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부어주심

 

[이사야 44장 1절~5절]
1절 -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절 -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절 -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절 -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절 -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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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유산

 

[이사야 2장 1절~4절]
1절 -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2절 -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절 -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절 -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영원한 사랑

 

[이사야 51장 1절~3절]
1절 -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절 -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절 -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⑤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리는 하나님 백성
하나님이 만민을 값없는 구원으로 초대하신다. 죄인을 향한 그분의 긍휼과 용서는 한이 없으시다. 또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셔서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 패역한 자는 영원히 형벌을 받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영원히 누린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통해 온전히 성취된다.

그분이 구원하시리라(54:1~55:13)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54:1~17)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은 마치 남편이 없어 출산하지 못하는 여인 같았다. 이제 그들이 수치로부터 회복될 것이다. 버림받고 근신하던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긍휼과 영원한 자비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친히 남편이 되시고 구속자가 되시니 그들의 미래는 영광스럽고 안전하며 평화롭다.

 

하나님의 초대(55:1~13)

하나님이 잔치를 여시고 만민을 초대하신다. 누구나 와서 값없이 목을 축일 수 있다. 영혼이 사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회개하면, 그분의 크신 긍휼과 용서 안에 들지 못할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뜻과 길은 사람의 그것과 다를 뿐 아니라 높고 지혜롭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위해 계획하신 높은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심판의 전망(56:1~59:21)

심판에 관한 해법(56:1~27:21)

구원받고 회복된 백성은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키며 예배를 회복할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해 그분을 섬기고 사랑하며 그분의 종이 되는 자, 안식일을 지키고 악을 행하지 않으며 언약을 굳게 지키는 자는 그가 이방인이나 고자라도 특별한 은혜를 입는다. 이제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불리게 된다.

한편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눈먼 개들처럼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술에 취해 백성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다.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따라 백성 또한 사술과 음행에 빠진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되 마음이 겸손하며 통회하는 자를 돌보신다. 그분의 진노는 잠시이고 긍휼과 사랑은 영원하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악인들의 악행을 모르시는 게 아니다. 악인은 요동하는 바다같이 영원히 평온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58:1~59:21)

죄와 허물을 알게 된 이들에게 하나님은 진정한 금식을 요구하신다. 금식은 남에게 보이고 자랑하려는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며, 사랑과 공의의 실천이 따라야 한다. 주리고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돌보며, 갇힌 자들을 풀어 주고, 안식일을 지켜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면 그 경건함이 아침 해처럼 빛나고 물 댄 동산같이 영혼을 만족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사명은 무너진 기초를 쌓고 보수하며 길을 수축해 사람들이 거할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원자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할 일은 죄악 된 옛길에서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이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맹인처럼 더듬으며 죽은 자처럼 죄만 끌어안고 있다. 이들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계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고, 그분 스스로 팔을 뻗어 구원을 베푸신다. 구속자는 시온에 임하셔서 죄과를 떠난 자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영원히 살게 하신다.

 

여호와의 영광(60:1~66:24)

시온의 소명(60:1~62:12)

새 예루살렘이 일어나 빛을 발하니 세상이 그 앞으로 나아온다. 전에 예루살렘을 무너뜨렸던 적들이 새 예루살렘을 건설한다. 전에 미움당하던 성이 이방 민족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여호와가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은 정의로 가득 찬다.

여호와의 종이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온다.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 포로 되고 갇힌 자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여호와가 영광을 받으신다.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고 마침내 구원하시니 열방 앞에서 기쁨의 찬송이 솟아난다.

이제 예루살렘은 신부처럼 아름답게 차려입고 나타난다. 새로운 이름도 주어진다. '나의 기쁨(갈망)이 그에게 있다.'라는 뜻의 헵시바, '결혼한 여자'란 뜻의 쁄라다. 여호와가 선택하신 신부라는 의미다. 신약성경이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신부'라 부르는 것과 같다. 이제까지 예루살렘을 위해 파수꾼을 세워 부르짖게 하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다시는 이방 민족들에게 짓밟히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다.

 

백성의 기도(63:1~64:12)

하나님의 승리가 포도주 틀를 빫아 붉어진 옷으로 묘사된다. 에돔과 보스라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나라와 성읍을 대표한다. 원수들은 잔인할 정도로 짓밟히지만, 주의 백성에게는 은총이 기다리고 있다. 모세를 통해 홍해와 광야에서 구원하시고 땅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백성은 자신들의 아버지인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절박하게 외친다.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출 4:22)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언약 관계를 근거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63:16)라고 두 번 언급한다.

 

최종 심판(65:1~66:24)

하나님은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을 심판하신다. 이들은 동산에서 제사하며 죽은 자의 시신에 접촉하는 등 이방 신을 위한 의식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 죽음도 질병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세상이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으려면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여호와 앞에 있는 것처럼 이들 자손도 항상 여호와 앞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지만, 욕심을 따라 다른 길을 택하는 자들에게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사야서의 흐름

성경 본문

1~39장

40~55장

56~66장

주요 통치자

유다의 아하스왕과 히스기야왕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과 바사의 고레스왕

주변 강대국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동맹,

앗수르 산헤립왕의 침공

바벨론의 분열과 바사의 제패

예언 내용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총체적인 심판

남은 자에 대한 위로와 희망

회복된 시온의 사명과
여호와의 영광

주요 신학

하나님을 의지하면 구원받음

바벨론에서의 해방은
제2의 출애굽

예루살렘과 성전 재건은
제2의 창조

하나님에 대한 인식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방인의 하나님

온 우주의 하나님

 

이사야 길라잡이 ⑤

하나님 계획을 따르는 하나님 나라 백성

김창대 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

 

이사야 54~66장은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는 자'와 '하나님 나라'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이 다름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사 55:8).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인간의 생각과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길을 좇아 그분의 계획을 추구하는 자임을 밝히신다.

 

평안과 신뢰로 따를 하나님의 계획

'계획'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에차'다(11:2; 14:26; 19:17; 25:1; 8:29; 40:13; 44:26; 46:10). 개역개정은 이 단어를 종종 '경영'으로 번역한다(14:26; 28:29).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시온이라는 공동체를 정의와 공의로 빛나게 해, 믿지 않는 자도 와서 그들을 보고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평화를 이루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65:25 참조).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자는 어떤 두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 이는 7장에서 아람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 왕 베가가 공격하자,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왕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이사야 선지자는 르신과 베가의 꾀가 인간적인 계획임을 밝히며(7:5),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도록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평화를 견지하라고 당부한다(7:4,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이 구절에서 '조용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쉬케트'는 '평화를 가지라'는 명령형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권면한다(7:9,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는 자의 자세는 '평안과 신뢰'로 드러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악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는 이기적 욕구가 있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계획을 추구하려고 한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계획을 좇지 않고 자기 계획대로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한다(왕하 16:7). 비슷한 예는 히스기야 시대가 배경인 이사야 28~31장에서도 발견된다.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 지도자들은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공에 대비해 애굽을 의지하는 인간적인 계획을 세운다(30:1~3).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30:1)라고 질책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는 자는 평안을 가지고 신뢰하는 자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30:15). 겉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인간의 계획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화를 당하게 된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9:15).

 

겸손히 인내로 기다릴 하나님 나라

이사야 54~66장은 인간적인 계획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인간적인 계획을 추구하는 자들의 정체는 하나님 나라가 더디 오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잠잠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57:11. 참조 59:1). 외형상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기도하기까지 한다(59:9~15; 64:1). 그렇지만 53장의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을 통한 새 언약 체결이 늦어지고, 60~62장에서 약속한 하나님 나라가 속히 임하지 않자,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태도를 보였다(63:17; 64:12).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적인 계획을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가 더디 옴에 불안해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오히려 '나를 구하지(찾지) 아니하던 자'(65:1)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그분 나라의 유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자는 그분의 계획을 추구하기 위해, 마음의 평화와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 말씀이라면 겸손히 따르는 자임을 교훈한다(66:2). 이런 자가 종말에 강같은 평강(평화)과 뭇 나라의 영광을 받을 것이다(66:12).

인간적인 계획을 버리고 말씀을 신뢰하며 겸손히 따르는 자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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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④

내 백성을 위로하라!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죄로 인해 징계하시지만, 결국 회복과 소망의 미래를 약속해 주신다. 이스라엘은 그 노역의 때를 마치고 그들의 죄악이 사함을 받으면, 이방의 빛이 되어 온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가깝게는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멀리는 메시아를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사야 한눈에 보기

본문

1~12장

13~27장

28~35장

36~39장

40~55장

56~66장

요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열방에 대한
심판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

히스기야
이야기

이스라엘의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40~53장의 시대적 배경

이사야 후반부인 40장 이하는 전반부 1~39장과는 예언의 목적과 문체가 확연히 다르다. 또한 앞부분과는 달리 이사야 선지자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40장 이하의 시간적 배경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멸망하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때다. 이스라엘을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킬 사람이 등장한다. 곧 바사(페르시아) 제국 고레스왕이다. 소수 민족에게 관대했던 고레스왕은 유다 민족에게도 자기 땅으로 돌아가 그들의 신을 섬길 기회를 준다. 마치 출애굽과 같은 은혜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여호와의 위로를 상기시키며, 그분의 구원에 감사하라고 격려한다.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주전 556~539년)이고,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벨사살(단 5:1)을 그의 아들로 본다. 나보니두스는 다소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데, 선대왕으로부터 왕좌를 찬탈하기 이전의 출신과 성장 과정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왕위 찬탈 이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일부 문서에 나보니두스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있는 '테마'라는 오아시스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벨사살이 바벨론의 왕으로 불리는 까닭은 이 기간에 아버지를 대신해 섭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나보니두스도, 벨사살도 바벨론 백성에게 인기가 없었다. 주전 539년 바사 군대가 바벨론까지 진격하자, 바벨론 백성은 왕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고 전해진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리라(40:1~48:22)

위로와 응답(40:1~41:29)

이사야 1~39장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경고며, 마지막 39장은 히스기야왕의 허물 때문에 유다의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옮겨지리라는 예언을 담았다. 이어지는 40~66장은 심판으로 인한 바벨론 포로 생활과 그 이후 회복에 대한 메시지다. 40장의 예언은 39장의 내용으로부터 약 150여 년을 건너뛰어 포로 중에 있는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을 다룬다. 이제 죄로 인한 노역의 때가 끝나고 죄악이 사함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외치는 자의 소리'가 나타나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칠 것이다. 이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역할은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기 위한 엘리야의 역할로 해석되었다.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이 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외치는 자의 사명은 소리를 높여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는 것이다.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여호와는 양 떼를 모아 들여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다.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다. 그분은 창조자시며 능력자시다. 피곤함과 곤비함을 모르시고 명철이 한없으시기에, 피곤하고 무능한 자에게 능력과 힘을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형편에 처하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시고 말씀해 주신다. 목공과 철공이 만든 우상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일 뿐이다. 이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구원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신다. 그 구원은 한 사람, 바사왕 고레스를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41:25).

 

여호와의 종(42:1~25)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인물로 여호와의 종을 소개한다. 잔인하게 열방을 정복했던 바벨론에게 그는 여호와의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받으셔야 마땅한 찬송을 우상에게서 빼앗아 올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이 정의를 가져오는 모습은 여호와가 원하시는 일에 눈멀고 귀먹었던 종 이스라엘과 대조적이다.

 

여호와의 새 일(43:1~28)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현재의 불확실성 가운데 두려워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여호와가 용서와 구속을 베푸시는 것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영원불변하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을 잊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 여호와가 앞으로 행하실 새 일은 과거 출애굽의 역사와 비교할 수 없는 새롭고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장차 바벨론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는 일은 인간에게는 놀라운 기적이나, 하나님께는 매우 작은 일이다. 이스라엘을 여호와를 찬송하는 백성 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신다.

 

여호와의 종(44:1~45:25)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성령의 부으심을 약속하신다. 성령이 아니고는 여호와를 알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으며, 그분을 예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 온 세상에 여호와와 같은 신이 없음이 전파될 것이다. 여호와만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다른 신은 없다. 하나님은 말 못 하는 우상과 견줄 분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고, 인간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며 용서하시는 참신이다. 우상은 철공이 철과 숯불로, 목공이 붓과 대패로 만든 형상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신이 아니며,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모조품일 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참신이신 하나님 말씀에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여호와가 일으켜 세우신 사람의 이름이 밝혀진다. 그는 '고레스'다. 고레스를 통해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이들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 고레스는 '목자'(44:28), '기름 부음 받은 자'(45:1) 등으로 묘사된다. 이사야서 후반부는 고레스의 승리로 모든 열방이 여호와를 예배하게 되리라고 할 만큼 그에게 찬사를 쏟아붓는다.

 

바벨론 심판(46:1~47:15)

바벨론에 임한 심판을 묘사한다. '벨'은 바벨론의 수호신으로 '므로닥', '마르두크'라고도 한다. '느보'는 벨의 아들이다. 바벨론이 자랑하던 도시 문명과 함께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바벨론 백성은 순식간에 닥친 재앙 속에서 모욕과 수치를 당할 것이다. 교만하고 패역한 나라는 오래가지 못한다.

 

요약과 반복(48:1~22)

앞에서 다뤄진 주제들이 한 번 더 요약되고, 반복된다. 먼저 하나님의 새 일을 소개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정죄가 이어진다(1~11절).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목이 쇠심줄 같고 이마가 놋처럼 완고한 자들이다. 이들 앞에 펼쳐질 하나님의 새 일은 이들이 과거에는 결코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배역한 자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뜻을 어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셨다. 이어서 하나님의 속성이 소개된다(12~16절). 하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그분만이 홀로 참신이다. 그 하나님이 바벨론에 임할 일을 결정하셨다. 끝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행하실 일이 예고된다(17~22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벌하신 것은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악한 자들을 벌하실 것이다.

 

종의 노래

이사야서에서 '종의 노래'로 알려진 본문은 크게 네 군데다(42:1~4; 49:1~6; 50:4~9; 52:13~53:12). 이들 본문이 말하는 '종'이 누구인지를 두고 많은 견해가 있다. 우선 이 종이 개인인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맥에 따라서 개인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전체이기도 하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으로는 이 '종'이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본다. 마태는 이 본문을 들어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한다(마 8:17). 또한 베드로는 이사야서가 말하는 '종'의 고난을 나무(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채찍에 맞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일치시킨다(벧전 2:24). 무엇보다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을 이사야서의 '종'과 연결해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받으리라 예언하셨다(눅 9:22).

 

고레스는 누구인가?

고레스는 '태양'과 관련된 이름이다. 페르시아(현재 '이란')가 서남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 등 3개 대륙에 걸쳐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주전 6세기경 아케메네서 왕조의 시조다. 고레스왕 때 메대와 바벨론과 아나톨리아(현재 '터키')를 정복했다. 특히 그는 주전 539년, 바벨론을 함락시킴으로써 전통적으로 바벨론왕에게 주어지는 이름인 '바벨론과 수메르와 아카드와 왕'이라는 이름을 차지했다. 이상적이고 자비로운 군주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그에 대해서는 폭군인 외할아버지를 피해 양치기 손에서 비밀리에 자랐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성경에서는 역대하(36:22), 에스라(1:1), 다니엘(1:21), 이사야(44:28; 45:1)에 등장한다. 히브리어 발음은 '코레쉬'다.

주전 539년경에 고레스왕이 내린 조서(스 5:13)가 유물로 남아 있다. 이를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라 부른다. 1879년 이라크 영토인 바벨론 지역의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고레스 실린더는 점토로 만든 원통형에 아카드어로 기록되어 있다. 고레스왕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새로운 질서와 평화를 가져왔다는 승전보인 동시에, 신의 명령으로 이 땅의 종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고레스의 포부와 사명을 기록했다.

 

그분이 구원하시리라(49:1~53:12)

여호와의 종(49:1~50:11)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부름받고 복중에서부터 기억된 이스라엘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에 빛을 비추고 여호와의 구원 능력을 세상에 전하는 종으로 택함받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악한 종으로 변질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빛이 되는 대신 조롱을 당했고, 이방을 구원하는 대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다시 그들을 구원하신다. 어머니가 젖먹이 자식을 잊을 수 없듯이 여호와는 결코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신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빼앗긴 것을 다시 찾고, 여호와가 자신의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심을 알게 될 것이다.

50장은 또 다른 종에 대해 노래한다. 그는 학자와 같은 지혜가 있어 선한 말로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며, 수염이 뽑히고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다. 이는 우리 죄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모욕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회복(51:1~52: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며, 그의 후손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구원하셨지만, 예루살렘은 멸망의 길을 걸어왔다. 그들은 주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시고 비틀거린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시온은 다시 아름다운 옷을 입을 것이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있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52장 마지막에 언급된 여호와의 종은 고난받으나 존귀하게 되어 열방을 놀라게 할 것이다.

 

고난의 종(53:1~12)

53장은 메시아 예언의 절정이다. 여호와의 종은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는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멸시와 매와 고문이었다. 그가 당하는 고난은 끔찍하다. 그는 이런 고난을 받아 마땅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가 받은 고난은 '우리' 때문이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운 찔림과 상함을 겪었다. 우리의 평화와 나음은 그가 당한 징계와 채찍의 보상이다. 여호와의 종은 우리 때문에 상처를 입고 짓밟혔다. 우리가 하나님께 되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대신해 형벌을 받은 것이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잠잠한 어린양과 같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적으로부터 백성을 구원하는 무장한 전사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무력을 내려놓고 겸손과 희생으로 원수와 싸운다. 그 결과 그는 존귀한 자들과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눌 것이다.

 

유다와 포로와 해방 역사

 

시기

시대 배경

주요 내용

1차 포로

주전 608~
605년

애굽과 바벨론의 전쟁, 유다의 여호아하스왕이 애굽으로 잡혀감

다니엘 등이 바벨론에 잡혀감

2차 포로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왕의 보복, 여호야긴왕이 바벨론으로 잡혀감

에스겔 등 3,023명이 바벨론으로 잡혀감(렘 52:28)

3차 포로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시드기야왕은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잡혀감

비천한 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력자 832명이 바벨론으로 잡혀감(렘 52:29)

4차 포로

주전 581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철저히 약탈당함

745명이 잡혀감(렘 52:30)

해방의 서막

주전 561년

바벨론 에윌므로닥왕 원년

여호야긴왕이 옥에서 석방됨(렘 52:31)

구원의 선포

주전 539년

바사 고레스왕 원년

각 소수 민족에게 자기 땅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이 선포됨

 

이사야 길라잡이 ④

정의와 공의의 실현, 하나님 나라의 완성

김창대 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약속

이사야서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시온에 거하는 백성이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열국이 그들의 정의와 공의의 빛을 보고 찾아와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한다.'라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 시온은 창기처럼 타락해 정의와 공의가 실종되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사 1:21). 정의와 공의의 부재로 결국 시온은 신바벨론에 멸망당하지만, 훗날 회복되어 종말에 모든 산보다 높게 세워질 것이다. 그날에는 율법이 지향하는 정의와 공의가 시온에 충만해 열국이 시온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21:1~4). 이런 하나님의 청사진과 맞물려 이사야 40~53장은 시온의 회복을 선포한다.

이사야 40~53장은 포로 생활을 통과하면서 낮아진 백성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증언하고, 시온으로 대변되는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어 거기에 거하는 백성이 놀랍게 변화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못해 포로로 끌려간 백성에게 시온의 회복 메시지는 신기루로 비쳐졌다. 이런 불신의 벽 배후에는 정의와 공의를 행할 능력이 그들 자신에게 없다는 두려움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40~53장은 두 축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한다. 첫째는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 사역을 통해 그분 백성을 시온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은혜다(49~53장). 둘째는 시온에 돌아온 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시는 은혜다(44~45장).

 

고난받는 종과 성령의 부으심

이사야서는 고난받는 종의 사역을 말하기 전에 수사법적 전략으로 성령의 부으심을 먼저 이야기한다. 이로써 포로 생활이라는 어둠의 터널에 갇혀 방황하는 백성에게 그들이 반드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자가 되어 본토로 귀환한다는 희망의 빛을 전달한다(44:2~3; 45:8, 25). 40장이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1절)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구약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와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 한정되었고, 성령은 사람들에게 내주하시기보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계시는 형태로 역사했다. 이에 반해 종말에 부어지는 성령은 '모든 언약 백성'에게 임할 것이다. 성령의 부으심은 새 언약의 선물로서 새 언약의 혜택을 믿는 모든 자가 누릴 것이며, 성령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이 사람들 속에 거하시는 방식이 될 것이다(59:21). 이런 맥락에서 신약도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이 모든 사람 속에 거하실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요 7:38~39).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새 언약의 수혜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시온을 회복하고 그 회복된 시온에 백성을 인도하는 사명을 누가 감당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여호와의 종'이다(42:1~4; 49:1~6; 50:4~9; 52:13~53:12). 하지만 여호와의 종은 이 일을 감당하면서 뺨까지 맞는 수모를 겪는다(50:6, '나의 뺨을 맡기며'). 이런 상황 가운데 53장에서 신적 인물인 메시아가 등장해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대속의 죽음을 통해 백성을 의롭게 하고(53:11,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시온으로 인도해 새 언약을 체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54장).

결국 이사야 40~53장은 고난받는 메시아의 대속적인 희생과 성령의 부으심으로 종말에 새 언약의 수혜자인 성도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뜻인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로 변화될 것을 웅변적으로 강조한다. 즉, 성도의 구원 목적은 최종적으로 시온으로 대변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서는 오늘날 성도에게 귀중한 보고(寶庫)다. 이사야 40~53장은 구원이 단순히 천국을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좇아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모든 이를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임을 교훈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 완성에 있다.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③

장차 공의로 다스릴 왕이 오리라
열방이 일어나 자기 힘을 과시하며 하나님 백성을 괴롭게 해도, 하나님은 앗수르나 애굽보다 강하시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위해 존귀한 일을 계획하셨는데, 바로 장차 공의로 통치할 왕의 등장이다. 광야에 길이 놓이고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 그 거룩한 길을 다니며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28:1~35:10)
무능한 애굽(30:1~31:9)
하나님은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는 유다 지도자들을 향해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이들이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애굽을 의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유다에서 애굽으로 가려면 '네겝', 즉 유다의 남쪽 땅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는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 뱀'이 있다. 출애굽 때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이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신 8:15). 그러나 이렇게 위험한 곳을 통과해 도착한 애굽은 유다를 도울 힘이 없다. 하나님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고 부르신다. 여기서 '라합'은 무례하고 오만하다는 뜻으로, 한때는 명성이 자자했지만 이제는 간신히 자기 자리를 지킬 정도로 무기력해진 처지를 가리킨다. 우리말로 하면 '이빨 빠진 호랑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유다는 경고를 받고도 돌이키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 선견을 하지 말고, 바른 것도 보이지 말고, 부드럽고 거짓된 것만 말하고 보이라고 선견자들에게 강요한다. 이에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을 깨뜨리듯이 유다를 무너뜨리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 도움을 구하는 대신,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을 그분의 진노로 심판하실 것이다.

성읍과 나라와 왕의 별칭

예루살렘

환상의 골짜기(22:1), 아리엘(29:1)

애굽

가만히 앉은 라합(30:7), 상한 갈대 지팡이(36:6)

바벨론

해변 광야(21:1)

바벨론의 왕

아침의 아들 계명성(14:12)

앗수르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7:20), (여호와의)진노의 막대기(10:5)


예루살렘의 미래(32:1~33:24)

하나님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보여 주신다. 장차 한 왕이 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방백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다. 이 새로운 나라에서는 모두가 지식을 깨닫고 어눌함이 민첩함으로 변화될 것이다. 어리석고 악한 자는 패역한 계획을 세우고 행하나, 존귀한 자가 계획한 존귀한 일이 성취될 것이다.

여기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너'를 언급한다(33:1). 이는 하나님 백성을 침략한 자 곧 앗수르를 지칭하는 게 분명하다. 다만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있었던 산헤립의 공격을 근거로 해서, 속이고 학대하는 자를 '산헤립'으로 볼 수도 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한 북 이스라엘을 떠올리는 것은 현대 유다가 적의 침략을 앞두고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댈 곳은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뿐이다.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계신 모습은 먼 훗날의 이상적인 예루살렘, 즉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시온 성을 예표한다. 그곳은 안정된 처소요, 옮겨지지 않을 견고한 장막이다(33:20).


에돔의 멸망(34:1~17)

다시 예언은 열국으로 향한다. 모든 열방이 여호와의 진노를 받고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릴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날, 시온을 신원하시는 해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루살렘의 고통을 조롱했던 에돔이 당할 보복이 극심하다. 에돔 땅은 황폐해지고 들짐승만 살아가는 처소가 될 것이다. 끝으로 선지자는 여호와의 책을 언급하며 자신이 예언한 내용을 보증한다. 여호와의 입이 명령하고 여호와의 영이 모으신 여호와의 경고는 빠짐없이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35:1~10)

하나님 백성과 열방 사이를 교차하던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그날 사막에 대로가 펼쳐지고 시내가 흐르며 사나운 짐승이 사라지고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는 자들이 그 거룩한 대로를 따라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노래하며, 슬픔과 탄식은 사라질 것이다.


히스기야 이야기(36:1~39:8)

이사야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히스기야 이야기는 중간에서 이들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즉, 이사야 앞부분(1~35장)에서 강조되는 열방의 심판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한편, 이어지는 이사야 뒷부분(40~66장)에 대한 서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앗수르의 침략(36:1~37:38)

주전 705년 왕위에 오른 앗수르의 산헤립은 서쪽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에 나선다. 주전 703년에는 바벨론을, 주전 701년에는 지중해 해안선 나라들을 손에 넣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통치 14년째에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성전과 왕궁 금고를 열어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를 산헤립에게 보낸다(왕하 18:13~16). 그런데 산헤립은 또다시 자신의 최측근인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에게 명해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한다(왕하 18:17).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다음 공격 대상인 애굽의 원조 요청을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랍사게는 유다 방언에 능숙했고,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지방 산당을 부수고 예루살렘 성전 예배만 허용한 사실을 비판했고, 아무리 여호와를 믿고 의지해도 강력한 앗수르 군대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경고한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께 간구한다. 이사야는 앗수르 군대의 침략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나님이 산헤립에게서 예루살렘을 지키실 것이라고 확언한다. 마침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앗수르 군영을 찾아가 185,000명을 죽이고, 산헤립은 니느웨에서 아들들의 칼에 암살된다(왕하 19:14~37; 대하 32:1~23).


히스기야의 발병과 회복(38:1~39:8)

이사야는 중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에게 그가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가 회복될 것이라고 응답하신다. 이 내용은 다른 성경에도 나오지만(왕하 20:1~11; 대하 32:24~26) 이사야 38장에는 히스기야가 직접 회고한 내용이담겨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는 산 사람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며 죽음보다 나은 삶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의 징조로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나게 하신다. 하지만 회복된 히스기야는 문병 온 바벨론 사신들에게 예루살렘의 전부를 보여 준다. 므로닥발라단은 앗수르를 피해 엘람 땅에 숨어 있다가 훗날 엘람 동맹군과 함께 앗수르를 공격하는 인물이다. 그가 이때 히스기야에게 얻은 정보는 훗날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데 요긴히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사야 길라잡이 ③

국가적 위기 순간에 굳게 의지할 분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이사야 30~3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30~31장과 36~39장은 주전 705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시리아-가나안 일대를 점령한 후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유다를 침공하게 된 배경과 경과를 다루고, 그 사이에 기록된 32~35장은 하나님의 폭풍 심판이 지나간 후에 전개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다룬다.


유다 왕실이 의지한 것들

30~31장과 36~39장, 두 단락은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 이사야는 유다를 규탄한다. 국가적 위기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회개와 영적 갱신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굽과 맺은 군사 동맹, 애굽에서 수입한 무기와 말, 그리고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한다. 하나님 대신 강대국을 의존해 무기와 군마를 사들이는 유다 왕국의 길은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하나님이신데 유다 왕실은 엄청난 금은보화를 싸들고 가서 애굽의 병거와 말을 사들인다.

신명기 17장 14~20절에 나오는 왕에 관한 율법은 무기 및 병마를 구매하거나 모으는 것을 이상적인 왕도에서 이탈한 패역의 길이라고 단죄한다. 이 모든 군마와 병거 수입을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히스기야 왕이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활 한 번 쏘아 보지 못한 채 앗수르 대군에 예루살렘이 포위된다. 앗수르 대군은 예루살렘 성벽을 허물고 당장이라도 예루살렘을 짓밟을 기세였으나, 성중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다.

시편 46편은 바로 이 역사적 위기 순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바닷물이 흉용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사야는 강대국을 의존하는 길과 하나님을 의뢰하는 길의 결국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 준다. 이사야 37장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라를 위해 간구했던 이사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보여 준다. 예루살렘은 또다시 극적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또다시 강대국(바벨론)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앗수르에 맞서려고 한다. 강대국 숭배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심판과 정화

32~35장은 하나님의 폭풍 심판의 역사적 정화 효과를 다룬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 아닌 헛된 우상을 숭배하다가 파탄을 경험한다. 국가 갱신을 위한 하나님의 정화용 심판을 받고 나서야 총체적인 속량과 치유를 맛본다.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자리에는 강대국을 의존하거나 숭배하는 왕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성에게 위로가 되고 구원이 되는 왕과 관료들이 정치 지도자로 등장한다. 이방인들이 더는 하나님 백성을 압제하지 못하고, 시온은 정결하게 된 하나님 백성의 보금자리로 복구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고 노략질한 이방 족속 에돔은 하나님의 가혹한 심판에 처해진다.

30~39장을 관통하는 주제는 7장 9절이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만일 다윗 왕실이 다윗 집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삼하 7:12~16; 사 55:3)을 믿지 못하면, 남은 선택은 강대국을 우상처럼 섬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윗 왕조에게 주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은,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는 왕을 이스라엘 목자로 세워 주신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그 나라 통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라는 하나님의 통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붕괴하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 공평과 정의가 사라진 나라는 이 붕괴를 막아 보려고 강대국의 군사 원조나 동맹을 믿으며 강대국 숭배로 치닫는다.

오늘날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운명과 미래는 강대국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높이 들린 보좌 위에 계셔서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강대국 숭배는 우상 숭배다. 무기와 병거 숭배도 우상 숭배다. 하나님은 핵폭탄을 신으로 섬기는 망령된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고 공평과 정의를 저버리는 나라는 붕괴하고 쇠락할 수밖에 없다.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②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시는 그날에 전쟁과 살육이 멈추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 여호와가 만민의 기치를 세우시니 흩어진 그분의 백성과 열방이 돌아올 것이다. 여호와가 진노를 그치고 그분의 백성을 안위하시니, 그들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온 땅이 여호와의 아름다운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1:1~12:6)
메시아의 통치(11:1~12:6)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메시아가 오시면 완전한 평화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마치 에덴동산으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모든 열방은 하나가 된다. 여호와의 백성은 흩어졌던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 엘람과 시날과 하맛, 바다 섬들에서 돌아올 것이다.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남쪽 나일 강 유역에서는 애굽과 바드로스, 구스가 패권을 다퉜다. 동쪽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엘람과 시날이 부상했고, 서쪽으로 하맛과 바다 섬들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오랜 경쟁자 블레셋과 동방(아라비아)과 에돔, 모압도 묘사된다. 이 모든 열방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고, 앗수르에 남은 주의 백성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던 것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그날에는 여호와를 향한 감사 찬양만이 넘쳐 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 활동 시기의 남북 왕조와 주변 국가

남 유다 왕

웃시야=아사랴(52년)

요담(16년)

아하스(16년)

히스기야(29년)

므낫세(55년)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Ⅱ세(41년), 스가랴(6개월), 살룸(1달), 므나헴(10년), 브가히야(2년), 베가(20년)

베가(20년)

베가(20년), 호세아(9년)

호세아(9년)

앗수르에 멸망

.

선지자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이사야, 미가, 나훔

나훔, 이사야, 미가

.

이스라엘

주변 국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북 이스라엘 왕 므나헴 때, 베가 때 침공

.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맹군이 유다 침공,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이

아람 점령, 살만에셀 왕이

북 이스라엘 침공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북 이스라엘 점령, 산헤립 왕이 유다 침공

앗수르바니팔 왕의 지휘관들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감


열방 심판(13:1~27:13)

열방을 향한 경고(13:1~23:18)

여호와는 여러 예언자에게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힌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을 주셨다(암 1~2장; 겔 25~32장; 렘 46~51장). 이사야 여기 예언을 받았는데 한글 성경은 이를 '경고'로 번역했다. 이는 히브리어 '마싸'를 옮긴 것으로 '부담, 무거운 짐' 등을 뜻한다. 선지자가 받은 예언의 내용이 매우 무겁고 엄하다는 점에서 '엄증한 말씀'(렘 23:33, 38)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또한 선지자가 받았다고 하는 경고는 히브리어로 '목격한 경고'를 뜻한다.


바벨론(13:1~14:23)

여호와가 충동하신 메대가 바벨론을 완전히 허물어 버려서, 한때 영화로웠던 바벨론은 황폐하게 버려질 것이다(13:17~22). 그때 여호와가 긍휼히 여기신 이스라엘 자손은 본토로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교만해서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고자 했던 계명성, 바벨론 왕은 스올에 떨어져 조롱을 당할 것이다. 이어서 바벨론에 닥칠 군사적 패배를 묘사한다.


앗수르(14:24~27)

여호와의 땅, 북 이스라엘을 빼앗은 앗수르는 반드시 여호와께 밟힐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온 세계를 향해 정하신 경영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경영하신 것을 능히 막거나 돌이킬 자가 없다.


블레셋(14:28~32)

유다의 아하스 왕이 죽자 그동안 유다에 눌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블레셋은 크게 기뻐한다. 하지만 유다를 대신한 북방의 연기가 몰려와 이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북방의 연기는 앗수르를 뜻하는데, 독사와 불 뱀으로 묘사된다.


모압(15:1~16:14)

선지자는 이스라엘과 혈연관계인 모압에 대한 애통함을 감추지 않는다. 모압에 기근이 닥치고, 군대는 패망하며, 백성은 포로로 사로잡힐 것이다. 이 일은 여호와가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것으로, 3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는 주전 734년 일어난 반앗수르 연합 전쟁과 관련된다. 북 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에게 은을 주고 왕권을 보장받은 이래(왕하 15:13~22),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며 충성하다가 베가 왕 때 반기를 들었다. 아람 왕 르신과 연맹해 유다와 모압 등 주변국까지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앗수르는 반기를 든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을 단호히 응징한다(왕하 16장). 다메섹을 점령한 후, 반란에 동참한 나바티아와 모압과 에돔을 포위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모압의 곤경과 그 백성의 절규에 진심으로 애통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메섹과 에브라임(17:1~14)

아람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반란을 꾀한 대가로 보복을 당한다. 반역의 우두머리인 아람 왕 르신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죽임을 당한다. 다메섹은 무너진 무더기가 되고, 야곱의 영광은 쇠할 것이다. 열방의 충돌은 많은 물이 몰려오는 것과 같은 두려운 일이지만 결국 열방은 주님의 꾸짖음에 모조리 도망가 바람 앞에 흩어지는 겨나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처럼 될 것이다.


구스(18:1~7)

구스는 현재와 에티오피아 땅에 세워진 왕조로 애굽에 멸망당한다. 구스 사람들은 예언대로 앗수르를 멸망시키신 여호와께 예물을 들고 나아갈 것이다.


애굽(19:1~20:6)

구스를 차지한 애굽 역시 심판을 면할 수 없다. 내전이 일어나고, 무서운 가뭄이 계속되며, 역병이 돌 것이다. 바로가 어리석은 방백들에게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여호와가 그들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하신 것이다. 애굽은 위축되어 유다를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른다. 한편 그날에 애굽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다섯 성읍이 있고 그중 하나는 멸망의 성읍으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여호와는 애굽을 치실지라도 고쳐 주신다. 선지자가 전하는 놀라운 비전은 그날에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 세 나라가 함께 세계 중에 복이 되어 예배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에 임할 고난을 예표하는 사명을 수행한다. 주전 715년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아스돗을 쳐서 정복한 해에 이사야는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의 손에 넘어가 백성이 포로 됨을 예표하기 위해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닌다. 이 사역은 3년이나 지속되었다. 애굽과 구스의 멸망은 아스돗을 포함한 해변 주민에게 충격이 되었지만 주전 722년 북 이스라엘 멸망 이래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유다의 히스기야 왕을 정조준한 경고이기도 했다. 히스기야 왕은 애굽과 동맹 가능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701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는다(36~37장; 왕하 18~19장).


바벨론(21:1~10)

다시 바벨론의 멸망 예언이 등장한다. 여기서 바벨론을 '해변 광야'(21:1)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바벨론 남쪽에 있는 걸프 해 때문에 생긴 명칭일 것이다. 선지자는 바벨론에 관한 혹독한 묵시를 보았는데, 바로 바벨론이 메대와 엘람 연합군에게 함락당한다는 것이다.


에돔(21:11~12)

'침묵'이라는 뜻의 '두마'는 에돔의 한 성읍 이름일 것이다. 에돔은 '세일'이라고도 부른다. 두마의 멸망은 우회적으로 서술되며, 구체적인 멸망의 방법과 시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라비아(21:13~17)

드단과 데마는 모두 아라비아의 도시 이름이다. 이들 간에 내전이 일어나 게달의 영광까지 다 쇠멸한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게달을 정복한 것은 주전 689년의 일이다.


유다와 예루살렘(22:1~25)

'환상의 골짜기'(the Valley of Vision)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이곳 백성이 죽는 것은 칼이나 전쟁때문이 아니다. 기근이나 질병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대신 사람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병기를 쌓고 성벽을 점검하고 식수를 확보하면서도 여호와는 공경하지 않았다. 또 임박한 심판에 회개를 명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며 술에 취했다. 여호와는 이 죄악은 그들이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한다고 선언하신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큰 문제가 된 범죄는 왕궁 맡은 자 셉나가 저질렀다. 여호와의 성읍과 아무 상관도 없는 자가 왕에게나 합당한 높은 곳의 묘실을 탐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를 결박해 던져 버리시고, 관직에서 쫓아내시며 지위를 낮추실 것이다. 대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세워 그에게 왕궁을 맡기실 것이다(22:20~23; 36:3; 37:2). 유다의 병폐는 모든 권력이 한곳에 집중된 것이다. 결국 권력이 집중된 곳이 썩어 문드러져 그 위에 걸린 모든 것이 부서져 버린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


두로와 시돈(23:1~18)

바다를 매개로 상권을 쥐고 흔들던 두로의 성읍들은 황폐해진다. 무역이 무너지면서 권력을 잃은 두로는 잊혔다가 다시금 기어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70년이 차고 나면 여호와가 두로를 돌보시므로 두로도 여호와를 예배하게 될 것이다.


그날에 대한 묵시(24:1~27:13)

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비롯한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13~23장)에 이어 세계를 향한 최후의 심판 예언이 선포된다. 여호와는 '높은 곳에서 높은 군대'를,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실 것이다. 그리고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다. 유다 땅에 일어날 범죄에 대한 심판뿐만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 단락은 작은 묵시록과도 같다.


세계를 향한 최후 심판(24:1~23)

땅과 바다와 천상의 권세들에 대한 심판이다. 선지자는 세계 민족 중에 일어날 심판 가운데 여호와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땅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시온 산의 연회(25:1~12)

앗수르 군대, 즉 포악한 나라가 멸망하고 나서 온 민족이 시온 산에서 열리는 큰 잔치에 초대받은 광경이 나온다. 여호와는 만민에게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맑은 포도주를 대접하신다. 이 산에서 모든 가리개가 제거되고 사망이 멸하며, 모든 얼굴에서 눈물이 씻기고 여호와의 백성은 수치를 면할 것이다. 여호와를 반대한 모압은 이 산에서 초개처럼 밟히며 오물통에서 헤엄치게 될 것이다.


승리한 유다(26:1~21)

유다 땅에 울려 퍼질 승전가를 기록한다. 여호와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도록 지키신다. 영원한 반석이신 여호와는 백성이 섬기던 다른 신들을 모두 멸하실 것이다. 주를 앙모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잉태한 여인이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는 것과 같다.


택하신 백성을 향한 구원 계획(27:1~13)

여호와는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신다. 이에 여호와의 백성은 마침내 제대로 결실하는 포도원이 된다. 그날에 여호와가 유브라데 강에서 나일 강까지 온 열방을 과실 떠는 것같이 하셔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손을 불러 모으시고 예루살렘 성산에서 예배하게 하실 것이다.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신 말씀(28:1~35:10)

에브라임과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28:1~29:24)

세 번 등장하는 히브리어 '호이'(28:1; 29:1, 15)는 '화 있을진저', '슬프다' 등으로 번역되는 감탄사다. 선지자가 에브라임(28:1~6)과 예루살렘(28:7~29:24)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슬픔을 토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에브라임, 곧 북 이스라엘은 술에 빠졌다. 재판하는 자들과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독주에 빠져 비틀거리며 잘못된 환상을 말하고 재판할 때 실수했다. 그들이 지나간 발자취에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다. 게다가 이들은 이사야가 전하는 지식과 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전에 주셨던 예언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자들에게 이제 여호와는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간 자들은 결국 넘어지고 부러지며 붙잡힐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역시 에브라임의 지도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망과 언약하고 거짓을 피난처로 삼은 지도자들은 재앙이 밀려와도 두려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는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으시고 정의를 달아 보이시며 거짓을 소탕하시고 사망과 맺은 언약을 폐하실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농사에 빗댄다. 여호와의 경영이 기묘하며 지혜가 광대하다고 말한다. 여기 등장하는 작물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나는 대표적인 허브와 작물들이다.

한편 선지자는 아리엘을 위해 슬퍼한다. 아리엘은 다윗의 성읍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화로'를 가리키기도 한다. 즉, 유다 백성이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태우는 각종 제의 행위는 그들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헛된 예배여서 여호와께는 뜨거운 화로밖에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입술로는 여호와를 공경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난 자들이다. 패역함이 어찌나 심한지 토기장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진흙과 같다. 열방의 복이 되리라고 여호와가 선택하신 자손은 여호와의 손이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사야 길라잡이 ②

심판을 통한 영적 정화와 갱생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교차되는 하나님의 심판과 위로

이사야 11~29장을 관통하는 주제는 '심판을 통한 영적 정화와 갱생'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은 선민과 만민(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집행된다. 하나님은 열방을 통해 선민 북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두 나라를 침략한 열방의 죄악 또한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 그러나 심판받는 열방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재기 불가능하게 파멸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시키신다는 암시가 곳곳에 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다.

1) 11~12장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그 자리에 움 돋는 하나님 나라를 묘사한다. 장차 다윗의 위에 앉을 이상적인 왕 메시아에 의해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에는 공평과 정의, 평화와 안전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앗수르 제국에 멸망당해 열국으로 흩어졌던 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다스리는 시온으로 귀환해 통일 된 이스라엘의 이상을 실현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온에서 다시 하나가 된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열국 앞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를 증언할 것이다.

2) 13~23장은 바벨론, 앗수르, 모압, 에브라임과 다메섹, 구스와 애굽, 블레셋, 두마, 아라비아, 예루살렘, 두로와 시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하나님 백성을 포함해 그들과 인접한 열방에 대한 정화적 심판 예언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 열방 민족들의 죄는 북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같다. 약자를 학대하고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무신론적 교만과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이 선민과 만민 모두를 하나님의 심판대로 몰아간다.

3) 24~27장은 이사야의 작은 묵시록이라 불리는 독립적 단원이다. 하나님은 열방의 지배자들인 '땅의 왕들'을 치시는 동시에 하나님 백성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라는 구원 약속을 담고 있다. 24~25장은 열방과 땅의 왕들을 치시는 하나님의 심판 행적을 말하고, 26~27장은 하나님 백성인 유다와 에브라임의 회복, 위로, 신원을 예언한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헛되이 받지 않고 심판을 통해 영적 쇄신과 성숙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와 애굽으로 쫓겨 간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시 예루살렘 성산으로 되돌아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 백성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열방으로 흩어지지만, 열방이 심판을 받는 중에 하나님의 산 시온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4) 28~29장은 소위 '앗수르 단락'(the Assyrian cycle, 28~33장)의 서론이다. 주전 705~701년 유다의 반(反)앗수르 봉기 전후에 있었던 긴박한 상황에 대한 신학적 분석을 담고 있다.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스스로 불러온 유다 지도층의 죄악을 규탄한다. 교만과 영적 무지로 이미 망한 북 이스라엘의 길을 따른 유다는 임박한 심판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파국적인 재앙을 맞이한다.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참혹해도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과 무궁한 자비를 소진시키지 못한다.


'거룩한 삶'을 누리게 하는 필수 매뉴얼

11~29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않으시는(시 103:10~13), 무궁한 인애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분의 은총은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시 30:5; 합 3:2 참조). 물론 하나님은 죄악을 참지 않으시며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 불꽃을 피할 나라와 민족은 없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먼저 엄혹한 심판을 받는다.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였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선민과 만민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있다(롬 3:19~20). 그러나 하나님의 이 거룩한 심판 집행 중에서도 그분이 택하신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용서하시고 다시 시온으로 그 백성을 모으신다. 갱생의 길로 이끄시는 것이다. 열방 중 일부 나라에도 갱생과 회복의 약속이 명시적으로 주어진다(애굽, 두로, 앗수르). 실로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참혹해도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과 무궁한 자비를 소진시키지 못한다.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①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다른 이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여호와를 버리고 악한 길로 향한 결과 정의가 구부러지고 죄가 만연하여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 노하셔서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다. 그러나 곧 자기 백성에게 향한 진노를 그치시고 그들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실 것이다.

이사야 한눈에 보기

본문

1~12장

13~27장

28~35장

36~39장

40~55장

56~66장

요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열방에 대한 심판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

히스기야 이야기

이스라엘의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저자

이사야. 웃시야 왕의 전기를 기록했고(대하 26:22), 유대 전승에 따르면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몸이 잘려 죽임을 당했다.

연대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사역했다. 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암살되는

주전 681년까지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목적

이사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고 또한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징계하시지만 용서하시고, 사로잡히게 하시지만 돌아오게도 하신다. 이사야는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내다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메시아가 다스리는 놀라운 새 시대를 바라본다.

분류

예언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1~12:6)
죄로 가득한 성읍(1:1~31)
예언의 주제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땅을 빼앗기고 그 땅에서 쫓겨나 포도원 망대같이 적들에게 에워싸인 채 겨우 살아남았다. 게다가 땅은 황폐하고 지도자들은 부패하고 백성은 패역했다. 온 나라에 악행이 가득한 가운데 적들이 몰려드는데도 이들의 제사는 가증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받을 길을 제시하시고, 죄로 가득한 이 성읍을 장차 의의 성읍으로, 신실한 고을로 부르게 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의 심판(2:1~4:6)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에 앞서 회복의 약속이 주어진다(2:2~5). 온 백성이 성전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리라 다짐한다. 하나님이 통치자요 재판장이 되셔서 다스리시니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회복의 약속은 이들에게 주어질 심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대변할 뿐이다. 본문은 예루살렘의 부패 상태를 가차 없이 지적한다(2:6~4:1).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버리심은 그들이 이방 민족과 같이 우상 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심판 날에는 모든 우상과 교만하고 자고한 자들이 굴복하고 오직 여호와만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심판하려고 서신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여호와는 예루살렘이 정화되리라는 약속을 주신다(4:2~6). 그날에 주님의 영이 예루살렘의 더러움과 피를 씻기시고 청결하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가 피난처를 주시므로 모두에게 피할 곳이 있을 것이다.

포도원 노래(5:1~30)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비유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사야 5장에서 하나님은 들포도만 맺는 포도원에게 송사를 제기하신다. 농부는 땅을 잘 골라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열심히 가꿨는데 포도원에 들포도만 맺혔기 때문이다. 이에 농부이신 하나님은 이 포도원 곧 이스라엘을 헐고 황폐하게 하겠다고 하신다. 이어서 이스라엘이 맺은 들포도가 열거된다(5:8~12). 백성은 흥청거리고 예배는 가증하며, 규례를 지키는 자가 없고 사회는 패역을 일삼는다. 이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가 쏟아진다(5:13~30). 여호와가 자기 백성에게 손을 들어 노를 발하시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들이 말씀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소명(6:1~13)

주전 742년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본다. 온 땅에 가득한 여호와의 영광 앞에서 선지자는 자신이 부정한 자임을 깨닫고 죽음을 각오한다. 하지만 스랍이 그의 입술에 불이 핀 숯을 대고 모든 악이 사해졌다고 선언한다. 그러고 나서 선지자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는다. 이 백성은 마음이 둔하고 귀와 눈이 닫혔기 때문에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와가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은 백성이 혹시 돌이킬까 싶어서다. 이스라엘 전역이 황폐해지고 많은 백성이 이방 땅에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처럼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라(7:1~8:22)

7~12장은 아하스 왕 시대 있었던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맹군의 침입을 배경으로 한다. 북 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아람의 르신 왕과 손을 잡고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에게 대항하자고 유다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유다는 적의 공격을 막아 낼 만한 정치적.군사적.영적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에게 보호를 요청할 생각이었다. 이에 여호와는 이사야를 아하스 왕에게 보내 말씀하신다. 앗수르와 동맹하는 것이 유다의 패망을 잠시 연기시킬 수는 있겠지만 미봉책에 불과하고, 믿음에 굳게 서지 않으면 절대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하신다. 또 여호와는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질 징조를 구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아하스 왕이 거절하자 친히 주신다. 그 징조가 바로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들의 탄생이다. 이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북 이스라엘과 아람 왕국이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유다가 끝까지 앗수르 편에 선다면 그들의 머리털과 발의 털이 밀리고 수염이 깎일 것이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아주 심한 불명예를 상징했다.

하지만 아하스 왕은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한다. 그래서 여호와는 서판에 통용 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를 쓰게 하시고, 이사야 부부가 낳은 아이의 이름으로 삼게 하신다. 이 단어는 '갑자기 공격당해 순식간에 끌려간다'는 의미인데,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나타냈다. 선지자가 서판에 글자를 쓴 것은 예언자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실현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예언의 진위를 판단할 것이다(신 18:22). 백성은 신접한 자나 거짓 선지자의 소리가 아닌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한다.


메시야의 약속(9:1~7)

오늘날 우리는 이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표한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흑암을 빛으로 비추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진정한 왕이다. 한편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탄생을 알리는 것으로도 여겨진다. 앞서 마헬살랄하스바스가 이사야의 아이로 하나님이 주신 자녀가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는 경우였다면, 이번에 탄생하는 아이는 '메시아'다. '우리에게서 난 자'가 우리를 다스린다. 이 아이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다. 한글 성경에서 쉼표를 찍어 마치 개별 이름의 모임인 듯한 오해를 주는데, 히브리어로 이것은 모두 한 단어다. '모사에 뛰어나신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시다.'라는 문장 형태로 해석해야 한다.


앗수르를 통한 이스라엘 심판(9:8~10:34)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 곧 북 이스라엘은 멸망할 것이다. 아람의 대적인 앗수르가 와서 반역을 모색한 이들 나라를 칠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은 멸망을 당하고도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앗수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여호와가 사용하신 도구일 뿐이다. 여호와가 주의 일을 행하시고 나면 앗수르 역시 그들의 완악한 마음과 교만을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 후에 북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서의 역사적 배경

이사야가 사역한 주전 750~700년까지 유다는 급변하는 국제 정치 상황 속에서 앗수르와 바벨론, 애굽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유다 왕들은 앗수르에 조공을 바쳐 왔지만 신흥 강대국 바벨론을 무시하지 못했고, 이 관계는 특히 히스기야 왕 때 재난을 몰고 온다.


시기

사건 배경

이사야의 활동

주전 734년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맹군의 침략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에 대항해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 이들은 유다에도 동맹을 제안했지만 아하스 왕이 입장을 정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자 쳐들어온다. 앗수르를 배신하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겠지만, 지금 당장 침략해 오는 이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가 주시는 징조 '임마누엘'을 약속한다(7:1~16).

주전 715년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는 유다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강대해지자 애굽은 유다를 압박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하나님은 애굽이 장차 앗수르에 의해 멸망해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게 되리라고 경고하신다. 이사야는 이 예언을 예표하기 위해 3년 동안이나 자신이 직접 포로처럼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살아야 했다(20:1~6)

주전 701년

앗수르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바벨론과의 관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은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에 항복을 권한다. 이사야는 왕에게 하나님의 도성이 살아남는다는 확신을 준다(36:1~37:38). 히스기야가 병에 걸리자 이사야는 왕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드린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15년을 더 살도록 허락하셨다(38:1~22).

히스기야는 병문안을 위해 찾아온 바벨론 므로닥발라단 사절단을 맞이한다. 이때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요새 전부를 공개한다. 즉, 유다는 앗수르에 반역해 바벨론에 동조하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이사야는 히스기야의 행동을 나무라고 바벨론이 그들에게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39:1~8).


이사야 길라잡이 ①

국가 위기에서 백성을 깨우치는 예언의 말씀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이사야가 등장하는 시대 상황

이사야에 기록된 예언들을 선포하고 기록한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Isaiah ben Amoz, 사 1:1)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본거지를 둔 상류 계층에서 태어났으며, 왕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외교 정책의 추이를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을 만큼 유다 왕국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왕실 내부자였다(사 7:3~4; 8:2; 30:1~7; 36:1~38:8, 21; 참조 왕하 18:3~20:19). 그를 웃시야 왕과 히스기야 왕의 서기관이었다고 기록한 역대기(대하 26:22; 32:32)는 신빙성 있는 증언일 것이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유다 왕들은 웃시야(6:1; 대하 26:22, 주전 742), 요담(주전 750~735, 이 중 740년까지는 웃시야의 섭정이었음), 아하스(주전 735~715, 섭정 기간 전제), 히스기야(주전 715~687/686)였다. 이 당시 앗수르 제국의 왕들은 디글랏 빌레셀 3세(주전 745~727),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 사르곤 2세(주전 722~705), 산헤립(주전 705~681)이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주전 8세기 중엽(주전 740~738년경)은 북쪽 앗수르 제국의 정복 군주인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시리아-팔레스타인 쪽으로 제국의 지배권을 확장하던 시점이었다.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주전 734년경에 팔레스타인에 진출해 애굽 국경선까지 육박한다. 그는 정복 일지(ana Philistia)에서 '애굽 강 앞에' 군사(무역) 기지를 구축했다고 자랑한다. 이 가공할 만한 앗수르의 군사적 팽창에 직면한 많은 작은 왕국이 대항했으나 잔혹하게 진압당한다. 이런 와중에 시리아와 북 이스라엘은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하고, 두 나라 동맹군은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반앗수르 연합 전선에 동참하도록 강요하기에 이른다. 유다 왕국이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자 두 나라는 유다를 공격해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을 일으킨다(주전 734~733). 예언자 이사야가 처음으로 공적인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때다.


1~39장의 중심 메시지

이사야는 아하스 왕과 다윗 왕실을 향해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국 왕들의 강요에 굴복하지 말고, 앗수르 원군을 요청하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도리어 여호와 하나님의 다윗 언약을 믿고 외국 군대의 힘에 의지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이사야의 충고를 거부하고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이사야는 해방자로 출병한 앗수르가 정복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예언들을 쏟아 낸다(사 7:18~25; 8:1~10). 마침내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시리아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의 속주국으로 만든다. 북 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앗수르에 막대한 조공을 지불하고 간신히 파멸의 운명을 면한다(주전 732). 하지만 10년 만에 다시 북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수르 제국의 사르곤 2세에게 북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만다(주전 722/721). 이제 유다 왕국의 정치적 독립은 최악의 위기에 놓인 셈이 되었다(5:29). 하지만 주전 705년에 사르곤 2세가 죽자 다시금 팔레스타인의 소왕국들이 반앗수르 봉기를 일으킨다. 이때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애굽의 지원을 믿고 팔레스타인의 군소 왕국을 동원해 주전 705년경에 반앗수르 봉기를 주도한다. 불안한 정치적 상황과 북쪽 산악 족속들의 문제를 처리하느라 남서쪽 지역의 반앗수르 봉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던 앗수르의 새 군주 산헤립은 마침내 주전 701년에 남서 지역 정복 원정에 돌입해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가둬 버린다. 산헤립은 매년 바치는 조공과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히스기야에게 강요하며 항복을 종용한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요구에 굴복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는 참변을 피한다(왕하 18:13~16).

1~39장은 주전 740~701년 사이에 펼쳐진 정치 현실에 대한 이사야의 신학을 담고 있다. 이사야는 시리아-에브라임 전쟁부터 주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까지 유다 왕국의 정치적 위기 한복판에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고, 이사야의 신학은 약 40년간 지속된 국가적 위기에서 유다 왕실과 백성을 깨우고자 선포했던 예언들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이사야는 시리아-에브라임 전쟁부터 산헤립의 유다 침공까지 유다 왕국의 정치적 위기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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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의 지혜

[이사야 50장 4절~9절]
4절 -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절 -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절 -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절 -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절 -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절 -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하나님의 종

[이사야 42장 1절~9절]
1절 -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절 -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절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절 -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절 -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절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절 -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절 -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절 -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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