 궤를 빼앗겼기 때문임을 주목하고 엘리에 대한 칭찬을 잊지말도록 하자.

Ⅳ. 비느하스 아내의 죽음 4:19-22
엘리의 집이 파멸해가는 또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와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으로인한 슬픔을 여기서 볼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에 이모든 재난을 가져오게한 엘리의 못된 아들들중의 비느하스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1) 비느하스의 아내는 마음이 매우 부드러운 여자였다. 그녀의 때가 가까운 것이다. 존경하던 시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리고 악한사람이긴 했지만 사랑하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자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였다'(19절). 그에게 아기를 낳을 힘이 있었다할지라도 곧이어 점점 힘이 빠지며 죽게되었다. 그녀의 생에 있어서 가장 큰즐거움을 잃게되자 살고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2) 비느하스의 아내는 은혜를 받은 여자였다. 남편과 시아버지의 죽음을 염려하는 것은 그녀의 육친적인 애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보다도 궤에 대해서 더욱 염려하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과 성물들에 대해서 경건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수 있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21절).
1) 그녀의 곁에 섰던 여인들이 말했다. "두려워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아마도 첫아이였을 것이다). 어려운 일은 이제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않았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겨서 슬퍼하는 자에게 그것이 무슨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궤는 빼앗겨 블레셋땅에 갇혀있는데 이스라엘땅 실로에서 한아이를 출산한 것은 그녀에게 도무지 위로가 되지 못했다.
2) 이로인해 그녀는 아이에게 그재난을 영원히 기억할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는 "영광이 어디있는가?" 또는 "슬프도다. 영광이여" 또는 "영광이 없다"(21절)는 뜻이다. 그녀는 죽어가는 입술로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22절). 하나님이 떠나시면 영광도 떠나고 모든선도 떠난다.

# 핵심
4:1-22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한다. 전쟁에 앞서 마땅히 하나님의 인도를 먼저 구하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단순히 언약궤를 가져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미신적인 생각에 만족했을 뿐이다. 결국, 언약궤마저 적군에게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게 되고, 엘리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
블레셋(4:2)
애굽왕 람세스 3세(Rameses Ⅲ)시대의 애굽문서를 보면, 블레셋 족속이 ‘해양민족’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사사시대에(삿 3:31) 그들은 이미 가나안 남부 해변지역에 정착하여 다섯개의 도시국가 연맹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 다섯도시는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였다(6:17). 블레셋 족속은 종종 영토를 확장하려 했고, 그결과 이스라엘 민족과 끈질긴 대립관계에 놓일수밖에 없었다.

# 묵상
여호와의 능력발휘 방법 ( 4:3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궤를 통한 상징적인 현현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징은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그리스도의 사역과 죽음을 통한 진정한 현현의 방법으로 증거되었습니다.
언약궤의 유래과정 ( 4:4 )
언약궤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증거로 이어져 왔습니다.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에 언약의 역사요, 예언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신약에 와서 비로소 그언약과 예언은 성취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을 예표하던 언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방인에게 알려진 여호와의 능력 ( 4:7, 8 )
이방인이라 함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지않는 패역한 무리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당시 이방인에게 알려진 여호와는 강대국이었던 애굽에 여러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이스라엘을 구하신 분으로서, 오랜시간이 지난후에도 화를 주시는 신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힘을 발하지 못한 언약궤 ( 4:10, 11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 백성이 형식적으로 여호와의 궤를 멘다고 능력이 생길수는 없습니다. 능력을 발하는 것은 궤자체가 아니라 언약궤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불신한다면, 우리의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앞에서 득죄한 자의 말로 ( 4:17, 18 )
하나님께 대한 범죄의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아담때부터 죄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갈라놓는 심판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롬3:23).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무시한다면 이와같은 결과를 낳을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와 이스라엘의 영광과의 관계 ( 4:22 )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궤는 곧 이스라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진정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주안에 거해야함을 말씀하셨고 주께서 우리안에 거해야만이 여호와의 영광에 이를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해설
엘리집안의 멸망 ( 4 )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집안을 향해 내린 심판과 저주가 실제로 역사속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블레셋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이 크게 패배하고, 언약궤를 빼앗기며, 이로인해 대제사장 가문이 완전하게 몰락해가는 한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한치의 오차없이 그대로 이루시는 분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1. 블레셋의 침공
1) 블레셋이 침공함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와, 선지자로 사역을 시작한 직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원래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특정한 국경선없이 서로 맞붙어있어 분쟁이 잦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시금 블레셋의 침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범죄하고 회개치않는 엘리집안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속에서 친히 섭리하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a.블레셋의 작은 침공(삿13:1)
b.역사속의 하나님(출3:6)
2) 이스라엘이 패배함
블레셋의 침공을 당한 이스라엘은 군사를 모집하여 블레셋에 대항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삽시간에 4,000명이나 되는 군사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절하게 패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패배당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전쟁을 통해 엘리집안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무고한 이스라엘 군사들이 전사하고, 이스라엘에 큰두려움이 엄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한사람의 그릇된 지도자가 국가나 백성에게 얼마나 큰해악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발견하게 됩니다.
a.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배함(삼상31:1)
b.악한 지도자가 미치는 피해(마23:15)
2. 언약궤를 빼앗김
1)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급기야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지고 왔습니다. 군사력으로 블레셋 군사를 이기지 못함을 감지한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힘을 빌어 블레셋군대를 격퇴하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이후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은 전쟁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방군사들을 물리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하나님의 지상임재 처소인 언약궤의 힘을 빌어 대적을 물리치려 했던 것입니다.
a.전사되신 하나님(출14:14)
b.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잠21:31)
2) 이스라엘이 또 패배함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블레셋 적진을 향해 나아간 이스라엘은 또다시 블레셋 군사에게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궤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런 참담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하지못하던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물리쳐 주시리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로서는 패배의 슬픔보다 먼저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언약궤 그자체가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할때는 아무리 언약궤를 앞세운다한들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를 받을만한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a.외식적인 신앙의 허점(마3:9)
b.은혜받을 심령을 준비하라(렘33:3)
3. 엘리가문의 몰락
1) 엘리의 두아들이 전사함
엘리 대제사장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제사장들로서 아마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가 전사했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살아생전 온갖 악행을 자행한 결과, 결국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즉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기를 서슴지 않았으며, 또 하나님께 드리기위해 가져온 희생제물을 탈취하여 자신들의 몫으로 삼는 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택한 제사장이라해도 하나님앞에 불경되며, 잘못을 범하고서도 회개치않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게되는 것입니다.
a.엘리 두아들의 죄악(삼상2:12,16)
b.악에 빠지지않도록 주의하라(벧후3:17)
2) 엘리가 목이 부러져 죽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언약궤마저 빼앗겼다는 소식과 더불어,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전사소식을 전해들은 엘리는 그만 앉은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진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두아들의 불량스런 행실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고, 아들들을 그릇되게 양육한 죄의 대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주안에서 올바로 양육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올바로 감당치 못할때, 부모된 자는 그책임을 결코 피할수 없게됩니다.
a.올바른 자녀교육(엡6:4)
b.부모의 책임(신6:7)
3) 비느하스의 아내가 출산중에 죽음
남편 비느하스의 전사소식과 시아버지 엘리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비느하스의 아내는 갑작스레 산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던 도중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엘리집안은 갓태어난 핏덩이 이가봇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멸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은 두렵고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지만, 일단 심판을 시작하시면 세상 어느누구도 그분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거나 가로막을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a.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요일4:8)
b.엄위로우신 하나님(출19:21)
결론
이처럼 하나님은 엘리집안을 완전히 멸하셨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또한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 그죄가 결코 작다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사건을 보면서 우리역시도 주님의 진노를 사는 행실을 범하지 않았는지 한번 반성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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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사무엘을 부르심 3:1-10
여기서는 첫째, 사무엘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얼마나 성실했는가를 말하고 있다. 어린 사무엘이 엘리의 아들들을 부끄럽게 만듦으로써 그들의 죄악이 더욱 드러난다. 그들은 여호와를 반역했으나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은 아비의 훈계를 무시했으나 사무엘은 이를 엄수하였다. 사무엘은 엘리앞에서 그의 감독과 지시를 받으며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먼저 순종할줄 아는 자들이 다스리는 일도 잘하는 법이다. 둘째, 그당시에 예언이 얼마나 희귀했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르시자 사무엘은 매우 놀랐으며 이스라엘에게는 큰은혜가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1절). 사람들의 눈에 띄지않았기에 희귀했던 것이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불신앙과 부정이 성막에서 횡행하며 온나라를 더럽히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대가로 예언의 영을 거두셨던것 같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신 방법은 매우 특수한 것이었다. 즉 흔치않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셨다.
(1) 엘리는 자리에 들었다. 사무엘은 침상에서 엘리의 수종을 들었다(2절). 그가 자기처소에 누웠고.
(2) 사무엘은 밤에 노인이 무엇인가 필요해 부르면 언제든지 갈수 있도록 엘리의 방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잠을 자려고 누웠다. 아들들은 엘리에게 큰근심거리였으며 어린부하가 그의 기쁨이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누웠더니(3절).
(3) 하나님이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자 사무엘은 엘리가 부르는줄 알고 엘리에게로 달려갔다(4,5절).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수 있다.
1) 엘리의 수종을 들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무엘의 성실함을 볼수 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4절). 이는 사환들이 부름을 받고 올때 본받아야할 훌륭한 모범이다. 이는 또한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순종할뿐만 아니라 그들을 정성스럽게 모셔야 한다는 본보기이다.
2) 사무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는데 생소했음을 알수 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다. 이같은 실수를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범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목회자의 말로만 생각하여 응답한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도구들만을 바라볼 뿐이다. 엘리는 자기가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서 다신 누우라고 부드럽게 일렀다. 그가 가서 누웠더니(5절).
(4) 똑같은 부르심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같은 실수가 두번, 세번 거듭되었다(6-9절).
1) 하나님은 다시 사무엘을 부르셨으며(6절) 세번째 부르셨다(8절).
2) 사무엘은 여전히 자기를 부르시는 이가 여호와인줄을 알지 못했다(9절).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신실한 자들도 마음속에 나타난 성령의 증거를 이렇게 오해할수가 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성령이 주시는 위로를 잃어버리곤 한다. 또한 죄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성령의 노력도 가끔 오해해서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무엘은 두번째도 세번째도 엘리에게 가서는 "당신이 부르셨으며(6-8절) 당신외에는 부를 사람이 없나이다"고 분명히 말한다. 사무엘이 이처럼 엘리에게로 몇번씩이나 가게된데에는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을때 그것을 자기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자기의 시중을 드는 종인 어린 사무엘을 택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엘리는 자기집안이 망하는 첫단계로 이해했을 것이다.
(5) 마침내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채비를 하였다.
1) 사무엘이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줄 깨달은 엘리는 사무엘에게 어떻게 말해야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9절).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를 갖추었을때 비로소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을 기대할수 있다(시 85:8 ; 합2:1).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설교하는 일에 종사하고자 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빛과 능력앞에 자기를 드러내며 이에 순복하여야 한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2) 하나님이 네번째에는 약간 다른방법으로 사무엘을 부르신것 같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부르시는지라(10절). 이말씀을 통해서 이번에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보였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이로인해 자기를 부른 사람이 엘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하나님이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것처럼 두번이나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3) 사무엘은 엘리가 가르쳐준대로 대답하였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10절). 이번에는 사무엘이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알았던때와 같이 일어나 달려가지 않고 누운채로 경청하였다. 마음이 진지하고 차분할수록 하늘의 일을 보다 잘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실때는 모두들 잠잠해야 한다. 그런데 사무엘은 한마디를 빼놓았다. 사무엘은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라고 하지않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만 말하였다. 패트릭주교의 말에 의하면 사무엘이 자기에게 말하는 이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지못했기 때문인것 같다.

Ⅱ. 엘리의 집에 내린 두번째 경고 3:11-18
(1) 이같이 서론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하나님은 엘리의 집에 관한 메시지를 사무엘에게 전하셨다. 그메시지는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전해준 것만큼 길지않고 짧았다(2:27). 그러나 그것은 앞장에 나온 메시지를 비준하고 거기서 선포된 판결을 굳히는 슬픈 전갈이었다.
1) 죄에 관한 내용. 그죄악을 그는 알고 있었다(13절). 하나님의 사람이 그죄악에 대해서 말한바 있으며 엘리의 양심이 수차례 그것을 지적하였었다.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13절). 히브리역에 의하면 그는 그들에게 눈쌀을 찌푸리지 아니한 것이다.
2) 형벌에 관한 내용.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해서 말한 것을…다 이루리라…(12,13절). 판결이 집행되기 시작하면 모든 이스라엘이 매우 놀라며 두려워할 것이었다(11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귀가 울리리라(11절). 엘리의 아들들이 죽고 엘리의 목이 부러지며 엘리의 집안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놀라게될 것이다. 엘리의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14절). "그죄를 속하지 못하며 그형벌을 감하지 못하리라." 이것이 바로 율법의 희생제도의 불안전함이다. 율법에 의한 희생제도로는 해결하지 못하며 제거하지 못하는 죄악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죄를 도말해주시며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보혈과 관계를 맺은 모든자들을 죄의 삯인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준다.
(2) 이 메시지를 엘리에게 전한다.
1) 사무엘은 조심스럽게 그메시지를 숨겼다(15절).
① 그는 '아침까지 누워있었다.' 그는 깨어서 자기가 들은바를 여러번 숙고하며 누워있었을 것이라고 당연히 추측할수 있다.
② 그는 아침에 여느때와 같이 성전에 제일먼저 올라가 '여호와의 집문을 열었다.' 다른때에는 성전문을 연다는 것이 어린 그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그런일이 매우 하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어떤 어린아이들보다도 높여주셨으나 그는 그명예를 자랑하지 않았으며 전과 같이 기쁜마음으로 성전에 올라가 성전문을 열었다.
③ 사무엘이…그이상을 엘리에게 알게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왜냐하면 그는 착한노인이 근심하며 슬퍼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2) 엘리는 조심스럽게 그이상에 대해서 물었다(16,17절). 엘리는 사무엘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무엘을 불렀다. 아마 자기 침상곁으로 불렀던것 같다. 엘리는 그메시지가 자기에 관해서 좋지않은 것을 예언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인만큼 모르고 있을수는 없었던 것이다. 선한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 하나님의 뜻을 모두다 알고 싶어한다.
3) 마침내 사무엘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성실하게 전달하였다(18절).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4) 엘리는 신앙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엘리는 사무엘을 더불러 논쟁하지도 않았으며 그선고가 공정치 못하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18절). '이는 여호와시다.' 그분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며 어떤 피조물에게도 잘못을 행한적이 없으시며 앞으로도 잘못을 행하실 분이 아니시다. 또 그분은 피조물들의 죄악을 그이상으로 벌하시는 분이 아니다.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다. 나는 그분의 처사에 대해서 아무런 할말이 없다."

Ⅲ. 선지자로 세움받은 사무엘 3:19-21
이렇게해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상을 보는일에 익숙해졌다.
(1) 하나님은 사무엘을 명예롭게 만드셨다. 사무엘에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그자신의 일을 수행하시며 이루셨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19절). 하나님은 사무엘을 높여주셨다.
1) 사무엘에게 자신을 다시금 나타내 주심으로써 사무엘을 높여주셨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21절).
2)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신말씀을 이루심으로써 사무엘을 높여주셨다. 그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19절). 사무엘이 선지자로서 한말은 무슨말이든지 진실한 것이 입증되었으며 적시에 실현되었다.
(2)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존경했다. 그들은 모두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줄을 알고 그사실을 인정했다(20절). 사무엘은 점점 유명해졌으며 또한 그세대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선한 그는 곧이어 선한일을 하게 되었다.

# 핵심
3:1-21
어린 사무엘이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내용이다.

# 묵상
하나님의 침묵 ( 3:1 )
엘리제사장 당시 하나님의 말씀이 잠잠해진 상황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합니다. 이 침묵은 온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일종의 벌(사64:11)이요, 죽음의 선고와도 같습니다(시28:1).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이 인간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속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지속된 인내가 엿보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충실한 종을 보내시기 위해 의도적인 침묵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자 ( 3:1-10 )
영적으로 무지한 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그가르침을 싫어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고 자기의 잘못을 하나님께 돌리며, 의와 불의를 분별치 못하고 참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성령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가르침을 생활속에서 실천해야할 것입니다.
사무엘시대 ( 3:13 )
종교적으로는 제사제도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사회적으로는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졌으며, 가정에서는 부모의 통제력부족으로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했습니다. 뿐만아니라 국가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제력이 부족했으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하나님은 사무엘을 세우셨습니다.
속함을 얻지못하는 죄 ( 3:14 )
본문의 말씀은 엘리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함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 특히 사명받은 자가 성령의 가르침대로 행하지않고 타락의 길로 빠지는 것은 심각한 죄악으로서 결국은 성령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성령이 지시하는 방법과 인도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성령을 모시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말씀의 경로 ( 3:21 )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종의 입술과 삶속에서 자신을 직접 드러내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의 임재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역사에 속하는 것으로, 대언하는 자나 듣는 자가 감각적인 확신에 임할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해설
세움받는 사무엘 ( 3 )
본문에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가 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엘리집안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새로운 당신의 사역자를 세우기로 작정하셨고, 그사람으로 사무엘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이렇게 철저히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 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1.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
1) 엘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워짐
당시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있던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는 곧 당시대가 부패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일꾼인 대제사장조차도 하나님앞에서 범죄하여,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가리셨음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시대가 타락하고 부패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는 가려지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a.타락하고 부패한 세대(창6:5-6)
b.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지 못하는 세대(시74:9)
2) 사무엘을 계속해서 부르심
나이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몇차례에 걸쳐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을 당신의 사역자로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무엘이 당신의 음성을 들을때까지 계속해서 부르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상하심은, 마치 우리 죄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위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시고, 또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까지 계속하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긍휼을 분명하고도 충분하게 보여줍니다.
a.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롬8:38-39).
b.사역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출3:4)
3) 하나님과 만난 사무엘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답하였습니다. 그는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겸손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떤 요구라도 응답할 자세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결과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받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갖춘자를 부르시사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a.준비하시는 자를 부르심(사6:8)
b.겸손한 순종(창12:4)
2. 엘리집안의 멸망을 예고하심
1) 엘리집안의 멸망을 경고하심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엘리집안의 몰락을 고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집안에 내려진 심판경고는 반드시 성취되리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것은 그무엇이든지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선언이 아니라, 구원약속의 응답을 받는 복된 자들이 됨이 마땅할 것입니다.
a.엘리집안에 내려진 심판(삼상2:31)
b.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출3:16)
2) 자녀를 잘못 다스린 엘리
엘리집안의 멸망은 그의 자녀들의 불순종에 있었습니다.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성물을 탈취하는 불의를 자행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자녀들의 잘못을 엄하게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의 아들들은 불경스런 범죄를 계속 저질렀으며, 마침내 그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한 엘리와 그가문은 큰심산을 받게 되었습니다.
a.불량스런 엘리 아들들(삼상2:22)
b.올바른 자녀교육(엡6:4)
3) 영영히 속함을 입지못하는 엘리집안
하나님은 엘리집안의 잘못은 제물로도, 예물로도 결코 사함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앞에 용서받지 못할죄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존엄성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죄는 결코 사함받지 못합니다. 엘리 아들들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실수에 의해 범한죄를 크게 두려워하며 회개하는 자와는 달리, 이들은 고의적인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런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a.용서받지 못하는 죄(마12:31)
b.고의적인 범죄(신19:11-13)
3. 선지자가 된 사무엘
1) 여호와가 함께하시는 사무엘
사무엘은 자라는동안 줄곧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였고, 또한 나이가 들고, 훗날 늙어서 하나님의 품으로 갈때까지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받은 자는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하고,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a.하나님이 함께하심(창5:24)
b.자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눅2:52)
2) 백성들이 사무엘을 선지자로 인정함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모든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신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이스라엘 전국각지에 있는 모든백성들로부터 하나님의 사역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꾼은 모든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받아야 하지만,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a.하나님이 인정하심(삿11:9)
b.사람들이 인정함(마5:16)
3) 하나님이 당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심
사무엘이 선지자가 된이후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당신의 뜻을 이스라엘에 나타내 셨습니다. 엘리 제사장때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잘나타나지 않았는데, 사무엘이 선지자가 되면서 다시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발견할줄 아는 신령한 눈을 가져야 합니다.
a.엘리에게 가려진 하나님의 계시(삼상3:1)
b.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심(출3:12)
결론
엘리에게 가려졌던 하나님의 뜻과 계시는 이제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면서 다시금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역자의 사명은 실로 막중합니다. 한사람의 사역자가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사회가 바르게 서기도 하고, 죄악이 만연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적지도자들은 엘리 제사장처럼 되지말고 사무엘 선지자와 같이 모두 신실하고 신령한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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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한나의 노래 2:1-10
여기서는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으로 감동받은 한나의 감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수 있다. 첫째, 한나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주시사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그사실을 시인하였다. 감사는 우리가 마땅히 바쳐야할 세금과도 같은 것이다. 둘째, 한나가 받은 자비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특히 그것에 대한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한나의 감사를 여기서는 기도라고 한다. 한나가 기도하여(1절).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에서 간구했을때는 그음성이 들리지 않았으나 감사의 기도를 드릴때는 모두들 그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한나는 말할수 없는 신음으로 간구했으나 이제는 입술을 열어 하나님께 찬양을 올린 것이다. 한나의 감사에서 세가지 사실을 알수 있다.
(1)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영화로운 완전하심으로인한 한나의 승리와 하나님께서 한나를 위해 베풀어주신 위대한 일들을 볼수 있다(1-3절).
1) 하나님께 대하여 한나는 어떤 위대한 일들을 말하였는가. 한나는 그때 누리고 있었던 특수한 은총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한나는 자기가 받은 선물은 무시하고 그선물을 주신분을 찬양한다. 그에 반하여 대개의 사람들은 선물을 주신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단지 받은 선물에만 연연해 한다. 여기서 한나는 하나님의 영화로우신 속성 네가지를 찬양한다.
① 하나님의 거룩하심. 여호와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2절).
② 하나님의 전능하심. 우리 하나님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③ 하나님의 측량할수 없는 지혜. 즉 만인의 심판자이신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다'(3절).
④ 틀림없는 하나님의 공의. 즉 하나님은…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2)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한나는 어떻게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때 우리는 거기서 위로를 받을수 있다.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① 거룩한 즐거움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내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1절). 아들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인하여 즐거워한 것이다.
② 거룩한 승리로인해 위로를 받았다. 내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아들을 얻음으로해서 명성을 회복했을뿐만 아니라 그러한 아들을 얻음으로해서 명성이 높아졌도다." 내뿔이 높아졌다는 뜻은 나에 대한 칭찬이 이상할정도로 대단해졌다는 뜻이다. 내입이 크게 열렸으니. 다시말해서 "이제는 나를 비난하던 자들에게 답변해야만 하겠다."
3) 여기서 한나는 하나님과 경쟁하며 그에게 대적하는 자들의 입을 어떻게 막았는가.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말 것이며.
(2) 한나는 인간사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주목한 사실을 알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강한 자는 곧 약해지며 약한 자는 곧 강해진다(4절).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용사의 활은 꺾어진다.' 그들의 무기는 소용없게 되며, 전에 행하던바와 같이 행하지 못하며, 하려고 계획한바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말씀만 하시면 약해서 비틀거리던자 그리고 약해서 똑바로 걷고서지도 못하던 자들이 몸과 마음에 '힘으로 띠를 띠며' 위대한 일들을 할수 있게 된다.
2) 부자는 곧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는 곧 부유해진다(5절). '재물은 날아가 버리며'(잠 23:5). 재물이 있을때 그것으로 행복을 삼던 자들에게는 비참만이 남는다. 모든것이 풍족하며 부족함과 고역을 모르던 자들에게는 가난이 갑절이나 고달픈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섭리로인해 때때로 '주리던 자들은 주리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전과 같이 양식을 얻기위해 품을 파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런일은 같은 사람에게도 일어날수 있다. 욥의 경우와 같이 부자였던 사람을 하나님은 가난하게 만드시며 얼마후에 다시 부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주셨다가 빼앗으시며 다시 주신다. 부자들은 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졸지에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실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낙심하며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멀지않아 그들을 다시금 부하게 하실수 있기 때문이다.
3) 식구가 없던 가정에는 식구가 많아지고 식구가 많던 가정에는 식구가 줄며 쇠잔하게 된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다'는 말은 한나 자신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현재 한나에게는 아들 하나밖에 없지만 그 한아들을 나실인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직접 섬기게 하면 그 한아들이 한나에게는 일곱아들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또는 이말은 한나의 믿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지금 한나에게는 한아들밖에 없다. 하지만 한나는 더많은 아들을 갖고 싶어했으며 결국 실망하지 않았다.
4)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신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6절). 하나님께서는 어려워서 하시지 못할 일이 없다. 죽은자를 다시 살리는 것도, 마른뼈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도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5) 높아지는 것이나 낮아지는 것이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은 어떤자들은 낮추시고 어떤자들은 높이신다(7절).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시며 낮은 자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신다. 또한 위에 계신 하나님과 겨루는 자들은 진토에 묻어 밟아버리신다(욥 40:12,13).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높이신다(약 4;10). 요셉, 다니엘, 모세, 다윗은 이렇게해서 놀라웁게 높아진 자들이다. 그들은 감옥에서 궁전으로 높아졌으며 양치는 막대기에서 홀을 잡기까지 높아졌다.
6) 아무리 놀라운 일이라 할지라도 이모든 경륜에는 우리가 묵묵히 따를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8절).
① 이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통제할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의 기초가 되는 모든 피조물을 떠받들고 계시며 지금도 여전히 능력의 말씀으로 그모든 피조물을 지속시키고 계시다. '땅을 공간에 다신'(욥 26:7)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초월하여 가정일이든 국가일이든 하시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② 이말씀을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비할데가 없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논박할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의 방백들이나 귀인들 그리고 국가와 정부의 통치자들은 '땅의 기둥들이다'(시 75:3). 그들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다(시 47:9).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권력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자들을 높이실수 있는 것이다. 누가 "당신이 무엇하느냐"고 말할수 있을까?
(3) 하나님의 진실한 친구들은 모두 보호를 받으며 높아지리라는 것과 하나님과 그들의 원수들은 모두 멸망하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셨으며 지금 행하고 계신 일들을 통해서 이루실 일들에 대한 즐거운 소망으로 끝을 맺고 있다(9,10절). 그당시에는 경건한 열정이 종종 예언으로까지 승화되곤 했었다. 이 예언에 관해 살펴보자.
1) 이 예언은 보다 가깝게는 사무엘과 사무엘이 기름을 부은 다윗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사사시대에는 매우 보잘것없는 민족이었으며 생존을 위해 애써야 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곧 강성한 나라가 될것이며 이웃민족들을 모두 복종시킬 것이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였다. 사무엘의 출생은 즉 그러한 시대의 여명이었다.
2) 하지만 이 예언이 그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나라, 은혜의 나라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한나는 섭리의 나라에 대해서 대략 말하고 다시 이제는 은혜의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메시야' 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이름이 나온다. 일찍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주석가들은 이 이름이 다윗을 지나쳐 다윗의 자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중보자의 나라의 영광스러운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할수 있다.
① 그나라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9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을 지키신다고 하면 그들의 머리와 마음은 말할것도 없다. 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며 즉 하나님께서 그들이 서있는 땅을 안전하게 하시며 그들의 보행을 견고케 하실 것이며 그들의 행위와 감정을 은혜로 인도하셔서 그들의 발이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길에서 비틀거리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② 그나라를 대적하는 어떤권세도 그나라를 멸망시키지는 못한다.
③ 그나라를 대적하는 원수들은 모두 깨어지며 멸망할 것이다. 악인으로 흑암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④ 그나라는 멀리까지 확장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10절). 다윗의 승리와 통치는 먼곳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땅전체를 메시야의 소유로 약속되었다(시 2:8).
⑤ 왕이신 메시야의 능력과 영예는 점점더 커질 것이다. 즉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수 있도록 '여호와는 자기왕에게 힘을 주신다'(시 89:27). 또한 그에게 힘을 주셔서 낮아진때에 어려움을 잘극복하게 하시며 높아진때에는 '머리를 드시고'(시 110:7) 기름부은 자의 뿔 즉 능력과 영예를 높이시고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신다'(시 89:27).

Ⅱ.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 2:11-26
여기서는 엘가나 가정의 선한면과 엘리 가정의 나쁜면을 볼수 있다.
(1) 엘가나의 가정이 얼마나 일이 잘되어가며 전보다 얼마나 좋아졌는가 살펴보자.
1) 그들이 성전에 있는 어린아들에게 가면 엘리는 그들을 축복해서 보냈다(20절). 한나에게 여러아들이 있었다면 그중에 한아들을 바쳐 성전에서 봉사하게 한것이 그다지 놀라운 신앙행위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아들이 하나뿐이었다. 그아들을 여호와께 바친 것은 결코 상을 잃지 않을만한 영웅적인 신앙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자 수많은 후손을 약속받았다(창 22:16,17).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한나가 사무엘을 여호와께 산제물로 바치자 그같은 약속을 받은 것이다.
2)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말이 11절과 20절에서 두번이나 나온다.
3) 그들은 꾸준히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매년 제를 드렸다(19절). 그들은 아들이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고 있다고해도 그곳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아이를 보기위해서 일년에 한번 이상씩 성전에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로는 라마에서 10마일밖에 되지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해마다 한번씩 매년제를 드리러 올라가는 것은 눈에 띄었다. 그때 그들은 매년제를 드릴 제물을 가지고 갔으며, 한나가 아들을 위해 새로운 '작은 겉옷'과 거기에 따르는 것들을 모두 지어다 주었기 때문이다(19절).
4) 어린 사무엘은 일을 잘하였다. 이구절에서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가 네번에 걸쳐 나온다. 여기서 두가지 사실을 알수 있다.
①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다. 사무엘은 그일을 정말로 잘했다. 그아이는…여호와를 섬기니라(11,18절). 아마도 사무엘은 엘리의 바로곁에서 섬겼던것 같다. 그는 촛불을 켜거나 접시를 들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문을 닫는 일같은 것을 할수 있었다. 이런일들을 아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했기때문에 '여호와를 섬겼다'고 한 것이다.

② 사무엘은 여호와께 복을 받았다. 사무엘은 어린나무같이 '여호와앞에서 자랐으며'(21절) 힘과 키가 그리고 특히 지혜와 명철이 '점점 자랐다'(26절).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여기서 사무엘에 대하여 일컬은 바가 그대로 우리 구세주에 대해서도 일컬어진다(눅 2:52).
(2) 바로 성전문에 앉아 있으면서도 엘리의 가정에서 일어나 악한 일들이 행해졌는가 살펴보자. 교회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진 것이다.
1) 엘리의 아들들이 저지른 악행 :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12절). 그들이 불량자였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12절). 그들은 높은 사람들과 성직자들이 사는 수원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량자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예와 권력과 학식으로인해 그들은 더욱 악해졌다. 우상숭배와 신성모독, 특히 제사장들의 신성모독 중에서 어느것이 더 하나님을 모욕하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① 그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모독하였다. 그것을 취해서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거나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사치심을 만족시켰다.
첫째, 금들은 제사드리는 자들을 약탈했으며 화목제의 제물을 자기들 몫으로 정해 놓았다. 제사장들의 몫은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였다(레 7:34). 그러나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앞에까지 나아갔으며 하나님의 권리마저도 침범하였다. '사람을 괴롭게 하는일이 작은일인양 그들은 또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였다'(사 7:13). 그결과는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은 매우 노하셨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앞에 심히 큼은(17절).
㉡ 이로인해 그들의 종교에 손상이 있었다.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이런 슬픈이야기 중간에 사무엘의 경건함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러한 악한무리들 가운데서도 사무엘을 순전하고 경건하게 지켜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입증하듯이 '사무엘은 여호와앞에서 섬겼다.' 그리고 사무엘의 이러한 자세로인해 백성들의 마음속에 성전에 대한 신앙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② 그들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범했다(22절).
2) 엘리가 아들들에게 한 책망.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22절). 그래서 전처럼 성막일을 돌볼수가 없었다. 엘리는 모든일을 아들들에게 맡겼는데 그들은 엘리가 늙었다고 무시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다. 아들들이 그여인들을 범했다는 말을 듣기전까지는 엘리는 그다지 아들을 책망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아들들을 책망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것이다. 엘리가 아들들을 책망한데 대해서 살펴보자.
① 엘리의 책망은 아주 정당하며 이치에 맞았다. 엘리는 매우 합당한 말을 하였다.
첫째, 엘리는 그사실이 너무도 분명하므로 부인할수 없으며 너무도 공공연히 행해졌기때문에 숨길수 없다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3절).
둘째, 엘리는 아들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즉 그들은 범죄했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하여금 범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범죄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범한 죄악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만 했던 것이다.
셋째, 엘리는 아들들에게 그들이 범죄함으로인하여 발생하게될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였다(25절). 엘리는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 즉 '그들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3:14)는 사실을 아들들에게 암시해 주었다.
② 엘리의 책망은 지나치게 온건했다. 엘리는 아들들을 엄하게 꾸짖어야만 했다. 그들이 행한 범죄는 엄하게 책망할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성품으로 보아서도 그래야만 했다. 엘리가 그들을 온유하게 대해주자 그들은 더욱 강퍅해지기만 했다. 엘리가 한말은 옳았으나 그것으로는 불충분했다.
3) 엘리의 아들들은 책망을 듣고서도 나쁜짓을 계속했다. 자기 아버지가 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25절). 사무엘의 순종에 대해서 다시한번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완악함을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26절).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아들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고 미천한 시골 레위인의 아들에게는 주셨다.

Ⅲ. 엘리의 집에 내린 경고 2:27-36
엘리는 아들들을 온건하게 꾸짖고 겁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엘리를 엄히 꾸짖었다. 메시지를 직접 엘리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회개시켜 구원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엘리의 아들들에게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셨다.
(1) 하나님은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의 집과 그의 가정에 베풀어주셨던 큰일들을 기억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아론에게 나타나셨는데 이는 장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실 은혜의 표시였다(출 4:27). 하나님은 그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며 이로써 그의 가정을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2) 하나님은 엘리와 그가족이 치러야할 죄의 대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의 자녀들은 악을 행하였고 그는 이를 보고도 못본 체하였다. 그렇게함으로써 자신도 그죄악에 가담하였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 고소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29절).
1)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성물을 모독하였다. 너희는…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2) 엘리는 아들들의 오만과 불신앙을 벌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범죄를 도와준 격이 되었다. 네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3) 그들은 탈취한 하나님의 성물을 함께 나누었다. 엘리가 아들들이 행하는 죄악을 미워하며 이를 책망했으면서도 그들이 탈취한 군고기를 먹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인해 두려워해야만 했다.
(3) 하나님은 엘리의 가족에게 주셨던 대제사장직의 상속권을 박탈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30절). 내가 전에 네집과 네조상의 집이 내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엘리는 아론의 막내아들인 이다말의 후손이다). 어떻게해서 대제사장의 지위가 엘르아살의 집에서 이다말의 집으로 옮겨졌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변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이다말의 후손에게 영속된 그지위를 계승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던것 같다. 그러나 그약속에 수반된 조건을 잘 살펴보라. 네집과 네조상의 집이 내앞에서 영영히 행하리라. 즉 "그들이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면 대제사장직의 영예는 그들의 것이 될것이다." 하나님앞에서 행하는 것이 그언약의 중요한 조건이다(창 17:1). 그들의 면전에 나를 세우게 하라. 그러면 나도 영영히 그들을 내앞에 세우리라(시 41:12). 그렇지않으면 나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30절). "너희가 나를 저버렸으므로 나도 역시 너희를 저버릴수밖에 없다. 내앞에서 행하여야할 너희가 내앞에서 행하려고 하지않는고로 너희는 내앞에서 행하지 못하리라."
(4) 이렇게 제사장직을 취소하는 정당한 사유를 하나님의 통치의 확고한 원칙에서 밝혀 주셨다. 이원칙은 우리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창 4:7절에서 가인도 이와같은 원칙의 적용을 받았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30절). 진실로 위대해지는 길은 진실로 선한 길이어야 한다. 우리가 겸손히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하나님을 높이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약속을 의지할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참조. 요 12:26).
(5) 엘리의 가족을 영원히 불명예스럽게 만들 심판이 임하리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1) 그들의 권력이 무너질 것이다(31절).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그들은 모든권위를 빼앗길 것이며 직위에서 쫓겨날 것이며 전처럼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될 것이다.
2) 그들의 생명이 단축될 것이다. 이말씀을 두번이나 하고 계시다. 네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날이 이를지라(31절). 네집에 생산하는 모든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3절).
3) 그들의 즐거움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① 그들은 성소에서 부귀와 번영을 누렸었다. 너는 내처소의 환난을 볼것이요. 이말씀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데에서 성취되었다(13:19).
② 자녀를 통한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내가 끊어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살아서 네집에 짐이 되고 수치가 될것이다." 자식이 죽는 것은 매우 슬픈일이지만 못된 자녀를 두는것은 더더욱 슬픈일이다.
4) 그들은 재산을 다 허비하고 매우 가난해질 것이다(36절). "네집에 남은 사람은 먹을것이 없어 살기가 괴로울 것이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네집의 뒤를 이은 집에 가서 머리를 숙이게될 것이다."
① 그는 아주 하찮은 것을 동냥하게 될것이다. 즉 은 한조각(아주 작은 조각이라는 뜻)과 떡 한덩이를 구걸하게 될것이다. 가난은 방종한 자들에게 적합한 형벌이다. 산해진미라야만 만족하는 자들은 생활필수품조차도 부족하게 될것이다.
② 그는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애걸하게 될것이다. 내게 한제사장의 직분을 맡겨(36절). "나를 탕자에게 적합한 자리인 품군으로 삼아주소서." 부와 권세를 남용할때 그것들은 사라지고 만다. 이말씀은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반역죄로인하여 솔로몬에게 파면을 당해 성전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을때 완전히 실현된것 같다(왕상 2:26,27).
5) 하나님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을 통해서 그리고 그 슬픈소식을 엘리가 살아서 듣게되는데서부터 이심판의 집행을 속히 시작하고자 하셨다. 그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34절).
(6) 이렇게 엘리의 집에 대해서 무서운 경고를 내리는 가운데에도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자비가 나타난다.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35절).
1) 이말씀은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에게서 실현되었다. 사독은 솔로몬 치세의 초기에 아비아달의 자리를 대신하여 충실히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솔로몬의 신임을 얻게된다. 신임을 배반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진실한 다른사람들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그것을 수행할 사람이 없어서 실패하는 적이 없다.
2) 그말씀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서 완전히 성취된다.

# 핵심
2:1-11
한나의 감사기도이다. 비천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은총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사에 대해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며 자기백성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신다는 본서의 주제를 반영한다.
기름부음을 받은자(2:10)
물건이나 사람을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릴때는 기름을 붓는 의식을 거쳐야 했다. 기름부음을 받은자란 왕의 직분을 수행하기위해 구별된 사람을 뜻한다. 같은 표현이 본서와 시편에 자주 등장한다(35절; 12:3,5; 시 2:2; 18:50). 예수님을 일컫는 메시아나 그리스도라는 용어도 ‘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뜻이다. 사실, 한나의 노래는 메시아왕(예수 그리스도)이 종말에 나타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충실한 제사장(2:35)
사무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는 정식제사장으로 위임받은 것은 아니지만, 제사장의 임무에 해당하는 일을 수행했다(7:9,10). 또 사독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삼하 8:17; 15:24). 사독의 후손들은 아비아달이 면직된 이후로(왕상 2:26,27) 마카비(Maccabee)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제사장직을 이어갔다. 혹은 이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로 이해하기도 한다(히 7:11-28). 일차적으로는 사무엘을,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예언한 말씀이라고 보는것이 무난할것 같다.

# 묵상
한나의 경고 ( 2:3 )
브닌나가 한나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지못한채 남을 판단하거나 무시하는 교만과 오만을 버리고 지혜의 하나님앞에 겸손할 것을 한나는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책하시고 벌하십니다(시119: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남으로 겸손한 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한나의 고백 ( 2:6-9 )
한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세계를 그위에 세우신 최고의 전능자로 고백했습니다. 한나의 신앙은 말과 혀로만 증거되는 것이 아닌 진솔한 삶의 깊이로써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 ( 2:10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기름부음의 의식을 통하여 세우셨습니다. 기름부음 받은자란 구약에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사도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협력자(고전3:9)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운 사람들로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의 토대를 놓은 사람들입니다.
제사장의 임무 ( 2:11 )
제사장은 제사의식에서의 봉사와 하나님말씀의 봉사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 두임무 모두는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중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자로서 스스로 산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각자가 직접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벧전2:9).
엘리 아들들의 죄 ( 2:12-17 )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반드시 겸손과 감사함으로 그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손상시키고 욕심대로 갈취하여 결과적으로 제사를 방해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엘리가 아들에 대한 신앙교육을 소홀히 한 비참한 결과였습니다.
엘가나와 한나를 위한 축복 ( 2:20 )
축복이란 풍성하고 건강한 미래를 약속하는 한편, 불행한 자에게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베푸는 것으로서(잠11:26) 하나님의 자비의 선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을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엘리는 엘가나와 한나에게 하나님께 드린 사무엘외에 다른후사를 주셔서 행복한 가정이 꾸며지기를 축복했습니다.
엘리의 죄 ( 2:27-29 )
엘리의 가장 큰죄는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비록 새긴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으나 그아들들을 하나님보다 중히 여김으로 하나님께 책망과 경고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보다 더사랑하고 더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 우상이며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듣게되는 것입니다.
엘리집에 내려진 저주 ( 2:30-36 )
하나님께서 엘리의 집을 완전히 몰락케하신 이유는 제사제도를 유린하는 아들들의 행악과 그들을 다스리지 못한 아버지의 무능을 징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완고한 백성과 거짓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패역한 왕들에게 내려집니다.
충실한 제사장의 선별기준 ( 2:35 )
여기서 충실한 제사장은 사무엘, 사독, 그리스도에 대한 삼중적인 예언으로 볼수 있는데, 충실한 제사장의 선별기준은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되었고(레21:17-23), 결혼과 의식의 순결에 관한 엄격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레21-22장). 그리고 제사장들에게 더욱많이 요구되는 규칙들에 복종해야만 했습니다(레21:10-15). 곧 하나님은 우리중에 사명자를 세우실때,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참된 터를 두고 끝까지 수난의 길을 걸으며 죽음까지 기쁨으로 맞이할수 있는 고난의 종을 부르십니다.

# 해설
엘리의 두아들 ( 2 )
본문에는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그리고 사무엘의 출생과 함께 엘리가문의 패망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사실 엘리가문은 하나님이 택한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가정을 믿음으로 잘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결과 자녀들은 몹시도 불량하여 하나님앞에서 큰죄악을 범했습니다. 분문에는 하나님앞에 범죄하고 회개치않는 자는 그누구를 불문하고 결코 하나님앞에 사죄의 은총을 입지 못하며, 결국에는 버림받을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한나가 감사기도를 드림
1)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함
사무엘을 출산한 한나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녀는 잉태치못한 자가 일곱자녀를 낳게 되었다고 기뻐하였습니다. 이는 곧 한나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얻게된데 대한 감사의 찬양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할줄 아는 믿음의 여성이었습니다.
a.감사하는 신앙(살전5:18)
b.은혜를 저버리고 원망함(출16:12)
2) 미천한 자를 높여주신 하나님을 찬양함
한나는 무자하여 멸시받고, 천태받는 자신이 사무엘을 얻음으로 영광을 얻게된데 대해 감사하였습니다. 이처럼 한나는 자신이 존귀와 영광을 얻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실히 깨닫고 감사하였습니다. 사람이 고달플때는 하나님께 의지하지만, 존귀하고 지체높은 자리에 이르게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불경죄를 범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영광스런 위치에 이르렀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감사하였습니다. 잘될수록 주의 은혜를 기억하고 더욱 주께 가까이 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a.비천한 자를 높여주심(눅1:52)
b.더욱 주께로 나아감(시73:28)
3)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함
한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찬양하였습니다. 실로 무자한 자신이 사무엘을 출산하게 된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능치못함이 없으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기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자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축복을 받게됩니다.
a.전능하신 하나님(창17:1)
b.구한대로 받음(마7:7)
2. 엘리 아들의 죄악과 불순종
1) 하나님의 성물을 탈취함
엘리 대제사장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주 행실이 불량하였습니다. 한예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가져온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앞서 먼저 자신들이 그제물을 가로챘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정성껏 드리는 것이 제사장의 책무일진대, 이들은 오히려 주께 드려야할 것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불경된 행실을 서슴없이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 드리는 자세, 주님의 것을 구분하여 주께 드리는 자세, 바로 이것이 성도의 올바른 신앙자세입니다.
a.주님것을 가로챔(수7:1)
b.주님께 정성껏 헌물을 드림(출36:5)
2)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함
엘리의 두아들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그릇사용하여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겁탈하고 동침하는 죄악을 서슴없이 자행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르고, 음행하는 부정한 행실을 범하였습니다. 게다가 혼인의 신성함을 더럽혔습니다. 더욱이 이런 부정스런 음행을 하나님의 성막에서 자행했으니, 그죄악은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을 도덕적으로 정결하게 다스림이 마땅할터인데, 이들은 오히려 앞장서서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히고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더럽혔던 것입니다.
a.음행의 실례(민25:1)
b.올바른 혼인제도(창2:24)
3) 아비의 훈계를 거절함
엘리 대제사장의 두아들은 아비로부터 심한 꾸지람과 경고를 들었습니다. 더이상 범죄하지 말고 하나님앞에서 회개하도록 촉구하였지만, 이들 두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음행하였고, 하나님의 성막을 더렵혔습니다. 이렇게 엘리의 두아들들은 그아버지의 사랑스런 견책과 훈계마저도 저버리는, 심히 불량스런 악인들이었습니다.
a.부모의 훈계를 귀기울여라(엡6:1)
b.자녀교육(신6:7)
3. 엘리가문에 내려진 심판
1) 가문의 대가 끊어짐
엘리가문은 노인도, 아이도 없게된다고 했습니다. 즉 그가문에 대가 끊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얼마후 엘리와 두아들, 그리고 임신한 엘리의 며느리가 한꺼번에 모두 죽음으로써 이심판은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앞에 범죄하고 회개치않는 가문의 최후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가 끊어짐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최고의 저주중에 속했습니다.
a.엘리집안이 패망함(삼상4:11)
b.범죄한 가문의 몰락(왕하9:7)
2) 제사장 직분이 다른가문으로 넘어감
하나님께서는 엘리집안의 제사장 직분이 다른집안으로 넘어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잘감당하지 못했기에, 엘리집안은 더이상 제사장 엘리계열의 제사장 아비아달은 몰락하고, 직분을 감당할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엘르아살계열의 제사장이 이스라엘의 제사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직분에 충성치 못한 자의 결과가 이러합니다.
a.아비아달의 몰락(왕상2:27)
b.충성치 못하는 자의 결과(마25:28)
3) 가난과 고난을 면치 못함
살아남은 엘리집안의 후손들은 가난과 고난을 면치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조상의 죄로인해 후손이 고생한다는 말이 아니라, 조상들의 악한 습관이 후손들에게도 은연중에 영향을 주어 그후손들도 자신들의 범죄로 큰고난과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이 증거하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조상의 악한 습관은 그자녀들에게도 좋지못한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삼사대까지 미치는 악한 죄의 습관(출20:5)
b.악한 행실을 삼가라(잠3:7)
결론
이상에서 보듯이 주께 범죄하는 개인과 가정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건하며 성결한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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