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0절)
승리하는 믿음의 삶 - 유대 지혜 문학과 묵시 문학이 혼합된 독특한 표현으로 보이는 본장의 주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성도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성도의 오늘의 삶이다. 저자 야고보는 오늘을 살아가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실로 단순히 현실적인 세상의 가치 판단으로 측정하지 않고 종말론적 신앙의 안목으로 염려하고 격려한다. 그에게 있어서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연습 과정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본장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미래를 결정하는 현재의 삶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려 한다. 본장에서 교리나 구속의 역사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도 그러한 사실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는 두 가지 가치관 즉 세속적인 관점에서 현실의 삶을 바라보는 현세적인 가치관 즉 세속적인 관점에서 현실의 삶을 바라보는 현세적인 가치관과 종말론적인 사실 앞에서 현실을 신중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가치관 중 후자를 강조하기위함이다. 본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부자들의 악행에 대한 예언적 선포 (1~6절)
2) 가난한 성도들의 인내를 격려함 (7~12절)
3) 성도 상호간의 도움을 권장함 (13~20절)
(1~6절)
어리석은 부자의 실례 - 부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그것은 재물의 불의한 축적, 그릇된 소득 분배, 낭비하는 이기적 생활, 무자비한 보복 행위이다. 여기에서 야고보가 경계하는 것은 경제 활동 자체가 아니라 그 가운데 나타나 있는 죄악들이다.
[1절]
울고 통곡하라는 말의 주체는 가난한 심령을 가진 성도가 아닌 이기적이고 중생하지 못한 세상의 부자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회개의 요청이 아니라 다가올 심판의 고통에 대한 예언적 선포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이 말씀을 통해 부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부에 대한 욕심과 이로 말미암는 모든 죄를 금하려 한다(1:10).
[2절]
썩었고...좀먹었으며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들은 완료시상으로 과도하게 축적된 재물의 일부가 부패하여 버린 상황을 보여 준다. 우리는 썩은 재물의 비유를 통해 세상 부자들의 극악한 이기주의의 종말과 함께 저들의 짧은 운명을 엿볼 수 있다(눅 12:15~21).
[3절]
녹이 슬었으니. 이는 4절의 품꾼의 형편과 대조되면서 부자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증명한다. 따라서 불은 이들에 대한 종말론적 심판의 지옥불을 의미한다(마 3:10, 12; 마 5:22; 마 25:41).
[4절]
삯이 소리지르며란 말은 고용 계약을 어긴 주인에 대해 원망하는 품꾼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창 4:10; 창 18:20; 창 19:13). 부자의 이러한 죄는 청지기로서의 자신의 사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망각한 비인간적 행동이다(눅 12:42; 눅 16:1; 벧전 4:10).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 악한 고용주의 불의와 착취를 잊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보응하신다.
(7~12절)
고난의 인내 - 이 부분은 말세에 성도들이 인내해야 할 필연성을 보여 준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은 주의 강림으로 완성되며, 선악간의 심판자가 계시며,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이 인내는 고통스런 현실과 영광이 보장된 미래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신앙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노력이다. 따라서 참된 믿음이란 종말론적인 사실 앞에서 근신의 자세로 날마다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의지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7절]
주의 강림. 강림이란 말의 헬, '파루시아'는 왕이 그의 통치하에 있는 도시를 공식적으로 방문할 때 쓰는 상용어로서 이는 만왕의 왕이신 주께서 인류의 심판주, 천상의 주로 재림하실 것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8절]
길이 참고의 헬, '마크로뒤메사테'는 사물보다 사람에 대해 참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 악의로 보복하지 않는 신앙 인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인내는 원망과 분노의 개념과 대조되며 죄인들을 즉시 멸하시지 않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인내이다(롬 2:4; 벧전 3:20). 여기에서 우리는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완성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롬 13:10; 갈 5:6; 요일 4:12).
[9절]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은 내적인 괴로움, 곧 한숨 쉬며 신음하는 생각을 금지하는 것으로서 마음으로부터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기라는 요청이다.

[10~11절]
인내의 모범으로 야고보는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을 추천한다. 그들의 모범적인 인내는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비통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의 사역을 계속한 것으로서 이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신앙이었다.
(13~20절)
기도를 통한 교제의 삶 - 야고보는 본 서신의 결론을 내리면서 복음의 진수인 서로 돕는 교제의 삶을 부드럽게 권면한다. 그것은 영적이고도, 육체적인 도움이다. 그런데 야고보가 이러한 친교 생활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기도이다. 이는 성도의 교제의 성격이 주 안에서 연합된 거룩한 믿음 안에 기초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즉 교제가 어느 특정 인간의 의지나 목적,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인 사랑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 준다.

[14절]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름은 당시 보편적인 약품이었고(사 1:6; 눅 10:34) 의사들은 흔히 상처 부위에 기름을 바르고 맛사지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성도들이 영적인 방법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육체적인 수단들을 사용하여 서로 도움을 주라는 뜻이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로서 드리는 기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순복하는 기도이다(롬 8:27; 요일 5:14, 15).

[16절]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성도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이 됨(만인 제사장)을 보여 주는 이 말씀은 성도의 교제하는 삶의 목적이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사건을 예비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벧전 2:4, 5, 성경에 나타난 만인 제사장주의>.

[19~20절]

말세에 성도가 무엇보다 힘써야 할 본질적인 봉사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20절]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이란 말씀에서 우리는 그 봉사가 바로 피차간에 진리의 보호를 받도록 권면하는 생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봉사는 영혼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우리는 교회를 아름답게 하고 믿음을 완성하는 실천적인 사랑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 해설

마지막 당부 (7~20절)

맹세의 금지를 말하는 삽입 구절 12절을 제외하고는 다른 서신서들과는 달리 뚜렷이 끝맺는 인사가 없는 본서의 결론부이자 당부이며, 7~11절은 지금껏 간접적으로 고난 중에서도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함을 말했던 것과는 달리 서두에서처럼 직접적으로 현재의 고난을 인내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또한 본서는 그처럼 확실한 구원의 근거인 신앙을 실천해 보임으로써 꿋꿋이 어떠한 고난도 이겨 나가자고 하고 있다. 한편 본서가 임박한 고통에 처한 성도를 향하여 공동체적 행동을 강조하고 있는 데 깊이 유의하여야 한다.

 

# 핵심

1~6절

그릇된 재물관에 사로잡혀 불의하게 치부함으로 교회의 덕을 저해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믿음의 인내 (7~11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 믿음의 인내가 요구된다. 첫째, 소극적인 측면에서, 불의한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여 핍박하였듯이 성도들도 핍박할 때(요 15:18, 19)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둘째, 적극적 측면에서 주님의 지상 명령인 복음 전파 사역(마 28:18~20)을 수행하고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마 5:13~16)을 감당하기 위해 인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내의 결과, 신앙이 성숙되고(1:4)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 묵상

불의에 대한 경고 (1~3절)

야고보는 재물이나 재물 취득을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를 책망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일을 경고했습니다. 곡식, 기름, 값진 의류, 재물 등을 축재하는 일, 없는 자, 가난한 일꾼들의 삯을 연체하거나 탈취하는 일, 사치하고 연락(宴樂)하는 일, 선하고 의롭게 사는 옳은 자들에게 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일들을 경고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 (7~13절)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들처럼 암울한 현실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 선지자들을 생각하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한 기도로써 모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쁨에 처한 자는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찬송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 안에서 성도로서의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 치료 (14~16절)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를 청하고, 병든 자를 찾아오는 자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 세계를 지배하시는 분으로서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하지만 약을 통해서도 병자를 치유하시기 때문에 의약품의 사용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배교 방지 (19~20절)

배교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혹된 성도들을 찾아가 말씀과 기도로 권면합니다. 이어서 그들의 잘못된 자리를 깨닫게 해 주어 그 자리에서 돌아서도록 교훈합니다. 이때 권위를 내세우며 정죄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의식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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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7절)
세상 정욕과 교만 - 앞에서 중생하지 못한 자의 세상적인 삶의 모습을 기술한 야고보는 본장에서 세상의 정욕을 보다 상세히 고찰한다. 이 정욕은 서로간의 다툼과 영적인 간음을 유발시키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으로 나타난다. 그는 특이하게 이 모든 정욕적인 생활의 원인을 영적인데서 찾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보다 인간의 지혜를 앞세우는 교만이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가까이하는 이기주의적인 죄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과 싸워 승리하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야고보는 본장을 통해서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계속적으로 정욕적인 생활을 하는 자들의 가식적인 믿음의 실상을 알려 주고자 한다. 본장의 구성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정욕으로 말미암는 죄악 된 생활 (1~5절)
2) 모든 문제의 해결책 (6~10절)
3) 교만으로 나타나는 열매(11~12절)
4)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는 행위 (13~17절)
(1~5절)
정욕과 죄 - 성도가 경계해야 할 죄악 된 것들은 정욕대로 사는 것, 세상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마귀의 유혹)이다. 이런 생활은 본래 불신자들의 생활이나(엡 2:1~3) 성도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참된 믿음은 죄악과의 계속적인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인 삶으로써 증거되어야 한다(빌 3:10~14).
[1절]
싸움이나 다툼은 육체와 정욕에 지배받는 자들로 인해 발생한다(갈 5:16~21).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정욕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참된 믿음은 쾌락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고전 10:31).
[2절]
너희가...싸우는도다. 이 구절은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므로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너희가 다투며 싸우는도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즉 욕심의 결과는 살인이며 시기의 결과는 전쟁이라는 말이다. 욕심을 내어도 강한 이기주의를 말한다.
[4절]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이 말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도 가능하나 여기서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영적 불충실성과 배교에 대한 상징적인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렘 31:32; 호 2:2~5; 호 3:1~5; 호 9:1; 마 12:39). 이 말속에서 우리는 성도에게는 세상과 하나님이라는 두 가지 관심의 대상이 있으며 참된 믿음의 가치는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천상적인 것을 선택하는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절]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이 말씀은 구약 속에 나타난 질투하시는 하나님과 일치한다(출 20:5). 여기에서 성령이 시기하는 대상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인 정욕이다. 우리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거룩한 생활에 전력해야 한다(고전 3:16, 17).
(6~10절)
참된 겸손 - 인생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치료법이 상술되어 있다. 그것은 겸손해지는 것, 마귀를 대적하는 것,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앞에서 언급된 지혜로운 자가 취하는 행동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은 인간적인 지혜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지혜의 부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9절]
슬퍼하며...바꿀찌어다. 이 구절에 나오는 모든 동사들은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비관적인 삶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다만 세속적인 향락주의에서 돌이키라는 말씀이다(마 5:4; 눅 6:21). 한편 세속에 물든 자들이 죄악에서 돌이켜 믿음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애통과 눈물의 회개가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눅 13:1~9, 회개에 대하여>.
[10절]
주 앞에서 낮추라.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렘 43:2, 겸손과 교만>.
[11~12절]
교만의 열매에 대한 언급이다.
[11절]
비방은 거슬리는 말,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이며, 내용상 진실이기는 하지만 표현상 거칠거나 불친절한 태도 또한 포함한다.
(13~17절)
정욕적인 삶의 결과 - 야고보는 자기 확신에 찬 행상인들을 등장시켜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한 정욕적인 삶의 허무성과 비참한 결국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 성도들도 종종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쓴 약과 같이 싫어하나 우리들이 그 뜻을 따라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분리된 우리의 앞날은 불확실하며, 짧으며, 허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최고의 행복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음을 깨닫고 그러한 삶에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마 6:33).
[13절]
오늘이나...이(利)를 보리라. 이 말씀은 무계획적인 삶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마음 먹은 대로 다 된다고 생각하고 활동하는 교만한 생활을 경계하는 것이다.
[14절]
너희는...안개니라. 안개라는 말은 자기의 지혜만을 의지하는 인생의 짧고 허무하고 불안한 상태를 비유한 말이다(1:10, 11; 욥 8:9, 시 102:11).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에게 허락된 삶의 유한성과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동시에 하나님 안에서 사는 생애야말로 인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을 수 있다(잠 27:1).

[15절]

주의 뜻이면 나의 일도 나의 생명도 주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신앙 고백으로서 이는 말에 그치지 말고 계속적인 삶으로 나타나야 할 성도의 자세이다.

 

# 해설

정욕과 교만 (1~12절)

본서 전체가 비교적 능동적 측면에서 믿음의 덕목들을 행할 것을 강조하는 반면, 본 단락에서는 수동적 관점에서 성도가 금해야 할 것, 즉 내적 탐욕인 정욕의 추구와 하나님 또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절대적 우월자, 심지어는 심판자로까지 내세우는 교만을 제시하고 있다.

어리석은 부자의 실례 (4:13~5:6)

인간 욕심의 문제점을 언급한 저자는 장자꾼과 욕심 많은 부자를 예로 들어, 신앙의 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의 욕심만을 좇아 사는 자의 헛됨을 교훈한다. 즉 그들은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며(4:15~17), 삶의 의미는 힘과 행복이 보장되는 부를 향유하는 데 있는 것인양 착각한다(5:1~6). 그러나 참 힘의 근거인 하나님이 저들의 영혼을 거두어 가신다면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4:14; 눅 12:16~21)

 

# 핵심

1~17절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버려야 할 세상의 허탄한 것들과 세속적인 모습에 대한 경계이다.

 

# 묵상

영적 건강 (7~10절)

영적으로 건강해지려면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케 하고, 피차에 비방하지 말고, 주 앞에서 낮추며, 슬퍼하고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8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를 높이고 나아가 그를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과의 잘못된 관계를 단절해야 하며 오직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성도의 삶 (13~17절)

세속적이며 현세적인 유익을 좇지 않고 이 세상 속에서 주의 뜻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에게 허락된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처럼 지극히 짧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 때 불신자처럼 자신만의 안일과 자랑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선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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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2절)
말의 절제 - 야고보가 여기 묘사한 대로 혀는 방향을 잡는 힘이며, 파멸시키는 힘이며, 동시에 기쁘게하는 힘이다. 이처럼 혀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혀는 결국 언어이다. 인간은 언어로 표현하며, 언어로 기쁨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혀를 조심하는 것은 품위 있게 자신을 전달하며 타인의 심령에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한다. 또한 언어는 물론 1차적으로 인간의 의사 전달 도구이기도 하지만 언어 그 자체에도 질서가 있어서 언어가 인간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 언어학의 기본 전제이다. 이는 문학에서 분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성도는 그 스스로의 영혼을 먼저 가꾸며 동시에 바른 언어 생활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혀를 조심해야 할 두 가지 큰 이유를 정리할 수 있다.
1) 개인적 관점에서 언어는 인간의 사상, 정서, 인격의 형성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성도는 바르고 아름답고 의로운 언어의 정립에 힘써야 한다.
2) 사회적 관점에서 언어는 인간 관계를 맺어 주는 의사 소통의 제1도구이다. 따라서 혀를 조심하며 건설적, 공의적, 협력적 인간 관계를 만들어야 하며 파괴적, 저주적 관계를 만들면 안 될 것이다.
[1절]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은 그 당시 대부분의 독자들이 선생이 되길 원했던 일반적인 경향을 시사해 준다. 함부로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선생은 거대한 위력을 가진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2절]
본절은 헬라어 본문에 의하면 '왜냐하면'이란 말로 시작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선생의 막중한 책임을 설명해 준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실수한다'는 말의 헬, '프타이오'는 문자적으로 넘어진다는 의미이나 성경에서는 모두 죄의 행동을 언급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믿는 자들도 어찌할 수 없이 범하는 죄의 보편성(普遍性)을 선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려 한다는 것은 심판을 자초하는 교만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3~4절]
방향을 결정하는 혀의 큰 힘이 언급되어 있다.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우리의 신앙 생활의 방향은 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공의 손에 잡힌 키처럼 우리의 바른 생활을 위해 우리의 혀는 주님의 영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있다.
[6절]
작지만 큰 힘으로 무섭게 파괴해 버리는 혀의 위력이 언급되어 있다. 혀는 단순히 육체상의 기관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마음, 영혼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혀의 영향력은 인간의 정신 세계에까지 확산된다. 온몸의 헬, '소마'는 전인(全人)을 의미하며, 생의 바퀴는모든 생활의 전영역을 의미한다.
[8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사람이 비록 모든 종류의 짐승들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타락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엡 2:5).
[10절]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일관성 있는 찬양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친절의 말을 수반한다. 그러한 언어 행위야말로 실천하는 믿음인 것이다.
[11절]
샘. 야고보가 성도의 입을 샘에다 비유한 것은 깨끗해진 성도의 심령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샘물처럼 이웃에게 생명과 해갈함과 깨끗함을 주는 것이어야 함을 보여준다(잠 10:11; 잠 12:18; 잠 18:4; 요 15:3; 롬 15:32; 고전 16:18; 엡 5:26, 27; 몬 1:7, 20). 여기에서 우리는 변화된 내면의 영혼 세계를 그 행실로써 판단할 수 있다는 진리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불평하고 남을 저주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가 곧 나의 영혼이 주님의 치료를 받아야 할 때임을 알 수 있다.
(13~18절)
참된 지혜 - 선생의 자격 중 하나로서 지혜를 언급한 야고보는 지혜의 근원, 지혜의 사역, 지혜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참된 지혜와 거짓된 지혜를 구분한다. 지혜는 단순히 그 자체보다 영혼의 실제적인 활동이라는 면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과 행위는 일치한다는 본장의 주제를 확인하게 되며, 교회의 참된 지혜의 면모는 어떠한 외적인 실적이 아닌 삶을 통해 표출되는 성도들의 거룩성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13절]
온유함이란 성령의 인도함으로 성취될 수 있는 부드러움을 의미한다. 여기서 참된 지혜의 행위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이는 신앙적 겸손이 겸비되지 않은 지적 교만의 해악상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13~14절]
본절은 참된 지혜와 거짓 지혜의 사역을 규명한다.
[15절]
정욕적인 지혜는 타락한 본성의 지혜이며,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의 지혜이다(유 1:19). 따라서 이것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성이다.
[16절]
다툼이란 교회 안에서의 불안과 무질서를 의미한다(눅 21:9).

[17절]

성결은 한 사람의 행위 속에 모든 악한 자세나 동기가 없는 것이며 이기적인 욕구와 대조된다. 거짓이 없나니는 위선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지혜에 대한 야고보의 개념은 사변적이지 않고 철저하게 실천적이다.

 

# 해설

말의 절제 (1~12절)

믿음과 행함의 관계성에 입각, 이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무엇보다도 말을 조심하라고 경계한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신체의 동작이 타인과 나에게 간접적 영향을 주는 데 비해, 말은 그 정신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둘째, 언어는 자기 기만의 결정적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지혜의 증거 - 행함 (13~18절)

본문은 입으로 자신이 지혜를 가졌다고 말하기 전에 행동으로 지혜를 증거할 것을 촉구한다. 열매만이 진실로 그 나무의 판단 기준이듯이 선한 지혜는 선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세상적 지혜는 그에 맞는 악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진리 자체를 담담히 말하고 있다.

 

# 핵심

1~12절

실천적 신앙 생활과 관련해 성도가 무엇보다 말을 조심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교회 공동체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 묵상

'선생이 되지 말라'는 권고 (1절)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한 이유는 선생된 자가 더 죄가 클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생들은 자신의 실수로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고 쉽게 죄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들은 말의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신앙 인격이 미성숙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심각한 분란을 미연에 방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지혜의 행위들 (13~18절)

지혜로운 행위란 선행으로 인해 지혜의 온유함을 동반한 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마음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서 자랑하거나 진리를 거스려 거짓 증거하지 않는 행위, 시기와 다툼이 있고 요란과 악한 일이 있는 곳에서 성결.화평.관용.양순.긍휼과 선한 열매를 거두는 행위, 화평을 심는 행위를 통하여 의의 열매를 거두는 행위들을 지혜로운 행위라고 말합니다.

온유의 의미 (13절)

헬라어 원문에서 온유란 강한 자의 절제나 현명한 사람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또한 인간 내부로부터 충만해진 겸손이나 온화함을 가리키는 데 이것은 어떤 극기나 훈련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하여 배우고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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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6절)
참된 믿음 - 본서 전체의 주제이기도 한 본장의 주제는 참된 믿음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다. 참된 믿음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동반하며, 살아 있는 행위로 나타난다. 특별히 여기에서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성을 강조하면서 믿음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야고보가 염려했던 것으로서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교리를 인정하지만 진정한 생활이 없는 형식적인 믿음이며, 둘째는 중심으로 믿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영적인 일체가 되어 지식과 양심, 즉 지적 신앙과 실천적 신앙이 일체가 되어 지식과 양심, 즉 지적 신앙과 실천적 신앙이 일체가 된 믿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과 성령에 의한 내적인 변화없이 생활하는 외형적인 믿음의 허무성과 참된 믿음이란 교리를 시인하는 데 있지 않고 행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한편 본장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1) 사랑으로 입증되는 믿음(1~13절)
2) 행함으로 입증되는 믿음(14~26절)
(1~13절)
차별의 금지 - 본서는 참 믿음은 지식과 행동이 일치된 것이라는 원칙론적 진술과 그러면 그 원칙을 생활의 구체적 측면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번갈아 진술하는 방법으로 편지를 진행하고 있다. 이 부분은 그 첫번째로 세상적 기준에서 인간을 차별 대우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 시민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기준으로 인간을 보아야 하며 또 하늘나라는 인간을 결코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때 차별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공연히 자행되는 차별을 금해야 할 구체적 이유는 주님이 차별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며, 가난한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며, 차별은 이웃 사랑의 계명에 어긋나고,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으며 그것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요일 4:20).
[1절]
영광의 주가 의미하는 바는 숭고하신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너희들이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마 22:16).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에서 헬, '프로소포렘피시아'(겉으로 판단하다)란 말은 본래 법정에서 재판장이 한 편에만 유리하게 치우친 판결을 내린다는 뜻으로 후에 '편견'이나 '차별 대우'라는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2:16; 눅 20:21; 롬 2:11; 엡 6:9; 골 3:25). 이러한 차별 대우는 하나님의 판단과 반대되며 세상적인 기준에 의한다. 예수께서 이러한 편견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러한 죄의 심각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2절]
금가락지를 끼는 것은 부자의 사치스러움을 나타내는 당시의 관습이며 아름다운의 헬, '람프라'는 부유한 사람이나 고관의 옷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3절]
좋은 자리. 회당의 높은 자리를 노리는 장로와 서기관을 책망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연상된다(마 23:6; 막 12:39; 눅 11:43).
[5절]
본문은 차별을 금하는 이유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을 강조한다.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는 문자적으로 세상의 가난한 자로서 물질 면에서 가난한 자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에는 민족적인 차별이나(행 10:34) 사회적인 차별(엡 6:9)이 없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며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그의 인간성은 존중되고 사랑 안에서 교제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6절]
부자는...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이는 사회적 현상으로 부자들이 부채의 미불, 소작료의 미납 등의 이유로 가난한 자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야고보가 여기에서 죄로 지적하는 것은 부유함 자체가 아니라 부유한 자의 악덕 곧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와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불평등 구조를 심화, 존속시키는 것이다<욥 42:12, 성경의 부(富)>.
[7절]
그 아름다운 이름은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며 그 이름이 훼방당한다는 말은 그 당시 교회 안에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가난한 성도들이 부자들의 멸시를 받았다는 의미로서 이는 곧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한 신성 모독죄이다(사 52:5; 롬 2:24). 우리는 본절에서 가난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부유함과 그를 멸시하는 죄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8절]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언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웃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다. 사랑이 최고의 법인 까닭은 성부께서 율법으로 주시고 성자께서 제일 되는 계명이라고 강조하시고(요 13:34)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셨기 때문이요(롬 13:10), 사랑은 이기주의로부터 나를 자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은 간직되어서는 안 되며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12절]
자유의 율법은 결코 방종의 무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생활에 있어서 말과 행실에 책임을 지고 성취해야 할 그리스도의 법(갈 6:2)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도덕과 윤리적 책임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죄로부터의 자유로서 거룩과 사랑의 실제적인 실천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14~26절)

믿음과 행함의 연속성 - 본문에서 야고보는 참 믿음은 생활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인바, 믿음이라고 다 옳은 믿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믿음에는 죽은 믿음, 사탄적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참 믿음은 흥분된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오는 축복에 대한 확신 속에서 생활하는 실제적인 삶인 것을 알 수 있다.

[15절]

행동이 없는 믿음의 허위성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형제나 자매. 매우 궁핍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같은 성도임을 보여준다. 헐벗고의 헬, '굼노이'는 실제로 벌거벗은 것을 의미하는 과장된 표현이며, 이러한 표현법은 지금 성도가 절망적인 형편에 처해 있음을 묘사하기 위해 쓰였다.

[17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앞절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한 것으로서 말로써 행위를 대신하는 거짓 믿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과 행위의 불가분리성과 참된 믿음은 지식이나 마음에 독존(獨存)하지 않으며 봉사와 선행으로 나타나는 실천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마 7:21; 마 25:40; 갈 5:6; 갈 6:10; 요일 3:17, 18).

[19절]

본절에서 야고보는 귀신들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교리적인 믿음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내용은 그 유명한 유대교의 정통적 교리인 쉐마(신 6:4)에 나오는 진리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히 교리를 인정하는 지식적인 믿음만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막 3:11, 12)과 지옥의 실제(눅 8:31)를 알고 있는 사탄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의 믿음은 신학적인 어떤 명제에 대한 지적 승인이 아니라 더욱 깊어져 안으로는 온전한 속 사람이 형성되고 밖으로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실천적인 믿음이란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21~26절)

참 믿음의 실례 - 지금까지 부정적인 측면에서 믿음을 설명하던 야고보는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를 들어 살아 있는 믿음의 진수를 보여 준다.

[21절]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은 바울의 칭의 교리와 모순되는 듯이 보이나 사실 야고보가 주장하는 행함은 믿음에 근거한 것이므로 양자는 서로 조화를 이룬다(롬 4:13; 롬 5:1; 롬 9:30; 엡 2:8).

[22절]

믿음이...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은 행함의 근거가 되었고 행함은 믿음을 완성시켰다는 뜻이다. 이처럼 믿음과 행함이 결합되어 있는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단순한 신앙 고백의 차원을 넘어 행함의 근본 원리로서 활동하는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아름다움은 지적인 교리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의지적으로 행동하는 실제적인 믿음으로 완성된다(마 7:16~20; 요 15:1~5; 히 6:7, 8).

[25절]

기생 라합이. 이 말은 본래 '카이'란 헬라어 조사가 붙어 있어 '기생 라합조차도'라고 번역된다. 아브라함과 달리 라합은 이방인에다 여자이며 창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예수님의 족보(마 1:5)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행동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 해설

형제에 대한 바른 태도 (1~13절)

본서의 본론은 1:19~5:6절로 1:19~27절과 2:14~26절은 믿음의 행함을 그 원리적 측면에서 요약한 것이고, 나머지 다섯 문단은 생활의 구체적 측면에서 어떻게 믿음의 행함이라는 원리를 적용할 것인지와 그 실천의 긴박성을 강조하는(4:13~5:6) 부분이다. 본문은 그 다섯 문단 중 첫 문단으로서 형제 사이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믿음과 행함의 연속성 (14~26절)

히브리서 11:1~3절이 믿음(faith)의 인식론적 특징을 강조했다면, 본문은 믿음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처럼 야고보 사도가 성도의 선행에 대한 당위성을 역설함으로써 믿음과 행함의 필연적 연속성을 강조한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 철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자신이 바르고 선하다고 믿는 가치 기준에 따라 행동하게 마련이며 또 그럴 때에만 스스로 자기 신뢰와 행복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양식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를 믿는다면서 예수가 제시하고 있는 가치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의 진정성은 성립될 수 없다. 또한 세상의 이데올로기들이나 철학적 신념들은 인간이 고안하거나 발견한 원리로서 그 자체에 아무 생명력이 없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믿음은 그 대상과 결과에 있어서 이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 대상은 우리가 믿건 안 믿건 우리를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예수이시다. 때문에 예수 신앙은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 아닌, 생명과 형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 핵심

1~13절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와 빈부 격차 등의 이유로 성도 간에 차별하는 악습을 책망하면서, 서로가 사랑으로 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행함과 믿음 (24절)

누구든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원리(롬 3:19~28)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야고보가 행위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전에 앞뒤가 있듯이 믿음에도 양면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담의 타락 이래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자가 없다. 따라서 구원의 조건은 오직 믿음이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필연적으로 행실이 변하기 마련이므로 바른 행실은 믿음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된다.

 

# 묵상

공동체 안에서의 성도들 (1~5절)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끼리 차별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을 소유한 형제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약속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형제 차별을 금하고 형제 사랑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교회 안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여 서로 구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공동체는 한 몸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외형적인 믿음 (14~26절)

외형적인 믿음이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약의 선조들이 믿음의 위인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행위로써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즉, 참된 믿음은 진리에 대한 실천적인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과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 (21~22절)

바울은 율법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하심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했고, 야고보는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의롭게 된 사실을 입증해 주는 완성된 의로서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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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7절)
믿음의 시련 - 본서는 전체적으로 시험 중에 있는 독자들을 격려하고, 이론적 교리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생활을 무시한 독자들의 그릇된 신앙관을 바로잡으며, 복음의 사회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믿음은 단순한 이론이나 지적 승인(知的承認)이 아니라 실천이며 행함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복음은 개인적 차원을 뛰어넘어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로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여타 서신서들이 행동 없는 이론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듯이 본서 또한 신앙적 근거가 없는 과격한 사회적 행동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즉, 사회를 떠난 개인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신앙과 행동은 서로 완전히 일치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므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양자가 다 불완전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특히 지금 당장 시험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록된 1장은 살아 있는 믿음은 무엇보다도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수납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성도는 자신의 욕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하님의 시험은 오직 성도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다. 또한 본장에서 야고보는 모든 시험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으며 하나님에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본장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1) 시험 속에 내포된 하나님의 복(1~12절)
2) 시험의 원인(13~18절)
3) 시험 속에서의 신앙의 성숙(19~27절)<창 22:1, 시험에 대하여>.
[1절]
주의 형제 야고보(마 13:55)가 겸손히 자신을 '종'으로 부르고 있다<렘 43:2, 겸손과 교만>.
(2~12절)
시험의 목적 - 시험은 물론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성도들의 믿음이 성숙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바로 시험이다. 따라서 야고보는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면서 그 시험이 가져올 복에 대해 지적 또는 암시해 준다. 그 복은 첫째, 덕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며 둘째, 실제로 믿음을 체험하는 것이며 셋째, 천국의 상급을 예비하는 것이다(전 4:9; 사 40:10; 마 5:12).
[2절]
시험은 헬, '페이라스모스'로서 외부적인 박해와 내부적인 죄의 유혹이라는 이중의 의미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전자의 의미이며, 13~18절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3절]
인내는 수동적인 참을성이 아니고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하는 역동적(力動的)인 견고성을 의미한다. 즉 능동적으로 시험에 대처한다는 의미의 이 말속에서 우리는 참 신앙이란 감정이나 지성에 머물지 않고 의지로까지 확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절]
온전하고는 시간적 개념의 완전성, 곧 끊임없는 신앙의 경주를 의미하고, 구비하여는 공간적 개념의 완전성, 거룩의 풍성함을 의미한다. 성도의 성화(聖化)는 임종시까지 계속되며, 또한 신앙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가까이 할 때 이루어진다(마 5:48; 벧전 1:18, 19).
[5절]
3절에서 인내에 대하여 언급했던 야고보는 본절에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믿음의 요건들을 언급해 준다. 여기에서 지혜는 악을 피하고 의의 생활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 이 지혜는 시험의 목적과 성질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서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이다(롬 11:33; 엡 1:8, 17).
[6절]
의심은 두 견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분열된 마음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참 신앙이란 어디에 우선권을 두며 어떠한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마 23:16~22).
[9절]
야고보는 재물의 유무(有無)를 초월하는 믿음의 고결한 가치를 증거한다. 자기의 높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성도의 존엄성과 그 가치이다.
[11절]
쇠잔하리라. 부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경고이다. 따라서 이 말은 부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한 자 자신이 예기치 않을 때에 낮아지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자는 새롭게 높아지며, 두 마음으로 세상을 추구하는 자는 비천하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이다<전 서론, 돈(재물)에 대한 성도의 자세>.
(13~18절)
시험의 근원 - 여기에서 시험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충동으로 그 원인이 인간의 욕심이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이 욕심은 첫째, 시험을 유발하며, 둘째, 파국을 초래하며, 셋째, 하나님의 선물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 반항하며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허물어 버리는 교만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 수 있다.
[13절]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실수는 자신이 저질러 놓고 책임은 하나님께 돌리는 그릇된 심리를 말한다(잠 19:3).
[14절]
끌려 미혹됨이니. 사람들이 당하는 내부적인 시험의 원인이 인간 내면에 있는 죄성과 욕심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두 낱말은 다같이 사냥이나 낚시질의 용어이며 현재형으로 계속적인 의미를 갖는다. 야고보는 욕심을 인격화하여 욕심이 갖고 있는 큰 힘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계속적이고도 폭발적인 욕심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다(롬 6:15; 고전 15:10).

[15절]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와 사망의 관계를 동물적인 생산에다 비유한 말이다. 이 말은 죄를 남성으로 보고 그가 장성하여 사망의 아비가 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죄는 어떤 독립적 한 개의 죄가 아니라 고리와 같이 계속 이어지는 집합적인 것으로서, 죄의 신속한 오염성(汚染性)과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고립된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다(엡 2:3).

[17절]

앞에서 시험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음을 증명한 야고보는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본절에서 증거한다. 좋은...온전한. 도덕적으로 악의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의미의 말들이다. 빛들은 하늘의 태양과 같은 발광체를 의미한다. 빛의 지배자이신 하나님에겐 어둠이나 시험이나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19~27절)

시험을 통한 믿음의 성숙 - 야고보는 여기서 시험을 통해 성숙해진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지 소개하고 있다. 그 믿음은 첫째, 인간적인 열정을 억제하며, 둘째,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며, 셋째, 사회적인 봉사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온전한 믿음은 정체되어 있지 않고 생동적이며,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새로운 힘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목적 없는 의식적인 신앙의 허무를 발견하며 삶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령 충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다<행 9:17,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와의 차이점>.

[19절]

성내기도 더디하라. 성냄의 헬, '오르게'는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노여움을 의미한다(마 3:7; 롬 2:5). 성도가 시험 가운데서 새 힘을 얻으려면 먼저 말씀을 방해하는 가라지인 노여움을 뽑아 내야만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먼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1절]

온유함의 헬, '프라우테스'는 유순하게 순종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말로서 앞의 성냄과 대조를 이룬다. 성도가 온유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스스로 감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것은 성도의 진정한 힘의 근원이다.

[22절]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이 메시지는 본서 전체의 주제이다.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생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임을 보여 주는 말이다.

[24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이 말씀은 '거울을 잠깐 쳐다보고 곧 돌아서 간다'라고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곧 예배시 말씀을 형식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듣고 돌아가서는 곧 잊어버리라는 거짓된 믿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믿음은 단순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 지속적인 실천의 영역에 속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알 수 있다.

[25절]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말씀이 뚫어지도록 '주의 깊게 관찰'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런 자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자이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두려움으로 말씀을 대하는 참 성도의 경외심(敬畏心)을 느낄 수 있다(잠 1:7).

[26절]

야고보는 진일보한 믿음의 실상을 보여 준다. 경건의 헬, '드레스코스'는 종교의 외적인 실천을 의미하는 말이다.

[27절]

돌아보고. 이 말은 특히 남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방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사회성을 엿볼 수 있다. 즉 진정한 복음은 의식이나 외형적인 건물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발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해설

격려의 말 (1~12절)

본서는 원근 각처에 흩어져 유대교도와 이방인들로부터 박해당하던 유대인 성도를 위한 실천적 교훈서이다. 따라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그 같은 먼저 고난을 기쁘게 여기며(2절),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격려함으로써(5~11절) 본서를 시작한다.

또 다른 시험 (13~18절)

성도가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trial test)으로 언급한 저자는 또 다른 시험이 있음을 경고한다. 그것은 선생이 학생을 훈련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시험이 아닌 인간 스스로 탐욕에 미혹되고 있는 유혹(temp-tation)을 가리키는데(12~15절) 모든 죄악은 이에서 근원한다. 이러한 대표적 예는 선악과 사건으로서 하나님은 선악과라는 시험(test)을 주셨으나 사탄은 이를 인간 탐심을 이용한 유혹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도를 행하는 자 (19~27절)

본문은 본 서신의 집필 목적, 즉 이유에 대한 해결책의 제시이다. 그중 본 단락은 단도 직입적으로 결론을 말하는 부부으로서 '너희가 일단 배워 확신한 믿음의 도'를 행할 것을 설파한다. 2:14~26절이 믿음대로 행함의 당연성, 필연성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라면, 본문은 그 당위성에 근거한 명령이라 할 수 있다.

 

# 핵심

1절

야고보는 서신서의 일반적 형식을 따라 수신자에 대한 문안 인사로 본서를 시작하고 있다.

시험치 않으시는 하나님 (13절)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사건이 나온다(창 22:1~19). 그렇다면 본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성도에게 닥치는 시련(trial)이다(3절).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의 믿음을 연단하는 시험(test)이요, 성도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는 기회가 된다. 둘째, 성도를 실족시켜 멸망으로 이끌려는 사단의 유혹(temptation)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같은 사단의 유혹에 굴복한 때문이다(창 3:1~7).

 

# 묵상

시험시 취할 자세 (2절)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며 이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시련은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시련이라 할지라도 이겨야 합니다.

기도자의 자세 (6절)

기도자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간구하며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의 소유자 (12절)

생명의 면류관은 어려움과 환난과 시험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이 면류관은 생명의 재료로 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또한 장차 하나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세계의 왕적인 영광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자세 (19~27절)

그리스도인들이 장애와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자세와, 성내기를 더디하는 자세, 더러운 것과 악을 버리는 자세, 도를 행하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자세, 스스로 경건한 체하지 않고 자기 혀를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며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세속에 물들지 않게 돌아보는 자세와 말씀 안에 거하기 위해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생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의 올바른 실천에 의해서만 성숙한 신앙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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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

[야고보서 5장 12절~20절]
12절 -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
13절 -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14절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절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절 -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7절 -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절 -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19절 -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절 -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 주제별 목록 작성 
기도
1. 누가 : 고난 당하는 자(13절) / 병든 자(14절)
2. 어떻게 : 죄를 고백하고, 서로 기도함(16절)
3. 결과 : 주께서 병든 자를 구원하심(15절)

* 도움말
1. 간구(16절) : 헬라어 ‘데에시스’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조건이 있는 요청을 뜻한다.
2. 고백(16절) : 헬라어 ‘엑코몰로게오’는 ‘스스로 인정하다, 완전히 동의하다’라는 뜻이다.
3. 미혹되어(19절) : 헬라어로 ‘플라네데’이며, ‘진리에서 떠나 방랑하다’라는 뜻이다.
4. 돌아서다(19절) : 헬라어 ‘에피스트레포’는 히브리어의 ‘테슈바, 슈브’의 번역어로 ‘복귀하다, 다시 오다, 개종하다’의 의미이다. 마음의 변화인 ‘누스’가 아닌, 회심의 최종 행위로서 새로운 관계를 확립하는 능동적 생활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신앙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행 3:19, 15:3).

* 말씀묵상
1. 믿음의 기도를 하라
당신은 지금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찬송하십시오.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주어지는 것으로, 성령에 의해 고무되는 기도이며 성령이 함께 하시는 기도입니다. 엘리야처럼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간구하기에 앞서 죄 사함에 대해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실 때 먼저 그에게 사죄를 선포하셨습니다(막 2:5). 우리는 성령의 거룩한 기름 부음 가운데서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음으로 거룩을 유지해야 합니다.

2.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서게 하라
초대 교회 때는 그리스도를 믿었다가 유대교나 희랍 철학이나 신비 종교에 물들어 떠난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혹되어 진리를 떠나 방황하는 자들은 실족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다시 진리인 복음의 법으로 돌아오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 이단들과의 싸움에 대한 훈련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잃은 양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구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교회와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전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누가, 어떻게 기도하고, 또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믿음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입니까?(16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2. 당신의 기도생활을 되돌아보십시오. 자신에게만 한정된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적용 기도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키고, 연약한 사람들을 세워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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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를 향한 경고와 인내의 권면

[야고보서 5장 1절~11절]
1절 -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절 -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절 -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절 -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절 -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절 -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7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절 -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절 -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절 -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절 -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너희(부자)
1절 : 임할 고생으로 울고 통곡해야 함
2절 : 재물이 썩었고, 옷은 좀 먹었음
3절 : 금은이 녹슬었음 / 금은의 녹이 불처럼 부자들의 살을 먹을 것임 / 말세에 재물을 쌓았음
4절 : 품꾼에게 품삯을 지불하지 않음
5절 : 땅에서 사치하였음 /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마음을 살찌웠음
6절 :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였음

* 도움말
1. 울다(1절) : 헬라어로 ‘클라이오’이며, 이 단어는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울 때 사용된 단어(눅 22:62)다.
2. 녹슬다(3절) : 헬라어 ‘카티오타이’는 ‘부패하다, 부식하다’라는 뜻으로 쓸모없게 된 상태를 말한다.
3. 길이 참으라(7절) : 헬라어 ‘마크로듀미아’는 ‘길이, 오래’에 해당하는 ‘마크로스’와 노여움의 ‘듀모스’가 합성된 단어로,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음’의 뜻을 가지고 있다.

* 말씀묵상
1. 부자에게 주는 경고
자신의 탐욕만을 추구한 세속적인 부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그들의 재물인 곡물은 썩고, 부귀를 상징하는 고운 옷들은 좀먹고, 금과 은 역시 녹슬었습니다(2-3절). 이러한 재물은 부패하고 부식하여 마지막 날에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유하고 악한 자의 삶은 파멸에 이를 것이며, 심판의 때에 울고 비참함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1절). 이러한 심판은 부자들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쌓고(3절), 고용인들의 임금을 착취하였습니다(4절). 또한 사치하며 향락에 젖은 생활을 영위했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여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5-6절).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우리는 재물을 의지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불의를 행치 말아야 합니다.

2. 인내로써 이루라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으로 인해서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웠습니다. 고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가 씨를 뿌리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반드시 추수할 때가 오는 것처럼, 우리도 길이 참고 원망이나 탄식하지 말며 마음을 굳게 하여 흔들리지 않으면 주의 강림이 이를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고난 속에서 인내의 본을 보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 5:11-12).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주의 강림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우리의 인내 또한 그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자신의 일에만 관심있는 부자에 대한 경고는 무엇입니까?(1-3절)
2.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언제까지 계속되며,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7-8절)
* 깊은 묵상
1. 당신의 재물관과 부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2. 당신은 고난을 당할 때 어떠한 생각과 태도를 가집니까?
* 적용 기도
저의 탐욕으로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게 하시고, 고난을 당할 때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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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뜻대로 행하라

[야고보서 4장 1절~17절]
1절 -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절 -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절 -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절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절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절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절 -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절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절 -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절 -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11절 -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절 -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3절 -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절 -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절 -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절 -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절 -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너희(인간의 모습)
13절 : 내일의 자기 사업 계획을 세우는 자
14절 :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자 /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자
15절 : “주의 뜻대로 살고 일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해야 할 자
16절 : 허탄한 자랑을 하는 자
17절 : 하나님의 뜻(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

* 도움말
1. 정욕(1절) : 헬라어 ‘헤도네’는 ‘세속적인 기쁨, 쾌락’을 의미한다.
2. 세상(4절) : 헬라어로는 ‘코스모스’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고 또한 하나님께 대적하는 현재 인간사의 상태를 나타낸다.
3. 판단(11절) : 헬라어 ‘크리테스’는 ‘구별, 결정, 시험, 비난, 결론’의 뜻으로 결정적으로 남의 가치를 규정짓는 것을 말한다.
4. 허탄한 자랑(16절) : 헬라어 ‘알라조네이아’는 ‘알라조’(허풍쟁이)에서 파생된 단어로, ‘허식’, ‘겉치레’, ‘허풍’이라는 의미이다.

* 말씀묵상
1. 정욕을 버리라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과 벗된 자의 마음은 정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항상 다툼과 싸움뿐입니다. 만약 교회에서 이러한 다툼과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면, 그 교회는 이미 세속화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세속화된 교회나 공동체, 개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정욕과 교만을 버리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미혹하여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마귀를 대적하고, 우리의 손을 깨끗이 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삶의 초점과 목표가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7-8절).

2. 주의 뜻대로 행하라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인생의 문제를 계획할 때 하나님을 배제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의 뜻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주인을 위한다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것이 주인의 뜻과 상관없다면 그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선,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내일 일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모른 채 어떻게 인생을 계획할 수 있을까요? 주의 뜻대로 행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계획은 오직 하나님 나라를 향한 계획으로만 채워져야 합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너희’ 즉, 우리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싸움(다툼)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1-2절)
* 깊은 묵상
1. 당신의 인생을 계획할 때 주님의 뜻을 먼저 구합니까? 아니면, 당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계획합니까?
2. 당신은 선을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 줄 알면서도 행치 않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당신의 생활 속에서 찾아보십시오.
* 적용 기도
세상의 모든 정욕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고, 자기 중심적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온전한 믿음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14절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절 -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절 -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절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절 -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절 -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절 -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절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절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절 -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절 -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절 -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절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행함이 없는 믿음
14절 : 유익이 없고 구원하지 못함
17, 26절 : 그 자체가 죽은 것임
18절 : 보일 것이 없음
20절 : 헛것임 
행함이 있는 믿음
18절 : 보일 것이 있음
21절 : 아브라함을 의로운 자로 인정받게 함
22절 : 믿음을 온전케 함
24절 : 의롭다 함을 받음
25절 : 기생 라합을 의롭다고 인정받게 함

* 도움말
1. 믿음(14, 19절) : 헬라어 ‘피스티스’는 ‘확고부동한 확신’(conviction), 또는 ‘의뢰’(trust)를 뜻하며, 19절에 사용된 단어는 유일신관으로 죄의 고백과 회개를 통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을 나타낸다.
2. 헛것(20절) : 헬라어 ‘알고스’는 ‘무가치한’(useless) 것을 말한다.
3. 온전하게 되었느니라(22절) : 헬라어 ‘텔레이오스’는 ‘끝낸, 완벽한, 성숙’ 또는 ‘성취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요 4:34; 행 20:24).

* 말씀묵상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이 좋다고 소문난 교회일지라도 구제의 손을 펴지 않는 교회라면, 그 교회는 믿음이 죽은 교회입니다. 고아와 소년소녀 가장과 과부와 장애인과 독거 노인과 사회복지 시설에 있는 많은 약한 자들을 외면하면서, 사랑을 외치며 복지국가를 외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에 행함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자체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행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귀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떠는 것(19절)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단지 정신적 동의나 지식적 신념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모두가 헛것입니다.

2. 행함이 있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다
살아있는 믿음은 ‘적극적 순종’과 ‘의지적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실례를 들면서, 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 그에 따른 행함을 보여줌으로써 그 믿음이 온전해졌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히 성취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히 11:1). 구원받은 믿음은 그에 합당한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믿음의 소유자입니까? 그렇다면 행함으로써 그 믿음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행함이 없는 믿음과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서 대조하여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아브라함에게서 본받아야 할 믿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21-23절)
* 깊은 묵상
1. 당신의 믿음 생활은 어떠합니까? 본문에 적용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2. 당신, 또는 당신이 속한 공동체는 어떤 믿음의 실천들이 이뤄지고 있습니까?
* 적용 기도
매일의 삶 속에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해 생명력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제공:프리셉트

차별없는 사랑

[야고보서 2장 1절~13절]
1절 -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절 -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절 -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절 -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절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절 -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절 -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절 -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절 -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절 -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절 -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절 -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절 -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부자 / 가난한 자
2절 :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 / 남루한 옷을 입은 자
3절 : 부자를 대접함 / 가난한 자를 천대함
5절 :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심
6절 : 우리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음 / 부자는 우리를 억압하고 법정으로 끌고 갔음
7절 : 부자는 이름다운 이름(예수 그리스도)을 비방했음

* 도움말
1. 판단하는 자(4절) : 헬라어 ‘크리테스’는 특별한 의미의 재판관을 말하며, 본문에서는 하나님만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2. 최고의 법(8절) : 헬라어 ‘노모스 바실리코스’는 ‘왕법’(王法)으로서, 마태복음 7:12절에 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마 7:12, 22:37-40; 롬 13:8-10).

* 말씀묵상
1.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대하여 부요하게 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셨습니다(5절).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영혼을 차별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큰 자나 작은 자가 모두 동일합니다(신 1:17). 모든 율법을 다 지켜도 사람을 편애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살인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큰 죄입니다. 한 인간의 인격적 존엄성을 무시한 인격적 살인인 것입니다.

2. 최고의 법 _ 사랑
하나님의 자녀들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8절)는 최고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최고의 법입니다. 이 법을 아는 자는 결코 형제를 편애하거나 천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부자와 권세자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그들을 특별히 대접하는 것입니다. 차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면(4절), 하나님께 긍휼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13절). 인간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참 가치가 무너져 버린 이 시대에 우리는 최고의 법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이 말하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특징을 찾아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 9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교회나 공동체에서 차별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당신의 기분은 어떠했습니까?
2. 당신은 교회나 공동체에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한 적이 있습니까?
* 적용 기도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말씀을 늘 묵상하여,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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