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백성의 죄 4:1-5

 

(1) 법정이 열리고 주의가 요구된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실때 그들은 기꺼이 들으려고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쟁변하실때 기꺼이 듣고자 하겠는가?

(2) 기소장이 낭독된다. 그것에 의해 전민족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신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의무에 대하여 민족적인 태만죄로 기소되었다. 그 백성은 전혀 정직성에 대한 의식을 가진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의무감이나 어떤 자비심을 갖기나 했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없는 곳에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여기에 돌판에 새겨진 십계명 전부를 범한 극악한 국민적 죄과가 나타나고 있다. 저주, 사위, 살인, 투절, 간음은 셋째, 아홉째, 여섯째, 여덟째, 일곱째 계명을 범한 것이었으며, 그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것이었다(2절). 그들은 강포하였다. 즉 그들은 이성과 양심,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의 모든 한계를 범하였다. 그들이 이와같이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잇자 그 나라의 각처에서 살인이 자행되었다.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그 많은 피를 흘렸던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3) 선고가 죄악된 땅에 내려진다(3절). 완전히 황폐하게될 것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전쟁과 기근으로 황폐하게 되어 골짜기들이 슬퍼할 것이다. 땅의 과실의 황폐가 너무나 커서 공중의 새도 주워먹을 것이 없을 것이다.

(4) 명령이 내려진다(4절). 아무사람이든지 다투지도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이는 어떤 희망이 있는한 우리는 죄인들을 책망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들이 죄가운데서 너무 완악해짐으로 그들과 관계하거나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때가 있다.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같이 되었음이니라. 목회자의 책망은 저들의 개선을 위한 하나님의 규례로, 이 책망에 반발하는 자들은 또한 형제의 책망의 유익을 상실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유다왕 요아스의 후대의 악함과 스가랴를 돌로 친 요아스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듯싶다(대하 24:21). "그러므로 너희가 책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때문에 너희는 낮에 걸려 넘어질 것이며, 너희에게 아첨한 거짓 선지자인 그 선지자는 밤에 너희와 함께 거치리라. 그리고 밤의 어둠이 환난에서 너를 도와주지 못할 것이며, 낮의 빛도 너를 돕지 못하리라." 자녀들은 자기들이 위험에 빠지게 될때 어머니가 자기들을 도우리라고 생각했는가?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등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사방에 대하여 마치 어머니와 같은 성읍이었다. 그것은 모두 잠잠하게될 것이다.

 

Ⅱ. 백성과 제사장의 죄 4:6-11

 

(1)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다투었다. 그러므로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것은 당연했다(6절). 빛에 저항하는 자들은 어둠에서 멸망하는 것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또한 그것은 제사장의 책임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지식을 가르칠 책임이 있었지만(전 12:9) 그들은 가르치지 않았다.

(2) 제사장들과 백성들 모두가 지식을 거절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실 것은 당연하다. 그 백성이 배우지 않고 제사장들이 가르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에게 빛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빛을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렸으며, 또한 하나님의 법에 대한 기억을 그들의 후손에게 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고 그 백성의 자녀 곧 그들의 자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아니면 제사장들의 자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계승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삼상 2:20).

(4) 그들은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7절). 인구가 증가하고 부, 권세, 위엄이 증가한 것은 그들에게 명예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나라의 시작은 작았지만, 이제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번성한만큼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범죄하였다. 그들의 부, 명예, 권세는 그들로 죄를 더욱 대담하게 범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5)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먹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허락된 부양물을 남용하였다(8절).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백성의 죄악에 두었다. 즉 백성이 죄악을 범할때 그들은 기뻐하였다. 이는 백성들로 죄에 대한 속죄로써 제물을 가져와야할 의무를 지게하기 위해서였으며 따라서 제사장들은 그들의 몫을 받게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부양을 위해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거절하실 것이다(10절).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즉 그들은 제물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크게 풍족하다하더라도 그것에서 아무런 만족을 얻지못할 것이다.

(6) 그들은 번성하면 할수록 더많은 죄를 범하였다(7절). 그러므로 그들이 음행을 범한다하더라도, 즉 그들이 백성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가장 사악한 방법을 취한다하더라도 그들은 수효가 더하지못할 것이다.

(7) 백성과 제사장들은 모두 죄에 있어서 똑같이 강퍅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똑같이 형벌에 참여해야 마땅할 것이다(9절).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8)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붙잡기위해 관능적인 즐거움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11절). 음행과 포도주와 새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Ⅲ. 죄와 그 결과에 대한 경고 4:12-19

 

(1)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묘사되고 있다.

1) 영적인 음행 또는 우상숭배 : 그들은 그들가운데 음행의 영, 곧 그 죄로 향하는 강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15절) 이스라엘은 행음하였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행동은 마치 창녀의 행동과 같이 방종하고 염치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뒷걸음치지는 암소처럼, 길들지 않은 암소처럼(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또는 패역하거나 다루기 힘든 암소처럼(다른학자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고삐풀린 암소가 초원을 미친듯이 달리는 것처럼 행하였다. 또한 멍에 맨 암소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멍에에서 목을 빼고 밭고랑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 같았다(본문은 오히려 이것을 언급하려는것 같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제어하기 힘들고, 다루기 어려우며, 어거하기 힘들었다. 내 백성은 우상, 곧 그들의 나무 신에게 물었다. '그들은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였다'(렘 2:27). (이것은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화살로 점을 친것처럼 나무조각이나 막대기로 점을 치는 사악한 방법을 가리키는 것인듯 싶다, 겔 21:21). 그들은 그것들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양 그것들에게 제물을 바쳤다(13절). 이는 신들에게 보상하고 또 그 신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신들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 신들에게 분향을 하였다. 그들은 산꼭대기와 언덕위에 장소를 택하였는데, 이는 높은 장소는 그들이 하늘로 접근하는데 그들에게 어떤 이득을 준다고 바보스럽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 장소를 택하였는데, 이는 그 그늘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깊은 녹음은 두려운 마음을 갖게하므로 예배를 드리기에 좋은 장소라고 상상하였다.

2) 육체적 간음 : 저희가 행음하기를 마지 아니하며(18절). 그들은 음란을 업으로 삼았다. 그들의 거짓 신들은 그들을 음란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그들이 숭배한 마귀는 비록 영이기는 하지만 음란한 영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마찬가지의 더러운 정욕에 내버려두셨다.

3) 공의의 악용(18절) : 그 방백들은 수치를 기뻐하느니라. 즉 그들은 뇌물을 사랑하고, 그것이 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한다. 정당하게 행해지는 공의는 목마른 자에게 음료처럼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정의가 왜곡되고, 지배자들이 보수를 받고 죄인을 방면하거나 무리한 자를 정죄할경우 그 마시는 것은 시게 된다.

(2) 그들의 죄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진노를 나타내신다. "내가 너희 딸들을 벌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그들이 죄로인하여 벌받지 않음으로 계속 범죄하려할 것이다. 어떤 죄인을 형벌하지 않음으로해서 때때로 다른 사람이 벌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잠시동안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번성은 그들을 멸망케할 것이다(16절). 여호와께서 어린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같이 저희를 먹이시겠느냐. 그러나 살육을 위하여 양을 먹임같이 그들 역시 마찬가지의 목적으로 준비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참으로 넓은 땅, 넓은 들에 있는 양처럼 먹게 한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곳은 먹을 것이 없으며, 적에게 노출된 곳이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그들을 자기 목장에서, 그리고 그의 보호에서 쫓아내실 것이다. "에브라임은 우상과 결탁하여 그들과 사랑에 빠졌으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겼도다. 그러므로 4절과 17절처럼 그를 홀로있게 해두라. 그리고 아무도 그를 책망하지 말라." 아버지가 자식에게서 상속권을 빼앗기로 결심했을때 더이상 패역한 자식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죄를 불안해 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죄로인하여 멸망당할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신속히 데려감을 당하고 수치스런 멸망을 당할 것이다(19절).

(3) 이스라엘이 범죄한 비유를 든후에 죄를 범하지 말라고 유다에게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필요한 주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이었고 수효가 더 많았으며 번성한 나라이었다. 그러나 유다에는 이스라엘보다 더 큰지식의 수단이 있었으며, 성전과 제사장 그리고 다윗가문의 왕이 있었다. 실로는 유다에서 나오게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죄를 범치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보다 유다에게 더많은 것을 기대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더많은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 이스라엘이 행음한다 할지라도 유다마저 그렇게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세상에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을 하나도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길갈로 가지말며, 이는 거기에는 모든 사악함이 있기 때문이다(호 9:15;12:11). 이스라엘은 거기에서 죄를 더하였다(암 4:4). 그리고 동일한 이유때문에 그들은 벧엘로 올라가지 말아야했다. 이는 그 도시가 벧엘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벧아웬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허영의 집"으로 불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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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스라엘의 결국 3:1-5

 

어떤학자는 선지자와 결혼한 음녀가 열지파를 나타내듯이(호 1:3), 본장은 두지파인 유다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열지파였으므로 이 비유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로 이해해야하는 것이 합당한것 같다.

(1) 이 비유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이스라엘의 악함을 관찰할수 있다(1절). 이스라엘은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여인'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의 경우와 같다. 그들이 우상에게 무릎꿇는 것을 삼갔다할지라도 그들의 눈엔 영적인 음행이 가득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술병을 사랑했다. 그들은 희희낙낙하며 술에 만취되어 지냈기때문에 우상숭배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우상숭배와 육욕은 대개 붙어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악함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치게 하지는 못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이 그렇다. 그것은 사랑없는 자에 대한 사랑이다. 또한 사랑을 수없이 빼앗긴 자들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그들을 낮추신다(2절). 내가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즉 2:14절과 같이, "내가 저를 저의 첫 남편에게로 돌아오도록 설득하였노라." 그러나 선지자가 저를 사기위하여 가져온 선물은 매우 적은 것이었다. 이와같이 그녀는 적은 액수로까지 낮추어짐으로 저의 교만에 대한 벌을 받았다. 이것은 이 여인을 매우 천하게 보이도록 했다. 여기서 선지자는 자기 아내를 은 열다섯개라는 적은 액수를 가지고 방문하였다. 그때는 저의 남편이 보기에 저가 처음 상태요 회복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된 때였다. 이 여인은 또한 곡물로 보리 한호멜 반을 갖게될 것인데, 그것은 이 여인이 충분히 겸손해질때까지 기대해야할 전부이다. 하나님은 전에 한번 이스라엘의 몸값을 애굽에게 지불하셨었다(사 43:3,4).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행음하러 가버린 이상, 그들을 위해 은 열다섯개만 주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불의로 말미암아 그만큼 가치를 상실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기꺼이 제안하신 새로운 협정을 보라(3절). 그들은 하나님께 백성이 되어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수치를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즉 "너는 홀로되어 슬픔중에 있는 과부처럼, 나를 위하여 많은 날동안 고독과 침묵가운데 거해야 할지니라." 그들은 그들의 장식품을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행하실 것인가를 알기위해 인내와 복종가운데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범한 죄때문에 우리 스스로 수치를 당하고, 또 그것들로 인하여 징계를 받으면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안에서 더이상 범죄하지 않겠다고 결심할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포로된 땅에서 그 나라의 우상을 경배하도록 유혹을 받았을 것이며, 그것은 많은 날들동안 그들에게 오랜 시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너의 근본을 지키고, 너의 순결을 철저히 보존한다면, 즉 이 모든 일이 너에게 임할때 네가 이방신에게 네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받을 자격을 얻게되리라."

(2) 마지막 두구절에서 우리는 그 비유의 해석과 이스라엘에게 그 비유가 적용되는 것을 볼수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동안 왕도 없고 군도...없이 지내다가. 이러한 형편에 있는 나라는 과부라 불리워도 지당할 것이다.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상 또는 기둥, 이 단어는 야곱이 세운 기둥에 사용되었다. 창 28:18;31:45;35:20),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낼 것이다. 즉 그들은 포로중에 국가나 교회의 모습을 갖추지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에봇이나 드라빔도 없을 것이다. 즉 합법적인 제사직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이 포로로 있을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비록 회당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성전예배가 없는 오늘날 흩어진 유대인들의 상황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오랜기간 후에 다시 아내로서 받아들여질 것이다(5절). 그후에.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혹은 그들이 이 연단을 통과하였을때 그들은 되돌아올 것이다. 갈대아 주석은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예배를 구하게될 것이며 그들의 왕, 다윗의 아들 메시야께 복종할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이것을 예레미야 30:9;에스겔 34:23;37:25절과 비교하라.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선하심을 경외할 것이다. 혹자는 여기서 그의 선하심을 성전으로 해석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성전을 바라볼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이 버린 것이 세가지였다고 말한다. 즉 천국, 다윗의 집, 성전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속성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자신의 영광으로 나타내셨으며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경외해야할 여호와의 위대하심이며 아울러 그의 선하심이다. 즉 그의 엄위하심이며, 그의 자비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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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스라엘 죄에 대한 심판 2:1-5

 

혹자는 본장의 첫마디를 앞장의 끝맺음말로 삼는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그들의 머리로 정하게 되면 "그들을 암미와 루하마라 하라. 그들을 다시 그렇게 부르라. 왜냐하면 그들이 더이상 로암미와 로루하마의 책망과 운명아래 있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들은 이제 다시 나의 백성이 될 것이며, 긍휼을 얻을 것이라." 형제와 자매(1절)의 어미(2절)는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곧 이것은 열지파의 교회이며 특별한 의미에서의 우두머리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마치 어미로 말미암아 형제, 자매가 양육받듯이 나머지 무리들이 그들로 말미암아 양육받고 부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자기 어미와 쟁론할 자녀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다음 둘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그들중에 있으면서 시대의 불의와 싸우고 진리를 증언한 경건한 자들이다. 곧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았던 자들은 바알에게 무릎꿇었던 자들과 사리를 따지라는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둘째 그들중에 있으면서 시대의 재난에 동참하여 수난을 당한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책임을 그분께 전가하지 말아야한다. 아니, 그들의 쟁론하여야할 자는 그들의 어머니다. 그녀에게 비난해야 한다. 비난받아야할 자는 그들의 어머니이다(참조. 사 50:1).

(1) 그들은 그녀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와 하나님이 그녀에게 베푼 사랑을 상기하여야 했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와 자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비의 그릇인 암미와 루하마였었다는 것을 말하여야 한다.

(2) 그들은 그녀와 하나님 사이의 혼인계약을 파기한 것에 대해 그녀를 책망해야 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즉 영적인 음행으로 말미암아 그녀가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되었음을 그녀에게 말하여야 했다(2절). 그들은 그녀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5절). "저희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 회중은 거짓 선지자들의 부추김을 받아 우상을 쫓아섬겼도다."

(3) 그들은 그녀의 시혜자인 하나님께 그녀가 감사치 않은 것을 책망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가 그녀에게 베푼 은총의 영광을 그녀는 우상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5절). 반대로 받은 것이 무엇이든간에 그녀는 "나는 나의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겠노라. 왜냐하면 그들이 나에게 떡과 물, 곧 몸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것은 주었으며, 몸에 필요한 의복을 주었으며, 즐거운 것들 곧 기름과 마실 것, 포도주와 독한 술울 주었기 때문이라." 우상숭배자들은 세레스(Ceres)를 곡식의 여신으로 삼고, 박카스(Bacchus)를 주신으로 삼았다. 그리고 나서 어리석게도 그들에게 좋은 땅을 주시고 그땅에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저들에게 곡식과 포도주를 얻었다고 생각하였다.

(4) 만일 이 여인이 음행을 고집한다면 하나님께서 이 여인과 관계를 끊으실 것이다(2절). 그 여인이 개선할수도 있음을 그 여인에게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진정한 참회자는 공공연한 죄와 은밀한 죄를 모두 버릴 것이다. 그들은 외적인 죄를 지을 기회를 피하고, 그러한 내적 성향을 억제할 것이다.

(5) 그들은 만일 그녀가 회개하지도 고치지도 않는다면 그 죄의 결과로 틀림없이 있게될 완전한 멸망을 그녀에게 보여주어야 했다(3절). 그녀는 굶주릴 것이며, 그녀의 명예, 위로, 필수품을 빼앗길 것이다. 그녀는 기근을 당할 것이며, 광야와 마른 땅처럼 될 것이고, 목말라 죽게될 것이다. 혹자는 그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내가 저를 때때로 갈증으로 죽을 뻔하였던 광야에 있었을때 같이 만들 것이며, 마른 땅에 있었을때 같이 만들리라, 내가 저를 그 나던 날과 같게 하리라."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처음 민족으로 결성된 것은 막막하고 황량한 광야에서였기 때문이다.

 

Ⅱ. 심판의 경고 2:6-13

 

(1) 그들은 당황하게 되고, 그들의 계획은 혼란에 빠질 것이며, 그들의 기대는 무너지게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6,7절에 경고되어졌다. 그러나 이 경고에는 그것이 그들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도록 하기위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 첨가되어 있다.

1) 하나님께서 어려움과 혼란을 일으키실 것이다.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즉 "내가 내 동료를 쫓으며, 외국 세력과 동맹하고 저들을 의지할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의 이 계획은 좌절될 것이며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전혀 찾지못하는 여행자와 같이될 것이다.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녀는 앗수르와 애굽에 관심을 일으켜 그들을 보호자로 삼고자 노력하지만 목적을 이루지못할 것이다. 이것은 발람이 받은 것과 같은 그러한 자비이다. 그때 천사는 발람이 지나가려는 길에 서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나아가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민 22:22). 악한 길위에 있는 방해물과 장애물은 큰축복이다. 그 장애물은 우리로 악한 길을 가지않도록 막아주며 죄의 길로 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하나님의 울타리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에서 일으키시는 이러한 어려움은 그들의 마음에 돌이킬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 타락한 배반자에게서 다음 두가지 사실을 끄집어 낼수 있다.

① 그들이 배반한 어리석음에 대해 정당하게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② 그들의 의무에게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는 선한 의도이다.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다시 받아줄 것이라는 것을 아무 의심없이 말할정도로 남편의 선함과 도량을 너무나 잘알고 있다.

(2) 생활의 필수품과 위안물을 그들에게서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들로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했기 때문이다(8,9절).

1) 하나님은 매우 은혜롭게 그들에게 부요함을 베풀어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곡식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은과 금을 더하여 주셨다. 그것으로 그들은 다른나라와 교역을 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덮도록 그들에게 양털과 삼도 주셨다(겔 16:10).

2) 그들은 매우 비열하게 그들의 풍요를 남용했다.

① 그들은 자기들에게 그러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였다. "내가 저에게 곡식과 포도주를 주었거늘 저가 알지 못하였도다." 즉 저가 그것을 기억지 아니하였다.

②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그의 대적을 섬기며 공경했다. 즉 그들이 그것들을 바알을 위하여 썼다. 그들은 금과 은을 가지고 신상을 장식했고(렘 10:4), 우상숭배를 위해 자신을 장식했다(13절).

3)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그들의 풍요를 취하심은 매우 합당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도로찾으며. 즉 "내가 저희를 이전과는 달리 취급하며 다른방도를 취할 것이라. 그리고 내가 저에게 준 나의 곡식과 다른 좋은 것들을 도로찾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비를 남용하여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한 자들은 그 자비를 오래 누릴 것이라고 기대할수 없다.

(3) 그들은 그들의 모든 명예를 잃을 것이며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10절). "내가 그 수치를 드러낼 것이며 은밀한 악을 밝히 드러내어 부끄러움이 되게할 것이라. 이것이 그 연애하는 자의 눈앞에, 즉 저가 동맹을 구하고 의지하던 인근나라들의 눈앞에 드러날 것이라. 그들은 더이상 저와 사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의 손에 내맡기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그의 공의의 손에서 구원받을수 없을 것이다.

(4) 그들은 그들의 모든 희락을 상실할 것이며 우울하게될 것이다(11절). "내가 저에게서 희락을 그치게 하리라."

1)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희락의 기회, 즉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빼앗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경건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으며, 기쁨으로 지키도록 하셨다. 그들이 이 절기를 지키긴 했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지킨 것이 아니었다. 즉 그들은 그곳을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고, 송아지우상이 있던 단과 벧엘에서 예배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경건의 능력을 상실했으며 단지 세속적인 마음을 즐겁게 하기위하여 경건의 모양만을 유지하였다. 따라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월삭과 안식일은 하나님께 참으실수 없는 불의가 되었다(사 1:13).

2) 하나님은 이러한 의식을 위한 공급을 끊으실 것이다(12절). "내가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폐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광풍으로 시들게 하시거나 나라를 황폐시킬 외국 적군을 들어오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포도밭으로 수풀이 되게할 것이다. 담이 무너져 들짐승들이 그들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모든 희락을 폐하실 것이다. "내가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폐하며 저의 관능적 쾌락을 취하리라. 그후에야 저가 진실로 자신이 망한 것을 생각할 것이라." 이것은 저의 우상숭배에 대한 형벌이 될 것이다(13절).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이란 곧 그들이 우상을 경배하며 지킨 엄숙한 축제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날들은 저가 우상에게 향을 사르고 귀고리와 패물로 자신을 장식하던 날로써 이렇게함은 저가 바알에게 나타낸 존경을 더크게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Ⅲ. 축복의 약속 2:14-23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제재를 받은 이스라엘의 상태가 여기에서는 밝고 즐겁게 나타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약속이 이와같이 경고에 바로 뒤이어 나온다는 것이다. '저가 나를 잊어버리고'라고 언급했을때, "그러므로 내가 저를 버리고 결코 더이상 돌보지 않으리라"는 말이 뒤따라 나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자비의 방법은 우리보다 무한히 높다(사 57:17,18). 저가 하나님의 진노의 위협으로도 삼가지 않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자비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의 여부를 시험하실 것이다. 어떤학자는 그것을 "그후에 또는 그럼에도불구하고 내가 저를 개유하리라"는 말로 번역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자에게 값없는 은혜를 증대시키는 것은 그들을 순전히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1) 비록 그때 이스라엘이 거의 절망에 처해있었지만 위로와 소망으로 소생하게될 것이다(14,15절). 3절 말씀은 태어날 당시 그 백성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묘사하고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처음 형성되었을때처럼 사랑과 자비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새롭게 형성될 것이다. 그가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냈을때처럼 그들을 거친들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들의 포로된 땅은 그때 광야와 같이 그들에게 환난의 풀무가 될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셨을때 그는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였다. 그것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여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다(신 8:2,3,15,16). 하나님은 다시 그렇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자하는 자들을 처음엔 고독하고 한적한 거친 들로 데려가신다. 그것은 그들로 이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더욱 자유롭게 대화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때때로 외부의 곤경과 고통에 빠짐으로, 교환하시고자하는 말씀에 귀기울여 듣도록하기 위해서이다. 그때 그는 그들을 개유하여 위로의 말씀을 하실 것이며, 그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실 것이다. 즉 그는 말씀과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돌이키도록 하실 것이다. "내가 내종 선지자의 손을 통하여 저의 마음에 위로의 말을 할 것이라." 갈대아 주석은 그와같이 해석한다. 이것은 복음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제안을 가리킨다. 그것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개유받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안식의 약속에 의해 그의 멍에를 지도록 부름받았다. 그리고 개심의 역사는 죄의 자각에 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위로의 말씀에 의하여 촉진될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저에게 고난을 주고, 자기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보도록 이끈 그때에, 그리고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복을 베푸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에 저의 포도원을 거칠게 하셨지만(12절) 이제는 저에게 포도원 전체를 주어 저에게 보상하실 것이다. 저는 생계를 위해 곡식을 받을뿐만 아니라 기쁨을 위해 포도원도 받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복음의 특권과 위로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를 의지하여 거친들에서 올라오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아 8:5). 그는 저에게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주실 것이다. 아골 골짜기는 아간이 돌에 맞아 죽은 곳으로 "괴로움의 골짜기"란 의미이다. 왜냐하면 아간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거기서 하나님은 자비로 자기 백성에게 돌아오시고 그들이 의무로 하나님께 돌아올때, 그것은 그들에게 어떤 행복한 징조가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중에서 저주받은 물건을 제거하고, 그들의 진을 괴롭힌 아간을 돌로 쳐서 죄를 억제한다면 그들 내부에 있는 적을 진압함으로써 그들은 곧 가나안 열왕에 대해 승리할수 있다는 보증을 얻은 것이 되는 것이다.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때와... 같이 하리라. 이것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에서 노래한 예언적인 승전가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출 15:1). 그들이 사로잡힌데서 구출될때, 그들은 그 노래를 다시 부를 것이며, 그들에게 그것은 새노래가 될 것이다.

(2) 그들이 전에는 바알숭배에 탐닉하였었지만 이제는 모든 우상의 형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충실히 섬겨야 했다(16,17절). 바알들의 이름이 그들의 입에서 제하여질 것이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마땅히 품고있어야할 모든 육체적인 정욕에 대한 혐오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엡 5:3).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전에 사랑하던 죄악을 미워하게 함으로 말조차 변화시킬 것이다. 바알이란 말은 그말의 순수한 의미에 있어서조차 사용하지 않게될 것이다.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이 두 명칭은 모두 '내 남편'을 의미하며 똑같이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어 왔었다.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54:5). 즉 네 바알, 네 후원자이며 보호자시라는 말이다.

(3) 그들이 전에는 마치 피조물이 그들과 대항하여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고난가운데 있었지만 이제는 마치 그들이 전 피조물과 우호동맹을 맺기라도 한것처럼 완전한 평화와 평온을 누릴 것이다(18절). 전에 들짐승들이 그들의 포도원을 먹어 그들에게 해를 입혔던 것처럼 보다 열등한 피조물이 그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12절). 하나님께서는 들짐승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드실수 있으며(그는 그렇게 약속하셨다, 사43:20), 자기백성을 위로하는데 사용하실수도 있다. 그리고 동물들을 학대하지 않는것 또한 우리가 이행해야할 언약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더 위험이 되는 것은 야수가 아니라 인간 서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나아가서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적을 무장해제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또 이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18절). 하나님은 자기를 기쁘시게 하는 자들을 위해 그 일을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잠 16:7). 이것은 복음시대에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사 2:4)라는 약속과 일치한다.

(4) 하나님이 그들의 음행을 인하여 그들에게 이혼증서를 주셨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할경우, 하나님은 다시 그들과 혼인언약을 맺어 맞이하실 것이다(19,20절).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하나님은 이 말씀을 거듭 세번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신실하게 헌신한 모든 사람들은 그와 혼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것이다. 언약 그 자체는 신성하여 깨뜨려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편에서 위반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그것을 깨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면 그것에 대한 축복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의로 그 언약을 다시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아니라. 공변됨으로 그것을 하겠노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은총과 긍휼히여김으로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을 맺으심에 있어서 인자하고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그 언약은 그들의 연약함을 긍휼히 생각하심으로 세운 은혜의 언약이 될 것이다.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느때보다 더 충분히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약속일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에게 자신을 아는 마음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알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알도록 하나님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5) 전에 하늘은 그들에게 놋과 같고 땅은 철과 같았지만 이제 하늘은 이슬을 내고 그 이슬로 말미암아 땅은 소산을 낼 것이다(21,22절). 곡식과 포도주에 대한 이 약속은 또한 영적인 의미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즉 그것은 영혼과 관계된 축복과 은혜의 유출인데, 그것은 여기에서 하늘의 이슬, 땅의 기름짐과 같은 세속적 축복의 온유적인 표현으로 약속되어 졌다. 그것은 야곱의 축복에서와 같이 첫번째로 나타나고 있다(창 27:28). 하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구름의 열쇠를 가진 분이 구름을 열고 그 뚜껑을 열지않으면 비는 내리지 않으리라. 따라서 만일 하나님이 너희를 돕지않으시면 우리는 어쩔 수가 없노라."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 그들의 말을 주목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은 하늘에 귀를 귀울일 것이고 '하늘에 응할 것이다.' 그리고나면 하늘은 땅에 귀를 기울이고 '땅에 응할 것이다.' 그리고 때에 알맞는 비를 땅위에 부어줄 것이다. 여기서 사슬처럼 긴밀히 연결된 자연의 상호연관성을 보라. 그리고 그들이 모두 제1원인인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보라.

(6) 그들이 지금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하나님은 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실 것이다. "내가 저를 위하여 땅에 물을 댈뿐만 아니라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을 것이라. 그는 밭에 심기우는 씨앗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어디로 흩어지든지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 좋은 씨앗은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라. 내가 나에게 저를 심으리라." 세계 도처에서 기독교가 발판을 굳히는 가운데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

(7)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께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와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자)였지만 이제 그들은 그의 은총을 받을 것이다(23절).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얻지못했던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지옥 이편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백성이라 내가 내 백성을 받아들이고 축복하리라." 그때 그들은 말할 것이다. "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섬기며 경배하고, 주께 영원히 영광을 돌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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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주제 1:1

 

(1) 선지자의이름이 그의 예언에 앞서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호세아(Hosea, 또는 Hoshea)인데, 여호수아와 원명에 있어 동일하게 구원을 의미한다. 그의 성은 벤브에리 즉 브에리집안의 아들이었다. 브에리는 "우물"을 뜻하는 말로 그것은 우리에게 생수를 생각나게 한다. 이는 거기에서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나올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 그에게 권위와 위임이 주어졌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말하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구약 정경가운데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사실은 신약 성경에서 인용된 것으로 인하여 확증되었다(마 2:14;9:13;12:7;롬 9:25,26;벧전 2:10).

(3) 본문에는 그가 예언한 그 시대에 대하여 특별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왕이 된 시대. 이는 그 당시 호세아가 예언한 시대의 통치자들에 대한 설명으로 곧 그가 오랜기간동안 예언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즉, 그는 어릴때부터 시작하여 매우 연로해지기까지 계속해서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호세아와 오래같이 있게됨에 따라서 그를 더욱 덜 존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그가 젊었던 초창기 때뿐만 아니라 연로하게 된후에도 그를 멸시하였다. 이 왕들중에 그에게 용기를 준 선한 왕이 있었던 반면에, 악하여 그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낙담케한 왕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동일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번영할때에 즉 여로보암2세때에 예언하기 시작하였다(왕하 14:25). 그러나 그때 호세아는 담대하게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Ⅱ. 하나님께 받은 명령 1:2-7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이 말은 다음 두가지 중 어느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첫째, 세움을 받은 영광스러운 일련의 선지자들이 있음을 가리킨다. 이 무렵 요엘, 미가, 요나, 오바댜,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세아는 그들중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첫번째 선지자였다.

둘째, 호세아 자신의 예언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이 백성에게 보내어주신 첫번째 메시지인데, 그들에게 그들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말하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이 권위와 그들의 사랑을 받기까지 그런 임무를 면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와같은 사명으로 출발하여야 했다. 이는 그들로 여호와의 선지자로부터 무엇을 기대할수 있는가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선지자는 마치 거울로 비추듯이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주어야 한다. 선지자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명령을 받는다(2절). 그래서 그는 그와같이 했다(3절). 그는 평판이 좋지못한 여인인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그 여자는 독신으로 지내면서 수치스럽게 살았다. 그러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제사장들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것은 죄가 되지는 않았지만 호세아에게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그것이 환상속에서 행해졌거나 단지 비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야 했으며, 또한 비록 혼인관계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음행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미심쩍어 할만한 자식을 낳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호세아야 음란한 아내, 음란한 자식이 너에게 그러하듯이, 이 백성이 나에게 수치, 근심, 그리고 고민이 되었느니라." 이 나라가 크게 행음함이니라. 그들이 특히 여기서 문책받고 있는 음행은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악하고 큰 음행이며,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이다. '이 나라가 행음함이니라.' 나라 전체가 그것으로 감염되었다. 거룩한 하나님께 그러한 백성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모욕된 일이겠는가? 이들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그의 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백성이었다. 그것은 마치 유명한 창기인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선지자 호세아가 결혼한 것과 같다. 이스라엘 나라는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같았다. 고멜은 부패를 의미하며, 디블라임은 두개의 과자, 또는 무화과 덩어리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가까웠다는 것과 그들의 사치와 육적욕망이 그것을 유발시켰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죄가 풍요의 딸이며, 파멸이 무절제한 낭비의 딸인 것을 의미한다.

(2) 선지자는 마치 망원경을 통하여 보듯이 그들의 멸망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음녀에게서 태어난 자녀에게 지어준 이름을 통하여 파멸을 예고한다.

1) 선지자는 첫아들에게 정해준 이름으로 왕족의 멸망을 예고한다. 그 이름은 이스르엘이라 하라(4절).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자손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흩어진 자를 의미한다. "그들을 주권을 뜻하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말고 분산을 의미하는 이스르엘이라고 부르라."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리라. 그 피는 예후가 모든 바알숭배자들과 함께 아합의 집을 멸망시킬때 흘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한 일을 시인하셨다(왕하 10:3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의 가문에 대하여 약속된 기간이 끝나자 예후의 집에 그 피를 갚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합의 집에 내린 것은 의로운 판결을 실행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보응되었다. 그러나 예후는 의로운 방법으로 하지않았다. 그는 죄인들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행하였을뿐 죄에 대한 어떤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금송아지 숭배를 계속했기 때문이다(왕하 10:31).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과 셈하게 되셨을때, 회계의 첫항목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피라고 칭한 아합 집의 피에 대한 것이다. 혹자는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리라'는 말이 그 피흘린 것에 대한 복수를 의미하지 않고 그 피흘림의 반복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즉 '내가 아합의 집을 벌했듯이 예후의 집을 벌할 것이라." 예후의 집의 마지막왕 스가랴의 사후에 이스라엘은 쇠망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경고가 주어졌다.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5절). 활을 꺾는다는 것은 쇠잔하여 파멸된 권세를 암시한다.

2) 선지자는 그가 둘째 아이에게 준 이름에서 전민족을 하나님이 버리실 것을 예언한다. "이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하라." 이 말은 사랑받지 못한 자(롬 9:25), 또는 긍휼을 얻지 못한 자(벧전 2:10)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자비를 보이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모욕하여 잃어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지만, 고치기를 싫어하는 백성에게 항상 참으시지는 않을 것이다.

(3) 선지자는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시는 동시에 유다족속을 위하여 쌓아두신 자비가 어떠한가를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7절). 그러나 내가 유다족속을 긍휼히 여겨. 앗수르 군대는 사마리아를 멸망시키고 열지파를 포로로 잡아간 후에,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족속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어느날 밤에 앗수르 진영에서 천사들을 보내 살육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때 그들은 칼이나 활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것은 또한 우상숭배에서 유다가 구원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그들로 다른 구원을 받게하는 자격과 준비가 되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 왕국은 호세아 아래서 완전히 사라졌고, 유다왕국은 히스기야 아래서 영광스러운 개혁을 하였다. 바벨론에서 역시 하나님은 먼저 우상숭배에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후 포로에서 구원하셨다. 혹자는 이 약속을 큰 구원, 즉 때가 왔을때, 여호와 우리 하나님 즉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Ⅲ. 자비의 약속 1:8-11

 

(1)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이 버림받은 것이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에게서 낳은 다른아이의 이름으로써 예시되었다(8,9절).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혹자는 이 여인이 다른아들을 낳은 것은 곧 백성이 그들의 악행을 고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욕심은 여전히 잉태하여 죄를 낳았다. 그 아이에게 이름이 주어졌다. 그 이름은 로암미라 하라. 즉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더이상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않으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상관치 않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을수 없다고 하는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기둥을 뽑아버리시고 그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신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아니할 것임이니라. 그들이 앗수르 나라로 완전히 붙들려 갔을때, 이 예언은 이스라엘에 성취되었다.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 두지파가 포로되었을 때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셨고 아무약속도 하지 않으셨다.

(2) 멸망후에 때가차면 회복되리라는 것이 예언되어졌다. 전과 같이 여기에서도 진노중에 자비가 기억되었다. 버림받는 것이 전체가 될수 없듯이 마지막이 될수도 없을 것이다(10,11절).

1) 혹자는 바벨론포로에서 유대인이 귀환함으로 이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열지파 중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유다지파에 연합하였으며 포로로 흩어져있었던 여러나라에서 자기 고국으로 돌아와, 스룹바벨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정하고 한민족으로 결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국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대신하여 그들을 그의 자녀로 인정하시고자 하였다.

2) 혹자는 후일 유대인들이 전체적으로 회심하게 되기까지 이 약속은 완전히 성취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3) 이 약속은 그리스도와 왕국이 세워지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 왕국에 함께 참여하게 됨으로써 성취되었다(롬 9:25,26;벧전 2:10). 이 이스라엘은 크게 배가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육체를 따라서는 감소된다할지라도 영적인 이스라엘은 셀수 없이 증가할 것이다. 복음이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와 그 이후에 그리스도께로 들어온 많은 사람을 통해서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계 7:4,9;갈 4:27). 하나님께서는 복음적인 이스라엘과 그의 약속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구약교회를 하나되게 한것만큼 완전한 헌장으로 복음적인 이스라엘을 교회에 하나되게할 것이다. 각기 각 장소에서 버림받는 이방인들과 자기 방에서 배척받은 유대인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열조가 불신앙으로 쫓겨났던 그곳에서 이제는 그 자손들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여지게될 것이다. 특권이 확대되고 있다. 즉 이제는 전처럼 '너희는 내 백성이라'할뿐만 아니라 그 혈통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된 것이다. 그들이 율법아래서는 자녀이었지만, 이제 복음아래서 장성하여 더 큰총명과 자유를 갖게되었다(갈 4:1,2). 신자의 아들됨이 인정될 것이다.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하였다. 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노여움의 징표를 받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징표로 존귀함을 얻게 되었을때, 그것은 더욱 그들을 존귀케 해주었을 것이다. 사이가 나빴던 자들이 서로 기쁘게 돌아올 것이다(11절).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유다와 이스라엘의 이 결합은 단지 세상에 세워질 그리스도의 왕국이 복된 결과에 대한 실례 또는 한 표본으로써 언급되어진 것이다. 첫번째 제자들은 일부 유대인들과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이 믿게 되었을때 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매우 큰 적대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졌다(행 8:14).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식법의 벽이 헐렸다. 에베소서 2:14-16절을 보라.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영적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를 우리의 머리로 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정하심에 동의하는 것이다. 기꺼이 우리 자신을 그의 인도하심과 지배하심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머리로 삼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 수가 많다하더라도 그분안에서 하나이며 또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머리로 정한후에 '그 땅에서부터 올라올 것이다.' 모든 곳에서 온갖 사람들이 올라올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인 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10절에서 동일한 장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변화, 곧 영적으로 그리스도께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지난후에 '이스라엘의 날이 클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씨라 불리우고 있다. 이 씨는 이제 땅에 파종되어 묻힌다. 그러나 큰 날, 곧 추수기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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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9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 본장은 2:14~23절을 연상시키며 지금까지 묘사된 심판주로서의 하나님보다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별히 1절의 '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는 본서의 요절(要節)이 된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저주가 아니라 회개와 회복이었다. 하나님은 굳어 버린 이스라엘의 영성이 회복되고 닫힌 입술에 참회와 찬송이 넘쳐나기를 소원하셨다.
(1~3절)
올바른 회개 - 회개는 결단과 행동이 수반되는 전인격의 변혁이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고백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인간의 지혜와 힘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과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고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겠다는 내용이다(2절). 바로 이와 같은 고백이 삶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3절).
[1절]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매우 적극적인 회개의 촉구이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과 같은 지.정.의적인 회개가 없다면(눅 15:17~20), 참된 구원은 주어질 수 없다. 이 길만이 참 생명을 얻는 길이다.
[2절]
호세아는 수송아지 제물보다 참회하는 입술과 통회하는 심령이 더 합당한 제사임을 밝힌다(시 17:1; 시 119:108; 히 13:15). 이 사실을 깨달았던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고 외쳤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신다(시 34:18).
[3절]
고아란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요 14:18). 우상과 헛된 제물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신다.
(4~9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 - 본문에는 진정한 참회의 심령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실 하나님의 축복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내가 하리니'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사 표시가 거듭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필코 성취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공적인 선언이다. 물론 이 '회복'은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성취되었다.
[4절]
패역이란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그분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패역을 고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13:4).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며(엡 2:8, 9), 스스로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자란 존재하지 않는다(롬 3:10~18). 하나님만이 인간의 궁극적인 치료자가 되신다.
[5절]
이슬과 같으리니. 이슬은 아무도 모르는 시간(밤)에 조용히 내려 만물에게 생기를 제공한다. 이슬의 내림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임한다.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조용한 은혜와 사랑만이 피곤에 지쳐 있는 인간을 소생시킬 수 있다.
[6절]
가지란 '새싹'이나 '새순'을 가리킨다(욥 8:16; 사 53:2). 이스라엘의 멸망이 커다란 나무가 베임을 당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베임을 당한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다(사 6:13). 하나님 안에서는 죽어 버린 영혼과 인격도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시 1:3; 엡 2:1).
[7절]
그늘은 회복된 이스라엘의 거처인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이 그늘 아래에서만 참 평안과 휴식과 결실이 있을 뿐이다(시 91:1). 그 향기. '그의 명성'이란 뜻으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명성과 영광이 유명한 레바논의 극상품 포도주처럼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을 가리킨다(시 112:6; 잠 10:7). 즉 그들은 더 이상 들포도나무가 아니라 극상품 포도가 되어(사 5:2) 하나님께 돌아와 옛날의 영광을 회복하게 된다.
[8절]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타락한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라가며 외치던 말(2:5)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회개하는 심령은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 받들고 우상을 철저히 혐오한다(사 2:17, 18). 즉 삶의 주재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복속시키는 자가 된다(롬 14:7, 8).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이것은 예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시며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음을 가르치신 사실을(요 15:5~8) 회상케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스라엘을 위해 '푸른 잣나무'처럼 축복(사 55:13)과 영광(사 60:13)의 근원이 되실 것을 선언하신다. 특히 나무의 푸르름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영원한 통치를 상징한다.
[9절]
이런 일. 지금까지 호세아 선지자가 증거한 메시지 전부를 가리킨다. 본절은 본서의 결론 중의 결론으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는 노래를 연상케 한다. 한편 생명이 길인 여호와의 도는 죄로 오염된 인간의 총명으로는 알 수 없다(단 12:10).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질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도(길)는 궁극적으로 의인에게는 생명을, 죄인에게는 사망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사 28:16; 요 14:6).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라 칭함 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도에 주의하며(시 119:15), 길 되신 그리스도를 좇는 생활을 매순간 추구해야 할 것이다(눅 9:23).


# 해설

이스라엘의 갱생 (1~9절)

13장에서처럼 범죄하고 심판받았다고 하더라도 1~3절에서처럼 회개하면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다. 4~8절은 회개한 후의 구원을 생명감 넘치는 아름다운 자연에 비추어 노래하여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한편 9절은 호세아를 끝맺는 말로 지금까지 행한 예언을 따르는 자에 대한 축복을 의문 제기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시편 1편을 연상시킨다. 한편 이 부분은 일단 11:12절로부터 시작된 구속사 순환의 종점인 동시에 전체적으로 본서 전체의 종결부이기도 하다.


# 핵심

1~3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고 권고하시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신앙을 고백하기를 촉구하시는 대목이다. 참된 신앙 고백은 죄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하며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다시는 우상을 섬기지 않으려는 결심을 수반한다.


# 묵상

회개 후 복을 받은 이스라엘 (5~8절)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은총을 공급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고 이스라엘이 번영하였으며, 영적 순결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는 한없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며 죄악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 (7절)

하나님의 택함받은 모든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는, 곧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지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신실하게 하나님만을 섬기는 참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돌아온 에브라임의 우상에 대한 태도 (8절)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공의를 깨닫고 돌이킬 때 은혜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한 이스라엘의 고백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죄에서 돌이켰을 때, 자신들의 범죄가 얼마나 가증하며 우상 숭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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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6절)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 - 이스라엘의 죄악이 다시금 열거된다. 즉 영적 교만(1, 6절), 우상 숭배(1, 2절) 외에, 왕이시 하나님(시 10:16)을 버리고 인간을 왕으로 요구한 일(삼상 8:4~20) 등이 견책을 받는다(10, 11절).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배반이었다(16절).
(1~8절)
이스라엘 교만의 결과 - 이스라엘은 번영할 때 교만하게 자신을 높인 결과(1절)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6절),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다(1, 2절). 이로 인해 그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4절)께서 대적자가 되어 가혹한 징계를 내리셨던 것이다(7, 8절).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를 축복하시는 분이다(벧전 5:5).
[1절]
에브라임이...떨었도다. 에브라임 지파는 본래 이스라엘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던 지파였고, 야곱의 예언(창 49:24)처럼 여호수아, 여로보암 1세 등의 지도급 인사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특히 호세아 당시 여로보암 2세 때의 이스라엘은 이방 열국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한편 에브라임으로 대표되던 북이스라엘이 바알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아합 왕 때부터였다(왕상 16:31). 이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 전역을 타락으로 몰아넣었고 끝내 아합 정권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2절]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운 후(왕상 12:28, 29) 여호와 신앙을 대신한 혼합주의가 북이스라엘에 팽배하게 되었다(왕상 19:18).
[3절]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이룩한 번영은 헛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악인들과 그들의 번영을 '바람에 나는 겨'처럼 날려 버린다(욥 21:17, 18; 시 1:4~6; 잠 10:25).
[4절]
네가 애굽 땅에서...여호와라. 이스라엘은 엄밀한 의미에서 출애굽 사건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12:9). 그때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그들의 유일한 구원자로 계시하셨다(신 32:39). '유일한 구원자' 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었다(행 4:12).
[6절]
마음이 교만하며...잊었느니라. 배가 부름으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두렵다는 모세의 우려(신 8:12~14)가 현실로 드러났다. 인간은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찾다가도 평안할 때는 그분을 곧 잊어버린다. 이것은 풍부와 안락에 쉽게 안주해 버리는 악한 본성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굴의 기도(잠 30:7~9)처럼 거짓과 욕심을 멀리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마음의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며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사실(잠 16:18)을 깨달아 부와 가난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견지해야 한다.
[7~8절]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망할 때(왕하 17:3~6)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16절).
(9~16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 임할 심판 -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210년간(B.C.931~722) 19명의 왕이 통치할 만큼 혼란을 거듭했으며 왕이 바뀔 때마다 하나같이 혁명과 살육을 동반했고(7:5), 결국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이 모든 비극의 주요인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했다는 데 있다(9절).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이 부분에서 더욱 고조된다(13, 15, 16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메시지도 잊지 않으셨다(14절).
[10~11절]
이 구절은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구했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삼상 8:4~9). 본래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은 당신이 친히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로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주기를 바라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다(삼상 8:4~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시면서도 왕을 세워 주셨다(11절). 하지만 역사는 어떤 왕도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그들은 권력 쟁취에만 급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폐위되곤 했다(9~16절; 7:5).
[12~13절]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 - 이스라엘의 봉함된 불의와 저장된 죄가 결국 해산의 진통처럼 극도의 고통(심판)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해산이란 궁극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중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사건이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회개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돌아왔다면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 119:71)고 외친 시인의 노래에 동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태아가 산문(産門)에 걸려 고통하는 여인처럼 시련 중에서도 회개하지 못함으로써 징계의 아픔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도들은 회개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막 1:15).
[14절]
속량이란 남에게 복속된 사람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를 구원해 내는 것을 뜻하고, 구속이란 연고자를 통하여 해방과 자유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을 택하신 선택 그 자체를 후회하지 않으신다(롬 11:29). 물론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시지만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는 사람에게는 사망, 재앙, 음부, 멸망을 완전히 제거해 주신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될 구원의 때(고후 6:2)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으로 인도하신다. 특별히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본절을 인용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것을 깨우쳐 준다(고전 15:54, 55).

[16절]

본절은 맛소라 사본(MT)에 14:1절로 되어 있다. 즉 본절은 13장의 결론인 동시에 14장의 서론인 것이다. 이 구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러 오는 앗수르(동풍) 군사들의 무자비함을 보여 준다. 특히 어린아이를 메어치고(10:14),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 것은 교만한 이스라엘(1절)의 최후에 대한 극적 표현으로서, 실제로 행해진 역사적 사건이었다.


# 해설

범죄와 심판 (1~16절)

13장은 주로 범죄와 심판의 상관 관계 내지는 심판의 원인 규명 또는 정당성 주장에 그 강조점이 있다. 특히 4~6절은 12:2~6절과 같이 과거의 은혜를 상기시키며 그 은혜를 저버린 배신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본장은 사실 그 자체보다도 14장과의 연결에서 그 의미가 있다.


# 핵심

1~16절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한 패망이 필연적인 결과임을 증거한다.


# 묵상

이스라엘의 부 (4~6절)

이스라엘이 부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자의적이며 주권적인 행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배은망덕한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심판하신 하나님 (5~8절)

이는 선민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주전 722년 앗수르의 사르곤 2세에 의해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자가 맞이하는 비참한 최후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6절)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실컷 먹고 배부른 다음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셨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으며, 자기 뜻대로 살았기에 결국 이 교만은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첩경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자식인 이스라엘 (13절)

하나님께서 해산하는 여인의 비유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리석은 자식이라 말씀하신 것은, 해산의 때가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산문에서 지체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해산의 때란, 해산의 고통 후 태어날 아기로 인한 기쁨과 환희를 맛보는 때이며, 산모의 힘이 약하거나 태아에게 문제가 있어 분만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이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속량과 구속을 거부함으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멸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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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4절)
거듭된 이스라엘의 범죄 - 전장에 이어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2~6절)와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이 언급된다(1, 7~14절). 이스라엘의 죄목은 하나님보다 이방을 의뢰함(1절), 사회적 부정직(7절), 영적 교만(8절), 선지자들의 경고 무시(10, 13, 14절), 우상 숭배(11절) 등이다.
[1절]
동풍을 따라가서. '동풍'은 아라비아 광야의 열기를 몰고 와 팔레스타인 지경의 식물을 태우고 바다에 풍랑을 조성하여 배를 깨뜨리는 등 아무런 효용 가치가 없는 바람이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한 행위가 덧없는 것이었음을 꼬집는 표현으로 쓰였다. 기름. 두로에까지 수출했던 이스라엘의 특산물로서(겔 27:17), 애굽에 뇌물로 바쳤다.
[2절]
쟁변이란 형벌을 선포하기 전에 책임을 추궁하여 죄를 고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남유다가 에브라임보다 아직 덜 부패한 상태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계속된 경고(4:15)를 무시한다면 유다도 결국 넘어지고 말 것(5:5, 10)이다.
(3~5절)
회개하는 자에게 임할 축복 - 호세아는 야곱이 간교한 인간성과 기만적인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부적합했지만 진실하게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와 축복을 베푸신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인간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으시지만(시 101:5),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시 34:18; 시 51:17).
[3절]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야곱의 탄생 모습은 그의 천부적인 교활함과 과욕을 보여 준 것이다. 이러한 교활함을 통하여 야곱은 장자권과 축복을 쟁취하게 된다(창 25:26).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따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말 1:2; 롬 9:10~13). 이와 같이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선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야곱은 인간의 혈기로 감히 하나님과 힘을 겨루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역전시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개명하시고 그에게 계속될 축복을 암시적으로 허락해 주셨다(창 32:24~32).
[4절]
이기고 울며. 본절은 야곱이 혈기를 청산하고 돌이켜 회개하며 하나님께 축복을 간구한 사실을 칭찬한다. 이스라엘도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와 '울며'(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만 했다.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언약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도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 공히 적용되는(신 5:2, 3), 살아 있는 메시지인 것이다.
[5절]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는 의미는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항상 기억해야 하며 영화롭게 해야 할 이름'이라는 것이다(출 3:15; 시 135:13). 하나님의 이름을 망각하는 것은 곧 그분의 능력과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께서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이름과 행적을 늘 기념할 것을 명하셨다(눅 22:19).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생명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6절]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자에게는 인애와 공의를 지켜 행하는 것(미 6:8)과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마음을 강하게 하여 슬픔과 고통을 참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등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즉 참된 돌이킴은 지난날에 대한 깊은 뉘우침과 개혁의 뚜렷한 의사 및 변화된 생활을 동반해야만 한다.
[7~8절]
거짓 저울로 속여 모은 재산을 가지고도 이스라엘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여 '나는 실로 부자라'고 외친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을 죄로 단정하셨다(레 19:36; 신 25:13~16). 그러나 그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습관적인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다. 죄와 영적 빈곤에 대한 자각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곤고함, 가련함, 가난함과 눈먼 것 그리고 벌거벗음을 알지 못한 라오디게아교회(계 3:1719)와 비슷하다.
[9절]
명절일. 초막절을 가리키는 이날에는 광야에 장막을 치고 7일 동안 지내면서 출애굽의 감격과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회상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은혜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를 일깨우시며 돌이키기를 원하셨다. 한편 이 명절일은 종말론적인 의미에서 성도들이 맞이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축제를 상징한다(계 7:15~17).
[11절]
길르앗과 길갈은 이스라엘의 타락과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서 이들의 어원인 '갈'은 돌무덤(수 7:26; 수 8:29), 또는 폐허가 된 무너기(사 25:2; 사 37:26)를 의미한다. 호세아는 길르앗과 길갈의 제단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될 것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 전체의 멸망을 암시하고 있다.
[12절]
아람 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의식 속에 영적으로 교만했던 이스라엘의 신분이 본래 보잘것없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의 겸손을 촉구했다. 그들의 조상 야곱은 유리하는 나그네에 불과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창대하게 되었다(신 26:5). 그 후손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번성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이었다(창 13:14~16).

[13~14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가나안에 정착하고도 오히려 가나안의 신 몰렉에게 제사하면서 그들의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저질렀다(왕하 17:7). 이러한 범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 아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셨다. 여기서 택한 백성을 향해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합 3:2).

 

# 핵심

1~6절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야곱을 기억하시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계셨다.

 

# 묵상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태도 (1~3절)

세월을 헛되이 보냈으며, 날마다 거짓과 포학을 더했습니다. 그들은 헛된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다가 결국 자신들을 파멸시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우리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명예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호세아의 요구 사항 (6절)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을 기억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특히 야곱의 생애와 출애굽 당시의 일을 기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과거 수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속히 회개함으로 복받았음을 기억하여 죄를 회개하고 해결받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패역한 상거래 (7절)

패역한 이스라엘은 상고(商賈)와 같이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詐取)하기를 좋아하는 장사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상고'란 가나안 족속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베니게 지역에 거주하였고, 주업은 상업이었으며 남을 속이고 강탈을 일삼았습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자행했지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깨닫고 정직과 공의로 행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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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2절)
죄 아래 있는 삶 -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의 표본적 사건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노예에 불과하던 이스라엘을 압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가나안의 자유와 기쁨을 허락하셨다(출 32:13; 신 7:7, 8). 그러나 육체적.정치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이 이제는 우상과 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2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경고하시는 한편(6절),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셨다(8~11절). 본장은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벗어난 성도들이 다시 죄의 지배를 받는 생활로 돌아가지 말 것을 권고하는 말씀이기도 하다(잠 26:11).
[1절]
내 아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사랑에 의하여 주어지는 칭호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고 불렸던 사실이다(출 4:22, 23). 이 칭호는 단지 역사적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를 얻게 하는 데까지 적용되었다. 한편 본절은 예수께서 유아 시절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셨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마 2:13~21).
[2절]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하나님께서는 초대 선지자라 할 수 있는 모세 이후(신 18:15, 18) 이스라엘의 부패를 경책하시고 바른 영적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많은 선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냈지만, 그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7절; 왕하 17:13). 그들의 마음속은 우상 숭배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을 의식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3절]
걸음을 가르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부성애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전부터 율법과 교훈으로 가르치시고, 위태할 때 보호해 주셨다(민 11:12; 신 1:31).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묵살하고 그분의 품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4절]
사랑의 줄.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와 화평의 길로 이끄시는 은혜와 사랑의 끈을 가리킨다. 우리는 여기서 출애굽이후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을 인도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줄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반역은 더욱 슬픔을 느끼게 한다.
[5~7절]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 -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계책' 때문임을 밝힌다(6절; 10:6). 이것은 인간 이성을 과신하여 자신의 계획과 목적한 바를 이루려는 악한 모의이다. 이러한 모의는 하나님의 권위와 법을 무시하는 처사로서 끝내는 실패하고야 만다. 한편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반역(5, 7절), 이스라엘의 거짓된 궤휼(12절), 하나님보다 앗수르와 애굽을 더 의지하는 것(12:1)이 가장 두드러진 이스라엘의 계책이라고 선포한다.
(8~11절)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 이면(裏面)에는 자비와 긍휼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회복을 소원하셨다.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은 택한 백성을 파멸에 이르도록 방관하지 않는 법이다(애 3:22, 23).
[8절]
어찌란 의문사를 네 번이나 사용하고 있는데 수사학에서는 네 번 강조를 완전 강조라 한다. 그러므로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도저히 버릴 수 없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특히 '어찌'란 의문사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일을 전제로 한다(창 39:9; 사 48:11). 따라서 여기에서는 비록 이스라엘이 타락의 바닥을 헤맨다 해도 끝까지 참으시고 마침내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들의 삶을 간섭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항상 평안함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한 도시들이다(신 29:23).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이방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취급하실 수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섭리적 편견을 가지고 계신다(롬 9:19~24). 그러나 이 편견이야말로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동인(動因)이 된다.
[9절]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말로서 범죄한 인간들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실 때, 인간들처럼 실수하거나 추악한 결말을 초래하지는 않으신다는 말씀이다(민 23:19).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함께하시는 나라와 개인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 임마누엘의 진의(眞意)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lncamation)이다(마 1:23; 요 1:14).
[10~11절]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짖음이 사자의 포효처럼 강력하고 간절하다는 사실을 묘사했다(욜 3:16; 암 1:2; 암 3:8).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에 반응하여 이스라엘이 새와 비둘기처럼 그들의 보금자리로 지체 없이 돌아갈 것을 예견하고 있다(사 60:8). 특별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새'로 묘사한 것은 회개하는 심령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를 보여 주기위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서편에서부터는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이방 나라들을 가리키고(사 11:11), 애굽은 남쪽을, 앗수르는 동쪽을 대표하기 때문에 세상 끝날에는 세계 각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보여 준다(마 8:11).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의미에서의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당신과 언약을 맺은 영적 이스라엘 전부를 일컫는 말이다. 각 집에 머물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이 인생의 영원한 보금자리이신 하나님의 품속에서(시 90:1) 누리게 될 평안과 기쁨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심령은 더 이상 죽음으로 치닫는 어리석은 비둘기(7:11)가 아니다.

[12절]

호세아는 주로 북이스라엘을 위해 사역했으나 남유다에 대해서도 민족 공동체적 연대 의식을 갖고 있었다(6:4; 12:2).


# 해설

하나님의 사랑 (1~11절)

이제 메시지의 주제는 징벌에서 회복으로 바뀌고 있으며, 호세아는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반역을 번갈아 대비시킴으로써 그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부언컨대 하나님의 선택하심(1절)과 이스라엘의 타락(2, 3절)과 심판(5~7절), 그리고 회복(8~11절)으로 이어지는 본문의 내용은 본서 3:1~5절의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에서 비유되듯이 죄악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뜨겁고도 지속적인 사랑을 확연하게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그 죄에 대해서는 심판받았으나(9:1~10:15) 그 자신 만은 끝내 버림받지 않고 구원받으리라고 약속된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다루시는 근본 차이임을 깨닫게 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분명히 치리하시는데 법관으로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하신다.

과거의 구원, 현재의 범죄 (11:12~12:14절)

호세아서 및 기타 구약 선지서는 소위 구속사적 순환, 즉 타락, 심판, 구원의 순환을 계속하며 예언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적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선조의 전철을 되풀이해서이다. 반면 각 예언서가 이런 순환으로 예언을 한 것은 역사적, 즉 시간적 순서라기보다는 문학의 전개 형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 이 부분도 앞의 6:4~11:11절까지 언급된 한 순환에 뒤이어 이제 최종 순환을 시작할 도입부라 할 수 있다. 앞서의 내용을 역사적이 아니라 문학적이라 한 것은 6:4~11:11절의 내용이 어느 한 구체적 시기의 순환이고, 지금 이 마지막 부분은 같은 시기의 범죄와 심판, 구원을 동일한 형식으로 되풀이한 것뿐임을 뜻한다. 한편 본문은 영적, 사회적 부패를 거듭 지적하는 가운데 2~6절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되새기게 하면서 이스라엘의 불법성을 강조한 것이 이채롭다.


# 핵심

1~12절

구약의 예언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보다 아름답고 장엄하게 묘사한 곳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따뜻함과 강렬함을 깊이 있게 표현한 본장은 호세아가 자신의 아내 고멜을 용서하고 사랑했던 감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멍에 (4절)

소, 나귀 등의 목에 얹어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기 위해 쓰는 목제 도구(민 19:2). 멍에는 복종을 강요하는 지배권을 상징하며(왕상 12:4; 사 9:4), 정치적 굴복(렘 5:5), 예속(딤전 6:1), 고역(렘 28:13), 죄의 짐(애 1:14)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멍에를 벗기시는 분이며(겔 34:27), 신약 시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율법의 멍에로부터 해방된다(행 15:10; 갈 5:1).


# 묵상

하나님의 관심 (1~4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대한 관심으로 걸음을 가르치셨고, 저희를 고치셨으며, 사랑의줄로 이끄셨고, 멍에를 벗겨 주셨으며, 먹을 것을 미리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고쳐주시되 한치의 양보도 없이 보살펴 주심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징계하심 (5~7절)

순종치 않고 신실하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가혹한 종살이로 징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칼로 공격을 받고, 빗장이 깨어져 버렸으며, 영혼의 눈이 멀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했기 때문이고, 계속해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사악한 행위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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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5절)
책망과 회개의 촉구 - 역사상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많이 베풀어졌던 곳에서 가장 심각한 부패와 타락이 조성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민 11:4~9; 마 11:20~24). 우상 숭배 등의 죄로 인해 영적 파탄 상태에 이른 이스라엘(1~8절)을 하나님께서는 경책하신 후(9~11절) 회개할 것을 재차 요구하셨다(12~15절). 호세아의 여섯 번째 설교는 인간 구원을 위한 절규에 가까운 강청이라 할 수 있다.
[1절]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 이것은 인간 중심의 번영을 상징한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한 풍요는 인간을 더욱 타락하게 만들 뿐이다.
[2절]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은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신다. 그러므로 진실하지 못하여 '두 마음을 품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양심을 정결케 해야 한다(약 4:8; 요일 3:3).
[3절]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다가 결국 앗수르에 끌려가고 말았다(왕하 18:9~12). 그들의 왕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4절]
언약을 세우니.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인간, 왕과 백성, 개인과 개인 사이에 맺은 언약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의 무질서를 자초했다.
[5절]
벧아웬의 송아지를 인하여. '벧아웬'(우상의 집)은 본래 '벧엘'(하나님의 집)이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후(왕상 12:28~30), 하나님을 만나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장소가 아닌, 허무와 거짓과 타락의 본거지가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존하지 못하고 헛된 우상의 영광을 구하는 존재로 타락함으로써(롬 1:22, 23),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귀한 특권을 가장 추한 올무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6절]
계의(計議). '도모', '계획'이란 뜻으로 여로보암 1세(B.C. 931~910)가 북이스라엘을 회유하기 위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운 악한 계획을 가리킨다(왕상 12:25~33). 그러나 그 계획은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결국 그들은 수치만 당하고 말았다.
[8절]
저희가 산더러...무너지라.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와 종교의 중심지인 벧엘이 무너질 때에 소망을 잃고 절망한 백성들의 외침으로, 그 당시 임한 재난의 극심함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절규는 최후의 심판시 큰 고통을 겪게 될 악인들의 입에서 재현될 것이다(눅 23:30).
[9절]
이스라엘은 기브아의 상황(삿 19:22~21:25)을 재현하고 있었지만 베냐민 지파가 당했던 징벌과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묵인이 아니라 오래 참으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의 주권을 실현하시는 하나의 과정이다.
[10절]
내가 원하는 때에.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을 징벌하실 때를 정해 놓으셨다(사 13:22). 이때에는 의인을 위한 보응도 시행될 것이다(갈 6:9).
[11절]
길들인 암소. 하나님의 율례와 훈계로 잘 양육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교훈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우상을 따라감으로써 마침내 포로의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곡식 밟기를 좋아함)는 죄의 노예(멍에) 상태를 초래한다.
(12~15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 참회와 개혁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비가 머문다. 멸망의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그들의 삶에 '의'와 '긍휼'이 넘쳐나기를 원하셨다.
[12절]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호세아는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회개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친다. 여기서 '때'란 가장 적합한 시점을 의미하는데(신 11:1; 렘 5:24; 학 1:4),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때를 놓치면 더 이상 회개에 적합한 기회를 맞이할 수 없다(고후 6:2).
[13절]
여호와를 찾는 것이 '의'를 심는 행위라면(12절),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악'을 경작하는 행위이다.
[14~15절]
살만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을 정복한 살만에셀 5세로 간주된다(왕하 17:3). 그러나 본절은 사마리아 함락 이전의 사건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살만에셀 3세일 가능성도 있다. 그가 남긴 돌비석에는 이스라엘의 예후 왕과 싸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너희의 큰 악은 문자적으로 '너희의 사악 중의 사악'이며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의 극심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 해설
우상들의 최후 (1~8절)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였던 우상(5, 6절)과 주상(1, 2절)과 산당(8절)에 대한 심판 선언으로서, 결코 우상을 용납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천명하는 말씀이며(출 20:3; 사 45:21), 출애굽 때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의 사역과 상응되는 말씀이다(출 12:12).
전쟁과 포로됨 (9~15절)
죄악(9절)과 교만(13절)에 빠진 이스라엘이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이방인의 노예로 전락된다는 심판 선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성(歷史性)과 공의성을 보여 준다. 우상 숭배의 본거지였던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심판하셨듯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의 손으로 징벌케 하신 것이다.

 

# 핵심

1~8절

우상 숭배의 종말을 예고하는 내용.

 

# 묵상

우상 숭배에 대한 심판 대상 (1~8절)

송아지인 우상 자체, 우상 숭배자, 우상 숭배 처소인 산당에까지 심판이 이른다고 호세아는 선언합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 때문에 심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포도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 (1절)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포도나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예쉬웨'인데, 본문의 말씀은 열매를 맺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그 열매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극심한 우상 숭배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강해진 이스라엘의 행태 (2절)

이들은 강해질수록 제단을 많이 쌓고 주상을 아름답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진실되게 헌신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와 '우상을 섬기지 말라'(신 5:7~9:6)는 말씀을 어긴 행위였습니다.

우상 숭배에 대한 심판 예언 (11~15절)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합니다. 포로가 되어 고통받을 것이며, 전쟁으로 인해 국가가 소멸되고, 백성들은 잔인한 살육을 당할 것입니다. 이 심판은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끝내 회개하지 않는 강퍅함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얻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즉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며, 여호와를 찾고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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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17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포 - 하나님은 아무런 의(義)도 없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과 공의를 이 세상에 펼치기 원하셨다(창 12:1~3).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이방의 세속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 없는 삶을 살았다. 이에 포도원 주인의 기대를 저버린 포도나무가 뽑혀 불살라지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근본을 뽑아내시고 열국에 흩으실 것을 선포하셨다.
[2절]
기르지 못할 것이며...떨어질 것이요. 하나님을 떠나버린 자에게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존재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풍요의 근원을 이방신에게 두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풍요와 만족을 거두어 가셨던 것이다(눅 16:2).
[3절]
여호와의 땅은 '여호와의 집'(8:1)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반면에 애굽은 과거 이스라엘의 노예 상태를 의미하며, 여기서는 앗수르에서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하게될 것을 가리킨다(겔 4:13). 더러운 것이란 부패해 버린 음식이나 율법에 금기로 취급된 부정한 음식을 가리키는 말(삿 13:4)로, 역시 앗수르에서의 비참한 노예 생활을 묘사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을 떠나 우상의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은 거처나 음식이나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진정한 휴식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
[4절]
전제를 드리지 못하며. '전제'란 술을 부어 드리는 제사로 소제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소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민28:3~8)와 일반 번제와 화목제 때에는 필수적으로 첨가하여야 했다(민 15:3, 10). 그러므로 전제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제사로 맺어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시 50:5)가 단절된다는 의미이다.
[6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 자기 생명을 연장시켜 보겠다고 피한 곳에서 오히려 자기들의 생명을 빼앗겼다(10:8).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참회와 자복이다(시 51:17).
[7절]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본절은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 인물이 되어야 할 선지자들마저 하나님의 뜻과 율례를 멸시했고(잠 17; 잠 7:22; 잠 14:9; 잠 15:5; 잠 20:3), 공의에 입각한 말씀 선포를 게을리했기 때문에 고통이 주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스라엘이 참 선지자를 대접하지 않고 오히려 미치광이로 취급하여 핍박했다는 의미이다. 이같이 영적 무지로 이스라엘 전체가 오염되어 있어서 참과 거짓을 도저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 이성의 발달과 과학 문명의 진보가 인간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을 통한 조명만이 어두워진 인간을 밝게 만들 수 있다(시 119:129, 130).
[9절]
기브아의 시대. 베냐민 지파 기브아 비류들이 레위인의 첩을 강간하여 죽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600명만을 제외하고 베냐민 지파 사람을 멸절시키신 사건이 있었다(삿 19:14~20:48). 그때처럼 이스라엘은 '공동의 죄', '구조적인 악'을 통하여 나라 전체를 죄악의 소굴로 만들었다. 이러한 전체적인 악을 한 개인의 결단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개혁은 한 개인의 회심으로부터 시작된다.
[10절]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광야에서 허기와 갈증으로 헤매던 나그네가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만난 듯한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였다는 의미이다.
[11~12절]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출산 능력이 없는 여인처럼 아무 희망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징벌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러한 징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나심'으로 곧 성취될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등졌을 때는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측면에서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떠나시면 모든 것은 끝이 나고 만다.
[13절]
두로와 같으나. 섬 위에 세워진 두로가 울타리를 두르고 아름다운 정원수를 심은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아름다운 존재였다. 살인하는 자. 심판의 도구로 쓰인 앗수르를 가리킨다.
[14절]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 축복을 호소해야 할 종교 지도자가 하나님께 저주를 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많은 자녀는 축복의 표시로(시 127:3~5), 불임은 저주로 여겨지던(삼상 1:6) 이스라엘에서, 본절과 같은 간구는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심판의 임박을 인식한 호세아는 더 많은 희생과 아픔을 줄이기 위해(눅 23:29) 이러한 간구를 드렸던 것이다.
[15~16절]
이 부분은 호세아의 기도(14절)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즉, 하나님께서 태의 열매인 이스라엘 백성의 자녀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들이 길갈에서의 삶, 즉 우상 숭배에 열중했기 때문임을 밝힌다. 그 뿌리가 말라. 에브라임은 '샘 곁에 무성한 가지'로서 번성할 것이 약속되었지만(창 49:22),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지금은 비탄과 허무만 남게 되었다(6절).

[17절]

내 하나님. 호세아는 범죄한 이스라엘과 자신을 구별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을 보여 준다(1:9). 유리하는 자. 하나님의 품을 떠난 영혼은 계속적인 방황과 피로로 안정을 찾지 못한다(창 4:12; 신 28:64~68).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평안이 있다(요 14:27).

 

# 해설

포로 생활 (1~6절)

본문에서는 바알 숭배(1절)로 야기된 기아(2절)와 포로지에서의 치욕(3, 4, 6절), 절기 중단(5절), 그리고 외국인의 노예 생활로 겪게 되는 격심한 고통(6절)을 선언하고 있다.

예언의 단절 (7~9절)

미래의 심판에 대한 예언에서 잠시 눈을 돌려 그 원인을 현재의 영적 타락에서 찾는 부분으로, 참 선지자를 박해하고 거짓 선지자를 속출시키는 상황을 질타하고 있다.

후손 상실 (10~17절)

9:1절부터 점차 강도를 더해온 심판 선언은 본문에 이르러 후손 상실이라는 종족 말살의 심판으로 선포된다. 전날 출애굽 직전에는 애굽의 장자들이 저주받았으나 이제는 거꾸로 이스라엘에 더욱 심각한 재앙을 당하게 된 의미를 우리는 곰곰이 되새겨야 한다(출 12:29).

 

# 핵심

1~17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고 거짓 선지자를 따른 것을 책망하신 내용이다. 징계는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묵상

호세아가 선포한 심판의 형벌 (2~4절)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먼저 수확의 감소인데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 수확물을 헛된 신을 위해 섬김으로 인해 그 수확을 감소케 하시고, 이방인의 노예가 되게 하시며, 영적인 축복들이 사라진다고 선포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데 대한 당연한 보응입니다.

임박한 심판 (5~9절)

본문에는 애굽으로 도망가거나 앗수르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선포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세아를 어리석고 미쳤다고 비난합니다. 이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알라고 여호와의 심판을 재선포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선지자를 어리석고 미련한 자라고 비방했는데, 이제는 회개와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깨달으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누적된 죄악은 심판을 초래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러한 죄악의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길갈에서 행한 행위의 결과 (1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신의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 끝이 났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이제 불순종의 결과로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문은 항상 인간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이 닫힐 경우에 그 잘못은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 편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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