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참된 사명자의 삶

[빌립보서 2장 19절~30절]
19절 -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절 -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절 -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절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절 -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절 -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절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절 -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절 -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절 -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절 -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절 -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은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 사정을 알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또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다는 소식에 근심하던 빌립보 성도를 위해 회복된 그를 급히 보내며, 그리스도의 일에 열심인 그를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라 합니다.

●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참된 사명자의 삶
복음을 위해 연합하는 성도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염려되어 사정을 알아보려고 디모데를 보내려 합니다.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일에 관심을 두고 바울을 도와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입니다. 한편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돕도록 파송한 사자로, 병들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염려하는 빌립보 교회를 위해 그를 돌려보내면서, 그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위해 일했으니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라고 당부합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존귀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 디모데,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모습으로 자기보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우선시했나요?
* 적용 질문
오늘 하루, 다른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천해 보세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나를 보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빌립보서 2장 12절~18절]
12절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절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절 -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절 -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절 -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절 -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절 -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은 하나님께 항상 복종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명합니다.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 하고, 흠 없이 순전해 세상에서 빛으로 살라 합니다. 바울은 성도의 온전한 믿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1.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12~13절)
성도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항상 앞에 계신다고 생각하며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밤에도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립보 성도에게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라고 권면합니다. 지금 자신이 감옥에 있어서 그들을 돌보지 못해도, 자신과 함께 있을 때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열망을 주시고, 그것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을 의지할 때 성화가 가능해집니다.
* 묵상 질문
성도는 무엇 때문에 항상 복종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행동해야 하나요?
* 적용 질문
내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항상 인식한다면 태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2.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14~18절)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믿지 않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때, 그리고 사람보다 일 자체에 초점을 맞출 때 '원망과 시비'가 생깁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요소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원망과 시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처를 받고 결국 교회를 등지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첫째, 어그러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과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원망과 시비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꺼이 순교할 각오까지 했던 바울처럼 지도자가 먼저 희생의 본을 보일 때, 교회 공동체는 순전한 믿음과 아름다운 섬김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공동체 안에서 원망과 시비는 왜 생길까요?
* 적용 질문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 누구를 원망하며, 무엇 때문에 시비하나요? 세상에 빛을 비추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구성원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제 모든 말과 행동의 기준이 오직 주님께 맞춰지게 하소서. 순전한 믿음을 지키고, 원망과 시비가 없이 행할 선함이 제 속에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을 때, 그 말씀이 저를 견인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겸손과 순종의 마음,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빌립보서 2장 1절~11절]
1절 -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절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절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절 -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절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절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절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절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절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한마음을 품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이의 일을 돌보라 합니다. 또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모든 이가 지극히 높으신 예수를 주로 시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1. 한마음으로 겸손하게 (1~4절)
더 나은 교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든 성도의 의무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에게 더 멋진 교회 공동체를 만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하고 격려해 주는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과 자비는 성도가 하나 되는 데 필요한 요소입니다. 성도는 주님 한 분만 생각하고 사랑하며 주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같은 마음으로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경쟁심이나 허영심이 아닌 겸손한 마음으로 하며,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각자 주어진 일에 성실히 책임을 다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럴 때 교회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 묵상 질문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힘써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바울의 권면 중에서 특히 지금 우리 공동체와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2.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처럼 (5~11절)
겸손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겸손의 자세를 친히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지만 하나님 자리에 있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사람의 몸을 입고 가장 천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심은 죄의 수렁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처참한 십자가 형벌로 죽기까지 인간을 섬기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천상천하의 가장 큰 권세를 예수님에게 주시고,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주인의 자리에 예수님을 앉히셨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순종하고 교회를 아끼며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얼마나 겸손하셨고, 어떻게 복종하셨나요?
* 적용 질문
교만과 불순종의 마음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저 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작은 교회로 서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로 겸손과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모든 섬김에서 허영의 불순물을 제하며 참된 겸손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구원의 증거입니다

[빌립보서 1장 22절~30절]
22절 -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절 -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절 -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절 -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절 -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절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절 -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절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절 -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바울은 자신이 육신으로 있는 것이 성도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해 더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위해 고난도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 더 유익한 것을 위해 (22~26절)
자기 생명보다 복음 증언하는 일을 더욱 귀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참된 제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가 죽는 것은 주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길이기에 개인적으로 좋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를 위해 '더 유익한 것'에 자신을 바칩니다. 그가 빌립보 성도와 함께 있기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 그들에게 믿음의 성장과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면 그로 말미암아 빌립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이유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연장해 주시는 것은 우리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빌립보 교회에 어떤 면에서 유익할까요?

* 적용 질문

어떻게 하면 교회 공동체와 믿음의 지체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을까요?

 

2.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27~30절)

결승점을 앞두고 물리쳐야 할 상대가 많은 선수는 무척 힘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많은 유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첫째, 성도가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품고 복음을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분열은 사탄이 언제나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복음을 대적하는 이단 세력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함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셋째, 성도는 주님을 믿기에 구원의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고난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기꺼이 고난을 견디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성도를 세상이 미워하며 핍박할 때, 하나님은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도록 성도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 묵상 질문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요?

* 적용 질문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 위해 특히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타인과 믿음의 공동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제 유익에만 골몰했던 이기심을 회개합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나 홀로' 신앙생활을 하기보다 지체들과 사랑의 연합을 이루며, 담대하고 충성된 제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빌립보서 1장 12절~21절]
12절 -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절 -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절 -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절 -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절 -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절 -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절 -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절 -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절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배경 이해하기]
사도 바울에게 빌립보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입니다. 1차 전도 여행과 예루살렘 교회 회의가 끝난 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의견이 달라 헤어졌습니다. 그 후 바울은 아시아로 전도 여행을 떠나려 했지만 성령께서 그것을 막으셨고, 드로아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이 도움을 청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AD 50년경부터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마게도냐에서 첫 번째로 복음을 전한 곳이 바로 빌립보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했고 루디아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행 16:11~15). 이것이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의 시작입니다.
그 이후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다가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고, 그 일을 계기로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습니다(행 16:16~34). 감옥에 갇히는 것은 사실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그 이후에도 사도 바울은 여러 번 감옥에 갇힙니다. 지금도 바울은 감옥 안에 있는데, 자신이 처음으로 수감되었던 빌립보를 생각하며 그곳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 전파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와 멸시와 대적 행위, 심지어 감옥에 갇힌 것도 그가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립보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바울의 매임과 복음 전파의 진전(12~14절)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로마 감옥에 1차로 투옥된 상태였습니다(AD 61~63년).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해서 바울을 물질적으로 후원할 뿐 아니라 곁에서 시중들게 할 만큼 바울에게 깊은 애정과 호의를 보여 준 사랑의 공동체입니다(2:25; 4:18). 바울은 빌립보 성도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자신이 감옥에 있지만 그래도 기뻐한다고 알립니다. 그 이유는 감옥에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코펜’의 원형 ‘프로코페’는 원래 군대가 원활하게 진군하도록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인데,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갇힌 것은 복음 전파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선포합니다. 즉 복음 전파의 장애물처럼 보이는 일조차도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면 복음 전파의 디딤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이런 확신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고 형제들 역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연구 2: 전파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15~21절)
바울은 그의 ‘형제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전하다’(랄레인, 14절), ‘전파하다’(케루세인, 15절), ‘전파하다’(카탕겔레인, 17~18절)라는 동사를 연이어 사용합니다. 사실 그들이 복음을 전파한 동기는 각기 달랐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옹호하는 이들은 ‘자비심’에서 나온 ‘착한 뜻’(유도키아, 15절)과 ‘사랑’(아가페, 16절)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고 ‘투기와 분쟁’(프도노스 카이 에리스, 15절), ‘다툼’(에리데이아, 17절)과 같은 순수하지 않은 이유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사도 바울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18절)라고 선포합니다. 그는 복음에 사로잡힌 참된 일꾼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 성도의 중보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감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감옥에서 죽거나 다시 자유의 몸이 되거나 하는 것에 관계없이 자신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21절).

[묵상 포인트]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최대의 사명은 복음 전파였습니다. 그 복음은 상황에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계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존귀하게 여겨지기를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1. 평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얼마나 전파하나요? 복음을 전파하다가 장애물을 만난 적이 있다면, 그때 어떻게 했는지 나누어 보세요.
그리스도인에게 전도(傳道)란 교회나 신앙 공동체에 불신자를 데려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도란 말 그대로 ‘도(道)를 전(傳)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도(道)’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도’, 곧 ‘십자가의 길’이며 ‘구원의 길’입니다. 다시 말해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구원의 길’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지만, 여러 가지 장애물 때문에 전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세상의 부정적인 생각,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성격, 불신자의 거절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거룩하지 못한 삶 때문에 복음 전도를 망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에 대한 하나님 명령을 기억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

2. 생활 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이 전파됨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나누어 보세요.
지금 이 시대에 기독교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데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갖는 이유도 일정 부분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내가 믿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셨음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자랑하는 것이 혹시 부끄럽고 두렵습니까?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이며 멸망할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눅 12:9; 딤후 2:12; 딛 1:16; 벧후 2:1; 요일 2:22~23; 요이 1:7; 유 1:4).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말과 행동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도문]
저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가치 있는 일임을 고백합니다. 제 삶도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복음 전파, 내 기쁨과 삶의 이유

[빌립보서 1장 12절~21절]
12절 -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절 -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절 -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절 -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절 -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절 -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절 -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9절 -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절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절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이 오히려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이는 주를 신뢰하기에, 또 어떤 이는 바울을 괴롭히려고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바울은 무슨 방도로든 그리스도가 전파됨을 기뻐합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자기로 인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12~18절)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난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때, 어떤 처지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기에 로마 병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복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음을 기뻐합니다. 또한 감옥에 갇혀서도 담대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려고 분발하는 성도가 있음에 기뻐합니다.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든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사실에 기뻐합니다. 기쁨은 좋은 환경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을 볼 때 무엇보다 큰 기쁨을 느낍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어떤 이유로 기뻐할 수 있었나요?
* 적용 질문
나는 요즘 무엇 때문에 기뻐하나요? 바울의 모습에서 어떤 도전을 받나요?

2.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면 (19~21절)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발견하게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기에, 자신이 비록 감옥에 있어도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은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투옥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훗날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구합니다. 또한 끝까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합니다. 바울은 자신 안에서 사는 이가 그리스도에 자신이 죽어도 그리스도가 드러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주님 때문이요,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주님 때문입니다. 성도는 주님께 지정의를 집중하고, 언제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무엇이었으며, 그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위치에 있나요? 그리스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일까요?

오늘의 기도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십자가를 바라볼 때 기쁨이 충만하게 하소서. 모든 상황을 통해 구원의 섭리를 이루실 주님을 신뢰하며, 힘든 상황일수록 더욱 친밀하게 만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내 안에 뛰고 있습니까?

[빌립보서 1장 1절~11절]
1절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절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절 -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절 -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절 -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절 -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절 -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절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절 -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절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절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 성도에게 편지합니다. 바울은 첫날부터 복음의 일에 참여한 성도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풍성하게 되어 선을 분별하며, 그리스도로 인해 의의 열매가 가득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1~2절)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죄인인 우리는 예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또한 복음에 빚진 자로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를 지닌 '주님의 종'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하는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과 동행하며 대화하는 '친구'입니다(요 15:15). 이런 정체성을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라고 인식하며 살아가나요?

2.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 (3~8절)
믿음의 경주에 나서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지녀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전자전이란 말이 있듯이, 바울이 세운 빌립보 교회의 성도 역시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인 처음부터 복음을 위한 일에 헌신합니다. 자신들의 믿음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굳건히 지키고자 고군분투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을 사나요?
* 적용 질문
내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열매 (9~11절)
믿음의 기도가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욱 풍성해지길 기도합니다. 그럴 때에야 그들이 선한 것을 분별하는 영적 안목을 갖추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진실한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가득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할 때, 우리의 믿음은 순결해집니다.

* 묵상 질문

빌립보 교회를 위해 바울은 어떻게 기도했으며, 왜 그렇게 기도했을까요?

* 적용 질문

내가 속한 교회, 그리고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 지금 어떤 기도가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께는 충성된 종이, 세상 앞에서는 복음의 능력으로 당당한 증인이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와 한 심장이 됨으로 주님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주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는 저와 저의 가정,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교회에 유익한 사람들

[빌립보서 4장 1~7절]
1절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절 -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절 -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절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절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절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요한계시록 2장 10절]
10절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교회를 많이 세운 사도 바울은 어떤 교인들한테는 기쁨을 얻고 어떤 교인들한테는 실망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중의 이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매우 기쁘게 해준 사람들입니다. 고로 바울은 빌립보서 4:1절에서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교인들은 바울에게 면류관과 같은 큰 기쁨이라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오늘날 교인들 중에도 특별히 목사에게 뿐만 아니라 주님께도 기쁨의 면류관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 교회에 유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1.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무엇보다 가장 유익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그분의 도우심을 힘입을 수 있는 최선의 통로가 되므로 항상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야말로 교회에 가장 큰 힘과 도움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뜨겁고 축복받는 교회가 되며, 밤을 밝히는 기도가 끊이지 않을 때 그 교회는 실로 크게 부흥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어 그 어떤 사단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게 됩니다.

 

2.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어디서도 우리들에게 위대해야 된다든지 영특해야 된다든지 또는 부자가 되야 된다고 명령하지는 않지만 충성해야 된다고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유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충성된 사람, 성실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재주가 많고 많은 교육을 받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배에 출석하는데 성실치 못한 사람은 무식하고 가난해도 충성된 사람만 못합니다. 성가대를 하나 맡아도, 교사나 속회를 맡아도 꾸준히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교회에 가장 유익합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가장 요구하시는 것이 충성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래전에 카터(Carter) 대통령이 우리 나라에 왔을 때에 그분의 하루하루를 TV에서 보여주는데 아침마다 뛰는 운동을 꼭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바쁜 중에도 주일이면 꼭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되, 본인이 침례교 집사라고 몇 만명 되는 유명한 교회를 다 두고 조그만 자기 교회에 나가서 예배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역시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남달리 성실하고 충성된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12년에 타이타닉(Titanic)호가 대서양에서 침몰될 때도 그 배가 침몰되기 시작할 때 악대가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때 악대의 부원들은 배가 가라앉아 그들이 죽을 때까지 자기 책임을 다 하면서 '내 주를 가까이'를 계속 연주했다고 합니다.

저도 기도하기를 '주님 우리 교인들도 충성되게 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교회에는 예배 출석에 충실하고, 바치는데 충성하고, 봉사하는데 충성하고, 전도하는데 충성된 사람들이 가장 유익합니다.

 

3. 자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일에는 자원해서 하기를 원하고 있지마는, 하나님의 일에는 자원해서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클럽이나, 단체에서 초대하면 아무 때나 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자원해 가는데, 교회일에는 핑계가 많고 뒷걸음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자원하는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자원하여 찾아가면서 일하는 자를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이야말로 진정 교회에 유익한 사람들입니다. 담장 위에서 놀고 있는 배짱이의 소리가 들에서 일하는 황소의 소리보다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이는 말은 많이 하는데, 실제로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교회에 유익을 주기 보다는 심각한 해악을 끼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4. 비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는 어떤 일과 목표에 대한 비젼(Vision)을 가진 사람이 유익합니다. 예수님께서 요 4:35절에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채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으로 굴러 떨어져가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우리는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넓혀서 큰 비젼을 가지고 교회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이렇듯 비젼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1835년에 원시 침례 교회(Primiive Baptist)라는 교파가 선교 침례 교회(missionary-Bap-tist)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원시 침례교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려면 인간의 도움이 없이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교리를 주장하는데, 반대로 선교 침례교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따라 온 세상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교리를 믿습니다. 그런데 이 원시 침례교는 얼마 안가서 거의 없어져 버리고, 선교 침례 교회는 수백만 명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일에 대한 비젼이 없이 안일하게 생활하는 자들이 모인 교회는 결코 부흥되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보다 원대한 비젼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유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5. 긍정적인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부정적인 사람들보다 긍정적인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안돼', '전에 그런 것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큰일 났어 우리 교회'하는 등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에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이나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어디서나 해로운 존재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때, 쉽게 들어가서 자리잡을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12정탐꾼을 뽑아서 그 땅을 탐지하고 소식을 가져오게 한 후에 들어갈 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2정탐꾼이 들어가 보고 와서는 그 땅은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좋은 땅이지만 그 땅 거민은 거인들이라 우리들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기에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그 중에 10명이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말하기를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니 그 땅을 우리가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결국 비관적인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후 40년 동안이나 광야를 방황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인생살이에는 고난이 많고 원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외부적 환경보다 더 강하신 한분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긍정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교회는 날로 부흥 발전해 갈 것입니다.

 

6.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부지런했습니다. 요 5:17절에 보면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결코 게으른 사람을 택하여 쓰신 일이 없습니다. 모세, 노아, 다윗, 세례 요한, 베드로, 바울 등 모두 부지런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며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큰 회사는 우두머리 되는 사람들이 큰 일을 계획하고 청사진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계획을 실천하는 부지런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교회도 주님이 주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실현하려면 부지런한 교인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업은 반드시 우리가 손으로 해야 하고, 발로 뛰어서 해야 합니다. 만일 교회 일을 게으른 사람에게 맡긴다면, 교회는 침체되고 맙니다. 부지런히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교회에 유익한 존재들입니다.

 

7.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남침례교 신학교가 한때 재정난을 부딛쳐서 폐교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훌륭한 목사님과 교수 몇 분이 그 학교를 지탱해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이때 한 교수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신학교를 죽게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습니다'하고 슬픈 얼굴로 말했더니, 한 교수가 나서면서 '형제들, 신학교가 죽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읍시다'하고 죽자는 각오로 학교를 살려보자고 독려했고 이에 그들이 재산을 털어 바쳐서 신학교를 살렸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의 희생적 헌신으로 신학교는 구출되고, 수천명의 목사를 길러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희생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이 교회에도 필요합니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아낌없이 드리고 옆의 성도들과 이웃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사람이야말로 교회에 실로 중요한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가장 크고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줄 알 때, 그 교회는 부흥되고 그 교인들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아 멘 -

  

제목 : 회고와 전진 (피종진 목사님)

[빌립보서 3장 13절~14절]
13절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절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인생의 삶속에는 만남과 이별이 교차됩니다. 보낼 때는 외롭고 아쉽지만, 맞이할 때는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하게 합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주어진 시한부의 삶이며, 인생의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에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도 있고, 취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는 세월의 변화 속에서 생존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내는 세월을 회고하고 맞이할 다가올 일에 대해서 새로운 무장으로 전진할 수 있는 길목에 있습니다. 이 길목에서 우리는 세 가지 회고와 전진에 대해 교훈을 말씀 속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뉘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 지식을 연마하게 되고, 체력이 약함을 깨달았을 때 건강을 위해 주의를 하게 되고 건강을 챙기게 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부족하다, 게으르다,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부터 전진하게 되고 더 성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부유하게 되었고 조카를 출세시켰고 최고의 사람인줄 알았는데, 한 순간에 조카에게 배신을 당하고 좋은 것은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외롭고 쓸쓸한 들판에서 홀로 탄식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은 욕심을 부렸습니다. 아버지의 눈이 어둡다는 것을 이용해서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형을 피해 들판에 누워 자기를 뉘우칠 때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다윗은 눈물로 베개를 적신 침상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자기 자신을 깨달았을 때 새로운 출발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자기 수단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시 26:2). 그래야 새로운 길이 열리고 희망이 보이고 새로운 약속을 받게 되고 형통한 길이 열리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볼 때 가장 귀한 것이 인격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도 더 귀한 것은 영적인 삶입니다. 사람은 다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임을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은 심장이 멈추는 날, 모든 것이 끝납니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립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고 가장 큰 축복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면,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가 사라지지 않습니다(시 103:1~5). 새로운 길이 열리고 희망이 보이고 형통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그리스도께 붙잡힘을 받아 푯대를 향한 전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몸부림쳐 보아도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에게 붙잡힘을 받는 것입니다(빌 3:12). 우리가 예수님께 붙잡힘을 받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사 41:10). 세상의 방해물과, 환난과 핍박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시 23:3). 우리가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푯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도, 시간도 보내고 맞이하는 길목에 서서 살고 있습니다. 그 길목에서 한편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뉘우쳐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께 붙잡힘 받아 푯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야 합니다. 2014년도 지켜주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 오는 2015년도 역시 선한 목자 되셔서 가정과 기업, 직장 그리고 온 삶에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Ⅰ. 여러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함 4:1-9

 

1. 신앙고백 안에 견고히 설 것을 권고함(1)

바울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신앙고백 안에 견고하게 설 것을 권고한다. 우리는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알며 그곳에서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불러 가실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견고히 서 있어야 한다. 영생을 바라보며 믿는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행로를 변함없이 걷게 해준다.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1절). 그는 이런 식으로 매우 큰 유익을 가지고 그들에게 권고하기 위해서 그들로 인해서 얻게 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하는 형제들로서 사랑했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그리고 바로 뒤에 '사랑하는 자들'등의 표현이 이것을 보여준다. 형제애는 항상 형제의 관계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그는 그들을 사랑했고 사모했다. 그는 그들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들로 인해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의 기쁨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사랑했으며 아울러 그들로 인해 영광을 얻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의 기쁨이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의 면류관이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 안에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견고하게 거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혹은 '주 안에 견고히 서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그의 능력과 은혜 안에 견고히 서라"는 말이다.

2. 일치와 상부상조를 권고함(2,3)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일치와 상부상조를 권고한다. 2절에서 바울은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때때로 일반적인 복음의 교훈들이 특정한 사람들이나 특정한 경우들에 적용될 필요가 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교회 문제로 인해서든 혹은 다른 문제로 인해서든 서로 견해의 차이가 있었던것 같다. 2절의 말씀은 그가 "나는 그들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기를 원한다. 또한 그들이 사랑과 화평 안에서 살며 교회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기를 원한다"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상부상조를 권고해 간다(3절). 그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권고를 주고 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라는 말씀이 이것을 보여준다. 바울이 참으로 자기와 멍에를 같이 한 자라고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는 자기와 멍에를 같이 한 자에게 '복음에 자신과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도우라'고 권고한다. 바울 사도와 멍에를 같이 한 사람이 누구였든간에 그 사람은 바울의 동료들과도 멍에를 같이 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3절 말씀을 볼 때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쓰던 부녀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 사역에 있어 부녀들은 사역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바울은 자신의 모든 동역자들을 사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이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생명책에는 단지 인격이나 자격이 아닌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책을 조사할 수 없으며 아울러 그곳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복음을 위해 힘쓴 자들의 이름이 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리라고 결론 내릴 뿐이다.

3. 항상 기뻐할 것을 권고함(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의 모든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만 한다. 아울러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반드시 기쁜 것이여야만 한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또한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항상'이란 "언제나 어떤 경우에서건"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가장 최악의 상황속일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에게 공급되어지기에 부족하지 않은 충분한 기쁨이 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만일 선한 사람이 계속적으로 기쁨의 축제를 가지지 못한다면 이는 그들 자신의 잘못이다.

4. 온유할 것과 선한 성품을 권고함(5)

우리는 여기서 우리 형제들에 대해 온유할 것과 선한 성품을 가질 것을 권고 받는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이는 곧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극단으로 치닫지 말라 즉 서로가 서로에 대해 관대하게 판단하라"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고난에 대해 인내하며 참는 것 혹은 세상적인 쾌락에 대해 절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말씀은 이와 같은 생각과 잘 연관된다고 하겠다. 이 말씀은 곧 "그가 너희 대적들에게 원한을 갚아주실 것이며 너희 인내를 보상하실 것이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5. 마음을 불안케하며 당혹케하는 염려에 대하여 권고함(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생의 궁핍과 어려움 속에서 일지라도 근심되는 염려와 마음이 불안케 되는 것을 피하라. 염려없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이익이다. 근면하고자 고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불신으로 인한 염려는 우리의 죄이며 어리석음이다.

6. 기도할 것을 권면함(6,7)

바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할 것을 권한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모든 특별한 문제에 대해 기도해야 한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일이 우리의 영혼을 괴롭힐 때 기도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한다. 즉 우리의 일에 갈피를 못잡고 근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기도하고 간구하되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선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도록 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자비로 받아주실 것도 구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라는 말씀이 이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궁핍이나 소원을 들으셔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니님께서는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들과 소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계신다. 이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7절)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란 충분히 평가되어지거나 충분히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 이는 곧 "어려움들로 인하여 죄를 짓고 그 어려움 속에 빠지는 곳에서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라는 말이다.

7. 좋은 이름을 가지며 또 지킬 것을 권고함(8,9)

우리는 좋은 이름을 가지며 또 지킬 것을 권고 받는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8절). 이는 처신에 있어 참되고 걸맞는 것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이는 불순하지 않거나 또는 죄가 섞이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이는 우리가 사랑스럽게 되는 것과 좋은 평판을 듣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에게서 선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이 있으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배우도록 했을 것이다. '무슨 덕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가 이 사실을 보여준다. 이 말은 곧 "진실로 그들 가운데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본받도록 하라"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에게서 일지라도 좋은 점을 배우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도록 해야 한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9절). 바울 사도의 가르침과 삶은 하나였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본받으라고 내세울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가 호소하고자 하는 바를 보게 될 때 우리가 호소하는 그것은 더 큰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Ⅱ. 빌립보 성도들의 친절에 대한 바울의 감사 4:10-19

 

(1)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이전에 그에게 베풀었던 친절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15,16절). 바울은 감사하는 정신을 가졌다. 이 서신이 읽혀지는 곳은 어디서건 그들이 바울에게 베푼 이 일이 그들에 대한 기념으로 말하여지게 될 것이다. 물론 당시에 보답이 있지는 않았다.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5절).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있었을 때뿐만 아니라 그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도 그들은 주고받는 일에 참예했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어떤 교회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유일하게 올바르고도 자비로운 성도들이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16절). 그들이 보냈던 것들은 그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는 결코 쓰고도 남을만큼 원하지 않았으며 아주 좋은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너희가 한 번 두 번…보내었도다. 많은 사람들은 자선을 행함에 있어 자신들이 한 번 베푼 그것으로 할 도리를 다 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빌립보 성도들은 한 번 두 번 보내었다.

(2) 바울은 최근의 그들의 소홀함을 이해해 주고 있다(10절). 마치 겨울 내내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봄에 다시 살아나듯이 바울에 대한 그들의 배려가 이제 다시 싹이 트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이해해 주고 있다.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즉, 만일 적당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들은 온전히 행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3) 바울은 그들의 현재의 베풂에 대해 칭찬하고 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다(14절).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동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의 친구들이 곤경에 처해있을 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10절). 왜냐하면 그것은 곧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사랑한다는 증거였으며, 아울러 그들 가운데서 바울이 사역한 것이 성공하였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4)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11절). 이는 곧 바울이 궁핍을 겪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궁핍을 겪었기 때문이 아님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지극히 적은 것으로 만족했으며 또 그것이 그를 만족케 했던 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가 궁핍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님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에게 공급해 주실 것을 믿었으며 따라서 만족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겠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와 같이 그에게 있어서도 고난과 역경속에서 경험하여 배울 필요가 있는 교훈이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12절). 이와 같이 삶의 모든 여건에 자신을 순응시키는 것은 은혜에서 비롯된 특별한 생활의 태도이다. 우리가 고난의 여건에 순응하는 것 이것은 비천에 처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가 부유한 여건에 순응한는 것, 이것은 풍부와 배부름에 처할 줄 아는 것으로서 자만이나 안주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천에 처할 줄 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교훈이다. 이는 배부름과 부요의 상태에서 오는 유혹이 고난이나 궁핍의 상태에서 오는 유혹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 우리는 모든 여건 속에서 자족하도록 그의 힘이 우리를 가르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바울 사도는 마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힘에 대해서 자랑한 것처럼 보인다. 12절의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에서 그렇게 느끼기가 쉽다. 그러나 13절에서 그는 모든 찬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있다. 즉 그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은 그의 끊임없이 새롭게 공급되는 힘에 의해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17절). 여기서 바울이 뜻하는 바는 "너희의 친절에 내가 기뻐하는 것은 그것이 너희들에게 유익을 더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의 의미였던 것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18절). 이는 곧 "풍족한 사람이 무엇을 더 바라리요"라는 말이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탐욕스런 속인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한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비록 가진 것이 거의 없다 할지라도 풍족하게 여긴다.

(5)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빌립보 성도들의 친절을 열납하셨으며 또 갚아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리라는 확신은 18절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그것은 감사의 제물이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에게 그의 궁핍을 채워 준 것이 된 이상으로 하나님에게는 그들에 베푸신 은혜의 결실이라고 하는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주실 것에 대하여는 19절 말씀이 보여주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하자면 바울은 하늘나라의 국고 앞으로 어음을 발행하여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너희는 너희의 빈곤 가운데서도 나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풍성함으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빚에 대한 보상으로서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서.

 

Ⅲ. 찬양과 인사와 축복으로 서신을 끝맺음 4:20-23

 

(1) 하나님을 찬양함 :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20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버지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복음 전파에서의 독특한 명칭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두려움 아래서 하나님을 압제자로서가 아닌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돕고자 하시는 아버지로서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그에게서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에게 모든 찬양을 드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찬양은 끊임이 없고 변함없는 것이어야만 한다. 즉 그것은 '세세 무궁토록 돌려지는 영광'이어야만 한다.

(2) 빌립보에 있는 자기 친구들에 대한 인사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21절). 바울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온화한 애정을 가졌다.

(3)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문안함 :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 이니라(21,22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란 황제의 궁정에 속해 있는 자들 중 회심한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다. 가이사의 집에 성도들이 있었다. 일찍이 부한 자들과 지체 높은 사람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4) 일상적인 사도의 축복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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