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공동체 안에 있는 거짓 선생을 살피십시오

[베드로후서 2장 12절~22절]
12절 -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절 -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절 -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절 -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절 -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절 -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절 -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절 -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절 -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절 -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절 -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거짓 선생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멸망과 불의를 당하며 쾌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속임수와 음심으로 죄를 짓고 약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발람의 길을 따릅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저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낫습니다.

1. 이성 없는 짐승 같은 거짓 선생들 (12~16절)
진리에 대한 무지와 왜곡은 신앙과 도덕의 타락을 초래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처음에는 마치 복음의 바른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성적 탐욕에 빠져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이 행하다가 결국 '저주의 자식'이 되고 맙니다. 이들은 말씀의 교사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지만, 실상은 복음을 수단으로 이용해서 사적인 명예와 이익, 개인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삯꾼인 것입니다. 진리에서 벗어난 무절제하고 음란한 삶은 믿음이 연약한 지체를 넘어뜨리고, 교회의 거룩함을 무너지게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해서 신앙과 삶이 진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믿음의 변질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요?
* 적용 질문
내 신앙과 삶, 그리고 공동체가 거룩함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2. 멸망의 종인 거짓 선생들 (17~22절)
참된 가르침은 말씀에 부합한 삶의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거짓 선생들은 겉으로는 복음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정욕과 음란, 탐욕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삶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럴듯한 말과 교묘한 논리로 연약한 성도의 귀를 솔깃하게 하지만, '물 없는 샘'처럼 허망하고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처럼 헛될 뿐입니다. 복음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따르는 삶을 저버리고 진리에서 돌아서는 사람은 개나 돼지와 같은 어리석음은 짐승에 불과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보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개가 그 토했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 적용 질문
복음을 알면서도 거룩한 말씀대로 살지 않거나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을 안다고 자처하면서 세상과 함께 음란과 쾌락, 탐욕으로 달려가는 거짓 선생의 모습이 제게는 없는지 돌아봅니다. 제 인격과 삶이 그리스도를 아는 바른 지식으로 충만해져서 세상의 더러움을 이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거짓'을 분별하는 방법은 '참'을 바로 아는 것

[베드로후서 2장 1절~11절]
1절 -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절 -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절 -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4절 -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절 -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절 -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절 -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절 -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절 -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절 -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절 -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거짓 선생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끌어들여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니 진리의 도가 비방받을 것입니다. 탐심으로 말을 지어내 이득을 삼는 그들을 주님이 심판하시고,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1. 거짓 선생들의 특징 (1~3절)
성경의 가르침을 바로 아는 것이 거짓 가르침에 빠지지 않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참선지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함께 일어났던 것처럼, 교회 안에 거짓 선생들은 늘 존재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고 성적인 타락과 이기적인 탐욕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이러한 모습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불신자들로 하여금 진리의 도를 비방하게 하며 진리에서 더욱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붙들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삼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멸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거짓 가르침을 잘 분별해서 진리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거짓 선생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말씀을 내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세요.

2. 거짓 선생들에 대한 심판 (4~11절)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죄악과 불의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신 것처럼, 불경건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홍수로 멸하신 것처럼,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해서 재가 되게 하신 것처럼,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 선생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불의한 자들이 부와 권력을 얻고, 쾌락과 음란을 좇는 자들이 행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락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하며, 자신의 마음과 삶을 항상 경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성도는 무서운 심판 중에도 경건한 자들을 보호하시고 건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주님 앞에 의로운 심령으로 서서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자로 남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성경은 어떤 사건을 통해 거짓 선생들에 대한 분명한 심판을 보여 주나요?
* 적용 질문
세상의 죄와 타락을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경건한 자를 지키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널리 선포되게 하소서. 저와 공동체 안에 거짓 가르침에 대한 분별력을 주시고, 이 시대의 죄와 타락을 보며 상한 심령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 하나님 말씀을 품는 삶

[베드로후서 1장 12절~21절]
12절 -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절 -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절 -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절 -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절 -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절 -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절 -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절 -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절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도가 이미 진리에 서 있지만 베드로는 자기가 떠난 후에도 이를 생각나게 하려 합니다. 주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전한 것은 그가 주의 위엄을 친히 보았고 확실한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1. 변화산에서 만난 그리스도 (12~18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함을 깨달은 베드로는 당시 성도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항상 기억할 수 있도록 힘씁니다. 그는 변화산에서의 경험을 언급하며 자신이 전한 진리가 인간이 만든 교묘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에 의한 것임을 확증합니다. 하나님은 변화산 사건에서 하늘의 소리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존귀와 영광을 가지신 분임을 친히 나타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십니다. 성도는 이 확실한 사실에 삶의 초점을 맞추고 우리의 전 존재를 그분의 신실하심과 거룩하심으로 채워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전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베드로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변화산 사건을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진리가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힘쓰고 있나요?

2. 성경을 통해 만난 그리스도 (19~21절)
그리스도인은 확실한 하나님 말씀을 믿음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표하는 복음의 안내서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로서 구원의 도리와 성령의 역사, 믿음과 인내로 이루어야 할 최종적인 승리의 길을 암시적으로 제시해 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사람이 개인의 생각과 상상력을 동원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성경 해석은 반드시 성령의 조명 안에서 전체 문맥과 역사적 맥락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성도는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발견하고 그 말씀에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 묵상 질문
기록된 성경이 개인적인 영적 체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꿈이나 신비한 체험 등을 말씀보다 더 믿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말씀 생활에서 결단이 필요한 부분을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제 평생 사는 동안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통해 인도하시는 성령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말씀 위에 제 믿음을 굳건히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항상 드러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베드로후서 1장 1절~11절]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절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절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절 - 이로써 그 보배로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절 -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절 -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절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절 -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절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절 -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배경 이해하기]
베드로후서는 오늘날 터키 북부 지역인 소아시아 반도의 로마령 5개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극심한 박해를 견디고 있던 성도를 위로하기 위한 두 번째 편지입니다. 베드로전서를 보낸 지 약 2년 후인 AD 66년에 베드로후서를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베드로는 자기가 죽을 때가 가까웠음을 암시합니다(1:13~15). 사도이며 목회자였던 베드로는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성도가 경계하고 대적하도록 지침을 줘야 했습니다.
그 당시의 거짓 선생들은 주로 영지주의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도의 윤리를 무시해도 된다는 도덕 폐기론을 내세우고, 예수님의 성육신과 재림을 부인했습니다. 세상의 기독교 핍박도 문제였지만, 이단의 교리에 미혹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믿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성도가 생기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임을 주장하며, 성도에게 예수님의 강림을 확신하고 주의 날 곧 심판의 날을 기다리라고 엄중히 권면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고 계시는 것을 기억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3:8~13).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부르심(1~7절)
베드로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였습니다. 그는 첫 번째 편지를 보냈던 소아시아 5개 지역에 다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수신자를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칭하는데, 여기서 ‘동일하게 보배로운’이라는 구절은 ‘같은 특권을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곧 베드로 같은 사도든 수신자인 성도든 모두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모두 같은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모두에게 주셔서 사도들뿐만 아니라 그의 편지를 받는 모든 성도가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선택하는 정욕을 피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여기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는 말은 타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 본래부터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어서 이것을 잘 계발하면 성인(聖人)이 되고 거스르면 악인(惡人)이 된다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서만 신성한 성품 곧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갑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여덟 가지 덕목, 즉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갖추라고 권면합니다.

본문 연구 2: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택하심(8~11절)
베드로가 말한 8가지 덕목은 개인이 수양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신성한 성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라면 이 8가지 덕목을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세상적인 탐욕으로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진실의 빛을 잃어버리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며, 자신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어버리고 죄악 된 과거로 돌아가려 합니다. 성도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벧전 1:15; 2:9, 21; 3:9; 5:10)과 택하심(벧전 1:2)을 확고하게 붙들 때 실족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게 해 주신 은총을 잊지 않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성도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 포인트]
우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의에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결국 썩어 없어질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곧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자신 안에 채워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1. 5~7절에 언급된 여덟 가지 신성한 성품 중에서 내게 있는 것과 더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그분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은 그분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욱 든든히 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하나님은 세상의 미혹과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에게 8가지 덕목을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로서(엡 2:8~9) 성도의 삶의 기초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도의 응답입니다. ‘덕’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는 일을 말합니다. ‘지식’이란 성도가 덕 있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나 통찰력을 말합니다. ‘절제’는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는 능력으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3). ‘인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고난과 악에 대항하며 용기 있게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는 것을 뜻합니다. ‘형제 우애’는 초대 교회 시기에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믿음’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사랑’은 모든 덕목 가운데 으뜸이며(고전 13장),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완전한 사랑의 본을 이 세상에 보여 주셨습니다. 곧 이 ‘사랑’은 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하나님이 우리 속에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요 3:16; 롬 5:5; 요일 3:16; 4:8). 그리스도인에게 이 모든 덕목은 중요하며, 자신의 삶에서 이 모든 덕목을 ‘흡족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2.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가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깊이 읽고 바르게 믿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선포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소그룹 속에서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증을 나누고 한마음으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셋째, 베드로가 언급한 8가지 덕목을 갖추고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덕목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고 결국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이를 위해서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서로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소그룹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믿음이 성숙하도록 돕고 함께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신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갑니다.

[기도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저를 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신성한 성품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천국의 삶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보배로운 믿음 위에 주님의 성품 더하십시오

[베드로후서 1장 1절~11절]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절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절 -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절 - 이로써 그 보배로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절 -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절 -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절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절 -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절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절 -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예수의 종이요 사도인 베드로가 주의 의로 믿음을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합니다. 주 예수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과 큰 약속을 주사 그들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힘써 열매 맺고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 실족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1.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성도 (1~4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님의 의에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됩니다. 이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더욱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그분의 마음과 뜻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더 많이 누립니다. 또한 우리가 경건한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그분의 권능으로 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가 정욕 때문에 부패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의인은 오직 이 보배로운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 묵상 질문
보배로운 믿음은 성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성품은 무엇인가요?

2. 믿음 위에 더할 덕목 (5~11절)
성도의 믿음은 삶에서 열매를 맺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믿음'을 가졌다면 그 믿음을 삶에 실천할 능력인 '덕'을 갖춰야 합니다. 덕은 '지식'을 통해 분별력과 통찰력을 구비합니다. '절제'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성도는 절제하되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삶으로,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형제 우애'로 나아가야 합니다. 형제 우애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희생하며 용서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만약 이런 삶의 열매가 없이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부르심과 택하심'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때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는 복을 누립니다.
* 묵상 질문
믿음 위에서 행하라고 하신 덕목을 하나하나 묵상해 보세요.
* 적용 질문
내가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신앙 덕목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인 제가 주님의 의에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더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Ⅰ. 본 장의 목적 3:1,2

 

베드로는 그 문제를 더 잘 권고하기 위해,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기록하였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1절).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서 명하신 것은 자주 기억되어져야 하며 또 기억하도록 강요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순수한 마음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격려되어져야 한다.

 

Ⅱ. 기롱하는 자들의 등장 3:3-7

 

기롱하는 자들, 즉 죄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조롱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말세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도, 즉 복음을 조롱할 것이다. 신약에서의 신령하고 순결한 예배는 인간의 정욕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언급되고 있다.

(1) 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3절) : 그들은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다. 즉 그들 자신의 마음의 생각과 욕망을 좇는 자들이다. 그들은 임의대로 살며 임의대로 말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길을 행하며 그들 자신의 말을 말하듯이 또한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며 그들 나름대로 원칙들을 정하게 될 것이다.

(2) 그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뇨' 하고 기롱하여 말할 것이다(4절) : 만일 이 신앙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다른 모든 신조들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이 신앙은 다른 모든 신조에 결정적인 의미를 채워주며 부여해 준다. 우리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그들은 주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들은 그가 재림하시리라는 말조차 비웃을 것이다. 신자는 그가 재림하실 것을 바랄 뿐 아니라 그가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가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확신한다. 그러나 이 유혹자들은 그가 재림하시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온갖 것을 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그가 결코 재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온갖 것을 행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 약속을 비웃을 것이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3) 그들은 조롱하면서도 마치 논쟁하는척 할 것이다(4절) : 이것은 기초가 탄탄한 추론의 방법은 못된다 할지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음흉한 것이다. 이것은 약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쉽다. 그 약속을 받았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그들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어떤 시대에서도 그것이 실현될만한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가 스스로 그것으로 인해서 근심하는가? 바로 오늘까지도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행하시지 않은 일은 행하실 수 없거나 아니면 결코 행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것이다.

(4)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미 과거에 있었던 변화, 즉 노아의 시대에 세상이 물에 잠겼던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다(5절). 즉 그들은 입은 다문채 슬쩍 넘겨버리려고 하였다.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이 찾으려 하지 않는 진리를 믿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알고자 유의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죄 가운데 빠지게 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1) 물심판(5,6절) : 우주적인 대홍수의 때에 원리원칙이 이상하게 바뀐다. 즉 하나님께서 전에 둘로 갈라 놓으셨던 물을 이제 진노 가운데서 다시 하나로 합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되어진 것이었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던 것도 바로 그의 능력있는 말씀에 의해서 였다.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후에 세상이 혼돈케 되어지고 파멸케 되어진 것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인간까지 철저히 멸망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로 말씀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남께서 이전에 세상에 행하신 변화이며 이들 기롱하는 자들이 보지 못하고 넘어간 변화이다.

  2) 앞으로 임할 불심판(7절) : 우리는 여기서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운 기사를 접하게 된다.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심판은 아직 임하지 않는 것으로 비록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임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한번 우주적인 대홍수에 의해 멸망되었던 사실은 세상이 다시 우주적인 큰 불에 의해서 멸망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로 하여금 그것이 있을 것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자. '이제 하늘과 땅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다. 즉 그것들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되어진 바 된것'이다. 심판의 날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이 멸망하는 날이다. 이제 장래 있게 될 심판을 기롱하는 자들은 그 날이 보응의 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쓰라. 이는 그 날이 너희에게 구원의 날이요 유쾌하게 되는 때가 되게 하려 함이다."

 

Ⅲ.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음 3:8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부름을 통해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온유함과 애정을 가지고 말하고 있음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기를 거절한 경건치 않은 가련한 자들에 대해서 자비로운 관심과 선의의 사랑을 가졌다. 그리고 참된 신자들에 대해선 특별한 존대를 표하고 있다.

(1) 베드로가 역설한 진리(8절) : 그것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이 항상 주 앞에 드러나 있다.

(2) 이 진리의 중요성 : 이것은 베드로가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당부한 한 가지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의 화평에 관한 진리이다. 따라서 그는 그것이 우리의 눈에 가려지지 않기를 위해서 애쓰고 있다. 즉 원문에 있는대로 하자면 '이 한가지가 너에게 숨겨지지 않도록'이란 말이다. 그러나 영원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Ⅳ.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 3:9-10

 

우리는 여기서 '주께서는 더디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즉 그는 정해진 때를 늦추지 않으신다. 그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강림하시기로 정해진 때를 지키실 것이다. 선한 사람조차 하나님께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실상 그 시간이란 자신들이 정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는 다르다.

(1) 사람들이 더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상은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이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의 백성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시간을 더 주기 위함이며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로 자랄 시간을 더 주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그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본성으로 행한 모든 죄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을 더 엄하게 다루실 것이다.

(2)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올 것이다(10절).

  1) 주의 날의 확실성 : 그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2) 그 날의 불시성 : 그 날은 도적같이 밤에, 즉 사람들이 모두 안심한 가운데 잠자고 있을 때에 임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생각지도 못하는 시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가장 마음을 놓고 있을 시기에 주께서 강림하실 것이다.

  3) 강림의 장엄성 :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모든 것은 불, 곧 죄가 세상에 가져온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을 통과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 대해서는 단지 정케하는 불이 되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가! 우리 모두 그 날을 예비하는 현명한 자들이 되어 그 날이 우리에게 보응과 파멸의 날이 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Ⅴ.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한 여러 가지 권면들 3:11-18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교리를 교훈한 후에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1) 모든 행실에 있어서 경건하고 정결하라(11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런 풀어짐이 그들의 본래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회복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제 보고 있는 것들은 잠간 동안에 사라져 버릴 것이며 또한 더이상 지금과 같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남은 것을 바라보자. 이와 같이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온갖 행실이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소망하며 열심으로 바래야 한다. 가시적인 하늘과 체질이 풀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자들은 그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가시적인 피조물의 찌꺼기들을 태우는 두려운 불에 의해 정제되어져서 더욱 영광스러운 하늘로 변하리라는 것을 소망함으로 기뻐할 수 있다.

  1)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바래야 하는가(13절) :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에만 의가 거하고 있다.

  2) 이러한 기대와 소망의 근거와 토대는 무엇인가(13절) :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은 억측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기대가 약속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2) 14절에서 베드로는 그들이 다시 새롭게 될 것을 고려하며 재삼 권면 한다. 온 세상의 심판주가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 때, 우리는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인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피도록 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한다.

  1) 너희는 주 앞에서 평강 가운데서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고 화목한 상태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케 된 자들은 유일하게 안전하고 복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평강을 좇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라. 우리 자신의 양심 안에서 화평하라.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라.

  2) 너희는 그리스도 앞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는 화평 뿐 아니라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점도 흠도 없는 정결, 즉 절대적인 완전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완전히 거룩해야만 한다. 주의 날에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자들은 오직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만일 그가 우리에게 정해 주신 일에 우리가 부지런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보답하실 것이다. 이제 우리로 부지런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다. 이는 "너희 주께서 강림을 지체하시는가? 이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많이 줌으로서 영원을 준비할 시간을 많이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으심을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전에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책망한' 적이 있는 그 사람에 대해 이 할례자들의 사도는 얼마나 존경할만한 언급을 하고 있는가! 베드로는 그를 '형제'로 부르고 있으며 함께 그리스도인 된 자로서가 아닌 함께 사도된 자로서 부르고 있다. 많은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했으나 베드로는 그가 사도인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그를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있다. 그는 바울을 비범한 지혜를 받은 자로 언급하고 있다.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베드로가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서로 관계한다면 이는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① 바울에게 있었던 뛰어난 지혜가 '받은 것'으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각과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②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그 자신이 복음의 신비한 지식 가운데로 이끌려 간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끌림 받기를 위해서 힘썼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더러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어떤 것들은 그 자체의 난해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또 어떤 것들은 그것의 탁월함과 고상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으며 또다른 어떤 것들은 사람의 지성의 연약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또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불행한 일을 행한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곡해하며 억지로 풀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잘 배우지 못한 자들과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할 큰 위험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진리 가운데 굳게 서게 해주는 곳에서는 사람들은 과오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보호받는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빠지게 되는 죄의 치명적인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파멸까지 가져오는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 봄으로 우리가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3) 베드로는 그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다(17,18절).

  1) 경계해야 할 두가지 위험(17절)

   ① 우리는 미혹 받음으로 진리로부터 돌이킬 위험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읽는 자들 중에는 많은 사람이 자기들이 읽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한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믿음 가운데 굳게 서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이 모든 자들은 죄 가운데 떨어지기가 쉽다.

   ② 우리는 미혹된 것에 의한 큰 위험 가운데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비참한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했을 때'그들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떨어지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그들의 행위도 닮게 될 것이다. 미혹에 이끌린 자들은 '그들의 굳센데서 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전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며 혼란 가운데 있는 자들로 쉴 곳을 알지 못한다.

  2) 베드로의 권면(18절) :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우리 안에 은혜가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는 진리 안에 더욱더 굳건히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그를 따르게 하며 그로하여금 더욱 우리를 사랑케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는 때에 우리를 타락의 자리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Ⅰ.거짓 선생들의 출현 2:1-3

 

1. 거짓 선생의 정체(1)

교회의 전 시대에 걸쳐서 마귀는 속이는 자들을 보내는데 구약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신약에서는 거짓 선생들이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파괴적인 과오, 더 나아가서는 '멸망케 하는 이단'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파괴적인 이단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과오를 가져다 주는 자들은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멸망케 하는 자들은 곧 자신들도 멸망하게 한다.

2. 다른 사람들에게 있게 되는 결과(2)

타락한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많은 자들을 쉽사리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물 마시듯 죄악을 마시며 죄 가운데 살기를 기뻐한다. 죄악의 만연은 진리의 도에,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도에 악한 소문을 낳게 할 것이다.

3. 유혹자들이 자기들을 따르도록 추종자들을 이끌어가는 방법(3)

그들은 아첨하는 말을 하며 달콤한 말과 허울 좋은 말로 순진한 이들의 마음을 속인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갖고 있는 부와 명성, 칭찬에 대한 욕망을 악이용하는 것이다.

 

Ⅱ.거짓 선생들에게 임할 심판 2:3-6

 

거짓 선생들이 아무리 성공해서 번성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심판은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불신자들은 이미 정죄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의의 심판의 본은 다음과 같다.

1. 범죄한 천사들(4)

죄인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 범죄한 자가 훌륭한 자이면 훌륭한 자일수록 그가 받게 되는 형벌은 더욱더 엄하다. 죄는 죄를 범한 자들을 비천하게 하며 그 지위를 격하시킨다. 하늘의 천사들은 불순종 때문에 그들의 모든 영광을 빼았겼다. 죄는 어두움에 속한 일이며 어두움은 죄의 삶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비춤과 지시에 따라 행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얼굴 빛을 잃게될 것이다.

2. 옛 세상을 용서치 않으심(5)

만일 죄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형벌 또한 모든 자에게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적은 수의 의인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보존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를 악한 자와 함께 멸하지 아니하신다. 그는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기억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불경건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거두어가며 그들을 철저한 파멸 가운데 빠지게 한다.

3. 소돔과 고모라(6)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으며 불로 소돔을 멸하셨다. 자기 백성을 불과 홍수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원수들을 멸하실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주 앞에서 크게 죄인된 자들은 가장 두려운 보응을 각오해야만 한다. 이전 세대에 죄인들에게 주어진 형벌은 다음에 오는 자들의 본을 위해 계획되어진 것이다. 경건치 아니한 삶을 사는 자들이 계속해서 불경건한 가운데 머무는 한 그들은 자신들이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해야 한다.

  

Ⅲ. 의인을 구원하심 2:7-9

 

하나님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심판하실 때 의인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신다. 우리는 하님께서 롯을 구원하신 사실에서 이것을 알 수가 있다.

(1) 롯의 특성(7절) : 그는 의인으로 일컬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악행하는 것을 좇지 않았으며 불의의 도시에서 홀로 바르게 행한 사람이었다.

(2) 죄의 영향(8절) : 이 의로운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죄에 영향을 받았다. 악한 무리 안에서 우리는 죄책감이나 비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3) 의인의 상함(9절) : 이 의로운 사람의 비탄과 심령의 상함이 계속되었다. '날마다'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 준다. 사람들의 사악함을 보고 듣는 데 익숙해졌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에 섞이지 않았다.

  1) 주께서 자기 백성된 자들을 아신다. 그는 경건한 자들을 따로 세우신다. 또한 혹 다섯 도시에 단 한명의 의인 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는 그 한명을 아신다.

  2) 하나님의 지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나 수단에 있어서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때때로 몹시 난처한 지경에도 빠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보여 주신다.

  3)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그 방법을 모색하시며 자신의 능력으로 시험에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행하신다.

  4) 불의한 자들은 의로운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동참하지 못한다. 악한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남겨지게 된다.

 

Ⅳ. 거짓 선생들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함 2:10-22

 

우리에게 거짓 선생들에 대해 경계시키고자 한 사도 베드로는 이제 더욱 신중히 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들(10)

그들은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로운 가르침과 정반대되게 행하며 타락한 본성의 지시에 순응한다. 악한 생각은 종종 악한 행위를 수반한다. 또한 죄를 퍼뜨리는 자들은 사악을 증진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죄의 길을 걷는 자들이며 더더욱 경건치 아니한 가운데로 나아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권세로 그들 위에 세우시고 명예롭게 한 자들을 멸시한다.

2. 천사들의 모범(11)

베드로는 더욱 뛰어난 피조물인 천사들의 전혀 다른 행위를 제시함으로 그들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능력과 권세를 덧입은 자들보다도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자로 송사한다. 송사는 모든 경건치 않은 자들과 불의한 자들에 대해 심판자가 되시며 보수자가 되실 주 앞에서 행해지게 된다. 선한 천사들은 어떤 송사를 하든 혹독한 욕이나 천박한 비난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천사들을 닮아야 하겠다. 만일 악한 자들에 대해서 불평할 일이 있으면 격노나 욕으로 말고 동정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라. 이는 우리가 온유하고 자비로우신 이에게 속해 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3.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음(12-14)

베드로는 그들이 가장 미천한 피조물과 어떻게 같은가를 설명해 간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므로 이성을 사용하지 못한다. 짐승들이 감각적인 욕망의 본능을 따르듯이 죄인들은 육욕적인 마음의 성향을 따른다. 이러한 자들은 그들 자신의 부패 가운데서 아주 파멸되어질 것이다. 그들이 무슨 일을 당하게 되든 그것은 그들의 불의에 대한 마땅한 대가라고 하겠다. 자신들을 망치는 난봉꾼과도 같이 그러한 죄인들은 자신들을 속이는 자들이며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곳의 모든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행하는 한 가지 죄가 자신들을 또다른 죄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눈은 음심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들의 음탕한 외모는 그들 자신의 불결한 정욕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 안에 마찬가지의 것을 유발시키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것이 그들이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이유이다. 스스로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마찬가지의 지나친 방탕 가운데 끌어 들이는데 아주 종종 성공을 거두곤 한다. 죄와 불경건 가운데 끌려 들어갈 가장 큰 위험 가운데 있는 자들은 굳세지 못한 자들이다. 마음이 은혜로 굳세게 서지 못한 자들은 쉽사리 죄의 길로 돌이키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방탕하고 음란할 뿐 아니라 또한 탐욕하는 자들이다. 즉 그들은 부귀를 열망하며, 그들의 영혼의 바램은 이 세상의 재물이 된다. 온갖 정욕에 빠진 사람을 향해서 베드로가 '저주의 자식'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해 우리는 하등 놀랄 필요가 없다.

4. 저주의 자식(15-16)

베드로는 그들이 '저주의 자식'인 것에 대해서 증거해 간다. 그들은 바른 길을 떠났으며 잘못된 길로 갔다. 즉 그들은 생명의 길을 벗어났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는 이 길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임을 나타냄으로 이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 길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 할지라도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발람은 그가 마땅히 행해야 할 길로부터 돌아섰다. 마음이 굳은 죄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책망에 부딪히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그들의 길을 막으신다. 만일 한 죄인에 대해 그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의무 가운데로 돌이킬 수 있다면 발람에 대한 책망이 틀림없이 그러한 효력을 내었어야 했을 것이다. '말 못하는 나귀'가 말을 하여 그의 행위의 '미친 것'을 드러냈으며 악한 길로 가는 그의 길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5. 거짓 선생의 본성(17-20)

베드로는 계속 거짓 선생들에 대한 설명을 해 간다.

  (1) 그들은 '물 없는 샘'이다(17절). 진리의 말씀이 곧 생명의 물이다. 그러나 이 사기꾼들은 죄를 유포시키고 증진시키기 위해 텅빈 것을 가르치는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 안에 아무 진리도 없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다(17절). 이것은 비를 수반하지 않는 구름이다. 이는 그 구름이 성령으로부터 난 바람에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욕망의 광풍에 밀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름은 태양빛을 가리우며 하늘을 어둡게 한다. 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두움을 진전시키는 것으로 보아, 오는 세상에 그들이 어두움의 안개에 속한 자들인 것은 틀림이 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과 만나는 자들을 미혹한다. 소리는 크나 아무 의미도 없는 허탄한 자랑의 말로 미혹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음란과 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범죄에 대한 기술과 기교를 터득한다. 그들은 매일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처럼 능수능란하며 성과를 거두는 자들이다. 진리를 고수하며 죄에서 멀리 있던 자들일지라도 한동안 그들이 피해있던 죄가운데 들어서도록 미혹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혹자들에 의해서 배도자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그들이 멸망의 종들인 것을 말해간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정욕에 매인 바 된 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함으로 우리는 이 미혹자들에게서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여기에다가 또다른 사항을 덧붙이고 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20절).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다. 신앙적인 교육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제지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화되지도, 구원받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죄에 얽히게 되었을 때는 쉽게 극복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한 번 죄를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된다.

6. 배교의 상태(21,22)

배교의 상태는 무지의 상태보다 더 악하다. 이는 의의 도를 안 후에 그것을 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버린 자들의 비참함은 다른 범죄자들의 경우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행위로써 복음과 은혜를 멸시하고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서, 보다 더 분노 하신다. 사람들이 토한 것을 다시 집어 먹을 때 그리고 자기들이 한번 벗어버린 그 불경건으로 되돌아가 깨끗케 된 상태로부터 더러움 가운데로 뒹굴게 될 때 역시 그처럼 되어지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Ⅰ. 서론 1:1-4

 

1. 이 서신을 기록한 사람에 대한 묘사(1)

그는 시몬과 베드로라는 이름뿐 아니라 사도와 종이라는 직함으로 이 서신을 기록했다. 그는 여기서 스스로를 사도라고 할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칭하고 있다. 이러한 주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가! 그것은 죄없고, 부끄럼없는 일이다.

2.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1)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참된 믿음은 보배로운 은혜라고 하겠다. 참된 믿음은 매우 탁월한 것이며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큰 유익과 이득을 가져다 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믿음은 각각의 그리스도인과 사도에게 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것이다. 즉 그것은 양자에게 똑같이 보배로운 결과를 가져다 준다. 누가 믿든 믿음은 동일하게 '보배로우신' 구세주를 붙잡는 것이며 동일하게 보배로운 약속들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을 얻는 것도 그렇거니와, 믿음이 보배로운 것도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3. 사도 베드로의 축복(2-4)

  (1)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게 되는 방법과 수단.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이다.

  (2) 우리가 이미 받은 것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구하도록 독려해 준다. 참된 영적 생명, 그리고 경건한 삶과 경건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며 관계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를 믿는 것은 모든 영적인 도움과 위로를 얻는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를 효과적으로 부르신 분으로서 모시고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 본문에서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3절). 사람들을 부르시거나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을 영광과 덕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것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능력이다. 베드로는 은혜와 평강이 증가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고무시켜 가고 있다.

   1) 약속이 가져다 주는 선한 것들은 지극히 위대한 것들이다. 죄의 용서는 그 축복들 중의 하나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가증한 죄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2) 복음이 약속하는 축복들은 매우 보배로운 것이다. 신약에서의 위대한 약속은 성령이시다.

   3) 복음의 약속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게 되며 그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4) 성령께서 신의 성품을 일으키는 자들은 타락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된다. 죄가 세상 사람들을 정욕으로써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욕망은 죄에 매여 있으며 따라서 죄가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방법은 우리가 그 안에 머물기를 기뻐하게 하는 것이다.

 

Ⅱ. 믿음의 진보에 대하여 1:5-11

 

이미 보배로운 믿음을 얻고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 자들은 매우 복된 출발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마치 우리가 이미 온전케 된 것인양 그안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더 큰 은혜를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여 역설하고 있다. 신앙 안에서 진보를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매우 부지런히 힘쓸 수 있어야 한다. 더욱 힘씀이 없이는 거룩케 되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

(1) 신자들이 나아가는 단계 (5-7절)

  1) 신자는 덕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공의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뒤이어 지식과 절제와 인내가 오게 된다. 우리는 이 덕이, 신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해주는 힘과 용기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겁많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이 덕은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 뿐 아니라 우리가 죽게 될 때에도 아주 뛰어나게 필요하게 될 것이다.

  2) 신자는 그의 덕에 지식을, 즉 용기에 분별을 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분별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과 우리가 속해야 할 처소와 무리에 대해서 살펴보게 해 준다.

  3) 우리는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능적인 삶에 필요한 것들을 바라고 사용함에 있어서 절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들을 지나치게 욕망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좇고자 하는 열망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4)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 그것은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시련을 받으며,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받는 고난들은 우리가 죄값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더욱 적은 것이다.

  5) 우리는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인내로써 환난을 견뎌내게 될 때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며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은 참된 경건에 기초한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와 경외하는 사랑을 갖게될 것이다.

  6) 우리는 형제우애 즉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인된 모든 자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더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한 분 아버지의 자녀된 자로, 특별히 우리에게 가깝고 사랑스러운 자와 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 혹은 모든 인류에 대한 선의의 사랑을 더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혈통으로 모든 사랑을 더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혈통으로 모든 족속을 만드셨다. 따라서 모든 인류는 동일한 인간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로 동일한 자비와 동일한 환난에 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2) 받아야 할 은사.

이러한 것들이 '그들에게 있되 흡족히 있기'를 위해서 계속적으로 힘쓴 자들에게 주어지는 유익들(8-11절).

  1) 보다 일반적인 면(8절) : 우리안에 그리스도의 온갖 은혜가 있되 넘치게 있게 되면 우리는 일이 없거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의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열심 있고 활달한 자들이 될 것이며 뛰어난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열매를 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거나 아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것이다. 이것은 한 은혜에 다른 은혜를 더함으로 잇달아 오게되는 필수적인 결과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모든 은혜가 마음 가운데 있게 될 때 그것들은 서로 개선되어지고 강화되어지기 때문이다. 은혜가 넘치는 곳마다 반드시 선한 일도 넘칠 것이다. 베드로가 증거하는 그러한 경우에 있게 되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9절). 앞서 언급한 은혜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영적인 것과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해서 소경인 자다. 원시치 못하고, 즉 그는 이 악한 현세를 볼 수 있고 사랑하지만 다가올 세계에 대해선 아무런 분별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내세의 두렵고 큰 일에 대해서 소경인 자들의 상태란 얼마나 가련한 것인가. 그러나 이것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을, 공급하지 않는 자들에게 있게 될 비참함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만큼이나 뒤도 역시 돌아볼 수 없다. 그들의 기억력은 분명하지 못한 것이어서 지난 일을 오래 기억할 수도 없다. 자주 마음을 일깨워서, 주님의 것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진지한 약속과 '육체와 영의 모든 더러움'을 벗어 버리는 것에 대해서 자주 진지하게 숙고하라.

  2) 두 가지 특별한 이익(10-11절) : 그것은 은혜 안에 견고하게 있는 것과 영광에 이르는 승리이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은 대단히 많은 수고와 애씀을 필요로 한다. 즉 반드시 우리자신에 대한 면밀한 시험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수고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 이는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유익이 크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넘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오 가운데 떨어질 때, 그들은 반드시 믿음안에 바르게 보존되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서게 될 것이다. 은혜 가운데서 성장하되 주의 일 가운데 풍성한 자들은 주님의 기쁨에 넉넉히 들어갈 것이며, 영원히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Ⅲ. 베드로가 준 최상의 도움 1:12-15

 

(1) 베드로는 결코 나태하지 않을 것이며 부지런함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특히 생각나게 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12,13절).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지식을 더욱 진보시키고 그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리의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야 한다. 이는 우리로 어떠한 풍조의 교훈에도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진리 즉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 알 필요가 있는 더욱 특별한 진리 가운데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육신가운데 있는 동안 권면과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면, 사역자들이 이 장막에 있는 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고하며 그들이 이전에 들었던 진리들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적합하고도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2) 베드로는 이 문제에 대해 그를 열심있게 만든 것을 우리에게 말해간다(14,15절). 몸은 단지 영혼의 장막이다. 이 장막은 반드시 벗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집에 계속해서 오래 잊지 않게 된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베드로로 하여금 살아있을 동안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게 하였다. 그는 틀림없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과 곧 작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후에 그가 그들에게서 떠난 다음이라도 그가 그들에게 전해 준 가르침을 그들이 기억하기를 바란다음 자신의 권면을 그의 글에 담고 있는 것이다.

 

Ⅳ. 복음의 신실성을 확증함 1:16-18

 

이 복음은 근거없는 이야기거나 또는 헛된 것이 아니라, 의심할 바 없는 사실과 지대한 관심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베드로의 가르침은 다음의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1) 복음의 전파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게 해 준 것이다.

(2) 또한 그리스도의 강림이 복음의 전파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매우 명료하고 상세하게 제시해 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언급 되어지고 있다. 그는 영원한 복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 이곳 지상에서 계실 때 그는 자주 자신의 신성을 보여 주셨다. 특별히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에게 그와 같이 증거하셨는데 '그들은 주의 모습이 변형될 때 그의 신적 영광을 친히 본자들'이다. 볼 수 있는 영광 외에도 귀로 들을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소리가 있었다. 얼마나 은혜스러운 말씀인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가장 귀하신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매우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신 자였다. 여기서 지극히 큰 영광으로 일컫고 있는 이 음성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이 음성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이해할 수 있도록 들려진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알고자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귀와 이해를 열어 주신다. 들을 뿐 아니라 이해하는 자들, 그리고 진리를 믿으며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의 능력을 깨닫는 자들은 복있는 자들이다.

 

Ⅴ. 영감된 성경 1:19-21

 

본문에서 베드로는 복음의 진리성과 실재성을 증거하기 위해 또다른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복음이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어진 것으로 그들은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말하고 썼기 때문이다.

1. 구약 성경에 대한 설명(19)

그것은 더 확실한 예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구주의 능력과 강림에 대한 예언적인 선포이다. 그러나 구약이 예언인 것에 반하여 신약은 그 예언한 바의 역사이다. 구약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읽어라. 그리고 신약을 구약에 대한 가장 좋은 주해로 감사함으로 힘써 활용하라. 그러한 확고하고 확실한 말씀에 기초하고 있는 우리 믿음은 얼마나 확고하고 확실한 것인가!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것들의 성취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더 확실하며 분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2. 성경을 상고하게 한 베드로의 격려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19절). 이는 곧 우리 지각으로 이 확실한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그 진리를 믿도록 하라는 말이다. 만일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에 힘쓴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모든 면에서,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나 우리 자신에게 유익된 것에 있어서 잘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성경을, 하나님께서 온 땅위에 있는 어두움을 쫓아내시기 위해서 세상에 주신 빛으로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어두움을 고백해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영생을 얻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만일 인간이 구원을 얻을만큼 지혜롭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이해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경의 빛이 성령에 의해서 어두워진 지각에 비추어 질 때 '날이 새어 샛별이 그 마음에 떠오름'과 같이 된다. 이와 같이 어두워진 마음을 밝히는 것은 날이 새는 것과 같아서 온전한 날이 되기까지 전 영혼에 확산되며 퍼져간다. 그것은 성장해가는 지식이다. 진리를 행하는 자는 이 빛에 거하며, 행악자는 그 빛을 피한다.

3. 선행되어져야 할 조건(21)

그것은, 모든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아는 것이다. 성경의 어떤 예언이라도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차이점이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그들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행하지 않았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기자들은 하나님의 뜻인 것만을 말하고 기록했다. 모든 개개인은 그것을 상고함으로 그 의미와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확실한 예언의 말씀을 주의하는 모든 사람은 성경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중대한 진리를 깨닫고 그렇게 인정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각별한 친구가 갖가지 두드러진 점과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지 믿을 뿐 아니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이라는 갖가지 합당한 점과 특성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잘 주의할 수 있기 전에 먼저 그것의 신적인 권위가 주지될 수 있어야 하며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4. 구약의 기록 과정(21)

  (1)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책을 위해 종사했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성경을 기록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2) 이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성령께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되시며 거룩한 사람들은 단지 도구였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영감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술하였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의 입에 넣어 준 것을 효과적으로 말하고 쓰게 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경에서 발견되어지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성경을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 영감받고 영향받고 도움받아 쓴 책으로 높이 평가하고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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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7절)
기롱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 - 거짓 교사들은 세상이 창조된 후 아무런 일이 없이 보전되어 왔던 것처럼 이후에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면서 장차 도래할 세상의 심판과 주의 재림을 부인하였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예전에 이 세상이 노아의 홍수로 심판받았듯이 종말에도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 때는 불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날에 모든 악인들에 대한 심판도 함께 있을 것임을 경고한다.
[1~2절]
본서의 기록 목적이 나타나 있다. 즉 베드로는 수신자들이 이미 들었던 재림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려고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3절]
거짓 교사들의 특징은 도덕적 부패와 정통 교리의 부인이다. '기롱'은 '비웃다' 혹은 '빈정대다'는 뜻이다.
[4절]
이것은 구약 예언(단 7:13), 주님의 말씀(막 8:38), 사도들의 가르침(고전 15:51; 살전 4:15; 약 5:7) 모두를 부인하는 것이다. 조상들. 주님과 사도들로부터 주님의 재림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으나 그것을 못 보고 죽은 그리스도인들이다.
[5절]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하늘이 창조된 후 그 상태로 계속 지금까지 보전되어 옴을 가리킨다. 하늘은 노아의 홍수 때에도 심판의 대상은 아니었다(창 6:7). 땅이 물에서...말씀으로 된 것을. 베드로는 땅이 창조된 경위와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임을 주장한다(창 1:9, 10).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에 의한 천지 창조를 부인하면서<창 서론> 세상은 원래부터 있었고 또한 영원히 보전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만물이 하나님의 보전 사역 아래 있음과(골 1:17)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부인한다.
[6절]
베드로는 심판의 또 다른 당위성을 말하기 위해 노아 때의 홍수 심판을 예로 든다. 즉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또 다른 것, 즉 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선포한다.
[7절]
본절은 이 세상은 앞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창 9:8~17) 물에 의한 심판은 받지 않을 것이며, 악인의 영벌(永罰) 때에 이 세상도 심판을 받아 사라질 것이며, 이 세상은 창조 때처럼 '말씀'으로 약속된 불에 의한 심판을 받을 것임(사 29:6)을 시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첫째, 신자들은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시 73편) 둘째, 신자들은 먼저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어야 함(마 6:33; 고전 9:25)을 깨닫게 된다.
(8~13절)
재림에 대한 소망과 경고 - 앞에서 재림의 필연성을 언급한 베드로는 이제 재림의 지연으로 불안해 하는 신자들에게 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준다. 더불어 재림 때에 일어날 현상과 이를 아는 신자들의 합당한 삶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살전 5:23; 딤전 6:14). 한편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는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불신자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이며,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이며, 자신의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는 기회임을 알 수 있다.
[8절]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므로 시간에 대한 감각에 있어서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시다(시 90:4).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아래 있는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을 의심하면서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불 성설이다.
[9절]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분명한 이유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모든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후에야 세상을 심판하신다(마 24:14; 계 7: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백성에 대한 당신의 신실성을 포기치 않으시며(요일 1:9),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위한 최종적인 봉사의 기간임을 깨닫게 된다.
[10절]
주의 재림이 예고 없이 갑작스레 닥쳐온다는 사실 때문에 베드로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말한다(마 24:43, 44). 이 날에 있을 현상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노아 홍수 때 심판을 면했던 하늘도 심판을 받아 파괴될 만큼 말세 심판은 대단히 두려운 것임을 보여 준다(계 6:14; 계 20:11).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하나님이 내리신 불에 의하여 천체 및 모든 물체들이 녹아 버릴 것을 가리킨다(계 6:14).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말세 심판 때에는 모든 인간의 선행과 죄악이 낱낱이 폭로됨을 의미한다(히 4:13; 계 20:12, 13).
[12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사모하라. 이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마 6:33), 세상의 가치에 집착지 않는 삶(요일 2:15, 16), 세상의 풍조(딤후 3:1~7)를 추종치 않는 삶으로서 성도의 삶에 대한 요구이다.
[13절]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은 오직 의만 있는 곳임을 가리킨다(사 65:17; 사 66:22). 새 하늘과 새 땅. 헬라어에는 '새로운'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네오스'와 '카이노스'가 있다. 이 중 본문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카이노스'로서 동일한 본성이나 본질의 새로움을 가리킨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우주로서 영화롭게 재창조될 것임을 알 수 있다(롬 8:20, 21). 신자는 신천 신지에서 새롭게 부활된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되며(눅 16:23), 신령한 교제로 인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계 21, 22장), 완전한 행복의 상태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계 21:3, 4). 따라서 이 땅에서 신자는 본향인 신천 신지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된다(히 11:10, 15, 16).

(14~18절)

재림을 위한 준비 - 베드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자에게 요구되는 삶의 자세를 말하면서 올바른 종말 신앙에 굳건히 설 것을 권면한다. 그런 후 이 신앙에 근거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배격할 것을 언급한다.

[14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신천 신지에는 죄가 없기 때문에 그곳을 바라는 자는 그곳의 속성에 합당한 도덕적 순결을 지녀야 함을 뜻한다(고후 11:2; 살전 2:12).

[15절]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재림의 지연은 많은 백성을 구원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 때문이다(9절). 바울도...이같이 썼고. 베드로가 재림에 관해 가르쳤던 것과 동일하게 바울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가르쳤음을 말한다(살전 1:10; 살전 4:13~17; 살후 1:10; 살후 2:8). 사랑하는 형제 베드로는 전에 자신을 공식석상에서 면박했던 바울을(갈 2:11~14) 이렇게 지칭함으로써 관용의 훌륭한 본을 보여 준다(벧전 2:18). 이 같은 관용이 초대교회를 하나되게 하며 화평케 했음이 틀림없다.

[16절]

그 모든 편지에도...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베드로가 본서를 기록할 때는 바울 서신들 중 다수가 이미 기록되어 교회에 회람되고 있었다. 바울은 다른 성경 저자에 비해 특히 심오한 진리를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당시의 일부 성도들은 바울의 서신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종말에 관한 어려운 부분으로는 살전 5:2~6; 살후 2:1~12절 등이 있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 사도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제자가 되지 못할, 신앙 수준이 낮은 자들이다. 다른 성경과 같이. 구약성경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 바울 서신이 이미 구약성경과 같이 정경으로 인정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억지로...이르느니라. 니골라 당(계 2:6)처럼 자신의 잘못된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함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교리적으로 잘못되어 타락하게 되고, 결국 멸망하게 된다(벧후 2:1~3).

[17절]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전 절의 '무식한 자들'과는 달리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깨우쳤음을 가리킨다. 이들은 복음의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이 아무리 미혹한다 하더라도 진리를 사수한다. 진리를 소유한 자만이 비진리에 미혹되지 않는다.

[18절]

전 절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다. 그것은 곧 균형 잡힌 신앙인으로서 성숙하는 일이다(엡 4:13, 14).

 

# 해설

예수 재림의 확실성 (1~13절)

2장부터 시작된 이단 비판 내용의 핵심부로서 이단 사설의 사소한 내용보다는 이단 사설의 발생 동기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즉 초대교회의 주요 가르침 중 하나는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며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이었다(히 9:27, 28). 그러나 당시 거짓 교사들은 이를 부인하며 성도들을 미혹하였는데(1~4절) 이에 대해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논박하고 있다. 과거 노아 홍수 심판(창 7장)은 예수 재림시 있을 불 심판의 전조이다(5~7절).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 개념을 초월하는 분(8절)이므로 언제 재림 사건이 있을지 모른다(10절). 비록 우리에게는 주의 재림이 더딘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유보 기간일 뿐이다(10절). 끝으로 현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새 세상이 도래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결론 (14~18절)

본서는 교회 내부의 이단 세력에 대한 경고를 주기 위하여 베드로 사도가 죽음을 예감하고 쓴 편지임을 생각한다면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는 지금껏 베드로가 때로는 이단주의 자체의 비판으로, 때로는 성도 자신의 성장 촉구 등을 통하여 준 말씀에서 자연적으로 도출되는 교훈과 예수 재림 때까지 이단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성도 자신의 영적 성장으로 사탄과의 영적 투쟁에서 승리하라는 교훈으로 되어 있다.

 

# 핵심

1~13절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재림관을 반박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에 관해 교훈하는 내용이다.

 

# 묵상

주의 재림 (1~10절)

거짓 교사는 주의 재림에 대하여 만물이 자고 이래 여전하였듯이 우주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의 재림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지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고, 이미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헛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날'이 그렇게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날'은 도덕같이 임하며, 그때가 되면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피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매일 성결하며 준비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롱하는 자들 (3절)

기롱하는 자들이란 헬라어로 '아무렇게나 취급하다'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무책임하고 무가치한 거짓 선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며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마지막 날에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의 경건한 자들 (11~13절)

경건한 자들은 주님의 날이 이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이곳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재림에 대한 성도의 자세 (12절)

성도는 재림을 위해 준비하고(마 24:44), 직분을 수행하며 (눅 19:13), 기다리고(고전 1:7), 사모하며(딤후 4:8), 기도하고(계 22:20), 인내하며(요일 2:28), 기쁜 소망을 가지고(단 2:3), 확신하며(욥 19:25, 26) 살아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22절)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 - 1장에서 신자들의 영적 무장을 권면한 베드로는 이제 본론에 들어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에 대하여 언급한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신자를 미혹하고 있지만 결국 옛날의 불의한 자들처럼 멸망 당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생활은 부도덕성과 진리의 왜곡으로 특징지워진다. 본장은 특히 내용에 있어서 유다서와 비슷하며, 말세가 가까울수록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사탄의 흉계는 더욱 간교해진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1~3절)
거짓 선지자들의 특색과 그들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
[1절]
민간에...있으리라. 여기서 민간은 하나님의 백성(벧전 2:9) 혹은 이스라엘 백성(행 3:23)을 가리킨다. 구약 시대에도 이들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신13:1~5; 신 18:20; 왕상 18:19; 렘 5:31) 오늘날 교회 안에도 거짓 교사들이 계속 일어날 것을 뜻한다. 이단(헬, 하이레세이스). 원래 '선택'이라는 뜻이었는데 '정통 교리에 배치되는 의견을 선택하여 그 사상을 좇는 파'로 그 의미가 발전되었다(행 5:17)<요일 4:1~6, 이단의 정체>. 이들은 주로 기독론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주님의 인격과 그의 속성 그리고 사역 등을 인정치 않는다.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요 20:31)을 인정치 않거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성을 취하신 후 고난 당하고 부활하심을 믿지 않는다.
[2절]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의 열매를 호색으로 본다(마 7:15~21).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좇으며(요일 4:5) 결국 행위까지 본받게 될 것이다(18절). 여기서 우리는 세상에는 비진리를 진리로 착각게 하는 사탄의 역사가 있으며(고후 4:4), 진리의 영이 머물지 않는 곳에는 악행이 그 열매로 나타남을 깨닫게 된다.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교회 안에 방탕한 습관이나 부도덕한 생활, 특히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에게 비난받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복음의 문이 닫히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게 된다는 뜻이다.
[3절]
거짓 선지자들의 또 다른 열매는 '탐심'이다. 그들은 신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린다(요 10:10; 딤전 6:5; 딛 1:11).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옛적부터 심판하셨으며 그들은 신적 법칙에 따라 결국 멸망하게 된다.
(4~11절)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 - 베드로는 옛적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법한 자들에게 임했던 실례를 제시함으로써 거짓 선지자에 대한 심판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한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악인의 형통을 기뻐하지 않으시며(시 73편), 신자는 죄에 대해 예민해야 됨을 깨닫게 된다(시 26:4, 5).
[4절]
태초에 하나님의 천사들이었던. 이들은 스스로 타락함으로써 지옥(헬, 타르타루스)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되었다<벧전 5:8, 악령의 존재와 성도의 자세>.
[5절]
이들은 노아를 통해 내려진 신적 선포를 들으면서도 세상의 일만을 좇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되었다(창 6장, 마 24:38)<욜 서론, 여호와의 심판>.
[6절]
이들은 극심한 동성애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창 19:5).
[7절]
의로운 롯. 그의 삶이 이기적이기는 하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주위의 악행에 대해 분노(창 19:7)했고 그로 인해 괴로워했다는 점에서 그는 의인이다(롬 1:17).
(7~11절)
심판과 구원의 하나님은 불법한 자들을 멸하시되 경건한 자는 심판 가운데서도 보호하심을 보여 준다.
[9절]
불의한 자. 이들은 모두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다가(눅 16:23, 24) 영벌을 위한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계 20:11~15).
[10~11절]
미가엘과 같이 뛰어난 천사도 하나님의 심판권을 인정하여 자기보다 낮은 타락한 천사를 꾸짖지 않았다(유 1:9). 그런데 타락한 천사는 영광 있는 자 곧 하나님, 천사, 충성된 종을 거스름으로써 자신의 교만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보여 주었다(유 1:7, 8). 본문은 우리에게 신자는 남의 죄를 들추어내는 일에 열중해서는 안 되며, 말과 행동에 있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존중해야 됨을 교훈한다.
(12~16절)
거짓 교사들의 도덕적 타락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인 그들의 도덕적 부패성에 대해 언급한다.
[12절]
본절은 그들이 짐승처럼(계 13:11~13) 육체적 본능대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 못하며 따라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무시한다는 뜻이다(마 13:22; 약 4:4; 유 1:10).
[13절]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불의한 행동 때문에 결국 커다란 손실을 당한다는 뜻이다(골 3:25). 여기서 우리는 신자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일반 원칙을 존중해야 하며(갈 6:7), 하나님은 불의한 자도 당신의 섭리를 위한 도구로 쓰심(렘 25:9)을 깨닫게 된다.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는 일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보통 밤에 행해진다. 그런데 당시 거짓 교사들은 낮부터 먹고 마시고 흥청거렸다(살전 5:7). 이처럼 이들의 쾌락주의는 극에 달해 있었다. 연회(헬, 아가파이스). 애찬을 의미한다(유 1:12). 거짓 교사는 성도들과 애찬을 나누면서 사랑의 마음은 없이 먹고 마시는 쾌락에만 관심을 가졌다(사 5:11; 눅 16;19). 이런 점에서 이들의 애찬식은 점과 흠이 되어 버렸다.
[14절]

음심이 가득한 눈. 눈에 보이는 모든 여자들에 대하여 음욕을 품는다는 뜻이다(마 5:28).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거짓 교사들의 표적은 스스로 뿐 아니라 다른 사람조차도 그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앙이 약한 자들을 꾀어 자신들과 같이 타락의 자리에 들어가게 한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 재물에 대한 욕심이 기질화되어 거기에 그의 인격이 지배되는 마음의 상태이다<욥 42:12, 성경의 부(富)>.

[15~16절]

베드로는 옛적에 탐욕(민 22:7)과 음행(민 25:1이하; 민 31:16)으로 죽임을 당한 (민 31:8) 발람을 예로 들어 거짓 교사들도 이와 동일한 '저주의 자식'임을 선언한다. 말 못하는 나귀가...금지하였느니라. 이것은 우리에게 탐심은 자신의 함정을 스스로 파게 할 만큼 인간의 마음을 혼미케 하며, 신자는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들로부터도 바른 교훈을 받아들일 마음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함을 교훈한다<렘 43:2, 겸손과 교만>.

(17~22절)

거짓 교사들의 실상과 미혹된 자 - 거짓 교사들의 실상에 대한 고발(17~19절)과 더불어 그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어 복음의 진리로부터 떠나 타락한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0~22절). 여기에 지적된 당시 거짓 교사들의 주요한 특징은 교만, 도덕적 방종, 무능력, 인간적 불성실, 고의적 거짓을 계속함 등이다. 따라서 이들은 심판을 면할 수 없다.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된 신자들이 맞게 될 비참한 상태와 그 결과를 강조함으로써 영지주의 이단의 유혹에 직면해 있던 당시 성도들에게 도덕적, 영적 각성을 주고 있다.

[17절]

건조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와디(wadi)나 말라붙은 샘이 많다. 본절의 물 없는 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의 제공자이신(요 4:13, 14) 그리스도와 대조된다. 여기서 우리는 거짓된 지도자는 외관상으론 구별하기 곤란하나(마 7:15) 인간에게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하는 자임(요 4:13, 14; 요 7:37, 38)을 깨닫게 된다.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거짓 선지자는 자신이 어떤 신비를 소유한양 신령함을 가장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참빛을 왜곡시키나 결국 흔적도 없이 멸망될 것임을 가리킨다(단 12:2; 말 4:1; 마 3:12).

[18절]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이교도의 상태에서 교회로 인도된 사람들을 뜻한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다시 타락시키기 위하여 이방인들이 보통으로 생각하는 음행의 죄를 짓도록 미혹한다(고전 5:1).

[19절]

자유를 준다 하여도.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를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케 하셨지(롬 7:5; 롬 8:34) 율법의 윤리적 요구에서 자유케 하시지는 않으셨다(마 5:19). 그러나 거짓 교사들은 이것을 오용하여 구원받은 자는 죄를 범해도 괜찮다는 말로 초신자들을 미혹한다(계 2:14, 15). 거짓 교사들은 진리를 소유치 못했으며 악행에 자신을 바친다는 점에서 멸망의 종들이다. 여기서 '멸망(헬, 프도라)'은 도덕적 부패를 의미한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패전군이 승리자의 노예가 되듯이 육체의 정욕에 진 자는 육체의 종이 됨을 뜻한다(롬 6:15~22).

[20~22절]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넘어간 자들에 대한 경고 - 이들은 문자 그대로 거짓 교사들의 정체를 잘 모르고 일시적, 도덕적으로만 타락한 자들과 아예 고의로 예수의 진리를 본질적으로 배교하여 능동적으로 대적한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일단 타락한 점에 있어서는 진리와 선한 교훈을 알면서도 범죄한 자들로서, 22절의 속담과 같이 처음부터 복음을 모르고 행한 자들에 비해서 더욱 어리석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이중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한편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킬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아예 회개할 가능성조차 스스로 거부함으로 최후 심판이 이미 확정된 자들이다.

 

# 해설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1~22절)

지금껏 이단 사설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논한 베드로는 이제 본격적으로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거짓 교사들의 특성(1~3절) 및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4~11절) 자체를 논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출현하는 거짓 교사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수의 신인양성론과 대속 사역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베드로는 미래에 있을 분명한 그들의 심판을 언급한 후, 그러나 현재에는 그들이 계속 활동하며(12~16절), 그들의 가르침은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폭로하면서(17~19절), 끝으로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논하고 있다(20~22절). 우리는 고대의 특별한 사상만을 이단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현대의 무신론, 황금만능주의, 인본주의, 과학만능주의 사상도 다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이단들인 것이다.

 

# 핵심

1~22절

거짓 교사들의 이단 사설과 비도덕성을 지적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내용이다.

유기 (9절)

인간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인 예정은 선택 및 유기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다. '유기'란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구원받을 자로 선택되지 못함으로 필연적으로 멸망의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사함받고 구원에 이르지만, 믿지 않는 자는 죄에 대한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선택'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인 반면, '유기'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죄인인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항의할 수 없다.

 

# 묵상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 (1절)

거짓 선지자란 거짓 신을 대표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된 예언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거짓 평화를 외치고 우상 숭배와 거짓말을 하고, 거짓 환상을 전하며 죄를 감추고 살았습니다. 또한 거짓 선생은 이단을 끌어들였고,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했으며,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으로 진리를 부인했으며 무례와 방종을 일삼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했으며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이단 (2~3절)

베드로가 말한 이단은 도덕적 방종을 조장하는 쾌락주의적인 영지주의(Gnosticism)를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고, 악한 속성인 호색과 탐심을 일삼았던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반드시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9~10절)

하나님의 공의는 시험당한 자들을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심판날까지 그대로 두시며, 육체를 따라 정욕 가운데 행하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형벌을 내리심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거짓 교사의 불법성 (13~15절)

거짓 교사들은 종교적으로 교만하고 도덕적으로도 부패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거짓 사설로 유혹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범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거짓 교사를 분별할 때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최후 (17~22절)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알았다가 배교한 사람들로, 이들은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에 얽매이게 됩니다. 또한 이들은 거짓 교훈을 일삼는데 특히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며 심지어는 부활과 재림까지도 부인함으로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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