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변화로 이어져야 할 눈물

[사사기 2장 1절~10절]
1절 -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절 -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절 -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절 -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절 -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6절 -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절 -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절 -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절 -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절 -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와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그들이 쫓아내지 않은 그 땅 주민이 그들의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백성이 소리 높여 웁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이 죽은 후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합니다.

1. 이스라엘의 통곡 (1~5절)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어울려 살며 그들의 우상 숭배를 용납합니다. 그러자 길갈에서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표시로 할례를 행하고 애굽의 멍에를 벗어버린 기념비적인 장소입니다(수 5:2~9). 그런데 어리석게도 이스라엘은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죄의 멍에를 다시 지려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고 우상 제단을 헐지 않은 그들의 죄를 추궁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그들 앞에서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의 대적이 되게 하는 징계를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재앙 선포에 그들은 통곡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회개였습니다. 이후에 우상 숭배를 하기 때문입니다(11절 이하).
* 묵상 질문
여호와의 사자가 경고에 앞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먼저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데 올무가 되지 않도록 헐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신앙 교육에 실패함 (6~10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가나안 정복에 실패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길갈에서 온 하나님의 사자로 인해 여호와께 돌아가는 듯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소개됩니다. 여호수아와 하나님의 초자연적 권능을 경험한 장로들이 살던 세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을 잘 섬기며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손에게 신앙 교육을 하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새 세대는 가나안 족속의 우상이 판치는 땅 한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에게는 여호수아와 장로들처럼 훌륭한 영적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크신 일을 보지도, 그분 말씀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과 그분의 크신 행사에 대한 체험과 신앙 전수가 왜 중요할까요?
* 적용 질문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오늘의 기도
올바른 믿음의 유산이 저를 통해 다음 세대에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자녀, 선후배와 동료 등 저와 관계 있는 모든 사람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날마다 경건의 능력을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정복 대신 공존을 선택한 어리석음

[사사기 1장 22절~36절]
22절 -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절 -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절 -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절 -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절 -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27절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절 -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절 -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절 -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절 -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절 -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절 -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절 -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절 -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절 -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요셉 가문은 벧엘을 정복할 때 성읍 입구를 알려 준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려 줍니다. 그 사람은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짓고 그 이름을 루스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는 못하고 함께 거주하다가 강성한 후에야 그들에게 노역을 시킵니다.

1. 요셉 가문의 벧엘 정복 (22~26절)
유다 지파에 이어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복하기 위해 나섭니다. 요셉 가문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순조로운 출발을 보입니다. 요셉 가문은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중요한 성읍 벧엘(창 12:8; 28:10~19; 암 7:13)을 점령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고 어떤 언약이나 협상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7:1~2)에 불순종합니다. 인간적인 책략으로 손쉽게 벧엘을 얻고자 배신자의 정보를 취하고 그 대가로 그를 살려 준 것입니다. 그는 헷 족속의 땅에 새로운 가나안 도시를 세워 가나안 문화를 확산시킵니다.
* 묵상 질문
요셉 가문의 불순종과 타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요?
* 적용 질문
세상적인 방식과 타협하려는 유혹에 자꾸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실패로 얼룩진 여섯 지파의 정복 (27~36절)
이스라엘의 여럿 지파는 가나안 북부 지역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가나안 문화에 점차 깊이 동화되어 갑니다. 요셉 가문의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스불론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 그들과 함께 거주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는데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들 가운데 들어가서 삽니다. 이는 가나안 족속이 주도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단 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 밀려 산지로 쫓겨납니다. 이스라엘 여섯 지파의 정복 사업에 관한 기록이 그들의 경계가 아닌 '아모리 족속의 경계'를 설명하는 말로 끝난 것은 여전히 이방 족속이 그 땅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 줍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문화를 근절하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건설해야 하는 임무에 실패한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여섯 지파의 정복 과정에서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세상적인 관습이나 문화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 풍조와 타협하며 살았던 저를 용서해 주소서. 하나님 것과 세상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제 안에 들어와 주인 행세하는 세상 풍조를 끊어 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승리와 그림자, 그리고 희망의 빛

[사사기 1장 1절~21절]
1절 -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절 -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절 -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절 -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절 -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절 -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절 -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절 -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절 -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11절 -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절 -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절 -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절 -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절 -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16절 -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절 -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절 -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절 -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절 -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절 -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호수아가 죽은 후 하나님 말씀대로 유다가 먼저 가나안 족속과 싸웁니다. 유다는 산지 주민은 쫓아냈지만 철 병거가 있는 골짜기 주민은 쫓아내지 못합니다. 갈렙은 헤브론을 차지하고,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 그들과 함께 거주합니다.

● 승리와 그림자, 그리고 희망의 빛
가나안 정복을 이끈 여호수아가 죽은 후, 하나님은 남은 정복 사업을 주도할 선봉장으로 유다 지파를 택하십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을 물리칩니다. 유다 지파의 승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4절). 하지만 이들은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시므온 지파(창 49:5~6)를 끌어들이는 등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갈렙의 사위 옷니엘과 그 아내는 땅 약속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입니다. 하나님은 갈렙에게 약속하셨던 헤브론 땅을 주실 뿐 아니라(신 1:36; 수 14:13) 첫 사사를 배출하는 영광도 그 가문에 주십니다(3:9).
* 묵상 질문
유다 지파의 승리 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삶에서 하나님께 묻고 시작한 일(1절 참조)을 끝까지 잘 마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목 : 유혹, 반드시 이겨야 한다. (옥한흠 목사)

[사사기 16장 15절~22절]
15절 -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절 -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절 -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절 -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절 -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절 -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절 -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절 -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성경에서는 유혹을 주로 시험이라는 말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도하는 간교한 수단을 일컬어서 시험이나 유혹으로 정의합니다. 우리 중 유혹을 받아서 죄를 짓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자기를 지켜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유혹,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를 유혹한다는 것은 나를 전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영적 전쟁입니다. 유혹과의 전쟁입니다. 여기에서 지면 다 잃어버립니다.

첫째,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는 목적은 우리의 거룩을 공격해서 죄를 범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삼손은 평생 나실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바쳐진 사람입니다. 만약에 머리에 칼을 대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요, 거룩을 범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힘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들릴라를 앞세워서 이 비밀을 캐내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거룩한 성전, 하나님의 전입니다(고전3:16). 그러므로 거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고 있는 영광, 행복, 능력은 모두다 거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리를 미혹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거룩함에 흠집을 내가지고 우리에게 있는 영광도 빼앗아가고, 힘도 빼앗아가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유혹은 영적으로 방심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방심한다는 것은 영혼이 졸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미지근해진 것입니다. 영적으로 방심해지면 육신의 정욕이 힘을 얻게 됩니다. 거룩의 힘이 약해지면 탐심의 힘이 생깁니다.

셋째, 삼손은 유혹을 피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인이 유혹을 하자 삼손은 번뇌하였습니다. 번뇌한다는 것은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삼손은 그런 번민하고 갈등하는 소중한 기회를 바로 이용하지를 못했습니다.

넷째, 삼손의 밀린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삼손은 머리털이 자란 후 감옥에서 다시 거듭나는 철저한 회개를 했습니다. 맷돌을 돌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의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하자 그의 힘을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그를 다시 치유하셨습니다. 회복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사로서의 위대한 일을 남기고 그의 생을 끝내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삼손처럼 강한 영역을 가지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는데 제일 앞자리에 설 수 있는 거룩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유혹에 대해서 단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쩌다가 유혹에 넘어지면, 넘어지는 그 자리에서 삼손처럼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치유받고, 힘을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2003.3.9)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제목 : 믿음의 세대가 끊어지는 아픔 (오정현 목사)

[사사기 2장 6절~10절]
6절 -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절 -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절 -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절 -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절 -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고 영원토록 지존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세대에만 영광을 받으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세대를 이어가면서 세대 세대마다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인생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전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믿음을 잘 계승해야 하고, 다음 세대는 그 다음 세대를 위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잘 계승 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세대계승과 믿음이 이어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실까요? 그것은 믿음의 세대가 계승되지 않으면 너무나 비참한 결과가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사기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어려운 광야생활을 하고, 이제 드디어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에 대한 분배를 해주시는데,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5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가나안 땅 정복에 애를 썼습니다. 참으로 고생해서 얻은 땅입니다. 너무나 좋은 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사람들이 전부 죽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행하셨던 기적과 행적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12절에 보면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한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우상을 섬겼습니다.
1세대는 도전의 세대, 고난의 행군을 하는 세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적을 행하셨는지 깨우치던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이 절대적인 진리를 팽개치고 하나님께 악을 행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참으시지만 나중에 채찍을 드십니다. 후에 이 민족의 불순종 때문에 이방 나라에 7번이나 노예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부모세대는 거친 광야에서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야성의 세대였고, 그 자녀들은 편안함에 익숙해진 유약한 세대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앞에 두고 깨닫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편 78편 3~4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이것이 우리의 암송이요, 요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가 계속해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역사가 깊어지고, 목회자가 나이를 먹어도 교회는 젊어야 합니다. 교회는 시대 앞에 변화를 품을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교회는 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와 변질은 다릅니다. 변질은 본질을 바꾸고 부패하고 멸망을 가지고 오지만, 제대로 된 변화는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신선한 자극을 유도하고 성장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흔히 변화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변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변질 되었기 때문입니다.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을 놓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주의적 신앙을 계승하기 위하여, 세대간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대담하게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요?
그것은 교회가 이 시대를 향하여 야성을 지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훈련된 인물을 키워야 합니다. 다음 세대의 웬만한 공격을 이겨낼 만한 인물을 키워야 합니다.
다니엘, 요셉, 사무엘을 보십시오. 정말 죽자 살자 고생한 인물입니다.
이런 야성을 지닌 인물을 키워내는 방법 중 하나는 새벽기도 입니다. 새벽 4~5시의 공기를 깨우고 은혜를 받으면 야성이 키워집니다. 부잣집 도련님만으로 우리 자녀를 키우지 말고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야성있는 인물로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세대가 계승됩니다.

우리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 시대의 부모들처럼 자녀교육에 실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썩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조류를 거스리며 역동하는 연어처럼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야성을 지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본 말씀은 오정현 목사의 주일설교(2004.09.28)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제목 : 큰 용사 기드온 (피종진 목사)

 

[사사기 6장 12절~16절]

12절 -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절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절 -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절 -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을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서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전했다. 용사란 ‘힘이 있고 강한 사람, 열렬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보잘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농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를 사랑했으면 ‘큰 용사’라고 하셨을까?

1. 하나님의 사명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14절)
하나님의 사명이 부여된 사람은 다 용사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명이 그에게 부여된 순간부터 ‘큰 용사’라는 호칭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는 두가지 큰 사명이 부여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7년 동안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을때 그들이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죄사함을 받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는 것이었다. (13~14절)
우리에게도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주며, 멸망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축복의 길을 가게해야 할 하나님의 사명이 있다.

2. 자기를 낮추고 부족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15절)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다고 말했다. 예레미야도 선지자로 선택 받았을때 비슷한 말을 했다.

  - 예레미야 1:6~7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자기를 낮추고 부족함을 알때에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의지할때 보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으로 강하고 능한 자들보다는 약하고 무능한 자들을 들어 크게 쓰셔서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약한 것이 오히려 강한 것이요, 무능한 것이 오히려 유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실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신다.

3.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이다. (16절)
하나님께서는 아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가 미디안 모든 사람을 한사람을 치듯이 능히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셨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곡식을 빼앗길 것이 두려워서 타작마당을 두고 포도주틀 속에 몰래 숨어 타작했던 연약한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심으로 큰 용사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때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축복이 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룰수 없는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이룰수 있는줄 믿으시기 바란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사명이 부여된 자, 자기를 낮추고 부족함을 아는 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가 곧 큰 용사다. 주님의 큰 용사가 되어 영혼 구원을 위해 크게 쓰임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제목 : 하나님 없는 성공의 허무함 (이찬수 목사)

 

[사사기 7장 1절~3절]

1절 -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절 -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절 -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그 성공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역사적으로나 실제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 없이 성공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데 그 성공은 미끄럼틀 위에서의 성공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수치의 자리로 빠지는 많은 분들을 보게 된다.

즉, 하나님은 주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성공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신다.

  - 시편 73:18~19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미끄럼틀 위에 성공은 언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

  - 사사기 7:9~10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 사사기 6:36~37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 사사기 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가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두려움과 의심에 가득한 기드온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꾸짖지 않으시고 친절하게 그를 대하셨다.

기드온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그의 내면을 드려다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온 기드온이였다.

하나님 앞에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에 있다.

영적인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잘 될것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자랑하는 자)
  -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 두려움에 떠는 자는 그 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 사무엘상 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 사무엘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 현재 내면에서 하나님 없이도 난 잘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 마음을 빨리 내려놓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만을 줄이시는 과정이시다.



 

베냐민을 친 행동이 주는 교훈은(삿 21:1-3)?

잘한 일 가운데서도 지나친 것이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의를 위해 남을 심판하는 경우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흥분한 상태에서의 일처리는 후회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같은 민족 내에서의 전쟁은 결과에 관계없이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형제를 살해한후 취한 태도는(삿 21:4)?

하나님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
죄를 짓고 나서는 곧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 변론하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시켜 주십니다(사1:18).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의미는(삿 21:5,8)?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지 않았음을 뜻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교회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합니다.

 
맹세의 중요성은(삿 21:11)?

맹세는 하나님과의 약속임.
한번 맺은 맹세의 내용은 꼭 지켜야 합니다. 만일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기되어 신실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맹세는 아무렇게나 아무때나 해서는 안되고, 신중하게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하며 꼭 지키려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형제들이 베냐민 자손에게 취한 행동은(삿 21:13)?

평화를 공포함.
죄지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회개하였을때는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고후2:7).

 
하나님 앞에서 죄와 사랑의 관계는(삿 21:17-24)?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죄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시기까지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여자들이 절기때 하는 행위는(삿 21:21)?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때에 온몸과 마음을 다해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경건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서 영광받기를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영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사기의 총 주제는(삿 21:25)?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의 특징중 하나는 백성의 타락 → 하나님께서 이방 백성을 사용하여 그들을 치심 → 백성의 회개 → 사사들을 세움으로 구원하신 이야기가 일곱여 차례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각기 제 좋은대로 행하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도리어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의하여 다스려져야 합니다.

 

 

 

출처 : 갓피플

공동체에서 다툼이 생기는 이유는(삿 20:3)?

서로 자기들의 이익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성도는 어느 누구라도 특정한 사람 편에 서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결정하고 행동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툼이나 질시가 사라집니다.


악한 일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삿 20:7)?

뜻을 같이하여 몰아내야 함.
하나님의 성도는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거나 그의 나라와 의를 더럽히는 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 징계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삿 20:8-35)?

책망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될수 있는 방법은(삿 20:11)?

하나의 목표를 두고 뭉쳐야 함.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한분이시고 주도 하나이시며 성령도 하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줄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미스바 총회가 열린 이유는(삿 20:11-48)?

기브아 사건 때문에.
지파간의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한뜻으로 뭉쳤고, 이스라엘 내의 죄악을 제거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성도들은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응징하면서도 일을 처리할때는 신중하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지나친 이기주의의 결과는(삿 20:13, 14)?

서로간에 충돌을 낳게 함.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기주의는 교만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인정하는 삶을 통하여 성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베냐민 자손의 행동은(삿 20:15, 16)?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싸우려 함.
하지만 이들의 힘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을 응징하려는 연합군을 방어하는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을 의존하면서 더욱 죄의 강도를 높여갑니다. 그들은 무한히 강하신 분(고전10:22)을 진노케하여 결국 파멸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취할 태도는(삿 20:17, 18)?

먼저 하나님을 의뢰해야 함.
성도는 범사에 주님을 인정해야 합니다(잠3:6). 그러면 주님께서 그의 길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며 항상 동행하십니다.


일이 실패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삿 20:23)?

하나님을 원망함.
일이 실패할때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일의 실패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과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해야 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살펴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두번째 패한 후에 취한 행동은(삿 20:26)?

울며 금식하고 저물도록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때까지 기다리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는 먼저 하나님의 의도를 감지할수 있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전쟁에서 이길수 있었던 원인은(삿 20:35)?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도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승리는 성도에게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며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교만한 자의 최후는(삿 20:36-48)?

완전히 패망하게 됨.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를 한것처럼 여기는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그결과 그들은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잠16:5).

 
불의를 행한 자에 대한 태도는(삿 20:46-48)?

죄인은 먼저 여러 방면에서 지은 자기의 과오를 반성해야 하고(갈6:1),
잘못한 자를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하며(고후2:6-8),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이때에 혈기나 악독이나 분노를 행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출처 : 갓피플


레위인의 타락했던 모습은(삿 19:1-30)?

첩을 얻고, 벌하지 않았으며, 첩을 다시 데리러가고, 시신을 열두덩이로 조각냈습니다.


행음한 자의 결과는(삿 19:2)?

행음한 자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함(신22:22).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아내된 성도는 자주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음을 범할때가 있습니다.

 
쾌락에 대한 성도의 태도는(삿 19:4-9)?

단번에 제거함으로 연속되는 것을 방지해야 함.
쾌락에는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가장 큰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온 세상적인 유혹들을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마4:4).

 
외식하는 자의 모습은(삿 19:10-15)?

자기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겉으로만 경건한체 함.
외식은 하나님을 향하여 서지않고 인간을 의식하고 바라볼때 생깁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를 하십니다(마23:1-39).

 
나그네에 대한 바른 자세는(삿 19:15)?

이스라엘에서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임.
하나님의 공동체에서는 나그네가 왔을때 먼저 영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손대접을 해서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한 사람들도 있습니다(히13: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 공동체는(삿 19:16-21)?

서로의 것을 나누며 돕는 공동체.
성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는 초대 교회 시대의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기도하며 예배하는 생활을 했습니다(행2:43-47).


타락한 백성의 모습은(삿 19:22-26)?

육체적인 일에만 몰두함.
타락은 영적인 면이 어두워진 것으로 빛보다는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신 것은 그런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과 자유의 빛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요8:12).

 
나그네에 대한 노인의 태도는(삿 19:22-24)?

차라리 자기 딸을 주더라도 나그네를 살리려 함.
성도는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봉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빌2:5).

 
생사가 걸린 위기가 닥쳤을때 레위인이 취한 태도는(삿 19:24-30)?

자기 첩을 대신 희생시킴.
죄로 인해 우둔해지면 계속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큰 위기가 닥쳤을때 하나님을 의뢰하는 대신 남을 희생시키고,
온민족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며, 한지파를 몰살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를수도 있다는 것을 레위인은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불의에 대해서 성도가 취할 태도는(삿 19:27-30)?

신앙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단호하게 불의에 대처해야 함.
성도에게는 거룩한 분노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롭지 못한 일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정신을 가지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불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때 불의한 자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셨습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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