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⑨

 

환난 날에도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는 이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오묘해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그것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측량할 수 없이 놀랍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다.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묵상하면 현재의 어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다.

 

본 시편의 얼개

시편은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제5권에 해당하는 분분이 107편~150편이다. 제5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현재 상황과 포로 후기 미래에 관한 소망이 담겨 있다. 제5권의 서두에 해당하는 107편 1~3절은 하나님이 백성을 대적의 손에서 다시 모으셨다는 묘사로 시작한다. 107편~118편은 또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데, 처음 107편과 마지막 118편은 모두 "여호와께 감사하라"로 시작한다. 110~118편은 다윗 왕조의 부활을 기대하는 시들로 구성되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107:1~110:7)

회복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107:1~108:13)

107편은 포로지에서 돌아온 백성이 부른 찬양으로 본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도움과 기적을 상기시키며 그분의 은혜를 찬양한다. 고통을 통해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결국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시며 인자하신 분이다. 그분은 말씀과 권능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108편은 57편 7~11절과 60편 5~12절을 인용해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심을 고백하며 대적의 손에서 건지실 것을 기대한다. 믿음은 마음을 사람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굳건히 신뢰하면 하나님이 대적을 물리쳐 주신다.

 

고난의 때에 주신 위로(109:1~110:7)

시편 기자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109편과 110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09편에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자의 간절한 부르짖음이 담겨 있다면, 110편에는 곤고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이 깃들어 있다. 109편에서 시편 기자는 선을 베푸는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대적 때문에 고난을 겪는 불합리한 상황을 토로한다(109:1~5). 이어서 그는 무죄한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며 저주한 대적이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해 달라고 탄원한다(109:6~20).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에게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찬양으로 마무리한다(109:21~31). 특이한 것은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109:6)라는 기도다. 이는 법정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으로, 오른쪽에선 고소인에게 고발당하는 범죄자처럼 악한 자의 죄가 드러나게 해 달라는 요청이다. 반면 하나님께 구하는 자의 오른편에는 악한 자와는 대조적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109:31). 110편에 나오는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110:1)와 "주의 오른쪽에 계시는 주께서"(110:5)의 연결은 109~110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다윗은 이 두 시편을 통해, 악인은 멸망하지만 주님이 자기 오른편에 계셔서 자신을 도와주시고 승리하게 하심을 찬양한다.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하라(111:1~118:29)

계명을 지키는 자의 복(111:1~113:9)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111~113편은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을 사용한 '알파벳 시'다. 111편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111:2)을 열거하며 찬양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예배하러 모이는 이유는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자들은 계명을 지키는 지혜로운 행동을 한다(111:10). 112편은 내용으로 볼 때 111편을 보충하는 의미가 짙다. 시편 기자는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영원히 머문다. 그는 재물의 풍족함을 경험하고 그 재물을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 대적들이 흔들어도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의인의 풍성함을 보고 악인들은 분히 여길 것이고, 그들이 행한 일은 물거품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113편은 초막절과 유월절 첫날, 오순절에 회당에서 낭송되었다고 전해지는 절기 시편의 첫 번째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신다. 높으신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낮추시고 온 세상을 돌보신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찬양받기 합당하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복(114:1~118:29)

앞선 시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그분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찬양했다면, 114편부터는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스라엘에 나타나셨는지를 역사적 사건을 빌려 노래한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바다가 물러가며 산과 땅이 떨었던 시내산 사건,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진 기적 등은 모두 만물이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베푸시는 기적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115~117편은 마지막 부분이 "할렐루야"로 마무리된다. 115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우상과 달리, 살아 계신 분이다.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떤 어려움에서도 구원하시는 분이다. 시편 기자는 이를 근거로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므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찬양하라고 선포한다. 116편은 이처럼 위대한 분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과 구원을 받게 됨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순진한 자를 지키시고 어려울 때 구원자가 되신다(116:6). 117편은 이런 하나님을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송축해야 한다.

118편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영원하기에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함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시 전체에서 백성이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는 모습이 묘사된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118:19~20)는 백성의 행렬이 성전 문 입구에 서 있는 것을 그린다. "...여호와의 집에서...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118:26~27)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1절과 29절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로 동일한 것은 118편을 수미 쌍관 구조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107편 1절과도 동일하다. 넓게 보면 107~118편 전체가 수미 쌍관 구조를 취한다. 이 같은 구조는 우리가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송축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특히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118:22)라는 구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다.

 

 

출처 : 생명의 삶

기도하며 기다리고 바람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시편 130편 1절~8절]
1절 -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절 -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절 -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절 -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절 -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절 -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절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절 -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

[시편 131편 1절~3절]

1절 -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절 -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절 -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 기자가 죄악으로 인해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으니 그분을 경외하며,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히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는 마음과 눈이 교만하지 않아 분수에 넘치는 일을 마다하며, 그의 영혼은 어머니 품에 있는 젖 뗀 아이처럼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1. 주님을 부르짖으며 기다리는 영혼 (130:1~8절)

고난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고, 또 자신의 죄와 허물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은 죄악의 수렁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하나님께만 있기에 죄인이 사는 길도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납작 엎드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죄로 인한 고통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을 부르고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1~2, 5절; 107:19~20).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신 성품과 구원 능력을 아는 사람은 죄악 중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더욱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님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주님을 기다리는 백성을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십니다.

* 죄로 인해 깊은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하나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어떤 상황 때문에 주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나요?

 

2. 이스라엘아, 영원히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31:1~3)

하나님 백성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상관없이 이기적인 욕망과 허영을 좇습니다. 눈이 오만하면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며 땅의 영화를 추구합니다. 자기 분량에 넘치는 큰일, 감당하지 못할 일까지 욕심내서 해 보려 안감힘을 쓰니 그의 마음과 삶에 평온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사람의 역량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슥 4:6). 우리는 욕망에 이끌리지 말고 의지적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때 충만히 채워집니다. 성도가 바랄 영원한 본향은 하나님입니다.

* 마음이 교만하고 눈이 오만한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요? 요즘 내가 평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깊은 절망 속에서도 제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시는 주님을 찾겠습니다. 죄악으로 마음이 눌릴 때 저를 용서하시고 고치시는 주님께 겸손히 나아가게 하소서. 눈이 쇠하도록 생명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저를 십자가 은혜로 안아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은혜에 보답

 

[시편 116편 12절~19절]
12절 -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절 -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절 -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절 -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절 -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절 -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절 -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절 -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⑧

 

창조주요 통치자, 구원자이신 분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참신이시다. 그런데 세상에는 악인이 가득하고 하나님 백성은 원수들에게 조롱당한다. 기도는 이런 현실에 대한 부르짖음이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간절함이다.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마침내 응답하신다.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찬양할 유일한 대상이다.

 

90편

시편은 총 다섯 권으로 나뉘는데, 이 중 제4권(90~106편) 제일 처음에 나오는 시다.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는 비탄에 잠긴 민족의 현실과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표제에 '하나님의 사람'(히, 이쉬 하엘로힘)으로 소개되는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감당한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지만(1~2절),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 짧다(3~6절). 백성은 불순종과 원망과 반역으로 죄를 범해 두려워한다(7~11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은혜를 간구하는 것뿐이다(12~17절).

 

91편

90편과 어조가 비슷하다. 시편 기자의 기도(2, 9절)와 그에게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의 말이 이어지고(1, 3~8, 9~13절), 하나님 말씀(14~16절)이 나온다. 하나님의 이름인 '지존자'와 '전능자'가 소개되는 것은(1절),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 '나'는 하나님을 피난처 삼아 그분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대언자는 그에게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준다.

 

92편

표제가 알려 주듯, 오늘날까지도 유대교에서 안식일에 부르는 찬송이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행하신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자신이 아침마다 밤마다 감사하고 찬송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1~5절). 원수들은 패망해 흩어질 것이지만, 하나님 백성은 뿔처럼 높아질 것이다(6~11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의인은 그분의 집에 심겨 번성할 것이다(12~15절).

 

93편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높이는 시다. 혼돈과 공허의 세상에 말씀으로 질서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이 시편에 반영되어 있다는 견해가 있다. 큰 물 같은 대적이 소리를 높여도 그보다 크신 여호와의 능력이 모두 제압하셨다는 것이다. 이 시편에서 시작해 99편까지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신 하나님'이라는 주제가 이어진다.

 

94편

'왕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짓밟는 자들에게 복수하신다(1~7절). 악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8~11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백성은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담대히 피할 수 있다(12~23절).

 

95편

예배 찬양시.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선창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1~6절), 과거에 하나님을 시험했던 조상들과 같은 잘못을 거듭하지 말라고 당부한다(7~11절). 참된 신이시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돌봄을 받는 백성은 그분께만 경배해야 한다.

 

96편

예배 찬양시.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에 들여올 때 했던 찬양과 동일하다(대상 16:23~33). 온 땅은 마땅히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해야 한다(1~2절). 먼저 여호와의 구원을 경험한 백성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이 높임을 받을 것이다(3~6절). 여호와는 위대한 지존자시기 때문이다. 이어서 만국의 족속들도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것이다(7~10절). 끝으로 모든 피조 세계가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11~13절). 여호와가 땅과 세상과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97편

전편인 96편과 비슷한 어조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96편에서 왕이신 하나님의 위엄을 땅과 세상과 백성이 선포했다면, 97편은 하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실 때 일어날 일을 묘사한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인간의 눈에 하나님은 마치 흑암과 불과 번개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산들도 떨지만, 하나님 백성은 담대히 그 영광을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비교해 다른 신들은 허무한 우상일 뿐이다. 하나님 백성은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98편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다. 표제 '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즈모르'는 '노래'로도 옮길 수 있다. 하나님은 기이한 일로 그분의 백성에게 인자와 성실을 베푸셨다(1~3절). 마침내 모든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4~9절).

 

99편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다. 시편 기자는 통치자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특히 강조한다(3, 5, 9절). 이스라엘의 특별함은 하나님이 직접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워 그들에게 응답하시고, 증거와 율례를 주어 지키게 하신 데 있다. 하나님 백성은 말씀을 준행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해야 한다(6~9절).

 

100편

감사시. 전반부가 여호와께 찬양하라는 촉구라면(1~2절), 후반부는 여호와가 찬양을 받으셔야 하는 이유다(3~5절). 백성이 여호와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장면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아마도 포로 생활 끝에 새롭게 재건된 성전을 의미할 것이다. 심판과 징계의 때가 지나고 은혜와 회복의 때가 이른 것이다.

 

101편

다윗의 시. 시편 2편(왕의 등극), 20~21편(왕의 전쟁), 45편(왕의 결혼) 등과 연결되어 왕의 통치를 묘사하는 '제왕시'다. 여호와의 완전한 길을 따라 공정하고 완전하게 통치하기 원하는 왕의 다짐이 드러난다.

 

102편

탄식시. 표제에서 보듯이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자'로서 마음이 상해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한다. 그의 고난은 '병'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주변에는 그를 위로하는 사람이 없고, 원수들뿐이다(1~11절). 고난 중에서 시편 기자는 갑자기 시온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내비친다. 그의 병이나 고난이 시온의 멸망과 관련 있음을 드러낸다. 그가 회복되는 길은 여호와가 시온을 재건하시고 영광을 선포하시는 것이다(12~22절). 그는 주권자 하나님이 한결같고 무궁한 분임을 고백한다(23~28절).

 

103편

다윗의 시.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반복해서 외치며, 찬양의 이유가 되는 여호와의 은택을 열거한다(1~5절). 한편 공의로운 여호와는 그분의 백성에게 선한 일을 행하신다(6~18절). 즉,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선대하신 여호와는 그분을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한 긍휼과 인자를 베풀어 주신다. 이런 여호와 하나님을 천사들도 송축해야 한다(19~22절).

시편 103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104편

창조시. 창세기를 떠오르게 하는 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각기 정해진 경계 속에서 질서를 갖게 하신다(1~9절). 하나님은 만물의 생명과 생태계를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다.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물로 흡족함을 얻고, 때에 맞춰 눕고 일어나 수고한다(10~23절). 시편 기자는 주의 영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평생 찬양하겠다고 다짐하며, '할렐루야'로 이 시를 마친다(24~35절).

 

105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 자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했다. 1절은 이사야 선지자의 감사 내용과 비슷하다(사 12:4).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주셨고,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5~11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나그네가 되었고, 기근으로 양식이 끊어졌으며, 요셉은 애굽에 팔렸다. 하나님 은혜로 그들은 크게 번성했지만, 이로 인해 대적들이 그들을 미워했다(12~25절).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택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친히 보호하셨다(26~41절).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것은 아브라함과의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 백성은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 '순종'과 '할렐루야'로 화답해야 한다(42~45절).

 

106편

전편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소유하는 과정이 나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잊고 홍해 앞에서,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번번이 불평하며 죄를 범했다. 하나님은 그분을 원망하고 시험하는 백성을 징계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 가운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다시 베풀어 주셨다(7~46절). 시편 기자는 이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길 간구한다(47절). 마지막 절(48절)은 106편에 속한다기보다 시편 제4권(90~106편)의 맺음말과도 같다. 백성에게 '아멘'을 요구하며 '할렐루야'로 마친다.

 

시편 길라잡이

 

하나님 사랑을 신뢰하면 고난을 이긴다

김창대 / 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

 

시편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 응답을 전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구조를 통해 시편은 율법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복임을 천명한다(시 1:1~2; 40:8). 이를 위해서는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자각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되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해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함을 교훈한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인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행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점에서 시편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의 변화'라 할 수 있다(51:17). 하지만 고난에 처한 성도는 대개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을 받아들이기보다 하나님을 원망하기가 쉽다.

 

고난 가운데 들려주시는 세 가지 응답

시편은 크게 전반부인 1~89편과 후반부인 90~150편으로 나뉜다. 1~89편은 탄식이 주된 기조를 이루며, 시편 기자들은 고난당하는 백성을 왜 도와주시지 않느냐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물론 가끔씩 신뢰의 시, 역사 회고시, 찬양시 등과 같은 긍정적 내용의 시들이 삽입되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승리할 것을 촉구한다. 하지만 고난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그런 희망의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반부인 90~150편의 첫 단추 격인 제4권 90~106편은 시편의 중추적 핵심(pivotal center)으로, 고난 중에 있는 백성에게 하나님 응답을 다음 세 가지로 들려준다.

첫째, 고난과 관련해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제4권을 여는 90편은 모세의 기도인데, 의도적으로 89편의 원망과 탄식에 대한 하나님 응답을 제공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앞선 89편은 다윗 왕조가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것을 배경으로 하는 시로, 다윗 언약을 파기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주께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셔서 버리셨으며"(89:38). 이런 상황에서 모세의 기도인 90편은 모세 시대에는 인간 왕이 없었고 하나님이 직접 왕으로 통치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인간 왕이 없어졌다고 탄식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름을 강조한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90:4). 이에 반해 인간의 연수는 70이요 강건해야 80이다(90:10). 이런 차이를 통해 인간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릴 수 없음을 일깨우며,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 것을 교훈한다.

둘째,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신뢰하면 반드시 상황이 역전된다는 것이다. 95~99편은 일명 '여호와의 통치시'로 불린다. 이 여호와의 통치시들은 고난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의 주관자요 왕이심을 확인시켜 주고, 왕이신 하나님이 반드시 성도를 보호하시고 건지실 것을 교훈한다(97:10). 따라서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95:8). 오히려 성도는 구원받은 사실 하나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96:2; 98:1),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셋째, 고난 가운데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103:13~14). 우리가 먼지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안다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고 교훈한다.

결론적으로, 90~106편은 하나님이 만물을 공의와 의로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과(104편),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인애)해 구원하신 분임을 돋보이게 한다(105~106편). 그리하여 창조와 역사 안에서 일관되게 행하신 하나님의 인애와 공의와 의를 의지한다면, 성도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며 고난을 넉넉히 이기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106:48).

 

하나님의 인애와 공의를 의지하면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출처 : 생명의 삶

악인은 하나님 백성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시편 129편 1절~8절]
1절 -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2절 -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3절 -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4절 -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5절 -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
6절 -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7절 -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
8절 -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

 

원수들이 이스라엘을 여러 번 괴롭혔으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악인들이 이스라엘의 등 위로 고랑을 길게 지었으나 의로우신 하나님이 그들의 줄을 끊으셨습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당해 물러가고 지붕의 풀처럼 자라기도 전에 마를 것입니다.

 

1. 악인들의 줄을 끊어 주심 (1~4절)

하나님 백성은 악인 때문에 고난을 겪지만 그로 인해 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징계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였으나 멸망을 위한 징계가 아니라 정결함을 위한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도구로서 이방 민족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이방 신들을 섬기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악한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연단하신 후에 그들의 교만과 죄악을 징계하십니다. 성도는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구해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악인의 줄을 끊으시고 자유를 주시는 구원자입니다.

* 원수에게서 이스라엘을 건지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시나요? 주님이 끊어 주시도록 내가 간전히 기도할 괴로운 상황은 무엇인가요?

 

2. 풀같이 말라 버릴 악인들 (5~8절)

하나님 백성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입니다. 시온을 미워해 괴롭힌 악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인해 수치를 당해 물러갑니다. 그들이 잠시 얻은 승리는 뜨거운 햇볕에 마르는 지붕의 풀 같아서 한 줌 잡을 것도 없습니다. 이는 악인들이 그들 손으로 행한 대로 받는 보응입니다(사 3:11). 악인들은 하나님의 복과는 거리가 먼 자들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미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악인이 의인 한 사람을 핍박해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괴롭히고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그분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명하셨습니다(롬 12:19). 공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이 악인에게 대항하는 성도의 힘입니다.

*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 받을 보응은 어떠한가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까닭 없이 괴롭힘을 당할 때 마음이 고통스러워도 주님이 직접 갚아 주심을 기억하게 하소서.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상황을 마주할 때 의로우신 주님께 소망을 두며 마음을 쏟아 놓게 하소서. 선으로 악을 이길 힘을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⑦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언약 백성

성도는 능력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해야 한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채우실 것이니 입을 크게 열라 하신다. 하나님의 성소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은 복되다. 그런 이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영화를 아낌없이 부어 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을 인자하심으로 세우시고 성실하심으로 영원히 지키신다.

 

81편

이스라엘의 절기 예배 때 구원의 기억을 되새기는 시편이다. 표제에 등장하는 '깃딧'은 현이 있는 악기일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의 주요 절기는 모두 수확과 관련되어 있다. 유월절은 보리 수확, 칠칠절은 밀 수확, 초막절은 포도와 올리브 수확과 연관이 있다. 본 시편은 절기에 수확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1~4절). 노래와 소고(북)와 수금(현)과 나팔이 울려 퍼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5~7절). 이스라엘에게 당부하신 것은 이방 신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그분의 말씀만 따르라는 것이었다(8~16절). 이스라엘이 기름진 밀로 배부르고 반석의 꿀로 목을 축일 수 있는 것은 여호와가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82편

하나님이 '신'들의 모임' 가운데서 재판하신다. '신들의 모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맥상 '신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재판하는 '재판장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그 무리 가운데 좌정하셔서 그들을 재판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직접 재판에 나서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신들'이 불공평하게 재판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이 공의를 외면하면 사회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리하는 자들이다. 결국 불공평한 판단을 행한 그들은 넘어지고,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나라의 주권자시기 때문이다.

 

83편

이 시편은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에게 당한 일들(1~8절)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갚아 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9~18절)으로 나뉜다.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을 미워해 멸망시키는 데 한마음이 되었다. 에돔.이스마엘.모압.하갈.그발.암몬.아말렉.블레셋.두로.앗수르 등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나라가 적대적이다. 이스라엘 편인 나라는 없는 듯하다. 이스라엘이 기댈 곳은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은 온 세계의 지존자시기 때문에 능히 이들을 멸하실 수 있다. 이런 내용이기에 이 시편은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전쟁과 테러 등으로 사망한 군인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가 기념식에서 낭송된다.

 

84편

표제는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분을 맡았던 '고라 자손'의 시로 되어 있다.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장소다. 시편 기자는 성전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연약한 인생에게 최고의 복임을 확신하기에 주의 장막을 사랑하며 사모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선포하며(1~4절), 또 시온을 찾아 오르는 순례 길에 복이 있다고도 한다(5~7절). 주의 성소에 나아가 만군의 여호와 앞에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선하게 응답해 주신다(8절). 주의 전에 거하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하루를 머무는 것이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한다(10절). 이 시편은 오늘날 유대교의 회당 기도에서 날마다 세 번씩 낭송되는 '아슈레이'('복이 있나니'라는 뜻) 기도문의 시작 부분이다.

 

85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의 감사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죄를 범해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때가 되어 주권적 은혜로 귀환한다(1~3절). 그러나 황폐해진 현실을 목격하면서 다시금 하나님께 인자와 구원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한다(4~7절). 시편 기자의 간구에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화평을 말씀해 주실 것이다. 화평이라고 표현된 히브리어 '샬롬'은 '완전.안전.안녕.평화'의 의미가 있다. 그들이 어리석은 옛길로 행하지 않는다면 구원과 화평을 오래도록 누릴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에게 가깝다. 이 땅에서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 맞추며, 하늘과 땅에서 진리와 의가 펼쳐진다(8~13절). 이는 메시아를 통해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묘사한 것이다.

 

86편

이 시편은 다른 시편의 유명 구절을 총망라한 듯한 시편이다. 이 시의 저자를 다윗으로 보기도 하고, 고라 자손으로 보기도 한다. '다윗의 기도'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 것은 주로 다윗 시편으로 알려진 부분(25~28, 54~58편)에서 집중적으로 인용되었기 때문으로 본다. 시편 기자는 가난하고 궁핍한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힘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심을 노래하며,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은총의 표적을 보여 주시길 간구한다.

 

87편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시온의 문은 영광스럽다(1~3절). 시온에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시온은 애굽과 바벨론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보다 앞선다(4~7절). 지존자 하나님이 친히 세우셨기 때문이다. 시온이 모든 것의 근원지다. 지상에 세워진 시온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하나님이 다시 창조하실 새 도성 시온도 아름다울 것이다.

 

88편

표제에 따르면 이 시편은 지혜 시편('마스길')이면서 병들었을 때 특별한 곡조로 부르는('마할랏르안놋') 시편이다. 그래서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영혼이 스올에 가깝고 무덤에 내려가는 심정이며, 깊은 웅덩이나 어둡고 음침한 곳에 갇혀서 나갈 수 없는 처지처럼 느낀다. 이 시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과 홍수 이미지는 거대한 위험과 고난을 상징한다(7, 16, 17절). 흑암도 죽음이나 멸망과 잇닿아 있다(12, 18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주께 부르짖으며 주를 향해 두 손을 드는 것밖에 없다.

 

89편

하나님께 그분의 언약을 일깨우는 탄원시다. 언약의 하나님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백성에게 복이 있다. 하나님은 다윗을 찾아내어 영원한 인자하심으로 언약하셨고, 그의 왕조를 견고하게 하리라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시어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니 다윗 왕조의 영광이 그치고 그의 왕위는 땅에 엎어졌다. 그래서 여호와께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다윗에게 맹세하신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 그 후손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언약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마지막 52절은 시편 제3권(73~89편)을 마무리하는 송영으로(41:13; 72:18~19; 106:48 참조), 회중이 함께 합창하며 소리 높여 외치는 부분이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호와는 영원히 복되시도다 아멘 아멘"으로 되어 있다.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⑥

 

고통 중에 드리는 소망의 간구

부조리와 부당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고통받던 시편 기자는 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세상과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진 하나님의 의로움이 위로와 만족을 준다. 오직 여호와를 향하는 것만이 눈물 골짜기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임을 확신하는 이들은 더욱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과 같은 분이 없음을 절실히 고백한다.

 

시편 제 3권 (73~89편)

아삽과 고라 자손, 에단 등 전문적으로 예배 음악을 주관한 이들의 시편을 모았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기 위해 양성된 사람들도, 찬양대의 지휘자들이었다. 이들이 지은 시편에는 백성을 하나님께 이끌어 예배로 인도하던 풍부한 경험이 녹아 있다.

 

아삽의 시 (50, 73~83편)

아삽은 '선견자' 헤만의 형제로 베레갸의 아들이며, 레위의 아들 게르손의 자손이다. 오른편에 아삽이, 왼편에 여두둔이, 중앙의 헤만을 보좌하며 예배를 인도했다. 이들은 다윗에게 찬송하는 자로 임명된 이래 솔로몬왕 시대까지 성전 음악을 주관했다. 특히 성전 봉헌식에서 제사장들과 함께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했다(대하 5:11~14).

 

다윗의 성가대(역대상 25장)

대원 총수 288명 악기 편성 수금과 비파(현악기)와 제금(타악기)
대원 구성 아삽의 아들들(신령한 노래를 하는 자들), 여두둔의 아들들(수금을 잡으며 신령한 노래를 하는 자들), 왕의 선견자 헤만의 아들들(나팔을 부는 자들)
편성 방식 12명씩 24개조로 나누고 제비 뽑아 직임을 맡김

 

73편

마음이 정결한 자와 악인,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악인은 아무런 고통이나 재앙이 없고 항상 평안하며 재물까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시편 기자는 거의 넘어질 뻔한다(1~12절). 그는 마음이 정결한데도 언제나 재난과 징벌을 받아 심한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을 만나는 곳에 인생의 답이 있다(13~17절). 성소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주님밖에 사모할 이가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것이 망하지 않는 길이다(18~28절).

 

74편

표제어 '마스길'은 대개 '묵상시, 지혜시'로 보며, 지혜자를 뜻하기도 한다. 시편에서 총 13편의 표제에 등장한다(32, 42, 44, 45, 52~55, 74, 78, 88, 89, 142편). 악한 때란 '마스길'(지혜자)이 잠잠한 때다(암 5:13). 주의 성소가 더럽혀지고 불타며 멸망당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익히 아는 시편 기자는 왜 주님이 오른손을 뻗어 '그들'을 멸하시지 않는지 의아해한다(1~11절).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며, 바다를 다스리시고 천하를 지으시고 땅의 경계를 정하셨다(12~17절). 이런 분이 원수의 비방과 능욕을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편 기자는 주님이 속히 일어나 이 원통함을 푸시고 대적을 멸하시길 촉구한다(18~23절).

 

75편

본 시편은 하나님이 세상의 재판관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약이 이르면 심판이 임한다. 심판을 상징하는 세 개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땅의 소멸(3절)과 뿔(4절)과 잔(8절)이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높아진 이들을 낮추시고 악인의 뿔을 베시며 잔을 쏟아 그 찌꺼기까지 악인에게 마시게 하실 것이다.

 

76편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살렘(예루살렘)은 칼과 전쟁으로부터 보호받는 곳이었다. 주님만이 이곳에서 영화로우시고 존귀하셨다. 그런데 이 시온이 멸망의 위기를 맞는다. 원수들이 병거와 말을 몰고 쳐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들을 꾸짖어 모두 잠들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다. 사방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77편

여두둔은 헤만과 아삽과 더불어 다윗의 성가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이며, 에단과 동일인일 것이다(대상 15:19; 16:41 비교). '여두둔의 법칙'이란 집안사람들이나 제자들에게 전수된 여두둔의 연주 방식을 말한다. 세 번의 '셀라'가 본 시편을 네 부분으로 나눈다. 시편 기자는 환난 날에 불안과 근심에 사로잡혀 심령이 상할 지경이다(1~3절).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셨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는 이를 기억하며 하나님이 다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 간구한다(4~9절).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은 열방에 주님의 능력을 알리고, 주의 팔로 주의 백성을 속량하신 출애굽과 홍해 도하 사건이다(10~20절).

 

78편

'아삽의 마스길'은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능력과 행하심을 보고도 완고하고 패역했던 조상들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1~8절).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 조상들을 인도해 내셨고 광야에서 물을 주셨지만, 그들은 지존자를 배신했다. 그런데도 그들을 진멸하지 않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이 긍휼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몇 번이나 하나님께 반항하며 노엽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성산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다(32~55절). 그러나 그들은 산당을 짓고 우상을 섬겨 하나님을 시험했다. 이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포로로 넘겨주셨다. 하지만 오직 유다와 시온산을 택하시고, 다윗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기르게 하셨다(56~72절).

 

79편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다룬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웃 나라들에 비방거리가 되어 조소와 조롱을 당했다(1~4절).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조상들의 죄는 잊고 자신들을 속히 영접해 달라고 간구한다. 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일이다(5~9절). 이방 민족들이 유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이 비방과 원수를 갚아 주시고 주의 백성을 기억하실 때 그들은 영원히 주께 감사할 것이다(10~13절).

 

80편

'소산님'은 백합화들이란 뜻으로, '소산님에둣에 맞춘 노래'는 백합화 형태의 나팔이나 현 등으로 연주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백합과 관련된 특정 형태의 멜로디일 수도 있다. "주의 얼굴 빛(혹은 주의 얼굴의 광채)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로 마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얼굴 빛'을 비추어 달라는 말은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요, 백성과 맺은 언약을 지켜 주시길 촉구하는 것이다. 백성이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요셉'(1절)을 전면에 내세우며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 능력을 보여 달라는 간구는 이 시가 남북 왕조의 통일이나 북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 있는 내용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1~3절). 이어서 '만군의 하나님'께 언제까지 백성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눈물을 마시게 하시며,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겠느냐고 탄원한다(4~7절).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가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심은 포도나무였다. 이 포도나무가 무성히 자라 가지와 넝쿨이 멀리 미쳤지만 담이 허물어지며 멧돼지와 들짐승에게 먹히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만군의 하나님'께 이 포도나무를 돌봐 주시길 간구한다. 그러면 그들이 소생해 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8~19절).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시편 ⑤

 

구원을 기다리는 마음

시편 기자의 상황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다림 속에서 구원이 가져올 기쁨을 상상한다. 구원을 받는다면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온 힘을 다해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 구원을 증언할 것이다. 구원의 하나님은 우리를 만족하게 하신다.

 

61편

시편 기자는 마음이 약해져 있다. 우리가 기습적인 적의 공격을 받아 싸워야 할 처지가 되어 본다면 이렇게 기가 꺾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피난처가 필요하다. 다행히 그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는 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다. 적어도 그는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래서 왕에게 장수를 허락하시고 왕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러면 영원히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한다.

 

62편

표제에 나오는 여두둔은 헤만과 아삽과 더불어 다윗의 성가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에단과 동일인일 것이다(대상 15:17; 16:41 참조). '여두둔의 법칙'이란 여두둔의 집안사람들이나 제자들에게 전수된, 여두둔의 연주 방식을 말한다. 이 시편에서 6번 등장하는 단어가 우리말로 '오직', '~만'으로 옮긴 히브리어 '아크'다(1, 2, 4, 5, 6, 9절). 하나님만이 반석이며 구원이며 요새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희망이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말해 준다. 또 담, 울타리 등이 넘어지고 흔들린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가 군사적으로 위태롭거나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 시편의 배경을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달아나던 때로 보는 견해가 많다. 아들의 배신만큼 인생의 허망함을 절실히 느낄 기회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온전히 의지할 수 없는 인생과는 달리 하나님께 권능이 있음을 알기에 안심한다.

 

63편

표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는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시편 기자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그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앙모하고 있다. 다윗은 황폐한 광야에서 오랜 세월 목마름을 경험한 사람이다. 자신을 죽이려는 적들에게 쫓겨 맘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한 날이 많았다. 그런 다윗이 믿고 의지한 이는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다. 적들은 쓰러질 테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다. 새벽에 깨어 주의 말씀을 읊조린다는 대목(6절)때문에 시편 3편과 함께 대표적인 아침 기도문으로 분류된다.

 

64편

사람을 해하는 것은 칼이나 화살 같은 무기만이 아니다. 때로는 악한 자들의 말과 비방이 무기처럼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한다. 이 시편은 다윗의 생명을 해치고자 칼 같고 화살 같은 독한 말을 하며 음모를 꾸미는 악인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히브리어는 '쉐마 엘로힘'("하나님이여...들으시고", 1절)으로 시작한다.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 신 6:4)이 하나님 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면, '쉐마 엘로힘'은 인간 편에서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며 도움을 구하는 간구다. 기도하는 의인은 역전의 은혜를 맛본다. 하나님이 악인을 향해 쏘시는 화살은 바로 악인들이 의인을 향해 쏜 독한 말들이다.

 

65편

농부의 시편으로도 손색이 없는 추수 시편이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 모든 육체가 하나님께 나아온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우리를 가까이하시며,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우리에게 모든 선한 것으로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에 올라가야 하는 세 번의 절기는 모두 수확 철이다. 유월절에는 보리 추수, 칠칠절에는 밀 추수, 장막절에는 포도 추수가 있다. 하나님이 아침과 저녁을 번갈아 있게 하시고, 땅에 물을 대어 윤택하게 하시니 곡식이 영글고 싹이 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택이 아니면 한 해, 한 해를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할 수밖에 없다.

 

66편

시편의 화자인 '우리'(1~12절)와 '나'(13~20절)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출애굽 사건과 광야 생활을 연상시킨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가 갈라진 사이를 육지처럼 걸어서 지나갔다.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 은처럼 단련되었으며,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한다. 뒷부분에서 '나'는 번제물을 가지고 직접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이다. 제사장 아니면 왕일 것이다. '나'는 환난을 만났지만 성전에서 제사를 드린 후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선포하며 찬송한다. 병이 들어 성전에 들어간 히스기야왕을 떠오르게 하는 내용이다.

 

67편

하나님이 아론과 아들들을 통해 백성에게 주셨던 축복과 비슷한 내용이다(민 6:24~26). 하나님이 '우리'와 '민족들'에게 복을 주시니 '우리'도 '민족들'도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이 시편은 추수와 더불어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기억하고 감사하기 위해 장막절에 낭송했다.

 

68편

'셀라'가 3번 나온다. '셀라'는 문법적인 연결이라기보다는 음악 용어에 가깝다. 잠시 멈추어 앞의 내용을 묵상하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면, 독주가 멈추고 반주가 확산되는 부분이다. 즉, 크게 네 단락을 연창하는데 중간마다 쉼을 주도록 구성한 것이다.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 분이다(1~6절). 하나님이 친히 앞서 나가 백성을 인도하셨다(7~18절).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소고 치며 찬양할 것이니(19~31절), '너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해야 한다(32~35절).

 

69편

표제에 등장하는 '소산님'은 백합꽃을 의미한다. '소산님에 맞춘 노래'라는 것은 백합화 형태의 나팔이나 현 등으로 연주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백합과 관련된 특정 형태의 멜로디를 가리킬 수도 있다. 시편 45편도 같은 형태의 시편이다. 이 시편은 메시아 수난에 대한 예언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을 물의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부르짖음으로 피곤하고 목이 마르다. 이유 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들 때문이다. 부르짖고 금식도 하고 굵은베 옷을 입었지만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되고 비방이 그치지 않는다. 이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자신을 적들의 공격에서 구원해 주시고, 그들에게는 받아 마땅한 수치와 능욕을 안겨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배고픈 자에게 쓸개를, 목마른 자에게 초를 마시게 할 정도로 잔인했다. 우리말 '쓸개'로 옮긴 히브리어는 '독'을 뜻하는 단어다. 이들에게 마땅한 처벌은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이 아니라 예레미야일 수 있다는 일부 견해도 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9절)이 남달랐던 이에게 적들의 비방과 조소가 멈추지 않고 마침내 '웅덩이'(15절)가 덮쳐 오는 현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강하게 연상시키기 때문이다(렘 38장). 또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질 만큼 하나님 앞에서 처절했던 면모가 본 시편의 탄원 내용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보기도 한다.

 

70편

40편 13~17절과 거의 같다. 왜 같은 구절을 다른 시편에 쓰고 있을까? '기념식에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표제가 단서가 될 수 있다. 40편의 일부를 발췌해 공식적인 예식에서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40편의 전체 주제가 위기 속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다면, 70편에 인용된 구절은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이 독립적으로 압축되어 있다. 시편 기자가 당하는 수치와 무안을 적들이 기뻐하며 환호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하, 아하'(3절)는 깔깔대는 조소의 표현이다.

 

71편

다윗 시편을 모아 놓은 단락에서 거의 유일하게 표제가 없는 시편이다. 다른 시편들의 주요 구절을 뽑아 놓은 듯 익숙한 내용들을 열거한다. 시편 22, 31, 35, 36, 38, 40, 70편 등에서 유사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의 시편에 능통한 다른 인물이 인용한 시편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했다는 구절(6절) 때문에 하나님이 '모태에 짓기 전에 알았다'(렘 1:5 참조)고 하신 예레미야 선지자를 이 시편의 저자로 거론하기도 한다. 시편 기자는 모태에서부터 백발에 이르도록 여호와를 의지하며 찬송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72편

가장 지혜로웠던 왕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가 말해 주듯, 위대한 왕의 자질을 소개하고 그런 왕이 받을 영광에 대해 말하는 시편이다. 훌륭한 왕의 징표는 공의와 정의와 평강이다. 위대한 왕이 다스리면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구원을 받게 된다. 백성은 이런 왕을 찬송하므로, 왕의 이름이 해처럼 장구하고 모든 민족이 그를 복되다 할 것이다.

이 시편의 끝에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20절)라고 한 것은 시편 2권에 해당하는 42편부터 72편까지가 끝나는 것을 뜻한다.

 

 

출처 : 생명의 삶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

 

[시편 128편 1절~6절]
1절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절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절 -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절 -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절 -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배경 이해하기]
시편 120~134편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들은 포로 귀한 이후 유월절, 칠칠절 같은 성전을 순례하는 절기에 순례자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던 노래로 봅니다. 각각의 시편은 그 시대와 배경을 달리하지만,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누리는 즐거움을 노래한 128편은 구성 면에서 127편과 한 쌍을 이룹니다. 127편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127:1)라며 여호와를 도외시한 모든 수고가 헛됨을 밝힌 반면, 128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28:1)라며 여호와를 경외함에 따르는 복을 기록합니다. 127편에서 자녀의 출산과 다산의 유익을 노래했다면, 128편은 탄탄히 세워진 가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128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전반부 1~4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의 가정에 임하는 축복의 풍성함이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에 비유됩니다. 후반부 5~6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이 개인 차원을 넘어 그 후손과 국가에까지 이르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관찰과 묵상]
1. 시편 기자는 어떤 사람이 복을 누린다고 하나요? 그가 누리는 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1~4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분의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1, 4절). 이들은 복되고 형통하여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입니다. 또한 그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을 것입니다(2~3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길을 걷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지닐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태도’에 그치지 않고 ‘순종’, 즉 ‘여호와의 길을 걷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은 삶의 그릇된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즉 거룩하고도 선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손이 수고한 대로 먹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힘써 수고해도 그 결과를 얻지 못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127:2). 수고 없이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땀과 노력에 합당한 대가를 얻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가정의 복을 얻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절). ‘결실한 포도나무’로 비유되는 아내는 온 가족에게 기쁨과 만족을 끼치고 가족의 사랑을 받습니다. 음료를 제공해 기쁨과 만족을 주는 포도나무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되는 자식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가정은 그 자녀로 인해 번성할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맺은 은혜의 결실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중요한 삶의 원칙입니다.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기록합니다(잠 1:7). 또한 모세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신 10:12)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참된 성도는 비록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기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자기 기준대로, 제멋대로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죄와 타협하거나 물들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강하게 붙잡게 됩니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는 노아, 아브라함, 요셉, 오바댜, 느헤미야, 욥 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의 삶을 지켜 주시고, 그들의 수고에 보상해 주시며, 매사에 은혜의 결실로 채워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시온에서 복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 복의 결과는 어떠한가요?(5~6절)
하나님이 시온에서 복 주시면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자식의 자식을 보게 되고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임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5절)라고 기원합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따라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즉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신앙·정치 중심지며, ‘너의 평생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네 생명의 모든 날들’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복의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복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복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이릅니다. 6절의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는 장수의 복을 누리며 가족이 창대하게 됨을 지속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한 사람의 미래는 자신의 삶을 넘어 그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은 개인과 가정, 공동체에까지 확대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가 은혜 받은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모든 사람은 복을 추구하며 나아가 복 받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복이 어디서, 누구로부터 오는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며, 은혜와 평강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분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축복을 경험합니다. 예배드릴 때 지난 삶을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선포되는 말씀에서 하나님 뜻을 깨닫고 생각의 주파수를 그분의 뜻에 맞춥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영혼이 치유와 위로를 얻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릴 것을 다시금 다짐합니다. 예배의 자리는 이렇듯 축복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한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은 자신의 생업과 가정을 넘어 믿음의 공동체에까지 확대됩니다. 성도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와 함께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고, 그를 열방에 복(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창 12:2). 경건한 한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부요하게 하는 복의 통로가 됩니다.

 

* 하나님을 경외함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멀리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을 때 복된 삶이 시작됩니다. 땀 흘려 수고한 대로 정당한 대가를 누리며, 가정이 화목하고 번성합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복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까지 확대됩니다. 한 사람의 미래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임하는 은총과 나라의 평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성도는 만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을 향한 예배의 자리로 진실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말씀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마음 다해 예배하게 하시고,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의 길을 걸으면 평강의 복을 누립니다

 

[시편 128편 1절~6절]
1절 -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절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절 -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절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절 -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절 -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길을 걷는 사람은 복이 있어, 손이 수고한 대로 먹고 형통할 것입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은 복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온에서 그에게 복 주시므로 그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과 자식의 자식을 보며 평강을 누립니다.

 

1. 여호와의 길을 걷는 자의 복 (1~4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의 길로 행합니다. '그의 길'(1절)을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합니다. 비록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출산의 고통이 커지고 저주받은 땅에서 우리가 수고해야 양식을 얻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길로 행하면 형벌과 저주의 환경에서도 복을 얻습니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고 원수에게 양식을 빼앗기지 않으며(사 62:8~9), 행하는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아내는 다방면으로 좋은 열매를 맺어 가정을 결실한 포도나무같이 만듭니다(잠 31:31). 식탁에 둘러앉은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로부터 말씀을 배우며 어린 감람나무처럼 미래의 소망으로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는 가정은 대대손손 복이 이어집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길을 걸으면 어떤 복을 받게 되나요? 복된 가정을 소망하며 나와 우리 가족이 함께 노력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2. 시온에서 복 주심 (5~6절)

하나님 나라에서 개인과 가정과 교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예루살렘)에서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백성의 형통은 개인의 자아 성취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개인의 평안만 구하면 많이 수고해도 적게 거두고, 돈을 벌어도 구멍 뚫린 주머니에 넣음이 됩니다(학 1:4~6). 자기를 부인하고 부름받은 사명대로 주님을 따르면, 주님이 개인에게도 복을 주시고 평생에 교회에 임하는 은총도 보게 하십니다. 이는 믿음의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받는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은총과 평강이 교회에 가득하길 구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해 평강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는 복됩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섬기는 교회의 평안과 부흥을 위해 내가 지속해서 기도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땀 흘려 수고할 일이 있음도,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음도, 예배 공동체가 있음도 하나님이 주신 복임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주님을 경외하며 말씀의 길을 따라 걷는 자에게 주어지는 평강과 번영의 복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흘러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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