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핍박자들에 대한 탄원 94:1-11
(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잔인하게 압제하는 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탄원한다(1,2절).
1) 그들은 이렇게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해주시도록 호소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다음과 같은 명칭으로 부른다.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여(1절).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2절). 그는 재판관이시다. 아니 그는 최고 재판관이시며 유일한 재판관이시다. 모든 인간의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법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 법규를 통하여 그 행사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판결을 내리신다. 그의 보좌는 무고하게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최후의 피난처(법률 용어로 '최후의 수단')이다. 그는 온세계의 재판관이시다. 그는 악에 대해 복수할수 있는 권위를 가지셨으며 그 권위는 곧 그의 속성이기도 하다. '보수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의를 이기는 세력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접 복수해서는 안될 이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롬 12:19)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의 특권을 빼앗고 그의 보좌를 침해하는 것은 매우 파렴치한 행동이 아닐수 없다(롬 12:19).
2)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여호와여 빛을 비취소서. "그들로하여금 주가 존재하실뿐 아니라 주께 정직히 행동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언제든지 강한 능력을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알게하소서." 그 대적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복을 당했다는 이유로 하나님도 정복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 이것을 다시말하면 다음과 같다. "그들의 모든 무례한 행동과 그들이 주의 백성들에게 행한 악에 대해 셈하여 주소서."
(2) 시편 기자는 압제자들의 교만과 잔혹성에 대해 겸손히 호소한다(3절). 그들은 악한 자들이다. 그들은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멸시하게 만드는 선을 지닌 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 그들은 무례하게 행동하고 자신을 과장하는 것으로 즐거워한다. 자신을 높여 말하는 자들 곧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거의 말하려 하지 않는다.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백성들을 파쇄하나이다. 그리고 저희 모두가 주의 기업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며 슬프게 하며 압제하여 쓰러뜨리며 멸망시키나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기업이다. 그러나 압제자들은 잔인하게도 자신을 지탱하기조차 힘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로 즐거워한다(6절). "여호와여 저희가 얼마나 이처럼 행하도록 내버려두시겠나이까?"
(3) 시편 기자는 핍박자들의 무신론에 대해 고발한다. 그들의 무신론적인 생각들이 여기에서 밝혀진다(7절).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그들은 확신을 갖고서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가 보려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작은 잘못은 묵인하실뿐 아니라 큰잘못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실 것이라." 나발같이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지 못하거나 야곱의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상처에 대해 관심도 쏟지않을 것이라고 말한다(8절). 백성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모든 언행을 바라보며 주목하고 계시도다." 아무리 사람이 나쁘다해도 그를 개조하고 개혁시키지 못할 방법은 없다. 또 아무리 우둔하고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현명해질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시험을 받아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사역(9절) 곧 인간의 신체조직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모든 장점들을 그 자신속에 무한히 지니고 계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9절). 그가 정말 그 자신속에도 없는 것을 피조물에게 주실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더많이 이해할수 있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체와 감각기관을 앎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수 있다. 만일 우리가 보고 들을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실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영혼을 앎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수 있다. 이방인들의 신들은 눈을 가졌으나 보지 못하고 귀를 가졌으나 들을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처럼 눈과 귀를 갖고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는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기도 듣기도 하신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다신론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이방인들을 징계하시는 자가 무신론과 음행에 빠져있는 자기의 백성들을 이방인들보다 훨씬더 징계하지 않으시겠는가? 해몬드 박사는 이 말에 대해 매우 가능성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열방들을 교훈하시는 자가(즉 열방들에게 자기의 율법을 주시는 자가) 징계하시지 않겠는가? 곧 그가 그 법에 따라 열방들을 심판하고 그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 그들을 문책하시지 않겠는가?" 징계하는 것과 교훈하는 것은 같은 뜻을 지닌다. 왜냐하면 징계의 목적은 교훈에 있고 교훈은 징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10절). 그는 자연의 하나님으로서 이성의 빛을 주실뿐 아니라 은총의 하나님으로서 계시의 빛을 주고 인간에게 무엇이 참지혜와 깨달음인가를 보여주시기도 한다. 그러니 이렇게 행하시는 자가 알지 못하시겠는가(욥 28:23,2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신다(11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선한 생각속에도 헛되다고 할수 있는 변덕스러운 모습이 들어있다. 우리는 생각을 통해 하나님께 아뢰는데, 헛된 생각은 오히려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이다.
Ⅱ. 핍박받는 자들이 받을 위로와 화평 94:12-23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약속들과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를 준다.
(1) 그는 하나님의 약속들로 성도들을 위로한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는 그들을 구원해줄뿐 아니라 그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주기도 한다(12절).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여기에서 그는 고난의 도구들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손을 주시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손은 고난을 아주 다른의미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 대적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쇄시켰다(5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하듯 그들을 통해 그의 백성들을 징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핍박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회초리에 불과하다. 이제 여기에서 다음의 내용들이 약속되고 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당하는 고난으로인하여 유익을 얻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심으로써 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신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규율로 단련을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어느누구도 하나님과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징계를 받을때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기위하여 기도하고 섭리의 뜻이 가장 잘 담겨있는 율법을 연구해야 한다. 징계가 징계자체로 끝난다면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징계에는 그것을 설명해 주는 교훈이 따르게 마련이다.
2) 그들은 그들의 고난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13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평안을 주시리이다. 그들이 당하고있는 환난의 날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예비하시고 그 고난으로부터 그들에게 안식을 주시며 목적이 이루어질때 그 고난이 제거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3) 그들은 고난의 도구로 쓰이는 자들의 멸망을 바라보게될 것이다.
4) 그들은 징계를 받을지라도 버림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14절).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않고 그의 언약과 보호로 지켜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이러한 언약과 보호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롬 11:1).
5)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그들은 개선될 것이다(15절).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외관상 무질서하게 보이는 섭리가(실제로는 결코 무질서하지 않다) 질서있게 보일 것이다.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섭리의 양상은 순조로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즐겁게 순응할 것이다. 해몬드 박사는 이것이 처음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의하여, 그후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방 로마의 멸망에 의하여, 그리고 그들의 멸망으로인해 교회가 얻은 평안에 의하여 가장 분명하게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2) 그는 그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성도들을 위로한다.
1) 그와 그의 동료들은 잔인하고 오만한 사람들의 압제를 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권세로 모든 선한 백성들을 학대함으로써 그 권세를 남용했다. 그들은 '죄악행하는 자'이다(16절). 그들은 온갖 불신앙과 부도덕한 행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악한 재판장'이 되었다(20절). 인간의 법이 죄악을 금할때에도 죄악은 아주 대담하게 자행된다. 이것은 인간의 법이 죄악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하물며 죄악이 법에 의해 지지받는다면 그 해악은 얼마나 클 것인가! 이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모독하기 위하여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한다. 하나의 실례로서 다니엘의 대적들을 살펴보라. 그들은 기도를 못하게 하는 금령을 얻고나서(단 6:17) 다니엘이 이에 순종하지 않자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여' 그를 사자굴에 넣어 그의 무고한 피를 흘리려 했다. 가장 선한 사람들이 종종 법과 정의를 구실로 가장 악한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2) 그들은 매우 견디기 힘든 압제를 받았다. 시편 기자는 거의 '적막중에 처할' 뻔했었다(17절). 그는 어찌할바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무덤 곧 적막의 땅에 묻힐 각오까지 했다(사도 바울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마음속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 고후 1:8,9).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18절). "나는 죽을 것이 틀림없도다. 내 소망은 모두 사라졌도다. 나는 이제까지 믿음으로 행했던바와 같이 확고하게 나아갈수 없도다"(참조. 시 73:2). 그는 그가 취해야할 과정과 그 목적에 관하여 매우 심한 혼란에 빠졌다.
3) 이러한 고통속에서 그들은 도움과 구원과 어떤 위로를 구했다(16절).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행하는 자를 칠꼬.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편이 될 친구가 있을까?"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구해주고 지지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 바울도 죄악을 행하던 네로 황제에게 끌려왔을때 '그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딤후 4:16). 그래서 그들은 부르짖었다. "주여,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주께서는 악을 행하는 이들 독재자들을 묵인하여 지지하시겠나이까? 우리는 주께서 그렇게 하지않을 것으로 알고 있나이다." 군주란 정의로 다스릴때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군주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악한 재판장'은 결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수 없다.
4) 그들은 구원과 위안이 하나님안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를 신뢰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바람으로써 그로하여금 나의 도움이 되도록 하지않는한 나는 결코 내 영혼을 소유했다고 할수 없으리라. 오히려 나는 그를 믿고 삶으로써 내 머리가 물속에 가라앉지 않고 숨을 쉬게 되었고 말을 할수 있게 되었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그의 긍휼로 영적인 후원을 받는다. "주의 긍휼, 곧 주의 긍휼로인한 은사와 주의 긍휼에 대한 나의 소망이 나를 지탱해 주었도다." 내속에 생각이 많을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나의 생각이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서로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한 생각들을 잠잠케 해주시고 나의 마음을 편케 해주소서." 공상은 영혼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는 영혼을 움직여서 그들에게 세상의 찬성으로 얻을수 없고 세상의 반대로도 없어지지 않는 화평과 즐거움을 준다.
5)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의를 보호하고 악을 처벌하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것을 확신하고 있을뿐 아니라 경험까지 했다. "어느누구도 나를 숨기려하거나 숨길수도 없을때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 되셔서 환난으로 말미암아 악을 행하고 무기력해지며 멸망당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셨도다. 그러므로 그는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내가 그 틈새에서 은신처를 얻고 그위에 섬으로써 위험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도다."
# 핵심
94:1-23
하나님이 교만한 악행자들을 심판하는 공의로운 재판관이심을 확신하며 정의가 세워지기를 호소하는 시편이다.
# 묵상
야곱의 하나님 ( 94:7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즐겨쓰는 독특한 표현으로 자신들이 선민임을 강조하는 것이며, 야곱에 관해 잘알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당시 이스라엘이 조상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악행을 일삼았음을 반증합니다.
징벌을 통해 의인이 받는 복 ( 94:12 )
의인이 징벌을 당하면서도 복을 받는 이유는, 핍박받는 의인은 고난을 통해 더욱 주께 매달림으로 신앙의 성장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를 사랑의 채찍으로 징계하십니다(히12:5, 6).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받을때가 하나님의 은혜받을때임을 깨닫고 주께 매달려야할 것입니다(시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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