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여호와의 능력을 찬양 144:1-8
(1)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그앞에 순종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기꺼이 인정하였다.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절).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2절). 이와같이 다윗은 실로 다양한 표현을 구사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내가 의지하는 주 하나님이시로다. '나의 인자'가 되시는 여호와는 내속에 거하실뿐만 아니라 내안의 모든 선한 것을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니 선한 것과 은사는 온전히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예전에 다윗은 엔게디의 동굴에 거한 적이 있었다(삼상 23:29). 아마도 그곳은 천연적인 요새였던것 같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뒤에 사람의 공교하게 지은 강한 요새 곧 시온성을 빼앗아 다스리면서 '그 산성에' 거하였으나(삼하 5:7,9), 다윗이 믿고 의지한 것은 이러한 성채와 요새가 아니었다. 다윗은 오로지 '여호와만이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방패가 되시도다'라고 외쳤다. 즉 다윗은 평소에는 요새로서 그 백성을 편안히 거하게 하시며 싸움터에서는 방패와도 같이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이 어느곳에 가든지 늘 동행하시면서 저들을 지켜주신다. 다윗은 소년시절에 양치는 목자였었다. 다윗 자신은 물론이요 그 부모들도 목자이외에 다른일을 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으로하여금 군인이 되게하신 것이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하시도다. 이는 원래 다윗의 손은 목동의 지팡이를 짚고 그 손가락은 수금을 켜는 일에 익숙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용사로 삼고자 하셨기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겪게되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한걸음 더나아가 하나님은 다윗을 주권을 지닌 왕으로 삼으셨다.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하시는 자시로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으로하여금 검뿐만 아니라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홀을 쥐게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2) 다윗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사 이세상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자기 자신을 선택하여 주셨다는 점을 크게 찬양하였다(3,4절).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여기서 사람과 인생이라함은 지극히 연약한 존재라는 뜻으로 쓰였다. 인간은 분명히 존엄성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하여 죽음을 피할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4절). 사람은 헛것같고. 사람은 수많은 허물과 죄로 둘러싸여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그 말이 몹시 짧고 불확실하여 헛것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3) 다윗은 자신을 짓밟으려하는 원수의 무리와 맞서 이기게 해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였다(5-8절). 물론 이 구절에서 그는 누구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지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대적을 흩으시며 저희를 파하소서'라고 외쳤다. 이어 다윗은 자신의 대적이 어떠한 자인지 설명을 하고있다(7,8절). "여호와여 저들을 '이방인' 곧 이스라엘 사람에게 악한 일을 행하던 블레셋 민족이나이다.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므로' 그 하는말 가운데 취할 것이 전혀 없나이다. 간혹 그들이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겠다고하여도 도무지 믿을수 없음은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기 때문이나이다." 한편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해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늘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은 하늘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증거하소서(사 64:1). 여호와여 도무지 굽힐줄 모르고 언제나 강하기만한 원수 곧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가 발하게 하소서. 일찍이 시내산 위에서 행하셨던 이적과 기사로 주의 권능을 나타내주소서."
Ⅱ. 새노래로 찬양 144:9-15
이 시편 후반부에 해당하는 이 부분도 앞부분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다윗은 이 부분에서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후 그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1) 우선 다윗은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다윗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었다(9,10절). 이 구절을 읽어보면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무리가 무서운 세력으로 늘 위협하는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품안에서 거룩한 기쁨을 만끽하곤 하였음을 알수 있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노래로 노래하며. 이 고백은 언제나 새롭게 베푸시는 주의 은혜를 찬양하겠다고 결심하는 내용이다. 이어 다윗은 새노래가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는 자이시라'는 내용임을 밝혀놓았다(10절). 왕이란 백성들을 보호하는 자이다. 그러나 왕들의 보호자는 곧 하나님이시다. 결국 왕이란 자기를 위해 구원을 베푸신 여호와께서 주신 권세로인하여 그를 섬기는 일에 더욱더 힘을 쏟아야할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 백성을 통치하는 일을 맡은 왕에게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선 '주의 종' 다윗을 위해 놀라운 역사를 행하신 것이 약속의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 약속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본문의 노래는 진정한 새노래 곧 신약 시대를 여는 노래이다.
(2)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1) 다윗이 기도한 내용은 먼저 그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해달라는 것이었다(11절). 이 구절은 앞에서 나온 기도와 간구를 다시한번 반복한 것이다(7,8절).
2) 그리고 난 다음에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평강과 번영을 누리는 것을 보게해달라는 내용의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여 이 백성으로 승리하게하사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원수의 무리가 제 힘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치려하오니 결단코 그리될 수는 없나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아들들'과 '우리 딸들'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후손을 그 조상들이 바라던바 그대로 모든면에서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서술해 놓았다.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다윗의 말과 같이 궁전이나 여호와의 집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돌과 같이 자라난 딸을 보는 것은 매우 흐뭇한 일이다. 딸들로인하여 온집안이 화목하고 가족간의 유대를 강화하여 서로 힘을 합하게 되는 정경은 마치 건물의 각 뿔이 모퉁이 돌로 연결되고 있는 것과 같다. 다시말해서 한집안의 딸들이 영육간에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지니게 되었을때는 이들을 가리켜 훌륭한 건축물의 한부분을 이루는 돌과 같이 품위를 지녔다고 비유할수 있다. 이렇게 아름답게 성장하여 지혜와 분별력을 갖추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딸들을 대하면 마치 거룩하고 순결하게 구별함을 받은 살아있는 여호와의 전을 보는 것과 같아 누구든지 자기가 복되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마련이다. 한편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더욱더 큰재산을 주셔야한다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첫째, 다윗은 그 백성의 곳간이 과일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땅의 소산으로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렇게 양식이 풍성해지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을 후히 대접하며 헐벗고 굶주린 자를 불쌍히 여겨 나누어줄 것이었다.
둘째, 다윗은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할 것이라하여 가축떼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당시는 온나라의 경제가 곧 가축떼의 수효에 달려있었다.
셋째, 다윗은 백성들의 사업이 번창하여 짐나르는 짐승이 제 구실을 다하게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한편 다윗은 간절한 어조로 "원수들이 이 백성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일이 없게하소서. 여호와여, 대적하는 자를 막으려고 나서는 일이 발생하지않도록 지켜주소서"라고 호소하였다. 전쟁이란 먼저 일으킨 나라와 맞서 싸우는 나라 양편에게 모두 큰불행을 겪게한다. 다윗은 또 이스라엘안에서 형제를 핍박하거나 도당을 지어 서로 다투는 일이 없게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이는 이스라엘 백성중에 나라의 일을 보는 관원들의 실수로 피해를 입거나 이웃간의 다툼으로 원수를 맺는 일이 없게해달라는 뜻의 기도다. 나라안의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수 없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영을 누릴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곧 그의 일생동안 바라던바 소망이기도 하였다(15절).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그리 흔히 일어나지 않으며 간혹 일어난다해도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 핵심
144:1-15
다윗을 대적하는 이방의 원수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받을 복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영적인 싸움(144:1-11)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라는 원칙아래 선민인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들 사이의 전쟁에 하나님을 관련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우상을 섬기는 이방 나라들간의 이러한 전쟁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영적인 싸움을 예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보이지않는 영적인 세력들과 싸워야 한다(참조, 엡 6:10-20). 이 영적인 세력들은 이세상에 온갖 악을 조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본시편의 저자처럼 부단히 이에 대항하되,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간구해야 한다.
# 묵상
다윗이 표현한 인간의 실체 ( 144:4 )
인간의 본질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한계가 분명한 존재요, 그 삶은 무상할 뿐입니다(사2:22; 약4:14). 그러므로 세상에서 영원히 살것처럼 무례하고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자기 배만을 채우는 자처럼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눅12:16-21).
다윗이 말한 새노래 ( 144:9 )
새노래로 노래하며 열줄 비파로 주를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거듭난 인생이 벅찬 심령으로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가라할지라도, 중생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지않고서는 새노래를 부를수 없습니다. 즉 영혼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새노래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노래는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