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성전 봉헌기도 132:1-10
본문은 하나님앞에 나아와 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지은 성전을 받아달라고 간구하는 솔로몬의 기도이다. 이렇게함으로써 솔로몬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바치겠다고 맹세한 다윗의 서약을 지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모든 일을 여호와께서 하셨으니 나는 아무공이 없나이다. 다만 여호와여, 성전을 짓겠다고 서약을 했던 다윗을 기억하소서"라고 기도하였을 뿐이다. 솔로몬은 특별히 다윗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자마자 자기가 머무를 궁궐을 짓기도전에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세우겠다고 엄숙히 맹세하였던 점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하였다. 다윗은 율법에 하나님이 그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에 관한 언급이 종종 나오는바 그곳에 모든 지파가 모이게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다윗이 왕위에 오를무렵에는 아직 그 장소가 어딘지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미 실로는 황폐한지 오래되었고 달리 마땅한 장소를 찾을수도 없었기때문에 여호와께서 정하신 절기를 지키면서 그 예를 다 갖추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다윗은 "반드시 모든 지파가 함께 모여야할 장소를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였다. 다윗이 찾으려했던 것은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세우고 언약궤를 놓아야할 곳으로서 제사장과 백성들이 함께 모여야할 장소이기도 했다. 이 일이 거론되기 시작한지도 꽤 오랜시간이 지났으나, 정사를 살피러 나온 다윗이 어떤식으로든 결정을 해야되겠다고 할때까지 한가지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다윗은 그날 해 떨어지기전에 언약궤를 모셔둘 성막의 위치, 혹은 훗날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해 전을 건축할 장소를 지적해둠으로써 재위 초기부터 미루어왔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물론 여호와의 전을 세울장소는 다윗의 재위가 거의 끝나갈무렵까지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장소를 발견하자 다윗은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라고 외쳤다. 매일 아침 그날 하루의 일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기전까지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며 자기의 본분을 지키려고 조심하는 것은 올바른 생활태도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 여호와의 언약궤를 찾으려하였다(6,7절). 그들은 그궤를 찾지못하여 오랫동안 애곡하였던 것이다(삼상 7:2). 어느날 백성들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함을 들었다'(에브라다란 실로의 또다른 지명인데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속한 땅이었다). 그러나 언약궤는 이미 그곳에서 자리를 옮겨 백성들은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무밭' 곧 기럇여아림에서 발견하였다. 기럇여아림이란 지명은 '나무밭'이라는 뜻이다. 이렇게해서 이스라엘 온백성은 다윗의 재위 초기에 장엄한 예식을 갖추어 언약궤를 맞아들였던 것이다(대상 13:6). 또한 솔로몬이 언약궤를 모셔둘 전을 건축하였을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하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이제 진정으로 평안한 곳이 생겼으니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앞에서 경배'함으로써 여호와의 손길을 기다리는 백성으로서 도리를 지키리라. '사울때에는' 그럴만한 장소가 없어 여호와께 경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도다"(대상 13:3). 그 이외에도 솔로몬은 여러가지 내용으로 기도하였다(8-10절). 우선 솔로몬은 자기가 지어바친 성전을 받으시사 영원히 거할 처소로 삼아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저희가 '주의 제사장'이므로 '의'로 옷입지 않으면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나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동안 마음에 위로를 얻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주의 기름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지금까지 구한 것을 물리치지 마시고 주의 종 솔로몬을 부끄럽게 하지 마옵소서."

Ⅱ.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 132:11-18
이러한 언약들은 교회와 국가 양편에 모두 관련이 되어있다. 다시말해서 다윗의 후손이 그 왕위를 이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시온산에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여호와의 증거와도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다윗의 후손에게 주신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듯이 시온산에 관한 언약은 복음교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언약인 동시에 그로인하여 큰기쁨을 누릴수 있는 언약인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안과 시온산을 선택하셨다. 결국 두가지가 모두 하나님의 언약인 것이다.
1)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을 택하사 왕위를 이어가게 하소서 '성실한 맹세'로써 이 선택이 영원히 변치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셨다(11,12절).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하여금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가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이 약속은 솔로몬을 통해서 실현되었다. 다윗 자신은 큰기쁨가운데 그의 아들이 자기 왕위를 잇는 것을 볼때까지 장수하였다(왕상 1:48). 그런데 다윗의 후손이 영원히 왕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한가지 조건을 지켜야만 했다.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문제는 저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지 않는데서 발생하였다.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 다윗의 후손은 결국 그위에서 끊쳐졌고, '왕의 홀은' 점차적으로 '유다를 떠나게' 되었다. 다만 그 자손중에서 한왕을 택하사 영원한 후계자로 삼으시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며 평강이 대대로 이르게 하시겠다는 언약은 지켜졌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한왕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으로 다윗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해준다(행 2:30).
2) 하나님은 시온산을 거룩한 산으로 정하사 이곳을 기쁘게 여기심으로써 자신의 선택에 변함이 없다는 뜻을 나타내셨다(13,14절). 뿐만아니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다윗도 이를 따라 시온게 거하겠노라고 하였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시온은 복음위에 세워진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복음교회는 '시온산'이라고 불리웠다(히 12:22). 그리고 여기서 시온산을 두고 말씀하신것 모두가 복음교회를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졌다. 시온은 쟁기질을 해놓은지 오래된 밭과 같으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딤전 3:15), '영원히 쉴 곳'이며 하나님이 항상 임하여 계실 것이고 세상끝날까지 복을 누릴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안과 시온을 위하여 풍성한 축복을 예비해두셨다. 이들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축복을 주실 것이다.
1) 이 땅에 사는날동안 큰축복을 누리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경건한 모습을 잃지않는다면 그 약속은 틀림없이 지켜질 것이다. 땅은 소산을 풍성히 낼 것이다. 신앙을 바르게 지키는 곳에는 축복이 풍성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매사에 특별한 축복을 받으며 이로인하여 항상 즐거워하게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하리로다. 가난한 자들도 충분한 식량을 가지게될 것이다. 흉년이 들면 빈민들이 제일 먼저 배를 곯게되므로 이들이 만족할정도라면 양식이 충분하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로, 말씀과 규례안에서 각사람의 영혼을 자라게 하는 섭리로 볼수도 있다. 하나님은 거듭난 새사람이 자랄수 있도록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시며 또한 생명의 양식으로 저들의 메마른 영혼을 만족하게 채워주실 것이다. 그다음으로 하나님은 장차올 인생들에게 경건한 것으로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16절). 이것은 솔로몬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을 뜻한다(9절). 솔로몬은 제사장들이 '의'를 입게되기를 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으로' 입히겠다고 언약해주셨다. 제사장들은 물론이요, 말씀을 듣는자마다 구원을 받게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날로 증가케 해줄 것이다.
2) 다윗의 집안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합당한 복을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할 것이라(17절). '거기'란 곧 시온을 의미한다. 왕실의 위엄은 날마다 높아져가고 오랜세월에 걸쳐 변함없는 영광을 누리게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바로 여호와께서 '그종 다윗의 집안'에서 택하여 세우신 '구원의 뿔'이다. 내가 내 기름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이 뜻은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18:28).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등불은 분명히 밝게 타오를 것이다. 등불 하나는 후계자 또는 상속자의 의미로서 하나가 꺼질듯하면 그 불씨를 받은 다른 것이 빛을 발함으로 계속 그빛을 발함으로 계속 그빛을 이어간다. 또한 등불은 상속 그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하나님앞에서 어떤 한사람만 세우심을 입는 것을 바랄수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과 빛'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악한 꾀를 세우는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를 입혀' 저희들의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하리라. 즉 그 나라가 더욱더 영광을 입게될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이다. 땅위의 왕들이 쓴 면류관은 '대대로' 이어지지 못하나(잠 27:24), 그리스도의 면류관은 영원할 것이며 신실한 종들을 위하여 예비된 면류관 역시 시들지않을 것이다.

# 핵심
132:1-18
성전을 건축하려고 힘을 다한 다윗과 그의 왕가를 위해 기도하는 시편이다.

# 묵상
여호와의 거처 ( 132:13, 14 )
여호와께서 자신의 거처로 삼으신 곳은 시온산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산에 당신의 임재처소인 성전을 건축토록 하시고 그곳을 당신의 안식처요, 세상 통치의 핵심처소로 삼으셨습니다. 그런점에서 시온산은 모든 신앙인의 본향이요, 영원히 사모하고 소망할 은혜의 처소입니다(시137:1). 후에 ‘시온산’은 복음적인 교회의 모형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전’ 곧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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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함 131:1-3
다윗은 자기 양심에 비추어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증거할수 있는점을 큰기쁨으로 삼았다. 그는 한번도 남보다 높은지위에 오르고자 한일이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더라면 평생을 양의 우리에서 지내면서도 충분히 만족해하였을 사람이었다. 한번은 그 형이 노를 발하면서 다윗을 향해 교만하다고 꾸짖는 일이 있었지만, 이것은 근거도 없고 부당하기 짝이없는 비난이었을 뿐이다(삼상 17:8). 다윗은 도무지 남을 업신여기거나 비굴하게 처신해 본일이 없었다.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윗사람을 향해 시기하는 눈길을 보낸 일도 없거니와 오만한 자세로 아랫사람을 내려다 본적도 없나이다." 일찍이 왕위를 차지해야 되겠다는 교만한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기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난뒤에도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을 잃지않고 있었다. 우리 구주께서도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마 18:3).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는 누구나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할 것이다. 원래 인간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간절하게 이세상의 정욕을 추구하던 존재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성결함을 받은 영혼만이 이러한 정욕을 끊을수 있게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들의 영혼은 예전에 좋아하던 것을 모두 잃어버리고도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 언약의 은혜에 의지하여 평화롭게 살아간다.

# 핵심
131:1-3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단순하게 신뢰하는 다윗의 신앙심이 잘 드러나있는 시편이다.

# 묵상
하나님앞에서의 다윗 ( 131:2 )
다윗은 자신을 어미의 품속에서 참평안을 누리고 있는 젖뗀아이 같은 존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그분앞에서 순결한 양심과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자신을 어린아이로 자리매김할수 있습니다. 천국의 문은 이처럼 그 심령이 순전하여 어린아이같이 겸손한 자에게만 열려있습니다(마18: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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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고난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음 130:1-4
흠잡을데 없이 훌륭한 사람들도 간혹 큰고통과 환난의 '깊은' 곳에 빠져 허덕일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절망을 만난다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보좌앞에 나아가 부르짖을수 있는 특권과 이에 대한 응답을 들을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야말로 처음부터 실족하지 않는 방법이요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40:1,2).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이렇게 짤막한 문장속에서 야훼와 아도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두번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특별한 강조의 뜻으로 볼수 있다. 아무튼 이 문장은 하나님의 영광과 무섭게 진노하실때의 그 모습을 보면서 외경심을 품을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묘사해 놓았다. 이 땅위에는 하나님앞에 나아가 담대하게 자신은 의로우며 죄지은 일이 없다고 주장할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의로움으로 심판을 하신다면 인류전체가 파멸을 당할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만 하나님은 지극히 긍휼하신 분이라 그 진노하심으로 모든 생명을 소멸시키지 않으시는 것뿐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을수 있다는 사실은 말할수 없이 큰위안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어떤 죄라도 용서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어떤사람은 '화목하심이 주께 있음'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목제물이 되시사 온인류가 그를 통하여 죄사함을 얻을수 있다는 소망을 품게 해주셨다. 이러한 소망은 우리로하여금 그동안의 행악함을 인하여 버림을 받지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일에 참여케하는 요인이 된다.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기만하면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었어도 이로인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Ⅱ.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봄 130:5-8
나 곧 내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말씀을 바라는도다(5절). "여호와 하나님을 우러러 구원과 위로의 손길을 기다리나이다. 때가되면 주의 손길이 함께하실 것을 믿으면서도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원하나이다. 간혹 주의 은혜를 기다려야 할때도 있으나 오로지 참음으로 기다릴뿐, 다른 손에서 구원을 얻으려하지 않겠나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로지 말씀속의 언약을 믿고 소망중에 기다려야하며 인간의 머리로 만들어낸 피조물에 현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리라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소망중에 기다리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사 돌아보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낮과 밤이 바뀌는 자연의 법칙보다도 더확실하여 그 모든 것이 사라진뒤에도 홀로남아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침상을 지키는 자나 집을 떠나서 먼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은 새벽 일찍부터 동이 트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곤 한다. 그러나 선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표징을 사모하여 기다리는 모습은 더욱 절실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자하심'으로 모든 일을 하시며 그 백성을 훈계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시며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딛 2:14) '야곱에게서 경건치않은 것을 돌이키시는'(롬 11:26) 분이시다. 죄로부터 구원하신다는 것은 그외의 모든 불법에서 건져주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이를 가리켜 풍성한 구속이라 하였던 것이다.

# 핵심
130:1-8
회개의 시편들가운데 하나이다(참조, 6,32,38,51,102,143편).

# 묵상
하나님과 인간의 간극(間隙) ( 130:3 )
시인은 여호와께서 인간의 죄악을 감찰하신다면, 아무도 설 자가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은 철저히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로서,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앞에 그 누구도 설수 없습니다(롬3:10; 엡2:1). 인간이 이같은 간극을 알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사모할수가 있습니다(눅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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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129:1-4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을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세어 옛일을 회상하는 것밖에 달리 소일거리가 없는 노인에 빗대어 표현해놓았다.
(1) 교회는 이땅에서 대적하는 무리로인하여 간혹 큰곤욕을 치르곤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항상 대적하는 자가 많았고 이에 따라 교회도 그 발생초기부터 자주 고난을 당하기 일쑤였다. 밭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3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저들을 혹독하게 다루었다. 그들은 마치 농부가 땀을 흘려가며 쟁기로 땅을 가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무리에게 땅을 갈게 하셨을때에는 이미 백성들을 위해 선한 일을 계획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이용하여 그 백성들이 놀리는 땅을 갈아 은혜의 씨를 뿌리고 선한 열매를 풍성히 거두게하려는 것뿐이었다. 물론 원수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라는 말씀은 원수들이 이 일을 꾀할때 오로지 교회의 파멸을 기도하였을뿐 다른 생각은 일체 하지않았다는 점을 묘사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원수들이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의 등에 '고랑'을 많이 냈다는 것을, 심하게 채찍질하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재단기로 내 등을 난도질 해놓았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도들은 때때로 혹심한 채찍질로 시련을 겪곤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은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사 50:6).
(2) 교회는 하늘보좌에 계시는 후원자로 말미암아 언제나 구원을 받았다. 즉 원수들의 계획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스도께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사 음부의 권세가 한번도 이기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기지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악인의 줄을 끊으셨도다. 이 말씀은 소와 말을 묶어둔 줄을 끊으사 밭갈이를 못하게 하셨을뿐만 아니라 채찍을 절단하셔서 의인의 등을 때리지 못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있던 포로의 줄을 온전히 끊으셨다는 뜻이다.

Ⅱ. 대적자의 멸망에 대한 기대 129:5-8
시편 기자는 일찍이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같이 망하게 하옵소서'라고 찬양하였던 드보라와 비슷하게 마무리부분을 장식해 놓았다(삿 5:31). 주를 대적하는 무리가 큰혼란에 빠지게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 비유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가 무성한 종려나무나 감람나무처럼 번성하는 반면, 저희를 미워하는 자들은 '지붕의 풀과 같이' 말라버릴 것이다. 그들은 시온에 대적하였기때문에 장차 멸망을 당할수밖에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이상, 우리는 그들을 지붕의 풀처럼 초라하고 빈약하여 아무가치도 지니지못한 존재로 여겨도 무방하다. 그들은 뿌리가 없는 생명이라서 충분히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다. 지붕이 높으면 높을수록 태양열도 강하게 내리쬐일 것이니 그만큼 더빨리 시들어버린다. 여기서 높은 지붕은 아마도 그들의 교만함을 나타내는것 같다. 지붕의 풀을 베어낸다는 것은 하찮은 장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헌신의 티를 내는 인사치레를 함부로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할 것이다.

# 핵심
129:1-8
이스라엘 민족이 당한 역사적인 시련과 하나님의 구원을 주제로 삼고있는 시편이다.

# 묵상
축복의 인사말 ( 129:8 )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사이에서 오갔던 축복의 인사말입니다(룻2:4). 이는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이며, 악인에게는 축복을 베풀지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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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 128:1-6
경건한 생활태도는 이 땅위에서 뿐만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는 언약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나라 사람이든지간에 참마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올바른 도를 지켜행하기만 하면 기쁘게 영접해주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신분의 고하는 물론, 빈부에 따른 차별도 두지않으시므로 이세상의 어떤자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 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자기를 다스리면 그 보호하심을 받아 풍성함을 누리게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어떤일을 당하더라도 결국에는 그로인해 축복을 얻으리로다. 땅위에 사는동안 복되고 죽는 순간은 더욱 복되며, 무엇보다도 영생을 얻을 것이므로 복되도다." 한편 '내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하는 말씀은 다음의 두가지 사실을 약속한다.
첫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언제나 할일이 있으며 그일을 감당할만한 능력도 소유할 것이다(할일이 없어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비참하고 불행한 생활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일용한 양식을 위하여 남에게 신세를 지지도 않으려니와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둘째, 이들은 자신이 하는일에 성공을 거두고 여기서 얻은 재물로 식솔들과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힘써 일을 한자는 단잠을 자며 음식도 맛있게 먹는 법이다. 그들은 가족관계에서 큰만족을 느낄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자들은 그만큼 이들로인하여 큰기쁨을 맛보게될 가능성을 지니고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런 기쁨을 맛보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저들이 잘되는 일이 있어야할 것이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같으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아내는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할뿐만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같은 존재인 것이다. 또한 그 열매를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크게 기쁨을 누릴 것이다(삿 9:13). 포도나무는 연약하여 잘견디지 못하기때문에 받침대를 세워 지탱해주고 세심하게 돌보아야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식물이다. 아내가 거할 처소는 그 남편의 짐이다. 남편의 집은 곧 아내의 성으로 그곳에는 언제나 아내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감이 있게 마련이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하는 말씀속에는 이미 아내된 자가 그이외에 달리 어느곳에 거하겠느냐는 반문의 뜻을 담고있었다. 아내가 거할곳은 '내실'이다. 이는 곧 아내가 발밑에 짓밟힐 존재가 아니며 지붕꼭대기에 올라앉을 지배자도 아니라는 점을 나타내준다. 한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자식은 때를 따라 열매를 맺는 '어린 감람나무같으리라'고 하셨다. 비록 매일의 상차림이 보잘것 없다하여도 자식들이 서로 흩어지지 아니하고, 강제로 끌어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손도손 모이는 것을 보면 부모는 마음에 큰기쁨을 느끼게 된다. 어떤 부모든지 자식들이 상앞에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건강하여 음식을 잘먹으므로 약을 쓸일이 없으며,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여 감람나무와 같이 곧고 푸르게 자라나는 것을 가장 큰기쁨으로 여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 가족이 융성하여 대가 끊이지 아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뻐하리라."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다(잠 17:6). 실제로 노인들은 손자를 귀여워하는 경향이 강하나 특히 선한 사람을 후손으로 두었을때 더욱더 기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여. 네가 땅에서 장수한다하여도 그 사는동안 내내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바깥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가정의 일로 기쁨을 잃고 비통해하는 일은 없으리로다."

# 핵심
128:1-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현세에서 받는 축복을 주제로 삼고있는 시편이다.

# 묵상
가정안락의 길 ( 128:1-6 )
가정을 안락하게 할수 있는 복의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신앙과 경건은 번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며 진리에 대한 굳건한 신념으로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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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라는 권면 127:1-5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솔로몬의 부친은 더높은 곳을 바라며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동행하여야한다고 아들을 훈계하였다.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여야하며 인간의 계획을 너무 믿지말아야할 것이다.
(1) 우선 집을 세우는 문제에 있어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이 말속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축복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이루어질수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집의 의미를 물리적인 건축물로 받아들인다면 여호와께서 집짓는 일에 축복치않으실때 건물을 세우려고 했던 인간의 계획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라는 뜻이 된다. 만약에 교만한 마음과 헛된 생각이 가득한 상태에서 건물의 모양을 정하고 설계를 한다거나, 이웃을 짓밟고 부당한 일을 행하여 그 기초를 삼는다면(합 2:11,12),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곳에 집을 세우지 않으실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못하면 축복을 기다릴 근거를 잃게되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지 않는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집을 짓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여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집을 짓는데 필요한 사람을 선정하여 계약을 맺고 일을 분담하여 맡기며 물품을 구입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뜻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려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노력도 모두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도 허사라 하였는데 하물며 한집안의 주인이 무슨 재주로 집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수 있겠는가.
(2) 집안을 번창케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오랜세월에 걸쳐 수고하여야 거둘 결실이겠으나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결단코 이루어질수 없는 일이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이렇게 육신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고 땅위의 재물을 위하여 힘을 쏟은 것들이 모두 헛되도다." 이 모든 것들을 얻기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번창케하실 뜻이 없다면 모든 수고가 무위로 돌아가고 말것이다. 본시 '명철자라고' 해서 무조건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전 9:11).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이렇게 야단스레 소란을 떨지않아도 마음에 평안을 얻어 늘기쁘게 살게끔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잠을 주신다. 이는 은혜를 베푸사 여호와를 경외하는가운데 자리에 눕게 하시고(이때 각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육신과 같이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일어난후에도 하나님과 함께할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며 이렇게 숙면을 취하여 원기를 회복한후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더욱더 열심을 내게하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기서 잠의 의미는 마음의 평안과 만족,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과 아울러 미래에 대한 기쁜소망을 뜻한다. 한편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 하였다(3절). 하나님께서 저들의 생명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식을 얻고 이들로인하여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심한 고통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자식을 가리켜 '기업이요 상급'이라 한것은 이들을 짐으로 생각지말고 축복으로 여겨야한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않으면 한사람의 입을 보내신 그가 필요한만큼의 양식도 더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이라고 했었다. 한걸음 더나아가 자식은 여호와를 위한 기업이 된다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 자식이 많은 집안은 마치 크기가 서로 다른 화살로 가득한 전통과 같다고 할수 있겠다. 그 많은 화살도 때에따라 긴요히 쓰이듯이 자식들의 제각기 다른 능력과 취향도 쓰이는 용도가 각각 다르다.

# 핵심
127:1-5
신앙적인 교훈을 제시하는 일종의 지혜시의 성격을 띠고있다. 집을 짓는 일이나, 도시를 방어하는 일이나,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이나, 혹은 자녀의 축복 등과 같은 인간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소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 묵상
하나님의 의지 ( 127:1 )
세상만물은 진정 하나님의 피조물이기때문에 인간의 생명및 그 행사는 하나님없이 번영할수 없습니다. 즉 어떤개인이든 공동체든 막론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지않는다면 인간적인 모든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결국 인간이 아무리 치밀히 계획하고 분주하게 활동할지라도 하나님이 원치않으시면 패할수밖에 없습니다(롬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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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포로생활로부터의 해방 126:1-3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금을 버드나무 꼭대기에 걸어두고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포로생활이 끝난 지금 이들은 다시금 수금을 켜게되었다. 이날에 백성들은 여호와의 섭리를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의 긍휼하심을 기다려왔으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을 진실로 기쁘게 여겼다. 사실 고레스왕은 자기 나라의 형편때문에 포로로 끌려와있던 하나님의 백성에게 자유를 선포하였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로하여금 포로생활을 겪게하신 것도, 이들을 불속에 들어가 없어질 불순물이 아니라 더욱더 깨끗하게 정련될 금으로 보셨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일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라서 처음에는 모두 어리둥절하였을 뿐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앞으로 어떤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가려는지 분명히 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꿈꾸는것 같았도다.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선뜻 사실로 받아들일수 없었다. 처음에 소식을 듣고 놀랐던 백성들은 곧 기쁨의 황홀경에 빠져 체면불구하고 들뜬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열방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것은 자기네가 섬기던 신들이 할수 없었던 일을 넉넉히 해내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보고 감탄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을 묘사해주고 있다. 이방인들은 단순한 구경꾼에 불과하며 그저 이일을 이야깃거리로 삼았을 뿐이다. 그들은 이 일에 참가할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일에 직접 참여하는 자의 입장이니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놓으셨다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몹시 즐거운 일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기만 하여도 큰위로를 얻을 것이다.

Ⅱ. 여호와의 긍휼하심에 대한 기대 126:4-6
본문은 아직 베풀어지지 않은 여호와의 긍휼하심을 기대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여전히 고통중에 있었다(느 1:3). 게다가 아직도 바벨론 땅에 남아있는 형제들도 상당수에 달하는 형편이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돌리소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그 무거운 짐을 벗고 편히 쉴수 있게 해주소서. 또한 바벨론에 남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하시사 우리처럼 자유의 혜택을 누리게 하소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시작은 우리로하여금 그 긍휼하심의 끝을 위해 기도하도록 고무시켜 준다. 모든 성도들은 이 사실을 굳게믿어 자기들이 흘린 눈물이 종국에 가서 기쁨의 단으로 열매를 맺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음에 위로를 얻을수 있다(5,6절). 그렇지만 눈물을 흘리다가 지체하여 씨뿌릴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일이 어려울때일수록 옳은 길로 행하려고 힘써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비를 맞아야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되는 땅과 같다. 한편 우리들이 눈물로 뿌려야할 씨가 몇가지 있다. 그것은 자신과 이웃의 죄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과 교회의 고난을 생각하여 마음이 아파 흘리는 눈물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감동을 받아 흐리는 눈물인데 모두 우리가 마땅히 뿌려야할 씨인 것이다. 일찍이 욥과 요셉, 다윗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겪은뒤에 기쁨의 단을 거두어 들였다. 이와같이 경건한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둔 자들은 하나님의 인치심으로 죄사함을 얻고 영원히 평강을 누리는 기쁨의 단을 추수하게될 것이다.

# 핵심
126:1-6
포로생활에서 벗어난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시편이다.

# 묵상
가나안으로 돌아올때의 감격 ( 126:1, 2 )
바벨론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고토(故土)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방의 기쁨이 너무도 큰나머지 마치 꿈꾸는것 같이 현실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얼굴에는 웃음이, 입술에는 찬송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죄와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은 인생에게 발견할수 있는 가장 큰특징은 기쁨과 감사와 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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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의 안전 125:1-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가지 귀한 약속이 주어진다.
(1) 세가지 약속이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특성의 소유자인가.
1) 이들은 하나님앞에서 옳은 길로 행하는 '의인'이다(3절). 다시말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항상 의로운 사람들이란 뜻이다.
2) 또한 이들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로서 그 도우시는 손길을 의지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위하여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란다면 하나님을 바라는 기대가 점점더 커질 것이다.
(2) 그 약속은 어떤 것인가.
1) 이들의 마음이 믿음으로 굳게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때문에 끝까지 옳은 길을 지켜나간다는 뜻이다.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굳게 서게될 것이다(사 7:9). 이들을 가리켜 '시온산'과 같다고 한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지켜지는 산처럼, 특히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지키시는 거룩한 산 시온산과 같이 굳건하게 서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2)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긴 백성들은 보호하심을 받으며 원수의 조롱을 당하지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는 마치 예루살렘이 산들로 둘러싸여 천연적으로 견고한 요새처럼 되어있는 것과 같다고 볼수 있다(2절).
3) 그들에게 고난이 닥친다해도, 이들의 힘으로 도저히 견딜수 없을만큼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3절). 때때로 의인의 생활에 고난이 엄습해 오는경우도 있겠으나 영원히 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고난의 기간은, 악인이 꾀하는 것같이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같이 오래가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사 그 백성이 겪어야할 고난의 날을 줄이실뿐만 아니라 '시험을 당할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예비해주겠다'고 하셨다.

Ⅱ. 의인을 위한 기도 125:4,5
시편 기자는 이부분에서 마음이 진실하여 늘 변함이 없는 자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간구한다(4절). 여호와여 선인에게...선을 행하소서. 여기서 그는 "여호와여 죄를 범한 일이 없는 완전하고 흠없는 영혼을 위하여 선을 행하소서"라고 외치지않고 다만 마음이 정직하고 선한 자를 위하여 기도하였을 뿐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성도들의 기도가 활기를 띠게하는 요인이 된다. 이 기도에 이어 선한 길을 버리고 외식하는 자들의 멸망을 예견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은 기도가 아니라 단순한 예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는 마지막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게 널리 심판을 내리실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평강중에 보호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한편 이 구절은 언약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질수도 있다.

# 핵심
125:1-5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평강과 안전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노래한 시편이다.

# 묵상
시온성과 같은 성도의 안전 ( 125:1 )
시인은 성도의 절대안전을 영원히 요동치않는 시온산에 비교했습니다. 물론 시온산은 그자체로서는 평범한 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하나님이 친히 좌정하여 계시기때문에 시온산은 세상의 어떤 장소보다 더안전하고 견고할수 있습니다. 성도의 안전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늘 함께한다면 성도는 세상의 그 어떤도전도 능히 이겨낼수 있습니다(요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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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원수들의 분노앞에 선 하나님의 백성 124:1-5
하나님의 백성들은 곧 파멸을 당하기라도 할것처럼 위급한 상태에 있었다. 대개 환자의 병이 깊을수록 치료하는 의사의 노련한 솜씨가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난다'함은 똑같은 피조물이면서도 악한 자들은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기울인다는 뜻이다. 이런 자들은 일평생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파멸만을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하나님은 우리편에 계시도다.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이실뿐만 아니라 어려울때는 언제나 나타나주시는 분이시라. 하나님은 곧 여호와이시라." 이 점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에 우리의 구원을 담당하신 분이 여호와 곧 전능하시고 늘 완전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쉽게 이겼을 것이다. 모든면에서 풍성하신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이들이야말로 축복받은 백성이다.

Ⅱ.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124:6-8
시편 기자는 당시에 그 백성을 위해 큰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다. 그들은 마치 한마리의 어린양이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턱밑에서 구출되는 것과 같이 구원을 받았다. 본문에는 똑같은 내용을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남같이' 구원을 받았다고 표현해 놓았다('새'라는 단어의 원래의미는 몸집이 작은 참새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하고 어리석은 새와 같아서 일단 올무에 걸리면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은 올무를 끊으시고 원수의 계획을 미련한 것으로 만드사 그 백성을 구원해주신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다윗은 앞서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내놓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의지해야한다고 권면하였다(121:2).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 전반의 문제역시 여호와의 도우심을 의지해야한다고 가르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셨으며 이세상에 교회를 만드시고 그 교회가 위험한 지경에 빠져 탄식할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펴신다는점은 우리에게 말할수 없이 큰위안을 준다.

# 핵심
124:1-8
원수들의 위협을 당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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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긍휼을 바라는 기도 123:1-4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주여'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도할때, 하나님을 우러러보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를 것을 가르쳐주셨다. 하늘이란 땅위 사방을 굽어볼수 있는 장소이며 권세의 보좌가 놓인 곳이다. 바로 그 하늘에서 하나님은 인생들의 온갖 질고를 지켜보시다가 때를 따라 도움의 손길을 베풀곤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때마다 우리 영혼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특별히 이 경우와 같이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면 더욱더 그리해야 한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라함은 일종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뒤이어 나오는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하는 문장의 뜻을 좀더 자세히 풀이해주고 있다(2절). 종의 눈은 할일을 정하여 지시해주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 상전의 손을 바라보아야 한다. 종은 '식물'을 얻기위해서 상전이나 주모의 손을 바라보는 것이다(잠 31:15).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과 풍성한 은혜를 얻기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만일 종이 임무를 거역하거나 하는 일에 대하여 회의를 느낄때에는 누가 그를 지지해주고 올바로 이끌어 주겠는가? 오로지 그에게 일을 시킨 상전만이 그렇게 할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때마다 그앞에 엎드려 "우리는 주의 것이오니 이제 구원하소서"하고 호소할수 있다. 결국 이 백성은 아무리 책망을 받아도 자기를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가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사 9:13). 이것은 하나님의 강하신 팔을 의지하여 스스로 복종하고 겸손히 행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종은 잘한 일에 대해서 상전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대가를 바란다. 외식하는 자는 세상의 손을 바라보므로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은' 반면에(마 6:2), 진실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은 오로지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만 바라본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난을 당할때 하나님께 드리는 겸손한 호소가 나온다(3,4절).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한편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하는 표현은 그들의 슬픔을 절실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비난은 상처를 남긴다. 어떤사람들은 이부분에서 '평안한 자' 및 '교만한 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웃을 멸시하고 친구를 모욕하는 무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함이었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평안한 중에 거하며 훌륭한 지위를 갖춘 자들이 남을 비난하고 멸시하는 것을 보면 영혼깊숙이 아픔을 느끼게 되나이다." 그들에 대한 표현을 종합해본다면, 그들은 편안한 것을 좋아하며 육체적인 정욕에 탐닉하는 쾌락주의자라는 점을 분명히 알수 있다(욥 12:5).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헐뜯는 것이 자기들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짓밟은 것이다.

# 핵심
123:1-4
박해와 환난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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