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권고 113:1-9
(1) 이 노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권고로 가득차 있다.
1) 그 권고는 여러번 강조되어 있다.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1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3절).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실만하기 때문이다.
2) 또한 이 권면은 매우 광범위한 대상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들의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까닭을 지니고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이므로 그이름을 찬양한다. 그들은 우리가 할수 있는 것보다 훨씬나은 찬양을 드릴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들에게서 찬양을 받으실 분이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돋는데서부터 해지는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2,3절). 여호와의 이름은 세계만방에서 찬양을 받아야 마땅하다. 동방에서부터 서방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 선하심의 증거가 명백히 나타나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2) 본문은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하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먼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위에서 얼마나 크고 높은지를 보고 그것으로 그이름을 찬양해야 한다(4,5절). 땅위의 모든 나라를 모아놓아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위에 계실 것이다. 그 나라들이 하나님께는 마치 '통의 한방울 물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과 같다(사 40:15,17).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는 하늘위에서도 가장 높은곳에 있다. 그 영광은 하늘위에 높으시도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보좌가 천사들위에 계시다는 것을 뜻한다. 천사들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영광스런 보좌에 이를수는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천사들이 아무리 힘들여 표현하여도 그에 대해 제대로 묘사할수는 없다. 하나님은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는' 분이다. '높은 위에 앉으셨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낮아지신' 것도 역시 하나님 스스로 하신 일이다. 무엇보다도 발아래 놓인 세상을 기꺼이 인정하시는 것에서 스스로 낮추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잘 나타난다. '모든 나라'와 '하늘위에' 높으신 영광의 하나님은 작고 천한 미물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욥 36:5), 오히려 '스스로 낮추사' 천지만물을 살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완전무결하시며 자족하시되 복된 신성을 지니신 분이시므로, 그가 하늘의 군대와 땅위에 거하는 피조물을 그의 영원토록 지혜로우신 생각과 우주적인 섭리로 다스리신다는 것은 놀랍도록 겸허한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임에 틀림없다(단 4:35). 하나님께 있어서는 이들을 다스리신다는것 자체가 스스로 낮아지시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거하는 피조물을 살피시는 것이 하나님의 겸손한 모습일진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사 이땅에 오신 것은 그 얼마나 놀랍도록 겸손한 모습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땅위의 모든 피조물가운데 강하고 훌륭한 것뿐만 아니라 미물까지도 돌보아주시며 그들을 위해 자연을 지배하는 원리를 무시하사 기적을 일으키신다. 기적의 존재는 이세상이 반드시 자연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자연의 법칙은 언제나 똑같은 경로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세상은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을 즐겨 행하신다. 때로는 상식적으로 있을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7,8절).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실제로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사울은 나귀를 찾아다니다가 왕이 되었다. 다윗도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사도들가운데 몇사람도 비천한 고기잡이 신세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복음이라는 귀중한 보화가 질그릇속에 담기며, 세상의 어리석고 힘없는 자들이 복음의 전파자가 되어 '지혜있는 자들과 강한 것들이' 부끄럽게 되는 것은 이세상 권세보다도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세가 월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고전 1:27,28). 요셉만 하더라도 시련을 겪으면서 의로움을 드러내자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갇힌 그를 일으키사 '방백들과 함께 세우셨다.' 그런가하면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못했던 여인이 갑자기 임신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다. 사라를 포함하여 리브가나 라헬, 한나, 삼손의 어머니 등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신약시대에 이르면 엘리사벳의 경우를 그 예로 들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이가 없어 괴로워하는 여인들의 호소를 들으사 더이상 수치를 당하지않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가정을 이루게 해주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한집안의 가장이 취해야할 도리를 깨닫게 해주신다.

# 핵심
113:1-9
113-118편은 유월절이나 칠칠절 또는 장막절이나 월삭과 같은 축제일에 애창된 시편들이다. 본시편은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초월성을 노래함과 동시에 그분이 인간역사에 개입하여 약한 자들의 편에서 일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 묵상
주를 향한 찬양의 범위 ( 113:2 )
주를 향한 찬양에는 시간의 제약이나 공간적인 제약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를 향한 찬양은 일평생동안 지속되어야 하고, 전우주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이는 시공을 초월한 모든 피조물의 의무요 본분입니다(시150:6).
하나님의 자기 비하 ( 113:6 )
하늘위에 초월해 계신 영광의 하나님은 연약하고 미천한 인간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아버지같은 관심으로 인간을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한순간이라도 돌보지 않는다면, 이세상은 즉시 혼란과 무질서, 범죄와 악으로 파멸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빌2:1-11).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15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4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2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1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0편 - study  (0) 2020.11.02

# Study

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생활 112:1-5
이 노래의 첫구절 역시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권면으로 시작된다. 그렇지만 곧 이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찬미로 바뀐다. 이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백성들이 온전히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을 누리는 사실이야말로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이유가 된다.
(1)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일컬어지며 또 이 축복의 언약이 그대로 성취될 사람들은 누구인가?
1)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자녀가 아버지를 우러러보듯이 여호와를 경외하기때문에 무조건 두려워하기만 하는 종과는 달리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 한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는 누구나 계명을 마음판에 새겨 지키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쉽게 가벼운 멍에인 것이다. 다시말해서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뿐만 아니라 훈계마저도 즐거워하며 기꺼이 따른다는 뜻이다.
2) 그들은 또한 신실한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언제나 의로운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본문에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정직한 자'라고 하였다(2,4절). 실제로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똑같이 중심에도 선한 뜻을 품어 하나님과 사람을 대할때 마음으로부터 성실하게 행하는 자들이다. 마음이 정직하지 않으면서 참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진실로 거짓없는 마음이 복음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3)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공의로우면서도 긍휼함을 잃지않는다. 한 예로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로서 주위에 선행을 베푼다(5절). 때때로 남에게 빌려주는 것은 그냥주는 것만큼이나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할수 있다. 물론 남의 재물을 빌린 자도 열심히 일하여 정직하게 갚아야할 것이다.
(2)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마땅히 받을 축복은 어떤 것인가? 행복함이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모든 복을 누릴 것이다.
1) 선한 사람의 후손은 그 조상의 행적으로 말미암아 큰복을 받을 것이다(2절).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하나님은 참된 믿음을 지닌 가정을 일으켜 주신다. 만일 믿음을 훨씬더 높이시려는 경우가 아니면 그 믿음을 굳건히 지켜주시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주신다. 선한 사람이 하늘나라에 올라가 즐겁게 살면서 땅위에 남은 자손을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이렇게 조상들이 축복을 한다면 그 후손들은 덕택에 강성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정직한 사람의 후손이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르기만 하면 더욱더 큰축복을 받게될 것임에 틀림없다.
2) 정직한 자의 후손은 물질의 축복을 받을뿐만 아니라 그 영혼이 잘될 것이다(3절). 그 후손은 정직하게 행하는한 언제나 물질적인 부요를 누리게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질적인 부보다 영혼에 복을 받게되었다는 사실이 한층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혼의 축복이야말로 진정한 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금보다도 더소중하다. 금은 잠시 지나면 없어질 재물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영원히 함께하신다. 정직한 자의 후손이라면 부요와 재물이 있어도 그 의를 잃지않는 법이다. 이와같이 후손들은 의를 지키고, 조상들은 재물과 함께 덕행을 물려주는 집안이라면 진실로 복을 받은 가정이다.
3) 정직한 자와 그 후손은 환난날에 위로를 받을 것이다(4절).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물론 이들도 인간인지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재난을 당하기는 하나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하고 말할수 있다(미 7:8).
4) 마지막으로 이들은 매사에 지혜롭게 처신할줄 아는 복을 받을 것이다(5절). 이렇게 매사를 신중하게 처리하면서 재산을 늘리고 저축함으로써 이웃을 구제할 물질을 쌓아두는 것은 선한 사람의 특징중의 하나이다.

Ⅱ.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의 생활 112:6-10
(1) 본문에서는 의인의 생활은 흔들리지 않으며 언제나 만족하게 지낸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이것은 의인의 복이다.
1) 선한 사람들은 일생동안 좋은 평판을 들으며 살아가는 복을 누리게될 것이다. 곧 그들은 하나님과 선한 사람들사이에 좋은 이름을 얻게될 것이다.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6절). 때때로 악한 무리가 그 평판을 나쁘게하려고 온갖 궤계를 꾸미기도 하고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일도 있을 터이나 그의 순결함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특별히 의로운 행적을 남긴 인물은 이 땅위에서도 오래도록 기념될 것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이들의 의가 '영원히 기념될' 것이다. 간혹 땅위에서는 완전히 멸시당하고 잊혀졌으나 그 의로운 행적으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기념할만한 존재로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벧전 1:7). 하늘나라에서 의로운 자로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면 가난한 이웃을 도와 긍휼함을 베푸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다'함은 특별히 몇사람만 정해놓고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거나 일정한 방법으로만 선행을 베푼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재물을 흩어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2) 이로운 사람의 영혼은 언제나 평안할 것이다.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마음이 견고하여(7,8절). 마음을 여호와께 의뢰하려고 노력하고 마음의 평안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이렇게 노력하는 자의 마음을 평안케하실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굳게하심으로써 그 백성이 마귀의 궤계에 대하여 불안해하지 않도록 치료를 해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을 굳게 정하여 어떤일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으려면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방도이다.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즉 여호와를 의뢰하던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사단을 비롯하여 성도의 영혼을 대적하던 무리가 발밑에 엎드리는 광경을 보게될 것이다. 다시말해서 세상에 있을때 성도를 억압하던 무리를 보게되는데, 그날이 이르면 더이상 억압을 받는 상태가 아니므로 담대하게 원수의 얼굴을 마주볼수 있게되는 것이다.
(2) 반면에 죄인들은 몹시 고통을 당하게될 것이다(10절). 그들이 고통을 받는 가장 큰이유는 의로운 사람들이 더할수 없는 행복을 누린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도 무시하고 증오하며 망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다리면서 온갖 획책을 다 꾸몄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를 다스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는가(49:14).

# 핵심
112:1-10
111편과 같이 지혜시의 범주에 속한다. 두시편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글자를 따라 시행을 작성해 나간 답관체식 유형을 지니고 있다. 111편이 역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행위들을 주제로 삼고있다면, 본시편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 묵상
주를 경외하는 자의 특징 ( 112:1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특징중에 하나는 크게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주의 계명은 무겁고 힘든 것으로 여기지만, 진정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주의 계명으로 큰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계명이 영원한 복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14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3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1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0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9편 - study  (0) 2020.11.02

# Study

Ⅰ. 여호와의 행사가 존귀함 111:1-5
이 노래는 첫머리부터 '할렐루야'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끝까지 찬송하는 내용이 계속된다.
(1)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분명히 밝힌다(1절).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은밀한 중에서나 공개적으로나, 모임이 작거나 크거나, 우리의 가정에서나 하나님의 전에서나 항상 찬양을 해야한다.
(2) 그다음으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할때에는 먼저 '여호와의 행사'에 대해 묵상을 하라고 권고한다. 즉 이 세상, 교회, 그리고 개개인에 대한 여호와의 행사가 어떠한지 묵상하라는 것이다.
1) 하나님이 본래 크고 창대하시니 그 행사또한 위대하다. 그 행사는 하찮거나 미약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는 그 행사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2) 그 행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로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하나님의 행사를 보고 속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언젠가 그 행사를 관찰하면서 숨은 의미를 깊이 연구하곤 한다.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호와의 행사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새삼 느끼게될 것이다.
3) 여호와의 행사는 예외없이 정당하며 존귀하다. 그 행사가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 의가 영원히 있도다.
4) 여호와의 행사는 모두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 즉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하잘것 없어 오히려 잊어버리는 편이 좋다. 그러나 여호와의 행사만큼은 그대로 기억하기위해서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4절). 그 기이한 일을 사람으로 기억케 하셨으니.
5) 하나님께서는 그 행사를 통해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 성품을 보여주셨다. 여호와께서...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이는 택한 백성들로하여금 일상생활에서도 약속된 사랑을 받는다는 점을 알게하시기 위한 것이다. 어떤이들은 이때문에 하나님께서 광야 한복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내리셨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Ⅱ. 여호와의 백성이 받은 은혜 111:6-10
본문에서 기자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1) 하나님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예나 지금이나 큰은혜를 베푸시니 영광을 돌려야 한다. 저가 자기 백성에게...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셨도다(6절).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여호수아 시절에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있던 일곱 족속을 정복시켜 주시고 다윗시절에는 이웃나라들이 속국이 되게 해주셨다.
2)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어 이웃나라의 지배를 당하게 될때마다 그들을 구원해주셨다(9절). 이로써 하나님은 정하신 때가 이르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온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의 예표를 보여주셨다.
(2) 여호와의 말씀과 행사가 확실하여 장차 큰은혜를 베푸실 것이니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가 이제껏 해오신 일은 절대로 훼손되지 않는다.
1) 하나님께서 여지껏 해오신 일은 하나님 스스로 훼손시키시지 않으려니와 인간이나 사단이 그렇게 할수도 없다(7절).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즉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것이다(8절). 여호와의 행사가 일단 시작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2) 하나님께서 여지껏 말씀하신 것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7절). 즉 모든 말씀이 일정한 질서위에서 움직이며 절대로 변하지않는 것이다.
(3) 백성중에 믿음을 세우사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니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일단 마음의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여호와의 영광을 노래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행사중에 스스로를 어떻게 나타내셨는가를 상고해보면 그의 의를 섬기며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곧 복된 삶으로 가는 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뜻에 순종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지만 이를 행하면 큰축복을 누리게 된다. 인간이란 본시 악한 존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이전에는 절대로 지혜로와질수 없다. 참된 지혜는 경건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마음으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그 계명을 지키려고 늘 조심하게 된다. 즉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좋은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실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있다는 표시가 된다. 하나님께서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을 가르쳐 주셨으니 영원히 그이름을 높이고 찬양함이 마땅한 일이다.

# 핵심
111:1-10
출애굽(2,4절), 광야생활(5절; 민 11장), 가나안정복(6절)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에서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행위들을 되새기면서 신앙적인 권면을 하는 지혜 문학적인 양식을 갖춘 시편.
참된 지혜의 근원(111:10)
참된 지혜를 얻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 경외에 있다(잠 1:7-9). 사람들은 종종 이 진리를 외면하고 인생의 경험이나 학술적인 지식을 갖는 것으로 지혜를 얻을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지혜의 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의 토대는 불안정할수밖에 없고,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혜의 근원이며 말씀을 지키는 것이 참지혜에 이르는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 묵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섭리 ( 111:2-8 )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와 섭리는 공의, 은혜, 자비, 권능 등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안에서 깨어있을때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항상 주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는 영원할 것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13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2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0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9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8편 - study  (0) 2020.11.02

# Study

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 110:1-4
간혹 사람들이 이 110편을 가리켜 다윗의 신앙고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속에 기독교신앙의 주요한 요소가 거의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제는 "다윗의 시"라고 되어있다. 다윗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위로를 얻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오늘의 성도들은 다윗의 시를 노래하면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완전히 실현되었다는 점을 찬양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다. 이는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마 22:43).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권을 가지신 주로 세우심을 입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내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1절). 이처럼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벧후 1:17).
(3) 하나님께 절대적인 주권을 위임받으신 예수께서는 높으신 보좌로 나아가 앉으셨다. 앉는다함은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땅위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뒤에 하늘보좌에 앉아 쉬신다. 또한 이는 곧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그곳에 앉으셔서 법을 정하시고 이를 근거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는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께 대적하던 무리는 정하신때가 되면 모두 그 발등상이 된다. 그리스도 당시에도 그의 왕국에 대항하여 싸움을 벌인 대적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전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지않으려는 사단과 연합하는 무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다. 물론 이 일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도중의 한사람도 이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못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히 2:8). 그리스도께서도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이 땅위에 그의 왕국을 세워나가실 분이시다(2절). 다시말해서 다윗의 성읍인 시온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일어나게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다윗의 가계를 따라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 조상의 보좌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권능의 홀, 즉 강한 홀을 지니셨다함은 예수께서 영생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물론 이 권능의 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로인하여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복음을 전파할수 있는 권한과 사명을 부여하시게 되었다(갈 3:5).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의 홀을 시온에서부터 내어보내실 것이라 하였다. 그이유는 그곳에서 성령이 임하셨고 따라서 그곳은 온세상 중에 최초로 복음이 전파될 성읍이었기 때문이다.
(6) 이 땅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왕국은 흑암의 권세가 제아무리 반대를 한다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주는 원수중에서' 다스리실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보좌에 계실동안에는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사이에 앉으셨었지만 이세상을 통치하실때는 '원수중에서' 다스리신다.
(7)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백성을 다스리실 것이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기위해서 존재하게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3절).
1) 이 백성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 17:6). 예수께서는 그 백성을 구속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예수께 속한다. 이 일에는 그들의 동의가 전혀 필요없는 것이다.
2) 그들은 '헌신하는' 백성, 즉 자기의 할일을 스스로 선택한 종이나 강요받지 않고 자원한 군사들이었다.
3) 그들은 '주의 권능날에' 위와 같이 해야한다. 여기서 '권능의 날'이라함은 "주께서 그 백성을 모으시는 날"이거나 "그리스도의 군대가 움직이는 날"로 해석되기도 한다. 복음을 전할 사역자들이 그리스도의 군대로서 이 세상으로 나갈때, 주의 백성들은 모두 기꺼이 그 대열에 참여할 것이며 바로 그날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지는 순간이 된다.
4) 그들은 그날에 '거룩한 옷을' 입어야한다. 그들은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어 그의 아름다움으로 입혀짐으로써 비로소 아름답게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예수의 은혜로 '거룩한 옷'을 입은 것이다. 즉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은혜와 정결로 장식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성소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마땅히 갖추어야할 예복이며 그리스도 전의 영영한 표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병된 자는 이러한 예복을 입어야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갖추어야할 특징이기 때문이다.
5) 예수께서는 기꺼이 헌신하려하는 백성들을 수없이 거느리시게될 것이다. 신약시대의 초창기, 초대교회 시절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양무리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일어났다. 그 무렵 복음이 전해지자 '야곱의 남은 자'들이 '여호와께로서 내리는 이슬같이' 모두 믿음을 받아들여 큰무리를 이루었다(미 5:7; 사 64:4,8).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 모여드는 젊은이들의 수가 많음뿐만 아니라 그들이 뛰어나고 유망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이 청년들이야말로 마치 이슬이 땅을 풍요롭게 하듯이 온세상을 풍요롭게 만들 자들인 것이다.
6) 예수께서는 왕일뿐만 아니라 제사장이기도 하시다(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항상 변호해 주신다. 즉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재자가 되신다. 그는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일컬어졌다. 그 이유는 오로지 제사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는 것이외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방법이 달리 없고 그 축복의 열매와 결과는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셨기때문에 아론의 후손과 다르다. 멜기세덱은 아론보다 먼저 제사장의 직분에 올랐을뿐만 아니라 여러면에서 훨씬 출중한 인물이었다. 훗날 사도바울은 이 호칭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그것을 근거로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되신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히 7장). 물론 그 내용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확실히 설명한 것일뿐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신약이 구약을 분명하게 설명해주듯이 구약이 신약의 내용을 확인해주는 근거가 된다. 결국 신약과 구약, 양편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기 때문이다.

Ⅱ. 우편에 계신 주께서 노하시는 날 110:5-7
여기에서 우리는 위대하신 구세주의 사역을 대하게 된다.
(1) 그는 그의 대적들을 쳐서 파하실 것이다(5,6절).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의 나라에 반대하는 대적들을 완전히 쳐서 파하실 것이다.
1) 그는 승리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심판의 권세를 위임받아 대적과 맞서서 선을 행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는 사실은 그의 백성들에게는 큰위안을 주지만 악한 무리에게는 몹시 두려운 사실이 아닐수 없다.
2) 예수께서 악한 무리를 쳐서 승리를 거두게될 시기가 이미 정해져있다. 그 노하시는 날에. 이 말은 이미 때가 정해져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그때는 이들의 행악함이 여호와께서 정하신 분량에 이르고 그들의 파멸이 임박한 때이다.
3) 예수께서 얼마나 큰승리를 거두실 것인가. 주께서...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이세상을 다스리는 자는 사단이며 사망은 두려움의 왕이다. 사단과 사망은 모두 어린양이신 예수와 싸우다가 마지막에 멸망에 이르게될 존재들이다.
4) 예수께서 이 싸움에 승리하시는 것은 정당하다. 열방중에 판단하여. 이는 그가 함부로 난폭하게 살상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신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5) 이 싸움은 큰승리로 끝날 것이며 그결과 맞서 대적하던 무리는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것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여러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실 것이다. 이 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할 것이라는, 메시야에 대한 최초의 예언을 의미하는 듯하다(창 3:15). 그는 온땅을 '시체로 가득하게' 하실 것이다. 그날에 살육을 당한 자가 몹시 많을 것이다.
(2) 구세주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위로해주실 것이다(7절).
1) 예수께서는 비천한 신분으로 이세상에 오실 것이다.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이는 예수께서 그 아버지의 명을 따라 겸손히 쓴잔을 들리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성을 구하기위해서 스스로 저주의 대상이 되고자 길가의 시냇물을 마셨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고난이 시작될즈음에 이미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셨던 것이다(요 18:1).
2) 이 고난의 세월이 지나고 난뒤에는 다시금 높이 들리워지실 것이다. 인하여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의 죽음을 맞이하셨을때 그 '머리를 숙이셨었다'(요 19:30). 그러나 곧 부활하사 스스로의 힘으로 머리를 드셨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정복자로서 머리를 드신 것이다. 예수께서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그 머리를 드신것같이 그를 따르던 신실한 성도들 역시 머리를 들것이다. 이들은 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았으므로 따라서 그와 함께 세상을 다스릴 사람들이다.

# 핵심
110:1-7
본시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시편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도 본시편은 유대 공동체내에서 메시아를 예언하는 시편으로 널리 읽혔다. 예수님도 본시편을 자신에 대한 예언시로 인용하셨다(막 12:35-37).

# 묵상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멜기세덱 ( 110:1-4 )
본 시는 그 유명한 메시야에 대한 예언시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왕권과 권능을 허락하십니다.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 될것을 명하십니다. 여기서 멜기세덱이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 된 이유는 멜기세덱의 독특한 신분때문입니다. 그는 고대 예루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한 인물입니다(창14:18-20). 성경은 그의 신비하고 독특한 신분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언급했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12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1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09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8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7편 - study  (0) 2020.11.02

# Study

Ⅰ. 대적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탄원함 109:1-5
선한 사람들은 아무리 강한 대적이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마음에 큰평화를 얻는다.
(1)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판단에 맡긴다(1절).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시고 나의 판단을 주앞에서 내소서'(17:2). 즉 "제가 주께 맡긴 심판을 늦추지 마옵소서"라는 의미이다. 다윗이 이노래의 첫머리에서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의미가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뿐, 자신의 지혜나 힘에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기가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뿐이다.
(2)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에 대해 하나님앞에 호소한다. 그들은 '악한 입과 궤사한 입을 열어' 못된 일을 행한다고 하였다(2절). 또한 그들의 말은 '미워하는 말'이다(3절). "그들은 선한행위로 가장하고 그것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돌아서서는 '거짓된 혀'로 험담을 늘어놓는 거짓된 사람들이니이다." 이런 사람들은 악한 궤계를 꾸미느라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들은 불공정하다. 다윗에 대한 그들의 비난과 송사하는 말들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 "저희를 분노케 한일이 없었는데도 저희는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나이다". 그들은 배은망덕하였다.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5절). 그들을 만족시켜 주려고 애를 쓸수록 그들은 자기를 더미워한다는 것이다.
(3) 이렇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다윗은 자신의 본분을 지켜 위로를 얻기로 결심하였다(4절). 나는 기도할 뿐이라. 대적하는 무리가 나서서 거짓된 혀를 놀려 참소하고 근거없는 이야기로 비난하였을때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로써 자신의 대의를 하나님께 밝혔다. 한걸음 더나아가 언제나 미워함으로 사랑을 갚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쉬지않았던 것이다. 주변의 어떤사람이 자기를 비난하고 해치려 한다고해서 자신의 본분을 행치않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여호와앞에서'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삼상 12:23). 여기서 다윗은 온통 미워하는 말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자신의 험담을 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했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Ⅱ. 악인의 앞날에 대한 예언 109:6-20
다윗은 본문에서 악인의 무리중에서도 가장 악한 인물에 대하여 특별히 언급한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에 대하여, 그리고 배신자 유다와 같은 그리스도의 대적들에 대하여 이와같이 저주하며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그와같은 대적들을 우리 구주께서는 '지옥자식'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칼빈시대에 이 말씀을 이용하여 이웃을 저주하는 악한풍습이 널리 유행하였다. 그 당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비롯하여 여러모임 소속의 수사들이 이런 풍습에 물들어, 누구든지 이웃을 해할 마음이 있을때 돈을 주면서 대신 저주해달라고 부탁하기만하면 수사들이 이 구절을 매일 암송해주었다고 한다. 거룩한 성경 말씀속에서 사악한 정욕을 채울방도를 찾으려했으니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1) 하나님의 교회와 택하심을 입은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혀온 대적의 무리에 대한 다윗의 예언은 몹시 무서운 저주이다. 여기서 대적이라함은 돌이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다윗이 이들의 앞날에 대해 어떤 예언을 하였는지 살펴보라.
1) 그들은 죄인으로 판결받을 것이다(6,7절). 또한 하나님께서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그 발아래 짓밟히도록 내버려두실 것이다. 즉 그들이 남들에게 잔혹하게 행하였었기때문에 그 대가를 치루게하신다는 뜻이다. 사악한 마음이 그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들의 양심은 스스로를 거역하여, 그들은 본의와는 완전히 반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2) 일단 죄인으로 판단을 받은뒤에는 가장 악한 죄인으로서 합당한 처벌을 받게될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 공의의 검으로 그 생명을 끊으사 '년수를 단촉케'하실 것이다. 언제나 이웃을 기만하고 피 흘리는 일에 앞장서던 사람들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게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직위는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갈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걸인의 신세로 떨어지고 말것이다. 한집안을 이끌어가던 가장이 졸지에 죽음을 당하였으니 '그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결과라 하겠으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아버지의 죄로인하여 미움까지 받아 어쩔수 없이 '유리 구걸'하게될 것이다(9,10절). 한편 재산도 죄인의 소유라는 이유로 모조리 몰수되고 말것이다(11절). 그가 죽은뒤 '저에게 은혜를 계속할 자가 없고 그 고아를 연휼할 자도 없는' 이유는 그가 일생동안 단한번도 이웃을 도와주지 않았던 것에 대한 벌이다(12절). 평생에 악한 일만 해왔으니 그 소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은 자녀들의 처지를 동정하지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불행히도 부모를 잘못만난 자녀들에게까지 동정의 마음을 닫아서는 안된다. 재산이 남의 손에 넘어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자신은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될것과 더불어 후손들에게 궁핍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비참함을 물려줄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가지 곧 모든 것에 해악을 끼치며 파괴하는 죄때문이다.
(2) 이 저주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정당한 것이다.
1) 다윗은 죄인의 후손이 저주가운데 살아야하는 것은 그 조상들의 행악함에 대한 대가로 정당한 벌이라는 점을 설명하였다(14,15절). 여호와는 그 열조의 죄악을 기억하시며 그 어미의 죄를 도말하지 마시고. 일찍이 아벨이 죄없이 죽임을 당한 이래 핍박의 시대가 한차례씩 지날때마다 수많은 의인들이 피를 흘렸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피까지 흘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죄악의 분량을 채우고 말았던 것이다.
2) 다음에 죄인 그 자신에게 이같이 저주가 내리게 된것은 어디까지나 죄의 대가로서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는 점을 밝혀놓았다. 그는 잔인하게도 당연히 도와주고 구제해주어야만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핍박하였고 또 위로해주고 고쳐주어야만 하는 '마음이 상한 자'를 죽이려하였다. 실로 이세상에 살려둘 가치가 없을만큼 잔인무도한 이 죄인은 이웃과 형제를 저주하기를 즐겼던바 이제 그 저주가 자신의 머리에 임하게 된것이다(17-19절). 이웃을 저주하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듯이 떠벌이는 무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능욕을 부어 망하게하실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이부분에서 다윗은 유다의 저주받은 죽음과 아울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이 오랜세월에 걸쳐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Ⅲ. 여호와의 은혜를 간구함 109:21-31
이렇게 무서운 예언을 마친뒤에 다윗은 겸손히 엎드려 주 여호와 하나님께 위로를 얻는다.
(1)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즉 여호와의 도우시는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는 것도 고백하였다(22절).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단순히 겉으로 나타난 문제가 괴롭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한 것이다. "상처받은 심령을 거두어 들일 자는 어디 계시옵니까?" 다윗은 도무지 안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빗대어 '메뚜기같이 불려가오며'라고 표현하였다. 산꼭대기에서 포수에게 쫓겨다니는 메추라기처럼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잘나타나 있다. 한편 다윗은 자신의 육신이 지치고 피곤하여 몹시 쇠약해졌다는 점을 하나님앞에 호소하였다(24절).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영혼이 괴로울때에 금식을 한것이 자기의 뜻이었든지 남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든지간에 무방하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육신은 강건하되 영혼은 날로 시들어가는 형편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비록 육신이 병들어 쇠약해졌어도 영혼의 힘이 넘치고 새로워지는 편이 한결 낫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건대 다윗은 이 땅위에 오셔서 약한 육신을 입고 겸손히 그 모든 질고를 감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으로 볼수 있다.
(2) 다윗은 자신을 위해 긍휼하심을 베풀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비록 당장에는 해가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소서.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하는 것이니이다." 그다음에 특별히 아래와 같이 기도한다(26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구원하소서. "죄가운데에서 구원하사 맡은바 직분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사(28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누가 어떤 저주를 퍼부어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3)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무리가 '수치를 당하고 욕을 옷입듯하게' 하시기를 기도한다(28,29절). 즉 '수치를 겉옷같이 입게' 해달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마음 내키는대로 행하다가 모든 사람앞에서 저희의 어리석음을 나타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실상 다윗은 이들을 회개케하려는 뜻에서 그와같은 기도를 한것이다. 자기의 원수를 회개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감당해야할 큰사명이다.
(4)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이름의 존귀함을 구원의 이유로 내세운다.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21절). 이것이 곧 자기가 구원을 받아야할 이유라는 것이다. 다윗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뿌리박은 기쁨을 노래하면서 이 시를 끝맺는다.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약속한다(30절).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할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실히 밝혀 놓았다(31절). 하나님은 고난에 빠진 다윗을 건지는 보호자이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임하사 그 영혼을 판단하려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시고 따뜻하게 품어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핵심
109:1-31
까닭없이 범죄자로 몰린 억울한 심정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시편.

# 묵상
악인의 중상모략에 대한 다윗의 태도 ( 109:1 )
다윗은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악인을 악으로 대하지않고 오직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다만 다윗은 영육간의 곤고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듯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공의로 판단하시고 신원하시는 하나님을 굳게믿는 신앙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법정의 오른편에 선 대적 ( 109:6 )
고대법정에서 고소자는 피고소자의 오른쪽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의 이 말은 악인이 의인을 고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악인이 또다른 악인에게 고소당하리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악인은 그대로 두어도 서로 헐뜯음으로 멸망을 초래합니다.
악인을 저주하는 고리대금업자 ( 109:11 )
고리대금업자는 빚을 미끼로 가난한 채무자의 남은 소유마저 철저히 빼앗아가는 사례가 빈번했기때문에 성경에서는 고리대금업자가 강탈자로 정죄되었습니다(겔18:13). 따라서 고리대금업자가 온갖수단을 다 동원해 악인의 재산을 모조리 빼앗아가게 해달라는 것은 악인끼리의 싸움으로 서로 멸망의 길로 치닫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주의 이름에 대한 성도의 태도 ( 109:21 )
성도는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시7:17), 주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며(시119:55), 주의 이름을 자랑하고(시20:7), 주의 이름을 선포하고(시22:22),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시52:9), 주의 이름을 사랑하고(시69:36), 주의 이름을 경외해야 합니다(시86:11).
욕을 옷입듯 한다는 의미 ( 109:29 )
욕을 옷입듯 한다는 것은 옷을 입듯 수치로 몸을 가린다는 의미입니다. 곧 옷이 항상 몸에 붙어있는 것처럼 악인에게는 수치가 항상 따른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겉옷은 온몸을 감싸는 긴 통옷인데, 이처럼 악인의 수치는 숨길수 없습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11편 - study  (0) 2020.11.03
시편 110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8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7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6편 - study  (0) 2020.11.02

# Study

Ⅰ.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108:1-5
본문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예술가 중의 한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가를 배울수 있다.
(1) 먼저 마음을 정한 상태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생각의 단편들을 하나로 모아 하나의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 사람은 제각기 타고난 재주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 예를들어 글을 쓰는 사람은 '내 영광으로'(한글개역 난외주-역주) 곧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야말로 글쓰는 이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휘를 총동원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순간, 글쓰는 사람이 누릴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맛보게될 것이다. 다윗에게는 음악이 영광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로 온이스라엘에 유명했었다. 그렇기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바쳤던 것이다.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든지 바로 그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3) 또한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흠모하면서 그 이름을 찬양해야 한다. 이때 조금의 소홀함도 없이 생동감이 넘치게 찬양하기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깨워놓아야 한다(2절).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이 구절은 찬양이 활기차게 울려퍼져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열심히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4)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공공연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5) 우리는 찬양중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을 찬미해야 한다(4절). 인간의 지각으로는 하늘위에나 궁창 한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알지못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보았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보다 훨씬더 큰것을 저세상에 가면 보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인자하심과 진실을 아직도 많이 예비해두셨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108:6-13
우리의 기도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있어야 한다(6절). 본문에 '주의 사랑하는 자'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즉 나자신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열심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은 기도가 아직 응답되지 않았다해도 실망하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 사실만으로도 기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말과 행동은 따로 구별된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렇지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앞으로 그의 다스림을 받을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하셨었다. 따라서 다윗은 마치 그 사람들의 땅을 다스리게 되기라도 한것처럼 척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가 세겜을 나누며 속곳 골짜기를 척량하노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7,8절).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이방인의 기업과 토지의 대부분을 다윗의 소유가 되게하심으로써 그들의 마음까지 얻게 해주실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때문에 다윗은 모압과 에돔 및 블레셋 전역까지 자기의 손안에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9절).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베풀어달라고 간구하면서 그 기도한바와 같이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 보아야 한다(10,11절).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저 견고한 성읍에 나를 이끌며 누가 아직 복속시키지 못한 에돔땅에 나로 주인이 되게 할꼬?" 에돔과 전쟁할당시 그땅을 어떠한 방법으로 쳐야할지 의논하는 자리에서 다윗은 휘하 장소들을 향해 이 질문을 던져보았던것 같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11절). 하나님의 계획이 자기의 뜻과 맞지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거나 기도할 힘마저 잃고 낙담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런때일수록 우리는 하찮은 피조물을 의지하던 마음을 버리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12절).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그 말이 옳소이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수 없나이다. 그 사실을 잘알기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하고 기다릴수 있는 것이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하나 우리 힘으로는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는' 것으로만이 그 일을 할수 있다.

# 핵심
108:1-13
본시편은 앞서 나온 다윗의 두 시편의 내용가운데 일부씩을 발췌하여 편집한 것이다. 1-5절은 57:7-11절을, 6-13절은 60:5-12절을 빌려 인용하고 있다.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하지만 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즉, 57편은 사울의 추적을 받을때를, 60편은 이방 나라들과 전쟁을 치렀던때를 각기 그 배경으로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시편들이지만, 본시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미 확신하는 밝은 분위기로 가득차 있다. 본시편은 포로귀환민들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옛영광을 회복해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을 표현하기위해 예배용으로 만든것 같다.

# 묵상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한 다윗 ( 108:1 )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한 다윗의 태도는 자신의 온인격을 하나님께 집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한 심령을 가리킵니다(사26:3). 그리고 이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자에게서 참된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올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 ( 108:6-13 )
시인은 본문에서 주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도움을 믿고 용감히 싸우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수나 재물은 가변적이라는 사실을 보게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재물이나 사람의 수를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10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9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7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6편 - study  (0) 2020.11.02
언약의 날개 아래서 (시 63:1~8)  (0) 2020.11.02

# Study

Ⅰ.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권고함 107:1-9
(1)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여호와께 감사해야한다고 권고한다(1절).
(2) 그런데 다음구절은 특별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하는 말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때 이러한 권고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될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들을 각지방에서부터 "모아 하나가 되게" 하고자 죽으셨다(요 11:52;마 24:31). 그러나 이 구절은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의미하는것 같다(6절).
1)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의 나라에서 신음할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해내셨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자(2절). 이 말은 각사람의 영혼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2) 이들은 동서남북 각지방에 흩어져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하나로 되게 하셨다(3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자기의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느곳에 있는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3) 또한 그 백성은 갈길을 몰라 방황하였으며 거처할 곳을 찾지못하여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4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성에 이르게 하셨던 것이다(7절). 하나님은 그 백성이 깃들일만한 곳으로 인도해주셨다. 이 구절은 넉넉치 못한 형편으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고 볼수도 있다. 게다가 아라비아 사막은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쉬운 곳이라서 이러한 말씀이 나옴직도 한 일이다. 또한 이 구절은 사십년동안이나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생각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하는동안 굶주림으로인하여 거의 죽게 되었었다. 물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음식물로 넉넉히 채워주셨다. 오늘날에도 바로 그 하나님께서 각사람의 영혼을 인도하시고 날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돌이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것이 요구된다(8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특별히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Ⅱ. 고통중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107:10-16
본문에는 포로와 갇힌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는 갇힌 자를 가리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라고 서술해 놓았다(10절). 먼저 흑암은 아무도 돌아보는이 없이 쓸쓸하게 지내는 신세임을 의미하며, 사망의 그늘에 앉았다함은 큰위험에 직면한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뿐만아니라 갇힌 자는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을 수없이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여 필요없다고 여기거나 그 뜻을 따른다고해서 상황이 더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자는 그 도움을 받을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마음을 낮추사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히 행하게 하시려는 뜻에서 이와같은 곤고함을 겪게하신 것이다(12절). 그러므로 곤고한 지경에 빠진 자들이 해야할 일은 오로지 기도뿐이다(13절). 자유롭게 살때에는 시간을 내지못하던 사람들도 갇힌 자의 처지가 되면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하게 마련이다. 평상시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수 있다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일단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나면 그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에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3절). 하나님의 구원이라함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자유함을 주사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14절). 그 백성들의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있다면 하나님은 '얽은 줄을 끊으사' 자유롭게 해주실 것이다. 혹시 견고한 성안에 갇혀있을 경우에는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시고' 그 백성을 구해주실 것임에 틀림없다. 본시 빗장은 성문을 단단히 잠그려고 걸어두는 것인데 그것을 꺾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다시는 그 빗장을 이용하여 문을 걸어 잠그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Ⅲ. 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107:17-22
본문에서는 육신의 질병이 큰재난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분명하나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1) 만약에 인간이 처음부터 죄악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세상에는 질병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는 물론이요 이세상 생활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건강을 잃거나 육체의 욕망에 탐닉하다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평소에 고기에 탐닉하던 사람들도 한번 육신에 병이 들고나면 그 냄새도 역겨워하게 되기 일쑤이다. 병이든 상태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달갑지않은 것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을때에는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19절).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환자가 있거든 먼저 기도를 하도록 권해야할 것이다. 가장 절실한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도록 권해야 한다. 기도는 어떠한 고통중에서라도 구원으로 나아가게 한다.
(2) 사람이 질병을 이기고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난 자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야 한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20절). 이 말씀은 세상에 머무시는동안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적용시켜 볼수도 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깨끗함을 받으라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은혜의 성령이 오셔서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중생케하신다는 뜻으로도 볼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사 영혼의 질병을 고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섭리하심속에서 말씀으로 질병을 치유하신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활동하게 되었을때에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 보답해야 한다(21,22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마땅히 죽어야할 생명인데 더 살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찬송을 불러야할 것이다. 감사제를 드리며. 제단위에 덩그러니 제물만 올려놓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찬미해야 한다는 뜻이다.

Ⅳ. 물에서 영업하는 자를 돌보심 107:23-32
시편 기자는 바다의 큰위험에서 구원해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한다고 요구한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해상무역업에 종사하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웃한 두로와 시돈 사람중에서는 바다로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것 같기도 하다.
(1) 큰바다에 나가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권능을 실감할수 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물에서 영업'을 해야하는 선원이나 해상무역업자 및 어부는 물론이요 배를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까지도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게' 된다. 그 깊이의 무한함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민물과 달리 짭짤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까지 어느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지않을수 없다. 게다가 바닷속에 사는 생물이 어찌나 다양한지 누구든 놀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바다로 나아갈때에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유심히 보면서, 바다를 만드시고 오늘날까지 운영해오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해 찬송하도록 하자.
(2) 간혹 바다에 광풍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좇는 광풍'(148:8)에게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깊은 곳에서부터 물결을 일으킨다. 뱃길이 처음이라 무섭게 몰아치는 광풍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파도가 높아질때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할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탄 배가 집채만한 파도의 힘을 견뎌낼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사 파도를 이겨낼수 있는 배를 건조하게 하셨다. 파도가 높이 일때에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뱃사람들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얼굴 가득히 공포스러운 표정을 한채 어떻게해야 목숨을 보전할수 있을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지각이 혼돈하도다(27절). 누구든지 바다에 나가고자 할때에는 광풍의 위험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항상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기도하는 방법을 배운 자만이 바다로 나갈수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말을 바꾸어 "바다로 나가려하는 자는 모두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권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은 필요할때마다 즉각적인 도움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그들의 '지각이 혼돈할'때에도 그들의 믿음은 혼동되지 않게 하신다. 때때로 항해중에 폭풍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간구할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구원의 응답을 허락하시곤 한다. 곧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해주시는 것이다(29절). 이로써 항해하는 사람들은 다시 평안함을 얻고 목적지에 닿을때까지 성공적으로 항해를 하게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하늘가는 길을 여행할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나운 비바람과 광풍속에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고 소망의 항구에 이르는 순간까지 돌보아주실 것이다.

Ⅴ. 전능의 주 하나님 107:33-43
지금까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섭리하심을 따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시편 기자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간혹 그 섭리를 변화시키사 인간사에 갑작스러운 개혁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 또한 영광을 돌린다.
(1) 먼저 하나님의 섭리의 변화를 몇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놓았다.
1) 하나님께서는 간혹 풍부한 소출이 나던 좋은 땅을 메마른 광야로 변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로 메마른 땅이 옥토로 변하게 될수도 있다. 사실 어떤 땅을 기업으로 받는가에 따라 일생을 어느정도로 안락하게 살수 있는가 결정된다. 그런데 간혹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상하여 제대로 소출을 내지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밝혀놓았다(33,34절). 반면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풀한포기 자라지않던 땅이 옥토로 변하고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35절).
2) 궁핍한 가정이 번영하여 부유하게 되는가 하면 부유한 가정들이 순식간에 망해서 몹시 궁핍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으나 마침내 크게된 인물들 또한 많이 볼수 있다(36-38절). 이들은 처음에 '주린 자'의 처지였으나 하나님께서 좋은 땅에 거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풍성한 소출이 나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사 집을 짓고 살게하셨다. 그러나 거처할 곳이 아무리 훌륭하다하더라도 경작할 땅이 없으면 살수 없는 법이다. 이들도 역시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37절).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실때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때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의 노력을 훨씬더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면 경작할 사람이 의욕을 얻어 열심히 일하게 되는데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자에게 복을 주사 '크게 번성케하실' 것이라 하셨다(38절). 이렇게 갑자기 번성한 사람들이 똑같이 갑작스럽게 몰락하여 무일푼의 신세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39절).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 역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결과로, 한때 부귀 영화를 누렸으나 종국에는 처음 시작할 무렵과 같이 재산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것 뿐이다. 또는 이런 집안의 후손들이, 조상들이 갑자기 모아둔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림으로써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한몸에 누리던 자들이 몰락하고,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천대만 받던 사람이 존귀함을 받게 된다(40,41절). 여호와께서는...능욕을 부으시고 길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시지만 반면에 늘 어려운 가운데 살면서 남에게 짓밟히던 무리는 그 자리에서 구원받을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종국에는 높이 들리움을 받을 것이다. 한집안을 일으키시고 번창케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방백'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걸인을 멸시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기만 하면 이들의 처지는 얼마든지 뒤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먼저 고통으로 지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하여 이런 일을 일으키신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섭리하심이 어떠하든지 늘기쁨으로 받아들인다(42절).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토기장이가 흙을 주무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점과 덕이 있으나 남에게 멸시받으며 지내던 자들이 높아지고 교만한 무리가 낮아지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이세상에 심판의 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크게 위로를 받는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인으로하여금 입을 봉하게 하시려고 이같은 역사를 일으키신다. 악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기때문에 변명 한마디 하지못하고 입을 다물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제 욕심채우는 일에만 쓰다가 모조리 빼앗겨버렸으니 그 공정하신 처사에 대해서 할말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케하시려고 이런 일을 행하신다(42절). 지혜있는 자들은 이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여기서 이 일이라함은 하나님의 섭리가 운용되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침착하게 살펴보는 것은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상당히 도움을 주는 태도이다.

# 핵심
107:1-43
본시편의 정확한 저작시기는 알수 없지만, 바벨론 포로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편이다.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막을 방랑하는 자(3-7절), 감옥에 갇힌 자(10-16절), 병든 자(17-20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자(23-30절) 등으로 비유했다.
고난의 유익함(107:10-1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는 그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고난을 잘 감당하는 신앙인은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유익을 얻는다. 첫째,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운다. 둘째, 세상적인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한다. 셋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한다. 넷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한다. 다섯째,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의지한다. 여섯째, 삶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한다. 마지막으로, 고난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을 갖는다.

# 묵상
구속함을 받은 시인의 찬양 ( 107:1 )
시인은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베푸신 은혜와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택한 백성이 범죄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사 구속하고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 107:2 )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이방의 통치자 고레스를 감동시켜 바벨론의 포로되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대하36:22, 23). 이로써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멸망후 흩어져살았던 나그네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로 긴세월을 허비한후에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된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우리에게서 비롯되었지만 하나님에게서 해결받을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속성 ( 107:8 )
여호와의 인자는 끝이없어 영원하고(108:4), 크고 풍부하며(느9:17), 차별없이 공평하고(눅6:36), 생명을 연장해주며(애3:22, 23), 회개를 촉구하고(욜2:13), 죄를 사해주므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딛3:5).
찬양의 당위성 ( 107:15 )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취사 선택할수 있는 성도의 신앙생활의 영역이 아니라 마땅히 성도의 생활 전체로 드려야할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온우주만물을 친히 다스리는 분으로서 능력과 공의로움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인자하심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때문에 마땅히 찬양받으셔야 합니다.
고침받은 이스라엘 ( 107:17-22 )
중병에 걸린 것과 같았던 이스라엘이 고침받을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인자 때문이었습니다. 진노중에도 긍휼을 잊지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곧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성격 ( 107:33-43 )
하나님은 만물을 그 기쁘신 뜻대로 섭리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지에 따라서 강을 광야로, 광야를 못으로 변하게 하실수 있는 주권과 능력을 소유한 분이십니다. 또한 간교하고 힘있는 세상 권력자들을 멸시하고 연약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깊이 주의하고 악인에게는 수치와 능욕을, 의인에게는 복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원리를 깨달아 준행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찬양의 이유 ( 107:33-43 )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필연적 이유는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권과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간교하고 힘있는 세상 지도자들도 멸하시고 연약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09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8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6편 - study  (0) 2020.11.02
언약의 날개 아래서 (시 63:1~8)  (0) 2020.11.02
시편 105편 - study  (0) 2020.10.27

# Study

Ⅰ. 여호와께 감사하라 106:1-5
(1) 이 노래의 첫머리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와있다(1,2절). 우선 여호와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찬미하고 난뒤에 그 '능하신 사적'과 영예에 대해 충분히 전파할 자가 없을정도라고 노래하고 있다. 사람이 제아무리 열심히 여호와의 능하신 사적에 대해 전파한다하여도 그 절반을 말하기도 힘든 법이다.
(2) 그다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축복이 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이 있다고 노래한 것이다(3절). 이들의 특색은 경건한 원칙을 지키며 생활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들을 가리켜 '공의를 지키며 항상 의를 행하는 자'라고 노래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언제나 의로운 일만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한 하나님의 백성은 한결같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안에 머무는 자가 자신을 축복한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참된 축복을 누릴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을 다해 이를 구해야할 것이다(4,5절). 세상에는 특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 이 은혜는 모든 신령한 영혼들이 모두 사모하는 은혜이다. 그러므로 이제 '주의 구원으로 나를 권고하사' 그 은혜에 동참케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5절).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앞서간 성도들의 행적을 따라 살게하소서. 그보다 더복된 삶은 바랄수 없나이다."

Ⅱ. 열조와 함께 범죄하였음을 인정함 106:6-12
이 부분은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는 구절로 시작되었다. 그 당시와 같이 교회가 도탄에 빠져있을 무렵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참으로 시기 적절한 일이었다.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한결같이 옳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곧 다윗의 고백과 같이 '우리가 사특을 행하였기'때문에 하나님께서 의의 길을 보이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1) 하나님의 백성은 역경에 부딪치자 주앞에 나아와 모든 잘못을 고백하였다(6절). 우리가 열조와 함께 범죄하여 사특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죄악에 물든 성품을 이기지 못하고 교만하게 행하고 말았나이다."
(2) 그들은 또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처음으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던 무렵에 지었던 죄로 말미암아 애통해 했다.
1) 실제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받아 누리면서도 묘하게 어리석은 일을 행하던 시절이 있었다(7절).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며. 이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애굽 사람의 재앙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이런일을 하신다고 여겼을뿐, 참된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려 하지 않았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재앙을 내리셨을때에는 어느 사이엔가 애굽사람을 닮아 우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깨달음을 주사 회개하고 잘못된 풍습을 모두 내버리게 하려는 뜻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그로인한 축복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이해력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능력도 형편이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주의 많은 인자를 기억치 아니하고' 또다시 제뜻대로 행하곤 하였다.
2)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사특함을 행한 것도 이렇게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실망을 표현하면서 예전과 같이 애굽에 남아있는 편이 더좋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하였다(출 14:11,12). 그날까지 권능의 기사를 많이 보았으나 이들은 하나님이 긍휼하심을 베풀지는 않고 애굽에서 잘살고 있는 자기들을 끌고나와 광야에서 죽게하려 한다고 떠들어댔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뜻을 거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큰구원을 베풀어주셨다(8-11절). 우선 그 백성들이 건너갈수 있도록 바다에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뿐만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는 무리를 가로막아 주시기도 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려던 무리가 그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길을 내주었던 홍해가 애굽의 군사들에게는 멸망의 무덤으로 변하고 말았다(11절;출 14:30).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그렇게 큰은혜를 받을만큼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때문에 변경될수는 없다. 다시말해서 사람의 부족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취소되거나 처음의 계획대로 이루지못하는 일은 있을수 없다는 뜻이다. 일찍이 모세도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옵소서' 하고 간구하였던 일이 있다(민 14:17,19). 인간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자연을 다스리시면서 바닷물을 가르시는 권능의 힘과 마찬가지로 찬양을 받아 마땅하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를 보고나자 당분간이나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는것 같았다(12절).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언제나 진리로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였다. 또한 그동안 하나님의 긍휼하심속에서 살았다는 점과 아울러 거친 광야에서 죽게하시려고 애굽 땅에 거하던 자신들을 불러내신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날만큼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마음으로 '그 찬송을 불렀다.' 여기서 그 찬송이라함은 모세가 이 사건을 기념하기위해 지은 노래를 말한다(출 15:1).

Ⅲ.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106:13-33
이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에서 보여준 악한 행적의 역사를 발췌하여 기록한 것이다. 훗날 사도중의 한사람이 이 내용을 그리스도인의 행적에 적용했던 일이 있다(고전 10:5이하).
(1)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게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행사를 가벼이 여겨 잊어버렸기 때문이다(13절).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염두에 두려하지 않았다.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를 채우지도 않은채 자기네의 욕심을 앞세우기 일쑤였다.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애굽을 떠날무렵 이스라엘 백성은 속히 가나안 땅에 닿을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웬만큼 지난뒤에도 가나안에 닿지못하자 과연 그땅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되었다. 여기까지 설명한뒤에 다윗은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라는 구절로 앞의 내용을 다시 한번 강조해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행사로써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다. 따라서 그 행사를 잊어버렸다함은 곧 하나님 여호와까지도 잊었다는 것을 뜻한다.
2) 한편 이스라엘 백성중 하나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거나 그 말씀을 의지하려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기다릴만큼 여유가 없었다. 다만 눈앞에 닥친 난국이 도저히 헤쳐나갈수 없는 장벽이라고 여겨졌을 뿐이다.
(2) 이 부분에서는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상세히 서술해놓고 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그 죄에 상응하는 진노를 어떤 방식으로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도 설명해 놓았다.
1)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무척 고기를 먹고 싶어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중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실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단한명도 없었다(14절). 한편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날은 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에 닿을때까지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행이 이와같음을 보시고 진노를 발하셨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라(15절).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그들의 소행을 보시고 몹시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음식과 함께 재앙의 씨를 내려보내신 것이다. 결국 이 음식을 먹은 자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여 심한 자책감과 양심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또는 여호와께서 큰역병으로 그들을 치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을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재앙을 내리셨다(민 11:33).
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나라를 다스릴 통치자와 교회의 지도자를 세워주셨다. 그런데 이들은 감히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자와 맞서려고 하기도 했다(16절). 저희가 진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성도 아론을 질투하매. 모세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통솔하는 총사령관이요 대법원장으로 세우심을 입었는데 이를 시기하여 그 권위에 도전하는 자가 있었다. 한편 아론은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아 거룩하게 구별된 자였는데 고라가 그 직위를 차지하려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다단과 아비람은 자기네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 지파의 족장이니 이스라엘 온지경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를 어떻게 벌하셨는지 살펴보라. 본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진노를 나타내셨는지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17,18절). 전체적인 줄거리는 민수기 16:32,35절에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통치자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던 무리는 '땅이 갈라져 삼키우는' 벌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일을 맡고있는 교회의 권위를 찬탈하려 하던 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들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체하다가 마침내 그 공의로우심을 인해 자신이 제물이 되고 만 것이다.
3)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경배하는 죄악도 범하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율법을 받은 호렙 땅에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세웠던 것이다. 호렙 땅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향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말라'고 일러주신 장소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두가지 일을 모두 행하는 죄를 지었다. 저희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만든 우상을 숭배하여(19절). 이들의 죄는 결국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르게 통치하기위해 만드신 두가지 큰빛을 무시하고 따르지않은 것이었다. 두가지 큰빛 중의 하나는 인간에게 허락하신 이성의 힘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성을 잃고 '자기 영광을 풀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영광의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의 여러 우상중에서 아피스(Apis)의 형상을 택해서 만든 것이 금송아지였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어리석고 미련한 일을 행하는 백성은 다시 없을 것이다(20절). 한편 나머지 또하나의 빛은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아울러 놀라운 기사를 행하사 그 백성에게 많은 계시의 빛을 보여주셨다(21,2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동안에는 하나님을 전능의 주 여호와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을 택한 백성의 위치에서 몰아 내시겠다고 선포하셨던 것이다. 만약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놓지 않았더라면 '저희를 멸하리라' 하신 말씀이 한치의 어김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23절). 여기서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오로지 하늘의 일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수 있다. 여기서 모세의 태도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모세와 같이 그 택하신 자로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실 분이었다. 세상과 인생은 여호와를 노하게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 결렬된 중에서 그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하려고 끊임없이 중보의 기도를 해주신다.
4) 또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다녀온 정탐꾼들이 보고할때에도 악한 자들의 말만 믿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다. 악한 정탐꾼이 보고하는 내용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언약과 반대되는 것뿐이었다(24절). 그런데도 이 말을 믿고 다시 애굽 땅까지 인도해줄 지도자를 세워, 오던 길로 돌아가려 했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곳까지 인도해 내신 것은 가나안 족속의 노예로 삼고자 함이었다고 함부로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였다(민 14:2,3). 이때에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의 언약과 그 전능하심을 상기시켜주자 그 말씀에 청종하기는커녕 오히려 돌을 집어던졌다(민 14:10). 결국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시고 저희중의 한사람도 낙토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신 것이다(95:11;민 14:28). 게다가 그 '후손을 열방중에 엎드러뜨리며 각지에 흩어지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다(26,27절). 다만 모세가 이스라엘의 후손을 위해 긍휼하심을 베풀어달라고 간구하였기때문에 그들의 자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5) 바알브올에 관한 문제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무서운 죄를 지었음을 나타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새로 태어난 세대가 가나안 땅에 거의 이르러서 저지른 죄악이다(28절).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였다함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우상숭배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간음죄까지 범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더럽혀진 꼴이 되고 말았다(민 25:1-3). 한때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동참했던 백성들이 언제부터인가 모압인들의 우상인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 죄를 범하였다(모압인들은 생명이 없는 물질로 우상을 만들거나 죽은자 가운데 누구 한사람을 택하여 신으로 섬기는 족속이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을 떠난 형제와 이웃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악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중에 유행하였도다(29절).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이만사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앙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완악한 죄인들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를 일으키시사 그의 힘으로 한참 관영하는 죄의 기운을 억누를뿐만 아니라 더이상 다른곳에 퍼지지 않게하셨다. 비느하스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였고 악의 근원이었던 시므리와 고스비를 과감히 처단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이에 재앙이 그치게' 되었다(30절). 한편 비느하스는 직분을 잘 감당한 자로서 큰영광을 누렸으며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저에게 의로 정하심으로 대대로 무궁한 이름을 남기게되었다(31절).
6)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도 불평을 그치지 않았다.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한 일은 광야생활 사십년 되는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32절). 이 사건의 내용은 민수기 20:3-5절에 기술되어 있다. 저희로인하여 벌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모세는 그 무렵 땅위에 거하던 사람중에서 가장 겸손한 인물이었으나 백성들이 한결같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불평을 늘어놓았기때문에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노를 발하고 말았다. 그때 모세는 너무 늙었고 자제심을 잃었기때문에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는 죄를 범하고야 말았던 것이다(33절). 모세는 백성들이 계속 불평을 늘어놓자 그만 격분한 나머지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으심으로써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점에 대한 진노를 나타내셨다. 단한번 망령된 말을 한 죄때문에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면, 언제나 교만한 태도로 불평만 늘어놓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대가를 치루어야할 것인지 가히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와 다스림을 가장 필요로할 바로 그때에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고 말았다. 다시말해서 모세의 죽음은 당사자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큰벌이었다는 뜻이다.

Ⅳ. 이스라엘의 죄와 여호와의 긍휼하심 106:34-48
(1)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뒤에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서술함으로써 긴이야기를 마무리해놓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뒤에도 광야에 있을때와 다름없이 행동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심판의 채찍과 긍휼의 손길로 그 백성을 다스리셨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을 진노케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우선 이방 민족들을 완전히 멸하라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기는 할망정 그들과 어울려 가깝게 지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바로다음에 우리는 '열방과 섞여서'라는 구절을 대하게 된다. 다시말해서 이방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친밀하게 지낼 것을 약속하며 섞여 살다보니 자연스레 '그 행위를 배우게' 되었다는 뜻이다(35절). 이렇게 된후 그들은 이번에는 이방인들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않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우상숭배의 풍습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36절). 이러한 죄에 물드는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많아졌으며 마침내 진노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우상숭배의 풍습에 처음 물들기 시작할때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있는 자녀를 죽은 신앞에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죄까지 범하지는 않았었다.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우상숭배 중에서도 특별히 난폭하고 비인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이 되고 말았다(37,38절).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이로써 그들은 우상숭배에 더하여 자기들의 분신인 사랑스런 자녀들을 살해하는 죄까지 범하였던 것이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그들은 가장 무죄한 어린 아이들의 피, 그것도 자기 자녀들의 피를 흘렸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는 과정에서 이미 어느정도 그 대가를 치룬 셈이다. 우선 자신들이 살아가게될 '그 땅이 피에' 더러워지고 말았다(38절). 그리고 양심이 마비되어 마음속까지 타락하게 되었다(39절). 더군다나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증하게 여기셨다.
2)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심판을 내리셨다. 그것외에 달리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택하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히려 주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방인들보다 감사하지는 못했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크게 노하시고 말았다. 자기 기업을 미워하사.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몹시 싫어하신다는 의미로서, 죄의 결과중에서 가장 좋지않은 것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사람일수록 만일 그들이 배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문앞의 거름더미처럼 더욱 싫어하신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시자 이스라엘은 곧 적군의 침략을 받아 쉽사리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41,42절). 저희를 열방의 손에 붙이시매. 이것은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함께 죄를 지어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열방의 손을 빌려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을 바로잡으려고 하셨다. 열방이 모두 이스라엘을 증오하였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스라엘은 그 극진하신 사랑만 모두 잃었을뿐, 악한 길로 유혹하던 사단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지못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는 자들이 저희를 치리'하게 되었을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학대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안타까와하시며 여러번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으나 오히려 완악한 마음을 품어 죄에서 떠나려하지 않았기때문에 고통의 세월을 면할수 없었던 것이다(43절). 이것은 사사시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기회있을때마다 사사를 세우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려 하셨으나 그들은 얼마쯤 지나면 다시 우상숭배로 되돌아가곤 하였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는 자들이 심판을 받아 비천한 처지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은 두말할나위도 없는 일이다(44-46절).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았으나 완전히 멸망을 당하지는 않았다. 다시말해서 하나님께서 잠시 버려두었으나 아주 끊어버리지는 않으셨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사 지난 날의 죄악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셨다(출 3:7). 본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사람과달리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으신 분인데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계획을 변경하셨던 것이다. 비록 그 백성이 옳지못한 길로 행한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그 관계를 끊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처음의 언약을 절대로 어기시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 들리자 하나님께서는 한참 타오르던 적의 분노를 제어하시고 그 돌덩이 같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넣으시사 이웃을 긍휼히 여기게끔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인간이 할수 있는 어떤 기예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은가?
(2) 결론 부분에 이르러 다윗은 기도와 찬양으로 끝맺는다. 먼저 기도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완전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중의 많은 무리가 이방인의 땅에 끌려갔었는데(나오미도 그중의 한사람이었다, 룻 1:1) 그들은 다윗이 왕위에 오를때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이런 기도를 할만한 시기였던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앞에 나아와 '우리를 구원하사 열방중에서 모으시고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였다. 즉 그는 성전에서 감사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린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처음부터 계속 주관해오신 것을 찬송하였다(48절).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이것을 제사장들에게 외치게 하고 백성들은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치게 하였다.

# 핵심
106:1-48
105편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관심을 기울이는 내용인데 반하여, 이 시편은 인간의 죄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대조시키고 있다.

# 묵상
패역한 백성을 위한 기도 ( 106:5 )
본 시는 선민공동체의 용서를 비는 것과 형통함에 대한 간구입니다. 곧 시인은 이스라엘의 심각한 죄악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인정하고 용서를 빌며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의 사심없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홍해의 의미 ( 106:7-12 )
시인이 홍해를 특별한 의미로 언급한 이유는 홍해가 출애굽후 하나님의 첫이적이 베풀어진 장소였기 때문입니다(출14장).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앞에두고 애굽 군대의 추격으로인해 좌절했으며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때문에 시인은 홍해를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패역상과 하나님의 권능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죄 ( 106:13-31 )
본문은 광야 40년동안 조상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저질렀던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대신 송아지우상을 만들어 숭배하였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비느하스의 정의롭고 용감한 행동이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케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불의한다하더라도 그가운데 의인 한사람을 찾으십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징계 ( 106:40-42 )
불순종을 일삼는 이스라엘이 받은 징계는 원수의 압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멸망할때까지 끊임없는 외침을 받았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징계, 그리고 그들의 회개와 하나님의 구원이 교차하는 역사입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08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7편 - study  (0) 2020.11.02
언약의 날개 아래서 (시 63:1~8)  (0) 2020.11.02
시편 105편 - study  (0) 2020.10.27
시편 104편 - study  (0) 2020.10.27

언약의 날개 아래서

 

[시편 63편 1절~8절]
1절 -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절 -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절 -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절 -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5절 -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6절 -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7절 -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8절 -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07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6편 - study  (0) 2020.11.02
시편 105편 - study  (0) 2020.10.27
시편 104편 - study  (0) 2020.10.27
시편 103편 - study  (0) 2020.10.27

# Study

Ⅰ. 택함을 받은 자손이 해야할 일 105:1-7
(1) 택함을 받은 자손은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할 의무가 있다.
1) 먼저 항상 넉넉한 은혜를 베푸시는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
2) 그리고 여호와의 은총을 더많이 받으려거든 '그 이름을 불러 아뢰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많이 받으려고 기도한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누려 온 은혜의 힘을 기꺼이 인정한다는 뜻으로 볼수 있다.
3) 또한 여호와의 행사를 '만민중에 알게'하여야 한다(1절). 이로써 많은 사람들로하여금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동참케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해야 한다. 즉 자신이 마음에 큰감동을 받은 내용을 반드시 전파하여야 한다(2절). '집에 앉았을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널리 전해야 한다(신 6:7).
4) 여호와의 존귀함을 노래해야 한다. 즉 여호와를 기뻐하는 백성들이 예전에, 문자가 널리 사용되지 않던 시절에 여호와로인한 즐거움을 표현하고 싶거나 후손에게 남길 소식이 있으면 중요한 사실을 뽑아 노래로 지어불렀던 것처럼 그리해야 한다.
5) 그리고 여호와의 '성호를 자랑해야' 한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을 알게된 경위와 그 관계에 대해 열심히 자랑해야 한다는 뜻이다(렘 9:23,24).
6) '여호와를 구하여야' 한다. 이는 결국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모두 여호와께 맡기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이 말은 각사람의 마음에서 선한 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힘을 구하여야 한다는 훈계를 담고있다. 본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 선한 일을 할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땅위에 머무르는동안 그 얼굴을 구하는 자는 또다른 세상에서 살게되는 날 그 얼굴을 뵙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더욱더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게될 것이며 그로써 영원한 만족을 누리게될 것이다.
7)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3절). 먼저 올바른 선택을 하였기때문에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게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기만 하여도 이러한 기쁨을 누린다하니 이미 그를 찾은 자들의 즐거움이 얼마나 클것인지 짐작할수 있다.
(2) 이제 이런 일을 행하도록 권하는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라.
1)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자기에게 속하게 만들기위해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셨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한 여호와께 조상들과 오늘의 성도들을 위하여 '행하신 기사'에 나타나는 신비한 섭리와 아울러 율법의 오묘한 뜻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친히 율법을 써서 택한 백성에게 주시고 그 손과 '입의 판단'을 모두 일임하셨으니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5절).
2) 한걸음 더나아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관계인가 하는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조상들로 말미암아 택함을 입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택함받은 자의 영광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의미이다. 하나님앞에서 경건하게 살았던 조상들의 후손으로서 타락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택하심을 입은 백성이란 곧 땅위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인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고 미룬다는 것은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Ⅱ.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 105:8-24
본문에서 우리는 지난날을 돌이켜봄으로써 예전에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어떤일을 행하셨는지 배우고 그이름을 찬양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특별히 우리는 이 땅위에 교회를 세우기위해 기초를 놓을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을 상기하면서 찬양해야할 것이다. 시편 기자도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나타난 유대교회 발흥의 역사를 다시한번 저술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와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서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더듬어보면 아름다운 찬양의 소재를 충분히 찾아낼수 있을 것이다.
(1)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세우신 언약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가나안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상징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면서 하나님은 언제나 '그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다(8절). 물론 앞으로도 하나님은 영원히 그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런데 이 줄의 대응구에서는 이에 대해 주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서술되어 있다(대상 16:15).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여기서 그 말씀을 '언약'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인간의 편에서 준수해야할 조건도 몇가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실때에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다(히 6:13,14). 그 언약은 '내가 가나안땅을 네게 주리라' 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감추어진 섭리가 아니라 분명한 약속에 의해서 가나안땅의 소유권을 얻은 것이다. 한편 그 자손들은 출생과 동시에 가나안을 '기업의 지경'으로 물려받아 그땅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었다. 다시말해서 자신들의 공로로 기업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될 것이다(엡 1:11).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이스라엘에게 가나안땅을 주신 것처럼 오늘의 성도에게 이 약속을 주셨다(요일 2:25; 딛 1:2).
(2)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그 언약이 이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는동안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계속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땅위에 사는 백성들이 천상의 가나안에 들어올때까지 일일이 돌보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옛날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경험한 일은 하나의 사례로써 약속의 후손들을 격려하며 그 조상들과 같이 믿음으로 살게하는 요인이 되었다.
1)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날개아래 숨어(유대인의 선생들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보호를 받았다. 그 내용은 12-15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민족에게 짓밟히면서 살고있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유명한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놀라운 언약을 주셨다. 그리고 기회있을때마다 저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실제로 이들이 세상에서 사는동안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은혜로 채워주셨다. 다만 몇가지 어려운 시련을 겪게하신 것은 장차 더좋은 은사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① 처음에는 택함받은 백성의 수가 지극히 적었다. 아브라함 홀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럴수밖에 없는 일이다(사 51:2).
② 이렇게 택함받은 이스라엘은 '그땅에 객이 되어' 온갖 수모와 능욕을 겪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인하여 이상히 여김을 받았으며(벧전 4:4) '무늬있는 매'처럼 많은 사람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다(렘 12:9).
③ 그리하여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유리하는 신세가 되었다. 먼저 '이족속에게서 저족속에게로'라 함은 한나라 안에서 여러지방으로 다녔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이나라에서 다른민족에게로' 유리하였다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근을 인하여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곳을 가더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들을 지켜주셨다(14,15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도 무력하여 자신을 지킬수 없는 상태였다.
④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적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치려 하다가는 오히려 손이 묶이어 하던 일도 못하게 되기 일쑤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기 35:5절에 잘나타나 있다.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⑤ 열방의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해치려하다가 뜻을 이루지못하고 좌절하곤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으시되' 꿈이나 환상중에 나타나사 '나의 기름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애굽왕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해를 끼치려하다가 큰재앙을 만났으며(창 12:17), 그랄왕 아비멜렉도 무서운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창 20:6).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비한 방법으로 양식을 공급받아 왔다. 하나님께서 한때 이스라엘 족장들의 믿음을 시험하고자 하는 뜻에서 좋은 땅에서도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은혜를 베푸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주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된것은 먼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라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것에 부족한 상태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셨다.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려고한 바로의 뜻을 꺾으신 일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른 바로를 세우사 요셉을 택하여 위임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따뜻이 돌보게 해놓으셨던 것이다. 여기서는 그 내용이 개략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근을 겪게 하시기전에 먼저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다. 이로써 기근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실 방도를 마련해두신 것이다. 요셉은 자기 민족을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로 애굽에 간것이 아니다. 어쩌면 일생동안 노예생활을 할지도 모르는채 다시 자유를 얻게될 가망성도 전혀없는 '종으로' 팔려갔다. 그것도 모자라 더비참한 지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종의 신분으로 옥살이까지 하게된 것이다(18절). 그는 '그 발이 착고에 상함을' 당하였다. 게다가 안주인을 겁탈하려했다는 누명을 쓰고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어떤역본에는 '그 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실로 큰고통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훌륭히 쓰이기위하여 겪어야할 과정이었다. 요셉은 재판을 받거나 보석을 얻으려하지도 않고 조용히 옥살이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때가 이르러 풀려나게 되기를 기다렸다(19절). 마침내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때'가 이르러 요셉은 꿈을 해몽하는 능력을 얻게되었고 이 사실은 관원을 통하여 바로에게 전하여졌다. 결국 요셉은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결백하게 되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앞날의 일을 예언하게 되자 안주인을 겁탈하려했다는 누명이 저절로 벗겨졌다는 뜻이다. 만약에 요셉이 그 죄목에 부응할만큼 나쁜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시지않으셨을 것이다.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요셉이 믿음과 순종으로 그 시련을 이겨냈을때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나타나사 석방을 명하신 것이다. 이렇게 미리 정하신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합 2:3).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실제로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때가 이르자 즉시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석방'하였다. 바로왕은 요셉이 하늘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을 깨닫고 '저로 자유케' 해주었다. 뿐만아니라 요셉을 그집의 주관자로 삼아 관원가운데 가장 높은지위에 오르게 하였다(21,22절). 다시말해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았다는 뜻이다. 이같이 높은지위에 올랐기때문에 요셉은 심한 기근으로 다죽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할 계획을 세울수 있었던 것이다. 요셉은 일찌감치 이방인의 땅에 들어와 아비의 집을 살릴수 있는 능력을 비축해둔 셈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났다(23절). 이후부터 꽤 오랜세월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땅에서 편안히 지냈다.
3) 애굽으로 건너간 이들은 그 수가 늘어나서 큰민족이 되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으로하여금 바다의 모래만큼이나 많게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24절).

Ⅲ. 출애굽 사건과 여호와의 표징 105:25-45
이 부분에서는 족장들의 시대가 지난뒤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있는 상태였다.
(1)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고난을 겪게된 경위를 서술해놓았다(25절). 하나님께서는 한때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해주던 애굽인들의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해놓으셨다. 그런데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여 헤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의 결과였다. 결국 애굽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세력이 크지 못하게 막고 그힘을 약하게 할 수단과 방법을 찾으려고 교활히 행하였던 것이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짐을 무겁게하고 비참하게 살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을뿐만 아니라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2)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게된 사건은 결단코 잊어버릴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십계명의 서문에서도 출애굽의 사건을 언급해 놓았을 정도이다.
1) 우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해 어떤 일꾼을 택하셨는지 알아보라(26절). 그종 모세와 그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하나님께서는 그종 모세에게 이일을 맡기시면서 아론을 조력자로 삼아 함께가게 해주셨다. 모세는 율법의 전달자이면서 동시에 온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택하심을 받았고 아론은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게되었다는 뜻이다.
2)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신 방법에 대해 설명해놓았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재앙이 내릴때마다 충분한 설명이 뒤따랐기때문에 "저희가 여호와의 표징인 말씀을 보이고"로 기술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원문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모세와 아론은 이 말씀을 큰소리로 전파하였다. 이부분에서는 애굽 사람이 겪은 재앙을 거의 다 설명해놓았지만 순서를 따라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① 애굽인들은 흑암의 재앙을 겪었다(28절). 원래 흑암의 재앙은 나중에 겪은 일이었는데 여기서는 맨처음에 나와있다. 이렇게 무서운 재앙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지못하도록 막은 애굽인의 소행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는 말로 표현할만하다.
②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의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하사 저희 물고기를 죽이시는' 재앙도 내리셨다(29절;민 6:5, 애굽인들은 나일강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다).
③ 애굽 전역에 개구리떼가 번성하는 재앙도 일어났다.
④ 공중에는 파리떼가 가득하고 각사람의 의복속에 이가 들끓는 재앙을 만나기도 했다(31절;출 8:17,24).
⑤ 한편 하늘에서 우박이 내려와 '저희 사경'에서 자라던 튼튼한 나무를 찍었으며 포도를 비롯한 온갖 과실을 못쓰게 만드는 재앙도 있었다(32,33절;출 9:23).
⑥ 메뚜기와 황충이 몰려와 그땅에서 자라던 모든 채소와 열매를 먹음으로써 사람들의 양식을 없애버렸다(34,35절).
⑦ 다윗은 이로써 역병과 독종을 제외한 재앙을 모두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후에 애굽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장자'의 죽음을 거론함으로써 이 내용을 마무리했다.
3)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날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함께하셨다. 처음 애굽에 들어올때 그들은 몹시 궁핍한 형편이었으나 이제 많은 재산을 가지고 떠날수 있게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무서운 학정에서 벗어나게 하셨을뿐만 아니라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인도해주신 것이다(37절). 또한 애굽에서 나올 무렵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한 상태였다. 오랫동안 힘든 노동을 했기때문에 몸도 마음도 탈진해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애굽인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을때 '그 지파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으면서도 몸이 약하거나 병이든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뿐만아니라 애굽 사람의 학정에 시달리던 그들이 당당하게 떠날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였다(38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즐거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43절).
4) 그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머무는동안에도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로 돌보아주셨다.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이스라엘 온민족이 쉴수 있는 장막으로 이를 허락하셨던 것이다(39절). 원래 구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누각이었으나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장막 구실도 하게되었다(18:11). 그런가하면 불기둥을 준비하사 밤에도 빛을 밝히셨으며 때를 따라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 먹여주셨다(40절). 또한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게' 하심으로써 목마르는 일이 없도록 보살피시기도 하셨다(41절).
5)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땅에 들어갔다(44절). 하나님께서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셨던 것이다.
6)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이같은 일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서술되어 있다.
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약속하신 것을 어기시는 분이 아니기때문에 이런일을 하셨다(42절).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종 아브라함을 기억'하고 계셨다(여기서 거룩한 말씀이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뜻한다). 그렇기때문에 아브라함과 세우신 약속의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늘 살피셨던 것이다(신 7:8).
② 하나님은 이일을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도록 이끌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셨다. 또한 그과정에서 크나큰 은혜를 베푸사 이스라엘 백성으로하여금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못하게 묶어두고자 하셨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쁜 마음으로 주의 율례를 받아 선한사업을 계획하며 감사와 순종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본분을 깨달아 실천케 하기위하여 그같은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오늘날의 성도들이 한생명으로 창조되어 세상에 왔다가 구속함을 받는 이유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을 나타내기위해 '할렐루야'라는 찬송으로 105편을 끝맺는다.

# 핵심
105:1-45
104편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통해 그분의 위대하심과 축복을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편은 역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를 묵상하며 노래하고 있다. 먼저 감사와 찬양을 권면한후에(1-7절) 출애굽 이전의 족장시대(8-23절)와 출애굽 및 그이후의 시대(24-45절)로 크게 나누어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은총을 노래한다. 특히 1-15절의 내용은 대상 16장에 수록된 다윗의 시편에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이 미움의 원인자?(105:25)
25절은 마치 하나님이 애굽 사람으로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미워하게 만든 장본인이신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번성케하셨을때 이를 우려하고 시기한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한 것이다(참조, 출 1:8-22). 그러므로 25절 내용은 역사의 궁극적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표현한 내용일 뿐이다.

# 묵상
하나님의 언약 근거 ( 105:9, 10 )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계승될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모든 선민을 대표하여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선민은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긍휼을 호소했습니다(출32:13; 신9:27). 또 하나님은 이 언약때문에 백성에게 인자를 베푸셨습니다(레26:42; 신9:5).
은총의 언약 ( 105:12, 13 )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원래 유목민으로 이방의 객이되어 유리하는 나그네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들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친히 인도하고 보호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선민된 것이나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위한 하나님의 역사 ( 105:26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기위해 모세와 아론을 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이들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택하심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택하심도 성도 각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에 의해 택함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에따라 당신의 의지에 의해 세우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위한 표징 ( 105:27-38 )
선민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기위해 여호와께서 사용하신 표징은 모두 열가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암흑, 초태생의 죽음등에 이르는 이적이었습니다. 이는 선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섭리였습니다.
광야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보호하심 ( 105:39 )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동안 낮의 열기는 구름기둥으로, 밤의 어둠과 혹한은 불기둥으로 막아주셨습니다(출13:21, 22).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늘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출애굽때로부터 가나안 입성때까지 40년동안 내려주셨습니다(출16:35). 시인은 이같은 기적의 목적이 선민 이스라엘로하여금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게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살아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가나안 입성 원인 ( 105:43-45 )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과는 관계가 없었고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약속된 새예루살렘에 입성할때까지 쉬지아니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 106편 - study  (0) 2020.11.02
언약의 날개 아래서 (시 63:1~8)  (0) 2020.11.02
시편 104편 - study  (0) 2020.10.27
시편 103편 - study  (0) 2020.10.27
시편 102편 - study  (0) 2020.10.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