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다메섹의 파멸과 야곱의 쇠퇴 17:1-5
우리는 본문에서 다메섹에 관한 경고를 본다. 갈대아 역본은 그구절을 "다메섹을 위하여 마실 저주의 잔에 관한 경고"라고 해석한다. 그들과 동맹을 맺고있는 이스라엘은 이 두려운 잔으로 다메섹을 위하여 축배를 들것을 예상해야만 했다.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이 반드시 파멸될 것이다. 가옥들이 불타고 성벽과 문과 요새가 무너지며 거민들은 포로로 잡혀가 '다메섹이 성읍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무너진 무더기'로 변할 것이다(1절). 주민들은 마을을 포기할 것이다. 아로엘(아람왕이 이렇게 불렀다)의 성읍들이 버림을 당하리니(2절). 그러므로 사람들이 들어가 살아야할 곳은 '양무리가 눕는' 곳이 될것이다. 이는 아주 번듯한 집들이 양우리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의 요새 곧 열지파의 왕국이 파멸할 것이다. 에브라임의 요새와 다메섹 나라와 아람의 남은 백성이 멸절하여(3절). 아람 사람들은 공모하여 유다를 치려한 주동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먼저 그리고 가장 심하게 형벌을 받을 것이다. 또 이때 이스라엘이 약해졌기때문에 '아람의 남은 백성은 이스라엘 자손의 영광같이 되리라.' 아람 사람들가운데 남아있는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비천한 상태에서 지낼 것이다. 야곱의 영광은 초췌해진 사람처럼 시들 것이다(4절). '야곱의 영광'은 그들의 수에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죽고 극히 적은 수만 남게될때 이영광은 '쇠하여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래끄는 병으로 죽었다. 열지파의 왕국은 점차 황폐해졌다. 이스라엘은 앗수르 군대에게 모조리 사로잡혀 갔다. 앗수르의 승리군은 곡식의 품질이 좋은 르바임 골짜기에서 일하는 꼼꼼한 농부들처럼 할수만 있다면 이삭 한톨도 뒤에 남기려하지 않을 것이다.

Ⅱ. 남은 자에 대한 약속 17:6-8
이스라엘 왕국 전체에 임하는 파멸에서 피할 남은 자를 위하여 심판이 행해지는 가운데서도 자비가 준비되는 것이 본문에 나온다. 세상이 온유한 자들은 여호와의 노하시는 날에 숨기워졌고, 그들은 유다 땅으로 물러가 편안히 지냈다. 수가 적은 남은 자들만이 보호를 받게될 것이다(6절). 주울 것이 남으리니. 백성들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갔다. 남은 자들이란 고작 감람나무가 세차게 흔들리고 난후에 남아있는 과실 몇개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가지꼭대기에 실과 이삼개가 남음같겠고(나무를 흔든 자들의 손이 미치지 못했기때문에). 그 남은 자들은 거룩해질 것이다(7,8절). 이들은 자기 죄를 뉘우치고 생활을 고쳤기때문에 부지깽이가 불더미에서 얼른 끄집어내지듯이 그렇게 건짐을 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우러러 볼것이며 그들에게 일어나는 자비롭고 고통스러운 모든 사건속에서 하나님의 손을 깨닫고 그손에 복종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이 단지 그들의 공상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되어 더이상 그것에다 예배하지도 않고 그것에게서 어떤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자기를 지으신 자를 쳐다보는 자는 '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 쳐다보지' 말아야하며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 것'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말고 완전히 부숴버려야 한다.

Ⅲ. 이스라엘의 황폐 17:9-11
본문에서 선지자는 다시 앗수르 군대에 의해서 이스라엘에 발생할 황폐를 예언한다. 나라를 지켰어야할 견고한 성읍들조차도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즉 그성읍들이 썩어서 열매를 맺지못하고 말라죽은 고목의 '버린바 된 가지'(한글개역에는 '수풀속의 처소'로 나와있음)와 '꼭대기의 가지(처소)같이 황폐해질' 것이다.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앞에서 도망했듯이 이제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인들앞에서 도망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황폐할 것이다(10,11절). 이는 네가 자기 구원의 하나님을(그가 네게 베푸신 모든 큰구원들을) 잊어버리며(여러번 네 힘이 되어주셨던)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않은 까닭이라. "아니면 네가 훨씬전부터 망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라." 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땅을 개간하고 좀더 쾌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땅은 정원같았고 포도원같았다. 그땅은 그곳에서 가장 잘자라는 초목들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방의 가지를 이종하려고' 이웃 모든나라에 사람을 보냈다. 이사실은 대체로 그들이 자기 땅을 경작하는데 매우 부지런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언급된것 같다. 그들은 그들이 심은 초목들이 자라서 무성해질 것이라고 확실히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져' 아주 당황하게 될것이다. 때때로 농작물이 빈약할때는 추수하는 날이 슬픔의 날이 되었다. 그래도 그때의 슬픔속에는 다음번 추수는 더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슬픔은 절망적인 슬픔이 될것이다. 그이유는 그들이 이때의 농작물이 빼앗기는 것을 볼뿐만 아니라 그땅의 소유권이 바뀌어 그들의 정복자들이 그것을 차지하는 것을 보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Ⅳ. 앗수르 군대의 전복 17:12-14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을 약탈하는 자들의 운명을 예언한다.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략하여 약탈한다면, 앗수르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고 그땅을 황폐시킨다면, 그들이 파멸하고 말것이라는 사실을 그군대에게 알려주어라." 앗수르 군대는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졌다. 즉 그군대는 '많은 민족'이었다(12절). 그들은 그세력으로 목적을 달성할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성난 파도처럼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대항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산헤립과 랍사게는 말과 편지속에서 엄포를 놓아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들을 떨게 만들었다. 그들을 따르는 민족들은 '많은 물의 몰려옴같이 충돌하였다.' 그들은 소리의 힘으로 목적을 달성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실' 것이다. 즉 하나님이 그들을 꾸짖으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멀리 도망할 것이다.' 산헤립과 랍사게와 군대중 남은 자들이 '산에 겨가 바람앞에 흩어짐같이 폭풍앞에 떠도는 티끌같을 것이다.' 즉 엉겅퀴(난외주에는 이렇게 나와있다)같이 스스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쫓기게될 것이다. 하나님이 '저희로 굴러가는 검불같게 하시며' 떠도는 티끌같게 하시고 '주의 폭풍으로 저희를 두렵게하실 것이다'(시83:13,15). 이일은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다(14절). 즉 하나님의 백성을 매우 귀찮게 하고 근심하게 만든 자들이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없어질 것이다. 그들은 잠들때에 깊은 잠에빠졌다(시76:5,6). 천사가 앗수르 군대를 멸절시킨 때는 밤이었다.

# 핵심
17:1-14
남왕국 유다를 침략한 다메섹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 묵상
오히려 주울 것이 남는 이스라엘 ( 17:6 )
이말은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수는 지극히 적은 것입니다. 5절이 살아남을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적은가를 강조한다면, 6절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효가 얼마나 적은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으신 자를 쳐다보게될 사람 ( 17:7 )
이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곧 회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전에는 자기가 만든 것 곧 우상을 바라보고 의지했으나 여호와의 심판이 이르는 종말의 날에는 오직 참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세라 우상 ( 17:8 )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여신으로, 바알의 아내로 간주되었습니다. 생산과 전쟁의 여신인 아세라를 섬기던 신전은 공인된 매음굴이었다고 합니다. 두로왕의 딸 이세벨은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그녀의 남편인 이스라엘왕 아합의 상에서 식사하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엘리야와의 갈멜산 대결을 통해 아세라신이 거짓신임을 드러내고, 여호와께서 살아계신 유일한 신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망원인 ( 17:8-11 )
이스라엘이 패망할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그들이구원의 하나님을 잊고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고 능력의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그하나님께 아무런 관심도 두지않고 그분을 신뢰하지도 않았기때문에 그들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과 동행해야 합니다(잠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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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모압에 대한 선지자의 권고 16:1-5
하나님은 죄인들이 파멸을 예방할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주심으로써 그가 죄인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셨다. 선지자는 여기서 모압에게 이사실을 말해준다.
(1) 선지자는 모압 사람들에게 다윗의 집에 대해 정당하게 행하고, 이전에 그들이 바치겠다고 약속한 공물을 보내라고 권고한다(1절). 너희는 이땅 치리자에게 어린양들을 드리되. 다윗은 모압 사람들로 그에게 공물을 바치도록 했었다(삼하 8:2). 후에 그들은 이스라엘 왕들에게 양으로 공물을 바쳤다(왕하 3:4). 여기서 선지자는 그공물을 히스기야에게 바치라고 그들에게 요구한다. 곧 모압 전역에서 공물을 거두어 들이라고 요구한다. 모압 이쪽 국경의 성읍인 '셀라에서부터' 국경저쪽 끝인 '광야까지' 공물을 거두어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두어들인 그공물을 '땅 시온산으로', 곧 다윗 성읍으로 보내라고 요구한다. 혹자는 그것을 역설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그의 운명을 예언할때 말했던 것처럼(단 4:27) 선지자가 진심으로 그들에게 말한 선한 충고라고 볼수 있다. 게다가 그말은 모압의 통치자이며 또한 우리의 통치자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복음의 중요한 의무에도 들어맞는다. 사람들이 위대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갈때는 어린양, 곧 하나님의 어린양인 예수의 이름으로 가야 한다. '모압의 여자들은'(그땅의 촌락들 혹은 여인들은) 다른 나라로 도망할 길을 찾으면서 '아르논 나루에서 떠다니는 새같고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새끼같이' 방황할 것이다.
(2) 선지자는 그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친절하라"고 권고한다(3절). "지혜롭게 생각하라. 너희가 제정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데 사용한 모든 불의한 법령을 취소하라."
1)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에 의해서 맹렬한 앗수르 군대를 피하기는 했지만 또다시 그들에게 안전을 위해 자리를 옮겨야할 정도로 극심한 곤경에 처하게하는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들이 처한 위험과 환난은 초목을 말라죽게 하는 정오의 뜨거운 열기같았다.
2) 선지자는 이스라엘 땅이 그백성들에게 너무 뜨거워 지낼수 없게 되었을때 모압땅에 그들을 위한 피난처를 미리 의뢰한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자기 거처에서 지내고자 한다면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교회의 흩어진 지체들에게 문을 열어주어야 하며 정오의 무거운 짐과 열기를 견디고 있는 자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도망한 자를 넘겨주지 말라"(에돔 자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옵 1:13,14). 쫓겨난 자를 숨기며. "아니, 한동안 쫓겨난 자를 숨겨줄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그들의 귀화를 받아들여라." 나의 쫓겨난 자들로 너와 함께 있게 하되(4절). "그들에게 거할 곳을 마련해주고 그들에게 피할곳이 되라. 그들은 '쫓겨난 자들'이나 '나의 쫓겨난 자들'이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이 어디에 가있든지 간에 심지어 아무도 알지못하는 곳에 있을지라도 그들을 아신다. 비록 그들에게 거할곳이 달리 없을지라도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거처가 되시며 그들은 그안에서 편히 거할 것이다.
3)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쌓아두신 자비를 그들에게 확언한다. 모압 사람들은 머지않아 하나님의 백성들의 친절을 필요로하거나 그들에게 폐를 끼치게될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대저 토색하는 자가 망하였고 멸절하는 자가 그쳤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머지않아 그들의 친절을 보답할 능력을 지니게될 것이다(5절). "비록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의 보좌는 전복될지라도 '다윗의 장막의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설 것이요' 또한 네가 원한다면 너의 보좌도 굳게설 것이라. 히스기야를 친구로 삼아라. '그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할 것이라' 그때 그는 왕위에 앉아 '판결할'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자들의 보호자가 될것이라." 그에게서 선한 관원의 특성을 볼것이다. 그는 '공평을 구할' 것이다. 즉 그는 기회가 있는대로 부당한 취급을 받은 자들을 공평히 다룰 것이다. 그는 '의를 신속히 행하고' 공의를 시행하기를 미루지않을 것이다. 모압 사람들은 이것을 본받아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한다면 그들의 나라가 굳게서는 것을 확인하게 될것이다.

Ⅱ. 모압의 교만과 그로인한 황폐 16:6-14
(1) 모압이 책망받은 죄(6절) : 여기서 선지자는 모압 사람들에게 선한 충고하기를 자제하는듯이 보인다. 그는 그들을 고치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치료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귀한 영혼은 욕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교만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더많을 것이다. 모압 사람들은 교만으로 유명하였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그들은 스스로 너무 지혜롭다고 생각하여 충고를 받아들이려고 하지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히스기야처럼 공평하게 행하려 하지않고 자비를 베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또한 그의 분노함도 들었거니와(아주 교만한 사람들은 대개가 매우 성을 잘내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품은 분노함을 들었도다." 그는 그들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박해하려고 하였다. 그의 교만과 분노함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었다. 그과장이 헛되도다. 그가 반드시 이룰 것처럼 기대한 그의 교만과 성냄으로 세운 계획은 이루지못할 것이다.
(2) 모압이 경고받는 슬픔(7절) :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근심하리니. 강한 군대도 막아낸(왕하3:25) 크고 견고한 성읍은 이제 땅처럼 평평해질 것이다. 모압은 밭과 포도원으로 유명하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군대가 쳐들어옴으로인해 다 황폐해질 것이다(8,10절). 그땅에는 '좋은 가지'가 달린 극상품 포도나무가 심겨졌고, 그가지는 '야셀에까지' 미쳤고 그줄기가 뻗어나가되 모압 '광야에까지' 뻗쳤다. 그땅에는 '바다', 곧 사해까지 '자란'(내뻗은) 포도원이 있었다. 그들은 종종 '여름 실과'와 '농작물'을 보고서 즐겁게 소리질렀었다. 그들은 밭에서도 포도원에서도 '즐거워하며 기뻐하였고 포도를 밟으면서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풍족한 수확에 대해 조금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정욕의 음식과 재료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모조리 빼앗기게될 것이다. "그밭은 '마를' 것이라. 이제 '열국의 주권자들'이라고 불리는 군인들이 가지, 곧 얻을수 있는 것중 가장 '좋은 가지'를 다 꺾어버릴 것이라. 추수의 즐거움이 그쳤도다. 이제는 더이상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그땅이 황폐해지므로 그들은 웃음소리를 잃을 것이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베어보라'(호2:11,12). 하나님께서는 세속적인 마음을 지닌 자에게서 희락을 그치게 하실수 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영혼은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는 때'에도(합3:17,18) 구원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할수 있다. 선지자는 그들과 함께 이슬픔에 참가한다. "내가 야셀의 울음처럼 십마의 포도나무를 위하여 울리라. 그처럼 비옥했던 땅이 황폐해진 것을 동정하리라. '헤스본이여 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며' 너와 함께 울리라." 그것은 그의 내적인 슬픔이었을 것이다(11절).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같이 소리를 발하며. 우리는 교회의 고통뿐 아니라 세상의 고통도 고통스럽게 느껴야 한다(참조. 15:5).
(3) 그들을 돕지못하는 모압 신들의 무능력(12절) :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이내 '피곤해질' 것이라.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에게 기도하느라고 헛되이 정력을 소비할 것이라. 그러나 그우상들은 그들을 돕지 못하리라. 그것을 그들도 알게될 것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당에서 피곤해지면 마땅히 하나님의 성소에 가야하는데도 가질않고 그들의 '성소'에, 곧 최고의 신인 그모스(이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신전에 갈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헛되이 기도할 것이다. 이일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었었다(13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곧 그들이 아주 교만하고 무례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욕하기 시작할때)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모압은 오래전에 파멸이 작정되었다. 그런데 그작정이 실행될즈음인 지금 그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일이 삼년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4절).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점진적으로 알리신다.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점점더 빛나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도 마음속에서 점점더 빛난다. 모압의 영화와 그 큰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즉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때 그영화가 하찮게 될것이다. 자기 나라는 사람이 무척 많고 그들의 군대는 용감하다는 것이 모압의 영화였다. 그러나 '그 남은 수가 심히 적어 소용이 없이' 될것이다.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년내에' 즉 그일이 삼년안에 정확히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일정한 기간동안 고용된 품꾼은 하루도 어기지않고 틀림없이 기일을 지키기 때문이다. 정당한 경고에는 회개할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따랐다. 따라서 우리는 만일 그들이 니느웨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개심을 했다면 경고된 심판이 예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 핵심
16:1-14
모압 심판의 동기와 결과를 묘사한다.
포도의 노래(16:10)
고대 근동에서 포도짜는 사람들이 포도즙틀을 밟을때 불렀던 일종의 노동가를 가리킨다(렘 48:33). 롤린슨에 의하면, ‘포도즙틀은 포도원 가까운 곳에 바위를 파서 만들었으며, 상하 둘로 나누어 위에서 흐르는 포도즙을 아래서 받도록 했다. 먼저 포도를 윗틀에 부어 발로 밟으면 그것이 아래로 내려갔고, 그것을 다시 아랫틀에서 밟았는데, 이때 포도즙틀을 밟으면서 즐겁고 유쾌한 포도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 묵상
어린양을 드린다는 표현 ( 16:1 )
어린양은 정복당하거나 보호를 요청할때 바치는 공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린양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항복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는 희생제사를 드린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다윗의 장막의 왕위에 앉은 사람 ( 16:5 )
인자함으로 굳게서며,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다윗의 후손이시며 의의 완성자이신 메시야의 도래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모압의 신 ( 16:12 )
그모스와 여신 아스다롯 등인데, 발루아 석비의 부조는 모압이 처음으로 가나안 땅에 나타났을때부터 이 두신을 섬겼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아스다롯은 모든 대적을 정복하는 전쟁의 신인 동시에 일상생활의 모든면을 관여하는 신으로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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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모압의 통곡 15:1-5
모압 땅은 범위가 좁지만 매우 비옥하였다. 그땅에 경계는 요단저편에 있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과 하해에 접해있었다. 나오미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그곳에 가서 살았다. 모압은 황폐해지고 심하게 고통을 받게될(그사실이 본문에 예언되었다) 땅이다. 모압의 파멸에 대한 예언은 다른 곳에서도 보게되는데(렘 48장), 이 예언은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이 예언이 여기서는 '삼년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되어있다(16:14). 그것은 히스기야 제 4년, 즉 살만에셀의 군대가 사마리아를 탈취했을무렵에 이루어졌거나 10년후에 유다를 침략한 산헤립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선지자는 이 예언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했다. 그이유는 세상과 세상의 모든 열국을 지배하는 섭리가 있다는 사실과 거짓 신들을 예배하던 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해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 이내(삼년내에) 이루어진 이 예언의 성취는 이사야의 사명과 그가 말하는 다른 모든 예언의 진실성을 확증해준다고 할수 있다. 모압에 관해서 다음의 사실들이 예언된다.
(1) 모압의 큰성읍들이 놀랄 것이며 '하루밤에' 적에게 사로잡힐 것이다(1절). 즉 '하루밤에 모압 알과 모압 기르', 곧 그나라의 가장 중요한 두성읍이 '황폐할 것이기때문에' 그곳에 큰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로잡힌날 밤에' 혹은 약탈당한 밤에 '모압이 깎였다.' 그 두성읍을 탈취하자 온땅이 쉽게 약탈당하였다. 나라가 성읍들을 부양하듯이 성읍들은 나라를 보호한다. 그렇기때문에 어느 한쪽도 다른쪽에게 '나는 네가 필요없다'고 말할수 없다.
(2) 모압 사람들은 그들의 우상들에게 구원을 빌 것이다(2절). 그는(즉 모압왕, 한글개역에는 '그들은'으로 나와있다-역주) '바잇에 올라갔고'(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모스 산당 혹은 그모스 신전에 올라갔고), '디본'의 거민들은 그들의 우상을 예배하던 곳인 '산당'에 하소연을 늘어놓기위해 올라갔다.
(3) 모압 온땅에 걸쳐 큰슬픔이 있을 것이다. 그사실이 본문에서 매우 애절하게 묘사된다. 모압은 눈물의 골짜기가 될것이다(2절). 모압 사람들이 느보와 메드바를 읽은 것을 통곡할 것이다. 설마했던 상당히 큰 두성읍이 약탈당하고 불에 탈 것이다. 그들은 그당시 슬픔을 표시하는 그나라의 풍습을 따라서 '각각 머리털을 없이하고 수염을 깎을' 것이다. 거리에서는 굵은 베로 몸을 동였으며(3절). 그들은 위가 평평한 '지붕에' 올라가서 자기 신들에게 부르짖으며 '심히 울며 애통할' 것이다. 그들은 올라갈때 심히 울었던 것처럼 "울면서 지붕에서 내려올 것이다"(난외주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있다).
(4) 그들의 군대의 용기는 기가 죽을 것이다. 그들은 비록 훈련받은 군인들이었지만 두려워서 '크게 부르짖으며'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 혼이 속에서 떨도다.
(5) 이러한 재난때문에 부르짖는 그들의 외침은 인근 모든 지방에 슬픔을 퍼뜨릴 것이다(5절). 선지자 자신이 그사실에 대한 예언으로 말미암아 심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는도다.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에게는 원수지만 그들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부드러운 심정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즉 예루살렘을 멸망하도록 버리실때조차도 그것을 위해 슬퍼하신 그들의 주와 같이 되며, 또한 '죄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그들의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성읍들이 모압의 통곡을 듣고 같이 통곡할 것이다. 안전을 위해 서둘러 도망하는 '도망자들이'(한글개역에서는 '그 귀인들이'로 나와있다-역주) 울면서 '소알'로 도망할 것이다. 그성읍은 그들의 조상 롯이 소돔의 유황불꽃을 피해 도망간 곳이며 롯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곳이다. 그들은 세살된 암소가 자기 새끼를 찾느라고 울때처럼 울부짖는 소리로 크게 소란을 피울 것이다. 그들은 다윗이 아주 지친 걸음으로 내내 울면서 감람산으로 올라간 것처럼(삼하 15:30) '루힛' 비탈길로 울면서 올라갈 것이며, 여호수아 16:3,5절에서 보는 것처럼 윗 벧호론과 아래 벧호론으로 이르는 길인 '호로나임 길에서' 부르짖을 것이다.

Ⅱ. 모압의 재앙 15:6-9
곡성이 모압 사방에 둘렸고(8절). 곡성이 그땅 한쪽 끝에 있는 성읍인 '에글라임'에 이르렀고 다른 쪽 끝에 있는 성읍인 '브엘엘림'에 미쳤다.
(1) 니므림 물이 마르고(6절). 즉 그땅이 약탈을 당하여 곤궁해졌다. 기근은 대개가 전쟁으로인해서 당하는 슬픈 결과이다. 집들을 샅샅이 뒤지므로 집도 역시 수탈을 당할 것이다(7절). 아주 부지런히 '얻고' 애써서 '쌓은' 많은 '재물을 그들이 가지고 버드나무 시내를 건널 것이다.' 재물의 주인들이 그것을 숨기기위해 저편으로 가져가거나 아니면 원수들이 배에 실어 본국으로 그들의 땅으로 보낼 것이다.
(2) 디몬 물에는 피가 가득함이로다(9절). 즉 "그땅의 거민들이 허다히 죽을 것이라." '디몬'이란 '피투성이'라는 뜻이다. 그곳이 그이름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디몬에 재앙을 더할 것이라'(단어의 뜻이 그렇다). 즉 "재앙을 더내릴 것이라." 그들에게 내릴 심판이 아직도 더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더러는 도망을 하고 더러는 재앙을 모면하여 그땅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남은 자들에게 육식수인 '사를 보내실 것이다.'

# 핵심
15:1-9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이다.

# 묵상
버드나무 시내를 건너는 모압 ( 15:7 )
그이유는 극심한 가뭄때문입니다. 버드나무 시내는 모압과 에돔사이의 국경을 이루면서 사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인 가뭄의 재앙으로인해서 모압이 암몬으로 이동할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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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이스라엘의 회복 14:1-3
바벨론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자비를 준비해 놓으셨기때문에 반드시 파멸하고 말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해진 상해가 틀림없이 그대로 그들의 박해자들에게 보복될 것이다. 바벨론이 오랫동안 그들의 목에 씌웠던 멍에가 틀림없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자유롭게 될것이다.
(1) 하나님이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이런 은총을 베푸신 이유 :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을 보이시고 그들을 다시 택하셨기 때문이다(1절). "여호와께서 야곱을 곧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야곱의 후손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비록 한동안은 하나님이 그들을 거절하고 배척하시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그들을 다시 택하실' 것이다."
(2) 하나님이 계획하신 특별한 은총 :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들이 쫓겨났던 '자기 고토' 즉 거룩한 땅, 약속의 땅에 '두실 것이다.' 나그네된 자가...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가려 하노라"고 말하면서(슥 8:23) 그들과 연합할 것이다. 개종자들이 그들의 귀환을 여러모로 많이 도울 것이다. 즉 그들가운데 섞여살던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다시말해서 그들을 보살피고 친구처럼 종처럼 할수 있는한 모든 선한 일을 기꺼이 그들에게 행하면서 '그들의 본토에 돌아올 것이다.'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할때 그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그들의 이주를 도왔는데(스 1:4,6), 이것은 그들이 애굽 사람들처럼 그들에게 질렸기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들과 함께가려고 하였다.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그땅이 그곳의 편의들로 말미암아 전에는 약속의 언약에 대해 외인이었던 그종들에게 낙원이 되었다. 그이유는 '외국인들과 그땅에서 난 자들에게는 한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화해하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그들에게 진압되고 그들로 말미암아 낮아질 것이다.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그들은 복수심에 불타서 하지않고 이롭게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고통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3절).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궁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복된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신다.

Ⅱ. 바벨론왕과 왕가의 파멸 14:4-23
바벨론왕들은 연이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였다. 바벨론 제국은 절대적이고 세계적이며 영속적인 제국이 될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자부심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겨루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망한 것이나, 마지막 군주인 벨사살이 그나라가 불시에 습격당한 '그날밤에 죽임을 당한'(단 5:30)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 바벨론왕의 몰락 : 아주 기묘한 노래가 본문에 준비되어 있다. 이노래는 우리에게 이 절대군주의 생애와 죽음을 설명해준다. 즉 그가 전에는 '생존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었던 자'(겔 32:27)였지만, 이제는 얼마나 무참하게 '죽어 구덩이에 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1) 이 군주와 제국은 어마어마한 부와 권세를 획득하였다. 바벨론은 '금빛 성읍'(한글개역에는 '강포한 성'으로 나와있음-역주)이었다(4절). '여러 민족을 억압함'으로써(6절) 그처럼 엄청난 부를 쌓은 바벨론왕은 그들을 자기뜻에 따르게 했으며 하고 싶은대로 '열국을 엎었기'(12절)때문에, 그들은 감히 그에게 반기를 들수도 없었다. 그는 엄청난 군대를 전장에 끌어들임으로써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격동시켰다'(16절). 주변의 모든 이웃나라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에게 항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2) 그러나 바벨론왕은 다음과 같은 행위들로 이 모든 부와 권세를 터무니없이 남용하였다.
① 무서운 학대와 잔인한 행위 : 그는 '학대하던 자'로(4절) 악명 높았다. 그에게는 '패권자의 홀'(5절)이 있었으나 그것은 '악인의 몽둥이'였다. '그는 여러 민족을 치되' 그들을 바로잡고 개혁하기위해서 적당하게 치지않고 '분내어 쳤으며' 또한 '치기를 마지아니하였다'(6절). 그는 그들을 '노하여' 억압하기때문에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를 지배했지만 자기 자신은 전혀 다스리지 못했다. 세계를 황무케하며(17절). 그는 포로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17절). 사로잡힌 자를 그집으로 놓아 보내지않던 자가 아니뇨. "그는 집으로 달아나도록 그들을 풀어주지 않았도다"(난외주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있다). 그는 그들을 꼭 가두어 두고서 어느누구도 그들의 본토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사실은 특별히 유다 백성들에게 관련이 있다. 그는 자기 백성들도 학대하였다(20절). 네가 자기 땅을 망케하였고 자기 백성을 죽였으므로.
② 대단한 교만과 오만 : 여기서는 그의 '영화' 곧 그의 수행원의 사치가 주목된다(11절).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파멸을 무르익게 만든 것은 그의 마음의 성향이었다(13,14절). 즉 "너는 계명성(Luciper)처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하도다." 여기서 바벨론왕은 자기가 주변의 모든 나라들보다 뛰어나며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같이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보다 높아지겠다고 장담한다. 벨사살은 예루살렘 성전의 그릇들을 더럽히려고 가져오게 하였다(참조. 단 5:2). 그처럼 그는 여기서도 '내가 북극집회의 산위에 좌정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런 곳에 시온산이 위치해 있다고 한다(시 48:2). 어쩌면 벨사살은 하나님이 그를 제거하려고 하신 바로 그때에 예루살렘에 대한 원정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가 전에 들어왔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구름위에 거하시는' 자와 겨루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올라가서' 그와같이 위대해지리라. 내가 그들이 '지극히 높은 자'라고 부르는 자와 비기리라." 앗수르 제국의 최초의 창건자들중 대부분이 신성시되었는데 별들가운데는 그들에게서 이름을 따온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뭇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고 말한다.
3) 그에게 닥칠 철저한 파멸이 예비된다. 그의 부와 권세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을 학대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못할 것이다(4절). 죄짓기를 그만두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만두게 만드실 것이다. 여호와께서(곧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악인의 몽둥이...을 꺾으셨도다. 그가 '억압'당할 것이다(6절, 한글개역의 번역은 이와 다름-역주). 그가 폭행을 당할 것이다. 간신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폭군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당하는 운명이다. 티베리우스(Tiberius)와 네로도 이와같이 버림을 당하였다.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므로 '죽은 자들처럼 연약하게' 될것이며 '그들같이' 될것이다(10절).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11절). 즉 그와 함께 그의 영화가 사라질 것이다. 한때는 솜털침대에 누웠던 이 절대군주는 이제는 '구더기가 깔리고 지렁이가 그를 덮는' 신세가 될것이다. 이사실은 비록 그는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을지라도 그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체질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중에 자건마는(18절). 즉 그들은 자신의 묘지에서 '잔다'(18절). 그러나 이 바벨론왕은 '내어쫓겨서' 무덤조차 없다(19절). 그의 시체는 짐승의 것처럼 버려져서, '가증한 나무가지' 곧 유해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아무도 손대려고 하지않는 식물의 가지처럼, 혹은 '칼에 찔려' 죽은 곧 공의의 손에 의해 처형되어 그 시체들위에 돌무더기가 쌓아올려진 범죄자들의 의복처럼, 시궁창에 버려질 것이다. 이 바벨론왕의 시체는 말발굽과 군병들의 '발에 밟혀' 찢겨질 것이다. 이렇게 그는 '그의 조상들과 일반적으로 안장함을 얻지못할 것이다'(20절). 그는 평화를 크게 저해하는 자였기때문에 그가 사라지자 이제는 '온땅이 평안하고 정온하게 되었다.'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 레바논의 전나무와 백향목들은 이제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에게 목재를 제공하기위해 그것들이 벌목당할 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나무와 백향목에 비유된 이웃나라 왕들이(슥 11:2) 이제는 안심할수 있고 그들의 권리를 빼앗길 염려를 하지않아도 되었다. 죽은 자들이 그를 환영할 것이다. 특별히 그가 재촉하여 이세상에서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이 그를 환영할 것이다(9,10절). 아래의 음부가 너로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환영하되. 살아있을때 항상 그를 두려워하였던 '세상에서의 영웅들이' 냉소를 띄우며 자기 보좌에서 일어나 그에게 그가 세상에서 그들의 보좌에 앉을때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이제도 그들가운데 뻐기면서 앉겠느냐고 물을 것이다.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누가 이렇게 될줄 생각이라도 했겠느냐? 스스로 불멸의 신들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네가 우리같이 죽을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처지에 이르게 되었느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11,12절). "그와같은 별이 어찌 흙덩이가 되어 버렸는가? 대체 어느 누가 그처럼 높은 명예과 권세에서 그처럼 깊은 수치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보며(15,16절). "죽음이 그에게서만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사람은 결코 없었노라. 바로 조금 전까지만해도 아주 위대하게 보이던 사람이 이렇게 금방 아주 핼쓱하고 비열하며 하찮게 보일수 있겠느뇨? '이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격동시키던 자가 아니뇨?' 그가 이렇게 되리라고 대체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는가?"(시 82:7).
4) 이 모든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수 있다(20절).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바벨론 제국의 왕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같은 불명예를 스스로 초래하였다. 죄의 길에는 결코 명예가 따르지않는 법이다.
(2) 여기서 이 왕가가 왕의 성읍과 함께 완전히 파멸될 것이라고 예언된다.
1) 이 왕가는 완전히 뿌리뽑히게 될것이다. 이 파멸의 일에 고용되기로 예정된 메대와 바사 사람들은 벨사살을 죽였을때 '너희는 그 자손 도륙하기를 예비하라'(21절)는 명령을 받았다. 느부갓네살도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죽였기(렘 52:10)때문에 그의 죄악을 인하여 그의 후손들이 그와 똑같은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일어나 땅을 취하지 못하게 되어' 그들의 열조가 생전에 행한만큼 그들의 날에 악을 많이 행하지 못하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섭리가운데서 만일 살아있다면 해를 끼쳤을 사람들을 제거하심으로써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많이 백성들의 복지를 고려하신다.
2) 이 왕의 성읍은 파괴되어 황폐해질 것이다(23절). 그곳은 무리짓지 않고 홀로사는 무서운 새들, 특별히 당아와 부엉이가 '고슴도치'와 함께 거처할 것이다(34:11).

Ⅲ. 앗수르와 블레셋의 파멸 14:24-32
바벨론 멸망에 대한 이 예언이 성취되기까지는 거의 2백년이 걸렸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이 예언을 들은 그의 백성들은 그에게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을수밖에 없었다. 이질문에 대해 이사야는 속히 앗수르와 블레셋이 멸망하리라는 예언을 가지고서 답변한다. 이런 사실들은 미래의 구원에 대한 보증이 되곤 했었다.
(1) 앗수르의 파멸에 대한 보증(25절) :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산헤립이 무시무시한 군대를 쳐부셨다. '내가 앗수르 사람을 파하리라.' 앗수르 군대를 쳐부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목에서 멍에를 깨뜨려 벗기는 것이 될것이다. 즉 '그의 짐', 곧 그 엄청난 군대를 숙영시키고 군세를 바치는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다.' 이 예언이 본문에서 맹세로써 확정된다(2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이 특별한 의도에 대해 본문에서 언급된 말은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것이다. 앗수르 군대를 파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와 그의 교회를 치는데 가담한 모든 민족들에 대해 행하려고 하시는 일의 표본이 되었다(26절). 이러한 경영은 후에 로마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눅 2:1) 그당시에 그나라 자체는 세계로 간주되어서 그나라가 망할때는 그것을 의지하던 많은 나라도 함께 망한 앗수르 제국에 적용된다. 또한 하나님의 땅을 침략하는 모든 국가들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원수들에게 원수가 되실 것이다(출 23:22).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하나님의 계획을 결코 바꾸지는 못한다(27절). 즉 "만군의 여호와께서 앗수르의 멍에를 깨뜨리기로 '경영하셨은즉 누가 그것을 돌이킬수 있으며' 혹은 누가 그심판의 진행을 연기시킬수 있으랴?"
(2) 블레셋 사람들과 그들의 군대의 파멸에 대한 보증 : 이 예언은 '아하스왕의 죽던 해' 곧 히스기야 통치의 첫해에 있었다(28절). 블레셋 사람들은 웃시야왕의 죽음을 기뻐한 것에 대해 책망을 받는다. 웃시야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뱀과 같은 존재였고(29절), 그들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든 왕이다(대하 26:6). 웃시야는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그들의 성들을 헐고 그들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웃시야가 퇴위되자 그사실이 가드에 전하여졌으며 '아스글론 거리에 공표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하스에게 보복을 가하여 유다의 성읍들을 많이 빼앗았다(대하 28:18). 그러나 웃시야의 '뿌리에서 독사' 곧 웃시야보다 더무서운 적인 히스기야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믿을수 없을만큼 빠른 속도와 맹렬한 기세로 그들을 습격할 것이기때문에 그의 통치의 결과는 그들에게 '나는 불뱀'이 될것이다. '그가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에 이르렀다'(왕하 18:8).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쇠약하게 만들고 괴롭히며 가난하게 만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시 풍족함을 누릴 것이요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을 것이라'(즉 그들중의 가장 가난하던 자들이 좋은 음식을 먹을 것이라).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뿌리를 기근으로' 줄이실 것이라"(30절). 하나님의 백성중 '빈핍한 자가 평안히 누워' 평화의 노래를 즐길때 블레셋의 성읍과 문들은 '슬피울며 부르짖을 것이다'(31절). 그리고 그들의 나라는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블레셋 북방에 있는 유다로부터 '연기가 올 것이다'(이말은 거대한 군대가 일으키는 엄청난 먼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맹렬히 타오르는 불이 가까이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게다가 그 군대가운데서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 군대가 교전할때는 아무도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낙오하지 않을 것이라."
(3) 이 모든 사건들의 선한 용도 :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하는데 쓰일 것이다(32절). 그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1) 이말은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위하여 행하시는 큰일들을 이웃나라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일들에 관해 알아보도록 사신들이 파견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우리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해야한다(벧전 3:15).
2) 사신들에게 말해주어야할 답변 : 그답변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그는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게 신실한 친구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다'고 말하라. 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변혁을 통해서 시온을 세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교회의 권익의 증진을 꾀하신다. 열국의 사신들이 블레셋을 쳐서 이긴 히스기야의 성공에 관해 알아보도록 파견되었을때, 그들은 책략과 전술을 배울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히스기야의 성공의 원인이 그런 것들때문이 전혀 아니고 하나님이 자기 교회에 베푸신 보호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백성중 곤고한 자들이(최근에 아주 비천하게된 그의 가난한 백성들이) 그안에서 피난할 것이니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마 11:5). 그들은 이 위대한 진리를 곧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의지할 것이다. 그들은 육신의 군대에다 희망을 두지않고 이사실에다 희망을 둘것이다. 교회에 아무리 갖가지의 파가 있을지라도 그교회가 하나님 자신을 그창립자로 모시고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그 기초로 둔다면 결코 흔들리지 않고 굳게설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어찌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 핵심
14:1-23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하나님을 대적한 바벨론의 멸망이 필연적임을 예언한다.
사단의 타락(14:12-15)
“아침의 아들 계명성”은 일차적으로 바벨론왕을 가리키며, 상징적으로는 그왕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단을 지칭한다고 보기도 한다. 사단은 원래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중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였다(겔 28:11-15). 그러나 이천사는 자신의 한계와 존재근거를 착각하고, 하나님과 견주어보려고 시도하다가 하나님앞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고,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다(겔 28:17). 이처럼 사단이 타락하게된 근본원인은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함에 있었다(살후 2:4).

# 묵상
야곱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여호와 ( 14:1 )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다시 선택하셔서 자기 고토에 두십니다. 즉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이스라엘의 시련이 끝나게 될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을 다시 선민으로 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 ( 14:5 )
‘홀’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여기서는 바벨론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도구로써 만족지않고 그들이 침략한 나라들을 지나치게 압제했으며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음부 ( 14:9 )
이곳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죽음의 세계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기서 음부가 너로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몸을 영접한다는 말은 바벨론에 의해 죽음을 당한 자들이 바벨론왕이 죽어 자신들에게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 ( 14:12 )
새벽빛을 가져오는 이별의 표상은 가나안 신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신화에 따르면 새벽별, 계명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대항하고자 하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 교만한 고대 가나안의 신은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악인의 후손의 결말 ( 14:20 )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대가 완전히 끊기게 될것을 말합니다. 고대인들은 자손이 없는 자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간주했기에 이러한 것을 가장 큰심판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온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 ( 14:26, 27 )
이는 앗수르 사람을 파하고 발아래 밟으시므로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가게 된다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므로 어떤 사람도 그것을 막을수 없습니다.
뱀, 독사, 나는 불뱀 ( 14:29 )
점점 커지는 적들의 위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독으로인해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뱀이나 독사 혹은 나는 불뱀 곧 용으로 상징되는 사단의 세력속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 곧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살수 있습니다(민21:9; 요3:14).
유다와 블레셋에 대한 심판 ( 14:30 )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고 빈핍한 자는 평안히 누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남은 자는 살육을 당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가난한 자와 빈핍한 자는 막대기가 부러진 유다 백성을 가리키고, 뿌리는 블레셋을 말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매우 큰환난가운데 신음하고 고통을 당한다할지라도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영적평안과 안정을 누리게될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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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바벨론을 칠 군대의 집결 13:1-5
이책 전체의 표제인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본 이상'(1:1)이었다. 그러나 이설교의 제목은 '바벨론에 대한 경고'이다. 이것은 경고, 즉 그들이 배워야했던 교훈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교훈이 그들을 무겁게 내리누를 무거운 짐이 될것이다. 이것은 바벨론 혹은 바벨에 대한 경고인데, 이나라는 이당시에 앗수르 제국(이나라의 수도는 니느웨였다)의 속국이었다. 그러나 바벨론은 얼마후에 곧 반역을 일으켜 스스로 제국이 되었고 느부갓네살때에는 아주 강대한 나라가 되었다. 이사야는 나중에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였다(39:6).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파멸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시려고 하는 강대한 나라들에게 내려지는 소환이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멸망시킬 나라의 이름을 '메대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17절). 그들은 다리오와 고레스의 지휘하에 바사 사람들과 협력하여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켰다.
(1) 바벨론이 여기서는 '존귀한 자의 문'이라고 불린다(2절). 그이유는 이나라의 귀족들의 집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온땅은' 멸망할 것이다(5절). 왜냐하면 비록 귀족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데 앞장섰지만 그래도 온땅이 그일에 그들과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2) 바벨론을 황폐화시키기위해 함께 모인 자들이 여기서는 하나님의 '거룩히 구별한 자'라고 불린다(3절). 그들은 바벨론을 황폐시키도록 예정되었고, 또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에 의해 그일을 하도록 따로 구별된 자들이다. 이사실은 비록 그들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거룩한 싸움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취지에서는 그일이 거룩한 싸움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들은 그들 제국의 영토확장을 꾀하였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해방을 계획하셨다. 그일에 주로 관계된 사람은 고레스인데, 그가 '거룩히 구별한 자'라고 불린 것은 정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45:1), 장차 오실 자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히 구별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부여받아 하나님을 위해 그힘을 사용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용사들'이라고 불린다 고레스에 대해서는 이 원정에서 '하나님이 그의 오른손을 잡으셨다'(45:1)는 말씀이 있다. 비록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자기 종으로 쓰셨다(45:4,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내 종이라는 호칭을 주었노라'). 그들은 매우 수가 많은 '무리'이고 '많은 백성'이며 '열국 민족'(4절)이지만 거칠고 미개한 무리들이 아니라 정예부대이다. 무리가 먼나라에서, 하늘가에서 왔음이여(5절). 앗수르의 고대한 땅은 바벨론과 바사사이에 있었다.
(3) 그들에게 내려진 호출은 효과적이다. 너희는 민둥산위에 기호를 세우고(2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4절).

Ⅱ. 바벨론에 행할 이 군대들의 잔인한 행위 13:6-18
우리는 본문에서 메대와 바사인들이 바벨론에 일으킬 끔찍한 황폐에 대한 묘사를 본다. 그때 안심하고 있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애곡하고' 슬퍼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1)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6절). 하나님이 자신과 자기 백성의 손상된 대의를 위하여 정당하게 보복하는 자로서 활동하실 심판의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호와의...날이 임하여(9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만큼 하나님은 혹독하게 그들을 다루실 것이다.
(2) 그들은 낙담하게 되고 용기도, 위로도 다 잃게될 것이다(7,8절). 평온할때 '교만하고 거만하며 강포했던'(11절) 자들이 환난이 닥치면 기가 죽고 어찌할바를 모르게될 것이다. 즉 '모든 손이 피곤해져' 무기를 들수 없고 '각사람의 마음이 녹을 것이다.' 그들이...서로 보며 놀라며(8절). 그들은 각자가 놀라는 가운데 서로를 놀라게할 것이다. 얼굴은 불꽃같으리로다. 즉 두려움때문에 불꽃처럼 창백해질 것이다. 혹은 놀라게됨으로서 얼굴이 붉어져 불꽃처럼 빨갛게될 것이다.
(3) 모든 희망이 무너질 것이다(10절). 하늘의 별들과 별떨기가 그빛을 내지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이렇듯 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태가 될것이다.
(4) 하나님은 '그들의 죄', 특별히 교만의 죄에 대해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11절). 그러한 교만이 이때 반드시 꺾이고 말것이다. '강포한 자의 거만' 특별히 교만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아들 벨사살의 거만이 이때 틀림없이 '낮추어질' 것이다.
(5) 대대적인 살육으로인해 사람들의 수가 매우 적어질 것이다(12절).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하며. "내가 사람이 붐비던 땅을 전쟁으로 인구가 현저하게 줄어들게 하리라."
(6) 그들의 하는 일은 천둥으로 '하늘이 전동하고'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듯이' 엉망이 될것이다. 모든 것이 '만군의 여호와가 노하는 날에' 황폐해질 것이다(13절). 한때는 울부짖는 사자같고 미친듯이 날뛰는 곰같던 바벨론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같이' 될것이다(14절).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대군이 낙담하여 뿔뿔히 흩어져서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7) 칼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흔히있는 일처럼 피비린내나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정복자는 무자비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일 것이다. 그들을 도우러온 다른 민족들도 그들과 함께 제거될 것이다. 맹렬한 전쟁으로인해 가장 존중되어지던 자연계의 법칙과 인간성 자체가 질식되었으므로 정복자들은 아주 야만적인 방법으로 '어린아이들을 메어치고 아내들을 욕보일' 것이다(16절).
(8) 적들은 냉혹하게 행동할 것이다. 바사 사람들과 연합한 이 메대 사람들은 전혀 뇌물을 받지않을 것이다(17절). 즉 그들은 '은을 돌아보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한창때인 청년에게도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에게도 전혀 동정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18절). 메대 사람이...태의 열매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이를 가석히 보지 아니하리라.

Ⅲ. 바벨론의 완전한 파멸 13:19-22
메대와 바사 사람들에 의해서 바벨론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된 대파멸과 황폐가 본문에서 최종적인 파멸로 끝이 난다. 바벨론은 당당한 성읍이었다. 그성읍은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였다. 그것은 '금머리'였다(단 2:37,38). 바벨론은 '열국의 주모'요(사 47:5) '온세상의 칭찬받는 성'(렘 51:41)이라고 불렸고, "즐겁게 뛰노는 노루"(단어의 뜻이 그렇다)와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성읍이 이제는 '쫓긴 노루'와 같이 될것이다(14절). 그성읍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바벨론은 벨사살이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때 불시에 습격을 받았다. 비록 고레스와 다리오가 바벨론을 완전히 쳐부수지는 않았지만 바벨론은 점차 황폐해 갔다. 그 사실이 본문에서 '그곳에 처할 자가 없을 것이라'(20절)고 예언된다. 그래서 아드리안(Adrian) 시대에는 성벽밖에는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니느웨에 관해서는 그성읍이 버려져 황폐한채로 남아있을때에라도 그가운데 양떼가 누울 것이라고 예언된 것에 반해, 바벨론에 관해서는 '목자들도 그곳에 양떼를 쉬게 안할 것이라'고 본문에 예언된다. 목자들도 그곳에 그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땅은 불모지가 될것이다. 그곳은 황야에 사는 '들짐승들'의 피난처가 될것이다. 바벨론의 가옥은 '부르짖는 짐승이 그곳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뛰게'될 것이다. 베냐민 바요나(Benjamin Bar-Jona)는 그의 기행기에서 바벨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이곳은 폭이 30마일이나 되었던 곳이지만 이제는 황폐해졌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궁의 폐허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곳에 득실거리는 뱀과 전갈이 무서워서 감히 들어가려고 하지않는다." 이 파멸이 속히 임하리라는 것이 예언된다(22절). 그의 때가 가까우며. 이 바벨론 파멸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있으면서 심하게 학대를 받을때 그들을 지탱하고 위로하기위해 말해진 것이었다. 이 예언은 그것이 전해진지 거의 2백년이 지난 다음에 성취되었다.

# 핵심
13:1-22
바벨론 제국이 패역한 유다를 징계하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지만, 결국 메대 사람을 통해 멸망당할 것이라는 심판예언이다.

# 묵상
하나님의 진노의 병기 ( 13:5 )
먼나라와 하늘가에서 온 그들은 곧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대와 바사 군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것은 이들 나라가 자신들의 힘으로 유다를 침략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진노를 위한 심판도구로 사용될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결국 그들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날 ( 13:6 )
이날은 죄인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는 만군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악을 물리치시기위해 홀연히 임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의 참혹함 ( 13:12 )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하리라’는 말은 이날의 참혹함에 대한 표현입니다. 즉,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회복의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메대 사람의 특성 ( 13:17-20 )
그들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며 포악한 사람들로서 전리품으로 내어놓는 은이나 금으로도 마음을 돌리지않고 모든 것을 멸망시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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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구원에 대한 감사 12:1-3
본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교회를 위해 큰구원을 베푸실때 그들이 사용할수 있도록, 그리고 메시야의 왕국이 세상에 세워질때 그리스도인의 교회가 사용할수 있도록 마련된 찬송의 전편이다. 흩어진 교회가 한몸으로 연합되어서 본문과 같이 한사람처럼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1) 약속은 확실하다. 그리고 교회가 그것들을 부여받을때 그약속에 포함된 축복들은 그들에게 감사할 조건들을 풍성히 제공해줄 것이다.
(2) '네가 말할 것이다.' 즉 너는 틀림없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날에(즉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오는때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하신 얼굴을 대할때에라도, 그것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에 대해서 품으신 하나님의 진노는 이새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을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때때로 자기 백성들을 광야로 데려가셔서 '말로 위로하신다'(호 2:14). 그들은 하나님안에서 승리를 배운다(2절). 보라(그리고 놀라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그로 말미암아 내가 구원을 받은 나의 구주이실뿐만 아니라, 그안에서 내가 안전을 누리는 나의 구원이시라." 우리에게는 마땅히 해야할 일과 물리쳐야할 시험이 있는데, 우리는 그를 의지함으로써 그 두가지 일을 다 해낼수 있다. 우리에게는 겪어야할 환난이 많이 있는데, 그를 의지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환난가운데서도 스스로를 위로할수 있다. 이는 그가 '밤중에 우리로 노래를 부르게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붙여진 칭호를 유의하여 보라. '야'(Jah), '여호와'(Jehovah). 야(Jah)는 여호와의 단축어이다. 두단어는 모두 그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그를 자기의 힘과 노래로 의지하는 자들에게 큰위로가 될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즉 주 여호와께서 너희의 힘과 노래가 되시며 또 장차 너희의 구원이 되시므로, '너희가' 자기 백성에게 있어 모든 선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앞에 있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의 말씀속에서 계시되고 확증되며,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은 구원의 우물들이다.

Ⅱ. 찬송의 권유 12:4-6
본문은 이 복음적인 찬송의 후편이다. 전편에서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했던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려고 스스로 선동하고, 여기서는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서로를 초대하고 격려한다.
(1) 하나님이 산헤립의 폭력에서 보호하신(6절) 예루살렘과 '시온의 거민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열심히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시온의 거민아. 그단어는 여성형이다. "여인들아 여호와안에서 담대하라. 그러면 너희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이 온전해질 것이라."
(2) 기도로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 그이름을 부르며(4절).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말해야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에 관해서 말해야 한다. 즉 '그이름을 선포해야' 한다. 그 행하심을 만국중에 선포하며. 곧 이방인들가운데 선포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이스라엘과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교제하게 될것이다. 이말씀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을때 성취되었다. 소리를 높여 부르라(6절). "먼저 네 자신이 복음을 받아들여라. 그리고나서 '승전가를 부르거나'(출 32:18) 왕의 대관식을 위해 외치는(민 23:21)자들처럼 큰소리로 만세를 부르고 환호를 하면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표하라." 거룩하신 자가...크심이니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으로인하여 영화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이야말로 그분의 크심에 대한 이유인 것이다. 그들과 언약을 맺고 계시며 그들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 무한히 크시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행복이다.

# 핵심
12:1-6
구원받은 백성이 부르는 감사의 노래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칭송하며 이를 온세계에 선포해야할 의무가 주어진다.

# 묵상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 ( 12:1-6 )
본장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약속이며, 이사야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출애굽기 15장의 미리암의 노래와 주제가 같습니다. 구원을 감사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신앙고백이자 하나님앞에 선 모든 인간이 취해야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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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메시야와 그의 왕국 11:1-9
선지자는 앞에서 그어깨에 정사를 메고 태어날 한아기에 관해서 말했다. 그는 '그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고 말하였다(10:27). 그리고 여기서는 그 기름부음을 받을 자에 대해서 말한다.
(1) 메시야는 선지자가 앞에서 말한(4:2) 여호와의 싹이 장차 영화로와지듯이 때가 차면 다윗 집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이싹은 '이새의 줄기'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는 왕권의 언약을 받은 다윗의 후손이 될것이다. 다윗은 종종 '이새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고, 그리스도도 그렇게 불리우신다. 또한 그리스도는 '한싹'으로도 불리우시고 '한가지'라고도 불리우신다. 여기에 쓰인 단어들은 잘부러지는 작고 연한 어린가지를 뜻한다. 하나님의 교회의 원수들이 강한 가지에 비유되었고(10:33), 그리스도는 연한 가지에 비유되었다(53:2). 그럴지라도 그리스도는 그들을 이기고 승리를 거두실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윗에게서가 아니라 이새에게서 나오실 것으로 언급되었다. 그이유는 이새가 천하고 잘알려지지 않은 상태가운데서 살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안은 신분이 보잘것 없었다(삼상 18:18). 그는 이새의 '줄기' 혹은 '그루터기'에서 나오실 것이다. 다윗의 집은 쇠약해져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날 당시에는 매우 비천해졌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가 미미하고 비천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갈대아 역본은 이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새의 후손들에게서 한 왕이 나실 것이라. 그리고 그 메시야(혹은 그리스도)는 그의 후손의 후손들가운데서 기름부음을 받으시리라."
(2) 그는 모든점에서 그에게 맡겨진 위대한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될것이다. 이 연한 가지는 통치하는 주권의 강한 막대기가 될만큼 하늘의 이슬을 먹을 것이다(2절). 여호와의...신이 그위에 강림하시리니. 그는 성령을 어느정도가 아니라 한량없이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할 것이다(골 1:19;2:9).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눅 4:18)라는 말씀과 함께 복음전파를 시작하셨다. 메시야는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의 신'을 받으실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번영을 위해 그의 영적인 나라의 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줄을 아신다. 그는 참되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신 용기있는 분이셨다(마 22:16).
(3) 그는 그의 통치를 시행하고 그에게 위임된 권세를 사용하심에 빈틈이 없고 정확할 것이다(3절).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으므로 그의 맡은 일을 완전히 깨달으실수 있었다.
(4) 그는 모든 통치행위에서 정당하고 의로우실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그 눈에 보이는대로' 즉 외모로(욥 34:19)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즉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판단치 아니하실 것이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그를 '주여, 주여'하고 부르면서 말하는 달콤한 말대로 판단치 아니하실 것이다. 다만 그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보시고 판단하실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배를 받고있는 내적인 원칙들에 의해서 판단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전혀 틀림이 없는 증인이 되실 것이다. 그는 공의로 판단하실 것이다(5절). 공의로 그허리띠를 삼으리라. 공의가 끊임없이 그를 두를 것이며 그것이 그의 명예가 될것이다. 그는 공의로 모든 일을 행하시고 전쟁을 위해 공의로 무장하실 것이다.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4절). 그는 의로운 자들에 대해서는 비록 그들이 세상에서는 가난할지라도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기때문에 그들을 편들고 변호하는 판단을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의 왕이시다(시 72:2,4). 그는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나라의 겸손한 자를 위해 공평으로 다투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구절을 '그는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실 것이다' 혹은 '바로 잡으실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만일 그의 백성이, 즉 그나라의 겸손한 자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가 '그 막대기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압박하는 자들, 즉 '세상에 속한 자'를 '그 입의 막대기로' 다시말해서 그들에게 파멸과 두려움을 알리는 입의 말씀으로 '치실 것이다.' 그는 '입술의 기운으로' 즉 입의 말씀에 따른 그의 성령의 활동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다.'
(5) 그가 통치하실때에는 큰평강과 평안이 있을 것이다(9:6). 평강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1) 조화 혹은 일치 : 이것은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평화롭게 '거하리라'는 상징적인 약속들가운데서 암시되었다. 아주 사납고 난폭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기질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주 온유해져서 전에는 아주 쉽게 해칠수 있었던 사람들과도 사랑하면서 살게될 것이다.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반목을 없애고, 그를 따르는 자들가운데 특별히 유대인과 이방인가운데 지속적인 우정을 세우기위하여 오셨다. '표범은' 어린염소를 찢지 않을뿐 아니라 '어린염소와 함께 누울 것이다.' 표범과 염소의 어린새끼들이 함께 누울 것이며 사이 좋게 지내도록 길들여질 것이다. 혹자들이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전에 육식동물이 그러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자'가 더이상 게걸스럽게 먹지않고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다.' '독사'는 독이 없게될 것이기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이 독사와 '장난하도록' 내버려두게 될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은 이 성도들의 후손이 될것이다. 이사실을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에 놀랍게 영을 미치므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복음은 사람의 성질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세상의 온유한 자를 짓밟던 자들은 그들처럼 온유해질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애정을 품게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약속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훗날에 더욱더 성취되리라고 믿는다.
2) 안전 혹은 안심 : 목자장이신 그리스도는 양떼들이 서로를 멸망시키지않도록 자기 양떼를 보살피실뿐만 아니라, 밖에 있는 원수들이 그들을 조금도 괴롭히지 못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악에서뿐만 아니라 악의 두려움에서 구원받을 것이다. 그런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분고분해지고 그의 교훈을 즐거이 받아들이게 될것이다. 전에는 아주 힘센 사람에게 제어받는 것도 우습게 여기던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이끌 것이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평화롭고자 하는 기질도 그만큼 더커진다. 사람들의 격노와 적의를 소멸시킬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보다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훨씬더 많이 얻을수 있다.

Ⅱ. 메시아 왕국에서의 연합 11:10-16
산헤립이 패퇴한후 히스기야 통치말기의 유다를 표상으로하여 메시야 왕국의 확장과 전진이 더 예언되었다.
(1) 이 예언은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즉,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을 위해 행하신 큰일들이 기호가 되어 이웃나라들이 '그땅에 행해진 기이한 일을 알아보기위해' 그들을 방문하였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바벨론 왕의 사절들도 그와같은 용무로 그들에게 왔었다. 열방이 그에게 돌아오리니 그 거한곳이 영화로우리라(10절). 앗수르왕 때문에 주변의 모든 나라로 도망가 숨어야했던 열지파의 왕국인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그때에 다시 용기를 내어 자기 땅으로 돌아와서 유다왕의 보호를 받았다. 이사건은 첫번째 애굽에서 구원받았을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실례처럼 두번째 그들의 회복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이 돌아올 것이며, 유다의 쫓긴 자들도 돌아올 것이다. 그때는 에브라임과 유다사이에 있었던 옛날의 불화가 없어질 것이며, 함께 연합하여 블레셋과 그밖의 공동의 적들을 칠것이다(13,14절).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때 대적하는 산들이 그앞에서 평지가 될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힘이 쇠약해진 것처럼 보이는때라고 낙망하지 말자. 하나님은 금방이라도 우울한 날을 영화로운 날로 바꾸실수 있다.
(2) 이말씀은 더나아가서 메시야의 날과 이방인들이 그의 나라에 들어오는 사건과 관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바울사도는 10절의 말씀을 이사실들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서 15:12절은 10절에 계속 이어지는 말씀이다.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그리스도를 이새의 뿌리로 혹은 '그뿌리에서 나오는 한가지'(1절)나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로(53:2) 말하는 그것이 이 예언을 푸는 비결이다.
1) 그는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다(10절). 혹은 세워질 것이다. 그가 기호 혹은 표지로서 땅에서 들리워 십자가에 못박혔을때, 그는 모든 사람의 눈과 마음을 그에게로 끌었을 것이다(요 12:32). 그는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는 기호로 세워졌다. 목회자들은 그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기수와 같다.
2)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12:21절에서 그를 찾아온 헬라인들을 보게된다('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3) 그 거한곳이 영화로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말씀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십자가의 승리가 죽음조차 영광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쉬기위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그의 승천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더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복음시대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씀이다.
4)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다같이 그에게로 모일 것이다(11절). 유대인과 이방인의 남은 자, 곧 상대적으로 수가 매우 적은 남은 자들은 간신히 회복되었다.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모아질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쫓긴 자와 유다의 이산한 자'가 모아질 것이다(12절). 그당시에 그리스도에게로 모인 사람들중에 많은 수가 '흩어진 유대인들'이었다.
5) 유다와 에브라임사이에 복된 화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원수들을 염려하지 않게될 것이며 그들을 지배하게 될것이다(13,14절). 그당시 유다와 이스라엘사이의 연합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연합을 예표하고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독수리가 먹이를 공격하듯이 '블레셋 사람의 어깨에 날아앉고', 동쪽으로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을 정복해나갈 것이다. 모든 열방중에 더러는 그 참된신앙에 복종하게 될것이다.
6) 복음의 전진과 성공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다 제거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의 교회에 함께 모이게 될때 모든 장애가 제거될 것이다(15,16절). 즉 도저히 극복할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려움들이 묘하게 극복될 것이다. '소경들이 그들의 알지못하는 길로 인도될 것이다'(참조. 42:15,16;43:19,20). '이방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수레와 교자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6:20).

# 핵심
11:1-5
메시아가 오실 것과 그가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통치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스라엘의 회복(11:11-16)
이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사건뿐만 아니라, 마지막때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수반한다.
① 신실한 남은 자들이 돌아옴(렘 31:1,8,10; 겔 39:22,28).
② 메시아께로 모임(렘 23:5-8; 겔 37:21-25).
③ 이스라엘이 온전히 정결케 됨(렘 32:37-41; 겔 11:17-20).
④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의 축복과 번영(미 4:1-4; 슥 2:10-12).
⑤ 불경한 자들에 대한 심판(욜 3:2,12).

# 묵상
메시야에게 부여된 능력 ( 11:2 )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외하는 자이기때문에 법과 정의로써 백성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올바른 자세를 말합니다(잠1:7).
동물들과 인간과의 평화공존의 삶 ( 11:6-9 )
이것은 우리에게 에덴동산을 연상케 해줍니다. 즉 본문이 보여주는 동물과 인간의 평화공존은 구원의 때가 도래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인해서 모든 피조물들도 고통받게 되었으므로 만물도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의 도래를 고대합니다(롬8:19).
만민의 기호 ( 11:10 )
이말은 만민이 보고 따라올 깃대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뱀에 물린 자들이 지팡이에 매어달린 놋뱀을 보면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민21: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참생명을 부여하셨습니다(갈3:13).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들이 바라보고 뛰어가야할 푯대가 됩니다.
유다의 이산한 자 ( 11:12 )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나라가 멸망한후에 유대인들은 열국에 흩어져서 떠돌아다녔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였을때, 그리고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때 세계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에서의 귀환으로 이루어졌으며, 또 주후 1945년 이스라엘을 한나라로 세움으로써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브라데 하수위의 뜨거운 바람 ( 11:15 )
하나님의 영의 활동을 가리킵니다. 즉, 이말은 하나님이 유브라데 강물을 증발시키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유브라데강 너머의 남은 자들이 고토로 돌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없이하시겠다는 의미로, 홍해바다를 가르신 구원사건(출14장; 슥10:11)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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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불의한 압제자에 대한 경고 10:1-4
여기서 선지자에게 화를 선고받는 방백과 재판관들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유다 사람인지는 확실치 않다.
(1) 이 압제자들에 대한 기소(1,2절) : 그들은 다음과 같은 죄목들로 고발당하였다.
첫째, 불의한 법령을 만들었다.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이같은 법령을 고안해내는 고위 권력가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또한 그러한 법령을 작성하고 기록하는 하급관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제정된 법을 실행함에 있어서 불의를 행하였다.
셋째, 마음대로 다룰수 있는 자들을 압제하여 치부하였다. '고아'에게는 변호해줄 후원자가 없기때문에 가진 것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고아의 것을 약탈'하였다.
(2) 하나님의 심판에 대항하는 그들의 교만과 권세에 대한 그들의 도전(3절) :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가 지금은 과부와 고아를 짓밟을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일어나실때에는 어떻게 하려느냐(욥 31:14). 너희 영화를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찾기위해 어느곳에 두려느냐." 그들이 모아놓은 재산이 그들의 영화였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것을 안전하게 맡겨둘 곳이 없었다.
(3)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 : 그 선고에 따라 그들중 얼마는 붙잡혀 포로가 될것이고 '그들은 포로된 자들사이에 혹은 아래에 구부릴 것이다.' 나머지는 죽을 것이다. 고아와 과부를 밟던 자들은 오히려 짓밟히게 될것이다(4절). "내가 없으므로, 즉 너희가 나를 버리고 내게서 떠나갔기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Ⅱ. 앗수르왕의 교만 10:5-19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리라는 것이 전장에서 예언되었는데 그 예언은 히스기야왕 6년에 성취되었다(왕하 18:10). 그것은 머리와 꼬리가 모두 잘린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파멸이었다. 이 장에서는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왕국을 바로 잡게될 것이 예언되는데 이 예언은 히스기야 14년에 성취되었다(왕하 18:13,17). 마침내 앗수르인들은 당황하고,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써 크게 용기를 얻게된다.
(1)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앗수르왕을 자기 종으로 임명하여 도구로 사용하셨다(5,6절).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유다 민족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위선적인 나라였다. 그들은 신앙을 고백하고 특별히 당시에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실상은 신앙이 없고 개혁도 행하지 않았다. 히스기야가 그들의 우상숭배의 풍습을 상당히 많이 고쳤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불경한 행동에 빠졌다. 위선은 곧 불경한 행위이다. 그들은 불경하고 위선적인 민족이므로 하나님의 노한 백성들이다. 죄가 가져다준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라. 하나님이 선택하여 거룩하게 한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노한 백성들'이 되었다(암 3:2). 앗수르인들은 겉보기에 매우 대단한 존재들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응징하는데 기꺼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하였다. 그들이 쥐고서 하나님의 백성을 치는 '그손의 몽둥이는 하나님의 분한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 손에 몽둥이를 쥐어주었다. 하나님은 때때로 전혀 자기를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민족을 채찍으로 삼아 진실되게 자기를 섬기지 않는 위선적인 자기 백성을 응징하신다. 그 앗수르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불렸다. '내가 그를 보내리라. 내가 그에게 명령하리라.' 그 앗수르인의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탈취하며 노략하게' 될것이다. 앗수르인은 온땅을 약탈하고 집을 샅샅이 뒤지고 가축들을 몰아내며 백성들의 재무과 장신구들을 탈취하고 게다가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을' 것이다. 어째서 이 앗수르인이 그들을 이처럼 쳐부셔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을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2) 앗수르왕은 교만해져서 마치 자기가 절대적인 것처럼 가장했으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행동하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심판을 행하도록 명하여 그로 자기 백성을 회개시키는 도구가 되게하셨다.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7절).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거나 이스라엘의 친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응징하여 그들의 위선을 고치고 그들을 더욱 자기 가까이에 두려고 하신다. 산헤립이 그렇게하려고 마음 먹었는가? 아니다. 그는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고' 정복한 군주 국가를 세우려고 하였다. 산헤립이 그의 장군을 통해 히스기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에게 오만과 허세가 배어있음을 알수 있다. 그의 오만함과 주제넘는 생각은 한편으로는 그의 어리석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그가 망하고 말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묘사되었다. 그는 자기가 다른 나라들에게 행한 큰일들을 자랑한다. 그는 그나라 왕들을 자기 신하로 삼았다(8절).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지금 나의 방백들은 전에는 다 왕이었던 자들이 아니냐." 전에는 자기 나라에서 절대적인 군주였던 자들이 이제는 산헤립아래서 왕권을 유지하고 그에게 신하의 예를 다하였다. 그는 많은 성읍을 차지하였다. 그는 다 정복한 여러 성읍들의 이름을 말한다(9절). '갈로'도 '갈그미스'처럼 이내 항복하였고, '하맛'도 '아르밧' 이상으로 버티지 못하였으며, '사마리아'도 '다메섹'과 마찬가지로 그의 것이 되었다. 내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10절). 그는 그나라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산헤립은 나라를 하나씩 정복할때마다 신을 하나씩 정복했다고 오만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시켜 열국의 경계를 옮겼으며, 많은 넓은 영토를 자기 나라의 경계안에 포함시켰다. 그재물을 약탈하였으며(13절). 위대한 정복자들은 대개 약탈자에 지나지 않는다. 또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내가 낮추었노라." 그는 자기가 자신의 책략과 능력으로 이 모든일을 해냈다고 자랑한다. 나는 내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13절). 그는 이 모든일을 쉽게 해냈다. 마치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같이 그일을 장난삼아 했다(14절). 나의 손이 생의 보금자리를 얻음같고. 그는 어미가 둥지에 있는 알을 주움같이 쉽게 온세계를 얻었다. 알렉산더처럼 그는 자기가 세상을 정복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그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포위공격하려고 하는지를 말하며 위협한다(10,11절). 그는 불경스럽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우상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그가 숭배하는 태양신인 미드라외에는 참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다른 나라의 거짓된 신들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는 새긴 신상을 만드는 것이 명백히 금지되어 있다는 것과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려면 몰래 만들어야 하므로, 그신상은 다른 나라의 신상들처럼 그렇게 장대하거나 호화로울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언약궤와 시은좌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매우 어리석게 말한 것이다. 외적인 화려함과 장대함을 참된 교회의 표징으로 삼는 자들은 그와 똑같이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는 사마리아를 정복하였기때문에 예루살렘도 무너뜨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사마리아가 하나님을 저버린데 반하여 예루살렘은 자기 하나님께 매달렸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공의롭게 그의 교만을 책망하고 그의 운명을 예언하신다.
1) 하나님은 그의 무례하고 안하무인격인 자랑의 헛됨을 보여주신다(15절).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체하겠느냐. 우화속에서 파리는 수레바퀴 위에 앉아서 "야, 내가 굉장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말하였고, 도끼는 "내가 얼마나 나무를 잘쪼개는가 보라"고 말하였다. 본문에서 도끼로 비유된 앗수르왕은 두가지 면에서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첫째는, 저항과 거부이다. 산헤립은 자기가 다른 나라의 신들을 다루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다루겠다고 위협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도끼가 자기를 손에 지고 찍는 자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것과 같은 태도였다. 한낱 도구에 지나지않는 것이 장인과 다투는 것은 진흙이 토기장이와 다투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재물과 능력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다투는 것은 정당화될수 없는 일이며 또한 묵인될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경쟁이다. 아무리 도끼를 가지고 일을 했다해서 힘과 내 지혜로 이일을 행하였다'고 말한 것은(13절) 그처럼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막대기가 들릴때 자기가 자기를 드는 손을 움직이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막대기는 들려도 여전히 나무가 아닌가.
2) 하나님은 그의 파멸과 몰락을 예언하신다.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여 자기 일을 마치신후에, 그를 벌하실 것이다(12절). 산헤립의 침략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통해 시온과 예루살렘에 선을 행하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곤경에 처하게 하시는 것은 그들에게 죄를 기억나게 하고 그들의 의무를 각성시키며,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며 돕도록 가르치시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목적이 고통을 통해서 얼마간 달성되면, 그고통은 하나님의 긍휼가운데 제거될 것이다(레 26:41,42). 그 막대기는 '하나님이 보내어 시키시는 일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이같은 은혜의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그들을 침략한 자들에게 진노의 일을 행하실 것이다. 내가...앗수르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시온과 예루살렘을 치려는 앗수르왕의 시도는 반드시 좌절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말것이다(16,19절).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또한 '이스라엘의 빛'인 하나님께서 친히 그일을 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할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군' 곧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빛이시오 거룩한 자'이시기때문에 그일을 하시리라고 확신할수 있다. 이 파멸은 마치 질병으로 몸이 초췌해지는 것처럼 이루어질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혹은 살찜을 '파리하게 하실 것이다.' 아주 뚱뚱하게 살찐 몸과 같은 그의 허다한 군대가 점점 줄어들고 야위어져 해골처럼 될것이다. 여호와께서...그영화의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하실 것이라. 그불은 맹렬한 불이 장중한 집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듯이 삽시간에 그의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다. 홍해에서 똑같은 구름기둥이 이스라엘에게는 빛이 되었으나 애굽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었듯이 이스라엘의 빛은 앗수르인들에게는 불이 될것이다. '그불은 형극과 질려' 즉 형극과 질려같은 그의 장군과 병사들을 '소멸할 것이다.' 심지어 '그삼림의 영광' 즉 사람들이 (그들의 삼림의 영광인)상수리나무나 (그들의 갈멜 땅의 영광인)과실수를 소중히 여기듯이, 그가 소중히 여긴 그의 정예부대가 불을 만난 형극과 질려처럼 소멸될 것이다. 선지자는 그결과 그군대의 수가 줄어들어 매우 적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병인이 점점 쇠약하여감 같을 것이라. 남아있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아주 의기소침해질 것이다. 그삼림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Ⅲ. 남은 자에 대한 약속 10:20-23
선지자는 산헤립으로 그땅을 침략하게 하여,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12절).
(1) 소수의 사람들의 개심 : 이러한 섭리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않고 슬퍼보이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할 것이다. 이들은 남은 자(22절),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며(20절) '야곱의 남은 자'(21절)들이다. 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 곧 야곱 집의 타락을 피하고 거의 모두가 변절한때에 자신의 순결을 지킨 그런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할 것이다.' 즉 그들은 앗수르인들 자체가 가장 악한 원수라는 것을 알고서 다른 원수들을 대항하기위한 도움을 얻기위해 앗수르인들을 의지하는 일을 결코 하지않을 것이다.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이라(이뜻은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의 이름인 '스알야숩'에 의해서 나타났다, 7:3). 그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공격이 풀린후에 조용히 그들의 집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자신들이 본분을 지키기위해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자신들의 생활을 고칠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이같은 개심과 구원의 약속을 받은 사도 바울은 복음이 처음에 전파되었을때 그것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중의 남은 자들에게 적용시켰다(롬 9:27).
(2) 다른 사람들의 소멸 : 여호와께서 끝까지 행하시리라(23절). 이말씀은 유대인들중 많은 수의 재산과 가족이 앗수르 군대에 의해서 소멸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같은 소멸이 일어날 것이 '작정되었을' 뿐만아니라, 또한 "준비되었다"(단어의 뜻이 그렇다). 그 소멸이 어디까지 미치며 얼마동안 계속될지가 특별히 정해졌다. 하나님은 자기를 격노케하는 백성들을 이같이 엄밀히 소멸하실 것이나, 지혜롭고 자비롭게 그일에 한계를 두실 것이다.

Ⅳ. 앗수르에 대한 보복 10:24-34
선지자는 귀한 자들과 비열한 자들을 구별하여 설교한다. 그는 산헤립의 침략을 말하는 '하나님의 노한 백성들'인 위선자들에게는 두려움을 말하지만(6절),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인 진실한 자들에게는 위로를 말한다.
(1) 이 임박한 재난을 보고 놀라지말라고 하나님의 백성을 권고함 : '시온의 죄인들은 두려워하라'(33:14). 그러나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을 두려워말라'(24절).
(2) 그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힘 : 하나님이 정하시고 작정하신 것외에는 앗수르인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행할수 없었다. 폭풍은 이내 지나갈 것이다(25절). 즉 '내가 불구에' 곧 얼마있지 않아(단어의 뜻이 그렇다) '네게는 분을 그치고' 손의 몽둥이인(5절) '노를 옮기리라.' 그들을 위협하는 원수 자신이 셈을 치루게될 것이다. 원수가 시온을 치려고 '몽둥이를 들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채찍을 들어 그원수를 치실 것이다'(26절). 지금은 그 앗수르인이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하기위해 선례들을 인용한다. 그 앗수르인은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같이'(이일은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파멸될 것이다. 따라서 산헤립은 미디안 방백중 하나인 오렙이 '오렙 반석에서' 죽은것 같이, 그의 군대가 패한뒤에 죽을 것이다. 막대기를 드시되. 이스라엘로 도망하도록 홍해바다를 가르고, 그들을 쫓는 자들을 멸망시키기위해 그것을 덮었듯이 이제도 예루살렘을 구원하고 앗수르인을 멸망시키기위해 그의 막대기를 드시되 '애굽에 드신 것같이 하실 것이라'. 그들은 그 앗수르인의 권세와 그권세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것이다(27절). 그멍에는 벗어질뿐만 아니라 또한 '기름진 까닭에 부러지리라.' 그이유로 다음 몇가지를 들수 있다.
첫째, 히스기야를 위해서이다.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로서 적극적인 개혁자이며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자이다.
둘째, 다윗을 위해서이다. 이점이 하나님이 산헤립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보호하려 하신 이유이다(37:35).
셋째,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이다. 곧 그들중에 있는 경건한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넷째, 메시야 곧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자를 위해서이다.
(3) 그 앗수르인의 두려움과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겪는 두려움(28절).
1) 앗수르인들은 매우 무서웠다. 여기에 매우 빠르게 행진해 나아간 산헤립의 행군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다. 즉 '그는 아얏에 이르렀고' 그의 중포병대때문에 더멀리 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믹마스에 치중을' 머물렀다. 그처럼 모든 곳이 쉽게 함락되었거나 창고로 쓰이는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들이 이제는 그의 병기고가 되었다. 그는 상당히 높은 고개도 지났다. '그들은 영을 넘었다.'
2) 그 변변치못한 타락한 후손들인 유다 사람들은 매우 겁이 많았다. 그들은 비상신호가 울리자마자 '도망하였다.' 제사장들의 성읍인 '가련한 아나돗'은 모범적으로 용기를 내어보였어야 하는데도 다른 어떤 성읍보다 더 비명을 지른다(30절). 거민들은 싸우기위해서가 아니라 다같이 도망가기위해서 모였다(31절). 이사실은 그 앗수르인의 진행에 대한 소식이 얼마나 빠르게 나라전체에 퍼졌는가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그가 아얏에 이르렀다'고 말하면, 또다른 사람은 더나아가 '그가 미그론을 지났다고' 말한다.
3) 예루살렘을 치려는 그의 시도는 아주 무력해질 것이다. '그는' 시온산을 바라볼수 있는 '놉에서 쉴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다시 시온산을 향하여 '손을 흔들 것이다'(32절).
4) 그로인해 그는 치명적인 결과를 당하게될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흔들때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고,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라'(33,34절). 그 높고 당당한 나무들이 찍힘을 당할 것이다. 즉 교만한 자가 낮아질 것이다. 그가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무장한 앗수르의 군인들과 바짝 긴장한 그들의 창들이 삼림처럼 레바논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룻밤사이에 그들이 모두 죽었을때, 레바논은 '권능 있는 자'에게 즉 멸하는 천사에게 갑작스럽게 베임을 당하였다. 이것이 그 교만한 침략자의 최후일진데 하나님의 백성은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 핵심
10:1-4
권력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한 자들에 대한 심판예언이다.
시온산(10:12)
‘요새’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다윗이 예루살렘 근처의 구릉지대인 이곳을 정복하고나서 ‘다윗성’이라 명명했다(삼하 5:7,9; 왕상 8:1). 솔로몬은 다윗성이 자리한 북쪽 구릉에 성전을 짓고 이산을 시온산이라 불렀다. 이처럼 시온산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의 거처가 되었으며, 다윗왕조의 언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후에 시온산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시 48:12; 렘 14:19). 시온산은 종말론적 축복의 시발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렘 31:6; 슥 9:9).

# 묵상
멀리서오는 환난 ( 10:3 )
먼나라에서 바람처럼 갑자기 쳐들어오는 군사들을 말하며, 앗수르에 의한 전쟁과 재난을 의미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심판날에 폭풍우를 동원하실 것에 대한 표상으로서 그재난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왕상19:11).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 ( 10:5 )
앗수르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 손의 몽둥이는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삼아 죄악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교만하였던 앗수르 ( 10:10, 11 )
앗수르 사람들은 다른 우상들보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능력이 월등하다고 자랑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마리아와 그신상들을 파괴한 것같이 예루살렘과 그신상에게도 그렇게 행할수 있다고 교만하게 뽐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치켜세우면서 하나님보다 더강하다고 생각했고 하나님과 거짓신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앗수르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게 됩니다. 즉 그들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때문에 징계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시고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시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추시는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아래서 언제나 겸손한 성도들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이미 작정된 것 ( 10:15-27 )
이스라엘을 향해 이미 작정된 것은 심판과 회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적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웠고, 하나님의 진리에 관하여 마음속 깊이 새길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앗수르를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로 앗수르를 들어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공의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죄인들에게 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종말이 임박해 있습니다(계22:20).
앗수르의 교만함에 대한 비유 ( 10:15 )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앗수르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공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위해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주객이 전도되어 주체자를 움직이려 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간들이 필요이상의 것을 자기의 공로로 돌릴때, 그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반항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됩니다. 성도는 어떠한 결과를 도출할지라도 앗수르처럼 교만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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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메시야의 승리와 통치 9:1-7
이 장의 첫마디는 모든 것이 어둡고 우울하게만 보인 전장의 마지막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환난과 흑암과 어두움을 보라.' 그러나 '정직한 자에게는 흑암중에 빛이 일어나리라'(시 11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흑암이, 전에 때때로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악한때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고통을 가라앉히고 그것을 상쇄할수 있는 빛이 있다. 그들은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고후 4:9), 근심하는 자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자들이다(고후 6:10). 땅이 흑암위에 있을때,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신' 하나님이(45:7)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빛이 어두움을 이기도록 정하셨다는(창 1:4)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1) 여기서 세가지 사실이 약속되는데, 그것들은 성도들이 환란속에서 위로받게되는 복음의 은혜를 가리킨다.
1) 영광스러운 빛 : 그빛은 점점 어두움을 쫓아낼 것이다. 따라서 그어두움은 전에 때때로 드러냈던 것처럼 어두움을 드리우지는 않을 것이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하셨더니(이땅들은 멀리 변방에 있어서 이웃나라 적들에게 가장 많이 침략을 당하였다)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1절;참조. 왕하 10:32). 우리가 가벼운 고통을 받을때 겸손해지지 않고 마음을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가혹한 고통을 받게될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참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그때에 열국이 평안치 못하였다'(대하 15:3,5). 그러나 임박한 흑암은(8:22) 그들을 멸망으로까지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빛을 보았기' 때문이다(2절). 이사야가 살아있던 이때에 유다와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예언은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고수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지도와 위로를 주는 큰빛이었다. 이예언의 말씀은 우리 주 예수께서 선지자로 나타나시어 스불론과 납달리 땅에서 그리고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했을때 완전한 성취를 보게되었다.
2) 영광스러운 증가와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널리 퍼지는 기쁨(3절) : 주께서 이나라를 창성케하셨나이다. "이나라가 잇따라 내린 고통스런 심판으로 쇠잔해왔으나 이제는 주께서 다시 나라를 창성케하시기 시작하셨나이다." 하지만 그구절에 뒤이어 '주께서 즐거움' 곧 육체적인 즐거움과 환락을 더하셨다고 이어지지 않고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한다'라고 이어진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영적 기쁨 곧 하나님앞에서 갖는 즐거움이 많았다. 이말씀은 2절에서 얘기한 복음의 빛이 비취는 것에 적합하다. "주께서 그에게는(마소라 사본에서는 이렇게 읽혀진다), 즉 그빛을 받는 모든이들에게 즐거움을 창성케하셨도다." 다음에 나오는 말들이 이러한 해석을 지지한다.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나이다(3절). 그들이 거룩한 의식들가운데서 크게 기뻐하며 주께 나오나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가졌던 기쁨과 같은 것이 아니라(주께서는 그러한 즐거움은 더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은혜의 표시들을 보는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이니이다." 그것은 거룩한 즐거움이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주의 앞에서 즐거워했다.' 그들은 (눅 10:2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영으로 기뻐하며 더욱이 하나님앞에서 기뻐한다. 그것은 큰즐거움이다. 다시말해서 그것은 땅의 값진 소산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들이 즐거움으로 거두어 들일때의 '추수하는 즐거움'이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위험한 전투를 마친후에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과 같다.
3) 영광스런 자유의 확장(4,5절) :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이는 주께서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를 꺾으셨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더이상은 노예상태 가운데 있지 않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주께서 미디안의 멍에가 기드온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목에서 떨어져 나갔듯이 '그어깨의 채찍과 그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셨기' 때문이다. '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시 3:9). 이말씀이 어떤 현세적인 구원을 언급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사건을 가리키는것 같다. 그일은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말씀은 더나아가서 흑암에 앉은 자들에게 비칠 큰빛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빛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다(눅 4:18). 복음의 목적은 죄와 사단의 멍에를 꺾고, 죄책과 타락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런 자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의식법의 멍에를 꺾으시고(행 15:10;갈 5:1),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지시어 우리로 '두려움이 없이 주를 섬기도록' 하셨다(눅 1:74,75). 이일은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치루어지는 전사들의 싸움과는 달리, 불처럼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마 3:11).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후 10:4).
(2) 이 큰일을 행할 자, 곧 교회를 위해서 이 큰일들을 맡아 이룰 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메시야 곧 '임마누엘'(7:14)이 그일들을 이루실 것이라고 예언적인 표현법을 써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처럼 말한다(6,7절). 즉 '한아이가 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회는 메시야가 태어나기전에 이미 곧 은혜와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셨듯이 '창세이후로' 태어난 아기이셨다(계 13:8). 하나님께서 구약의 교회를 위해 행하신 큰일들은 모두가 영원한 말씀이시며, 특별히 중보자이신 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유대민족과 특별히 다윗 집은 오직 그들에게 그와같은 축복이 있었기때문에, 여러번 절박한 파멸에서 보호를 받았다. 갈대아 역본은 그구절을 영원히 있을 사람, 곧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본다.
1)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모습 :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바로 그분은 '한아기로 태어났다.' 그는 우리를 높이고 충만케 하기위해 낮아지시고 자신을 비우셨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태어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하나님은 세상을 깊이 사랑하시어 그를 세상에 주셨다. 그가 '우리에게' 나셨다. 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바 된것이다.
2) 그의 높아지신 모습 : 이 아기, 곧 인자이신 이 하나님의 아들이 지극히 높은 영광과 권세를 받으셨다. 따라서 그가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면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9절). 그의 백성들은 그를 알게될 것이고 이 이름들을 따라 그를 경배할 것이다. 그는 기묘자이시며 모사이시다. 그는 하나님이자 사람이므로 '기묘자'로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영원부터 하나님의 지혜를 모두 알고계셔서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므로 '모사'이시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이시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곧 전능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지혜가 있듯이 능력도 있으시다. 그는 무엇이든지 구원하실수 있다.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혹은 "영원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계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축복된 영원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평강의 왕'이시다. 그는 왕으로써 그의 나라에 평강을 유지하고 명령하며 지으신다. 그는 우리의 평안이시다. 그의 보좌는 모든 보좌위에 있다(6절). 그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오직 그어깨에만 메었다. 그는 그어깨에 정사의 휘장('다윗 집의 열쇠', 22:22)을 달뿐만 아니라 정사의 무거운 짐도 지실 것이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에 관한 영광스런 사실들이 언급된다(7절). 그 통치권은 확대될 것이다. 그것의 영광은 증가할 것이고, 더욱더 세상에서 밝게 빛날 것이다. 그것은 평강의 왕으로서의 그의 신분에 맞는 평화스러운 것이 될것이다. 그의 통치는 공평하고 신중하게 시행될 것이다. 그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 그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될것이다. 그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하나님께서 이 모든일을 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모든 권세를 손에 지고 계시사 모든 피조물을 마음대로 부릴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를 이루실 것이다.'

Ⅱ. 이스라엘에 대한 무서운 경고 9:8-21
본문에서는 주로 이스라엘, 곧 열지파의 왕국인 에브라임과 사마리아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다루었다. 그들의 파멸이 여기에서 예언되었는데 그 모든 일이 불과 몇년안에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경고는 더나아가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려고 하지않는 모든 민족의 운명을 예언하는 것이다.
(1) 이 예언의 머리말(8절) :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즉 그의 종이 선지자들을 위해서 말씀을 보내셨다. 하나님은 진노를 발하시기전에 먼저 경고하시지만, 그들은 그의 진노를 피하기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에서 폭우와 우박이 쏟아지듯이 그들에게 떨어졌고, 그들은 그것을 피할수 없었다.
(2) 이스라엘 백성의 죄 : 그 죄로인하여 하나님이 노하시어 그들에게 이러한 심판을 내리시게 되었다.
1)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상대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무례히 도전한다. 그들은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내리시고자 하시는 심판을 내리시라고 말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집을 무너뜨리시면, 우리는 그집을 수리하고 더튼튼하게 만들겠노라. 벽돌로 지은 집이 전쟁중에 무너지면 그집을 다듬은 돌로 새로 쌓겠노라. 원수들이 무화과나무를 베면 백향목을 심겠노라."
2) 지금까지의 섭리에 의한 모든 책망에도 아랑곳하지않고 그들은 완고했다(13절).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면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무신론자들이므로 전혀 신앙이 없거나 우상숭배자들이므로 자기들의 상상의 산물이며 수공물인 우상을 찾는다.
3) 그들의 풍습은 타락했고, 불경함이 만연하였다. 백성들을 바로잡아야할 자들이 오히려 타락하도록 도왔다(16절).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하니. 백성들을 고쳐야할 의사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가장 악한 병이 될때, 그것은 백성들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 백성을 축복하는 혹은 '그들을 복되도다라고 하는'(어떤 역본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즉 그들에게 아첨하며 그들의 악한 행실에 비위를 맞추고 그들에게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말하는 자들은 그들로 미혹케하는 자들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악을 행할때에 우리에 대해서 좋게 말하는 자들을 두려워해야 한다(참조. 잠 24:24;29:5). 악이 만연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에 물들어있었다(17절).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백성들이 저마다 하나님을 모독하였고(그단어가 적절하게 그런뜻을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악을 행했다. 대개 이 두가지는 한데 어울리기 마련이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3) 이러한 그들의 악때문에 그들에게 경고된 심판.
1) 그들은 결국 악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심판은 불처럼 삼킬 것이다(18절). 악행은 불태우는것 같으니. 질려와 형극이 불에 태워질때 '연기로 위로 오라가게 함과' 같이 되어서 그연기로 말미암아 온땅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들은 곤경에 빠질 것이며 더욱이 출구를 찾지도 못할 것이다.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19절).
2) 하나님이 이웃나라 군대를 무장시켜 그들을 치게하실 것이다(11,12절). 이 당시 이스라엘은 유다를 치려고 아람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아람 사람들의 적으로서 그들은 정복한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적들로 서로 동맹을 맺게하실 것이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략했던 것처럼 서로 죄를 함께 지는 자들은 마땅히 죄에 대한 형벌도 함께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있던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채찍이 될것이다. 그래서 앞에는 아람 사람이,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사방으로 그입을 벌려 그들을 삼킬 원수들에게 둘러싸일 것이다(12절). 블레셋 사람들이 무서운 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아람 사람들은 그들의 견고한 친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을 삼킬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신뢰하는 자들을 그들로부터 제하실 것이다(14,15절). 여호와께서...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니. 이것은 다음구절에서 설명되었다.
첫째, 태생이 존귀하고 직책이 많은 관원들은 '머리'이며 종려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은 백성들로 미혹케 하였기때문에 끊어질 것이다.
둘째, 거짓 선지자들은 '꼬리'며 '갈대'로서 가장 비열한 자들이었다. 악한 성직자가 사람들중에 가장 악한 자이다. 가장 좋은 것이 타락하면 가장 악해지는 법이다.
4) 타락이 백성전체에게 퍼져있었던 것만큼 황폐도 백성전체에게 미쳐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17절). 주께서 그장정을 기뻐아니하시며. 그들은 한창 젊은때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장정들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보호하고 후원하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5)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멸망하게할 것이다. 사람이 그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19절). 내란은 이내 나라를 황폐시키고 만다. 이스라엘에 그런 내란이 있었다. 이러한 싸움가운데서 사람들은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자기 팔의 고기를'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들은 자신들을 뜯어먹었다(20절). 이것은 기근과 식량부족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이 개개인들과 가족들사이에서 뿐만아니라 지파들사이에서도 발생했다(21절).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유다를 치는데는 연합할수 있었던 자들이 자기들끼리는 다투었다. 하나님 백성의 지파들간의 반목과 적의는 그들의 파멸을 무르익게 하는 죄이며 그파멸을 속히 재촉하는 슬픈 조짐이다.
6) 하나님은 그들이 이런 모든 심판을 받게되었어도 그들과 다투기를 그만두려고 하시지 않았다. 이것이 이노래의 후렴구이다(12,17,21절).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아니하며 그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고 개혁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노는 그들에 대해 계속해서 불타오르며 '그손은 여전히' 펴진 것이다.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을 치신다.

# 핵심
9:1-7
메시아와 그나라에 대한 예언이다.

# 묵상
영화롭게 하신 이방의 갈릴리 ( 9:1 )
갈릴리는 천대받는 땅이요 고통의 땅이며, 죄인의 땅입니다. 따라서 이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곧 용서와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자라시고 그곳에서 사역을 베푸시어 모든 죄인을 온전케하실 것임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 ( 9:2 )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와같이 죄와 죽음의 암흑세계에서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이 큰빛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미디안의 날 ( 9:4 )
이는 기드온과 그의 삼백용사가 메뚜기떼와 같은 미디안을 대파한 날을 가리킵니다(삿7:22).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압제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멸시키셨습니다.
한 아기 ( 9:6 )
이말은 구원을 가져다주는 자 곧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아기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이는 이 아기가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신적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거룩한 자들을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실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언은 이사야가 예언한지 700년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머리, 꼬리, 종려가지와 갈대의 상징 ( 9:14, 16 )
머리는 장로와 존귀한 자, 꼬리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이며, 종려가지는 의인 혹은 신실한 자를, 그리고 갈대는 어리석고 연약한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들 역시 그들의 머리, 꼬리, 종려가지, 갈대가 아무 할일이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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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다메섹과 사마리아의 멸망 8:1-8
본문에서 우리는 앗수르왕이 다메섹, 사마리아 그리고 유다를 쳐서 이기리라는 예언을 대하게 된다. 다메섹과 사마리아는 그에 의해서 황폐해질 것이며, 유다는 큰두려움에 사로잡히게될 것이다.
(1) 선지자는 이 예언을 모든 사람이 읽을수 있도록 서판에 쓰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렇게 하는것은 일이 벌어졌을때 사람들로하여금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하려는 목적때문이다(요 14:29). 이사야는 '큰서판을 취해서' 앗수르왕이 유다를 침략하는 것에 관해 그가 예언했던 모든것을 거기에다 써야했다. 그는 평범한 방법으로 '그내용을 통용문자로 써야'했다. 선지자는 그서판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부르도록 지시를 받는다. 그말의 의미는 '급히 노략하여 먹이를 덮침'이란 것인데, 앗수르 군대가 아주 신속하게 그들을 덮쳐 크게 노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 이기록을 잘 증거하려고 선지자는 노력한다. 내가 진실한 증인을 불러 증거하였더니(2절). 선지자는 증인들이 보는앞에서 예언을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언제든지 그가 아주 오래전에 앗수르인들이 그땅을 덮칠 내습을 예언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맹세할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선지자는 증인들의 이름을 말한다. 그중의 한사람은 제사장 우리야였다. 그는 아하스에 관한 기사가운데서 언급된다(황하 16:10,11).
(3) 그서판의 명칭을 아들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의 아내는 선지자의 아내였으므로 '여선지자'(한글개역은 '아내'라고 되어있음, 한글개역 난외주 참조-역주)라고 불린다. 그의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먼저 낳은 아들이 그랬듯이(7:3) 그의 이름만으로도 설교가 되는 아들을 또하나 낳은 것이다. 즉 첫번째 아이의 이름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을 지닌 '스알야숩'으로 자비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이름이 무시를 당했다. 두번째 아이의 이름은 "그가 속히 노략할 것이라" 혹은 "그가 급히 먹이를 덮칠 것이라"는 뜻을 지닌 '마헬살랄하스바스'로서 심판을 나타낸다. 그아이가 그이름으로 불린다거나, 그이름의 일부로 불렸을때마다 그이름은 다가오는 심판을 기억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4) 이 예언은 상징적인 이름의 이유를 말해준다.
1) 유다를 치려고 동맹한 아람과 이스라엘은 조만간에 앗수르왕에게 쉽사리 먹힐 것이다(4절). "이제 막 태어나 이름이 지어진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줄 알기전에' 즉 한두살 가량 되었을때에, 그당시에는 그처럼 안전했던 성읍들인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그성읍과 땅을 승리의 전리품으로 약탈할 앗수르왕 앞에 옮긴바 될것임이니라."
2) 유다에는 은밀히 아람과 이스라엘을 위하면서 다윗 집에 불만을 품고있던 자들이 많았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역시 앗수르왕을 이용해 징벌하려고 하셨다. 유다에서 불만을 품고있던 사람들의 죄란 무엇이었는가(6절)? 선지자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이백성'은 자기나라를 멸시하고 망하게 만들려고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 그이유는, 자기나라가 다른나라 왕들이나 나라처럼 유명하지 않기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전해주는 위로는 거절하고, 자기나라의 원수들이며 실제로 이때 자기나라를 침략하고 있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했다.' 자기나라의 혜택을 받고 살면서도 자기나라의 원수들을 지지하며 자기들이 위기에 놓일것 같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기나라의 이익을 버릴준비가 되어있는 나쁜 자들을 나라마다 그품속에 많이 기르고 있다. 에브라임과 아람을 황폐시킬 앗수르왕은 유다에 있으면서 그를 지지하는 자들에게도 채찍과 두려움이 될것이다(7,8절). 왜냐하면 그들이 '실로아 물을 버렸기'때문에, 여호와는 '흉용하고 창일한 큰하수' 곧 유브라데스 강을 그들위에 덮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에는 그강에 견주어 자랑할만한 강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나라를 무시한 것이다. "너희가 그렇게 유브라데스 강을 찬미한다면, 너희로 그강을 충분히 맛보게 해주도다. 그강 있는데 나라를 둔 앗수르왕이 큰군대를 이끌고 올것이라. 내가 그 군대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한껏 기뻐하자, 급히 흐르는 물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앗수르 군대가 앞에 있는 모든것을 엎어버리는 홍수처럼 그들에게 달려들 것이라고 그들은 경고받는다. 목에까지 미치리라. 즉 그는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기까지 진군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커다란 근심의 홍수속에서도 자기 백성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않게 하실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보호하신다. 맹금인 앗수르인의 날개가 펼쳐질지라도 즉 앗수르왕의 군대의 양날개가 유다땅에 편만할지라도, 그땅은 여전히 '네 땅' 곧 '임마누엘'의 땅이 될것이다. 그가 그땅에서 태어날 것이므로 그땅은 그리스도의 땅이 될것이었다.

Ⅱ. 재난에 대한 예언과 위로 8:9-15
선지자는 여기서 말머리를 돌려서 아하스와 그의 신하들과 나라전체에, 그들을 치려고 동맹한 이스라엘 열지파와 아람 사람들의 위협으로인하여 닥치게될 재난에 관해서 말한다.
(1) 선지자는 침략하는 적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사실상 그들에게 멋대로 해보라고 말한다(9,10절). 너희 민족들아...너희 먼나라 백성들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바를 들을지니라. 우리는 너희가 있는힘을 다해 유다와 예루살렘을 치려고한다는 것을 아노라. 너희는 동맹하라." 훤화하라...너희 허리를 동이라...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9절).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말을 내어라(10절). "너희는 할일을 결정하고 그일이 한마디 말하는 것과 같이 쉽게 성취될 것이라고 장담하라. 그렇게할지라도 너희의 모든 노력이 헛될 것이라. 너희의 시도가 좌절될뿐만 아니라 그것이 너희를 파멸시킬 것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예루살렘을 치려고 꾸민 그계획으로 말미암아 패망할 것이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 즉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시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수 있으리요?"
(2) 선지자는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위로와 격려의 말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1) 선지자는 자기 자신이 그처럼 큰두려움에 빠지지않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르쳐주셨는지를 말한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하시며 이백성의 길로 행치 말것을 내게 경성시켜(11절). "그들이 말하듯이 말하지 말고 그들이 행하듯이 행동하지도 말며, 어떠한 조건에도 그들과의 화해를 승인하거나 앗수르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을 하지말라고도 가르쳐 주셨노라."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그시내를 따라 내려가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도 특별히 두려움이 만연해 있을때는 겁을 집어먹는 수가 있다.
2) 이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① 그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는 죄를 짓지않도록 주의시킨다(12절). 두려워하는 것은 이당시의 백성들에게 마치 습관처럼 만연되었던 것이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자는 형제들의 마음도 자기 마음처럼 쇠약하게 만든다(신 20:8). "그러므로 이 백성이 맹약할 자가 있다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말을 따라 맹약할 자가 있다하지 말라. 불신앙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못한다는 그들의 주장때문에, 앗수르인들과의 동맹을 찬성하는 자들과 연합하지 말라. 어떤 사소한 일이 잘못되었을지라도 음모가 있다. 음모가 있다하고 소리지르지 말라. 그들이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으니' 우리가 어찌 될꼬하며 말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② 그는 백성들에게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라고 권고한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13절).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사람의 불안한 두려움을 방지하는 특별한 예방약이다(참조. 벧전 3:14,15). 이구절은 베드로전서에 인용되어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어진다.
③ 그는 그렇게 하는가운데 경건한 확신을 가지게 되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수 있다고 백성들에게 말한다.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14절). "그로 너희의 두려워할 자로 삼으라. 그러면 너희는 그가 너희의 소망이며, 도움이요, 방패이자 너희의 강한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라. 그는 너희가 안전을 위하여 피하게될 거룩한 피할 곳이 되며 그곳에서는 너희가 어떤 악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
(3)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가운데 있는 믿지않는 불경건한 자들의 파멸을 경고한다. 그들은 앞에서 말한 위로를 전혀 받지못한다. 선지자는 두 이스라엘 집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하다 하지않을 것을 미리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될것이, 그들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냄새가 될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로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다.'

Ⅲ. 증거문서와 거짓종교에 대한 경고 8:16-22
(1)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말씀들을 받은데서 누리는 이루 말할수 없는 특권 :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를 거룩하다 할수 있으며, 그로 그들의 두려워할 자로 삼을수 있고, 그가 그들의 거룩한 피할 곳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도록 '증거의 말씀을 싸매어야 한다'(16절).
1) 그말씀은 '증거'요 '율법'이다. 하나님은 그말씀을 증명해오셨고, 선지자는 받아왔다. 증거로서 그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지도하며, 율법으로서의 그말씀은 우리의 행실을 지도한다. 우리는 그것의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며 교훈에 복종해야 한다.
2) 이증거의 말씀은 싸매지고, 율법은 봉함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에다 무엇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3) 그것들은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언약의 자손'인(행 3:25) 제자의 손에 거룩한 증거물로서 맡겨진다. 이것은 그들에게 맡겨지는 아름다운 것이다(딤후 1:13,14).
(2) 우리는 이특권을 가지고 사용해야할 선한 방법을 배운다.
1) 선지자의 행실과 결심을 통해서 배운다(17,18절). 선지자는 여기서 두가지의 낙담거리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첫째,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자기 백성들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불쾌한 표정 :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그는 현재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하시고, 그들로 그의 불쾌히 여기시는 표징들아래서 지내게 하시는도다."
둘째, 사람들의 멸시와 비난 : 그것이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봉함하여 간직한 선지자 자신과 그의 제자들에게 임했다.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18절). "우리는 다른나라의 사람들같이 천대를 받았도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요 17:6) 신자들을 그의 자녀들로 여기신다. 그리스도와 그의 자녀들을 많은 사람의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위하여 세움을 받았으며(눅 2:34), 도처에서 반대를 받는(행 28:22) 징조와 예표가 된다. 선지자는 그를 낙망시키고 있는 모든것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았으며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렇기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섬기며 기다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낯을 가리우실때조차도 그를 섬기며, 그가 다시 긍휼을 베푸시어 주실 것을 겸손히 확신하면서 기다릴 것을 결심하였다.
2) 선지자가 생생한 신탁을 맡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해주는 지혜와 권고를 통해서 배운다. 선지자는 백성들이 곤경에 빠지게 되면 '신접한 자'에게 물으라는 유혹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울은 곤경에 처했을때,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물었고(삼상 28:7,15), 아하스는 이그론의 신에게 물었다(왕하 1:2). 이 마술사들은 '지절거리며 속살거렸다.' 여기서 이말은 그들의 음성과 말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분명한 어조로 당당하게 말하지 않고,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즐겁게 하기를 바라는 자들처럼 말하였다. 율법에 명백하게 이러한 악을 행하지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도(레 19:31;20:27) 그러한 행위는 이스라엘가운데서 발견되었으며, 지금도 기독교 국가안에서 발견된다. "주문과 마술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속임수를 써서 행운을 말하려하고 병을 고치는체하는 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을 두려워하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유혹에 대한 대응책을 제공한다. "누군가가 이렇게 너희를 유혹하려 하거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19절). "백성은 당연히 자기 하나님께 구해야한다고 그들에게 말하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기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에게 묻고 신접한 자들에게 묻지말아야 할것이라(미4:5). 죄와 근심가운데 있는 백성이 용서와 평안을 얻기위해서는 자기 하나님께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불신과 결핍과 위험가운데 있는 백성이 지도와 양식과 보호를 받기위해서는 자기 하나님께 구해야하지 않겠는가?" 살아있는 친구들이 우리를 위해 할수 없는 일은 죽은 친구들이 해줄 것이라고 믿고 그들에게 기도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일이 또 있을수 있을까? 마법사들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처럼 죽은 자에게 물음으로써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하였다.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으라고 가르친다. 그들가운데 있는 선지자들이 사사건건 그들에게 직접 말해주지는 못한다해도, 그들에게는 기록된 말씀이 있었기때문에 그것을 사용할수 있었다. 성경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은 결코 마술사들에게 물으려는 유혹을 받지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상담자로 삼으라. 그러면 너희는 바른조언을 받을 것이라." 우리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즉 우리는 그말씀을 우리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딤전 6:3). 우리는 그말씀을 율법과 증거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않으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거절하는 자들은 인간에게 흔히있는 분별력이 없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이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수 있는 것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구절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말하는바가 이 말씀에 맞지아니하면 그들에게 빛이란 전혀 없을 것이고, 다만 그들은 어둠과 절망에 빠지게될 뿐이라." 그와같은 내용이 21,22절에 계속 뒤따라 나온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게 조언을 구했을때, 그에게 어떠한 빛이 있을수 있겠는가(삼상 28:18,20).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으며 하나님의 율법과 증거를 존귀히 여기지않는 자들의 운명을 알게된다. 그들은 공포와 불행만을 예상할 뿐이다. 그들의 요동하는 불안한 생을 '헤매며'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위해 애쓰느라고 '곤고하게' 될것이다. 한때 배부르게 먹던 자들이 '주릴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은 모든 선한 길에서 소멸하게 된다. 이백성들은 '그 주릴때에 번조해질' 것이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귀찮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의무와 예절의 법도를 다잊어버리며, 반역심을 품고서 '자기 왕을 저주하고' '자기 하나님을' 모독하여 저주할 것이다. 그들이 충성의 맹약을 깨뜨렸을때 신앙의 서약이 그들을 오래도록 붙잡아놓지 못한다해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한다. 그를 저주하고 죽는다. 그들은 위를 쳐다볼지라도, 하늘은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어둠뿐일 것이다. 그들이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늘이 빛을 발할수 있겠는가? 그들이 땅을 굽어볼 것이나 하나님과 불화하고 있는 자들에게 땅이 무슨 위로를 줄수 있겠는가?

# 핵심
8:1-4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칭하시고, 그가 성장하기전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할 것임을 예고하신다.
성경의 권위(8:20)
성경은 택함받은 백성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며(벧후 1:20,21), 그백성의 삶을 규정하는 최고 권위를 지닌 규범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이스라엘로하여금 계시된 법을 좇아 행함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도록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의 언행이 하나님 말씀에 맞지아니하면 그들에게 징벌과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주어졌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할때에 생명과 소망이 있으며(요 5:39), 성도의 삶이 말씀중심의 삶이 되어야함을 강조한 것이다(딤후 3:15).

# 묵상
마헬살랄하스바스 ( 8:1 )
이말의 의미는 노략이 속히 임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말을 아들의 이름으로 삼게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마지막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경고하시던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에게 마지막때의 징조를 보이시며 돌이킬 것을 경고하십니다(마24장).
실로아의 물 ( 8:6 )
실로아의 샘물은 예루살렘 동쪽 언덕의 기혼샘에서 나오는 물로, 엄청나게 수량이 많은 유프라테스 강과 대조가 되는 잔잔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노천 수로를 말합니다. 이샘물을 무시했다고 하는 것은 곧 그들이 항상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물이 버림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포기를 상징합니다.
시행되지 못하는 이방민족들의 도모 ( 8:10 )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을 도모하고 경영하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더구나 악인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고 패망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맹약한 자 ( 8:12 )
유다와 동맹을 맺은 나라를 가리킵니다. 유다는 이미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지만 그들은 그언약을 버리고 애굽이나 앗수르 등을 의지했었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헛되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은 풍족하게 됩니다.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인생(사2:22)을 의지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올무가 되시는 여호와 ( 8:14, 15 )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로인하여 거치고 넘어지며 부러지고 걸리며 잡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에게는 피난처요 반석이시지만, 사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시기때문에 거치는 돌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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