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후서

거짓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나님이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성도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시 편지를 쓴다. 성도들은 바울이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비량으로 수고하면서 사역한 모습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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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장

2장

3장

구성

데살로니가 교회의 미래

데살로니가 교회의 현재

요점

주님의 재림과 심판

대적하는 자들

기도 부탁과 게으름 경계

저자

바울

기록연대

첫 번째 편지(데살로니가전서)를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장르

서신서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쓴 바울의 편지)


주님의 재림 (1장)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도 교회는 계속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박해와 환난 중에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고, 바울은 그러한 소식을 듣고 감사했다. 바울은 하나님이 환난 중에도 인내하는 성도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고, 복음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형벌을 내리시는 분임을 상기시킨다. 재림의 때를 묵상하고 소망하는 것은 힘이 된다.

대적하는 자들 (2장)
데살로니가 교회에 성도들을 유혹하는 거짓 교사, 이단이 있었다. 이들은 비상한 은사를 주장했고, 언변으로 가득한 설교를 사용했으며, 자기들 마음대로 사도들의 권위를 빌려 작성한 문서를 사용했다. 바울은 이들로 인해 일어날 동요와 흥분을 불식시키고자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다시 편지를 보낸 것이다. 바울은 재림 때에 있을 현상을 설명하고,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의 바른 자세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자신에게 배운 교리를 굳게 지키라고 당부한다.

게으름을 경계하라 (3장)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영광스럽게 퍼져 나가듯, 바울 일행의 사역도 영광스러울 수 있도록 중보 기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자비량으로 수고한 이유는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며, 이것이 사랑임을 알린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최선의 삶의 태도는 환난 중에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자세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성도는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주님은 반드시 돌아오셔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복음을 배척한 자들에게는 멸망의 형벌을 주실 것이다. 미쁘신 주님을 믿는 자들을 굳건히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신다. 따라서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재림을 바라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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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1~2

1:3~12

2:1~12

2:13~3:15

3:16~18

요점

문안 인사

성도의 환난

그리스도의 재림

굳게 지키라

축복

저자

바울이 저자라는 역사적 증거들이 있고, 본문에 바울이 썼다는 진술도 두 번이나 나오지만(1:1; 3:17), 저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이 글의 문체가 데살로니가전서의 문체와 다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에 정감 넘치는 편지를 보냈던 저자가 거짓 교리에 미혹되지 말라며 질책하고, 도둑처럼 갑자기 오신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살전 5:2)에 대해서도 수많은 징조가 먼저 있을 것이라고 다르게 이야기한 것이다(2장). 그러나 두 편지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재림의 갑작스러움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오해하고 재림이 바로 일어날 것에 대비해 현실을 내팽개쳤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급히 다시 편지를 써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상적인 하루하루를 영위하라고 당부해야 했다.

연대

   51~52년.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 때다.

목적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를 격려하고, 주님의 재림을 강조한다. 또한 그릇된 가르침을 바로잡고, 서로 권면하라고 타이른다.

분류

   서신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두 편지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옥에 갇혔지만, 기도와 찬송으로 옥문이 열리고 간수의 온 집이 주 예수를 믿는 이적과 은혜를 경험한다(행 16:16~40). 그 후에 이른 곳이 데살로니가다. 이곳에서 바울은 관례대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성경을 강론한다. 이 연속 설교는 세 번의 안식일에 이루어졌고, 주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이를 듣고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 무리가 바울의 가르침을 따랐다. 유대인 무리는 이를 시기해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야손의 집을 공격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이들을 피해 베뢰아로 이동한다(행 17:1~9). 고작 3주로 끝난 전도 사역이었고, 전도자는 핍박 때문에 달아나야 했다. 그런데 이곳에 데살로니가 교회라는 열매가 맺혔다. 이로 인한 바울의 기쁨과 감사는 첫 번째 편지에 흘러넘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이었다(살전 2:19~20). 첫 번째 편지를 가져간 디모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핍박 중에 있던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의 편지에 큰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바울이 우려할 만한 소식도 있었다. 핍박을 받고 있기에 더욱 애타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던 이들 중에 일상생활을 포기한 이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에 바울은 첫 번째 편지를 보완하는 두 번째 편지를 쓰게 된다. 바울이 두 번째 편지를 보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박해와 환난이 계속되었기에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1:3~12). 둘째,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어야 했다(2:1~12). 셋째, 끝까지 인내하라고 격려해야 했다(2:13~3:15).

문안인사 (1:1~2)
바울은 두 번째 편지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시련과 박해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위로부터 부어지는 은혜와 평강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성도의 환난 (1:3~12)
데살로니가 성도를 향한 바울의 자부심과 그들의 신앙에 대한 감사는 멈추지 않는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전히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비롯한 각처에서, 믿는 자의 본이 되었기 때문이다(살전 1:7).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와 환난 가운데 있었다. 왜 성도가 환난을 받는가? 사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핍박을 피하기 어렵다.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야말로 그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는 증거이자,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공의가 사사롭지 않고 올바르다고 강조한다. 환난을 야기하는 자들은 심판과 형벌을 면하지 못하지만 성도는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 한편 데살로니가 성도는 환난 중에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 일어날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에 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1:10)에 일어날 일을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2:1~12)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바울 서신 전체 중에서 어렵기로 손꼽히는 본문이다. 당대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말은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었고, 그 뜻을 오해한 사람들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할 정도였다(벧후 3:16). 한편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주님이 이미 재림하셨다고 장담하며 돌아다니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들이 바울에게서 영으로, 말로, 편지로 배웠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바울의 권위를 빌린 주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 거짓 교사들에게 휩쓸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그들의 거짓 주장에 맞서기 위해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롯한 미래 일에 관해 구체적으로 강론한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먼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대적하는 자, 하나님을 자칭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다(2:3~4). 사실 바울은 이에 관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미 교훈을 준 적이 있다(2:5). 이 교훈은 현재 전해 내려오지 않기에 다만 추측할 뿐이다. '불법한 자'는 적그리스도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와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력을 이끌 것이다(계 13장). 이들이 활동하는 시기는 세 단계로 제시된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했을 때, 그것을 막고 있는 때, 장차 주님이 불법한 자를 죽이시고 완전히 폐하실 때다(2:7~8).
누가 반역의 지도자인가

명   칭

특          징

멸망의 아들 (2:3)

  예수님은 기도 중에 유다를 '멸망의 자식'이라고 언급하신 바 있다 (요 17:12).

대적하는 자 (2:4)

  하나님께 대항하는 적그리스도다.

하나님을 자칭하는 자 (2:4)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내세운다.

불법한 자 (2:8)

  법에 담긴 절대성의 원칙을 폐기하는 자다. 불법이 성하면 사랑이 식는다(마 24:12).


굳게 지키라 (2:13~3:15)
바울은 그리스도 재림의 방식을 설명하고 나서, 성도가 행할 바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그것은 바울이 편지로 전한 것들을 지키고(2:13~17), 복음의 일꾼들을 위해 기도하며(3:1~5), 일상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3:6~15). 하나님의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 이 사랑을 거절하고 악한 자를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이 전해 준 진리에 반응했고 그 진리를 믿었다. 이제 성도가 할 것은 그 진리를 굳게 지키는 것이다. 바울은 첫 번째 편지에서처럼 선행과 기도를 계속하라고 권면한다. 또 종말이 임박했다며 일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고, 주야로 일하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따르라고 한다.


축복 (3:16~18)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과 은혜가 있기를 구한다. 평강의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신할 때 교회는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평강을 누린다.


서신의 대필자들

편지를 마무리하며 바울은 자신의 서명을 덧붙인다. 자신이 친필로 쓰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의 친서가 위조되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자신의 서명을 덧붙이는 것은 저자가 대필자를 세워 편지를 작성하던 당대의 관습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저자들은 뛰어난 문장력을 갖춘 대필자들을 고용해서 글을 완성했다. 따라서 대필자들은 단순한 받아쓰기를 넘어선 자유로운 글쓰기로 글의 완성도에 기여하곤 했다. 대필자가 단순 기록자인지, 저자와 동급의 공동 저자인지, 편집자 혹은 번역자인지 여부는 학계의 오랜 토론 주제다. 바울은 헬라 세계의 언어에 정통한 로마 시민권자였지만 시력에 문제가 있어서 당대의 관습대로 비서를 두고 편지를 대필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의 편지들이 대부분 1인칭 복수형 '우리'로 기록된 점에서 대필자들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바울 서신의 편지 서두에 있는 발신자 명단과 편지 말미에 있는 바울의 서명 여부를 살펴보자.


편지 저작 순서

발신자

문장의 주어

바울의 서명 여부

갈라디아서

바울과 함께 있는 모든 형제

'우리'

내 손으로 쓴 큰 글자 (갈 6:11)

데살로니가전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우리'


데살로니가후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우리'

친필로 문안 (살후 3:17)

고린도전서

바울과 소스데네

'나'가 지배적

친밀로 문안 (고전 16:21)

고린도후서

바울과 디모데

'나'와 '우리' 혼용


로마서

바울

'나'

대필자 더디오 (롬 16:22)

빌레몬서

바울과 디모데

'나'

친필로 쓰노니 (몬 1:19)

골로새서

바울과 디모데

'나'와 '우리' 혼용

친필로 문안 (골 4:18)

에베소서

바울

'나'


빌립보서

바울과 디모데

'나'가 지배적


디모데전서

바울

'나'


디도서

바울

'나'


디모데후서

바울

'나'



게으름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1절 -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절 -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절 -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절 -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절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절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절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절 -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절 -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절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절 -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절 -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절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절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절 -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6절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절 -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배경 이해하기]
사탄은 성도가 잘못된 사상과 가르침에 빠져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현혹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적 재림에 대한 헛된 가르침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재림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도를 버리고 사탄이 인도하는 대로 불의와 악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신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항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2:1~4). 그의 말에 미혹된 성도들이 육체의 소욕에 빠져들고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최종 목표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미혹의 영을 보내셔서 그들이 거짓된 것을 믿게 하실 것인데, 이는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2:11~12). 성도는 올바른 종말관을 정립하고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1~5절)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에게는 중보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이 부탁한 기도 제목은 ‘주의 말씀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 능력 있게 전파되어 영광스럽게 되는 것’과 ‘그들을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선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는 사도 바울의 가장 중요한 사명과 연관됩니다(롬 1:1, 15; 15:19; 고전 1:17, 9:16; 빌 1:16; 엡 3:7; 골 1:23). 또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마다 방해하는 사악한 대적들로부터 자신과 동역자들을 건져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고전 9:12; 갈 1:7~9; 살전 2:2). 그리고 데살로니가 성도를 위해서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본문 연구 2: 게으름을 경계하고 선을 행하라(6~15절)
이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교훈을 전합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는 종말론이 퍼져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을 기다리며 더욱 성실하게 일하는 성도도 있었지만,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며 게으르게 지내는 성도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오해해서 무위도식하며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무질서하고 게으르며 바울 일행이 전한 복음의 전통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런 자들을 멀리하고 자신이 보여 준 삶의 태도를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바울 일행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라는 규정을 제시했으며, 성도에게 폐를 끼치거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열심히 수고하며 일했습니다. 바울은 성도에게 조용히 일하여 자기가 먹을 양식을 얻으라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합니다. 또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쉬지 않고 그분의 일을 행하고 계신 것처럼,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말고 끝까지 자기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연구 3: 주께서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16~18절)
‘평강’은 모든 사람의 안녕과 질서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평강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평강의 주’이시며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영원하고 참된 평강을 주실 수 있습니다.

[묵상 포인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도로 살아가면서 일하지 않고 거저먹으려는 생각과 태도를 버리고 서로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서로 평강의 문안을 나누어야 합니다.

1. 최근 내게 기도를 부탁한 사람이 있었나요? 그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위해 어떻게 기도했는지 나누어 보세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중보 기도는 무엇입니까?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의 본분입니다(벧전 2:9). 또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기도이며,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중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보 기도 사역자인 조이 도우슨은 중보 기도의 영역을 여러 가지로 말했습니다. 그녀가 언급한 것 가운데 10가지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직계 가족과 친척, 특히 그중에서 불신자, ② 친구, ③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 각 나라와 그 나라의 지도자, ④ 우리가 만나는 잃어버린 영혼, ⑤ 우리 주변의 불신자, ⑥ 청소년과 어린이, ⑦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지도자, 성도, 새가족), ⑧ 선교 단체 및 사회 선교 단체, ⑨ 가난한 사람, ⑩ 공산주의자, 타종교인, 이단에 속한 자, 인본주의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등.

2.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게을러서 문제가 되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각자의 생활에 배어 있는 게으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게으름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게 만드는 악이며, 거짓의 다른 모습입니다. 게으름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게으름이 한 국가를 멸망시킨 사례도 있는데, 바로 로마입니다. 로마의 멸망은 외적 상황보다 내부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내적 문제 한 가지가 바로 ‘게으름’입니다. 엄청난 부를 소유하게 된 로마 시민은 점차 게을러져서 노동을 멀리하고 소비와 오락만을 즐기다가 타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퇴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로마 시민의 요구대로 무상으로 빵과 서커스까지 제공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경제가 침체되었습니다. 이렇게 로마는 게으름 때문에 붕괴되기 시작했고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게으른 자들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고 오히려 일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인간에게 다스리고 돌보라고 명령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문]
공동체의 형제자매를 향해 관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게으름에서 벗어나 이웃에게 선을 행하며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선을 행하며 믿음의 본을 보이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1절 -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절 -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절 -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절 -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절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절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절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절 -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절 -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절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절 -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절 -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절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절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절 -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6절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절 -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기도를 부탁하며 주님이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길 원합니다. 또 바울의 모본대로 행하지 않는 게으른 자에게서 떠나고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바울은 평강의 주님이 때마다 그들 모두와 함께하시길 원합니다.

1. 중보 기도 요청과 격려 (1~5절)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할 때 교회 공동체는 생명력으로 채워집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신들을 위한 기도를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요청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널리 퍼져 영광스럽게 되도록, 악한 자들의 공격에서 자신들을 건져 주시도록 중보 기도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가 극심한 박해에도 믿음을 지키고 가르침에 순종하며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고 격려합니다. 이처럼 서로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가 있기에 믿음의 여정은 행복합니다. 믿음의 기도와 격려를 통해 하나님은 교회를 능력 있고 생명력 넘치는 곳으로 세워 가십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어떤 기도를 부탁하며 그들을 어떻게 격려하나요?
* 적용 질문
믿음의 동역자와 기도를 나누고 있나요? 동역자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격려할까요?

2. 게으름과 교만을 경고함 (6~18절)
각자 책임을 다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쓸 때 교회 공동체는 거룩한 전파력을 발휘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 재림에 대한 오해로 게으름과 교만에 빠진 형제들을 징계하라고 명령합니다. 게으름은 의식이 비만에 걸린 것이며, 복음으로 치유받아야 합니다. 특히 세상의 종말을 핑계로 게으름을 일삼는 자들은 올바른 종말 사상을 배우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편 규칙을 무시하고 고집대로 하는 교만한 성도는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시당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의 겸손을 보고 자신의 교만을 깨달아 순종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 이런 자들이 있다면 말씀으로 회복되어 교제권 안에 다시 들어오도록 기도하고 권고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선을 행하고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어떤 사람들을 징계하고 무엇에 힘쓰라고 하나요?
* 적용 질문
본문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버려야 할 모습은 무엇이며, 사랑으로 권고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 기도 제목을 나누고 격려할 지체가 있음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믿음의 공동체와 더불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향해 나아가는 참된 믿음의 여정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복음에 굳건히 서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17절]
1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절 -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절 -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절 -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절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절 -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절 -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절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절 -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절 -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절 -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3절 -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절 -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절 -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누가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하나님이라 높일 것입니다. 주님이 강림해 불법한 자와 진리를 믿지 않는 자를 심판하시고 성도가 영광 얻게 하실 것이기에 복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1.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라 (1~12절)
재림에 대한 바른 지식과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이단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날이 이미 이르렀다고 생각한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주님의 날이 이르기 전에 큰 배교와 불법한 자(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사람들이 거짓 가르침, 거짓 표적에 미혹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셔서 불법한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이미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마침내 승리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씀의 교훈을 따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주님의 재림 전에 먼저 일어날 일은 무엇이며, 재림 후에 주님이 하실 일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교회와 성도를 흔드는 이단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받은 가르침을 지키라 (13~17절)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믿음 위에 굳게 서 이단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다시 확인시킵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며 영원한 위로와 소망을 은혜로 주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함께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그분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대한 바른 가르침과 확신을 강하게 붙들어 고난과 유혹과 가르침을 이기고 굳게 서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구원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지금도 구원의 완성을 위해 내 삶에 지속적으로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나요?

오늘의 기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제게 이루어 주신 구원을 기쁨과 감사로 되새기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소서. 거짓 교훈에 미혹되지 않고 오직 바른 복음의 가르침대로 치우침 없이 걷도록 한결같이 인도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

[데살로니가후서 1장 1절~12절]
1절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절 -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절 -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절 -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절 -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절 -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절 -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절 -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절 -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절 -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절 -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는 믿음으로 박해를 견디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합니다. 성도가 겪는 환난은 공의로운 심판의 표로, 하나님이 갚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이름이 데살로니가 성도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도 주님 안에서 영광을 받도록 항상 기도합니다.

●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바울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주님의 날에 있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과 성도의 영광에 대해 바르게 일깨워 줌으로 그들을 격려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과 믿음이 자라면 시련과 고난을 이길 힘도 생깁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워지려면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어떻게 이룰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내 삶과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 study
(1~18절)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 - 본 서신의 결론에 해당되는 본장은 바울의 실제적인 교훈이 언급된 부분으로서 재림을 앞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과연 어떠한 자세로 현실 생활에 임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의 고백과 같이 재림과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신실하고 근면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히 10:25; 벧전 4:7).
[1절]
종말로(살전 4:1) 주의 말씀이...달음질하여. 복음 사역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제거되어 자유로운 여건 가운데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현상을 나타낸 표현으로서 데살로니가 교인들 사이에 증거된 놀라운 복음의 승리를 암시하고 있다(살전 1:5, 6, 8; 살전 2:13).
[2절]
무리하고에 해당되는 헬, '아토포스'는 '장소', '지위', '위치'란 의미의 '토포스'와 부정(否定)의 뜻을 지닌 '아'가 합쳐진 말로서 탈선 또는 무질서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악한으로 번역된 헬, '포네로스'는 타락하고 무가치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무리하고 악한 사람'이란 복음 사역을 방해(딤전 1:20)하는 적그리스도를 비롯하여 불신자(1:8; 행 16:19~24), 바울을 괴롭혔던 유대인들(행 18:5, 6, 12, 13),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박해했던 유대인들(행 17:5~9; 살전 2:14~16)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3절]
주는 미쁘사. 인간의 거짓 됨을 반하는 하나님의 참되심(롬 3:4), 신실 또는 성실하심을 나타내는 말로서 바울이 그의 서신을 통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고전 1:9; 고전 10:13; 살전 5:24),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 고백적 표현이다.
[5절]
이 기도는 바클레이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내적 특징과 외적 특징을 위한 기도이다. 이때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요소는 확신과 그 확신이 가져다 주는 평화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요소는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여 주시는 인내이다. 그리스도인의 외적인 특징인 '인내'는 다른 사람이 파괴하면 그는 건설하고, 다른 사람이 넘어지면 그는 그의 짐을 계속 지고 전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특징은 내적 특징인 하나님의 사랑을 그의 마음에 가질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더욱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채워지고 생활이 열매로 풍성해져야만 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고난당한 일과 인내로 승리한 것을 그대로 본받아야 할 것이다.
[6절]
규모 없이 행하고. 그릇된 재림관과 임박한 종말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 불성실하고 무위 도식하는 무질서한 생활을 의미한다(살전 5:14). 우리에게 받은 유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체류할 때 그들을 향해 선포했던 복음을 비롯하여 그 후 서신을 통해 제시한 교훈과 권면까지도 포함된다(살전 4:11, 12; 설전 5:14).
[7~9절]
성도와 일. 당시 복음 전도자들에게는 교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고전 9:4) 바울 일행이 복음 사역에 드는 비용을 스스로 마련했던 사실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바울은 이러한 일을 예로 들어 무위 도식하는 나태한 교인들에게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적 입장에서 본 직업의 기원 :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인간들은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추방됨으로써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게'(창 3:19)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을 시작하게 되었은데 이것이 바로 성경에 나타난 직업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2) 성령에 입각한 직업의 의의 : 자신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12절),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8절), 일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기 위해(9절), 탐욕의 악한 유혹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3) 그리스도인의 직업 윤리 : 수고한 만큼의 결과를 기대해야 한다(시 128:2),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10절), 자신이 가진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의 문화 명령(창 1:28)과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마 28:19, 20)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직업 자체는 자기 실현의 중요한 방편으로서 신성하며 귀천이 없다.
4) 고용인과 고용주 
  ① 고용인의 의무와 권리 : 받은 보수에 만족해야 한다(눅 3:14), 할당된 일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근실해야 한다(잠 22:29), 합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마 10:10), 품삯을 제때에 받을 권리가 있다(레 19:13),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룻 2:14). 
  ② 고용주의 의무 : 고용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레 25:40~43; 욥 31:13~15; 엡 6:9; 골 4:1), 안식일에는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출 20:10; 신 5:14),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되(렘 22:13; 눅 10:7; 롬 4:4) 체불하지 말아야 한다(레 19:13; 신 24:15; 약 5:4, 5), 고용인을 학대하거나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신 24:14; 잠 22:16; 말 3:5), 인심이 후해야 한다(욥 31:31).

5) 결론 :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살펴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과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직업에 종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불신자들이 생계 유지 또는 자아 성취의 수단으로 직업을 생각하는 데 반해 성도들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자신의 일에 성실치 못해 타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거나 혹은 나태함으로 인해 가난해져서 도적질 할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직업에 임하는 자신의 자세가 하나님의 영광과 깊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성실한 태도로서 불신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나아가서는 이로 인해 하나님을 증거하며 그분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마 5:16).
[13절]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여기에서 '선'은 악행에 반(反)한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행위를 뜻한다(롬 7:21; 고후 13:7; 갈 6:9). 따라서 이 구절은 몇몇 나태한 자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지 간에 부화 뇌동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에 의거하여 선을 시행해야 함은 물론 어떤 어려운 국면에 처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는 의미이다(갈 6:9).

[14~15절]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내려진 이 징계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권고했던 징계 곧 완전한 절교와 추방(고전 5:9~13)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범행 정도가 고린도 교인들처럼 극도로 패역하고 완악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되었겠지만 바울은 징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불순종하는 자들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징계를 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을 원수같이 여기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형제같이 생각하고 권면할 때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될 뿐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딤후 2:25) 의를 배우며(사 26:9) 참된 사랑을 알게 되는데(히 12:6)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징계라 할 수 있다.

[17절]

바울 서신을 통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표현 양식으로서(롬 16:22; 고전 16:21; 골 4:18) 본 서신이 그의 친서임을 완벽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이로 보아 바울은 통상 대필자를 기용해 편지 내용을 받아 적게 한 후 마지막 부분에서는 친필로 사인(sign)했음을 알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이 사도들의 이름을 사칭해 위조 편지를 발송하는 일이 왕왕 있었으므로 그의 수신자들이 이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서론, 서신서의 인사말과 사도권의 주장>.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세심한 배려와 지극한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1:11, 12; 살전 2:19, 20).

 

# 해설

중보 기도의 요청가 확신 (1~5절)

바울은 자신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들어 교회를 향하여 중보 기도를 요청하는 한편,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교회를 보호하사 택하신 백성을 끝날까지 보호하실 것을 확신하고 또 간구하고 있다.

종말을 전제한 현재의 실천 (6~15절)

본문에서는 종말을 핑계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팽개치는 사람들을 향하여 건전한 신앙 원리의 실천에 그 주안점을 두어 교훈하고 있다.

끝맺는 인사 (16~18절)

인간인 바울 자신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가르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축복하면서 서신을 끝맺고 있다.

 

# 핵심

1~15절

재림에 대한 잘못된 사상으로 인해 탈선적인 행동을 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바로잡기 위해 베푼 올바른 신앙 생활에 관한 교훈이다.

 

# 묵상

바울의 궁극적인 목표 (1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울은 두려워하거나 동요하지 말며 하나님의 계획인 복음의 전승을 지켜야 했습니다.

평상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6절)

그리스도인은 평상시에 규모 없이 행한 자를 떠나야 합니다. 이는 일하지 않고 게으르며 빈둥거리는, 무질서한 자를 떠나라는 말입니다. 또한 유전대로 행하지 않는 자를 떠나야 합니다. 이는 교훈과 가르침을 지키거나 행치 않고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자와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이 취한 자세 (7~9절)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규모 없이 행하지 않고,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먹되 값 없이 먹지 않았으며, 수고하며 주야(晝夜)로 일했습니다. 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고 자급 자족한 이유는 성도에게 모범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 (13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이는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지금의 자세를 계속 견지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따르는 상급은 의롭다 칭함을 받고(시 112:9), 영혼을 보호받으며(잠 11:17), 빛을 발하고(사 58;10),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며(마 5:7), 선을 행한 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눅 6:38).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7절)
재림에 대한 권고와 교훈 - 본장에는 첫 번째 편지를 통해 제시된 재림에 관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인 몇몇 교인들로 인해 전체가 흥분과 불안 가운데 동요하게 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엄중한 권고와 교훈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을 통해 우리들은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신앙관은 그들 자신만의 오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성도들에게까지 극심한 혼란을 가져다 주고 마침내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1절]
그리스도의...그 앞에 모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그분 앞에 모이는 사건 곧 '휴거'를 가리킨다<살전 4:14~17, 휴거에 대하여>.
[2절]
주의 날이...그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심지어 바울로부터 그 사실을 재삼 확인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설전 5:1, 2) 몇몇 사람들의 그릇된 주장에 의해 심히 흔들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재림과 종말에 관한 문제는 모든 성도들로부터 가장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교리 중 하나로서 확고한 신앙 없이는 조그만 반대나 이견(異見)에도 현혹되기 쉬운 소지를 안고 있다. 특히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러한 문제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날은 천사나 그 어느 누구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알고 계시는 은밀한 일이다(마 24:36). 더욱이 오늘날 이러한 베일에 가린 진리를 악용하여 자칭 재림주라고 하는 자들이 우후 죽순처럼 득세하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엡 6:17) 그릇된 가르침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벧전 5:8; 벧후 3:3~17).
(3~12절)
적그리스도의 출현 - 본문은 말세에 출현하게 될 적그리스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적그리스도의 위장술은 대단히 뛰어나서 때로는 성도나 종교 지도자의 모습으로 가장하며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로까지 사칭하는 완악함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영적 직관력과 안목을 키우고 그들의 거짓 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여(엡 6:13~18) 그들의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벧전 5:8, 9).
[3절]
배도(背道)하는 일. 신약에서 이곳과 행 21:21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여기서는 복음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 출현할 것을 의미한다(마 24:10~12). 불법의 사람.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멸망의 아들. 문자적으로는 '멸망되기로 예정된 자'란 뜻으로 앞의 불법의 사람과 동일 인물이며 그의 종국을 보여 주는 이름이다.
[4절]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교만의 극치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는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위치에 둘 뿐만 아니라 자신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아 숭배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이때 불신자들 곧 세상에 속한 자들은 그의 꾐에 빠져 적그리스도를 숭배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게 될 것이다(계 13:11~18).
[6절]
본절은 '아시다시피 그 자(불법의 사람)는 지금 어떤 힘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러나 제때가 되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공동번역)라는 뜻이다.
[7절]
막는 자. 사탄, 로마 제국, 교회 등이라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8절]
저를 죽이시고...폐하시리라. 적그리스도의 최후가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계 20장). 주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적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 받아 성도들을 핍박, 미혹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불신자들에게 사탄 숭배를 강조하지만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탄과 그 추종 세력은 폐배하여 영벌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계 20:10~15)<서론,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
[9~10절]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의 구체적인 활동상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계 13장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의 활동과 상응한다.
[11~12절]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의 그리스도 배척과 우상 숭배를 용납하시는 이유가 서술되어 있다. 한편 세상에 속한 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한 세력(사탄의 세력)까지도 당신의 주권하에 두시며 그들의 활동을 주관하신다는 점을 본문은 분명하게 보여 준다(삼하 24:1; 왕상 22:19~23).
[13~14절]
앞서 사탄에 속한 대적들 곧 적그리스도에 대한 멸망을 언급한 바울은 여기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임할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면서 그들에게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오늘날의 성도들은 비록 심판 날이 임박할지라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신자들에게 임할 구원의 은혜를 열망하면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결한 신앙 생활에 힘써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15절]

유전이란 통상 모세 때부터 내려오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율법을 가리키나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고 사도들에 의해 계승되어 온(3:6~7) 복음을 의미한다(마 28:20).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살전 3:11절과는 달리 하나님이 그리스도보다 뒤에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성부와 성자를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그의 기독론을 표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구원 사역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직무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인 듯하다.

 

# 해설

종말 전에 있을 징조와 권면 (1~12절)

본 단락은 살전 5:1~11절의 내용을 오해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당시 초대 교회의 보편적인 상황처럼 자신들이 당하는 핍박을 임박한 예수 재림의 징조로 여김으로써 나타난 극단적인 현실 도피적 경향에 대한 답신이다. 이에 본장은, 물론 재림이 예기치 못한 때에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 뚜렷한 전조가 있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라면 누구나 예비할 기회가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권면과 기도 (13~17절)

교회를 향해서는 오해를 버리고 오직 복음에 근거한 정통 신앙에 굳게 설 것을 권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교회에 굳은 신앙을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 핵심

1~17절

주의 재림에 관한 교인들의 오해를 시정하기 위해 재림 전에 있을 종말론적 현상을 증거함으로써 거짓 교훈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 묵상

재림 전에 세상에 나타날 일 (3절)

주의 날이 이르기 전 이 세상에는 배도(背道)와 불법(不法)의 사람인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자신을 하나님이라 말하며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멸망의 아들은 곧 멸망하게 되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불법한 자의 출현과 심판 (7~12절)

불법한 자가 세상에 출현하는 시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출현을 허락하실 때입니다. 그의 출현이 저지되고 있는 이유는, 아직 그가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불법한 자가 지금은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서 나타나지만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는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아 구원을 얻지 못하고 불의를 총애했기 때문에, 그 불의로 인해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2절)
고난받는 자에 대한 약속 - 본 서신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두 번째 편지로서 앞서 보낸 글과 거의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첫 번째보다는 훨씬 엄격한 어조의 훈계가 제시되어 있다. 즉 바울은 첫 번째 편지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못된 신앙관(재림과 종말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발생된 신앙적, 도덕적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정어린 마음으로 권고하고 교훈했으나 그들이 바울이 가르치고자 했던 내용을 잘못 이해했고, 신앙적으로 초보 단계에 있었던 그들에게 단 한 번의 교훈으로 어려운 교리를 일시에 이해시키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첫 번째 편지에서 온전하게 가르침을 다 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그는 재차 편지를 보내 재림에 대한 오류를 더욱 엄중히 지적하고 나아가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한 보다 온전한 신앙을 심어 주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인간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특별히 강조되어 있는 본장은 환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인내하는 믿음을 보여 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칭찬을 비롯해 성도들을 박해하는 대적들에 대한 심판과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간구가 언급되어 있다<욜 서론, 여호와의 심판>.
[2절]
편지의 서두 곧 문안 인사에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첫 번째 편지와 동일한 형식,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살전 1:1).
[3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보여 주었던 믿음과 사랑은 기독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덕목(고전 13:13)임과 동시에 모든 성도들에게 부여된 가장 중차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릇된 재림관에 따라 많은 문제점을 유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믿음과 사랑 그 자체만으로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즉 성도들의 삶이란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요일 4:20, 21).
[4절]
여기에는 환난과 심판에 관련된 여섯 가지 중요한 교훈이 암시되어 있는데 이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의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해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마 5:10~13).
2)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한 징표, 곧 핍박자에게는 멸망의 표시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된다.
3)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한 과정이다(벧전 1:7).
4) 성도들의 고난 곧 믿음의 연단은 영혼의 구원으로 이어진다(벧전 1:9).
5) 따라서 성도들은 현재의 고통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인내해야 한다(약 1:2, 3; 벧전 1:6; 벧전 2:19, 20).
6) 성도들을 핍박하거나 하나님을 떠나 사는 자들은 심판 날에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된다(렘 17:10; 계 18:21).
[6절]
너희로 환난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본구절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죄를 간과하지 않고 반드시 형벌하시고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신다. 즉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報應)의 원칙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으로(히 10:30) 반드시 그들이 행한 악에 따라 갚으신다(롬 1:27). 그러므로 핍박받는 성도들은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여야 한다'(살전 5:15). 그뿐 아니라 더 적극적인 태도로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야 한다(벧전 3:9).
[7절]
불꽃 중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동반되는 주권과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출 3:2; 사 66:15; 계 1:13~15).
[10절]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기이히 여기다'에 해당되는 헬, '다우마조'는 '찬양하다', '감탄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본구절은 예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성도들은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감탄과 찬양을 아끼지 않으며 불신자들은 두려움과 공포로 심히 떨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이로 보아 예수께서 심판주로 강림하실 때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실로 놀라운 초자연적 기사와 권능이 임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마 24:29~31; 막 13:24~27).
[11절]
부르심에 합당한 자. 구원받을 자격을 갖춘 자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삶을 사는 자(레 11:45; 대상 16:29; 눅 1:74, 75; 고후 7:1; 벧전 1:16; 벧후 3:11)로서 앞에 언급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5절)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다.

# 해설
은혜와 평강의 인사 (1~2절)
여기서 은혜는 헬라인의, 평강은 유대인의 관용적 인사말이었는데 사도 바울은 자신의 편지 서문에 언제나 이 둘을 사용함으로써 복음 자체는 물론 바울 자신의 복음 사역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총망라하는 보편성을 표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난받는 자를 향한 약속 (3~12절)
본서는 교회의 기초가 도전을 받고 종말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 안팎이 흔들리는 교회를 향하여 바울이 보낸 첫 편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외부적 장해 요인과 함께 다시금 내부에서 종말론에 대한 오해가 일어나게 된 것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 핵심

1~12절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문안 인사와 환난 중에서도 믿음의 성장과 인내를 보이는 데 대한 감사와 격려로써 본서를 시작하는 내용이다.

심판의 엄정성 (5~10절)

바울은 성도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리라고 했다. 그분의 사랑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구속(救贖) 사역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도 주님을 믿기는커녕 오히려 성도를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업신여기는 짓이며, 그러한 악행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다. 이 심판은 공의의 원칙에 따라 철저하고 엄정하게 실행될 것이다.

 

# 묵상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들의 소망 (5~12절)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고 모든 것을 기뻐함으로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영광을 얻으시고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6~7절)

하나님의 공의란 하나님의 경륜에 기인한 것인데,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형벌이 따르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나타나실 때인 재림시에 실현됩니다.


 

출처 : 바이블25

종말을 대비하는 참된 삶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1절 -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절 -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절 -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절 -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절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절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절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절 -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절 -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절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절 -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절 -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13절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절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절 -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6절 -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절 -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 주제별 목록 작성 
말세에 성도가 행해야 할 명령
2절 : 악에서 건져달라는 기도를 해야 함
4절 :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함
5절 :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가져야 함
6절 : 규모 없이 행하는 자를 떠나야 함
10, 12절 : 열심히 일해야 함
13절 : 선을 행하고 낙심치 말아야 함
15절 : 말씀을 따르지 않는 형제에게 권면해야 함

* 도움말
1. 유전(6절) : 넘겨준 것, 전통. 여기서는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교훈을 가리킨다.
2. 규모 없이 행하다(6, 7, 11절) : ‘규모 없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탁토스’는 ‘정함이 없는, 무질서한, 규칙적이지 못한, 훈련되지 못한, 게으른’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행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파테오’는 ‘돌아다니다’라는 뜻이다. 이는 임박한 종말론 때문에 더 이상 현실 생활에 집착하는 것이 의미없다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지칭한다.

* 말씀묵상
1. Message(메시지)
바울은 종말을 대비하는 참된 자세는 공동체를 든든히 세우는 일과 생업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임을 교훈합니다.

2. 종말의 대비
데살로니가 교회에 유포된 임박한 종말론처럼 종말이 그렇게 성급히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지런히 모아 들일 필요가 있었고, 성도들의 기도로 이 일에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복음을 전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종말을 대비케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임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강권하여 그리스도를 따르게 해야 합니다.

3. 생업에 충실하자
한편 바울은 생업에 충실치 못한 자들을 경계함으로써 현세의 생업에 충실하는 것이 종말을 예비하는 바른 자세임을 교훈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을 약속하셨으므로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업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돌보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말세를 앞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충실하지 못함을 인하여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빛이 감춰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말세에 성도가 행해야 할 명령에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사랑과 믿음은 왜 종말을 대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까?(4-5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종말을 예비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2. 현실의 생업에 충실한 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참된 자세라는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적용 기도
어려움이 많은 세상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여 주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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