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부활 24:1-12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들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밝히 드러나 있다. 그 증거들을 여기서 찾아볼수 있다.
(1)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던 선한 여자들이 그리스도가 죽고 장사지낸바 뒤에도 그리스도께 사랑과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볼수 있다(1절). 그들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서둘러 무덤에 갔다. 그들은 시체에 향료를 뿌리고, 얼굴과 머리 그리고 아마 상처난 손과 발에도 향유를 바르며 우리가 흔히 시체나 무덤 주위에 꽃을 뿌리는 것과 같이 시체나 그 주위에 향료를 뿌리려고 했다. 그리스도를 위한 이들 착한 여자들의 열심은 식지 않았다. 그 여자들은 안식일 전날 저녁에 예비해 놓은 향품을 가지고 안식일이 지난 새벽 일찍 무덤에 갔다.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한 것은 그분을 위해 쓰라. 이 여자들의 이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즉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또한 이들과 함께있던 다른 여자들도 주목을 받고있다(1,10절). 그들은 향품을 준비하는데는 동참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따라 무덤에 갔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후 그를 아는 자들이 더 늘어난 것처럼.
(2) 그들은 돌이 굴려 옮겨지고 무덤이 빈 것을 보자 놀랐다(2,3절).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지고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자 매우 근심했다(4절).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가끔 자기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일을 가지고 근심할때가 있다.
(3) 찬란한 옷을 입은 두천사가 나타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천사들을 보자 그 여자들은 두려웠다. 그들은 무덤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찾아보려고 얼굴을 땅에 대었다. 그들은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가 아니라 수의를 입은 주님을 찾고 싶었다. 천사들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있는 여자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5절). 이로써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한다. "구주께서 살아계심을 압니다." 이 사실은 성도들 모두의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또한 우리를 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은 책망을 받았다(6절).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그분은 무덤을 떠나셨다." 천사들은 그 여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말씀을 환기시킨다. 갈릴리에 계실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6절). 그들이 부활의 예언을 믿고 명심했더라면 그 일이 발생했을때 쉽게 부활을 믿었을 것이다. 천사들은 그리스도가 전에 하신 말씀을 그 여자들이 들을수 있도록 다시 한번 반복한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7절). 예수께서는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항상 이 말씀 뒤에 따라나오는 말씀 즉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것일까? 하늘에서 내려온 이 천사들은 새복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며 그 말씀을 어떻게 적용시켜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4) 이 말씀을 듣고 여자들은 만족했다(8절).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다. 그 말씀을 기억하자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면 더이상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적절한때에 기억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바로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
(5) 그들은 사도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무덤에서 돌아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9절). 잠시후 그날 아침에 그들 모두 이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말하고 있다. 사도들이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11절). 그들은 그 말을 단지 여자들이 환상을 보고 하는 말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상력으로 돌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몇번씩이나 고백했던 그들은 사신후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신다는 말을 수차례나 들었던 그들 아닌가? 그런데도 그 사실을 믿지못하고 주저하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6) 베드로는 이 사실에 대해 조사를 했다(12절). 베드로가 무덤으로 달려간 이야기와 특별히 관련된 요20:1,2절을 보면 이 소식을 베드로에게 전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1) 그 소식을 듣자마자 베드로는 서둘러 무덤으로 갔다. 만약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에게 파숫꾼이 도망갔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그리로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험하지 않을때는 발이 빠른 많은 사람들이 위험할때는 황소걸음이 된다.
2) 무덤을 살펴보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가 벗겨져 곱게 개어있고 시체는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베드로는 마치 천사들의 증언보다도 자기 눈을 더 믿는 것처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3) 베드로는 그 된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베드로는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바로 알기만 하면 우리에게 아주 유익한 일들도 그렇지 못하기때문에 우리를 당황케하는 일이 많다.
Ⅱ.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 24:13-35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에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사실을 앞에서도 나왔다. 그러나 앞에서는 언급만 했을뿐이며(막 16:12) 여기서 비로소 자세히 말하고 있다. 그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첫달 즉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그날 일어났다. 두제자 중의 한사람은 글로바였으며 나머지 한사람은 확실하지 않다. 9절 말씀으로 보아 그는 열한 사도와 함께있던 자였다.
(1) 두제자의 목적지와 대화 내용 :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약 2시간쯤 걸리는 엠마오라하는 촌으로 갔다(13절).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 아침에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들은 허탄한 말로 여기고 있었다. 그들은 엠마오로 가면서 이 모든 된일을 서로 이야기했다(14절).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2)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과 동행하시매 그들은 좋은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15절). 예수께서는 낯선 사람인양 우연히 같은 길로 가게된 것처럼 꾸며 함께 동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사람이 그러한 일에 열중하고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오셔서 그들 중의 하나가 되신다. 이같이 신앙과 사랑이 잘못된 두사람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삽겹줄"이 된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문의하면서 그리스도를 찾고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오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찾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 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6절). 어쨌든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들은 훨씬더 자유롭게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으며 그리스도도 그들에게 자유롭게 이야기할수 있었다.
(3) 그리스도는 그들을 알고 계셨으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주고받은 대화 : 친구들이 신분을 감추거나 변장을 하고 만났을때처럼 그들도 여기서 질문을 주고받고 있다.
1)그리스도께서 처음하신 질문은 그들이 슬퍼하고 있는데 대한 것이었다.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절).
①그들은 슬펐다. 그들은 사랑하는 주님을 잃었으며, 주님께 걸었던 기대가 무너져서 실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근본을 포기했다. 그래서 무슨 수로 그것을 보충해야 할지 몰랐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믿지않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슬퍼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뻐해야할 때인데도 슬퍼할때가 종종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것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서 이야기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좋은 친구와 좋은 대화는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 슬픔을 밖으로 표현함으로써 평정을 되찾게 된다. 같이 울어줌으로써 서로 위로를 받는다. 같이 울어주는 것이 때로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②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대해 물으셨다.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17절).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승귀의 상태로 들어가셨지만 자기 제자들에게는 여전히 다정하셨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슬픔을 아시며 그들이 당하는 괴로움을 보고 괴로워하신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사교적이 되라고 가르쳐주신다. 지나치게 소심한 것보다는 건전하나 사고를 즐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다. 또한 우리에게 동정을 베풀라고 가르치신다. 슬픔가운데 있는 친구를 발견하면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하신것 같이 그들의 슬픔을 알아주도록 하자.
2)그 일을 알지 못하는데 대해서 그들은 물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18절). 글로바가 그리스도께 정중하게 답변했다. 우리에게 정중한 자들에게 우리는 정중해야만 한다. 그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매우 위험한 때였다. 그런데 글로바는 이 낯선 사람이 자기들을 해치려고 접근한 것이 아닌가하고 경계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지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아니! 당신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예루살렘에서 우리 주님이 당하신 일을 모른단 말입니까?" 그는 이 낯선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걸 보고는 그냥 두지 못했던것 같다. 낯선 사람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자들이 예수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그리스도는 가진 자와 가진 것을 쓰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글로바의 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소란해졌으며, 거기 살면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수 없던 일이었음을 알수 있다.
3)대답하는 대신 그리스도는 그들이 아는바에 대해 물으셨다.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19절). 이렇게해서 자신을 더 낯선 사람처럼 꾸미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앞에 예비되어 있는 기쁨에 비하여 자기가 받으신 고통을 가볍게 여기셨다. 그가 얼마나 태평하게 자신이 받았던 고통을 뒤돌아보는지 살펴보라. 그분에게는 무슨 일인지 알아야할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그분에게는 너무나 쓰라리고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무슨 일이뇨'하고 묻는다. 그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는바를 말해줄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그 신비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4)그러자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였다. 19절 이하에서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잘 살펴보라.
①그들의 말속에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요약되어 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것은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선지자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생이셨다. 그는 영광스러운 이적 곧 자비의 이적을 많이 베푸심으로써 이를 확증하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분이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능하신 분이었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이 사실을 모르는 자는 이상한 사람이다.
②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20절).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비난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③그들이 슬퍼하는 이유가 그분께 대한 실망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21절). 그에게 이스라엘의 구속과 위로를 기대하였다. 바라는 것이 늦어지면 실망하게 되지만 바라던 것이 무너지면 절망하게 된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러나 그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을 구속한 사람이 아닌가? 그의 죽음으로써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마치셨으므로 그들은 어느때보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믿어야하는 것이다.
④그들이 지금 놀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이 바로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게다가 오늘은 다시 살아나셔서 사흘전에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셨던것 같이 영광 중에 모습을 드러내시리라고 기대했던 날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잠잠하기만 합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대단찮게 말하고 있다(22,23절).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단지 그들이 환상을 보았을 뿐인것 같습니다. 왜 흔히 여자들은 그런데 쉽게 빠지지 않습니까?" 그들은 사도들 중 몇사람도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24절).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가 살으셨다면 분명히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가 살아나셨다고 생각할 이유가 더이상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모두 그의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그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⑤주님은 얼굴로 그들에게 알리시지는 않았지만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다.
㉠그는 구약을 잘 믿지못하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미련하고 마음에 더디믿는 자들이여(25절). 그리스도는 그들을 미련하다고 하셨다. 악한 자라는 뜻이 아니고 연약한 자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그들이 미련하다고 책망을 받은 이유는 첫째로 그들이 더디믿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더디믿으며 한번도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선입견으로 멀리하는 자들은 미련한 자들이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둘째로 선지자의 말을 더디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에 좀더 정통하고 성경에 나와있는 만큼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정통하다면 가끔씩 우리를 사로잡는 당혹함에서 자유를 얻게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이야말로 그가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다른 길로는 그 영광에 도달할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할 것이 아니냐(26절).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만족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오해를 벗겨주는 두가지 사실을 보여주신다.
첫째, 메시야는 이런 고난을 당하셔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가 받으신 고난은 그가 메시야되심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뿐만 아니라 그가 메시야됨을 실제로 증거하는 것이다. 고난을 받지않으셨다면 결코 구세주가 되실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이런 고난을 당하신 다음 그는 영광에 들어가셔야 한다. 그는 부활하실때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셨다. 그것을 자기의 영광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세상이 생기기전 그에게 있었던바로 그 영광이다. 그는 먼저 고난을 당하시고 그런 다음에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셔야 한다. 우리에게도 먼저는 가시 면류관을 그 다음에는 영광의 면류관을 기대하라고 명하신다.
㉢그는 구약 성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그 말씀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주셨다(27절).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면서 자기가 받은 고난을 통해 그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가르쳐 주셨다. 모든 성경에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산재해 있다. 예언이든지 약속이든지 기도든지 또는 다른 형식으로든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얻지못하고서는 성경 어느 부분도 통달할수가 없다. 복음의 은혜라는 황금실이 구약이라는 천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섭리에 따라 그때는 막연했지만 지금은 장막이 벗겨지고 신약이 구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가장 훌륭한 성경 주석가이시다. 특히 자기에 관한 성경에 있어서 성경을 연구할때는 조직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구약의 빛은 점차 밝아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빈번하게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족장들에게 아들에 관해서 말씀하셨으며 또 그 족장들을 통하여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4)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길을 가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나 성경 강해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았어야 했다. 그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설교와 강해가 퍽 마음에 들어서 여행이 빨리 끝난 것처럼 생각되었다. 또한 사실이 그러했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28절).
1)그들은 예수께서 함께 머무시기를 바랬다. 예수는 더 가려하는것 같이 하시니(8절). 예수께서 더 가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더 가려하는것 같이 보였다. 만약 그들이 함께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는 더 가셨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초청하며 끈질기게 졸라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끈질기게 졸라대는 일을 멀리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강권하여 말했다. 함께 유하사이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기쁨을 맛본 자들은 더욱더 그것을 열망하게 되며, 하루종일이라도 함께 동행해 주실뿐만 아니라 밤중에도 함께계셔 주시기를 간청하게 된다. 예수는 그들이 조르는 바대로 들어주셨다.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29절).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간청하면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고 약속하셨다(계 3:20).
2)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30,31절). 그는 길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계속하신것 같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식사 준비는 곧 끝났을 것이며, 그 식사는 빈약했을 것이다) 그는 제자들을 즐겁게 해주셨다. 마침내 그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서야 비로소 그들은 자기들과 내내 이야기를 나눈 분이 예수이심을 알게 되었다. 음식을 먹을때 즉 그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자 비로소 그분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음식은 보리떡 다섯개와 같은 "이적적인" 음식도 아니며 성만찬에서와 같은 "성례적인" 음식도 아니다. 단지 보통 음식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때와 같은 행동을 취하심으로써 특별한 의식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섭리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하라고 가르치신다. 음식을 대할때마다 그리스도를 식탁의 상좌에 모시며, 음식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것으로 알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먹고 마시자. 그가 떼어주신 음식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감사함으로 받도록 하자. 그들은 눈이 밝아져 그가 누구인줄 보게 되었으며 그를 알아보았다. 안개는 걷히고 장막은 벗겨졌으며 그분이 주님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실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그분의 모습을 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모습은 틀림없이 그분에게만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과 은혜로 자신을 알리신 방법에 주목하라. 그는 그들의 마음의 눈을 여심으로써 그 일을 완전히 이루신다. 계시를 주신 그분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두움가운데 있게 된다.
3)그리스도는 저희에게 얼핏 보이신후 가버리셨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순간적으로 보게된다. 즉 우리가 그를 보지만 잠시후에는 다시 그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다.
(5)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나누던 대화를 생각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 소식을 전한다.
1)그리스도와 대화하면서 받았던 느낌을 각자 돌이켜 본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우리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절). 이처럼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설교를 돌이켜보면서 의견을 나눈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었다. 그들이 비록 설교하시는 분을 보지못했다 할지라도 그 설교가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설교는 매우 단순했다. 게다가 그 설교로 인해 그들의 마음속에는 "거룩한 빛"과 "거룩한 열정"이 생겨났다. 내내 자기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셨던 분이 바로 자기들이 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셨다는 것을 확실히 믿게되자 비로소 이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면 어떤 설교가 유익한 설교일까? 그리스도께서 하신 설교와 같이 단순한 설교이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또한 성경적인 설교여야 한다.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때.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성경에 있는 신앙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또한 성경으로 자기들의 지식과 신앙의 원천을 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설교를 들어야만 유익한가? 마음이 뜨거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일 특히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며, 그로인해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생겨나며, 거룩한 소원에 사로잡힐때 우리 마음은 뜨거워진다.
2)그들은 이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 전했다(33절). 그들은 곧 그 즉시로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알리시자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식사를 마칠때까지 기다릴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이었지만 그들은 전속력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스도를 만난 그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그들의 흔들리는 신앙을 강건케하며 그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주어야만 안심할수가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영혼을 위해 이루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신바 된 사람들이 당연해 해야할 의무이다. 제자들의 마음은 이 일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형제들에게 가서 그 기쁨을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①그들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열한 사도와 평소부터 알고 지내던 자들이 밤늦게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이 두사람이 들어가자 기쁨과 환희에 차서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내셨다"고 말해주었다(34절).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본 사실은 고전15:5절에 나타난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천사는 여자들에게 그 사실을 특별히 베드로에게 전해서 그를 위로하라고 명령했다(막16:7). 또한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바로 그날 주님께서 친히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을 가능성이 많다. 그것을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것은 베드로가 그 사실을 전하며 자랑하지 않고 다른 제자들이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고 기뻐하며 말한 사실이다. 주님은 여자들에게 나타나셨을뿐만 아니라 시몬에게도 나타나셨다.
②그들이 본 것을 말함으로써 부활의 증거를 더 확실히 했다(35절). 두사람도 길에서 된일을 말하였다. 그리스도가 길에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여기서는 길에서 된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말씀으로 인해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마침내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였다.
Ⅲ.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 24:36-49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날에 다섯번 나타나셨다. 그리스도는 동산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요 20:14),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한 여자들에게(마 28:9), 베드로에게, 엠마오로 가는 두제자에게, 그리고 밤에 열한 사도에게 나타나셨다.
(1)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자 그들은 대단히 놀랐다. 그는 아주 적절한때에 그들가운데 나타나셨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 말을 할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가운데 서심으로써 그 증거를 확실히 하셨다.
1)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36절). 이 말씀으로 보아 지금 그리스도께서 사랑과 우정의 표시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알수 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않았다. 그래서 친히 찾아오신 것이다. 전에 그는 부활하신후 갈릴리에서 그들을 보게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이 너무나 보고싶어서 그 약속을 앞당겨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보게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가끔 자기가 말씀하신 것보다 못하신 적은 없다. 그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는 말씀이었다. 이런 말씀을 먼저 하심으로써 그는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한 것이나 나머지 다른 제자들이 자기를 버리고 달아난 것을 책망하려고 오신 것이 아님을 평화스럽게 오셔서 그들을 이미 용서하셨음을 나타내셨다.
2)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심히 놀랐다(37절). 그들은 영을 보는 것처럼 생각해서 무서워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가 자기들가운데 계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령이라"고 말했을때 사용한 단어는 허깨비, 귀신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 쓰인 단어는 영혼이란 뜻이다. 육체를 입지않은 영으로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2)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대단히 만족했다.
1)그들이 이유없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책망하셨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38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살펴보라.
①두려워할때는 언제나 마음속에 해로운 의심들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때로는 마음에 일어나는 의심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워하기때문에 의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속으로는 두려워한다.
②그리스도를 오해하는데서 마음을 동요시키는 의심이 생겨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보고는 영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며 겸손케하실때, 그리스도께서 섭리를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시며 우리로 회개하게 만드실때 우리는 마치 그분이 우리를 해치려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게 된다.
③마음속에 어지럽게 의심이 일어날때 주님은 언제나 그것을 눈치채신다. 그는 의심하였다고 제자들을 책망하심으로써 의심하면 우리도 책망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2)제자들에게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의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셨으며 그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만드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두가지 증거를 보여주셨다.
①그는 자기의 몸 특히 손과 발을 보여주신다. "내 손과 발을 보라. 나에게 손과 발 즉 실제 육체가 있는 것을 보라. 못자국 난 손과 발이 보이지 않느냐? 이것은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빌린 것이 아니고 너희가 보았던바대로 십자가에 못박혔던 나의 몸이다." 그는 영은 살과 뼈가 없다는 원리를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그렇게도 가깝게 대화를 나누던 바로 나다. 두려워 말고 기뻐해야할 바로 나란 말이다." 우선 그는 그들의 시각에 호소하면서 못에 찔린 손과 발을 보이신다. 그리스도의 영화된 몸에는 못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 못자국으로 자기임을 증명할수 있었다. 그는 그 못자국을 보이셨다. 후에 그는 도마에게도 그 못자국을 보이셨는데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것을 부끄러워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부끄러워하거나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고난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다음에 그는 그들의 감각에 호소하신다. 만져보라. 그전에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만져보지 못하게 하셨었다(요 20:17)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에게는 만져보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고 그로인해 고난을 받게될 그들인지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를 만져보게 하심으로써 자기가 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하셨다. 기독교 초기에는 그리스도가 실체적인 육신을 입지않으셨으며 실제로 탄생하거나 수난을 당한 적이 없다고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이런 이단들은 벌써 오래전에 매장당했으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이나 유령이 아니라 부활하신 후에도 실제 육신을 입으신 분임을 알고 또한 확신한다.
②자기의 몸이 실체임을 보여주시려고 함께 잡수셨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대단히 강조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행 10:41).
첫째,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못하고 기이히 여길때에(41절). 그들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부활에 대해 믿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은 도리어 그리스도의 부활이 참되다는 것을 확증한다. 대제사장들이 주장한 것처럼 그들은 그의 시체를 숨겨놓고는 그가 살아나셨다고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나셨는데도 계속해서 그는 살아나지 않았다고 말하려 한다. 후에 그들이 그것을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게 되었을때 부활은 무엇보다도 완벽한 증거를 갖게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약점이기는 했지만 용서받을수 있는 약점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 앞에 드러난 증거들을 무시하고 믿지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믿지 못했다. 그것은 너무도 좋은 소식이라 사실로 생각할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기이히 여겼다. 그것은 너무나 좋고 엄청난 일이어서 사실로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둘째, 그들에게 더 확신을 갖게하고 용기를 주시려고 주님은 먹을 것을 청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실제로 그들과 함께 잡수심으로써 그의 육체가 다시 살아난 사실을 증명하셨다. 그들은 주님에게 구운 생선 한토막을 드렸다(42절). 이것은 간소한 식사였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것을 먹는다면 주님께서도 같은 것을 잡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제자들은 주님과 같이 먹기 때문이다.
3)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다. 주님이 그들과 함께 계셨을때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셨다. "이 말씀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때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었던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만 잘 기억한다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도 잘 깨닫게 된다. 주님은 구약에서 읽었던 말씀을 인용하신다.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44절). 메시야에 대해서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곧 그의 나라에 관한 것뿐 아니라 그의 수난에 대해 기록된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어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다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와 관련된 구약성경을 몇가지 언급하셨다. 즉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의 뜻을 나타내신 것을 살펴보라. 곧 주님은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리스도에 대해 구약에서 예언된 말씀의 의미와 참뜻을 깨닫게 하셨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5절). 두제자와 이야기하시면서 주님은 마음을 여심으로써 성경 본문을 가리운 장막을 걷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신다. 성령은 우리 영에 접근하셔서 즉시로 그것을 지배하실수 있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열어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무리 어두움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어두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앙을 심는 방법은 바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는 문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마음을 여는 의도는 우리로 성경을 깨닫게 하자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로 성경에 기록된 것을 좀더 잘 깨닫게 한다는 뜻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좀더 잘 깨닫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결코 성경 이상을 배울수가 없다. 즉 그들은 성경으로부터 계속해서 배워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4)주님은 사도의 신분을 지닌 그들에게 교훈하셨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 너희의 본바를 온세상에 전하여야 하리라. 너희는 이 모든 일을 확실히 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목격자다. 가라 가서 세상에 이 모든 일을 확실히 증거하라.
①그들이 전파해야할 내용 : 그들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메시야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나라의 영광과 은혜에 대해서 옛적에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보여주며 그 모든 것이 주 예수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말해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위대한 복음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한다(46절).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할 것이 기록되었으니. 가서 기록된대로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것을 세상에 말하라. 가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라. 그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말며 고난받는 예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했던 것과 세상의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필수적이었던 사실을 전하라. 또한 그리스도가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실을 전하라.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또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느니라. 가서 말하라. 죽었던 그리스도가 지금 살아계시다고. 또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사시며 죽음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복음이 요구하는 회개의 의무가 인류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죄의 회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위로 전파되어야 한다(47절).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라. 돌이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라고. 그들의 심령과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죄사함이라는 엄청난 복음의 특권이 모든 사람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명령을 확실히 말해주어야 한다. 가서 죄악된 세상에 희망이 있음을 말해주라.
②그들이 전파해야할 대상 : 그들은 모든 죄인에게 이를 전파해야 한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이 빛을 전하여야 한다. 선지자들은 유대인에게 회개와 죄사함을 전파했지만 사도들은 온 세상에 이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회개하라는 복음의 의무에서 면제될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측량할수 없는 복음의 은혜에서 제외될수 없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날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면 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일까?
첫째,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이 방법을 취해야만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둘째, 복음의 기초가 된 사건들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먼저 그 사실들이 입증되어야 한다. 부활하신 구세주의 영광을 비추는 최초의 빛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를 대적하는 대담한 원수들을 대항해서 무색하게 만든다.
셋째,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수를 용서하는 본을 보여주려고 하시기 때문이다. 복음의 은혜가 제일 먼저 예루살렘에 베풀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잠시후에 수천명이 그 은혜를 공유하게 된다.
③복음을 전파할때 그들에게 주어질 능력 :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우리라(49절). 주님은 여기에서 잠시후면 그들에게 성령을 전에 없이 충만하게 부어주실 것이며 그로인해 그들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은사와 은혜를 완전히 갖추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는 자는 그로인해 능력을 입게 된다. 만약 사도들이 그런 능력을 입지 못했더라면 그들이 행한바 주의 복음을 심고 이 세상에 주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결코 할수 없었을 것이다. 위로부터 온 능력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틀림없는 것이며 약속된 것은 말할수 없이 귀중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사자들은 능력을 갖게될 때까지 머물러야 한다. 아무리 복음 전파가 시급하다고 여겨지더라도 전도자들은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Ⅳ. 그리스도의 승천 24:50-53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1) 그리스도는 매우 엄숙하게 제자들을 떠나셨다. 주님에게는 양쪽 세상에서 하실 일이 있으셨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로부터 땅에 오심으로써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서 하실 일을 온전히 마치셨다. 그리고 그 일을 다 이루신후에는 하늘로 돌아가셔서 그곳에 거하고 계신 것이다.
1)주님이 승천하신 곳 : 예루살렘 가까이 감람산과 인접한 베다니에서였다. 그곳에는 주님의 수난이 시작된 동산이 있으며 거기서 주님은 매우 고민하고 계셨다. 베다니는 "슬픔의 집"이란 뜻이다. 천국에 가고자하는 자는 반드시 고난과 슬픔의 집에서 천국에 오르게 된다. 또한 여기서 주님은 얼마전에 당당한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하셨었다(눅 19:20).
2)주님께서 승천하실때 목격한 사람들 : 주님은 제자들이 자기를 볼수 있게 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주님이 부활하신후에 살아계신 주님을 본 것만으로도 주님의 부활을 증명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이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달리는 주님의 승천을 증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3)주님의 작별 인사 : 주님은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셨다. 주님은 기분 나쁘게 떠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기쁘게 떠나셨다. 주님은 축복을 남기셨다.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심으로써 이 세상에 있는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보여주셨다.
4)주님이 떠나신 방법 : 축복하실때에 저희를 떠나(51절). 그렇게 하심으로써 주님은 그들을 떠나신다고해서 그들을 축복하는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셨다. 주님은 지상에 계실때 그들을 축복하기 시작하셨으며 하늘에 가셔서도 그것을 계속하고 계신다.
5)주님의 승천에 대한 표현
①주님은 그들을 떠나셨다. 우리를 사랑하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반드시 우리를 떠날 날이 있다. 세상적으로 그를 알던 자들도 이제부터는 더이상 그를 그렇게 알지 않는다.
②주님은 하늘로 올리우셨다. 불병거나 불말이 필요없었다. 주님은 그 길을 아시기 때문이다.
(2) 제자들은 계속해서 명랑하게 주님을 섬겼다. 주님이 떠나실때 그들은 주님께 대한 경의를 표했다. 즉 그들은 주님께 경배했다(52절). 주님이 그들을 축복하자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들은 주님께 경배했다. 그들이 보지못하도록 구름이 주님을 가리웠지만 그렇다고해서 주님이 그들이나 그들의 예배를 보지못하신 것은 아니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큰 기쁨으로 그곳에 머물렀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떠나야한다고 말씀하셨을때는 슬픔이 마음에 가득하던 그들이었건만 그분이 떠나는 것을 본 지금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기대하는 동안 신앙심에 가득차 있었다(53절). 그들은 기도 시간에 성전 예배에 참석했다. 그들은 주님이 예루살렘에 계실때 그러셨던 것처럼 계속해서 성전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를 대신한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성전에서 부르는 찬양을 함께 드렸다. 거룩한 기쁨과 찬양보다 더 성령받을 마음의 준비를 훌륭히 시키는 것은 없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슬픔은 가라앉으며 소망만이 남는다. 아멘. 계속해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 해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 24 )
본장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크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으로 생을 마감하자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은 부활 소식을 듣고는 다시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본장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1. 예수의 부활
1) 빈무덤
안식후 첫날 새벽 미명에 큰 지진이 나며 예수님의 시체를 넣어둔 무덤 돌문이 굴려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마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주님께서 묻혀있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안에 들어가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줄 알고 근심했습니다.
a.여인들이 무덤을 찾음(요20:1)
b.돌로 막은 유대인의 무덤(요11:38)
2) 부활을 증거하는 천사들
여인들이 주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근심하고 슬퍼할때 천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여인들은 그들의 찬란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두려움때문에 얼굴을 땅에 대었습니다. 천사들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여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천사들의 이 말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천사들은 이 세여인들에게 생전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즉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천사의 말을 통해 여인들은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기억하고 부활을 믿었습니다.
a.성도의 길을 인도하는 천사(행8:26)
b.산 자에 대해 증언함(히7:8)
3) 부활을 증거하는 여인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은 여인들은 빈무덤과 천사의 말을 열한 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그 말이 허탄한듯이 보여 믿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의 말을 들은 제자 중 베드로만이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빈무덤을 확인하고 신비감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원한다면 신앙의 성장을 도모하도록해야 합니다.
a.부름받은 자들(마4:19-20)
b.부활 예수를 처음 본 사도(눅24:34)
2. 부활하신 예수의 출현
1) 엠마오 도상에 나타나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날 그 동안 주님을 따라다녔던 두사람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못하고 커다란 실망가운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사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는 저희와 동행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을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a.그 중에 한명은 글로바였음(눅24:18)
b.제자들이 말을 할때에 그 가운데 서계신 예수(눅24:36)
2) 깨닫는 두사람
엠마오로 가는 두사람과 동행하신 부활의 주님께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시고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리라는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사람은 자신들의 목적지에 이르렀을때 머물지않고 더 가시려는 예수님께 날이 저물어가므로 머무르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은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후 떼어 그들에게 주시매 그들은 그제서야 눈이 밝아져 예수님이신줄 알아보았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던 두제자는 예수님이 사라지시자 그때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성경을 풀어주실때에 자신들의 마음이 뜨거웠던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a.성경은 곧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임(요5:39)
b.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봄(마5:8)
3) 사도들에게 나타나심
엠마오의 두제자들은 즉시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사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먹을 것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토막을 드리자 받으시고는 그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a.보고도 의심함(마28:17)
b.음식물의 요구는 육체를 지니셨음을 증거함(눅24:39)
3. 마지막 사역과 승천
1) 성경을 해석하심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자자의 글과 시편에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해석하시며 당신의 모든 사역은 구약 예언의 성취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은 구약에 흐르는 예언이었습니다. 고난은 이면적으로, 영광은 표면적으로 구약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주의 고난(시22:1)
b.주의 부활(시16:10)
2) 성령을 약속하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낼터이니 이 성에 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선지자 요엘을 통해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참조, 욜2:28-29).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성령 강림을 여러번 예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은 주님께서 승천하신후 열흘만인 오순절에 모인 제자들 가운데 임했습니다.
a.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셨음(눅1:35)
b.성도들을 권능있는 증인들로 만드심(행1:8)
3) 승천하심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주님께서는 40일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사역을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이 모두 끝났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육적으로 떠나가셨지만 영으로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승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a.큰 대제사장이 되기 위함(히4:14)
b.때를 따라 성도를 도우심(히4:16)
결론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부활은 성도의 신앙을 좌절하지 않도록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죄악에 대해 담대하게 맞설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힘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 핵심
24:1-12
대속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보여주는 빈무덤 사건과 천사의 증거이다. 주님은 영원히 죽지않고 마침내 부활하시어 만백성의 참소망이 되신 것이다.
구속(redemption, 24:21)
대가를 지불하고서 속박 상태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 대표적 용례로는 율법 규정에 따라 사람과 가축을 막론하고 초태생을 대속하는 것, 가난한 친족이 판 땅을 되사는 것, 속전을 지불하고 죄수나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신 일 등을 들수 있다. 예수님을 가리켜 ‘구속주’라 함은 그분이 죄인들이 당해야할 저주와 죄짐을 대신 걸머지고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제 주님의 대속 공로를 믿는 자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케 된다.
# 묵상
최초의 부활 소식 ( 24:1-10 )
최초로 부활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갈릴리에서부터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따라온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러 갔다가 부활의 첫증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활 소식에 대한 사도들의 반응 ( 24:11, 12 )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빈무덤을 확인하고 기이히 여겼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못하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후에는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부활의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요20:27, 29).
엠마오의 두제자 ( 24:13-35 )
이들은 눈이 가리워졌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수 없었습니다. 이는 육신의 눈이 가리워진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아볼수 있는 영의 눈이 가리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간 따라다니며 그분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말과 일에 능한 자로밖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와같이 영의 일은 성령의 증거가 있어야 제대로 깨달을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때에 그 마음이 감동되었고, 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주실때 영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말씀과 나눔은 그리스도를 깨닫게하는 두가지 기본 요소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부활을 깨달은 제자들은 즉시 다른 제자들에게로 가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행1:8). 그러므로 성도는 죄짐으로 불안하고 괴로운 인생을 사는 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여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주님께로 인도해야할 것입니다.
부활의 증거 ( 24:36-43 )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분명하게 자신의 부활을 믿지못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당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육체적 증거를 넘어선 인격적 증거로써,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그 손과 발의 상처를 직접 만져봄으로써 예수님의 인격을 가까이서 경험할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잡수심으로써 자신이 십자가 죽음 이전의 바로 그 예수님이심을 입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 ( 24:44-49 )
성도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일의 증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부활의 주님을 믿고, 예언의 성취이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예하며, 죄사함을 얻을수 있도록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승천이 주는 의미 ( 24:50-53 )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의 구속 행위의 일부분으로써 성자 예수님의 임무와 보혜사 성령의 분수령이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가견적인 승천으로 재림때도 모든 자들이 볼수 있도록 재림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천은 성도에게 부활의 확증으로써 의미가 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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