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모세의 기도 90:1-6
이 시편의 표제는 '모세의 기도'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기도를 하도록 가르쳤고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설때 해야할 말들을 가르쳤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1) 하나님이 항상 자기의 백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1절).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의 조상들에게 보여주신 친절을 자기들에게도 보여주시도록 간청하고 있다. 가나안 땅의 장막에서 거주했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처가 되셨으므로 그들은 어디로가든 하나님안에서 편안히 머물렀다. 애굽은 오랜세월 동안 속박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피난처였다.
(2)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2절). 산이 생기기전, 곧 주께서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때에(잠 8:26), 그리고 땅이 진통을 겪기전, 곧 주께서 땅과 세계를 조성하기도 전에(곧 태초이전에) 주께서는 이미 존재하고 계셨다.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는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불멸성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을수 있다.
(3) 인간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원하시는대로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3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여기에서 시편 기자가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말한 것은 주께서 티끌로 지어진 육신을 파멸시켜 다시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사람들로하여금 그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살아가도록 촉구하신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놀라울정도로 그들의 마음을 회복시키고서 "너희 인생들은 다시 생명과 건강을 얻는 길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하나님께서 티끌로 돌아가게 할지라도 그는 다시금 "너희 인생들아 너희가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수 있는 부활의 길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4)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불균형을 인정해야 한다(4절). "천년이란 세월은 우리에게 매우 긴 기간이나이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기간 동안 살아남을수 없나이다. 그러나 그 기간도 주의 목전에는 지나간 어제와 같이 한날과 같으니이다. 아니 그 기간은 밤의 한 경점에 불과하나이다." 경점이란 세시간정도의 기간을 나타낸다. 1분과 1백만년이라는 시간 길이사이에도 어떤 비율이 성립된다. 그러나 아무리 긴시간도 영원과 비교할경우 아무런 비율을 정할수 없을만큼 작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을 기대해온지 오랜시간이 흘렀고 또 아직 부활의 때가 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부활교리에 어긋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갖고있는 부활신앙에 어떤 장애를 받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천년은 하루와 같이 짧은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 최상의 상태에 있을때에도 인간의 약하고 헛됨을 바라보아야 한다(5,6절). 모든 인간들을 바라볼때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갈때마다 우리는 그만큼 더 죽음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인간은 홍수처럼 쓸려가고 '잠깐 자는 것같이' 살아간다. 인간은 그 자신의 약한 면을 생각하지 않는다. 잠에 빠진 자들처럼 인간은 죽음이 그들을 깨울때까지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잠에 빠진 자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알수 없다. 인생이란 아침에는 잘자라서 푸르고 아름답게 보여도 저녁에는 낫을 든 사람들에게 잘리는 신세가 되는 풀의 생명과 같이 짧고 무상하다. 풀은 시들어 버리면 그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우리의 모습을 간단히 그것도 순식간에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죽음은 아주 짧은시간 동안 우리를 엄청나게 변화시킨다. 인간도 풀과 같이 그 전성기에는 번영을 누리다 황혼기에는 결국 죽고 만다.

Ⅱ. 하나님의 의로운 선고에 대한 복종 90:7-11
모세는 앞에서 인생의 약함을 한탄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앞에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이 받은 죽음의 선고를 인정하도록 가르친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모든 불행을 겪게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노심에 놀라나이다(7절). 우리의 모든날이 주의 분노중에 지나가며(9절). 우리는 죽음을 자연적인 현상에 따른 결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본래의 순결함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와같은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대한 결과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나니'(롬 5:12).
(2) 그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8절).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이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과 불평 곧 그들이 그의 권능을 신뢰하지 않고 또 그 아름다운 땅을 소홀히 여기는 것에 대해 주목하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모든 악행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마음의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나이다. 곧 주께서는 이 죄들을 발견하시고 그 죄들을 계산해 놓으셨나이다. 그리고 그 죄들을 간과해버린 우리들로하여금 그 죄들을 돌아볼수 있도록 하셨나이다."
(3) 그들은 그들 자신을, 오래도록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닌 죽어가며 소멸되는 것으로 여기라는 가르침을 받았다(9절). 우리가 우리의 남은 연한을 아주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일순간'에 허비해 버릴수도 있다. 그들은 광야에서 38년을 지냈다. 그들이 광야에서 38년을 지냈다는 근거는 나머지 2년간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서 번영을 누리며 영광스럽게 살것이라는 그들의 예상은 광야에서 지루한 생활을 보내다 죽고말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은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살고있는 우리들 각자의 상태에 적용될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평생을 일순간에 다 보내고 만다. 우리는 일생동안 기쁜 일도 겪고 비극적인 일도 겪으며 대부분을 기쁨과 슬픔이 섞인 상태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짧고도 무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시간에 걸쳐 행해진 일도 짧은 시간안에 다 이야기해 버릴수 있는 것이다. 1년 1년이 일순간에 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햇수가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의 삶이 헛되듯 인간이 누리는 생명의 연한도 기껏해야 7,80에 불과하다.
1) 그런데 이 7,80년이라는 세월은 광야에서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명으로 이해될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때 계수된 사람들은 모두 20세 이상된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은 3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을때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이 계수할때 전쟁터로 나갈수 있는 자들만을 포함시켰기 때문에 그들중 대다수는 20세에서 40세 사이의 장정들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80세 이전에 죽었고 대다수는 60세 이전에 죽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2) 이 7,80년이라는 세월은 모세시대 이후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수명으로 이해될수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수도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모든 범위, 곧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모든 년수가 오직 수고와 슬픔 뿐이라." 인간은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수 있다.
(4) 그들은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11절).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리이까. 시편 기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또 그 진노의 능력이 크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이것을 말하고 있다. 누가 주의 진노에 대한 지식을 활용할수 있을만큼 그 진노를 알고있는가? 죄를 소홀히 여기고 그리스도를 경시하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Ⅲ. 자비를 구하는 기도 90:12-17
이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고백을 근거로 하나님께 간청을 드리는 기도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서 네가지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지시받고 있다.
(1) 그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역사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거룩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에게 우리날 계수함을 가르치사(12절). 이것은 "여호와여 우리의 날이 얼마나 적으며 우리가 이세상에서 살아야할 기간이 얼마나 짧은지를 올바로 생각할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와같이 우리의 날들을 계수함으로써 우리의 일과 우리의 날들을 비교하고 더이상 소모할 시간이 없는 자들처럼 우리의 일을 갑절로 부지런히 해야 한다. 이 날들을 알고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얻도록 기도해야 한다.
(2)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주께서 우리와 화해하시고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13절). 우리에게 화평의 소식을 보내셔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고 우리에게 다시 위로를 주소서. 우리는 다 주의 종, 주의 백성이나이다(사 64:9). 언제 우리를 향하여 주의 길을 바꾸시겠나이까?" 이러한 기도와 그들의 회개에(민 14:39,40) 대한 고백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는 (91장에서) 희생제사(민 15:1이하)에 관한 율법을 말씀해주신다. 이 희생제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징표였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려 하셨더면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삿 13:23)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다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위로와 기쁨을 얻을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14,15절).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위하여 기도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장점을 전혀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주여 우리가 젊고 번영을 누리는 인생의 아침에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우리가 우리 자신속에서 편안히 머물도록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진노를 받으면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속에 편안히 머물수 없나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주께서 베풀어주신 처음 표적들로 인하여 잠시동안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지 마시고 비록 우리가 우리의 일생을 광야에서 보낼지언정 일평생 그 표적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소서. 주의 은혜안에서 우리의 기쁨의 날들이 주의 진노로인한 우리의 고통의 날들만큼 많게 해주시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던 날 우울했던 것만큼 즐겁게 해주소서. 이제 우리의 손에 구원의 잔을 주소서."
(4) 이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기를 기도해야 한다(16,17절).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소서. 곧 우리를 주께로 편안히 인도하시고 우리를 주께 합당한 존재로 만들기위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주의 역사를 나타내주소서. 주의 역사를 나타내시고 그안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주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이 기도를 통해 볼때 아마도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손들을 구별했던 것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훗날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통하여 이와같이 구별하셨기 때문이다(민 14:32,33).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러나 너희 자녀들은 내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여호와여 우리의 마음을 개조시키고 우리가 더좋은 성품을 갖도록 주의 행사를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이 기도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안에 계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의 선한 행사가 우리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로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기쁨을 얻고 우리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나도록 해주소서. 그것 또한 주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이니이다."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하소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행사가(16절),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하지않아도 좋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우리의 목적이 성취되도록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핵심
90:1-17
시편에서는 유일한 모세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대비시키면서 광야에서 방랑생활을 할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듯하다.
90:8절 은밀한 죄 비밀스러운 범죄. 시기심, 증오, 정욕과 같은 마음의 죄를 비롯하여 스스로 완전 범죄로 여기는 죄들을 가리킨다.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하나님의 얼굴은 태양 빛에 비유된다(사 60:19,20). 이 표현은 인간이 숨길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범죄가 하나님앞에 낱낱이 드러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님의 자존성(90:2,4)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지만, 하나님은 결과가 아니시다. 하나님에게는 시작이 없기에 선행하는 원인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 또 그분은 자신안에 존재능력을 갖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와 피조물사이에 있는 차이점의 본질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구별되는 창조주로서 생명이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존재이시다(행 17:23-25).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으며, 영원히 스스로 변함없이 존재하신다.

# 묵상
하나님께서 친히 거처가 되어주신다는 약속 ( 90:1 )
시인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친히 거처가 되어주신다는 약속이 절실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거처없이 나그네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친히 영원한 안식처요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 앞에서의 인생 ( 90:6-10 )
주앞에서 인생이란 유한하고 덧없는 존재입니다(사40:7). 더구나 인생은 살아있는 동안이 수고와 슬픔의 시간입니다(전12:1). 그러나 인간이 허무한 실상을 깨달을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멈추고 창조주 하나님을 소망할수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만큼의 보상요구 ( 90:15 )
고난의 시간만큼 보상해달라는 요구의 의미는 시간에 비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족이 오랫동안 수고했고 고통을 당했으니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은혜로운 축복을 허락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회상하며 본래의 사랑을 회복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의 말씀을 늘 마음 안에 두는 삶 (시 119:97~104)  (0) 2020.10.06
하나님을 자랑하라 (시 105:1~15)  (0) 2020.10.02
시편 89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8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7편 - study  (0) 2020.09.27

# Study

Ⅰ. 하나님의 자비와 신실하심 89:1-4
시편 기자는 이 당시 다윗 집안이 겪고있던 비참한 처지에 대해 비통하게 하소연을 해야했지만 오히려 찬양의 노래로 이 시편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도 불평을 감사로 바꾸도록 하자.
(1) 아무리 어려운 때라해도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참되시다(1절).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시고 그의 진리는 어느누구도 범할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의 기쁨과 찬양의 근거가 됨이 마땅하다.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한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나 자신의 위로를 위하여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다른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교훈적인 노래를 부르리이다."
(2) 아무리 어려운 때라해도 영원한 언약은 확고하다(2-4절). "현재의 상황은 암담할정도로 다윗 집안을 완전히 말살시키려 하고있으나, 나는 주께서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고백하고 또 그리하시리라는 것을 확실히 믿나이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긍휼을 베푸실때 '다윗의 무너진 천막도 일으키고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실' 것이다(암 9:11). 시편 기자는 이제 이러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하는 언약을 제시하고 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3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위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밝히고 있다. "내가 언약을 맺었으므로 나는 그 언약이 선한 결과를 맺도록 할 것이라." 다윗과 맺어진 이 언약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영적인 씨가 되는 모든 성도들과 맺어진 은혜의 언약을 나타낸다. 그중에는 다윗의 가문이 보존된다는 내용도 약속되어 있다.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4절). 이 말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한분을 통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Ⅱ.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 89:5-14
본문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표현들로 가득차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또 누구를 통해서 찬송을 받으시는가. 여호와여 주의 기사를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5절). 하나님의 일은 그 일을 가장 많이 알고있고 또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자들에게도 '기사'로 비쳐진다. 하나님의 일은 많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더 찬미와 찬양을 받게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을 받으신다. "교회가 설 반석인, 주의 약속의 진실성과 이 약속을 지키는 주의 성실성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을 받으시나이다. 그들은 그 신실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얻었고, 또한 약속을 받았을뿐 아니라 그 약속을 하신 분이 신실하다는 사실로부터 끊임없는 위로를 얻는 자들이나이다." 하나님은 은총을 베푸사 경건한 회중에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가 허락받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조금도 가볍게 여기는 일이 없도록 그 회중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께로 나아갈때 하나님께 대해 거룩한 두려움을 갖지않으면 안된다.
(2) 무엇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과 같은 이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다(6절).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사 40:25). 이러한 내용은 8절에서 다시 강조된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 하는 자들이 그 약속을 지키는데 무책임한 것은 세상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신실한 분이시다. 그는 모든 것을 할수 있는 분이시다. 그렇다고해서 부당한 일을 하시는 법은 없다.
(3) 우리는 찬양할때 하나님께 어떤 영광을 드려야 하는가.
1) 하나님은 아무리 다루기 힘들게 보이는 피조물에 대해서도 명령을 내리신다(9절).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이것이 여기에서 전능한 행위로 부각되었다면 바람과 파도도 순종했던 주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시겠는가.
2)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의 원수들을 누르고 승리하셨다. "주께서 라합, 곧 수많은 원수들을 파쇄하셨나이다." 특히 라합으로 불리곤 했던 애굽이 마치 살육당하여 다시는 머리를 들수 없게된 것처럼 산산조각이 난 사실을 나타낸다. 애굽을 파멸시켰던 일은 바벨론의 압제를 받고있던 교회에게 위로를 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다(11,12절). "사람들은 풍부한 소유로인하여 영광을 얻나이다. 그러나 하늘도 땅도 주의 것이니이다. 그리고 세상과 그가운데 충만한 것과 모든 부와 모든 거민들과 건물과 경작지 또한 모두 주의 것이나이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것들을 건설하셨기 때문이니이다." 그는 하나님의 소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① 세상에서 가장 외진 곳 : 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을 알고 돌보시며 그들로부터 찬양을 받으시나이다." 북편 하늘은 허공에 펴져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욥 26:7).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소유하고 계시므로 그곳에도 충만함이 있다.
②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 그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높은 두언덕을 언급하고 있다. "다볼과 헤르몬, 이들은 주의 이름안에서 기뻐하며 주의 제단에 드릴 제물을 생산할 것이니이다." 다볼산은 갈릴리에 있는 높은 산으로 그 꼭대기에서 그리스도께서 변화하셨다고 추측된다.
4)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정의, 긍휼과 진리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인간사를 주관하신다(13,14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부당하거나 분별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셨고, 또 앞으로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은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자기의 백성에게 인자하게 행동하셨으며 자기의 말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셨다.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곧 진실함은 주의 말씀처럼 좋으며 인자함은 주의 말씀보다 더좋으므로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Ⅲ. 이스라엘의 행복 89:15-18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복되다는 것을 폭넓게 보여준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복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여수룬의 하나님같은 자가 없듯이 오 이스라엘아 복되도다 너와 같은 자가 없도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모든 진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복음적인 이스라엘의 한 전형이 되는데 이 본문에서는 그들의 행복이 묘사되고 있다.
(1) 그들은 영광스러운 일들을 발견하고 기쁜소식을 듣게 된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15절). 이 즐거운 소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타낼수 있다.
1) 승리를 얻은 군대의 환호성 : 이스라엘은 전쟁을 할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던 징표들을 갖고 있다.
2)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엄숙한 절일에 내는 소리(81:1-3)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종교를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신앙고백을 할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3) 희년에 부는 나팔소리 : 그 소리는 노예들과 빚진 자들에게 매우 기쁜 소리였다. 그것은 그 소리가 바로 그들의 노예생활과 빚을 제해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복음은 진정으로 즐거운 소리이자 승리의 소리요 자유의 소리이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소리이다. 복음을 듣고 복음을 알며 복음을 환영하는 백성은 복이 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특별한 징표들을 허락받았다.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빛에 다니며. "저희가 주의 지시에 따라 자제하고 주의 눈을 통하여 안내를 받으며 주의 위로를 받아 기쁨을 얻게 되리이다."
(3) 그들은 항상 기쁨에 넘쳐있다. 그리스도 예수를 기뻐하는 자들은 그 기쁨이 너무 커서 그들의 슬픔을 보상하고 없어지게 할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케 된다(요일 1:4).
(4)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영광과 위엄을 얻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가 아니라 주의 의로인하여 높아지리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주의 은혜로인하여 우리의 뿔이 높아지리이다. 이 뿔은 곧 아름다움과 풍요와 권능이니이다."
(5)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보호를 받고 안전하게 된다(18절). 우리 방패는 여호와께 속하였고 우리 왕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속하였음이니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면 우리를 지켜주시기도 하리이다. 그때 누가 우리를 해칠수 있으리이까?"

Ⅳ. 다윗과 맺었던 언약 89:19-37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언약은 전에도 언급된바 있다(3,4절). 그런데 이 본문에서는 그 언약이 더욱더 확대되어 언급되고 있다. 이 언약의 대상은 분명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다윗보다 그리스도에게서 더많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속을 받을때 얻는 위로는 구속에 대한 언약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의 모든 원동력은 언약속에 있는 것이다(사 55:3).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참조. 행 13:34)
(1) 우리는 우리에게 용기를 줄수 있는 약속의 진실성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가. 주께서 이상중에 주의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19절). 여기에서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이상중에 나단 선지자에게 주어졌다(삼하 7:12-17).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그들의 왕이었을때(18절) 그는 다윗을 그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 언약은 어떻게 맹세되고 비준되었는가(35절).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그의 맹세는 한번으로 족하다. 그는 다윗과 같이 두번씩이나 맹세할 필요가 없다(삼상 20:17). 그것은 그의 말씀과 맹세가 변치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2) 약속을 받는 사람이 선택된다(19,20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왕이었으며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다윗과 그리스도는 모두 하나님의 왕들로 불린다(2:6). 다윗은 백성 중에서 선택된 강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사 사무엘로하여금 그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될수 있다.
1) 그는 온전히 구원하실수 있는 강한 능력을 지닌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사랑도 많으신 분이다.
2) 그는 우리가운데 한사람인 동시에 우리 뼈중의 뼈로서 백성들로부터 선택되었으며 혈과 육을 통해 우리와 함께하신다.
3)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내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구세주이시다.
4) 하나님께서 그에게 도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교회의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임명하시고 권능으로 옷입히시며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실리시며 자신의 우편에 두심으로써 그를 높이셨다. 그러므로 그는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부은 자로 불리고 있다.
(3) 선택된 자, 곧 예표인 다윗과 원형인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에 대해 주어진 약속은 무엇인가.
1) 왕이면서 하나님의 종으로 선택된 자에 관련된 약속.
① 하나님께서는 그 선택된 자가 일을 수행할때 그의 곁에 계시면서 힘을 주실 것이다(21절). "내 손이 저와 함께할뿐 아니라 약속으로 저를 견고케하리라. 그리고 내팔도 그를 힘있게하여 그가 모든 어려움들을 감당할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
② 그는 그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을 것이며 그들은 그를 침해하지 못할 것이다(22절).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짊어진 빚의 보증인이 되셨다. 사단과 사망은 그 사실을 통해 그를 대적할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행하셨으므로 사단과 사망은 그러한 그리스도의 뜻을 막을수 없었다. '이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도다'(요 14:30). 내가 저의 앞에서 그 대적을 박멸하며. 이세상의 통치자들은 추방되고 지위와 권세도 빼앗기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망 자체를 종식시키고 음부도 멸망시키실 것이다(호 13:14).
③ 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저와 함께하리니(24절). 하나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다윗과 함께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끊임없이 긍휼을 베푸셔서 자신의 신실하심을 입증하셨다. 하나님의 성실함과 인자함은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약속했던 모든 것을 이행하셨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긍휼과 성실함이 그리스도와 함께있으면 또 그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예"와 "아멘"이 되었다. 그러므로 불쌍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성실함과 긍휼로 인한 유익을 바란다면 그들은 그 유익이 그리스도와 함께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그 유익을 구해야할 것이다(28절). 저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구히 지키고. 그리스도의 중재로 이루어진 통로속에서 하나님의 모든 선은 영원히 흐를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로 흘러오듯 하나님의 약속도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확실히 주어진다. 저로 더불어 한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맺은 구속의 언약과 우리와 함께 맺은 은혜의 언약을 모두 굳게 세우실 것이다.
④ 그의 왕국은 크게 확장될 것이다(25절). 내가 또 그손을 바다위에 세우며 오른손을 강들위에 세우리니. 하나님께서는 바다와 바다의 섬들도 지배하시고 또 강으로부터 물을 얻는 내륙지방도 지배하실 것이다. 다윗 왕국은 그 국토가 대해(지중해)와 홍해와 애굽의 강과 유브라데강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25절 말씀은 메시야 왕국에서 완전히 성취된다. 즉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계 11:15) 될때 그 말씀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아들로 곧 장자로 인정하실 것이다(26,27절). 이것은 솔로몬에 관한 나단의 메시지 중에서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삼하 7:14) 한 말씀에 대한 설명이다. 여기에서 솔로몬에 관한 나단의 메시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부자관계를 설명하는 이유는 솔로몬도 다윗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전형이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자관계는 양자에 의해 인정될 것이다.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하리로다. 그리스도께서도 육신을 입고 계셨을때 이처럼 행하셨다. 그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음으로써 우리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인 하나님께 간청하도록 가르치셨다.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셔서 만유의 후사가 된것은 그리스도의 특권이다(골 1:15;히1:2,6).
2) 그의 후손에 관한 약속 : 하나님의 언약은 항상 그 언약을 맺은 사람의 자손에게도 효력을 갖는다(29,36절). 그 후손을 영구케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그 후손과 함께 그의 보좌도 영구케한다. 그런데 이 말은 그리스도나 다윗에게 적용됨에 따라 달리 이해된다.
① 이 말을 다윗에게 적용시킬 경우 그 후손은 그의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왕과 유다의 후대왕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 후대의 왕들이 점차 타락할 경우가 가정되었는데 그렇게 될경우 그들은 하나님께 책망받을 것을 각오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타락할지라도 그들은 왕위를 이어받게될 것이다. 이 내용은 나단의 메시지중에서 언급된다.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징계하려니와 내 은총을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삼하 7:14,15). 다윗의 후손과 보좌는 이와같이 영원토록 지속될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가 오실때까지 계속 이름을 떨치는 가문으로 남았다(참조. 눅 1:27;2:4,11).
② 이 말을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킬 경우 그 후손은 그의 신하들, 곧 모든 신도들로서 하나님이 그에게 준 그의 영적인 후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히 2:13). 이것이 바로 영원토록 지속하게될 후손이며 그리스도의 보좌는 그들가운데, 다시말해서 마음의 교회가운데, '하늘의 날과 같이' 존속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세상끝날까지 그를 섬기고 영광스럽게 할 백성을 소유하실 것이다. '그가 그 씨를 보게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사 53:10). 이처럼 그리스도의 보좌와 왕국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한 신하들가운데서도 많은 잘못이 있을수 있다. 그의 자녀들은 태만하여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30절) 범죄하며 그의 율례를 깨뜨릴수 있다(31절). 교인들의 마음속뿐 아니라 교회속에도 많은 악들이 있다. 그들이 잘못을 범할경우 그 잘못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아야한다는 점이 본문에 나타난다(32절).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그들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해도 죄를 범하면 그들은 그 죄에 대한 문책을 받게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그 죄로 말미암아 어떤 고난을 받게되는지 살펴보자.
첫째, 그 고난은 도끼나 칼이 아닌 지팡이로 의한 고난이다. 그 고난은 멸망시키는데 목적이 있지않고 잘못을 바로잡는데 목적이 있다.
둘째, 그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손에 들린 지팡이와 같다.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피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릴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은 그외의 것으로 그들의 범과를 다스리지는 않으신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모든 징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성한 약속과 맹세로인하여 확고하게 존속된다(33절).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고난을 당하는 것은 언약을 사랑하는 것과 일치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언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계속 자기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은 그리스도를 인함이다. 그에게는 우리에게 베풀 긍휼이 충분히 많이 있다.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33절). 내가...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35절).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여기에서 하나님이 언급하고 맹세하신 내용은 하나님께서 해와 달이 하늘에 떠있는한 이세상에다 교회를 두시겠다는 것이다(36,37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자손은 세상이 존속되는한 영원토록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서 확증될 것이며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을때 하나님 아버지의 궁창에서 빛나는 빛으로 확증될 것이다.

Ⅴ. 하나님께 대한 탄식 89:38-52
(1) 다윗 집안이 겪고있던 참상에 대한 슬픈 호소가 나타난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참상이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에 비추어 볼때 이해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주께서는 주의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으시리라 말씀하셨으나 물리쳐 버리셨나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약속과 조화시키는 것이 어려울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지 결코 그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1) 다윗 집안은 하나님께 관심을 갖지않았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기뻐하셨으나 이제는 그에게 노를 발하신다(38절).
2) 다윗 집안의 영광은 사라지고 티끌속에 파묻혀 버렸다. 주께서...그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으며(39절).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의 왕관은 항상 신성하게 여겨졌었다.
3) 다윗 집안은 아무런 보호도 받을수 없이 노출되어 그의 모든 이웃들로부터 약탈을 당했다(40절). 주께서...저의 모든 울타리를 파괴하시며 그 보장을 훼파하셨으므로. 여기에서 '저의 모든 울타리'란 그들을 지켜주던 모든 것들과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통하여 보호해주는 울타리를 말한다.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그 이웃에게 욕을 당했다. 그 이웃은 그가 심히 큰영광의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을 볼때 개가를 불렀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재난을 더욱 가중시켰다(42절). 주께서 저의 대적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이것은 곧 "주께서 그 대적들에게 힘을 주셨을뿐 아니라 그들로하여금 그 힘으로 그를 짓밟게 하셨나이다"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4) 다윗 집안은 그들의 고난을 스스로 극복할 능력이 없었다(43절). "주께서 저의 칼날을 둔하게 하시고 무디게 만드시사 저로 아무것도 벨수 없게 하셨나이다. 설상가상으로 주께서는 날카로운 정신도 둔하게 하사 그의 용기도 없애버리셨으며 그로하여금 전장에 서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5) 다윗 집안은 불명예를 당할 처지에 놓여있었다(45절). 그 소년의 날을 단촉케 하시고. 이 말은 이 시편이 르호보암왕때에 기록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르호보암왕의 시대에 다윗 집안은 이스라엘 왕국이 아직 초창기에 머물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노쇠현상을 나타내며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의 후손들은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으므로 결국 수치를 당하고 그들의 가문이 누렸던 영광을 죄로 물들게 하고 말았다. 우리는 교회의 행복을 외적인 것으로 대치시키고 그 외적인 것으로인하여 실망을 느낄때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나라가 이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2) 시편 기자는 다윗 집안의 이러한 참상에 관하여 하나님께 매우 감동적으로 간언하였다.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46절). 그들을 가장 슬프게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오랫동안 흑암속에 내버려두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시자 그들에게는 영원한 밤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주께서는 자신을 영원히 숨기고 계시나이다." 시편 기자는 인생이 짧고 허무함을 호소한다(47절).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나는 주의 강한 진노를 견딜만큼 강하지도 않고 오래살수도 없사오니 주의 긍휼을 받아야만 하나이다."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할수도 있다. "주께서는 아담의 모든 자손들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나이까." 만일 49절에서 언급된 '이전 인자하심'이 잊혀진다면 인간은 진정 헛되이 창조된 것이다. 인간이 죽을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할때 죽음 저편에 미래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이 헛되이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하지않을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아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짧다는 이유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헛되이 창조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헛되이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인생의 날이 적은 사람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늘나라에 갈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않거나 기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헛되이 창조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들에게 있어서 헛되이 창조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죽음의 보편성을 호소하고 있다(48절).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왕이라해도 죽음에서 면제되지 않나이다. 주여 왕도 죽을수밖에 없사오니 그의 모든 생애가 불행해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소서. 그리고 그의 때가 올때까지 불행하게 죽어가는 생명처럼 그를 음부의 손아귀안에 넘겨주지 마소서."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사는 죽은 저편에 있는 행복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죽을때 영원한 거처로 영접될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시편 기자는 이제 하나님이 그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친절을 근거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49절).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주의 약속을 이행할수 없나이까." 우리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실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가 선택하고 언약을 맺은 사람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다. 시편 기자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가 모욕을 당하는 현실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50,51절). "이처럼 우리를 비난하고 있는 그들은 주의 대적들이니이다. 그런데 주께서는 그와 같은 자들을 물리치러 나타나지 않으시겠나이까? 그들은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행동을 훼방한 것이로소이다." 그들은 왕이 통치하는 과정에서 취한 모든 조처를 비난하였고 그의 모든 행동거지를 탐지하였다. 우리가 만일 이 말을 그리스도 곧 여호와의 메시야에게 적용시킬경우 그들은 메시야가 빨리 오지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을 비난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오실 자'로 불렀다. 그러나 그가 오지않자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그는 결코 오지않을 것이며 그를 보는 것에 대해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이처럼 슬픈 하소연을 하고나서도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있다(52절).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렇듯 그는 대적들의 비난을 감수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욕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이와같이 그는 하나님께 품었던 그 자신의 불평을 수정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불평을 늘어놓기전에 이 시편의 서두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내용으로 시작했고 이제 찬송으로 이 시편의 결론을 맺고있다.

# 핵심
89:1-52
기쁨으로 시작하여 탄식으로 마치는 내용이다. 중심소재는 다윗언약(삼하 7:4-17)이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통하여 다윗의 후손들이 순종하는한 그 왕권을 영원히 지속시킬 것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거역했다. 다윗왕가 왕들의 끊임없는 불순종때문에 유다왕국은 주변 이방나라들의 침략에 시달리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본시편의 저작배경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하지만 유다왕국이 이민족의 침입으로 풍전등화의 위기를 당할때 작시되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시인은 다윗언약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 묵상
언약의 확실한 보증 ( 89:1, 2 )
시인이 언약의 확실한 보증으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이었지만 그 인자하심과 약속의 신실하심을 따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역사로 증명된 주의 사랑과 변치않는 신실하심은 약속에 대한 분명한 보증이 되고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홍해 도하사건 ( 89:9, 10 )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넌 사건이 이스라엘 신앙의 모토가 된 이유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바다도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었고, 거대한 괴물 애굽도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되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어려움을 만날때마다 출애굽 구원을 회상하고 하나님의 권능에 찬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통치의 차이점 ( 89:14-17 )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의 통치와 다른 점은 하나님은 억압하는 폭군이 아니라 의와 공의를 기초로 통치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은 주안에서 기뻐하고 높아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는 모든 성도가 자랑하고 의뢰할만한 힘의 원천이 됩니다.
하나님과 언약한 이스라엘 ( 89:38-51 )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신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이 언약관계는 이스라엘 백성이 선하거나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때문입니다. 오늘날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적자녀라 칭함받게된 사람인 성도들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고전15:10).
언약백성의 명예가 상실된 증거 ( 89:45 )
언약백성의 명예가 상실되었다는 증거는 이스라엘과 그 열왕에게 닥친 위기가 그것입니다(왕하25:29). 영원한 왕권을 약속받은 이스라엘은 범죄함으로 일찍부터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을 떠난 인생, 나라는 무력하고 비참해지는 것입니다(대하12:1-8).
시인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 ( 89:46-51 )
언약파기의 결과로 야기되는 심판을 언급한 시인은 하나님께 이전에 하셨던 맹세를 친히 기억하셔서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현재 그는 거의 죽음직전에 다달았고, 심지어 원수의 비난까지 받고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에 처한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던 것입니다. 즉 재난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46절), 인간의 생명이 지극히 짧은 것과 죽음의 확실성에 대해(47, 48절),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셨던 언약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며 영원히 다윗의 자손들에게 인자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고, 다윗은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기대했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자랑하라 (시 105:1~15)  (0) 2020.10.02
시편 90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8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7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6편 - study  (0) 2020.09.27

# Study

Ⅰ. 시편 기자의 영적인 압박감 88:1-9
본문의 처음구절은 이 시편 전반에 걸쳐서 위로의 내용을 지닌 유일한 말이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는 그의 탄원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을 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은 비록 현실이 어렵긴해도 나는 구원을 얻기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구원의 장본인이신 하나님께 의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1)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과거에 기도했다는 사실로 위로를 얻었으나 그가 열심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계속된다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 "나는 주의 긍휼이 미치지 않을까하는 경건한 두려움으로 주를 붙들었고, 주의 긍휼을 얻으려는 자로서 주께 부르짖었으며(1절), 주를 향하여 나의 두손을 들었나이다"(9절). 그는 매우 자주 끊임없이 기도를 했다.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9절).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1절).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또 그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기대했다(2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사 주께 열납되도록 해주소서."
(2) 그는 슬픔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 시편속에 묘사된 시편 기자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예표로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부르짖는다.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3절).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도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지금 내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요 12:27). 또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사오니. 이에 대하여 그리스도도 이 시편 기자처럼 '내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6:38).
(3) 그는 자기 자신을 마음이 슬픔으로 인하여 찢겨 죽어가는 사람으로 간주했다(5절). 사망자 중에 던지운바 되었으며 살육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주께서 더이상 기억지 않고 방치해두는 죽은 시체로 여겼다. "주께서 나를 가장 '깊은 웅덩이' 속에 두셨으므로 내처지와 내심령이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방황하고 있나이다"(6절). 선한 사람들도 이와같이 우울증과 약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을 받을수 있다.
(4)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하소연했다(7절).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만일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수 있었다면 그는 고통을 훨씬 가볍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큰고통을 당하고 있었기때문에 거의 파멸상태에 이르렀다.
(5) 그는 친구들로부터 소외된 것때문에 더 큰고통을 받았다. 고난을 당할때 우리를 사랑하고 동정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상당한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선한 사람은 그러한 사람조차 없었다(8절).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주께서 나로하여금 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게 하셨나이다. 그들은 나와 함께있는 것을 부끄러워할뿐 아니라 싫증을 내며 경멸하고 혐오하기까지 하나이다."
(6) 그는 그의 처지를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비참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갇혀서 나갈수 없게 되었나이다. "나는 죄수와 같이 갇혀서 어디로도 달아날수 없게 되었나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한다(9절). 곤란으로 인하여 내눈이 쇠하였나이다. 그러나 너무 비탄에 젖어서 기도하는 일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우리는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 내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두손을 들었나이다.

Ⅱ. 시편 기자의 겸손한 탄원 88:10-18
(1) 시편 기자는 현재 자기가 처해있는 비참한 처지에 관하여 하나님께 간언을 하고 있다(10-12절).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를 보이사' 다시 살리실 것이니이까? 이미 죽어서 매장된 자들로 주를 찬양하도록 일으키시겠나이까? 육신을 떠난 영혼은 진실로 하나님의 기사를 알고 하나님의 신실함과 정의와 인애하심을 드러낼수 있지만 죽어있는 육신은 그렇게 할수 없나이다. 그들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도 없으며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수도 없나이다." 그는 이제 신속하게 구원을 받기위해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운다. "여호와여 주는 선하시고 신실하시며 의로우시니이다. 이러한 주의 속성들은 나를 구원하심으로써 모두 알려질 것이오나 만일 서둘지 않으시면 나를 구원하기에 너무 늦고 말 것이니이다."
(2) 자기의 구원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그는 기도를 계속하기로 결심한다(13절). "내가 주께 여러번 부르짖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위로를 얻었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계속 주께 부르짖을 것이니이다. 그리고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께 도달할 것이니이다." 그는 어떻게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라고 말할수 있었는가? 이것은 그가 일상적인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겠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나는 긍휼의 기미가 보일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날이 새기 전에라도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기도로 직접 나아가리이다."
(3) 그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을 정해놓는다. 그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설득한다(14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버림받은 자처럼 대할정도로 내가 주를 진노케 한것이 무엇이나이까? 어찌하여 나와 다투시려는지 나로 알게하소서."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는 것만큼 하나님의 자녀를 슬프게 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버리는 것만큼 그를 두렵게 하는 것도 없다. 태양이 구름에 가리우면 땅은 잠시 어두움속에 묻히고 말것이지만 만일 그 태양이 땅을 포기하여 그 빛의 공급을 영원히 중단해 버린다면 그보다 더 무서운 지하 감옥이 어디에 있겠는가! 시편 기자는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하고 있다고 표현한다(15절). 그는 이 본문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밝히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포, 곧 그의 맹렬하신 '진노'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진노로인하여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으며 황망하게 되었나이다." 주의 두렵게 하심이 나를 끊었나이다(16절). 그 두려움은 그의 이성을 거의 마비시켜 놓았다. 내가...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때에 황망하였나이다(15절). 이런 현상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있었다. 내가 소시부터...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때에 황망하였나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우울한 생각으로 괴로워하였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고자 하는 자들은 때때로 이런 종류의 고통을 통해 단련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수행할수 있도록 예비된다. 그는 어떤 친구에게서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18절).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신앙 다음으로 위로를 주는 것은 우정과 교제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에서 친구가 없다는 것은 거의 위로를 받지 못하고 사는 것과 같다.

# 핵심
88:1-18
여러 비탄시들 중에서도 가장 애절하고 비통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편이다. 시종일관 고통과 탄식으로 가득하다. 대부분의 비탄시들은 고통을 토로하다가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소망을 피력하거나 마지막에 가서는 감사와 찬양을 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본시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시인이 보여주는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 암담한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는 사실이다. 죄악이 만연한 세상속에서 성도들도 때로는 모진 고통을 겪지만, 고난당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큰위안과 소망을 얻는다(빌 3:10).
희망을 잃지않는 삶(88편)
시편 기자는 인간이 느낄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절망적인 상황을 겪으며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 시편은 고통을 호소하는 다른 시편과는 달리 마지막이 찬양이나 확신 또는 소망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마지막에도 여전히 위로도 없고, 고통에서 구원받지도 못한 참담한 상황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그의 신앙이 있다. 비애와 절망의 감정을 어찌할수 없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가장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

# 묵상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인의 상황 ( 88:3-5 )
하나님께 부르짖는 지금은 죽음의 지경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외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못한 비참한 신세였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능력에 찬 돌보심을 받지못한 처지임을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확신하며 사모하는 자 ( 88:10-18 )
시인은 환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간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탄식중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도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호소하는 자의 간구를 끝까지 외면치 않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잊음의 땅 ( 88:12 )
무덤을 ‘잊음의 땅’이라고 한 이유는, 무덤이 이생의 일과 완전히 단절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죽음과 동시에 이생에서의 주님을 향한 봉사와 끊어지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건강할때 주를 위해 헌신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90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9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7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6편 - study  (0) 2020.09.27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1~8)  (0) 2020.09.23

# Study

Ⅰ. 하나님의 성전의 영광 87:1-3
어떤사람들은 이 시편의 처음구절을 표제의 일부로 여긴다. 왜냐하면 이 시편은 거룩한 산을 찬양하는 시, 곧 노래이기 때문이다. 성전은 바로 모리아 산위 시온에 세워졌었다. 성전을 찬양하는 대목에서 다음 세가지 사실을 알수 있다.
(1) 성전이 거룩한 산위에 세워졌다(1절). 성전은 높은 곳에 세워졌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설 것이요'(사 2:2). 성전은 영원한 산과 언덕위에 견고하게 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산들이 떠나고 언덕이 옮겨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화평의 언약은 취소되지 않을 것이며 교회는 바로 그 언약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사 54:10). 거룩함은 바로 교회의 힘이며 견고한 기반이다. 이것이 교회를 지탱해주고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줄 것이다. 다시말해 교회가 서있는 산은 거룩한 산, 곧 하나님의 언약인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특별히 사랑하신다(2절).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갈대아 역본에는 시온의 문이 '가르침의 전의 문'으로 되어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나, 그밖에 야곱의 자손들이 살고있는 다른 어떤 거처보다도 성전을 더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3) 하나님께서 성전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다(3절).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대하여 직접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대하 7:16). 그러나 복음교회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욱 영광스럽게 언급되어 있다. 복음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의 피로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교회는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이고 거룩한 나라이며 왕같은 제사장들로서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Ⅱ. 시온의 영광 87:4-7
여기에서는 시온이 다른 곳과 비교되어 그들보다 더나은 곳으로 언급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의 열방들보다 더 영광스럽고 뛰어나다.
(1) 다른 장소에도 각자의 영광이 있다(4절).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여기서 라합은 애굽을 의미한다. "이곳저곳에서 원주민가운데 지식과 덕이 뛰어난 유명한 사람이 나타나 참된 하나님께 개종하여 경배를 드리게 되리라." 그러나 어떤사람들은 이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여 하나의 예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한다. "내가 애굽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들과 같이 여기리라.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할때 나는 그들을 나의 백성 이스라엘로 간주할 것이며 또 그들을 시온에서 다시 태어난 자들로 인정하여 참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시온의 특권을 값없이 부여해 주리라." 그러므로 '나그네와 외인들도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된다(엡 2:19).
(2) 시온의 영광이 여러면에서 그 모든 곳의 영광보다 더뛰어나다는 것이 입증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제까지 애굽이나 바벨론에서 나온 어떤자들보다 더 하늘에서 귀히 여김을 받고 땅에게는 축복이 될만한 위대하고 선한 사람들, 곧 선지자와 왕들이 수없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다. 이사람 저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혹자는 이것을 시온 근방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리스도로 이해한다. 유대 나라가 누린 영광중에 최고의 영광은 그리스도가 그들가운데 육신으로 오셨다는 사실이었다(롬 9:5).
2) 시온의 세력이 전능자의 권능에 의하여 강화되고 확정될 것이다. '지존자'가 친히 영원한 토대위에 '시온'을 세우실 것이다. 아무리 국가적으로 격동과 혁명이 일어나고 또 천지가 진동을 한다해도 이 시온은 흔들리지 않고 존속될 것이다.
3) 시온의 아들들은 존귀한 자로 등록될 것이다(6절).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민족들을 등록하신다는 것은 그들을 그의 신하로 삼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신하는 그 출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즉 먼저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남으로써 하나님의 신하가 되고 그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신하가 된다.
4) 시온의 노래들은 기쁨과 환호속에서 불려질 것이다.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7절). 하나님이 시온에서 기쁨으로 섬김과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곧 시온의 큰 영광이었고 동시에 복음교회의 영광이기도 하다. 그의 일은 흔쾌히 행해졌다(참조. 68:25). 시온아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 핵심
87:1-7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루살렘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세상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리라고 하는 복음의 세계적인 비전을 예언하고 있다. 이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성취되었다(엡 3:6).

# 묵상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 87:1 )
견고한 터전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란 문자적으로 시온산에 세워질 성전을 가리킵니다. 이 거룩한 성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약속의 땅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도성은 장차 구원받은 무리들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도성은 신약의 교회와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예표한다고 하겠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9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8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6편 - study  (0) 2020.09.27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1~8)  (0) 2020.09.23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49:1~9)  (0) 2020.09.20

# Study

Ⅰ. 겸손한 간청 86:1-7
이 시편은 '다윗의 기도'라는 표제로 기록되었다.
(1) 다윗의 간구 :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 25:1). 기도를 드릴때면 언제나 우리의 영혼은 믿음과 거룩한 소망의 날개를 달고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한다.
1)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1절).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보잘것없는 피조물과 우리의 기도와 같이 결점이 많은 기도를 기꺼이 주목하신다는 것은 그가 놀라울정도로 겸손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특별히 보호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2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영혼을 손상시키는 악하고 위험한 일과 죄에서부터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영혼을 보존하사 나를 구원해주소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원코자하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실뿐 아니라 그들이 천국에 이를때까지 보호해주실 것이다.
3)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동정의 눈으로 보아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3절).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긍휼도 베풀지 않았나이다. 그리고 저는 긍휼을 받을 가치가 없나이다. 그러나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4)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내적인 위로로 채워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4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영혼을 기쁘게 할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시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종된 자들이 해야할 의무인 것처럼, 믿음안에서 기쁨과 화평을 누리며 기도를 하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기도는 바로 영적인 기쁨을 낳게하는 산파와 같다.
(2) 이 간구를 강조하기 위하여 다윗이 택한 이유들.
1) 다윗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유로 내세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나는 주께 나 자신을 바쳤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주의 종이니이다"(2절).
2) 그는 자신이 받고있는 고통을 이유로 내세운다.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1절).
3) 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이유로 내세운다(5절). "주는 선하시므로 내 영혼이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4)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속에 이루어주신 한 역사를 이유로 내세운다. 이 선한 역사를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징표를 받을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었다.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그는 교만과 허영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 말을 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한 주를 위하여 따로 두셨나이다 따라서 비록 세상에서는 곤고하고 궁핍하나 믿음으로 부유한 자니이다. 내가 매일 주께 부르짖을뿐 아니라 종일 부르짖나이다"(3절). 고난을 당하여 기도의 바퀴가 굴러갈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바퀴가 계속 굴러가는 것을 발견할때 그것은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지 않더라도 그 바퀴들은 계속해서 굴러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지간에 나는 환난날에 주를 찾아 나의 문제를 주께 맡기리이다. 이는 오직 주만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Ⅱ. 탄원과 찬송 86:8-17
다윗의 기도가 계속 이어진다.
(1)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8절). 이는 이방인들이 예배를 드렸던 신들이나 천사들이나 세상의 모든 왕들중에서 주와 같은 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토록 현명하고 강하며 선한 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의 행사와 같음도 없나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의 부정할수 없는 근거가 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인 동시에 모든 찬양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다(9절). "주께서는 한 피로 모든 열방을 만드셨나이다. 그들은 모두 주께로부터 생명을 얻으며 끊임없이 주께 의지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이니이다." 메시야 시대에 이르러 이 구절은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열방이 주앞에서 경배를 드릴 것이니이다. 이는 열방의 왕이신 주께서는 '광대하시고' 주의 통치는 절대적이며 그 증거로 주는 '기사를 행하시기' 때문이니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비슷한 자나 비교할 자가 전혀없는 홀로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인간은 매우 악하고 천하다(14절).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15절). 인간은 강포하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며 인간은 거짓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다. 하나님은 동정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그 안에서 긍휼이 심판을 이기고 기쁨을 누린다. 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에 가장 큰관심과 기쁨을 얻는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주를 찬송하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건 나는 주를 나의 주뿐만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찬양하리이다. 살아있는 동안 주를 찬양할 것이며 영영토록 주를 찬양하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찬양드리기로 결심한데에는 다음과 같은 선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라.
(2) 그는 하나님께 긍휼과 은총을 열심히 간구한다. 그는 원수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끊임없고 무자비한 악의를 보이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14절). "그들은 교만하고 강포한 자들로 폭동을 일으켜 나를 치려고 일어나나이다. 그들은 나를 밀어내서 죽이려고 계획하오니 주여 그들에게 나타나 물리쳐 주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의 원수일뿐 아니라 주의 원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니이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청원을 하고있다.
1)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청원한다(11절). "주여 나에게 주의 길, 곧 주께서 나로하여금 걸어가도록 정해주신 길을 가르쳐주소서. 그에 대하여 내가 의심할때 행해야할 바를 분명히 알게해 주소서. 이것이 길이라고 말하는 주의 음성을 내가 듣도록 하소서."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이것을 "주의 진리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길에 행하오리니"로 고쳐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우리가 선택해서 걸어가야할 길은 결국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119:30). 그리스도는 곧 길이며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배우고 그안에서 걸어야 한다.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나로하여금 진실한 신앙을 갖게 하소서. 외식하는 자는 두마음을 품고있으나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온전히 한마음만 품게하소서. 곧 내마음이 세상과 하나님을 향하여 둘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도 않게하소서."
2)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징표를 청원한다(16,17절).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세가지 내용을 기도드리고 있다.
① 그는 하나님께서 화평과 위로의 말씀을 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내게로 돌이키소서."
②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여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을 기도한다. "내가 나 자신을 도울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소서. 나를 파멸시키려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을 얻을수 있도록 내게 주의 힘을 발휘하소서."
③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성을 주시도록 기도한다.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나로하여금 주가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운데 일부를 그 실례로 삼을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나를 증오했던 일을 부끄러워할 것이니이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나를 도우시고 위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때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는 이유를 알게 되나이다."

# 핵심
86:1-17
시편 제3권에서는 유일한 다윗의 작품이다. 심한 어려움에 처해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이다.

# 묵상
다윗의 고난을 통한 교훈 ( 86:1-17 )
다윗이 고난에 처하여 구원을 간구하는 모습은 비록 의인이라 할지라도 이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언약을 받은 자요, 일국의 왕으로서 영화를 누렸던 자입니다. 다윗은 죽을지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소망을 잃지않는 불굴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고난에 처했을때 취해야할 자세 ( 86:5-17 )
고난에 처했을때 성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심을 믿고(5절), 인간의 죄를 사해주심을 확신하며(5절),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야 합니다(15절). 성도들이 환난이나 고난가운데 있을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야말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자세입니다.
대적과 맞설수 있는 힘의 근원 ( 86:16 )
대적과 맞설수 있는 힘은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으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권능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의지할때 우리는 대적을 온전히 물리칠수 있습니다(엡6:10).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8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7편 - study  (0) 2020.09.27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1~8)  (0) 2020.09.23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49:1~9)  (0) 2020.09.20
시편 85편 - study  (0) 2020.09.13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편 121편 1절~8절]
1절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절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절 -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절 -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절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절 -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절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절 -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7편 - study  (0) 2020.09.27
시편 86편 - study  (0) 2020.09.27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49:1~9)  (0) 2020.09.20
시편 85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4편 - study  (0) 2020.09.13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49편 1절~9절]
1절 -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2절 -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시온의 주민은 그들의 왕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지어다
3절 - 춤 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4절 -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5절 -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6절 -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7절 - 이것으로 뭇 나라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8절 - 그들의 왕들은 사슬로, 그들의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9절 - 기록한 판결대로 그들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6편 - study  (0) 2020.09.27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1~8)  (0) 2020.09.23
시편 85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4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3편 - study  (0) 2020.09.13

# Study

Ⅰ. 환난당할때 드리는 기도 85:1-7
매우 비천하고 연약한 처지에 놓여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기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방법을 배운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1-3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땅에 자비를 베풀어주셨으며 자신의 소유처럼 그땅에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1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한 죄과대로 그들을 대하지 않으셨다(2절). "주께서는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주의 공의대로 그들을 처벌하지 않으셨나이다. 주께서는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그들이 포로생활을 하다가 귀환할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들의 죄악도 용서해주셨던 것이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3절). 시편 기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죄가 용서될때 주의 진노도 멈추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결케 될경우 진노를 푸시는 분이시다.
(2) 그들은 그들이 겪고있는 현재의 고난에 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은 전례를 통하여 그들에게 제시되고 있다. "주께서는 우리의 조상들을 위하여 선을 행하셨나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선을 베풀어주소서 이는 우리도 똑같은 언약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니이다."
1) 그들은 그들이 개심할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4절).
2)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의 징표들을 제거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그들의 기도방법을 살펴보면 먼저 "우리를 주께로 돌이켜주소서"라고 기도한 다음에 "주의 분노를 우리로부터 돌이켜주소서"라고 기도한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의를 드러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7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이것은 "우리로하여금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를 위하여 긍휼을 예비해두셨다는 것을 알게하소서"라는 뜻으로 기도한 것이다.
4)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편이 되어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약속하신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해주소서. 그러면 분명 주께서는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주의 섭리를 행하실 것이니이다."
(3) 그들은 그들이 현재 겪고있는 고난에 관하여 하나님께 겸손히 간원하라는 가르침을 받고있다(5,6절).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주께서는 우리의 조상들에게 영원토록 노하지않으시고 속히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그러한 주님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영원히 노하려 하시나이까?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를 다시 살려주시지' 않으시겠나이까"(6절).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자손을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다'(스 9:8). 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것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겔 37:11,12).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간구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다시 손을 펴사 우리를 모아주시지 아니하시겠나이까?"(사 11:11;시 126:1,4).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내에 부흥케하옵소서'(합 3:2).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얻는 모든 긍휼의 원천이 되신다면 그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기쁨의 중심도 되셔야할 것이다.

Ⅱ.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85:8-13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시고 훈계하신다.
(1) 일반적으로 보아 이것은 화평의 응답이다. 시편 기자는 망대위에 서서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8절) 들었다. "내 영혼아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을 받들도록 겸손하게 침묵을 지키며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내가 할말을 다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듣고 그의 거룩한 뜻을 환영하리라. 내 주께서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는가?"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조만간에 그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다. 만일 그가 외적인 화평을 말씀하시지 않는다하더라도 내적인 화평을 일으켜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말씀과 사역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것을 이제는 성령을 보내사 마음에 말씀하시고 또 기쁘고 행복한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심으로써 내적인 화평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로부터 위로를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리니 곧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실 화평을 보장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화평을 기대해야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시 망령된데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2) 여기에서는 이 화평의 응답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이 시편의 마지막 다섯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회가 큰번영을 누리리라는 밝은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포로시대이후 이스라엘 자손이 누린 화평과 번영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베풀자 그들은 마침내 그들 자신의 땅에 정착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자들이 안락하고 복된생활을 할것이라는 약속과 메시야 왕국이 세워져 크게 융성하리라는 예언과 축복으로 해석할수도 있다.
1) 가까이에 있는 도움(9절) : 진실로 그의 구원이 가까우니. 벽돌을 만드는 노역이 가중되자 모세가 왔다. 고난이 닥치자 구원도 다가온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백성들이 고난을 당할때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2) 확보된 영광 : 이에 영광이 우리땅에 거하리이다. "우리는 우리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수 있나이다. 그것은 곧 땅의 영광이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않을때 이가봇(Ichabod;비느하스의 아들,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역주) 즉 영광도 떠나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때 영광도 우리와 함께 거할 것이니이다."
3) 은혜가 서로 만남(10,11절) :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수 있다.
① 백성과 정부가 개혁된다. 긍휼과 진리가 베풀어지고 의와 화평이 함께 이루어져 누구나 정직하게 행할때 영광이 땅에 머물게 된다.
②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게된다. 백성이 하나님께로 되돌아갈때 하나님도 그들에게로 되돌아 가서 긍휼을 베풀며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사람은 이 말을 인간의 진실과 하나님의 긍휼이 만나며, 또한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화평이 함께 만나는 것으로 이해한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나면,' 즉 사람의 마음속으로부터 생겨나면(해몬드 박사의 설명) 그 진리가 자라날수 있는 토양으로서의 의(하나님의 긍휼)가 하늘로부터 베풀어질 것이다. 이것은 태양이 세상에 빛을 비춤으로써 땅의 산물들을 소중하게 기르는 것과 같다.
③ 하나님의 속성들은 메시야의 사역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께서 그의 진리와 의에 아무런 손상도 입지않은채 가련한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과 화평을 누리실수 있도록 우리의 구원은 매우 훌륭하게 계획되었다.
4) 바라는 모든 것들이 매우 풍부함(12절) :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좋은 것이라 함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좋다고 여기신 모든 것을 의미한다. 복음의 영광이 우리땅에 머물때 영광위에 영광이 더할 것이다.
5) 선한 길로 이르게 하는 확실한 안내(13절) : 의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으리로다. 곧 우리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그의 약속의 의와 성별의 의가 그의 길을 예비하기위하여 그보다 앞서 행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가 우리를 향하여 긍휼의 길로 다가오실때 그를 만나러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

# 핵심
85:1-13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유대인들의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당시(B.C. 538)에 작시된 시편이다. 징계의 손을 거두시고 새로운 은총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시 85:10절과 그리스도(85:10)
본절은 해석이 다소 힘들지만, 전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해석되어 왔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용납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지니고 계신다. 예수님이 중간에 서서 속죄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죄인에게 임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리스도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며(요 1:14),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한 관계를 맺는 역사가 일어났다.

# 묵상
항상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 85:1-3 )
본 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손길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마땅히 가야할 길을 지시하시고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 ( 85:2 )
하나님의 용서하심은 죄과를 완전히 제거하여 무죄자로 만드는 것입니다(레10:17). 또한 하나님께서는 죄가 더이상 노출되지않도록 영영히 은폐해 버리십니다(잠10:1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지우시고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우리의 죄악을 사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하심을 받은 성도는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죄를 사하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 ( 85:3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일차적으로 죄인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 심판과 진노를 거두시고 구원과 사랑을 예비하셨습니다(요3:16, 17).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1~8)  (0) 2020.09.23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49:1~9)  (0) 2020.09.20
시편 84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3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2편 - study  (0) 2020.09.13

# Study

Ⅰ. 공적예배의 즐거움 84:1-7
공적인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길수 없게된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그 어느때보다 그 의식의 가치를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1) 기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가 놀라울정도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이 장막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장막들을 언급한다. 왜냐하면 그 장막에는 백성들이 참석하는 여러개의 뜰이 있었고 그 장막자체도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성화된 사람들의 눈에는 성소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은혜스러운 심령들은 경건함과 경건한 일속에서 놀랍고 형언할수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장막은 누추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영적인 것이며 영광이 있는 것이다.
(2) 기자는 공적인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의식을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2절). 그것은 육과 혼과 영으로 바라는 간절한 열망이었으며 강렬한 바람이었다. 그는 다시 주의 장막에서 일하고 싶어서 실신할정도로 열망했다. 그러나 그가 바랐던 것은 여호와의 뜰자체가 아니라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의식은 아무쓸모도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3) 기자는 하나님의 제단근처에 둥지를 쳐놓은 작은 새들의 행복을 질투했다(3절).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이 작은 새들은 자연의 본능에 따라 다른 새들이 나무에 둥지를 치듯 제단근처에 그들의 둥지를 마련했다. 어떤사람들은, 다윗이 하나님의 집근처에 있는 건물에 이와같은 둥지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과 멀리 떨어져있는 궁전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제단근처에 있는 새의 둥지에서 살기를 원했다.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55:6). 그는 때때로 안식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참새의 날개를 바라고 있다. 그는 미지의 하나님의 뜰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참새라는 말은 작은 새를 나타낸다. 추측컨대,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할경우 많은 음악이 사용되었던 다윗시대에는 전체의 하모니를 이루기위하여 장막의 뜰주변에 새장을 달아놓고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를 길렀던것 같다. 왜냐하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104:12)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새들이 제단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자기들의 둥지를 갖고있는 것을 부러워한 것이다. 또한 다윗은 하루밤을 묵으려는 나그네처럼 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의 입에서 편안하게 지내듯이 하나님의 집에서 거주하고 싶어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이 새들의 둥지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새끼를 위한 둥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뜰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일과 명성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기도를 살펴보라. "주는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이시니이다. 가난하고 고난받는 백성이 그의 왕외에 어디에다 보호를 청할수 있겠나이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지말아야 하나이까?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나로하여금 주와 주의 제단곁에서 살게하시고, 그곳에서 죽게하소서."
(4) 기자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수종들수 있는 권리를 가진 성직자들과 백성들의 행복을 고백하고 있다. 장막주위에 거주하면서 그 반열에 따라 장막 일을 하는 성직자들, 곧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복이 있다(4절).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만일 세상에 천국이 임한다면 그 천국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가운데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 이것을 적용시켜 보면, 그곳에 거하는 천사들과 영화롭게된 성도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밤낮으로 쉬지도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처럼 항상 하나님의 집에 거하지는 못해도 자유롭게 하나님의 집에 출입할수 있는 백성들도 복이 있다(5-7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은 "주를 자기의 힘으로 삼고 의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의식을 사랑하는만큼 복을 받는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안에서 얻는 행복을 그들의 목적으로 정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모든 길을 기뻐한다. 그들은 거룩한 의식을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순종할때 생기는 어려움과 좌절을 극복하는만큼 복을 받는다(6절). 그들이 절기에 예배를 드리기위하여 각지방에서 올라올때, 그들의 길에는 메마르고 모래투성이의 계곡들이 많이 가로놓여 있다. 그들은 그 계곡에서 갈증으로 말미암아 항상 죽음의 위협을 받게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목을 축일만한 작은 구멍들을 파서 빗물을 받아놓는다. 그들은 바카(Baca)라는 말이 의미하는바와 같이 수많은 눈물골짜기를 통행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물기가 많은 골짜기들이 가로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그 골짜기는 비가 올경우 빗물이 그 샘들을 채울뿐 아니라 넘쳐흐르기까지 해서, 그들은 통과할수 없다. 그러나 물을 빼내고 도랑을 팜으로써 길을 만들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들이 편리하게 오고가게 하였다. 시장으로 가는 길뿐 아니라 교회로 가는 길도 잘 보수해놓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선한 뜻을 가지고 예루살렘 길로 나섰음을 보여준다. 하늘로 이르는 우리의 길에 바카 계곡이 가로놓여 있다해도 하나님께서 천성을 향해 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하여 마련해주신 위로들을 계속 받게된다면 그 계곡조차도 하나님의 샘이 될수 있다. 결국 자기들의 여행목적지에 도달할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7절). 저희는 힘을 얻고 더얻어 나아가. 그들은 여행의 지루함과 중도에서 겪는 난관들로 말미암아 피곤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예루살렘으로 다가갈수록 더많은 생기와 기쁨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꾸준히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은혜위에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요 1:16).

Ⅱ. 즐거움을 주는 하나님의 규례 84:8-12
(1)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간청을 들어주시고, 열납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귀를 기울여 주시기만을 기도하고 있다(8,9절). 그는 자기 자신을 '주의 기름부으신 자'로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은 주에 의해서, 그리고 주를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가지의 영광스런 칭호로 불리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곧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시고 자기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하시는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이시다.
(2) 기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규례를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궁정에 머물기를 원했다(10절). "모든 세속적인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앙적인 봉사를 할수 있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이세상의 어떤 곳에서 보내는 천날보다 나은즉 이제 내가 악인의 장막에서 군왕처럼 거하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천직에 불과한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사옵니다. 나는 악이 지배하는 장막에서 왕으로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집에서 짐꾼으로 지내기를 원하나이다. 아니 거지가 앉아있는 문지방에라도 눕기를 원하나이다(행 3:2). 그것은 아무상관이 없나이다. 하나님의 집에 머물지못하는 것보다는 그 문지방에라도 머무는 것이 좋사옵니다."
2) 하나님 자신은 그의 소망이며 기쁨이자 모든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11절). 우리는 이세상에서 흑암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그는 곧 우리에게 빛과 활기를 주며 우리를 인도하고 지시하는 해와 같은 분이 되실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세상에서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방패와 같은 분이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11절).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시는 선의와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선한 일을 뜻한다. 그리고 영화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받아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베푸신 영광과 그가 우리에게 아들의 기업으로 예비하신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롭게 하시기위한 준비로서 이세상에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며, 또한 은혜의 완성으로서 저세상에서는 영광을 주실 것이다. 은혜와 영화는 모두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이것은 포괄적인 약속이며, 성도들에게 위로를 보장해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신할수 있다. 곧 그들은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한지 않은지를 살펴보시며,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적당한때에 그것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수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우리가 여호와의 전에 갈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그 전에 계시는 여호와께 나아갈수 있다. 그리고 그안에서 우리는 복을 얻고 안락함을 누리게될 것이다.

# 핵심
84:1-12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편이다.
성전과 예배당(84:1-4)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의미를 지닌 반면에, 오늘날의 예배당은 주로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후 그리스도인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축복을 누릴수 있다. 하지만 예배당 역시 하나님과 성도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으로서 세상과는 구별되는 처소이다. 분주한 세상으로부터 예배당으로 나아갈때, 우리는 보다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날수 있다.

# 묵상
성전에 대한 감탄 ( 84:1 )
본문은 성전의 외적화려함에 대한 탄성이기보다 내적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입니다.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때 성전은 성도에게 가장 안전하고 복된 장소가 될 것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 149:1~9)  (0) 2020.09.20
시편 85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3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2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1편 - study  (0) 2020.09.13

# Study

Ⅰ. 원수들에 대한 원망 83:1-8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으며 큰고통을 당하고 있다.
(1)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위협을 받고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간구하고 있다(1절).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에게 악을 자행하는 자들을 심판해 주소서." 하나님께서는 마치 엄정한 중립을 지키면서 그들로하여금 승부가 날때까지 싸우게 하시려는 것처럼 때때로 침묵을 지키시는 경우가 있다. 그다음에 우리로하여금 다음과 같이 그를 부르도록 하신다.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주여, 우리의 두려움을 극복할수 있도록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주여, 주의 섭리를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대적을 물리쳐주소서.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의 대적들을 낙담케하소서."
(2) 그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주변에 있는 열방들이 결성한 대동맹을 깨뜨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 동맹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하여 결성된 것이지만 그것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종교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증오했기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경건한 자들을 증오했다. 저희가...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5절). 기자는 "주여 그들은 주의 원수이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의 숨긴 자를 치려고 서로 의논하고 있기때문이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숨겨놓은 자들이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하시고 그의 손안에 숨겨두신다. 그런데 열방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하기로 결심한 자들을 멸망시키려고 결심한다. 대저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2절). 그들은 야유를 퍼부으며 소란을 피우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면 안되는 것이다. "그 원수들은 큰소리치며, 말을 많이 하나이다. 주여 그들이 모든 것을 말하도록 내버려두시지 마시고, 그들에게 분을 발하며 진노하소서"(2:5).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열방들은 그들의 음모가 성공할 것을 확신하며 마치 전능자도 이길수 있는 것처럼 기고만장해져 있었다. 저희가 주의 백성을 치려하여 간계를 꾀하며(3절). 그들은 서로 다른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기 위하여는 '일심으로 의논했다'(5절). 그들은 오직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켜서 다시는 존재하지 못하도록 계획했다(4절). 가서 저희를 끊어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수많은 악인들이 내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인류속에 신앙과 같은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들은 내심으로 신앙자체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신앙이 제거되는 것을 매우 즐겁게 바라볼 것이다. '하늘에 계신 자가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 이 동맹에 참여한 열방들이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다(6-8절). 에돔 족속과 이스마엘 족속은 모두 다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있었지만 이스라엘을 대적하기위하여 동맹을 맺은 것이다. 혈연관계는 강제로 끊어놓지 않고는 어떤것으로도 끊을수 없을만큼 강한 결속력을 갖는다. '형제가 형제를 죽는데 내어주리라'(막 13:12). 블레셋 족속은 이스라엘의 옆구리에 있는 긴가시처럼 이스라엘을 매우 괴롭혔다.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8절).

Ⅱ. 예언적인 저주 83:9-18
시편 기자는 그 동맹군들이 멸망을 당하도록 기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은 오늘날 교회의 모든 대적들에게도 해당된다.
(1) 기자는 예전에 이스라엘을 대적하기위하여 결성되었던 열방들의 동맹이 패배한 전례를 들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항상 선을 베풀어주시고 그와 그들의 대적들은 항상 멸망시키는 변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저희에게도 행하소서(9절). 미디안 군대는 두려워 떨었기때문에 불과 300명밖에 안되는 기드온의 군사들에게 쫓겨 달아났었다. "하나님께서 쳐부신 시스라(가나안 땅 야빈왕의 장군)의 군대에게 하신 것같이(삿 4:15)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그들은...땅에 거름이 되었나이다(10절). 그들의 시체의 수는 적으나, 전승을 거두었던 바락의 군대에 의하여 거름 무더기처럼 쌓여졌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이 모두 멸망하게 하소서. 그들이 멸망하리이다." 기자는 예전처럼 그들의 지도자들이 멸망을 당하도록 기도하고 있다(11,12절).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12절). 이 '하나님의 목장'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우리는 가나안 땅은 아름다운 땅이며 임마누엘의 땅이라는 것을 알수 있고, 또한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이며(사 64:11), (해몬드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곳이 가축에 물건을 싣고 장사를 했던 아랍인들이 특별히 찾아다녔던 훌륭한 목장과 같은 땅이었음을 알수 있다.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같이 하시며(삿7:25),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삿 8:21)."
(2) 기자는 하나님께서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13절) 같이 만드사 그들이 잇달은 제안속에서 불확실하고 경솔한 계획을 세움으로써 파멸의 구렁텅이로 속히 빠져들도록 간구하고 있다. 어떤사람들은 곡식이 탈곡할때 사용되는 바퀴에 의하여 부서지는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멸망하게 되기를 간구한다고 생각했다. "바퀴는 끊임없이 돌지라도 그 축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검불과 같이 되게 하소서." 바람에 날리는 검불은 결국에는 담 밑이나 도랑속에 처박히고 만다. 그러나 기자는 그들이 검불처럼 바람에 날려갈뿐 아니라 불로 태워지도록 간구하고 있다. 이러한 비유들은 15절에도 나타나고 있다. 주의 광풍으로 저희를 쫓으시며 주의 폭풍으로 저희를 두렵게 하소서.
(3) 기자는 그가 바라던 그들의 혼란을 예시하고 있다(16-18절). 열방들은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치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그 수치는 결국 그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수치를 당하게됨으로써 개심할수 있는 기회를 얻을수도 있다. "그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하시고,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하소서." 우리의 대적들과 핍박자들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열심히 바라고 간구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이 회개할수 있게하시며, 우리가 그들의 개심을 위한 발판이 되는 것외에는 어떠한 어려움에 그들이 빠지지않도록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회개하려하지도 않는다면 수치를 당케하소서.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세계의 지존자로 알게하소서'라고 고백한다면 수치를 당하지 않게하소서."

#핵심
83:1-18
이방 나라들의 침략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당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는 시편이다.

# 묵상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한 주변국들의 연합 ( 83:5 )
이스라엘을 대적하기위해 주변국들이 연합했다는 것은 악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위해 연합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 세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고 공모합니다(눅23:12). 물론 그 이유는 세상 세력의 우두머리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사탄의 연합은 계속되고 있고 믿는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공격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방의 회개를 바라는 기도 ( 83:16 )
대적들로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해달라는 시인의 간구는 대적들도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초월한 사랑이 반영된 기도로, 원수에 대한 연민의 표현입니다(마5:43-47). 성도는, 죄는 용납하지 말되 인생은 불쌍하게 여길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85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4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2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1편 - study  (0) 2020.09.13
시편 80편 - study  (0) 2020.09.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