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노래한 언약 성취와 구원의 은혜

[누가복음 1장 67절~80절]
67절 -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절 -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절 -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절 -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절 -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절 -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절 -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절 -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절 -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절 -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절 -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절 -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절 -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절 -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서 일으키심은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대로 원수에게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요한은 주님 앞에 앞서가서 주님의 길을 준비해 백성에게 죄 사함의 구원을 알게 할 것입니다.

1. 사가랴의 살아 있는 찬양 (67~75절)
성령 충만함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약 9개월 만에 다시 말을 하게 된 사가랴는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구원 계획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의 태도를 보였던 이전(18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삶 속에서 체험할 때, 우리 신앙은 비로소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영적으로 각성한 사가랴는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오래전부터 메시아를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마침내 자기 백성을 친히 찾아와 구속하시는 것으로 선포합니다. 죄와 사망에서 값없이 구속받은 자는 사랑으로, 성결과 의로 주님을 섬깁니다.
* 성령 충만한 사가랴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바라보나요? 나는 요즘 하나님을 향해 어떤 찬양을 드리고 있나요?

2.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결단 (76~80절)
순종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과 관련해서도 자기 생각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예언을 하며 아이의 정체성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불가능한 상황에서 낳은 아들임에도 그에 대한 사적인 감정과 바람은 배제한 채 영적인 메시지만 전합니다. 요한이 빈 들(광야)에 있었다는 것은 사가랴가 그를 예언대로 키웠음을 보여 줍니다. 천사에게 들은 대로 요한을 구별해 거룩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이끈 것입니다. 아들을 향한 예언이 성취될 수 있게 아버지로서 먼저 결단하고 냉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이런 헌신을 통해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로 준비될 수 있었습니다. 순종과 헌신의 본을 보이는 사람도, 따르는 사람도 함께 의미 있는 성장을 합니다.
* 사가랴가 아들을 향해 선포하는 예언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내가 희생하고 헌신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성령 충만함으로 의심이 변하여 확신이 되는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게 하소서. 자라나는 세대가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구별된 백성 되도록, 저와 교회 공동체가 이들을 말씀으로 지혜롭게 권면하고 양육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언약을 이뤄 주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장 67절~80절]
67절 -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절 -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절 -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절 -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절 -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절 -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절 -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절 -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절 -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절 -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절 -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절 -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절 -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절 -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배경 이해하기]
말라기 선지자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라고 선포한 지 4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긴 침묵을 뚫고 하나님은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수태고지를 믿지 못한 사가랴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10달 동안 말하지 못하는 벌을 받고, 아내 엘리사벳은 예언대로 아이를 잉태합니다(24절). 그 후 6개월 뒤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은 동정녀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받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가 3달간 함께 머뭅니다. 마리아는 ‘마리아 찬가’로 불리는 벅찬 감사의 찬가를 부릅니다(46~55절). 한편 오래도록 자녀를 얻지 못하던 사가랴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난 것은 그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집안의 전통이나 관습과 상관없이 아이를 하나님이 주신 이름인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열 달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게 된 사가랴는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신실하심에 대해 힘차게 찬양합니다.

[관찰과 묵상]
1.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의심으로 인한 징계가 풀린 후, 하나님이 행하신 어떤 일을 믿음으로 찬양하나요?(68~75절)
사가랴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 주신 것(68~71절)과 구원의 언약을 지켜 주신 것(72~75절)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사가랴의 찬가는 그 첫 구절의 라틴어 번역을 좇아 ‘Benedictus’(blessed)라고 불립니다. 그의 찬가는 히브리 문학에 자주 사용되는 교차 대구법(chiasmu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보사, 임하여’(68, 78절), ‘그의 백성’(68, 77절), ‘구원’(69, 77절), ‘선지자’(70, 76절), ‘구원하시는 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71, 74절), ‘우리 조상’(72, 73절)이 대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심축을 이루는 핵심 단어는 72절과 73절에 반복된 ‘언약’과 ‘맹세’입니다. 그의 찬가에서 핵심을 이루는 내용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다는 사실입니다.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이 의사가 병자를 방문하듯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황소의 뿔처럼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일어나 주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예언된 것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구원의 뿔(메시아)이 그의 종 다윗의 집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다윗도 그의 종에 불과했다는 풀이가 가능해져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증거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22:16~18)을 지키셨기 때문이라고 사가랴는 증언합니다(73절).
적용과 나눔
오랜 기다림 끝에 응답받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때와 방법은 우리 생각과 어떻게 다른가요?
수백 년 동안 이방의 압제 아래 허덕이던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로부터의 정치, 경제적 해방과 독립을 고대하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400여 년간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마침내 응답하시고 처음 행하신 일이 두 아기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고 계시다’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돌아보셨습니다.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방식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시작부터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에게서 났고, 세례 요한은 전혀 자녀를 기대할 수 없는 연로한 부모에게서 났습니다. 또 예수님과 요한이 외친 메시지도 세상이 기대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단지 눈앞에 닥친 핍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만을 소원했던 이스라엘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죄악의 지배 아래 신음하고 있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도록 앞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믿음에 응답하시며, 우리의 순종에 보상하십니다. 다만 그분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때와 방법이 먼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리의 기대와 다를 뿐입니다.

2. 사가랴는 세례 요한(76~77절)과 메시아(78~79절)의 사명에 대해 어떻게 증언하나요?
사가랴는 그의 아들 세례 요한이 엘리야처럼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며(76~77절), 메시아가 임하시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던 백성이 빛을 보고 평강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라(78~79절)고 했습니다.
사가랴는 자기 아들 세례 요한이 가브리엘 천사가 예고한 대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7절)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는 요한이 엘리야와 같은 영적 능력을 지니고 보냄받았으며, 지극히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받았음을 강력히 증거합니다(76절). 누가는 생략했지만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마 17:12)라고 대답하심으로, 요한의 역할을 다시 한번 확정해 주셨습니다. 그가 백성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라”(77절)라는 말은 장차 세례 요한이 선포하게 될 메시지가 무엇이며, 그가 어떤 방식으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인지 분명히 알려 줍니다. 한편 메시아가 오는 모습은 새벽녘 ‘돋는 해’(아나톨레)에 비유됩니다. 계시의 말씀이 끊긴 지 400여 년, 흑암의 권세와 죄에 얽매여 신음하고 있던 인류 가운데 주님은 눈부신 태양의 빛과 같이 찾아오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 3).
적용과 나눔
예수님이 지금 우리 가정을 심방하신다면,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주님을 모시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인물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을 거룩한 구세주를 받아들이도록 불의한 백성의 마음 밭을 갈아엎기 원하셨는데, 그 역할을 담당하는 이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요한은 광야에 머물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했고, 때가 차서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쳤습니다. 바울은 우리 몸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불결한 마음 성전에 거룩한 하나님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고전 3:16~17). 빛과 어두움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돌이킴은 이미 거룩함의 능력을 상실해 버린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엘리야도, 그의 심령과 능력을 받은 세례 요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와 성정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았기에 죄악의 유혹을 이기고,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은 말라기 이후 오랜 침묵을 깨시고, 두 아기를 보내시며 인류의 구원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연결하는 선지자입니다.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으로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집에서 ‘구원의 뿔’(메시아)을 일으키시고 주님의 백성을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신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의 백성은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그분을 섬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앞길을 준비하며 백성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알게 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주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저도 주님께 신실하게 하소서. 죄를 멀리하여 주님 안에 거하는 기쁨을 오래 유지하고,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 뜻이 사람 뜻보다 우선합니다

[누가복음 1장 57절~66절]
57절 -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절 -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절 -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절 -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절 -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절 -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절 -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64절 -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절 -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66절 -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엘리사벳이 생후 8일 된 아들의 할례를 위해 방문하자, 친족이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로 짓자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합니다. 친족의 물음에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라 쓰자,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1. 서판에 기록되는 하나님의 계획 (57~63절)
하나님의 크신 긍휼로 인해 인생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늙은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았고, 그 일로 이웃과 친족이 모두 함께 기뻐합니다. 의롭게 살고자 힘쓰는 사가랴 부부에게 하나님이 크신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제8일이 되어 아이에게 할례를 행할 때 사람들은 관습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본따 아이 이름을 '사가랴'라 짓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가랴 부부는 가문에 사용된 적 없는 '요한'이라고 하겠다 합니다(13절). 요한은 사가랴 부부의 아들이기 전에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구별된 사명자입니다. 사가랴 부부는 이를 알기에 관습이 아닌 하나님 뜻에 순종합니다. 하나님 뜻을 사람 뜻보다 늘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 입은 자가 취할 태도입니다.
* '요한'이란 이름을 알리는 사가랴 부부의 태도에서 무엇을 느끼나요? 하나님 뜻을 우선시할 때 버려야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을 알수록 커지는 믿음 (64~66절)
신실하신 하나님의 때는 정확합니다. 서판에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쓰자마자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사가랴는 그동안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로 인해 그분을 찬양합니다. 순식간에 퍼진 소식에 사람들은 요한이 범상치 않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손길이 요한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사가랴의 믿음은 한층 성장했을 것입니다. 한편 그 찬송 소리를 들은 수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요한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큰 유익이 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 내 믿음이 크게 성장한 때는 언제였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돌아보세요.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매일매일 새롭게 주님을 알아 가기를 소원합니다. 날마다 친밀한 교제로 주님을 체험하게 하시고, 제 삶에 세밀하게 간섭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간증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은혜의 복음을 노래한 마리아의 찬가

[누가복음 1장 39절~56절]
39절 -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절 -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절 -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절 -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절 -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절 -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절 -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46절 -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절 -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절 -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절 -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절 -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절 -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절 -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절 -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54절 -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절 -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56절 -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가 유대에 있는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을 문안하니 그녀가 성령 충만을 받아 마리아와 태중의 아이를 축복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신 구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석 달쯤 함께 지내다 집으로 돌아갑니다.

●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가장 귀한 보화를 지닌 복된 사람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떠난 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임신한 지 6개월이 된 엘리사벳은 하나님과 친밀한 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없었지만 그녀는 한눈에 마리아의 임신과 태중에 있는 아이가 주님임을 알아채고 축복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엘리사벳을 통해 놀라운 축복의 메시지를 들은 마리아는 감사와 기쁨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행하신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내다봅니다. 평범한 시골 처녀에 불과했던 마리아가 이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통로가 되며, 믿음의 눈으로 영원의 시간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게 하는 능력입니다.

*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이를 가진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내 삶과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찬양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믿음과 순종이 빚어내는 하나님의 역사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26절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절 -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절 -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절 -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절 -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절 -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절 -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절 -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절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절 -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절 -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절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절 -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전합니다.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태어날 거룩한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마리아는 순종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26~30절)
하나님의 선택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지 6개월 후에 나사렛으로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가브리엘은 요한의 수태부터 예수님의 수태와 탄생까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구원 계획이 펼치지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은혜를 받은 자',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놀라면서도 잠잠히 생각하며 주님 음성에 귀 기울입니다. 마리아가 완벽하고 흠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녀를 선택하셔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은혜이며, 은혜받은 자가 드릴 마땅한 응답은 순종입니다.
* 하나님이 마리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하나님이 중요한 사명을 맡기실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나요?

2. 아름다운 순종의 역사 (31~38절)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예!"여야 합니다. 천사의 수태 고지는 처녀인 마리아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메시지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낳을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35절)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이런 충격적인 예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마리아도 두려움과 의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한마디로 이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 이에 대해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고 반응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탄생은 바로 이런 귀한 믿음과 순종을 통해 나타난 아름다운 역사입니다.
* 마리아가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온전히 순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삶의 영역에서 마리아처럼 믿음과 순종을 보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순간순간 주시는 은혜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온전한 순종은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깨닫는 감격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이 제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에 언제나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성취된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1장 18절~25절]
18절 -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절 -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절 -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21절 -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절 -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절 -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24절 -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25절 -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천사가 전한 예언을 의심하며 표적을 구했던 사가랴는 결국 때가 이르기까지 말을 못 하게 됩니다.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이후,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됩니다. 그녀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1. 믿지 못하는 사가랴 (18~20절)
하나님은 상식을 뛰어넘어 역사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상식의 틀에 가둡니다. 사가랴는 천사 앞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예언의 메시지를 들으며 현실의 한계를 말합니다(18절). 사가랴는 의로웠지만, 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인간적인 한계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했고 의심했습니다. 그 결과 사가랴는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 하는 징계를 받습니다. 의롭게 사는 것과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그분이 하시는 일을 온전히 다 깨달을 수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여러 이유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2. 말씀대로 성취된 예언 (21~25절)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가브리엘의 예언대로 사가랴는 말을 못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불편한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신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이지만, 불신은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죄악입니다. 반면 엘리사벳은 나이 많은 자신이 잉태한 것을 알고, 남편과는 달리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하는 반응을 보입니다(25절). 이런 상황 속에서 사가랴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점점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적인 한계와 불신앙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 없이 임하여 그분 뜻과 말씀을 이룹니다.
* 말씀에 대한 불신으로 말 못 하게 된 사가랴는 이 일로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사가랴처럼 내 삶 속에 특별한 말씀의 능력이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처럼 보여도 '이 일이 정말 이루어질까?' 의심하고 고민하는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제게 믿음을 더하셔서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한 사람을 위한 열정이 모두를 위한 복음이 되다

[누가복음 1장 1절~17절]
1절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절 -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절 -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절 -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5절 -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절 -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절 -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절 -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절 -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절 -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절 -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절 -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절 -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절 -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절 -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절 -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절 -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확실히 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때 천사가 나타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 전해 줍니다. 그 아기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님 앞에 와서 주님을 위해 백성의 마음을 준비할 자입니다.

1. 한 사람을 위한 열정 (1~4절)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본 사람은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누가도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모두 기록합니다. 이는 데오빌로 각하가 복음을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는 한 이방인을 위해서 이 편지를 썼고, 더 나아가 사도행전까지 기록했습니다. 한 사람을 향한 누가의 열정이 복음서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 한 사람을 위한 주님의 가슴 벅찬 사랑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 안에 한 사람을 위한 사랑과 열정이 있는가?'라고 도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거기서부터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고 놀라운 열매들이 맺힙니다. 성도가 한 사람을 위한 열정과 사랑으로 수고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 누가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요? 오늘 나의 사랑과 열정이 필요한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를 위해 어떤 수고를 감당할까요?

2.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 (5~17절)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하던 의로운 사람(6절)이었음을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자녀를 간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13절). 사가랴 부부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에 낙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 인간의 절망 끝에서 하나님의 희망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엘리사벳이 '잉태'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의로움과 부족함을 알고 계시고, 때론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응답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출생은 그 가정에 엄청난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기쁨과 은혜, 감사와 소망입니다.
*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를 어디서, 어떻게 들었나요? 아직도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있다면, 이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낙심하지 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소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 알고,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왜 기도 중에 낙망할까

[누가복음 18장 1절~8절]
1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절 -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절 -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절 -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절 -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절 -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절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시편 42편 5절]

5절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주변에서 낙망을 극복하기 위해 드리는 기도가 오히려 낙망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즉 기도를 하다가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음으로써 낙망하고, 또 이렇게 쉽사리 낙망함으로써 자신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고 낙망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낙망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때때로 낙망하는 것은 연약한 우리 성도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예수께서도 이를 아시고 친히 우리에게 낙망하는 이유와 이를 극복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곧, 본문의 누가복음 18:1-8절 말씀에서 성도들이 기도하다 왜 낙망하는지를 시사하시며, 실망치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밤낮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본문 눅 18:1-8절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도하다 낙망하는 이유와 이를 극복하는 지혜를 얻도록 합시다.

1. 패배주의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도 그 기도 제목의 거창함에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그 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곧 판단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기도 자체를 포기해 버립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누가복음 18:1-8절에 나오는 과부를 보십시오. 그녀는 연약한 과부의 몸으로 불의한 재판관에게서 그 소원하는 바를 이루었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과 가난한 과부를 등장시킴으로 기도에 대한 교육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 깊숙이 내재해 있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꾸짖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가난한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우리의 통념을 깨뜨리고, 끝까지 믿고 구하는 자는 반드시 기도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마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막 9:23절에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기도할 때 먼저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기도한 것의 무엇이든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빌 4:13절의 말씀과 같이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 확신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낙망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간구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 주지 않으시면, 본문의 불의한 재판관과 같이 하나님도 불의하시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의로우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 성도들을 불의하게 대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정당하고 의로운 요구가 불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최선의 것으로 응답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늦는다고 하나님을 불의하시다고 원망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낙망과 좌절로 가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의로우시다고 믿고 끝까지 하나님께 의뢰하고 의존하는 자만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고 주어지는 응답에 아멘으로 순종할 때 의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섣부르고 조급한 생각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승리한 비결을, 불의한 재판관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도록 번거롭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의 반복되는 거절 속에서도 결코 자신의 소원이 성취될 수 없다고 섣불리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지금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까? 혹 하나님을 불의하시다 규정하고 심한 절망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주 냉정히 그러한 판단을 내리게 된 동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만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능치 못하실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못 주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 7:11절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또한 롬 8:32절에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가 너무 조급히 생각하고 너무 섣불리 상황을 판단하기 때문에 낙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기도를 하되 섣불리 판단하고 조급히 생각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인내하고 기다리는 자만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약 1:6-8).

성도 여러분!
낙망은 기도의 가장 큰 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낙망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첫째, 과연 기도가 응답될 수 있을까 하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 기도에 곧바로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고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규정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끝으로,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조급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조급하고 섣부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실로 정당하고 의로운 기도라고 할 때, 끝까지 낙망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을 수 있으며, 그 기도로 하여금 삶의 기쁨과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아 멘-

들어야 할 세 가지 음성

[누가복음 16장 23절~31절]
23절 -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절 -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절 -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절 -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절 -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절 -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절 -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절 -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절 -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사람은 어떤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보다 '따먹어도 괜찮다'는 마귀의 거짓말을 더 믿고 행동하다가 하나님의 에덴 동산에서 쫓겨 비참한 운명이 되어 세상에 죄와 사망과 불행을 끌어 들이는 근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을 함께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또 영적인 음성과 육신의 정욕의 소리를 듣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을 따르면 복된 생활이 될 수 있고, 마귀를 따르면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하다가 자신도 망치고 나라도 망쳐 놓았으나,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듣는대로 실천하여 자신도 위대한 종이 될 뿐 아니라 나라를 도탄에서 구원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가 들어야 할 세 가지 음성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복음을 전파하라는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지상최대의 명령은 "땅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큰 명령이 없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 예수님의 최후 명령입니다.
행 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목적도 전도하고 설교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나 설교는 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만 받겠다고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 땅 위에는 아직도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로 떨어져 가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간곡한 음성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전에 인도에 가서 오랫동안 설교하던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박사가 계셨습니다. 더프 박사는 인도에 가서 오랫동안 선교 활동을 하다가 늙고 쇠약해져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를 환영하는 식장에서 그는 인도에 선교사를 보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응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불쌍한 인도 사람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의사의 치료를 받고 의식을 회복한 뒤 그는 자기가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다시 세워 달라고 눈물로써 간청했습니다. 그는 강단에 다시 서서 백발이 성성한 흰머리를 숙이며 말하기를 '빅토리아 여왕이 지원병을 소집할 때는 수없이 많은 젊은이가 지원을 했는데 인류의 평화와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이 선교사를 보내고자 하는데 한 사람의 지원자도 없다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나는 이제 내 고국 스코틀랜드에 내 뼈를 묻으러 왔지만 다시 인도로 돌아가렵니다. 그래서 인도인에게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한 사람이 저들의 영혼을 위하여 백골을 인도의 갠지스 강변에 묻으러 왔다고 말하겠습니다'하고 울며 호소할 때에 많는 스코틀랜드의 젊은 선교사들이 가난과 질병의 나라 인도로 향해 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간곡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위에 구원 받지 못한 이들에게 듣든지 안듣든지 전도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온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된 뒤에야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막 13:10). 사단 마귀는 주님이 오시는 날이 바로 자기가 멸망하는 날이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복음 선교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과 전력을 다 바쳐서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2. 가서 도와 주라는 음성입니다.
행 16:9, 10절에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를 썼는데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환상 중에 유럽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며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애타게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유럽으로 건너가 그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하여 유럽이 문명하고 복음화 되어서 온 세계에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영의 귀, 믿음의 귀를 기울여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 우리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 달라'고 간청하는 소리를 들어야 되겠습니다. 특히 세계 인구 55%가 이 좁은 땅 아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은 2%밖에 안됩니다. 98%의 아시아 인구가 아직 예수를 믿지 않은 채 멸망해 가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인도의 쟈비싱이란 청년의 말을 통하여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쟈비싱은 공산당의 열성분자였고 영어 선생이었는데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후에 열렬하게 선교사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세포'(Prayer cell)란 조직을 만들어 한 세포에 10명 내지 20명씩 기도하게 만들고 그 어려운 사람들이 50불씩 모아서 선교사를 보냈는데 60명이나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서 속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그 길만이 믿음이 없는 인류에게 다가오는 멸망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표어는 'Go or Send', 즉 '가라 그렇지 않으면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선교사로 가면 제일 좋고 못가면 기도로나 돈으로 선교사 보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멸망해 가는 영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지런히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합시다. 듣든지 안듣든지 열심히 전도합시다. 국내 국외에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지난번에 하와이 부흥집회에 참석차 갔다가 해외세계 복음선교를 위해서 일하시는 김영철 선교사님과 같이 있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선교사로 파송된 것은 한창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이북으로 가던 때 처음으로 갔는데 그 당시 가게 되었던 동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일본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음성을 들었답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가려고 하는데 가는 절차를 잘 몰라서 무조건 외무부에 찾아갔답니다. 그래서 직원한테 여권 한 장만 달라고하니까 위아래를 쳐다보면서 다른 분한테 가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과장이라는 분한테 찾아갔더니 똑같은 방법으로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분보다 높으신 분이 누구냐고 질문을 하니까 비웃는 말투로 외무부 장관이지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중앙청으로 외무부 장관을 만나러 갔답니다. 용기를 내어 외무부 장관실을 노크하니까 비서가 나와서 어떻게 왔느냐고 묻길래 '하나님의 긴급 명령으로 왔습니다'하고 대답하니까 그냥 문을 닫아 버리더랍니다. 그래서 속으로 반 불평 어린투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다시 문이 열리더니 외무부 장관이 들어오라고 하더랍니다. 장관이 어떻게 왔느냐고 질문하길래 '하나님 긴급 명령으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럼 긴급명령이 무엇이냐고 하길래 '요사이 북송선 문제있지 않습니까? 북한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전도해서 구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그런 얘기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길래 '사도행전 16장에 있습니다'하고 한참 동안 얘기를 하니까 감동이 되었는지 직원을 부르더니 여권을 비자와 함께 즉시 만들어 주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전화를 해서 지금 한국에서 김영철 목사라는 분이 가는데 잘해주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리하여 일본으로 가서 북송선을 타는 동포들을 위해서 많은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3. 버림받은 영혼들의 부르짖는 음성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라는 음성과 가서 도와주라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이 버림받은 영혼들의 부르짖는 음성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한 부자가 호화롭게 연락하며 살면서도 내세나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며 자기집에서 얻어 먹는 거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죽어서 음부에 떨어져 뜨거워 견딜 수가 없고 물 한방울 얻어 혀를 서늘하게 할 수 없으니까 아브라함에게 간청하기를 우리 집에서 얻어 먹던 그 거지 나사로를 보내서 손가락에 물 한방울만 보내주어 타고 있는 내 혀를 좀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큰 구렁이 끼어 있어 거기서 여기로 올 수도 없고 여기서 그리로 갈 수도 없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나사로를 우리 집에 보내서 우리 집에 형제가 다섯이 있는데 그들만이라도 내가 있는 이 고통받는 장소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웠으면 자기는 기왕에 들어왔지만 자기 형제들이라도 이 고통받는 장소에 들어오지 않도록 전도해 달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때에 아브라함이 '세상에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된다'라고 대답하자 '아닙니다 죽은 자가 살아 나와서 말해 주면 들을 것이니 우리 집에 좀 보내서 이 고통받는 형벌의 장소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서 말해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옥간 영혼들의 이 간절한 부르짖음, 자기들의 형제자매는 여기 오지 못하게 전도해 달라는 소리를 믿음의 귀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위로부터 들려오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과 세상에서 들려오는 복음을 전해 달라는 애절한 소리와 저 밑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 우리 형제들을 제발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전도해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전도사업, 선교사업에 최선을 다합시다. 'Go or Send' '가라 그렇지 않으면 보내라'는 말씀을 명심하고 삽시다.
전도나 선교 사업을 위해 자신과 물질과 시간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의 길, 상 받는 길이 없습니다. 단 12:2, 3절에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을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 30)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3가지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 실천하여 축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마귀를 조심하라

[누가복음 22장 31절~34절]
31절 -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절 -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절 -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절 -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제가 시골에서 첫 목회를 할 때, 은혜받은 젊은 속장이 내게 묻기를 '전도사님, 마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를 시험해 보기 위한 모양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있게 대답을 못하고 '성경에는 있다고 했지만 보지 못했으니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귀신 들린 사람을 붙잡고 기도하며 애쓰다가 믿음의 눈으로 마귀가 그 사람을 통해 말하는 것도 보고, 쫓겨 나가는 것도 보고, 더 나아가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에는 항상 마귀의 역사를 체험하며 싸워오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귀의 존재를 믿지도 않고 도리어 비웃습니다. 한낱 지어낸 이야기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차츰 영의 눈이 열리면서 성령의 역사와 마귀의 역사를 뚜렷이 볼 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사단(satan)이라고도 하고, 악마(devil)라고도 하는데, 사단(희랍어로는 '다이몬')은 '사람을 범죄케 하고 고발하며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질병을 갖다 주는 자'로 소개되고 있으며 악마(희랍어로 '디아보로스')는 '중상자', '비방자', '유혹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구분이 없이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케 하여 멸망을 갖다 주는 악한 존재입니다.
마귀의 기원은, 가장 높은 천사의 직분을 지녔던 루시퍼가,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반역했다가 타락하여 쫓겨남으로 시작된 것이지,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근거가 없습니다.
하여간 마귀는, 인격적으로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단순히 하나의 악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가상적 명사가 아닙니다.
마귀는 모든 악한 것들의 배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존재를 말씀했고, 베드로, 요한, 바울 등의 사도들이 모두 마귀의 존재를 말씀했습니다. 오늘날도 영적 실재를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귀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알고 있으며, 주님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시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을 무효케 하고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구원받은 사람이 어찌 하든지 범죄케 해서 영향력을 잃게 만들고 전도도 못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영향력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영적으로 늘 깨어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은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유혹의 예를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교훈으로 삼고자 합니다.

1. 마귀는 우리를 교회와 멀어지게 합니다.
처음 구원받고 나면 교회에 잘 출석하게 되고 다음 예배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생겨서 예배에 한 번, 두 번 자꾸 빠지게 되면 결국 신자는 믿음을 잃어 무기력하게 되고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고 전도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와 멀어지게 되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우선은 "모이기를 힘쓰라"(히 10:25)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고, 이는 곧 영의 양식이 말씀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 되며 믿는 자들과의 교제에서 얻게 되는 영적 성장의 중단을 초래합니다.
또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는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성찬 예식에도 참예하지 못하며, 교회에 못 나오니 따라서 십일조나 기타 헌금 드릴 기회도 없어지게 되고, 성실하게 교회 출석을 못하게 되면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도 순종할 수 없게 되어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기회를 상실할 뿐 아니라, 결국 영적으로 굶주리게 되고, 영적 기근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일은 교회에 잘 출석하는 일입니다.

2. 마귀는 우리를 안일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암 6:1절에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여"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군대와 같은 종교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에게 편안히 누울 수 있는 부드러운 침대란 없습니다. 항상 투쟁하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운다"(딤전 6:12)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생활에 안일과 나태가 틈타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실패하게 됩니다.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 교회에 나오기보다는 늦잠 자는 것을 더 좋아하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처음 한 두 번은 예배에 지각하더라도 참석하지만 나중에 예사롭게 예배를 거르게 됩니다.
또한 마귀는 교회 출석 뿐 아니라 성경 보는 것에 대해서도 게으르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성경을 사서 부지런히 읽다가, 언젠가부터는 옆으로 밀어치우고, 먼지가 소복하게 쌓이고, 나중에는 읽는 것도 싫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 마귀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든지 성경을 멀리하게 만듭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은 기차 안 식당에서, 한 불가지론자(agnostic)와 목사가 한 식탁에서 생선 요리를 시켜서 먹게 되었습니다. 이 때 불가지론자가 목사에게 묻기를 '당신 성경으로 설교를 합니까?'하니까 '그렇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시 '당신은 성경을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지요?'하고 불가지론자가 물었습니다. 그 목사는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불가지론자는 '그런데 무슨 설교를 하느냐?'고 빈정댔습니다. 그 때에 목사는 '나는 이 맛있는 생선 먹는 것과 같이 합니다.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나오면 접시 옆으로 골라 놓고, 계속 맛있게 먹습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가시를 굳이 먹으려고 하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 질식해 죽었다면,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지요'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100%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얼마든지 영의 양식을 섭취할 수가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성경보는 데 게으르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 항상 말씀과 가까이 하는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의 기도 생활을 게으르게 만듭니다.
'사단은 가장 연약한 신자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벌벌 떤다'고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전쟁터에 군인이 무기를 안 가지고 나갈 수가 있습니까?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이 세상과 싸우고, 육신과 싸우고, 마귀와 싸우는데 가장 강한 무기인 기도가 없이 싸우러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도하는 교회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크게 승리하고 부흥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조직을 의존할 때 조직이 할 수 있는 것을 얻게 되고, 교육에 의존할 때 교육이 할 수 있는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에 의존할 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을 얻게 됩니다.

3.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비판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는 기관은 유일하게 참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입니다.
사단은 교인들을 충동질하여 의심을 품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옹호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교회가 비록 허물이 있어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지상에서 가장 선한 기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장 가까운 기관입니다. 부디 마귀가 여러분의 마음 속에 들어가 교회를 비난하고 해치는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오직 마귀를 기쁘게 할 뿐이며 마귀의 소원을 이루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 결국 교회를 비판하는 본인의 심령이 해를 입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비난하고 헐뜯는 것은 분명히 사탄의 역사입니다.

4. 마귀는 예수님을 위한 봉사를 못하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주님을 위해 일하고 봉사하는 활동을 다음으로 미루면서 좋은 기회와 세월을 다 보냅니다. 안개와 같이 허무한 세상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 주님을 위해 봉사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고 보람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이것을 방해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과 십자가의 보혈로 얼마든지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속지 말고 도리어 대적하여 날마다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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