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함 104:1-9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에 몰두하고자 할때에는 먼저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아야' 한다(사 64:7). 본문에서 다윗은 이러한 태도를 잘 표현해 놓았다.
(1) 우선 다윗은 거룩한 영광으로 빛나는 천상의 세계를 우러러보면서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원래 인간은 천상의 영광을 볼수 없는 존재이나 다윗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말할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감에 젖어 묵상을 시작하였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이 구절은 왕되신 하나님께서 여러면으로 광대하게 나타나신다는 것을 뜻한다.
1) 본래 왕위에 오른 자들은 입는 옷에서부터 남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옷은 어떤 것인가?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1절).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2절). 하나님은 빛에 거하시고(딤전 6:16), 빛으로 옷입으시는 분이다.
2) 또한 왕이 거하는 궁궐이나 누각도 여느집과 다르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궁궐이나 누각은 어떠한가? 주께서...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2절). 태초에 궁창을 만드실때 이미 이렇게 해두셨던 것이다. 히브리어의 궁창이란 명칭도 "넓게 펴다" 혹은 "뻗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어휘에 그 유래를 두고있다(창 1:7). 원래 하나님께서는 '빛을 입으신' 분이지만 이를 가까이 할수 없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사 캄캄한데 계시며 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임재하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한편 그 누각의 광대함은 보는이로 하여금 하늘과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고 높으신 분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공기와 물은 본시 유동적인 물체이나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일정한 공간안에서는 마치 들보와 서까래를 받친 누각처럼 견고하고 단단하게 서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몸소 임재하실 공간을 든든히 세워두신 하나님은 얼마나 귀하고 높으신 분인가.
3) 한나라의 왕이 도성에 들어올때에는 훌륭한 말들이 끄는 사륜마차를 탐으로써 그의 위엄을 높이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구름을 수레삼아 시내산에 임하사 율법을 주셨던 일이 있다. 또한 다볼산위에 이르러 말씀을 선포하실때에도 구름을 타고 오셨다(마 17:5).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람날개로' 다니신다(이 말은, 하나님께서 조용하나 당당하게 다니신다는 의미이다).
4) 왕은 언제나 수종드는 사람을 거느리고 다니는 법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사' 그 위엄을 나타내셨던 것이다(4절).
(2) 이제 다윗은 눈을 돌려 땅위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찬양하고 있다.
1) 그는 먼저 '땅의 기초를 두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송축하였다(5절).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땅을 공간에 다셨으나'(욥 26:7) 이 땅은 마치 견고한 토대위에 세워진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인류의 죄로 말미암아 위기를 겪은 일도 있었고 지옥의 권세가 그 기초를 뒤흔들어 놓으려하기도 했으나 하나님께서 '영원히 요동치않게' 하셨으므로 세상 끝날이 오고 새세상이 올때에도 땅은 견고히 서있을 것이다.
2)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놓으신 점을 찬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물도 소유하고 계시기때문에 능히 이 일을 하실수 있었다.
①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은 물의 경계를 정하여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며 그대로 되니라"(창 1:9). 이와같은 명령을 가리켜 다윗은 '주의 견책'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여기서 견책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땅이 물로 덮여 사람살기에 적당치 못하게 되어있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사 이러한 명령을 발하신듯한 인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명령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하고 있었다.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 다윗은 이 명령을 가리켜 '주의 우레소리'라고 칭하였던 것이다(7절). 그동안 정해진 위치를 잘 모르던 물은 주의 견책을 인하여 분별력을 얻고 '도망하며 빨리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다른 구절에서도 찾아볼수 있다(77: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였나이다.' 7절도 결국 물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했다는 내용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견책하시니 물이 비켜나고 뭍이 드러났던 것이다.
② 물을 그 경계안에 가두어 두셨다(9절). 이로써 땅위의 물은 정해진 경계를 벗어날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는 물이 '다시 돌아와 땅을 덮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Ⅱ. 여호와의 은혜를 노래함 104:10-18
(1)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생물을 위하여 맑고 신선한 물을 허락해주셨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10절). 그후에 '산 사이에' 있는 시내를 따라 유유히 흘러가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시내를 이루어 흐르는동안에 비를 내리사 풍족한 물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물을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먹을 곡식과 가축은 물론이려니와 '들의 각짐승에게'도 필요한만큼의 물을 허락하셨다(11절). 즉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살아갈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신 것이다.
(2) 이외에도 하나님은 사람과 짐승의 소용에 따라 필요한 양식을 마련해 주신다(13절).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여기서 누각이라 함은 땅의 소산을 풍성케하는 비구름의 저장소를 말하는 것으로서 앞서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3절)라는 구절에 나오는 용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아무튼 주의 행사와 결과가 땅에 풍족하다는 사실은 인류를 위해 크게 은혜가 되는 일이었다. 이로써 세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가축이 먹을 풀을 땅으로부터 나게 하셨다. 물론 이 풀로 연명할수 없는 짐승들에게는 따로 먹이가 될만한 작은 동물들을 마련해주셨다. 한편 사람을 위해서는 각종 채소와 포도주, 기름, 양식을 넉넉히 허락하셨다(15절). 이러한 점에서는 사람도 짐승과 비슷한 면을 지녔다고 생각할수 있다. 결국 가축을 먹일 풀과 사람의 양식인 곡식을 자라게하는 땅은 다같은 것이므로 이같은 생각을 할수도 있다는 뜻이다.
2)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가축과 짐승에게 먹이를 마련해주실뿐만 아니라 각종 식물이 필요로하는 양분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다(16절).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이 구절은 인류의 발길이 닿지않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크는 나무도, 예쁘게 다듬어 놓은 공원이나 정원에 서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수목에 못지않게 잘 자라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즉 여호와의 나무는 늘 '우택에 흡족'하여서 양분이 부족하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레바논의 백향목도 땅에서 필요한만큼의 양분을 공급받을수 있기때문에 크고 아름답게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그의 심으신' 나무에 양분을 충분히 공급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우리는 이 구절을 여호와께서 심으셨고 그의 포도원에서 자라는 의의나무에 그대로 적용해 볼수 있다. 의의나무는 하나님이 심으신 것으로서 그 섭리하심을 따라 우택에 흡족함을 누리게 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92:13).
(3) 하나님께서는 땅위의 모든 생물이 알맞은 거처를 가질수 있도록 돌보아주셨다. 먼저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의 처소를 마련할수 있도록 분별력을 허락하셨으며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가축을 위해 우리를 지어주게 하셨다. 한편 그외의 다른 피조물에게는 친히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셨던 것이다.
1) 우선 공중의 새를 예로 들수 있다. 새들은 본능적으로 강이 가까운 관목덤불속에 둥지를 틀게 마련이다(12절).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이와같이 새들은 각기 타고난 능력을 따라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섭리로 돌보아주심을 크게 송축함으로써 감사를 모르고 입을 다물었던 인간을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결국 공중의 새도 '천부께서 기르시는' 것이다(마 6:26). 그러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안식할 곳이 부족했던 일은 단한번도 없었다. 본문에서는 많은 새중에서도 특별히 학을 들어 설명해 놓았다. 학은 높이 자란 잣나무로 집을 삼아 거처한다고 하였다.
2) 그외에 조그마한 짐승들을 위해서도 알맞게 거할 곳을 주셨다(18절). 예를들어 '산양'은 본능적으로 '높은 산'을 찾아 몸을 숨기며 아무힘도 없는 '너구리'는 바위를 피난처로 삼는다. 이곳에 숨으면 먹이를 찾는 맹수의 발톱을 피할수 있기때문에 그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보잘것없는 하등 동물에게도 필요한 음식과 처소를 마련해주시거늘 하물며 사랑하는 백성들이 거처할 처소와 피난처를 허락하시지 않겠는가.

Ⅲ. 천하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104:19-30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1) 먼저 낮과 밤의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때를따라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 이방인들은 오래전부터 해와 달을 신으로 섬겨왔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모두 참하나님이신 여호와의 피조물로 그 명하심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19절).
1) 저녁이 되면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와 만물이 휴식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20절).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흑암은 비록 어두운 것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며 낮에 떠오르는 태양의 밝기를 돋보이게 하는 구실도 한다. 밤이 되어 흑암이 드리우면 비교적 안전해지기 때문에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나와' 먹이를 찾을뿐만 아니라 낮에는 감히 할수 없었던 일을 하는 것이다.
2) 반면 아침에는 밝은 태양이 떠올라 사람이 그날에 정한 일을 할수 있도록 도와준다(22,23절). 그렇지만 들짐승들은 "해가 돋으면" 각기 제 '굴혈'을 찾아 쉬면서 다시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린다('해는 그 지는 것'과 아울러 다시 떠오르게 되리라는 점을 알고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린다). 해가 돋아 사방이 밝아지면 온갖 들짐승이 두려워하며 물러가서 굴혈에 눕는데 반하여 사람은 만물을 다스리는 영장으로 담대하게 세상에 나와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이다.
(2) 넓은 바다속에 무수히 많은 생물이 살고있다는 사실로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한다(25,26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함'과 같이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속에 생물이 무수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물의 경계를 만드사 바다의 위치를 정해주셨다. 그리고 바다로하여금 각종 어패류의 저장소가 되게하셨으며 배가 다니는 항로로 유용하게 쓰이도록 해주셨다. 이것으로 볼때 하나님께서는 쓸데없이 바다를 만드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바다가 육지보다도 유용하게 쓰인다고 할수 있을정도이다.
(3)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의 소용대로 때를 따라 식물을 주셨으니 이 점을 찬양해야 한다(27,28절). 이 땅위의 피조물은 모두 넉넉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있다. 주께서 주신 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28절).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돌보아주신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주시기를 바라나이다(27절). 땅위의 피조물은 예외없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능적 충동을 따라 그 정하신때에 적절한 식물을 구한다는 것이다.
(4)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로서 절대적인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한다. 하나님께서 천하만물을 다스리시기때문에 매일 땅위의 생물이 말라 없어져도 그 종이 완전히 멸절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흙으로 돌아가나이다(29절). 위로 올라가는 인생의 혼뿐만 아니라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혼까지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다(참조. 전 3:21-역주). 비록 피조물의 한세대가 사라진다해도 또다른 세대가 오며 하나님께서는 필요할때마다 새로운 개체를 창조하신다. 이렇게 새로운 것이 옛것을 대치하는 사실은 끊임없는 창조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지면은 태양이 한번 떠오를때마다 새로워지며(새로 돋는 해는 매일 아침 지면을 아름답게 해준다) 한해에 한번씩 소산을 냄으로써 새로워질뿐 아니라 봄이 되면 겨울과는 완전히 달리, 새롭게 풍요로와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던 다윗은 갑자기 주의 행사가 놀랍고 신기하다는 심경을 토로한다(24절).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Ⅳ.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권고 104:31-35
본문은 다윗이 묵상을 마치면서 결론적으로 기술해 놓은 내용이다.
(1) 다윗은 먼저 찬양하였다(31절).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섭리와 창조의 사역이 세상끝날때까지 지속되리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수많은 성도와 천사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고 노래하는 가운데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영광은 때가 차면 시들게 마련이나 하나님의 영광은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다.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31절). 본시 사람이 일생동안 걸어온 행적을 돌이켜보면 기뻐할수 없는 일이 많이 나오는 법이다. 이런 일을 기억할때에는 누구나 불쾌하다는 감정과 아울러 다시는 그렇게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지혜로 하시기때문에 언제든지 '자기 행사로인하여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다윗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였다. 저가 땅을 보신즉 땅이 진동하며 산들에 접촉하신즉 연기가 발하도다. 일찍이 시내산이 흔들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눈길이 닿은 땅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진동한다. 다만 에트나(Etna)산과 같이 큰화산의 분화구가 열려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는 것은 권능의 하나님께서 목이 곧아 겸손을 모르는 무리로인하여 진노하신 증거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시 90:11). 따라서 그 진노를 막을 자가 있을리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생명을 얻고 그 도우심에 힘입어 살아간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동안에만 생명을 누릴수 있으므로 땅위에 머물러 있는한 마땅히 주 여호와를 찬양하여야 한다. 또한 육신의 생명이 끝나 이땅을 떠나게 될때에는 더좋은 세상을 만나 즐거운 삶을 누리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어야 한다. 즉 이세상을 떠나면 반가운 무리와 만나 더좋은 방법으로 여호와를 찬양케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한다는 뜻이다.
(2) 이어서 다윗은 즐거워하였다(34절).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다윗과 같이 시간을 정해놓고 빠짐없이 하나님을 묵상하다보면 마음에 큰감동을 받게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가상히 여김을 받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나는 여호와로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큰기쁨이며 그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몹시 즐거운 경험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여호와로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안에서 기뻐할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악한 자들을 통해 무섭게 저주하였다(35절).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맞서 완악한 마음을 품은 자는 결단코 번영할수 없다.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는 날, 믿는 자들이 소망하는대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세상이 오게된다. 그날이 이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하고 노래하게될 것이다. 이 노래는 온마음과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뜻이다. 또한 '할렐루야'로 노래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즐거이 부를 것이다. 할렐루야라는 표현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였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 핵심
104:1-35
창조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위를 찬양하는 시편이다.
피조세계의 풍성함(104:19,24)
창조된 세상만물은 놀라울정도로 다양한 식물과 동물,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다양함속에서 정교한 규칙성도 발견된다. 이 모든 것을 우연의 소산으로 생각하기란 힘들다. 바꾸어 말하면, 완전한 지성을 갖추고 또 무한한 능력과 지혜를 지닌 어떤 절대자가 주도면밀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이 모두를 창조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재능, 다채롭고 풍요로운 대자연을 통해 창조주의 손길과 지혜를 묵상해 보자.

#묵상
주가 두른 빛 ( 104:2 )
주가 두른 빛이란 모든 빛의 근원이 되는 빛을 의미합니다. 이는 태양빛과 구별되며, 오히려 태양 빛의 근원이 됩니다. 따라서 이 빛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투영된 참빛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 빛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보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길 ( 104:10-35 )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준수하며(출20:6), 의롭게 행하고 정직하며(잠14:9), 겸손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행4:33), 죄를 회개하며 주께 나아가고(히4:16), 하나님을 경외하며(시33:18), 주를 알고 인자하심을 사모하며(시33:22), 하나님앞에 거하고(시61:7), 선을 행하고(잠14:22), 기도하며 주를 의뢰해야 합니다(시32:10).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호의와 복을 의미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로에 의한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깨달을수 있는 하나님 ( 104:20-24 )
대자연의 일반적인 순리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배웠다고 증거합니다. 때문에 시인은 자연의 오묘한 순리를 경이롭게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찬송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는 일반 계시안에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을 배울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앞에 떨수밖에 없는 이유 ( 104:30-35 )
세상만물이 하나님앞에서 떨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 모든만물이 주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생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았고 땅은 언제든 소멸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이같은 권능으로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만물은 주앞에서 떨수밖에 없고 경외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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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려는 다짐 103:1-5
다윗은 여기에서 자기의 영혼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1)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자신을 어떻게 격려하고 있는가(1,2절). 찬양을 받아야할 대상은 바로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의 영혼과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다. 그 일은 우리의 깊은 곳으로부터 전심을 다하여 해야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도 충분한 것은 아니다.
(2) 그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위하여 얼마나 풍부한 소재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는가. "내 영혼아 오라, 와서 하나님이 네게 행한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3절). "그는 네 모든 죄를 전에도 용서해주셨고 또 지금도 용서해주고 계시다." 이것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로하여금 선한 일을 못하게 하는 죄가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함 받음으로 우리가 죄의 길로부터 돌아서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전히 범죄하고 회개함을 거듭함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여전히 우리를 용서해주고 계시다.
2)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우리는 매우 중대한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해줌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구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주실때 병도 함께 고쳐주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완벽하여 반쯤하고 그만두시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자비로써 우리들의 죄를 없애주시고, 새롭게하는 은혜로써 죄의 권세를 깨뜨리신다.
3) "그가 모든 위험으로부터 너를 구해주셨도다." 영혼을 구속해주는 것은 귀한 은혜가 아닐수 없다.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할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구속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즉 우리를 영원히 구속해주신 하나님께 더많은 빚을 지고있는 것이다(참조. 욥 33:24,28).
4) "그는 너를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구해주셨을뿐 아니라 영광과 기쁨과 긴생명을 누리게함으로써 진정으로 완전한 행복을 주셨도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불쌍한 영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많이 받는 것보다 더존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장수하리라는 기대감과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독수리는 장수하는 날짐승이다. 자연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독수리는 늙으면 모든 깃털을 새롭게 간다(독수리는 실제로 매년 털가는 시기가 되면 모든 깃털을 간다). 즉 새깃털이 돋아나는 것을 다시 젊어지는 것으로 본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의 은혜와 위로를 통하여, 그 자비하심을 통하여 자기의 백성들을 부패한 상태로부터 다시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기쁨을 채워주실때 그들은 다시 '소년때를 회복'하게될 것이다(욥 33:25).

Ⅱ.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 103:6-18
(1)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신다(6절).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2) 그는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푸신다.
1) 그는 자기 백성에게 그 자신과 그의 은혜를 나타내신다(7절). 여호와께서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가 베풀어주시는 가장 큰은혜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드러내심으로써 우리들을 자기에게로 나올수 있도록 회복해주시며, 또 우리에게 자기에 관한 지식을 제공해줌으로써 모든 선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2) 그는 결코 우리에게 엄격하거나 혹독하게 대하지않고 항상 긍휼이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를 용서해주고자 하신다.
① 긍휼을 베푸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다(8절).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그는 쉽사리 노하지도 아니하신다(8절). 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심하게 노를 격발시키는 자들에게도 오래참으시고 처벌을 늦추신다. 이는 회개의 여지를 남겨두시고 그의 법을 신속하게 수행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죄를 범할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와 우리의 양심의 가책을 통해 우리를 징계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자신의 진노를 나타내신다할지라도, 그는 우리로하여금 항상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속박의 영을 보내신후에 다시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영을 보내주실 것이다.
②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10절). 그는 우리가 받아야할 심판을 내리지않으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케하신다'(롬 2:4).
3)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즉 그는 나 개인의 '죄악'(3절)뿐 아니라 '우리 죄과'(12절)까지도 용서해주셨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11절). 하늘이 너무 높으면 땅은 그 하늘의 광대함에 비하여 한점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도 그를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의 공로보다 훨씬더 높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에 비추어 볼때 그들의 공로는 전혀 비교의 대상조차 못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의 긍휼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증거로써 그는 늘 용서해주시고자 하신다(12절).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결코 정죄를 받거나 심판을 받지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철저하게 우리의 죄를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용서해주실 것이다.
4) 그는 우리의 슬픔을 불쌍하게 여기셨다(13,14절).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아버지가 되셔서 그들을 자기의 자녀로 인정해주시고, 또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아버지는 자기의 자녀가 무지할때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교훈을 가르쳐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완악한 마음을 품고있을때에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행동을 참아주신다. 그는 또한 그들이 병에 걸렸을때에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신다(사 66:13). 그뿐 아니라 그는 그들이 넘어졌을때에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사 그들을 도와서 일으켜주신다. 심지어는 그들이 자신을 노하게 했을때조차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사 그들이 그에게 순종하시기만 하면 그들을 용서해주신다. 그리고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때에도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신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즉 그는 친히 흙으로부터 인간을 만드셨기때문에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고' 계시다.
5) 그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덧없는 인생을 구원해주셨다(15-18절). '인생은 그날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과 같이 잠깐동안 살다가 곧 시들어버린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누린다해도 인간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비록 꽃이 풀보다는 좀더 나을지는 몰라도 그것 역시 풀과 함께 시들어버리고 말 것이다. 정원에서 자라나는 꽃은 보통 다른 꽃보다 더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여겨진다. 그꽃 역시 특성에 따라 시들어버리고 말겠지만 정원의 벽과 정원사의 보호를 받아 다른 꽃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들판에서 자라나는 꽃은(본문에 인생과 비교되고 있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못하여 시들어버릴뿐만 아니라 찬바람을 쐬고 들짐승들에게 꺾이거나 밟히기 쉽다. 인생은 점차로 소멸되어갈뿐 아니라 그 기간에 수많은 사고를 당하기까지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고려하여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로하여금 스스로 이 점을 숙고하게 하시고 겸비케 하신다. 이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17,18절).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되기때문에 인간을 현재와 같은 상태로 계속 유지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교훈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주어지는 유익을 향유하게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된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지상에서 누리던 생명보다 더오래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고민할 필요가 전혀없다. 왜냐하면 죽음이 그들이 누릴 축복을 결코 축소시키거나 침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생명보다 더오래 지속되기때문에 생명보다 더좋은 것이다.

Ⅲ.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는 권고 103:19-22
(1)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에 대한 교훈이 주어진다(19절). 그는 자신이 특별히 선택한 자기 백성들의 행복을 약속과 언약으로 보증해주셨다. 그러나 동시에 일반적인 섭리를 통해서 인류와 세계의 질서도 보증해주고 계시다. 여호와께서는 그 자신의 보좌 곧 영광의 보좌인 동시에 통치의 보좌위에 계시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있고 하나님께서 그곳에다 자기 법정을 두시며 그곳에서 우리에게 지시하신다해도 '그 정권으로(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신다.' 그는 이세상의 모든 거민들과 모든 사건들을 다 아신다. 여호와께서...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는도다.
(2) 이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우주적인 찬양을 드려야할 의무가 있음을 추론할수 있다. 만일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경의를 표해야할 것이다.
1) 거룩한 천군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20,21절). 그러나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데 있어서 우리로부터 자극을 받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들이 계속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이 여기에서 이와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가 천사들도 경배해야 할만큼 하나님을 높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도 그에게 찬양을 드려야 한다(22절). 다시말해서 세계 도처에 퍼져있는 사람의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그뿐 아니라 인간보다 열등한 피조물들 역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이는 그들도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못한다해도 그들의 외적인 모습을 통해서나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145:10). 다윗은 이 시편 서두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성축하라'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이와같이 뛰어난 찬양을 하고나서 "내 영혼아 네가 여호와를 송축했으니 이제 앉아서 쉬어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더욱더 송축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 핵심
103:1-22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체험한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늘의 천사와 땅의 모든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촉구하는 시편이다.

# 묵상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은혜 ( 103:1-22 )
본 시는 시인자신과 하나님의 언약백성들, 그리고 모든 창조세계에 베풀어진 은택들로인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은혜의 영원성을 인간의 유한성과 비교하여 영원까지 이르는 복이라 말하며, 하나님 은혜의 보편성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대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 하나님 찬양하기를 쉬지않아야 하고 자신이 체험한 영적진리를 여러사람과 나누어 광범위한 공동체적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 송축방법 ( 103:1, 2 )
본 시는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는 시입니다. 다윗은 영혼과 몸과 몸속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했습니다. 영혼은 한사람의 전부를 나타내는 전인격을 그리고 몸과 몸속의 것들은 구체적으로 지체와 내장을 의미합니다. 이는 결국 여호와를 찬양할때 전인격과 모든 것들이 총동원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 103:8-11 )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와 인자가 풍부한 분이시고, 진노와 경책을 더디하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죄를 사하시는 긍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와 자비와 인내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소망이 되는 하늘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은혜주신 주님을 항상 감사찬송하여야 하겠습니다.
들의 꽃과 같은 인생 ( 103:15-18 )
본문에서 시인은 인생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인생은 풀과 같고 들의 꽃과 같이 덧없이 사라져버리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그의 자손에게 영원히 미칩니다. 따라서 성도는 어떤경우에서든지 자기를 내세우는 자랑을 하지말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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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심한 고통에 대한 탄원 102:1-11
이 시편의 표제는 '곤고한 자의 기도'이다. 따라서 이 본문을 통하여 언급될 내용도 고난을 당하는 자의 손에 들린 기도이다.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그들의 손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손에 심령을 담아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의 형편과 심령이 곤고할때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앞에 우리의 불평을 토로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하여금 자신과 자유롭게 교제하도록 허락하셨으며 또 우리가 그앞에서 자유롭게 말할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또한 고난을 당하는 자가 그 슬픔을 겸손하게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고난의 짐을 경감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암시해 준다.
(1) 시편 기자는 자신의 고난과 그 고난중에 드리는 자기의 기도에 주의를 기울여주시도록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하고 있다(1,2절).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뿐 아니라 아울러 우리의 영혼도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주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도 말할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주님의 모습을 드러내주소서. 곧 내 기도를 들으실뿐 아니라 기도의 응답도 해주소서. 또한 내가 필요로하며 내가 구하고 있는 구원을 허락해주소서. 그리고 내가 부르짖을때에 응답해주소서."
(2) 그는 자기가 당하고있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생긴 침울한 상태를 비통하게 하소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몸까지 쇠약해졌다. 번영과 기쁨을 누리면 뼈가 윤택해지는 것처럼(잠 15:30), 큰고통과 슬픔을 당하면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내 뼈가 냉과리같이 탔나이다(3절).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5절). 내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4절). 내가 풀의 쇠잔함같으니이다(11절). 여기에서 '내가 풀의 쇠잔함같다'고 한말은 "내가 타오르는듯한 고통의 열기로 말라 죽게되었다"는 뜻이다. 그는 너무도 자기의 고난을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에 음식을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4절). 그것은 그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아무런 식욕도 생기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고독에 잠겨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떠났으며 그와 대면하는 것까지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6,7절). "나는 광야에서 쓸쓸하게 부르짖는 당아새같고 황폐한 건물속에 살기를 좋아하는 부엉이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위에 외로운 참새같이 되었나이다. 나는 다락방에 거하면서 내 고통을 깊이 생각하며 나 자신을 한탄하는 것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나이다." 친구들이 그에게서 떠나가자 원수들이 그를 대적하기 시작했다(8절). 친구들이 그를 떠나기전에는 그 원수들이 그에게 접근할수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에게 화살을 쏘거나 악담을 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노로인하여 당한 고통때문에 금식을 하면서 한탄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고난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난의 원인으로서 그가 염려하던 하나님의 진노였다.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그의 날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그날들은 '기울어지는 그림자' 곧 저녁의 어둠과 같이 된다. 이 모든 내용은 고난을 받는 개개인의 기도로도 어울리나 하나님의 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묘사하는 것으로도 생각될수 있다. 다시말해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교회가 당하고있는 고난을 동정하면서 공적인 슬픔을 자기자신의 슬픔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적절하신 구원 102:12-22
앞에서 언급된 불평들을 상쇄시킬만큼 매우 크고 귀한 위로들이 여기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중에 빛이 일어나나니'(112:4).
(1) 우리는 죽을수밖에 없는 피조물들이며 우리의 관심과 위로도 소멸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변하지않는 하나님이시다(12절). "내 날은 그림자같아서 구제받을 도리가 전혀 없나이다. 밤이 결국 나에게 다가오리이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계셔서 그의 교회를 신실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소홀히하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할수 있다.
(2) 가련한 시온은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구원을 받게될 것이다(13절). 구원의 소망은 하나님의 선과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하나님은 교회를 구원하기위하여 때를 정해 놓으셨다. 곧 교회의 구원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로 정하시고, 그러므로 가장 선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리로 확고하게 세우신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날은 잊혀지거나 더이상 연기되지 않을 것이다. 시온, 즉 다윗성에 세워진 성전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시온에 대해 은혜를 베푸는 것은 16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다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다. '주의 종들'은 시온의 돌들이 비록 부서졌거나 흩어져있다 할지라도 그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 곧 시온의 폐물과 폐허도 '연휼히' 여긴다(14절). 성전이 황폐해졌을때라도 그 성전의 돌들은 새건물을 짓기위하여 보전되어야 한다. 그 사실로 용기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하여 그의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실때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할' 것이다. 곧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과거에 품었던 생각보다 더선한 생각을 하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너와 함께가리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시는 것을 우리가 보았기 때문이라"(슥 8:23).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그것을 위하여 기도한다.
(3)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가 경시되고 있거나 아무런 주목도 받지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재검토되고 큰격려를 받을 것이다(17절).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빈궁한 자들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자라는 관목같이 비천한 처지에 놓여 고난을 받고있지만 영적인 축복으로인하여 부유해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지 세상적으로 좋은 것들에 대해서 빈궁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천박하고 무지하며 무감각한 면과 기도할때 나타나는 우리의 많은 결점들을 생각할때,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서 멸시당하지는 않을까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의 결과가 생길 것으로 확신할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옹호를 받고있으며 율법이 아닌 은혜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장래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이것은 어느누구도 빈궁하다고해서 절망하지도 않고 또 기도의 응답을 즉시 못받았다는 이유로 자기의 기도가 잊혀졌다는 생각을 하지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결국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찬양하게될 것이다.
(4)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고 옥에 갇힌 자들은 죽이기로 정한 양처럼 보일지라도 그옥에서 풀려날 것이다(19,20절). 하나님께서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기 위하여 '그 높은 성소', 곧 '하늘'에서 하감하셨다. 하나님은 고난을 당하는 자기 백성들의 기도뿐 아니라 그들의 신음소리까지도 주시하신다. 우리는 베드로에게서 그 실례를 찾아볼수 있다(행 12:6). 만일 하나님께서 섭리를 통하여 자기의 이름을 선포하신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이 울려퍼지도록 그 섭리를 인정함으로써 그를 찬양해야 한다. 진정 하나님은 옥에 갇혔거나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던 백성들을 풀어주실 것이다. 이것은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장소인 시온에서 그의 이름을 선포하고 예루살렘에서 그를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22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이자(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귀환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열방으로부터 온 많은 사람들도 함께 여호와를 섬겼다(스 6:21). 그러나 훗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개종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더분명하게 깨달을수 있다. 그때 그리스도는 포로로 잡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셨고 옥에 갇힌 자들에게 그 옥문을 열어주셨다. 이는 그들로하여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연합하게될 복음교회에서 주의 이름을 선포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Ⅲ. 하나님의 영원성 102:23-28
(1) 바벨론 유수로 말미암아 뿌리째 뽑힐수밖에 없는 유대교회의 절박한 위험(23절) : 저가 내힘을 중도에 쇠약케하시며. 시편 기자는 이것을 자기의 일과 관련시켜 언급하고 있다. 신체의 병은 곧 우리의 힘을 중도에서 약화시키고 만다. 우리가 한창 시절에 쇠약해진다면 우리의 날수가 중도에 소멸되리라는 것외에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대부분 열심히 수고한 사람들은 힘이 쇠약해지고, 수고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날수가 줄어든다.
(2) 유대교회를 끊임없이 보존해달라는 기도(24절) :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이것은 고난받는 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곧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년에 우리를 데려가지 말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로하여금 그를 더 섬기고 하늘나라를 위하여 더 성숙해지도록 남겨두실 것이다.
(3) 약속된 메시야의 영원성을 통하여 이 기도를 강력히 주장하는 탄원(25-27절) : 사도바울도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다(히 1:10-12). 모든 것이 변하며 위험하다는 면에서 볼때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는 사실은 매우 위로가 된다.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주의 연대는 짧아질수 없다. 우리의 몸이 죽고 우리의 친구가 우리를 떠나간다는 사실에서 볼때,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고 또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실 경우 우리가 그안에서 영원한 위로를 얻는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지않을수 없다. 땅과 하늘, 우주와 그것의 충만함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부여받는다(25절). "주께서 옛적에 세워 두셨던 땅의 기초는 바다와 큰물위에 세워졌음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리이다. 그러므로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보다 훨씬더 오랫동안 지속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다시 폐하실 것이다(26,27절).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왜냐하면 주께서 세상을 창조했을때와 같이 전능하신 힘으로 그들을 변화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는 영존하시겠고... 주는 여상하시고. 하나님과 세상, 그리스도와 피조물은 서로가 불멸하는 인간의 영혼을 완전히 차지하려는 경쟁자들과 같다.
1) 피조물의 운명은 소멸되고 죽어간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우리가 없어지듯이 천지도 영속하지 못할 것이다. 하늘과 땅은 모두 '옷같이 낡을' 것이다. 주께서 그들을 의복같이 바꾸시면 그들은 바뀌어지되 새하늘과 새땅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하늘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배를 보라. 그는 그가 원하실때뿐 아니라 그가 원하시는대로 하늘과 땅을 변화시킬수 있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뒤바뀌는 것은 그들의 최종적인 변화를 알리는 확고한 전조들이다. 그때가 되면 하늘과 그 기한은 더이상 연장되지 않을 것이다.
2)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이시다.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그리스도는 약속하신바를 그대로 실행하는 분이시며, 그의 교회가 자유로왔을때나 속박당하였을때나 변함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 자신이 교회의 힘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한 그힘이 약해지거나 그날이 줄어들까봐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14:19).
(4)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28절) :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리스도께서 변함없으시기때문에 교회는 대대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께서 영원히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통해 교회의 몸이 되는 우리도 영원히 산다는 것을 추론할수 있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약하여 병에 걸리고 또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단 7:25)하려는 자들은 실패하게될 것이다.

# 핵심
102:1-28
포로생활을 하는 사람이 망국의 슬픔을 호소하며 국가의 회복을 열망하는 기도이다.

 

# 묵상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 ( 102:1 )
곤고한 자가 믿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분향단의 향처럼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됩니다(계8:3, 4). 시인은 뼈가 용광로에 타는듯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시인의 육신마저 쇠잔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영육간의 고통중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수 있습니다.
당아새와 부엉이의 비유 ( 102:6 )
시인이 자신을 당아새와 부엉이에 비유한 것은 당아새와 부엉이 모두 광야나 황무지의 한적한 곳에서 외롭게 사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고난받는 자신의 처지가 황무지에 거하는 새처럼 외롭고 비참하다는 것으로서 역사적으로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도는 어느곳에 있든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위로받고 힘을 얻어야할 것입니다(살후2:16).
창조로 비유된 해방 ( 102:18 )
포로에서의 해방을 창조에 비유한 이유는 포로에서 회복될 이스라엘 백성이 연단받아 새롭게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본 구절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그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교회는 새로 태어날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사탄으로부터 해방된 성도 또한 새롭게 창조된 백성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고후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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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다윗의 맹세 101:1-8
다윗은 여기에서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한 집안의 가장과 재판관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 이 시편의 주제(1절) :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다윗은 처음 왕위에 오른이후로 한편으로는 많은 책망과 고난을 받았지만 또한편으로는 놀라운 구원과 은혜도 많이 받았다. 따라서 이 말은 그가 이 많은 구원과 은혜에 대해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작용하는 그의 섭리들은 통상적으로 혼재한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자와 공의'로 다스림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공의를 양립하게하사 4월에 소나기와 햇빛을 주시듯 번갈아 내리신다. 우리는 번영을 누림으로써 웃게되든 고난을 당하여 눈물을 흘리게되든 상관없이 어떤처지에 놓이더라도 항상 거룩한 찬송을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할때 우리는 다윗이 말한 인자와 공의를 이해할수 있다. 이 시편을 통해 그는 자비를 베풀고 공정하게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한다. 가정에 임하는 축복이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2) 자기의 궁정에서 주의를 기울이며 양심적으로 행동하겠다는 다윗의 일반적인 결심(2절).
1) 그의 선한 목적 : 그는 규율에 따라 살고자 했다. 특히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는 덜드러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시선을 받게되는 자기의 '집안에서 행하기'를 원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키기로 결심했다.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2) 그의 선한 기도 :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오셔서 함께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자기의 집을 갖고있는 사람에게 매우 바람직스런 일이다. 다윗이 그가 기도했던대로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서 행동하자 여호와께서는 그와 함께 해주셨다.
(3) 아무런 악도 행하지 않으려는 결심(3절) :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이 말은 다시말해서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공익을 위하는 일외에는 어떤일도 하지 않겠나이다"라는 뜻이다.
(4) 악한 종들을 남겨두거나 사악한 자들을 채용하여 그 주변에 두지않겠다는 그의 결심 : 그는 극악한 자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으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반감을 품고있는 사람들에게 저지르는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다(4절).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즉 "방해하거나 완고하게 행동하기를 기뻐하는 마음은 사랑으로 결속되어야할 사회를 위하여 적합하지 않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지 아니하리라." "누구든지 자기의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는 자기의 평판을 실추시키지 않으려고 거짓 이야기를 꾸미고 퍼뜨리나 나는 나의 집안과 궁정에서 그를 추방시키리로다." 다윗은 자기에게 비위를 맞추는 자들을 승진시키려 하지않았다.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치 아니하리로다(5절). 다시말하면 "나는 승진하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을 참고 볼수 없노라. 왜냐하면 저희는 분명 선을 행하는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단지 저희 자신과 저희 가족만을 살찌게하는데 관심을 쏟을 것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여 싸우고 계시며 그것은 다윗도 마찬가지다. "거짓 행하는 자는 비록 교묘하게 내 집안으로 들어왔다해도 발견되는 즉시 내 집에서 머물지 못하게될 것이로다." 다윗은 그러한 사람들을 자기 수하의 관리로 삼으려하지 않았다.
(5) 자기의 휘하에 신뢰할수 있는 정직하고 선한 자들을 두겠다는 그의 결심(6절) : 내 눈이 이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라에서 할일은 정직한 사람들을 찾아 직책을 맡기는 것이며 또 직책을 맡는 사람중에서 더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승진시키는 것이다. 사울은 사람들을 고를때 외적인 아름다움을 보았지만(삼상 8:16) 다윗은 내적인 선을 보았다.
(6) 궁전뿐 아니라 도성과 왕국 전체를 개혁하려는 그의 결심(8절) : 그의 악한 관습과 악을 은폐시키는 행위를 개혁하는데 열성적으로 나서서 일했다. 그가 이러한 개혁을 통하여 노렸던 것은 그 자신의 지배권을 확립하여 나라를 화평케하는 것뿐 아니라 교회를 정결케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었다. 죄악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 핵심
101:1-8
하나님께 복종하며 구체적인 삶에서 거룩함을 좇으며 또한 국가내의 모든 악을 근절시키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하는 시편이다. 한마디로 통치이상을 노래하고 있다.

# 묵상
통치자의 자세 ( 101:1-8 )
국가적인 통치자는 모든 권세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겸손하게 따르며, 자신이 통치하는 공동체안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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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찬양과 기쁨에 대한 요구 100:1-5
이 시편만큼 '감사의 시'라는 표제와 잘어울리는 시편도 드물다. 시편 99편이 유대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를 기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면 시편 100편은 아마도 온땅에서 유대신앙을 갖게된 개종자들을 위하여 기록된것 같다.
(1)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강력한 권고 : 은밀한 예배나 가족예배와 관계없이 모든 사적인 예배 행위를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앞에 나아가며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그러나 특별히 공적인 예배를 드리게될 경우 우리는 그의 문을 지나서 그의 궁정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우리는 거룩한 기쁨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복음시대의 예배자들은 기쁨이 넘쳐야 한다. 우리는 기쁨의 노래뿐 아니라 찬양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사함으로 그문에 들어가며(4절).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것을 은혜로 여겨야 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례들을 제정해 주시고 또 우리가 그 율례들을 지킴으로써 계속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은혜로 여겨야 한다.
(2) 찬양을 드리는 일과 찬양을 드리게 되는 동기들(3,5절) :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또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인지에 대하여 알고있어야만 한다. 지식은 헌신과 순종의 어머니이다. 곧 맹목적인 헌신으로는 결코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주 여호와와 관련된 여섯가지의 내용들을 살펴보자.
1) 그는 유일하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곧 그는 자존하고 자족하며 무한히 완전한 존재일뿐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신다. 그는 영원한 영으로서 무한하고 자유로우시며 처음과 마지막이 되는 분이시다.
2) 그는 우리의 창조자이시다. 우리를 만든이는 우리 자신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존재를 부여하셨다. 다시말해서 그는 우리의 몸을 지으신 창조자일뿐 아니라 우리의 영의 아버지이기도 하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들지도 않았고 또 만들수도 없다.
3) 따라서 그는 우리의 정당한 소유주이시다. 맛소라 학자들은 히브리어 한글자를 고쳐놓음으로써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다'라는 내용을 "그는 우리를 지으셨으며 우리는 그의 것이다"라는 내용이나 "그는 우리를 지으셨으며 우리는 그에게 속해 있다"라는 내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두가지 내용을 생각해 볼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곧 우리를 만든이는 우리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4) 그는 우리의 최고통치자이시다. 우리는...그의 백성이요.
5) 그는 우리의 너그러운 후원자이시다. 우리는 그의 초장에서 그의 보호를 받고있는 양과 같다. 즉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다.
6) 그는 무한한 자비와 선을 베푸는 하나님이시다(5절).

# 핵심
100:1-5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하는 시들(95-100편)중 마지막으로 소개된 것으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은 시편이다.
우리는 그의 것(100:3)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즉 이 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창조주이며 이 피조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생각하고 산다. 이같은 삶은 끊임없는 지배욕과 소유욕을 야기시켜 자신과 이웃을 혼란과 파멸로 몰아갈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지배욕과 소유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양심과 영혼으로 겸허하고 복된 삶을 누릴수 있다. 그것이 곧 피조물의 본분이자 축복이다.

# 묵상
지으시고 기르시는 하나님 ( 100:3 )
시인이 하나님을 지으신 자요, 기르시는 자라고 노래한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양을 기르는 목자처럼 양육하시는 분입니다. 이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보전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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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통치 조직 99:1-5
모든 신앙의 기초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진리속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로 세상을 통치하시고 그의 은혜와 그의 아들을 통하여 교회를 통치하신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는 것뿐 아니라 그가 통치하신다는 것까지도 믿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교회의 기쁨이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왕이라는 사실이 유대교회의 기쁨으로 표현되어 있다. 시편 기자는 이 사실로부터 '만인이 떨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구약의 섭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두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가는 곳은 '불붙는 산'이 아니다(히 12:18). 주께서 통치하시므로 온땅은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전에는 두렵게하는 능력으로 세상을 더많이 다스리셨지만 이제는 거룩한 사랑의 능력으로 다스리신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땅이 요동할 것이로다. 주께 복종하는 자들은 견고케되어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96:10). 그러나 주께 대적하는 자들은 요동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요동하지 않으며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할 것이다'(히 12:27). 그리고 '이 현상은 이미 오래되고 있다'(사 64:5).
시편 기자가 여기에서 찬양을 하고있는 것은 이스라엘에 세워진 하나님의 왕국이다.
(1) 시편 기자가 확언하고 있는 것은 두가지다.
1) 하나님께서는 신앙적인 일을 판정하신다. 여호와께서 그룹사이에 좌정하시니(1절). 그가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이유는 그곳으로부터 계시를 통하여 율법을 주기 위함이다. 셰키나 곧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가운데 임재하셨음을 나타내는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광대하시고(2절). 바로 그곳에 여호와는 알려진바 되시고 찬양을 받으신다(76:1,2). 그리고 그는 시온에서 '모든 민족위에 높이' 계신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속성들은 어떤곳보다 시온에서 더많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시온에 거하며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회조직도 완전히 관장하신다(4절). 이스라엘의 증거궤가 예루살렘에 있는 것처럼 '판단의 보좌'도 거기에 있었다(122:4,5). 그들의 통치체제는 신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세우셔서 그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는 '공의를 사랑하는' 능력을 지닌 왕이며 강한 왕이었다. 그는 그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한 왕을 섬겼지만 그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서 존경하라는 가르침을 받고있다. 주께서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야곱중에서 공과 의를 행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훌륭한 율법을 주셔서 그들로 그 율법으로 통치받게 하셨다.
(2) 이 두가지를 결합시켜 볼때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는지에 대해 알게된다(5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앞에서 경배할지어다. 이것은 곧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한 말이다. "이제 그의 통치가 교회와 국가에게 확립되었으니 너희는 너희가 받는 선한 통치에 대해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Ⅱ.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실례들 99:6-9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통치로인한 이스라엘의 행복이 그 특별한 실례들을 통해 더욱더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그 실례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유능한 통치자들이었던 모세와 아론과 사무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처음 두사람에 의해서는 신정 혹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사무엘에 의해서는 국가조직이 완성되었다.
(1)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가졌다. 그들은 하늘과의 영적교제를 나누었을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름으로도'(출 33:17) 아셨던 자들이었다. 사무엘은 비록 제사장 반열에 속하지는 않았어도 이름을 부르는 자들중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호와께 부르심받았다는 사실로 유명하였다. 그들은 또한 순종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있었다. 저희가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깨닫고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방식대로 모든 것을 행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자주 되풀이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모든 것을 행했다. 그것은 아론과 사무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놀랍게도 모두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설득시켰다. 그들이 특별한 요구를 했을때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다정한 친구처럼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다(7절).
(2)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선한 직책을 수행했다. 그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중재를 했으며 자신들을 위하여 많은 평화의 응답을 얻기도 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결함을 메웠고 아론은 산자와 죽은자 사이에 서있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할때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삼상 7:9). 이것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고 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고...저희를 사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요구받고 있다(9절). "우리를 위하여 최근에 행하신 것뿐 아니라 이전에 행하신 것으로인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 시온에서 경배할지어다."

# 핵심
99:1-9
정의로 온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권과 그분의 최종적 심판을 찬양하는 시편이다.

# 묵상
여호와의 통치근거 ( 99:1 )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근거는 공의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의 엄위하신 통치앞에 피조된 인간은 본능상 떨지않을수 없으며 자연만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판단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도 통찰하십니다. 때문에 성도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빌2:12).
거룩하신 하나님 ( 99:4-9 )
시인은 야곱과 모세, 아론과 사무엘에게 응답하신 하나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응답하셨던 하나님의 지난 역사를 회고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경배하라고 권면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기의 거룩을 나타내실뿐 아니라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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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구속자의 영광 98:1-3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여 부르는 찬송은 곧 '새노래'다. 따라서 회심한 사람들은 '새노래'를 부르게 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에 눈을 뜨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쁨을 추구하며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된다.
(1)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1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의 구원은 곧 하나의 기적이다. 그 기적은 많이 알려질수록 더많은 찬사를 받게 된다.
(2) 하나님께서 이루신 정복 :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우리의 구속자께서는 구속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셨다. 그는 그 자신의 권능으로 승리를 얻으셨다.
(3) 하나님이 그의 구속사역을 세상에 알리시는 방법들 : 하나님은 그 자신이 직접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심으로써 그의 구속사역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또 그의 아들을 통해서도 그의 구속사역을 보여주셨다.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복음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세워진 복음의 왕국의 토대이다. 그것은 복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이기 때문이다(행 10:36).
(4) 구약의 예언과 약속의 성취 :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이 그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눅 1:72).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그 조상들의 유익에 상관없이 거룩한 언약을 성취하는데 그 중요성이 있다.

Ⅱ. 구속을 받은 자들의 기쁨 98:4-9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일은 여기에서 기뻐하고 찬양해야할 일로 표현된다.
(1) 모든 인간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안에서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그 왕국을 통하여 유익을 얻거나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가능한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표현하고 그 왕국을 위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도록 요구받고 있다. 신성한 노래들은 새로운 왕을 섬길때 불려져야 한다. 이 노래들은 수금의 은은하고 고결한 소리로 불려져야 한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는 승리의 왕으로서 환영을 받으셔야 하기때문에 '나팔과 호각'으로 부르는 행진곡을 통하여 선포되어야 한다(6절).
(2) 인간이외의 다른 피조물들도 그리스도의 왕국 안에서 기뻐해야 한다(7-9절). 이것은 전에 살펴본 내용과(96:11-13) 같은 취지로 기록되었다. 바다와 외칠지어다. 여기에서 외친다는 것은 두려움에 떠는 소리가 아니라 기쁨의 소리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의 구속사역이 이세상의 고난과 두려움을 완전히 역전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소리를 높이고 그 물결을 높일때 우리는 그것을 바다가 우리에게 고함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다가 우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버어질(Virgil)이 그의 네번째 전원시에서 쿠메안(Cumean) 무당의 신탁뿐 아니라 이 시편들도 안중에 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그는 그 당시에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고대의 예언들을 무지하고도 조잡할정도로 아시니우스 폴리오(Asinius Pollio)에게 적용시켰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구세주의 탄생시기보다 조금 앞선 아구스도 가이사의 통치기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당시의 사람들이 온세상에 큰축복이 되고 또 황금시대를 회복할, 하늘로부터 오는 아기의 출생을 기다렸던 것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높은 하늘로부터 새로운 혈통이 내려오시도다. 주의 권세가 모든 타락의 때를 벗기며 두려움에서 세상을 건지리이다.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 아기에 대해 많은 것을 언급하고 있다. 루도비쿠스 비베스(Ludovicus Vives)는 이 아기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편 기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모든 피조물이 기뻐해야 함을 기대하면서 끝을 맺고있다. 이 약속된 시대가 모든 만물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보라. 만물이 기뻐한다면 우리도 기뻐해야하지 않겠는가?

# 핵심
98:1-9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져온 하나님의 구원이 장차 온세계에 미칠 것을 노래한다.

# 묵상
구원의 이유 ( 98:3 )
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조상들과 맺은 구원의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계획없이 구원하신 것도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개적으로 베풀어졌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구원사역의 범위 ( 98:7, 8 )
구원사역은 단지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우주적 성격을 띱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분임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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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와의 통치 97:1-7
앞장에서 열방중에 이야기되었던 것이(10절) 본문에서 반복되는데(1절) 이것은 이 시편과 제99편의 주제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기에 설명되어 있는 크나큰 진리이다. 곧 주 예수께서 통치하신다.
(1) 땅은 즐거워하며. 이로 말미암아 땅이 '굳게 섰기' 때문이다(96:10).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기뻐해야 한다.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기뻐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그의 섭리는 일괄적으로 설명할수가 없다. 그것은 '주의 길이 바다에 있고 주의 첩경이 큰물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깊으므로 우리는 그 깊이를 아는체해서는 안된다.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즉 그의 통치영역은 공의라는 황금실로 만들어진 거미집과 같다. 그는 이 공의 안에 거하신다. 그것은 공의가 그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 공의를 통하여 통치하신다. 왜냐하면 공의는 그의 '보좌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계명들은 모두 의로우며 앞으로도 의로울 것이다. 누가 하늘에서 선포하는 것을 반박하거나 반대할수 있겠는가? 모든 백성들은 그의 영광을 보았거나 볼수 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멀리까지 빛을 발하였다.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히 1:6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라는 말씀은 이 시편 전체를 이해할수 있는 열쇠가 되며 또 승천하신 구주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이 저에게 순복하도록'(벧전 3:22) 모든 권능이 그에게 주어졌다.
(2) 그리스도의 통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만 어떤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잘못이다(3-5,7절). 온세상을 기쁨으로 통치하는 그에게는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있는 것처럼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도 있다. 이 원수들은 그들의 높은 신분과 힘과 완고함때문에 여기에서(5절) 산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은 사도들을 핍박하고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그들의 죄를 채웠으며 그 결과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다(살전 2:15,16). 그 진노는 여기에서 사르는 불로 비유되고 있다. 이 불은 그 산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태워버릴뿐 아니라 산자체를 '밀같이 녹일' 것이다(5절). 곧 가장 단호하고 무모한 반대가 '여호와의 앞'에서 꺾일 것이다. 땅이 주의 위엄을 보고 떨었으며 모든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큰동요를 일으켰다. 이것은 훗날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은지 약 40년이 지났을때 유대 땅과 예루살렘이 멸망됨으로 실현되었다. 이 유대 땅과 예루살렘의 멸망은 불과 빛처럼 모든 열방을 놀라게 했다(신 29:24). 우상숭배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짐으로써 혼란에 빠질 것이다(7절). 조각 신상을 섬기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이것은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하는' 이방인들은 다 수치를 당한다는 뜻으로(갈 4:8), 그들의 개종을 바라는 기도이다. 아무것도 듣지못하는 우상들을 오랫동안 섬겨온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유일하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될 것이다. 로마 제국의 우상숭배는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른지 약 300년이 지나서 소멸되었다.

Ⅱ.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위로 97:8-12
(1) 구속자의 통치로인하여 시온이 기쁨을 얻게되는 이유들이 있다. 하나님은 영화로우시다. 그를 존귀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백성들에게 기쁨이 된다. 여호와여 주는 온땅 위에 지존하시고(9절).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또 그로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더많은 영광을 얻으신 것은 모든 성도들을 기쁘게 한다.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이것은 그가 그들을 위하여 어떤일을 하시든지 그들의 생명을 보전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들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보다 더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기꺼이 자기들의 생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보전해주시는 것은 불멸하는 영혼 곧 겉사람은 후패하더라도 더욱더 새로워지는 속사람이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한 신하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그들에게 위로를 주기위하여 빛이 뿌려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땅에 뿌려진 씨는 적당한 시기가 오면 다시 싹을 내는 법이다. 겨울에 뿌려진 씨처럼 그 씨는 비록 오랜기간 땅속에 묻혀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풍성한 결실을 맺게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하실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
(2) 시온이 기쁨을 얻게 되는데는 몇가지 원칙이 있다. 시온의 기쁨은 순결하고 거룩한 기쁨이어야 한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임재와 왕국을 사랑하며 그의 말씀과 그의 승천을 사랑하는 자는 악을 미워하게 된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악한 것을 미워하시듯 모든 죄를 미워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인하여 기뻐해야 한다(12절).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인하여 기뻐하며. 우리가 얻는 모든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어야 한다(참조. 빌 3:3;4:4).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기쁨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감사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 핵심
97:1-12
경외심을 가질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엄위로우신 통치를 노래하고 있는 시편이다.

# 묵상
하나님 통치의 기초 ( 97:1, 2 )
하나님 통치의 기초는 공평과 인자입니다. 여기에서 감히 범하지못할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이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찬 구원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주를 의지하는 모든 자들에게 공평과 인자는 영원한 찬양과 기쁨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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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찬양에 대한 요구 96:1-9
본문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요구가 주어지고 있다.
(1)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요구받는다.
1) 노래를 통해서(1,2절) : 본문에는 '여호와께 노래하라'는 요구가 세번씩이나 나온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좋게 여길수 있도록 너는 그 이름을 송축하여 그를 칭송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애정의 산물인 새노래로 노래하라." 새노래는 새로운 애정을 표현하기 위한 노래다. 새노래는 새계명의 노래, 곧 새언약과 그언약의 특권들에 대한 찬양의 노래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들의 소명에 대한 예언이다. 온세상이 이 새노래를 그들의 입안에 둘 것이다. 이 노래의 주요 내용은 '그 구원' 곧 주 예수님에 의해 역사되었던 큰구원이어야 했다.
2) 설교를 통해서(3절) : 그 영광을 열방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인중에 선포할지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이 여기에서는 기이한 행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천국의 행복이 지금 존재하고 있듯이 구약시대에도 이 구원이 영광속에서 드러났다.
3) 경건한 예배를 통해서(7-9절) : 비록 모든 열방중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던 자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지만 유대교에서는 특별히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 열납된다고 생각했다. 온땅은 여호와앞에서 두려워하고 그에게 경배를 드리라는 권고를 받는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들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돌려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돌려야할 바이지만 만일 그가 헌신을 받지않는다면 그 헌신한 것이 다시 우리에게 돌려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경건한 사랑을 가지고 헌신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 헌신을 선물로 받으실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궁정으로 예물을 가져가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예물로 가져가야 한다. 이것이 곧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롬 15:16). 우리는 아름답고 경건한 것으로, 곧 하나님의 은혜로 성별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거룩한 마음으로 경배를 해야 한다. 모든 예배행위는 경건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행해져야 한다.
(2) 여기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들이 언급되고 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경외할 것임이여(4절). 새노래도 하나님께서 선뿐 아니라 광대하시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신적인 권위로 가장하려는 모든 사람들 곧 죽은뒤에 신격화되는 모든 왕들까지도 통치한다는 점에서 광대한 분이시다. 그는 또 피조물중 가장 고귀한 자들보다 큰권리를 갖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 피조물은 하나님 자신이 지으셨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신의 존재를 얻기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는 곳에는 '존귀와 위엄이 그앞에 있다.' 그곳에서는 천사들도 그의 영광의 광채가 너무 찬란하여 그 빛을 견딜수 없기 때문에 얼굴을 가린다. 위로 하늘에 있든 아래로 땅에 있든 상관없이 '능력과 아름다움은 그 성소에 있다.' 우리가 그의 성소에서 그를 섬길 경우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때문에 그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우리의 반석이 되시기 때문에 그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Ⅱ. 하나님의 보편적인 통치와 심판 96:10-13
복음을 열방들에게 전파할 사람들에게 여러교훈이 주어진다.
(1)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산 시온에 두시기로 결정하신 왕 곧 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전파해야 한다. 베드로가 어떻게 이것을 이방인들 중에서 먼저 언급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라(행 10:42). 고대인들 중에 몇명이 이 말에 대해 주석을 달았는데 이 주석이 점차 본문으로 끼어들게 되었다. "여호와가 나무에서 통치하신다"(순교자 저스틴과 오스틴과 그밖의 교부들도 이렇게 인용한다). 여기에서 나무는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라는 칭호를 얻게 되셨을때 십자가를 뜻하게 되었다.
(2)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파해야 한다. 세계가 굳게서고 흔들리지 못할지라. 죄는 세상에 큰충격을 주었고 지금도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지지하시고 모든 자연의 진로를 보호하신다. 그리스도교는 그것이 수용되는한 국가와 왕국을 견고케하고 사람들속에서 질서의식이 보존되도록 한다.
(3) 그리스도의 통치가 정당하고 의롭다는 것을 전파해야 한다(13절).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가 심판하러 이세상에 왔다'(요 9:39;12:31)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 맡기셨다'고 선포하셨다(요 5:22,27). 그는 진리의 권능과 공의 및 성화의 영으로 인간의 마음과 양심을 지배하실 것이다. 빌라도가 우리 구주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고 질문했을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요 18:37).
(4) 그들은 그의 임재가 임박했으며 이 왕 곧 이 심판자가 문앞에 서계시다는 것을 전파해야 한다. 이 기간과 그리스도의 초림사이에 많은 변혁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해진 시간에 오셨다. 분명 그의 재림도 정한 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5) 그들은 메시야와 그의 손에 들린 위대한 진리를 기뻐하도록 사람들을 청해야 한다(11,12절).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밭과 삼림의 나무들이 즐거이 노래하리니.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이 생각될수 있다.
1) 메시야의 날들은 기쁜 날들이다. 사마리아가 복음을 받았을때 '그 성에 큰기쁨이 있었다'(행 8:8). 그리고 내시는 세례를 받자 '흔연히 길을 갔다'(행 8:39).
2)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환영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의무다. 비록 그는 정복을 하러 오시지만 화평하게 오신다.
3) 모든 피조물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바다'와 '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먼저 하늘에 곧 하나님의 사자들앞에 기쁨이 있을 것이다.

# 핵심
96:1-13
하나님의 우주적인 왕권을 주제로 삼고있는 시편이다. 이방나라들의 생명력 없는 우상과 참하나님을 대조하고 있다. 이 시편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한 뒤에 다윗이 불렀던 시편과 유사하다(참조, 대상 16:8-36).

# 묵상
구원받은 자의 새노래 ( 96:1 )
구원받은 자의 찬양을 새노래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거듭난 백성들이 새심령으로 부르는 구원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요, 통치자로서 온땅 만민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그의 구원사역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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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께 대한 찬양 95:1-7
시편 기자는 다른 곳에서도 자주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용기를 돋구고 있다.
(1) 하나님은 어떻게 찬양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찬송은 즐겁게 불려져야 한다(1,2절). 영적인 기쁨은 곧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아버지와 왕이 되시고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안에서 기뻐하라." 우리는 겸손한 존경심과 거룩한 경외심을 지닌 찬양을 해야 한다(6절). "우리와 하나님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무한하며 또 우리가 얼마나 그의 진노를 받기 쉽고 그의 긍휼을 필요로하는지에 대해 알고있는 자들로서 굽혀 경배하며 여호와앞에 무릎을 꿇자." 우리는 사랑과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려야한다. 여호와께 노래하며...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는 협력해서 곧 엄숙한 집회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한다. "오라, 우리가 노래하자. 우리가 여호와를 향하여 함께 노래하자. 우리가 그앞에 함께 나아가자."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드러내실 것을 기대할수 있다.
(2) 하나님은 왜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가.
1) 그것은 하나님이 위대한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통치하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3절).
① 그는 큰권능을 갖고 계시다. 여호와는 모든 신위에 크신 왕이시도다. 즉 그는 그의 권능을 이세상에서 대리하고 있는 모든 재판관들보다 크신 분이시다. 그는 그들에 대해 "너희는 모든 거짓 신보다 큰신들이다"라고 말씀하셨었다.
② 그의 소유는 엄청나게 크다. 이세상에 있는 것들이 특별히 여기에서 지적되고 있다. 온세상을 소유하며 그세상을 충만케하시는 하나님 곧 실제로 모든 것을 지시하고 처리하시며 온세상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가(4절). 땅의 깊은 곳이 그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피조물이 어떤 힘을 가졌든 그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진다(5절).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바다의 물을 모아 그 끝을 정하시고 육지가 나타나게 하셨다. 그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가 되심으로써 명백하게 만물의 소유자가 되셨다. 이것이 복음적인 시편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찬양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바로 주 예수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중보자로서의 주 예수님은 '모든 신위에 크신 왕이시다.' 즉 '만물이' 영원한 말씀이신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므로'(요 1:3) 만물의 창조자이신 예수께서 만물을 죄에서 회복시키고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자가 되셔야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골 1:16,20).
2)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시듯 우리를 지배할뿐 아니라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기도 하다(7절).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곧 그는 우리의 창조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6절). 우상숭배자들은 그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신들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는 장본인이시다. 그는 여기에서 '우리 구원의 반석'으로 불리고 있다(1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에 대한 모든 의무를 지키는한 우리는 그의 소유가 된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보호하고 양육시켜주시므로 그를 찬양해야 한다. 모든 교회의 자녀들은 특별히 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특별히 그들의 존경을 요구하신다. 복음교회는 그의 양우리이며 그리스도는 그 교회의 크고 선한 목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교회안에서 대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엡 3:21).

Ⅱ. 가르침과 권고 95:8-11
이 시편의 후반부는 복음적인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적인 생활을 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 그리스도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 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음성을 들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즉 그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0:27). 만일 우리가 그를 '주'로 부른다면 우리는 그가 말씀하시는 것들을 행하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2) 그들이 경고받은 죄는 마음의 완악함이다. "너희가 그 음성을 듣고 그 들은 것에 의해 유익을 얻고자한다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말라." 왜냐하면 바위위에 뿌려진 씨는 결코 완전한 열매를 맺지못하기 때문이다.
(3)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행동하였다.
1) "너희도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과 같은 죄를 짓지않게 주의하라." 그들이 불신과 불평을 통하여 너무도 자주 하나님을 노하게 했기때문에 그들이 광야에서 보낸 모든 시간은 '시험의 날' 혹은 '맛사'로 불렸다. 이 '맛사'라는 말은 또한 '그곳'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였다(출 17:7).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께서 우리중에 계신가 아닌가'라는 말을 함으로써 여호와를 시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선에 대한 경험을 많이하면 할수록 우리가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더 큰죄를 범하게 된다.
2) 하나님의 이름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죄를 범할 것이다(9,10절). 그들의 죄는 불신이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다(민 14:3,4). 이것은 '거역'으로 불리웠다(신 1:26,32). 이러한 죄를 더욱 심화시킨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때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 곧 그가 그들을 위해서 매일 하늘로부터 먹을 것을 뿌려주셨던 것과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하셨던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에 대해 이러한 것들보다 더 분명한 증거들은 없었다.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10절).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않고 신뢰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불평하고 논쟁을 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그들은 그의 행하시는 것을 보았으며(9절), 그는 그의 행동을 그들에게 알리셨다(53: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또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알지 못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를 경시하고 떠나는 이유는 그들이 그 도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는 마음이 미혹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방황했으며 마음속으로도 그 도에서 돌아섰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범죄는 하나님을 노하시게 할뿐 아니라 그가 슬퍼하시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않을때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노하시기를 얼마나 더디하시는가 보라. 하나님은 40년동안 그들로인하여 슬퍼하셨다. 그러나 그다음 세대가 의기양양하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슬픔도 종식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선고를 받았던 이유는 그들의 죄때문이었다(11절). 하나님은 정당하고 거룩하게 진노하시면서 엄숙하게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감정에 사로잡히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죄의 해악과 그의 통치의 정의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죄와 죄인들에게 진노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기서 안식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으로서 그들과 그들의 소유를 위한 정착지를 나타낸다. 이러한 사례는 다윗시대에 살던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적용될수 있다(이 시편은 다윗시대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될수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이처럼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리앞에는 영적이고 영원한 안식이 놓여있고 또 약속되어 있다. 가나안은 그 안식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그의 안식처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그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히 4:1).

# 핵심
95:1-11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여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것을 강조하는 시편이다.

# 묵상
주님의 보호방법 ( 95:1-11 )
본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와 방법에 대하여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유지하시는 전능자이시며 동시에 이스라엘을 택하신 구원자이시므로 찬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은 과거의 비참한 역사를 거울삼아서 외식으로 찬양치 말고 진실하게 할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중에 거하시고 찬송할때 기사를 행하십니다(행16:25-26).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 ( 95:1 )
시인이 구원의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한 이유는 반석의 크고 안전하며 견고한 이미지때문이며(신32:15), 그만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구원은총을 입은 성도는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뢰하여 신앙의 정절을 지켜나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 ( 95:7 )
하나님을 시험한 결과 이스라엘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해야하는 대가를 치렀습니다(신9:6, 7).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므리바와 맛사에서 마실 물로인해 강퍅한 마음으로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출17:1-7). 그 결과 당시 20세이상된 자들의 가나안땅 입성이 금지되었습니다(민14: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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