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이스라엘의 멸망 17:1-6
이스라엘의 마지막왕 호세아의 통치와 멸망에 대한 기록이다.
(1) 그는 모반과 살인으로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나(참조15:30), 7∼8년이 경과한 다음 왕위에 올랐다.
(2) 그는 비록 악한 왕이었지만, 그이전의 여러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으며(2절), 그들처럼 송아지를 섬기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떤사람들은 호세아왕이, 이전왕들이 백성들에게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했던 법령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스라엘 왕들가운데 가장 선한 왕중의 하나인 호세아때 닥쳤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수 있겠는가? 호세아는 전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백성들이 이전 백성들만큼 악하였다. 왕은 백성들이 더 선하게 살도록 허용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악하여 죄에대한 허물을 지고, 멸망을 자초하였다.
(3) 파멸은 단계적으로 다가왔다.
(4) 이스라엘이 앗수르왕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하여 하였던 간접적인 수단이 오히려 멸망을 초래하였다(4절). 만약 호세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뉘우치고, 기도를 드렸더라면 그들은 자유와 안식과 명예를 회복할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조공바치기를 중단하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도움을 얻기위하여 애굽왕을 의지하였다. 만약 이계획이 실효를 거두었다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압제자를 교체한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도 그들에게는 썩은 갈대지팡이밖에 되지 못하였다.
(5) 그들에게 드디어 완전한 멸망이 닥쳤다.
1) 이스라엘왕은 옥에 갇혔다.
2) 이스라엘땅은 약탈당했다. 그리고 앗수르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당한 적이 아니고, 정의의 칼로 형벌을 받을만한 반역자로 취급하였다.
3) 이스라엘의 왕도는 포위되고 결국 함락되었다. 그러나 온나라가 정복된 뒤에도 삼년간 버티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갔다(6절). 대부분의 백성들과 높은지위가 있던 자들도 강제로 정복자의 나라로 이송되어 거기서 노예가 되거나 걸인이 되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스스로 잊혀진 사람들이다. 백성중 하류층은 뒤에 남았으며, 각지파에서 많은사람들이 유다로 갔거나 앗수르의 식민이 되었다. 그들의 후손이 갈릴리, 혹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국가로서는 끝이나고, 이제 그들은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와 로루하마(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야고보는 해외에 흩어져있는 12지파에게 편지를 하였고(약 1:1), 바울도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열두 지파에 대하여 말하였다(행 26:7). 그러므로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한 기록은 볼수 없지만 그들중에 도피하여 남은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보존하였고 이제 복음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로 옷을 바꾸어 입은 이스라엘은 그이름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갈 6:16).

Ⅱ.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17:7-23
열지파 왕국의 멸망과 그원인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을 그앞에서 제하신 분은 여호와'이셨다. 즉 도구가 누구이든지간에, 재난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이것은 전능자에게서 비롯된 멸망이었다. 앗수르군대는 '그의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적과 자신의 말씀으로 일으키고 형성시키신 민족인 이스라엘을 왜 파멸시키려고 하셨는가? 이것은 단순히 주권의 행사인가? 아니다. 이것은 필수 불가결한 심판의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자신의 행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과 행위로 이모든 재난을 자초하였고, 그들을 징계한 것도 바로 그들의 악함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황폐케된 원인은 바로 이때문이라고 여기에 분명히 드러나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자신을 섬기게 하기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7절). 하나님께서 결박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종이될 의무를 지고있었다. 만약 그들이 자기들의 불의로인하여 자유를 배반하고 스스로를 팔아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을 애굽왕의 손에서 구해내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앗수르왕의 손에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또 자신이 그들의 왕이시기때문에 그들은 선과 악, 그리고 죄와 의무를 몰랐다고 변명할수 없었다.
3)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주지를 주시기 위하여, 그들앞에서 이방사람들을 쫓아내셨다(8절). 그리고 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을 쫓아내신 것은 이스라엘은 그들처럼 행하지 말라시는 가장 분명한 경고이었다.
(2) 하나님께서 이언약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고'(7절), '가만히 불의를 행하였다'(9절).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즉 노예가 자기주인의 일에 매달리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스스로 완전히 죄에 매어 달렸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계속 죄를 짓고 마음이 완악하여져 종국에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비록 그들이 심히 부도덕하고 십계명의 두번째 돌판의 모든계명을 어겼다하더라도, 여기에서는 특별히 우상숭배만 취급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죄이며, 모든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가장 가증스러운 죄이다. 이것은 결혼계약을 깨뜨리는 영적인 간음이며 다른 모든죄악의 근원이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여러신들을 두려워하였다(7절). 다시말하면 이방신들이 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경배하고, 충성을 바쳤다. 모든성읍에…산당을 세웠다(9절). 만약 어떤마을에 망대나(시골에는 성곽이 없고, 전시에 파수병을 보호할 망대밖에 없었다), 목동들의 움막만 있더라도, 그곳을 위하여 산당과 제단을 지었다. 더욱이 견고한 도성이라면 산당을 지어 더욱 강화하였을 것이다. 모든 산위에와 푸른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그들은 아세라상(혹자는 이뜻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작은숲의 신이라는 뜻과 함께 자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신상이라고 한다) 혹은 아스다롯상(아세라의 복수형)을 세웠고 이것은 분명히 제2계명에 대한 위반이었다(10절). 그들은 자기들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겼다(12절). 그들은 여러 이방신들을 위하여 '모든산당에서 분향하였고', 이것은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었다(11절). 심지어 부어만든 두마리의 송아지 우상뿐만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여러별들을 숭배하였다. 그리고 이방신들의 지시를 받기위하여 점술과 마술을 사용하였다.
(3) 하나님은 그들을 우상숭배에서 멀리하시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선한지식을 백성에게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제사장들을 없애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이노력도 허사였다(14절).
(4)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인하여 어떻게 처벌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시사'(18절) 그들을 괴롭게 하시고 '노략군의 손에 붙이셨다'(20절). 사사시대와 사울의 시대에도, 그후 이스라엘의 여러왕의 시대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인하여 스스로 깨닫고 자기들의 길을 돌이켜보고 고치는지 보시려고 이와같이 하셨었다. 그러나 이모든 교정노력이 어리석음을 몰아내지 못하게 되었을때, 하나님은 일단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셨다.' 백성들이 그집의 통치아래 있었더라면 행복하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이스라엘의 죄악기록 가운데 유다왕국의 죄악이 언급되었다(19절). 유다도 그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들은 아직까지 이스라엘같이 악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게 오염되고 있었다.

Ⅲ. 그이후의 사마리아 상황 17:23-41
앗수르왕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강제로 가나안에서 쫓아내고, 거기에 바벨론의 잉여인원을 바로 이주시켜서 거기에서 자기를 섬기며, 남아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감독하게 하였다. 여기에 이 새로운 주민들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1) 이스라엘땅으로 이주한 앗수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들은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여러성읍에 거하였다(24절).
2) 그들이 처음왔을때,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그가운데 보내셨다.' 물론 그지방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때문에, '들짐승이 번성하였다'(출 23:29). 그러나 이런 자연조건을 떠나서 이일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하나님은 사자들을 명하여 거칠게 환영하심으로 그들의 교만을 저지하셨다.
3) 그들은 이슬픔을 자기들의 주인인 왕에게 알리고, 이 새로운 식민지에서 사자로인한 손실과 계속적인 공포를 호소하고, 이것을 그들이 그땅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것에 대한 심판으로 간주하며, 그들은 그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하는지 모른다고 보고하였다(26절). 이사실로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소리를 들을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배우기 싫어한 교훈을 오히려 배우려고 하였다.
4) 앗수르왕은 그들이 '그땅의 신의 법'을 배울수 있게 배려하였다(27,28절). 이것은 그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자기백성들을 사자에게서 구하기위한 것이었다. 왕은 사로잡아온 제사장들가운데서 한사람을 돌려보냈다. 그는 돌아가 그들중에 거하면서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 것인지 가르쳤다. 그들은 이렇게 배워서 혼합종교를 만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두려워서 섬기고, 자신의 신들은 사랑해서 섬겼다(33절). 이와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또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우리가 유대학자들의 전승을 인정한다면, 이우상들은 다음과 같다. 숙곳느봇의 제물은 암탉과 병아리, 네르같은 장닭, 아시마는 깨끗한 수염소, 닙하스는 개, 다르닥은 노새, 아드람멜렉은 꿩, 아남멜렉은 칠면조였다. 영국학자들은 숙곳느봇(딸들의 장막이라는 뜻)은 비너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굿사람들과 바사사람들이 섬긴 네르같은 불이다.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은 몰록의 변형에 불과하다. 본문은 이런 잡동사니 미신행위가 '오늘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책이 기록된때까지 그리고 그이후까지 약 300년간, 알렉산더대왕때까지, 즉 유대의 대제사장 야두스의 형제인 므낫세가 많은 유대인들을 데리고와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든 우상들을 내어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섬기게 할때까지 계속되었다.
(2) 앗수르땅으로 옮겨간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남쪽 두지파가 나중에 바벨론으로 잡혀갔을때, 그들은 그사건으로 인하여 우상숭배 습관을 고쳤다. 따라서 70년후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송환되었다. 그러나 북쪽 열지파는 용광로속에서 더 단단해졌으며, 소멸되고 말았다. 그들은 적의 손에 떨어졌을때에도,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때에도 여전히 어리석어서 이전의 방법을 좇아 행하였다(40절). 그들은 하나님과 이방신과의 차이를 알지못하는 것처럼, 참되신 하나님과 거짓된 신들을 함께 섬겼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이스라엘은 그들을 정복한 나라들이 행하는 것처럼, 그대로 행하였다.

# 핵심
17:1-23
마침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B.C. 722년의 일이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우상숭배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의 멸망(17:6)
사르곤 2세의 통치연대기는 당시 사마리아에서만도 남자만 27,29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전한다. 아울러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의 공격을 피해 남유다로 도망했던 까닭에 유다의 인구가 급증했다고 한다.
사마리아 사람(17:24)
앗수르의 식민정책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른 정복지역의 이방인들로하여금 서로 통혼과 교류를 하게 만들었다. 문화와 인종을 서로 혼합시켜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면 앗수르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시행된 정책이었다. 그결과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새로운 혼혈족이 생겨났다. 후대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 취급을 하며 경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요 8:48).

# 묵상
호세아의 통치 ( 17:1-6 )
그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온나라 안에 악이 만연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인내하시면서 기다리시지만 더이상 패역한 것이 고쳐질 기미가 없을때는 심판하십니다.
사마리아인의 천대 ( 17:5, 6 )
그것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면서 이방인들이 사마리아에 거주하게 되고, 또한 사마리아인들도 앗수르로 끌려가 이방인들과 통혼을 하게되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 ( 17:7-18 )
이들이 멸망한 원인은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다른신을 섬겼으며, 이방인의 규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신상을 두었으며,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않고 계명을 어겼으며, 신상을 만들고, 자녀를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드렸으며, 복술과 사술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특징 ( 17:7-18 )
여로보암에서부터 호세아까지 19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조는 9왕조이며 8차례의 혁명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위로는 지도자, 아래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악을 저지르고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반복되는 악의 순환속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게 행동함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할 행동 ( 17:15 )
이방인들의 사악하고 부패한 문화와 종교, 습성을 본받지말고 오히려 그들을 거룩한 종교로 인도해야만 했습니다.
남유다의 상태 ( 17:19, 20 )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않고 다른 율례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누룩처럼 퍼져가는 것이 죄의 속성인데 이것을 잘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나와 이웃 모두가 멸망하게 됩니다(고전5:6-8).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보내심 ( 17:25, 26 )
팔레스틴에는 사자가 별로 살지않았지만 때때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사자나 다른동물들을 통해서 징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사마리아에 이주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인 여호와 신앙이 아닌 혼합주의적인 신앙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사마리아의 상황 ( 17:27-33 )
앗수르에 의해 패망한후 원래 사마리아에서 살던 사람들은 먼곳으로 이주되고, 다른민족들이 많이 유입되므로 혼혈민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종적으로만 혼합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신이 들어와서 혼합종교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자리에는 사탄의 세력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현대에는 많은종교가 난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수 있으며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행4:12).
하나님의 언약 ( 17:34-41 )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한백성을 선택하시고 일방적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성도의 구원은 행위의 대가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엡2:8, 9). 인간은 그언약에 순종하며 참여할때에 복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파기는 인간에게 큰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주신 하나님 ( 17:34-40 )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자신을, 이스라엘을 종되었던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분으로 소개합니다(출20:2). 하나님은 무조건 당신의 명령을 준행하라고 다그치는 압제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율법준수를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말씀을 따라사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 해설
이스라엘의 멸망 ( 17 )
다윗왕조는 솔로몬이후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에 의해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본문은 여로보암에 의해 창건된 이스라엘이 약 210년만에 멸망하는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멸망의 주역이 된 왕은 호세아였고, 이스라엘을 심판한 도구는 앗수르였습니다. 특별히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원인과 함께 사마리아지역에 생기게된 비극과 그곳에서의 우상숭배 죄악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마지막왕 호세아
1) 호세아의 즉위
베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호세아는 유다왕 아하스 12년에 통치를 시작하여 9년동안 왕위를 지켰습니다. 다른 선왕들과는 달리 여로보암 1세의 죄가 호세아와 연관하여 언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여로보암의 정책을 장려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백성들이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리도록 허락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a.호세아의 즉위(왕하15:30)
b.악의 창시자(창3:1)
2) 앗수르의 공격을 자초한 호세아
앗수르에서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뒤를 이어 살만에셀 5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왕이 된 호세아는 앗수르왕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애굽의 외교에 넘어가 앗수르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의 소왕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호세아의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애굽의 소왕은 이스라엘을 도울능력도, 마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배반을 괘씸히 여긴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곧바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호세아를 포로로 잡은후 사마리아를 함락코자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3년동안의 포위속에서도 계속 버텼습니다. 그동안 살만에셀 5세는 죽고 사르곤 2세가 앗수르의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사르곤에 의해 사마리아가 포위된지 3년만인 B.C.722년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앗수르 각지역으로 보내졌습니다.
a.국가사이의 배반(왕하1:1)
b.하나님을 배반한 사마리아(호13:16)
2.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1) 여호와께 죄를 범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멸망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이적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는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방신을 따르고, 이교도들의 관습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마다 산당을 세우고 아세라목상에게 숭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한 죄악이었습니다.
a.애굽땅의 풍속(레18:3)
b.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라(출23:24)
2) 우상숭배의 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금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선조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조차도 무시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금송아지,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일월성신 등을 숭배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이방인의 관습을 따르면서 점술과 마술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전역에 편만해진 우상숭배는 여호와의 크나큰 진노를 사게 되었으며, 동시에 여호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a.목이 곧은 백성(신9:6)
b.복술을 하지말라(레19:26)
3)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이같은 악행은 유다에게도 전염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도 여호와께 불순종하면서,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악에 대한 징벌로 한나라를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창건왕인 여로보암때부터 금송아지를 섬기면서 여호와의 경고도 무시하고 우상숭배와 불순종만을 거듭 반복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200년가량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심판의 손을 드시어 이스라엘을 치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해 먼 이방지역으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a.유다에 미친 영향(렘3:8)
b.멸망를 통한 심판(삿2:14)
3. 이스라엘 멸망의 결과
1) 사마리아에 정착한 이방인들
앗수르의 사르곤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지역으로 이주시키고, 대신 여러 이방민족들을 사마리아라는 지역에 정착시켰습니다. 사마리아에 온 이방민족들은 여호와가 아닌 각기 자신의 민족신을 섬겼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충돌과 무질서가 난무하였고, 심지어 맹수가 출몰하여 사람이 죽는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때 이방인들은 이땅의 민족신이 노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a.스발와임 사람(왕하19:13)
b.여호와앞에 쓰러진 블레셋의 신(삼상5:4)
2) 혼합종교화된 사마리아
그리하여 앗수르왕은 사마리아에 있는 이방인들의 요청대로 이땅의 신을 섬길수 있도록 가르칠수 있는 이스라엘 제사장 한명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사장은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이모든 것은 허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다신교도들이었기에 여호와를 자기들이 믿는 신들중의 일부분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자신들의 민족신과 함께 섬겼습니다. 이결과로 사마리아는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 모두를 잃어버렸습니다. 신앙도 혼합종교화되어 사마리아는 일시에 종교전시장이 되어 버렸으며 물론 여호와 유일신 신앙도 여지없이 무시되고 말았습니다.
a.사마리아에 들어온 이방신(왕하18:34)
b.사마리아의 차별대우(요4:9)
3) 계속되는 사마리아의 범죄
본서의 저자가 이글을 쓸때까지도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의 자손들에게 허락한 율법도 지키지 않았고, 족장들과 맺은언약도 무시하였습니다. 오직 우상숭배만이 지속될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여호와께 대한 불순종만이 난무하였습니다.
a.야곱에게 명하신 말씀(창32:28)
b.여호와를 경외하라(신6:13)
결론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배교로 말미암아 민족전체가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치 않았으며 심지어 무관심하기조차 하였습니다. 동시대 호세아왕은 700년전에 애굽에서 탈출했던 출애굽의 이적을 행한 여호와가 아닌, 바로 그애굽을 믿고 의지했던 너무나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였고, 사마리아의 비극을 스스로 연출하게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곧바로 유다에게는 중대한 경고가 되었습니다. 단지 심판은 유보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조금더 관용하고 계심을 유다백성들은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결코 이스라엘의 멸망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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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4장 - study  (0) 2022.11.05

# Study

Ⅰ.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 16:1-4
(1) 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정직히 행치 아니하고(2절). 그는 성전에 대한 사랑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윗의 명예로운 이름과 가문의 수치였으며, 그러므로 사실상 자신에게도 수치가 되었다.
(2)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3절). 그들은 모두 송아지를 숭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여러왕들은 우상숭배가 그들의 국가의 정책이며 대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이와같은 구실을 댈수 없었다. 그들은 아하스의 적이었으며, 그들의 우상숭배로인하여 더적대적으로 되어왔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들의 길을 행한 것이다.
(3) 그는 쓰레기같은 잡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또한 우상에 대한 헌신의 표로 자식들을 불에 태우고(대하 28:3), 다른아들들을 두개의 불사이로 지나가게 하거나, 불한가운데를 지나게 하였다.
(4)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3절).
(5) 또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4절). 만약 그의 아버지가 좀더 열심을 내어 산당까지 제거해버렸더라면 아들의 방탕을 방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를 묵과하는 자들은 그것이 자기후손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올무를 놓는 행위인지 알지 못한다.

Ⅱ. 앗수르에 도움을 청함 16:5-9
(1) 이웃나라 아람과 이스라엘의 왕이 동맹을 맺고 아하스를 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생각하였다. 이계획은 실패하였지만, 아람왕은 홍해에 위치한 주요항구 도시인 엘닷을 회복하였다. 이도시는 아마샤가 아람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24:22).
(2)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아하스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는 하나님을 버렸기때문에 적에 대항하여 고개를 들 용기도, 능력도 없었으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할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죄는 그자체가 형벌이다. 앗수르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도우려 다메섹에 내려와서 아람왕에게 강력한 견제공격을 가하였다(9절). 그리고 아람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길'로 끌고감으로 아하스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때 아하스는 그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손해나는 거래를 하였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 첫째,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7절). 나는 왕의 심복이요, 둘째, 스스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곳간에서 은과 금을 꺼내 앗수르왕에게 보내었다(8절). 왕이 국고를 이렇게 처리할수 있는 무슨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하나의 죄를 지어서 스스로 협곡에 빠진 사람들은 통상 또다른 죄를 통하여 헤어나오려고 한다.

Ⅲ. 하나님의 전을 더럽힘 16:10-16
비록 아하스 자신은 산당에서 희생을 드렸지만(4절), 그때까지 하나님의 제단은 원장소에서 원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악한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옮기고 다른제단, 즉 우상의 제단을 그장소에 놓았다.
(1) 이 새제단의 모양은 왕이 직접 다메석의 제단을 본따 만든 것이었다(10절).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칠때, 아하스도 그곳에 가서, 그를 축하하고 그의 명령을 받았다. 다메섹에서 그는 그를 꼭 만족시켜 주는 제단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그제단의 모형을 똑같이 본땄음에 틀림없다.
(2) 제사장 우리야가 그제단을 만들었다(11절). 왕이 어떤구실을 제시하더라도 대제사장인 그가 사악한 군주의 명령에 복종하여 제단을 제작한 행위는 가장 형편없는 악한 짓이다. 그는 스스로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권위를 매음하듯이 팔아치웠으며, 대제사장의 명예를 더럽혔고, 자기신의를 저버렸다.
(3) 그제단을 봉헌하였다. 우리야는 그것을 놋단옆에 놓았다. 왕은 매우 기뻐하고, 그위에 번제를 드렸다(12,13절). 그희생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우상들에게 드려진 것이다.
(4) 새제단을 놓기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치웠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을 성전뜰 북쪽, 외진구석으로 옮기고, 대신 성소에 자신의 제단을 놓았다. 아하스의 미신적인 착상은 우선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와 충돌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제도를 밀어내었다. 하나님을 자기의 전부로 여기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는자들은 곧 하나님을 무시해버리고 말것이다. 아하스는 감히 하나님의 놋단을 아주 없애지는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제단을 하나님의 제도위에 두려고 하였다. 놋단은 하나님께 묻기위하여 제작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아하스는 그렇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는 후에 그놋단의 놋을 가지고 '아하스의 일영표'(참조, 20:11)라고 불리워지는 유명한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유대인들은 말한다.

Ⅳ. 아하스의 죽음 16:17-20
(1) 아하스는 성전을 마구 바꾸었다. 성전건물 자체는 아니지만 성전의 여러기물을 오용한 것이다.
1) 그는 물두멍의 받침을 떼어내고(왕상 7:28,29), 놋바다를 내려놓았다(17절). 이것은 제사장들이 씻을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2) 그는 '안식일에 쓰기위하여 성에 건축한 낭실', 즉 안식일을 기념하기위하여, 아니면 제사장들이 다른날보다 안식일에 많은 직무를 행하였기때문에,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하여 세운 낭실을 옮겼다.
3) 그는 왕실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었던, 여호와의 전에 이르는 왕의 낭실(아마 솔로몬이 만든 당시 시바의 여왕이 보고 경탄한 층계일 것이다)을 다른곳으로 돌려버렸다. 이것은 그가 더이상 하나님의 전에 자주 출입하지 않을 생각임을 보여주려한 것이다.
(2) 아하스는 중년기인 3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치고, 훨씬 훌륭한 자기아들 히스기야에게 왕국을 넘겼다(20절). 히스기야는 자기아버지가 성전에 대적했던만큼 성전의 친구가 되었다.

# 핵심
16:1-20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폈으며, 심각한 우상숭배에 빠졌다. 그는 유다의 역대왕들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왕이다.

# 묵상
아하스의 사람됨 ( 16:1-9 )
요담의 아들로 유다의 왕입니다. 또한 그는 이교도의 영향으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행한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었습니다(신18:21).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생명을 보존하기를 원하십니다. 전쟁에서 아하스의 행동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동맹국에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는 능력의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인간을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힘의 근원이십니다(시18:1). 그러나 그힘을 의지하지 않는자는 도리어 화를 입습니다.
지도자의 실책 ( 16:2 )
지도자의 실책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 전체와 더나아가 그후손들에게까지 악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런점에서 지도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큰 심판을 받게됩니다(약3:1). 권리보다 책임을 더욱 통감하는 자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수 있습니다.
아하스의 죄악 ( 16:10-20 )
그는 아람수도 다메섹에 갔다가 그곳에 세워진 우상에 미혹되어 예루살렘 성전내에 아람우상을 섬기는 단을 만드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 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침해하는 중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추악한 범죄를 행하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말씀의 중요성 ( 16:16 )
그어떤 권력자의 불같은 명령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것임을 알면서도 보이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여 인간만을 기쁘게 하는것은 크나큰 죄악이 아닐수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구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도리입니다(마6:33).

# 해설
아하스의 유다통치 ( 16 )
다윗왕조를 계승한 유다의 왕들은 비교적 선한 왕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듯이 아하스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앞에서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더욱 의지했습니다. 그결과로 온유다는 앗수르가 지워준 멍에를 메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방의 우상과 제사의식들을 유다에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성전의 기구들과 구조들도 변경시킨 죄악을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1. 아하스의 악한 통치
1) 유다왕 아하스의 즉위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즉위한 해는 이스라엘의 베가가 17년째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하스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불명예스럽게도 아하스는 유다의 왕들중 가장 사악한 왕으로 꼽힐정도로 많은 악행들을 일삼았습니다.
a.아하스의 즉위(대하28:1)
b.아하스의 일영표(왕하20:11)
2) 우상숭배를 장려하는 아하스
아하스는 다윗왕조의 훌륭한 선왕들보다는 이스라엘왕조의 사악한 왕들을 본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에 깊이 탐닉하게 되었는데, 심지어 자기아들을 불태워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암몬족을 비롯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던 의식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큰나무 밑에 산당을 지어놓고 백성들에게 경배할 것을 장려했습니다. 이런 산당이 너무 많았기에 본서의 저자는 모든 푸른나무 밑에는 다 산당이 있고 제사가 행해진다고 말할정도였습니다.
a.자녀를 제물로 바침(시106:37-38)
b.몰렉신(레18:21)
2. 앗수르의 속국이 된 유다
1) 유다를 공격하는 연합군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는 연합군을 형성하여 앗수르에 대항코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동참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앗수르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였기에 저들의 동참요구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연합군들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이사야선지자는 연합군들이 유다에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로하여금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여 도움을 청하도록 했으나, 아하스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참조, 사7:3-7). 결국 이사야의 예언대로 연합군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람의 르신이 항구도시인 엘랏을 탈환했습니다. 유다는 이후로 엘랏을 되찾지 못했고, 에돔족속이 훗날 이곳을 훼파하였습니다.
a.르신과 베가의 살육(대하28:5-6)
b.아사랴가 건축했던 엘랏(왕하14:22)
2)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 아하스
아하스는 연합군의 공격을 물리치기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명령도 거절한채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앗수르의 지배에 복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물리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대가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안에 있는 은과 금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앗수르왕은 기쁜마음으로 아하스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은 먼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을 공격하여 그곳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왕 르신을 처형하였습니다. 또한 수많은 아람사람들은 앗수르의 격리수용 정책에 따라서 '길'이라는 지역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앗수르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했던 아하스의 책략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로부터 연합군들은 물러갔지만 이제부터는 앗수르라는 새로운 멍에가 유다에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아하스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a.앗수르왕에게 예물을 바치는 아하스(대하28:21)
b.다메섹의 공격(암1:5)
3. 아하스의 우상숭배
1) 이방의 제단을 만들도록 시킴
아하스는 다메섹에 있는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다메섹에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아람의 것인지, 아니면 앗수르가 새롭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제단을 보았습니다. 아하스는 이제단의 구조와 제도를 똑같이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어, 이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왜 이제단을 만들도록 시켰는지는 잘모릅니다. 다만 아람신의 도움을 얻기위해서거나(참조, 대하28:23), 또는 앗수르가 만든 제단으로 생각하여 앗수르신을 의지하기 위해서, 또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보다 화려해서 이렇게 멋있는 제단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만들도록 시켰을 것이라 여러모로 추측만 할 뿐입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명대로 제단을 만들었으며, 다메섹에서 돌아온 아하스는 이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a.제사장 우리야(사8:2)
b.민족신 앞에 제사함(대하28:23)
2) 성전의 기구들을 변조시킴
아하스는 제사장에게 명하여 이제부터는 드리는 모든제사의 제물을 저 새제단에서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없애버렸고, 놋바다의 놋받침을 없애고 돌판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또한 안식일날 왕이 성전을 방문할때 그늘을 만들어주던 낭실을 헐었고, 오직 왕만이 성전을 들어가는데 사용되던 낭실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전의 모형과 제사의식을 아하스 임의대로 변조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앗수르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아하스의 아부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는 곧 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께 대한 반항이자, 불순종의 극치를 이루는 악행이었습니다. 진실로 유다의 왕들중에 아하스처럼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불순종한 왕은 없었습니다.
a.놋받침(왕상7:27-28)
b.놋바다(왕상7:23)
3) 아하스의 죽음
때가 이르매 아하스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단순히 그가 죽어서 다윗성에 그열조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하28:27절에 보면 아하스가 유다의 다른 경건한 왕들과 같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는 못하고 단지 예루살렘성에 장사되었다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하스의 지난 행적들을 살펴볼때 그의 악행이 심했기에 당시의 사람들이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는 것을 막았던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a.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한 아하스(대하28:27)
b.히스기야의 즉위(왕하18:1)
결론
아하스의 악정은 유다에서는 보기드문 예입니다. 그는 연합군의 침입이라는 민족적인 위기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생각만을 고집하여 작은악을 물리치기위해 더큰 악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하스가 빠진 깊은 우상숭배의 늪과 여호와앞에서의 신전의식의 결여는 수많은 악행들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하스는 한마디로 여호와를 무시한 패역한 자였습니다. 피조물에 지나지않은 인간이 창조주인 여호와를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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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유다왕 아사랴의 즉위 15:1-7
(1) 아사랴는 어려서 왕위에 올랐고 오랫동안 다스렸다(2절). 그리고 열심과 용기를 내어 산당을 없애지 못한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옳은일을 행하였다(3,4절).
(2) 5절의 특별한 기록(하나님께서 문둥병으로 그를 치심)은 역대하 26:16절이하에 그이유와 함께 훨씬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거기에는 아사랴통치 전반기의 영화로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후기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나와있다.
첫째로 그는 문둥병 환자였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그가 제사장직무에 대하여 뻔뻔스러운 월권행위를 했던 죄를 벌하시려고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
세번째로 그는 '죽는날까지' 문둥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사람에 대한 경고로, 끝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네번째로 그는 별궁에 거하였다. 문둥병은 율법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규정되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굴복하고 율법을 준수해야만 했었다.
다섯번째로 궁중일과 국사를 그의 아들이 대신 통치하였다. 그리고 아사랴에게 이처럼 자리를 대신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는 위안이 되었고, 나라에는 복이 되었다.

Ⅱ. 이스라엘의 다섯왕들 15:8-31
이스라엘왕국의 전성기는 예후가 정권을 잡고있을 동안이었다. 예후와 그의 세명의 후계자들이 치세할동안, 이스라엘에는 타락이 계속되고 비참한 재난이 많이 있었지만, 왕위는 순조롭게 계승되고, 왕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며, 국사도 어느정도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시대는 끝나고,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약 33년간의 역사는 상상할수 있는 최대의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정을 묘사하고 있다.
(1) 여러차례에 걸친 불행한 혁명으로 인하여 정말로 악한세대라고 불리울만한 시기였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과 자비 두가지로 시험하셨으며,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설득을 하시고 강권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합당한 재난을 주셨다.
2) 하나님은 예후에게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기쁜약속을 하셨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어느왕가에도 보여주지 않은 전무후무한 큰은총이었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와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의 충성을 이와같이 보상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집에 악이 가득찼을때, 하나님은 그집을 '이스르엘의 피'라고 불리우는 피흘림으로 보수하셨다(호 1:4).
3) 이 다섯왕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모두 같지는 않았으나 우상을 보존하는 일에는 한결같았으며, 백성들도 그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였다.
4) 이들은 한명만 제외하곤 전부 선왕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살해하였다. 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 이들은 모두 반역자와 살인자로서 왕이 되었다. 악한자는 다른 악한자에게 채찍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스스로 멸망한다.
5) 국가요인들의 야심은 그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한성읍 디르사가 나타난다. 이도시는 그주변에 있는 모든마음들과 함께, 이 반역자들중 한사람에게 잔인하게 파괴당하였다(6절).
6) 이스라엘이 국내의 문제로 이와같이 분열되어 있을때 앗수르의 두왕이 차례로 올라와서는(19,29절) 마음대로 약탈하였다.
7) 이것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일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통치자 호세아 9년에 일어났다. 만일 그들이 이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더라면, 이최후의 멸망은 방지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이들의 치세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여로보암의 아들 사가랴는 유다왕 아사랴, 혹은 웃시야 38년에 통치하기 시작하였다(8절). 명망있는 역사학자 가운데 몇사람은, 이스라엘 국내의 혼란과 불화로인하여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사가랴사이에 22년 혹은 11년동안 왕위가 공석이었다고 주장한다. 사가랴는 왕위를 제대로 굳히기전에 폐위되었다. 그가 불과 6개월동안 다스렸을때, 살룸이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를 '백성앞에서 쳐' 죽였다. 이것은 사가랴가 백성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예후의 가계는 끝났다.
2) 그후 선왕을 살해한 살룸은 평화롭게 다스렸는가? 아니다. 그렇게하지 못하였다(13절). 그는 한달정도 통치하고 살해되고 말았다. 므나헴은 살룸의 모반에 분격하였든지, 아니면 그의 전례를 보고 용기를 얻었든지 몰라도, 살룸이 전왕에게 행한대로, 살룸에게 행하였다. 즉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4절).
3) 므나헴은 십년간 그나라를 다스렸다(17절). 그는 자기백성중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굴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하여, 그들의 성을 칠뿐만 아니라 '그가운데 아이밴 부녀를' 가를 정도였다(16절). 그는 이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앗수르의 왕이 그를 치러왔을때, 그는 첫째, 백성들을 거의 신뢰하지 못했기때문에 감히 앗수르왕을 대적할수 없었다. 따라서 막대한 대가를 치루고 평화를 살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는 '나라를 자기손에 굳게 세우기위하여' 도움이 필요하였기때문에, 자기를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에 앗수르왕이 돕는다는 것을 조약에 포함시켰다. 이렇게하여 그는 이번에는 앗수르왕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앗수르군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기때문에 용기를 얻어, 머지않아 다시와서는 모든것을 약탈해 버린다.
4) 므나헴의 아들, 브가야는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나, 두달을 다스린후 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5) 베가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20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27절). 그의 폭력행위는 오랫동안 그의 머리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결국 오고야 만다. 르말랴의 아들인 베가는 이 왕들중 누구보다도 국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유다왕국에게는 큰두려움의 대상이었다(사 7:1절이하). 그러나 그는 앗수르왕에게 왕국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했던 것을 벌하신 것이다. 그는 이일후에 곧 분노한 방백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베가가 유대를 침공하는동안, 자기나라를 다른 외국군대에게 노출시켰다고 그를 미워하였던것 같다. 호세아는 이것을 이용하여 베가를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확실히 왕위에 대한 야심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같은 때에 왕관을 얻기위하여 반역자들처럼 모험을 감행하셨다. 아마 현자라면 왕관이 길거리에 있어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왕관을 얻기위하여 모든것을 내걸고 모험하였고 그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Ⅲ. 유다왕 요담의 치세 15:32-38
유다왕 요담의 치세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는 아주 선하게 다스렸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4절). 요세푸스는 요담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경건하였으며,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아주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산당을 헐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을 거기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가까이 하게하기 위하여 성전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성전대문을 더높게 건축하였다. 집권자들이 죄악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고싶은 모든일을 할수 있을때는, 경건과 미덕을 중진시키고 장려하는 일을 그만큼 더많이 해야한다. 즉 그가 죄악의 산당을 헐어버릴수 없을때 하나님의 집의 '윗문'을 높이 쌓고, 더아름답게 하였다.
(2) 요담은 중년기에 죽었다(33절). 이 기록을 볼때 다윗의 년수, 즉 70만큼 산 유다의 왕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아사의 나이는 모르지만 웃시야는 68세까지 살았고, 므낫세는 67세, 여호사밧은 60세를 살았다. 이 세왕은 최장수한 자들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50세도 살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요담왕은 41세에 죽었다.
(3) 그의 시대에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르말랴의 아들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였다. 이동맹은 아하스 원년의 유다에 큰위협이 되었다. 이것을 본 왕의 마음은 동요되고, '그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사 7:2).

# 핵심
15:1-7
유다왕 아사랴의 통치가 간략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는 에돔, 블레셋, 암몬을 정복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비슷한 위세를 떨쳤지만, 말년에는 스스로 교만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대하 26장).
앗수르의 1차 침략(15:19)
앗수르왕 불(Pul)은 디글랏빌레셀 3세를 바벨론식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통치하에 점차로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최강국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앗수르에서 발굴된 디글랏빌레셀의 통치연대기에는, 그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을 비롯하여 여러왕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묵상
아사랴의 통치 ( 15:1-7 )
아사랴는 웃시야라고도 불리며 아마샤의 뒤를이어 52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했으나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문둥병의 상징 ( 15:5 )
인간의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 질병입니다. 문둥병원균은 육체를 서서히 허물어버리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은 인간을 절망과 사망으로 서서히 이끕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십니다(민23:19). 아사랴가 문둥병을 얻은이유도 제사장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26:16-21). 나라가 부강해지고 모든일이 잘되자 아마샤는 교만해져서 제사장을 무시하고 여호와께 분향하려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무시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 개개인이 제사장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공통점 ( 15:18, 24, 28 )
그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처럼 우상숭배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을 기준으로하여 평가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계속적으로 죄를 향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옛사람을 따라사는, 썩어질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을 좇는 생활을 해야합니다(엡4:22). 또한 유다의 왕들에 비하여 볼때, 계속적으로 왕가가 바뀐것을 알수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 왕들이 살해되어도 살해자들이 처형되고 다윗왕가의 후계자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왕을 살해하고 그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유다왕 요담의 통치 ( 15:32-38 )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 16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주변의 왕들이 악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을 행했습니다. 곧 전에는 우리가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엡5:8-9).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자의 삶은 주변에 어떤 악영향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담의 주요업적 ( 15:35 )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심의 증표로 성전윗문을 건축했고, 여러성읍들을 증·개축했으며, 외적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 다방면에서 공적을 들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않고 자기가 할수 있는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할때 하나님께서는 일한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계22:12).

# 해설
몰락하는 이스라엘 ( 15 )
여로보암 2세가 죽은이후에 이스라엘은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이후의 통치자들의 지도력 부재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혁명은 이스라엘 왕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멸망의 그늘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왕조를 계승하는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상황이 호전되어 갔습니다.
1. 아사랴의 유다통치
1) 아사랴의 즉위
유다는 아마샤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27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샤는 '웃시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을때부터 시작하여 총 52년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a.아사랴의 즉위(대하26:3-4)
b.아마샤의 살해(왕하14:19)
2) 문둥병에 걸린 아사랴
아사랴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참조, 대하26:16-21). 결국 그는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사랴는 자신의 교만한 행위로 평생을 탄식속에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문둥병으로인해 나라는 그의 아들인 요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a.아사랴의 교만(대하26:16)
b.부정한 병인 문둥병(레13:46)
3) 아사랴의 죽음
문둥병으로 후회와 탄식속에 살던 아사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사랴는 유다의 왕들중 많은 업적을 지닌 영향력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하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엘랏을 건축하고 암몬족속에게는 조공을 받았으며 블레셋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군대를 재조직하고, 여러지역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뒤에는 이웃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도 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제사장의 사역에까지도 손을 댄 교만으로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말년에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된 것입니다.
a.별궁에 홀로 살았던 아사랴(대하26:21)
b.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함(대하26:23)
2. 몰락하는 이스라엘
1) 스가랴와 살룸의 통치
여로보암 2세의 뒤를이어 그의 아들 스가랴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동안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가 4대만에 끝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왕하10:30).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결국은 한달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므나헴은 왕으로 즉위한후 디르사와 사마리아 근처의 딥사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므나헴을 왕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므나헴은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떤형벌이 내리는지 본을 보이기위해 임신한 부녀자들까지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7:9)
b.예후왕조에 대한 예언(왕하10:30)
2)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통치
므나헴은 유다왕 아사랴 39년에 왕이되어 10년동안 악한통치를 하였습니다. 그의 배교행위는 조상들 못지않게 악했던것 입니다. 어느날 앗수르의 강력한 지도자들중에 한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불'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사실을 안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각각 은 오십세겔씩을 토색하여 은 천달란트를 불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대가로 므나헴은 왕위를 지속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므나헴은 죽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하였는데, 그역시도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브가히야는 50명의 병사를 이끌고온 베가에 의해 왕궁호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왕자인 아르곱과 아리도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베가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앗수르왕 불의 공격(대상5:26)
b.왕궁호위소에서의 죽음(왕상16:18)
3) 베가의 통치
베가가 즉위하던 때는 유다왕 아사랴가 52년째 통치하던 해였습니다. 그도 선왕들처럼 하나님앞에서 사악한 일들을 계속 행했습니다. 베가는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위해 이용한 세금제도 등을 비방하면서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는 곧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의 공격을 야기시켰습니다. 앗수르왕은 많은땅을 빼앗았고, 또한 백성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이러한 패배로인해 호세아는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이될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물론 호세아는 앗수르에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a.디글랏빌레셀왕(대하28:20)
b.아벨 벳마아가(삼하20:14-15)
3. 요담의 유다통치
1) 요담의 즉위
유다는 아사랴(웃시야)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2년째 베가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요담은 선한 왕으로 16년간을 통치했으나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요담은 특별히 성전의 윗문을 개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요담이 계획한 건축과 암몬족속의 정복은 대하27: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요담의 즉위(대하27:1)
b.성전윗문의 건축(대하27:3)
2) 요담의 죽음
요담이 유다를 다스릴때 이스라엘은 베가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당시의 국제정세는 앗수르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가왕은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람왕 르신과 협약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동참을 강요하기위해 르신과 연합하여 요담이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요담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담을 이어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아람왕 르신(왕하16:5)
b.르신과 베가(사7:1)
결론
이스라엘의 왕조는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해지고, 주변강대국들 특히 앗수르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왕들을 언급할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왕들도 여호와앞에서 선하게 나라를 다스렸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인해 유다도 여러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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