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영광만 좇으면 영원한 밤에 갇힙니다

[이사야 21장 11절~17절]
11절 -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12절 -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13절 -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14절 -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15절 -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16절 -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17절 -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두마에 관한 경고입니다. 세일 사람이 선지자를 파수꾼이라 부르며 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파수꾼은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올 것이라며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면합니다. 또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가 이어집니다. 전쟁으로 드단 대상들이 수풀에 유숙하고, 게달의 영광도 쇠할 것입니다.

1. 두마에 관한 경고 (11~12절)
성도는 인생의 어느 때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두마(에돔) 지역의 세일 사람이 파수꾼에게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이는 암담한 현재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묻는 것입니다. 같은 질문을 두 번씩이나 반복할 정도로 그들은 깊은 근심과 불안 속에 있습니다. 강대국의 압제를 받는, 밤과 같은 환난의 때가 속히 지나가고 희망의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그러나 파수꾼은 잠시 아침이 오는 듯해도 다시 밤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전쟁과 압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아침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영원한 구원을 얻는 방법은 주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것 뿐입니다.
* 왜 세일 사람은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파수꾼에게 묻나요? 깊은 밤이 내 인생에, 공동체에 계속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 (13~17절)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물질은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에돔과 바벨론 사이에 있는 아라비아에 경고합니다. 아라비아의 도시 드단의 대상들이 수풀에서 지내는 것은 무역로가 전쟁으로 파괴되고 그 땅이 황폐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드단 근처 데마 땅의 거주민에게 피난민을 영접하고, 허덕이는 동족에게 물과 떡을 주라고 명합니다. 이 장면은 영적인 것에 관심 없이 물질적인 부만 추구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강한 세력을 떨치던 게달의 영광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엄청난 부를 축적한 국가라 할지라도 그 영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재물을 숭상하면 결국 재물의 헛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 아라비아의 드단 대상들이 왜 수풀에서 유숙하게 되나요? 재물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한지, 돈을 버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저를 단련시키기 위해 허락하신 인생의 밤도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괴롭다고 꾀를 내어 세상으로 도망하는 대신, 말씀으로 경고하시는 사랑의 주님께 돌아가겠습니다. 진정한 회복을 경험함으로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간증할 것이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압제자 바벨론이 겪을 혹독한 심판

[이사야 21장 1절~10절]
1절 -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절 -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절 -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절 -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절 -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절 -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절 -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절 -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절 -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절 -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해변 광야(바벨론)에 혹독한 묵시를 보고 선지자는 심히 괴로워하며 떱니다. 그들은 식탁을 베풀어 먹고 마시나, 엘람과 메대에 에워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은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을 보고 바벨론이 함락되었다고 외칩니다. 선지자는 짓밟힌 백성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1. 바벨론에 임할 혹독한 심판 (1~5절)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며 즐기던 '해변 광야' 곧 바벨론도 자신에게 급작스럽게 닥칠 재앙을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의 참혹한 멸망에 관한 묵시를 보고 심히 괴로워합니다. 바벨론은 다른 나라들을 속이고 약탈을 일삼음으로 부와 권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약탈을 당하고 다른 나라들에게 행한 그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바벨론을 치는 적군들이 광야에서 불어오는 맹렬한 회오리바람같이 몰려옵니다. 하나님이 엘람과 메대로 하여금 바벨론을 에워싸고 멸망시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악인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 왜 이사야는 해산이 임박한 여인과 같이 고통스러워하나요? 멸망당할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른 채 흥청망청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2. 파수꾼의 외침, 바벨론의 함락 (6~10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치시면 세상의 모든 우상은 산산이 깨어지고 맙니다. 바벨론은 수많은 신상을 만들어 섬겼지만, 그 어떤 것도 국가적 위기에 놓인 바벨론을 구해 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세워진 파수꾼이 밤낮으로 경계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봅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마병대가 바벨론으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이때 파수꾼의 외침(9절)은 신약성경에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 18:2)라는 천사의 외침과 연결됩니다. 세상 나라는 결국 자신이 섬긴 우상과 함께 무너집니다. 압제자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에게 소망을 주는 소식입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늘 깨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주시하고, 그분의 메시지를 세상에 온전히 전하는 신실한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 파수꾼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의 그 어떤 강력한 권세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종말을 맞이함을 봅니다. 제가 겪는 고난이 끝없을 것 같아도 이 고난의 훈련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끝내실 때가 반드시 있음을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오늘을 의탁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지렁이 같은 자에게 임하는 축복

[이사야 41장 14절~16절]
14절 -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절 -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절 -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2장 7절~10절]

7절 -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절 -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절 -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절 -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정 볼품없고 약한 벌레인 지렁이를 갖다가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야곱(이스라엘)에다 비하여 말씀했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말입니다. 그 뿐입니까? 지렁이는 이빨 하나 없고, 그 어떤 날카로운 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데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산을 부스러기로 만들고 작은 산들은 겨같이 날려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능력을 행사하도록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이 어떤 자에게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즉 야곱과 같이 지렁이 같은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이 덧입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렁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자들을 말함이며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지렁이는 실로 약한 생물입니다. 오죽하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이 다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렁이 같은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은 자기의 부족과 약함을 깊이 깨닫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강하다고 느낄 때는 참다운 축복을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야곱도 언제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라고 하는 축복된 이름을 받았습니까? 많은 재산과 처자식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 얍복 여울에 이르렀을 때 20년 전에 자기가 속여 먹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복수하려고 마중 나온다는 말을 듣고 큰 두려움과 근심 가운데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환도뼈마저 천사가 쳐서 위골이 되어 싸울 수도 없고 뛸 수도 없이 심히 약해졌을 때 하나님께 그러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고후 12:7절이하에 보면 바울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육체에 가시를 주셔서 고통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더니 가시는 제거해 주시지 않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바울이 간증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깊은 신앙의 체험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그 놀라운 능력과 축복은 곧 자기가 한없이 부족하고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유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잘나고 강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은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도 성공적으로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참된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이 실망하거나 절망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니 막다른 골목에 몰아 넣어서라도 자신의 약함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십니다.
질병으로 사경을 헤매든지, 사업의 실패로 좌절을 당하든지, 물질의 곤란으로 궁지에 처하든지,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러 고민하든지, 하늘같이 믿었던 자식이나 애인에게 배신을 당하여 절망에 처하게 만들어서라도 자신의 연약함과 비천함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혹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의 깨끗함과 순결함을 믿고 교만한 자는 범죄하고 실수하여 자신의 인격과 신앙이 형편없고 비참한 죄인임을 절감하게 된 뒤에 라도 완전히 십자가 앞에 항복하고 나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실망과 약함을 느낄 때 나쁘게만 보지 말고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목사도 어느 때에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느냐 하면 두려울 정도로 자기의 연약함을 느낄 때입니다.
스펄죤(Spurgeon) 목사님이 젊어서 설교를 하려면 몸이 아프거나 병이 나기도 하고 설교하기가 두렵고 근심이 되어서 할아버지한테 그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었더니 다음과 같이 회답이 왔더랍니다. '그런 떨림과 두려움을 만족하게 여겨라 너의 그런 감정이 없어지면 너의 힘도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자기의 지식이나 말재주를 믿고 아무 걱정 없이 설교 준비하고 설교를 깔끔하고 멋지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께 의지하거나 매어 달리지 않기 때문에 능력도 은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쥐어 뜯으며 근심하고 무릎으로 씨름을 하며 가슴을 치고 애태우며 감동을 주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강한 능력이 나타나고 은혜가 넘치는 설교를 하게 됩니다. 연약한 자의 설교는 강하고, 강한 자의 설교는 약한 법입니다. 약할 그 때가 곧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받는 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아무 의지할 것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지렁이는 물어 뜯을만한 이빨 하나도 없고 남을 할퀴고 때릴만한 손이나 손톱도 없습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만한 척추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삼아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고 작은 산들도 겨같이 만들어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낫게 여기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방법과 수단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기의 지식이나 재주나 육신의 방법은 있어도 없는 것같이 여겨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승리하고 성공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임금도 하나님이 괘씸히 여겨서 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때인가 하면 보잘 것 없는 목동을 택해서 대왕으로 삼아 이제 군대가 많아지고 나라가 왕성하게 해주자 다윗은 그만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그 군대의 수를 세어보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괘씸히 여겨 3가지 벌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3년 동안 흉년이 들기를 원하느냐? 3달 동안 적군에게 패해서 질질 끌려다니겠느냐? 3일 동안 온역을 당하겠느냐?' 그랬을 때 다윗은 3일 온역을 택하였고 이에 하룻밤을 자고나니 무려 장정만 7만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군대의 수가 많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심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 앉혀 주셨던 것입니다.
레 17:5절에 보면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렘 9:23,24).
여러분은 진정 세상 것은 있어도 없는 것같이 여기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3. 완전히 엎드러진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지렁이는 배로 땅을 기어다닐 정도로 완전히 엎드러져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를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엎드러져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힘입게 됩니다. 즉 우리의 교만과 아집과 죄성이 바싹 깨어지고 바스러져서 지렁이처럼 낮아지고 엎드러져야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야곱도 절망에 부딪쳐서 환도뼈가 부러지며 자아가 부서졌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산다고 하면서 아직도 육성과 죄성과 교만과 아집을 버리지 않고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고난의 방망이로 두드리십니다. 질병의 방망이로, 실패의 방망이로, 자식의 방망이로 우리의 육성을 깨뜨리십니다. 육성이 시퍼렇게 산 채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더욱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지내면서 교만하고 우쭐해 있을 때는 하나님이 귀한 그릇으로 쓰시지 않았습니다.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가서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면서 40년 동안 고난의 생애를 보내면서 옛 사람과 육성이 다 깨어지고 바스러진 다음에야 '모세야 네가 내 백성을 인도해 내라'고 하며 위대한 지도자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경과, 고난과, 실패와, 슬픔을 당할 때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나를 축복하시기 위해 나를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령한 눈을 열어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그 손길에 자신을 맡겨 복종시킴으로써 그분 앞에 엎드려 그분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심히 연약하고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완전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써 하나님 앞에 엎드러지는 그때가 곧 축복이 오는 때인 것을 바로 깨달아 그 축복을 받아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말씀에 순종해 몸으로 전한 경고의 메시지

[이사야 20장 1절~6절]
1절 -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
2절 -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3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4절 -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5절 -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6절 - 그 날에 이 해변 주민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던 나라 곧 우리가 앗수르 왕에게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달려가서 도움을 구하던 나라가 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어찌 능히 피하리요 하리라

앗수르가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에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라 하십니다. 이는 애굽과 구스의 포로가 앗수르에 끌려갈 것이라는 징조와 예표입니다. 앗수르에게서 벗어나려 애굽과 구스를 의지하던 백성이 두 나라의 수치로 인해 놀라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1. 순종으로 징조가 된 이사야 (1~3절)
사명자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아스돗을 점령한 것을 보며 유다가 두려움을 느끼던 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벗은 몸과 맨발로 3년 동안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한 징조와 예표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모래 먼지를 동반한 뜨거운 사막 바람과 극심한 일교차가 있는 팔레스타인의 기후는 둘째치고, 이사야가 느낄 인간적인 수치심만 고려해도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기 위해 그는 말씀대로 묵묵히 순종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안위와 계획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는지 늘 돌아보며, 하나님의 대사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 이사야는 어떻게 수치심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 말씀이 비상식적이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질 때 어떻게 하나요?

2. 애굽과 구스의 멸망 (4~6절)
위기 때일수록 힘과 권력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사야의 벗은 몸과 발은, 애굽과 구스 사람들이 앗수르 왕에게 벗은 채로 수치를 당하며 포로로 끌려갈 것을 상징합니다. 이 강력한 행동 예언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의 침공 위협 앞에서 주변 강대국, '곧 '그들이 바라던 구스와 자랑하던 애굽'의 도움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애굽과 구스의 몰락을 상징하는 이사야의 모습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신뢰하고 의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질 허상이었음을 알고 탄식할 것입니다. 의지할 것이 끊어지고 사방이 막힌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 구스와 애굽의 몰락이 유다 백성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보이는 허상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믿음의 시각을 갖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이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질 때라도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게 하소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시각을 주시고, 보이는 현실을 따라 행하지 않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에 도달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

[이사야 19장 16절~25절]
16절 -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17절 -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18절 -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절 -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절 -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절 -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절 -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23절 -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절 -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절 -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배경 이해하기]
이사야 19장은 애굽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시작합니다. 교만하며 우상을 섬기고 미신에 의존하는 애굽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빠른 구름’(1절)처럼 임할 것입니다. 그들은 심각한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겪게 되고, 자연만물도 피폐해질 것입니다. 또 그들의 모사들의 지혜는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사람들은 잔인한 통치자의 압제 아래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BC 8세기 중엽 제22왕조 말기부터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 사이에 극심한 내전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에티오피아 샤바코 왕이 이 분란을 틈타 애굽을 정복하고 통치했습니다. 19장에 묘사된 ‘잔인한 주인’(4절)은 당시 샤바코 왕이나 혹은 그 후 애굽을 통치한 앗수르의 에살핫돈 왕(BC 681~669년) 또는 앗수르바니팔(BC 669~626년)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세상 모든 나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본문은 애굽 백성이 세상 모든 만물이 요동하는 배후에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16절)이 있음을 깨닫고 그분 앞에 겸손히 나아갈 때 그들에게 임할 놀라운 회복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애굽을 치시지만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앗수르, 이스라엘과 더불어 열방에 복을 베푸십니다.

[관찰과 묵상]
1. 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 무엇이 세워지나요?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분은 어떻게 하시나요?(19~20절)
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하신다는 징조와 증거가 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구원자를 보내 건지실 것입니다.
선지자는 애굽이 각양 우상을 숭배하고, 마술사와 신접한 자, 요술객 등에 의지하며 미신에 빠져 지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 예언합니다. 강성함을 자랑하던 애굽은 부녀자같이 유약한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 유다 왕국까지 두려워합니다. 고통을 통해 애굽인들은 비로소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유대인들로부터 배운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세워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겪었던 열 재앙의 쓰라린 아픔으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애굽인들은 이제 긍휼을 베푸시며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BC 6세기경에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디아스포라가 된 유대인들이 대거 애굽으로 유입되고, 이들이 곳곳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를 건설하면서 놀라운 변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신약 시대가 되면 애굽 사막 지대에는 성 안토니를 비롯한 사막의 교부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모여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애굽은 신구약 중간 시대와 신약 시대에 걸쳐 여호와 신앙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적용과 나눔
고난 가운데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 편인가요? 마음의 제단을 세우고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극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정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어디에서 돈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궁리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병을 치유할지 고민합니다.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난관에 부딪히면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인생 문제에 대해 영원히 자유로워지지 못합니다. 재정이 떨어질 때마다 불안해하고, 병이 걸릴 때마다 염려하고,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걱정한다면 그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평생 평안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인생의 근본 문제를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권세와 능력을 가진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때 찾아오셔서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라고 말한 호세아 선지자의 고백과 같이 찢어졌을지라도 다시 싸매어 주시고 이전보다 더 튼튼하게 나를 바꾸어 주실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2. 그날에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는 어떤 존재가 되나요? 그들이 변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24~25절)
그날에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는 세계 중에 복이 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세 나라에 복 주시고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이 경험한 놀라운 영적 축복은 그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들과 대적하여 싸웠던 앗수르에도 퍼져 나갈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쓰임 받았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나의 손으로 지은’ 도구가 된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유다는 북쪽의 앗수르와 남서쪽 애굽을 연결시키는 교량과 같았습니다. 유다를 통해 애굽과 앗수르라는 중동의 두 강대국이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허무시고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25절)라는 말씀은 선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이는 당대의 유대 중심적 사고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구원 사상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경로와 방법을 통해 중동 전역으로, 그리고 땅 끝으로 확장되는지 보여 줍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듯, 복음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요?
하나님은 편협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우주적 구원 계획을 펼쳐 나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죄와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날마다 천국 소망을 품고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선한 것은 단지 우리 유익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은 것이 그들이 특별히 사랑받을 만하거나 고귀한 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도구 삼아 온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인 것처럼, 믿는 이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도 그것들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통로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최종 소비자가 아니라 그것을 배가시켜 나누어 줄 의무가 있는 축복의 유통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 교만하고 우상 숭배하는 애굽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땅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세워지는, 그분을 예배하는 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치셨으나 고치시고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애굽이 받은 복을 앗수르에도 나눠 주어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 나라는 세상에서 큰 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우주적이며, 모든 열방이 그분을 예배하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우리가 누리는 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의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온 땅을 흔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손 아래 겸손히 무릎 꿇게 하소서.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제단을 쌓아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하며, 복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고난과 회복의 큰 그림, 열방에 복이 되는 것

[이사야 19장 16절~25절]
16절 -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17절 -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18절 -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절 -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절 -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절 -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절 -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23절 -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절 -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절 -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그날에 하나님이 애굽을 흔드시니 그들이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위한 제단과 기둥을 세우고 그분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시니 애굽이 그분께 돌아오고, 앗수르와 교통하며 함께 경배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에게 복 주시며 그분의 백성이라 하실 것입니다.

1. 애굽의 회복 (16~20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애굽에 대한 예언은 심판의 경고만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복의 메시지까지 포함됩니다. 유다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듣고, 애굽에 대해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 또한 이루어질 것임을 깨달은 그들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애굽 중앙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그분께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건지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시는 하나님의 손에는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연단의 고통을 넘어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나요? 지금 내가 부르짖어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언약의 확대 (21~25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그분을 경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게 된 애굽은 그분께 예배와 순종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랑의 매를 드실지라도 그들을 고치실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회복의 약속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원수 관계였던 애굽과 앗수르가 하나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복을 받아 세상에 그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는 메시아의 통치 아래 이루어질 완전한 연합의 나라, 온전히 회복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이해관계를 넘고, 지역적 경계를 넘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나누며 예배자를 세웁니다.
* 애굽과 앗수르까지 '내 백성'이라 하시고 그들에게 경배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누구를 이끌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날이 되면, 주님이 이 땅 가운데 어그러진 것들을 고치셔서 주님을 위한 제단과 기둥이 세워지는 역사를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진정한 구원자요 보호자이신 주님을 제가 더욱 깊이 알고 전심으로 경배하며, 열방에 하늘의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없는 지혜는 결국 미련합니다

[이사야 19장 1절~15절]
1절 -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2절 -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3절 -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4절 - 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절 -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절 -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7절 -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 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
8절 - 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9절 -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10절 - 그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
11절 - 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12절 -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
13절 -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
14절 -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절 -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애굽에 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인을 치시고 포학한 왕이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나일 강이 말라 백성이 먹고살기 힘들어지고, 바로의 방백과 모사는 우둔해져 애굽을 잘못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셔서 그들이 매사에 잘못 가게 하시니 애굽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1. 애굽의 붕괴 (1~10절)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주관하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의지하던 애굽은 수많은 우상을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애굽을 향해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격동시키시니 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하며, 사회는 분열될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던 우상도, 마술사도, 신접한 자도, 요술객도 그들에게 해결책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자랑이던 나일 강과 그로 인한 풍요와 다산도 사라지고 사람들은 절망에 빠질 것입니다. 애굽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력할 뿐입니다. 세상의 부와 힘과 우상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요 모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혼돈에 빠진 이들과 세상을 회복시키십니다.
* 하나님이 애굽의 자랑거리들을 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외에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 것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애굽의 지혜자를 우둔하게 하심 (11~15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혜는 결국 세상을 암흑과 미궁에 빠뜨립니다. 애굽의 주요 도시인 소안의 지도자는 지혜와 학식이 뛰어나기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심판 때에 하나님이 어지럽게 하시면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도 헛될 것이며, 우둔해진 그들이 애굽을 그릇된 길로 이끌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혼돈과 환난에 빠져 이를 해결할 지혜를 찾지 못한 채 속수무책일 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의 지혜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자가 부재한 시대, 성도는 오직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분별력과 지혜를 구하고 따름으로써 세상에 빛을 밝혀야 합니다.
*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애굽의 지혜자들은 어떻게 되나요? 인간의 지혜가 지닌 한계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이 부러워했던 부강한 애굽마저 주님 심판의 손 아래 있음을 보게 하시고, 세상 권세보다 제가 믿는 주님의 권세가 크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주님을 경외하며, 지존하신 주님의 자녀로서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조용히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사야 17장 12절~14절]

12절 -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13절 -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14절 -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이 오기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들의 몫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들의 보응이니라
[이사야 18장 1절~7절]

1절 -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2절 -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민첩한 사절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는도다
3절 -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사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치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4절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
5절 -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 퍼진 가지를 찍어 버려서
6절 - 산의 독수리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던져 주리니 산의 독수리들이 그것으로 여름을 지내며 땅의 들짐승들이 다 그것으로 겨울을 지내리라 하셨음이라
7절 -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열방이 몰려오나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실 것입니다. 선지자는 구스에서 보낸 사절들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처소에서 감찰하시다가 때가 되면 가지를 베듯 대적을 찍어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강들이 나누인 나라(구스)의 백성이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의 시온 산에 이를 것입니다.

● 감찰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힘은 티끌과도 같습니다. 많은 민족(앗수르 군대로 추정)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러 큰 파도처럼 몰려옵니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바람에 흩어지는 겨처럼 맥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에티오피아에 해당하는 구스는 앗수르에 대항해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자 유다에 사신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앗수르를 심판하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와 모든 사람을 면밀히 살펴보시다가, 때가 무르익으면 개입하십니다. 그날에 가지를 찍어 버리듯 원수를 쳐서 물리치시는 하나님을 보고, 구스 사람들도 그분께 나아와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것입니다. 성도는 온 세상을 감찰하시고 정확한 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에 둘러싸인 나를 위해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될 때, 어떤 태도와 어떤 믿음이 필요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망각의 결과는 심판, 깨달음의 열매는 회복

[이사야 17장 1절~11절]

1절 - 다메섹에 관한 경고라 보라 다메섹이 장차 성읍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라
2절 - 아로엘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 양이 눕되 놀라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3절 -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자가 멸절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 같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절 - 그 날에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 그의 살진 몸이 파리하리니
5절 - 마치 추수하는 자가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 그의 손으로 이삭을 벤 것 같고 르바임 골짜기에서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
6절 - 그러나 그 안에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과일 두세 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네다섯 개가 남음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절 -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
8절 - 자기 손으로 만든 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아세라나 태양상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9절 -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 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 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
10절 - 이는 네가 네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며 네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 나무를 심으며 이방의 나무 가지도 이종하는도다
11절 - 네가 심는 날에 울타리를 두르고 아침에 네 씨가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

다메섹에 관한 경고입니다. 다메섹은 성읍이 버림을 당해 무너진 무더기가 되고, 남은 자가 다 멸절합니다. 그날에 야곱의 영광은 쇠하지만 남은 자가 있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견고한 성읍들이 황폐하리니 이는 구원의 하나님을 잊고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입니다.

1. 북 이스라엘처럼 심판받을 다메섹 (1~6절)
악한 일을 도모하기 위한 연합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브라임은 북 이스라엘을 지칭하고, 다메섹은 아람(수리아)의 수도이면서 아람 왕국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때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두 나라는 동맹을 맺고 서로의 힘을 의지해 유다를 위협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멸절당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추수하는 자의 낫에 베이는 이삭과 같습니다. 한때 부요함과 풍성함을 자랑하던 이들은 초라하게 텅빈 상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소수의 과일처럼, 심판받는 북 이스라엘 중에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행에 동조하지 않는 경건한 자를 보호하시고 남겨 두십니다.
* 하나님은 다메섹과 북 이스라엘을 어떻게 심판하시나요? 옳지 않은 일에 동조하지 않고 남은 자가 되려면 어떤 결단과 기도가 필요할까요?

2.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까닭에 (7~11절)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황무지처럼 버려진 이유는 구원자요 능력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세상에 존재하도록 만들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도리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아세라와 태양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방에서 들여온 우상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폐해진 땅을 회복시킬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강대국을 의지하는 정치적 우상 숭배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징계받은 후에는 이전까지 우상에게 향했던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의식할 때 진정한 영적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이 황폐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요?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라보지 못하는 순간은 주로 어느 때인가요?

오늘의 기도
스스로 만들어 내고 해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도취되어 저를 만드신 창조주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제 힘을 의지하느라 모든 능력의 반석이신 주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교만을 깨뜨리시고, 매 순간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통곡의 길과 기쁨의 길,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이사야 16장 1절~14절]

1절 - 너희는 이 땅 통치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2절 - 모압의 딸들은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 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 새끼 같을 것이라
3절 - 너는 방도를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대낮에 밤 같이 그늘을 지으며 쫓겨난 자들을 숨기며 도망한 자들을 발각되게 하지 말며
4절 -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되 너 모압은 멸절하는 자 앞에서 그들에게 피할 곳이 되라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압제하는 자가 이 땅에서 멸절하였으며
5절 -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6절 -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7절 -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8절 - 이는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가 말랐음이라 전에는 그 가지가 야셀에 미쳐 광야에 이르고 그 싹이 자라서 바다를 건넜더니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9절 - 그러므로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헤스본이여, 엘르알레여, 내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너의 여름 실과, 네 농작물에 즐거운 소리가 그쳤음이라
10절 -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11절 -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12절 - 모압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없으리로다
13절 - 이는 여호와께서 오래 전부터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거니와
14절 -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보잘것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선지자는 모압을 향해 유다 통치자에게 어린양들을 보내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멸절하는 자 앞에서 도망한 자들을 보호해 주라고 합니다. 마침내 다윗의 장막에 왕위가 굳게 서고, 그 위에 앉을 자는 공의를 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모압은 소출이 그치고 능욕을 당할 것입니다.

1. 다윗의 장막 (1~5절)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멸망을 피할 길을 알려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이사야는 모압 사람들이 멸절당하지 않고 살 길을 제시해 줍니다. 즉, 유다의 통치자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이면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고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와 순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모압의 사신들이 전쟁을 피해 떠도는 자국의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해 달라고 유다에 간청할 때, 유다는 인자하게 그들의 요청을 받아 주어야 합니다. 모압을 멸하려던 자들이 사라질 때, 모압은 유다를 종주국으로 인정하며 받들 것입니다. 유다에는 인자와 사랑을 실현하는 왕이 다윗의 장막에 세워질 것이고, 그의 공의로운 통치는 열방에까지 미칠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민족을 하나님 나라로 이끄는 길입니다.
* 모압이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주님께 지금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2. 모압의 교만 (6~14절)
하나님은 교만한 나라를 대적하십니다. 모압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회복의 길을 들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여전히 자기 자랑에 빠져 있습니다. 교만한 모압은 결국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 인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농작물의 소출이 그치고 추수의 기쁨이 사라질 것입니다. 모압 백성이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산당에 달려가 남들 눈에 피곤하게 보이도록 봉사하면서 우상에게 열심히 빌어도 아무 소용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 자기 의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구원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입니다(잠 18:1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고를 듣고 즉시 순종하고, 교만한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 모압이 심판받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게 모압과 비슷한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고, 변화를 위해 성령님께 간구하세요.


오늘의 기도

자기 유익을 구하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봉사하고 기도하며 헛된 열심을 부렸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 진실한 사랑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며 인자와 충실, 공평과 의의 삶으로 열매를 맺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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