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은혜의 손길

[이사야 1장 21절~31절]
21절 -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절 -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절 -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24절 -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25절 -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절 -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27절 -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28절 -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절 -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절 -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절 -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신실하고 공의롭던 성읍이 패역해 슬프다 하신 하나님이 재판관들과 모사들을 회복하고 시온을 청결하게 하셔서 '의의 성읍'으로 불리게 하실 것입니다.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우상 숭배자는 수치당하고 멸망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회복 사역
언약 백성의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읍은 신실했고, 정의와 공의가 충만한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불의한 지도자들이 횡포를 부리는 타락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우상 숭배 문화에 물들어 종교 혼합주의가 가득한 예루살렘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모든 죄악의 찌꺼기를 없애고 불순물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리하여 신실한 하나님 백성의 본래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회복 사역을 정의와 공의로 실행하실 것입니다. 이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는 이들은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린 악인들은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순도를 회복하도록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곧 은혜요 소망입니다.

* 하나님은 신실함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어떻게 하기 원하시나요? 하나님이 제거하기 원하시는 내 삶의 불순물은 무엇일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삶의 예배

[이사야 1장 10절~20절]
10절 -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절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절 -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절 -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절 -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절 -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절 -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절 -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절 -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백성이 악을 행하면서 드리는 제사를 가증히 여기시고 피가 가득한 손으로 드리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행악을 그치고 정의를 구하며 선을 배우고 행하면 죄를 사해 주겠다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절해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하십니다.

1. 헛된 제물, 응답 없는 기도 (10~15절)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본질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각종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수많은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종교 행위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물을 '헛된 제물'이라 하시며 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그들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성회에 참여하면서 각종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죄에 물든 상태로 거룩한 척하는 위선을 하나님은 매우 가증하게 여기시며 싫어하십니다. 성도는 형식적으로 참석만 하는 무익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 하나님은 백성이 드린 제사와 제물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내 예배 생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무엇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2. 죄 사함을 위한 하나님의 초청 (16~20절)
회개는 죄로 더러워진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서 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악한 행실을 버리고,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아 새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행을 일삼는 유다 백성을 향해 회개의 자리로 나오라고 초청하십니다. 회개하면 아무리 심각한 죄라도 깨끗이 씻기는 은혜를 얻습니다. 참된 회개는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던 삶에서 돌이켜 선행을 베풀고 정의를 실천하며, 학대받는 사람을 도와주고 약자를 변호하는 것이 진정으로 회개한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립니다.
* 예배자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종교적 행위로 하는 선행이 있다면 무엇이며,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예배 자리에 앉아 딴생각했던 것을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자 되게 하소서. 입술로만 회개하지 않고 삶의 변화가 나타나도록 도와주소서. 연약한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며, 학대받는 자들을 돕고 변호하는 자리에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패역한 백성에게 임한 하나님 사랑의 매

[이사야 1장 1절~9절]
1절 -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2절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절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절 -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절 -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절 -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절 -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절 -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절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 이사야가 본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양육하신 백성이 죄를 범해 그분을 버리며 패역을 거듭 행합니다. 땅은 황폐하고 성은 불에 타 시온 성만 겨우 남았습니다. 하나님이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않으셨다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탄식 (1~4절)
성도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분과 친밀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앞에서 그분께 등 돌리고 떠난 백성에 대해 탄식하시며 그들의 실상을 고발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모처럼 따뜻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양육하고 돌보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푸대접하고 배척했습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짐승도 주인을 알아보고 따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주인이시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떠나 그분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나요? 요즘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할 만한 태도나 행동을 취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세요.

2. 패역으로 황폐해진 성읍 (5~9절)
하나님을 버린 인생에는 피폐함과 비참함만 남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채 패역을 일삼은 남 유다는 징계를 받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위로와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거하던 마을은 불에 타고, 토지는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고, 예루살렘 성만 간신히 보존되었습니다. 죄악으로 처참하게 심판받은 소돔과 고모라와는 달리 하나님이 유다를 완전히 진멸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씨가 되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남겨 두신 것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의 회복을 원하시며, 인류의 구속사를 이어 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회를 남겨 두십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매를 드셨으나 우리의 맞은 자리를 어루만져 낫게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면 희망이 있습니다.
*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어떤 모습인가요? 내 삶이 피폐해진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상한 심령이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훈계하실 때 제가 바로 돌이키지 않았기에, 사랑의 매를 드실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극진한 사랑으로 양육해 주신 아버지를 거역하고 떠난 이 죄인이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깨지고 상한 제 영혼을 받아 주시고, 은혜의 붕대로 싸매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초청받은 우리들

[이사야 1장 18절]
18절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

17절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만일 여러분이 청와대로부터 다음과 같은 초청장을 받았다고 합시다.
'귀하를 청와대 만찬석에 초대합니다. 이 자리에는 미국의 대통령과 영국 여왕도 함께 초청되었으니 귀하께서 꼭 이 만찬석에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아마 이렇게 쓰여진 초청장이 여러분에게 왔다고 하면, 여러분은 그 초청장을 들고 자녀들과 손자들과 그리고 이웃 사람들에게 모두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실상 대통령보다 더 위대하신 천국의 왕, 만왕의 왕께서 여러분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 1:18).
사 55:1절에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포도주는 성령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이요, 젖은 신령한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그런데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사라'는 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산다고 하는 말은 내 것이 된다는 뜻이므로 값없이 와서 받아서 네 것으로 삼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마 11:28절에서도 예수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니"라고 했고, 요 6:37절에 보면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같은 죄인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은 내어쫓기지 않을까? 이렇게 의문을 가지기 쉽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40명이 기록했는데 성경의 마지막에 있는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람은 바로 주님의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귀향가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계시록을 쓸 때, 아마도 계시록을 마지막으로 다 쓰고 끝마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가만있어라. 아직 아멘을 쓰지 말고 내가 마지막 한번 더 죄인들을 초청하여 구원하는 말씀을 기록하라'하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장 맨 끝부분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수를 받으라 하시더라"하고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마지막으로 기록할 때에도 최후의 간절한 초청의 말씀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분에게는 오늘 이 말씀이 마지막 초청의 기회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 초청은 누가, 누구에게, 왜 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누가 초청을 했습니까?
첫째, 성령님이 초청했습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첫째 역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회개하고 믿음으로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성령님께서 죄를 깨닫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신 것을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회개할 마음이 생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죄인들을 향하여 어서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만났을 때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고 했는데 여기에 가시라는 것은 육신을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 것으로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이 가시로 찌른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가끔 바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위해 돌에 맞아 피흘리며 죽어 가면서도 해같이 빛났던 스데반의 얼굴을 떠오르게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 찌르는 듯한 가시를 없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와 같은 가시가 여러분의 양심을 찌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과 부모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다고 약속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영이 언제까지나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이렇게 감화감동을 주시고 우리를 책망도 하시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당신의 양심에서 손을 떼시고 지옥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실 때가 올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교회가 초청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신부'라고 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신부 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죄인을 불러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교회가 여러가지 하는 일들이 많지만 어떤 것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일만은 반드시 해야 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전도열에 불타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다 설교를 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다 선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도사업의 일부를 담당해야만 하고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바로 여러분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셋째, 천국의 거룩한 도성이 초청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거룩한 성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씀이 있는데 마치 단장한 신부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 거룩한 도성이 우리를 들어오라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에 대해서 노래할 때 '실망이 없는 곳, 늙지 않는 곳, 예루살렘 황금 성'이라고 부릅니다. 또 그곳에는 죽음이 없고, 질병이 없고, 슬픔이 없고, 눈물이 없고, 배고픔이나 가정 파탄이 없는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곳이 우리를 지금도 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만족이 없고 풍파가 있는 것은 이 영원한 본향 천국도성을 사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도성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과 사도 바울과 다윗과 앞서간 선조들과 함께 교제하며 살게 됩니다.
죄인은 성도가 되고 주정뱅이는 경건한 사람이 되고 추한 사람은 깨끗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거룩한 도성, 아름다운 영원한 도성이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넷째, 듣는 자도 초청자가 되어서 초청했습니다.
본문 계 22:17절에 보면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부르시고, 교회가 부르시고, 천성에서 부르시고, 또 이제는 하나님께서 듣는 사람은 누구나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자기만 예수믿고 교회에 나올 것이 아니라 이 복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초청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눅 14:23절에 보면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복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는 반드시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족, 친척, 이웃사람, 나가서 온 세상에 이 초청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전도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열심히 초청해야 되겠습니다.

2. 누구를 초청했습니까?
첫째, 목마른 자입니다.
'목마른 자'라는 이 말은 이 세상 생활에서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고, 죄에 시달린 사람, 마음에 평안 찾기를 원하는 사람 모두를 가리킨 말씀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려던 삭개오가 바로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기도한 세리가 바로 목마른 자였습니다. 수가성 우물에 물을 길러 왔던 여자,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어 살던 죄많은 그 여인이 바로 목마른 자였습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에는 목마른 사람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목마른 사람들이 이 세상의 우물에서, 해갈시켜 줄 수 없는 우물에서 갈증을 면해 보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렘 2: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만이 생명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모든 영혼의 욕구를 채워줄 수가 있습니다.
둘째, 믿는 자입니다.
요 3:16절에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믿는 자는 다 천국의 초청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술주정뱅이도, 사람을 죽인 강도도, 도적놈도, 창녀도 믿는 자마다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백인도, 황인종도, 흑인종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누구나 다 하나님은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누구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오라고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십니다.
또한 구원받기 원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생명수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생기면 바로 여러분은 구원받도록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아야 되겠다는 소원이 있는 자는 이미 초청 받은 것이므로 담대히 주님께로 나아가십시오.

3. 왜 초청했습니까?
첫째로,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어서 마시게 하기 위해서 초청하고 계십니다.
심한 병에 들었을 때 의사가 꼭 먹어야 한다는 약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이 여러분이 죄의 병에 걸려 죽게 되었는데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이 주는 약, 생수를 마시지 아니하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주님의 생수를 마시면 여러분의 죄는 용서받고 여러분의 마음은 변화되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과거에는 육의 성품인 죄악대로 살았지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지옥으로 향하던 것이 천국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둘째,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당신이 최고급 호텔에 들어 가고, 제일 비싼 음식을 먹고, 제일 비싼 차를 타고 다니기를 원한다면 아마 돈을 많이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값없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값을 받지 않고 영생과 구원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이미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아무리 흉악한 죄인도 값없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여기에 구원이 있다. 값없이 와서 받으라. 기쁨으로 네게 주노라'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생수를 값없이 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초청, 만왕의 왕, 위대하신 주님의 초청이 여기 있습니다.
목마른 자, 누구든지 원하는 자들은 값없이 와서 생명수를 마시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삶의 가장 큰 은혜,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사야 9장 1절~7절]
1절 -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절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절 -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절 -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절 -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절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절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흑암에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한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룰 것입니다.

1. 흑암에 비칠 큰 빛 (1~4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는 죄인인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앗수르와 바벨론에 유린당하고 비참하게 짓밟혔던 땅입니다(왕하 15:29). 그 땅은 이방인들의 집단 거주지로 '이방의 갈릴리'라 불릴 만큼 어둡고 소망 없는 지역이었습니다(왕상 9:11 참조).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무거운 멍에를 없애시고 채찍과 막대기를 꺾으심으로 그 백성을 구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들의 강림을 통해 성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죄와 사망의 짐을 벗고 자유와 기쁨을 충만하게 맛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입니다.
* 묵상 질문
전에는 흑암 가운데 고통과 멸시를 당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영화롭게 될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게 해 주신 예수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까요?

2. 메시아의 탄생과 통치 (5~7절)
하나님의 다스림만이 진정한 평강과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한 아기'의 탄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는 말은 태초부터 계시던 분을 우리에게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아기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는 지혜를 가지고, 평강과 공의로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왕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능력과 권세는 영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심이 모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소망은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성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림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바 된 '한 아기'는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이루시나요?
* 적용 질문
내 삶과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로 굳게 서기 위해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어둡고 소망 없던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어깨를 짓누르는 죄의 멍에를 깨뜨리시려고 친히 십자가를 지신 주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넓힙시다

[이사야 54장 1절~3절]
1절 -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절 -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절 -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좁히라'는 말씀은 한 곳도 하신 적이 없고 '넓히라'는 말씀은 누누히 말씀하신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에 인간이 넓히려고 들면 바다처럼 넓어질 수도 있고 좁아지려면 바늘구멍처럼 한없이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넓히라'고 말씀하신 것 중에서 몇 가지 예를 찾아보면서 은혜와 축복을 받고자 합니다.

1. 네 입을 넓게 열라(시 81:10)
첫째로 찾아볼 곳은 시 81:10절의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과 포부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크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크게 그리고 많이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아예 입을 열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을 열기는 여는데 넓게 열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입을 크게 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고 천하만물이 우리 아버지의 것이며 없는 것이 없으신 아버지시니 기왕이면 적게 구하지 말고 큰 믿음과 포부를 가지고 크게 구해야 하나님께서 크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빌 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는데 먼저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주셔서 이루시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면 소원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크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월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도모하라"고 하더니 정말 그는 선교 역사상 큰 일을 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잠 23: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
필립스 부룩스(Phillips Brooks)는 '당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일에 맞는 능력을 주실 것을 기도하시오'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목표로 정하고 나아가는 방법을 찾았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을 찾아보고 목적지를 정한 것이 아닙니다.
노만 빈센트 필(Norman V. Peale) 박사는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과 생각을 크게 하는 버릇을 키웁시다. 마음과 생각이 크면 그만큼 크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안될 것부터 생각하면서 좁아지지 말고 큰 꿈과 포부를 가지도록 하십시오. 입을 크게 열어 주님의 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네 마음을 넓히라(고후 6:11~13)
고후 6:11-1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를 "네 마음을 넓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나도 모르게 독선과 고집과 편벽으로 자꾸 좁아지기 쉽습니다. 어떤 면에선 크리스챤들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보면 불신자보다도 마음이 더 좁아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남과 화목할 줄 모르고 남을 이해하거나 용납할 줄 모르는 협소한 마음의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도 불행하게 되고 맙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대적 골리앗을 죽이고 난 뒤에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는 말을 들은 뒤부터 사울은 마음이 점점 좁아지면서 악신에 사로잡히고 시기 질투심에 불타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히려 마음을 넓혀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결국 마음이 점점 좁아진 사울은 전쟁하다가 불레셋 군대에 포위되자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마음이 점점 넓어지는 자는 흥하고 마음이 점점 좁아지는 자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시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면 점점 마음이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잘되기를 빌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다 예수님께 돌아갈 때 시기하지 않고 '저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내 환경 내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지나친 경쟁 의식으로 질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이 잘되는 것 시기하다가 내 마음이 좁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자꾸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둘째, 이기심(利己心)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자기 중심으로 살게되면 점점 좁아집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이기주의자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행하게 삽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 모두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으로만 보이고 자기를 무시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타심(利他心)으로 사는 사람은 마음이 자꾸 넓어지고 기쁘고 행복하게 삽니다. 우리 성도들은 남에게 양보할 줄 알고 남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일이 나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넓은 마음으로 그것을 수용할 때 행복이 돌아오게 됩니다.

셋째,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포용력이 커지고 누구에게나 은혜를 받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해지면 무조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비판하게 되어서 웬만해서는 타인을 용납치 않고 은혜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교만한 자의 마음은 바늘구멍처럼 좁아집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는 유명한 목사님들을 모두 쫓아다니면서 은혜도 받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도 했었는데 이제는 큰 교회의 목사요 조금 이름난 부흥사가 되니까 좀처럼 은혜받기가 어려워지고 자꾸 비판하게만 되어서 늘 이 마음을 깨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스펀지같이 흡수력이 강하여 주의 말씀을 잘 흡수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돌과 같이 마음이 딱딱해서 주의 말씀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늘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그 마음이 넓고 좁은 데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남을 용서해야 마음이 넓어집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하라는 말씀을 듣고 '하루에 7번까지 용서하리이까' 하고 큰 맘 먹고 물어 보았으나 주님은 70번씩 7번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꼭 490번이 아니라 무한히 넓은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라는 뜻인줄 압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세리도 용납하고 창기가 찾아와도 용납하고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회개하는 강도도 용납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폭 넓은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성도가 됩시다.

3. 네 장막터를 넓히라(사 54:2, 3)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견고히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로 이방의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이 황폐한 성읍이 되었지만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까지 구원하게 될 터이니 교회를 확장하여 복음 전도의 영역을 넓히라는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성전이 천막으로 되어 있어서 성막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막을 생각해서 터를 넓히고 성막의 줄을 길게 늘이고 그 줄을 붙들어 맬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교회를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꾸만 많이 늘어갈 수 있도록, 또한 우리의 교회가 세계를 향한 복음 전도의 전진기지가 되도록 먼저 그 교회는 터를 확장할 수 있는데로 확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장막의 터를 넓게 치고 후일을 바라보며 선교의 영역을 넓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레루야!
어떤 사람이 낚시질을 하는데 큰 고기는 다 놔주고 자로 재서 10인치 짜리 미만의 고기만 잡아 넣더랍니다. 그래서 왜 10인치 짜리만 잡느냐고 했더니 자기 집 후라이판이 10인치밖에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큰 일을 도모하고자 하십니까? 크게 쓰임 받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내가 지금 가진 터전을 넓히십시오. 큰 믿음으로 입을 크게 넓게 열어 기도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하나님을 사모하라

[이사야 40장 27절~31절]
27절 -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절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절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절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은 '하나님을 사모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이 제목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본문의 '앙망하라'(waitupon)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앙망하다'는 말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다린다', 혹은 '바라본다', '사모한다', '의지한다' 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가지 뜻만 선택한다면 '사모한다' 또는 '갈망한다'라는 말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사모하라고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돈이나 애인을 사모한다고 하면 그것은 왜 사모하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요,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에 그 돈이나 그 애인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의 의미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요,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요, 의지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귀중히 여기며 의지하고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먼 나라에 갔는데 집에 있는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필시 그 부부 사이는 금이 갔거나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남편과 아내로 비유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요 성도는 그 신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정상적이요, 그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요, 그리스도와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갈급히 사모해야 될 이유
부부간에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애정에 금이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곧, 예수님의 신부들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고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에 보면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야곱은 하나님과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한 사람이었고, 에서는 그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야곱은 덩치도 작고 왜소하여 형만 못하고 도덕적으로 보면 아주 약삭 빠르고 간사해서 아버지와 형을 속일 때도 있었지만 그 중심엔 늘 하나님과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의 장자권도 빼앗고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라도 아버지한테 축복기도도 받고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나님에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대범하고 너그러워 보이고 남성적이었으나 동생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산 상속권이요 축복의 열쇠가 되는 장자권마저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해 보이고 신사적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과 같이 그런 갈급한 마음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을 더 기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 4:4절에서 보면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간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인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을 더 사랑하며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계 3:16절에 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에 대하여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십니다.
삼상 2:30하반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시 42: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뜨거운 여름에 목이 말라 시냇물을 먹고 싶어서 찾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이 생명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렘 2: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안에서 살아야 할 백성인데도 하나님을 떠나서 터진 웅덩이를 파는 분은 없습니까?
요 7:37절에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마음이 있고 갈급한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것이지 그런 목마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마실 수가 없습니다.
팔복 중에도 첫째 가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심령의 배고픔과 갈급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첫째가는 복인 것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 살았지만 만족이 없고 컬컬함을 느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서 생수를 마셨던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그 심령이 답답하고 갈급함이 있었으므로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 혹은 철야기도 하고 싶은 마음, 금식기도 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다 은혜인 것입니다.
요한 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1미리만 떨어져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도 피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여 항상 주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게 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않고 멀리 떠나는 것을 끌어 당겨서 억지로라도 당신을 앙망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에게 무능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무능함과 약함을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서는 살 수 없다고 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사모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의 병은 손만 얹어도 낫고, 손수건만 대어도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했는데 자기 몸속에 있는 병은 낫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기도했을 때 응답으로 '나의 약함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해주신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후 12:1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가장 부족하고 약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제일 강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사모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견딜 수 없는 시련과 고통과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출애굽기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종노릇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왕을 만나서 핍박을 받고 사내아이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벽돌을 굽게 하고 매를 맞게 되니까 그제서야 그 곤욕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 2:2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게 한 다음에 그 기도가 상달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는 신호인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게 합니다.
사람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사랑에 실패를 하고 세상의 모든 믿었던 것이 무너지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손들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모하고 귀중히 여겼던 것을 하나 하나 그 기둥을 뽑아버린 뒤에 실망과 낭패를 당하게 하시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마저 없어 보이고 하나님마저 나를 버렸다고 느낄 정도로 완전히 절망을 느끼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럴때일수록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패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시 119:8절에 보면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후 1:8절에 보면 "힘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이해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절망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 지혜나 재산이나 사업의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첫째, 새 힘을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곤비하고 피곤하여 넘어져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새 힘을 주십니다. 마릴린먼로 같은 돈 많은 세계적인 여배우가 왜 자살을 했습니까? 헤밍웨이 같은 유명한 사람은 왜 자살을 했습니까?
세상 것을 사모하고 사랑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더 큰 낭패와 실망만 당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자는 점점 더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습니다.
렘 29:12, 13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고 할 때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되었는데,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나니까 형과 사랑으로 만나는 문제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을 얻습니다.
사 45:22절을 보면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해서 나오는 자를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거나 내어쫓지 아니하십니다.

넷째,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시 25:3절에 보면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큰 징계가 없습니다. 앙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다섯째, 회복시켜 주십시다.
대하 7: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건강을 잃어버리고 물질을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하고 낭패를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고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항상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이사야 55장 6절~9절]
6절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절 -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절 -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 -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오늘은 우리들이 회개한 후에 범죄하지 않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온전한 비결에 대해서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크리스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기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범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7:15절에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했습니다. 또 18,19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했고, 24절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서 8:1-2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죄를 이기고 여호와께로 돌아올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죄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고, 죄의 본성도 육신을 쓰고 있는 한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욕망 보다도 죄를 안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더 강하면 죄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죄가 아무리 달콤하고 좋아 보여도, 하나님이 가중히 여기시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열망이 더 간절하고 뜨거우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고 죄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혹시 육신이 약해서 실족하는 때가 있어도 그 강한 의지를 버리지 않으면 마침내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군대의 지휘본부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마귀도 생각을 통해서 침투해 들어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케하여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절에서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엄청난 죄를 범하고 멸망받은 것은 그 생각 속에 마귀가 주는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27-28절에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행동으로 죄를 범하는 것은 생각의 결과이기 때문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죄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여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까지는 좋지만, 구체적으로 음탕한 생각을 품으면 행동으로 지은 죄나 다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생각 속에 하나님이 원치 않고 내 양심이 허락지 않는 생각을 품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는 별별 짓을 다 하면서 행동으로 범죄치 않았으니 성결하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55:7절에도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실 때 행동을 버리라고 하시지 않고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참된 회개와 철저한 회개는 생각 속의 죄까지 모두 깨끗이 씻어버리고, 다시는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9:14절에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해서 홍수로 심판하셨는데, 그때의 상태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시면서 홍수로 쓸어버리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롬 8:5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마음 속에 죄악된 생각과 유혹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잠 4: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죄는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죄악은 흉내도 내지 말고, 죄악은 그 작은 시초라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술마시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포도주도 마시지 말고 아무리 친한 친구가 권하는 술 한잔이라도 단호히 거절하고 입에 대는 체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구와 의리가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정 못살게 술을 권하면 술잔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투전으로 패가망신하고 폐인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처음에는 장난삼아 담배 한개피나 냉면내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커지고 인이 박히면, 영영 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박 버릇 있는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고,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지구상에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가 마약 중독자가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약에 중독되면 도적질하고, 강도질하고, 인신매매도 하고, 살인도 합니다. 그러다가 완전히 폐인이 되는데 그 시초가 바로 "마약이 기분 좋다는데 어떨까? 한번만 해볼까?"하고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악은 시초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됩니다. 시편 1: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죄악된 길에 들어 서지 말고, 그런 자리에 앉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좋아하고 죄악으로 연결될만한 짓은 농담으로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담이 죄악으로 들어서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엡 5: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죄를 지은 후에 우리에게 어떤 대가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는 처음에는 달콤한 맛을 주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수백배 수천배 쓰디쓴 고통과 형벌을 가져다 주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기는 하지만 영원히 참지 않는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죄의 대가는 언제치러도 치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 32:23절에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고 했습니다. 10년이나 20년 후에라도 더 나아가 자식대에 가서라도 죄의 값은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를 믿지 않고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은 후에 영원한 형벌을 받지만,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범죄할 때에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물질의 손실이나, 사고나, 질병의 고통이나, 심지어 자식을 통해서라도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 그 죄의 대가를 치러본 사람들은 죄를 끊고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히 12:5, 6절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8절에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고난이 성도들을 거룩하게 만들고 순종하게 만듭니다. 시 119: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했고, 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체험적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죄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금식 후에 마귀가 시험할 때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시편 119: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하신 것처럼 주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묵상해야 됩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기도생활을 하는 것은 물론 마음과 생각으로 늘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기도의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마귀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범죄의 배후에는 마귀가 숨어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이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에베소서6: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권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고, 18절에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죄를 이기려면 마귀를 이겨야 하는데, 마귀를 이기고 대적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를 범하지 않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강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또 악은 모든 모양도 시초도 버려야 하고, 죄의 값이 얼마나 무섭고 큰지를 체험하고 깨달아야 하며 말씀과 기도로 항상 무장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그만큼 귀한 그릇이 되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할렐루야!

-아 멘-

사랑의 하나님을 의심하지 맙시다

[이사야 49장 14절~17절]
14절 -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절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절 -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절 -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안요한 목사님의 일생을 주제로 한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란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주인공 안요한 목사는 맹인이 되기 전에 가난하게 목회하시는 아버님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동안 교인들의 신발을 한아름 안아다가 버리기도 하고 교회 벽에도 '하나님은 안계시느니라(안요한복음 1:1)'하고 써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도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미국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도 예배당 건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며 '하나님 안녕'이라고 비아냥 대며 좋아했었습니다. 그때 그의 부친 목사님은 그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나가 조약돌을 쥐어 주며 고무줄에 매서 잡아당기게 한 다음 "네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려고 해도 이 돌이 고무줄 범위를 떠날 수 없듯이 너는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를 떠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며 아들을 타이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안요한 목사가 실명하고 나자 그의 어린 딸은 자기 친구들이 '장님 아빠'라고 놀려댄다고 울부짖었습니다. 그후 아내마저 아이를 데리고 나가 버렸습니다. 자신은 몇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깊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 거릴 때 환한 빛이 비치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9)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회개하고 새 힘을 얻어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목사가 되었다는 실화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 우주보다 넓고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심한 고통과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범죄했을 때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때도 의심하고, 실패했을 때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이며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간곡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거나 잊어 버렸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낙심할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맙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1. 고난에 처할 때 의심하지 맙시다.
흔히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고난과 시련을 더 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 땅에 와서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바로 왕이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누구보다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려서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고생을 하고 또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을 때 하나님은 칭찬과 상급은 주시지 않고 도리어 억울하게 2년이나 감옥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고 고난과 시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역경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을 하는 많은 목사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변변치 못한 이 사람도 고난을 겪지 않았다면 오늘날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많은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사가 결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이 큰 만큼 그 다음에 오는 축복도 크고 더 귀한 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보자기에 복을 싸다 주시는 것입니다.
값진 진주가 어떻게 생겨 납니까? 조개의 부드러운 살에 모래알이 끼어 들어왔을 때 그 깔깔하고 따갑고 아린 것을 참으며 진액을 뿜어 살을 감싸다 보니 진주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태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온 우주에 가장 큰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이 온 우주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이 더 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세상에서 너무 편안하면 세상에 속해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면 그것을 당하는 만큼 믿음도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온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고 더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응답이 늦을 때 의심하지 맙시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고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아!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나 보다'하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18: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지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라고 하시며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위로 하나님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아래로 사람도 사랑할 줄 모르는 재판관이지만 낙심치 않고 끈질기게 부르짖으니까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합 2:3절에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도 응답이 늦어진다고 사랑의 하나님을 의심하지 맙시다.
어느 일본 처녀가 관절염을 고치려고 한국에 금식 기도하러 왔는데 15일 작정 기도 중에 13일이 되어도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고 여전히 아프기만 하더랍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의 기도는 안들으시나 보다'하고 낙심할 뻔 했으나 끝까지 믿고 기도했더니 마지막 날에 깨끗이 고쳐 주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 때 6일동안 돌았는데도 성벽엔 금도 안갔습니다. 마지막날 마지막회를 돌고 난 뒤에야 철옹성벽이 와르르 무너져서 점령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 전날 밤까지도 수염도 못 깍고 목욕도 못한 채 죄수복을 입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응답의 때가 되매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진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맙시다. 축복이 더디 온다고 의심하지 맙시다. 원래 큰 응답과 큰 축복은 더디 오는 법입니다.

3. 지은 죄가 크다고 의심하지 맙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그물을 가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무슨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는가, 어부 노릇이나 하다 죽어야지"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부활 후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용기와 사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범죄하고 실수가 많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후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으면서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수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몇번이나 용서해 줄까요, 일곱번까지만 하면 충분할까요?' 하고 물을 때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고, 아무런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때 끝까지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옥을 다니며 전도하기로 유명했던 범브랜드 선교사가 살았을 때 한국에 와서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그에게 성령께서 '술집에 가서 전도를 하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사모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무슨 성령께서 술집에서 전도를 하라고 하느냐고 오히려 코웃음을 치더랍니다. 그래도 이 범브랜드 목사님은 술집에 갔는데 사람은 한사람도 없고 소련군 장교 한명이 총을 탕탕 쏘면서 주인 보고 술을 내라고 하며 씩씩대고 있더랍니다. 이 목사님은 총을 자기에게 쏠지도 모르는데 소련군 장교에게 다가가서 주인에게 이 소련군 장교에게 술을 주라고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답니다. 그 소련군 장교에게 말하기를 '당신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하니까 그 장교는 '아니, 나 같이 간음죄 도적질죄 별별 죄를 다 지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예, 당신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를 영접 하더랍니다. 그후 범브랜드 선교사는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계속하다 순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죄가 너무 크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맙시다. 사 1: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죄인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우리도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죽도록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맙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깨달아 승리하는 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이사야 66장 1절~4절]
1절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절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절 -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절 -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권고(眷顧)라는 말은 바로 '돌봐 준다'라는 뜻입니다. 특히 2절 말씀에 보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을 하나님이 돌봐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가 그 가족들을 돌보는 것처럼, 아니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자상함과 풍성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돌봐준다고 해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이 돌봐주신다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천지의 주재가 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살펴주시고 돌봐주시는 사람이 된다면 이에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돌봐주신다고 했는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빈 마음, 겸손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마음이 겸손한(humble)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분이지만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을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66:1,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고 하시며 마음이 가난한 자를 돌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이 말씀은 높고 넓은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에 지나지 않고 천지는 모두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것인데,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집을 짓고 무슨 처소를 만들어서 거기 거하게 하겠느냐 아무리 좋은 예배당이나 좋은 집을 지어도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적당하지 않지만,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사 57:15절에도 그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지극히 높고 존귀하고 거룩하신 분이지만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고로 겸손은 하나님을 모시는 비결이며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는 비결입니다. 이에 미 6:8절에도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델리취(Delitzsch)라고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에게 높은 곳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너무 좁은 곳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비어 있는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높으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돌봐주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서 8복을 말씀하실 때 제일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의 첫째가는 마음의 자세는 가난하고 겸손한 것입니다.
이에 스펄젼(Spurgeon) 목사님은 '심령이 가난한 것은 축복 창고의 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으로 꽉 차 있고 그런 사람은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이 모두 돌보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빌 2: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는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곧 겸손한 마음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자기를 낮추어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고 그를 돌봐주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교만한 자는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약 4: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으며 벧전 5:5절에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으며, 잠 16:18절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소유할 수가 있고 교만하면 하나님이 다 거두어 가십니다. 겸손이 결핍되면 아름다운 것도 우아한 것도 모두 가증한 것이 됩니다. 교만하면 수고와, 봉사도 다 가증한 것이 되고 맙니다. 겸손은 가장 고상한 덕행이며 모든 축복의 기초가 됩니다. 그러나 겸손의 결핍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며 상실과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2. 통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인하여 심한 영적 고통을 느끼는 자를 돌봐주시고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하여 심한 고통을 느끼는 자가 결국 죄를 미워하게 되고 죄를 끊어버릴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사역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를 하고 음행죄를 지으면서도 도무지 죄에 대하여 통회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시고 큰 재난과 고통을 가하신 것입니다. 렘 3:3절에 보면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고 렘 6:15절에서는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 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니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고 탄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는 말씀과 같이 죄를 지을지라도 그 죄를 인하여 아픔을 느끼고 고통을 느끼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자비로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사 57:15절에도 보면 지존무상하시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8복 가운데 두 번째를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눈을 뽑듯이, 발을 찍듯이 아픔을 느끼며 간절히 회개할 줄 알아야 하나님이 돌봐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통회하는 사람은 결단성 있는 행위로 죄를 끊고 돌아설 수가 있고, 죄의 값을 받을 때에도 달게 받습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구속의 은총으로 돌보시는 것입니다.
시 51:17절에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롬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탄식했습니다. 진정 죄 때문에 탄식하는 가련한 영혼에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그를 돌봐주십니다. 죄에 대하여 통회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보혈에 대해서도 정말 의지하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죄를 슬퍼한다고 해서 회개가 다 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죄에 대한 슬퍼함이 없이 진정한 회개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죄에 대해 애통한 나머지 기절할 뻔한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음란한 죄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자기의 팔뚝을 물어 뜯으며 애통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힘입어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된 것입니다.
시 34:18절의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3.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입니다. 참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떠는 사람입니다.
효자라면 부모의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고 순종하는 것 같이 훌륭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여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참된 신앙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 앞에서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자는 끝까지 놀라운 은혜로 돌보시지만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내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잠 13:13절에 보면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름없는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두려워하며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회개하여 위대한 임금이 되고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는 훌륭한 왕이 되었으나, 사울 왕은 사무엘과 같은 대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며 변명하고 핑계만 대다가 결국은 심판을 초래하여 자기 아들은 전사하고 자기는 칼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대하 36:15-20절에 보면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들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백성들의 말로가 너무나 비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떨 줄 모르고 멸시하고 경홀히 여기면 이렇듯 타락하고 패망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대적하여 물리치는 비참한 자가 되시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함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늘 돌봐주시는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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