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로운 가지’란 누구인가(렘 23:5)?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의’란 뜻의 이름을 가졌으나 의롭지 못하였고 양떼를 보호하지 못하는 목자였음.
이제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오게하셔서 그의 양떼를 온전하게 하나님의 양우리에 들게하실 것입니다.
그는 바로 다윗의 자손이시요, 죄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에게서 나오는 한 의로운 가지의 이름은(렘 23:6)?

‘시데케누’ 곧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이름.
그가 왕으로 임할때 유다는 구원을 얻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을 통해서 인류에게 진정한 공평과 정의를 가져 오셨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 맹세할 것이며’라는 말씀의 의미는(렘 23:7, 8)?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것보다는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신 것이 더 큰 구원 사건이므로 이제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갔던 나라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된다는 뜻임.
그래서 성도들은 출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이 아니라 바벨론과 같은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쑥과 독한 물을 먹게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렘 23:15)?

쑥은 재난과 슬픔의 상징이며 독한 물은 가혹한 심판을 가리킴.
즉 쑥과 독한 물을 마시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재앙이 전민족에게로 퍼진다는 의미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는 민족 전체의 멸망을 가져옵니다.

 
말일’이란 언제인가(렘 23:20)?

말일이란 ‘여호와의 날’, ‘주의 날’ 혹은 종말의 날로써 악한 자들이 멸망받는 심판의 날임.
우리에게 있어서 말일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게 하고 그를 믿기를 거절하는 사악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게 하는 종말의 날입니다.

 
‘내가 몽사를 얻었다’는 말의 의미는(렘 23:25)?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유혹할때 떠들던 말임.
우매한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이말을 참선지자의 말처럼 여기고 받아 들였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거짓 영에 미혹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겨와 밀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렘 23:28)?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날아가버리는 겨는 몽사를 말하는 거짓 선지자를, 키를 까불려도 그대로 남아있는 밀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참 선지자를 가리킴.
거짓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훔치는 도적이요,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백성들을 미혹케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은 참 예언자들은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들을 왜 치시겠다고 하셨나(렘 23:30-3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지도, 명하지도 않았는데도 백성들에게 나아갔기 때문임.
거짓 선지자들은 돈을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인양 거짓으로 꾸며 말하고, 잘못을 범하고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계속 악을 행하도록 부추켰습니다.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 무엇이냐’라는 구절의 의미는(렘 23:33)?

여기서 말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맛사’란 지고 다니는 짐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말씀은 곧 마음의 짐으로 선지자들은 그런 짐을 진 사람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예레미야가 항상 부정적인 말씀만 선포하므로 백성들이 조롱하는 의미로 ‘여호와의 짐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렇게 묻는 그들의 경솔한 태도가 여호와께 귀찮은 짐이 되므로 그들을 내던지실 것임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의 내용은(렘 23:34, 35)?

유다 백성을 버리는 것 곧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
여기에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백성 모두 해당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않는 것과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엄중한 말씀을 듣지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위에 바로 서있는 삶을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출처 : 갓피플


유다의 지배 계층이 행하여야할 하나님의 세가지 명령은(렘 22:3)?

① 공평과 정의를 행하라 - 이말은 직책을 맡은 자로서 지녀야할 특권과 도리를 당연히 지켜야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이방인, 고아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 - 이것은 약자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③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 이것은 무죄한 자 즉 여호야김 왕이 당시의 선지자 우리야를 칼로 죽인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다왕의 집 문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선포한 말씀은(렘 22:2-5)?

공평과 정의를 행하라.
왕의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바로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권력을 남용하여 불의를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정의대로 불쌍한 자를 돕고 의인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지않으면 왕의 집은 황무해진다고 하셨는데 이는 곧 이스라엘의 정치적 파멸을 의미합니다.


‘네가 ~ 성을 만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렘 22:6)?

길르앗은 요단 동편에 레바논은 갈릴리 북부에 있는 숲으로 모두 수목이 울창한 곳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왕궁을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다는 표현은 왕궁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안에 사는 왕이나 지도자들이 공평과 정의를 행하지 않으면 왕궁을 멸망케 하리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 멸망 선언에 이어(렘7:1-15) 왕궁의 멸망을 선언했습니다.

 
왜 ‘죽은 자’가 아니라 ‘잡혀간 자’를 위하여 울라고 했는가(렘 22:10-12)?

‘죽은 자’란 요시야 왕을 가리키며 ‘잡혀간 자’는 살룸 곧 여호아하스를 말함.
요시야 왕은 의로운 왕이기에 죽었지만 하나님 곁으로 갔으므로 애곡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뒤를 이어 사람들이 왕으로 세운 여호아하스는 애굽왕 느고에 의해 애굽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왕하23:34).

 
유다왕 중 두번째 저주의 대상자는(렘 22:13-19)?

여호야김(B.C. 609-598).
그는 국난을 당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고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도중에 죽었습니다(대하36:6).


‘나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란(렘 22:24)?

오른손은 힘과 능력을 뜻하며 인장 반지는 가장 귀하게 여기는 소지품의 상징임. 따라서 이말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존재를 의미함.
본문에서 고니야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란 곧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의 멸망 예언을 받은 고니야에 대해서 말해 보라(렘 22:26-30).

고니야 혹은 여호야긴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3개월간 통치함.
그도 다른 왕들처럼 악을 행했으며 그의 모친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포로된지 37년후에 바벨론왕 에윌므로닥이 그를 옥에서 내주었습니다(왕하25:27-30).
또한 무자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으나 그들 모두 바벨론에서 죽고 그의 삼촌 시드기야가 그를 이어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출처 : 갓피플


시드기야는 왜 사람들을 예레미야에게 보냈나(렘 21:1, 2)?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했으므로 예레미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게 하기 위해서.
시드기야는 그의 방백들과는 달리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참예언자임을 믿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방백들의 뜻에 따르지 않을수 없는 나약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친바벨론 정책을 권유하는 예레미야의 말이 아닌 애굽을 믿고 반바벨론 정책을 추진한 방백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신앙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사람과 같습니다.

 
‘든 손과 강한 팔’이 의미하는 것은(렘 21:5)?

하나님의 손과 팔을 의지함을 뜻함.
때로는 하나님의 손이 축복의 손으로도 나타나지만 대개는 심판의 손으로 더많이 쓰였습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은 무엇을 암시하는가(렘 21:8-10)?

생명의 길은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갈대아인들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것이요, 사망의 길은 예루살렘에 거주함으로써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는 것.
예레미야는 갈대아왕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심판 시행자로 인정했으며 따라서 갈대아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갓피플


예레미야를 박해한 대표적인 유사장은(렘 20:1-6)?

바스훌.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그를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습니다.
바스훌이란 ‘형통하다’는 뜻이고, 여호와에 의해 새로 붙여진 이름 ‘마골밋사빕’이란 ‘사방에 두려움이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그가 바벨론 포로가 되고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는 B.C. 598년경 제2차 포로때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자신이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다고 했는가(렘 20:7)?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자신을 선지자로 삼으셔서 심판을 예언케하셨기 때문.
‘권유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 ‘파다’는 ‘열다’라는 뜻으로 이는 입을 열어 말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강권하셔서 입을 열어 그의 심판을 이야기하게 하시므로 예레미야는 심판을 말하고 싶지않았지만 그만둘수 없었습니다. 구원이 아니라 심판을 선언한것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백성들의 비방과 모욕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예언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는가(렘 20:9)?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그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불이므로 그 말씀을 들은 자는 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하고 외치는 것이 자신의 해야할 사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미쳤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주변의 악한 무리들은 예레미야를 어떻게 비방했나(렘 20:10)?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고 했음.
이말은 흠없는 예레미야에게 조그마한 흠이라도 발견되면 고소하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레미야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가 힘들고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자신이 핍박을 당한후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렘 20:12, 13)?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음.
이것은 예레미야가 고난중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출처 : 갓피플


예레미야는 누구와 함께 힌놈 골짜기에 갔나(렘 19:1)?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사람.
어른이라고 번역된 이말은 본래 장로들을 가리키는데, 이 이스라엘 지도자들 앞에서 멸망에 대한 상징적 행위를 하는 것은 곧 그들의 얼굴에 숯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는 정치, 종교계의 정통 세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특별히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오지병을 깨라고 하셨나(렘 19:5, 6)?

그곳을 저주하기 위해서.
당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는 도벳 산당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몰렉에게 제사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자들에게 있어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성전 못지않게 신성한 곳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오지병을 깨뜨리게 함으로써 그곳이 파멸될 것이요, 그곳에서 살륙이 행해져 더이상 사람이 찾지않은 곳이 될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오지병을 깨뜨리는 행위의 의미는(렘 19:10-12)?

옛날 애굽 사람들은 반역자들의 이름을 오지병에 쓰고 그것을 거룩한 장소에서 깨뜨려 그들의 멸망을 맹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말씀을 듣지않는 자들에게 실제 행위를 통해서 만든 이의 뜻에 맞지않으면 이처럼 멸망당하고 말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여전히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 성이 도벳 같다는 의미가 갖고있는 것은(렘 19:12)?

도벳은 힌놈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곧 도살의 처소로 바뀔 것임을 뜻하는 것임.
힌놈의 골짜기에 시체가 많듯이 예루살렘성 또한 시체로 뒤덮일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장차있을 바벨론 침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출처 : 갓피플

토기장이와 진흙 비유의 의미는(렘 18:1-12)?

토기장이는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진흙은 피조물인 인간을 가리킴.
이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그의 뜻대로 주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비유한 것은 이사야서에서도 발견할수 있는데(사29:16)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전적인 질적 차이, 하나님의 섭리의 절대성을 드러내는 비유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렘 18:1-12)?

이스라엘 민족의 회개임.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멸하기도 하시며 재앙을 거두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후에도 다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가면 용서를 베푸실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레바논의 눈이 ~ 어찌 마르겠느냐’는 말씀의 의미는(렘 18:13, 14)?

레바논은 항상 눈으로 덮여있어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찬물로 해갈을 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변할수 없는 일들을 가리킵니다.
자연은 변함이 없지만 이스라엘은 그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을 잊고 허무한 것에 분향하는 심히 가증한 일을 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요 있을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있을수 없는 일을 행했습니다.

 
‘옛길’과 ‘곁길’이란 각각 무엇인가(렘 18:15, 16)?

옛길은 아브라함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여호와 신앙 즉 모세의 율법을 의미하며, 곁길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에서 벗어나서 이방 종교의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함.
옛길은 좁은 길이지만 조상들이 이미 걸어간 길이요 그들이 닦아놓은 길이지만, 곁길은 넓은 길이나 닦지않는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옳은 길을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옛길은 축복이요, 영생의 길이지만, 곁길은 저주요, 멸망의 길입니다.

 
예레미야가 사람들 앞에서 행한 것은(렘 18:20)?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 곧 죄의 용서를 구했음.
선지자는 다만 하나님과 사람들을 중재하기 위해 수고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심판을 면치 못한다고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출처 : 갓피플


유다의 죄는 사라질수 있는 것인가(렘 17:1)?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져 있으므로 도저히 사라질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사후에까지 영원히 남게 됩니다(요5:29; 계20:12). 이 죄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해서만 씻겨질수 있습니다(벧전1:18,19).

 
사막의 떨기나무와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렘 17:6-8)?

사막의 떨기나무는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이며,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사람을 가리킴.
사막의 떨기나무는 광야 건조한 곳, 사람이 살지않는 곳에 살며 쉽게 불타버리고 꺾기워지지만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더위와 가뭄에도 끄떡 없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멸망당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영원히 복을 받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렘 17:9)?

인간의 마음.
마음은 눈에 보이지않으므로 사람의 눈을 속일수 있으나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시며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의 눈은 속일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악하고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악하고 더럽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왜 흙에 기록되는가(렘 17:13)?

흙에 기록된다는 것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고(계20:15) 다만 흙에서 낳아 흙으로 돌아감을 의미함.
여호와를 떠난 것은 생수의 근원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므로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여호와를 떠난 자는 죽음에 이르게 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는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될 것입니다(눅10:20).


예레미야 당시 유다인들이 범한 심각한 죄악 중 하나는(렘 17:19-27)?

십계명 중 제4계명인 안식일을 범했음.
하나님은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에 대하여 죽음을 그 형벌로 내릴 정도로 엄격하게 명하셨지만 사람들은 종종 안식일을 범하거나 형식적으로 준수했습니다.
안식일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지켜야만이 참된 안식을 누릴수 있으며 안식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됩니다.

 
안식일을 지킬때와 지키지 않을때 주어지는 복과 화는(렘 17:24-27)?

유다 왕조의 왕위가 끊어지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이 번영할 것임.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준수할때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계속 제사지낼수 있도록 길이 열리지만 안식일을 준수치 않을때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외에도 안식일을 준수할때에는 여러가지 축복을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을때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출처 : 갓피플


이곳에서 아내를 취하거나 자녀를 두지 말라는 이유는(렘 16:2-4)?

재난이 임박했기 때문에 결혼하거나 자녀를 두지 말라는 것임.
이스라엘은 멸망당하며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정착하기 위하여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낳는 행위는 더욱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종말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그날에는 아이밴 자와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24:19).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는 이유는(렘 16:5)?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임.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므로 죽은 자를 조상하고 유족들을 위로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 역시 곧 죽음에 처해질 존재이므로 타인을 위로할 처지가 못된다는 뜻입니다.

 
큰 재앙의 원인과 죄악이 무엇이냐는 질의에 대한 답변은(렘 16:10-12)?

열조가 다른 신을 끌어들이고 하나님의 법을 버렸으며 그들은 그들의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여 마음의 강퍅함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을 청종치 않았다는 것.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긴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악이며, 큰 재앙의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군대를 무엇에 비유하셨나(렘 16:1)?

‘많은 어부’, ‘많은 포수’에 비유하셨음.
어부가 상징하는 것은 그물로 고기를 잡듯이 유다 백성을 잡을 것을 뜻하며, 포수가 의미하는 것은 사냥꾼이 짐승을 잡듯이 유다 백성을 잡을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는 말씀의 의미는(렘 16:15)?

재앙을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임을 계시하시는 의미.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또한 다시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고국으로 귀환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유다에게 내리실 심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렘 16:16-21)?

범죄한 그들을 끝까지 찾아내어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해 배나 갚으시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범죄한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여호와로 알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출처 : 갓피플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렘 15:1)?

모세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선다할지라도 이스라엘을 용서할수 없다는 것.
모세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했을때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했고, 사무엘은 하루도 쉬지않고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삼상7:5-11,12:12).
그러나 모세와 사무엘같이 유명한 중재자가 오더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용서치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라고 묻는 백성에게 대답할 말은(렘 15:2)?

사망, 칼, 기근, 포박을 당하리라는 대답.
이는 여호와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한 자가 당연히 받을 재난입니다. 그들의 비참한 운명은 더욱 심한 재난을 받게되는데 이는 바로 죽이는 칼, 찢는 개, 삼켜 멸하는 새와 짐승에 의해 시체까지도 모욕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친이 나를 ~ 낳으셨도다’는 말씀의 의미는(렘 15: 10)?

예레미야도 욥처럼 자신의 출생일을 저주했습니다(렘20:14; 욥3:1). 출생일은 본래 가장 복된 날이요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악이 아니라 알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고통을 당할때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저주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심판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것 때문에 박해를 받았으며 또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유다 백성의 운명으로 인해서 눈물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다’는 말씀의 의미는(렘 15: 18)?

팔레스틴에는 겨울에 비가 와서 시내가 흐르나 여름에는 물이 말라 그 시내가 없어지는 현상이 있음.
그래서 물이 있던 그 시내를 기억하고 찾으려는 사람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레미야가 환난중에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어서 실망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말라버릴 시내가 아닌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약속해 주신 세가지는 무엇인가(렘 15:20, 21)?

놋성벽이 되게 하겠다는 것, 내가 너와 함께하며 아무 사람이 너를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겠다는 것임.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곤고한 상태에 있는 예레미야를 위로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갓피플


가뭄이 임한 이 시기의 역사적 배경은(렘 14:1)?

이는 여호야김 왕때의 한재를 의미하는 것임.
이때의 가뭄은 전국적으로 극심해서 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당했다고 합니다.
이 가뭄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이었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 일하소서’의 의미는(렘 14:7)?

죄가 앞에 있어 사람을 죄인이라고 증거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주의 명성과 위를 위하여 죄인을 사해달라고 하는 것.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사함받거나 의로울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서 구원을 베풀어 주실때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중보 기도한 것처럼(출32:11-14; 민14:13-25) 예레미야도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 하시나이까’라는 말씀의 의미는(렘 14:8)?

거류자, 행인은 그들이 지나가는 곳의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그들이 유숙하던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이처럼 하나님 역시 이스라엘의 고난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때와 같이 곤란한때의 구원자이셨으나 이제는 이스라엘의 고난을 외면하시고 아무 상관없는 자같이 행동하신다는 뜻입니다.


금식과 번제는 왜 소용이 없게 되었는가(렘 14:12)?

금식과 번제와 소제는 마음의 죄를 통회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종교 의식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회개없이 행해지는 종교 의식은 다만 위선이요, 신성 모독일 뿐입니다.
통회와 자복과 회개가 수반되지 않는 종교 행위는 아무리 가혹한 고행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가치를 발하지 못합니다.

 
예레미야가 평강을 말하는 자들을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 근거는(렘 14:14-18)?

그들은 거짓 환상 곧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예언하기 때문임.
또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원하는 말만을 했습니다.
평강하리라는 그들의 예언은 유다의 멸망을 통해서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의 근거는 무엇인가(렘 14:19-22)?

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
애굽에서 이끌어내셔서 광야에서 죽게하심은 하나님의 이름의 수치임을 근거로 백성들의 죄를 위해 중보 기도드린 모세처럼 예레미야도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으신 주의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을 사해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출처 : 갓피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