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님 손에 쓰임받는 작은 도구일 뿐입니다

[이사야 10장 12절~19절]

12절 -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13절 -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14절 -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5절 -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6절 -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절 -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8절 -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9절 -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주께서 주의 일을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과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실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자기 힘과 지혜로 열국을 정복했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도끼가 찍는 자에게 스스로를 자랑하는 격입니다. 주께서 앗수르를 쇠약하게 하시고 그의 영화를 불태우실 것입니다.

1. 앗수르의 교만 (12~14절)
교만한 마음은 교만한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앗수르 왕은 열국에 행한 모든 일을 열거하며 자신의 총명과 지혜를 자랑합니다. 그가 스스로를 높인 것은 '내 힘, 내 지혜, 내 손'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에게 권세를 주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모든 것을 자신의 공덕으로 돌립니다. 잠언 기자는 스스로 지혜롭다 말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기록합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6:12).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높이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겸손할 때 하나님께 쓰임받다가 나중에 교만해져 버림받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앗수르 왕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다가 버림받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요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한 말이나 행동을 한 경우는 없는지 돌아보세요.

2. 앗수르의 형벌 (15~19절)
하나님과 사람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스스로를 높이거나 자기 뜻대로 창조주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도끼나 톱이 자신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높일 수 없고, 막대기나 몽둥이가 자신을 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말들을 쏟아 냅니다. 이에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권세를 쇠잔하게 하실 것이며, 그 땅을 불로써 삼켜 버리실 것입니다. 언제나 주권자의 의도를 생각하며 자기 위치를 알고 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 손에 들려 쓰임받고 있는 작은 도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도끼와 찍는 자, 톱과 켜는 자 비유에서 앗수르 왕은 어느 쪽인가요?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영광을 내 공로로 여긴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어떤 고난이든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저를 훈련시킬 도구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저의 성숙을 위해 수고하는 앗수르 같은 자녀, 배우자, 상사를 원망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게 하소서. 저 역시 '하나님의 도구'로서 결코 오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불의하고 오만한 권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사야 10장 1절~11절]
1절 -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절 -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3절 -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4절 - 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5절 -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6절 -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7절 -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8절 - 그가 이르기를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
9절 -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절 -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느니라
11절 -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도다

불의한 법을 만들고 가난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와 고아를 약탈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앗수르 사람은 경건하지 않은 나라를 치기 위한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손으로 다 정복했다며 교만해져 하나님 뜻과 달리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1. 부당한 법 집행을 벌하심 (1~4절)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특히 유다) 관료들은 권력을 이용해 불의한 법령을 만들고는 가난한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의 소유를 강탈했습니다. 약자를 착취하는 행위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징벌의 날이 임할 것이고, 환난 때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누리던 영화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관행이던 부정부패로 결국 나라가 망하고 그들은 전쟁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약자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공직에 있는 이들은 성경 말씀대로, 공정한 법 집행으로 약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습니다.
* 유다의 관료들은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으며, 그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나요? 공동체에서 부당하게 대우받는 이들은 누구며, 어떻게 도울까요?

2. 하나님 손의 몽둥이 (5~11절)

하나님은 온 세상의 흥망성쇠를 주관하는 최고 통치자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하던 하나님의 심판이 이제 그들을 멸망시킬 앗수르로 향합니다. 앗수르는 당대 가장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습니다. 앗수르는 불의를 일삼는 하나님의 백성을 징벌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잠시 들어쓰시는 '진노의 막대기', '손의 몽둥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은 스스로 높아져서 수많은 국가 가운데 패권을 휘두르려는 야망으로 불타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른 채, 마치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능력자인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교만한 지도자와 나라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잠 8:13 참조).

* 하나님의 시각과 앗수르 왕의 시각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의 야망을 구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오늘의 기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임하기 전에, 부귀 영화를 우상처럼 좇던 삶에서 돌이키게 하소서. 세상 것을 탐하지 않고 이웃의 권리를 존중해 주며, '경건한 그리그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의 길을 버리면 죄의 길로 행합니다

[이사야 9장 8절~21절]
8절 -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9절 -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10절 -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
11절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12절 -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13절 - 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14절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와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절 - 그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6절 -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17절 - 이 백성이 모두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18절 - 대저 악행은 불 타오르는 것 같으니 곧 찔레와 가시를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19절 -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이 땅이 불타리니 백성은 불에 섶과 같을 것이라 사람이 자기의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20절 - 오른쪽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왼쪽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21절 -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하나님이 대적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치셔도 그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지도자와 거짓 선지자가 백성을 미혹하게 하니 백성은 경건하지 않고 악을 행하며 망령되이 말합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서로를 치고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지 않습니다.

1. 에브라임의 교만 (8~12절)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거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과 사마리아(북 이스라엘)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보내셔서 그들을 권고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심판이 임한다 할지라도 자신들 힘으로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교만함과 완악함은 징계가 아니고는 꺾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일으켜 한때 그들과 연합했던 아람 왕 르신을 치실 것입니다. 그 후 그들이 의지하던 아람이 도리어 그들을 대적하게 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급반전을 이루어 그들에게 불리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열심으로 말씀을 보내십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생명과 복을 누리지만, 말씀을 거부하면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보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2. 미혹시키는 지도자, 멸망하는 백성 (13~21절)
하나님의 징계는 이제라도 돌이키면 기회를 주신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치시는 하나님께 돌아오지도, 그분을 찾지도 않습니다. 지도자들은 여전히 백성을 미혹시켜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하고 망령된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는 더욱 불타올라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지도자들을 끊어 버리시고,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는 동족끼리 해치며 공격하는 비참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죄악과 징계의 악순환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경건에 모범이 되는 지도자가 공동체의 운명을 바꿉니다.
* 하나님이 갈수록 이스라엘에 징계를 더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정 혹은 직장에서 영적 리더십을 보이며 솔선수범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교만이 저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음을 깨닫습니다. 백향목처럼 대단해 보이는 어떤 것을 가졌다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던 죄를 용서하소서. 거짓과 죄악이 더는 불타오르지 못하도록 주의 영으로 저와 공동체를 덮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절망의 현실을 반전시킬 소망의 미래

[이사야 9장 1절~7절]
1절 -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절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절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절 -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절 -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절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절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멸시당하던 스볼론 땅과 납달리 땅을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고,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압제로부터 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한 아들을 주셨는데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 그는 정의와 공의로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 메시아가 가져올 소망의 미래
심판도 회복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은 이방 민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입니다. 이곳은 영적 어둠뿐 아니라 전쟁의 아픔과 압제자의 폭압으로 고통 가운데 시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장래 이곳에 임할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 땅에 한 아기, 즉 메시아(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흑암이 빛으로, 멸시가 영화로움으로 반전될 것입니다. 또한 추수 때 같은 즐거움이 넘치고, 기드온이 미디안을 쳐 승리한 날(삿 7장 참조) 같은 승리가 임하며 온전한 평화가 도래할 것입니다. 심판의 메시지 가운데 주시는 회복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잘 보여 줍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믿음의 눈을 들어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을 바라고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소망의 미래를 맞게 될 것입니다.

* 스볼론과 납달리 지역에 어떤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나요?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묵상한다면 어떤 반전의 역사가 펼쳐질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의 길을 따라 걸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사야 8장 9절~22절]
9절 -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10절 -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11절 -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12절 - 이 백성이 반역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13절 -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14절 -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15절 -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16절 -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17절 -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18절 -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9절 -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20절 -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절 -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22절 -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시니 다른 민족들은 패망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성소가 되시지만 이스라엘 두 집에 걸림돌과 올무도 되십니다. 결국 선지자와 그 자녀들을 통해 징조와 예표를 주신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유다 백성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 놓일 것입니다.

1.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라 (9~15절)
사탄과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끊임없이 공격하나 끝내 패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그들의 계획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패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길을 가지 말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를 두려워하며 의지했던 백성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구원과 방패가 되지만, 그분을 불신하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따라야 합니다.
*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알려 주신 길은 무엇인가요? 내가 멈춰야 할 세상의 길은 무엇이며, 더욱 힘써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은 무엇인가요?

2. 여호와를 기다리며 바라보라 (16~22절)
성도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을 기다림에 있습니다. 당시 위기에 처한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대신에 신접자와 마술사를 통해 징조를 구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헛된 징조를 구하는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은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여호와를 기다리며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낙심과 좌절이 찾아오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을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운세, 점, 타로 카드 등에서 조언을 얻으려는 유혹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오늘의 기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결과를 빨리 얻어 내고자 점술과 운세에 촉각을 세우기도 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을 제게 허락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구원도, 심판도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8장 1절~8절]
1절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가지고 그 위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절 -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절 - 내가 내 아내를 가까이 하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절 -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임이라 하시니라
5절 -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절 -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7절 -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8절 -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큰 서판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고 하시며, 그의 아들 이름도 그렇게 지으라 하십니다. 이는 다메섹과 사마리아가 앗수르 왕에게 노략당할 것임을 뜻합니다. 유다 백성이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의지하니, 하나님은 앗수르 왕의 위력이 그들을 뒤덮게 하실 것입니다.

1. 아람과 북 이스라엘 패망에 대한 예언 (1~4절)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큰 서판에다 '마헬살랄하스바스'('곧 노략을 당하리라'는 뜻)라고 쓰게 하십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읽고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로 짓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아람의 다메섹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에게 넘겨지고 두 나라가 속히 멸망하게 될 것이란 예언의 말씀을 확증하십니다. 즉, 유다를 치려던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계획은 성취되지 못할 것입니다. 보호하심에 대한 약속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는 날마다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따르고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마헬살랄하스바스란 문구에 담겨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2. 앗수르의 유다 침공에 대한 예언 (5~8절)
하나님만이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유다 백성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렸습니다. 이 물은 그 백성과 함께하시며 날마다 그들의 목마름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유다 백성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을 위협하던 르신(아람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북 이스라엘 왕)의 패망을 기뻐할 뿐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흉용하고 더 큰 강물인 앗수르를 유다 땅으로 흘러 들어오게 해, 그 땅을 황폐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의 만족과 기쁨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기뻐하고 겸손히 그분만을 의지할 때 승리와 보호가 뒤따릅니다.
* '실로아 물'과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는 각각 무엇을 가리키나요? 버리지 말아야 할 영적 은혜, 기뻐하지 말아야 할 세상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저를 사랑하시기에 잘못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다루시는 하나님! 큰 강처럼 위력이 있어 보이는 세상의 손을 잡으려 했던 죄에서 돌이키겠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나아가오니 이 죄인을 받아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백성을 향한 가장 큰 은혜, 임마누엘

[이사야 7장 10절~25절]

10절 -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절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절 -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절 -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절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절 -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절 -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17절 -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18절 -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곳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19절 -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20절 -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21절 -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절 -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23절 -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24절 -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25절 - 보습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풀어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

하나님이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 하시지만 그가 듣지 않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처녀가 잉태해 임마누엘이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것이 주께서 친히 주실 징조입니다. 앗수르 왕의 침략으로 두 나라가 황폐케 되고, 유다도 수치를 당하며 찔레와 가시가 날 것입니다.

1. 임마누엘의 징조 (10~17절)
하나님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원하십니다. 두려움에 휩싸인 아하스 왕을 위해 하나님은 징조를 구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하지만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위선적인 이유를 들어 그것을 거부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무시하는 불신앙을 여실히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임마누엘이라는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이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은혜의 약속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심을 신실하게 신뢰함이 모든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은 아하스의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지금 임마누엘의 은혜가 필요한 내 삶의 영역은 무엇인가요?

2. 유다에 임할 징벌 (18~25절)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지 않고 불순종한 유다 땅에 애굽과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불러 모으십니다. 하지만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돌이켜 그분을 붙들지 않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앗수르를 더 신뢰했습니다. 결국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 대신 앗수르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유다가 그토록 의지하고 신뢰했던 앗수르로 인해 유다 백성은 수치를 당할 것이고 유다 땅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붙드는 것은 결국 심판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신을 내쫓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임마누엘은 심판이 아닌 구원의 은혜로 임하게 됩니다.
* 강대국을 의지한 유다를 하나님이 어떻게 다루시나요? 하나님 외에 내가 의지하던 것이 도리어 내게 상처와 어려움을 준 경우는 없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눈에 보이는 표적이 있어야 간신히 믿고 안심하는 저에게, 가장 확실한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약속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날마다 확인하며, 세상의 어떤 세력보다 크신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약속의 말씀에 굳게 서면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사야 7장 1절~9절]
1절 -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절 -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3절 -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절 -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5절 -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절 -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절 -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절 -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9절 -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가 예루살렘을 치니 왕과 백성이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대적들의 계략은 이루어지지 못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아하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말씀을 굳게 믿지 않으면 굳게 서지 못할 것입니다.

1. 반앗수르 동맹국의 위협 (1~2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작은 위기에도 두려움에 빠집니다. 아람 왕(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베가)이 유다 왕(아하스)에게 동맹을 제안합니다. 이는 반앗수르 동맹을 맺어 남하해 오는 앗수르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해 친앗수르 정책을 폈기에 반앗수르 동맹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해 유다를 먼저 공격해 옵니다(주전 734~733). 두 나라가 예루살렘까지 공격해 들어오자 대항할 힘이 없던 아하스 왕과 백성의 마음은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마음을 흔드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때 상황은 역적될 수 있습니다.
* 아하스 왕과 백성의 마음이 흔들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나 위기가 닥칠 때 내 마음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2. 이사야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 (3~9절)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인간의 모든 도모와 계획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하스 왕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는 유다를 침략해 아하스 왕을 끌어내리고, 대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울 계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계획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단언하십니다. 오히려 유다를 멸하려는 북 이스라엘이 65년 내에 패망할 것임을 예언하십니다. 성도는 사람의 계획에 낙심하지 말고, 세상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만이 온전히 이루어짐을 굳게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 동맹군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다른가요? 내 삶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사건 앞에서 두려워하며 마음이 흔들리는 저의 연약함을 돌아보소서. 위태롭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주님의 강한 오른팔이 저를 붙잡고 계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허락하시고, 저를 위해 싸우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거룩하신 왕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거룩한 헌신

[이사야 6장 1절~13절]
1절 -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절 -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절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절 -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절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절 -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절 -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절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절 -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절 -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절 -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절 -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가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그분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스랍들을 보고 자신은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제단의 핀 숯으로 죄가 사해진 이사야에게 주님이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 땅이 황폐해질 때까지 백성이 돌이키지 않겠으나, 거룩한 씨가 남아 있어 그루터기가 된다 하십니다.

1. 성전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 (1~5절)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당시 유다는 내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외적으로 앗수르의 침공 위협을 받던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참된 왕과 그분을 보좌하는 스랍들을 본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사야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 가운데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고,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비로소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인정하게 됩니다.
*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는 어떤 고백을 했나요? 하나님의 왕 되심과 거룩하심 앞에서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2. 사명을 받은 자의 자세 (6~13절)
하나님은 회개하며 그분 앞에 나아오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명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두려움에 떨던 이사야에게 스랍이 나타나 그의 입술에 제단의 핀 숯을 대고 그의 죄가 사해졌음을 선언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만큼 무엇보다 입의 정결함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정결해진 이사야는 부르심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즉각 순종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사명은 강퍅한 백성에게 구원이 아닌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길이었음에도 그는 부르심에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부르심에 온전히 헌신한 한 사람을 통해 패역한 시대에도 '거룩한 씨'가 보존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중단 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 이사야는 어떤 과정을 거쳐 부르심을 받았나요? 이 땅에서 어떤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까요?

오늘의 기도
제가 왕으로 삼았던 것들이 무너진 후에야 주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빛 앞에서 제 추악함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저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께 용서받고 부르받은 자로서, 황폐한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사명을 위해 달려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이사야 6장 1절~13절]
1절 -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절 -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절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절 -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절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절 -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절 -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절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절 -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절 -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절 -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절 -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배경 이해하기]
6장은 이사야의 소명과 위임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사야 6장의 시간적 배경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입니다. 웃시야 왕 통치기에 유다는 전성기 때의 국력을 회복했고 백성은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따라서 웃시야 왕의 죽음은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오랜 번영과 안정의 시기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그 시기의 이스라엘은 외적 번영으로 인한 종교적 부패가 심각했습니다. 또 대외적으로는 앗수르의 가장 강력한 왕 중 한 사람인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면서 주변 지역이 긴장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국가적 위기를 직감하고 성전을 찾았는데, 성전에서 하나님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속에서 이사야는 지상의 성전에서 하늘의 성전으로 옮겨지고 그곳의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스랍들의 모습을 봅니다. 스랍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서로 친양했는데, 이는 이사야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으며, 그가 선지자로서 사명을 수행하는 데도 ‘거룩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칩니다.

[관찰과 묵상]
1. 이사야는 성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요? 그때 이사야는 어떻게 반응했고 무엇을 경험했나요?(1~7절)
이사야는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들이 주를 모시고 있는 환상을 봅니다. 그때 이사야는 주님 앞에 자기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했고, 스랍이 제단에서 취한 숯을 그의 입에 대니 그의 죄가 사해집니다.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에 길게 늘어져 가득한 환상을 봅니다. 유다 왕 웃시야가 죽던 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평화의 왕’으로 이사야에게 보이셔서 자기 백성에 대한 심판과 남은 자를 통한 구원을 계시하십니다. 스랍은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스랍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렸는데, 이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차마 보지 못함을 보여 줍니다. 또 두 날개로 발을 가린 것은 정결함과 겸손의 표현으로, 발은 근동 문화에서 가장 정결하지 않은 부위로 인식되었습니다. 두 날개로 날고 있는 것은 언제든지 주님의 명을 받들어 순종할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주님 양편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경험한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을 깨닫고, 자신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입은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대표적 기관으로 입술의 부정은 마음의 부정과 동일시됩니다. 이사야의 회개를 들으신 하나님은 스랍들을 시켜 단에서 취한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게 하시고 이사야의 죄악이 사해졌음을 선포하십니다. 정결함과 거룩함을 회복한 이사야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영적 준비가 됩니다.
적용과 나눔
복음 전도자의 언어 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일상에서 입으로 범하기 쉬운 죄는 무엇인지 나누고, 정결한 입이 되도록 기도하세요.
한 방송사에서 ‘말의 힘’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두 개의 똑같은 유리병에 똑같이 밥을 담은 후 4주 동안 각각 다른 말을 하며 지켜보는 실험입니다. 한쪽에는 ‘고마워’, ‘사랑해’ 등의 긍정적인 말을 하고, 다른 쪽에는 ‘미워’, ‘짜증나’ 등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무생물인 밥이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긍정적인 말을 한 밥에는 꽃처럼 하얀 곰팡이가 피고 향기로운 누룩 냄새가 났지만, 부정적인 말을 한 밥에는 검은 곰팡이가 생기고 심한 악취가 났습니다. 이처럼 말이란 그 자체로 힘이 있습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말을 한다면 이 세상, 곧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숙한 언어 습관을 위해 다섯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말과 행동이 일치되게 하라. 둘째,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셋째, 최후의 심판을 의식하며 말하라. 넷째, 실패할 때는 실패를 인정하라. 다섯째, 나를 낮추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말을 하라.”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입이 거룩할 때 그가 전하는 복음은 영향력 있게 흘러갑니다.

2.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는 과정은 어떠한가요?(8절)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맡기신 사역은 무엇인가요?(9~13절)
이사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즉각적으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심판이 예정된 백성에게 전할 이사야의 사역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니다.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주님의 음성에 주저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합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사야에게 백성에게 이르라며 가서 전해야 할 구체적인 사역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사야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이 아닌 심판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전하되 듣지 못하게 전하고 보지 못하게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결정되었기에 하나님의 심판 계획에 영향이 없도록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사야를 보내시는 이유가 그들이 경고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변명을 못하게 하기 위함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사야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도 이미 마음이 어두워져 돌이키지 않을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은 때로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소명을 받은 순간부터 머뭇거리거나 후회하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預言者)의 삶을 살아갑니다.
적용과 나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calling)과 사명(mission)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나요?
소명(calling)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려는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소명에는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사명(mission)은 소명을 받은 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과업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버나드 뱅글리는 「날마다 예수님 마음 가까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식물들에게 각기 독특한 열매를 맺도록 하신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기 다른 헌신의 열매를 맺도록 하셨다. 신앙 훈련은 능력과 활동, 각 개인의 책임에 적합해야 한다. 주교가 은둔자가 될 수 없으며, 결혼한 남자가 수도사가 될 수 없다. 숙련된 기술자가 하루 종일 교회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진정한 헌신은 이보다 더 탁월하다. 다른 사람의 소명을 상하지 않게 하며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다. 모든 소명은 헌신과 연합될 때 발전한다. 가정생활은 더 나아지며 사랑은 자란다. 섬김은 더 신실해진다. 우리가 어디서 일하든지 우리는 헌신의 삶을 열망할 수 있고 또 열망해야 한다.”


* 하나님 임재 앞에서는 인간의 죄악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면서 철저하게 입술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과 정결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부르심은 하나님 중심의 사건입니다. 각 사람을 향한 인생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한 이사야의 응답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즉각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함을 보여 줍니다. 부르심은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내 기준과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영광의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제 부패한 입술과 마음을 덮으시고 정결케 하소서. 부르신 자리에 나아가 기쁨으로 충성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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