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권고함 107:1-9
(1)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여호와께 감사해야한다고 권고한다(1절).
(2) 그런데 다음구절은 특별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하는 말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때 이러한 권고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될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들을 각지방에서부터 "모아 하나가 되게" 하고자 죽으셨다(요 11:52;마 24:31). 그러나 이 구절은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의미하는것 같다(6절).
1)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의 나라에서 신음할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해내셨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자(2절). 이 말은 각사람의 영혼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2) 이들은 동서남북 각지방에 흩어져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하나로 되게 하셨다(3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자기의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느곳에 있는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3) 또한 그 백성은 갈길을 몰라 방황하였으며 거처할 곳을 찾지못하여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4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성에 이르게 하셨던 것이다(7절). 하나님은 그 백성이 깃들일만한 곳으로 인도해주셨다. 이 구절은 넉넉치 못한 형편으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고 볼수도 있다. 게다가 아라비아 사막은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쉬운 곳이라서 이러한 말씀이 나옴직도 한 일이다. 또한 이 구절은 사십년동안이나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생각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하는동안 굶주림으로인하여 거의 죽게 되었었다. 물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음식물로 넉넉히 채워주셨다. 오늘날에도 바로 그 하나님께서 각사람의 영혼을 인도하시고 날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돌이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것이 요구된다(8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특별히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Ⅱ. 고통중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107:10-16
본문에는 포로와 갇힌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는 갇힌 자를 가리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라고 서술해 놓았다(10절). 먼저 흑암은 아무도 돌아보는이 없이 쓸쓸하게 지내는 신세임을 의미하며, 사망의 그늘에 앉았다함은 큰위험에 직면한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뿐만아니라 갇힌 자는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을 수없이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여 필요없다고 여기거나 그 뜻을 따른다고해서 상황이 더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자는 그 도움을 받을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마음을 낮추사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히 행하게 하시려는 뜻에서 이와같은 곤고함을 겪게하신 것이다(12절). 그러므로 곤고한 지경에 빠진 자들이 해야할 일은 오로지 기도뿐이다(13절). 자유롭게 살때에는 시간을 내지못하던 사람들도 갇힌 자의 처지가 되면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하게 마련이다. 평상시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수 있다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일단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나면 그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에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3절). 하나님의 구원이라함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자유함을 주사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14절). 그 백성들의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있다면 하나님은 '얽은 줄을 끊으사' 자유롭게 해주실 것이다. 혹시 견고한 성안에 갇혀있을 경우에는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시고' 그 백성을 구해주실 것임에 틀림없다. 본시 빗장은 성문을 단단히 잠그려고 걸어두는 것인데 그것을 꺾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다시는 그 빗장을 이용하여 문을 걸어 잠그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Ⅲ. 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107:17-22
본문에서는 육신의 질병이 큰재난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하나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1) 만약에 인간이 처음부터 죄악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세상에는 질병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는 물론이요 이세상 생활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건강을 잃거나 육체의 욕망에 탐닉하다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평소에 고기에 탐닉하던 사람들도 한번 육신에 병이 들고나면 그 냄새도 역겨워하게 되기 일쑤이다. 병이든 상태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달갑지않은 것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을때에는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19절).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환자가 있거든 먼저 기도를 하도록 권해야할 것이다. 가장 절실한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도록 권해야 한다. 기도는 어떠한 고통중에서라도 구원으로 나아가게 한다.
(2) 사람이 질병을 이기고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난 자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야 한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20절). 이 말씀은 세상에 머무시는동안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적용시켜 볼수도 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깨끗함을 받으라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은혜의 성령이 오셔서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중생케하신다는 뜻으로도 볼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사 영혼의 질병을 고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섭리하심속에서 말씀으로 질병을 치유하신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활동하게 되었을때에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 보답해야 한다(21,22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마땅히 죽어야할 생명인데 더 살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찬송을 불러야할 것이다. 감사제를 드리며. 제단위에 덩그러니 제물만 올려놓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찬미해야 한다는 뜻이다.
Ⅳ. 물에서 영업하는 자를 돌보심 107:23-32
시편 기자는 바다의 큰위험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고 요구한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해상무역업에 종사하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웃한 두로와 시돈 사람중에서는 바다로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것 같기도 하다.
(1) 큰바다에 나가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권능을 실감할수 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영업'을 해야하는 선원이나 해상무역업자 및 어부는 물론이요 배를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까지도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게' 된다. 그 깊이의 무한함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민물과 달리 짭짤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까지 어느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지않을수 없다. 게다가 바닷속에 사는 생물이 어찌나 다양한지 누구든 놀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바다로 나아갈때에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유심히 보면서, 바다를 만드시고 오늘날까지 운영해오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해 찬송하도록 하자.
(2) 간혹 바다에 광풍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좇는 광풍'(148:8)에게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깊은 곳에서부터 물결을 일으킨다. 뱃길이 처음이라 무섭게 몰아치는 광풍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파도가 높아질때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할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탄 배가 집채만한 파도의 힘을 견뎌낼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사 파도를 이겨낼수 있는 배를 건조하게 하셨다. 파도가 높이 일때에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뱃사람들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얼굴 가득히 공포스러운 표정을 한채 어떻게해야 목숨을 보전할수 있을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지각이 혼돈하도다(27절). 누구든지 바다에 나가고자 할때에는 광풍의 위험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항상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기도하는 방법을 배운 자만이 바다로 나갈수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말을 바꾸어 "바다로 나가려하는 자는 모두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권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은 필요할때마다 즉각적인 도움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그들의 '지각이 혼돈할'때에도 그들의 믿음은 혼동되지 않게 하신다. 때때로 항해중에 폭풍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간구할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구원의 응답을 허락하시곤 한다. 곧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해주시는 것이다(29절). 이로써 항해하는 사람들은 다시 평안함을 얻고 목적지에 닿을때까지 성공적으로 항해를 하게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하늘가는 길을 여행할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나운 비바람과 광풍속에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고 소망의 항구에 이르는 순간까지 돌보아주실 것이다.
Ⅴ. 전능의 주 하나님 107:33-43
지금까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섭리하심을 따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시편 기자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간혹 그 섭리를 변화시키사 인간사에 갑작스러운 개혁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 또한 영광을 돌린다.
(1) 먼저 하나님의 섭리의 변화를 몇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놓았다.
1) 하나님께서는 간혹 풍부한 소출이 나던 좋은 땅을 메마른 광야로 변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로 메마른 땅이 옥토로 변하게 될수도 있다. 사실 어떤 땅을 기업으로 받는가에 따라 일생을 어느정도로 안락하게 살수 있는가 결정된다. 그런데 간혹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상하여 제대로 소출을 내지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밝혀놓았다(33,34절). 반면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풀한포기 자라지않던 땅이 옥토로 변하고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35절).
2) 궁핍한 가정이 번영하여 부유하게 되는가 하면 부유한 가정들이 순식간에 망해서 몹시 궁핍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으나 마침내 크게된 인물들 또한 많이 볼수 있다(36-38절). 이들은 처음에 '주린 자'의 처지였으나 하나님께서 좋은 땅에 거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풍성한 소출이 나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사 집을 짓고 살게하셨다. 그러나 거처할 곳이 아무리 훌륭하다하더라도 경작할 땅이 없으면 살수 없는 법이다. 이들도 역시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37절).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실때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때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의 노력을 훨씬더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면 경작할 사람이 의욕을 얻어 열심히 일하게 되는데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자에게 복을 주사 '크게 번성케하실' 것이라 하셨다(38절). 이렇게 갑자기 번성한 사람들이 똑같이 갑작스럽게 몰락하여 무일푼의 신세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39절).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 역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결과로, 한때 부귀 영화를 누렸으나 종국에는 처음 시작할 무렵과 같이 재산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것 뿐이다. 또는 이런 집안의 후손들이, 조상들이 갑자기 모아둔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림으로써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한몸에 누리던 자들이 몰락하고,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천대만 받던 사람이 존귀함을 받게 된다(40,41절). 여호와께서는...능욕을 부으시고 길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시지만 반면에 늘 어려운 가운데 살면서 남에게 짓밟히던 무리는 그 자리에서 구원받을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종국에는 높이 들리움을 받을 것이다. 한집안을 일으키시고 번창케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방백'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걸인을 멸시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기만 하면 이들의 처지는 얼마든지 뒤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먼저 고통으로 지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하여 이런 일을 일으키신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섭리하심이 어떠하든지 늘기쁨으로 받아들인다(42절).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토기장이가 흙을 주무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점과 덕이 있으나 남에게 멸시받으며 지내던 자들이 높아지고 교만한 무리가 낮아지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이세상에 심판의 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크게 위로를 받는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인으로하여금 입을 봉하게 하시려고 이같은 역사를 일으키신다. 악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기때문에 변명 한마디 하지못하고 입을 다물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제 욕심채우는 일에만 쓰다가 모조리 빼앗겨버렸으니 그 공정하신 처사에 대해서 할말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케하시려고 이런 일을 행하신다(42절). 지혜있는 자들은 이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여기서 이 일이라함은 하나님의 섭리가 운용되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침착하게 살펴보는 것은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상당히 도움을 주는 태도이다.
# 핵심
107:1-43
본시편의 정확한 저작시기는 알수 없지만, 바벨론 포로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편이다.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막을 방랑하는 자(3-7절), 감옥에 갇힌 자(10-16절), 병든 자(17-20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자(23-30절) 등으로 비유했다.
고난의 유익함(107:10-1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는 그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잘 감당하는 신앙인은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유익을 얻는다. 첫째,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운다. 둘째, 세상적인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한다. 셋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한다. 넷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한다. 다섯째,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의지한다. 여섯째, 삶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한다. 마지막으로, 고난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을 갖는다.
# 묵상
구속함을 받은 시인의 찬양 ( 107:1 )
시인은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베푸신 은혜와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택한 백성이 범죄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사 구속하고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 107:2 )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이방의 통치자 고레스를 감동시켜 바벨론의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대하36:22, 23). 이로써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멸망후 흩어져살았던 나그네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로 긴세월을 허비한후에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된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에게서 비롯되었지만 하나님에게서 해결받을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속성 ( 107:8 )
여호와의 인자는 끝이없어 영원하고(108:4), 크고 풍부하며(느9:17), 차별없이 공평하고(눅6:36), 생명을 연장해주며(애3:22, 23), 회개를 촉구하고(욜2:13), 죄를 사해주므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딛3:5).
찬양의 당위성 ( 107:15 )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취사 선택할수 있는 성도의 신앙생활의 영역이 아니라 마땅히 성도의 생활 전체로 드려야할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온우주만물을 친히 다스리는 분으로서 능력과 공의로움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인자하심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때문에 마땅히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고침받은 이스라엘 ( 107:17-22 )
중병에 걸린 것과 같았던 이스라엘이 고침받을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인자 때문이었습니다.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곧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성격 ( 107:33-43 )
하나님은 만물을 그 기쁘신 뜻대로 섭리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에 따라서 강을 광야로, 광야를 못으로 변하게 하실수 있는 주권과 능력을 소유한 분이십니다. 또한 간교하고 힘있는 세상 권력자들을 멸시하고 연약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깊이 주의하고 악인에게는 수치와 능욕을, 의인에게는 복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원리를 깨달아 준행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찬양의 이유 ( 107:33-43 )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는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권과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간교하고 힘있는 세상 지도자들도 멸하시고 연약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