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모세의 기도 90:1-6
이 시편의 표제는 '모세의 기도'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기도를 하도록 가르쳤고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설때 해야할 말들을 가르쳤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는다.
(1) 하나님이 항상 자기의 백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1절).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의 조상들에게 보여주신 친절을 자기들에게도 보여주시도록 간청하고 있다. 가나안 땅의 장막에서 거주했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처가 되셨으므로 그들은 어디로가든 하나님안에서 편안히 머물렀다. 애굽은 오랜세월 동안 속박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피난처였다.
(2)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2절). 산이 생기기전, 곧 주께서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때에(잠 8:26), 그리고 땅이 진통을 겪기전, 곧 주께서 땅과 세계를 조성하기도 전에(곧 태초이전에) 주께서는 이미 존재하고 계셨다.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는 우리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슬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불멸성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얻을수 있다.
(3) 인간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원하시는대로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3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여기에서 시편 기자가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말한 것은 주께서 티끌로 지어진 육신을 파멸시켜 다시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사람들로하여금 그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살아가도록 촉구하신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놀라울정도로 그들의 마음을 회복시키고서 "너희 인생들은 다시 생명과 건강을 얻는 길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하나님께서 티끌로 돌아가게 할지라도 그는 다시금 "너희 인생들아 너희가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수 있는 부활의 길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4)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불균형을 인정해야 한다(4절). "천년이란 세월은 우리에게 매우 긴 기간이나이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기간 동안 살아남을수 없나이다. 그러나 그 기간도 주의 목전에는 지나간 어제와 같이 한날과 같으니이다. 아니 그 기간은 밤의 한 경점에 불과하나이다." 경점이란 세시간정도의 기간을 나타낸다. 1분과 1백만년이라는 시간 길이사이에도 어떤 비율이 성립된다. 그러나 아무리 긴시간도 영원과 비교할경우 아무런 비율을 정할수 없을만큼 작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을 기대해온지 오랜시간이 흘렀고 또 아직 부활의 때가 오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부활교리에 어긋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갖고있는 부활신앙에 어떤 장애를 받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천년은 하루와 같이 짧은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 최상의 상태에 있을때에도 인간의 약하고 헛됨을 바라보아야 한다(5,6절). 모든 인간들을 바라볼때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갈때마다 우리는 그만큼 더 죽음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인간은 홍수처럼 쓸려가고 '잠깐 자는 것같이' 살아간다. 인간은 그 자신의 약한 면을 생각하지 않는다. 잠에 빠진 자들처럼 인간은 죽음이 그들을 깨울때까지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잠에 빠진 자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알수 없다. 인생이란 아침에는 잘자라서 푸르고 아름답게 보여도 저녁에는 낫을 든 사람들에게 잘리는 신세가 되는 풀의 생명과 같이 짧고 무상하다. 풀은 시들어 버리면 그 아름다움을 모두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우리의 모습을 간단히 그것도 순식간에 바꾸어버린다. 그리고 죽음은 아주 짧은시간 동안 우리를 엄청나게 변화시킨다. 인간도 풀과 같이 그 전성기에는 번영을 누리다 황혼기에는 결국 죽고 만다.
Ⅱ. 하나님의 의로운 선고에 대한 복종 90:7-11
모세는 앞에서 인생의 약함을 한탄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앞에서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이 받은 죽음의 선고를 인정하도록 가르친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모든 불행을 겪게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노심에 놀라나이다(7절). 우리의 모든날이 주의 분노중에 지나가며(9절). 우리는 죽음을 자연적인 현상에 따른 결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본래의 순결함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와같은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대한 결과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나니'(롬 5:12).
(2) 그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8절).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이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과 불평 곧 그들이 그의 권능을 신뢰하지 않고 또 그 아름다운 땅을 소홀히 여기는 것에 대해 주목하셨다. "주께서는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모든 악행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마음의 죄들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두셨나이다. 곧 주께서는 이 죄들을 발견하시고 그 죄들을 계산해 놓으셨나이다. 그리고 그 죄들을 간과해버린 우리들로하여금 그 죄들을 돌아볼수 있도록 하셨나이다."
(3) 그들은 그들 자신을, 오래도록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닌 죽어가며 소멸되는 것으로 여기라는 가르침을 받았다(9절). 우리가 우리의 남은 연한을 아주 빼앗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일순간'에 허비해 버릴수도 있다. 그들은 광야에서 38년을 지냈다. 그들이 광야에서 38년을 지냈다는 근거는 나머지 2년간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에서 번영을 누리며 영광스럽게 살것이라는 그들의 예상은 광야에서 지루한 생활을 보내다 죽고말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것은 이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살고있는 우리들 각자의 상태에 적용될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평생을 일순간에 다 보내고 만다. 우리는 일생동안 기쁜 일도 겪고 비극적인 일도 겪으며 대부분을 기쁨과 슬픔이 섞인 상태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짧고도 무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시간에 걸쳐 행해진 일도 짧은 시간안에 다 이야기해 버릴수 있는 것이다. 1년 1년이 일순간에 지나가고 만다. 그러나 햇수가 기껏해야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의 삶이 헛되듯 인간이 누리는 생명의 연한도 기껏해야 7,80에 불과하다.
1) 그런데 이 7,80년이라는 세월은 광야에서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명으로 이해될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때 계수된 사람들은 모두 20세 이상된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은 3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을때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이 계수할때 전쟁터로 나갈수 있는 자들만을 포함시켰기 때문에 그들중 대다수는 20세에서 40세 사이의 장정들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80세 이전에 죽었고 대다수는 60세 이전에 죽은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2) 이 7,80년이라는 세월은 모세시대 이후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수명으로 이해될수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수도 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모든 범위, 곧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는 모든 년수가 오직 수고와 슬픔 뿐이라." 인간은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수 있다.
(4) 그들은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11절).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리이까. 시편 기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고 또 그 진노의 능력이 크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면서 이것을 말하고 있다. 누가 주의 진노에 대한 지식을 활용할수 있을만큼 그 진노를 알고있는가? 죄를 소홀히 여기고 그리스도를 경시하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Ⅲ. 자비를 구하는 기도 90:12-17
이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고백을 근거로 하나님께 간청을 드리는 기도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서 네가지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지시받고 있다.
(1) 그들이 고통을 당하도록 역사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거룩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에게 우리날 계수함을 가르치사(12절). 이것은 "여호와여 우리의 날이 얼마나 적으며 우리가 이세상에서 살아야할 기간이 얼마나 짧은지를 올바로 생각할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와같이 우리의 날들을 계수함으로써 우리의 일과 우리의 날들을 비교하고 더이상 소모할 시간이 없는 자들처럼 우리의 일을 갑절로 부지런히 해야 한다. 이 날들을 알고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을 얻도록 기도해야 한다.
(2)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주께서 우리와 화해하시고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13절). 우리에게 화평의 소식을 보내셔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시고 우리에게 다시 위로를 주소서. 우리는 다 주의 종, 주의 백성이나이다(사 64:9). 언제 우리를 향하여 주의 길을 바꾸시겠나이까?" 이러한 기도와 그들의 회개에(민 14:39,40) 대한 고백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는 (91장에서) 희생제사(민 15:1이하)에 관한 율법을 말씀해주신다. 이 희생제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징표였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려 하셨더면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삿 13:23)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이 다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위로와 기쁨을 얻을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14,15절).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기위하여 기도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장점을 전혀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주여 우리가 젊고 번영을 누리는 인생의 아침에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우리가 우리 자신속에서 편안히 머물도록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진노를 받으면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속에 편안히 머물수 없나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주께서 베풀어주신 처음 표적들로 인하여 잠시동안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지 마시고 비록 우리가 우리의 일생을 광야에서 보낼지언정 일평생 그 표적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소서. 주의 은혜안에서 우리의 기쁨의 날들이 주의 진노로인한 우리의 고통의 날들만큼 많게 해주시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던 날 우울했던 것만큼 즐겁게 해주소서. 이제 우리의 손에 구원의 잔을 주소서."
(4) 이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기를 기도해야 한다(16,17절).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소서. 곧 우리를 주께로 편안히 인도하시고 우리를 주께 합당한 존재로 만들기위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주의 역사를 나타내주소서. 주의 역사를 나타내시고 그안에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주의 영광을 나타내소서." 이 기도를 통해 볼때 아마도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자손들을 구별했던 것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훗날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를 통하여 이와같이 구별하셨기 때문이다(민 14:32,33).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러나 너희 자녀들은 내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여호와여 우리의 마음을 개조시키고 우리가 더좋은 성품을 갖도록 주의 행사를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이 기도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우리안에 계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의 선한 행사가 우리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로인하여 우리의 심령이 기쁨을 얻고 우리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나도록 해주소서. 그것 또한 주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이니이다."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하소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행사가(16절),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하지않아도 좋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우리의 목적이 성취되도록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핵심
90:1-17
시편에서는 유일한 모세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대비시키면서 광야에서 방랑생활을 할 운명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듯하다.
90:8절 은밀한 죄 비밀스러운 범죄. 시기심, 증오, 정욕과 같은 마음의 죄를 비롯하여 스스로 완전 범죄로 여기는 죄들을 가리킨다. 얼굴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하나님의 얼굴은 태양 빛에 비유된다(사 60:19,20). 이 표현은 인간이 숨길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범죄가 하나님앞에 낱낱이 드러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하나님의 자존성(90:2,4)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지만, 하나님은 결과가 아니시다. 하나님에게는 시작이 없기에 선행하는 원인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 또 그분은 자신안에 존재능력을 갖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와 피조물사이에 있는 차이점의 본질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구별되는 창조주로서 생명이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존재이시다(행 17:23-25).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으며, 영원히 스스로 변함없이 존재하신다.
# 묵상
하나님께서 친히 거처가 되어주신다는 약속 ( 90:1 )
시인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친히 거처가 되어주신다는 약속이 절실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거처없이 나그네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친히 영원한 안식처요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 앞에서의 인생 ( 90:6-10 )
주앞에서 인생이란 유한하고 덧없는 존재입니다(사40:7). 더구나 인생은 살아있는 동안이 수고와 슬픔의 시간입니다(전12:1). 그러나 인간이 허무한 실상을 깨달을때 자신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멈추고 창조주 하나님을 소망할수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만큼의 보상요구 ( 90:15 )
고난의 시간만큼 보상해달라는 요구의 의미는 시간에 비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족이 오랫동안 수고했고 고통을 당했으니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은혜로운 축복을 허락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회상하며 본래의 사랑을 회복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누리는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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