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응답을 바라는 기도 141:1-4
(1)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기도할때는 언제나 자신의 음성을 들으사 응답하여 주셔야한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였다(1,2절).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특히 부르짖음이란 표현은 다윗이 뜨거운 열성으로 기도에 임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은혜로 나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기도할때 열심히 부르짖는 자는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실한 생명력이 여호와께 상달되기를 바란다. 속히 내게 임하소서. 믿음을 가진 자는 결단코 서두르는 법이 없으며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서 속히 임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할 뿐이다. 여기서 '기도'와 '손드는 것'이란 표현은 다윗의 바램이 지극히 고결하고 그 소망과 기대감이 너무도 강하다는 의미로 쓰였다. 특별히 '손드는 것'이라 함은 마음을 바친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는 여호와앞에 바칠 제물을 높이든다는 표현을 대신하여 자주 사용되곤 하였다. 기도란 곧 영적인 제사를 말한다. 한마디로 기도는 여호와앞에 자기의 영혼을 바치는 행위로서 인간이 하나님앞에 드릴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랑의 선물이다. 또한 기도는 마치 향과 같아서 여호와앞에 부드러운 향을 상달케 한다. 그러나 불이 꺼지면 분향을 할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사랑과 열심히 타오르지 않으면 기도도 나오지않는 법이다.
(2) 다윗은 자신으로하여금 죄에서 지켜달라고 간구하였다. 이는 스스로 경계하여 죄를 멀리하지 않으면 기도가 상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하다. 여호와여 내 입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이 말씀은 "입이란 마음의 문으로 만들어졌으니 하나님께서 은혜로 지키사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거나 이웃을 괴롭히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뜻이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악을 행치말게 하시며. 이는 곧 마음속에서 죄를 따르고자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때마다 여호와의 은혜로 이를 억눌러 이기게 해달라는 의미이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살면서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떨쳐버리지도 못할때, 우리는 악의 유혹에 빠지거나 그 선동하는 것에 휘말리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있다. 저희 진수를 먹지말게 하소서. 즉 "악한 자들과 어울리지 말게 하옵소서. 저들의 죄악에 유혹을 당할까 염려되나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달콤한 죄악의 유혹을 이길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Ⅱ. 도움을 구하는 기도 141:5-10
(1) 다윗은 자신의 허물을 꾸짖어 줄것을 바라고 있었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이 구절을 통해서 오늘날 의인과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것인지 배울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은 만약에 양심이 자신을 치지 아니할때에는 친구들로하여금 견책하게 하시고, 혹시라도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어 무서운 심판을 당하지않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다윗은 마음을 잘 표현해놓고 있다. 간혹 친구가 우리의 행위를 책망하는 일이 있거든 이를 우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말해서 친구의 책망은 기꺼이 받아들일뿐만 아니라 진실한 사랑의 표현으로 여겨야한다는 뜻이다. 본시 책망이란 상처를 치료하기위해 환부를 도려내는 것과 같지만 '원수의 입맞춤'이나 '우매자의 노래'보다도 한결 사모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잠 27:6;전 7:5). 그것은 상처에 발라 낫게하는 '기름'과 같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으로인해 책망을 당하는 것과 그 머리의 상함을 참을수 있는 자들은, 이런경우에 '내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라는 고백을 하게된다. 결국 다윗의 고백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볼수 있다. "친구의 책망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은 없도다. 머리를 상하게 하고 뼈마디를 꺾는 고통은 그동안 지은 죄의 결과일 뿐이라(51:8). 친구의 책망은 오히려 머리의 기름과 같아 죄로인한 상처를 치유해 주는도다. 그렇기때문에 책망을 들을때 잠시 마음이 괴롭다할지라도 결단코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하리라."
(2) 다윗은 스스로 잘못한 것이 있을때 친구들의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핍박하는 무리도 언젠가는 잘못을 인정하고 책망을 받아들이게 될것을 바라고 있었다(6절). 어떤사람들은 이 구절을 기록할때 다윗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하고 외쳤던 사울의 심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삼상 24:16;26:21).
(3) 다윗은 그 당시 자신과 친구들이 처해있던 큰곤경에 대하여 탄식하였다(7절). 우리의 해골이 음부문에 흩어졌도다. 이는 죽은후 오랫동안 여기저기 내던져짐을 당한 것같은 자신들의 처지를 시사해주고 있다. 사실상 그 무렵 다윗을 비롯하여 여러친구들은 나무꾼이 잡목 더미위에 던져놓은 조그마한 토막과도 같이 멸시를 당하는 존재에 불과했었다.
(4) 다윗은 온통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구원의 손길을 믿고 의지하였다.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로서 구원의 손길이 올것을 믿고 기다리나이다"(8절).

# 핵심
141:1-10
어려운 환난을 당하면서도 악에 빠지지않고 하나님앞에서 정결한 영혼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다윗의 신앙적인 인격이 돋보이는 시편이다.

# 묵상
영혼의 정결을 위한 기도 ( 141:1-10 )
본문은 하나님께 악에 빠지지않게 해주실 것과 구원해주실 것을 희구하는 시로써, 시인은 여호와께서 입술의 문을 지키시고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치말게 해줄 것을 간구합니다. 자신이 죄를 범하지않도록 지켜달라는 기도와, 행악자들의 박해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와, 위기가 닥칠때 악인을 원망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허물을 먼저 살펴 근신하는 다윗의 자세는 모든 성도에게 귀감이 됩니다.
고난가운데서의 성도의 태도 ( 141:8, 9 )
여호와께로 눈을 돌려 그분께 신속히 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극도의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당신께 피하는 자에게 절대적인 평안과 참된 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시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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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다윗의 고난 140:1-7
본문에서 다윗은 다른곳에서 많이 나타났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인물이 된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전에 숱한 고통을 겪었으며 영광을 누리기에 앞서 오랫동안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다윗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그에게 영광을 돌리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미움과 질투가 가득한 마음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하려고 꾀하는 무리도 많았다.
(1) 다윗은 이부분에서 자기를 대적하는 자의 특성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모든 악한계획을 꾸미는 주모자가 있는데 저를 가리켜 '악인'이라고도 하였고 '강포한 자'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1,4절). 아마도 이는 곧 사울을 의미하는것 같다. 그러나 다윗을 해치려한 사람은 사울이외에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매우 교활하여 사람의 머리로 상상할수 있는 모든 악한계획을 세우곤 하였다(2절).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5절). 그들은 마치 노련한 사냥꾼처럼 다윗이 미처 깨닫기도전에 해치려하였던 것이다. 때로는 이름높은 모사꾼이 저를 핍박하는 자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층더 무서운 상대를 만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마음이 순전한 자를 지켜주실 것이다. 저희가...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이는 그 혀밑에 독을 가득채웠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이 입을 벌릴때마다 악한 꾀만 말하므로 마침내 다윗은 '그 입술아래는 독사의 독'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3절). 그들은 다윗과 맞서 '싸우기위하여 매일' 모였다(2절). 어떤일에도 서로 연합하지 않던 자들이 선한 사람을 핍박하는 일에는 선뜻 연합하였던 것이다. 헤롯과 빌라도도 이와같은 일에 서로 손을 잡았었다. 이런점에서 그들은 사단과 비슷한 셈인데 사단에게는 결코 내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단은 바알세불과 뜻을 같이하여 흩어지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핍박하는 자가 한껏 교만할수록 용기를 잃지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만하면 할수록 멸망의 시간은 더욱더 빨리 다가오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2) 다윗은 '여호와여 나를 건지시며 나를 보존하소서 나를 지키사 저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하고 기도하였다(1,4절). "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과 명예, 모든 권세와 기쁨을 빼앗지 못하게하시고 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으려하는 저들의 궤계를 물리쳐 주소서. 나로하여금 저들과 같이 행하는 일이 없게하시며 악한 자들과 같은 길로 행하겠다고 약속조차 하지않게 하소서."
(3) 다윗은 하나님안에서 승리할 것을 미리 노래하였다. 이로써 사실상 다윗은 자기를 핍박하던 무리를 이긴 것이다(6,7절). '내가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 함은 "만일 나의 하나님이시라면 나의 방패가 되시고 능력의 보호자가 되어주소서"라는 의미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중에 이미 오래전에 세워진 하나님의 언약과 끊임없는 교통으로 큰위로를 얻었다. 그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입었으며 그 품안에서 한없는 축복을 누렸다. "주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시며 아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나이다. 또한 주는 나를 다스리시며 나의 의지가 되시나이다."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

Ⅱ.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승리 140:8-13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마시며 그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저들의 음모를 분쇄하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또한 그 섭리하시는 은혜를 저들의 계획에 베풀지마소서. 그 악한 꾀를 실천에 옮기도록 버려두지 마시고 달려가는 발을 사슬로 묶으사 더이상 못된 욕심을 따르지 못하게 하소서." 한걸음 더나아가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가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저희 입술의 해가 저희를 덮게 하소서(9절). "여호와여 나를 해하려고 악한 꾀를 꾸민 자들이 그 꾀에 넘어가게 하소서. 그 입에서 나온 저주의 말이 되돌아가 저들의 얼굴을 때리게 하소서. 저들이 나를 해하기위해 꾸며놓은 악한 꾀에 빠져 스스로 멸망케하소서"(7:15,16). 이렇게 악한 꾀를 꾸미는 자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여기서는 여호와의 심판을 '뜨거운 숯불'에 비유함으로써 소돔이 멸망한 장면을 연상하게 해준다. 한편 성도를 향해 '악담하는 자는 세상에서 굳게서지 못하며' 크게 요동을 할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부정한 수단과 거짓을 동원하여 남의 것을 빼앗거나 무고한 비방과 헐뜯음으로 재물을 탈취할 자들도 결코 번영할수 없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자가 상한 심령으로 호소할때 들으시며 의로인하여 잠시 궁핍을 겪던 자를 건져주시리이다." 이 노래를 마무리하는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하는 말씀은 그 백성에게 베푸시는 여호와의 은혜와 아울러 성도가 지켜야할 도리까지 시사해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정직한 자에게 지금은 은혜중에 살게하시고 장차올 세상에서는 영광중에 주의 앞에 거하게하실 것이라. 이것이 그들의 안위가 되며 복이 될 것이라."

# 핵심
140:1-13
악인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시편이다. 의인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 묵상
약한 자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 140:1-13 )
시인은 강포하고 사악한 원수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 학대를 받는 자 강포를 당하는 자들에게 도움과 방패가 되십니다. 따라서 성도는 어떤 형편가운데 처해있든지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보여준 하나님 ( 140:6 )
대적인 교만한 자들의 음모를 고발한후에 터진 이 고백은 대적의 음모로인한 위험속에서 하나님에게서만 피난처를 찾으려는 신앙고백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여호와를 여호와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기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참신앙인이라 볼수 없는 것입니다(마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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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한 자각과 고백 139:1-6
우리가 찬양해야 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비단 겉으로 드러난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조그마한 움직임까지도 전혀 숨길수 없는 것이다.
(1) 다윗은 위의 사실을 인정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하나님께 아뢴다. 하나님앞에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고백할때에 우리는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게된다.
(2) 다윗은 이 사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다윗은 '주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아신다'고 하지않고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 신하들로부터 '왕의 마음은 헤아릴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다(잠 25:3). 하지만 절대적 주권앞에서는 전혀 그럴수 없었던 것이다.
(3) 하나님은 세밀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감찰하신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여호와여 주께서는 내가 어느곳에 가서 무슨일을 하는지 다 아시나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게 속한것 모두를 꿰뚫고 계시나이다. 내 동작의 작은것 하나 곧 쉬기위해 앉는다든지, 일하기위해 일어서는 것까지 모르시는 일이 없나이다. 집을 나설때에는 무슨 목적으로 어느곳에 가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어떤일을 하는지 다 알고계시며 심지어는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못하는 생각까지 다 아시나이다." 여기서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신다함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기억조차 할수 없는 사소한 것까지도 다 알고계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하늘 높은곳에서 감찰하시되 사람 마음에 숨겨진 뜻을 다 아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33:14). '주께서 나의 길을 감찰'하신다함은 조그마한 행동 하나라도 철저하게 선과 악으로 구분해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나의 눕는 것을 아시오니'란 표현은 하루일을 끝내고 한가한 시간에 그날의 일과를 돌이켜보고 침상에 누우려고 생각한 것까지 아신다는 것을 뜻한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옳지못한 말이나 무익한 외침까지도 완전히 알고계시다. 때때로 이 말씀은 '내 혀의 말이 없을때에도 주는 그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한다(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왜냐하면 생각은 하나님께 대한 말과 같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5절). 우리가 어느곳에 가더라도 여호와께서 감찰하시며 따뜻한 손길로 지켜 보호해주신다. 한마디로해서 하나님은 각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까지 완전히 아시는 분이신 것이다.
(4) 다윗은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에 대해 새삼 감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6절).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써 노력을 해보아도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감찰하사 모든 사정을 아시는 것인지 깨달을수 없다. 심지어 우리가 얻은 지식도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조차 모른다.

Ⅱ. 자신의 조성자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함 139:7-16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모든 행적까지 완전히 아신다는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 이렇게 믿지않을수 없는 이유는 여호와의 눈길이 항상 다윗을 지키셨기 때문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이세상 어느곳에나 계시는 분이라면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아실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늘과 땅이란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는 개념인데 오직 창조주 여호와는 천지에 충만하다 하였다(렘 23:24). 하나님은 천지 모두를 아시며 지배하시고 그가운데 충만한 분이다. 그러므로 이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에따라 움직이게끔 되어있다. 또한 인간은 제아무리 몸부림을 쳐보아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 다른곳으로 갈수가 없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이 기도는 신령한 영이신 하나님을 떠날수 없다는 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나님은 신령한 영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수 없으니 하나님도 모르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소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하고 외쳤던 것이다(일찌기 세네카는 "그대가 어느곳에 가더라도 바로 그곳에서 신을 만나게 되리라"고 말했었다). 다윗은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장소를 예로들면서 그곳에 가더라도 자신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될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첫째, 하늘을 그 예로 들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는' 여호와여 주와 함께 그곳에 머무는 일이 영원한 축복이 되나이다."
둘째, 다윗은 자기가 '음부' 곧 스올에 내려갈 경우로 또하나의 예를 삼았다. 스올이라함은 땅아래 깊은 곳, 즉 땅의 중심을 뜻하는 용어로 이해되어 왔다. 할수 있는한 깊숙이 땅을 파고 그곳에 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실책이다. 때로는 여기 사용된 음부란 용어가 죽음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곧 우리가 모든 생명있는 것과 인연을 끊어도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수 없다는 뜻이다.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백성이 환난을 당해 어려움을 겪을때에도 주의 의로우심과 권능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세상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외딴곳을 예로 들었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여기서 새벽날개란 아침햇살로 인한 광채(이를 가리켜 해의 '광성'이라고 부른 일도 있다. 말 4:2)를 말하는데 이는 아무것도 따르지 못할정도로 빨리 퍼진다. 바로 이런 광채와 같이 빠른속도로 날아가 외따로 떨어져있는 섬구석 또는 이땅의 구석에 가서 숨는다해도 그곳에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만날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내가 갈수 있는 곳까지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더이상 가서는 안될때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나이다.' 그 손으로 붙드시므로 나는 주의 품을 떠날수 없나이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으로부터 우리를 숨겨줄수 있는 휘장은 존재하지 않는다(11,12절).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할지라도. "아무리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나를 숨기지못하고 단지 스스로 속이고 있음을 깨닫게될 뿐이니이다. 어두운 밤의 장막이라해도 새벽날개보다 나를 더 잘 숨길수는 없나이다." 인간이 꾸며낸 거짓가면이나 변장술이 아무리 교묘하여도 하나님께서 진실하신 빛을 비추실때 어떤행위도 감출수 없는 것이다.
(2) 자기가 곧 하나님의 손으로 빚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기관차를 만든 이가 그 움직임을 모를까닭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기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낱낱이 아시는 것이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이 고백은 여호와께서 은밀한가운데 자기를 만드셨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욥 10:11). 뿐만아니라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장부를 지으신 것이 지극히 의로운 처사임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속에 감취어져 있다. 그런데 육체로 인간의 영혼을 가리우신 이가 곧 하나님이시니 그가 원하실때는 언제라도 본질을 드러나게 하실수 있는 것이다. "나를 지으신 여호와께 감사하나이다. 나의 부모는 오직 도구의 구실을 하였을 뿐이니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이다.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결국 이세상의 모든 일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혜로 계획된 것이다. 우리는 실로 '신묘 막측'하게 지으심을 입었다. 산 성전인 우리의 몸은 각부분의 배합이 기가막힌 조화를 이루어 저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호와께서 인간을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전'에 신령한 지혜로 가득한 주의 책에 기록된바를 따라 인간의 모든 지체를 이루어주신 것이야말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라 하겠다.

Ⅲ.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기대함 139:17-24
이 부분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는 교훈을 여러면에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우선 다윗은 경이로움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평생에 끊임없이 지켜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17,18절). 다윗을 잘아시는 하나님은 그를 항상 생각해주셨고, 그 생각은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모든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그백성을 위해 선하심을 베푸시려고 늘 감찰하신다(렘 31:28). 우리를 위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실로 무한하다. 따라서 그결과는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거나 예상할수 있는정도를 넘어 훨씬더 좋은 열매를 맺게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마다 새로이 베푸시는 여호와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 제대로 알수가 없다. 내가 깰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이 고백은 여호와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키시는 가운데 평안하고 안락하게 하룻밤을 보냈다는 감사의 뜻을 나타내준다.
(2) 다윗은 여호와께서 전지하시다는 교훈에 근거를 두고 악인의 종말은 틀림없이 멸망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그동안 어떤행악을 벌여왔는지 모두 아시므로 낱낱이 헤아려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악인들이 감히 맞서려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저들을 징벌하신 것이다(20절).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악인들은 '주의 원수'이며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함'으로써 공공연히 적대감을 나타낸다. 어떤사람들은 이 내용이 외식하는 자에 대한 설명이라고 보기도 한다. "외식하는 자는 주의 원수로서 언제나 경건한태도를 가장하고 하나님에 대해 악한 말을 하나이다. 저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며 거짓맹세를 세우곤 하나이다."
(3) 다윗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결코 그대들과 친교를 맺거나 우정을 나누지 않을지니 나를 방종케 할수 없으며 멸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지도 못하리라." 또한 다윗은 그들을 몹시 싫어하였다(21,22절). "여호와여 주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므로 나를 위해서 증거해주실수 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아니하나이까. "내 마음이 주를 사랑하는 연고로 저들을 미워하오며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악한 소행을 보는 것을 견딜수 없어 하나이다." 내가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한하지 아니하나이까. "저들이 여호와를 대적하는 모습을 보건대 종국에는 분명히 멸망을 받을수밖에 없으리니 슬픈 마음으로 탄식하게 되나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죄를 미워하면서도 그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 애통해야 한다.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이 고백은 곧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다(101:3).
(4) 다윗은 자기가 순전한 마음을 잃지않도록 지켜달라고 여호와께 호소한다(23,24절). "여호와여 주의 종은 이제 죄의 길로 행하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멸망으로 향하는 기운이 남아있거든 나로 그것을 보게하시고 완전히 근절케 해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주여 내가 악한행위를 결코 용납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 핵심
139:1-24
본시편을 통해 다윗은 하나님의 지혜, 전지하심, 무소부재하심, 창조주로서의 권능 등을 높이며, 그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을 감히 대적하려는 원수들의 무모함을 비웃는다.

# 묵상
하나님을 의뢰해야할 이유 ( 139:1-24 )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를 의뢰해야할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 안 계신데 없는 하나님의 편재성, 창조자 하나님의 전능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성 ( 139:1-5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모든 생각, 감정, 행동, 입술의 표현까지 감찰하시고 아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그 어떤것도 숨길수 없는 벌거벗은 존재와 같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늘 자신의 언행심사(言行心思)를 살피시는 하나님앞에서 살아간다는 의식과 신독(愼獨)의 정신을 가지고 경건과 거룩에 힘써야할 것입니다(시17:3).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 ( 139:13-16 )
시인은 모태에서부터 주님이 자기를 조직하셨고 장기들을 만드셨는데 그 놀라운 행사를 자기 영혼이 잘알고 있을뿐더러 또한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굴러다니는 돌맹이처럼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생명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잘못된 풍조에 말려드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온전하게 되는 길 ( 139:23, 24 )
시인은 자신이 온전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내면을 깊이 살피시고 온전하고 영원한 길로 인도해주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삶의 주도권(initiative)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어맡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인생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잠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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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다윗이 여호와를 찬양함 138:1-5
(1) 다윗은 진실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다. '전심으로'라는 어구를 통해서 알수 있듯이 다윗은 온마음을 다바쳐 심령에 감동받은 것을 그대로 입술로 옮겨 찬양하는 일에 힘썼다. 신들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여기서 '신들앞'이라함은 모든 방백들과 재판관, 권세자 앞이라는 뜻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이것은 제사장에 한하여 성전에 들어가도록 허용되었을뿐 백성들은 가까운 곳에서 전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릴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나타내준다. 물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호와의 전을 향하여 예배를 드릴수도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전이 되시는 분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사이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앞에 찬양을 돌려야한다. 또한 하늘도 여호와의 거룩한 전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늘을 향해 우러러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간구해야 한다.
(2) 다윗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여호와의 위로하심을 인하여 찬양을 돌렸다.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위에 높게 하셨음이라. 여기서 말씀이란 진실하신 여호와의 언약을 뜻한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으로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존재를 분명히 제시해주는 것은 말씀이다. 뛰어난 주석가 몇몇사람은 말씀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야말로 예전에 조상들을 깨우쳐 자신의 존재를 알게하고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기사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또한 다윗은 자기가 한때 고난중에 있었던 일을 결코 잊지않았다. 주께서...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만약에 하나님의 장려하심을 받아 자기의 영혼이 무거운 짐을 지고도 넉넉히 견디며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어려울때에도 옳은 길로 지켜 행할수 있게된다면, 이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이 기도한 것을 들으사 응답하셨다는 점을 인정하고 감사의 찬송을 드려야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 힘을주사 믿음으로 주를 의지하며 마음의 평안을 잃지않고 인내로 열매를 기다리게 하셨을때에도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3)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체험이 하나의 사례로서 이땅의 모든 왕들을 신앙생활로 인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말은 이웃나라 히람왕을 비롯하여 여러나라의 왕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들이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리이다." 실제로 다윗을 찾아왔던 여러왕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리에 기꺼이 참석하곤 하였다. 다윗이 죽은뒤에 솔로몬을 찾아온 왕들도 역시 그렇게 했다('천하 열왕이' 하나님을 사모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대하 9:23). 한걸음 더나아가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은 이방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 제자가 될 천하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고 볼수도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만왕이 그앞에 부복하며'라는 말씀을 통해서 미리 예시되었다(72:11). '저희가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이라함은 열방의 왕들이 다 각자 자기를 향하신 여호와의 은혜와 그 섭리하심을 찬양하게 되리라는 뜻이다.

Ⅱ. 다윗이 얻은 위로들 138:6-8
다윗은 아래에 언급하는 세가지 사실을 기억하면서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1) 여호와의 은혜는 그 백성가운데 지극히 낮은 자에게도 미친다는 점이다(6절).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낮은 곳에 처한 백성도 기뻐하시며 즐거운 낯으로 대하실뿐만 아니라 조만간 그들을 들어 영화롭게 하실 것이나, 한편으로 교만한 자를 아시며 그들을 결단코 인정치않으시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2)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어려운 처지에 빠져 남의 핍박을 받을때 지켜주신다는 점이다(7절). 다윗은 의인으로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환난중에 다닐'때가 닥칠 것을 예상하고 다음과 같이 바라면서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려고 하였다. "여호와여 내영혼이 기진하여 쓰러지려 할때에 '주께서 나를 소성케하시고' 환난중에 있더라도 기쁘고 평안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의 노를 막으시되' 그들을 멸망시키지는 마옵시고 다만 그저 여호와의 능력으로 무섭게 분노한 그들의 기세를 막아주소서." 물론 적당한 때가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를 섬기는 자를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해주실 주의 오른손이다.
(3)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하여 선한 일을 시작하시고 그일을 완전케하신다는 점이다(8절).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여기서 '내게 관계된 것'이란 다윗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말한다. 모든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앞에서 자기의 본분을 신실하게 행하고, 그안에서 확실한 평안을 누리는 일을 최고의 관심사로 삼는다. 만약에 사람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마음속에서는 착한 일이 시작될 것이고 그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완전히 이루어주실' 것이다(빌 1:6). 누구든지 완전케될 소망의 근원을 자기의 힘이 아닌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두어야 한다. 인간의 힘은 연약하여 실패하기 쉬우나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결코 부족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그 은혜로 지키사 나를 멸망치않게 해주소서"하고 호소하였다. 다윗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소망을 여호와께 아뢰었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친히 지으신 내 몸과 내 영혼을 버리지마시고 지켜주소서."

# 핵심
138:1-8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어 주변 열왕들을 굴복시킨 일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편.
땅의 열왕들의 찬양(138:4)
다윗은 자신의 개인적인 찬양만으로는 하나님을 높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따라서 그는 세상의 모든 왕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미래의 세상을 희망했다. 이러한 희망은 구약시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약시대에는 땅의 열왕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였을 뿐이다(2편). 하지만 다윗의 희망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것이었다. 곧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종말에 땅위의 모든 왕들이 새예루살렘으로 모여 하나님을 찬양할때(계 21:24) 다윗의 희망은 온전히 성취된다.

# 묵상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 138:1-8 )
하나님께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인자하고 성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3절). 또한 온땅에 그 말씀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4, 5절), 구원을 영원히 베푸신 창조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6-8절). 마지막으로 인자와 영광을 스스로 나타내시며 영원히 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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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바벨론 포로생활의 슬픔 137:1-6
(1) 하나님의 백성들은 눈물을 흘렸다. 즉 그들은 눈물로 씨를 뿌렸다. 그들이 눈물을 흘린 곳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이방인의 땅 '바벨론의 여러강변'이었다. 전쟁에 져서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와있는 것이었다. 옛날에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종살이했던 것처럼 바벨론 땅에 끌려와 비천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동력을 한껏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강변' 여러곳에 거하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때 '그발강' 근처에 머무른 일도 있다(겔 1:3). 아무튼 그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생각하면서 큰슬픔에 빠져 막연히 '앉아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시온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흘린 눈물은 깊은 생각을 거쳐 나오는 값진 것이었다('우리가 앉아서 울었도다'라는 문장이 그런 의미를 시사해준다). 바벨론 강변에서 그들은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동산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은 각자의 집에 대한 생각을 모두 잊게만들 정도였다. 그들은 악기를 내려놓고 사용치않았다.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수금을 수풀속이나 바위틈에 감추지않고 잘보이는 곳에 걸어둔 것은 나무위에 걸린 수금을 볼때마다 자신들의 슬픈처지를 뼈저리게 느끼기위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을 옳다고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시기가 정해져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 한편 바벨론 사람들은 이렇게 슬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욕적인 요구를 해왔다(3절). 바벨론 사람은 저희를 '사로잡아' 고향을 떠나오게 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땅을 '황폐케'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도 모자라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욱더 분노케하려고 무례한 행동을 일삼았던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때때로 그들을 향하여 '기쁨을 청하고 노래하라'고 하기도 했다. 예전의 기쁨이나 현재의 비참함때문에 마음에 괴로움이 가득한 사람을 질책하거나, 큰슬픔에 빠진 자에게 즐거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열하고 더러운 행위이다. 게다가 그들은 '시온 노래'중 하나를 부르라고 요구하였다. 시온 노래로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로지 하나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사람들은 성전의 거룩한 기명을 가져다가 포도주를 마셨던 벨사살과 같이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죄를 범하였다.
(3)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참고 견디었다(4절). 그들은 수금을 제자리에 놓아둔채 다시 사용하려 들지않았다. 함부로 모욕을 일삼는 자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온유하고 경건한 이유를 들어 노래를 부를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여호와의 노래는 성전에서 예배할때에 부르는 거룩한 노래라.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땅에서 우리가 어찌 부를꼬."
(4)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 비록 바벨론 땅에 있었지만 거룩한성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을 잃지않았다. 그들은 한순간도 그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중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본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이 매일 예루살렘을 향해 창을 열어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지켰다. 그러니 어떻게 예루살렘을 잊을수 있었겠는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전문적인 음악가들에게는 손이 마르지않는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곳에 거하든지 예루살렘을 위하여 선한 말을 하지않는다면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기대 137:7-9
바벨론에 끌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억하며 늘 마음아파하던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뉘우침을 모르고 언제나 잔혹하게 굴던 원수의 무리가 멸망할 날을 기다리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것은 복수할 뜻을 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영원한 나라의 영광을 사모하는 열심히 이와같은 소망을 품었다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에돔 자손의 저주는(7절). 자신의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야곱을 향해 적대감을 품었던 에서의 해묵은 감정으로인한 결과였다. '여호와여 그 날을 기억하소서'라 하는 외침은 여호와께 호소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설사 그만한 힘이 있다하더라도 스스로 원수를 갚지말고, 오직 '복수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여자같이 멸망할 바벨론'이란 호칭속에는 그처럼 교만하고 완악한 성읍은 멸망을 당할수밖에 없다는 점을 그들이 잘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져있다. (해몬드 박사의 의견을 따른다면) '멸망할'이란 부분은 '파괴자'라는 의미이다. 파괴자에게는 멸망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것이다.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받으리라. 우리가 네게 당하였던 것과 같이 파괴하는 자가 나타나서 잔혹하게 짓밟으리라." 제 손에 권세를 쥐었을때 인자함을 베풀줄 몰랐던 자들은 곤경에 처했더라도 남의 긍휼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어린 것들도 메어침'을 당한다는 것은 아무도 피할수 없다는 뜻을 암시해 준다. '어린 것'이란 앞으로 올 세대를 끌고나갈 씨앗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들도 목숨을 잃는다함은 성읍이 완전히 멸망하여 다시는 희생치 못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루살렘도 이처럼 철저히 짓밟혔었다.

# 핵심
137:1-9
한 익명의 시인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한 망국의 슬픔을 호소하며, 애끓는 민족애로 하나님께 바벨론의 멸망을 간구하는 시편이다.

# 묵상
포로생활의 고통 ( 137:2-4 )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있던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방 지배자들의 조소와 비난, 특히 가증스런 우상숭배자인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향연을 위해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질 찬송을 부르도록 강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적인 일은, 개인적인 인격이 수모를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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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권고함 136:1-9
본문에서 우리에게 거듭거듭 당부하는 내용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되 땅의 소산물이나 수소로써가 아니라 '그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로 드려야한다(히 13:15).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1절). 그는 곧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으로서 천사들의 찬미를 받으시는 분이다(2절). 물론 천사들이 누리는 권세도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이시며 천하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적 주권자가 되시는 분이다(3절).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시므로 그앞에 나아가 감사의 찬송을 드려야한다(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선한 일을 행하시기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선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현재 이세상에 나누어주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뿐만 아니라 장차 영원히 누릴 하늘나라의 영광과 기쁨으로인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권능과 지혜로 행하신 기사가 놀라우니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시고 널리 펴놓으셨다. 하늘을 볼때 여호와의 지혜나 권능을 볼수 있으며, 그 따뜻한 기운을 통해서 그의 인자하심을 느낄수 있다. 하늘이 없어지지 않는한 하나님의 인자하심도 그와 함께 영원할 것이라 하였다(5절). 하나님께서는 땅과 그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인류에게 주셨으며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을 두사 언제든지 빛을 발하여 이땅을 밝히 비추이게끔 하셨다(7-9절).

Ⅱ. 기사와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136:10-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큰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마침내 그가운데 나라를 세우게 해주실때까지 많은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다는 점이 본문에 언급되어 있다. 이는 곧 하나님의 권능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특별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시편 전반에 걸쳐 비슷한 내용이 여러번 나온다. 우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다(10-12절). 그리고 그들앞에 최초로 놓인 장애물이었던 홍해를 건너가게 인도해주셨다. 이때 하나님은 바다를 가르셨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감동하사 갈라진 길로 걸어갈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주셨다. 이는 곧 하나님의 능력이 바닷물과 아울러 인간의 마음까지도 완전히 다스린다는 증표가 된다. 홍해를 건넌뒤에는 광활하고 황량한 광야로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16절).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끄시며 때를 따라 먹이셨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살곳을 마련하시기 위하여 그앞에 있는 왕들을 물리치셨다(17,18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는 총체적인 관찰보다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훨씬좋다. 이렇게 모든 사례를 세밀히 관찰하다보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라는 찬송이 절로 우러나게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해주셨다(21,22절). 일찍이 애굽왕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향하여 '내 백성으로 이곳에 머무르며 나를 섬기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바로 이 사실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여기서 가나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으로 영원한 생명과 함께 누리게될 거룩한 천국의 모습을 예표한다.

Ⅲ.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양함 136:23-26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영원하신 인자하심으로 사랑하는 백성들을 구원해주셨다는 점을 찬양하였다(23,24절).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해주신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그들이 남의 노예가 되어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하시사 사사들로부터 다윗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을 들어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인류전체를 구원하시는 큰역사를 베풀어주셨다. 사실 유대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아무튼 이런 일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찬양할 근거를 갖게되었다. 우리를 비천한데서 기념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 "독생자 예수를 아끼지 않으시고, 죄와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지옥으로 향하는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날까지 이 땅위에 생명이 거하는 곳은 어디나 충분하고 넉넉한 양식을 주셨다는 사실은 늘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는 일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적절히 먹이시는 어머니와 같다고 할수 있겠다. 모든 영광과 은혜를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26절). 땅위에 여러가지 좋은 일이 있으나 모두 잠시동안 지속될뿐인, 오로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마르지않는 샘물과 같아 '영원'하리라고 하였다.

# 핵심
136:1-26
본시편은 한사람의 제사장이나 독창자가 선창을 하면 나머지 회중이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후렴구를 노래하는 화답형식으로 된 노래이다. 창조주와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인자와 사랑을 주제로 삼고있다.
신앙의 역사성(136:10-24)
기독교신앙은 역사적으로 진술, 증거되어 온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다. 즉 오늘의 신앙은 과거 성경에 기록된 구원사와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교회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행위에 관한 내용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런 구원의 역사는 마지막 종말이 임할때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신앙인은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현재의 구원을 기대하고, 현재를 조망함으로써 미래의 신앙이 나아갈바를 헤아릴수 있다.

# 묵상
이스라엘 역사속의 하나님 ( 136:1-26 )
이스라엘 역사속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은 선하시고 모든 것들보다 우월하신 하나님이시고(1-3절), 우주를 조성하시고 운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며(4-9절), 역사속에서 친히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고(10-22절), 구원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23-26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삶의 순간순간마다 감사의 주제가 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 136:10-22 )
본문은 출애굽에 대한 찬양입니다. 시인은 애굽에서의 노예였던 때와 광야에서의 힘든생활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삶가운데 함께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십니다.
모든 생물의 생존이유 ( 136:25 )
모든 생물이 생존할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찮은 미물(微物)에서부터 인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을 친히 먹이시기 때문입니다(마6:26). 하나님은 생명과 복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는 한시도 생존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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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향한 갈망

 

[시편 107편 33절~37절]
33절 -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34절 - 그 주민의 악으로 말미암아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시며
35절 - 또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시고
36절 - 주린 자들로 말미암아 거기에 살게 하사 그들이 거주할 성읍을 준비하게 하시고
37절 -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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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찬양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선하심 135:1-4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를 찬송하고 또 찬송하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주신 일을 감사해야할뿐 아니라, 그분 자신에 대해서, 또한 그가 남들을 위해 해주신 일에 대해서도 찬송해야 한다.
(2)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여호와의 종들아. 이들은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에 섰는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거기서 예배드리는 경건하고 헌신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2절). 이들이 여호와를 찬양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이일을 감당할 것인가.
(3) 여호와를 찬양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하시며, 그 선하심은 그의 영광이시다. 따라서 그 선하심을 찬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도들의 찬양이야말로 여호와의 선하심에 합당한 보상이 되는 것이다.

Ⅱ. 찬양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광대하심 135:5-14
앞부분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가 즐겁게 찬양하기에 합당한 이유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광대하심이 우리가 찬양하기에 적합한 소재가 된다는 점을 말한다.
(1)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광대하시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쳐준다(5절). '여호와께서는 광대하시며' 실로 무한한 능력을 지니사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2) 또한 하나님께서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 자신의 광대함을 나타내셨다고 증거한다(6절).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권능을 소유하고 계시기때문에 무슨 일이든 그 뜻대로 하실수 있다. 이 전능하신 능력은 우주전체에 미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바다'는 물론이요, 바다밑이나 땅속의 '모든 깊은데서' 다 행하실수 있다는 뜻이다.
(3) 이제 하나님의 권능의 실례를 보여준다.
1) 대자연이 하나님의 권능을 잘드러내고 있다(7절). 모든 자연현상은 다 하나님께로서 비롯되었으며 지금도 그 능력에 의지한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천지의 주이신 여호와의 권능을 증거해준다. 자연계의 모든 인과관계도 애초에 하나님이 설정하셨으며 지금까지 그 능력으로 지켜져왔다. 지구의 표면을 육지와 바다로 나누어 안개가 일어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뜨거운 태양열이 내리쬘때 안개가 생긴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나, 이러한 과정자체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생한 안개를 비로 변하게 하시는것 또한 하나님 홀로 하실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해서 안개는 풍성한 결실을 재촉하는 비가 되어 내림으로써 처음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기도' 하신다. 이 번개로 구름을 일깨우사 땅위에 비가 내리게 하신다. 이 광경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불과 물이 완전한 화합을 이루는 장면인 것이다. 바람이 임의대로 일어나 불되, 인간은 바람의 방향을 명하기는커녕 어디로 와서 어디까지 가는지조차 알지못하는 존재로서 오로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적당하게 '바람을 그 곳간에 내신다'는 것만 알고있을 뿐이다.
2) 인간의 역사도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준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다음과 같은 사건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그 권능의 한없이 위대함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첫째, 이스라엘의 출애굽사건을 들수 있다. 하나님은 무서운 재앙으로 바로의 오만함을 꺾으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놓지 않을수 없도록 만드셨다.
둘째, 가나안 땅의 많은 나라가 이스라엘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진 사건을 들수 있다(10절). 지옥과 이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미리 정해 놓으신때를 따라 그 언약을 이해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수 없다.
셋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된 사건을 들수 있다. 본래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 왕국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나한 땅을 기업으로 주셨던 것이다.
(4)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영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찬양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스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셨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표현처럼 보인다(출 3:15).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덧붙여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하는 말씀을 남기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선을 베푸실 것이다. 그 백성들이 자기와 다투는 적의 무리에 대하여 호소할때 하나님은 그들을 두둔해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이는 멸망에 이르는 고통을 겪게하시지 않고 진정 그들을 위하여 판단하신다는 의미이다.

Ⅲ. 우상숭배의 허위와 어리석음 135:15-21
본문은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1)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115:4 이하) 하나님의 백성들로하여금 우상숭배와 온갖 거짓된 예배양식에 휩쓸리지않도록 경계케하고자 함이었다. 그렇게하기 위해서 이방인들이 섬겨온 신들을 낱낱이 열거해 놓았다.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한결같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 신들에게는 그것을 만든 자가 부여한 힘이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존재였다. 우상들은 대개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동물의 움직임조차 흉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숭배하는 자들도 저희와 똑같이 어리석고 미련하다. 이것은 우상을 섬기기위해 만드는 자나 이미 만들어놓은 우상을 믿고 의지하는 자, 모두 우상 그자체와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18절).
(2) 하나님의 백성이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할때 진심으로 헌신하게 하고자 함이었다(19-21절). 앞에서 나온 병행구(115:9-11)에서는 이방인이 섬기는 우상의 무능함을 밝힘으로써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할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나왔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그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 핵심
135:1-21
역사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능력을 찬양하는 시편이다.

# 묵상
택함받은 자들 ( 135:4 )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택함받은 자들은 선민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하심으로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안에서 거듭난 성도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2:9).
시인이 지닌 신지식(神知識) ( 135:5, 6 )
본문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한 시입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는 광대하시고, 모든 신보다 뛰어나시며, 또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모두 행하시는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즉, 여호와의 절대 유일성과 초월성 및 전능성을 확신했다는 말입니다(롬11:36). 이런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주인으로 모신 자야말로 가장 복된 인생일 것입니다.
우상의 본질 ( 135:15 )
우상은 은금이며 사람의 수공물(手工物)입니다. 즉 우상은 인간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수 없는 무능하고 허무한 존재에 불과합니다(시115:5-8; 사44:9-20). 성도들도 역시 우상을 섬길때가 있습니다. 물질의 우상, 권력의 우상, 취미의 우상을 섬길때가 있습니다. 이런 우상에 자기 운명을 거는 자는 처절한 절망과 탄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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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교훈 134:1-3
(1) 본문은 우리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 즉 이름을 찬양하라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1,2절).
1) 먼저 레위인을 향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권면한다. 레위인가운데 몇몇사람은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서 지키는 임무를 맡고있었다. 이들은 성전안의 거룩한 기물들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는 일과 곳곳에 놓인 값진 기명들이 약탈당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하였다. 언약궤는 휘장안쪽에 놓여있었으므로 더욱더 주의깊게 지켜야만 했다. 또한 제단위의 불과 각 등대위의 등불이 꺼지지않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것도 저들의 일이었다. 아마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인 중에서 특별히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람 몇몇이 레위인과 함께 성전에 머물러있곤 했던것 같다. 실제로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머물러있던 사람에 관한 기록도 나온다(눅 2:37). 이들을 향해서도 레위인과 함께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권면이 주어진 것이다.
2) 이 구절은 하나님앞에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된 우리 기독교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권면이기도 하다(사 66:21). 우리는 '여호와의 종'이다. 우리는 그의 전, 곧 그의 성소에서 직분과 직함을 갖고있다. 우리는 여호와앞에 봉사하기위해 서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송축'해야 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맹세할때 여호와를 향해 '손을 들고' 외쳐야할 것이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쁨으로 부지런히 행하고 날마다 그마음을 정결케하려고 해야한다.
(2) 다음에는 우리에게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해야 한다는 교훈이 나온다(3절). 복을 누리기위하여는 여호와의 복보다 더 큰복을 받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축복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이기 때문이다.

# 핵심
134:1-3
성전예배에 참여하러 온 순례자의 시편들가운데 마지막 시편이다. 성전을 막 떠나려는 순례자들이 밤에도 성전을 지키는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부탁하고, 제사장들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떠나는 순례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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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형제의 연합과 형제애에 대한 예찬 133:1-3
때때로 형제간의 우의를 상하지 않게하려면 서로 멀리 떨어져서 사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 여겨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렇게하면 서로간에 반목과 분쟁을 막을수 있을지도 모른다(창 13:28). 그러나 진정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일이다. 이는 곧 "형제들이 한몸과 같이 뭉쳐"(어떤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한마음 한뜻을 품고 서로 아끼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리는동안 이스라엘의 여러지파는 제각기 별개의 관심사를 가지고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사람의 왕을 중심으로 언약궤를 모셔놓고 온백성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언약궤를 모신곳이 곧 연합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다. 그것은 드문 일로서 훌륭한 일이다. 이는 또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과 같이 다른 냄새를 완전히 압도하는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것이다.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이 아론의 머리위에 부어졌을때 그 얼굴을 완전히 덮고 옷깃과 외투자락까지 적셨다(2절). 반드시 아론이라고 하지않고 뒤를 이어 대제사장에 오른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역시 순전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사랑을 바쳐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바치는 경건한 사랑을 매우 귀하게 여기신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전체를 향해 쏟으신 사랑은 일찍이 그 제자들의 머리위에 부으셨던 기쁨의 기름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룩한 기름으로 구별함을 입을때까지 그앞에 나와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것을 허락치않으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경건한 사랑이 없이 형식만 갖추어 예배를 드린다면 절대로 받지 아니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고전 13:1,2). 사랑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일만큼이나 유익하다. 또한 사랑은 '이슬'과도 같아 매일아침 영롱한 구슬방울이 들판 가득히 맺히는 것처럼 도처에 풍성한 여호와의 축복을 가져다준다. 그런가하면 대지를 신선하게 하여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저녁이슬처럼 인간의 온갖 욕망으로인한 흥분을 가라앉혀 준다. 사랑은 각사람 속에 있는 마음밭을 적셔 부드럽게 함으로써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을때 잘자라나도록 미리 준비해둔다. 이러한 사랑은 '헐몬의 이슬'과 같다. 헐몬은 지극히 평범하여 어디서나 볼수 있는 산을 뜻한다(형제같은 사랑은 인간사회의 아름다움과 유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이슬과도 같다. 시온은 거룩한 산으로서 이는 곧 그 사랑이 성도들의 사회가 풍성한 결실을 맺는데에 크게 이바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은 큰축복이다.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진정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사랑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명하셨으니 '곧 영생'이다. 이는 축복중의 축복이다. 사랑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안에 거하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이미 하늘나라에 거하는 사람이다.

# 핵심
133:1-3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영적교제를 노래하고 있는 시편이다. 본시편은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연합한 신자들의 관계를 예표한다(참조, 엡 2:11-22).

# 묵상
형제의 사랑과 연합 ( 133:1-3 )
다윗은 형제의 사랑과 연합을 보배로운 기름과 헐몬산의 이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값진 기름이 사람을 빛나고 향기롭게 만들며, 산에 맺힌 이슬이 생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듯, 형제사랑은 서로의 얼굴을 빛나게하고 서로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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