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위에서 진리를 굳게 붙들라

[디도서 3장 9절~15절]
9절 -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절 -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절 -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12절 -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13절 -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14절 -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15절 -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무익하고 헛된 것이니 피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 멀리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아데마나 두기고를 보낼테니 니고볼리로 와서 함께 겨울을 지내자며, 사람들의 인사를 전합니다.

● 은혜 위에서 진리를 굳게 붙들라
많은 사상과 이론이 난무할수록 진리에 기초한 은혜 공동체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익하고 헛된 거짓 가르침(9절)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에 집중하라고 권합니다. 특히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타일러도 듣지 않으면 아예 멀리하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역자의 필요를 채워 주고 성도끼리 서로 문안하라고 당부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원칙 없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어설프게 어울리면 정체성과 영향력을 상실합니다. 그러나 은혜 위에서 진리를 굳게 붙들면 세상을 이기고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이단에 대해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나요?
* 적용 질문
이단이 난무하는 시대에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 더 준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령 안에서 선한 일에 집중하라

[디도서 3장 1절~8절]
1절 -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절 -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절 -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절 -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절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절 -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절 -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절 -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였던 우리를, 우리의 의로운 행위가 아닌 그분의 긍휼하심을 따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굳세게 말해서,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에 힘쓰게 하라고 디도에게 권면합니다.

1. 다른 사람과의 관계 (1~2절)
믿음은 관념이나 신비의 영역에 머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지도자에게는 순종하며 공공의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상대방 편에서 이해하고 용납해 관용과 온유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는 불의와 타협하고 무분별하게 따르라는 뜻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합당한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할 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성도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다른 사람과 화평의 관계를 맺기 위해 내게 제일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요?

2. 자신과의 관계 (3~5절)
내면의 근본적인 거듭남과 돌이킴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구별된 삶이 가능합니다. 의무감과 도덕심, 강한 의지와 법을 동원하더라도, 마음의 혁신이 없으면 온전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거듭남과 성령으로 마음 중심이 변화되어야 죄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충만히 체험할 때, 이기심과 정욕의 지배를 받던 가증한 삶을 청산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거듭나기 전에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이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아 새롭게 된 내 삶의 증표는 무엇인가요?

3. 하나님과의 관계 (6~8절)
하나님이 부으시는 지속적인 성령 충만이 없으면 부패한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되면 거룩한 부흥이 임합니다. 성도는 진리를 굳세게 말해야 하고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이끌어 바른 관계를 맺게하고 유익을 끼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에 구속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 세상 논리와 방법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만 구하십시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신 결과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선한 일에 힘쓰도록 도와야 할 지체는 누구며, 그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죄악으로 물든 저를 주님의 무한한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날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제 마음과 행실을 씻어 주셔서 온유하고 선한 성품을 갖추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근본적인 변화는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디도서 2장 9절~15절]
9절 -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절 -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11절 -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절 -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절 -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절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절 -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종은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살며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주심은 우리를 속량해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1. 종의 대하여 (9~10절)
억지로 굴종하기보다 자발적으로 순종할 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의 종은 소유물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악하고 비복음적인 노예 제도 아래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매사에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행동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선한 인격과 품행은 불의하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구조적인 악을 넘어서게 합니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으로서 상전에게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나요?
* 적용 질문
내 생각과 다르지만 윗사람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선한 삶에 대하여 (11~14절)
바른 말씀과 교리에 기초하지 않으면 바른 생활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우리는 삶의 목적을 깨닫고 세상 정욕이 아닌 '선한 일'에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동기와 노력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와 경건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 우리는 예수님 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은혜 안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14절에 따르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열심을 내야 할 선한 일 중에서 오늘 실천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3.권위에 대하여 (15절)
권위주의는 없애야 하지만, 권위는 지켜져야 합니다. 합당한 권위가 부정되는 공동체는 심각한 혼란과 무질서에 직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레데 교회의 사역자 디도에게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명확하게 권면하고, 성도의 잘못된 태도와 습관에 대해서는 주저 말고 책망하라고 말합니다. 영적 지도자는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을 내세우기보다 사고와 행동의 최종 기준과 권위가 되는 하나님 말씀을 제시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진정한 권위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 적용 질문
권면과 책망이 필요한 지체는 누구며,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권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의 불의를 보아도 뒤로 물러나 불평만 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정욕에 사로잡혀 하나님 말씀을 불편해하며 거부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거룩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어, 하나님 말씀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바른 교훈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디도서 2장 1절~8절]
1절 -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2절 -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3절 -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절 -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절 -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6절 -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절 -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절 -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고 디도에게 당부합니다. 늙은 남자에게는 절제와 경건을, 늙은 여자에게는 행실의 거룩함을, 젊은 여자에게는 남편과 자녀 사랑을, 젊은 남자에게는 신중함을 권면하며, 범사에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디도에게 권면합니다.

1. 늙은 남녀에 대하여 (1~3절)
나이가 들었다고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혁신해서 아집과 독선에 빠지지 말고 신앙이 정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이 많은 남성은 절제와 경건, 신중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남의 의견을 겸손하게 경청하며, 온전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바탕으로 매사에 성숙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여성은 거룩한 몸가짐이 필수적입니다. 쓸데없이 남을 험담하거나 추문을 퍼뜨리지 말고, '술의 종'이 아닌 진리의 종으로서 선한 것을 가르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입니다(잠 16:31). 겉사람은 늙어 가도 속사람이 아름답게 변하면 향기로운 인생이 됩니다.

* 묵상 질문

나이 많은 남녀는 각각 무엇에 힘쓰고 주의해야 하며, 왜 그래야 할까요?

* 적용 질문

나이가 들수록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는지 돌아볼 때,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젊은 남녀에 대하여 (4~8절)

교회는 아무리 바쁘고 여유가 없어도 젊은 세대의 신앙 교육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은 밝은 미래를 위한 지혜로운 준비입니다. 그럴 때 공동체의 지속적인 도약과 발전이 가능합니다. 젊은 여성은 남편과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경박하거나 옹졸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서 분별력과 순수함을 겸비해야 합니다. 젊은 남성은 혈기나 성적 충동, 야망이나 탐욕을 철저히 통제하고, 충실하게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특히 디도 자신이 삶과 가르침으로 본을 보이며 젊은 성도들의 역할 모델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젊은 세대가 하나님이 쓰시는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교회와 사회의 변화와 개혁이 가능합니다.

* 묵상 질문

젊은 남녀가 유혹과 시험 앞에서 넘어지기 쉬운 특히 연약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본능적인 충동, 배우자와 자녀를 무시하는 마음, 집안일을 할 때 느끼는 짜증 등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인생이 어느 시기에 있든지 하나님의 바른 교훈에 합당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가르침으로 때마다 인도해 주셔서, 날마다 경건하고 신중한 삶을 통해 공동체에 아름다운 본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복음을 삶으로 소화해야 신앙이 건강합니다

[디도서 1장 10절~16절]
10절 -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11절 -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
12절 -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3절 -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14절 -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절 -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절 -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할례파 중에 불순종하며 헛된 말로 속이는 자가 많은데, 이들은 더러운 이득을 위해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시인해도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바울은 그들을 엄히 꾸짖어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1. 거짓 교사들의 폐해 (10~14절)
교회가 강조할 것 중에서 복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레데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있었는데, 특히 할례파는 복음보다 할례와 율법의 규례들을 더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할례자의 영적 수준이 훨씬 높다고 선전하며, 모두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헛된 말'을 퍼뜨렸습니다. 여기에 현혹된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떠나 인간적인 생각과 규정을 따르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거짓 교사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지시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바로 세워,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만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지 않고 진리의 복음만을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 묵상 질문
복음을 받은 그레데 교회가 할례파의 말에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교훈을 분별하고 그것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깨끗한 사람과 더러운 사람 (15~16절)
의식적이고 외적인 정결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이고 내적인 정결입니다. 이것이 구원과 연결되는 본질입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행위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때,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깨끗하게 됩니다. 이런 깨끗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는,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시인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위선적으로 행동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건강한 신앙에는 경건의 모양 뿐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수반됩니다.
* 묵상 질문
본문에서 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했을까요?
* 적용 질문
입술의 고백과 삶의 모습이 일치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다양한 모습으로 은밀하게 다가오는 거짓 메시지에 흔들리지 않는 분별력을 갖게 하소서. 흠 없는 말씀으로 제 마음과 양심을 정결하게 하셔서, 경건의 능력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

[디도서 1장 1절~9절]
1절 -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절 -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절 -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절 -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절 -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절 -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절 -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절 -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절 -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목적이 무엇을 위함이라고 밝히나요?(1~2절)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해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 ‘영생의 소망’을 위해 자신이 사도로 부름받았다고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자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으며 그들의 믿음을 근거로 구원을 이루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즉 구원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로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그들을 불러 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합당한 믿음을 갖게 하셨음을 밝히려고 바울은 사도가 된 것입니다. 둘째,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진리를 아는 지식을 전하기 위해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지식이 ‘경건’에 속한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진리를 아는 지식과 경건한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영생의 소망’은 그리스도인이 도달할 최종 종착지인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목적이 영생에 대한 소망 때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내가 현재 맡은 사역은 무엇인가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나요?
바울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사도로 부름받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을 대적하던 자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고 그것을 빌미로 성도들과 바울의 관계를 이간시켜 교회를 혼돈케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울에게만 있었던 특별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복음을 땅끝까지 전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가치관과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으며, 악한 세력이 우리의 권위에 도전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도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 분명하지 않다면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역을 하든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해 감당해야 합니다. 사역의 단기적인 목적이나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앙을 심어 주고,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도록 하나님 말씀으로 진리를 가르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2.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도록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설명하나요?(5절)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도록 한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디도는 그레데에서 함께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다시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디도는 그레데에 머물게 합니다. 디도에게 남은 사역을 마무리하고 그레데의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과 디도는 그레데에서 함께 복음을 전하긴 했지만 교회를 조직할 시간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로를 세워 교회를 치리하게 하는 것은 바울의 평소 관행이기도 했습니다(참조, 행 14:23). 당시 그레데 교회에는 다른 지역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 특히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기독교 복음의 교리와 교회 질서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의 교리를 지키고 교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를 치리할 일꾼인 장로들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성도들을 이 땅에 남겨두신 이유와도 유사합니다. 주님은 성도가 이 땅에서 주의 일을 완성하기 원하십니다. 성도는 주님이 완성하신 구속 사역을 전파하고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증언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위해 성도는 하나님의 일꾼들을 발굴하고 훈련하고 세워 가야 합니다. 바울이 디도와 디모데를 세웠듯이, 디도가 그레데의 각 성에 장로들을 세웠듯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사역할 사람을 세워 가는 것은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이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입니다.

*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레데’는 어디인가요?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세워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선교의 대위임령을 말씀하시고 땅끝까지 가서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8~20; 행 1:8).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이 남기신 일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를 맡긴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도 주님이 맡기신 ‘그레데’가 있습니다. 이 그레데는 교회일 수도 있고 학교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일 수도 있고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곳입니다.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감당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로 이끄시든 그곳이 바로 우리의 자리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과 미혹의 영들로 혼돈케 된 무질서를 바로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할 때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확립되고 그 나라의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을 위해서는 함께 기도하고 사역할 수 있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제자를 삼고 그를 동역자로 세워 가야 합니다. 디도가 그레데에서 장로들을 세운 것같이 우리도 각자의 그레데에서 믿음의 일꾼들을 세워야 합니다. 이는 주님이 부탁하신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감당해야 할 필수적인 사역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본문에서 ‘장로’(5절)로 번역된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스’는 나이가 많다는 의미의 형용사 ‘프레스뷔스’의 비교급으로서 원래 ‘연장자’, ‘원로’, ‘노인’(행 2:17), ‘선진(또는 조상)’(히 11:2)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가 확대되어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원 혹은 도시에서 공적 업무를 처리하고 재판을 집행하는 자(눅 7:3), 교회나 집회를 관장하는 자(행 11:30; 딤전 5:17; 요이 1; 요삼 1; 벧전 5:1, 5)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장로는 오늘날 교회 장로의 개념보다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당시에도 목사를 지칭하는 ‘포이멘’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었으나(엡 4:11) ‘프레스뷔테로스’ 혹은 7절에서 언급되는 ‘감독’이란 단어가 더 많이 쓰였습니다. ‘장로’가 구약시대 한 성읍의 지도자를 지칭하는 말로 유대적인 배경에서 나온 단어라면, ‘감독’은 헬라 도시의 행정 책임자를 지칭하는 말로서 헬라적인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또한 ‘장로’라는 단어가 ‘연장자’라는 측면에 중점을 둔 단어라면, ‘감독’은 목회 사역 측면에 중점을 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데는 영적 도전과 위협이 따릅니다. 사도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 흐려진다면 사역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완성하도록 이 땅에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사도성을 확신하고, 뚜렷한 사명과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그레데를 맡겼듯이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인 그레데가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명을 감당하려면 함께 기도하고 섬길 동역자를 세워 가야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주님이 부탁하신 매우 중요한 사역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다는 소명 의식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영적 공격과 어려움이 있을 때, 제가 감당해야 할 사역의 목적을 기억하게 하소서.
- 제게 ‘그레데’로 주어진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동역할 사람들을 붙여 주시고, 그들을 잘 훈련하며 세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Ⅰ. 그리스도인의 공동 의무 (3:1-8절)

바울은 디도에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의무에 관해 지시했었다. 이제 그는 디도에게 그들의 공동 의무에 관해 지시할 것을 명한다. 사역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기억나게 해 주는 사람들이다. 의무를 망각하게 되면 대개 유혹에 넘어지기가 쉽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일깨워 주며 기억나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1. 성도들의 의무(1,2절)

 1)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1절), 여기서 '권세 잡은 자들'이란 곧 사회의 모든 지배자들을 말한다. 성도들은 합법적이며 정당한 것 안에서 그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해야 한다. 기독교는 마치 왕들과 세상 권력자들의 권리에 편견을 가지고 선동과 파당을 일으켜 합법적인 권세에 대항하는 것처럼 대적자들에 의해 잘못 전해져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다스리는 정부에 대해 마땅히 복종하고 순종함으로 스스로 본을 보여야 할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이것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든 우리 자신들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우리 이웃에 관한 것이든 상관 없이, 어떤 기회건, 어떤 종류의 선이건 주어지는 대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선한 일 없이 단지 해롭지 않다거나 혹은 선한 말, 선한 의도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선을 행할 기회를 얻으려 하지만 말고 찾으라. 이것을 온 마음에 지녀라."

 3)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2절), 만일 유익한 말을 한 마디도 할 수 없거든 불필요하게 악담하느니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데서 즐거움을 취하려 한다든가 어떤 일을 악화시켜서는 안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좋은 결과를 낳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여기저기를 드나들며 불쾌한 이야기를 퍼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악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는 것인만큼 큰 해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할 죄이다. 그 이유는 이 죄에 한번 빠져들게 되면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나 하늘에서의 복된 공동체에 합당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멀리할 것을 기억하게 하라."

 4) 다투지 말며(2절), 이는 손으로든 말로든 "싸우지 말며"라는 뜻이다. 다툼과 분쟁은 인간의 정욕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으로 그것에 빠져서는 안되며 마땅히 억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이것에 대해서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5) 관용하며(2절), 이는 곧 "온순하고 공정하며 올바르고"라는 의미이다. 즉 나쁜 의미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또한 때때로 화평을 위해서 다소 엄격한 의를 누그러뜨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6)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2절). 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온유함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우리의 말과 행위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범사에 온유함을'이라는 말은 모든 기회, 모든 경우에 있어서 단지 벗들을 향해서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온유한 마음과 태도는 온화한 신앙을 가져다 준다. 온유함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므로 그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이다.


2. 성도들이 의무를 행하여야 할 이유(3-8절)

 1) 성도들의 이전 상태 : '우리도 전에는'으로 시작하는 3절 이하의 말씀이 그 이유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1) 어리석은 자요, 이는 참된 영적 이해가 없는 것, 하늘나라의 일에 대해 무지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많은 어리석음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들을 최대한으로 용납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순종치 아니한 자요, 이는 완고하고 굽힐 줄 모르며 말씀을 거역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리석음과 불순종은 함께 붙어 다니는 것이라고 하겠다. 자연적인 것이든 계시된 것이든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3) 속은 자요, 이는 곧 방황하는 자를 뜻하는 것으로 진리와 거룩함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타락한 상태 가운데 있는 인간은 본성을 잃어버린 자이다. 인간은 약하다. 따라서 사탄의 궤계에 의해서 넘어지기 쉽다. 사단은 인간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항시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4)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육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락을 즐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말씀은 그것을 예속이나 노예 상태의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많은 주인을 섬겨야 하는 것이 죄의 종들의 비참한 상황이다. 하나의 정욕은 그들을 한 길로 몰아 그렇게 한다. 그들을 유혹하는 정욕은 그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나 그 유혹에 복종하는 가운데서 그들은 타락의 종들이 되고 만다.  

   (5) 악독으로 지낸 자요, 악독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려 하는 자이며 또 그것을 기뻐하는 자이다. 그렇게 시기와 불평하는 것에서부터 빈정댐이 나오며 많은 악이 그곳에서부터 생겨나게 된다. 이것들은 우리가 우리의 자연 상태 가운데서 살았을 때 지었던 죄들이라고 하겠다.

   (6) 가증스러운 자요.

   (7) 피차 미워한 자,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성도들의 의무요 행복이듯이 피차 미워하는 것은 죄인들의 불행인 것이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불행의 때가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그러한 가운데 있는 자들을 향해 보다 온유하고 부드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2) 성도들의 현재 상태 : "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이나 공로로는 우리의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받지 못한다." 바울은 다시 우리를 구원케 해주는 것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4-7절).

   (1) 우리 구원의 원 주재자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만물이 새 창조 가운데 속하게 되고 타락했던 인간이 생명과 행복을 회복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시작하시고 아들이 경영하시며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신다.

   (2) 구원의 동기와 발생 : 거룩한 박애, 즉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그것이다.(4절).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다. 이것이 이유이자 동기이다. 원인은 인간 안에, 즉 인간의 불행과 비참 안에 있다. 그러한 불행을 가져오는 죄는 동정보다는 오히려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멸하시기보다는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다. 그는 자비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3) 구원의 방법 :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 은혜가 복음 안에서 비쳐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나타내실 때에,' 사랑과 은혜의 나타나심은 성령을 통하여 인간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 잘못된 동기의 제거 :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5절), 의로운 행위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꼭 있어야 하나 그것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행위가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긴 하나, 공로에 따라서 천국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과 모든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사이며 그의 사역이다. 시작하는 것도, 점차 이뤄가는 것도, 그리고 영광 중에 그 일들을 완성시키는 것도 모두 그로부터 있게 되는 것이다.

   (5) 형식상의 구원 근거 : 본문에 나타난 대로 중생 혹은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은혜와 거룩함이라고 하는 새로운 원리가 퍼져나가 행해지자, 사람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지고 새로운 사고, 새로운 소망, 새로운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그시작한 것은 때가 되면 확실히 완성될 것이므로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되었다. 우리는 먼저 지금 중생함으로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한 근거 위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완전히 구원받게 될 것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변할 것은 질이 아니라 정도일 것이다. 은혜는 영광이 시작되기만 해도 그것이 은혜인 반면에 영광은 은혜가 그 온전함에 이를 때에야 영광이다.

   (6) 세계라고 하는 외적인 상징과 표적 : 중생의 씻음, 중생 자체는 내적이며 영적이나 그것은 세례라고 하는 성례식에 의해서 외적으로 표시되고 증거된다. 세례는 상징적이며 예표적으로 구원하는 것이며, 구원을 증거하는 곳에 합당하게 사용 되어진다. 이 외적 표적과 증거를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이며 또한 외적 씻음으로 다 된 것인 양 여기지 말라. 세례 안에서 증거된 언약은 유익과 특권들을 줄 뿐만 아니라 의무들을 부여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만일 의무들이 전혀 염두에 없다면 유익이나 특권들을 기대하는 것 역시 무익한 것이다.

   (7) 성령의 새롭게 하심, 이는 가장 주요하게 효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원의 섭리에 있어서 적용하시고 이루시는 일은 특별히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난 것이며 성령에 의해서 소생함을 받고 성화되며, 또한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고 힘을 얻으며 도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구하고 그의 거룩한 행동을 제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우리가 그를 바라고 행하면 그도 우리를 주장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의 사역들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고 반대하고 거역한다면 그는 그역사들을 거두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을 근심케 한다면 그는 우리를 완전히 떠나실 것이다.

   (8)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방식 : 인색하게 주시거나 모자라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풍성하게 주신다.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6절), 율법 아래 있을 때보다 복음 아래 있을 때 성령의 더 큰 은사를 부어 주신다. 교회는 모든 시대에 걸쳐서 성령을 소유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오심이후에는 보다 더 큰 성령의 임재가 있었다. 그때에 조명, 외적 부르심, 고백, 그리고 일반적인 믿음 등의 공통적인 은사와 또한 믿음, 소망, 사랑 등의 공통적인 은사가 아주 풍성히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은사들에게 참예할 수 있어야 하겠다. 성령이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졌다 할지라도 그대로 흘려 보내고 메마른 채로 남아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복음 아래서 은혜와 모든 영적인 축복들을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한마디로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인색하지 않으시다.

   (9) 모든 것을 가져오게 하시는 분 : 즉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6절), 모든 것은 그를 통해서 즉 구주가 되신 그를 통해서 온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를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입었는가? 우리는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안에서 더욱 더 성장하며 진보해야 할 것이다.

   (10) 우리가 이상과 같은 새로운 영적 상태를 얻게 된 이유, 즉 의롭게 됨과 후사와 영생의 소망에 대하여 :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7절). 의롭다 하심은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사면이며 또한 믿음에 의해서 얻게 된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의로운 자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나 그리스도의 희생과 의의 중재로 말미암아 믿음에  의해 붙잡은 바 된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동기와 발상은 은혜에 의한 것이며, 그 구속의 적용은 믿음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본래의 의로움과 순종이라고 하는 행위 안에서 그것의 열매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에 대한 열매가 되며, 우리의 관심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증거가 되고, 또한 삶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되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의 출발이 되며 부분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져오게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다.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며, 그 은혜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우리가 영생의 후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영생은 약속 안에서 우리 앞에 주어져 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영생을 믿게 하시며 영생의 소망을 가져와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영생의 후사가 되는 것이다. 믿음과 소망은 영생을 가까이 가져다주며 영생에 대해 확고한 기대를 할 수 있게 해 줌으로 우리의 기쁨을 충만케 해준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신자가 위대한 후사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친절로 너무나 많은 유익을 경험했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의 시대에 그들이 우리와 같이 같은 은혜의 참예자가 되기를 우리가 바라기 때문이다.


3. 선한 일의 필요성(8절)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고는 곧바로 선한 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의 유익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8절). 그것은 반드시 실행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만 한다. 성도들은 단지 때때로가 아니라 항상 선한 일을 힘쓰도록 애써야 한다.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란 말을 다음에 살펴 보게 되는 무익한 문제들이 아닌 '이 선한 일들' 혹은 '이것의 가르침'으로 말하기도 한다.

 

Ⅱ. 디도에게 주는 여러 지시와 문안 (3:9-15절)

가르치는 데 있어서 디도가 피해야 했던 것과 이단에 대한 처리 문제 및 그 외의 몇 가지 지시에 대하여.


1. 가르치는데 있어서 피해야 할 것을 말함(9절)

무익하고 어리석은 변론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또한 족보 이야기도 그러하다.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 특별히 메시야되신 그리스도의 혈통에 대해서 성경의 성취를 찾아보는 등의 합당하고도 유익한 변론은 마땅히 있게 될 만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오랜 혈통을 자랑하면서 단지 영화만을 족한 것으로 여기고 허영심을 만족케 하는 모든 것을 디도는 어리석고 무익한 것으로 여기고 잘 대처해야 했다.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당시 모세의 의식과 절기를 주장하며 교회 안에서 그것들을 계속 지키려고 했던 자들이 있었다. 디도는 이런 자들을 지지해서는 안되었으며 그들을 피하고 반대해야 했다.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 말은 율법에 대해 다투는 것들뿐 아니라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를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들은 가르침으로 경건을 세우는 일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며 오히려 경건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사역자들은 선하고 유익한 것을 가르쳐야 할 뿐 아니라 그 반대되는 것을 또한 피하고 배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성도들로 하여금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른 교훈을 사랑하며 받아 들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2. 이단자를 처리하는 방법(10,11절)

교회 안에 이설들과 이단자들이 있을 것이므로 바울은 계속해서 디도에게 그러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지시하고 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10절). 곧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하라. 그래서 만일 그가 돌아서게 되면 다시 그를 형제로 여겨라. 그러나 만일 돌아서지 않는다면 그를 무리에서부터 내쫓아라"라는 말씀이다. 훈계에 의해 돌이키지 않은 채 자기들의 죄와 허물 가운데 완고한 자들은 부패하여져 스스로 정죄한 자들이다. 진짜 이단은 참으로 악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것은 부패한 것이며 그릇된 것으로 이는 너무 황폐해져서, 다시 수리하고 세우기가 불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기가 너무 힘든 건물에 비유한 것이다. 진짜 이단자들이 참된 믿음으로 돌이키는 일이란 매우 드물다. 경우에 따라서는 판단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의지의 완고함 때문에 그러하다. 가장 중대한 과실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고통과 인내가 따를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훈계받아야 하고 교훈받아야 하며 권면을 받아야 한다. 계속되는 부패에 대해서 교회는 그런 부패한 자를 엄하게 다스림으로 교회 자체의 순수성을 보존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징계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범죄한 사람을 돌이키게 하는 효력을 내기도 하는 것이다. 

 

3. 바울의 계속되는 지시 (12,13절)

 1) 디도는 아데마나 두기고가 그의 직무를 대신하러 그레데로 오자마자 곧바로 니고볼리로 바울을 만나러 가야 했다. 우리는 '아데마'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며 두기고에 관해서는 많은 부분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다. 바울은 두기고를 가리켜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그는 충심으로 섬기는 일에 적합한 자였다.

 2) 디도에게 보내는 또다른 개인적인 권고는 바울이 함께 전도 여행 중에 있는 친구 둘을 보내겠으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그들이 아무 것도 궁핍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세나는 교법사로 지칭되고 있다. 아볼로는 신실하고도 뛰어난 사역자였다. 그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맡기고 그들의 사역과 여행길을 돌보아 주는 일은 신앙에 합당하면서도 필요한 봉사였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열매 없는 자가 되기 않게 하기 위하여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자(14절). 기독교는 열매 없이 고백만 하는 종교가 아니다. 단지 해를 끼치지 않는다거나 악을 피하는 것으로서는 충분치 않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하며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학자들은 14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도 한다. "우리 사람들로 정직한 수고와 사역을 행하기를 힘쓰게 하여 그들 자신들과 그 자족들을 예비케 하라. 이는 그들로 세상에서 무익한 짐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가 그들에게 안이한 교훈을 주는 것으로 생각지 말게 하라.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14절). 아는 다른 사람들의 수고에 기대는 삶이 아닌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스스로 열매 맺는 것을 배우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4. 문안과 강복으로 글을 맺음(15절)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와 더불어 그리고 우리를 위해 늘 마음을 두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것이다.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5절:한글 개역 성경에는 '아멘'이 없음-역주). 이것이 바울의 바램이며 또한 기도였다. 은혜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구해야 할 중요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선한 모든 것이다. '아멘'은 기도를 끝맺는 말로써, 그렇게 되어졌으면 혹은 그렇게 되어지리라는 바램과 소망을 나타낸 말이다.



Ⅰ.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 (2:1-10절)
본문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권면을 하고 있다.

1. 일반적인 권면, 즉 디도에게 그 자신의 직무에 충실할 것을 권함(1)
다른 사람들이 설교하도록 디도가 직분을 수여했다고 해서 그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디도는 사역자들과 장로들을 돌보는 데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그들의 의무를 아울러 가르쳐야 했다. 진정한 복음의 교훈은 바른 교훈이다. 그 교훈은 그 자체가 선하고 거룩하며 믿는 자들을 또한 그렇게 만들어 준다.

2. 특별한 권면(2-10)
바울은 2-1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디도가 이 바른 교훈을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할 것을 가르친다. 사역자들은 설교를 통한 그들의 가르침에 있어서 실제적일 뿐 아니라 개별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되 모두에게 그리고 각각에게 그들의 의무를 가르쳐야 한다.
  1) 늙은 남자들에게(2절) : 나이가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기독교의 교훈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늙은 남자로는 근신하며, 그들은 젊은이들을 권고하며 그들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건강이나 적합한 언행 등 만사에 정도를 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경건하며, 경망은 모두에게 좋지 않는 것이로되 특히 노인에게 더욱 그러하다. 절제하며 믿음에 온전하게 하고, 즉 신실하고 확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년수가 많이 찬 사람들은 은혜와 선함에 있어서도 가득 차 있어야 하며,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랑에 온전하게 하고, 이것은 반드시 믿음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믿음에 의해서 역사하며 믿음에 의해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이 없는 신실한 사랑이어야 한다. 즉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사람들은 괴팍하기가 쉽다. 따라서 그러한 유약함을 잘 이겨낼 필요가 있다. 믿음, 사랑, 인내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주된 은혜들이며 이러한 것들에 온전케 되면 복음에 거의 온전케 되는 것이다.
  2) 늙은 여자들에게(3절) : 이들도 또한 훈계 받고 경고 받아야 한다. 앞서 언급 했던 늙은 남자들에게 주어진 덕목들(절제, 경건, 근신,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함)은 단지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늙은 여자들에게도 아울러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쪽 성이나 어느 한쪽 부류만을 위해 한 가지의 구원 방법이 있고 다른쪽의 구원을 위해 또 다른 구원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다 똑같은 것을 배우고 실행 해야 한다. 즉 덕목들이나 직무들은 공통되는 것이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혹은 "사람들이 고백하는 바대로 거룩한 인격에 어울리고 합당하게 행동하며"라고 하겠다. 어떤 것이 거룩함에 어울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행위의 한도와 법칙이 결정되어진다. 참소치 말며, 이는 이웃의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해 비방하거나 험담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즉 남의 말을 잘하거나 남의 욕을 하거나 친한 친구들을 이간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보기 흉하고 악한 것이나 특히 늙은 여자들에게 있어선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당시의 헬라 사회 안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이는 공적인 설교자로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해져 있다. 다른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으며 또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은 선한 생활과 본을 보임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과 품행에 있어서 거룩한 자들은 그것으로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외에도 그들은 가정에 있을 때든, 사적인 자리에 있을 때든 교훈적인 훈계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늙은 여자들의 일은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3) 젊은 여자들에게(4절) : 늙은 여자들은 바로 이들을 가르쳐야 했다. 젊은 여자들에게 여러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늙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 때로는 남자들이나 사역자들이 하는 것보다 더 용이한 경우가 있다. 근신하며 순전하며, 이것은 젊은 여자들이 빠지기 쉬운 허영과 경솔함과 상반되는 것이다. "순전과 정숙"은 서로 잘 통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경솔하게 됨으로 치명적인 유혹에 떨어지곤 한다.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이 둘은 또한 서로 잘 통하는 말이다. 집을 나가게 될 경우가 있게 되면 유흥과 사귐을 위해 찾아 헤메는 기질을 지니게 됨으로 뜻하지 않은 악을 행하게 된다. 선하며, 이 말은 일반적으로 모든 악행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별한 의미로는 돕기를 좋아하는 것과 자비심이 많은 것을 뜻한다. 이것은 더욱 특별한 의미로는 찌푸리거나 모질게 굴지 않고 온유하며 쾌활한 마음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남편을 사랑하며 또한 복종하게 하라. 진실한 사랑을 갖고 있다면 이것이 곤란한 요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권위가 교회를 다스림같이 남편의 권위가 아내를 다스리도록 정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모든 선한 것으로 채우시고 악으로부터 지켜주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돌보아야 하되 갖가지의 해로부터 아내를 지키고 아내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요구되는 것은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사랑의 예속이라고 하겠다. 또한 자녀를 사랑하며, 이것은 단지 본능적인 애정이 아니라 영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필요한 때 책망과 바르게 하기를 게을리하는 어리석은 사랑이 아니라 자녀들의 삶과 습성을 올바로 세우며 그들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돌아보는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5절). 신앙이 없는 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새로운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저들에게 있어 나은 점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려 할 것이다. 또한 "이 하나님의 종들에 의거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판단하라. 그리고 그 신자들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가르침과 종교를 판단하라"고 할 것이다.
  4) 젊은 남자들에게(6절) : 이들은 흥분하거나 열을 내기가 쉽다. 따라서 그들은 참으로 경솔하지 말고 사려깊게 행동하도록 권고받아야 한다. 건방지거나 거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온순하도록 권고 받아야 한다. 이는 젊은 사람들이 다른 죄보다 교만에 의해 파멸되는 일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5) 디도에게(7,8절) : 바울은 이제 디도 자신에 대해서 몇 가지 지시를 하고 있다. 7절에 보면 그의 생활에 대해 주는 교훈이 있다. 만일 그의 생활이 친히 모범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이 세워 놓은 것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 될 것이다. 선한 교훈과 선한 생활은 서로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범사에,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무엇보다도'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무엇보다도 특별히 교사 자신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빛과 그 영향력은 서로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사역자들은 반드시 양떼들에게 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치 그리스도를 따르듯 그들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7,8절을 보면 디도의 생활 뿐 아니라 그의 가르침과 교훈을 위한 것도 찾아볼 수가 있다. 따라서 사역자들이 설교할 때 인간의 지식이나 웅변을 사용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게 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른 말이란 성경적인 진리를 나타내주는 성경의 언어인 것이며, 책망할 것이 없는, 즉 말에 있어서 본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침과 부합되는 삶으로써 생활에 있어서도 생활이 엄격해야 하며 그들의 가르침이 진지할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방할 기회를 노리는 대적자들은 사역자들의 가르침이나 생활 속에서 어떤 잘못을 찾아내게 된다면 실제로 비방하게 될 것이다. 신실한 사역자들이라면 대적자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이나 생활 가운데서 결점들을 찾거나 지적하려고 애쓰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역자들은 자신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6) 종들에게(9절) : 종들은 자기들의 세상 주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알고 행하여야 하되 오직 하늘에 계신 주를 염두에 두고 하여야 한다. 
    ⑴ 종들의 의무.
      ① 범사에 순종하여, 순종은 종들의 첫 번째 의무이자 특성이다. 종들은 자시들의 뜻을 주인의 뜻에 예속시켜야 하며 자신들의 시간과 수고를 주인의 의사와 명령에 굴복시켜야 한다. 만약 그가 주인이 된다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종들이 종의 의무를 다해 줄 것이다.
      ② 범사에 기쁘게 하고, 우리는 이 말을 아무런 한계도 없이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든지 아니면 무조건 주인을 기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여기엔 항상 하나님의 의가 보존되는 한계 안에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만약 주인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과 상치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종들의 순종의 척도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동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권세에 의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행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공민으로서의 예속과 복종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종들은 비록 사람을 섬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들은 비록 사람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들은 그들의 처지에 대해 근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위치 안에서 신실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며 범사에 자신들의 주인들을 기쁘게 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③ 거스려 말하지 말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것을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을 갑절로 늘이는 것이 된다. 여기서 거스려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때와 상황이 허락되었을 때 부드러운 대답으로 노를 돌이키게 하는 것마저 배제시키는 것은 아니다. 선하고 현명한 주인이라면 기꺼이 그 대답을 들을 것이며 또 옳게 시정하려 할 것이다.
      ④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10절). 정직은 선한 종들에게 있어야 하는 또다른 중요한 본질이다. 종들은 의롭고 진실해야 할뿐 아니라 자신들의 일을 하듯 주인의 일을 해야 한다. 비록 주인이 엄격하고 가혹하게 종들을 대하며 종들에게 충분한 물질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종들은 떼어 먹지 말아야 하며 도적질함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종들은 훔치거나 낭비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재산을 늘려 주어야 하며 그 부를 최대로 증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지 못한 종은 그가 비록 착복하거나 잃어버린 것이 없다 할지라도 불충성한 종으로 책망들을 것이다. 
    ⑵ 디도가 이상의 것들을 시행해야 했던 이유: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10절). 만일 사람이 자신들의 의무를 유의해서 잘 실행하게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신앙생활에 대해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주인들이 있어 그리스도인인 자신들의 종들이 다른 종들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진실한 신앙은 그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에게 영예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그 신앙에 욕을 돌리는 일을 행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Ⅱ. 바울의 지시의 근거 (2:11-14절)
앞서 촉구된 모든 지시들의 근거가 본문에 나타나고 있다.

1. 복음의 본질과 계획(11-13절)
어떤 류의 사람들이건 저마다의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로 서고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되는 목적이자 일이기 때문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 아래 있는 자들이다. 은혜는 선을 행하도록 인도하며 또한 행할 의무를 지운다.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은혜는 헛되이 받은 것이 된다. 
  2) 이 복음의 은혜는 구원을 가져다 준다. 이 사실에서부터 복음은 생명의 말씀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믿음에 이르게 해 주며 따라서 생명에 이르게 해 준다.
  3) 그것은 나타난 바 된 것이다. 옛 율법은 비교적 어둡고 그늘진 것이었다. 그에 반해 복음은 명확하고도 밝은 빛이다. 
  4)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바 된 것이다. 복음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와서 그 은혜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았다.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구원의 가르침은 모든 계층과 모든 형편의 사람들을(상전들 뿐 아니라 노예나 종들까지도) 다 위한 것이다.
  5) 복음의 계시는 곧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멀리할 것과 따를 것, 피할 것과 행할 것을 가르친다. 복음은 결코 사색을 위한 것이 아니며 실제적인 삶과 바른 삶을 위한 것이다. 
    ①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12절), 이는 곧 경건치 않는 것, 즉 거룩하신 분에 대한 불신앙과 그분을 사랑하지 아니함과 두려워 하지 아니함과 신뢰하지 아니함 그리고 순종하지 아니함을 버려야 한다. 또한 세상 정욕 즉 모든 더러운 욕망과 악한 욕망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가득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 세상적인 음란한 행실은 하늘의 부르심에 합당치 못하다. 
    ②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12절), 신앙은 단지 소극적인 것들로만 되어진 것은 아니다. 악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선도 또한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에 대하여서는 절제와 온화함을 지키면서 근신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몫을 침범하지 아니하며,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여야 한다. 자기 본위는 일종의 불의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신할 뿐만 아니라 의롭게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경건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이 모든 것에 두루 걸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직접적인 의무와 표현이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완전하심에 대한 믿음과 고백이며, 그분을 의지함 즉 그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신뢰하는 것이고,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의 말씀과 사역을 묵상하는 등 그분께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였던 바대로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나아가는 경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건함으로 훈련시켜야 한다. 그것 없이는 결코 복음이 빛날 수 없다. 복음은 우리에게 올바른 믿음과 소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내세를 기대하는 자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③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13절), 여기서의 소망이란 곧 하늘나라와 그곳에서부터 있게 될 지복(至福)을 소망하는 것을 뜻하므로, 강조해서 저 소망 (한글 개역 성경에는 '저' 가없음-역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매우 큰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것이 성취되어질 때, 우리는 영원히 온전한 행복에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 성취될 시기와 그것의 확실성, 위대성을 아울러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상징적으로가 아니라 당연하고도 절대적으로 크신 하나님이시며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재림하실 때 그는 자기의 종들에게 보상하실 것이며 그들로 자기와 함께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①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세에 대한 공통되고도 복스러운 소망이 있다. 소망이란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으로, 곧 우리의 소망으로 불리우시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하여 있게 되는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하는 적절한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② 복음의 계획은 바로 이 복스러운 소망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있다.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2,13절), 곧 고용인으로서가 아니라 충성되고 감사하는 그리스도 인으로서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③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그 복스러운 소망은 성취될 것이다. 그때에 크신 하나님 우리 구주의 영광이 태양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복음의 사역과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소망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④ 구주께서 크신 하나님이 되시며 자신을 영광스럽게 나타내실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된다.

2.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목적(14절)
우리를 거룩케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영역일 뿐 아니라 그의 죽으심의 목적이라고 하겠다.
  1) 구원을 사신 분 : 그분은 크신 하나님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단순히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며 인간으로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신인(神人)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가 인간이셨던 것은 인간을 위해 순종하고 고난받고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또한 하나님이셨던 것은 인성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2) 구속의 댓가 : 그는 자신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주셨으며 아들 또한 자신을 주셨다.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의 위대성 뿐 아니라 또한 자발적으로 드렸기에 그것은 받으실 만한 것이 된다. 인간의 본성은 제물이며 신성은 제단이고 거룩하게 됨은 은사라고 하겠다.
  3) 우리를 위해 죽으심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사랑하지 아니하며 그에게 우리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은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4)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목적. 
    ①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버리라'는 첫 번째 교훈과 부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들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죄를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사는 것은 구속의 피를 발로 짓밟는 것과 같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잠시 고난 받으신 것이 어떻게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의 인격의 무한하신 존귀성을 통하여 가능하다. 비록 하나님으로서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는 고난 당하신 하나님이셨다. 크신 하나님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하는 것이 그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복된 목적과 열매는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시는 것이었다. 곧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위하여 죽으셨던 것이다.

    ② 또한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두 번째 교훈 즉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사는 것'을 시행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하시기 위해서 뿐 아니라 깨끗케 하시기 위해서 즉 죄와 정죄로부터 자유케 할 뿐 아니라 본성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이와 같이 그는 우리를 깨끗케 하심으로 자신의 친 백성이 되게 하신다. 이제 우리는 죄악 가운데 놓여져 있는 세상과는 구별되었다. 죄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과 본성이 성화되는 것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③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우리로 선한 일에 열심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친 백성 된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뿐 아니라 선한 일에 열심을 냄으로써 친 백성 된 것을 반드시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만 한다.

Ⅲ. 마지막 총괄적인 지시 (2:15절)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총괄적인 지시에서 우리는 사역자들이 가르쳐야 하는 내용과 방법을 보게 된다.

1. 사역자들이 가르쳐야 할 내용
너는 이것을, 즉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와 의무들, 죄를 멀리할 것,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 것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2. 방법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꼭 있어야 할 복음의 큰 진리와 의무들을 특별히 말하고 권면하며 많은 열심을 가지고 역설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역자들은 하늘의 가르침과 교훈을 전하는데 있어서 그 일이 마치 대수롭지 않는 일인 것처럼 냉담하거나 맥빠져서는 안된다. 열심을 가지고 그 가르침들을 역설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책망하라'고 했다. 이는 받아들여야 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거나 반박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자들을 설득시키고 꾸짖으라는 말이다. '모든 권위로 책망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듯이 하라는 말이다. 사역자들이란 곧 본문에서 꾸짖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3.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이 말은 곧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역설하라. 엄격함과 신실함으로 죄를 꾸짖으라 그리고 유의해서 네 자신과 네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라 그러면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사역자들이 자신들을 죄에서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또한 신중을 기해서 용기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비록 디도가 젊지만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되며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의도인 듯하다.


'디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 (딛 1:1~9)  (0) 2014.08.28
디도서 3장 - 매튜헨리  (0) 2013.10.29
디도서 1장 - 매튜헨리  (0) 2013.10.29
디도서 3장 - study  (0) 2013.10.28
디도서 2장 - study  (0) 2013.10.28

Ⅰ. 바울의 문안과 디도를 위한 기도 (1:1-4절)

1. 저 자(1-3)
저자는 바울이다. 바울이라는 이 이방 이름은 그가 이방인의 사도라는 의미에서 취해진 것이다(행 13:9, 46, 47). 사역자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들이 맡은 사역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1절), 교회 안에서 가장 높은 직무는 오직 종의 직무인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1절), 하나님의 종들의 가르침은 모든 택한 자들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믿음이란 성화의 첫 번째 원리이다. 복음은 진리이다. 곧 크고 확실하며 구원하는 진리이다. 거룩한 믿음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이성이나 유리한 견해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모든 복음의 진리는 경건함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고백해야 하는 진리인 것이다. 즉 그 진리는 말과 행위로 공표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과 믿음을 알게하며, 경건에 속한 진리를 고백하게 하는 것이 복음 사역의 큰 목적이다(2절). 2절에서 보여주는 영생의 소망, 이것은 복음의 더 나아간 목적으로써 믿음 뿐 아니라 소망을 가져다 준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경건함은 영생의 소망을 가져다 주며, 종국에는 영생으로 나아가게 된다.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본문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영생의 약속의 확실성과 그 약속의 오래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을 나타내 준다. 만일 이 복음을 멸시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가혹하게 징벌을 받는다 할지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그 복음을 약속하셨을 뿐 아니라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기' 때문이다(3절).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부르기도 한 그 전도가 존경받게 되었다. 이 전도는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역은 일종의 위탁이다. 이 사역 가운데 임명받은 자 외에는 아무도 이 존귀한 직무를 가지지 못한다. 또한 부름받고 임명받은 자는 누구든지 말씀을 전해야 한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부르심 외에는 어떤 사람의 부름에도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2. 수신자 (4)
수신자는 이방 헬라 사람인 디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음과 사역에 부름 받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고 능력있는 것이다. 이방 혈통과 교육을 받은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었겠으며 무슨 준비가 되었겠는가? 바울은 그를 나의 아들(혹은 나의 참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자연적인 출생에 의한 것이 아닌 초자연적인 거듭남에 의해서였다. 같은 믿음을 따라(4절), 이 말씀은 곧 "이 믿음은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믿음이며 네가 진리 안에서 지녀야 하고 생명 안에서 나타내 보여야 하는 믿음이다"라는 의미이다.

3. 문안과 디도에게 모든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기도(4)
바울이 기원한 축복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었다(한글 개역판 성경에는 '긍휼'이 나와 있지 낳음). 은혜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다. 긍휼, 평강, 그리고 온갖 좋은 것들이 이 은혜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로 들어가라. 그러면 모든 것이 틀림없이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축복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기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4절)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오는 것이다. 모든 축복, 모든 위로는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 좇아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아울러 이 모든 축복된 것들은 아버지로 좇아오되 아들을 통해서 온다.

Ⅱ.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 (1:5절)

1.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이유
디도는 바울이 그곳에 오래 머물지 못함으로 확고히 해 놓지 못한 것을 계속해서 수행해야 했다.

  1)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심 : 그는 한 장소에 복음이 어느 정도 기반이 세워지면 지체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

  2) 바울의 신실함과 신중함 : 그는 자기가 떠나온 곳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연약한 교회를 계속 돌보도록 누군가를 남겨 놓았다.

  3) 바울의 겸손 : 그는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도움받는 것을 무시하지 않았다. 특히 자기처럼 큰 은사를 받지 못한 자에게서 도움얻는 것에 대해서 그러했다.

  4) 비록 디도가 사도보다는 낮은 위치였다 할지라도 특별하게 정해진 자기들의 직무에 따라서 특정한 교회들을 돕고 있었던 안정된 일반 사역자들이나 감독들보다는 그 위치가 높았다. 디도는 필요한 곳에 일반 사역자를 세우고 그곳이 안정되면 또다른 곳으로 그들을 보내는 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디도가 그레데에 머문 것은 단지 임시적인 것으로 잠시동안 뿐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그를 남겨둔 이유가 되는 그 일을 그가 빨리 마치고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니코폴리스로 와주기를 원했다. 그후에 그는 고린도로 보내졌고 사도와 함께 로마에 있었으며 거기서 다시 달마디아로 보내졌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디도의 마지막 행적이다. 바울과 디도가 행한 사역은 영적인 것이었다. 부족한 일은 그리스도로부터 연유된 것들로써 거룩하고 영적인 성례를 베푸는 일이었으며, 거룩한 목적을 위해 임명을 하는 일이었다. 바로 이것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디도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교회를 일으키고 그것을 온전하게 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 자신도 여기서 수고하였으나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이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일수록 부패하기 쉬우며 고장나기가 쉽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러한 것들이 그레데에서 디도가 해야 할 일이었다.

2. 특별한 의미에서의 이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5절), 이들 장로들은 교회의 일반적인 사무를 돌보고 책임져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성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교회를 기르는 복음 사역자였다고 할 수 있다. 확고하고 지속적인 목회가 없는 교회는 불완전하고 부족한 교회다. 어느 정도의 신자들이 있게 되면 반드시 장로들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엡 4:12) 교회 안에서의 그들의 존속은 그들을 처음 세우는 것만큼이나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 10:17) 또한 들음을 통해서 보존되어진다. 무지와 부패, 선한 것의 쇠퇴와 온갖 악의 증가를 일깨워 주는 사역과 가르침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족한 일을 바로 잡게 하기 위해서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두었던 것이다.

3. 디도의 행동 법칙
율법 아래서는 모든 일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진 그 규례에 따라 행해져야 했다. 마찬가지로 복음 아래서는 모든 일이 그리스도의 지시와 그의 사역자들의 지시에 따라 수행되어져야 한다. 인간의 전통이나 창작해 낸 것을 하나님의 교회로 끌어들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복음 전도자가 정해진 바 외에 다른 어떤 일도 할수 없다면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랴.

Ⅲ. 장로의 자격 (1:6-16절)
바울은 여기서 디도에게 장로 장립에 관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

1. 장로로 세움 받아야 할 사람들(6-9)
  1) 생활에서 고려해야 할 자격. 
    ⑴ 보다 일반적인 자격 : 책망할 것이 없고(6절), 이는 절대적으로 허물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또한 비난받을 것이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 역시 거의 존재치 않는다. 이는 그리스도 자신도, 그리고 그의 사도들도 비난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움 받는 사람은 명백히 잘못된 성품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어야 했다. 
    ⑵ 보다 특별하게 갖추어야 할 자격.
      ① 그 가족들의 품성이다. 장로로 세움 받을 사람은 그 자신이 반드시 혼인의 순결을 지킨 자라야 하며 또한 자녀들에 있어서는 순종하고 선한 믿는 자녀들을 둔 자라야 한다. 이 자녀들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양육될 뿐만 아니라 그 신앙에 따라 살며 최소한 그 부모의 수고가 유용하게 되도록 하는 자녀들이어야 한다.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가장 결백한 사람이라도 잘못되어 그러한 비난을 듣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장로로 세움 받을 자들은 그러한 비난을 들을만한 요소들을 남기지 않도록 잘 살펴 보아야 한다. 매우 신실하고 순종하는 자녀들을 두었다는 것은 그 부모의 신실성과 근면을 나타내 주는 좋은 표적일 것이다. 작은 일에 충성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교회의 청지기로서 더 큰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이 일의 자격의 근거는 그의 직무의 성격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7절). 양떼들을 돌보아야 하는 이러한 장로나 감독들은 그 양떼들의 본이 되어야 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집의 일을 돌보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이었기에, 여기에 그들이 책망할 것이 없어야 했던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② 더욱 분명한 자격의 요건들이 나타나 있다. 첫째, 소극적인 자격이다.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7절), 이 금지의 말씀은 보다 넓은 범위에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뜻과 방식대로 설정한 자기 의견, 즉 자신을 모든 것의 중심 가운데 두려는 자기 사랑과 자기 확신, 그리고 자기 만족을 배제시키라는 말씀이다. 기꺼이 묻고, 기꺼이 조언을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것이라면 그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뜻에 기꺼이 양보하는 것이 사역자에게 있어서 큰 영예라고 할 수 있다.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자신들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교회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다른 선한 피조물들을 위해서 이것을 적당히 사용하는 것이 불법한 일은 아니나 지나치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수치가 된다. 특별히 사역자에게 있어선 더욱 그러하다. 더러운 이득를 탐하지 아니하며, 속된 세상적 관점을 가지고 사역을 하고자 하지 말라는 말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안목을 내세로 향하게 해 주는 사역자가 이 더러운 이득에 열중하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둘째, 적극적인 자격이다.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8절), 능력과 기회를 따라서 이 일을 행하려는 마음과 실천은 선한 일들에 대한 본으로 매우 합당한 것이다. 선을 좋아하며, (혹은 선한 사람들을 좋아하며) 사역자들은 사람과 일 모두에 본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근신하며, 혹은 '신중하며' 이는 사역자에게 있어서 목회에서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필요한 은혜이다. 의로우며, 이는 시민 생활에 관계한 가르침이다. 거룩하며, 이것은 종교 생활에 관한 가르침이다. 절제하며, 이 말은 힘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욕망과 감정을 제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2) 교훈에 대하여. 
    ⑴ 장로로 세움 받을 자의 의무 :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9절), 이것은 곧 그 자신이 믿고 고백한 것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들은 사람들의 가르침과 삶 속에서 미쁜 말씀을 굳게 지켜야 하며 또한 드러내어 나타나게 하여야 한다. 
    ⑵ 이 교훈의 목적: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근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9절). 만일 사역자 자신이 불분명하고 확고하지 못한 채 미쁜 말씀과 바른 교훈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2. 디도가 관계치 말아야 할 사람들(10-16)
바울은 1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말을 듣는 백성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1)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1) 거짓 교사들에 대한 묘사가 본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복종치 아니한' 자들이었으며 완고하고 권력욕이 있고 다루기 힘들며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이었다. 또한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들'로서 실수와 오류에 빠져, 그것들을 좋아하며 들은 사람들도 그곳에 빠지도록 부지런히 힘쓰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많았으며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였다.' 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한데 섞여서 부패한 잡동사니로 만드는 자들이었다. (2)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사도의 지시가 본문에 나타나 있다(11절). 논박과 설득으로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3) 이렇게 해야 했던 이유: 이는 그들의 오류들로부터 유해한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의도했던 비열한 목적은 신앙이라는 미명 아래 더러운 이를 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2) 옛 증거가 이내 보여주고 있는 바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는 그 백성들에 대한 언급. 
    ① 그 증거가 12절에 나타나 있다. 이 증거는 그레데인 중의 한 사람이 한 것으로 그레데인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것같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 여기서 선지자란 시인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② 그 선지자가 증거한 내용: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12절). 속담에도 그들은 거짓말과 속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레데인과 맞상대하다"라는 말은 거짓말 하다라는 말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간교한 해악성과 야만적인 본성 때문에 악한 짐승에 비유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나태함과 호색 때문에, 그리고 일하기보다는 먹는 데 더욱 집착하기 때문에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로 불린다. 
    ③ 바울 자신이 13절에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의 이러한 특성들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것이다. 
    ④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썼을 때 그는 그에게 온유함으로 가르치라고 명했었다. 그러나 본 서신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명하고 있는 것이다. 디모데가 상대했던 사람들은 보다 교양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온유함으로 그들을 책망해야 했던 것이다. 반면에 디도는 보다 거칠고 미개한 사람들을 다루어야 했다. 그래서 엄히 꾸짖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의 부패상이 크고 심했으므로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다. 책망하는 데에도 죄에 따라 차이를 반드시 두어야만 한다. 즉 어떤 죄는 그 본질에 있어서 매우 흉악한 것도 있는 것이다. 죄인들에게도 차이를 두어야만 한다. 즉 어떤 이들의 경우 부드럽고 온순함으로 대하는 것이 더 나으며 온유함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더 쉬운 사람이 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거칠고 심한 꾸지람이 더 나으며 날카로운 질책이 더 필요한 경우의 사람이 있다. 
    ⑤ 그와 같은 책망의 목적이 14절에 기록되어 있다. 즉 그들로 스스로 진실하고도 효과있게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날카로운 책망은 책망받는 사람의 선, 즉 죄와 잘못을 고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해야 한다. 온전함이란 믿음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며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영혼의 건강이며 활력이 된다. 온전한 믿음에 이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귀를 사람들의 공상과 허탄한 이야기에서 멀리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나 공상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진리와 경건에 반대되는 것이다. 
    ⑥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온전한 믿음 안에 있고 그로 인해 깨끗함을 얻은 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15절).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단 맛을 얻는 곳에서 독을 핥는다. 그들의 마음과 양심은 더럽혀져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오점 투성이들 뿐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 자기들의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즉 그들의 행동은 그들 자신들의 고백과는 다른 것이다. 디도에게 엄히 꾸짖을 것을 지시하고 있는 바울은 그 자신이 먼저 엄히 꾸짖고 있다. 그는 그들을 매우 엄한말로 꾸짖고 있으나 의심할 바 없이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이상의 엄한 책망은 하지 않고 있다. 가증한 자요(16절), 하나님의 선한 사람들은 마땅히 그들의 눈을 더럽고 추한 것들로부터 돌리수 있어야 한다.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그들이 여러가지의 것들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믿음의 순종이 되지 못한다.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이는 어떤 일을 바르게 행할 능력이나 판단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선자들의 비참한 상태를 보라, 우리는 그러한 비방이 우리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대뜸 그러한 비방을 돌리려고 하지 말도록 하자.


'디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도서 3장 - 매튜헨리  (0) 2013.10.29
디도서 2장 - 매튜헨리  (0) 2013.10.29
디도서 3장 - study  (0) 2013.10.28
디도서 2장 - study  (0) 2013.10.28
디도서 1장 - study  (0) 2013.10.25

# study
(1~8절)
신자들의 대인 관계 - 신자들을 경건한 사람으로 양육할 것과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언급한 바울은 이제 신자들로 하여금 세속 정부에 순종하며<잠 24:21, 그리스도인의 국가관>, 모든 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 곧 관용하는 모습을 보이게끔 하라고 디도를 권면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법을 준수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란 점과 신자는 불신자들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신자는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됨(빌 2:12)을 깨닫게 된다.
[1~2절]
로마 지배 아래 있으면서 많은 폭동을 일삼을 정도로 반항적이었던 그레데인들에게 이 권면은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복종하며 순종하며 철저하고도 자발적인 준법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는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인 굴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양보와 관용을 중요시하는 위대한 복음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엡 서론, 성도의 사회 참여>. 이로써 천국 시민이면서(빌 3:20) 또한 이 땅의 시민인 그리스도인은 평안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으며(딤전 2:2), 전도의 문을 넓힐 수 있다(벧전 2:15).
[3절]
개역성경에는 본절 맨 앞에 '왜냐하면'이 생략되었다. 이는 이후에 언급될 진술(3~7절)이 앞서 권고한 (1,2절) 덕목들의 이유와 근거가 됨을 나타낸다. 신자들도 전에는 죄악 중에 살던 불신자였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이웃을 정죄하기에만 급급한 자는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격이며, 나아가 크고 깊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자라 하겠다(마 18:21~35).
[5절]
긍휼하심을 좇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죄인이며 구원될 자격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이다(롬 5:8; 엡 2:8, 9). 여기서 우리는 우리보다 나쁜 형편에 처해 있는 형제를 동정하며, 그들을 희생적 자세로 도와야 됨을 깨닫게 된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죄로 더러웠던 우리를 깨끗게 하신 방법이다. 이것은 우리가 유대주의의 결례, 헬라 밀의(密議) 종교의 목욕 의식 등과 같은 외적이며 인간적 방식에 의해 깨끗게 된 것이 아니라(벧전 1:18, 19)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된 것임을 뜻한다<행 서론, 성령 세례>.
[7절]
의롭다 하심을 얻어. 이는 구원의 결과에 해당한다. 그러나 다만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이지(롬 8:30, 33) 실제로 우리가 의로워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 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 한편으로는 크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성결된 삶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롬 5:20; 벧전 1:15). 영생의...후사가 되게 하려. 이것은 구원의 본질이자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자는 세상에서의 궁핍 중에서도 기뻐해야 하며(벧전 1:6), 세상의 썩어질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됨을 깨닫게 된다(엡 4:22).
[9절]
이단주의자와의 관계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어리석은 변론.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 구원 문제와 신자의 삶에 별 중요성이 없는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일을 뜻한다. 족보 이야기.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가상적 족보를 만들어 이것을 구원의 조건과 선민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편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당시 초대 교회에 많은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율법에 대한 다툼. 이것은 구약 의식법의 신약 시대에서의 준수 범위, 율법을 지극히 세분화하여 새로이 만든 금지 규정 등에 관해 논쟁치 말라는 명령이다. 그러면 여기서 변론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고찰해 보도록 하자. 변론이란 어떤 교훈의 진리성 여부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 여러 곳에서 변론을 피하라고 명령한다(3:9; 딤전 6:4). 그러나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사역을 할 때는 유대에서 내려와 할례의 필요성을 주장한 유대주의자들과 심한 변론을 벌이기도 하였다(행 15:1, 2; 갈 2:1~4). 또한 예수님도 성전 청결을 하게 된 권세 문제(마 21:23~46), 부활 문제(마 22:23~33), 바리새인과 계명의 문제(마 22:36~40)로 변론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 유익하게도 보는 듯하다. 바울이 변론을 금한 이유는 첫째, 논제가 사소하며(9절), 둘째, 그것으로 인하여 정력과 시간을 허비하여 보다 중요한 본연의 사역을 게을리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속사도 시대의 저스틴 마터나크리소스톰 등은 훌륭한 변증가로서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파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따라서 성도는 바울이 염려한 두 가지 사항에 해당되지 아니하며, 또한 자신이 이단자를 이길 정도로 성경 진리를 충분히 깨닫고 있다면 이단 자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동기에서 변론을 할 수도 있다.

(9~11절)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라 - 여기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즉 피할 일과 취해야 할 행동을 가르치면서 그렇게 행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말한다.

[10~11절]

이단에 속한 사람도 어거스틴처럼 회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두 번 훈계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안 들으면 멀리할 수밖에 없다.

(12~15절)

바울의 개인적 요청과 축도 - 디도의 효과적 목회 사역을 위한 권면을 모두 마친 바울은 이제 니고볼리로 오라는 명령, 본서 지참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 요청, 문안과 축도로써 본서를 마무리한다.

[12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바울은 디도를 달마디아로 보내기 위해(딤후 4:10) 니고볼리를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아 그를 부른 듯하다. 또한 빌립보에 있는 바울이 남서향하고 디도가 북서향할 경우 두 사람의 여행 거리는 비슷하다.

[13~14절]

세나와 및 아볼로. 모두 율법과 유대인의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행 18:24, 26~28). 바울은 이들을 본서를 지참시켜 유대주의자들이 극성을 떠는 그레데로 보냈다. 한편 바울은 디도에게, 자신이 보낸 이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바울은 디도 혼자 과중한 짐을 질 수 없으며, 나그네 대접하기를 가르치기 위해(1:8), 물질을 나눔으로써 받는 축복을 체험케 하기 위해(잠 11:24, 25; 잠 19:17; 행 20:35; 빌 4:17~19) 그레데 교회 성도들과 그 일을 같이하라고 권한다.
[15절]

은혜가...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듣는 누구든, 하등의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될 것이며, 또한 은혜가 임한 자의 마음에는 '평강'이 넘치게 될 것이다(1:4).

 

# 해설

성도들의 대인 관계 (1~11절)

1절은 시민으로서 성도의 의무를, 2~8절은 회개한 성도를 향한 전도와 모범의 책임과 그 이유를 명시하였다. 그리고 9, 10절은 이단주의자를 대응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한두 번 훈계해도 효과가 없으면 그들을 멀리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요이 1:7~11).

끝맺는 인사 (12~15절)

본서는 회람(回覽)을 염두에 두기는 하였으나 1차적으로는 후배 동역자에게 쓴 개인적 편지인바, 초대교회 당시의 구체적 문제에 대한 언급이 타서신보다 많이 있다.

 

# 핵심

1~11절

디도를 포함한 모든 성도가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시민의 도리를 다하며, 이단을 멀리해야 함을 교훈하는 내용이다.

중생의 씻음(5절)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세례의식.

니고볼리(12절)

지명의 뜻은 '승리의 도시'이다. 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도시에 흔히 붙인 명칭으로 헬라에는 이같은 지명도시가 여러 곳이 있었다. 니고볼리(Nicopolis)는 그리스 북쪽 암브라시아(Ambracian)만의 에피루스(Ephirus)내에 있는 '악티아니고볼리'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B.C.31년 악티움 해전에서 로마의 옥타비아 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 묵상

성도의 사회 생활(1~8절)
성도는 사회 생활에 있어서 권세와 정사 잡은 자들에게 순종하고 선한 일을 예비케 하며, 훼방하거나 다투지 말고,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가 선한 일을 힘써야 함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함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행실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이단에 대한 자세 (9~10절)

이단에 한두 번 훈계해서 순종치 않으면 관계를 멀리하고 의미 없는 논쟁을 피해야 합니다. 이들은 어리석은 율법에 관한 논쟁과 족보 이야기 등 허탄한 주장 등으로 무리를 미혹합니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자신의 의견들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 틀리다고 말하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디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도서 2장 - 매튜헨리  (0) 2013.10.29
디도서 1장 - 매튜헨리  (0) 2013.10.29
디도서 2장 - study  (0) 2013.10.28
디도서 1장 - study  (0) 2013.10.25
선한 일에 힘쓰라 (딛 3:1~15)  (0) 2013.05.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