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백성의 죄 4:1-5
(1) 법정이 열리고 주의가 요구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실때 그들은 기꺼이 들으려고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쟁변하실때 기꺼이 듣고자 하겠는가?
(2) 기소장이 낭독된다. 그것에 의해 전민족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신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의무에 대하여 민족적인 태만죄로 기소되었다. 그 백성은 전혀 정직성에 대한 의식을 가진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의무감이나 어떤 자비심을 갖기나 했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없는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여기에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전부를 범한 극악한 국민적 죄과가 나타나고 있다. 저주, 사위, 살인, 투절, 간음은 셋째, 아홉째, 여섯째, 여덟째, 일곱째 계명을 범한 것이었으며, 그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것이었다(2절). 그들은 강포하였다. 즉 그들은 이성과 양심,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의 모든 한계를 범하였다. 그들이 이와같이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잇자 그 나라의 각처에서 살인이 자행되었다.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그 많은 피를 흘렸던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3) 선고가 죄악된 땅에 내려진다(3절). 완전히 황폐하게될 것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전쟁과 기근으로 황폐하게 되어 골짜기들이 슬퍼할 것이다. 땅의 과실의 황폐가 너무나 커서 공중의 새도 주워먹을 것이 없을 것이다.
(4) 명령이 내려진다(4절). 아무사람이든지 다투지도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이는 어떤 희망이 있는한 우리는 죄인들을 책망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들이 죄가운데서 너무 완악해짐으로 그들과 관계하거나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때가 있다.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같이 되었음이니라. 목회자의 책망은 저들의 개선을 위한 하나님의 규례로, 이 책망에 반발하는 자들은 또한 형제의 책망의 유익을 상실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유다왕 요아스의 후대의 악함과 스가랴를 돌로 친 요아스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듯싶다(대하 24:21). "그러므로 너희가 책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때문에 너희는 낮에 걸려 넘어질 것이며, 너희에게 아첨한 거짓 선지자인 그 선지자는 밤에 너희와 함께 거치리라. 그리고 밤의 어둠이 환난에서 너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며, 낮의 빛도 너를 돕지 못하리라." 자녀들은 자기들이 위험에 빠지게 될때 어머니가 자기들을 도우리라고 생각했는가?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등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사방에 대하여 마치 어머니와 같은 성읍이었다. 그것은 모두 잠잠하게될 것이다.
Ⅱ. 백성과 제사장의 죄 4:6-11
(1)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다투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것은 당연했다(6절). 빛에 저항하는 자들은 어둠에서 멸망하는 것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또한 그것은 제사장의 책임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지식을 가르칠 책임이 있었지만(전 12:9) 그들은 가르치지 않았다.
(2) 제사장들과 백성들 모두가 지식을 거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실 것은 당연하다. 그 백성이 배우지 않고 제사장들이 가르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에게 빛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빛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렸으며, 또한 하나님의 법에 대한 기억을 그들의 후손에게 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고 그 백성의 자녀 곧 그들의 자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면 제사장들의 자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계승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삼상 2:20).
(4)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7절). 인구가 증가하고 부, 권세, 위엄이 증가한 것은 그들에게 명예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나라의 시작은 작았지만, 이제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번성한만큼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범죄하였다. 그들의 부, 명예, 권세는 그들로 죄를 더욱 대담하게 범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5)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먹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허락된 부양물을 남용하였다(8절).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백성의 죄악에 두었다. 즉 백성이 죄악을 범할때 그들은 기뻐하였다. 이는 백성들로 죄에 대한 속죄로써 제물을 가져와야할 의무를 지게하기 위해서였으며 따라서 제사장들은 그들의 몫을 받게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부양을 위해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거절하실 것이다(10절).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즉 그들은 제물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크게 풍족하다하더라도 그것에서 아무런 만족을 얻지못할 것이다.
(6) 그들은 번성하면 할수록 더많은 죄를 범하였다(7절). 그러므로 그들이 음행을 범한다하더라도, 즉 그들이 백성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가장 사악한 방법을 취한다하더라도 그들은 수효가 더하지못할 것이다.
(7) 백성과 제사장들은 모두 죄에 있어서 똑같이 강퍅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똑같이 형벌에 참여해야 마땅할 것이다(9절).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8)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붙잡기위해 관능적인 즐거움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11절). 음행과 포도주와 새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Ⅲ. 죄와 그 결과에 대한 경고 4:12-19
(1)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묘사되고 있다.
1) 영적인 음행 또는 우상숭배 : 그들은 그들가운데 음행의 영, 곧 그 죄로 향하는 강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15절) 이스라엘은 행음하였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행동은 마치 창녀의 행동과 같이 방종하고 염치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뒷걸음치지는 암소처럼, 길들지 않은 암소처럼(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또는 패역하거나 다루기 힘든 암소처럼(다른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고삐풀린 암소가 초원을 미친듯이 달리는 것처럼 행하였다. 또한 멍에 맨 암소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멍에에서 목을 빼고 밭고랑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았다(본문은 오히려 이것을 언급하려는것 같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제어하기 힘들고, 다루기 어려우며, 어거하기 힘들었다. 내 백성은 우상, 곧 그들의 나무 신에게 물었다. '그들은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였다'(렘 2:27). (이것은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화살로 점을 친것처럼 나무조각이나 막대기로 점을 치는 사악한 방법을 가리키는 것인듯 싶다, 겔 21:21). 그들은 그것들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양 그것들에게 제물을 바쳤다(13절). 이는 신들에게 보상하고 또 그 신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신들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 신들에게 분향을 하였다. 그들은 산꼭대기와 언덕위에 장소를 택하였는데, 이는 높은 장소는 그들이 하늘로 접근하는데 그들에게 어떤 이득을 준다고 바보스럽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 장소를 택하였는데, 이는 그 그늘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은 녹음은 두려운 마음을 갖게하므로 예배를 드리기에 좋은 장소라고 상상하였다.
2) 육체적 간음 : 저희가 행음하기를 마지 아니하며(18절). 그들은 음란을 업으로 삼았다. 그들의 거짓 신들은 그들을 음란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그들이 숭배한 마귀는 비록 영이기는 하지만 음란한 영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마찬가지의 더러운 정욕에 내버려두셨다.
3) 공의의 악용(18절) :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느니라. 즉 그들은 뇌물을 사랑하고, 그것이 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한다. 정당하게 행해지는 공의는 목마른 자에게 음료처럼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정의가 왜곡되고, 지배자들이 보수를 받고 죄인을 방면하거나 무리한 자를 정죄할경우 그 마시는 것은 시게 된다.
(2) 그들의 죄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진노를 나타내신다. "내가 너희 딸들을 벌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그들이 죄로인하여 벌받지 않음으로 계속 범죄하려할 것이다. 어떤 죄인을 형벌하지 않음으로해서 때때로 다른 사람이 벌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잠시동안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번성은 그들을 멸망케할 것이다(16절). 여호와께서 어린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같이 저희를 먹이시겠느냐. 그러나 살육을 위하여 양을 먹임같이 그들 역시 마찬가지의 목적으로 준비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참으로 넓은 땅, 넓은 들에 있는 양처럼 먹게 한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은 먹을 것이 없으며, 적에게 노출된 곳이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그들을 자기 목장에서, 그리고 그의 보호에서 쫓아내실 것이다. "에브라임은 우상과 결탁하여 그들과 사랑에 빠졌으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도다. 그러므로 4절과 17절처럼 그를 홀로있게 해두라. 그리고 아무도 그를 책망하지 말라." 아버지가 자식에게서 상속권을 빼앗기로 결심했을때 더이상 패역한 자식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죄를 불안해 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로인하여 멸망당할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신속히 데려감을 당하고 수치스런 멸망을 당할 것이다(19절).
(3) 이스라엘이 범죄한 비유를 든후에 죄를 범하지 말라고 유다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필요한 주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이었고 수효가 더 많았으며 번성한 나라이었다. 그러나 유다에는 이스라엘보다 더 큰지식의 수단이 있었으며, 성전과 제사장 그리고 다윗가문의 왕이 있었다. 실로는 유다에서 나오게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죄를 범치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보다 유다에게 더많은 것을 기대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더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 이스라엘이 행음한다 할지라도 유다마저 그렇게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세상에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을 하나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길갈로 가지말며, 이는 거기에는 모든 사악함이 있기 때문이다(호 9:15;12:11). 이스라엘은 거기에서 죄를 더하였다(암 4:4). 그리고 동일한 이유때문에 그들은 벧엘로 올라가지 말아야했다. 이는 그 도시가 벧엘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벧아웬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허영의 집"으로 불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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