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셉의 삶

요셉은 매우 특별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다. 히브리인이면서 이방인 애굽에서 주로 살았으며 총리대신이라는 지휘에 오른 한마디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큰일을 계획하셨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성을 드러내게 하셨다. 경건한 사람, 하나님 중심의 사람의 미래는 전능하신 그분에 의해서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것을 요셉의 일생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2. 꿈을 먹고사는 소년

1) 위대한 환상
요셉은 꿈을 먹고사는 소년이었다. 형제들이 갖지못한 위대한 환상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망스러운 일이다.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요셉의 꿈의 근원이 하나님의 계시와 갖는 연관성이다. 그의 꿈은 일종의 신적 계시였으며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2) 일반적인 반응
하나님께서 야곱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 장자도 아닌 요셉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찾을수가 없다. 다만 그분의 주권이라고 말할수 있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그가 전능자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것과 형제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계시를 가진 자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핍박이다. 과거에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았고, 주께서도 핍박을 받으셨으며, 오늘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의인에게는 핍박이 따른다.

3. 바로 앞에 선 요셉

1) 꿈을 해몽하는 능력
꿈을 해몽하는 일은 고대 세계에서 흔하게 있었으며, 이와 관련된 교재는 물론 학교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요셉의 경우는 아주 특별했다. 그는 전통적인 양식에 의해 꿈을 해석하는 사람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셨던 것이다.

2) 바로의 꿈과 요셉의 형통
꿈은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꾸는 모든 꿈이 그런 것이 아니지만 그분이 자신의 뜻을 선지자들에게 알리시는 방법으로 꿈을 이용하신 예들이 종종있었다. 요셉이 꿈해석을 정확하게 했던 것은 꿈이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방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였으므로 요셉만이 해석할수 있었고, 이일로 인하여 그는 총리대신이라는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3) 세계 기근 문제의 해결
요셉 한사람으로 인하여 7년여에 걸친 세계의 기근 문제가 무난히 해결되었다. 우리는 요셉의 꿈 해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사람은 학문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확실히 따르는 경건한 자임을 알수 있다.

4. 가족과의 재회

1)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요셉이 먼저 애굽에 가서 자리를 잡게된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이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이와 같이 행하셨던 것이다.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형제들간의 불화로 요셉이 애굽으로 간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애굽에서 나그네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그분의 궁극적인 목표가 가족과의 재회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2)이주한 요셉일가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하신대로 히브리 민족을 애굽에 이주시키려는 일을 이루시려는 것이다. 그들은 언약의 땅을 차지하기 전에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를 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다. 이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셨으며 때가 오매 요셉을 먼저 보내사 길을 닦게하신 것이다. 야곱과 그 모든 가족은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이주했으며 특별히 대우를 받아서 자신들의 정착지를 일구게 되었다.

3) 요셉의 형제들에 대한 인애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요셉은 형제들에게 충분히 복수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인애로 대하였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졌음을 믿었기에 형제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5. 요셉의 신앙이 주는 교훈

요셉은 그가 꿈을 꾼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며 참으로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다.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그분의 후원으로 형통한 사람으로 살수 있다. 오늘 우리의 세계 문제를 해결할 지혜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지식은 많아도 요셉처럼 경건한 사람이 적거나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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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지도 않았고, 직접 대화를 한적도 없다. 하나님은 요셉의 생애에 공개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시지 않고 다만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분으로만 묘사된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의식하고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증거한다.

1. 꿈꾸는 요셉(창37,38장)
저자는 창37:2에서 야곱의 약전을 소개하면서 왜 요셉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가? 그리고 요셉의 두가지 꿈을 통해서 계시하고자 하신 것은 무엇인가? 또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유다의 수치스런 가정사를 기록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1) 형들의 시기와 음해
저자가 요셉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야곱이 어떻게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으며, 그가 죽어 어떻게 다시 가나안 땅의 그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종살이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에게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주셨는데 그꿈은 요셉이 미래의 이스라엘 구원을 위하여 선택된 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요셉을 시기하던 그의 형들은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고 요셉을 죽이려고 한다(창37:20). 요셉의 형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계시에 역행하는 행동이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그런데 창세기는 요셉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유다의 가정사를 소개한다.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야곱을 이은 언약의 계승자가 요셉이 아닌 유다임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 열방이 나오리라는 언약을 세우셨는데(창17:6; 창35:11) 이 언약이 유다의 아들 베레스의 후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미래 구원과 말씀 성취(창15:13)를 위하여 요셉을 선택하고 그에게 그 될일을 꿈으로 보여주셨다. 그러자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악한 행동을 선하게 바꾸어 자신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셨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2. 애굽에서의 요셉(창39-41장)
애굽에 내려간 선택된 구원자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무엇인가? 또한 요셉이 애굽에 내려감은 무엇을 의미하며, 바로의 꿈과 요셉의 높여짐은 각각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요셉의 새이름 '시브낫바네아' 의 뜻은 무엇인가?

1) 애굽의 총리대신이 됨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영원히 함께하신 것처럼 요셉과 함께하셔서 범사를 형통케 하셨다(창39:2-5, 21-23). 저자는 요셉의 모든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과 형통케하심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에 내려갔다는 것은 애굽으로 이스라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한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왕에게 꿈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요셉을 통해 해석케 한다. 바로 왕의 꿈은 요셉을 가장 높이 존귀하게 하는 결과였고, 요셉의 높여짐은 요셉의 어렸을때의 꿈이 성취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요셉의 높여짐은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데 그의 높여짐은 애굽식의 이름이 뜻하는 '세상의 구원자이며 생명의 보존자'라는 의미에서도 나타난다.

2) 하나님은 구원의 준비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먼저 보내시고, 구원을 준비케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임마누엘로 함께하셨으며, 그를 애굽의 처리자로 세워 존귀케 하셨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선택한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꾼을 세우시고 구원을 예비하신다.

3.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창42-50장)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후 그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오게 된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요셉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유다의 예언중에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창49:10)는 무엇을 의미하며 홀, 실로는 누구를 지향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소명 대행자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요셉은 도덕적 성실성의 모범이며 신적 섭리의 통로이다. 그는 가뭄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과 언약 체결시에 언급하셨던 이스라엘의 이방 노예 생활에 대한 약속을 성취하셨다. 그리고는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 메시야 약속 혹은 여자의 후손 또는 아브라함의 참씨, 후사가 끊이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신다. 유다의 후손을 통한 치리자의 권위와 주권이 실로 혹은 메시야가 오실때까지 끊어지지 아니한다. 신약에서는 실로가 그리스도이며, 그가 다윗 족속가운데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밝히고 있다(눅1:32).

2) 예수는 평강을 가져오시는 분
유다의 후손을 통한 메시야 약속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실로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평강을 이땅에 가져오신 왕이시다. 그래서 원수들을 정복하고 성도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요셉의 생애에서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시고 그의 뜻대로 역사를 이끌고 가신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서 영광스럽게 된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실행하시는 과정속 도구로 사용되기 위한 한역할임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만하지 아니했고, 형들을 용서하는 모범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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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곱의 생애

그의 생애는 한마디로 파란만장하였다. 축복에 대한 열망과 형인 에서와의 갈등, 하란으로의 도피, 외삼촌댁에서의 고달픈 여정 등 괄목할만한 많은 사건들이 그의 인생을 장식하고 있다. 그의 생애에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도움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주의 도우심과 은혜로 그는 승리자가 되었고,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수 있었다.

2. 축복에 대한 갈망

1) 축복이 지닌 의미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축복을 받고자 했던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것은 일반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해 소망을 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부족의 족장이면서 제사직을 겸하여 수행했던 자신의 직임을 후사에게 물려주는 의식이 곧 복을 비는 것이라 말할수 있다. 대부분 그것은 장자의 몫이었으므로 차자로서는 넘볼수가 없었다.

2) 아버지를 속인 야곱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구원이 보편적임과 그분의 복이 차별없이 모든 성도들에게 임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야곱은 이 축복에 대한 갈망때문에 아버지를 속이게 되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될수 없는 거짓말을 하게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복의 독특성과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측면을 보게된다. 그분은 임의로 사람을 선택하시며 인간의 얄팍한 술수라도 때로는 용납하신다.

3) 에서와의 갈등
자기 몫을 동생에게 빼앗긴 에서로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든지간에 야곱과의 사이가 소원해질수 밖에 없었다. 둘 사이는 적대 관계가 되고만 것이다. 야곱은 에서의 위협을 견디어야 했으며, 언제 죽임을 당할지 알수 없는 불안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3.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감

1) 벧엘에서의 하나님
야곱은 부모의 권유에 따라 고향을 떠나 하란에 있는 외삼촌 댁으로 가게 되었다. 에서와의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신들의 생각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다. 그분은 하란을 무대로 야곱의 인생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며, 벧엘에서 이사실을 알게 하셨다.

2) 불어난 재산
형의 낯을 피해서 쫓기다시피 하란으로 가던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약속을 받게된 것이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보장된 미래의 설계도를 확실하게 볼수 있었다. 더이상 불안해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야곱은 혈혈단신으로 하란에 갔지만 주의 은혜로 거기서 네 아내와 열두 아들을 얻게되었고, 재산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축복을 받았다.

4. 귀향길에 오름

1) 극적으로 귀향길에 오름
야곱의 귀향은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었다. 외삼촌 라반의 끊임없는 경계속에서 그는 야반도주하다시피 그곳을 떠났으며,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 집을 향할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가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리는 모험을 감당했음을 이해해야 한다. 만일에 그의 계획이 실패로 끝났다면 그는 처자와 모든 재산을 빼앗긴채 홀로 떠나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주께서는 그의 생애에 극적인 사건들을 많게 하셨다.

2) 에서와의 화해
그의 귀향길에서 가장 큰 관문은 에서와의 화해였다. 반드시 통과해야할 관문이었기에 하란에서의 극적 탈출이 가져다주는 안도보다 더 큰 비중으로 그를 눌러왔다. 하지만 이사건도 극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의 화해를 가능케 하신 것이다. 그들은 서로 안고 울었으며 오랫동안 쌓여있던 앙금을 씻어버렸다. 주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오묘하다.

3) 벧엘로 돌아옴
극적인 여러사건들을 거치면서 야곱은 자신의 서원을 기억했고, 전에 놀라운 경험을 가졌던 벧엘로 돌아갔다. 이를 통해 성도는 언제든지 성전을 가까이 해야할 것임을 깨달을수 있다.

5. 야곱의 생애가 주는 교훈

야곱의 생애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그가 축복권을 소유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러하고, 하란에서의 이십여년에 걸친 여정도 그러하며 벧엘에서 애굽까지의 여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험악한 세월을 보냈지만 인생의 실패자는 아니었다.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역경중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모든 시련을 극복할수 있었다. 우리는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장자권, 축복권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후사라는 지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해해야 하겠다. 탐욕을 좇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보배를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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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야곱이 이삭을 이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계승자로서 아브라함에게 속한 복을 받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고, 열두 아들을 주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1.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창27,28장)
본문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이삭이 그복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이삭의 축복이 에서 대신 야곱에게 주어진 근본 동기는 무엇인가? 또한 이삭의 축복 속에 담긴 내용과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는 야곱에게 벧엘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여 "내가 너와 함께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창28:15)라고 말씀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야곱을 인정하신 하나님
야곱을 축복하는 이삭은 자기 아들에게 속아서 복을 빌었으나 그의 행위는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야곱은 리브가의 태속에서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인물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곱이 에서의 장자 명분을 산것도 동기가 된다.
또한 에서가 족속중에서 아내를 취함으로 언약의 상속권을 포기한 것도 해당된다(창26:34,35). 물론 아버지를 속인 리브가와 야곱의 죄는 간과 될수 없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재확인하시며, 이삭에게 그 축복을 이양한다. 이것은 곧 야곱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속임수로 축복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그가 언약의 상속자, 혹은 구속 역사의 전승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창27:27-29).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정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임재하심을 통해서 주시는 약속에서도 확인된다(창28:10-15). 이 약속은 언약 전승자에게만 주시는 복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시는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인정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영원히 함께하시겠다는 약속도 주신다.

2)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
성도는 그리스도 속죄의 피로 깨끗해진 거룩한 백성이다. 거룩한 백성이 된 성도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새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으나 막내였던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사용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성도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들이다.
하지만 야곱과 다윗처럼 특별하신 인정받음이 있을때에 그의 삶이 더욱 영광스러울 것이다.

2. 밧단아람에서의 야곱(창29-31장)
본문은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연단받는 내용이다. 성경이 야곱의 결혼과 자녀 생산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재물을 풍부하게 소유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창31:3) 혹은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창31:13)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번영의 복을 받는 야곱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도망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후에 20년 동안 하나님의 연단을 받는다. 그리고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했던 하나님은 그에게 자녀들을 축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20년 동안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주심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약속을 성취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어 창28:14의 약속이 가시적으로 성취되는 복을 받는다.
그리고 야곱은 자손과 재물의 풍부함의 복을 밧단아람에서 받게되자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한다. 그때에 하나님은 야곱이 밧단아람에 더이상 있을 필요가 없음을 아시고 때가차매 야곱에게 벧엘에서의 만남을 상기시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땅에 대한 약속(창28:13)을 성취하시려는 의도가 있다.

2)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
아브라함과 이삭을 부르시고 언약의 상속자로 세우시면서 주셨던 약속들을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가시적으로 성취하셨다. 오랜 세월이 지난후에 약속을 성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으며, 하나님은 더딜지라도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임을 입증해 준다.

3. 벧엘에 올라간 야곱(창32-36장)
본문은 야곱이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중에 일어난 사건을 소개한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내용이 담고있는 뜻과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세겜에서 벧엘에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이유와 벧엘에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무엇인가?

1) 축복의 장소 벧엘
야곱은 고향을 향해 출발하지만 에서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한다. 그리고 얍복 나루에서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한다. 야곱은 그 씨름에서 하나님께 축복과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받는다. 또한 그는 세겜에서 디나의 강간 사건후 하나님의 명령(창35:13)을 듣고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벧엘로 올라간다. 이유는 야곱의 서원(창28:16-22)과 벧엘이 약속을 확증하는 장소이며 언약의 계승자가 머물곳이 벧엘이기 때문이었다. 야곱이 최초의 약속 장소에 돌아온 것은 그의 신앙 여정의 종결 단계임을 표시한다. 하나님은 벧엘에 올라온 야곱에게 아브라함의 언약 축복과 동일한 복을 주시며(창35:9-15), 본격적으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여 줌으로써 그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은 언약의 계승자임을 재확인시켜 주셨다(창35:10-13).

2) 문제의 해결사이신 하나님
야곱은 타향살이 20년 동안 형 에서와의 문제 곧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에서와 화해했으나 믿지못하고 세겜으로 도망가는 어리석음을 행한다. 그래도 하나님은 야곱에게 신실하셔서 의롭게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유일한 해결사이다.

야곱의 생애는 언약의 계승자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인 벧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재확인한 거룩한 장소였다. 벧엘에서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축복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벧엘은 야곱에게 축복의 장소요, 하나님과의 교제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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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삭의 생애

이삭은 이스라엘 삼대 족장 가운데 한사람이지만 그에 관한 기록은 많지가 않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해 활동한 것이 적었다는 의미보다는 순탄한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출생은 매우 특별했던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부자였던 아브라함의 노년에 주께서 특별하신 은총으로 허락하신 약속의 아들인 까닭이다. 과학적인 사고로는 납득하기 힘든 방법으로 그가 태어났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축복의 가계에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그는 약속을 유업으로 이은 유일한 후사였다.

2. 이삭의 아들들

1) 간구로 얻은 아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이삭도 손이 귀한 편이었다. 리브가는 미모가 출중한 반면 잉태를 못했으므로 이삭이 그를 위해 기도했으며, 기도의 응답으로 얻은 아이들이 에서와 야곱이었다. 우리는 그녀가 왜 잉태할수 없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구약 시대에는 잉태하는 능력이 주의 은총과 관련된 것으로 종종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의 태어남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

2) 복중에서 정해진 운명
잉태하지 못하는 리브가가 이삭의 기도로 말미암아 아이를 가질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두아이의 운명이 이미 어미의 복중에서 결정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생명이 태어남의 신비와 개개의 생명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잘 알게해 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 결정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게 아니라 절대자의 의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3) 에서의 실수
에서는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정하여진 운명의 궤도를 따라서 살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그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했다고 할수는 없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을 중시했고, 영적 욕구보다는 육체의 소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았다.

3. 그랄에 간 이삭

1) 흉년을 피해서 감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간다고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때에 심각한 기근이 있었던 것처럼 이삭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나의 선택에 직면했으며 아버지가 택했던 길을 따랐다. 그랄로 이주한 것이다. 시련이 올때에 대담하게 맞부딪쳐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회하려는 이들도 있다. 이삭과 같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이 과연 신앙적인 결단인가 하는 것이다.

2) 인간의 연약성

이삭의 일상에 관한 단편적인 증거만 가지고 그의 믿음에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할 수는 없다. 그는 자주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기도의 능력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연약성이었다. 믿음이 있어도 인간은 연약한 까닭에 시련에 직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더러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성도가 다른 사람들의 실수에 보다 관대해져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3) 백배나 주시는 하나님
이삭이 그랄로 이주한 일에 대해 하나님은 일체의 문책을 아니하시고 오히려 백배나 더 주셔서 그로 하여금 거부가 되게 하셨다. 그의 충심이 세상이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향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4. 아비멜렉과의 조약

1)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외국에서 나그네로 우거해야 했던 이삭의 인생 여정이 평탄할리는 없었다. 남이 이해하기 힘든 고충이 나름대로 있었을게 분명하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는 이러한 그의 처지에 있어서 마른땅에 단비와도 같이 값진 것이었다.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유랑 생활속에서도 그분의 약속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그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야만 했는가를 물을수 밖에 없다.

2) 성도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나 성도는 이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에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어있다. 대신에 성도의 삶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이것은 이세상이 줄수 있는 그 어떤 약속보다도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분이 함께하시는 삶에는 실패라는 것이 없으며 모든 필요가 그분에 의해서 충족된다. 역경도 그분이 극복하도록 역사하신다.

3) 나눠줘야할 주의 복
이삭이 아비멜렉과 조약을 체결한 것은 은혜를 나누는 행위라고도 할수 있다. 성도는 주께서 주신 복을 움켜쥐려고 해서는 안된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줘야 그것이 참된 가치를 지니게 되는 법이다. 나눔을 실천할때 세상이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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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늙었고 그의 아들 이삭은 장성하여 그 나이 40세가 되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신대로 이삭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셔서 그를 지키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아들(창25장)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노년기와 죽음, 이스마엘의 후예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렇다면 본 저자가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스마엘의 후예를 소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25:23)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 또한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선택받은 야곱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언약의 씨 또는 여자의 후손을 보존하심의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아브라함은 생전에 이삭을 하갈과 그두라의 아들들과는 구별되게 만들어 놓았다(창25:6).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버지를 함께 장사한 것은 분명하나 이스마엘의 계보는 이삭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사건 뒤에 이스마엘의 계보를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앞으로 동생 야곱이 에서를 따돌리고 장자권과 축복을 차지하게 될것임을 예고한다. 야곱이 특별히 선택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 그를 계약 계승자로 점지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였다.

2) 소중한 성도의 직분과 권리
에서는 이삭의 장자로 태어났으나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으로 그 특권을 야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러한 에서의 어리석음을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난 망령된 행위라고 경계한다(히12:16).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직분과 권리를 주셨다.
따라서 이 소중한 직분과 권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2. 아브라함의 상속자 이삭(창26:1-5)
하나님께서는 흉년이 들어 애굽에 내려가려고 하는 이삭에게 나타나 일방적으로 막으시며 순종할때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왜 이삭이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지시한 땅에서 살기를 원하시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이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이삭이 복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아브라함이 지킨 '명령과 계명 그리고 율례와 법도'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1)아브라함의 복을 상속함
이삭이 아브라함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려 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막으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곧 이삭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계승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삭을 통하여 그의 후손들이 축복을 받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삭이 받게될 축복은 이삭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창26:5).
아브라함은 그가 사는날 동안 그분의 명령과 계명 그리고 율례와 법도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다. 여기서 명령, 율례, 법도, 계명 등과 같은 법적 용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직 율법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식 요건을 갖춘 법이라기 보다는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일컫는 것이다.

2)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음
이삭은 이제 자기 혼자의 힘으로 살아야만 했다. 오랫동안 그는 아버지의 보호아래서 살았지만 이제 그는 약속의 후사로 가나안 땅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철저한 순종을 해야했다. 순종할때에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약속의 복을 받게되며,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따라서 성도가 축복을 받음은 그의 순종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다.

3. 이삭이 누린 복(창26:6-35)
이삭은 그랄 땅에 거하면서 농사를 지어 백배나 수확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심으로 창대하고 왕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삭이 그랄에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巨富)가 된 이유와 축복받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삭이 거부가 됨에 따라 발생한 블레셋의 태도는 무엇이며, 그 결과로 이삭이 확신하게 된것은 무엇인가?

1)하나님의 축복하심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자기 생각에 따라 아비멜렉을 속인다. 그리고 그는 그랄에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지어서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엄청난 거부가 된다. 이삭이 받은 축복은 수확물이 백배나 되는 당시에는 아주 보기드문 현상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실제로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창26:2-5).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하심은 그랄 땅의 불레셋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갖게 했고, 그 결과 그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모두 막아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삭의 목자들과 그랄 목자들간의 다툼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 우물을 판다. 그 결과 이삭은 그들의 다툼이 그쳤다하여 르호봇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나…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라" (창26:22)는 확신을 갖게 된다.

2) 하나님에게서 오는 축복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해 보려고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의 애굽행을 막으셨던 것이다. 그리고나서 축복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다는 점을 상기시키셨다. 행복을 얻고자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봐도 헛것이 되고 만다. 우리 인간사의 모든 축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옴을 기억하고 살아가야할 것이다.

이삭은 그랄왕 아비멜렉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 축복은 아브라함의 순종의 결과였다. 아내와 자식 그리고 재물은 이삭이 하나님께 받은 복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이은 언약의 계승자, 즉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약속의 씨, 후사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하나님께 바쳐진 점들은 이삭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모형이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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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의 소명

1) 복의 근원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 출신의 아브람이 하란이라는 지역에서 우거할때에 그를 소명하였다. 부르신 목적은 복의 근원이 되게하려는 것이었고, 요구 조건은 믿음에 바탕을 둔 순종이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그 자신이 복됨은 물론이고 타인에 대해서 축복의 근원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2) 롯의 분가
아브람은 두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첫째는 주의 명하신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새삶은 옛것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둘째는 롯과의 분가였다. 롯은 자기 조카였으되 주의 약속이라는 기업을 공유할 수는 없었으므로 이 역시 불가피한 노릇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가 나올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도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성도들은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아브라함의 아들로 일컬어진다.

3) 멜기세덱의 축복
멜기세덱은 미지의 인물이다.
이름의 의미는 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인데, 그에 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음과 아브라함을 축복했음을 알수 있을 뿐이다. 오늘도 아브라함의 아들된 성도들에게는 영원하신 주의 축복이 함께한다. 우리는 저주아래 있는 어떤 사람들과 구별되는 축복의 자녀들이다. 아무도 우리를 이 축복에서 떼어내지 못한다.

2. 하나님과의 언약

1) 인정받은 믿음
하나님의 언약은 믿음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언약도 의미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법이다. 아브람의 위대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에 있다. 그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온전히 믿었으며 그의 이같은 믿음을 주께서는 의로 여기셨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하게 되고 믿음이 있어야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킬만큼 온전한 것이었다.

2) 할례에 대한 명령
인정받은 믿음의 소유자인 아브람의 이름을 주께서는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할례의 언약을 그에게 주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대대로 지켜야할 신성한 명령이었다. 남자의 양피를 베는 것 즉 포경 수술이 신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것 같을지라도 그는 이 명령을 성실하게 따랐다. 그 이유는 할례 그 자체가 지닌 의미보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준수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지닌 특성이라 할수 있다.

3. 약속의 성취와 예언

남자의 나이가 백세요, 여자의 나이가 구십세나 되어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라면 후사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브라함의 처지가 바로 이와 같았다. 따라서 이삭의 출생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버금가는 신비한 사건이었으며,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수 있겠는가? 창조의 질서를 위반하는 이같은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한가?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전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이 일하시는 독특한 방법이다. 전능하시다는 말은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이해할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 일들도 그분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가능이란 말은 한계성 앞에 존재하는 인생들의 용어이지 그분과는 무관하다. 주의 역사는 그분의 전능성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게되고 만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보여준 신앙의 특징은 신뢰에 바탕을 둔 온전한 헌신이었다. 그는 주의 약속을 믿었으므로 그분이 무엇을 명하든지 주저하지 않고 따를수 있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러한 믿음과 헌신이 요구된다. 이해타산을 따지거나 이성이라는 여과 장치에 비중을 두는 사람은 결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에 참여하지 못한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믿음이 위대한 사람, 무조건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다.

4. 아브라함의 생애

아브라함의 생애는 성도의 삶과 가장 긴말한 관계를 갖는다. 그는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남녀 노소가 다 그의 아들로 구분된다. 그는 하나님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소명적인 측면과 주의 부르심에 그가 믿음으로 반응한 신앙적인 측면에서 찾아볼수 있다. 우리는 주의 부르심을 경홀히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들은 인생에서 만날수 있는 최고의 드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아브라함은 기회를 최대로 활용한 지혜로운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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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이라는 한사람을 택하시고 민족의 조상 혹은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셔서 그 후손들이 그를 통하여 복을 받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살도록 인도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그를 민족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는 내용이다.

1. 아브라함의 소명과 여행(창12-14장)
본문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아브람이 그의 부르심을 따라 고향을 떠났으며, 또한 그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요 내용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선택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그가 배운 것은 무엇이며, 그가 롯에게 선택권을 줄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인가?(창13:1-7). 그리고 멜기세덱의 등장과 축복이 내포하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1) 복의 근원
아브람은 노아의 10대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전승 받는다. 하나님은 노아를 선택했듯이 아브람을 선택하여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선택하시면서 7가지의 약속 혹은 복을 주신다(창12:1-3). 이로 인하여 아브람은 복의 근원이 되었고, 또한 아브람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이 약속을 받고 가나안 땅에 내려갔으나 그땅의 흉년 때문에 애굽에 내려가게 된다. 그후 그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올라온다. 그는 애굽에서 물질의 축복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이러한 깨달음 때문에 조카 롯에게 땅의 선택권을 주었다.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의 등장은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는 혈통에 따른 합법적인 제사장이 아니요 레위족 제사장 제도가 정해지기 전의 제사장이다. 그래서 그는 신약의 저자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방불한 인물로 소개되었다(히7:3).

2)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경험한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셨다. 그는 자기 스스로 물질의 어려움을 해결해보려고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그 노력은 허사였다. 물질은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로서 물질의 복을 받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물질의 복은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창15-20장)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후사에 대한 약속(창15:1-11; 창17:15-19; 창18:9-15)이 세번씩 강조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후사는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또한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 수표는 언약 체결인데 언약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 내용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1) 언약과 미래 약속
후사에 대한 약속을 세번씩 강조한 이유는 의심하고 불안해 하는 아브람 부부를 견고하게 하려는데 있었다. 문자적으로 후사는 이삭이며,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언약 체결의 근거는 창12:1-3이며, 그 내용은 백성의 복으로써 미래의 축복이다. 곧 하나님의 복은 영원한 것이며, 후손 대대로 미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표시로써 할례를 행하게 하시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여 주셨다.

2) 성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
구약의 족장들의 하나님은 약속이 하나님이시다. 그 약속은 땅을 그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영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성도는 미래에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의 영원한 기업이 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이며, 후사임을 기억하며 그분 앞에서 신실한 믿음을 지켜나가도록 힘쓰자.

3. 시험받는 아브라함(창21-24장)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사실과 이삭을 번제로 받치라는 시험이 소개된다. 그렇다면 이삭 출생의 문자적이고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라와 하갈의 충돌이 내포하는 신약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목적과 그 결과는 무엇이며 순종의 복은 무엇인가?

1)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
하나님의 후사 약속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때에 이삭이 출생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아브라함에서 이삭에게 전승됨과 약속된 그리스도가 반드시 초자연적으로 탄생할 것을 나타내준다. 이삭의 출생은 그의 가정에 기쁨을 가져와 주었지만 하갈과 이스마엘의 추방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시험을 보이게 하신다. 시험의 목적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임을 확인하고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척도를 확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그의 행위속에서 그와 맺었던 언약을 재확인하고 다시 한번 이삭을 통한 구속의 역사와 번성함, 이방인의 구원을 선포하셨다(창22:15-18). 그리고 그가 어디를 가든지 범사가 형통케 하셨으며(창24:13), 복의 근원으로 세워 주셨다.

2) 참신앙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순종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마땅히 드려야할 제사이다. 아브라함은 볼수 없는 후사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롭게 되었고, 죽을때까지 그 약속을 통하여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았다(요8:56). 그리고 기꺼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정도로 절대적인 순종의 삶을 살았다. 이것이 참신앙의 본질이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고 살아온 족장이다. 그는 실수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알았고, 약속의 참뜻을 깨닫는 복도 누렸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할수 있는 길이 되었고, 율법 해석의 열쇠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믿음이 아브라함처럼 될수는 없을지라도 믿음의 질을 높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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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벨탑 사건이 주는 교훈

바벨탑 사건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꽃을 피웠던 바벨론 남부 지역의 수메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이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의미는 그들이 단순히 기념비적인 어떤 탑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적대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기보다는 자신들의 이름을 나타내기 원했으며, 주께서 노아 때와 같은 대홍수를 내리실지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이를 피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불경건한 자들의 무익하고 헛된 수고를 보게 된다.

2. 세상에 퍼진 인종의 기원

세상에 퍼진 인종 즉 인류는 노아의 세아들에게서 퍼져 나갔다. 종(種)의 다양성을 주장하며 종의 변천을 근본 사상으로 하는 진화론은 비성경적이다. 인류의 모든 족속은 한혈통으로 만들어졌다. 셈과 함 그리고 야벳은 모두가 노아의 아들이다. 그들은 혈통이 각기 다른 세사람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세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지구 전체로 인구가 확산되게 되었으며, 각기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지닌 부족들이 생길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종이 퍼져나간 시간의 경과를 염두에 두지않기 때문에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전기나 역사서가 아니어서 노아의 아들들의 가정이나 인종의 분산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세사람을 통해서 모든 민족과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으며, 점차로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여 나갔다.

3. 바벨탑 사건

1) 흩어짐을 면하고자 기도함
고대 수메리아 문명의 꽃을 피웠던 시날 평지에서 사람들이 탑을 쌓고자 한 것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않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다수의 의견을 따라서 이일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으며, 그들의 생활 방식이 경건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2) 여호와의 강림
그들이 민의에 따라 바벨탑을 쌓고자 한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그분의 특별하신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주의 은혜보다는 자신의 지혜나 경험에 의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계획은 여호와의 강림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분이 임하시면 반하나님적이고 반성경적인 인간의 모든 계획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3) 언어의 혼잡
인간들의 어리석은 경영을 목도하신 주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사 그들로 함께 기거하거나 어떤 일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셨다.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던 그들은 이제 흩어져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는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이 생겨났으며, 수많은 종교 형태와 교회의 역할은 이들을 복음의 언어로 하나가 되게하는 것이다(마28:19,20).

4. 아브람의 등장

1) 아브람의 가계
아브람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는 바벨론 남부 지역 즉 수메리아인들이 고대 문명의 꽃을 피웠던 곳이며, 유명했던 고대 도시 우르와 가까이 있다. 그의 가계에 대한 언급은 성서 역사론에서 그의 등장을 예고한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명문 대가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매우 특별한 위치에 세우셨다.

2) 하란으로의 이주
선택된 사람 아브라함의 일가는 우상의 도시로 알려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으로 가고자 여정을 잡았다가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다. 주께서는 어떤 일을 위해서 필요한 일꾼들을 불러내서 쓰신다. 우리는 아브람이 선택된 이유는 정확히 알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은혜를 입게된 동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분은 그를 선민의 조상으로 세우고자 선택하셨다.


3)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무명의 한사람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기까지 진행되는 모든 과정속에서 우리는 주의 오묘하신 섭리의 일면을 보게 된다. 아무도 아브람이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분은 약하고 미련한 자, 가난한 자들을 불러서 거룩한 일에 쓰신다. 세상적인 안목으로는 사실 납득하기가 쉽지않은 일이다. 그래서 주의 일꾼들은 더욱 자기를 낯춰야 하고 분량 밖의 자랑을 삼가하도록 힘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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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0장은 노아의 후손들이 홍수 이후에 어떻게 번성하여 땅의 열국 백성으로 나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다음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의 결과로써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사람이 어떻게 각각의 방언과 인종에 따라 땅 위에 퍼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향방없이 흩어지는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셈족에 그 초점을 맞추고 결국은 아브라함의 출현을 보게 된다.

1. 번성한 노아의 후손들(창10:1-32)
본문은 홍수 후에 노아의 세아들 곧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를 저자의 의도적인 방법에 따라 소개한다. 그러면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를 소개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또한 본문의 족보의 형식이 본 서의 다른 족보에 비해서 어떤 독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1) 편만해진 족속들
하나님은 홍수 심판에서 노아의 가족만을 구원하셨고, 그들에게 새로운 땅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땅에서 생육하고 번성케하는 복을 내리셨다. 노아의 세아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하심에 의해서 멸절되었던 이땅위에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온땅 위에 편만해진 인류의 모습을 드러내고 또한 심판 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노아의 세자녀들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본문의 족보는 창세기의 다른 족보와 그 형식이 유사하다. 특히 본문의 족보는 저자가 선택적으로 후손을 택하여 일정한 숫자를 만들었으며, 족보의 구조 또한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족보는 족속과 방언 그리고 지방과 나라를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창5:20,31). 따라서 본문의 족보는 저자의 뚜렷한 목적과 방법으로 기록되었음을 알수 있다.

2) 번성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하여 노아와 그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 친백성으로 남게 되었다. 첫언약의 목표가 하나님의 백성 됨이었듯이 노아의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 됨을 회복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인 노아의 아들들은 언약 안에서 번성해야 했다. 그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2. 바벨탑과 언어혼란(창11:1-9)
노아의 후손들이 번성해 감에 따라 생활 양식과 문화 그리고 문명이 발달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탑을 건축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바벨탑을 건축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는 무엇이며, 바벨탑의 건축 행위를 중단시킨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바벨탑 건축을 막기위해 언어를 혼란케한 하나님의 두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께 역행하는 행위
바벨탑은 창조자요 통치자요 만물의 보존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반항정신의 상징이다. '우리가 하자'는 표현의 반복과 '하늘에' 닿고자 하는 의도 그리고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목표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동기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치밀한 계획뿐 아니라 하늘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찬탈 계획을 극적으로 부가시키는 것이다. 곧 이러한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인간은 그 명령에 역행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바벨탑 건축을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케 한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케하신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그들의 행위를 방관한 경우에 탑 건축을 중단할수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온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거역하여 흩어짐을 면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흩어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 인간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주권에 의해서 창조 섭리를 이루신 것이다.

2) 교만과 거역 그리고 불순종의 행위
인간은 이땅을 사는날 동안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지상 대리인으로서 자기 이름을 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내며 살아야 할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하여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것은 분명히 사단의 속성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마땅하다. 교만하고 거역하며 불순종하는 행위는 심판을 초래한다.

3. 셈의 후손들(창11:10-30)
본문은 인간의 타락과 반역적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사실을 마치고서(창3:1-11:9) 셈의 족보를 소개한다. 그러면 셈과 데라의 족보를 소개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족보의 구속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셈의 족보에서 벨렉의 위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1) 구별된 백성들
본문의 셈의 족보는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 자손의 족보와 매우 유사하다. 저자가 셈의 족보를 소개하는 목적은 분명히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이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이 족보는 모든 아들들을 다 적고 있지않고 오직 각 대의 상속자만을 적고 있다. 이는 고대 근동 세계에서 누가 합법적인 왕위 계승권자인가 혹은 전통성 있는 상속자인가를 밝히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또한 이 족보에는 바벨탑 사건을 통하여 세상이 나누이게 된것을 소개하기 위하여 벨렉이 소개된다. 뿐만 아니라 이 족보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노아에게서 아브라함에게 전승되어 감을 시사해 주며, 셈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특별히 구별된 백성들임을 소개한다.

2) 구별된 생활
우리는 택함받은 성도를 가리켜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거룩'이란 구별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 셈 계열에 속한 후손들을 통하여 자기의 백성들로 구별하셨다. 오늘날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구별된 사람들은 교회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해야만 한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 자신의 파멸뿐만 아니라 이세상에도 심판과 멸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를 반드시 문책하시고 그에 따르는 법을 내리신다. 반면에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노력 또한 끈질기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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