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함 104:1-9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고자 할때에는 먼저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아야' 한다(사 64:7). 본문에서 다윗은 이러한 태도를 잘 표현해 놓았다.
(1) 우선 다윗은 거룩한 영광으로 빛나는 천상의 세계를 우러러보면서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원래 인간은 천상의 영광을 볼수 없는 존재이나 다윗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말할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감에 젖어 묵상을 시작하였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이 구절은 왕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면으로 광대하게 나타나신다는 것을 뜻한다.
1) 본래 왕위에 오른 자들은 입는 옷에서부터 남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옷은 어떤 것인가?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1절).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2절). 하나님은 빛에 거하시고(딤전 6:16), 빛으로 옷입으시는 분이다.
2) 또한 왕이 거하는 궁궐이나 누각도 여느집과 다르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궁궐이나 누각은 어떠한가? 주께서...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2절). 태초에 궁창을 만드실때 이미 이렇게 해두셨던 것이다. 히브리어의 궁창이란 명칭도 "넓게 펴다" 혹은 "뻗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어휘에 그 유래를 두고있다(창 1:7). 원래 하나님께서는 '빛을 입으신' 분이지만 이를 가까이 할수 없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사 캄캄한데 계시며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임재하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한편 그 누각의 광대함은 보는이로 하여금 하늘과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고 높으신 분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공기와 물은 본시 유동적인 물체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일정한 공간안에서는 마치 들보와 서까래를 받친 누각처럼 견고하고 단단하게 서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몸소 임재하실 공간을 든든히 세워두신 하나님은 얼마나 귀하고 높으신 분인가.
3) 한나라의 왕이 도성에 들어올때에는 훌륭한 말들이 끄는 사륜마차를 탐으로써 그의 위엄을 높이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구름을 수레삼아 시내산에 임하사 율법을 주셨던 일이 있다. 또한 다볼산위에 이르러 말씀을 선포하실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셨다(마 17:5).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람날개로' 다니신다(이 말은, 하나님께서 조용하나 당당하게 다니신다는 의미이다).
4) 왕은 언제나 수종드는 사람을 거느리고 다니는 법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사' 그 위엄을 나타내셨던 것이다(4절).
(2) 이제 다윗은 눈을 돌려 땅위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1) 그는 먼저 '땅의 기초를 두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송축하였다(5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땅을 공간에 다셨으나'(욥 26:7) 이 땅은 마치 견고한 토대위에 세워진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인류의 죄로 말미암아 위기를 겪은 일도 있었고 지옥의 권세가 그 기초를 뒤흔들어 놓으려하기도 했으나 하나님께서 '영원히 요동치않게' 하셨으므로 세상 끝날이 오고 새세상이 올때에도 땅은 견고히 서있을 것이다.
2)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놓으신 점을 찬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물도 소유하고 계시기때문에 능히 이 일을 하실수 있었다.
①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은 물의 경계를 정하여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며 그대로 되니라"(창 1:9). 이와같은 명령을 가리켜 다윗은 '주의 견책'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여기서 견책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땅이 물로 덮여 사람살기에 적당치 못하게 되어있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사 이러한 명령을 발하신듯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명령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하고 있었다.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다윗은 이 명령을 가리켜 '주의 우레소리'라고 칭하였던 것이다(7절). 그동안 정해진 위치를 잘 모르던 물은 주의 견책을 인하여 분별력을 얻고 '도망하며 빨리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다른 구절에서도 찾아볼수 있다(77: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였나이다.' 7절도 결국 물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했다는 내용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견책하시니 물이 비켜나고 뭍이 드러났던 것이다.
② 물을 그 경계안에 가두어 두셨다(9절). 이로써 땅위의 물은 정해진 경계를 벗어날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는 물이 '다시 돌아와 땅을 덮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Ⅱ. 여호와의 은혜를 노래함 104:10-18
(1)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생물을 위하여 맑고 신선한 물을 허락해주셨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10절). 그후에 '산 사이에' 있는 시내를 따라 유유히 흘러가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시내를 이루어 흐르는동안에 비를 내리사 풍족한 물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물을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먹을 곡식과 가축은 물론이려니와 '들의 각짐승에게'도 필요한만큼의 물을 허락하셨다(11절). 즉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살아갈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2) 이외에도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의 소용에 따라 필요한 양식을 마련해 주신다(13절).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여기서 누각이라 함은 땅의 소산을 풍성케하는 비구름의 저장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앞서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3절)라는 구절에 나오는 용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아무튼 주의 행사와 결과가 땅에 풍족하다는 사실은 인류를 위해 크게 은혜가 되는 일이었다. 이로써 세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가축이 먹을 풀을 땅으로부터 나게 하셨다. 물론 이 풀로 연명할수 없는 짐승들에게는 따로 먹이가 될만한 작은 동물들을 마련해주셨다. 한편 사람을 위해서는 각종 채소와 포도주, 기름, 양식을 넉넉히 허락하셨다(15절). 이러한 점에서는 사람도 짐승과 비슷한 면을 지녔다고 생각할수 있다. 결국 가축을 먹일 풀과 사람의 양식인 곡식을 자라게하는 땅은 다같은 것이므로 이같은 생각을 할수도 있다는 뜻이다.
2)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가축과 짐승에게 먹이를 마련해주실뿐만 아니라 각종 식물이 필요로하는 양분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다(16절).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이 구절은 인류의 발길이 닿지않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크는 나무도, 예쁘게 다듬어 놓은 공원이나 정원에 서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수목에 못지않게 잘 자라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즉 여호와의 나무는 늘 '우택에 흡족'하여서 양분이 부족하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레바논의 백향목도 땅에서 필요한만큼의 양분을 공급받을수 있기때문에 크고 아름답게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그의 심으신' 나무에 양분을 충분히 공급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우리는 이 구절을 여호와께서 심으셨고 그의 포도원에서 자라는 의의나무에 그대로 적용해 볼수 있다. 의의나무는 하나님이 심으신 것으로서 그 섭리하심을 따라 우택에 흡족함을 누리게 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92:13).
(3) 하나님께서는 땅위의 모든 생물이 알맞은 거처를 가질수 있도록 돌보아주셨다. 먼저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처소를 마련할수 있도록 분별력을 허락하셨으며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가축을 위해 우리를 지어주게 하셨다. 한편 그외의 다른 피조물에게는 친히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셨던 것이다.
1) 우선 공중의 새를 예로 들수 있다. 새들은 본능적으로 강이 가까운 관목덤불속에 둥지를 틀게 마련이다(12절).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이와같이 새들은 각기 타고난 능력을 따라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섭리로 돌보아주심을 크게 송축함으로써 감사를 모르고 입을 다물었던 인간을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결국 공중의 새도 '천부께서 기르시는' 것이다(마 6:26). 그러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안식할 곳이 부족했던 일은 단한번도 없었다. 본문에서는 많은 새중에서도 특별히 학을 들어 설명해 놓았다. 학은 높이 자란 잣나무로 집을 삼아 거처한다고 하였다.
2) 그외에 조그마한 짐승들을 위해서도 알맞게 거할 곳을 주셨다(18절). 예를들어 '산양'은 본능적으로 '높은 산'을 찾아 몸을 숨기며 아무힘도 없는 '너구리'는 바위를 피난처로 삼는다. 이곳에 숨으면 먹이를 찾는 맹수의 발톱을 피할수 있기때문에 그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보잘것없는 하등 동물에게도 필요한 음식과 처소를 마련해주시거늘 하물며 사랑하는 백성들이 거처할 처소와 피난처를 허락하시지 않겠는가.
Ⅲ. 천하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104:19-30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1) 먼저 낮과 밤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때를따라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 이방인들은 오래전부터 해와 달을 신으로 섬겨왔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모두 참하나님이신 여호와의 피조물로 그 명하심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19절).
1) 저녁이 되면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와 만물이 휴식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20절).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흑암은 비록 어두운 것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며 낮에 떠오르는 태양의 밝기를 돋보이게 하는 구실도 한다. 밤이 되어 흑암이 드리우면 비교적 안전해지기 때문에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와' 먹이를 찾을뿐만 아니라 낮에는 감히 할수 없었던 일을 하는 것이다.
2) 반면 아침에는 밝은 태양이 떠올라 사람이 그날에 정한 일을 할수 있도록 도와준다(22,23절). 그렇지만 들짐승들은 "해가 돋으면" 각기 제 '굴혈'을 찾아 쉬면서 다시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린다('해는 그 지는 것'과 아울러 다시 떠오르게 되리라는 점을 알고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린다). 해가 돋아 사방이 밝아지면 온갖 들짐승이 두려워하며 물러가서 굴혈에 눕는데 반하여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는 영장으로 담대하게 세상에 나와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이다.
(2) 넓은 바다속에 무수히 많은 생물이 살고있다는 사실로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한다(25,26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함'과 같이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속에 생물이 무수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의 경계를 만드사 바다의 위치를 정해주셨다. 그리고 바다로하여금 각종 어패류의 저장소가 되게하셨으며 배가 다니는 항로로 유용하게 쓰이도록 해주셨다. 이것으로 볼때 하나님께서는 쓸데없이 바다를 만드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바다가 육지보다도 유용하게 쓰인다고 할수 있을정도이다.
(3)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의 소용대로 때를 따라 식물을 주셨으니 이 점을 찬양해야 한다(27,28절). 이 땅위의 피조물은 모두 넉넉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있다. 주께서 주신 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28절).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돌보아주신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주시기를 바라나이다(27절). 땅위의 피조물은 예외없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능적 충동을 따라 그 정하신때에 적절한 식물을 구한다는 것이다.
(4)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로서 절대적인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한다.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다스리시기때문에 매일 땅위의 생물이 말라 없어져도 그 종이 완전히 멸절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흙으로 돌아가나이다(29절). 위로 올라가는 인생의 혼뿐만 아니라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혼까지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다(참조. 전 3:21-역주). 비록 피조물의 한세대가 사라진다해도 또다른 세대가 오며 하나님께서는 필요할때마다 새로운 개체를 창조하신다. 이렇게 새로운 것이 옛것을 대치하는 사실은 끊임없는 창조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지면은 태양이 한번 떠오를때마다 새로워지며(새로 돋는 해는 매일 아침 지면을 아름답게 해준다) 한해에 한번씩 소산을 냄으로써 새로워질뿐 아니라 봄이 되면 겨울과는 완전히 달리, 새롭게 풍요로와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던 다윗은 갑자기 주의 행사가 놀랍고 신기하다는 심경을 토로한다(24절).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Ⅳ.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권고 104:31-35
본문은 다윗이 묵상을 마치면서 결론적으로 기술해 놓은 내용이다.
(1) 다윗은 먼저 찬양하였다(31절).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의 사역이 세상끝날때까지 지속되리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수많은 성도와 천사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고 노래하는 가운데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영광은 때가 차면 시들게 마련이나 하나님의 영광은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다.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31절). 본시 사람이 일생동안 걸어온 행적을 돌이켜보면 기뻐할수 없는 일이 많이 나오는 법이다. 이런 일을 기억할때에는 누구나 불쾌하다는 감정과 아울러 다시는 그렇게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지혜로 하시기때문에 언제든지 '자기 행사로인하여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였다. 저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신즉 연기가 발하도다. 일찍이 시내산이 흔들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눈길이 닿은 땅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진동한다. 다만 에트나(Etna)산과 같이 큰화산의 분화구가 열려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은 권능의 하나님께서 목이 곧아 겸손을 모르는 무리로인하여 진노하신 증거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시 90:11). 따라서 그 진노를 막을 자가 있을리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생명을 얻고 그 도우심에 힘입어 살아간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에만 생명을 누릴수 있으므로 땅위에 머물러 있는한 마땅히 주 여호와를 찬양하여야 한다. 또한 육신의 생명이 끝나 이땅을 떠나게 될때에는 더좋은 세상을 만나 즐거운 삶을 누리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어야 한다. 즉 이세상을 떠나면 반가운 무리와 만나 더좋은 방법으로 여호와를 찬양케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한다는 뜻이다.
(2) 이어서 다윗은 즐거워하였다(34절).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다윗과 같이 시간을 정해놓고 빠짐없이 하나님을 묵상하다보면 마음에 큰감동을 받게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가상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여호와로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큰기쁨이며 그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몹시 즐거운 경험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여호와로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안에서 기뻐할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악한 자들을 통해 무섭게 저주하였다(35절).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맞서 완악한 마음을 품은 자는 결단코 번영할수 없다.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는 날, 믿는 자들이 소망하는대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세상이 오게된다. 그날이 이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하고 노래하게될 것이다. 이 노래는 온마음과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뜻이다. 또한 '할렐루야'로 노래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즐거이 부를 것이다. 할렐루야라는 표현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였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핵심
104:1-35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위를 찬양하는 시편이다.
피조세계의 풍성함(104:19,24)
창조된 세상만물은 놀라울정도로 다양한 식물과 동물,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다양함속에서 정교한 규칙성도 발견된다. 이 모든 것을 우연의 소산으로 생각하기란 힘들다. 바꾸어 말하면, 완전한 지성을 갖추고 또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지닌 어떤 절대자가 주도면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이 모두를 창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재능, 다채롭고 풍요로운 대자연을 통해 창조주의 손길과 지혜를 묵상해 보자.
#묵상
주가 두른 빛 ( 104:2 )
주가 두른 빛이란 모든 빛의 근원이 되는 빛을 의미합니다. 이는 태양빛과 구별되며, 오히려 태양 빛의 근원이 됩니다. 따라서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투영된 참빛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 빛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보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길 ( 104:10-35 )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준수하며(출20:6), 의롭게 행하고 정직하며(잠14:9), 겸손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행4:33), 죄를 회개하며 주께 나아가고(히4:16), 하나님을 경외하며(시33:18), 주를 알고 인자하심을 사모하며(시33:22), 하나님앞에 거하고(시61:7), 선을 행하고(잠14:22), 기도하며 주를 의뢰해야 합니다(시32:10).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호의와 복을 의미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로에 의한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깨달을수 있는 하나님 ( 104:20-24 )
대자연의 일반적인 순리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배웠다고 증거합니다. 때문에 시인은 자연의 오묘한 순리를 경이롭게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찬송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는 일반 계시안에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을 배울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앞에 떨수밖에 없는 이유 ( 104:30-35 )
세상만물이 하나님앞에서 떨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 모든만물이 주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생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았고 땅은 언제든 소멸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이같은 권능으로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만물은 주앞에서 떨수밖에 없고 경외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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