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 안에서의 기쁨 (옥한흠 목사)
[빌립보서 4장 4절]
4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독교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만일 기독교에 기쁨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매력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울한 그리스도인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기독교를 검은 상복과 슬픈 얼굴에 연관시키는 것만큼 해를 끼치는 것도 없다.” 곧 기독교에는 세상이 모르는 독특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갑자기 하늘에서 쏟아져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는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습니다(로마서 5:5).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들어왔으므로 환난을 당해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외아들을 포기할 정도로 우리를 완전히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 사랑이 폭포수같이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아플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조용히 묵상해 보면 틀림없이 기쁨이 생겨날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었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빌립보서 3:7-8). 이 세상에서 예수님만큼 소중한 분도, 복이 되는 분도, 기쁨의 원천이 되는 분도 없습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을 발견하자마자 너무나 좋아서 다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취급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발견하고 모시며 삽니다. 그 결과 나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늘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젠 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차례입니다.
셋째, 바울은 자신의 형편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였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빌립보서 4:10-11). 자기가 당하는 모든 형편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비천하거나 풍부할 때도, 배고프거나 배부를 때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비결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 각자가 처한 형편이 다릅니다. 그러나 어떤 형편에 놓여 있든지 나의 형편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습니다.
넷째, 바울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 곧 예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기뻐했습니다(빌립보서 1:18). 비록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는 형편이었지만 열심히 예수를 증거 했습니다. 그 결과 간수와 고관들, 심지어 네로의 궁전에 있던 사람들까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 바울을 대신하여 밖에 있는 사람들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그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해서 우리에게 기쁨이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기쁨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기쁨의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 주 안에서의 조건을 믿음으로 받아 들인 후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축복이 날마다 찾아 올 것입니다.
<본 말씀은 옥한흠 목사의 주일설교(2002.2.3)를 요약,정리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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