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1-4
(1) 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정직히 행치 아니하고(2절). 그는 성전에 대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윗의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의 수치였으며, 그러므로 사실상 자신에게도 수치가 되었다.
(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3절). 그들은 모두 송아지를 숭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여러왕들은 우상숭배가 그들의 국가의 정책이며 대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와같은 구실을 댈수 없었다. 그들은 아하스의 적이었으며, 그들의 우상숭배로인하여 더적대적으로 되어왔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들의 길을 행한 것이다.
(3) 그는 쓰레기같은 잡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또한 우상에 대한 헌신의 표로 자식들을 불에 태우고(대하 28:3), 다른아들들을 두개의 불사이로 지나가게 하거나, 불한가운데를 지나게 하였다.
(4)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3절).
(5) 또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4절). 만약 그의 아버지가 좀더 열심을 내어 산당까지 제거해버렸더라면 아들의 방탕을 방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후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올무를 놓는 행위인지 알지 못한다.

Ⅱ. 앗수르에 도움을 청함 16:5-9
(1) 이웃나라 아람과 이스라엘의 왕이 동맹을 맺고 아하스를 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이계획은 실패하였지만, 아람왕은 홍해에 위치한 주요항구 도시인 엘닷을 회복하였다. 이도시는 아마샤가 아람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24:22).
(2)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아하스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때문에 적에 대항하여 고개를 들 용기도, 능력도 없었으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죄는 그자체가 형벌이다. 앗수르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도우려 다메섹에 내려와서 아람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을 가하였다(9절). 그리고 아람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길'로 끌고감으로 아하스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때 아하스는 그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손해나는 거래를 하였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첫째,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7절). 나는 왕의 심복이요, 둘째, 스스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곳간에서 은과 금을 꺼내 앗수르왕에게 보내었다(8절). 왕이 국고를 이렇게 처리할수 있는 무슨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하나의 죄를 지어서 스스로 협곡에 빠진 사람들은 통상 또다른 죄를 통하여 헤어나오려고 한다.

Ⅲ. 하나님의 전을 더럽힘 16:10-16
비록 아하스 자신은 산당에서 희생을 드렸지만(4절), 그때까지 하나님의 제단은 원장소에서 원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악한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옮기고 다른제단, 즉 우상의 제단을 그장소에 놓았다.
(1) 이 새제단의 모양은 왕이 직접 다메석의 제단을 본따 만든 것이었다(10절).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칠때, 아하스도 그곳에 가서, 그를 축하하고 그의 명령을 받았다. 다메섹에서 그는 그를 꼭 만족시켜 주는 제단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제단의 모형을 똑같이 본땄음에 틀림없다.
(2) 제사장 우리야가 그제단을 만들었다(11절). 왕이 어떤구실을 제시하더라도 대제사장인 그가 사악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제단을 제작한 행위는 가장 형편없는 악한 짓이다. 그는 스스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권위를 매음하듯이 팔아치웠으며, 대제사장의 명예를 더럽혔고, 자기신의를 저버렸다.
(3) 그제단을 봉헌하였다. 우리야는 그것을 놋단옆에 놓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고, 그위에 번제를 드렸다(12,13절). 그희생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우상들에게 드려진 것이다.
(4) 새제단을 놓기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치웠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뜰 북쪽, 외진구석으로 옮기고, 대신 성소에 자신의 제단을 놓았다. 아하스의 미신적인 착상은 우선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충돌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제도를 밀어내었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여기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는자들은 곧 하나님을 무시해버리고 말것이다. 아하스는 감히 하나님의 놋단을 아주 없애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제단을 하나님의 제도위에 두려고 하였다. 놋단은 하나님께 묻기위하여 제작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는 후에 그놋단의 놋을 가지고 '아하스의 일영표'(참조, 20:11)라고 불리워지는 유명한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Ⅳ. 아하스의 죽음 16:17-20
(1) 아하스는 성전을 마구 바꾸었다. 성전건물 자체는 아니지만 성전의 여러기물을 오용한 것이다.
1) 그는 물두멍의 받침을 떼어내고(왕상 7:28,29), 놋바다를 내려놓았다(17절).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을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2) 그는 '안식일에 쓰기위하여 성에 건축한 낭실', 즉 안식일을 기념하기위하여, 아니면 제사장들이 다른날보다 안식일에 많은 직무를 행하였기때문에,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하여 세운 낭실을 옮겼다.
3) 그는 왕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었던,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왕의 낭실(아마 솔로몬이 만든 당시 시바의 여왕이 보고 경탄한 층계일 것이다)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가 더이상 하나님의 전에 자주 출입하지 않을 생각임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2) 아하스는 중년기인 3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치고, 훨씬 훌륭한 자기아들 히스기야에게 왕국을 넘겼다(20절). 히스기야는 자기아버지가 성전에 대적했던만큼 성전의 친구가 되었다.

# 핵심
16:1-20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폈으며,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는 유다의 역대왕들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왕이다.

# 묵상
아하스의 사람됨 ( 16:1-9 )
요담의 아들로 유다의 왕입니다. 또한 그는 이교도의 영향으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행한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습니다(신18:21).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전쟁에서 아하스의 행동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동맹국에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능력의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힘의 근원이십니다(시18:1). 그러나 그힘을 의지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화를 입습니다.
지도자의 실책 ( 16:2 )
지도자의 실책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 전체와 더나아가 그후손들에게까지 악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점에서 지도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큰 심판을 받게됩니다(약3:1). 권리보다 책임을 더욱 통감하는 자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수 있습니다.
아하스의 죄악 ( 16:10-20 )
그는 아람수도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세워진 우상에 미혹되어 예루살렘 성전내에 아람우상을 섬기는 단을 만드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침해하는 중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악한 범죄를 행하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말씀의 중요성 ( 16:16 )
그어떤 권력자의 불같은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것임을 알면서도 보이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여 인간만을 기쁘게 하는것은 크나큰 죄악이 아닐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도리입니다(마6:33).

# 해설
아하스의 유다통치 ( 16 )
다윗왕조를 계승한 유다의 왕들은 비교적 선한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듯이 아하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결과로 온유다는 앗수르가 지워준 멍에를 메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의 우상과 제사의식들을 유다에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성전의 기구들과 구조들도 변경시킨 죄악을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1. 아하스의 악한 통치
1) 유다왕 아하스의 즉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즉위한 해는 이스라엘의 베가가 17년째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하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아하스는 유다의 왕들중 가장 사악한 왕으로 꼽힐정도로 많은 악행들을 일삼았습니다.
a.아하스의 즉위(대하28:1)
b.아하스의 일영표(왕하20:11)
2) 우상숭배를 장려하는 아하스
아하스는 다윗왕조의 훌륭한 선왕들보다는 이스라엘왕조의 사악한 왕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에 깊이 탐닉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자기아들을 불태워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암몬족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큰나무 밑에 산당을 지어놓고 백성들에게 경배할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런 산당이 너무 많았기에 본서의 저자는 모든 푸른나무 밑에는 다 산당이 있고 제사가 행해진다고 말할정도였습니다.
a.자녀를 제물로 바침(시106:37-38)
b.몰렉신(레18:21)
2. 앗수르의 속국이 된 유다
1) 유다를 공격하는 연합군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앗수르에 대항코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였기에 저들의 동참요구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연합군들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이사야선지자는 연합군들이 유다에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로하여금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여 도움을 청하도록 했으나, 아하스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참조, 사7:3-7). 결국 이사야의 예언대로 연합군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람의 르신이 항구도시인 엘랏을 탈환했습니다. 유다는 이후로 엘랏을 되찾지 못했고, 에돔족속이 훗날 이곳을 훼파하였습니다.
a.르신과 베가의 살육(대하28:5-6)
b.아사랴가 건축했던 엘랏(왕하14:22)
2)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아하스
아하스는 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기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명령도 거절한채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앗수르의 지배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물리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대가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안에 있는 은과 금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앗수르왕은 기쁜마음으로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은 먼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공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왕 르신을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아람사람들은 앗수르의 격리수용 정책에 따라서 '길'이라는 지역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했던 아하스의 책략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로부터 연합군들은 물러갔지만 이제부터는 앗수르라는 새로운 멍에가 유다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아하스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a.앗수르왕에게 예물을 바치는 아하스(대하28:21)
b.다메섹의 공격(암1:5)
3. 아하스의 우상숭배
1) 이방의 제단을 만들도록 시킴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다메섹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람의 것인지, 아니면 앗수르가 새롭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제단을 보았습니다. 아하스는 이제단의 구조와 제도를 똑같이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어, 이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왜 이제단을 만들도록 시켰는지는 잘모릅니다. 다만 아람신의 도움을 얻기위해서거나(참조, 대하28:23), 또는 앗수르가 만든 제단으로 생각하여 앗수르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또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보다 화려해서 이렇게 멋있는 제단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도록 시켰을 것이라 여러모로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명대로 제단을 만들었으며, 다메섹에서 돌아온 아하스는 이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a.제사장 우리야(사8:2)
b.민족신 앞에 제사함(대하28:23)
2) 성전의 기구들을 변조시킴
아하스는 제사장에게 명하여 이제부터는 드리는 모든제사의 제물을 저 새제단에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없애버렸고, 놋바다의 놋받침을 없애고 돌판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또한 안식일날 왕이 성전을 방문할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낭실을 헐었고, 오직 왕만이 성전을 들어가는데 사용되던 낭실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전의 모형과 제사의식을 아하스 임의대로 변조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앗수르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아하스의 아부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께 대한 반항이자, 불순종의 극치를 이루는 악행이었습니다. 진실로 유다의 왕들중에 아하스처럼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왕은 없었습니다.
a.놋받침(왕상7:27-28)
b.놋바다(왕상7:23)
3) 아하스의 죽음
때가 이르매 아하스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단순히 그가 죽어서 다윗성에 그열조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하28:27절에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다른 경건한 왕들과 같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는 못하고 단지 예루살렘성에 장사되었다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하스의 지난 행적들을 살펴볼때 그의 악행이 심했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a.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한 아하스(대하28:27)
b.히스기야의 즉위(왕하18:1)
결론
아하스의 악정은 유다에서는 보기드문 예입니다. 그는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민족적인 위기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생각만을 고집하여 작은악을 물리치기위해 더큰 악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가 빠진 깊은 우상숭배의 늪과 여호와앞에서의 신전의식의 결여는 수많은 악행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하스는 한마디로 여호와를 무시한 패역한 자였습니다. 피조물에 지나지않은 인간이 창조주인 여호와를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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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사랴의 즉위 15:1-7
(1) 아사랴는 어려서 왕위에 올랐고 오랫동안 다스렸다(2절). 그리고 열심과 용기를 내어 산당을 없애지 못한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옳은일을 행하였다(3,4절).
(2) 5절의 특별한 기록(하나님께서 문둥병으로 그를 치심)은 역대하 26:16절이하에 그이유와 함께 훨씬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거기에는 아사랴통치 전반기의 영화로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후기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나와있다.
첫째로 그는 문둥병 환자였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그가 제사장직무에 대하여 뻔뻔스러운 월권행위를 했던 죄를 벌하시려고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
세번째로 그는 '죽는날까지' 문둥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사람에 대한 경고로, 끝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네번째로 그는 별궁에 거하였다. 문둥병은 율법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규정되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굴복하고 율법을 준수해야만 했었다.
다섯번째로 궁중일과 국사를 그의 아들이 대신 통치하였다. 그리고 아사랴에게 이처럼 자리를 대신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는 위안이 되었고, 나라에는 복이 되었다.

Ⅱ. 이스라엘의 다섯왕들 15:8-31
이스라엘왕국의 전성기는 예후가 정권을 잡고있을 동안이었다. 예후와 그의 세명의 후계자들이 치세할동안, 이스라엘에는 타락이 계속되고 비참한 재난이 많이 있었지만, 왕위는 순조롭게 계승되고, 왕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며, 국사도 어느정도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시대는 끝나고,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약 33년간의 역사는 상상할수 있는 최대의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정을 묘사하고 있다.
(1) 여러차례에 걸친 불행한 혁명으로 인하여 정말로 악한세대라고 불리울만한 시기였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과 자비 두가지로 시험하셨으며,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설득을 하시고 강권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합당한 재난을 주셨다.
2) 하나님은 예후에게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기쁜약속을 하셨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어느왕가에도 보여주지 않은 전무후무한 큰은총이었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와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의 충성을 이와같이 보상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집에 악이 가득찼을때, 하나님은 그집을 '이스르엘의 피'라고 불리우는 피흘림으로 보수하셨다(호 1:4).
3) 이 다섯왕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모두 같지는 않았으나 우상을 보존하는 일에는 한결같았으며, 백성들도 그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였다.
4) 이들은 한명만 제외하곤 전부 선왕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살해하였다. 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 이들은 모두 반역자와 살인자로서 왕이 되었다. 악한자는 다른 악한자에게 채찍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스스로 멸망한다.
5) 국가요인들의 야심은 그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한성읍 디르사가 나타난다. 이도시는 그주변에 있는 모든마음들과 함께, 이 반역자들중 한사람에게 잔인하게 파괴당하였다(6절).
6) 이스라엘이 국내의 문제로 이와같이 분열되어 있을때 앗수르의 두왕이 차례로 올라와서는(19,29절) 마음대로 약탈하였다.
7) 이것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일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통치자 호세아 9년에 일어났다. 만일 그들이 이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더라면, 이최후의 멸망은 방지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이들의 치세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여로보암의 아들 사가랴는 유다왕 아사랴, 혹은 웃시야 38년에 통치하기 시작하였다(8절). 명망있는 역사학자 가운데 몇사람은, 이스라엘 국내의 혼란과 불화로인하여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사가랴사이에 22년 혹은 11년동안 왕위가 공석이었다고 주장한다. 사가랴는 왕위를 제대로 굳히기전에 폐위되었다. 그가 불과 6개월동안 다스렸을때, 살룸이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를 '백성앞에서 쳐' 죽였다. 이것은 사가랴가 백성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예후의 가계는 끝났다.
2) 그후 선왕을 살해한 살룸은 평화롭게 다스렸는가? 아니다. 그렇게하지 못하였다(13절). 그는 한달정도 통치하고 살해되고 말았다. 므나헴은 살룸의 모반에 분격하였든지, 아니면 그의 전례를 보고 용기를 얻었든지 몰라도, 살룸이 전왕에게 행한대로, 살룸에게 행하였다. 즉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4절).
3) 므나헴은 십년간 그나라를 다스렸다(17절). 그는 자기백성중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굴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하여, 그들의 성을 칠뿐만 아니라 '그가운데 아이밴 부녀를' 가를 정도였다(16절). 그는 이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앗수르의 왕이 그를 치러왔을때, 그는 첫째, 백성들을 거의 신뢰하지 못했기때문에 감히 앗수르왕을 대적할수 없었다. 따라서 막대한 대가를 치루고 평화를 살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는 '나라를 자기손에 굳게 세우기위하여' 도움이 필요하였기때문에, 자기를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에 앗수르왕이 돕는다는 것을 조약에 포함시켰다. 이렇게하여 그는 이번에는 앗수르왕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앗수르군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기때문에 용기를 얻어, 머지않아 다시와서는 모든것을 약탈해 버린다.
4) 므나헴의 아들, 브가야는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나, 두달을 다스린후 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5) 베가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20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27절). 그의 폭력행위는 오랫동안 그의 머리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결국 오고야 만다. 르말랴의 아들인 베가는 이 왕들중 누구보다도 국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유다왕국에게는 큰두려움의 대상이었다(사 7:1절이하). 그러나 그는 앗수르왕에게 왕국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했던 것을 벌하신 것이다. 그는 이일후에 곧 분노한 방백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베가가 유대를 침공하는동안, 자기나라를 다른 외국군대에게 노출시켰다고 그를 미워하였던것 같다. 호세아는 이것을 이용하여 베가를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확실히 왕위에 대한 야심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같은 때에 왕관을 얻기위하여 반역자들처럼 모험을 감행하셨다. 아마 현자라면 왕관이 길거리에 있어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왕관을 얻기위하여 모든것을 내걸고 모험하였고 그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Ⅲ. 유다왕 요담의 치세 15:32-38
유다왕 요담의 치세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는 아주 선하게 다스렸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4절). 요세푸스는 요담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경건하였으며,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아주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산당을 헐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을 거기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가까이 하게하기 위하여 성전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성전대문을 더높게 건축하였다. 집권자들이 죄악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고싶은 모든일을 할수 있을때는, 경건과 미덕을 중진시키고 장려하는 일을 그만큼 더많이 해야한다. 즉 그가 죄악의 산당을 헐어버릴수 없을때 하나님의 집의 '윗문'을 높이 쌓고, 더아름답게 하였다.
(2) 요담은 중년기에 죽었다(33절). 이 기록을 볼때 다윗의 년수, 즉 70만큼 산 유다의 왕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아사의 나이는 모르지만 웃시야는 68세까지 살았고, 므낫세는 67세, 여호사밧은 60세를 살았다. 이 세왕은 최장수한 자들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50세도 살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요담왕은 41세에 죽었다.
(3) 그의 시대에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르말랴의 아들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였다. 이동맹은 아하스 원년의 유다에 큰위협이 되었다. 이것을 본 왕의 마음은 동요되고, '그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사 7:2).

# 핵심
15:1-7
유다왕 아사랴의 통치가 간략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는 에돔, 블레셋, 암몬을 정복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비슷한 위세를 떨쳤지만, 말년에는 스스로 교만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대하 26장).
앗수르의 1차 침략(15:19)
앗수르왕 불(Pul)은 디글랏빌레셀 3세를 바벨론식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통치하에 점차로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최강국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앗수르에서 발굴된 디글랏빌레셀의 통치연대기에는, 그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을 비롯하여 여러왕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묵상
아사랴의 통치 ( 15:1-7 )
아사랴는 웃시야라고도 불리며 아마샤의 뒤를이어 52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했으나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문둥병의 상징 ( 15:5 )
인간의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 질병입니다. 문둥병원균은 육체를 서서히 허물어버리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은 인간을 절망과 사망으로 서서히 이끕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십니다(민23:19). 아사랴가 문둥병을 얻은이유도 제사장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26:16-21). 나라가 부강해지고 모든일이 잘되자 아마샤는 교만해져서 제사장을 무시하고 여호와께 분향하려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무시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 개개인이 제사장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공통점 ( 15:18, 24, 28 )
그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처럼 우상숭배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을 기준으로하여 평가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계속적으로 죄를 향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옛사람을 따라사는, 썩어질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을 좇는 생활을 해야합니다(엡4:22). 또한 유다의 왕들에 비하여 볼때, 계속적으로 왕가가 바뀐것을 알수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 왕들이 살해되어도 살해자들이 처형되고 다윗왕가의 후계자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왕을 살해하고 그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유다왕 요담의 통치 ( 15:32-38 )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 16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주변의 왕들이 악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을 행했습니다. 곧 전에는 우리가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엡5:8-9).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자의 삶은 주변에 어떤 악영향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담의 주요업적 ( 15:35 )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심의 증표로 성전윗문을 건축했고, 여러성읍들을 증·개축했으며, 외적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 다방면에서 공적을 들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않고 자기가 할수 있는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할때 하나님께서는 일한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계22:12).

# 해설
몰락하는 이스라엘 ( 15 )
여로보암 2세가 죽은이후에 이스라엘은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이후의 통치자들의 지도력 부재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혁명은 이스라엘 왕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멸망의 그늘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왕조를 계승하는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상황이 호전되어 갔습니다.
1. 아사랴의 유다통치
1) 아사랴의 즉위
유다는 아마샤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27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샤는 '웃시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을때부터 시작하여 총 52년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a.아사랴의 즉위(대하26:3-4)
b.아마샤의 살해(왕하14:19)
2) 문둥병에 걸린 아사랴
아사랴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참조, 대하26:16-21). 결국 그는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사랴는 자신의 교만한 행위로 평생을 탄식속에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문둥병으로인해 나라는 그의 아들인 요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a.아사랴의 교만(대하26:16)
b.부정한 병인 문둥병(레13:46)
3) 아사랴의 죽음
문둥병으로 후회와 탄식속에 살던 아사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사랴는 유다의 왕들중 많은 업적을 지닌 영향력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하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엘랏을 건축하고 암몬족속에게는 조공을 받았으며 블레셋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군대를 재조직하고, 여러지역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뒤에는 이웃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도 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제사장의 사역에까지도 손을 댄 교만으로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말년에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된 것입니다.
a.별궁에 홀로 살았던 아사랴(대하26:21)
b.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함(대하26:23)
2. 몰락하는 이스라엘
1) 스가랴와 살룸의 통치
여로보암 2세의 뒤를이어 그의 아들 스가랴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동안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가 4대만에 끝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왕하10:30).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결국은 한달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므나헴은 왕으로 즉위한후 디르사와 사마리아 근처의 딥사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므나헴을 왕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므나헴은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떤형벌이 내리는지 본을 보이기위해 임신한 부녀자들까지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7:9)
b.예후왕조에 대한 예언(왕하10:30)
2)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통치
므나헴은 유다왕 아사랴 39년에 왕이되어 10년동안 악한통치를 하였습니다. 그의 배교행위는 조상들 못지않게 악했던것 입니다. 어느날 앗수르의 강력한 지도자들중에 한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불'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사실을 안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각각 은 오십세겔씩을 토색하여 은 천달란트를 불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대가로 므나헴은 왕위를 지속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므나헴은 죽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하였는데, 그역시도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브가히야는 50명의 병사를 이끌고온 베가에 의해 왕궁호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왕자인 아르곱과 아리도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베가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앗수르왕 불의 공격(대상5:26)
b.왕궁호위소에서의 죽음(왕상16:18)
3) 베가의 통치
베가가 즉위하던 때는 유다왕 아사랴가 52년째 통치하던 해였습니다. 그도 선왕들처럼 하나님앞에서 사악한 일들을 계속 행했습니다. 베가는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위해 이용한 세금제도 등을 비방하면서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는 곧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의 공격을 야기시켰습니다. 앗수르왕은 많은땅을 빼앗았고, 또한 백성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이러한 패배로인해 호세아는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이될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물론 호세아는 앗수르에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a.디글랏빌레셀왕(대하28:20)
b.아벨 벳마아가(삼하20:14-15)
3. 요담의 유다통치
1) 요담의 즉위
유다는 아사랴(웃시야)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2년째 베가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요담은 선한 왕으로 16년간을 통치했으나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요담은 특별히 성전의 윗문을 개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요담이 계획한 건축과 암몬족속의 정복은 대하27: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요담의 즉위(대하27:1)
b.성전윗문의 건축(대하27:3)
2) 요담의 죽음
요담이 유다를 다스릴때 이스라엘은 베가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당시의 국제정세는 앗수르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가왕은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람왕 르신과 협약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동참을 강요하기위해 르신과 연합하여 요담이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요담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담을 이어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아람왕 르신(왕하16:5)
b.르신과 베가(사7:1)
결론
이스라엘의 왕조는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해지고, 주변강대국들 특히 앗수르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왕들을 언급할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왕들도 여호와앞에서 선하게 나라를 다스렸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인해 유다도 여러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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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마샤의 즉위 14:1-7
아마샤는 요아스의 아들이며 후계자이다.
(1) 그는 성전안에서 어느정도 잘 행하였으나, 다윗과 같지는 못했다(32절). 그는 시작은 잘하였지만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했다. 우리의 경건한 선배들이 행한 그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불충분하다. 오히려 우리는 동일한 신앙과 헌신의 원칙과 동일한 진지성과 결심위에서 그들이 행한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신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우리의 주위를 끈다.
(2) 그는 재판정에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역적들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어떤혼란을 야기시킬까 두려워하여, 즉위 즉시 그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신중하게 '나라가 그손에 굳게' 설때까지 연기하였다(5절). 그러나 모세율법에 분명하게 '아비로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것이라'는 조항이 있었기때문에 '왕을 죽인자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다'(6절).
(3) 그는 전쟁에서는 에돔사람들에게 승리하였다(7절). 에돔사람들은 요람시대에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었다(8:22). 이제 요아스는 그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로 다시 충성을 바치게 하였다. 이 원정에 대한 더상세한 기록은 역대하 25:5절이하에서 볼수 있다.

Ⅱ. 요아스와 아마샤의 대면 14:8-14
왕국분열이후 서너대동안 유다왕국은 이스라엘의 적대감으로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리고 아사이후 서너대동안은 이스라엘과 맺은 동맹과 정략결혼 때문에 더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다시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게된다.
(1) 아마샤는 아무런 계기나 싸울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무작정 요아스에게 도전하였다(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즉 "전장에서 우리의 힘을 서로 겨루자." 이렇게함으로 그는 교만하고 뻔뻔스러우며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사람들은 그가 이스라엘왕국을 굴복시키고 유다를 재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 요아스는 그의 도전을 엄히 책망하고, 철회하도록 조언하였다(9,10절).
1) 요아스는 자기를 백향목 즉 고귀한 재목에, 그리고 아마샤를 가시나무 즉 보잘것없는 잡초에 비교하고 또한 자기를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그를 경멸하며 자기가 그와 어떤동맹을 맺는것은 백향목이 자기딸을 가시나무와 맺어주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함으로 아마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그는 옛날 다윗의 집은 이제 예후의 집(비록 유서깊지는 못하더라도)과 나란히 이름불려질 가치가 없는 가문이라고 생각하였다.
2) 요아스는 아마샤의 패전을 예언하였다.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이렇게 가시나무와 백향목과의 협상은 끝이 났다. 마찬가지로 요아스는 자기군대가 쉽게 아마샤를 이길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3) 그는 아마샤에게 그의 도전이 어리석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너는 고작 에돔을 이긴것을 가지고 마치 온세상에서 공포의 대상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으로 여기는구나"
4) 그는 아마샤에게 이미 얻은 영예로 만족하고, 능력밖에 있는 더많은 것을 잡으려다가 손에 쥔것조차 놓치지말라고 권고하였다.
(3) 아마샤는 자기결심을 고집하였고 결과는 좋지않았다.
1) 그의 군대는 패배하여 흩어졌다(12절). 요세푸스는 아마샤군대가 교전하게 되었을때,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공격다운 공격한번 하지못하고, 모두 도망가기에 바빴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아마샤는 이스라엘왕에게 포로가 되어 그를 실컷 대면하게 되었다.
3) 개선자는 별저항없이 문이 열린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벽을 허물고(요세푸스에 따르면, 승리한 그는 전차를 몰고 성벽이 무너진 곳으로 들어갔다) 유다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
4) 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가치있는 모든것을 빼앗아가지고, 전리품을 싣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14절).

Ⅲ. 아마샤의 죽음 14:15-22
여기 불과 몇절안에 세사람의 왕이 무덤으로 갔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고(15,16절) 둘째로 유다의 아마샤왕이 죽었다. 그는 그를 정복했던 이스라엘왕보다 15년을 더살았다(17절). 그는 자기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악정으로인하여 신하들은 왕을 미워하고 예루살렘은 왕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이것은 왕의 어리석음과 허세때문에 성벽이 치욕스럽게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갔다. 우리는 그가 거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숨거나 보호받았는지는 알지못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살해되었다(19절). 셋째로 아사랴가 아마샤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때, 그는 네살밖에 되지 않았기때문에 12년동안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그가 16세가 될때까지 정치는 섭정하에 있었다. 그는 무척 오랫동안 통치하였지만(참조15:2) 그의 통치기록은 다 건너뛰어 갑자기 끝나버렸다(22절). 아사랴가 엘닷을 건축하였다. 엘랏은 에돔족속에게 속한 땅이었다.

Ⅳ. 이스라엘왕 여로보암2세 14:23-28
이것은 여로보암 2세의 치세기록이다.
(1) 그의 치세는 길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들중에서 최장의 통치기간이다. 사십일년을 위에 있으며(23절). 그러나 그와 동시대사람, 유다왕 아사랴는 그보다 더긴 52년간을 다스렸다. 이 여로보암은 아사가 통치한 기간만큼 통치하였는데(왕상 15:10), 한사람은 선하였고 다른 한사람은 악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수명이나 외적인 번영을 가지고 측정할수 없다.
(2) 그의 성품은 다른왕들과 동일하였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4절). 그는 송아지숭배를 계속하였다. 어떤죄가 옛부터 내려오는 습관이라고해서, 하나님께서 그죄를 덜악하게 보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그러나 그는 다른 대부분의 왕들보다 번창하였다. 그가 한편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그안에 선한것이 있었던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다.
1) 예언으로 그를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갈릴리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것은 그의 충성스러운 사역자가 계속 백성을 다스리는동안에는 하나님께서도 그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요아스의 손을 강하게 한 엘리사를 데려가시고 요아스의 아들을 격려하기위해 요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일, 그리고 그가 도망갔고, 그후 니느웨로 가면서 짜증을 부리던 일은 아마도 그가 젊었을때의 일인것 같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후에 요나를 자비의 사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신 것은 그의 실수와 여러가지 어리석음을 다 용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위임장은 곧 용서를 의미한다.
2) 보호하심으로 인정하셨다. 여로보암의 군대가 승리한 사건은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지경을 회복하되' 북쪽 하맛에서부터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경성읍과 촌락을 회복하였다(2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복을 주신 이유는 두가지이다.
① 이스라엘의 고난이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이 고난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었다(26절). 적들이 지배하는 촌락에 살던 사람들은 비참하게 억압받는 노예생활을 하였고, 나머지 지방 주민들도 적들의 잦은침입과 약탈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비참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로 위안을 얻도록 하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심정과(사 63:15; 렘 31:20),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시 86:15)을 알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27절). 이말씀을 북방 열지파의 분열로 이해한다면,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고 실행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완전한 근절이라고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또한 하려고하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이름은 아직까지 복음 이스라엘속에서 여전히 세상에 있으며, 세상끝날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여기에 여로보암 통치의 결말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28절에서 그의 전력과 그가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기록을 본다. 이스라엘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으나 이제 비로소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호세아가 예언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여로보암이 통치할때이다. 그는 예언을 기록한 최초의 선지자이며, 따라서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이라고 부른다(호1:2). 동시에 아모스가 예언하고 그예언을 기록하였으며, 그후 곧 미가, 그리고 아하스와 히스기야시대에 이사야가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셨다.

# 핵심
14:1-22
유다왕 아마샤는 초기에는 비교적 하나님께 충실했고 에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승리후에 곧 교만해져서 북이스라엘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다 패배했고, 결국은 모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 묵상
유다왕 아마샤의 행적 ( 14:3 )
역대 유다왕들 가운데 드물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칭찬을 들었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결국 아마샤는 기회주의적이고 회색주의적인 신앙행태를 취한 것입니다. 정함이 없이 혼합된 신앙성향을 지닌자는(약1:8)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아마샤의 패배 ( 14:8-14 )
이미 얻은 승리로인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으로 늘 패망만을 가져옵니다(잠16:18). 물론 아마샤가 담대하게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했지만, 이는 아마샤가 지난번 에돔과의 일전을 통해 큰승리를 얻어 자신의 힘과 군사력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입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분명 유다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아마샤가 이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면 결코 교만하거나 과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삶에 있어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둔 인생은 실패하거나 멸망하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아마샤의 최후 ( 14:17-22 )
모반으로인해 쫓기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대하25:27).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죄에 의해 심판을 받게됩니다. 어떤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의 실패와 멸절 ( 14:17-22 )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창3 :11-19).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인생들을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멸망에 이르지않도록 하기위해 당신의 일꾼들을 보내어 경고하시고 책망하시는 열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여로보암의 통치 ( 14:23-27 )
그는 여로보암 1세가 아니라 요아스의 아들로서 41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의 인간적인 업적은 뛰어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성경은 일반적인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구속사를 중심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해도 하나님앞에서 악을 행한 사람의 역사는 짧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 14:27 )
이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남겨두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가 하나님으로서 다스릴 것이다’라는 뜻으로, 야곱에게 주어 대대로 그의 자손에게 불리게한 이름입니다. 또한 이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이들을 표현하기도 합니다(롬9:6-13).

# 해설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 14 )
이제 다시 유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요아스왕이 있듯이 남유다에도 요아스왕이 있는데, 이 왕의 아들이 아마샤였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달랴 통치이후에 쇠퇴해졌던 국력을 어느정도 신장시켰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인해 많은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1. 아마샤의 유다통치
1) 아마샤의 즉위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1년후에 아마샤는 유다의 9대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아마샤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아마샤는 선왕인 요아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중에는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샤는 다윗왕조의 시조이자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a.아마샤의 즉위 (왕하12:21)
b.산당에서 제사하는 백성들(왕하16:4)
2) 에돔과 전쟁을 한 아마샤
아마샤는 등극하자마자 자신의 부친인 요아스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습니다. 이 신복은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를 가리킵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하자면 왕을 죽인 신복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들까지도 몰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그 신복들만 죽이고 자식들은 살려두었습니다. 이는 아마샤가 모세의 율법을 실천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한편 아마샤는 에돔과 전쟁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25:5-16). 이전쟁은 사해계곡에서 발생했는데 아마샤가 대승하여 에돔사람 일만을 죽이고, 에돔의 수도인 셀라도 취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셀라를 욕드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바로 이곳이 그유명한 성채도시인 페트라였습니다.
a.그자식은 죽이지 말라(신24:16)
b.염곡에서의 승리(삼하8:13)
2. 아마샤와 요아스의 싸움
1) 화를 자초한 아마샤의 교만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사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아합이후로 이스라엘의 종속국노릇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아마샤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벧세메스에서 전쟁을 하였는데 그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유다군대는 후퇴하고, 아마샤는 생포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성벽을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에서 많은 귀중품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사마리아에 끌려갔습니다. 결국 아마샤도 잡혀갔기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a.아마샤의 죄악(대하25:14)
b.아마샤의 교만(대하25:19)
2) 요아스의 죽음
요아스의 죽음은 왕하13:12-13절에 이어 또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었습니다. 이때에 포로로 잡혀있었던 유다왕 아마샤는 석방되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자 그의 뒤를이어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즉위하였습니다.
a.이스라엘왕 역대지략(왕하15:31)
b.여로보암의 즉위(왕하13:13)
3) 아마샤의 죽음
유다는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고 크게 패하자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서 큰혼란을 맞이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가운데 일부 무리들은 아마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중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샤는 유다의 남부국경에 있는 옛수도 라기스까지 도망갔으나, 거기서 반란군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유다는 아마샤가 포로로 잡혔을때부터 그의 아들 아사랴가 16세 나이로 통치하기 시작하다가 아마샤의 죽음이후로는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아사랴는 오빌과의 무역을 위해 아카바만에 엘랏을 건축하기도 합니다.
a.라기스(수10:3)
b.엘랏(왕하16:6)
3.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통치
1) 여로보암 2세의 즉위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때 유다는 아마샤가 15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전의 어떤왕들보다도 장수한 왕으로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특별히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즈음에 주변강대국들은 어려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여로보암 2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여로보암이었으나, 그는 영적으로는 그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패자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왕들을 신앙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있었기에 여로보암 2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 2세의 41년간의 통치도 간단하게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a.여로보암 2세의 즉위(왕하13:13)
b.계속되는 여로보암의 죄악(왕하15:23-24)
2) 이스라엘을 부흥시킨 여로보암 2세
사실 이스라엘은 아람의 하사엘왕때부터 아람의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요아스때부터 호전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여로보암 2세때에 아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회복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솔로몬시대에 확장되었던 영토들을 모두 복원시켜 북쪽 하맛어귀에서부터 남쪽 아라바 바다까지 넓은 영토들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토확장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 요나선지자에 의해 계시되었던 것입니다.
a.요나선지자(욘1:1)
b.솔로몬당시의 영토(왕상8:65)
3) 여로보암 2세의 죽음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때에 아람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국력이 쇠퇴해진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한 앗수르도 북방 우라르트민족의 계속되는 침략과 무능한 지도자로인한 내부갈등이 심화되어 국력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주변강대국들의 약세를 틈타 여로보암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과 하맛을 침략하였습니다. 본래 이들 도시는 다윗과 솔로몬때에 이스라엘 영토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밖에 여러지역들을 되찾고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후 여로보암 2세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다메섹을 회복한 일(삼하8:6)
b.유다에 속했던 하맛(대하8:3)
결론
에돔에게 승리했다는 기쁨에서 비롯된 아마샤의 교만한 마음은 민족적인 재앙만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죽음만을 몰고 왔습니다. 여기서 한사람의 지도자가 올바르게 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여로보암 2세의 업적에 관하여 간략하게 기록된 본문을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관점이 우리들과는 크게 다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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