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의 소망

 

[시편 78편 1절~7절]
1절 -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절 -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절 -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절 -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절 -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절 -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절 -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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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Ⅰ. 모든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권고 150:1-6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바와 같이, 이 시편이 일차적으로 레위인을 염두에 두고 노래하는 자와 악기를 맡은 자들을 분발시켜 여호와의 전에서 열심히 봉사하게 하기위해 지어진 것이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신령한 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은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수 있다.
(1) 먼저 찬양의 제사가 울려나오는 곳이 어디인지 서술해 놓았다.
1) 일차적으로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당시 제사장은 물론이요 일반 백성들까지도 여호와의 전에 모여 찬양을 드리게끔 되어있었다. 사실 성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그 영광을 나타내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장소이니 이곳을 버리고 다른곳에서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2) 또한 '그 권능의 궁창에서'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궁창에 나타난 주의 영광과 권세가 실로 광대하며 찬란하고 또한 이 지구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2) 그다음으로는 어떤경우에 이렇게 찬양을 드려야 합당할 것인지 서술해 놓았다.
1)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행하신 역사를 볼때마다 찬양을 드려야한다고 했다(2절).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찬양할지어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전능하신 역사를 인하여 찬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행하신 모든 행사, 곧 섭리와 은총의 힘으로 천하 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다가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역사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요 한걸음 더나아가 특별히 택하신 백성과 교회로인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2) 하나님의 영광과 그 위대하심을 인하여 찬양을 돌려야 한다.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쫓아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은 실로 무한히 광대하신 분이므로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찬양하여도 이를 다 노래할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할때 너무 많은 말을 하였다고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말을 적게 했을때 두려워해야 한다.
(3)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반드시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때 했던 것처럼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열심으로 노래해야 한다(3-5절). 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때에는 어떠한 고통이나 희생이라도 기꺼이 감내해야할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헌신적이며 경건한 자세이며 아름다운 마음이다. 굳센 믿음과 경건한 사랑으로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예수안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주 여호와를 찬양하며 어둠의 권세를 눌러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존중하고 그 은혜로 다스리시는 나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언젠가는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소망중에 기다림으로써 여호와를 찬양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할때 쓰이는 여러가지 악기는 서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어야만 한다. 다시말해서 서로 방해가 되지말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약시대에는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롬 15:6).
(4) 마지막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서술해 놓았다(6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편 기자는 첫구절에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무리를 향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에서는 인류전체를 향하여 이렇게 권하고 있다. 그는 장차 이방인들이 '각처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제물을 드리는' 것이 용납될 시기가 오리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예루살렘을 비롯한 각처에서 여호와를 섬기게될 것이다(말 1:11). 인류뿐만이 아니라 새의 노래도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찬양이다. 오늘날 복음을 모든 피조물 곧 온인류에게 전파하라 하신 것은 누구나 예외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부르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찍이 선지자중의 한사람이 기도를 가리켜 '우리의 호흡'이라고 불렀다(애 3:56). 누구든지 하나님을 우러러 기도의 호흡을 하는 자들은 찬양의 호흡도 해야 한다. 살아있는 날동안 쉬지말고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그러는 중에 호흡이 끊어져 죽게되면 더좋은 곳에 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으로 숨쉬며 살게될 것이다.

히브리 성경의 구분을 따르자면 시편은 전부 다섯 권으로 나누어진다. 앞의 세권은 결론부분이 '아멘 아멘'이며 제4권은 '아멘 할렐루야'인데 반하여, 마지막 제5권은 '할렐루야'만으로 끝마무리를 해놓았다. 이는 마지막 제5권에 수록된 여섯편의 시편이 완전히 여호와를 찬양하는 내용으로서 인간의 입장에서 간구하고 탄식하는 부분이 단 한구절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전에 자기와 함께 이땅에 거하면서 친밀하게 지내던 성도들이 지금은 하늘나라에 들어가 큰영광을 누린다는 점을 생각하고 기쁨을 얻어야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심령을 소성케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할렐루야'는 본시 하늘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이었다. 이제 그 음성이 이 땅위에서 메아리쳐 울린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 핵심
150:1-6
할렐루야 시편의 절정이다. 모든 장소에서,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외친다.
예배와 음악(150:3-5)
음악과 노래는 구약의 예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성전예배에 음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은 다윗이다(대상 16:4-7). 본시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의 찬양은 웅장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도 음악과 노래는 예배에 있어 큰비중을 차지한다(엡 5:19; 골 3:16). 간절한 마음으로 소리높여 찬송을 부르며, 여러가지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메말랐던 심령이 녹아내리고 닫혔던 마음문이 열리는 것을 우리는 종종 체험한다.

# 묵상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장소 ( 150:1-6 )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장소는 성소입니다. 성소에는 하나님의 행위와 하나님의 광대하심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양할때 사용되는 악기로는 나팔, 비파, 수금, 소고, 현악과 퉁소, 제금 등이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다해 끊임없이 찬양드려야 함을 교훈합니다.
예외가 없는 하나님 찬양 ( 150:6 )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는 예외가 있을수 없습니다. 즉 세상에서 호흡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는 곧 피조물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지은 주인을 섬기고 찬양함은 인생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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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성도들의 찬양 149:1-5
(1) 이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찬양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앞장의 내용은 이미 살펴본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하만물을 향해 그이름을 찬양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편은 하나님의 성도들은 남다른 방법으로 주를 송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몸을 이루는 사람들을 통칭할때 쓰이는 용어이다(2절). 또한 '시온의 자민'이라 하면 거룩한 동산에 살면서 누구보다도 가까이 하나님을 모시는 축복을 누리는 무리를 뜻한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가까이하는 성도들이 가장 뜨거운 열심으로 찬양하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오늘날 신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가리켜 '시온의 자민'이라고 부르며 '시온산에 이르게될 것'이라는 소망중에서 살고있다(히 12:22). 이스라엘은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즐거워할지어다(2절). 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5절). 마음속에 있는 경건은 우리로하여금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고 그 품안에 안겨 위로를 받게 해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그안에서 기뻐하는 것으로 표현될수 있다. 이제 우리는 '새노래'를 불러야 한다. 여기서 '새노래'라 함은 예전과 같은 가사를 읊조리더라도 새로운 사랑으로 부름으로써 새롭게된 노래를 뜻한다. 복음시대에 찬송하는 법도는 '신령과 진정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곧 '성도의 회중에서' 엄숙하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1절). 이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만천하앞에서 시인되어야할 것이다. 또한 은밀한중에 홀로 거할때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해야 한다. 성도들은...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이 표현은 사람이 하나님안에서 기쁨의 황홀경에 빠져있을때에는 깊은 밤에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다(119:62).
(2)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찬양을 해야할 이유가 무엇인지 제시해 놓았다.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인간이야말로 만물중에서 뛰어난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곧 그의 교회로 택하심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백성을 지으셨다면 그들의 왕이 되시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그백성들의 생명을 지으셨으니 율법도 주실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그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시다. 그러므로 찬양을 받으셔야 마땅한 일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예배를 기뻐받으시며 저들이 날마다 번창하고 성령과 교통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 또한 그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것 역시 매우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백성으로 하여금 장차 큰영광을 누리게 하시려고 미리 준비를 해두셨다. 겸손한 자를...아름답게 하심이로다(4절).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뉘우쳐 회개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묵묵히 참고견디는 겸손한 자를 아름답게하사 이들의 겸손함을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하여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이 입혀주신 아름다움을 힘입어 만천하에 그 모습을 나타내게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 이르면 의인들은 마치 햇빛과도 같이 아름답게 빛을 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비록 어둡고 캄캄하다하여도 소망중에서 '새노래'를 불러야할 것이다.

Ⅱ. 승리의 개가 149:6-9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스라엘이 그 원수를 눌러 이기게 될것을 묘사해 놓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찬양의 소재가 되는 동시에(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동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온 것에 대한 상급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자신이 평강중에 지내게 된것을 진실로 여호와께 감사하면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무너뜨리려고 온갖 궤계를 꾸미는 가나안 족속과 그외의 여러나라와 맞서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인도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존영'을 가르치는 동시에 '두날 가진 칼'을 지니고 있었다. 훗날 다윗도 이스라엘 군대의 대장으로서 똑같은 훈계를 하였고 실제로 활의 용도를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였다(삼하 1: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여(블레셋과 모압, 암몬, 그외의 여러민족이 이스라엘과 싸워 패하였다, 삼하 8:1이하) 민족들을 벌하였다.' 물론 이렇게 한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이다(7절). 그 나라의 '왕들과 귀인'은 포로로 전락되고 말았다(8절). 어떤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압제자와 싸워 큰승리를 거두었던 마카비시대에 이 구절을 적용할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간혹 이 구절을 보면서 따뜻하고 온화한 하나님의 백성이 그 성격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가혹해질수 있는지 이상하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네의 뜻에 따라 피비린내 나는 정책을 시행했거나 개인적인 감정에 휘말려 복수를 꾀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일을 행하였다는 점을 알고나면 쉽게 해결이 될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원수들을 징벌하였다. 오늘날에는 더이상 이렇게 특별한 명령을 받을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신앙이라는 미명아래서 신하가 제왕을 해하는가 하면 왕이 그백성을 억누르기도 하고 이웃끼리 서로 적대시하는 움직임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것을 볼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과 검의 힘으로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신 일도 없거니와 인간의 분노를 통하여 그 의를 행하고자 하시지도 않았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입에 '하나님의 존영'을 지니고 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감람나무 가지를 들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거두시며 은혜의 힘으로 영혼의 대적을 눌러 이기신다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모든 성도들은 단순한 정복자 이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히 4:12)이며 '성령의 검'(엡 6:17)이다. 최초로 복음을 전파하던 자들은 '좌우에 날선 검'을 휘둘러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영광의 승리를 얻었다. 다시말해서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던 무리가 돌이켜 회개하게 됨에 따라 이방신들에 대한 보수가 행하여졌다는 뜻이다. 이제 사단이 세운 견고한 진은 완전히 무너지고(고후 10:4,5) 벨릭스와 같이 위대한 인물도 복음앞에서 전율하게 되었다. 사단은 잠시 세상에서 권세를 누리다가 때가 이르면 심판을 받아 쫓김을 당하고 말 것이다. 한편 성도들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자기속에 거하는 악한 세력과 싸우되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저들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한때 왕노릇하던 자아는 사슬에 묶어내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복종하는 것이 성도의 나아갈 길이다. 이런 영광은 그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 핵심
149:1-9
“새노래”(1절)를 비롯하여 6-9절에 나오는 군사적인 언어로 보아 전쟁의 승리를 노래하는 시편인것 같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성도들의 찬양시이다.

# 묵상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자 ( 149:4 )
마음이 겸손한 자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려는 교만으로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창3:5-7). 그러므로 성도는 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알아야 합니다(잠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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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 148:1-6
이렇게 어둡고 답답한 세상에서 살고있는 우리는 밝고 명랑한 하늘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래와 같은 사실은 알고있다.
(1) 저 하늘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천사들이 거하는 곳이 그 수를 헤아릴수도 없을만큼 많이 있다. 시편 기자도 이 구절에서 '하늘'과 '높은데'라는 표현을 써서 하늘위의 그곳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1,2절). 하늘이란 곧 높은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각자의 영혼을 높이 들어야하며 위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늘에서' 여호와가 찬양을 받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큰기쁨을 누렸다. 이 노래를 부를때 천사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유한 것(103:20절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은 하나님께서 가장 능력있고 뛰어난 무리에게 찬양받으시기를 원한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뿐만아니라 그속에는 위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천사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믿음과 소망과 거룩한 사랑으로 '천만 천사'에게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히 12:22).
(2) 또한 하늘위에는 축복받은 영혼과 아울러 거대한 군대조직과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어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늘에는 '해와 달과 광명한 별'들이 있는데 이들은 밤낮으로 끊임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빛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약하게나마 나타낸다고도 볼수 있다(3절,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그림자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105:16) 또한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한다'(왕상 8:27). 갈대아 역본에서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서술해놓았다. "하늘의 하늘들아 주를 찬양하라. 하늘위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물들아 저를 찬양하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5절). 이 말씀은 이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의미이며 한걸음 더나아가 이들을 끊임없이 관찰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할만한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해와 달과 별이 크고 훌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여호와의 말씀 한마디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것들을 지으셨을뿐만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지키고 보호해주신다(6절). 저가 또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시고.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시간의 흐름이 끝날때까지 계속적으로 지켜 보호하실 것이다. 다시말해서 만물은 다 각각 필요한만큼 오랫동안 보존될 것이다.

Ⅱ.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 148:7-14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은 이세상에서도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7절).
(1) 비단 이성을 지닌 피조물이 아니라하더라도 땅위의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부르심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피조물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7-10절). 큰바다에서 뛰노는 '용'들과 '악어'(104:26)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위해 그앞에서 춤을 추도록 권유를 받고있다. 물론 '바다'와 그속에 거하는 모든 것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바다밖에서도 찬양을 받으신다. 바다를 벗어나면 우선 불에 관련된 기상 현상이 있다. 이는 번개가 불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물에 관련된 기상 현상이 있다. '우박과 눈과 안개'가 여기에 속한다. 광풍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아무리 강해도 여호와의 '말씀을 좇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광풍이 일어났을때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같은 권능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점을 나타내셨다. 이 땅위에는 '산들과 모든 작은 산'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찬양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 산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자란다. 그중에는 '과목'과 같이 유용하게 쓰이는 나무도 있다. 과목은 그 열매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호와의 나무'(104:16)로 불리우는 '모든 백향목'은 품위있는 모습으로 찬양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끊이지 않는다. 거친들판을 뛰어다니는 '짐승'과 인간을 위해 봉사하도록 길들여진 '모든 가축'이 똑같이 하나님을 찬양한다(10절). 심지어 '기는 것과 나는 새'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만일 그렇지않다면 그렇게 낮은 바닥에서 기거나 하늘높이 날게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각종 피조물의 능력과 본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 그리고 그 선하심까지 여실히 증명된다. 또한 모든 피조물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시고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쓰시는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놀라움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시인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2) 하물며 이성을 지닌 피조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이 여호와를 찬양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나위도 없는 일이다.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이 다 찬양하여야 한다(11,12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나라의 질서와 제도속에서 찬양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뜻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명령하는 자와 복종하는 무리 양편에서 모든 찬양을 받으신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가족 제도속에서도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왜냐하면 가족을 세우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가족 제도내의 모든 관계 곧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들이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게하셨으므로 찬양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계층의 어느누구라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귀와 명예를 누리게된 사람들은 더욱더 주의 이름을 높여야할 것이다. 자신이 부여받은 권세로 하나님께 더 큰영광을 돌려야하며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주의 일을 힘써 행하여야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들의 명령을 받는 백성들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무리가 나와 호산나 찬양을 하는 것을 결코 가벼이 여기시지 않으셨다. '청년 남자와 처녀'들의 밝고 명랑한 기운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타나도록 이끌어주어야할 것이다. '노인'들은 자기가 이미 늙었고 나이많아 몸이 쇠약하니 찬양을 하지않아도 될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에 너무 어린나이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이 말씀은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며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사 저들이 바치는 송축과 찬미위에 뛰어나시다는 점을 시인해야한다는 의미이다.
(3)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이야말로 특별히 영광을 돌려야할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특별한 권리를 허락하사 존귀하게 하셨다(14절).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나 그이름을 부르는 자를 '친근히' 대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특권을 누려왔다. 이제 이 놀라운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도 전해지게 되었다. 이는 곧 '전에 멀리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엡 2:13). 이렇게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신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핵심
148:1-14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않는 세계를 통틀어 우주에 있는 모든만물이 창조주요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촉구하는 시편이다.

# 묵상
하나님 찬양을 권면받은 자들 ( 148:1-14 )
하나님 찬양에는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 또한 들의 짐승, 나아가 우주만물 모두가 이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찬양하는데는 세상 어떤피조물도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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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신 여호와 147:1-11
(1) 이 노래의 첫머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면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면이 몇번에 걸쳐 반복되어 있다. 우선 '하나님께 찬양함이'선하다고 서술한뒤에(1절) 비슷한 표현으로 다시 한번 강조해 놓았다(7절).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이 말씀은 곧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권면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이유는 그렇게 하는것이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곧 성도로서 지켜야할 본분이므로 선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큰영광을 누리게 된다.
(2)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 예루살렘은 처음에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했으나 크게 일으키심을 받았고 성읍전체가 멸망을 당했다가 다시 세우심을 입었다. 물론 두가지 경우 모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신' 것이다. 뿐만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온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복음의 교회역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그 백성 이스라엘은 간혹 자신들의 어리석은 소행으로 말미암아 흩어짐을 당하기도 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때마다 회개하게 하시고 저들이 다시금 성도의 교제를 나눌수 있도록 한곳에 모아주셨다. 그러면 그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며 상심하고 돌이켜 지난날의 잘못을 기억하면서 괴로워하게 된다. 자신이 지은 죄로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스스로 큰해를 입었다는 것을 생각할때 그들의 마음은 온통 찢어지는듯한 고통을 겪을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같은 때에 평강을 전하시는 성령을 보내사 위로하시고 아픈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 사람은 하늘의 별을 도저히 헤아릴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하였다. 이는 곧 별들도 모두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 부르심에 따른다는 뜻이다. 별들이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등 모든 운행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다. 시편 기자는 수많은 사례가운데 별의 경우를 예로들어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무엇이든 원하시는대로 하실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계시다)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라는 말씀의 증거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 인간의 지혜는 얼마 지나지않아서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심연과도 같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앞에서 스스로 낮아지며 세상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자들을 일컬으며, 악인은 하나님께 무례히 행하고 이웃과 형제를 멸시하며 어리석게도 교만한 마음을 품어 스스로 높아지려 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도 명하실만큼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면서도 '우는 까마귀 새끼를' 잊지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다(8,9절). 저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구름은 우울하게 보이기도하나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게되고 과실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마는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마치 어둡고 컴컴한 구름과도 같아 이를 보고 기쁨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고난의 먹구름이 있기때문에 소나기가 내리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어' 수확을 하게된다(히 12:11).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사람이 올라가서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일수 없을만큼 높은 산꼭대기에도 비를 내리사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신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풀은, 사람이 돌보지 못하며 거친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동물을 위해서 준비해두신 먹이이다. 심지어 제 어미에게 버림을 받은 '우는 까마귀 새끼'의 소리를 들으시고 먹을 것을 베풀어주신다. 실로 하나님은 군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늘 풍성한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영광받는 것을 기뻐하신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싸움에 능한 병사와 군마가 많다고 흡족해 하실리가 없다. 그러므로 한나라의 왕이 이웃나라를 치러 들어가면서 "여호와여. 나는 용감한 군대와 잘 훈련을 받은 군마를 거느리고 있나이다"라는 말로 승리를 거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소용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은혜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무리를 기쁘게 받아주신다. 여호와는...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은 우리로하여금 교만함에 빠지지 않게하며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마음은 공포에 젖어 절망하는 것을 막아준다.

Ⅱ.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147:12-20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과 거룩한 동산 시온을 향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권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시온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모든 거민의 안전을 위해서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예루살렘 성에는 큰문이 있었는데 위험한 일이 닥치면 먼저 이 문에 빗장을 지르곤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지않고' 온성읍을 두루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철저히 방비하여도 소용이 없기때문에 먼저 여호와께 찬양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2) 예루살렘과 시온 거민들의 수가 늘어나게 하기 위하여 찬양을 해야한다. 이것이야말로 문빗장을 견고히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3) 온백성이 전쟁으로인한 공포와 황폐함에서 벗어나 평안히 살기위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할 것이다. 본문에서는 '네 경내를 평안케하시고'라는 표현을 써서 하나님은 온백성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하는 전쟁을 사전에 막으시기도 하거니와 이미 이러한 전쟁을 그치게 해주시기도 한다는 뜻을 나타내주었다.
(4) 온백성이 평강을 누릴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풍요로운 생활까지 맛보게 되기위해서도 찬양에 힘써야 한다.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가나안 땅에서 좋은 밀이 많이 산출되었으며 밀을 외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신 32:14;겔 27:17).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땅에서는 보석이나 향료가 많이나지 않았지만 빵의 재료가 되는 '아름다움 밀'이 풍족하여 마음 든든하게 지낼수 있었다. 시온과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이는 곧 하나님이시다. 위대한 자연의 힘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자연의 세계역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 천하만물은 처음 지으심을 받을때와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유지되어 가고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소유하고 계시므로 언제든지 기쁘게 여기시는때에 눈이나 우박을 내려주신다(욥 38:22,23). 눈은 지극히 조용히 내리므로 마치 양털뭉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소리가 거의 나지않는다. 이렇게 내리는 눈이 땅을 덮으면 양털로 짠 천을 덮어놓은 것같이 따뜻해져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간혹 전혀 다른속성을 이용하여 역사하시곤 한다. 즉 약탈자의 입에서 먹을 것을 내시며 차디찬 눈을 내리시사 땅을 따뜻하게 하신다. 눈을 내리신뒤에 다시 그마음에 기쁘게 여기실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신다'(18절). 겨우내 추위를 몰아왔던 눈과 서리, 우박 등은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하신즉' 모두 녹아 없어지고 만다. 그렇게 춥다가도 하나님께서 따뜻한 남풍을 불게하시면 곧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눈과 서리를 녹이는 말씀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며 따뜻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하고 있다(성령은 바람에 비유되었었다, 요 3:8). 물론 양쪽이 다 얼음과 같이 굳어진 영혼을 녹이기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 회개의 은사는 마치 따뜻한 바람과도 같이 완악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풀어져 온화하게 변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 눈물을 흘리게 해준다. 이 은혜는 예전에 얼음과 같이 굳어져있던 마음에도 따뜻한 사랑이 흐르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현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떻게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수 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한가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임하사 그 영혼에 변혁을 일으키시고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신 결과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 곧 야곱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에 따라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즉 그 백성은 특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률과 율례에 따라 정치를 하는 나라로서 신정국가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혜택을 누려왔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율법의 중요한 사항들을 기록하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었다. 저희가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고' 말씀에 따르는 '율례와 규례를' 일러주셨다. 이세상에는 겉으로 보기에 큰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나라가 많다. 어떤나라는 물질의 풍요함을 누리고 또 어떤나라는 만방에 세력을 떨치는 방백의 다스림을 받는가하면 수준 높은 문학으로 유명한 나라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아는 축복을 받은 나라는 지금까지 그 유례를 찾아볼수가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와같은 축복으로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해야 마땅한 것이다.

#핵심
147:1-20
이스라엘을 회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시편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당시의 포로귀환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 묵상
시인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까닭 ( 147:1-7 )
하나님께서 흩어진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모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바벨론에 포로된 자들이 본토로 회복된데 대한 감사찬양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은총을 입은 자는 주께 감사찬양함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자 ( 147:6 )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자를 가리킵니다. 때문에 종의 모습으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앞에 자신을 복종시킨 그리스도야말로 이같은 겸손의 가장 아름다운 모범이 되십니다(빌2:6-8).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자 ( 147:10, 11 )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는 자는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인자를 사모하는 자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없이는 결코 살수 없음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긍휼을 사모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 ( 147:13-17 )
시인은 때와 시절을 좇아 우로(雨露)를 내리시며 풍성한 소출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적절한 우로는 농사에 더할수 없이 소중하지만 이를 감사하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상사에서 소홀하게 넘기기 쉬운 사소한 것들조차도 모두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우리도 항상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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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왕좌에서도 찬양하는 다윗 146:1-4
다윗은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사람들앞에서 소리높여 찬양하는 일을 삼가므로 위엄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이 왕의 위치에 올랐기때문에 더욱더 찬양에 힘써야한다고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렇기때문에 다윗은 스스로 분발하여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외쳤으며 평생동안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일을 쉬지않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온전히 마음을 바쳐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과 송축을 받으시는 여호와이시며 나와 함께 언약을 세우신 주가 되시므로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저를 찬양하는 일에 힘을 쏟으리로다." 간혹 이 구절을 보고 다윗이 그 당시 이방민족 사이에 널리 퍼진 풍습을 따라 자신도 영웅대접을 받고자 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그 무렵 여러나라에서 영웅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다윗이 이것을 보고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복된 생활로 인도하였다는 공을 앞세워 모든 사람을 자기 그늘아래 모으려 한것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그런뜻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놓았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3절). 다윗은 "나는 물론이요 다른 어떤사람도 의지하지 말지니라. 절대 사람을 믿고 의지하지 말라. 원래부터 사람은 영원히 신실할수 없는 존재이니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편이 현명하도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변하기도 하고 때에따라 약속을 어길수도 있는 존재이니라"고 백성들을 훈계하였다. 오늘날에도 사람을 영원히 변함없는 존재로 믿을수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간혹 신실한 사람이 있어 살아있는 날동안 최선을 다하여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더라도 그 손길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날수도 있는 일이다(4절). 방백들도 언젠가는 평범한 서민과 같이 죽을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방백들이 영원히 살아 계시는 권능의 하나님과 같이 늘 도움을 베풀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갖지도 말아야 한다.

Ⅱ. 여호와께 소망주는 자에게 내려지는 복 146:5-10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모셔들인다는 뜻이다. 이런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늘 예배에 힘쓰며 모든 소망을 주안에 둔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생명을 영위해나가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땅위에 모든 교회를 관장하시는 분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이들은 교회가 곤경에 빠졌다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고 확신할수 있다. 또한 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개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적인 곤경의 해결은 물론이요 그 바라는바 소망까지 하나님안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몬드 박사는, 이스라엘 랍비중의 한사람이 10절은 메시야의 날에 실현될 내용이라고 말하였던 사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난다음 7,8절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메시야의 특징을 설명하신 구절 곧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라 하신 표현과 비교해 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마 11:5,6). 뿐만아니라 예수께서 메시야의 특징을 설명하실때 말미에 해당하는 부분 곧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신 것은 5절과 부합되는 내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여호와는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본질적으로 전능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세를 지니고 계시는 분이다(6절). 이와같은 여호와의 특성이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적용될수 있다. 물론 예수께 이런 능력을 부여한 이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시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구세주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주 여호와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똑같이 인생들을 사랑해주신다는 사실은 성도들의 믿음성장에 큰도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영원히 변함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 예수는 '아멘이시오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이시다(계 3:14). 이 구절을 통해서 예수는 창조의 주체이시며 원칙을 세우신 분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하나님은 무고히 상처입은 자들의 후견인이 되신다. (본문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여호와는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메시야는 큰압제자 사단의 손아귀에서 압박당하고 있는 인류를 구하시려고 이세상에 오셨다. 이로써 이세상을 심판하실 권세를 지니게된 메시야께서 남을 억압하는 자를 포함하여 뭇사람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다(유 1:15). 그러나 한편으로 궁핍한 무리를 위하여 큰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따라서 하나님은 대개의 경우 자연의 이치에 부응하는 일상적인 방법으로 주린 자에게 식물을 베풀어주신다. 그러나 간혹 까마귀로하여금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셨을때처럼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적은 식량으로 수천명에 달하는 인원을 한꺼번에 먹이셨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성도의 영혼을 먹이신다는 점을 믿고 소망중에 힘을 얻게하는 요인이 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하나님은 속박받는 무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건지셨고 바벨론의 압박에서도 벗어나게 해주셨다. 예수께서도 많은 기사를 행하셨다. '에바다'라는 단한마디의 말씀으로 벙어리로 말하게 하시고 귀머거리로 소리를 듣게하셨다(에바다란 '열려라'라는 뜻이다). 또한 문둥병자를 깨끗케하시고 저들로하여금 여러가지 제한 규정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무덤속에 갇힌 죽은 자를 일으키신 일도 있었다. 이 모든 기사와 이적을 한데 묶어 '갇힌 자를 해방'시키셨다는 한마디로 표현할수 있다. 언젠가 예수께서 오셔서 신령한 자유를 선포하실 것을 믿고 그안에 소망을 둔채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로하여금 새삼 용기를 얻게 해준다(사 61:1,2). 그는 또한 시력을 상실한지 오래된 자들도 다시 볼수 있게 해주셨다.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때때로 이 구절은 고난에 처한 주의 백성이 큰기쁨을 목전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거나 마침내 보게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일의 증거를 보이셨으며(창 21:19) 선지자를 모시던 사환의 눈을 뜨게하사 놀라운 광경을 보게하신 일도 있었다(왕하 6:17). 그러나 이 구절은 특별히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창세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일도 할수 없으리이다'(요 9:32). 이로서 우리들은 장차 영의 눈을 밝히 뜨기위해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일에 용기를 얻을수 있게되었다. 또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신다' 하였으니 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헤매이는 백성들의 짐을 가볍게 하시며 때가이르면 그 짐을 벗게 해주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문자그대로 비굴한 자를 일으켜주셨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못하는' 불쌍한 여인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병을 고치셨던 것이다(눅 13:11).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하시며 비참하게 멸망해가는 무리를 위로하사 다시 일어나게 해주신다.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손길을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점은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라는 부분에 잘표현되어 있다. 언젠가 때가이르면, 하나님은 땅위의 권세잡은 자와 음부의 세력이 연합하여 교회를 대적하려 하는 것을 분쇄하사 메시야의 영광으로 삼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10절).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이 구절은 어두움의 권세가 아무리 강력하다하여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를 이기지 못할 것임을 나타내어 믿는 자로 하여금 용기를 얻게 해준다.

# 핵심
146:1-10
본시편을 비롯한 마지막 다섯편의 시편들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치는 ‘할렐루야 시편들’이다. 이 시편은 진정한 구원과 도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직 그분만을 의뢰할 것을 권면한다.

# 묵상
갇힌 자 ( 146:7 )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고있던 자들을 가리키며, 영적으로는 죄와 사망권세의 지배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이 모든 자들이 구원얻을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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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께 영광 145:1-9
'다윗의 찬송시'라는 표제로 미루어 다윗이 이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였으며 자주 불렀었으리라고 짐작해 볼수 있다. 실제로 다윗은 어느곳에 가든지 이노래와 동무하여 다녔었다.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을 찬양하고 후반부에 이르러 영원한나라와 그 통치하심에 대해 찬양을 하였다.
(1)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시편 기자는 다른사람들이 무슨일을 하든지 상관치않고 오로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전념하려 한다. 이 일은 그에게 있어 마땅히 해야할 의무이며 동시에 기쁨의 근원이었다. 다윗은 엄숙하게 예배를 드릴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하였다. 더군다나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겠다고 하여 일생동안 쉬지않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할일이 많아 바쁘거나 슬픔에 젖어 마음이 우울하다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날이 하루라도 있어선 안된다. 하나님은 매일을 하루같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송축하며 거룩하신 그 이름을 높여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 역시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성적인 다윗의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에 동참하게 만들수 있을 것이다. 그 백성은 앞으로도 영원히 여호와를 송축하며 살아갈 것이다(4절).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2) 무엇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하는가. 다윗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광대하심과 능한 일로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땅히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한걸음 더나아가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자기안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주의 이름을 한껏 '크게 찬양해야'할 것이다. 여호와의 광대하심은 인간의 지혜로 도저히 헤아릴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찾아도 끝을 찾지못할때 우리는 다만 가장자리에 앉아 내려다보며 그 깊이에 대해 경탄할수밖에 없다(롬 11:3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낮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역사하시는 과정을 놓치지말고 지켜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선하심은 그의 영광이 된다(출 33:19).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7절).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찬양하여도 주의 은혜를 다 거론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은혜를 풍성히 베푸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 말할때에는 언제나 '주의 의를 노래해야'한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영혼을 위해 큰은혜를 베푸시지만, 한편으로는 주께 대적하는 무리를 반드시 의로 다스리신다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속성중에는 끊임없는 선하심도 포함된다(8절). 주를 섬기는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그 손길을 필요로하는 영혼에게 '자비하심'을 베푸신다. 또한 주의 뜻을 거스릴때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인자하심'을 크게 베풀어주시기도 한다. 즉 하나님은 언제든지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려고 준비를 갖추어 두신다.

Ⅱ. 여호와께 감사의 찬송 145:10-21
시편의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 선하심에 대하여 송축하였다. 이제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선하심과 광대하심에 기반하여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통치를 주관하니 성도들은 모두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될 것이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10절). 만물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되어있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한다 함은 아름다운 건물로인하여 건축가의 명성이 높아지고 훌륭한 그림으로 말미암아 화가가 칭송을 받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도 만물로인해 찬양받으심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성도들은 자녀의 입장에서 사려가 깊고 자애로운 부모를 높이는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해야 한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나라는 실로 크고 광대하다. 왜냐하면 땅위의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솔로몬이나 아하수에로왕의 궁전도 상당히 훌륭하고 장엄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엄있는 궁전도 하나님나라의 영광과는 도무지 비할바가 못된다. 마치 한낮의 밝은 태양아래 반딧불의 빛을 내놓는 것과 같다고 할수 있다. 다윗은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할'때에는 항상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을 인생에게 알게'하여야할 것이라고 훈계하였다(11,12절). 한편 주의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점도 기록해 놓았다(13절). 이 땅위에서 아무리 큰권세를 누리는 왕이라하더라도 보좌가 영원히 계속될수는 없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왕관을 장식하던 꽃은 시들고 그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스리시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그의 나라의 성격과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곧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의 통치는 그 호칭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하나님은 매사에 그 선하심을 나타내시고 모든 생물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풀어주셨다(15,16절).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살아간다. 생물의 기원자체가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처럼 주어진 생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역시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하등동물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처음부터 그러한 지식을 소유할 능력조차 지니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도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에 의존하여 식물을 찾기때문에 '주를 앙망'하는 상태라 할수 있다. 비록 하등동물이라 하여도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신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이성을 지닌 피조물로 인정하시고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시는 인생들의 경우는 더 말할나위도 없는 일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사 누구에게나 불법을 행하시는 법이 없고 모든 피조물에게 공의로 대하신다. 인간들은 때때로 공의에서 벗어난 일을 저지르곤 하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한결같이 의를 행하실 뿐이다. 또한 하나님은 멸망에 이르려하는 자를 도우사 건져주신다(14절). 이렇게 약한 자를 도우시는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히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라는 표현은 혹시 실족하는 자가 있어도 저들로하여금 완전한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숱한 세월을 억압과 고초속에서 보내느라 '비굴'해졌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일어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다가 기진해버린 인생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만하면 짐을 가볍게하사 일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사 응답을 하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두고 계시다(18,19절).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 나라의 은혜가 밝히 드러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단 기도의 자유뿐만 아니라 담대히 은혜를 구할수 있는 용기도 지니게 된다. 본문에 여호와께서는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하시며'(16절) 한걸음 더나아가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였다(19절).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천부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굶주리도록 버려두실리가 없다.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일찍이 다윗의 음성을 들으사(이는 곧 저를 구원하셨다는 의미이다) '들소 뿔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귀기울이고 계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22:21). 우리가 진정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 여호와께 경배하고 선한 사업에 힘써 봉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사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임할때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생각이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과 일치해야 한다. 만약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예배를 드린 것이라 할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신다(20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다윗은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라는 말로 이 노래를 끝맺는다(21절).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이란 인간의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아름답게 서술하여도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남아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한가지가 끝나기 무섭게 또 새로운 일이 시작되므로 감사의 찬송도 계속해서 불러야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윗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밝혀놓았다.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 핵심
145:1-21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른 답관체 형식의 시편이다. 피조세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송한다.
하나님의 불가해성(145:3)
한마디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너무 위대하기때문에 인간의 유한한 생각으로는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관한 참된 지식을 가질수는 있지만 그분을 남김없이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른바 ‘하나님의 불가해성’이라는 교리를 진술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 온전히 파악되고 이해될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인생은 신비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하신만큼만 그분을 알수 있을 뿐이다.

# 묵상
찬양의 시기 ( 145:1-13 )
본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광대하심을 주제로 한 다윗의 찬송시로써,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웃과 그의 크신 능력을 대대로 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즉, 기쁠때나 슬플때를 불문하고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높여드려야 마땅합니다(살전5:16-18).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루신 일은 가장 지혜롭고 인생을 궁극적으로 유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인생 ( 145:14 )
하나님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와 영육간에 무력하여 권력앞에서 넘어질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경제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수 없는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사61:1, 2).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본받아 이웃에게 자선과 긍휼을 베푸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약1:27).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자 ( 145:20 )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자는 악인입니다. 여기서의 악인은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한 자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며 매사에 하나님 없이 생활하는 자를 말합니다(롬1:21). 인생은 각각 하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영원한 미래가 결정됩니다(요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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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와의 능력을 찬양 144:1-8
(1)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그앞에 순종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기꺼이 인정하였다.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절).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2절). 이와같이 다윗은 실로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내가 의지하는 주 하나님이시로다. '나의 인자'가 되시는 여호와는 내속에 거하실뿐만 아니라 내안의 모든 선한 것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니 선한 것과 은사는 온전히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예전에 다윗은 엔게디의 동굴에 거한 적이 있었다(삼상 23:29). 아마도 그곳은 천연적인 요새였던것 같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뒤에 사람의 공교하게 지은 강한 요새 곧 시온성을 빼앗아 다스리면서 '그 산성에' 거하였으나(삼하 5:7,9), 다윗이 믿고 의지한 것은 이러한 성채와 요새가 아니었다. 다윗은 오로지 '여호와만이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방패가 되시도다'라고 외쳤다. 즉 다윗은 평소에는 요새로서 그 백성을 편안히 거하게 하시며 싸움터에서는 방패와도 같이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이 어느곳에 가든지 늘 동행하시면서 저들을 지켜주신다. 다윗은 소년시절에 양치는 목자였었다. 다윗 자신은 물론이요 그 부모들도 목자이외에 다른일을 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으로하여금 군인이 되게하신 것이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하시도다. 이는 원래 다윗의 손은 목동의 지팡이를 짚고 그 손가락은 수금을 켜는 일에 익숙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용사로 삼고자 하셨기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겪게되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한걸음 더나아가 하나님은 다윗을 주권을 지닌 왕으로 삼으셨다.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하시는 자시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으로하여금 검뿐만 아니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홀을 쥐게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2) 다윗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사 이세상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자기 자신을 선택하여 주셨다는 점을 크게 찬양하였다(3,4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여기서 사람과 인생이라함은 지극히 연약한 존재라는 뜻으로 쓰였다. 인간은 분명히 존엄성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하여 죽음을 피할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4절). 사람은 헛것같고. 사람은 수많은 허물과 죄로 둘러싸여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그 말이 몹시 짧고 불확실하여 헛것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3) 다윗은 자신을 짓밟으려하는 원수의 무리와 맞서 이기게 해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였다(5-8절). 물론 이 구절에서 그는 누구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대적을 흩으시며 저희를 파하소서'라고 외쳤다. 이어 다윗은 자신의 대적이 어떠한 자인지 설명을 하고있다(7,8절). "여호와여 저들을 '이방인' 곧 이스라엘 사람에게 악한 일을 행하던 블레셋 민족이나이다.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므로' 그 하는말 가운데 취할 것이 전혀 없나이다. 간혹 그들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겠다고하여도 도무지 믿을수 없음은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기 때문이나이다." 한편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해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늘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은 하늘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소서(사 64:1). 여호와여 도무지 굽힐줄 모르고 언제나 강하기만한 원수 곧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가 발하게 하소서. 일찍이 시내산 위에서 행하셨던 이적과 기사로 주의 권능을 나타내주소서."

Ⅱ. 새노래로 찬양 144:9-15
이 시편 후반부에 해당하는 이 부분도 앞부분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다윗은 이 부분에서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후 그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1) 우선 다윗은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었다(9,10절). 이 구절을 읽어보면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가 무서운 세력으로 늘 위협하는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품안에서 거룩한 기쁨을 만끽하곤 하였음을 알수 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노래로 노래하며. 이 고백은 언제나 새롭게 베푸시는 주의 은혜를 찬양하겠다고 결심하는 내용이다. 이어 다윗은 새노래가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는 자이시라'는 내용임을 밝혀놓았다(10절). 왕이란 백성들을 보호하는 자이다. 그러나 왕들의 보호자는 곧 하나님이시다. 결국 왕이란 자기를 위해 구원을 베푸신 여호와께서 주신 권세로인하여 그를 섬기는 일에 더욱더 힘을 쏟아야할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 백성을 통치하는 일을 맡은 왕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선 '주의 종' 다윗을 위해 놀라운 역사를 행하신 것이 약속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 약속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본문의 노래는 진정한 새노래 곧 신약 시대를 여는 노래이다.
(2)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1) 다윗이 기도한 내용은 먼저 그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해달라는 것이었다(11절). 이 구절은 앞에서 나온 기도와 간구를 다시한번 반복한 것이다(7,8절).
2) 그리고 난 다음에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평강과 번영을 누리는 것을 보게해달라는 내용의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여 이 백성으로 승리하게하사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원수의 무리가 제 힘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치려하오니 결단코 그리될 수는 없나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아들들'과 '우리 딸들'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후손을 그 조상들이 바라던바 그대로 모든면에서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서술해 놓았다.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다윗의 말과 같이 궁전이나 여호와의 집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돌과 같이 자라난 딸을 보는 것은 매우 흐뭇한 일이다. 딸들로인하여 온집안이 화목하고 가족간의 유대를 강화하여 서로 힘을 합하게 되는 정경은 마치 건물의 각 뿔이 모퉁이 돌로 연결되고 있는 것과 같다. 다시말해서 한집안의 딸들이 영육간에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지니게 되었을때는 이들을 가리켜 훌륭한 건축물의 한부분을 이루는 돌과 같이 품위를 지녔다고 비유할수 있다.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여 지혜와 분별력을 갖추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딸들을 대하면 마치 거룩하고 순결하게 구별함을 받은 살아있는 여호와의 전을 보는 것과 같아 누구든지 자기가 복되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마련이다. 한편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더욱더 큰재산을 주셔야한다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첫째, 다윗은 그 백성의 곳간이 과일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땅의 소산으로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렇게 양식이 풍성해지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을 후히 대접하며 헐벗고 굶주린 자를 불쌍히 여겨 나누어줄 것이었다.
둘째, 다윗은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할 것이라하여 가축떼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당시는 온나라의 경제가 곧 가축떼의 수효에 달려있었다.
셋째, 다윗은 백성들의 사업이 번창하여 짐나르는 짐승이 제 구실을 다하게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한편 다윗은 간절한 어조로 "원수들이 이 백성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일이 없게하소서. 여호와여, 대적하는 자를 막으려고 나서는 일이 발생하지않도록 지켜주소서"라고 호소하였다. 전쟁이란 먼저 일으킨 나라와 맞서 싸우는 나라 양편에게 모두 큰불행을 겪게한다. 다윗은 또 이스라엘안에서 형제를 핍박하거나 도당을 지어 서로 다투는 일이 없게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는 이스라엘 백성중에 나라의 일을 보는 관원들의 실수로 피해를 입거나 이웃간의 다툼으로 원수를 맺는 일이 없게해달라는 뜻의 기도다. 나라안의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수 없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영을 누릴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곧 그의 일생동안 바라던바 소망이기도 하였다(15절).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그리 흔히 일어나지 않으며 간혹 일어난다해도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 핵심
144:1-15
다윗을 대적하는 이방의 원수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받을 복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영적인 싸움(144:1-11)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라는 원칙아래 선민인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들 사이의 전쟁에 하나님을 관련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들간의 이러한 전쟁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영적인 싸움을 예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보이지않는 영적인 세력들과 싸워야 한다(참조, 엡 6:10-20). 이 영적인 세력들은 이세상에 온갖 악을 조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본시편의 저자처럼 부단히 이에 대항하되,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간구해야 한다.

# 묵상
다윗이 표현한 인간의 실체 ( 144:4 )
인간의 본질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한계가 분명한 존재요, 그 삶은 무상할 뿐입니다(사2:22; 약4:14). 그러므로 세상에서 영원히 살것처럼 무례하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자기 배만을 채우는 자처럼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눅12:16-21).
다윗이 말한 새노래 ( 144:9 )
새노래로 노래하며 열줄 비파로 주를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거듭난 인생이 벅찬 심령으로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가라할지라도, 중생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지않고서는 새노래를 부를수 없습니다. 즉 영혼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새노래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노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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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고난속에서의 간구 143:1-6
(1) 다윗은 하나님앞에 나아와 자신의 처지를 아뢰면서 핍박하는 자들의 행악함에 대해서도 호소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신실하게 옳고그름을 분별해주시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의 소행을 심판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는 내세울만한 의를 갖고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의 의로우심 곧 그 언약의 말씀을 믿고 호소할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아무값도 없이 언약의 말씀을 주셨고 그로인해 소망을 품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2) 또한 다윗은 여호와의 공정하신 심판을 행치 말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2절). 그렇다고해서 다윗이 1절의 간구를 고치려 한것은 아니었고, 다만 보다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자 함이었다. 우선 '주의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할때 다윗은 율법의 무서운 심판이 아니라 복음으로 맺은 언약의 의를 간구한 것이다. 또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라고 함으로써 다윗은 자신의 죄로보아 마땅히 받아야할 공의로우신 심판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다윗은 자기앞에 놓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기전에 먼저 주의 선하심을 믿고 지난날에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3) 다윗은 원수가 자기를 핍박하는 현실을 여호와께 호소한다(3절).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자같이 흑암한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강한 원수 사울이 잔인하면서도 집요하게 내 생명을 찾고있나이다. 사울은 나로하여금 음침한 동굴속에 거하면서 어둡고 우울한 생각에 빠지게하였고 마치 죽은 자처럼 엎드려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게 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자비를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도 내게 자비를 베풀지 않나이다."
(4) 다윗은 외부적인 상황이 어려워짐에 따라 자기의 마음이 무거워질수밖에 없다고 탄식한다(4절).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5) 이런상황에서 다윗은 탄식에 빠진 자신의 영혼을 소생케 하기위하여 적절한 방도를 취하고 있었다. 다윗은 다른 아무것도 소유할수 없게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영혼을 지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해가는 편을 선뜻 선택하였을만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일때마다 다윗은 돌이켜 '옛날을 기억하고' 곤경에 빠진 그 백성을 위해,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해 나타나주셨던 하나님을 생각하였다(5절). 다윗은 늘 사방을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온갖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를 깨닫곤 하였다.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어떤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여기서 '생각하고'란 부분을 '의견을 나누고'로 바꾸어 볼수 있다. 아무튼 이런일은 실로 귀하고 좋은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면 할수록 인간의 힘이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게될 것이다(사 51:12,13). 다윗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그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하였다(6절).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이 구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마치 뜨거운 햇볕으로 완전히 갈라져버린 땅과 같이 갈급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있다는 점을 표현하였다.

Ⅱ. 도움을 바라는 간구 143:7-12
이 부분에서 다윗은 세가지 내용의 기도를 올렸다.
(1)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내달라고 기도하였다. 다윗이 하나님의 노하심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은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마소서'라는 표현에 잘나타나 있다. 성도들도 수심에 빠지면 마치 멸망으로 향하는 죄인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고 부르짖게 된다(욥 6:4;시 88:6).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하소서. 하나님은 말씀과 섭리를 통해서 우리를 깨우쳐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과 섭리, 양편 모두를 통하여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닫기위해 힘써 노력해야할 것이다(107:43).
(2) 다윗은 자기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였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하소서. 선한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가 처할 입장에서 가장 수월하고 편한 길이 어디인가 묻지않고 다만 의로운 길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애써 찾는다. 다윗은 "내가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위하여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라고 하여 자기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할 이유가 있다는 점을 밝혀놓았다.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하소서. 즉 다윗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에 대해서도 분명한 깨달음을 얻고자하였다.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이는 자기로하여금 하늘로 향하는 길, 곧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는 뜻의 기도이다. 우리는 누구나 연약한 존재로서 절름발이나 앞못보는 자, 겁쟁이와 같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깨우쳐주시지 않는한 하늘가는 길을 지켜 행하기는커녕 그 길이 어디인지 제대로 알수도 없다. 그렇기때문에 다윗도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수 있나이다"라고 호소하였다. 주의 신은 선하시니 어찌할바를 모르고 헤매는 영혼을 도와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이다. 어떤이들은 이 분을 "여호와여 주의 선하신 영으로 나를 인도하소서"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또한 다윗은 자기가 주의 뜻을 행하되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행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기도 했다(11절). 여호와여...나를 살리시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사 많은 활동을 하게하시고 주께 헌신할 뜻을 일깨워주시사 더욱더 열심히 섬기게 하옵소서."
(3) 마지막으로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자기 자신과 함께하셔야 한다고 기도하였다(9절).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여기서 원수라함은 다윗을 대적하여 해칠 뜻을 품은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상의 다윗의 기도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 "여호와여 비단 외부적인 상황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내 영혼이 처한 난국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 문제로인하여 내 영혼은 곧 쓰러질듯 하나이다."

# 핵심
143:1-12
시편에 실려있는 7개의 회개시(6,32,38,51,102,130,143편)가운데 마지막 시편이다. 원수들로인해 환난을 겪는 와중에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도움을 간청하고 있다.

# 묵상
구원을 간구하는 성도의 자세 ( 143:1-12 )
본문에서 시인은 원수의 추격에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음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신속한 구원을 호소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외에는 아무 소망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참담한 상황에 처했을때 탄식에 빠져있지 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서 발견되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인자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해야 합니다.
사울의 추격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한 다윗 ( 143:10 )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공평한 땅으로 인도해주십사고 간구했습니다. 이는 사울의 증오의 칼날을 피할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가리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란 어두움의 세상 권세자, 곧 사탄마 귀의 위협이 전혀 미치지못하는 영원한 하늘 도성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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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보호하시는 여호와 142:1-3
다윗이 이 기도문을 지었을때 있던곳이 아둘람의 동굴인지 엔게디의 동굴인지 분명히 알수 없으나 이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때 다윗의 마음이 너무나 큰괴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감히 왕의 몸에 손을 대려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앞에 나아와 두손들고 열심히 기도하였었다. 동굴같이 깊고 어두운 곳은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다윗은 이 노래를 '마스길' 곧 교훈의 시라고 불렀다. 이러한 명칭을 붙인 이유는 자신이 어두운 굴속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깨달은 교훈을 노래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1) 다윗은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하소연하였는가(1,2절). 다윗은 한차례 위험한 일을 겪을때마다 자기가 얼마나 놀라고 당황해하였는지 고백을 하면서도 조금도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위대한 사람들은 곧잘 이런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은 곤경에 처해있을때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마치 무엇엔가 몹시 놀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는 것처럼 부르짖는 것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여겨야 한다.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여기서 소리라 함은 마음속의 외침을 말한다(어떤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왜냐하면 그 무렵 다윗은 동굴속에 숨어 누군가가 밀고할까봐 두려워 감히 큰소리를 낼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은 들으신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소리내어 기도할수 없는 처지에서 탄식하는 것조차도 들어주신다(롬 8:26). 내 우환을 그앞에 진술하는도다. 즉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으로서 다윗은 언제나 다음 문을 열고 호소하며 주께 모든 문제를 즐거이 맡겼다. 우리는 대체로 앞에 놓인 난관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괴로와하면서 고민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나아와 모든 문제를 내놓음으로써 그 백성을 아끼시는 하나님께 일체의 근심과 걱정을 맡길수가 있는 것이다.
(2) 다윗은 하나님께 무엇을 호소하였는가. 나의 행하는 길에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이 말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원수들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심지어 사울은 자기의 딸 미갈을 하나님과 짝을 지어주면서도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있었을 정도이다(삼상 18:21).
(3)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서 다윗은 무엇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는가(3절).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할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이 말씀은 "슬픔과 두려움에 지쳐 쓰러지려 할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로 기쁨을 얻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아신다함은 곧 그 손길로 지키시며 보호하신다는 의미임을 내가 알기 때문이옵니다"라는 의미이다(시 21:7;신 2:7).

Ⅱ. 피난처이신 여호와 142:4-7
다윗은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버림을 받고 배신을 당했다(4절). 특히 다윗이 이리저리 쫓겨다닐때에는 그를 안다고 나서는 자가 없었으며 모두들 예전의 관계를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때때로 다윗은 도움을 얻고자하여 우편을 살펴보곤 하였으나(109:31) 생명까지 바치려했던 요나단이후에는 아무도 자기에게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친구의 결백함을 증거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 떠나버릴 제비처럼 쉽사리 마음이 변하는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는 선한 사람들이 이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이런점에서 다윗은 온세상 사람은 물론 가까이 머물던 제자들에게도 버림을 받고 홀로 포도즙틀을 밟으셔야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하겠다. 다윗은 동굴속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이 말씀은 곧 "지금 거하는 동굴은 허술하기 짝이 없으나 여호와의 이름은 장차 내가 들어갈 강한 성이나이다. 오로지 여호와 한분만이 내가 편안히 거할수 있는 '피난처'가 되시나이다"라는 의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영접하여 모든면에서 부족함없이 채워주시는 것을 깨달은 자들은 다윗과 같이 겸손하게 그 분깃을 달라고 주장할수 있게된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고 고백함으로써 이세상에서는 물론이요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그 도우시는 손길이 늘 자기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놓았다. 한편 그는 여호와께 이렇게 기도하였다(6,7절).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 이 외침은 "주께서 저들의 손을 묶으시거나 마음을 돌려주시든지, 아니면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시거나 힘을 없애시어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내사'라 함은 "이 동굴에서는 물론이요 장차 여러가지 난국에 처할때마다 주께서 인도하사 무사히 견디게 하옵소서" 라는 뜻이다.

# 핵심
142:1-7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해 달아나면서 한동굴에 머물렀을때 지은 시편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 묵상
구원의 유익 ( 142:1-7 )
본문은 응답받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는 시로써, 시인은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고 구원받은 것은 구원을 베푸신 주께 유익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모든 구원역사는 인생에게 복이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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