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절]
유대인들을 도륙하기로 작정되었던 바로 그날에 '도리어' 대적들이 살해당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을 모해(謨害)하려는 자가 도리어 수욕을 당케 된 사실을(시 71:13) 잘 표현한 구절이다.
[2절]
어떤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전혀 공격의 의사와 싸울 의욕이 없는 대적들을 찾아다니며 살육했다고 주해하였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은 공격해 오는 대적들을 상대로 방어 위주의 전쟁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
[3절]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는 일에 민감한 관원들은 유대인들 편에 서기로 재빨리 결정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도움'은 적극적인 물질적, 군사적 원조라기보다는 유대인들을 지지하고 격려한 정신적 원조를 뜻한다.
(5~10절)
아말렉 족속의 진멸 -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출 17:16; 신 25:17~19) 유대인들이 아말렉 족속을 섬멸하는 내용이다. 비록 아말렉 족속이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합세하여 대적하는 자들은 모두 살해되었다. 당시 분산된 유대인들 중 일부만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기 때문에(스 2:64; 느 7:66), 페르시아 제국 각처에 흩어져 거주했던 유대인들의 수효는 대략 70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수효는 살육당한 대적들의 약 10배 가량이 되는 셈이다(16절).
[7~9절]
하만의 자녀들. 여기 기록된 하만의 열 아들의 이름은 모두 페르시아식이다. 그들의 명단이 동시에 나열된 것은 동시에 살해당했음을 가리키기 위함인 듯하다. 하만이 그토록 자랑했던 자녀들(5:11)은 동시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10절]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재산까지 탈취해도 좋다는 왕의 허락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8:11; 9:15, 16). 그들이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싸웠던 동기가 재물을 탐하는 이기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의 대적들을 멸하는 그 자체에만 의의가 있음을 천명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약 500년 전에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난 후 탐심에 빠져 응당 멸해야 할 것들 중 좋은 것을 남겨 전리품으로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적이 있다(삼상 15:17~23). 아마 모르드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1절]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고하니. 어떤 전쟁이든지간에, 전사자들의 수효를 기록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 수효는 특히 왕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살육이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피살자의 수효가 증가한다는 것은 곧 국가적 손실과도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은 훨씬 많은 인구를 차지했던 유대인들이 모두 무모하게 살해되지 않게 된 사실에 대해 오히려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13절]
살육의 날을 하루 더 연장하고자 한 에스더의 소청은 얼핏 보기에 피에 굶주린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하루에 미처 처치하지 못한 대적들을 남겨 두게 되면 그들은 세력을 규합하여 또다시 유대인들에게 암적인 존재로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화근은 뿌리째 뽑을 필요가 있었다(삼상 15:18). 나무에 달게 하소서. 모르드개를 달려고 했던 하만의 패배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열 아들까지 나무에 달려야 하는 처절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통받는 것 같으나 완전히 패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악인은 그 정반대이다.
(17~32절)
부림절의 유래와 성격 - 여기에는 부림절의 유래와 성격이 간단히 설명되어 있다. 본서의 저자가 3:7절과 9:24절에서 '부르', 즉 제비뽑기에 대하여 설명을 붙여야만 했던 사실 그리고 모세 율법이나 구약성경 어느 부분에도 부림절에 관한 언급이 없는 사실 등을 미루어 부림절이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풍습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확증은 없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가 살던 당시에 세계 방방 곡곡의 모든 유대인들이 부림절을 지켰다고 한다. 수산에 거한 유다인은 살육일을 하루 더 연장 받았으므로 15일을,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은 14일을 부림절로 지켰다. 아달월 13일에는 금식이 지켜졌고, 그날 저녁 사람들은 유대인 회당에 빈번히 왕래하였으며, 저녁 예배 후에는 본서를 낭독하였다. 그리고 부림절에는 회중이 다시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으며 그 후에는 하루 종일 유쾌하게 즐겼다. 이 공중 예배를 위하여 수많은 찬송가들과 암송시가 지어졌으며, 연극, 드라마 등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절기의 두드러진 특색은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과 선물을 보내는 것이었다(9:19). 요약건대, 하나님께서는 자칫하면 이방의 풍습에 동화되어 민족적 순수성을 상실할 위험에 있었던 분산된 유대인들에게 본서의 사건을 통해서, 경종을 울리심과 동시에 '한' 민족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공고히 하게끔 하셨다. 그리고 부림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고 그들이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당신의 초월적인 방법을 통해 구원하신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19절]
성이 없는 고을. 여기서는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산 성을 제외한 모든 도시를 가리킨다. '성이 없는'이란 표현은 주로 '시골 지역'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서로 예물을 주더라. 바로 이 부림절의 관습에서 기독교의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의 풍습이 유래되었다.
[20절]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이 일'은 본서에 언급된 사건의 요지를 말한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모르드개가 본서의 저자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지 모르드개가 서신을 보내기 위해 사건의 요지를 기록했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21절]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 모르드개는 해마다 이날을 부림 축제일로 지키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이날에는 랍비들이 회당에서 에스더를 통독하는 전통이 수립되었다. 따라서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 속에 본서가 정경으로 포함된 것에 대하여 회의를 품는 데 반하여, 유대인들은 이 책을 아주 중요시 한다. 그들은 '비록 율법과 선지자는 폐하여져도 에스더서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22절]
슬픔이 변하여...길한 날이 되었으니. 본 구절은 부림절의 의의에 관해 잘 요약하고 있다(시 30편).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서로 돌아보며 궁핍한 것을 채움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마 19:21).
[28절]
유다인. 이는 페르시아 제국 내의 유다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본토의 모든 백성들을 포함시킨 말로 해석된다. 모르드개는 선지자도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니었고 더구나 포로로 잡혀간 자의 후손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부림절이 별 의의가 없었을 수도 있다. 짐작건대 에스라와 더불어 2차 포로 귀환한 유대인들에 의해 부림절의 참 뜻이 본격적으로 전해진 듯하며, 그 이전에는 서신으로나 혹은 때때로 페르시아와 예루살렘을 왕복했던 자들에 의해 부림절에 관한 소식이 전파된 것 같다.
[32절]
에스더의 명령. '명령'에 해당하는 히, '마마르'는 구약 전체를 통해 본서의 1:15; 2:20절 그리고 본절에만 나온다. 따라서 이는 본서의 저작상이 통일성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그리고 본절의 '에스더의 명령'과 1:15절의 '아하수에로 왕명' 간에 대조점이 더욱 현저히 부각된다. 책에 기록되었더라. 본절의 '책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즉 ①에스더서, ②2:23절과 6:1절의 메대와 바사의 궁중 일기, ③30절의 '편지'로, 이 중에서 두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 해설
대적의 파멸 (1~16절)
왕명 철회 및 갱신은 살해자와 피살자의 역전이라는 기현상으로 나타났으며, 아울러 유대인에게 있어 민족 말살의 날로 역사에 기록될 날이 최대 명절의 하나로 바뀌게 되는 극적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한낱 복속국의 민족주의자로 무시되었던 모르드개는 하만의 위치를 대신하여 바사 통치의 전권을 위임받아 유대인의 대적 말살을 진두 지휘하되, 그 일은 이틀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행해졌다. 마지막 날 대심판을 연상케 하는(계 6:15~17) 이 전면적인 살상극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은혜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악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떠함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하겠다(히 10:30, 31).
부림절 제정 (17~32절)
모든 유대 절기들의 유래와 성격이 그렇듯이 본서에 기록된 부림절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기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아달월 13, 14일 양 일에 걸쳐 시행된 이 절기는 본문에 재차 요약되어 있는바(24~28절), 민족적 멸절의 위기로부터 극적인 구원을 경험케 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자손 대대로 기념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 핵심
1~32절
마침내 조서에 실린 왕의 명령을 시행할 날이 왔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각 지방에서 서로 힘을 집결했고, 자신을 해치려 하는 이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 일이 성공적으로 해결된 것을 기념하여 부림절 축제를 개최했다.
에스더서의 하나님 (2절)
본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그분의 역사와 섭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에스더의 왕후 간택(2:17; 4:14), 왕이 두 번이나 금홀을 내민 것(5:2; 8:4), 왕의 불면증(6:1), 하만과 모르드개의 운명의 극적인 반전(6:10~14)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하심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 묵상
유다 민족을 두려워하게 된 모든 민족들 (1~4절)
본문에서 우리들은 믿는 사람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도 함께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관료들이 새로운 조서에 부응하여 유대인들을 도왔던 것은, 새로운 수상이 유대인이었으므로 만일 부응치 않을 경우 실세를 지닌 모르드개에게 정치적 보복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아달월 13일 (1절)
이 날은 유다인들이 그들의 대적을 제어하게 된 날입니다. 즉 잔인한 하만이 유다인을 죽이려고 계획한 날이었지만, 도리어 그 날은 자신이 멸망하는 날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날 유다인들은 평소에 그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던 사람들, 하만과 공모하여 그들을 해하려 하던 모든 원수들을 전멸했습니다. 이러한 진멸이 단순히 잔인하고 원시적인 보복행위가 아닌 것은, 유다인들이 재산에 손을 대지 않은 것과 그들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본문의 내용은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대적들의 재산에는 손대지 않았던 유다인들 (16절)
재산을 탐욕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한편 이때 유다인들이 칠만 오천 명이나 되는 대적자들을 더 죽인 이유는, 유다인들이 자기 보호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보호하시기 위해 지금도 우리를 위협하는 자를 물리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때에는 악한 세력이 판을 치지만 결국은 성도들이 영광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달월 14일의 의미 (19절)
이 날은 부림절로 원수를 물리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정된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지킴으로 악한 대적들을 참패시킨 승리를 늘 기억하며 이 절기를 계속 신앙적으로 유지했습니다. 이것은 신앙 교육상으로도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 날을 기억하고 또 잔치에 참여함으로써 신앙 공동체를 재확인하는 의미를 가졌던 것입니다.
아달월 14일에 특별히 행하는 일 (22절)
이 날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동포를 도왔습니다. 이러한 행위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의 귀중함과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이웃과 함께하는 기쁨임을 말해 주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쁨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 세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부림절의 어원 (26절)
부림절은 '제비뽑기'란 히브리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것은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달과 날을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은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악한 것을 변하게 하여 선한 것으로 사용하십니다. 이는 악한 우리들이 죄의 용서를 받음으로써 새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출처 : 바이블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