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리를 전하도록 은사를 따라 부르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1절~10절]
1절 -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절 -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절 -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절 -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절 -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절 -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절 -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절 -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절 -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절 -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바울이 이방에 전한 복음을 예루살렘 교회에 제시했습니다. 그가 헬라인 동역자 디도에게 할례받게 하지 않음은 거짓 형제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복음의 진리가 늘 성도들 안에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은 또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1. 거짓 형제를 분별하라 (1~5절)
예수님이 이루신 대속에 인간의 노력을 더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대속의 완전함을 무시한 가짜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고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거짓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는 헬라인 동역자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바른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이 복음으로 인해 누리는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거짓 세력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래서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들을 이기는 가장 좋은 무기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바울과 동역자들을 하나로 묶는 방편이자, 거짓 형제들을 몰아내는 최고 무기입니다. 복음 전도자는 성도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도록 돕는 복음의 파수꾼입니다.
* 바울은 거짓 형제들이 가만히 들어온 목적이 무엇이라 말하나요? 복음의 진리 안에 굳게 서 있도록 내가 돌아보아야 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2. 유대인 사역자, 이방인 사역자 (6~10절)
각 사람의 사명은 달라도 목적은 같습니다. 유명인이 전하든 무명인이 전하든 복음의 능력은 한결같습니다. 단지 사역의 대상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라면,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사도들도 친교의 악수를 나누며 인정해 준 사실입니다. 은사에 따른 부르심으로 인해 무명의 사도 바울이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자신을 향한 부르심이 베드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확증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각자 부르심을 따라 담대하게 은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베드로와 바울을 각각 누구에게 복음 전하는 사도로 삼으셨나요? 교회 혹은 직장에서 은사에 따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복음에 무언가를 더 보태려 하는 잘못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구원을 얻기 위해 억지로 자기 공로를 쌓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게 하소서. 의무감이 아닌, 거저 받은 은혜와 자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며 협력하는 참신앙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나를 부르신 그분께 삶의 방향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1절~24절]
11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절 -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절 -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절 -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절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절 -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절 -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절 -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절 -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절 -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절 -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절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절 -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절 -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예수님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그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심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때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거나 사도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의 교회들이 자신의 변화에 대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밝힙니다.

1. 율법주의자에서 복음주의자로 (11~15절)
복음이 곧 능력임은 사람 뜻이 아닌 하나님 뜻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 받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직접 받은 계시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다른 복음을 따르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가 전한 복음의 진실성을 확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회심하기 이전에 바울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히 헌신했지만, 그에게 참소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까지도 사용하시는 하나님 은혜가 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우시기 위해 출생 이전부터 은혜로 택하셨고, 율법주의자에서 복음 전도자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열정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은 올바른 인생길의 시작이며, 바른 복음의 길로 행하게 합니다.
* 회심하기 이전에 바울이 열심을 냈던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나를 은혜로 택하시고 부르셔서 맡기신 일은 무엇인가요?

2. 3년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함 (16~24절)
사역의 방향을 정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이 사건은 그의 가치관과 삶을 단번에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사역 방향에 관해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고, 자신을 부르신 주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라비아와 다메섹은 바울을 복음으로 가르칠 만한 사람이 없는 곳이었기에, 그는 오직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3년의 시간은 사명을 다지기에 충분했고,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만나 자신의 사역 방향을 확정한 후 복음 전파에 매진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3년간 머문 곳은 어디인가요? 삶과 사역에 특별한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내가 나아가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증인 되게 하시려 모태에서부터 저를 택하시고 부르신 섭리를 찬양합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경험 하나하나, 심지어 제 허물조차 사용하셔서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를 변화시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의 능력을 어디서든 선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십자가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10절]
1절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절 -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절 -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절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절 -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절 -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절 -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절 -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절 -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절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 인해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신들을 은혜로 부르신 그리스도를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히 여깁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려 자기 몸을 주신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받을 것입니다.

1. 문안 인사와 바울의 사도직 (1~5절)
복음 전도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셔서 맡기신 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 직분이 사람으로부터가 아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바울 자신의 사도직에 회의를 품는 이들에게 신뢰감을 주어, 자신이 전한 은혜의 복음을 흔들림 없이 따르도록 이끌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뜻을 따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자기 몸을 내어 주심으로써 이루신 구원을 우리는 값없이 받아 누립니다. 이러한 은혜의 복음을 순수하게 믿고 전할 사명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습니다.
*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이루신 은혜의 복음을 오늘 누구에게 전해야 할까요?

2. 다른 복음은 없다 (6~10절)
복음을 받은 후에는 잘 지키고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탈영병이나 변절자가 되어 가는 갈라디아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처럼 어떤 감사나 격려, 기도할 여유도 없는 절박감으로 "다른 복음은 없다."라고 외칩니다. 다른 복음이란 한마디로 '행위 복음'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나 오늘 우리가 복음을 지키는 비결은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예수님 외의 무언가를 복음에 덧붙이려 하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합니다. 에덴동산에서나 지금이나 사탄은 비밀스럽게, 서서히 복음을 변질시키는 위장술에 능합니다. 성도는 영적 분별력을 갖고 사탄과 함께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될 무서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바울이 언급한 '다른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을 변질시키는 악한 세력의 현혹을 분별하기 위해 내가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새로운 달, 새뜻한 마음으로 말씀 묵상에 임하게 하소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며, 십자가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악한 세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게 하소서. 죄에서 저를 건져 주신 주님 한 분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는 종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자신을 속이지 말라

[갈라디아서 6장 1절~10절]
1절 -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절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절 -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절 -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절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절 -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절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절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절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절 -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십자가 자랑

[갈라디아서 6장 11절~18절]
11절 -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절 -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절 -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절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절 -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절 -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절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절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두 가지 상반된 삶의 방식

[갈라디아서5장 16절~25절]
16절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절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절 -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절 -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절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절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절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절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절 -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갈라디아서5장 16절~23절]
16절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절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절 -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절 -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절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절 -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절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심는 대로 거두는 죄

[갈라디아서 6장 6절~10절]
6절 -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절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절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절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절 -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우리는 영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망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예수님도 잊어버리고 교회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반드시 온다는 것도,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러나 두려운 사실은 잊어버린 것에 대해서 그 댓가를 지불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한 말씀보다 더 확실한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 진리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씀을 나눔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그것을 없애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가족이나 당신의 친구나 이웃 사람은 당신의 죄를 의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대낮에도 보시고 캄캄한 밤에도 환히 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드러 내놓고 계산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웃집 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습니다. 감자를 캐어 자루에 집어넣기 전에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캔 감자를 자루에 넣으려고 하자 어린 아들이 지혜롭게 말하기를 '아빤 한 쪽은 안 쳐다 보았어요. 하늘을 쳐다 보는 것을 잊었어요'라고 속삭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와 같습니다. 우리는 내가 죄 짓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게 하려고 주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시고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주권이 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만들 수도 있고 깨뜨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손에 있는 진흙 덩어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을 거두어 갈 수도 있고 줄 수도 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이 그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는 말씀하신 것을 이루십니다. 바람과 파도도 그의 말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지배하시며 당신을 지배하십니다.
그는 또한 당신을 심판대로 끌어낼 수가 있습니다. 계 6:16절에 말씀하시기를 심판의 두려운 날이 오면 사랃들이 어린양의 진노를 피하여 숨어보려고 "바위야 날 가려라, 산아 내 위에 떨어져다오"하면서 애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되지도 않거니와 그대로 된다고 해도 바위와 산을 들춰내고 사람들을 심판대 앞으로 끌어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야 하고 어느 날인가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날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쾌락을 따라 살면서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릭석은 사람입니다.

2. 심는대로 거두게 됩니다.
첫째,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가 심는대로 우리가 거두게 됩니다.
무디(Moody) 선생이 어느 날, '심는대로 거둔다'는 설교를 하면서 몇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했더니 결론을 내릴 즈음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그런 소리를 안믿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두 형사가 어떤 범인을 찾다가 그를 체포해서 쇠고랑을 채워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흉악법이었습니다. 확실히 그는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또 한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에 포드(Food) 목사님께서 '심는대로 거둔다'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고 나서, 한 젊은이에게 구원에 대해서 질문을 했더니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해서 비웃더랍니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를 하러 내려갔더니 그날 아침에 순경들이 와서 그 청년이 차를 훔쳐서 체포해 갔다고 말하더랍니다. 그 청년도 아마 '심는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심은 죄는 우리의 생활에서 즉각적으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생활에서 우리가 심은대로 거둡니다.
죄의 비극이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우리 자신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지은 죄가 자식들을 찾아가고, 자손삼대까지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 죄의 결과가 사랑하는 식구들과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유명한 부흥사에게 어떤 사람이 편지를 써보내면서 주의 깊게 읽으시고 기도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편지는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젊어서 부도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훌륭한 처녀와 결혼을 하고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어느날, 아기가 아파서 의사 두분을 청하여 진찰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아래층에서 의사의 진찰 결과를 기다리고 있노라니까, 의사 한 사람이 내려오더니 결혼하기 전에 어떤 생활을 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문란하고 음란한 생활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말하기를 '윗층으로 올라와서 그런 생활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좀 보라'고 하면서 이층으로 나를 데리고 올라가더니, 그 아기를 가리키면서 '당신의 아기가 죽지 않고 산다면 평생 척추가 뒤틀리고 아마 정신을 잃은 채 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목사님! 내 죄의 값이 내 아기의 생애에 지불될 줄은 몰랐습니다.'라는 애절한 사연이 적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를 해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손상케 합니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영적인 면에 자녀들에게 두 가지 책임을 지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해서 최선의 생활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아기가 출생하면 그 아기 자신은 출생과 아무 상관이 없고 부모가 아기를 이 세상에 나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가 팔에 안겨 있을 때,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오! 주님, 아기 앞에서 바로 살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영적인 것보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보다 물질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 무관심했던 결과는 어느날 반드시 거두게 되는 때가 옵니다. 돈 몇푼 더 벌겠다고 자녀들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망쳐 놓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세상일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만 앞으로는 언젠가는 자녀들의 복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옵니다.
위대한 부흥사 웰버 쳅맨(J. Wilur Chapman) 목사님이 어느 곳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한 여자가 와서 목사님께 부탁하기를 '내 아들이 지금 목사님이 다음에 부흥회 인도하러 가시는 도시에 죄수로 갇혀 있는데, 목사님 가시거든 부디 제 아들을 찾아가셔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게 해주십시오. 여기 내 아들 이름이 있습니다'라고 해서 쳅맨 목사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후에 그 청년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몹시 염려하고 있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고 했더니 '저주 받을 엄마 같으니!'라고 소리치더랍니다. 그래서 쳅맨 목사님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랬더니 그 청년이 대답하기를 '제가 어렸을 때요, 우리 엄마는 교회는 안가고 매일 화투만 쳤습니다. 그리고 내게 화투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자라면서 투전을 했습니다. 나는 많은 돈을 잃고 투전 빛을 갚기 위해 우리 주인의 돈을 횡령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형무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우리 어머니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우리 어머니에게 일러주십시오'라고 말하더랍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여. 여러분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자녀들에게 올바른 본을 보여 주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될 책임이 여러분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기쁨을 목사나 교회학교 교사에게 빼앗기지 마십시오.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학교를 찾아가십시오. 복음의 능력 아래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따로 조용히 앉아서 예수님에 관해 말해주고 왜 믿어야 되는지 말해주십시오.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학교는 보내려고 하면서 왜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일에는 무관심합니까?
말해야 소용 없다고 내버려 두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마귀에게 빼앗기기 전에 그리스도께 인도하십시오. 정원이 있는데 그 정원을 잘 다듬고 올바른 씨를 심지 않으면 나중에는 잡초가 우거지게 됩니다. 자녀들의 마음과 생활속에 올바른 씨앗을 심어주지 않으면 인생의 잡초가 자라서 결국엔 자녀를 질식시켜 버립니다.
만일에 여러분의 아들을 캄캄한 데서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밝은 빛을 높이 들고 그 흑암에서 찾아내오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모범된 생활로 빛을 높이 들어 보여서 흑암으로부터 구주 예수님께로 인도해 내야 됩니다.
부모님들이여! 자녀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사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인도하십시오. 지금 심으면 언젠가는 거두게 됩니다.

3. 심은 것보다 더 많이 거두게 됩니다.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둔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벼나 옥수수의 씨앗을 심으면 나중에 수십 배, 혹은 수백 배로 거두지 않습니까?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을 위해 썩어질 것을 심으면, 썩어질 것을 몇배로 거둡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그 죄 값을 여러 배로 지불하도록 하셨습니다. '너희 죄가 정녕 너를 찾아낼 줄 알라'고 했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뿌린 것보다 많이 거둔다는 것, 육신을 위해 뿌리면 몇 배나 더 큰 슬픔을 거둡니다. 성령으로 심으면 몇 배나 성령의 좋은 열매들을 거둡니다. 성령으로 심으면 세상에서도 맑은 양심을 거두고, 마음에 평안을 거두고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의 열매를 거둡니다. 내세의 영생과 천국을 거둡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 현세와 내세에 풍성한 것으로 거둡니다.
미국에 유명한 감리교 부흥사 샘 죤스(Sam Jones) 목사님이 시골 조그마한 교회에서 있었던 목회 경험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개적으로 죄악에 빠진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생활에 한 부분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와 그리스도와 목사를 저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새벽 세시에 그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가 깊은 밤에 아내를 부르더니 '내가 지금 무서운 꿈을 꾸었는데, 악마들이 내 방 가득히 보여서 내 영혼을 지옥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 나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좀 해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을 안정시키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시가 되자 '악마들이 나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나를 지옥으로 데려간다'고 부르짖으면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또 다른 예로 죽음에 임박한 훌륭한 성도의 이야기입니다. 죤스 목사님이 그 여자를 방문했을 때 그 여자는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죽음이 올는지 그 마지막 시간이 두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녀에게 위안의 말을 해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날, 죤스 목사님이 그 여자를 다시 방문했을 때 그녀가 말하기를 '목사님이 어제 떠나신 후에 내가 잠이들었는데 저는 아주 황홀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아름다운 강가에 있었는데 강 건너를 바라보니까 많은 행복한 사람들 속에 제가 사랑하던 식구도 거기 있었습니다. 제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배를 저어 건너오더니 그 배에 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서 구속받은 무리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그 곳에 내렸습니다. 그때 한 천사가 오더니 '내가 너를 데려다가 저 왕궁에 계신 왕께 소개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이끌고 보좌로 데려가서 그 곳으로 들어갔더니, 어떤 분이 나를 향해 오고 계셨습니다. 흰 세마포를 입었는데 얼굴에는 기쁨의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분이 오셔서 내 손을 붙잡는데 그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왕궁에 계신 왕이 나의 구주 예수님인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더랍니다.
그 다음날, 그 여자는 남편을 침대 곁으로 부르더니 '여보, 저는 지금 너무너무 기쁩니다. 왜 이렇지요?' 남편이 '당신은 지금 죽으려고 하는거야' 하니까 '여보, 그러면 나에게 키스(kiss)해서 작별 인사를 하고, 나를 가게 해주세요'라고 한 후에 그 여자는 대낮보다 밝은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시간이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바른 씨앗을 뿌리며 살다가 그 날에 추수할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씨를 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죄의 씨앗을 심으면 죄의 열매를 거두고, 의의 씨, 복 받을 씨을 심으면 언젠가는 축복의 열매를 거둡니다. 감사의 씨를 많이 심으면 감사할 열매를 많이 거두고 불평, 원망의 씨를 심으면 불행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 아멘 -

갈라디아서

자유의 대헌장
갈라디아서는 믿음으로 인한 칭의(稱義)와 자유를 논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대헌장'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외침'이 되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는 "나는 이 서신과 결혼했다. 이 서신은 내 아내다"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를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신의 내용이 난해해서가 아니라 본문의 배경을 이루는 사건과 상황들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한눈에 보기

구성

서론

본론

결론

본문

1:1~10

1:11~2:21

3:1~5:12

5:13~6:10

6:11~18

내용

인사말

서신 기록 동기

개인적 변호

(복음)

신학적 논증

(칭의)

실천적 권면

(자유)

호소와 경고

사도적 축도

주제

복음의 변호

자유의 입증

자유에 대한 논쟁

자유의 적용

마지막 권고

기록 연대

남 갈라디아설 : AD 49년 / 북 갈라디아설 : AD 53~56년

기록 장소

남 갈라디아설 : 수리아의 안디옥 / 북 갈라디아설 : 에베소 또는 마게도냐


수신자

갈라디아서 해석에 있어서 첫 번째 문제는 이 서신의 수신자에 관한 것인데, '기록 시기'와 '내용'과도 관련되었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갈라디아는 오늘날의 터키를 포함하는 소아시아 지역이다. 원래는 앙키라(Ancyra)를 중심으로 한 북쪽 지역이 갈라디아 왕국이다. 그런데 로마에 의해 정복되면서 남쪽 지역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그래서 AD 1세기에는 '갈라디아'라는 이름이 옛 갈라디아 왕국(북 갈라디아)과 로마가 통합시킨 지역(남 갈라디아)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문제는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곳이 북 갈라디아 지역인지 남 갈라디아 지역인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북 갈라디아설과 남 갈라디아설 비교

견해

북 갈라디아설

남 갈라디아설

지역

지리적이고 인종적인 갈라디아

로마와 관련된 정치적인 갈라디아

주장

바울의 2차 선교여행 시에 설립된 교회에 보낸 서신으로 추정

(행 16:6; 18:23)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시에 설립된 교회에 보낸 서신으로 추정

(행 13:14~15; 14:1; 16:2~3)

근거

① 당시의 일반적 용례

② 누가의 일반적 용법

③ 남 갈라디아는 북 갈라디아와 다른 지역이므로 '갈라디아 사람들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함

④ 바울이 병들었다는 내용이 남 갈라디아 전도 기록에는 없음

⑤ 사도행전 16:6; 18:23절을 보면 바울이 북 갈라디아 지역으로 간 것으로 보임


① 북 갈라디아 지역의 정보가 없음

② 바울의 전략에 남 갈라디아가 더 적합함

③ 구제 헌금을 한 갈라디아(고전 16:1)의 대표로 남 갈라디아 사람들만 언급됨(행 20:4)

④ 바나바에 대한 언급(2:1, 9, 13)은 갈라디아 교회가 그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함

⑤ 예루살렘 공회의(AD 50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베드로의 행동에 대한 이해 불가


갈라디아서의 기록 경위와 목적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경위와 목적은 편지의 수신자와 그들 가운데 침투한 거짓 선생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교(異敎)에서 개종한 갈라디아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나 믿음에 대한 성숙한 이해를 아직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거짓 선쟁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자신이 전한 복음의 진실성과 그것의 근거가 되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본론에 해당되는 세 부분이 바울의 세 가지 목적을 잘 보여 준다. 그것은 사도권의 변호, 이신칭의에 대한 신학적 논쟁, 자유의 바른 사용을 위한 실천적 권면이다.


갈라디아서의 특징

① 바울 서신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감사 어구가 없다.

② 어조가 고린도후서와 유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조가 감정적이고 논쟁적이다. 저주(1:8~9), 비난(3:1), 안타까움(4:11; 5:7), 적개심(5:12) 등이 나타난다.

③ 바울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서 바울과 초대 교회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④ 주제는 로마서와 유사하지만 위엄 있고 협조적인 로마서와는 대조적으로 갈라디아서는 매우 날카롭고 논증적이다.


갈라디아서의 특별한 기여

① 갈라디아서는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흔들림 없이 주장한다.

② 아브라함에 대한 언급은 율법과 언약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준다.

③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강조한 점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 준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비교

갈라디아서

로마서

공동 사상

2:16; 3:5~6, 11

1:17; 3:20~22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

2:19~20

6:6, 8; 7:4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자유로워짐

3:19~21

8:3~4

  율법은 임시적이며 무능함

3:23~26

7:1~3

  율법은 몽학 선생의 역할을 함

3:27

6:3; 13:14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됨

4:5~7

8:14~17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 상속자가 됨

5:13~26

6:1~8:39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살게 됨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의 비교

갈라디아서

고린도후서

공동 사상

1:1, 11~24; 2:1~21

10~11장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 변호함

1:13~2:14

11:16~12:10

  바울 개인의 이력

3:13

5:21

  그리스도의 속죄

6:7

9:6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음


바울의 대적들의 정체는?

갈라디아서 해석에 있어서 두 번째 문제는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거짓 선생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다(3:1; 5:7). 다만 그가 언급한 내용들을 통해 그들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확실한 사실은 이들이 율법 준수를 주장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었고(행 11:2~3; 21:20) 소수였다는 것(5:9)이다.

이들은 바울의 사도 자격에 이의를 제기했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이스라엘의 구성원이 되려면 먼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거짓 선생들에 대한 바울의 묘사

① 성도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는 자 (1:7)

②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 (1:8~9)

③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2:4)

④ 성도를 종으로 삼으려는 자 (2:4)

⑤ 성도를 꾀는 자 (3:1)

⑥ 진리를 순종치 못하게 막는 자 (5:7)

⑦ 성도를 어지럽게 하는 자 (5:12)

⑧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 (6:12)


'아바' 아버지

'아바'(4:6)는 '아빠'를 뜻하는 아람어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실 때 이 호칭을 사용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 모두가 잘 알고 있던 호칭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이들은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들으면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아버지의 무릎을 두 팔로 안으며 "아바, 아바!" 하고 소리쳤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아빠, 아빠!"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들은 그분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막 14:36)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셨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지극히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호칭으로는 적절치 못한 말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비난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롬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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