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고 신실하게 소명을 이어 가는 사람

[디모데후서 1장 9절~18절]
9절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절 -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절 -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절 -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절 -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절 -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절 -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절 -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절 -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절 -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바울은 사망을 폐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전해 준 바른 말과 아름다운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또한 자신을 찾아와 극진히 섬긴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 베푸시길 주님께 간구합니다.

1. 거룩하고 아름다운 소명 (9~14절)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세우신 구원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위해 바울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이 부탁하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과 부르심에 대한 확신, 또한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고난 중에도 두려움과 부끄러움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입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적을 아는 삶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명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은 무엇인가요?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2. 오네시보로를 위한 기도 (15~18절)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은 사람에 대한 신실함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을 떠난 상황에서 바울은 신실한 오네시보로를 축복합니다. 그는 너무도 지쳐 영혼마저 소멸될 것 같은 위기에 처한 바울을 격려해 준 사람입니다. 오네시보로는 복음 때문에 쇠사슬에 묶인 채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찾아와 위로했습니다. 이런 사랑과 섬김은 낙심했던 바울을 일으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뜻하지 않은 상황과 깊은 상처로 인해 믿음까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참으로 귀한 사역입니다.
*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신실했던 오네시보로처럼 오늘 내가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으신 능력의 주님이, 작고 부족한 저와 동역하길 원하시니 웬 은혜인지요! 그 자비하신 주님의 마음으로 누군가를 부지런히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섬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

[디모데후서 1장 1절~8절]
1절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절 -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절 -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절 -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절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절 -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절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절 -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배경 이해하기]
자신의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음을 안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가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새로운 가족(2절; 딤전 1:18)이자 선교 동역자(행 17:14; 18:5; 19:22)였고, 인생의 동행자(행 20:4; 살전 1:1; 3:6)였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유언 같은 글입니다. 평생 복음을 위해 살아온 바울이 지금 있는 곳은 감옥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유독 고난을 자주 언급합니다(8절; 2:3, 9; 3:11; 4:5). 바울이 가장 당부하고 싶어 하는 것은, 복음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고난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된 사람이어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디모데에게는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해서 전수된 거짓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당부합니다. 믿음 안에서 자기의 참아들인 디모데가 자신과 같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을 계승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관찰과 묵상]
1.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은 어디로부터 왔나요?(5절) 그가 전수받은 믿음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참조, 행 16:2)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도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보고 싶은 참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5절; 행 16:1). 믿음의 가문인 외가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은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았습니다(행 16:2). 또한 그는 구약 성경 말씀을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3:15),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에 자신의 고향에 들렀을 때,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2차 전도 여행 때에는 바울의 선교 동역자로 따라나섰고(행 16:3), 바울 서신 중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공동 저작했으며, 특정 교회에 파견되기도 했습니다(고전 4:7; 빌 2:19, 23; 살전 3:2, 6). 바울이 이방 교회들이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을 때에도 동행했으며(행 20:4), 바울과 함께 수감되기도 했습니다(골 1:1; 몬 1:1). 다시 말해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역자였습니다. 디모데는 믿음의 조상에게서 거짓 없는 믿음을 배웠고, 바울과 동행하며 그의 믿음의 삶을 직접 보고 고난 속에서도 거짓 없는 믿음의 삶을 사는 훈련을 했습니다.
적용과 나눔
내 믿음에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가정에서 대를 이어 믿음을 전수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은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해 디모데에게 전해졌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녀 신앙 교육의 일차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정의 해체와 붕괴입니다. 세속에 물든 가정은 자녀들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양육할 수 없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부모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의무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와 학교가 이 일을 도울 수는 있으나, 결코 가정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율법을 ‘토라’라고 하고, 부모를 ‘호라’라고 합니다. ‘호라’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을 전수해야 합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영적 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자녀에게 신앙의 대를 이어 줄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어떤 것인가요?(7절) 결국 하나님은 이로써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요?(참조, 8절)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바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디모데가 자신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상기시킵니다(1절).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고, 디모데는 이 같은 상황에 있는 바울의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현실과 상황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니 당연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복음과 함께’입니다. 우리는 늘 복음과 함께해야 합니다. 설령 고난이 있다고 해도 그것에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생명이 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과 나눔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세요.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를 할 때만 그런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혹시나 사이가 서먹해지지 않을까 신경을 씁니다. 특히 요즘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추세입니다.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것을 성가신 간섭으로 여기곤 합니다. 이런 풍조 속에서 복음을 전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페이스공동체침례교회 로렌스 콩 목사는 마술을 배워 집회 때마다 마술을 선보이며 전도를 합니다. 그러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로렌스 목사를 비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판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판은 기꺼이 참조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판에 대답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도 방법론에 대한 찬반을 떠나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은 본받을 만합니다. 결국 복음 전파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큰지,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이 큰지의 문제입니다.


# 디모데는 외조모와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받아 청결한 양심, 거룩한 눈물의 기도, 거짓 없는 믿음을 소유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의 영향력은 이러한 내면의 정결과 거룩함을 통해 흘러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이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용할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복음 전도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복음과 함께 담대히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청결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원합니다. 고난 후의 영광을 소망하며,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으로 복음 사역을 두려움 없이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믿음의 유산을 받고 넘겨주는 복된 인생

[디모데후서 1장 1절~8절]
1절 -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절 -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절 -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절 -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절 -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절 -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절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절 -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를 위해 밤낮으로 간구하며, 그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해 디모데에게 믿음이 상속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분의 능력을 따라 담대하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1. 바울의 축복과 감사 기도 (1~5절)
믿음이 가장 소중한 유산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이자 동역자인 디모데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있는 믿음의 유산에 대해 감사합니다. 바울은 거짓 없는 믿음이 디모데의 외할머니 로이스로부터 어머니 유니게에게 전달되었고 그것이 고스란히 디모데에게로 상속되었음을 확신합니다. 디모데가 받은 가장 위대한 유산은 믿음입니다. 우리도 부모님, 혹은 누군가로부터 믿음을 이어받았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지켜서 우리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믿음의 자녀인 우리의 역할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믿음의 유산은 우리 자녀와 다음 세대를 복음 앞에 세우는 가장 위대한 힘입니다.
* 육적.영적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2.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능력 (6~8절)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이 주셨던 선물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주신 신령한 은사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의 복음과 그 일꾼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자랑하는 삶은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그때 우리는 눈앞의 현실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 앞에 담대한 삶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 주님의 복음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안락함을 위한 물질과 배경이 아닌, 믿음의 유산을 전수하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임을 고백합니다. 인간으로는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확실한 믿음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제자 되게 하소서. 주님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해, 감사와 기쁨의 능력을 선물받기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목 :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 사람 (피종진 목사)

[디모데후서 4장 9절~18절]
9절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절 -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절 -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절 -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절 -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절 -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절 -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절 -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절 -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절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유익한 것도 있고 무익한 것도 있습니다. 마시는 것 중에도 보약이 있고 독약이 있습니다. 또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으며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핍박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동역자이면서도 사역자였던 친구들이 그를 떠나갔습니다. 이에 믿음의 아들이요, 복음의 동역자인 제자 디모데에게 옥중 서신을 보낼 때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 앞에 주의 일을 위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하면서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나에게 유익하다.”라고 인정해 주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 사람인지 말씀을 통해 상고하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첫째,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딤후 4: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일꾼이었으나 이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간청합니다. 왜냐하면 마가는 하나님의 일에 유익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결단코 이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 사역을 놓지 말고 하나님께 유익한 마가와 같은 충성스러운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고 유익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지위나 명예, 권세를 못 가져도 또 부귀나 영화를 못 누려도 그들의 앞날에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면 반드시 예비하신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고 채워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갈 때 여러 가지 필요하다고 해서 세상의 것에 지배를 받거나 노예가 되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우리가 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가장 큰 사명을 줄 때 먼저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라고(요 21:15~19)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물으실 때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고 손해가 있어도 기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순간 기쁨이 오고 하나님의 위로가 힘이 되고 기도의 문이 다시 이어지게 되어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19) 아멘. 여기에서 이 세상을 어두운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어둡다는 말은 죄악을 의미하고 사탄의 세계를 의미하며 사물의 모든 종류를 분간할 수도 없는 혼돈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창 1:2)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어둠으로 뒤덮여 천국 가는 길과 지옥 가는 길 또는 어느 것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손해가 되는지 분별하지 못하는 이 세상 자체가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이 되신 주님을 영접하므로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캄캄해도 태양 빛이 떠오르는 순간에 어둠이 싹 물러가듯이 이 세상에 모든 어둠을 이길 수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난과 시험이 극심하고 풍파가 더욱 높아지고 끊임없이 우리를 덮쳐올 때도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죽음의 그늘에 있어도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창조의 역사는 주님을 찾는 자, 의지하는 자,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내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① 잠시 지나가는 곳 (요일 2:17)
② 믿음이 없고 패역한 곳 (마 17:17)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 5:13,14)
③ 아버지의 사랑이 없는 곳 (요일 2:15)
④ 하나님과 원수가 됨 (약 4:4)

둘째, 신앙의 심지가 견고한 사람입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위에 생명을 같이한 사람이 있고 의리가 생명처럼 되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역자인 의사 누가는 정말 의리가 있고 심지가 견고하며 신앙의 뿌리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란 ‘마음이 굳게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 26:3)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어떻게 견고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시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부유하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기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은 모든 여건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단 1:8)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왕이 주는 진미와 마시는 포도주이지만 우상의 제물이기에 이로 인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한 말을 지켰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딤후 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감당케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사역할 때 여건이나 인적 자원이 없거나 건강이 안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실 이도 하나님이요. 거둘 자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크기만큼 사명을 주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그릇이 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이 함께하실 때 무엇이든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므로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두려움이 없고 담대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라고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신앙의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며 주님과 함께하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에 크게 유익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 세상 변화 (진재혁 목사님)

[디모데후서 2장 2절]
2절 -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세상이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의 변화. 무엇이 세상을 변화시킵니까? Great Commission,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Global Church,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세 번째 Godly Leaders,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무엇을 이 땅에 남기기를 원합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서 다른 어떤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에스더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십니다.


2. 리더십은 영향력입니다.
디모데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사람이 사도 바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의 영향력이 또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들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함께 있으며 훈련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나 됨을 통하여 서로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십의 모습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리더십하면 높은 위치, 자리,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옆에서 우리 근처에서 우리 삶 속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리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3. 경건한 리더는 키워집니다.
예수님께 가장 큰 영향력을 받은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키운 것처럼 너도 충성된 자들을 키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 충성된 자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키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리더가 리더를 만듭니다. 훌륭한 리더십에서 훌륭한 리더십이 나옵니다. 경건한 리더, Godly Leaders는 키워져야 합니다. 세워져야 합니다. 자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리더를 세우고 보내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Ⅰ. 디모데에게 주는 엄숙한 권고들 4:1-8

 

1. 바울이 디모데에게 엄히 명함(1)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두려운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보고 계셨다. '하나님 앞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하노니'가 그것을 보여 준다. 그는 디모데에게 다가올 심판을 상기시키면서 그날에 자기의 행한 것을 보고해야 한다고 명하고 있다. 주께서는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그는 재림하실 것이며 그 재림은 영광스러운 재림이 될 것이다. 그때 그의 나라가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즉 그는 그때에 그의 나라에 나타나실 것이라는 말이다.

2. 바울이 엄히 명한 내용들(2-5)

  (1) 말씀을 전파하는 것 : 이것은 사역자들의 일이다. 그들이 전파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생각이나 상상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순전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2) 전한 것을 권장하는 것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2절). 이는 곧 열정을 가지고 전심으로 이 일을 행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때를 얻든지. 이 말은 어떤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게 될 때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을 하라는 것이다. 때를 못 얻든지. 이 말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을 붙드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말이다.

  (3) 디모데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것들을 말해 주어야 했다. 잘못을 한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그들이 회개하도록 노력하라.

  (4) 디모데는 신앙생활을 잘 시작한 사람들을 지도하며 용기를 주고 일깨워 주어야 했다.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권하라. 그는 권하는 일을 인내함으로 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심으로써 사역자들도 오래 참음으로 권고할 수 있게 하셨다. 그는 권하는 일을 이성적으로, 즉 감정적으로가 아닌 '가르침으로' 해야 했다. 그들에게 예수 안에 있는 것 그대로의 진리를 가르치라. 이것이 그들을 악에서 떠나게 할 뿐 아니라 선으로 이끌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5) 그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야' 했다. 이는 곧 "너의 직무를 주의하라. 사단의 시험을 주의하라. 네게 맡겨진 자들의 영혼을 잘 돌보아라"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6) 그는 고난을 각오해야 했으며, 그것을 견디어야 했다. "시련들로 너 자신을 단련하라."

  (7) 그는 자신의 직무를 기억하여야 했으며 그것을 수행하여야 했다. 복음 전도자의 직무는 사도들의 대리자로서 사도들이 세운 교회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이것이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이었다.

  (8) 그는 자신의 사역을 완수해야 했다. 네 직무를 다하라(5절). 이는 곧 부지런함과 주의함으로 네 직무의 모든 부면을 수행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사역을 다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완수하는 것, 즉 각각의 부면에 합당한 사역을 행해 나가는 것이다.

3. 바울이 이상의 권고들을 엄히 명한 이유(6-8)

  (1) 오류와 이단설들이 교회 안에 점차로 스며들어 오는듯 싶었기 때문이었다(3,4절). 그래서 "그들이 아직 견디어 내고 있는 현재를 이용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낡고 평이한 복음에 대해서 싫증을 낼 것이고 허탄한 신화를 찾게 될 것이다. 거짓된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선택된 자들이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기 싫어하게 될 때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즉 그 가르침은 알기 쉽고 요령있게 조사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 선생들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바른 교훈으로서 진리의 말씀이며, 다른 하나는 단지 허탄한 신화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2) 바울이 그의 맡은 바 직무를 거의 다 마쳤기 때문이었다(6절).

   1) 그러므로 너의 일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라고도 하겠다. 일손이 부족할수록 일을 맡은 사람들은 더욱 부지런해져야 한다.

   2) 내가 나에게 주어진 직무를 다했다. 그러므로 너도 이와 같이 너에게 주어진 직무를 다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3) 떠날 때가 가까와 오는 중에서도 바울은 위로와 격려로써 디모데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나의 싸움을 매우 만족스럽게 되돌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너도 네가 부딪치게 될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명의 면류관이 마치 이미 너의 머리에 씌워진 것처럼 네게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 바울은 자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① 바울은 기쁨으로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떠나는 것으로 혹은 놓임 받는 것으로 표현한다. 선한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곧 이세상의 속박으로부터 놓임 받아, 저 세상의 즐거움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는 삶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② 바울은 기쁨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있다(7절). 그는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자기생의 목적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노라고 양심이 증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그의 생은 한 과정이었으며 이제 그는 그것을 마쳤던 것이다. 즉 그의 싸움을 싸우되 끝까지 싸워서 그것을 마칠 수 있어야 하겠다. 참으로 우리의 생애가 끝나는 날 이와 같이 말할 수 있게 됨으로 큰 위로, 말할 수 없이 큰 위로가 있게 되기를 원한다.

    ③ 바울은 기쁨으로 이후에 자신이 살게 될 삶을 바라보고 있다(8절). 우리 앞에 생명의 면류관이 있게 된다는 이 사실은 디모데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하였다. 그것은 '의의 면류관'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는 우리의 거룩함과 의가 완전해질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우리의 면류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의 면류관은 마치 사도들과 순교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바울에게만 특별히 있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있게 될 것이었다. 모든 성도들의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즉 심판의 날에 그가 재림하시게 될 것을 사모하는 자들인데 사모할 뿐만 아니라 갈망하기까지 하는 자들이라고 하겠다. 믿는 자들이 쓰게 될 이 면류관은 믿는 자들을 위해서 예비된 것이다. 그들은 현재 그것을 가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상속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어질 것은 확실하다.

 

Ⅱ. 특별한 여러 부탁들 4:9-15

 

(1) 바울은 디모데에게 빨리 올 것을 명한다(9절). 바울은 디모데가 함께 있어서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 이유로는 여러 사람이 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10절).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이 현세를 사랑하는 것은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도에서 떠나는 이유가 된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갔고 또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과 남아 있었다(11, 12절).

(2) 바울은 정중하게 '마가'에 관해서 말한다. 이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로 하여금 다투게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행 15:39). 바울은 마가와 함께 사역하지 않고자 했었다. 이는 그가 한때 뒤로 물러섰다가 되돌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 바울이 이제 마가를 용서한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들의 유익하고 가치있는 것마저 영구히 부인해서는 안된다.

(3) 바울은 디모데에게 드로아를 통해서 오되, 그 곳에서 그가 떠나올 때 놓고 온 것들을 함께 가지고 올 것을 명한다(13절). 그것은 겉옷으로서, 이는 바울이 추운 감옥 안에서 더 추워질 것을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그는 그의 책을 가지고 올 것을 명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읽는 데 힘쓸 것을 권고하였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 그렇게 했다.

(4) 바울은 '알렉산더'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가 자기에게 많은 해를 주었다고 말한다(14, 15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라고 말하고 있다. 14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보여 준다. 한때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를 존경하였던 몇몇 사람이 그를 그리 기쁘게 하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 즉 어떤이는 그를 버렸고 어떤이는 그를 더욱 악하게 대적하였던 것이다. 동시에 바울은 기쁨을 가지고 몇몇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 즉 어떤이들의 악함이 다른이들의 선함을 잊게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Ⅲ. 처음 변명에 대한 바울의 언급과 인사말 4:16-22

 

(1)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16-18절).

  1) 그는 최근에 황제 앞에 불려갔었다(16절).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가서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행 28장). 그러나 바울에게 위험이 닥치고 따라서 그들이 바울과 함께 고난받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그를 버렸다. 바울은 적대자들이 대적한 시련뿐 아니라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을 버리는 시련까지 겪어야 했다. 모두가 그를 버렸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허물을 그들에게 돌리실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진실된 기도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지 않기를 힘쓰고 있다.

  2) 아무도 바울을 도우려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빛나게 하셨다. 바울은 강단에서 뿐 아니라 법정에서 어떻게 전파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모든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17절). 즉 바울이 자신들 앞으로 불려오지 않고서는 바울이 설교하는 것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황제 자신과 많은 고관들이 그의 설교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바울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보라.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17,18절). 만일 주께서 우리 곁에 계시다면 그는 우리를 강하게 하실 것이며 더욱 우리를 든든케 하실 것이다. 이전에 받은 구원들은 장래의 소망에 대한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구원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2) 그는 19절에서 문안들을 보내고 있다. 또한 20절에서는 병든 드로비모를 밀레도에 남겨 둔 것을 말하고 있다.

(3) 그는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재촉하고 있다(21절).

(4) 그는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디모데에게 보내는 문안을 전하고 있다.

(5) 그는 '주 예수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는 기도로 이 서신을 끝맺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 거하시는 것보다 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도라고 하겠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22절). 만일 은혜가 우리와 함께 있어서 우리를 회개시키고 변화시키며 겸손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며 마지막까지 우리를 견디게 할 수 있다면 이후에 우리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I.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을 디모데에게 미리 경고함 3:1-9

 

디모데는 교회 안에 악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이는 마 13:47,48절에 있는 대로 복음의 그물이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모두 포획했기 때문이었다. 옥이라 할지라도 티가 있으며, 밀이 타작 마당에 있을 때 밀 가운데에는 많은 겨가 있는 것이다.

(1) 복음 시대의 마지막 날에는 외부로부터의 핍박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부로부터의 타락 때문에 위험이 닥치게 될 것이다(1절). 외부에서 포위하고 있는 2천명의 군대보다 아군 내의 2명의 배반자가 더 큰 해를 주게 된다.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는 사람들이 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는 고통하는 때를 가져온다.

(2)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때를 알 수 있는 징조와 표적이 무엇인지를 말한다(2절).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고통하는 때를 가져 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돌아보는 그리스도인의 사랑 대신에 그들은 단지 자기들만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다. 탐욕은 고통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될 때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선도 기대할 수 없다. 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기대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자 하는 것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하여 애쓰게 될 때, 사람들은 서로 위험한 관계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자긍과 교만이 고통하는 때를 가져올 것이다. 고통하는 때는 또한 사람들이 '자랑하며 훼방할 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또한 사람도 무시하게 된다. 자녀들이 부모를 거역하고 학대하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감사치 아니함과 거룩하지 아니함이 고통하는 때를 가져온다. 사람들이 거룩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해서 감사치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때는 또한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는 때'일 것이다(3절). 즉 고통하는 때가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거역하게 되고(2절), 부모는 자녀들에 대해 무정하게 된다(3절)는 말이다. 무정한 자들, 즉 인간의 본성적인 애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들은 가장 엄숙한 맹약이나 언약 역시 상관치 않는다. 또 그들은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는 자들'이라 했다. 고통하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 서로 '참소하게' 된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마귀가 되는 것이다. 고통하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서 사람들은 '절제하지 못하게 되며 사납게' 된다. 그때가 되면 선하고 귀히 여김 받아야 될 것이 일반적으로 무시되어진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배반하고 완고해지며 자고하게 된다(4절). 사람들이 자기를 과시하며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게 되면 바로 그 때가 고통하는 때인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대개가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육욕적인 마음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고 하나님 앞에서 다른 것을 더 좋아하며 특별히 육욕적인 쾌락과 같은 그런 더러운 것들을 좋아한다. 고통하는 때가 되면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을 가지게 될 것이다(5절). 경건의 모양은 경건의 능력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을지 모르나 경건의 능력은 아주 결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3)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혹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계시킨다. 그는 그들이 사람들을 변절케 하기 위해 얼마나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6절). 그들은 남의 가정에 살금살금 들어가서는 그 사람들에게서 교묘하게 환심을 산 후 그들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들이 끌어들인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 보라. 약한 사람들이며 악한 사람들이었다. 어리석은 머리와 추악한 마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유혹자들의 먹이가 되게 한다. 바울은 그들이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결코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7절). 또한 바울은 그들이 더 나가지 못할 것을 예고한다(8, 9절). 이들 이단자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요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며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다. 그러나 저희는 더 나가지 못할 것이다. 비록 범죄한 영혼이 잠시 동안은 놓여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사슬로 묶으실 것이다.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9절). 즉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그들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Ⅱ. 말세에 있게 될 일들에 대한 여러가지 대책들을 설명함 3:10-17

 

(1)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본으로 제시한다(10절).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 적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모르거나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사도들을 가장 사랑하고 귀중히 여겼다.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전하였다. 따라서 듣는 자들이 잘못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진리를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디모데는 바울의 설교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생활 양식은 자신의 가르침과 일치되는 것이었다. 설교는 잘하고 생활은 좋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한다. 디모데는 바울이 의도한 그 위대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네가 나의 뜻하고자 하는 '의향'을 알았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디모데는 바울의 성한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디모데는 바울이 선을 행하므로 고난 당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11절). (여기서 바울은 단지 디모데가 자신과 함께 있었을 동안에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당했던 것들만을 언급하고 있다.) 디모데는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돌보아 주셨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이 결코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바울은 네가 과연 나의 '핍박 받은 것을 알았거니와'라고 말한다. 우리가 핍박 받는 것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된다면, 즉 선한 사람들이 어떻게 고난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어떻게 힘을 얻고 위로를 얻었는가를 알게 된다면, 낙담하게 되는 대신 오히려 그것들로 인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특별히 12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될 때에 더욱 그러하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히 살고자 하는 자는 더욱 핍박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 안에 확고히 거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바울의 삶은 세 가지 면에 있어서 좋은 본이 되었다. 그의 '가르침'과 그의 '생활'과 그가 당한 '핍박과 고난'이 그것들이다. 그의 삶이 비록 매우 유익한 삶이었다. 바울은 주님께서 자신을 그 모든 것 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디모데와 우리가 고난 가운데 처하게 될 때에 용기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혹자들의 종말에 대해서 경고를 한다(13절).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점점 더 좋아지게 되나, 악한 사람들은 사단의 음흉함과 그들 자신들의 부패로 말미암아 점점 더 나빠지게 된다.

(3) 바울은 디모데에게 특별히 그가 성경으로부터 배운 것에 대해 지시를 한다(14,15절). 선한 것을 배우는 것으로 만족해 하지 말고 우리는 그 선한 것을 계속해서 배워야 하며 또 그것을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만일 디모데가 진리를 배운 그대로 붙좇게 된다면, 그는 유혹자들의 올무와 함정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1) 우리가 배운 것들을 확실히 안다는 것은 대단히 복된 일이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를 생각해 보자. 디모데는 악한 사람들이나 유혹자들에게서 배우지 않았다. 그를 가르친 자들은 선한 사람들로서 진리의 능력을 친히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15절). 네가 세움을 받은 견고한 터를 알았나니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2)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서 정통하고자 하는 자들은 성경을 알아야 한다.

  3)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복된 일이다. 유년 시기는 배우는 시기다. 또한 참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성경으로부터 그것을 얻어야 한다.

  4) 우리는 성경에 대해 태만해지거나 가끔 읽거나 또는 전혀 읽지 않거나 해서는 안된다.

   ① 성경의 탁월성은 무엇인가(16절).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었다.

   ② 성경은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주는가. 성경은 능히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15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 자들이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만일 성경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성경의 진리와 유익됨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목적에 있어서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잘못된 것을 책망하여 바른 것을 지시해 준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17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은 성경 뿐이다. 성경으로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철저히 온전케 된다. 성경은 여러 가지 유익을 가진 것으로 다양한 목표와 목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믿음과 행함의 완전한 규칙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따른다면, 우리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완벽하고 철저하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성경을 더욱더 사랑하고 항상 성경을 더욱더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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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사역자가 지녀야 할 모습에 관한 바울의 언급 2:1-7

 

바울은 디모데가 그의 사역을 함에 있어서 지조와 인내를 가지도록 격려한다(1절).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삶들은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을 강하게 해야한다. 은혜의 진리가 있는 곳에는 은혜의 힘에 따라서 행하는 수고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선한일 안에서 더욱더 강하게 될 필요가 있다. 혹은 우리 자신의 힘이 강해지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즉 "강하라, 그러나 네 자신의 능력으로 강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은혜가 충족하게 있다. 우리는 이 은혜 속에서 강해야만 한다. 우리 자신들 안에서 강하거나 혹은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 안에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게 되어야 한다.

(1) 디모데는 고난, 즉 피흘리는 것까지도 감수해야만 했으며, 그렇게 해서 복음 사역에 있어서 자신을 계승할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했다(2절). 그는 그들에게 의무로서 복음을 맡겨야 했으며, 바울에게서 들은 것들을 그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는 사역자들을 임명하는 일에 있어서 두 가지 사실에 유의하여야 했다. 그들의 신실성 혹은 성실성과 사역자로서의 그들의 능력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들이어야 했다.

(2) 디모데는 고난을 받아야만 하였다(3절).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들은 자신들이 자기들의 대장에게 신실한 좋은 군사들임을 입증해야 한다. 자신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로 입증하려는 자들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을 때 고난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하며, 고난이 닥쳐올 때 그것을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내야 한다.

(3) 그는 이 세상의 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였다(4절).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들로 드렸다면, 우리는 이 세상일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이곳에 사는 동안 이생의 일들을 할 수 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생에서 무엇인가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세상 일들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군사된 자의 가장 큰 관심은 자신의 대장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관심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4) 그는 영적인 전쟁을 수행해 나감에 있어서 법대로 해야함을, 즉 전쟁의 법을 지켜야 함을 알아야 했다(5절). 선한 일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바른 방식으로 행해 나가야 한다. 이는 우리의 선한 점이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는 자들은 마침내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다.

(5) 그는 보상 받을 것을 마땅히 기대하여야 했다(6절). 만일 우리가 그 보상의 동참자가 되고자 하다면, 우리는 마땅히 수고해야 한다. 우리는 약속된 것을 받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에게 주의시킨 것을 다시 한번 권한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그의 사고력을 사용하여 생각하여야 했다. 사고력은 회심에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선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도 필요한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위해서 기도한다.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7절). 가장 지적인 사람에게도 이 은사는 더욱더 필요한 것이다. 만일 말씀 안에서 계시를 주신 이가 마음 가운데 총명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Ⅱ. 사역자에게 주는 격려의 말씀 2:8-13

 

(1) 바울은 고난 받는 디모데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시킨다(8절). 부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신앙고백에 대해 신실하도록 만들어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을 진정으로 믿고 바르게 생각한다면, 현세의 모든 고난 가운데서라도 그리스도인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 고난 가운데 있는 디모데에게 용기를 준 또다른 것으로는 바울이 그에게 고난의 본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1) 바울은 어떻게 고난을 당하였는가(9절). 우리는 혹 바르게 행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나쁜 대우를 받고 아주 선한 사람들이 아주 좋지 못한 대우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바울의 위로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핍박하는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인간의 힘에 의해서도 결코 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디모데로 하여금 예수를 증거함으로 매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2) 바울은 왜 즐거이 고난을 당하였는가(10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이 구원 받은 후 다른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일하고 고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3) 바울이 디모데에게 용기를 준 또다른 것으로는 내세에 대한 소망이었다.

  1)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신봉하는 자들은 무슨 값을 치루었든지 내세에서 그것으로 인한 유익을 분면히 얻게 될 것이다(11절).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게 된다면, 우리는 더 좋은 세상에서 그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한 자들'은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12절).

  2) 만일 우리가 주께 신실치 못했던 것으로 판명된다면 우리는 큰 위험 가운데 처하게 될 것이다. 주께서 마지막 날에 부인하신 자는 영원히 비참한 지경에 떨어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믿든 안믿든 간에 이것은 확실히 일어나게 될 것이다(13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 신실하다면, 그도 우리에게 분명히 신실하실 것이며, 만일 우리가 그에게 거짓되다면 그도 역시 경고하셨던대로 행하실 것이다. 이 말은 미쁜 말이다. 그러기에 의지할 만하고 또 믿어야 할 말씀인 것이다.

 

Ⅲ. 디모데가 해야 할 것에 대한 바울의 지시 2:14-18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의 사역에 있어서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한다.

(1) 디모데는 자신이 맡고 있는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이것이 사역자들이 하는 일이다. 즉 사람들에게 그들이 전에는 결코 알지 못하였던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즉 '그들로 말다툼을 하지 않도록 엄히 명하는 것'(14절)이다. 만일 사람들이 신앙에서의 말다툼이 거의 무익한 것임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말다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다툼을 하려는 경향이 매우 많다. 이러한 말다툼은 사람들을 혼란케 하고 멸망시키는 것 밖에는 아무런 결말이 없다. 15절은 우리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가르치고 있다. 서투르거나 신실치 못하거나 게으른 일꾼은 부끄러운 일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자신들의 일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꾸준히 행하는 자들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들이다. 그러면 그들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복음을 창안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맡겨진 복음을 옳게 분별하는 것이다.

(2) 디모데는 자신의 사역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에 유의해야 했다(16절). 그는 실수에 유의해야 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사람들이 한 번 망령되고 헛된 말을 좋아하게 되면, 그들은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오류의 길은 내리막 길이다. 한 사람이 잘못에 물들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물들게 되며, 또한 그 삶이 한 가지 잘못에 물들게 되면 그 사람은 곧 수많은 잘못에 물들게 된다. 바울은 바로 그 당시 잘못된 가르침으로 나아갔던 어떤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후메네오와 빌레도'가 그들이다. 그들은 부활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함으로써 진리의 가르침에 잘못된 해석을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앞으로 있게 될 것에 대한 가르침을 제거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잘못된 것은 대단히 번식력이 강한 것이며 그러기에 더욱 위험한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서 잘못을 범하였을 때 항상 그것을 그럴듯한 허위로 가장하려고 애쓴다.

 

Ⅳ. 하나님의 견고한 터에 대한 바울의 언급 2:19-21

 

(1) 사람들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선지자들과 사도들, 즉 신약과 구약의 가르침들은 여전히 확고하게 서 있다. 그것들은 보통 국새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각각의 면에 말씀이 새겨진 두 면을 지닌 인봉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하는 우리를 위로하는 말씀을 나타내 주고 있다. 주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을 잃지 않으실 것이다. 또다른 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는 우리의 의무에 대한 선포가 나타나 있다. 우리는 불의에서 떠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께서 우리를 버리실 것이다.

(2) 믿음이 무너진 몇몇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들의 성결함을 지키고 복음을 붙잡은 사람들이 있었다(20절).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나무와 질그릇 같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천히 쓰이는 그릇들이다. 그러나 모든 그릇이 다 천히 쓰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이들의 좋지 못한 행실로 말미암아 낙담하게 될 때, 다른 이들의 선한 행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주인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성결케 되는 것이다. 모든 그릇은 다 주인의 쓰기에 합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주인을 섬기는 일에 헌신해야 하며 또 그의 쓰임에 합당해야 한다.

 

Ⅴ. 피할 것과 행할 것에 관한 권고 2:22-26

 

(1)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할 것을 권고한다(22절). 육신의 정욕이 곧 청년의 정욕으로서 청년들은 조심스럽게 이것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청년의 정욕을 피할 수 있는 탁월한 처방을 기록해 주고 있다. 청년의 정욕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은혜들은 죄악된 것들을 소멸시켜 줄 것이다. 우리가 선한 것을 따르면 따를수록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멀리 악한 것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가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드려지는 기도가 아니라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2)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툼에 대해서 그리고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과 다툼'에 대해서 주의를 준다(23절). 그러한 것으로 나아간 자들은 자신들을 현명하고 유식한 자들로 여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자들을 어리석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 간에 언쟁과 다툼을 불러 일으킨다. 신앙이란 교묘한 논쟁을 일삼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믿고 행하는 것이다. 24절은 우리에게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가르치고 있다. 다투기를 잘하는 자들은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들이 못된다. 주의 종들은 또한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자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도 '온유함으로 가르쳐야 한다'(25절). 이것이 진리를 그 빛과 능력 가운데서 전하는 방법이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이다. 사역자들이 자기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가르칠 때에는 그들이 돌이키는 것을 목적해야 한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이다. 특별히 자신들을 대적하는 자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혹시나 함으로써 있게 되는 은사이다. 우리로 진리를 발견케 하신 그 하나님께서 또한 은혜를 베푸시사 진리를 깨닫게 하신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마음은 계속해서 진리를 거역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죄인들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26절은 죄인들의 비참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들은 가장 악한 주인의 노예이다. 그들은 올무에 걸려 있는데 그것도 가장 악한 올무 가운데 걸려 있다. 이는 그 올무가 마귀의 올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회개한 자들의 행복은 어떠한가. 그들은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전에는 마귀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마귀의 뜻대로 따랐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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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과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진실한 사랑 1:1-5

 

1. 본문의 서론(1,2)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이다. 생명은 목표가 되며 그리스도는 길이 되신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사람이었다. 사도로서의 그의 사명은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도로 부르신 것이었다. 우리는 생명의 약속을 가지고 있다. 이 약속은 다른 모든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있는 것이다. 디모데가 원했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이러한 축복들을 원해야 하며, 또 이 축복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라고 하겠다.

2. 바울의 감사(3-5)

바울은 기도를 많이 하였던 사람으로 밤낮 없이 기도하였던 사람이다. 기도는 그의 끊임없는 일이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종종 그러는 것처럼 그의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을 큰 위안으로 여겼다. 아울러서 그가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왔던 것을 큰 위안으로 여겼다. 디모데는 바울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여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렸으며, 따라서 바울은 그를 또 다시 보기 원하였다. 왜냐하면 그 눈물에 의해서 바울은 그에 대한 디모데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디모데가 조상들의 신앙을 잘 보존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5절). 아이들이 경건한 부모의 본을 따라 믿음의 성결함을 모방하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겠다. 진실한 자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은 거짓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련을 견디게 해주는 믿음이며 또한 살아있는 원리로서 그들 안에 거하고 있는 믿음이다. 디모데가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믿음을 물려받은 것이 곧 바울의 감사의 제목이었다.

 

Ⅱ.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권고가 주어짐 1:6-14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의무에 대해서 권고하고 격려한다(6절). 가장 훌륭한 사람들일지라도 일깨워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1) "재 속에 남아 있는 불을 다시 사르듯이 사람들 안에 있는 은사를 불일듯하게 하라. 은사들을 가지도록 할 뿐 아니라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하라." 디모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은사들을 사용해야 했다.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은사들을 증가시키는 최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은사들을 증가시키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비굴한 두려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것에 대해서 경계시킨다(7절).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셨다. 능력의 마음이란 곧 담대한 마음이며 확고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해 줄 것이다. 근신하는 마음은 곧 마음의 평온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종종 우리 자신의 상상의 산물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일에 낙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색하는 침착한 마음은 그러한 상상의 산물들을 방지해 준다.

(2)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 받을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대비할 것을 권고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부끄러워 말아야 한다. 디모데는 선한 노사도 바울이 비록 옥에 갇혀 있다 할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했다. 복음은 우리 주의 증거이다. 이 복음 안에서 그리고 이 복음에 의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증거해 주신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것을 좇는 것을 고백함으로써 그에 대한, 그리고 그를 위한 증거를 가지는 것이 된다. 바울은 주님께 갇힌 바 된 자였으며, 주님을 위해서 사슬로 묶여 있었던 자였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주에 대한 증거나 혹은 이 증거를 위해 갇힌 자 된 사람을 부끄러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후에 우리를 부끄러워 하실 것이다.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되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다른 성도들과 기꺼이 운명을 같이 하도록 하라. 즉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8절).

  2)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주목한다(9,10절).

복음의 본질과 그 영광스러운 계획이 나타나고 있다. 복음은 우리의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소망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성결을 위해 계획된 것이다. 장차 구원 받게 될 모든 자들은 이제 성결케 되는 것이다. 복음의 부르심은 항상 효과적인 부르심이며 거룩한 부르심이다. 그 부르심의 근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영원하신 목적에 있다. 만일 우리가 그 부르심을 공로로 받고자 했다면 도저히 그것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부르심에 의해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의한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 때문에 받는 고난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로서 죄인된 인간에게 오는 모든 은사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다. 복음은 바로 이러한 목적과 은혜를 증거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위해서 고난 당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고난 당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사망은 폐지되었다. 한때 원수였던 사망이 이제는 친구가 된 것이다. 사망은 우리를 고난과 죄가 가득찬 세상에서 완전한 평화와 순결의 세계로 데려다 주는 문인 것이다. 사망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이기지 못하지만, 반대로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사망을 이긴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10절).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저 세상을 빛 가운데 드러내셨으며, 우리앞에 그것을 나타내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그것을 제공해 주셨다. 이 모든 것은 복음에 의해서 된 것이다.

  3) 바울 자신이 보여준 복된 본을 생각해 보라(11,12절). 그는 복음의 반포자로 임명받되, 특별히 이방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임명받았다. 바울은 그것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생각했다. 디모데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아무도 복음을 인하여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선한 사람들은 종종 세상에서 선한 이유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한다. 그들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데 이는 그 이유가 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견디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의뢰한 자들은 자기들이 의뢰한 자를 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무엇을 맡겨야 하는가? 우리 영혼의 구원과 하늘 나라에 가기까지 우리를 지켜달라는 것등 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그와 같은 것들을 그분께 맡길 때 그분께서는 지켜주실 것이다. 우리가 우리 영혼의 보고서를 내야만 할 날이 이르게 될 때, 만약 우리가 적극적인 순종의 믿음으로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다면 우리는 그가 그것을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3)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킬것'을 권고한다(13절). 이는 곧 모든 이교와 거짓된 가르침에 반대하여 바른말을 고수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믿음과 사랑으로써 해야 하는데 이 둘은 함께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른 말을 믿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해야 하되 그 진리를 믿고 그 선함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 13절에서의 '믿음과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잡힌바 된 것이어야 한다. 14절 말씀을 보도록 하자. 여기서 '아름다운 것'이란 곧 바른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것은 디모데가 세례식과 안수식에서 위탁받은 것이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것을 순전하고 온전하게 보존하여 우리의 뒤에 오는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위탁되어져 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리 잘 배운 사람들일지라도 자신들이 처음에 배웠던 것보다 더 잘 지킬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복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직 성령에 의해서만 그것을 지킬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과 임재하심은 인간의 노력을 배제하지 않으며 서로 매우 잘 조화를 이룬다.

 

Ⅲ. 여러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언급 1:15-18

 

(1)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변절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15절).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다.

(2)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충성을 언급하고 있다(16절). 그는 자주 바울을 유쾌케 했으며 그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네시보로가 로마에 있었을 때 그는 부지런히 바울을 찾아 만났다(17절). 선한 사람이란 선을 행할 기회를 부지런히 찾는 사람일 것이다. 에베소에서 그는 바울을 섬겼으며 바울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하였다. 그러면 바울은 그의 친절을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가? 16-18절의 내용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는 기도로써 그에게 보답하고 있다.

(3)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가정뿐 아니라 오네시보로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그날이란 곧 사망의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는 것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다. 만약 우리가 그때에 긍휼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금 주님께 그것을 구해야만 한다.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든 우리 친구들을 위해서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달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과 우리의 친구들이 심판날에 주님의 긍휼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사망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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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2절)
전도의 권면과 개인적인 당부 - 바울은 전장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진리 안에 거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본장에 와서는 사랑하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최후의 교훈을 주고 있다. 본장은 특히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대사도의 비장한 마음과 고백이 나타나 있어 엄숙함과 더불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1) 전도자의 사명에 끝까지 충성할 것을 권면함 (1~5절)
2) 바울의 죽음에 대한 예견 (6~8절)
3) 주변 사정에 대한 설명 (9~18절)
4) 문안과 축도 (19~22절) 의 네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본장은 성도들이 바른 교훈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진리 가운데 바로 서야 하며, 말씀 전파 사역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차적인 과제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행 28:31; 엡 2:17; 계 14:6).
[1절]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심판주로서 재림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인 동시에 주의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강조한 것이다(롬 2:16; 살후 1:7~9). 그리스도께서는 종말에 재림하셔서 이 땅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나라(왕권)를 세우시며 모든 것을 신(信).불신(不信), 선(善).악(惡) 간에 판단하실 것인데 그때 모든 인류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삶을 결산해야 한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 곧 성도들의 궁극적인 소망의 대상을 자신의 명령의 근거로 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파 사역의 중요성과 이 땅에서의 충.불충성의 여부는 하늘의 상급<계 22:12, 구원의 상급 문제>과 직결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마 16:27; 고후 5:10).
[2절]
복음 전도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열거되어 있다. 첫째, 복음 전파에 항상 힘써야 한다. 둘째, 사람들을 경책, 즉 실수와 허물을 깨닫게 해야 한다. 셋째, 사람들의 범죄에 대해 경계(헬, 에피티마오), 즉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고후 2:6). 넷째, 사람들을 권해야 한다. 즉 잘못된 성도들을 징계만 해서는 안 되며 사랑의 정신으로 위로하고 권면해야 한다(고후 7:3; 빌 4:1).
[3절]
귀가 가려워서. 신약에서는 이곳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귀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충족시키는 거짓된 정보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릇된 자세를 가리킨다(렘 5:31).
[4절]
허탄한 이야기. 망령된 신화들과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이는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에서 주로 발견된다(벧후 1:16).
[5절]
이단의 미혹과 종교적 박해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 디모데에게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복음 전파 사역을 수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본절에는 주의 종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 및 임무가 네 가지로 언급되어 있다. 근신(헬, 네페). 스스로 정신을 차려 말을 자제(自制)하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난. 성도들은 고난을 통해 세상의 불의를 이기며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마 16:24). 전도인의 일. 복음 전파 사역 자체를 가리킨다(롬 1:14). 직무. 사역자로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봉사하는 일을 의미한다.
(6~8절)
바울 전도 사역의 회상 -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견하고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며 승리와 환희에 찬 신앙 간증을 하고 있다. 본문은 한 사람의 신앙 인격은 그의 지나온 생애를 반영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죽음을 극복하며, 죽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소유한 영생의 기쁨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행 24:15; 딛 2:13; 벧전 1:3).
[6절]
관제.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어린 양을 제단 위에 올려 놓고 불사르기 직전에 그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뜻한다(민 28:24; 빌 2:17).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견하고 남은 생명을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표명된 것이다(민 28:7; 롬 12:1). 나의 떠날 기약. 그의 사형, 즉 순교를 의미한다<요 21:19, 현대 성도와 순교>.
[8절]
의의 면류관. 구원이 전제된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했던 바울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를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수고를 외면치 않고 반드시 보상해 주시며(시 19:11), 이 땅에서 성도들이 당하는 일시적인 고난은 영원한 상급의 기초가 되며(롬 8:36, 37), 하늘 상급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고전 3:13; 고후 5:10).
(9~18절)
죽음을 앞둔 바울의 부탁과 인사 - 자신의 최후를 예견한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속히 올 것을 당부하면서 자신의 주변 사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한편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나 애정 때문이 아니라 사도로서 하나님 나라와 복음 전도의 입장에서 그들을 평가한 것이다.

[9절]

바울이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한 이유는 서론 및 1:4절을 참조하라.

[10절]

데마. 한때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을 돕던 조력자로서 바울의 1차 로마 투옥 때 바울과 함께 있었으며 2차 투옥 때도 일시적으로 봉사했으나(골 4:14; 몬 1:24) 결국 인간적으로 바울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마저 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은 하나님과 세상(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의 신앙은 곧 불신앙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마 7:22, 23; 계 3:16).

[11절]

마가. 마가복음의 저자이며(막 1:1) 마가 다락방의 주인인 듯하다(행 12:12). 그는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동행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되돌아감으로써 바울과 좋지 못한 관계에 놓이게 되고 마침내는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결별하는 원인이 되었다(행 1:13~15; 행 13:13; 행 15:36~40).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서로 화해하며 옥중 서신을 기록할 무렵에는 둘이 같이 있었으며(골 4:10) 후에 그는 소아시아 지방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14절]

구리 장색 알렉산더. 딤전 1:20절에 나오는 알렉산더와 동일 인물로서 그리스도를 믿다가 배교한 자이며 바울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이다. 한편 이러한 자를 직접 비난하거나 보복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최후 심판에 맡기는 바울의 자세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신실한 종말론과 인내의 정신, 아울러 인간은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할 능력이 없는 존재란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시 62:12; 롬 2;6; 계 20:13).

[16절]

내가 처음 변명할 때. 바울이 제1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된 후에 받은 첫 번째 예비 심문을 가리키는 듯하다.

[17절]

본절에서 바울은 죽음의 상황 가운데서 제1차 로마 투옥 때 있었던 사건, 즉 하나님의 보호와 석방, 복음의 확장을 회상함으로써 영원한 보호와 천국의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간증을 하고 있다(살전 1:10). 사자의 입. 직접적으로는 바울의 제1차 로마 투옥을, 좀더 넓은 의미로는 네로 황제에 의한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뜻한다<행 8:1, 초대교회가 당한 박해>.

(19~22절)

문안과 축도 - 본문은 본서 전체를 마감하는 결론부로 문안과 축도가 나온다.

[20절]

에라스도. 고린도 출신으로 디모데와 한 팀이 되어 에베소에서 목회했으며(행 19:22), 바울의 전도 사역에 일익을 담당했던 동역자이다. 드로비모. 에베소 출신으로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를 위한 에베소 교인들의 헌금을 예루살렘까지 운반한 자이다(행 20:4; 행 21:29).

 

# 해설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라 (1~8절)

이 부분은 바울의 유언 명령이라 할 수 있으며, 예수께서 최후로 남기신 지상 대명(至上大命)을 연상시킨다(마 28:18~20; 행 1:8). 평생을 전도에 심혈을 기울인 바울이 유언으로 전도를 명한 것은 첫째는 전도의 직무가 소중한 것임을, 둘째는 전도의 소명은 죽음도 꺾지 못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죽음을 앞둔 개인적 부탁과 문안 인사 (9~22절)

9절의 속히 오라는 당부에서 감옥에 갇혀 순교를 기다리는 노(老)사도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또 이름만 언급된 초대교회 인사들의 명단을 대하면서, 우리는 자칫 추상화하기 쉬운 성경의 교훈들이 사실은 바로 현대의 우리와 같이 이 땅에 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생활 현장에 주어졌던 교훈임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엄격히 구분하자면 22절 한절만을 마지막 인사로 볼 수 있으나 여타 서신에 비해 개인적 이야기를 길게 다른 9절 이하 전체를 한 문단으로 묶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 핵심

1~8절

디모데에게 이단에 맞서 항상 전도하며, 복음의 진리로 성도들을 가르치라는 권면이다.

 

# 묵상

전도자의 의무 (2~5절)

전도자는 항상 긴장 가운데 말씀 전파에 힘써야 하며 모든 일에 인내와 근신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또한 때로는 부드러운 권면으로, 때로는 강한 책망으로 귀가 어두워진 자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이러한 전도자로서의 사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바울의 신앙 고백 (7~8절)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도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것과 구원에 대한 강한 확신을 고백했습니다. 죽음을 예견하는 바울의 자세는 희망과 기쁨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맡은 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자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데마의 인물됨 (10절)

데마는 본래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몬 1:24). 그러나 본문을 통해 볼 때 데마는 바울이 고난 가운데 처했을 때에 그를 등진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했다는 것은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받게 되는 고난들을 이기지 못하고 개인의 편안함을 좇아 전도자의 길을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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