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장막에 머물 자의 내적 성품, 외적 행실

 

[시편 15편 1절~5절]
1절 -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절 -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절 -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절 -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절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주님의 장막에 머무는 자는 정직하게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며 진실을 말합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이웃을 비방하지 않습니다. 또 망령된 자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1. 윤리적 태도 (1~2절)

주님의 장막에 머무는 것은 특권이자 복입니다. 이 시편의 구조는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에 대한 질문(1절), 그에 대한 요구 사항(2~5절), 결론적 확신의 말(5절)로 구성됩니다. 시편 기자는 '누가' 주님의 장막에 머물며, 주님의 성산에 살 수 있는지 묻습니다(1절). '머물다'와 '살다'는 동의어로 성전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어 보호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첫 번째 대답은 '온전하게'(개역 개정 성경은 '정직하게'로 번역함)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며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입니다(2절). 곧 온전한 제물처럼 흠 없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을 따라 의롭게 행하며,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자입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으로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윤리적 조건이 언급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는 말씀과도 일치합니다(삼상 15:22; 호 6:6).

* 주님의 장막에 머물기를 원하는 자의 내면의 성품은 어떠해야 하나요? 주님과 항상 친밀하게 교제하기 위해 나의 마음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2. 윤리적 행위 (3~5절)

시편 기자는 주님 장막에 머무를 자의 윤리적 행위를 서술합니다. 혀로 남을 비방하지(허물하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으며, 이웃을 모욕하지(비방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망령된) 자는 멸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존경해야 합니다. 서원한 것은 손해가 되어도 바꾸지 않고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사채업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고 사실을 날조해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 장막에 머무를 자는 이웃 관계와 사회적.경제적 행위 면에서도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 머물 것입니다.

* 주님의 장막에 머무를 자의 윤리적 행위는 어떠해야 하나요? 그 행위 가운데 내 삶에 적용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안에 머무는 이에게 주어지는 평강과 견고함을 누리길 원합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써 신앙을 삶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한결같이 신실한, 참된 예배자로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실존하시는 하나님, 가난한 자의 피난처

 

[시편 14편 1절~7절]
1절 -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절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절 -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절 -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절 -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절 -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절 -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선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찾는 자가 있는지 살펴보시지만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의인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분 백성을 포로 된 곳에서 돌이키실 것입니다.

 

1. 어리석은 자 (1~4절)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선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는 그 행위가 부패하고(파괴적이고) 가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특히 힘없는 자에게 폭력적입니다(사 59:4~8; 호 4:1~2 등). 그들 중에는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자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찾는 '지각 있는 자'가 있는지 굽어보시지만 모두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더러워져(부패해)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연약한 백성을 떡 먹듯 먹으며 그들의 희생 위에서 삶을 즐깁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에도 무감각합니다.

* 성경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의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2. 피난처이신 하나님 (5~7절)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참평안이 없습니다. 그들이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백성을 먹어 치우던 현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그분 백성 편이심을 볼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너희는 가난한 자의 계획을 좌절시키려 하나 오직 하나님이 그의 피난처가 되신다."라고 선포합니다(6절). '가난한 자의 계획'은 자기 삶에 대한 생각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은 실패하지만 하나님께 속한 가난한 백성은 보호받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가난한 자를 이스라엘로, 어리석은 자들을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강국들에 빗대어 이스라엘의 회복과 재건을 간구합니다.

* '가난한 자의 계획'(6절)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연약함에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없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며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의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 떨 날이 반드시 올 줄 믿습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을 가난한 마음으로 찾고 또 찾으니, 구원의 감격이 제 안에서 흘러넘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라

 

[시편 13편 1절~6절]
1절 -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절 -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절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절 -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절 -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절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배경 이해하기]
본문에는 전형적인 탄식의 표현인 ‘어느 때까지니이까(How long)?’가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이는 시편 기자의 답답하고 절박한 상황과 그의 탄식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 보여 줍니다. 이 시의 저작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기로 추정합니다. 본문은 비탄시의 전형적인 형식(절규와 탄식, 간구와 호소, 확신과 찬양)을 띱니다. 1~2절에는 대적들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처한 시편 기자의 절규가, 3~4절에는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간구가 나옵니다. 마지막 5~6절에는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찬양이 나옵니다. 시편 기자는 각 형식에서 자신이 느끼는 하나님을 다르게 선포합니다. 1~2절에서는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 3~4절에서는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5~6절에서는 인자하심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또한 본문은 구원의 확신을 갖기 전(1~2절)과 가진 후(5~6절)의 대조적인 상황을 통해 성도들이 경험하는 절망과 고난의 극복 과정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종종 고통에 침묵하시지만, 결국 환난에서 건지시고 정금처럼 나오게 하십니다. 따라서 고난과 절망의 순간에도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고난을 겪고 있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무엇이라고 호소하나요?(1절)
시편 기자는 주님이 그를 잊으셨고, 또 자기에게서 그분의 얼굴을 숨기신다고 호소합니다.
시편 기자는 극심한 고난을 겪는 상황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으로 노래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마치 얼굴을 숨기시는 것처럼 그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1절에서 ‘숨기시겠나이까’에 사용된 히브리어 ‘싸타르’의 시제는 사역 또는 미완료형(타쓰티르)입니다. 이 동사가 사역형으로 쓰일 때는 ‘덮어서 가리우다’라는 의미이며, 미완료형으로 쓰일 때는 계속 하나님을 찾지만 여전히 얼굴을 숨기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민 6:25)라는 아론의 축도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의 얼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네카’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 ‘영광스러운 임재’를 상징합니다. 즉, 여호와의 영광이 비치면 어둠이 물러가고, 고통받는 의인이 높임을 받게 될 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침묵하시고 숨어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당혹스러워하는 시편 기자의 마음이 2절에 두 단어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단어는 ‘번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차’로 ‘충고하다’, ‘의논하다’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가 마음을 나눌 사람 하나 없이 홀로 고통을 끌어안으며 외로운 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나를 치며’인데, ‘나를 대항해서’ 또는 ‘내 위에서’라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가 자신을 괴롭히던 원수가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매우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적용과 나눔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거나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질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우리는 종종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에 침묵하시는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때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지내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도 우리를 향한 목적을 이루십니다(고후 4:17). 우리의 믿음을 정금처럼 연단시키십니다.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의 모습은 죄로 오염되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금광에서 금광석을 캤다고 바로 금이 되지는 않습니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제거되어야 비로소 순결한 금이 되는 것처럼, 죄로 가득한 우리도 고난의 용광로에서 정결하게 다듬어져야 합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기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낙심하지 않을 이유는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성도로 세워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벧전 5:10). 이유 없는 고난, 대가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2. 고난 속에서 인내하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어떤 고백을 하나요?(5절)
시편 기자는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에 처한 자신의 상황을 가감 없이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그는 ‘사망의 잠을 잘까’ 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3절). ‘사망의 잠’은 육체적 죽음뿐만 아니라 영적 죽음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이 고백은 강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함을 온전히 맡기며 자신의 굳은 의지를 표현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4절의 “나의 원수가…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라는 표현도 원수의 교만에 대해 공의의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이처럼 시편 기자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며 고난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5절의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에서 완료 시제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의지하였다’는 지난날 수많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음을 나타냅니다. 시편 기자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에서 ‘기뻐하다’는 원어에서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는데, 이는 시편 기자의 기쁨이 미래에도 계속되리라는 선포입니다. 시편 기자는 죽을 것 같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기도로 인내했고,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구원을 현재로 가져오는 선취적 신앙을 얻게 되었습니다.
적용과 나눔
고난 속에서 나의 시선을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 돌릴 방법은 무엇인가요?
고난 속에서 시편 기자는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의 연약함을 아뢰며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해 자신의 약한 것을 오히려 자랑하기로 결심합니다. 우리도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연약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아뢰어야 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편 기자처럼 고난 속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찬양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고난의 용광로를 통해 순금과 같이 단련하십니다. 때로는 백성의 신음에 침묵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택하신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돌보십니다. 다윗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해 구원의 기쁨을 선포했습니다. 성도는 고난 중에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사망이나 깊음이나 어떤 극심한 고난도 우리를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39).   

 

[말씀으로 기도하기]
고난이 닥칠 때 하나님의 연단임을 깨닫고, 주님만 바라보며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저를 순금같이 단련하시고,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찬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근심과 고통 속에서 더욱 의지할 사랑의 주님

 

[시편 13편 1절~6절]
1절 -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절 -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절 -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절 -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절 -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절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시편 기자는 언제까지 자신을 잊으시고, 얼굴을 숨기시겠느냐고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종일 근심하는 그는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려워하며, 원수가 이겼다고 기뻐하지 않도록 주님이 응답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구원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1. 탄식의 기도 (1~2절)

절망스럽고 괴로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안 계시는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어느 때까지'(언제까지, 1~2절)라는 의문형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합니다. 탄식시에는 '언제까지', '어찌하여'(왜)라는 의문형이 많습니다. 자기가 '왜' 고통을 받는지, '언제까지'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아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자기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 근심하며 날마다 고통 속에 사는 반면, 원수는 자기 위에 높이 서서 성공을 자랑한다고 탄식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자기 마음의 절망과 비탄에 잠긴 심정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는 불신에 기초한 원망이 아닌 신뢰에 기초한 탄식 기도입니다.

*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나를 잊으시거나 버리신 것 같을 때 어떤 기도를 드리나요?

 

2. 신뢰의 기도 (3~6절)

성도는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나의 하나님'을 부르며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3절)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친밀감을 표현합니다. "나의 눈을 밝히소서"(3절)는 건강의 회복을 기원한 것입니다.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다'는 표현에서 그가 실제 죽음 앞에 놓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원수가 이겼다고 자랑할까, 자기가 흔들릴 때 대적이 기뻐할까 두려워합니다. 시편 기자와 대적의 관계는 욥과 친구들 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과의 논쟁에서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을 죄 때문이라 비난함으로 욥의 고통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고통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신뢰하며 그분을 향한 찬양을 약속합니다.

* 시편 기자가 고통 중에도 주님께 찬양을 약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고통 중에도 주님 사랑을 더욱 의지하고 인내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죽을 지경으로 힘든 저를 주님이 외면하시고 잊으신 것 같아 마음이 무너집니다. 대적은 제가 흔들리는 것을 기뻐하겠지만, 저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의지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제게 은혜 베푸실 주님을 기대하며 찬양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억압과 탄식의 자리에서 영원한 안전지대로

 

[시편 12편 1절~8절]
1절 -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절 -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절 -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절 -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5절 -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절 -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7절 -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8절 -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시편 기자는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가 없어지니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혀가 이긴다 하나, 하나님은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련하고 궁핍한 자들을 그들이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시고 영원히 보존하실 것입니다.

 

1. 구원의 간구 (1~4절)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 성도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시편 기자는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세상에서 없어졌음을 탄식합니다.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는 언약에 충실한 하나님 백성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거짓을 말합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돌보고 사랑해야 함에도 거짓말로 속여 이득을 취하고 약한 자들을 도탄에 빠뜨립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 버리시기를!"이라고 간구합니다(3절). 사람들이 "우리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이 우리와 함께 있으니 누가 우리를 주관하겠는가!"라고 큰소리치기 때문입니다(4절).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말의 능력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아첨과 자랑과 거짓입니다.

*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시편 기자는 뭐라고 탄식하나요? 힘 있는 사람이 아첨과 자랑, 속이는 말을 할 때 성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2. 구원의 확신 (5~8절)

긍휼의 하나님은 연약한 이들의 탄식을 들으십니다. 약자들의 탄식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련한 자'는 대개 고아나 과부, 나그네, 빚진 농부 등 경제적 약자를, '궁핍한 자'는 남의 일을 하고 품삯을 받는 노동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억압받고 탄식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 말씀이 순결해 일곱 번 제련한 은 같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5절)이 그대로 시행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가련하고 궁핍한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비열한 자가 높임을 받고 악인이 활보하는 듯해도, 하나님은 언약에 충실한 자기 백성을 영원히 지키십니다.

* 하나님은 불의함 가운데서 가련하고 궁핍한 자를 어떻게 보호하시나요? 불의한 상황에서 내가 하나님께 간구하고픈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비열한 자들이 높임을 받고 악인들이 떵떵거리는 시대상을 보며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라며, 입술을 지으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을 모독하는 이 세대의 죄악에 동참하지 않게 하소서.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제게서 끊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공의의 질서를 세우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시편 11편 1절~7절]
1절 -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절 -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절 -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절 -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절 -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절 -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절 -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기자는 사람들의 말대로 산으로 도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피합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고 그분의 보좌는 하늘에 있고 그분의 눈은 인생을 통촉하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미워하시니, 정직한 자는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탄식 (1~3절)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통해 그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의지하는 대상과 사람들이 의지하는 대상을 의문문으로 대조해 서술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반면에 사람들은 '산'을 피난처로 삼습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데서 활을 당겨 시편 기자를 쏘려 합니다. 이에 시편 기자는 "만일 터가 무너진다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며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터'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기본 질서를 나타냅니다. 만일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진다면 의인이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탄식입니다. 공의로 질서를 정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그분께 피하는 의인을 기억하십니다.

* 시편 기자가 의지하는 것과 악인들이 의지하는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내가 위기 때 피난처로 삼고 달려가는 대상은 누구인가요?

 

2. 하나님을 향한 신뢰 (4~7절)

시편 기자는 '터'(공의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늘 성전 보좌에 앉아 세상을 다스리시고 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굽어보시고(통촉하시고) 인생을 감찰하십니다. 그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의에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의인을 가려내시고(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불과 유황이 바람을 타고서 악인을 모두 태워 버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악인이 마실 몫(잔의 소득)입니다. 시편 기자가 이를 확신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정직한 자는 그분 얼굴을 뵙는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 하나님의 터(공의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떠한 삶을 살지 결단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고통과 환난이 밀려올 때마다 세상의 충고와 해결책에 마음을 빼앗겼던 제 연약함을 통회합니다. 오직 의로우신 주님께 피하며 주님의 얼굴만을 구하게 하소서.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며,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억울한 약자를 위해 악인을 징벌하소서

 

[시편 10편 1절~18절]
1절 -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절 -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3절 -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절 -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절 -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절 -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절 -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절 -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절 -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절 -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절 -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절 -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절 -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절 -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절 -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절 -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절 -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절 -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느냐고 탄식합니다. 악인이 교만한 얼굴로 가련한 자를 압박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악인의 팔을 꺾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1. 악인에 대한 서술 (1~11절)

하나님은 그분의 때가 차기까지 악인들의 악행을 허용하시고 침묵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악한 자가 가련한 자를 괴롭히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느냐며 탄식합니다. 그는 악인의 행태를 자세히 설명합니다(3~11절). 악인은 탐욕을 자랑하면서 하나님이 없으니 감찰하는 이도 없다며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멀어서(높아서)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악인의 입과 혀는 저주, 거짓, 포학, 잔해,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은밀한 곳에서 죄 없는 자를 죽이는 행동은 숨어 있다가 먹잇감을 덮치는 사자와도 같습니다. 사람이 악을 행함에 담대한 이유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영원히 감찰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어찌하여'라고 탄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고 하는 행동들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 (12~18절)

시편 기자는 탄식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일어나옵소서",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12절). 하나님이 재앙과 원한을 돌아보시고 맡아 주시기에 외로운 자가 주님을 의지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신뢰 속에서 그는 악한 자의 팔(세력)을 꺾어 악을 없애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영원한 왕'이십니다. 불쌍한 자(17절, 개역개정 성경은 '겸손한 자'로 번역함)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심하게 감찰하시며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들이 이 땅에서 더는 위협받지 않고 살게 하십니다.

* 시편 기자가 간구한 '겸손한 자의 소원'(17절)은 무엇인가요? 악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악인의 길은 견고해 보이고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여호와여!"라는 외침이 제 입술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악인의 팔을 꺾으시고 겸손한 자를 도우실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늘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을 잊지 않는 백성은 영원히 잊히지 않습니다

 

[시편 9편 11절~20절]
11절 -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절 -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절 -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절 -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절 -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절 -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절 -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절 -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절 -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절 -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시편 기자는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신다고 고백합니다.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악인은 자기 손으로 행한 일에 얽힐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 앞에서 이방 나라들이 심판받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1. 찬양 권고와 과거에 체험한 구원 (11~16절)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십니다. 시편 기자는 청중에게('너희', 11절)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에 동참하기를 권고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가난한 자'(12절, '하나님 백성'을 의미함)의 피 흘림을 기억하시고 그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내용이요, 청중과 나누고 싶은 말입니다. 시편 기자는 구원의 체험을 좀 더 생생하게 서술하기 위해 과거에 드렸던 기도의 내용과 응답을 소개합니다. 그가 과거에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더니 이방 나라(대적)들이 자기가 꾀한 일에 스스로 빠졌습니다(13~15절). 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공의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만방에 알리신 일입니다.

* 시편 기자가 청중과 더불어 감사하고 찬양하려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누구에게 전하면 좋을까요?

 

2. 구원 확신에 대한 고백 (17~20절)

과거의 경험은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시편 기자는 지난날의 구원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악인들, 곧 하나님을 잊은 모든 이방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스올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베푸시면 악인은 두려워하며 스스로 연약한 인생인 줄 깨달을 것입니다. 반면 궁핍하고 가난하며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잊지 않고 의지하는 하나님 백성은 영원토록 잊히지 않고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 백성을 영원히 기억하시니, 그들의 소망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구원을 확신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이어 가야 합니다.

* 악인들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나라들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죄 많은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잊지 않고 늘 의지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기억하시고, 믿는 자들을 영원히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고난 중에도 힘을 얻습니다. 버려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주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죄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제 인생을 끝내 승리로 이끄실 주님을 소망하며 일어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지존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주

 

[시편 9편 1절~10절]
1절 -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절 -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절 -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절 -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절 -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절 -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절 -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절 -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절 -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절 -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편 기자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이 행하신 모든 기이한 일을 전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의로운 심판자이신 주님은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고,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십니다. 주님은 압제당하는 자와 환난 때의 요새가 되시며, 그분을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1. 감사의 고백 (1~6절)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은 기쁨과 감사의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이루신 기이한 일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그가 체험한 기쁜 일은 하나님이 원수들을 물러가게 하시고 그들이 넘어져 망하게 하신 사건입니다(3절). 시편 기자는 이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4~6절). 하나님은 시편 기자의 '판결'(개역개정 성경은 '의'로 번역함)과 '송사'를 맡아 주셨고, 보좌에 앉아 의롭게 심판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분을 대적한 나라들과 악인을 멸하시고 그들의 이름까지 영원히 지워 버리셨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구원의 기쁨을 선물해 지존하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십니다.

*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겁게 찬송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결로 내가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2. 구원의 체험에서 깨달은 교훈 (7~10절)

기이한 구원의 체험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그 은혜가 배가 됩니다. 1~6절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형식이고, 7~9절은 청중을 향해 말하는 형식입니다. 시편 기자는 청중을 향해 구원의 체험으로부터 얻은 하나님에 대한 교훈을 나눕니다. 하나님은 '재판'(심판)하시기 위해 영원히 보좌에 앉으셔서 공의와 정직으로 세계와 만민을 판결하십니다. 공정한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압제받는 자에게 환난 때 피할 수 있는 요새(산성)가 되십니다. '압제를 당하는 자'는 하나님 백성을 가리키며, 이는 '가난한 자'(9:12, 18)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찾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주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고 의지합니다.

* 하나님은 압제당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나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하나님에 관한 교훈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오늘도 제 삶 구석구석에서 행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발견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답답하고 억눌린 제 마음과 상황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붙들고 끝까지 공의와 정직으로 행하길 원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구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창조주 하나님 찬양

 

[시편 8편 1절~9절]
1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절 -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절 -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절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절 -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절 -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절 -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절 -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배경 이해하기]
8편은 보편적으로 ‘찬양시’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 시가 담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를 향한 영광의 노래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노래하는 듯하다는 점에서 ‘창조시’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시의 저작 시기를 두고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윗이 양을 치던 목동 시절에 쓴 것으로 봅니다. 양을 돌보던 다윗이 들판에서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느끼는 감동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풀어낸 것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어가 나오는데, ‘깃딧’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일종의 악기나 멜로디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가 그리스로 넘어가 ‘키타라’라는 단어가 되고, 스페인을 거치면서 ‘기타라’라는 단어가 되었다가, 영어의 ‘기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세 가지 채널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 만물이고, 둘째는 인간 자신이며, 셋째는 성경입니다. 시편 8편은 이 세 가지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 다윗의 감사와 찬양과 감격을 모두 표현하고 있습니다.

[관찰과 묵상]
1. 시편 기자는 어떻게 창조주를 높이며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나요?(1, 9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는 고백을 첫 절과 마지막 절에 반복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8편은 ‘여호와 우리 주여’라는 높임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주여’는 주인 또는 소유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도나이’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창조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또한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장엄한지요)!”라는 고백으로 자연 만물과 인간의 모습을 통해 그 이름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 되심을 높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히 2:12). 시편 기자는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드러내는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자연 만물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자연 만물을 통해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지음 받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8편 2절은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라고 합니다. 어리고 연약한 젖먹이들의 입술로도 찬양받기 합당하신 아름다운 주님이십니다.
적용과 나눔
들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압도하는 자연 경관 속에서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느끼는지 나누어 보세요.
아름다우신 주님은 대자연을 만드셨지만, 또한 들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도 만드신 분입니다. 주님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모든 자연 만물 앞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타락과 오염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우리는 하늘을 보며 주님을 높이고, 땅의 만물을 보며 주님을 찬양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구경했습니다. 조용하기에 뒤를 돌아보니, 흙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람들이 피다가 버린 담배꽁초와 크고 작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딸에게 일어나 저쪽으로 가자고 하려는데 딸이 먼저 말했습니다. “아빠, 이것 보세요, 이 작은 꽃이 너무 아름다워요!” 자세히 보니 한쪽에 작은 들꽃이 흙을 뚫고 피어 있었습니다. 어른인 제 눈에는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보였는데, 아이의 눈에는 그곳에 피어난 들꽃의 아름다움이 보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움을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찬양하게 하셨다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 사람을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특권은 무엇인가요? (4~8절)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히, 엘로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의 ‘엘로힘’을 ‘천사’ 또는 ‘하늘에 있는 존재’라고 번역하는 성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땅의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엘로힘’은 ‘하나님’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광대한 자연과 거대한 우주 앞에서 사람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지만, 성경은 사람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히 2:6~8). 하나님이 창조하신 양, 들짐승, 새, 물고기 등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의 대표자가 됩니다.
적용과 나눔
나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인식이 왜 중요할까요?
세상의 풍조를 따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팽배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월감이나 소외감, 또는 비교의식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고 느끼거나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시며 사람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사람의 발아래 두시고, 이를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내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명령이 주어졌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윌리엄 캐리 선교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존귀한 존재 의식과 사명 의식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이름은 온 땅 가운데서 찬양받기 합당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사 43:21).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분의 통치권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권세를 하나님 말씀과 뜻에 따라 선하게 사용하며 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온 세상에서 찬양받으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주님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창조 세계를 바라보며 주님을 느끼게 하소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저를 창조하셨으니,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며 세상을 사랑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