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족보 1:1-27
이본문의 첫단어는 아담이고 마지막단어는 아브라함이다. 아담은 우리육체의 조상이며,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진 신자의 조상이다. 전자는 순결의 언약을 깨뜨리므로 말미암아 우리모두를 불행하게 하였지만, 후자는 은혜의 언약을 맺음으로써 우리를 이미 행복하게 하였고, 혹은 행복하게될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본래 아담의 씨로서 돌감람나무의 가지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그뿌리와 풍성함에 참여하게 되어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가 되었다(롬 4:11,12).
(1) 이본문의 처음 네구절과 마지막 네구절은 셈에 의해 연결된다(4,24절). 여기에 그리스도의 신성한 계보중 아브라함까지가 나타나 있고 누가복음의 그의 계보에 삽입되어 있다(눅 3:34-38). 누가복음은 상승식 계보인데 여기에는 하강식 계보로 기록되어 있다.
(2) 이부분에는 홍수이후 노아의 자손들에 의하여 땅이 다시 사람들로 가득차게 되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있다. 본서의 기자는 교회에는 낯선사람들인 야벳의 자손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이방섬들과 세계의 서방, 즉 유럽의 여러국가에 자리잡고 있는 자들이다. 함의 자손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아프리카와 그방향에 있는 아시아의 여러나라로 옮겨갔다. 셈의 후손들은(17-23절) 아시아 사람들로서 동방으로 확대해 갔다. 이들의 후에는 앗수르인들, 수리아인들, 갈대아인들, 바사인들, 그리고 아라비아인들이다. 처음에는 각민족들의 선조가 분명하였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각민족들간의 무역과 영토의 확장, 식민지로인한 이동, 전쟁으로인한 혼합,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서로 혼합되었으므로 어느나라도, 아니 어느나라의 가장 큰종족도 이들 근원중 한근원에서 나온 순수한 후예라고 말할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모든민족을 한혈통으로 지으셨다는 것만은 확신한다. 패트릭주교의 말에 의하면 메시야에 대한 위대한 약속이 아담에서 셋에게로, 셋에게서 셈에게로, 셈에게서 에벨에게로, 그리고 히브리 민족에게로 옮겨졌다. 그리하여 이민족은 약속이 이루어져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모든민족들 중에서 택함을 입어 신성한 보화를 위탁받았다.

Ⅱ. 아브라함의 자손들 1:28-54
아브라함의 자손이외의 민족들은 이미 이족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들은 이문제에 있어서 나누거나 차지할 몫도 없다. '여호와의 분깃은 그의 백성이니라.'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외에는 다른민족의 어떤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수 없다고 결론 지을수 있다. 세상에는 매우 많은 의인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특별한 언약밖에 있다. 그들은 비록 이책에 기록된 다음의 가문중 어떤조상의 후예는 아니라고할지라도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 여호와는 당신께 속한 자들을 아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며, 모범으로 뽑은 민족이었다. 그리고 민족적 역량에 있어서 어떤 다른민족도 유대민족만큼 존귀케 함과 특권을 받은 민족은 없다. 이민족은 신성한 역사의 주역인 거룩한 민족이다. 따라서 야곱의 자손이외에 아브라함의 모든자손은 거의 탈락된다.
(1) 이스마엘 자손들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것이 없다. 그들은 여종의 자손들로서 쫓겨나 약속의 자녀와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하였다. 여기에 이스마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이 나타나는데(29-31절),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즉 이스마엘이 큰나라를 이루겠고 특히 열두방백을 낳으리라(창 17:20)는 약속을 이행해주신 것이다.
(2) 미디안 자손에 대해서도 별로 말할것이 없다. 그들은 그두라로 말미암은 아브라함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동방의 자손들이며, 약속의 상속자(창 25:6)인 이삭과 구별된 자들로서 본문에는 이름만 나열되어 있다(32절).
(3) 에돔 자손에 대해서도 말할내용이 많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뿌리깊은 적대감을 갖고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삭의 아들 에서의 후손이기때문에 가문의 내역이 언급되며, 35절에서 마지막절까지 유명한 몇몇 인물들의 이름이 나타난다.

# 핵심
1:1-54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을 거쳐 에서의 자손들에 이르는 계보를 다룬다.
역대서의 족보의 의미(1:1-9:34)
본서의 족보는 역사를 요약하는 일종의 역사 서술방식이다. 그목적은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세대들에게 과거역사와의 연속성을 일깨워줌으로써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혈통적, 역사적, 신앙적인 정통성 및 그책임과 특권을 다시금 새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유다백성의 운명이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다윗왕가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전달한다.
하숫가(1:48)
개역성경의 창 36:37절에는 “유브라데”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단지 ‘강’이라는 뜻의 말만 나온다. 결국 하숫가란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보다미아 지역의 유브라데강이라기보다는 에돔족속들이 살았던 사해 남쪽지역에 위치한 강을 가리키는것 같다. 에돔인들의 영역은 홍해의 동북지류인 아카바만에서부터 아라바 광야를 거쳐, 사해남쪽에 있는 세렛강(신 2:13,14)을 사이에 두고 모압족과 경계를 이루었다. 아마도 하숫가란 이 세렛강을 가리킬 것이다.

# 묵상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 ( 1:1-4 )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족보에서 특이한 사항은 가인의 족보가 삭제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가인의 족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까닭은 이족보가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기록되고 있으며 구속사의 정통적 흐름을 밝히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역사에 불필요한 기록은 삭제시켰던 것입니다.
셈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 ( 1:17-27 )
셈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를 보면 셈과 아브라함의 위상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셈에서 아브라함까지 10대임을 강조함으로써 구속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밝히고 이들의 후손인 다윗과 장차 도래할 메시야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스라엘에 이르는 족보 ( 1:28-34 )
인간의 다양한 계획과 시도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않고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중에서 약속의 자녀 이삭뿐만 아니라 이스마엘 등 다른자녀들이 언급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실패의 역사를 입증할 뿐입니다. 우리는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으로 거듭난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에서의 계보 ( 1:35-54 )
본문에서 에서의 족보를 이렇게 상세히 기록한 까닭은, 언약백성 이스라엘이 형성될 전후시기에 가나안땅을 차지하고 있던 민족의 배경을 밝힘으로써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고취시키고 구별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왕의 본질 ( 1:43-50 )
본문에서 애굽땅의 왕을 자세히 언급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왕과 가나안의 왕이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운데에는 주변국가들의 영향때문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하신바에 따른것이므로 그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역대기저자는 이점을 계속해서 규명해 나아갑니다. 특히 포로지에서 귀환한 백성이 새로운 신정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이전의 실패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이를 철저히 반성, 회개하며, 새로운 국가의 통치이념과 국민의식 함양을 위해 이전왕들의 통치행위를 평가할 신앙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의도에서, 저자는 이방의 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것입니다.

# 해설
아담에서 야곱까지의 족보 ( 1 )
본장에는 아담에서 야곱까지의 계보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나열되고 있는 계보는 창세기를 기초로 한 것입니다. 역대기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후 어려운 시련을 겪으면서 낙담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난 세월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베푸셨던 일들을 회고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더나아가 그들을 격려하고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1. 홍수이전의 족보
1) 아담과 셋과 에노스
이스마엘의 족보가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아담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긍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아담이란 말은 흙에서 유래되었는데 사람,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셋은 아담의 셋째 아들이지만 장자의 직분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섬기는 자의 시조가 되었고 그자손이 이어져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노스는 아담의 손자로 에노스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a.인류의 시조 아담(롬5:12)
b.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주신 아들 셋(창4:25)
2) 에녹과 므두셀라와 라멕
에녹은 엘리야와 함께 구약에서 죽음을 보지않고 하늘로 간 인물로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또한 므두셀라는 에녹의 아들로 인류역사상 최장수한 인물입니다. 그가 죽던해 곧, 그의 손자 노아가 육백세 되던해 홍수심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멕은 구속사의 큰흐름을 이어간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a.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창5:24)
b.노아의 아비 라멕(창5:30-31)
3) 노아와 그의 세아들
노아는 세상의 죄악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유일한 의인이었습니다. 아울러 노아는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포했던 선포자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세상이 대홍수를 겪게될때 구원받은 자였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를 통해 구속사의 줄기는 끊어지지 않고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노아를 통하여 이어진 구속사의 줄기는 이 세아들을 통하여 전달되는데 노아의 아들은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a.노아의 장자 셈(창5:32)
b.노아의 저주를 받은자(창9:25)
2. 노아의 후손들
1) 야벳의 자손들
야벳은 노아의 셋째아들로서 아리안족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야벳의 아들로는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등이었습니다. 이 야벳의 후손들은 주로 소아시아 일대와 지중해연안, 유럽각지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들은 오늘날 백인의 조상이 되어 창성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a.노아의 아들중 하나(창6:9-10)
b.백성의 근원(창9:18-19)
2) 함의 자손들
함은 노아의 둘째아들로서 네아들을 두었습니다. 함의 자손들은 고대에는 매우 번창하여 애굽, 에디오피아 등 대국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훗날 열등국으로 전락하거나 식민지화되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과 애굽을 위시한 아프리카 각지에 흩어져 살았으며 흑인종의 조상이 되어 종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a.대홍수를 피한 노아의 아들(창7:7)
b.니므롯의 부친 구스(창10:8)
3) 셈의 후손들
셈은 노아의 장자로서 열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셈은 야벳과 함께 술취한 노아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워줌으로 형제들중에서 큰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축복은 셈의 후손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났으며, 구세주이신 예수님도 셈의 후손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a.아비의 축복을 받은 셈(창9:25-26)
b.아브라함의 조상(눅3:36)
3. 아브라함의 후손들
1)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자손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자손들중에 셈을, 셈의 자손중에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심히 번성케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도처에서 번성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사라의 여종 하갈의 소생인데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큰민족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습니다(참조, 창16:11-16). 이스마엘은 비록 아브라함이 86세의 고령에 낳은 귀한 아들이었지만 바울의 표현대로 육체를 따라난 자입니다.
a.사래의 남편(창11:29)
b.여종에게서 난 자(창16:4)
2) 이삭과 에서의 후손들
아브라함에게는 여러아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삭으로 아브라함의 대를 잇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셔서 이삭의 후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아버지 이삭의 예언대로(참조, 창25:29) 황폐한 땅에서 살며 에돔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에서의 아들들은 엘리바스와 르우엘과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입니다.
a.아브라함이 노년에 얻은 아들 이삭(창21:2-3)
b.사냥을 좋아하는 에서(창25:27)
결론
본장에서 우리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서부터 야곱까지의 족보를 살펴보았습니다. 각사람의 이름에는 그인생이 내포되어 있고 그인생은 그사람만이 살다가 간 삶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족보를 통해 다시한번 인간의 삶의 엄숙성과 신성함을 깨닫고 의인의 삶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 Study

Ⅰ. 시드기야가 사로잡힘 25:1-7
시드기야는 바벨론왕을 반역하고 그의 멍에에서 벗어나기위해 애를 썼다(24:20).
(1) 바벨론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1절). 바벨론왕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를 2년간이나 계속했으며, 애굽왕의 위협때문에(렘 37:11) 잠시 물러갔지만, 애굽왕이 생각만큼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 다시 돌아왔다.
(2) 예루살렘의 포위기간동안 기근이 만연하였다(3절).
(3) 결국 성이 강력한 공격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갈대아사람이 그성읍을 에워쌌으므로 성벽에 구멍을 뚫은지라(4절). 포위한 군사들이 성벽에 구멍을 내고, 그리로 밀려들었다.
(4) 시드기야왕과 왕의 가족과 귀족들이 밤에 비밀통로를 통하여 도주하였다(4절). 시드기야왕이 도주했다는 정보가 갈대아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갈대아인들은 곧 시드기야왕을 사로잡았다(5절).
1) 시드기야왕이 바벨론왕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군사재판에 의해, 신의를 서약한 사람에게 반역했다는 죄로 재판을 받았다.
2)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7절).
3) 시드기야의 두눈을 빼어 그에게서 태양의 광채를 빼앗아버렸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였었으며(렘 32:5;34:3), 에스겔은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보지 못하리라고 예언하였었다(겔 12:13). 이와같이 시드기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갔지만 눈이 뽑혔기때문에 바벨론을 보지 못하였다. 이와같이 그의 생명이 끝나기전에 그의 시대가 끝났다.
4)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7절). 그들은 시드기야에게 더큰 수치를 주기위해서 그를 결박한채 끌고갔던 것이다.

Ⅱ.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25:8-21
약 한달후(8절과 3절을 비교해보라)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파괴를 마무리지으라는 느브갓네살의 명령을 가지고 파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이전까지는 오래 인내하셨지만, 다시 유다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시려고 이기간을 주셨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1) 예루살렘과 성전이 불탔다(9절), 다윗이 준비하였고, 솔로몬이 이와같이 막대한 경비를 들여서 건축한 그집,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고 하신 그집(왕상 9:3)이 재로 변할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성전을 불타게 하심으로써 참된 경건의 생명과 능력이 무시될때는 예배의 외적인 화려함에는 별관심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백성들은 죄가운데 있는 그들을 마치 성전이 보호해줄 것처럼 성전을 믿었다(렘 7:4). 그리고 첫번째 성전이 갈대아사람들에게 불탄것과 동일한 달, 동일한 날에, 제2성전이 로마사람들에게 불탔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요세푸스는 이날이 8월 10일이었다고 말한다.
(2) 승리한 갈대아군대는 그렇게 오랫동안 예루살렘성밖에서 있었던 것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처럼, 예루살렘성벽을 철저히 헐어버렸다(10절). 그리고 난후 이성벽은 느헤미야때까지 보수되지 못하였다.
(3) 백성중 남은자들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다(11절). 백성중에 유다땅의 가난한 사람들은 들을 경작하고 갈대아사람들을 위해 포도원을 가꾸도록 뒤에 남겨두었다. 어떤때는 가난이 보호책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진것이 없는 사람들은 잃을것도 없기 때문이다.
(4) 금과 은기물들은 대부분 지난번에 가져갔고, 이번에는 놋기물들과 다른 성전부속물들을 바벨론으로 옮겨갔다. 하나님의 집의 능력과 안정을 상징하던 두놋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완전히 조각으로 부수어 그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13절).
(5) 귀족중에 몇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이것으로 재난이 마무리되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그땅을 차지한후 약860년만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와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1절). 죄는 이스라엘 조상들을 40년간 광야에 잡아두었었고 그죄가 이제는 그후손들을 그땅에서 제거시켜 버렸다.

Ⅲ. 나머지백성의 무산 25:22-30
(1) 남아있던 백성들도 제각기 분산되었다. 예루살렘성읍은 황폐된채 버려져있었다. 유다땅에는 소수의 백성들이 있었는데(22절), 이들은 맹렬한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자기들의 생명을 그들에게 먹이로 준' 사람들이다. 바벨론왕은 그들가운데 한사람인 그달리야를 그땅의 보호자와 관할자로 임명하였다. 그는 아주 선한사람이며, 좋지않은 상황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었다(22절). 그의 아버지 아히감은, 모든방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때에 그를 지지하고 보호한 사람이었다(렘 26:24). 이 그달리야가 예레미야의 조언을 듣고 갈대아사람들에게 건너가서 스스로 잘 행동하였음으로 바벨론왕이 그에게 행정을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닌 베냐민땅 미스바에 거하였다. 이곳은 사무엘시대에 유명하던 곳이다. 그리고 시드기야에게서 도망친자들이(23절) 미스바로 와서 그의 보호를 받게되었다. 그달리야는 비록 주권적인 왕의 권위와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였지만 유다의 대부분의 왕들보다 유다백성들에게는 더큰 복이 되었다. 그러나 이 희망에 찬 정착생활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왕족인 이스마엘이 그달리야가 지도자로 우대된 것과 그의 보호아래 백성들이 행복하게 정착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그달리야와 그달리야의 지지자이면 유대인이든지 갈대아인이든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야비하게 살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달리야를 살해한 사건으로 갈대아사람들이 아주 불쾌히 여겼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남아있는 백성들이 겸손하게 나가서, 이것이 단지 이스마엘 일파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되면, 무죄한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가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레미야의 조언에 따르지 아니하고 모두 애굽으로 내려갔다. 이들은 아마도 거기서 어느정도 애굽인들과 혼합되었을 것이며, 더이상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할수 없게 되었다. 이와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불순종으로인하여 완전한 종말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 마지막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장의 마지막 구절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신 28:68). 이사건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더자세하게 말하고 있다(렘 40∼45장).
(2) 포로된 왕이 지위가 회복되었다. 스스로 항복한 여호야긴 혹은 여고냐(24:12)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되었을때, 그는 즉시 여호야긴을 옥에서 석방시켰다(그는 37세에 옥에 갇혔으며, 당시는 55세였다). 그리고 그에게 '선히 말하고'(28절), 죄수복대신에 왕복을 주고, 왕의 궁전에서 살게하였고,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그의 신분에 맞게 연금을 허락하였으며, 종신토록 날마다 정수대로 쓸것을 공급하였다. 정말 오랫동안 수치와 옥에 갇혀있은후 명예와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주 캄캄하고 지리한 밤이 지난후 아침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 우리가 오랫동안 악한일만 보고 살아왔기때문에 다시는 선한일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하지 말자. 가장 비참한 사람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의 일에 어떤 복된 몫을 주실지 모르기 때문이다(시 90:15). 고난당하던 성도들의 죽음은 그들에게 이와같은 변화이다. 죽음은 성도들을 감옥에서 해방시키며, 육신의 죄수복을 벗게할 것이다. 죽음은 성도들을 왕중 왕의 영광스러운 자유로 이끌어줄 것이다. 에윌므로닥은 자신의 아버지가 포로들의 멍에를 너무 무겁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온유함에 따라, 왕의 명예에 따라, 멍에를 가볍게 해주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미쳤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때, 그 기간동안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들 에윌므로닥을 감옥으로 보낸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때 옥중에서 여호야긴과 친분을 맺었고, 그결과 그가 권력에 오르자마자 고통당하는 자인 여호야긴에게 함께 고통당했던 자로서 이 친절을 베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어떤사람들은 에윌므로닥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로부터 참종교의 원리를 배웠다고 주장한다. 이제 70년가운데 36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와같이 대우가 나아진 왕을 보는것이 포로된 백성에게는 적당한 시기에, 정해놓으신 시기에 그들자신들의 해방을 예고하는 위로를 주는 징조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황한 일을 당할때, 우리도 좌절하지 말자.

# 핵심
25:1-21
남유다의 멸망에 관한 기록이다. 남유다는 르호보암이후 시드기야에 이르기까지 344년간의 통치시대를 끝으로 B.C. 586년에 역사속으로 사라져갔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주는 교훈(25:1-21)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권유했다(렘 38:14-28). 그것은 바벨론의 침략이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서 피할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그말을 따르지않고 완강하게 버티고자 했다. 결국 예루살렘은 처절하게 파괴되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않았던 탓이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때 고집을 부리는 행위는 더큰 심판과 불행을 부른다.

# 묵상
눈을 빼는 행동의 의미 ( 25:7 )
그사람의 시력을 잃게함은, 모든능력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소경에게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셨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의 눈을 뜬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안에서 능력을 받고 살아갑니다.
멸망한 유다의 상태 ( 25:8-12 )
여호와의 전과 왕궁이 불살라졌고, 예루살렘성벽이 헐렸으며, 백성의 힘있는 자는 포로로 끌려갔고, 나머지 약한사람만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제 사라졌음을 의미하며 예루살렘성벽이 무너진 것은 그들을 보호할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성전파괴 ( 25:9 )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교만히 자행자지하는 인생들과 더이상 교제하기를 원치않으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처소인 성전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각종제사와 예배도 헛된 일임을 일깨워줍니다(말1:10). 성전으로 대표되는 구약율법의 한계를 일깨우며, 동시에 참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대망하도록 만들어 줍니다(요1:14). 이런형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지존하신 모습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빈천한 국민 ( 25:12 )
이는 ‘아무것도 가지지못한 가난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남게된 사람은 귀한사람, 부한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갖지못한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에서 약한것들을 택하사 강한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천한것들과 없는것들을 택하사 있는것을 폐하십니다(고전1:27, 28). 그러므로 성도들은 약하다고 생각될때 가장 강하며, 없다고 생각할때 풍부함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산법칙입니다.
바벨론 감옥에서 석방된 여호야긴 ( 25:27-30 )
여호야긴의 석방은 포로된지 70년후에 고국으로 되돌아가리라는 이스라엘회복의 메시지를 전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29:19)이 마침내 실현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희망찬 신호탄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당신의 백성을 잠시 징계하시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징벌하시거나 영영히 멸망시키지는 않습니다. 또한 당신이 정하신때가 이르면 반드시 다시 회복시켜 당신앞에 새롭게 세우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이야말로 우리들의 구원의 근본 동인(動因)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역사의 마지막이 주는 교훈 ( 25:27-30 )
인생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살지만,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말씀을 거역하면 참담한 결과를 낳게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성도의 마지막역사도 최후의 심판대앞에서 드러나는데 염소처럼 자기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처럼 겸손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때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쓸수 있습니다. 언제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금생과 내생에 큰상급이 있습니다.

# 해설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후의 상황 ( 25 )
시드기야왕때에 유다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하여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당하고 그곳의 거민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을 통하여 유다를 심판하셨는데, 예루살렘성전과 성벽이 완전히 훼파되었고 성전기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짐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남을 상징했습니다.
1. 느부갓네살왕의 유다침공과 예루살렘의 멸망
1) 예루살렘을 침공하는 바벨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유다백성은 진멸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유다가 애굽에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하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사면으로 토성을 쌓고 이년동안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상가상으로 그러한 예루살렘에 기근이 임하게 하시어 그땅 백성의 양식이 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바벨론의 예루살렘침략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벨론군대는 예루살렘성벽에 구멍을 뚫고 마침내 예루살렘성을 함락시켰습니다.
a.에워쌈을 당한 예루살렘(렘39:1)
b.운제를 세우며 방패를 갖춤(겔26:8)
c.성중에 기근이 임함(애4:9)
2) 시드기야집의 멸망
예루살렘성이 함락당하자 시드기야왕은 아라바길로 도망하였으나, 바벨론군대에 잡히게 되어 바벨론왕에게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왕은 시드기야를 신문했는데 이는 자신을 배반한 죄에 대한 책망과 정죄였을 것입니다. 또한 바벨론군대는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눈을 빼어 사슬로 결박한 상태로 바벨론으로 끌고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악한자의 결국이 어떠함을 증거하여준 사건입니다.
a.하나님을 배반한 대가(겔17:20)
b.하나님의 그물에 걸림(겔12:13)
c.쇠사슬에 결박됨(대하33:11)
2. 진멸당하는 유다왕국
1) 예루살렘에 임한 수치
바벨론왕은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을 시켜 예루살렘을 훼파하고 약탈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느부사라단을 중심한 바벨론군대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모든귀인의 집을 불살랐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성벽을 훼파함으로써 유다의 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전과 성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중에 거하심을 상징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사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범죄에 빠졌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시고 이방의 손에 파셨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에 대해 이와같이 심하게 행한것은 그들이 자신을 배신한 것에 대한 진노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는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a.성소가 불에 탐(시74:7)
b.더럽혀진 성전(기79:1)
c.불타는 궁귈들(암2:5)
2) 포로로 잡혀가는 예루살렘거민
바벨론군대가 예루살렘을 진멸할때 유다의 청년들은 성전에서 죽음을 당해야 했으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예루살렘침공때 그들의 칼을 피하여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서 노예신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이제 출애굽이전의 노예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구원과 가나안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몸소체험하고도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범죄함으로써 다시 노예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a.칼에서 벗어난 자들(대하36:20)
b.열방이 바벨론을 섬김(렘27:7)
3) 약탈당하는 성전기물들
바벨론군대는 예루살렘성전을 훼파하면서 그곳에 있던 모든기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갔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때 하나님께 드린 기물들은 모두가 귀한 보물로서의 가치가 있었으므로 이방인들에게 약탈당하였던 것입니다. 이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전의 보물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축복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이방의 손에 의해 이방의 땅으로 옮겨짐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가 이스라엘을 떠나갔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a.중수를 알수없는 많은기구(왕상7:47)
b.두개의 놋기둥(왕상7:15)
c.단에서 쓰는 그릇들(출27:3)
3. 그달리야와 여호야긴
1) 유다땅을 다스리는 그달리야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유다땅에 남아있게한 자들중에서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로 유다땅을 관할하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자신에게 충성할만한 자에게 유다땅의 통치를 맡겼던 것입니다. 왕권이 몰락한 유다에서 침략국의 앞잡이가 되어 유다를 관할하게된 그달리야는 유다의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볼때 매국노와 같았습니다. 이때에 바벨론군대를 피하였던 유다왕족의 자손들이 그를 찾아가자 그는 바벨론왕을 섬김으로 평안을 누리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달리야가 어떠한 생각으로 그러한 말을 하였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의 말은 옳은 말이었습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유다백성에게 예언하셨던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과 섭리속에서 유다백성을 일정기간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하기로 작정하셨으므로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바벨론왕을 섬겨야 했습니다.
a.바벨론왕이 세움(렘40:5)
b.예레미야를 데려옴(렘39:14)
2) 그달리야를 살해하는 자들
왕족의 후예들에게는 느부갓네살왕을 섬기며 신임을 받아 유다의 방백이 된 그달리야가 반역자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그와 함께한 자들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바벨론사람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였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땅에 가나안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이 있을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참조, 사19:18).
a.완고한 행위(삼상15:23)
b.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함(렘43:4)
3) 여호야긴의 바벨론생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여호야긴왕은 잡혀간지 삼십칠년만에 옥에서 나와서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고 모든 필요한 물질을 제공받은 영화를 누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셨지만 유다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암시하여 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신 분으로 유다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고 징계의 기간이 지나면 이방의 땅으로부터 해방시켜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a.하나님의 도우심(욥5:11)
b.다윗상에서 먹은 므비보셋(삼하9:7)
결론
유다의 멸망에서 성도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악인에 대한 마지막심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여 모든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 24장 - study  (0) 2022.11.08
열왕기하 23장 - study  (0) 2022.11.08
열왕기하 22장 - study  (0) 2022.11.07
열왕기하 21장 - study  (0) 2022.11.07
열왕기하 20장 - study  (0) 2022.11.07

# Study

Ⅰ. 여호야김의 최후 24:1-7
본문에서는 황금머리에 해당되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대한 첫번째 기사가 나타난다(1절). 느부갓네살은 강한 왕이었으며, 강대국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인의 포로에 관계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이 거룩한 기록인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1)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을 봉신으로 만들고 삼년간 자기를 섬기게 하였다(1절).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 제4년에 치세를 시작하였다. 여호야김 제8년에 그는 여호야김을 사로잡아서, 자기를 충실히 섬긴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왕위에 복귀시켰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이약속을 3년정도 지킨후,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일으켰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애굽의 원조를 기대하였던것 같다.
(2) 여호야김왕이 반역을 일으켰을때, 느부갓네살왕은 갈대아사람, 아람사람, 모압사람, 암몬사람으로 구성된 군대를 보내어, 여호야김과 그의 나라를 멸망시키게 하였다. 갈대아나 아람, 모압사람들은 그때당시 모두 바벨론왕을 섬겼고, 바벨론왕에게 조공을 바쳤으며(2절), 더욱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래된 적대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제 그감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유다로하여금 이렇게 고통당하게 하시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므낫세의 죄를 처벌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죄를 '삼사대'에 이르러서 갚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처벌하시기전에 먼저 그들이 회개하는지 보시려고 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기게도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므낫세는 회개하였으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므낫세가 행한 핍박과 살인죄는 용서되었다고 할수도 있지만, 이것은 국가적인 죄이므로 여전히 그땅에 책임이 있었으며, 따라서 국가적인 심판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죄를 도와주고 선동한 자들가운데 그때까지 살아있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이사실은 국가가 조상들의 죄로인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조상들의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이 많이 필요함을 알게해 준다.
(3) 애굽왕도 마찬가지로 바벨론왕에게 굴복하였으며, 그의 나라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7절). 애굽왕이 다시는 그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그는 후에 시드기야에게 어떤원조를 하려고 시도하였으나 퇴각할수밖에 없었다(렘 37:7).
(4) 여호야김은 자기나라가 황폐하게 되었으며 자신도 적의 수중에 곧 떨어지게될 상황에 처했음을 보고, 한창나이에 애통해하다가 죽었다(6절).

Ⅱ. 유다왕 여호야긴 24:8-20
본문에는 에스겔 1:2절처럼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역사가 기록되었다. 여호야긴은 왕위에 즉위하였으나, 왕으로서의 명예를 얻었다기보다는 왕위를 상실하는 수치를 당하였다.
(1) 그의 통치기간은 아주짧고 고려할 가치도 없다. 그는 즉위한후 불과 3개월간을 통치한후,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나 이 어린왕의 통치기간은, 그가 조상의 악한행위를 좇았기때문에 조상의 죄로인하여 정당하게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히 긴시간이었다(9절).
(2) 여호야긴의 통치시작부터 그와 그의 집과 백성에게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재난이 닥쳤다.
1) 예루살렘이 바벨론왕에게 포위되었다(10,11절).
2) 여호야긴왕은 바벨론왕에게 즉시 항복하였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사람의 신앙도 경건도 없었으므로, 남자로서, 군인으로서, 왕으로서의 결단력도 없었다. 그는 자신과 왕가를 전쟁포로로 넘겨주었다.
3) 느부갓네살은 성전과 국가의 모든 보물들을 샅샅이 뒤져서 은과 금을 탈취해 갔다(13절). 이제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무릇 왕궁의 모든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20:17).
4)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주민의 대부분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보다 8년전 느부갓네살 원년, 즉 여호야김 3년에도 주민의 일부를 포로로 잡아갔었다. 이들중에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참조. 단 1:1,6). 느부갓네살이 당시 포로로 잡아간 이들은 다음과 같다.
① 어린왕과 그의 가족.
② 모든 귀족들과 방백들과 관리들.
③ 모든 군인과 '모든 용사들'(14절), '나라에 권세있는 자들'(15절), '용사'와 '싸움에 능한자들'(15절).
④ 전쟁무기를 만드는 모든 기술자와 장인들. 선지자 에스겔도 포로로 잡혀갔다(겔 1:1,2).
(3) 바벨론왕은 여호야긴 대신에 그후계자를 임명하였다. 그는 요시야의 아들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온세상으로 하여금 그가 바벨론왕이 세운자라는 사실을 알게하였고, 그의 이름을 개명하여 '시드기야'라고 불렀다(17절). 이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왕이다. 바벨론왕이 그에게 붙여준 이름은 '여호와의 정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을 배반하니라(20절). 이것은 그가 할수 있었던 일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일은 그의 왕국의 파멸을 촉진시켰던 것이다.

# 핵심
24:1-7
여호야김왕은 결국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정복당한채 종말을 맞았다.

# 묵상
선지자의 역할 ( 24:2 )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백성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부인하며(마16:24),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호야긴의 통치 ( 24:8, 9 )
여호야김의 아들로 석달을 다스렸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우상숭배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넘기신 하나님 ( 24:11-17 )
백성들을 죄에서 돌이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영히 버리고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중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을 채찍질하심으로써 그들의 허물을 스스로 발견토록 하고, 더나아가서 그들로하여금 죄악을 청산하고 새롭게되는 은총을 누리게 하기위한 선한목적으로 그렇게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겁고도 초월한 사랑의 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히12:5-13).
시드기야 ( 24:17-25:7 )
요시야의 셋째아들인 맛다니야로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시드기야로 개명되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두눈이 뽑힌채로 바벨론에 포로로 처참하게 끌려갔습니다.

# 해설
유다말기의 왕들의 치세와 몰락 ( 24 )
요시야왕이 죽은후부터 유다왕국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요시야왕의 개혁정책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열조의 악행을 본받아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않고 이웃나라를 의지하는 정치술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온전히 행하지 않는 왕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심판을 내리심으로써 유다에 대한 심판을 진행시키셨습니다.
1. 여호야김의 치세
1) 바벨론을 섬긴 여호야김
여호야김은 처음에는 애굽의 느고를 섬겼으나 변화된 국제정세에 편승하여 바벨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애굽과 앗수르 동맹군은 B.C.605년 바벨론과의 갈그미스전투에서 패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팔레스타인의 새주인인 바벨론을 애굽대신 섬기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처음부터 친애굽정책을 실천하던 자였으므로 느부갓네살왕이 애굽을 침범하다가 패하자 바벨론을 배반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을 의지하여 그아래서 보호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a.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함(렘25:1)
b.느부갓네살왕을 섬김(렘28:14)
c.70년동안 바벨론을 섬긴 유다(렘25:11)
2) 유다멸망의 동기가 된 바벨론배신
여호야김의 바벨론배신은 유다멸망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친애굽정책을 실시함으로 멸망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에게 애굽을 좇지말고 바벨론을 좇으라고 예언하였습니다(참조, 렘27:7-11). 여호야김의 선지자의 예언에 대한 불순종과 애굽의 선택은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가까워왔음을 예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므낫세의 가증한 우상숭배의 죄로인해 유다에 예정된 피할수없는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a.호세아가 앗수르를 배반함(왕하17:4)
b.에돔이 유다를 배반함(왕하8:20)
c.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함(왕하1:1)
2. 바벨론의 포로가 된 여호야긴
1)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
여호야김이 죽자 여호야긴은 십팔세에 왕이되어 예루살렘에서 석달의 짧은기간동안 치리했습니다.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미 시작되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속에서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구하기위하여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여도 충분하지 않을상황에서의 여호야긴의 악행은 유다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던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여호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범죄한 여호야긴의 행위는 참으로 멸망받을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a.가증한 죄악(렘15:4)
b.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함(왕하21:16)
c.우상숭배(왕하21:11)
2) 바벨론의 침입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의 악행을 보시고 심판의 강도를 늦추지않으시고 바벨론으로 다시 유다를 침략케 하셨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올라와 그성을 에워쌌습니다. 결국 여호야긴과 그가족들은 바벨론군대에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와전의 모든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다 집어내고 솔로몬왕이 만든 여호와의 전의 금기명을 다 훼파하였습니다. 또한 빈천한자 외에는 그땅에 남은자가 없도록 다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즉 여호야긴과 그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있는 자, 그리고 용사와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을 잡아갔던 것입니다(참조, 왕하24:15-16).
a.이사야의 예언(왕하20:17)
b.포위된 예루살렘(단1:1)
3) 여호와의 말씀같이 됨
바벨론이 유다를 침입하고 모든보물을 약탈해가고 사람들을 잡아간 것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렘20:5). 또한 하나님께서 솔로몬과의 언약에서 이미 경고하셨던 일이었습니다(참조, 왕상9:6-9). 여호야긴과 유다백성이 바벨론에게 당한 수치는 단지 그들만의 죄로인함이 아니요 오랜세월동안 우상숭배로 범죄하여 여호와를 진노케한 유다의 열왕과 백성의 죄로 인함이었던 것입니다.
a.하나님의 재앙선포(왕하21:12)
b.성전훼파에 대한 예언(왕하23:27)
3. 시드기야의 유다통치
1) 시드기야의 악행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의 마지막왕이 된 시드기야는 이십일세에 왕위에 올라 십일년을 예루살렘에서 치리하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멸시하여 그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에게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을 섬길것을 권하며 만일 그렇지 않을경우 비참한 종말을 맞게될 것임을 예언했습니다(참조, 렘32:4;렘38:17-23). 그러나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왕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어기고 배반하여 하나님앞에서 범죄하였습니다.
a.열조의 악행을 본받음(왕하23:32)
b.언약을 배반함(겔17:18)
2) 범죄하는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
시드기야는 여호와앞에 교만히 행하여 범죄하였을뿐 아니라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들까지도 이방의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며 여호와의 전을 더럽혔습니다. 왕과 함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의 타락은 유다멸망의 때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백성과 그거하시는 곳, 즉 성전을 아끼셔서 멸망의 심판을 유보하시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유다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백성은 하나님의 사자을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며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을 자초하였습니다.
a.범죄한 치리자들(미3:9)
b.허망하여진 백성(미2:11)
3) 만회할수 없게된 유다의 죄악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진노의 심판에서 피하게 하시기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어 끝까지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그들이 목을 곧게하여 겸비치 아니하므로 더이상 진노를 지체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참으시지만 회개치 않는자들에 대해선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십니다. 시드기야와 유다백성은 회개치 않음으로 바벨론군대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회개를 촉구하고 있지만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심판때에 영벌에 처해지게 됩니다. 임박한 진노를 피하는 길은 회개밖에 없습니다.
a.하나님이 이미 버리심(렘34:2)
b.느부갓네살에게 붙여진 유다(대하36:17)
결론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 이어지는 유다말기의 왕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언을 믿지않음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야 하는데, 이는 그길이 구원과 승리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환난중에서도 피할길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열왕기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왕기하 25장 - study  (0) 2022.11.09
열왕기하 23장 - study  (0) 2022.11.08
열왕기하 22장 - study  (0) 2022.11.07
열왕기하 21장 - study  (0) 2022.11.07
열왕기하 20장 - study  (0) 2022.11.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