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 27:1-6
이사야는 본문에서 심판과 긍휼을 노래하고 있다.
(1) 교회의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하고 있다(1절).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을 벌하실'(26:21)때에는 반드시 '리워야단' 곧 '바다에 있는 용'을 벌하실 것이다. 다시말해서 용사들의 두려움이 되며 리워야단처럼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키려고 하지않을만큼, 사나우면서'(욥 41:10,24,25) 교만한 모든 압제자들을 벌하실 것이다. 산헤립이 그의 통치때에 그러했고 느부갓네살이 그랬으며 안티오커스가 그러했다. 예전에 바로가 그러했기때문에 '리워야단' 혹은 '용'이라고 불리웠다(51:9;시 74:13,14;겔 29:30). 신약의 교회에도 리워야단이 많이 있다. 우리는 신약의 교회를 곧 삼키려고 하는 크고 붉은 용에 대해서 읽을수 있다(계 12:3). 압제하는 사악한 권세자들이 여기서 크기와 힘때문에 리워야단이 비유되고 있다. 또 그들은 격노와 사나움때문에 용에 비유되고, 그들의 생각이 날카로움을 인해서 '날랜 뱀'에 비유되며 교묘하나 사악하고 유해하기때문에 '꼬불꼬불한 뱀'으로 비유된다. 세상의 영웅들이라해도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용과 뱀처럼 인류의 저주거리로 여기신다. 그들은 사람들이 다루고 문책하기에는 너무 크기때문에 크신 하나님께서 친히 그문제를 처리하실 것이다. 하나님께는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이 있다. 죄악의 분량이 차면 그들의 날은 끝이날 것이다. '그날에' 즉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에 그가 벌하실 것이다(시 37:13). 이말씀은 우리 주 예수께서 어둠의 권세를 이기신 영적인 승리에 적용될수 있다. 우리 주께서는 이세상 임금의 무기를 거두실뿐만 아니라 그의 강한 칼 곧 자기 죽음의 공로와 복음전파로써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그들은 마귀로 '죽음의 권세잡은 자' 곧 큰리워야단, 옛뱀이라고도 하며 용이라고도 일컬어진다(계 20:2,3).
(2) 교회에 대한 긍휼을 노래하고 있다.
1) 교회는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2,3절).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는 '아름다운 포도원'이다. 세상은 쓸모없는 광야와 같으나 교회는 귀한 열매를 수확하는 포도원처럼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다. 교회는 그열매로써 하나님과 사람을 영예롭게 한다. 이것은 전에는 들포도를 맺었으나(5:4) 이제는 극상품 포도를 내는 '아름다운' 포도원이다. 여기서 극상품 포도는 교회의 개혁을 암시한다. 나 여호와는...간수하여.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가 되셨다. 하나님께 열매를 맺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이세상에서 하나님의 포도원은 해를 입기가 아주 쉽다. 또한 이포도원을 해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시80:13). 그러나 하나님은 포도원이 실제적인 어떤 해를 입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내버려두실 때는 그렇게 하는것이 오히려 유익을 가져오는 때이다. 하나님은 고난과 박해의 밤에도 포도원을 지키시며 평안과 형통의 낮에도 지키실 것이다. 즉 낮이라해도 계속되는 유혹으로인하여 조금도 안심할만하지 못하다. 이포도원은 울타리가 튼튼하게 쳐질 것이다. 나 여호와는...때때로 물을 주며. 그럴지라도 물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소리없이 조용히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이슬이 끊임없이 그포도원에 내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인 선지자들에 의한 말씀의 사역을 통해서 자기 포도원에 물을 대신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나 기르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은 때때로 자기 백성과 다투시지만 그들이 복종하면 그들과 화해하실 것이다(4,5절). 나는...(나의 포도원에 대하여)노함이 없나니. 만일 하나님이 포도원에서 포도대신에 질려와 형극을 보게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것들을 발로 밟고 불사르실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내가 내 백성에게 화를 낼때에 그들이 겸손해져서 기도하고 내 얼굴을 구하며 나와 화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나의 힘을 의지하면 내가 그들과 화친할 것이고 따라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다툼이 가정되어 있다. 그것은 맨처음 죄가 들어온 이래로 계속되어온 오래된 다툼이다. 사죄하는 긍휼은 우리 주님의 권세라고 일컬어졌다. 하나님과 화친하려는 자는 그권세를 붙잡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팔'이며(53:1)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24)이다. 하나님과 화친하려는 자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그를 붙잡아야 한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와 화친하신다.
3)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성장할 것이다(6절). '후일에는'(어떤 사람은 '장차 오기로한 날에는'으로 읽는다) 즉 이재앙이 지나간 다음 혹은 복음의 날에는 '주께서 야곱의 뿌리를' 전보다 더깊게 박으실 것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올 것이다. 즉 개종자가 무수할 것이며 주변의 열국에서 나온 자들과 개종자들이 의의열매를 풍성히 맺을 것이다. 복음의 가르침이 '온천하에 열매를 낼 것이다'(골 1:6). 즉 항상있는 과실을 낼 것이다(요 15:16).

Ⅱ. 징계와 자비 27:7-13
본문에서 이사야는 교회에 대한 징계와 자비를 노래하고 있다. 징계가운데 자비가 섞여있다.
(1) 야곱과 이스라엘에게도 심판이 경고되어 있다. 야곱의 뿌리가...움이 돋고 꽃이 필것이라(6절). 그러나 그중 일부는 '치심'을 당하고 '살륙'을 당할 것이다(7절).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어 '견고한 성읍' 예루살렘이 '적막하여질' 것이다(10,11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치기위해 그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셨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도다. 그래서 하나님이 얼마동안 그나라를 황무케 하시리라." 이 예언은 예루살렘이 갈대아 사람들에게 멸망당했을때 이루어졌다. 그때 그거처가 오랫동안 버린바 되었다. 예루살렘은 인위적인 기술이나 천연적인 조건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때문에 견고한 성읍이 되어왔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하여 물러가셨을때는 예루살렘은 광야같이 버려졌다. "예루살렘의 푸른동산에서 가축들이 풀을 뜯고 거기 눕되 쫓아낼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그리고 가축들이 과일나무의 연한 가지를 먹을 것이라." 어쩌면 이말은 더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들에게 쉽게 먹히리라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가지가 자라다가 말랐을때 즉 바람과 서리를 맞아 말랐으나 제거되지 않은채 있을때는 땔감으로 쓰기위해 꺾이리라. 그러면 여인과 어린아이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그리하여 나무조차 베임을 당하기때문에 전체적인 파멸이 있을 것이라." 이것은 포도원의 비참한 상태를 서술한 것이다. 구주께서 '내안에 거하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는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말씀하실때(요 15:6) 이말씀을 언급하셨던것 같다. 이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즉 그속에 수액이 없는 마른 가지처럼, 거룩한 것의 맛이나 향기가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점이 모든 죄악의 주원인이다. 사악한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일에는 지각이 없다. 자기를 찬양하도록 그들을 백성으로 '조성하신 자'가 그들이 조성된 목적을 이루지않고 오히려 고함치고 새로 지음받기를 싫어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배척하시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 것이다. 우리를 능력으로 지으신 자가 다시 은총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라리 지음을 받지않는 편이 낫다.
(2) 이심판에는 큰긍휼이 섞여있다. 그이유는 부패하고 타락한 백성들가운데 선한 백성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려고 한다. 비록 그들이 침략당하여 살육을 당할지라도 그들의 원수가 당하는 정도와 방법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7절).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원수가 서로 싸우고있는 것이 나타나나. 이싸움에는 양편에 다 죽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살육하는데 악한 자들을 사용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칼이기 때문이다(시 17:13). 그러나 두려움의 잔이 그들의 손에 놓여지게 되었을때는 일찍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극심한 고난가운데서 그잔을 받았던 것보다, 더심한 고난을 당할 것이다. 여인의 후손은 단지 발뒤꿈치만 상했으나 뱀은 머리가 부숴졌다. 선한 백성과 악한 백성이 당하는 죽음과 고난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선한 백성이 당하는 고난은 완화되고 누그러져서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하는 고난이 아니라 견딜만한 고난이 될것이다(8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고난을 이렇게 규제하시어 '감당치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신다'(고전 10:13).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려고 하실때 우리가 감당할수 있는지를 고려하신다. 징계하시는 때가 세차게 몰아치며 요란스럽게 소리를 낼뿐만 아니라 식물을 마르게 하고 해를 끼치는 '동풍'이 '부는 날'일지라도 하나님은 거친 바람을 멈추시고 제지하시며 제한하신다. 하나님이 곡식을 키질하실때는 미풍을 사용하사 겨만 날아가고 알곡은 남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괴롭힐지라도 그고난으로 그들의 영혼에 유익을 끼치도록 하며 아버지가 자식을 징계함같이 그들을 징계하고 그들 마음속에 얽혀있는 어리석음을 쪼아내도록 역사하실 것이다(9절).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얻은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고난이 누그러지고 거친 바람이 그쳤기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의 멸망을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개심을 의도하셨다고 결론내릴수 있다. 고난으로 치료하려는 죄는 궤적으로 우상숭배의 죄였다. 바벨론 포로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죄를 버렸을뿐만 아니라 그것을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에브라임이 이르기를 내가 이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하리라.' 야곱은 그가 우상을 숭배하던 '제단의 모든 돌로' 즉 그가 귀하고 거룩하게 여겼던 돌들로 '부숴진 횟돌같게 하였을때' 자기 죄를 버렸다. 그는 그돌들을 멸시하여 횟돌같이 여길뿐만 아니라 거룩한 복수심을 품고서 횟돌을 부수어버리듯 쉽게 그것들을 산산히 부술 것이다. '아세라와 태양상'이 야곱앞에 서지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부수어져 다시는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상에 관한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라는 율법을 따르는 행위였다(신 7:5). 바벨론 포로이후로 세상에 어느민족도 유대인만큼 우상숭배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지닌 민족은 없었다. 예루살렘이 한동안은 적막하고 황무해질 것이나 그럴지라도 예루살렘의 흩어졌던 자들이 각기 흩어져살던 모든 곳에서 다시 그리로 돌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12,13절). 즉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부름을 받고 모아질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나무에서 과일을 따듯이 그들을 떼어내시거나, 이삭에서 곡식알을 빼내듯이 타작하여 빼내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 곧 나일강까지 그들과 함께 섞여 살던 자들로부터 따로 떼어내실 것이다. 즉 앗수르 땅으로 쫓겨나 그원수의 땅에서 포로로 지내던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 즉 바벨론 포로이후에 남아있다가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어기고(렘 43:6,7) 애굽으로 가서 버림받은채로 살던 많은 사람들을 따로 불러모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긍휼을 예비해두셨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쫓겨나기는 할지라도 버림받지는 않는다. "그가 너희를 조용히 그리고 마치 도적질하듯이 불시에 먼저 한사람, 한사람씩 모으실 것이다." 큰나팔을 울려 불리나...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포로들이 다시 모여 자기 땅으로 돌아섰을때 그들이 가장 전념했던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었다. 성전은 파괴되었으나 그래도 그들에게는 성산 곧 '제단을 쌓은 곳'(창 13:4)이 있었다. 하나님을 경배할수 있는 자유가 가장 값지고 바람직한 자유이다.

# 핵심
27:1-13
하나님을 배척하는 세상권력을 상징하는 리워야단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 포도원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보호와 연단, 그리고 이땅에 거하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등이 언급된다. 이 예언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한다.
리워야단(27:1)
‘뒤틀어진 것’, ‘둘둘 말린 것’이란 뜻이며, 가나안 신화에 등장하는 신화적 괴물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열방세력을 상징한다. 리워야단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던 앗수르, 바벨론, 애굽에 대한 심판은 물론 마지막때 성취될 사단과 그무리들에 대한 심판을 예표한다(계 19:20; 20:10).

# 묵상
날랜 뱀 리워야단 ( 27:1 )
‘리워야단’은 ‘비틀어 돌린 것’이란 뜻으로 바다의 용과 더불어 하나님의 적대세력을 상징합니다. 용은 이세상에 악을 들여온 자요, 사람들을 부추겨 하나님께 죄를 짓게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의해서 이미 그의 세력을 상실했으며 주께서 재림하실 그날에는 완전히 멸망당할 것입니다.
마른가지의 의미 ( 27:11 )
마른가지란 지각이 없는 백성을 말합니다. 즉 그들이 들어도 듣지못하고 보아도 보지못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지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른가지는 꺾여 불태우듯이, 쓸모없어 열매를 맺지못하는 포도나무가지인 백성들도 그지으신 자가 불쌍히 여기시지않고 은혜를 베풀지않으므로 멸망당하게될 것입니다.
큰나팔을 부는 이유 ( 27:13 )
이것은 여호와의 날이 임함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나팔은 과거 이스라엘에서 경보를 울리거나 적의 공격을 알리거나 제의소집 또는 제의중의 여호와의 현현을 알리기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세계와 인류의 운명을 뒤바꾸는 종말의 날의 도래를 뜻합니다(마24:31; 계8: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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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교회의 거룩한 보장 26:1-4
복음의 은혜에 대한 예언에 이어 노래가 부가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날에...이노래를 부르리라. 그노래는 복음교회를 상징하는 '유다 땅에서' 불려질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의 언약이 '유다 집으로' 더불어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히 8:8).
(1) 하나님의 교회는 악한 자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튼튼하게 방비된다(1절).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그것은 영원한 언약에 의해 세워진 성읍이며 따라서 그언약에 의해 자유롭게된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성읍이다. 든든하게 세워져서 하나님께서 친히 그성읍을 불벽으로 두르고 계신동안에는 그성은 예루살렘처럼 견고한 성읍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성과 곽'이 있기때문에 견고한 성읍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자체를 그성읍의 방어물로 삼기로 약속하신 것을 의미한다.
(2) 예루살렘 거민들이 마땅히 되어야할 사람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힘이 된다(슥 12:5). 본문에는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도록' 문을 열라는 명령이 나온다(2절). 예루살렘 거민들이 과거에는 이전의 죄악때문에 추방되고 쫓겨났으나 이제는 다시 들어올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3)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안전하고 편안하며 또 하나님의 은총을 확신하므로 마음의 안심과 평온을 지닌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즉 주께서 그를 내적인 평강, 외적인 평강, 하나님과의 평강, 양심의 평강으로 지키시며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마음을 끊임없이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끊임없이 평강으로 지키실 것이며 평강도 그들을 지킬 것이다(시 112:7).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의지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때에도 그를 의뢰하라." 우리가 이세상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일시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한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제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주 여호와께는 믿음을 세우기에 든든하고 영원한 토대 곧 만세 반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석위에 세운 집은 폭풍을 견뎌낼 것이다.

Ⅱ. 하나님의 의 26:5-11
선지자는 다음의 이유들때문에 이말씀을 믿으라고 우리를 격려한다.
(1)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는 겸손한 자들로하여금 그들의 교만한 원수들을 이기도록 하실 것이다.(5,6절). 우뚝솟은 성읍 바벨론이나 니느웨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낮추실 것이다(25:12). 하나님은 막강한 군대가 그들을 밟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성읍을 망하게 하실때 빈궁한 자의 발이 그것을 밟을 것이다(말 4:3; 참조. 시 147:7;롬 16:20).
(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길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뻐하신다(7절). '의인의 길은 평탄하다'(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행하려고 애쓴다. '정직하신 주께서' 장애가 될것들을 제거하심으로써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하신다.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하나님은 그길을 잘 검토하사 그들로 모든 난관을 극복할수 있게할만한 충분한 은혜를 주실 것이다.
(3) 어둡고 아주 절망적인 시간속에서도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8,9절).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든지 이렇게 해왔다. "주께서 우리를 징벌하실때 우리는 주의 손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만을 바라보았나이다." 우리는 환난을 당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족하겠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는데서 큰힘과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우리의 마음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며 열렬하고 진지해야 한다(시 42:1).
(4)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사람들로 주를 구하게' 하려고 하셨다.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어' 모든 것이 황무케될때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세계의 거민의 의를 배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생활을 고칠 것이라고 능히 기대할수 있다.
(5) 하나님이 그들을 고치기위해 쓰시는 방법에 전혀 응하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진정 사악한 자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심판으로 그들을 엄하게 다루시리라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을 거스려 행한다(10절).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많은 긍휼을 받았는데 이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에 정복되어 그를 섬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모든 수고가 허사였다. 악인은…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그들은 다른 곳에서 즉 악과 불경함이 처벌되는 "징계"의 땅에서만큼 걸림돌이 많지않은 '평탄하고 정직한 땅'에서 산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기서 '불의를 행하며' 계속해서 고집을 피우며 악을 행한다. 악하게 행하는 자들은 스스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리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악인은…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때에도 여전히 '여호와의 위엄과 그의 선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 보지않으려고 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책망을 우연이나 다같이 당하는 운명으로 돌리는 자들만큼 눈먼 자들도 없다. 그러나 보려고하지 않더라도 보게될 것이다. 즉 그들이 원하든 원치않든 간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화를 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무신론자들, 비웃는 자들, 안심하고 있는 자들은 머잖아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많이 끼친 것을 알게될 것이며, 자신들의 악한 의도와 좀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을 악하게 다룬 것을 부끄러워하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벗들의 행복을 비웃었기때문에 '불이 자기들을 사름을' 당하게될 것이다.

Ⅲ. 이스라엘의 반성과 부활의 소망 26:12-19
선지자는 본문에서 지난날을 돌이켜본 다음 앞날을 내다본다.
(1) 그의 회고와 반성이 더불어 나타나있다. 그는 교회의 상태를 돌이켜 보는가운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큰일을 행하셨던 여러 실례를 알게된다(12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혹은 우리안에) 이루심이니이다.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행했든지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안에 선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15절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께서 이나라를 더크게 하셨고. "그래서 적은 자 하나가 천이 되었나이다(그들의 숫자가 애굽 땅에서 중다하여져서 후에 가나안 땅을 가득채웠다). 그리고 이일에서 주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으므로 스스로 영광을 얻으셨나이다." 때때로 이웃 나라들이 그들을 학대하곤 하였다(13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만이 우리를 다스리실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 있으신 분이며 우리는 주의 백성이며 종이나이다. 그런데 '주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므로' 주께 부르짖나이다."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무관심하자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시어 그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다른 나라를 섬기는 일'의 차이점을 알수 있도록 하셨다. 이말은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김으로인해 하나님외에 다른 주들이(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우상을 "바알" 곧 "주"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들을 관할하도록 만든 죄에 대한 고백으로 이해할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런 일이 앞으로는 더없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우리는 주만 경배하고 오직 주께서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길로만 행하리이다." 이와같이 뉘우치는 반성이 우리의 것이 될수도 있다. 주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욕망을 주인으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그와같이 하나님께나 우리 자신에게나 모욕을 끼쳐왔다. 그들은 때때로 원수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었다(15절). "주께서 처음에는 크게하신 나라를 이제 줄어들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땅끝까지 흩으셨고 하늘가로 쫓으시리라'(신 30:4;28:64). 이사야는 그들이 이같이 학대받고 포로로 잡혀갔을때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을 버리지않았고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을 당하지도 않았다는 증거이며 또 그들이 당한 심판속에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뜻이 들어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회고한다(16절).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우리는 고난을 당하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우리의 의무를 각성하게 되며 우리가 그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고난은 우리로하여금 은밀하게 기도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공중기도에서보다는 이러한 기도속에서 좀더 자유롭고 더욱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릴수가 있다. 이사야는 그들이 자유를 얻기위해 힘듦과 위험한 투쟁을 벌여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탄식한다(17 ,18절). "우리가 구로하며 고통가운데 부르짖는 여인같나이다.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고 많이 걱정하며 수고했으나, 그러한 노력때문에 우리의 근심만 더커졌을 뿐이나이다." 불평과 탄원을 가지고 '주앞에 자신을 내놓기'위해 나올때 그들은 진통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은 아픔을 겪고있었다. 우리가 잉태하고. "우리가 즐거운 구원을 크게 기대하였나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가 낳은 것은 바람같았나이다.' 즉 그것은 상상 임신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나이다. 우리의 모든 기대가 좌절되었나이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실패로 끝나버렸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친구들을 위해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또한 '세계의 거민들'을 우리앞에 굴복시키지도 못하였나이다. 그들은 예나 다름없이 여전히 교만하고 오만하나이다."
(2) 그의 전망과 희망은 매우 즐겁다.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12절). 비록 잠시동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환난이 정해져 있을지라도 마침내는 그들을 위해 평강이 베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람들의 결국은 평강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우리가 오직 주께만 그영광을 돌리며 그렇게 할 수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주의 은혜만 의지하리이다." 그들을 관할하던 다른 주들은 죽었다. 그들의 권세는 깨어졌다. 주께서...그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 비록 교회는 진통하며 '낳은 것이 바람같은'(18절) 것뿐인 출생을 기뻐하지 않을지라도,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나와 죽은 증인들에게로 들어갈 것이다(계 11:11). '마른뼈가 살아나 극히 큰군대가' 될것이다(겔 37:10).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지금은 시체처럼 누워있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일어나고 재건되며 다시 번성할 것이다. 그러므로 티끌속에 있듯이 거하는 즉 초라하고 쓸쓸하며 우울하게 거하는 자들도 '깨어 노래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의 이슬은 저녁이슬이 하루종일 폭양에 바싹 마른 초목에 내리듯이 교회에 내려 그들에게 생기를 주어 되살릴 것이다. 봄이슬이 땅에 물을 적시어 땅속에 묻힌 초목으로 싹을 내게하듯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방인들이 살아나리라. 즉 그들이 내몸과 함께 일어설 것이니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속에 부름을 받아 그와 함께 일어서고 그와 함께 천국에 앉으리라. 그들은 내몸을 일으킬 것이라(라고 라이트푸트 박사는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이 되어 그의 지체로서 일어서는 것이니라."

Ⅳ. 이스라엘의 피난처 26:20,21
본문의 두구절은 본장의 뒷부분을 잇는 노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제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본장의 결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음장의 서론으로 생각된다.
(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초대하신다(20절). 내 백성아 갈지어다. "나에게로 오라. 나와 함께 갈지어다. 다른 사람들은 폭풍을 만나면 뿔뿔이 흩어지나 너희는 더욱 가까이 모이라. 와서 '네 밀실에 들어갈지어다.' 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밖에 머물러 있지 말아라." 우리는 믿음으로 이밀실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 거기에 몸을 숨겨야 한다. 또한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지니고 하나님의 보호아래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즉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듯이 해야한다. 이는 그가 '그의 문을 닫으시기' 때문이다. 위험이 닥쳐올때는 엘리야가 그릿시냇가에 숨었듯이 물러가 숨어있는 것이 상책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자신을 반성하고 네 마음과 교제하라. 즉 기도하며 하나님앞에서 겸손하라."
(2) 하나님은 그환난이 곧 지나갈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확언하신다. "잠깐 곧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동안 숨어있으라." 그환난이 지나가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줄리앙 칙령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당하게되자 그의 친구들이 그사실을 매우 슬퍼하였다. 그때 그는 "이것은 곧 지나갈 한점의 구름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친구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였다.
(3)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가 칼을 가지고 그들에게 끼친 모든 해악에 대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확언하신다(21절). 여호와께서 그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벌하시기 위하여 그처소에서 나오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처소란 속죄소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런데 벌하실때는 그가 거기에서 나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의 유죄가 입증될 것이다. 땅이 그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성도와 순교자들이 흘린 무고한 피가 이제 밝히 드러날 것이다(창 4:10,11;욥 20:27).

# 핵심
26:1-21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귀환함으로인해 부르게될 감격적인 찬양을 소개한다. 이는 종말론적으로 완전한 구원이 실현될 하나님나라에서 부를 성도의 찬양을 상징한다.

# 묵상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 26:2 )
여호와께 진심으로 순종하고 그분만을 의뢰함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된 이방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신앙하는 자들은 해방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루살렘의 성소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계신 구원의 현장으로 갈수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의 기념 이름 ( 26:8 )
문자적으로는 주님에 대한 기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사건 혹은 그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주님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예를들면 ‘여호와이레’는 이삭의 구원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이름입니다.
높이 들리는 주의 손 ( 26:11 )
손이란 강한 능력이나 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말은 주께서 악인들을 치시려한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악인들과 싸우시고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인을 대신해서 싸우심을 믿고 악을 선으로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롬12:21).
인간의 고통과 그결과 ( 26:17, 18 )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같이 하지만, 낳은 것은 바람과 같고 구원을 베풀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말하는 것으로, 고행이나 선행도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구원에 도달하려고 했습니다.
죽은 자를 내어놓을 땅 ( 26:19 )
이는 죽은 자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도 부활사상을 발견할수 있는데 그것은 이부분과 에스겔 37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고 땅에 묻히셨으나 부활하셔서 다시 사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최후심판날 하나님은 무덤을 여시고 모든 자들을 부활케하셔서 심판하시고 그들을 영생과 영멸로 나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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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찬양 25:1-5
(1) 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심한다(1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즉 "나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실때 보잘것없는 선지자는 하나님께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이렇게 말할수 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2) 그는 다른 사람들도 또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한다(3절). "주께서 땅을 황무케하시고(시 46:8) 정당한 복수를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일제히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악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 이말은 다음 두가지에 관한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에 원수였던 자들에 대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들은 개종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신들이 정복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것이다.
둘째, 비록 전에는 약했을지라도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강하고 두려운 존재가 될 자들에 관한 것으로 볼수 있다. 하나님이 그를 경외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들을 위하여 그들과 더불어 분명하게 나타나시므로 모든 사람이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다.
(3) 그는 이찬송을 마땅히 행해야할 일로 본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기사를 행하셨기 때문이다(1절). 우리 눈에는 새롭고 놀라운 것으로 보이는 이기사들은 그가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2) 하나님이 특별히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고 세상의 강한 자들의 권세를 꺾으셨기 때문이다(2절).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즉 "주께서 천연적으로 또 인공적으로 잘 방비되었다고 여겨지는 견고한 많은 성읍들을 황무케하셨으며 '외인의 궁성'이라고 불릴만큼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던 곳이 땅처럼 평평하게 되고 다시는 재건되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한때 번성했던 성읍들이 몰락하여 이제는(땅에서 파낸 항아리나 동정에 의해서 알려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무수히 많은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오랫동안 무더기와 폐허로 남아있지 않았던가.
3) 하나님이 빈궁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4절). 주는...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하나님은 겸손하게 그를 의지하는 연약한 자들을 힘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힘있게 하실뿐만 아니라 친히 그들의 힘이 되어주신다. 그는 비나 우박의 '폭풍중에 피난처시며' 한여름 태양의 따가운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신다.' '포학자의 기세는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나 결코 성벽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포학자란 하나님의 빈궁한 자들의 원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포학자들의 격노는 요란한소리를 내며 맹렬한 기세로 세차게 몰아치는 폭풍과 같다. 그러나 그격노는 바람처럼 하나님의 저지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람을 장중에 쥐고 계시기' 때문이다. 폭풍이 배에 부딪히면 배를 뒤흔든다. 성벽에 부딪히면 성벽을 조금도 흔들지 못한다(시76:10;138:7).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 그치게 하시며. '마른 땅에 폭양을 구름이 가리움으로' 그기세가 누그러지듯이 주께서 그훤화를 누그러뜨리며 가라앉히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이 '외인들'로 불린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가 압제하는 자들도 그들과 똑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고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학자들'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남들이 자기를 사랑해주기보다는 두려워해주기를 바란다. 포학자의 가지 곧 그꼭대기 가지가 부러질 것이다. 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꾼들이 낮의 수고와 더위를 견딘다는 소식이 들리면, 하나님께서는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그들의 원기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Ⅱ. 복음의 축복 25:6-8
이 예언은 앗수르 군대가 천사에게 패주당할때나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풀려날때 시온과 예루살렘에 있을 큰기쁨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추측할수도 있으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더나아가서 그예언을 복음의 은혜와 그은혜의 절정인 영광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는 구원과 은혜에 관한 예언을 보게되는데, 이구원과 은혜는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던' 것이었다(벧전 1:10).
(1) 복음의 은혜는 모든 백성을 위해 베푸는 궁중 잔치가 될것이다. 그것은 단지 잔치를 베푸는 주인의 위풍을 나타내기 위해서만 계획되었던 아하수에로의 잔치와 같지않다(에 1:4). 왜냐하면 이잔치는 손님들을 만족시키기위해 베풀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자.
첫째, 하나님 자신이 이잔치의 주인이시다.
둘째, 초대받은 손님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열방'이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셋째, 그장소는 '시온산'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복음교회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다. 그것은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으로 차려진 연회'이다. 복음의 안위는 그것을 즐기는 모든 자들에게 아주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한다. 그것은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 즉 바람이 불지않는 곳에서 오랫동안 저장되었을뿐만 아니라 잘걸러져서 맛이 진한 포도주로 베풀어진 '연회'이다.
(2) 세상이 오랫동안 파묻혀있던 무지와 잘못의 흑암에서 해방될 것이다(7절). 여호와께서...이산에서...그가리워진 면박...을 제하시며. 그들의 얼굴은 정죄를 받았거나 죽은 사람들의 얼굴처럼 가리워져 있다. 열방에는 그들을 덮은 '휘장'이 있다. 그들 모두가 흑암가운데 앉아있기 때문이다. 그들가운데 하나님이 알리신바 된 유다 백성들에게는 '그마음을 덮은 수건'이 있다(고후 3:15).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세상을 비추는 복음의 빛으로써 그리고 그빛을 보도록 사람들의 눈을 여시는 성령의 능력으로써 이휘장을 제거하실 것이다.
(3) 죽음이 정복될 것이다. 즉 그권세가 깨어질 것이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8절). 이말씀은 다음 세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실 것이다. 죽음이 그를 삼킨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그가 죽음을 삼키신 것이다.
둘째, 성도들의 행복은 죽음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을 것이다.
셋째, 성도들은 징벌된 적과 같은 사망에 대해 의기양양해 할수 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은 마지막 원수이다.
(4) 슬픔은 사라지고 끝없는 기쁨이 있게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은혜의 언약안에서 이세상에서 겪는 모든 슬픔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것이 마련된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다(계 7:17;21:4). 천국에는 다시 사망이 없기때문에 '애통하는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것이다. 이소문은 현세에서도 넘치는 눈물, 곧 씨뿌리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눈물을 씻어줄 것이다.
(5) 신앙때문에 받은 모든 치욕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그백성의 수치' 곧 그들이 누명을 쓴 비방과 허위 진술이 '제하여질 것이다.'

Ⅲ. 하나님안에서 교회의 승리 25:9-12
(1) 교회가 이축복들을 환영할 것이다(9절). 그날에 (겸손한 태도로 몹시 기뻐하면서)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영화롭게된 성도들이 이같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여호와의 기쁨에 참여할 것이다.' 이말은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라는 격려이다.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즉 그가 일을 시작하셨으니 계속 경영해가실 것이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의 행사는 완전하기 때문이다.
(2) 더 큰축복이 예상된다. 여호와의 손이 이산에 나타나시리니(10절).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은 그들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다는 계속적인 증거를 가지게될 것이다. 교회를 대적하므로 원수들의 권세가 꺾일 것이다. 본문에는 '모압'이 하나님 백성의 모든 적을 대표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완전히 '밟히거나' 타작될 것이며(왜냐하면 당시의 사람들은 곡식을 밟아서 탈곡했기 때문이다) 아무쓸모가 없으므로 '거름물속의 초개'같이 버려질 것이다. 자신의 손을 이산에 나타내신 여호와께서 헤엄치는 자같이 손을 그백성속에 펼것이다. 이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권능을 힘차게 발휘하시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헤엄치는 자가 그러듯이 끊임없이 활동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잇단 심판으로 자기 백성들의 원수와 교만을 누르실 것이다(모압은 교만의 죄로 유명하였다, 16:6). 여호와께서 '그손의 노략물'(한글개역은 '교활'-역주)을 누르실 것이다. 즉 그들이 노략질하고 강탈해서 얻은 것들을 그들에게서 빼앗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요새를 무너뜨리실 것이다(12절). 전능자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란 없다. 모압의 이러한 파멸은 죽음을 이기실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표하며(8절)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세를 제하실 것을(골 2:15) 예표한다.

# 핵심
25:1-12
장차 하늘 시온, 곧 새왕국에서 부를 성도의 찬양이다. 이는 ‘시온의 찬양’이라 불린다.

# 묵상
외인의 훤화 ( 25:5 )
이는 이방 사람들의 소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말은 ‘포학한 자의 노래’와 더불어 난폭한 사람들이 부르는 오만한 노래 혹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의 비신앙적인 노래를 의미합니다.
연회를 베푸시는 만군의 여호와 ( 25:6 )
이방 성도들이 시온산으로 순례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더불어 함께 식사하실 것이며, 이를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나라에서 베풀어질 천국잔치를 가리킵니다. 천국잔치의 주재자는 하나님이시며 초청의 대상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입니다. 이잔치의 특징은 음식이 풍부하여 아무리 많은 손님이 와도 부족함이 없으며, 사망의 공포가 영원히 없는 영생잔치이며 위로가 충만한 잔치입니다. 이잔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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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대황폐에 대한 경고 24:1-12
이 예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장면은 매우 어둡고 암울하다.
(1) 땅이 벌거벗겨진다. 땅이 마치 최초의 혼돈상태 곧 '혼돈과 공허'(창1:2)로 되돌아간 것처럼 '공허하고 황무해졌다'(1절). 땅(earth)은 때로는 육지(land)를 의미한다. 3절에는 땅과 같은 의미의 히브리어 단어인 에레쯔(eretz)가 육지(land)로 번역되었다(한글개역에는 똑같이 땅으로 되어있다-역주).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그러나 이단어는 1절에서처럼 땅(earth)으로 번역될수도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확실한 위안과 만족이 없다. 즉 하찮은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우리는 많은 재산이 이런저런 심판으로 완전히 공허하게 되고 황무하게 되는 것을 자주본다. 죄가 세상을 '뒤집어 엎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람이 거처하도록 그것을 만드셨을때의 상태와는 아주 딴판으로 변했다. 죄는 또한 '그거민을 흩었다.' 바벨에서의 반역이 거기에서 흩어지게된 이유였었다. 똑같은 내용이 4절에서도 나온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즉 땅이, 땅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자들을 실망시킨다는 의미이다.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계는 그것을 너무 좋아하는 자들의 손에서 시드는 꽃과도 같다. 또한 땅자체가 나이먹어가듯이 거기에 거하는 자들도 황폐해 간다. 병약하여 결함이 많은 육신을 끌고다니는 자들은 고통때문에 외롭게 갇혀 지낸다(6절). 땅의 거민이 불타서. 이것은 '소멸되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즉 더러는 이런 질병으로, 더러는 저런 병으로 소멸되었다. 그래서 남은 자가 적게 되었다.
(2) 이 모든 재난을 땅에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땅을 지으시고 사람의 유익과 즐거움을 위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하고 아름답게 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신다'(1절). 왜냐하면 땅을 지으신 그분이 바로 재판장이시며 이제 그가 땅을 재판하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이말씀을 하신'이는 '여호와'이시며 그가 그일을 행하실 것이다(3절).
(3) 계층과 신분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 재난을 당할 것이다(2절).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며. 즉 관원과 성직자라는 직위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다. 제사장들도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악했었다. 그들의 신분이 죄를 짓지않도록 그들을 막지못했다면 어떻게 그신분이 심판을 받지않도록 그들을 지켜주리라고 기대할수 있겠는가? 종과 상전이 일반일 것이며 비자와 가모가 일반일 것이며. 이전에 돈있는 자들도 가난한 자들보다 나은 것이 전혀없을 것이다.
(4) 땅에 이러한 재난을 가져오는 것은 바로 죄이다. 땅이 '그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기'(5절)때문에 공허하게 되고 쇠잔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폐해진다. 그거민들은 자연의 법칙과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어겼다. 그들은 게시된 신앙의 '율례를 어겼고' 즉 "그율례를 무시했고"(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그것을 지키려고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죄를 지음으로써 율법을 무시하였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율례를 모르는 체하였다. 이렇게 하는가운데 그들은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다. 이 영원한 언약은 그것을 영구한 축복으로 간직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과 영원한 유대관계를 맺게 해준다.
(5) 이러한 심판은 사람들의 교만을 꺾을 것이다(4절). 세상 백성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그이유는 자기들의 교만을 받쳐주던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땅은 사람들의 쾌락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린다. 이것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7-9절). 즉 마음이 즐겁던 자가 탄식하며. 육신의 환락의 성격이란 그런 것이다. 즉 그것은 '솔밑에서 타는 가시나무의 소리같은 것'(전 7:6)에 불과할 뿐이다. 육신의 즐거움은 시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소리는 이내 그칠것이며 그결과는 슬픔이다. 헛된 쾌락을 자극시키고 가속시키는 두가지 일이 있다.
1) 술마시는 일 : 새포도즙이 슬퍼하고. 새포도주가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맛이 시어져버렸다. '포도나무가 쇠잔하여' 수확을 거의 기대할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즐겁던 자가 탄식한다.' 만일 그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하면 그들의 모든 '희락을 폐하는'것이 되기 때문이다(호 2:11,12).
2) 노래하는 일 : 한때 그들이 잔치를 벌일때는 늘 있던 '소고치는 기쁨이 그치고 수금타는 기쁨이 그쳤다'(12절). 모든 즐거움이 암흑하여졌으며(11절). 즐거운 표정도 볼수 없고 미소를 띨 힘조차 없다.
(6) 성읍들이 이렇게 황폐함을 당할 것이다(10절). 약탈을 당한 성읍이 훼파되고. 성읍이 침략하는 군대에게 노출되었다. 집마다 닫히었고. 이는 아마도 역병때문일 것이며, 그때문에 '남은 자가 적을 것이다'(6절). 성읍 곧 예루살렘에는 '황무함'밖에 아무것도 남지않을 것이다. 거리에는 풀이 자라고 '성문은 파괴될 것이다'(12절). 이전에 늘 성문을 오가던 사람들이 다 죽임을 당할 것이다.

Ⅱ. 남은 자들의 안위 24:13-15
진노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기억하신다.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이웃 나라들이 원수 곧 산헤립이나 느부갓네살에게 침략당하여 모두가 다 멸망하게 될때 남은 자들이 보존될 것이다.
(1) 이 남은 자의 수가 적음(13절) : '감람나무를 흔듦같고 포도를 주움같이' 모두가 다 재난을 당할때, 피하는 자들이 여기저기 있을 것이다. 이렇게해서 살아남은 극히 적은 이들은 감람나무의 남은 것처럼 흩어져있다. 그들은 잎사귀뒤에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아시나 세상은 그들을 알지못한다.
(2) 이 큰파멸을 간신히 피한 남은 자들의 깊은 신앙심(14절) : 무리가 소리를 높여 부를 것이며. 하나님안에서 기뻐하는 자들은 환난가운데서도 기뻐할수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긍휼을 인해서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위엄'을 인해서도 노래할 것이다. 그들은 흩어짐을 다할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퍼뜨릴 것이며 먼해안까지 하나님께 대한 찬미를 올릴 것이다.
(3)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신앙에 이르도록 북돋우는 그들의 거룩한 열심(15절) : 그들은 '땅 거민을 불태운'(6절) 불가운데서 (한글개역은 '동방에서'로 되어있음-역주) 즉 고통의 용광로가운데서 이러한 열심을 낸다. '바다의 모든 섬에' 있은 자들 즉 그리로 추방되었거나 아니면 숨기위해 어쩔수 없이 그리로 피한 자들은 '불과 물'을 통과한 것이다(시 66: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과 물가운데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

Ⅲ. 심판날의 대환난 24:16-23
(1) 성도들의 위안 : 성도들은 대대적인 재난으로인해 '땅끝'으로 쫓겨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신앙때문에 그리로 밀려나가게 될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탄식하지 않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의로우신 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이것이 그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의로운 자'라는 단어는 단수이므로 "의로우신 하나님'을 가리킬수도 있다. 또는 그 의미가 "이노래를 부르는 의로운 자들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더하리라"는 뜻일수도 있다.
(2) 죄인들의 두려움 : 선지자는 다시 돌아와서 땅에 퍼부어지는 불행을 보고 슬퍼한다. 그러나 나는 이르기를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그것을 생각하기만해도 나는 초조해지고 쇠잔해지노라"(16절). 선지자는 죄악이 만연할 것을 내다본다(16절).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도다. 즉 사람들이 서로를 속임으로 부정직함이 만연할 것이다. 사회의 신성한 결속력인 진실이 떠났고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궤휼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가 자기 하나님께 성실치못한 아주 궤휼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버림으로써 자기 하나님을 자주 궤휼하게 대했다. 땅의 거민들은 이런저런 해악으로인해 이곳저곳으로 쫓겨다닐 것이다(17,18절). 즉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함정과 올무의 두려움)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한가지 해악을 피하려다가 더 큰해악에 떨어지는 것이 사람들이 인생에서 흔히 겪는 비참한 상태의 일반적인 사례이다. 땅자체가 흔들려 조각이 날것이다. 땅은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불탈'때(벧후 3:10) 마침내 그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사실은 종종 그시기가 도래하기전에 그와같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그사실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19,20절).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그땅은 제자리를 벗어났다. 땅에다 보물을 쌓아두는 자들은 이내 '깨어지고 갈라질' 곳에 자기들의 믿음을 두는 자들이다.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세속적인 사람들은 마치 성, 곧 난공불락의 요새에 거하는 것처럼 땅에 거한다. 그러나 '땅이 침망같이' 아주 쉽게 갑작스럽게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인께는 별로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땅이...떨어지고 다시 일지 못하리라.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이 생기리니 그곳에는 의가 거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처럼 땅을 흔들고 가라앉게 만드는가? 땅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은 바로 죄악이다. 죄는 온피조물의 세계에 무거운 짐인 것이다. 죄는 나라와 가정을 파멸시킨다. 하나님은 왕들과 세상의 큰자들의 죄를 특별히 따지실 것이다(21절). 여호와께서...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하나님이 높은 자들 즉 스스로 아무위험도 받지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의 모든 교만과 잔악함을 벌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 피해가 그들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의 높은 자들에게 짓밟히는 자들은 이사실 즉 비록 그들이 그높은 자들을 대항하지 못하지만 그들을 불러 셈을 치루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로써 스스로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 혹은 토굴감옥에 '모임같이 모임을 입을' 것이며 거기서 단단히 '갇힐'것이라고 특별히 예언되었다(22절). 강한 자가 자기 힘을 자랑하지 못하듯이 자유로운 자도 자기의 자유를 자랑할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장차 어떠한 속박을 당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다.' 혹은 처형의 날, 곧 '큰날의 심판까지'(유 1:6) 가두어질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그들은 긍휼을 입어 감금에서 풀려나고 지위는 되찾지 못할지라도 자유는 되찾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왕들과 방백들을 많이 포로로 잡아 바벨론의 토굴감옥에 가두었다. 그 포로들중에는 유다왕 여호야긴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날 후에 즉 느부갓네살이 죽었을때 그의 아들이 포로들을 방문하였고 여호야긴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 '그의 위를 그와 함께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여주었다'(렘 52:32). 하나님의 교회의 교만한 원수들이 낮아질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부인할수 없게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땅의 왕들이 그들의 폭정을 인해서 벌을 받을때 온천하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열왕들의 왕이시라는 사실, 그리고 그가 '만군' 곧 모든 군대, 왕들의 군대의 '주'로서 통치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즉 자기 교회에서 통치하신다는 사실, 또 그가 '그 장로들앞에서'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하나님의 장로들 즉 어찌할바를 모를때마다 자주 시온과 예루살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곤 했던 나이들고 경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많이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볼것이다. 그때에는 큰빛앞의 작은 빛이 빛을 잃고 무색해지듯이 여호와께서 '영광스럽게' 통치하신다는 사실이 '날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할'만큼 밝고 찬란하게 드러날 것이다. 창조주의 영광은 가장 찬란한 피조물의 영광보다도 한없이 뛰어나다.

# 핵심
24:1-13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파기했으므로,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시어 그땅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소멸시킴으로써 슬픔과 고통의 땅이 되게 하시겠다는 징벌 선포이다.
“높은 군대”란?(24:21)
이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① 별들을 가리킨다.
② 천사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③ 이세상에서 별들처럼 반짝이는 왕들과 방백들을 가리킨다.
④ 정사와 권세를 갖고있는 타락한 천사를 의미한다.
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하나님은 마지막날에 하늘에 거하는 어둠의 세상주관자인 사단을 심판하실 것이다(유 1:6).

# 묵상
더럽게 되는 땅 ( 24:5 )
땅이 더럽게 되는 것은 거민이 율법을 범하고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가 살고있는 이세계까지 부패시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물질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물질로인한 사람의 죄악때문에 악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메시야의 재림으로 땅은 새롭게 회복될 것입니다(계21:1).
슬퍼하는 새포도즙 ( 24:7 )
새포도즙이 슬퍼한다는 말은 메마른 땅위에서 모든 포도열매의 즙이 말라버렸다는 뜻입니다. 남방 사람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기쁨과 향락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즙이 말랐다는 것은 기쁨이 끝났으며 파국이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의로우신 자 ( 24:16 )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때때로 묵시문학에서 ‘의인’이란 사람의 아들 곧 메시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로우신 자란 종말의 날에 모든 성도들이 찬양하고 영광돌릴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여러날 후’의 의미 ( 24:22 )
악한 영의 세력과 그의 하수인인 땅의 왕들이 갇힌 후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다시오실 메시야께서 사단을 결박하여 그를 천년동안 무저갱에 가두신다고 예언했습니다(계30:3, 7). 그리하여 천년동안 갇혔던 사탄은 후에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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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두로의 파멸 23:1-14
두로는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그것의 멸망에 관한 이 예언이 '다시스의 선척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라는 문구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왜냐하면 두로의 사업과 부와 명예가 모두 해운업에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운업이 망하면 그것들도 모두 망하게될 것이다.
1. 두로의 번영(1-3)
바다에서 무역하던 '시돈의 상고들이' 처음에는 '시돈을 부요케하였다'(2절). 시돈은 두로보다 더 오래된 성읍으로서 같은 해안에 위치해 있었고 두로보다는 북쪽지방에 더많은 동맹을 맺고있었다. 그리고 두로는 처음에 시돈의 식민지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딸이 어미를 앞지른 것이다. 애굽은 두로를 일으키는데 아주 많은 도움을 주었다(3절). 시홀은 애굽의 강이었다. 애굽은 그강을 통해서 그리고 그강이 흘러들어가는 바다를 통해서 두로와 교역을 하였다. 두로에게 있는 것이라곤 바다밖에 없었지만 부지런히 일함으로써 부유해지고 강성해졌다. 두로는 환락과 쾌락으로 유명한 '희락의 성'이었다(7절). 이런 이유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종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경고를 속구하기를 싫어하였다. 두로는 또한 '고대에 건설된' 성이었고 그사실은 두로의 방심을 조장하였다. 두로는 스스로 면류관을 썼고 또 '면류관을 씌우던 성'이었다(8절).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또한 '그 무역자들은' 어느나라로 가든지 '세상에 존귀하던 자' 곧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던 자들이었다.
2. 두로의 몰락(4-14)
두로가 이웃 나라들의 화를 자극했기때문에 환난을 초래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재물로 그들을 유혹했기때문에 환난을 초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로를 멸망시키도록 느부갓네살을 자극한 것은 바로 이 두로의 재물이었다면 그는 실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로가 13년동안이나 공격을 버티다가 그거민들이 가족과 재물을 가지고 바다로 도망가 버렸기때문에 느부갓네살에게는 텅빈 성읍밖에 남지않았기 때문이다. 두로의 파멸이 본문에 예언된다. 다시스의 배들이 징벌할 편리한 항구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황무하여질' 것이다(1절). 두로가 파괴되어 황폐해질 것이다. 그거민들은 너무도 슬픔에 눌린 나머지 그것을 나타내는 것조차 못할 것이다. 이웃 나라 사람들은 그들때문에 놀라고 고통당할 것이다. 바다의 굽이치는 파도가 두로로부터 이소식을 가져다가 시돈에 전해주었기 때문에 '시돈이 부끄러워할' 것이다(4절). 시돈에서 '바다의 보장'(흠정역에는 '바다의 힘'으로 되어있음-역주) 곧 밀려오는 높은 물결이 이렇게 외치며 선포한다. 나는 구로하지 못하였으며 생산하지 못하였으며. "나는 무역과 장사를 하며 성장한 젊은 사람들의 뱃짐을 두로에 가져오지 못하겠노라." 무역과 상업은 두로를 그처럼 부유하게 하고 사람이 북적대게 만든 것이었다. 사실 애굽은 두로보다 훨씬더 넓고 강대한 나라였다. 그렇지만 두로는 매우 폭넓게 교역을 하고 있어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오래잖아 애굽의 멸망소식을 들었을때만큼이나 두로의 멸망소식을 듣고서 애통해할 것이다(5절). "오랫동안 '해변 거민'이었던 너희는 이제 슬피 부르짖을때가 되었도다. 너희가 다시스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니라. 너희가 취할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되도록 빨리 다시스로 곧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니라." 도망할수 없었던 자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길밖에 달리 기대할 것이 없었다(7절). 그백성이 자기 발로 먼지방까지 가서. 그들은 사로잡혀 급하게 끌려갈 것이다. 도망하려고 시도한 자들중 많은 수는 적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두로는 '나일같이 그들의 땅에 넘쳐서' 불행의 심연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그들은 적의 손에 쉽사리 희생될 것이다. 그리고 두로에게 더이상 힘이 없듯이 자매도시 시돈도 더이상 희락이 없을 것이다(12절). 너 학대받은 처녀딸 시돈아. "이제 승리하여 의기양양하는 갈대아인들에게 곧 제압당할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라." 그런데 이 모든 환난이 어디에서 올것인가? 하나님이 그환난의 장본인이 되실 것이다. 그환난은 '전능자에게서 오는 멸망'이다. 이런 질문들이 제기될 것이다(8절).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일을 정하였느뇨. 무한히 지혜롭고 공정하신 하나님이 그일을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독단적인 능력을 과시하기위해 두로에 이같은 재난을 내리시지 않았다. 오히려 두로 사람들의 교만을 벌하기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다른 많은 죄들도 그들가운데 만연해있던 것이 틀림없지만, 교만의 죄가 하나님이 두로를 치신 특별한 이유였다. 하나님은 이일에서 자신의 의도한바를 세상에 알리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세상 모든 영광의 헛됨과 불확실함을 깨우치려고 하셨다. 즉 그영광이 아무리 견고한 것처럼 보이는 때라도 얼마나 시들기 쉬운 것인가를 보여주려고 마음먹으셨다. 학식과 재물, 화려함과 권력이 사람들의 영광인가? 두로의 파멸을 보라. 그모든 영광이 더럽혀지고 훼손되며 티끌속에 묻혀지는 것을 보라. 여호와께서 바다위에 손을 펴사. 갈대아인들이 두로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것이다(13절).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들과 그들의 땅은 너무도 쉽게 앗수르인들에게 파괴당했다. 그들이 손수 바벨론을 '창건하며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일으켰을지라도' 앗수르인들이 그것을 헐어버렸다. 따라서 두로도 장차 느부갓네살에게 망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는 것을 좀더 주의하여 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서있으리라고 흔히 확신하는 그런 자신감을 갖지못할 것이다.

Ⅱ. 두로의 회복 23:15-18
(1) 두로의 황폐가 계속될 시기가 정해졌다. 두로는 영구히 황폐하도록 되어있지 않았다. 두로가...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15절). 두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무렵에 느부갓네살에게 파괴되었고 예루살렘이 황폐해있던 기간만큼 황폐해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두로의 교만을 짓밟았고 그러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더 큰교만을 부리자 하나님은 그후에 곧 그를 겸손케 만드셨다.
(2) 두로가 다시 그영광을 회복하리라고 예언된다. 즉 '한왕' 혹은 한왕조 느부갓네살 왕조의 '년한같이 칠십년이 필한후에' 그영광을 회복할 것이다. 고레스가 유다 백성들을 해방시키면서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그들을 격려하였을때 또한 두로 사람들도 해방시키면서 그들을 격려하여 두로를 재건하도록 했으리라 생각할수 있다. 여호와께서(긍휼로) 두로를 권고하시리니.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다투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두로는 옛날의 무역을 다시 회복하기위해 온힘을 다기울일 것이다. 한동안 음란함때문에 징벌을 받았던 두로는 기생처럼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두로가 자유롭게 될때 옛날에 유혹하던 그악기를 다시 사용할 것이다. 즉 두로 사람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무역을 추진시킬 방법을 궁리하고 가장 좋은 상품을 조달하며 모은 고객들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한때 잊혀졌던 기생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을때 노래와 춤으로써 손님들에게 호감을 사듯이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행하며' 소야곡을 부를 것이다. 두로가 다시 점차로 열국들의 상업중심지가 될것이다. 두로는 '다시 취리하여' 즉 장사를 하여, 이전에 한창 번성할때 교역했던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다'(즉 두로가 무역으로 상거래를 할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음란을 행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선지자가 계속해서 기생의 비유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재물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인 음행이다. 그러므로 탐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간음하는 자들'이라고 불린다(약4:4). 일단 옛날의 무역이 다시 회복되면 두로는 그것을 이전보다 더 잘이용할 것이다(18절). 그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두로의 무역과 그로인해 얻는 모두 이익은 하나님께 바쳐지고,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쓰일 것이다. 그것은 이전처럼 몰래 감추어 쌓아두지 않고 경건과 자선의 일에 쓰일 것이다. 그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활비에서 떼어두는 것이 '여호와앞에 거하는 자' 곧 여호와의 종들인 제사장들을 위한 '자료가 될것이다.'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족이 '배불리 먹고 잘입을 것이다.' 즉 튼튼하고 질긴 옷을 입을 것이다. 이 예언은 새두로에 신앙이 수립되고 그들이 참하나님을 알게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교제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때에 두로 사람들이 유다땅에 거하는 것을 볼수 있다(느13:16). 두로와 시돈이 그리스도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성읍들보다 신앙에 더욱 호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들가운데 가셨더라면 '그들이 회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마11:21). 또한 우리는 두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된다(행21:3,4). 상인들의 무역한 것과 날품팔이꾼의 이익도 모두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는 것이다. 즉 그것들은 '여호와께 거룩히 돌려져야' 한다. '여호와께 거룩히 돌리라'는 이말은 대제사장 의관에 붙인 패에 새겨진 문구와(출39:30)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따로 떼어두는 것(레27:30)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행하거나 얻기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려야한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후하게 구제하고 목회자를 도우며 복음을 장려할때,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행한다면 우리의 무역한 것과 이익이 여호와께 거룩히 돌려질 것이다.

# 핵심
23:1-18
당시 해상무역으로 경제적 풍요를 향유하고 있던 두로를 향한 심판선언이다.
두로(23:1)
팔레스타인 북쪽,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성읍. 그 거민들은 가나안 정복당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원주민들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고 남겨둔 가나안 족속의 후손들이다. B.C. 10세기 이전부터 두로는 무역과 상업을 통해 풍성한 부를 누렸다. 베니게의 고대도시인 시돈을 장악한 두로는 지중해연안에 많은 식민지를 두었다. 애굽을 비롯해 스페인의 다시스까지 무역로를 개척했고, 각종 호화로운 교역품들을 실어 나름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당대 최고의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 묵상
시홀의 곡식 ( 23:3 )
시홀이란 애굽 동부국경 가까이에 있는 나일강의 한지류인 펠루시악 강이나 부바스티테 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홀의 곡식’이라는 말은 애굽의 곡물을 의미하며, 시돈 사람들이 자신의 손으로 일하지 않고 타민족, 곧 애굽인들의 곡물 거래로 생계를 이어나갔음을 암시합니다.
두로의 주된 산업 ( 23:5-7 )
베니게의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도시국가인 두로는 다윗과 솔로몬의 무역동맹자 히람왕의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역에 힘썼으며 물감, 유리 등의 산업을 발달시켜 지중해 상업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한편 이러한 두로를 향해 구약의 예언자들은 그들의 물질주의와 노예매매 등에 대해 호되게 비난했습니다(욜3:5; 암1:9).
두로를 위해 여호와께서 정하신 일 ( 23:8, 9 )
하나님께서는 두로로하여금 모든 영광의 교만을 욕되게 하시며 모든 존귀한 자로 멸시를 받게하려 하셨습니다. 즉 무엇보다도 경제력으로인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교만했던 두로에 대한 심판이 이미 작정되었던 것입니다. 세상물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멀리하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백성은 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시146:5).
여호와앞에 거하는 자 ( 23:18 )
이는 유대 민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두로의 무역한 것과 그이익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 유대 민족이 먹고 입을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종말의 날에는 열방이 그의 예물을 시온으로 가져오므로 제사장 족속인 유대 사람들은 그예물로 생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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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예루살렘 성과 그 인근지방의 환난 22:1-7
이 예언의 제목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이다. 예루살렘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유다 땅에는 골짜기들이 많았기때문에 골짜기라도 불렸다. 또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곳에서 자신을 알리셨고 선지자들이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때문에 '이상 골짜기'라고도 불리운다. 바벨론은 비록 부유하고 강대할지라도 하나님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해변 광야'라고 불렸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기때문에 '이상 골짜기'이다. 본문에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가 있는데, 그것은 그골짜기를 완전히 파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고를 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경고는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파멸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산헤립이 시도한 예루살렘 공격과 관계가 있기(10,36장) 때문이다.
(1) 예루살렘이 산헤립 군대가 가까이 옴으로인해 당황할 것이다. 예루살렘은 한때 무역이 성행하고 인구가 많고 그래서 떠들썩하고 즐겁게 흥청거리는 성읍이었다. "그러나 상점들이 문을 닫고 네가 적을 피하여 숨기위해 '지붕에 올라앉으니' 어찌된 일이냐?"(1절). 예루살렘이 어째서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그들은 기근으로 죽었거나(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면 두려움으로 죽었다. 그들은 너무 낙담한 나머지 마치 칼로 꿰뚫린 것처럼 실제로 두려움에 찔렸다.
(2) 유다의 관원들이 전국 각처에서 창피스럽게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다가 거기서 붙잡혔다(3절). 그들이 각자 돌보아야할 성읍을 앗수르 군대가 삼키도록 버려둔채로 도망하였기때문에 그군대가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였다'(36:1). 이 관원들은 결박당하여 활을 쓰지 못하였다. 그들은 겁쟁이처럼 자기 성읍을 떠났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와서도 두려워 떨었다. 그래서 그들은 활을 당기지 못하였다.
(3) 선지자가 몹시 걱정하고 있는 그 일로인해 모든 지지한 백성들이 큰고통을 당할 것이다(4,5절). 선지자는 자신이 슬퍼하는 모습보이기를 원치않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로부터 얼굴을 돌리라고 말한다. 그는 남몰래 울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무엇때문에 슬퍼하는가? 이 불쌍한 선지자는 잃어버릴 것도 거의 없었고 또 고난에 단련되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가 슬퍼하는 것은 '그의 딸 백성이 패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수들이 그들을 짓밟아도 그친구들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방법을 알지못한다. 원수들은 공성망치를 가지고 성벽을 부수고 있는데 그들은 헛되이 산을 바라보고(적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무너져 그들을 덮어달라고) 부르짖거나 산더러 그들의 쟁변을 듣고서(미 6:1) 그들과 그들의 원수들사이에 서서 판가름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4) 그원수들의 힘은 막강해서 그들의 성읍을 포위공격할 것이다(6,7절). 엘람(즉 바사)은 화살이 가득한 전동과 전차를 이끌고 올것이다. 기르(즉 메대)는 싸움을 위한 즉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할것이다. 그때는 한때 양떼로 뒤덮였던 예루살렘 주변의 비옥한 골짜기들에 병거가 가득할 것이며, 성문에는 식량을 일체 성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기위해 '마병들이 정렬할 것이다.'

Ⅱ. 유다의 죄악 22:8-14
본문의 첫머리에서 '유다에게 덮었던 것을 벗긴다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유다를 두르고 있는 성읍들은 유다의 엄호물이었다. 그러나 이성읍들이 앗수르 군대에게 탈취당함으로써 더이상 자폐물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어 유다의 연약함이 드러났다. 이와같이 유다에게 덮였던 것이 벗겨졌다. 유다의 창고들이 공중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열려졌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이사실을 다르게 해석한다. 즉 하나님은 유다가 당할 이환난을 통해서 그들의 덮개를 벗기려고 하셨다(즉 그들의 위선을 폭로시키려고 하셨다)는 것이다(대하 32:31). 이제 그들이 세상적인 안전과 확신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사실이 드러났다(9,13절). 그들은 큰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 두려움속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나타내보였다.
(1)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들을 도우실수 있는 능력을 크게 멸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생각해 낼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사용하였다. 산헤립이 유다의 끝까지 방어하고 순순히 항복하지 말자고 결의하였다. 그들은 무기가 충분히 비축되어 있는지 알아보려고 무기고와 창고를 조사하였다. 즉 그들은 솔로몬이 병기고로 쓰려고 예루살렘에 지었던(왕상 10:17);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요새 곧 '다윗성'의 무너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성벽둘레를 돌면서 수리를 하지못해 무너진 곳을 조사하였다. 이렇게 무너진 곳이 많았다. 우리는 다같이 당하는 재난을 통해서 우리의 무너진 곳을 고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도록 깨우침을 받아야한다. 그들은 성에서 쓸 물을 확보하였다. 너희가 아래못의 물도 모으며.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여' 집집마다 공공사업을 위해 각집에 할당된 수의 사람을 보내거나 돈을 기부하도록 하였다. 개인 재산도 공중의 안전을 위해 바쳐져야 했기때문에 성벽을 튼튼하게 쌓아야 할때에 그길을 방해하는 집들은 헐렸다. 그들은 성을 더욱 안전하게 하기위해 성벽외벽과 내벽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다. 또 그들은 옛못의 물을 성으로 끌어들여 자기들은 물을 충분히 확보하고 성을 포위공격하는 자들에게는 물을 주지않으려고 궁리하였다. 앗수르 군대로 '와서 많은 물을 얻지 못하게할' 것이다(대하 32:4).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관심하였는가. 즉 '저희가 이일을 하신 자'(그것을 만드신 자, 즉 너희가 그처럼 열심을 내어 방어하려고 하는 성읍인 예루살렘을 만드신 자)와 방어를 위해 그성에 갖추어준 모든 이점들을 '앙망하지 아니하였다.' 예루살렘을 만드시고 지혜로 옛적부터 그것을 구상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본문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는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이며 하나님의 전이 그곳에 있기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부유한 성읍이며 자기들의 집이 그곳에 있기때문에 예루살렘을 튼튼히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을 믿고서 축복을 얻기위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방호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왕하 18:5) 특별히 이때에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다고 기록되었다(대하 32:8). 그러나 주변의 지위가 높은 정치가들과 군인들은 신앙을 거의 갖고있지 않았던것 같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를 몹시 멸시하였다(12-14절). 그들에게 이러한 재난을 일으키사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고 회개하도록 만들려고 계획하셨다. 그환난의 날에 하나님은 그로인해서 '통곡하며 애호하고' 온간 형태로 슬픔을 표시하며 심지어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베를 띠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고 기도를 드리며 힘써 생활을 개혁하라는 명령을 더하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자신의 섭리를 설명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같은 계획과는 정반대로 행하였다(13절). 그들은 마치 그들에게 아무 적도 없고 위험도 전혀 없는 것처럼 안심하고 즐거워하였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책을 다 마련했을때 그들은 위험을 무시하고 즐겁게 지내기로 작정하였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이것은 '여호와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의 선지자들을 학대하던' 불경한 조소자들의 말이었다. 그들은 죽음과 또한 죽음저편에 있는 미래상태에 대한 가르침을 조롱하였다. 세속적인 안전과 동물적인 육욕, 이것은 인류 대다수가 짓는 죄와 수치이며 그들을 파괴시키는 것인데 그밑바닥에는 현생이 뒤에 오는 또다른 생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앙이 깔려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자신이 그점에 대해 분개하심을 나타내셨다. 그사실을 '친히 그의 귀에 들려' 선지자로하여금 지붕에서 선포하도록 하셨다. 진실로 이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14절).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뜻과 정반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완고한 자에게는 거스려 행하심을 보여주실 것이다.

Ⅲ. 셉나의 멸망 22:15-25
우리는 본문에서 왕실 고관인 셉나가 해고되고 대신에 엘리아김이 영예로운 직책에 발탁되는 것에 관한 예언을 본다. 하나님은 이 특정한 두사람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킴으로써 이사야의 입에서 나오는 다른 더 큰사건들에 관한 그의 예언을 확증하려고 하셨다. 이 예언은 본장 앞부분에 있는 것과 함께 같은시기에 전해졌고 산헤립의 침공전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던것 같다. 왜냐하면 이때는 셉나가 '궁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후에는(36:32) 엘리아김이 궁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점차 몰락하는 셉나는 서기관이었다.
(1) 셉나가 받을 수치에 대한 예언 : 그는 국고의 관리를 맡고 있었기때문에 '국고를 맡은 자'라고 불리었다. 또한 그는 '궁을 차지하였다'고 적혀있다. 유대인들은 그가 앗수르왕과 반역적인 서신 왕래를 계속하였고 성을 그의 손에 넘겨주기위해 그와 교섭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교만, 허영, 방심에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16절). 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네가 참으로 야단법석을 피우는구나. 너는 아무도 네가 어디서 왔는가조차 알수 없을만큼 천하고 이름없는 자가 아니냐? 그렇다면 네가 스스로 좋은 집을 짓고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는 것이 무엇을 위함이냐?" 그의 초소는 바위속에 조각된 것처럼 아주 견고하게 세워졌고 아주 튼튼하였다. 그는 마치 죽은뒤에도 자기의 영화를 계속 남아있게 하려는듯이 보였다. 네가...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그가 몰락하고 그의 영광이 훼손되리라는 예언을 볼수 있다(19절). 내가 나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높은 지위는 미끄러지기 쉬운 곳이다. 따라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의기양양해 하는 자들이 이 지위를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5절의 말씀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 "지금은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즉 자신의 지위가 확고부동하다고 생각하는 셉나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삭으리니' 그못이 부러져 떨어질 것이라." 잠시후면 그는 그의 관직에서 뿐만아니라 자기 나라에서조차 쫓겨날 것이다. 여호와가...너를 장사같이 맹렬히 던지되(17,18절). 어떤 사람들은 앗수르인들이 그를 사로잡아 죽였거나 어쩌면 히스기야가 그의 반역적인 행위를 알고서 추방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로티우스(Grotius)는 그가 문둥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데, 그병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로인해 발생하며 특별히 교만한 자를 벌하는데 쓰이는 병이라고 여겨져왔었다. 그래서 그는 이 문둥병때문에 '말아 쌓아' 예루살렘에서 '공같이 던져졌다'고 한다. 셉나는 자기 자리가 자기에게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광막한 지경으로' 보내시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돌아다닐만한 장소를 얻을 것이나, 다시 돌아올 길은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에는 그의 영광의 수레였던 '수레도 거기 있으면서' 다만 지난날의 영화를 상기시킴으로써 그에게 고통을 더해주며 그의 '주인의 집' 즉 그를 등용한 아하스 왕실에 '수치를 끼칠' 것이다.
(2) 엘리아김의 등용에 대한 예언(20절) :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미 다른 일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신실하게 입증해보였던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이 높은 관직에 앉히려고 부르시는 것이다. 본문은 엘리아김이 궁내대신이요 국고 책임자이며 총리의 직책인 셉나의 자리로 승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사야는 셉나에게 이말을 해야했다(21절). "그가 명예의 상징인 '네 옷'을 입고 권력의 상징인 '네 띠'를 띨것이라. 이는 그가 '네 정권'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내가...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힘있게 하고. 책임과 권력의 자리를 맡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직무를 행할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엘리아김의 등용은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둔다는 말로써 한번더 묘사된다(22절). 그는 '궁중보물 곧 은금과 향료' 그리고 '무기고와 보물고'(39:2)에 가까이 갈수 있었고, 공공사업에 합당하다고 생각한대로 거기에 있는 물건들을 처리하였다. 그의 직위는 확고부동해질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그지위를 차지할 것이다(23절). 즉 '내가 그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견고케하여' 빠지거나 부러지지 않게할 것이다. 그는 나라의 복덩어리가 될것이다(21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의 집에 아비가 될것이며. 그는 왕실의 일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공적사업을 돌볼 것이다. 왕실과 도성과 나라가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를 갖지않고, 신하들은 참된 애국자들이며, 왕실에서 축복하는 자를 나라전체가 함께 축복할수 있을때 그백성은 행복하다. 그는 그들가운데 복덩이리가 될것이다(23,24절). 그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위에 걸리리니. 엘리아김은 '단단한 곳에 박힌 못'이며 그의 모든 식구들은 집안에서 손잡이가 달린 그릇들이 못에 걸려있듯이 그를 의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말은 그가 식구들을 모두 관대하게 돌볼 것이며 그보호의 무거운 짐을 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모든 그릇들 즉 '항아리' 뿐만아니라 '작은 그릇 곧 종지'까지 돌볼 것이다. 즉 그의 가문에 속한 가장 비천한 자들도 그에게 부양받을 것이다. 다윗 집의 열쇠를 쥐고 계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단단히 박힌 못'과 같아서 '그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위에 걸려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매달려있는 영혼은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결코 멸망당하지 않으며 그에게 매달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는다.

# 핵심
22:1-25
하나님의 권고를 무시함으로 이방 열국에게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말 예루살렘의 슬픈 운명과 탐욕의 노예로 전락한 유다 지도자들에게 미칠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을 경고한다.

# 묵상
이상 골짜기 ( 22:1 )
이상 혹은 환상의 골짜기라는 이말은 여호와께서 이상중에 임재하셨고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장소인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편 5절에도 나오는 이 ‘이상 골짜기’라는 말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그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임을 암시합니다.
유대인들이 대적을 막기위해서 한 일 ( 22:9-11 )
다윗성의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물을 모으며, 가옥을 계수하고 성벽을 견코케하며 두 성벽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습니다. 산헤립의 위협을 느낀 히스기야는 다윗성 서편의 기혼샘에서 실로암못에 이르는 지하수도관을 만들었던 것입니다(대하34:4-8). 그러나 이러한 행위 모두는 인간적인 방책에 불과합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의뢰하고 앙망해야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입니다(사40:31).
이사야를 셉나에게 보내신 하나님 ( 22:16 )
셉나는 예루살렘과 아무 연관도 없는 이방인인데, 자기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저명한 유다의 왕들이나 파는 바위무덤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셉나는 자신이 그무덤에 묻히지도 못할 것인데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들여 묘실을 팠습니다. 이것은 셉나가 자신을 위대한 자라고 생각하여 유다의 열왕들이 묻힌 장소에 함께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아김 ( 22:20 )
그는 히스기야의 궁내대신으로 예루살렘성이 포위당했을때 앗수르왕 산헤립의 사자들과 협상을 위해서 파견된 사람들의 대변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도움을 구하기위해서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다윗집의 열쇠 ( 22:22 )
이는 궁전을 열고 닫을수 있는 전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문이십니다(계3: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수 있는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마16:18, 19). 나아가 그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권한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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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바벨론의 멸망 21:1-10
우리는 13장에서 바벨론에 관한 경고를 한가지 보았다. 본문에서 우리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한가지 더본다. 바벨론은 때때로 유다 백성들의 친구인것처럼 가장하였다(39:1).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그우호를 믿지말며 그들의 적의를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경고하신다. 바벨론은 망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바벨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바벨론이 본문에서는 '해변 광야' 혹은 '해변 평지'라고 불린다. 그이유는, 바벨론이 평지인데다가 도처에 호수가 있고 유브라데강의 많은 지류들로 물이 풍족하였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바로 얼마전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바벨론이 앗수르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동안에는 니느웨가 바벨론의 빛을 무색케하였다. 그런데 그바벨론이 열국중의 귀부인이 되었다. 느부갓네살이 통치하기전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바벨론의 멸망을 거듭거듭 분명히 예언하여 그의 백성들이 바벨론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않으며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때도 구원을 단념하지않도록 하셨다(시 37:35,36).
(1) 메대와 바사 사람들이 무섭게 바벨론을 습격할 것이다(1,2절). 그들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올것이다. 메대와 바사의 북쪽지방은 황무지와 산지로서 외국인들에게는 두려운 곳이었다. '엘람'(즉 바사)이 올라가서 바벨론을 치며, 메대군과 연합하여 바벨론을 포위공격하도록 출두명령을 받았다. 이 두군대는 '남방 회리바람같이' 올것이다. 이런경우에 흔히 그러듯이 도망자들중 더러는 그들에게 투항할 것이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역사가에 의하면 바벨론왕의 뛰어난 장교들이었던 가다타스(Gadatas)와 고브리아스(Gobryas) 두사람이 고레스에게 투항한 사실을 이와 결부시킨다. 그들은 성내의 모든 길을 잘알고 있었기때문에 일단의 부대를 이끌고 곧장 왕궁으로 쳐들어가 거기서 벨사살을 죽였다고 한다. 이렇게 '속이는 자들'의 도움을 받아 '약탈하는 자가 약탈하였다.' 바사인들은 바벨론 사람들에게 그들이 행한대로 갚을 것이다. 사기와 불의한 전쟁과 속임수로써 이웃나라들을 삼킨 자들이 호적수를 만나게될 것이다.
(2) 바벨론에 있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갖게될 것이다. 불쌍한 포로들에게 바벨론의 멸망은 환영할만한 소식이 될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자가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람과 메대가 바벨론을 공격하러 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을때 '그들의 모든 탄식이 그칠 것이다.' 교만한 압제자들에게, 특별히 바벨론 왕에게는 그것이 혹독한 묵시(2절)가 될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피할수 없는 운명을 몹시 슬퍼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바벨론 왕인것 같다(3,4절).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임산한 여인의 고통같은 고통이 내게 임하였으므로. 이 예언은 문자그대로 벨사살에게 이루어졌다. 즉 그의 성읍이 함락되고 그가 죽던날 밤에 한손이 나타나 벽에다 알수 없는 글씨를 쓰는 것을 보고 '그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듯하고 그무릎이 부딪혔다'(단 5:6). 그는 그날밤 주지육림 가운데서 수많은 신하들과 함께 마시고 흥청거리며 한창 쾌락과 환락이 무르익었을때 죽임을 당했다.
(3) 바벨론은 잔치를 베풀어 흥청거리면서도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 틀림없다(5절). "온갖 진수성찬으로 식탁을 베푸는동안 파숫꾼을 세워라. 우리가 즐기고 있는동안 그들로 망대에서 망을 보게하라. 비상신호가 떨어지면 방백들은 일어나서 방패에 기름을 바르고 적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수 있도록 준비하라."
(4) 고레스가 다리오가 쳐들어 오기때문에 바벨론에 비상경보가 울릴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에게 파숫꾼을 망대에 세우고 파숫꾼의 임무대로 '보는 것을 고하게 하라'고 지시하였다(6절). 이 파숫꾼은 여기서 두사람의 마병이 끄는 총사령관이 탄 전차를 발견하였다. 파숫꾼은 또한 바사인들이 흔히 사용하던 나귀가 끄는 전차와 메대인들이 흔히 이용하던 약대가 끄는 전차를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두종류의 전차가 함께온다는 것은 두민족이 바벨론을 치기위해 연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숫꾼이 사자같이 부르짖기를(8절). 이구절은 '파숫꾼이 사태가 매우 절박하므로 사자라고 부르짖었다'고 볼수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파숫꾼의 입에서 나온 이말의 의미를 알았다. "주여 내가 늘 망대에 섰었고 바로 조금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태평하고 조용한 것처럼 보였나이다." 그는 다시 소리지른다(9절).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5) 마침내 바벨론의 함락이 확언된다. 전차를 탄 사람은 파숫꾼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이와같이 대답한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숴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6) 바벨론 파멸에 관한 이 예언이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기위해 계획되었다는 사실이 이당시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내던 그백성들에게 알려진다(10절).
1)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이렇게 불러주었다. 나의 타작한 것이여 나의 마당의 곡식이여.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와 동포였기때문에 그들을 '나의 것'이라고 부른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이기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타작마당이고 진실한 성도들은 그마당의 곡식이다. 위선자들은 단지 겨와 지푸라기같은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타작마당의 곡식들은 고통과 박해로 타작될 것을 당연히 예상해야 한다. 그때조차 하나님은 그곡식을 자기의 타작한 것으로 여기신다.
2)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이 희망을 걸수 있는 보증을 제시한다.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대로 너희에게 고하였느니라.

Ⅱ. 두마에 관한 경고 21:11,12
두마에 관한 이 예언은 매우 짧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두마는 아라비아의 한지방이며, 그거민들은 이스라엘의 6대손인 두마의 자손들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세일산이 언급되었기때문에 두마를 에돔 사람들의 땅인 이두매로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것이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중 어느 한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환난이 예언된 것은 그환난을 준비하도록 그들을 경고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그들을 의지하지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중에 바울에게 건너와서 그들을 돕도록 청한 것처럼(행 16:9) 누군가가 '세일에서 불렀다.' 그질문은 진지하였다.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그것은 그질문을 받기에 적당한 사람 곧 '파숫꾼'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는 진지하게 묻는 사람처럼 그질문을 반복한다.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목회자들은 파숫꾼으로 임명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평화시에는 성읍에 있는 파숫꾼처럼 모두가 안전한가를 알아보아야 하고 문마다 일일이 두드리며 친히 조사해보아야 한다("문은 잠겼는가? 불은 잘 간수되었느가?"). 그리고 전시에는 진영에 있는 파숫꾼과 같다(겔 33:7). 그들은 적의 동태를 살피고 경보를 울려야 한다.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거듭거듭 물어보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의무이다. "파숫꾼이여, 지금 몇시나 되었느냐? 길고 어두운 밤이 지나고 동이 틀 기미가 보이느냐?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더러는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지자가 지난밤에 무슨 이상을 보았느냐? 우리는 그이상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도다." 혹은 "오늘밤 무슨일이 생기겠느냐? 날씨가 어떠냐? 무슨 소식이라도 있느냐?"는 뜻이다. 그 파숫꾼은 비록 자기를 부른 사람이 세일산에서 온 사람이었지만 졸지도 않았고 잠자코 있지도 않았다. 아침이 오나니. 그는 "먼저 빛과 평화와 행운의 아침이 오리라. 너희는 즐거운 날을 보다 많이 누리리라. 그러나 후에는 환난과 재난의 밤이 오리라." 그러므로 아침뒤에 올 밤을 준비하는 일에 현재의 아침을 이용해야 한다. "물으라, 돌아오라, 자세히 알아보아라, 인내하라 그리고 순종하라."

Ⅲ.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 21:13-17
아바리아는 넓은 땅으로 가나안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드단' 사람들은(13절) 그두라가 낳은 아브라함의 아들 드단의 자손들이었다. 데마와 게달의 거민들은 이스마엘의 후손이었다(창 25:3,13,15). 천막에 살면서 가축을 치는 아라비아 사람들은 노동에 익숙한 강건한 백성들이었다. 유다 백성들은 호전적인 동방 민족들사이의 방벽으로 그들을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경고해 주기위하여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를 발하신 것이다.
(1) 파괴시키는 한군대가 칼, 곧 '뺀 칼'과 '당긴 활'을 들고 또 '전쟁의 모든 어려움'을 가지고서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15절). 앗수르 왕은 원정도중에 아라비아를 불시에 습격하여 쉽게 그들을 삼켰을듯 싶다.
(2) 불쌍한 아라비아 백성들은 숨기위해 도망가지 않을수 없게될 것이다. 그래서 '드단의 대상들이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할'수밖에 없게될 것이다(13절).
(3) 침략군을 피하여 도망하는 중에 그들은 원기를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데마 땅의 거민들아(아마도 이사람들은 드단 대상들과 아주 가까운 이웃이었을듯 싶다)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그들은 너희가 동정해야할 자들이라." 그들이 칼날을 피하여...도망하였음이니라. 고난당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배우자. 데마 사람들이 멸망당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도운 사실은 여기서 데마 땅의 칭찬거리로 기억되고 있다.
(4) 게달의 모든 영광이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허다한 소떼와 양떼가 원수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다. 그들의 궁수는 적을 격퇴시키기는커녕 자신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그 남은 수가 적으리라(17절). 그들의 강건한 자들도 수가 지극히 적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적의 칼에 제일 먼저 쓰러졌기 때문이다.
(5) 이 모든 일이 삽시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즉 '품꾼의 정한 기한같이 일년내에'(정확히 계산된 일년안에) 이심판이 게달에 임할 것이다. 이렇게 그 시기가 정해진 것은 아라비아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일깨우기에 매우 유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니느웨 사람들처럼 심판이 임박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그심판을 예방할수도 있었다.
(6) 이 예언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실성에 의해서 확증된다(16절).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이말이 17절에서 다시 한번 언급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핵심
21:1-10
바벨론이 메대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기름바른 방패(21:5)
고대 근동에서 전투에 나가는 전사들은 방패에 미리 기름을 발랐다. 이는 적의 칼날이 미끄러져 비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전쟁을 하기에 앞서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사전조치 중의 하나였다.

# 묵상
묵시에 대한 이사야의 반응 ( 21:1-4 )
하나님의 묵시를 본 이사야는 그묵시가 너무 끔찍해 신체와 마음에 큰고통을 받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형편을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없이 진노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여야 하겠습니다.
바벨론을 함락시킨 군대 ( 21:7-9 )
마병대가 쌍쌍이 온다는 표현으로 보아 그들은 두민족이 섞인 군대로 보여집니다.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벨론은 메대와 바사를 병합하여 바사제국을 세운 고레스에 의해서 주전 539년경에 함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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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애굽과 구스에 대한 예표와 기적 20:1-6
본문에서 하나님은 열국의 왕으로서 애굽과 에디오피아에 혹독한 재난을 일으키신다. 그러나 성도들의 왕으로서 그가운데서도 자기 백성들에게 유익을 끼친다.
(1) 이 예언의 연대 : 이 예언은 블레셋의 견고한 성읍인 아스돗이 앗수르 군대에 포위공격당하여 탈취되던 해에 있었다. 그일이 히스기야 몇년에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때 당시 앗수르의 왕은 '사르곤'이라고 불린다. 이 원정에서 육군대장 혹은 총사령관이었던 다르단은 산헤립이 랍사게와 연합해서 히스기야를 치도록 보낸 그의 부하들중의 한사람이었다(왕하 18:17).
(2) 이사야가 특이한 복장으로 예표를 삼음 : 그는 삼베옷을 입고 다님으로써, 그의 백성들에게 이미 그들에게 왔고 또 오고있던 우울한 시대의 예표를 보였다. 이것은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위한 것이었다. 엘리야는 털옷을 입었고(왕하 1:8) 세례 요한도 털옷을 입었다. 그러나 이사야는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그것을 더좋은 의복으로 바꾸지말며 아예 아무옷도 걸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또 그는 '신을 벗고' 맨발로 다녀야했다. 이것은 이사야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멸시와 조롱을 받게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선지자의 순종을 증거해 보임으로써 백성들의 불순종을 부끄럽게 하기위해 그에게 그일을 명령하셨다. 우리가 의무를 이행하고 있을때 우리의 명예와 안전은 하나님께 맡겨두어야 한다.
(3) 이 예표의 해석(3,4절) : 이 예표는 애굽 사람들과 구스인들이 이사야처럼 벗은 몸으로 앗수르왕에게 포로로 끌려가리라는 것을 표시하기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이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자원하는 순종의 종임을 입증하였기때문에 그를 '나의 종 이사야'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이일로 인해서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이사야는 '삼년동안' 선지자로서 모습을 나타낼때는 언제든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했다'고 한다. 연이은 세번의 출정을 한 앗수르 군대에게 애굽 사람들과 구스인들이 약탈당하고 포로로 잡혀갈때 그들은 벌거벗게 되고 벗은 몸을 가리울 누더기조차 거의 걸치지 못할 것이다. 애굽 사람들은 거만한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이일은 특별히 '애굽의 수치'라고 하였다(4절).
(4) 이 예언의 용도와 적용(5,6절) : 앗수르 군대에게 침략당할 위험이 있는 나라들은 구스왕 디르하가가 앗수르 군대의 진행을 중단시키고 자기들의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정치와 용맹함으로 유명한 나라인 애굽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아스돗의 포위를 풀고 그를 퇴각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앗수르 왕에게 대항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자기 나라를 그들에게 먹이로 내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애굽과 구스가 타오르는 불길을 막는 질려와 형극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보다 더욱 앗수르 왕의 점점더 커지는 강성함을 두려워하였다. 특별히 유다 백성들은 그처럼 상한 갈대를 의지한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확실히 알게될 것이다(6절). 즉 '이 해변 거민이'(유다 땅에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지만 바다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각기 눈을 크게 뜨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믿던 나라...이같이 되었은즉. "우리가 애굽 사람들과 구스인들에게로 도망갔고 그들로 말미암아 앗수르 왕에게서 구원받을줄로 믿었으나 그들이 망했으니, 그들처럼 군대를 동원할수 없는 우리가 어떻게 피할수 있겠느뇨?"

# 핵심
20:1-6
이사야의 행동을 통해 애굽과 구스의 포로생활을 예고한다. 3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한 이사야의 행동은 앗수르 왕에 의해 끌려가는 애굽과 구스의 수치를 나타낸다.

# 묵상
애굽과 구스에 대한 주의 계시 ( 20:1-3 )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발에서 신을 벗고 돌아다니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애굽과 구스에 대한 예표입니다. 즉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때에 모두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왕 사르곤 ( 20:1 )
주전 722-705년경에 앗시리아 제국을 지배했던 왕으로서 살만에셀 5세의 후계자인 디글랏빌레셀 3세의 아들이며 산헤립의 아버지입니다. 사르곤 2세는 살만에셀 5세가 주전 722년 죽을때까지 3년 간 포위공격했었던 사마리아를 함락하고(왕하17:5, 6) 27,900명의 이스라엘인을 메소포타미아로 추방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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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애굽의 몰락 19:1-17
애굽땅은 옛부터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박의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중 믿음이 없는 자들은 자기 나라가 극도의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때 애굽을 의지하여 도움을 구했고(30:2) 하나님의 명백한 명령을 어기고 애굽으로 도망하였다(렘43:7). 랍사게는 이문제로 히스기야를 조롱하였었다(36:6). 그들은 계속해서 애굽과 동맹을 맺고 있는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이 자기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해악을 막기위해 애굽은 굴욕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 애굽의 신들은 그들을 돕기에 전적으로 무능력하다는 것이 나타날 것이다(1절).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재판관이 정장을 하고서 범죄자를 정죄하러 가듯이 하나님이 판결서를 들고 애굽에 임하시리라." 애굽에 관한 이경고에는 어떤 다른나라가 그들을 침략한다는 말이 전혀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가서 그들을 치시며, 그들을 파멸시킬만한 원인들이 그들가운데서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그가 오실때는 '애굽의 우상들이 떨것이다.' 애굽의 우상인 아이시스(Isis), 오시리스(Osiris), 아피스(Apis)와 기타 다른 신들이 그들의 숭배자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 그숭배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그들과의 관계가 끊어질 것이다. 애굽 사람들이 어찌할바를 모를때 '우상들에게 묻고 마술사와 요술객에게 물을 것이다'(3절). 그러나 그 모든 수고가 헛될 것이다.
(2) 용맹으로 명성을 날렸던 애굽의 군대가 낙담하게될 것이다. 한때 용맹때문에 찬사를 받던 애굽의 영웅들이 겁쟁이로 소문이 날것이다. '애굽인의 마음이' 불앞에 밀납처럼 '그속에서 녹을 것이다'(1절). 애굽인의 정신이 쇠약할 것이요(3절). 그들은 '부녀와 같이 될것이다'(16절). 즉 그들은 겁을 먹어 아주 작은 소리에도 당황할 것이다.
(3) 애굽 사람들은 자기들끼리의 싸움에 휘말릴 것이다. 그들을 멸망시키기위해 외국 군대가 그들에게 올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칠것이다(2절). 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게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것이며. 애굽은 이때 열두 지방 혹은 열두 왕조로 나뉘었다. 그러나 그 열두 지방의 한통치자인 프사메티쿠스(Psammetichus)가 그들을 서로 이간시켜서 마침내는 자신이 모든 지방의 군주가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 분열하는 나라는 곧 황폐해지고 말것이다.
(4) 그들의 책략은 어리석은 것이 될것이다. 하나님이 애굽을 치실때 '그도모를 파하실' 것이다(3절). 그들은 서로를 바보취급하며 각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그들은 모두 '우둔하게' 될것이다(11절). 애굽의 귀족들은 일만년이상을 전해내려온 전설적인 기록문서들을 보이면서 그들의 유구한 역사를 한껏 자랑하였다. 헤로도투스(Herodotus)가 보여주는대로 이러한 기분은 당시의 애굽 사람들가운데 아주 만연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애굽이 다른 어느민족보다도 수천년이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있느냐? 그들로 모든 재주를 다 동원하여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아내고 그것에 따라 빈틈없이 태세를 갖추게 하라. 그러나 그들은 이일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자신이 사실상 애굽의 파멸을 꾀하고 있으며 그일을 재촉하고 있도다(13절)."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을뿐만 아니라 '애굽으로 그릇가게' 하였다. 백성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이 자진해서 그들의 파멸을 돕고있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14절).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가게...하였으니.
(5) 통치의 홀이 폭정과 압제의 뱀이 될것이다(4절). 즉 "내가 애굽인을 외국인에게가 아니라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리라.' 세습권에 의해 난폭한 왕이 계승받아 그들을 가혹하게 다스릴 것이라."
(6) 애굽은 나일강으로 유명하였다. 그강은 애굽의 부였고 힘이었는데 여기서는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그강이 '잦아서 바르겠다'고 경고받는다(5절). 애굽땅의 비옥함은 순전히 나일강의 범람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그강이 마른다면 애굽의 비옥한 땅은 이내 불모지가 되어 더이상 추수를 할수 없게될 것이다. 나일강 가까운 곡식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7절). 나일 가까운 곳 나일언덕의 초장이 마른다면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곡식이야 더 말할나위가 있겠는가. 애굽의 강들은 방어구실을 하는 시내(한글개역에는 '애굽의 시냇물'로 되어있음-역주)이기때문에 강이 마른다는 것은 곧 요새가 파괴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강들은 '발바닥으로 큰하수를 밟아 말린'(37:25) 산헤립과 같은 원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때때로 '샘으로 마른땅이 되게하시는'(시 107:33)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줄어들고 마를' 것이다. 강들이 마르므로 물고기가 죽을 것이다(시 105:29). 따라서 그 물로든지 낚시로든지 고기잡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들도 망하게될 것이다(8절). 그들은 더이상 장사를 할수 없게 되어서 '탄식하며 슬퍼할'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웅덩이와 못을 만든 자들(한글개역에는 '품꾼들'로 되어있음-역주)은 '마음에 근심할' 것이다(10절). 그들의 사업은 못에 채울 물이 없어서 망할 것이다. 애굽의 왕들과 고관대작들이 공익보다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더 생각하여 큰강 물줄기를 자기들 집으로 끌어들여 물을 다 써버릴 것이다. 헤로도투스의 말에 의하면 바로느고(Pharaoh-Necho)는 닐루스에서 홍해로 자유롭게 왕래하는 수로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그 운하를 만들기위해 무수한 사람들을 고용했는데, 그러는 가운데 강을 못쓰게 만들고 사람들도 십이만명이나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일은 완성되지 못한채로 남아있다고 한다.
(7) 애굽은 세마포 제조로 유명했었으나 그 장사도 망할 것이다. 솔로몬의 상고들은 세마포실을 얻기위해 애굽과 무역하였다(왕상 10:28). 애굽은 가장 좋은 세마포를 생산해내고 그것을 만드는 훌륭한 일꾼들을 키워냈다. 세마포를 만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9절). 애굽의 무역은 반드시 망하고 말것인데, 그이유는 '애굽에서 아무 할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15절). 아무 할일이 없는곳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나 아무 할일이 없으리라. 귀한 자이든 천한 자이든, 약한 자이든 강한 자이든 간에 할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8) 애굽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당황할 것이다. 그들이 '떨며 두려워할' 것인데(16절), 이것이 쇠퇴와 파멸의 증거이다. 그들이 산헤립의 군대가 유다를 황폐시켰다는 소식을 들을때, 틀림없이 다음번에는 그들이 그 승리군의 밥이 될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17절).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을 인하여'(16절)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모략을 인하여'(17절) 두려워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손을 흔드시는 것을 보고, 그가 유다뿐 아니라 애굽도 치시려고 뜻을 정하셨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면 그것이 어디에서 끝이 나겠는가를 생각할때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Ⅱ. 애굽의 개종 19:18-25
찌푸린 예언의 구름속에서 이제 갑자기 태양이 나타난다. 그것은 의의 태양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애굽에 대해 자비를 준비해두고 계시는데, 그는 그들가운데 참된 종교를 보내심으로써 즉 참되신 한분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그들을 부르심으로써 그 자비를 보여주실 것이다. 추측에 따르면 복음서 기자인 마가의 전도로 애굽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서게되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많은 예언들은 메시야 시대를 시사한다. 그렇다면 본문은 어떠한가? 구약제도의 용어로 복음의 은혜와 규례를 말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본문의 예언중에 '그날에'라는 말은 아마도 반드시 바로앞에 나오는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여명이 이 어두운 세상을 찾아오는 그때를 가리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예언은 산헤립이 자기땅을 침략했을때 도망하여 애굽으로 피신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신앙도 가지고 갔을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볼수도 있다.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에서 법외 방치자로 살았던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의 아들 오니아스가 톨레미 필로미터(Ptolemy Philometer)와 그의 왕비 클레오파트라(Cleopatra)에게서 애굽의 부바스티스(Bubastis)에다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그때에 '애굽땅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을' 것이라는 본문의 예언을 가지고서 그일을 하기위한 이유를 꾸며댔다고 한다. 애굽인들의 개종이 묘사되어 있다.
(1) 그들이 '가나안 방언' 곧 거룩한 말, 성경의 말을 말할 것이다. 그들이 그말을 알아들을뿐만 아니라 사용하기도 할것이다(18절). '애굽에 있는 다섯 성읍이' 이말을 사용할 것이다. 많은 유다 백성들이 애굽에 거하게 되어 다섯 성읍을 채울 것이다. 그 성읍중의 하나가 태양이 숭배되던 곳으로서 애굽의 모든 성읍들중 우상숭배로 가장 이름이 높았던 일하헤레스(한글개역에는 '장망성'으로 되어있음-역주)라는 성읍이다. 심지어 그곳에서조차 놀라운 개혁이 일어날 것이다.
(2)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다. 즉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할뿐만 아니라 그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예배에 헌신할 것을 엄숙히 맹세할 것이다.
(3) 그들은 자기 땅에 하나님께 대한 공식적인 예배를 제정할 것이다(19절). '애굽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그들이 '제물과 예물을 드릴' 제단이다(21절). 이말은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외에 다른 어떤 제단도 세워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민족간의 모든 차별이 사라졌다. 이 영적제단 곧 애굽에 있는 이 복음교회는 이스라엘에 있는 제단만큼이나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다.
(4) 애굽땅 전체에 신앙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애굽땅 중앙에서 뿐만아니라 '변경'에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즉 그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새겨진 '기둥'이 세워질 것이다. 애굽 땅에서조차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를 예배하는 자들 곧 그의 이름을 자기의 튼튼한 망대로 삼은 자들을 가지실 것이다.
(5) 고난에 처할때 그들은 하나님을 찾을 것이고 또 그를 만날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로 오는 모든 육체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만군의 여호와를 위한 표적과 증거가 될' 것이다(20,22절).
(6) 그들은 위대하신 구속주와 관계를 맺을 것이다. 회개하는 애굽 사람들은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은총을 얻은 것과 똑같이 은총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베풀어주신 이구원은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것과 더불어 복음의 구원을 예표하는 상징이었다.
(7)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들가운데 널리 퍼질 것이다(21절). 아마 이말은 애굽땅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이 처음 만들어진 사실과 관련이 있을듯 싶다. 이들(헬라어를 애굽에 전한 헬라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호와가 애굽에 알려졌던 것이다.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8) 그들이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게될 것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께 연합하므로 교회에 가입하게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가지 불화가 소멸될 것이다. 애굽과 앗수르사이에는 도저히 깨뜨릴수 없는 반목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애굽과 앗수르사이에 대로가 있을 것이다'(23절). 그들이 서로 무역을 할것이고 그들사이의 모든 일이 우호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똑같이 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자들은 동일한 은혜의 보좌앞에서 만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자들이므로, 모든 격정과 원한을 그치고 거룩한 사랑가운데서 마음으로 서로 연합해야 한다. 이방 민족들은 대목자장이신 그리스도의 감독아래 복음의 양우리 안에서 서로 연합하게될 것이다. 애굽과 앗수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협동자가 될때 이스라엘은 그들과 연합하여 셋이 될것이다(24절). 그들은 삼겹줄이 되어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연합하므로 그들은 '세계중에 복이' 될것이며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는 자들이' 될것이다(24,25절). 그들은 모두가 세상에 복을 주는 자들이 될것이다. 비록 애굽이 전에는 속박의 집이었고 앗수르는 불의한 침략자이었을지라도 이제는 그모든 사실이 용서함받고 잊혀져서 그들이 이스라엘만큼이나 하나님께 환영받을 것이다. 그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는 그의 백성들과 똑같다.

# 핵심
19:1-17
애굽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다.
장망성(19:18)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르 하헤레스’는 ‘멸망의 성’이란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기로 맹세하는 성읍의 이름이 ‘멸망의 성’으로 불리는 것은 애굽의 회심을 언급하는 문맥과 어울리지 않기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멸망’을 오기(誤記)로 보고 ‘태양’으로 해석한다. ‘멸망’과 ‘태양’을 가리키는 두 히브리어 명사가 거의 같기때문에 생긴 오류일 것이다. 탈굼역이나 벌게이트역도 이견해를 지지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본절은 태양을 숭배하는 성읍이 변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것을 뜻한다.

# 묵상
달과 같이 시드는 강들 ( 19:6 )
여기서 ‘달’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 원어로 ‘갈대와 골풀’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강물이 마르고 갈대가 시든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으로인해 바다처럼 넘쳐흐르던 나일강이 메마르게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는 하늘이 떠나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습니다(벧후3:10). 심판의 날을 준비하며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성도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퉁이돌의 역할 ( 19:13 )
건물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서, 모퉁이를 귀히 여기는 습관에 따라 심지어 어떤 히브리인들은 사람을 제물삼아 그밑에 두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나라의 주권자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모퉁이돌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건축자의 버린돌이셨으나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요긴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시118:22; 마21:44; 막12:10;행4:11; 엡2:30; 벧전2:5-7).
장망성 ( 19:18 )
이곳은 태양의 도시나 주전 2세기에 성립된 텔엘 예후디예의 유대인의 정착지로 간주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정의의 도시’라고 보아야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애굽에 위치해 있으면서 여호와께 대한 신앙때문에 억압을 당하던 유대 도시를 가리키는 이말은 사단의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함께 경배하게될 애굽과 앗수르 사람 ( 19:23 )
애굽과 앗수르의 적대관계는 오랜것이었지만, 이제 큰길이 열려 서로 교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적대감이 사라지고 화평하게 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들은 서로 왕래할뿐만 아니라 두나라가 함께 한 하나님을 경배하게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국제 평화를 이루게 할수 있는 유일한 기초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예배뿐입니다.
세계중에 복이 되는 이스라엘, 애굽, 앗수르 ( 19:24, 25 )
이는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이방 백성들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애굽과 앗수르도 영원하신 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과 공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60:21; 호2:25). 또한 이스라엘과 이들 나라와의 오랜 적대관계는 함께 하나님께로 나아감으로써 종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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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위한 변론 18:1-7
주석가들 중에는 '구스강 건너편'에 있는 이 땅이 어디인가 찾으려고 어쩔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어떤 사람들은 그곳이 애굽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견해는 다음장이 '애굽에 관한 경고'라는 제목으로 특징지워졌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또 어떤사람들은 그곳이 디르하가가 왕으로 있던 에디오피아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르하가는 앗수르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있을때 그에게 강력한 견제를 가함으로써 유다 백성들을 그의 날개 그늘아래 보호하려고 생각하였다(왕하19:9). 그러나 비록 그가 사절들을 보내어 앗수르왕에게 반항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다른 방책을 써서 예루살렘을 보호하려고 하셨다. 라이트푸트 박사의 "구약의 조화"라는 저서의 내용으로 미루어볼때, 본장은 앗수르에 대한 예언이며 전장의 마지막 세절에 계속 이어지는 내용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할듯 싶다. 전장은 유다를 쳐들어간 앗수르 군대에 대한 것이었고 본장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건너편에 있는 앗수르땅 자체에 대한 것이다.
(1) 이나라(어떤나라이든지간에)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에 대하여 경고한다(2절). 이것이 앗수르와 전쟁을 벌이는 에디오피아를 가리키든지 유다와 전쟁을 벌이는 앗수르를 가리키든지간에, 그내용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친다. 즉 시초부터 두려운 존재이며 강한 지배력을 타고난 백성일지라도 그백성이 나누일수 있고, 농사꾼과 상인을 부유하게 만들 그들의 강에 의해서조차 망쳐질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그나라가 이제는 나누이고 밟혀서 우리에게 쉽게 먹히리라."
(2) 비상 신호가 주변의 나라들에게 전파되었다. 그신호는 하나님이 이제 막 하려고 하시는 일을 주의하여 보도록 그소리에 의해서 경고하는 것이다(3절). 그는 '산들위에 기호'를 세우시며 '나팔을 부신다.' 하나님은 이렇게하시어 그의 교회의 원수들에게 선전포고를 하시며 교회의 모든 지지자들을 불러 들이신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로서 이제 어떤 위대한 일을 막 행하려고 하시는 중이다.
(3)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보증의 말씀을 하시고 그를 통해서 그말씀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하신다. 즉 비록 하나님께서 한동안은 구경꾼처럼 무관심하게 앉아계시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그는 틀림없이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 그와 그백성의 원수들을 당황하게 하기위해 나타나실 것이다(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그는 자기 '처소'를 주목하실 것이다. 시온은 그가 영원히 거하시는 곳이다. 따라서 그는 "그곳을 돌보실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비온뒤의 일광'(어떤 역본에는 이렇게 되어있다)같고 사람들이 매우 반기는 '가을더위에' 이슬과 '운무'같다. 즉 땅에 내리는 이슬같고 일꾼들을 가리워주는 구름같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겨울궁과 여름궁을 갖고있다(암3:15). 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편히 지내는 자들은 하나님안에 그들의 겨울궁과 여름궁이 있다. 그는 자기 원수이며 또한 그백성의 원수인 자들을 처벌하실 것이다(5,6절).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하여 풍부한 약탈물을 탈취할 것이라고 장담할때 하나님은 농부가 낫으로 포도나무 가지를 자르거나 '그 연한가지를 베며 찍어버리듯이' 쉽게 그군대를 쳐부술 것이다. 이말은 잘게 잘려진 들포도나무 가지처럼 널려져있는 군인들의 시체를 가리키는듯 싶다. 그들은 '땅의 독수리들에게' 먹이로 내던져질 것이다. '그때에' 즉 이일이 이루어질때에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이 드려질 것이다. '나누이고 밟힌 백성'들이(2절)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질 것이다. 비록 그들이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외모의 화려함과 번영을 따라 사람을 판단치 않으시고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을 따라 판단하시는 자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구스인'(에디오피아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손을 신속히 들것이다'(시68:31)라고 예언되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예물을 산헤립 군대의 전리품으로 보는데, 그중에서 얼마가 '만군의 여호와'께 예물로 드려졌었다.

# 핵심
18:1-7
앗수르에 의해 위협을 받고있던 구스에 대한 예언. 하나님이 앗수르를 심판하실 것이므로 구스는 더이상 앗수르로인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갈대 배(18:2)
파피루스 갈대로 만든 배. 나일강의 지류들에는 작은 폭포들이 있었고, 이로인해 물의 흐름이 급격히 변화되는 유역들이 있었다. 갈대 배는 충격을 잘견디며 신속하게 나아갈수 있었으므로, 나일강 유역을 오가는 수송수단으로서 적합했다. 나일강 삼각주에서 자생하는 갈대는 높이 2-3m의 원주형이며, 물을 흡수하는 견고한 섬유질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줄기를 엮어 작은 배를 만드는데 활용되었다. 욥 9:26절의 “빠른 배”도 갈대 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묵상
날개치는 소리 ( 18:1 )
이말을 군대가 전진해오면서 나는 소리로 이해한다면, 이는 재난이 임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번역대로 ‘날벌레가 우글거리는 소리’로 본다면 이는 곤충이 많은 남방지역 군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산들위에 세우는 기호 ( 18:3 )
기호는 전투 소집명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강림과 종말의 날의 시작을 알립니다.
일광과 운무같은 하나님의 감찰 ( 18:4 )
여호와께서 작열하는 열기와 지중해에서 발생하여 동쪽으로 이동하는 이슬구름을 높은 곳에서 담담하게 바라보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종말의 날을 하나님만이 아시므로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괘념치않으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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