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27편 1절~5절]
1절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절 -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절 -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절 -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절 -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집을 세우는 수고도, 파수꾼의 깨어 있음도,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수고도 헛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상급인 자녀는 장사의 화살과 같아서, 이것이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됩니다.

 

1. 수고가 헛된 이유 (1~2절)

열심히 수고하며 산다고 인생이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이 자기 힘과 지혜를 믿고 행하는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헛될 뿐입니다. 소득을 얻기 위해 밤낮 쉬지 않고 일해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가정, 하나님을 무시하는 나라의 결국은 패망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없는 교만한 삶을 싫어하십니다. 유한한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창조자요 주권자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문제 앞에서도 염려 없습니다. 평안과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모든 공급과 안전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의지하면, 그분의 사랑을 입고 쉼을 얻으며 수고를 보상받습니다.

* 가정이든 나라든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나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께 주도권을 내어 드릴 일은 무엇인가요?

 

2. 자녀는 여호와의 상급 (3~5절)

자녀는 우연히 태어난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이요 상급입니다. 이를 인정할 때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 소유로 여기고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 3:16).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하듯, 가정에 자녀가 많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믿음의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과 힘이요 부모 세대의 영적 전투력입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신앙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일입니다. 원수가 공격하기도 하지만(마 2:13), 하나님이 집을 세워 가시기에 신앙의 계보는 중단이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자녀 양육은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르는 것입니다.

* 시편 기자는 자식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묘사하나요? 내가 자녀를 양육하는 기준과 지향점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스스로 인생을 경영하려는 조급함과 헛된 노력을 내려놓겠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모든 삶을 의탁하고 참된 안식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자녀를 '내 것'으로 여기며 좌지우지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업, 믿음의 용사로 바르게 양육하는 부모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큐티)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④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다

시편은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께 달려가 의지했던 한 인물의 삶을 깊이 투영한다. 바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이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참회하고, 하나님께 위로받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위대한 신앙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하셨다.

 

50편

찬양시. 아삽은 다윗이 임명한 찬양대 단장(대상 25:2)이자 에단과 함께 놋 제금을 치는 자였다(대상 15:19). 또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견자'라고도 불렸다(대하 29:30). 제의 음악을 담당했던 아삽은 이 시편에서 여호와가 제사보다 바른 행위를 기뻐하신다는 내용을 기록한다. 미가 6장 6~8절과 이사야 1장 11~20절이 연상되는 내용이다.

 

51편

참회시. 다윗은 밧세바와 간통하고 죄를 은폐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받자 즉시 회개한다(삼하 11~12장). 다윗은 자신의 죄가 인간에게 내재된 죄성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을 깨끗이 씻어 달라고 간구한다. 제사로 만회할 수 있을 만한 죄란 없다. 하나님이 제사를 제정하신 것은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진정으로 회개하며 아파하는 심령이다.

 

52편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다윗의 해방을 밀고해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들의 대학살을 유도한 때를 배경으로 한다(삼상 22장). 마스길은 '지혜'를 뜻한다. 포악한 자의 악한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시편이다.

 

53편

지혜시. 표제에 쓰인 '마할랏'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시편을 노래하는 일정한 곡조를 나타내는 듯하다. '아픔', '질병' 등과 관련된 단어인 만큼 슬픈 곡조를 의미할 가능성도 있다. 이 시편은 14편과 거의 유사하다.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가증한 악을 행할지라도, 하나님은 의인을 찾으시며 포로 된 백성을 결국 구원해 주실 것이다.

 

54편

탄원시. 표제에 따르면,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하고 사울에게 그의 거처를 고발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삼상 23장). 하지만 '낯선 자들'(3절)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시편을 십 사람들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히브리어 '자림'은 외국인 또는 이방인을 나타내는 단어이기에, 헤브론 근처 유다 자손의 땅에 살고 있는 십 사람들을(수 15:55) 가리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시편 기자는 원수를 멸하시는 하나님께 '낙헌제'로 제사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제사가 따로 있다기보다는, 상당한 물질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낙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다바'는 '기부'를 뜻한다.

 

55편

탄원시. 숨막히는 절망과 두려움 속에 있는 시편 기자는 자신을 비둘기에 투영한다. 비둘기처럼 날아서 피난처에 숨고자 하는 것이다. 더 비참한 것은 시편 기자가 피하려는 상대가 '원수'가 아니라 '동료'와 '친구'라는 점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함께 다니던 무리, 즉 함께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악독함에 대한 대가는 사망뿐이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동료를 배신하고 위선을 떨며 공격하는 자들 앞에서 의인이 해야 할 일은 그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뿐이다.

 

56편

찬양시. '믹담'은 '편지'의 오기라는 견해도 있고, '경구'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 노래의 곡조는 문자적으로 '멀리 떨어진 상수리나무의 비둘기'다. 비둘기가 간신히 날개를 접고 쉴 수 있는 나무를 만나기까지 긴 시간 동안 쉼 없이 날아다니며 피로해 있는 것처럼, 지친 감정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임을 나타내는 듯하다. 표제를 따르면 이 시는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 즉 생명에 위협을 받던 때 쓴 것이다. 그는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베푸실 구원의 은혜를 찬양한다. 하나님이 자기편이시기에 사람이 자신에게 어찌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주님이 자기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셔서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신다고 선포한다.

 

57편

찬양시. 56편과 57편은 시작이 '한네니 엘로힘'(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으로 같아서 '쌍둥이 시편'이라 불린다. 하지만 57편이 찬양의 내용을 좀 더 힘차게 강조한다. 노래의 형태는 56편과 동일하게 '믹담 시'이지만 곡조가 알다스헷이다. 이 단어는 '파괴하지 말라'는 뜻으로, 시편 58, 59, 75편에도 이 곡조가 사용되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굴에 있을 때 지은, 하나님에 대한 우주적 찬양의 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굳게 확정되었다고 고백한다.

 

58편

탄원시. 불의한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시다. 정의를 말해야 할 자들과 공의로 판결해야 할 자들이 침묵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어 달라고 탄원한다. 악인이 보복당하는 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건이다.

 

59편

탄원시. 사무엘상 19장을 배경으로 한다. 사울이 사람을 보내 다윗을 죽이려고 집을 지키고 있을 때다. 시편 기자는 원수들로부터 자신을 건져 달라고 탄원하는 동시에, 원수들에게 합당한 형벌을 내려 달라고 간청한다. 즉, 원수들을 편히 죽게 두지 마시고 철저히 낮춰 달라는 것이다. 악인이 개처럼 울며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할 때 비로소 세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60편

표제에 따르면, 이 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역사적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 아름다운 곡조에 맞춰 부른 것이다. 이 시편의 배경은 사무엘하 8장 13절이나 역대상 18장 12절인 듯한데 구체적인 세부 진술은 다르다. 사무엘하는 다윗이, 역대상은 아비새가 에돔 사람 18,000명을 죽였다고 한다. 시편은 두 본문의 절충안 같다.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울 때 '요압'의 군대가 등장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을 쳐서 '12,000명'을 죽였다는 것이다.

원래 다윗은 아람과 암몬 동맹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북쪽으로 원정을 간 상태였다. 에돔은 그 틈을 노리고 이스라엘의 남쪽을 공격했다. 다윗은 북부 원정에서 승전했지만 에돔의 협공을 받아 어려운 처지였고, 이때 요압과 아비새가 사해에서 에돔을 격파하며 위기에서 벗어난 듯하다. 이처럼 에돔은 이스라엘의 어려운 형편을 노려 침투하는 야비한 면모 때문에 이스라엘을 실제로 멸망시킨 제국들만큼이나 비난을 받는다.

전쟁의 패배는 하나님 백성에게 근본적인 실존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시편 기자는 패배로 인한 수치를 묘사하고(1~3절), 하나님께 승리를 간청하며(4~8절), 이스라엘의 승리를 확신한다(9~12절).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③

 

소망의 하나님을 갈망하다

시편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려는 갈망으로 가득하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기억하고 현재의 역경을 극복하려는 안간힘을 표현한다. 장차 있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소망을 놓지 않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고 힘이시며 큰 도움이시다.

 

42편

탄원시. 구원을 갈망하는 강렬함이 물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시편 기자의 영혼은 물을 마시지 못한 사슴처럼 하나님을 목말라하기 때문에, 시 전편에서 강물.눈물.폭포.파도 등 물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시편 기자는 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지만(4절) 지금은 먼 북쪽에 와 있다(6절). 즉, 성전에 있던 사람이 포로로 사로잡혀 가거나 유배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시 43:1). 하나님을 향해 낙심했다고 호소하면서도 그분 안에 소망이 있음을 증언한다.

 

43편

시편의 제2권(42~72편) 중 유일하게 표제가 없다. 43편을 42편과 한 편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비슷한 사상에 동일한 후렴구까지 지녔기 때문이다(42:5; 43:5). 그렇다면 왜 두 개로 나누었을까. 43편은 42편에 비해 성전에 대한 갈망에 더 초점을 두는 듯하다. 장르상으로도 단순한 탄원시보다 성전시로 볼 여지가 있다.

 

44편

교훈시. 제왕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1~8절),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옛날에 하셨던 일'을 회상한다. 칼과 활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원수에게서 그들을 살리셨다. 둘째(9~22절), 주의 백성이 이웃에게 이유 없는 핍박과 조롱을 당하고 온 민족이 도살할 양같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부분 때문에 유태인의 대학살을 대변하는 시로 읽기도 한다. 셋째(23~26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부르며 간절히 도움을 구한다.

 

45편

제왕시. 왕의 결혼식에 부르는 축가로 사용될 만큼 성혼식의 장면을 잘 묘사한다. 왕(2~9절)은 하나님을, 왕비(10~15절)는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 히브리서는 이 시를 그리스도의 왕적 권위에 비유해(1:8~9) 왕이신 그리스도가 신부인 교회와 혼인 관계를 맺는다는 뜻으로 보았다.

 

46편

시온의 노래. 예루살렘에 적의 침입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들을 평정하시고 야곱을 구하셨다. 적들의 공격은 바닷물이 솟고 뛰놀며 넘치는 이미지로 묘사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 지존하신 이의 성소는 예루살렘을 적시는 복의 물줄기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나와 모든 세상을 적시게 될 것이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

 

47편

찬송시. 만민이 손바닥을 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열방은 하나님을 경배한다. 이 시편에서 두드러지는 '올라감'의 이미지는 예수님의 승천과 연관된다. 오늘날에는 이 시를 예수님 승천일에 읽는다.

 

48편

찬송시. 시온의 노래. 여호와는 북방의 시온 산에 좌정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에 반역하는 자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려 했다고 묘사한다(사 14:13). 여호와가 보호하시는 예루살렘은 적들의 공격에도 견고히 살아남았다. 유다 백성은 여호와가 하신 일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다. 마지막 절에 있는 '죽을 때까지'는 '영원히'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49편

지혜시. 구약성경은 대개 죽음 이후의 생에 관심이 없다. 고대 사람들은 죽으면 '스올'이라는 곳으로 내려간다고 믿었는데, 스올은 '지옥'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또 구약성경의 세계관에서 이생의 삶의 내용이 사후 보상을 위해 중요하다는 개념은 찾기 어렵다. 인생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 사후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생은 훨씬 후에 발전된 신념이다.

그런데 이 시편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죽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에 더 초점을 둔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 한들 영원히 살 수도, 재물을 가져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덧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리석은 자들처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접하셔서 스올의 권세로부터 우리 영혼을 건져 주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의인의 최종 운명은 악인의 운명과는 다르다. 의인에게는 영생으로부터 얻을 위로가 남아 있다. 오늘날 유대교의 장례에서는 시신 매장 후 7일의 애도 기간에 날마다 시편 49편을 낭독한다.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②

 

매 순간 하나님을 기억하다

시편 기자는 삶의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신실하게 응답하셨다. 대부분 절망 가운데 있었던 시편 기자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의 희로애락 가운데 역사하신다.

 

시편의 표제

총 150개의 시편 중에서 116개가 히브리어 본문상의 표제(제목)을 가지고 있다. 표제가 없는 시편은 모두 34개다. 제1권(1~41편)에서 4개(1, 2, 10, 33편), 제2권(42~72편)에서 2개(43, 71편), 제4권(90~106편)에서 10개(91, 93~97, 99, 104~106편), 제5권(107~150편)에서 18개(107, 111~119, 135~137, 146~150편)가 그렇다.

 

시편의 표제어가 담고 있는 정보

시편에서 '다윗의 시'(미즈모르 레다비드)라는 표제어가 들어 있는 시편은 전부 73개다. 일부 시편은 다른 성경 본문에 의해 다윗의 저작설이 입증되기도 한다. 예컨대 예수님은 시편 110편(막 12:36)을, 사도들과 바울은 2편(행 4:25~26), 16편(행 2:25~28), 32편(롬 4:6~8), 69편(롬 11:9~10), 110편(행 2:34~35)을 다윗의 작품으로 인용한다.

사실 시편에는 창조, 하나님의 언약, 출애굽, 율법, 약속의 땅, 예루살렘 성전, 바벨론 포로 생활, 예루살렘 귀환 등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사건들이 담겨 있다. 이런 주제들 틈에서 다윗의 인생이 강렬히 조명되어 있는 것이다. 시편에서 다윗의 입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시편 22~41편은 모두 '다윗'과 관련된 표제를 지니고 있다(표제가 없는 33편은 32편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상당수의 시편이 다윗과 역사적.신학적으로 동반자 관계에 있는 셈이다.

 

22편(22:1~31)

탄원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중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들어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게 아닌가 하는 절망 속에 상실감으로 신음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결국 모든 인간이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여호와가 하신 일을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아얠렛사할에 맞춘 노래'라는 표제가 있는데 악기를 동반해 연주하는 가사 있는 노래일 것이다. '인도자를 따라'도 모호하지만 음악적 암시를 담고 있는 단어다. 히브리어 어원에 따르면 '승리를 주신 분', '영생을 가지신 분'을 향한 노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얠렛사할'은 문자적으로 '새벽의 암사슴'을 의미하는데, 암사슴의 특정한 소리나 행동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나 연주 형식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23편(23:1~6)

찬양시.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표현한 대표격의 시편이다. 여호와는 자기 양 떼를 이끄시는 목자로서, 자기 백성을 이끌고, 보호하고, 회복시켜 주고, 기름 발라 치료해 주며, 영원히 자기와 함께 거하도록 집으로 인도하신다. 유목민 출신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양으로, 여호와를 목자로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예수님도 죄인들을 향한 자신의 긍휼을,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애쓰는 신실한 목자에 비하신 바 있다(눅 15장). 다윗도 목동 출신이기 때문에, 그가 들판에서 아버지의 양들을 치던 시절에 이 시편을 지었다는 타당성 있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24편(24:1~10)

찬양시. 여호와의 창조 사역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해, 여호와의 법궤가 성소에 안치되는 장면으로 마치는 시편이다. 형식 면에서는 묻고 답하는 구조다. 즉,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지 묻고, 성결한 삶을 살며 여호와를 찾는 자라고 답한다. 또한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고 묻고, 전쟁에 능한 만군의 여호와시라고 답한다. 현대 유대교에서는 회당에 토라 두루마리를 안치할 때 이 시편을 낭송한다.

 

25편(25:1~22)

탄원시. 히브리어 원문은 각 절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관련 있는 시편 34편과 함께 언급되곤 한다. 시편 기자는 '젊은 시절' 저지른 죄와 허물로 생겨난 원수들 때문에 말년에 대가를 치르게 된 듯하다. 그래도 한결같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있다.

 

26편(26:1~12)

찬양시. 시편 기자는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완전함을 호소하고, 자신을 살피고 시험해 달라고 청한다. '주께서 계신 집', '무리 가운데'라는 표현이 성전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가리킨다면, '손을 씻고', '제단에 두루 다니며'라는 표현에서는 성전 제의를 짐작할 수 있다.

 

27편(27:1~14)

찬양시. 26편과 내용이 이어진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여호와가 자녀를 보호하신다는 시편 기자의 확신과 신뢰가 드러난다. 여호와가 '빛'이요 '구원'이시므로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앞은 원수들에게서 여호와가 구원하시리라는 확신을, 뒤는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되리라는 신뢰를 다룬다.

 

28편(28:1~9)

찬양시. 시편 기자는 원수들로부터 구원해 주실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여호와만이 힘과 방패라고 고백한다. 현대 유대교에서 기도를 위한 최소 인원인 13세 이상 남성 10명을 셀 때, 28편 9절을 이용한다. 이것이 히브리어 열 단어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인구 조사 때문에 징계를 받은 다윗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숫자로 세지 않는 것이다(삼하 24:10).

 

29편(29:1~11)

찬양시. 여호와의 위대하신 능력을 '많은 물'의 소리에 비유하며 하나님 백성이 복받을 것임을 강조한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10절)라는 것은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악한 시도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심판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구원의 원천적인 모형이 그려진 시편이다.

 

30편(30:1~12)

찬양시. '성전 낙성가'라는 표제어처럼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의 열심에 헌정된 시편이다. '스올'이 기록된 시편으로도 유명하다. 여호와는 시편 기자를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노염은 잠깐이지만 그의 은총은 평생' 베푸시는 은혜로우신 분이다. 여호와께 받은 은혜를 묘사하는 장면은 다윗이 여호와의 법궤를 성소에 안치하면서 온 힘을 다해 춤추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11절). 현대 유대교에서는 이 시편을 이방인이 더럽힌 성전을 회복했던 역사적 사건(하누카)을 기념하며 낭송한다.

 

31편(31:1~24)

탄원시.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견고한 반석이나 산성' 등으로 묘사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에 의지해 원수들의 공격을 견뎌 내고 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5절)는 현대 유대교에서 저녁 기도문의 일부로 사용되며, 잠자리 기도문으로도 사용된다.

 

32편(32:1~11)

찬양시. 지혜시. '다윗의 마스길'이라는 표제가 있다. '마스길'은 히브리어로 '지혜자', '학자' 등을 뜻하는데, 지혜를 깨닫는 내용이 있어서 이런 표제어가 붙은 듯하다. "복이 있도다"(1절)는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되는 시편 1편을 연상시킨다. 전반부(1~5절)는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후반부(6~11절)는 하나님이 바른길로 인도해 주심에 대한 신뢰를 담고 있다. 시편 기자는 자기 죄와 허물에 대해 깊은 절망을 느끼는 한편, 이 죄와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면 사함받을 수 있다는 확신도 강하다. 바울은 값없이 베푸시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면서 시편 32편을 인용했다(롬 4:6~8). 현대 유대교에서는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가장 절박해지는 대속죄일(일곱째 달 열째 날)에 낭송한다.

 

33편(33:1~22)

찬양시. 감사시. 표제가 따로 없지만, 앞 편 마지막 절과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32편과 연결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구원받은 이들이 부르는 감사의 찬양이다. 여호와는 온 땅을 다스리시며, 모든 거민을 굽어살피신다. 특히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고 살피신다. 따라서 정직한 자들은 그분 앞에서 자기 마음을 숨길 것 없이 오로지 여호와를 찬송해야 한다. 군대와 군마가 모두 헛되며 오직 여호와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에, 우리 마음도 그분을 즐거워해야 한다.

 

34편(34:1~22)

찬양시.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표제가 매우 구체적이다. 애굽의 왕을 '바로'(파라오)라 칭하듯이 블레셋의 도시 국가 왕들은 '아비멜렉'이라 통칭한다. 여기서는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를 말한다. 다윗의 인생사 중에서도 적국에 몸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미친 체해야 했던 때만큼 비참하고 두려웠던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삼상 21장). 다윗의 일생이 낱낱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도 이스라엘에 생동감 있게 전해졌을 것이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12절). 시편 기자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서도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고 그분께 구원받기를 바랐다.

 

35편(35:1~28)

탄원시. 시편 기자는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들에게 쫓기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믿는 것은 여호와의 심판이다. 여호와는 가난한 자를 건지시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가 경험한 환난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을 연상시키기도 한다(11~16절).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대항해 위증하고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하나님은 이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시편 기자의 기도를 그의 품에 돌려주셨다(13절).

 

36편(36:1~12)

찬양시. 표제에 있는 다윗의 이름에 '여호와의 종'이 덧붙여졌다. 시편 기자는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해서 건짐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성전에 도피처를 마련했을 수도 있다(7~8절). 그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하늘과 공중까지 이르고 의와 심판이 산과 바다와 같다고 노래한다. 이런 대구 반복은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시편 특유의 형식이다.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9절)는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와 관련해 중요한 교훈을 던지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37편(37:1~40)

찬양시. 지혜시. 히브리어 원문은 1~2절씩 대구를 이루며 알파벳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5절)처럼 시편보다 잠언에 어울릴 듯한 구절도 있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11절)는 예수님이 산상 수훈에서 인용하신 구절이다(마 5:5). '어떻게 악인이 형통할 수 있는가?'라는 인류의 고뇌에 찬 질문에 대한 구약의 고전적인 답변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기에 의인은 설사 넘어진다 해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손이 붙으시기 때문이다. 의인은 절대 버림받지 않으며 의인의 자손은 걸식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호와가 행하시는 의다. 그러니 지금 악에서 떠나 의를 행해야 한다. 아무리 악인의 세력이 커도 무성한 나뭇잎이 말라 없어지는 것처럼 결국 그들은 사라져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38편(38:1~22)

탄원시. '다윗의 시'라는 표제에 '기념하는'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졌다. 70편은 비슷한 표제어를 '기념식에서'로 옮기고 있다. 두 시편 모두 하나님께 신속한 구원과 회복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전반부(1~11절)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시편 기자의 고통을, 후반부(12~22절)는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하는 시편 기자의 기도를 다룬다. 그는 줄곧 성한 곳이 없어 지치고, 감당할 수 없는 짐에 눌리며, 종일토록 슬퍼하다가 간신히 하나님께만 부르짖는다. 이런 인생이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와만이 구원이시라는 것이다(22절). 이 시편을 다윗 인생에 투영한다면 아마도 생의 말기에 해당할 것이다. 왕위에 오르기까지 억울하게 고난을 당했던 다윗은 말년에는 자신의 죄악 때문에 집안 내부의 살인과 반란을 겪어야 했다.

 

39편(39:1~13)

탄원시. 표제에 나오는 '여두둔 형식'은 헤만과 더불어 다윗 시대 찬양 사역자였던 여두둔(대상 16:42)이 만들어 낸 음악적 형식을 의미한다. 건강 회복을 바라는 마지막 구절을 근거로 이 시편을 병상에서 부르는 노래라 하기도 한다. 이 시편은 병마의 원인이 죄라고 보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따라서 주님이 죄를 사해 주시면 그가 질병에서도 고침을 받을 것이다. 그의 일생은 주 앞에서 없는 것과 같고, 인생은 그림자와 같을 뿐이지만 그는 계속해서 주님께 죄 사함을 간구한다. 비록 나그네처럼 떠도는 인생일지라도 주님과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0편(40:1~17)

탄원시. 감사시. 시편 기자는 조울증이 의심될 정도로 희비의 감정 사이를 극적으로 오간다. 1~10절만 보면 한 편의 찬양시로 손색이 없다. 그는 여호와를 기다린 끝에 구원을 경험하고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러나 11절에서 시편 기자는 다시 탄식하며 여호와께 보호를 간청한다. 수많은 재앙이 그를 둘러싼 데다가 머리털보다 많은 죄에 낙심한 것이다. 13~17절은 시편 70편과 일치하는 절망의 애가다. 이런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잘 다듬은 유려한 기도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기감정을 솔직히 토로하는 게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기본자세다.

 

41편(41:1~13)

시편 기자는 병상에 누워 있다. 원수는 그에 대한 악담을 멈추지 않는다. 가까운 친구도 배신했다. 그러나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므로 원수는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다. 주님이 그를 영원히 붙드시기 때문이다. 다섯 권으로 이뤄진 시편 중 제1권 마지막 시의 마지막 절 끝에 '아멘 아멘'이 붙어 있다. 이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 - 인자와 진실

히브리어 '헤세드'와 '에메트'를 일반적으로 번역하면 '사랑'과 '진실'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은혜'와 '진리'로 옮긴다(요 1:14). 바울이 성도에게 촉구하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것도(엡 4:15) 이 두 개념을 의미한다. 지혜 추구를 촉구하는 잠언도 '인자와 진리'가 떠나지 말게 하라고 충고한다(잠 3:3).

'헤세드'는 '다함없는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헤세드가 자기 아들을 세상에 주실 만큼 깊었다고 묘사한다(요 3:16). '에메트'는 '명확한 진실'로, 조금의 회색 지대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선과 진리의 영역이다. 꾸미고 가감할 필요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실체다. 이 둘은 함께 있을 때 온전해지는 특징이 있다. 사랑으로만, 혹은 진실로만 기울어서는 안 된다.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진실이 함께 있을 때,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통일적 구성의 관점에서 시편 읽기

시편 1권(1~41편)을 중심으로

김창대 / 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

 

시편은 많은 성도가 사랑하는 책이다. 어려운 신학적 주제를 논하기보다 삶의 체험과 고뇌, 기쁨과 찬양을 수록하고 있어 독자들이 쉽게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편 전체의 시들이 어떤 통일적 메시지를 가지고 수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오늘날에는 시편의 시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최종 배열자의 신학적 의도 아래 일괄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되었다는 견해가 점점 지지를 얻고 있다. 확실히 통일적 구성의 관점에서 시편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숲을 바라보게 하며, 시편 전체의 통일적 메시지를 포착하도록 돕기 때문에 시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1권은 시편 전체를 조망하는 가이드

통일적 구성의 관점에서 시편 전체를 바라보면, 시편은 5권으로 구성되었고 시편을 여는 1편은 율법이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시편 전체를 마치 모세 오경처럼 읽도록 의도했다는 증거다. 또한 시편 전체의 메시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편이 언제 최종적으로 배열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시편 안에 수록된 시들의 저작자들은 다윗, 모세, 아삽, 고라 자손 등 다양한 시기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시들이 지금의 위치에 최종 배열된 시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자에서 돌아온 포로 후기다. 이 점은 포로 후기 상황을 언급하는 시들을 통해 입증된다(시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런 구성 속에서 시편 1권(1~41편)은 시편 전체를 조망하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특별히 시편 1~2편은 1권의 서론이자 시편 전체의 서론으로 기능한다. 시편 1권이 복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복으로 끝난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1:1; 41:1). 결론적으로 말해, 시편 1권은 포로 후기에 복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교훈하기 위해 수록된 것이다. 시편 1편은 진정한 복을 누리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1:2)하는 자라고 명시한다. 여기서 율법을 즐거워하여 묵상한다는 것은 율법을 마음에 새긴다는 뜻이다(40:8 참조).

 

진정한 복을 교훈하는 시편 1권

그렇다면 누가 율법을 즐거워하여 마음에 새길 수 있는가? 시편은 아무 자격도 없는 자를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을 깨달은 사람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죄인인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께 사랑으로 반응하기 위해 그분의 율법을 마음에 새긴다. 즉,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죄인이고(38:4)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비천한 존재임을 직시한 사람이(39:5)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체험할 때, 비로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마음에 율법을 새긴다는 설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복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해 그분의 뜻(율법)을 자발적으로 행하려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그분과 교제하는 특권과 기쁨을 주신다. 이런 기쁨은 진정한 복이기 때문에, 이 복을 누리는 사람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4:7), 더 나아가 시편 1권은 이런 교제의 기쁨을 인간의 '생명'이라고까지 선언한다(16:11). 그래서 나중에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은 즐거움으로 고난을 이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119:92).

결국 시편 1권은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교훈한다. 그런 사랑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 기쁨을 가진 사람은 환난 가운데서도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를 경배한다(5:7). 따라서 문제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 자세다. 그러므로 시편 15~24편은 성소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교제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말과 마음의 묵상을 올려 드리라고 촉구한다(19:14). 이어서 25~37편은 마음에 율법을 새겨 하나님과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을 온유한 자로 정의하고, 온유한 자가 땅을 상속받는 축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37:11).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며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출처 : 생명의 삶

 

꾸준히 하나님을 노래함

 

[시편 69편 1절~3절, 13절~16절, 30절~36절]
1절 -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절 -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절 -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13절 - 여호와여 나를 반기시는 때에 내가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14절 -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15절 - 큰 물이 나를 휩쓸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가 내 위에 덮쳐 그것의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16절 -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30절 -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31절 -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32절 -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33절 -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절 -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35절 -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에 살며 소유를 삼으리로다
36절 - 그의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살리로다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①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여호와의 율법대로 살아가는 성도도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특히 좌절과 낙담으로 인한 상처와 우울함이 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 감정을 숨기거나 위장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솔직히 토로하기를 원하신다. 구약 시대 믿음의 거장들도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감정에도 관심이 있으시다.

 

시편 한눈에 보기

1편(1:1~6)

지혜시. 잠언처럼 교훈적인 성격이 강하고, 도덕적인 가르침을 전한다. 복과 죄와 악에 대한 통찰을 근간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며 열매 맺는 삶을 살도록 권한다. 율법을 묵상하는 데 큰 유익이 있음을 알려 주는 시편으로 유명하다.

 

2편(2:1~12)

찬양시. 하나님이 왕 되심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특히 하늘의 왕에 반해 지상의 왕이 얼마나 허황되고 하찮은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열방을 이기신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에게 모든 열방을 유업으로 주신다.

 

3편(3:1~8)

탄원시. 시편 기자는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들 앞에서 여호와께 비탄한 마음을 아뢴다. '여호와의 구원'은 구원을 바라는 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구원을 간구한다.

 

4편(4:1~8)

탄원시. 시편 기자는 곤란 중에 여호와를 부른다. 고난 속에서 불러야 할 이는 세상의 헛된 것들이 아니라, 경건한 자를 택하신 여호와다. 주님의 응답은 수확철의 풍성함을 능가하며, 믿는 자는 그분 안에서 비로소 편히 자고 누울 수 있다.

 

5편(5:1~12)

탄원시. 시편 기자는 악인들을 징벌해 달라고 간구한다. 의로운 그는 이들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주님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반드시 악한 자들을 정죄하시고, 의인을 위해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6편(6:1~10)

탄원시. 시편 기자는 아마도 병상에 있는 듯하다. 하나님께 직설적이고 감정적으로 도움을 구한다. 뼈가 으스러질 만큼 몸이 무너진 상태에서 여호와의 징계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 회복시켜 주시기를 요청한다. 여호와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회복을 확신한다.

 

7편(7:1~17)

탄원시. 시편 기자는 실제로 죽음의 위협 앞에 있다. 원수가 생명을 노리고 쫓아오고 있는데, 피할 곳은 여호와밖에 없다. 여호와의 행사는 악을 끓고 의를 살리는 일이다. 악인은 결국 자기 함정에 빠져 심판을 당할 것이고,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찬양하게 될 것이다.

 

8편(8:1~9)

창조주를 향한 찬양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 인간도 돌보신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이 그를 돌보시는지 놀랍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 앞에서 무력한 피조물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9편(9:1~20)

찬양시. 10편과 유사성이 많아 한 편의 시라는 주장이 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향한 감사와 찬양을 길게 나열한다. 하나님은 억압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피난처시며, 힘없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고 도우시는 분이다.

 

10편(10:1~18)

찬양시. 악한 자는 하나님의 침묵을 무능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방자해진다. 그러나 언젠가 여호와가 일어나 이들을 꺾고 징벌하실 것이다. 또한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11편(11:1~7)

찬양시. 어두운 곳에서 악인이 활을 당기는 위급한 상황이다. 시편 기자는 인생을 살피시는 여호와께 피한다. 하나님은 의인을 감찰하시는 만큼 악인을 철저히 심판하신다. 정직한 자는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는 여호와의 얼굴을 뵐 것이다.

 

12편(12:1~8)

탄원시.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들이 사라지는 시대다. 거짓과 아첨, 자랑을 하는 혀와 입술이 자신들의 승승장구를 장담한다. 하지만 순결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뿐이다. 하나님이 가련하고 궁핍한 자들을 지키고 보존하실 것이다.

 

13편(13:1~6)

탄원시. 시편 기자는 큰 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하나 여전히 주님을 신뢰한다. 오직 두려운 것은 그의 원수들이 이를 기뻐하며 이긴 줄 알고 환호하는 것이다. 그는 병에서 낫게 해 주심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한다.

 

14편(14:1~7)

지혜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장담하며 가증한 행실로 악을 행한다. 하지만 여호와는 인생을 굽어살피신다. 세상은 전부 행악자들뿐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의인의 세대에 함께 계신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다.

 

15편(15:1~5)

지혜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정직히 행하고 공의를 실천하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다. 남을 허물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있다.

 

16편(16:1~11)

찬양시. 표제에 쓰인 '믹담'(michtam)은 '미크타브'(michtab, 편지, 저작물)의 오기라는 견해가 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자신의 복이라고 말한다. 여호와는 그에게 산업과 소득을 주시는 분이다. 주님이 생명의 길을 보이시니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17편(17:1~15)

탄원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자신을 판단해 달라고 청원한다. 주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시험하고 감찰하고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면 그는 자신을 압제하는 악인들과 원수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18편(18:1~50)

감사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로 인해 감사한다. 그가 경험한 모든 일이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셨다. 이 시와 거의 흡사한 시가 사무엘하 22장에도 실려 있다. 다윗이 사울의 손에서 빠져나와 감사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어떻게 구출하셨는지 자세히 소개하고,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신실했는지도 밝힌다. 다윗이 숨었던 동굴처럼, 여호와는 우리가 안전히 숨을 수 있는 피난처이시다.

 

19편(19:1~14)

찬양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한껏 노래한 다음, 하늘이 어떻게 창조주의 능하심을 증언하는지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달되지 못할 민족이나 언어는 세상에 없다. 자연은 그 자체가 신은 아니지만, 참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런 자연의 미덕을 갖춘 것이 율법이다. 꿀처럼 단 율법(말씀)은 하나님 백성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도와 법이 진실하다.

 

20편(20:1~9)

제왕시. 왕이 환난 날에 구할 것은 '언약의 하나님'의 응답과 도움뿐이다. 하나님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신다. 다른 사람은 병거나 말을 의지해도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엎드러져도 우리는 바로 일어설 것이다.

 

21편(21:1~13)

왕을 위한 찬양시. 하나님은 왕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에게 복을 주시고 순금 관을 씌워 주셨다. 생명을 구하는 왕에게 영원한 장수를 주시고, 주의 구원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을 의지한 왕은 원수를 소멸하고, 왕을 해하려는 음모를 파할 것이다. 왕을 지키시는 여호와는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는 분이다.

 

시편 읽기

현재 우리 성경에서 시편은 150편까지 있다. 그런데 동방 정교에서 사용하는 칠십인역에는 151편이 있다. 이는 사해 사본에서도 발견된 시편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 내용을 담고 있다. 시리아 교회가 사용하는 페쉬타역은 155편까지 있다. 놀라운 점은, 유대인들은 시편을 대부분 암송한다는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성경 통독 습관이 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이에 관한 랍비들의 주석을 공부하는 게 주요 일과인 유대교인들은 1년에 한 번 모세 오경(토라)을 읽게 되어 있다. 이와 별개로 예언서와 시편 통독도 진행하는데, 전체 150편을 한 달에 한 번 통독한다. 1년에 12번은 완독하는 셈이니, 예수님과 바울이 시편 구절을 많이 인용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시편 한 달 통독표

시편 일주일 통독표 (일주일 단위로 150편을 나눠 읽기도 한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맙시다

 

[시편 118편 1절~2절, 14절~24절]
1절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절 -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14절 -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절 -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절 -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17절 -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절 -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절 -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절 -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절 -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절 -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절 -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절 -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다스려야 합니다

 

[시편 8편 1절~9절]
1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절 -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절 -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절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절 -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절 -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절 -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절 -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왕이신 하나님

 

[시편 99편 1절~9절]
1절 -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2절 -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3절 -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4절 -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5절 -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6절 -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7절 -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8절 -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절 -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성도의 간절한 소망

[시편 27편 1절~6절]
1절 -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절 -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절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절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절 -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절 -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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